“형수...”나는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제가 형수를 찾아가겠다는 건 다른 일 때문이에요. 몸만 노리는 건 아니에요.”형수는 이내 입을 삐죽거렸다.“이제 최남주가 있다고 난 거들떠도 안 본다 이거예요?”나는 얼른 형수의 손을 잡았다.“그게 무슨 말이에요? 남주 누나는 남주 누나고, 형수는 형수예요. 형수는 제 마음속에서 아무도 대신할 수 없어요.”그 말을 들은 후에야 형수의 표정은 조금 풀리는 듯했다. 곧이어 풉, 하고 웃음을 터뜨리며 나를 바라봤다.“최남주는 방금 만족시켜 줬으면서 난 언제 만족시켜 줄 거예요?”형수의 몽롱하고 매혹적인 눈빛만 봐도 형수는 나를 원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지금 그럴 수 없었다.나는 다급히 시동을 걸었다.“형수, 형수 동생네 집으로 데려다줄게요.”형수는 내가 일부러 피하는 모습에 나를 덥석 잡았다.“거짓말. 분명 수호 씨도 느끼고 있으면서...”나는 미칠 것만 같았다. 방금 남주 누나와 몸을 섞었는데, 왜 또 이렇게 된 건지?형수는 나를 향해 싱긋 미소 지었다.“수호 씨는 운전해요. 내가 도와줄게요...”“안 돼요. 너무 위험해요.”나는 다급히 거절했다.하지만 형수는 이미 나에게 손을 뻗었다.“사람 없는 곳에 차 세우면 안 돼요?”30분 뒤.형수는 만족스러운 듯 손을 닦았다.“역시 수호 씨는 대단하다니까요. 나 결심했어요. 진동성과 이혼하면 다시는 결혼하지 않을 거예요. 그냥 남자 만나 애만 낳을 거예요. 수호 씨가 이렇게 잘하니까 나 좀 도와줄래요?”“형수, 농담하지 마세요. 지금 제 아이를 낳아주겠다는 거예요?”나는 도저히 내 기를 믿을 수 없었다.형수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말했다.“안 돼요? 난 애만 원해요. 그러니 상대가 누구든 괜찮거든요.”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안 돼요. 애교 누나가 알면 어떻게 설명하라고요? 애교 누나가 동의해도 누나 아버지가 동의하지 않을 거예요.”형수는 고개를 홱 돌려 나를 째려봤다.“그럼 애교한테 비밀로 하
고수연은 소파에 기대 울상이 된 얼굴로 말했다.“누가 정신을 못 차린대? 난 그냥 남자가 고플 뿐이야.”“크흠...”그 말에 나는 난감하고 어이없어 헛기침했다.‘고씨 자매는 뭐 다 이렇게 개방적이지?’“형수, 휴식해요. 전 이만 갈게요.”나는 얼른 핑계를 대 떠났다.내가 떠난 뒤 형수는 고수연 옆에 앉아 위로했다.“남자가 고프면 나가서 찾으면 되지. 진용진도 여자를 만나는데 너라고 왜 못해?”“내가 언니인 줄 알아? 언니는 자식이 없어 걱정할 거 없이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지만, 내가 언니처럼 하면 우리 애들은 어떡해?”형수는 끝까지 부인했다.“그게 무슨 헛소리야? 난 네 언니야. 말조심해.”고수연은 헤실 웃었다.“내숭은. 언니 정수호 씨랑 뭐 있잖아. 진동성이 언니를 만족시켜 주지도 못하고 언니한테 잘해주지도 않으니 따로 언니한테 잘해주는 남자 만나는 것도 어렵지 않잖아. 사실 난 가끔 언니가 부러워. 여자가 아이를 안 낳으면 참 편해. 그러니 언니도 앞으로 낳지 마.”“난 아이가 갖고 싶어. 아이가 없는 게 나한테는 한이야.”고수연은 형수의 손을 잡고 말했다.“한은 무슨 고민만 늘어나. 언니가 진짜 아이가 생기면 남자 만날 시간이 어디 있어? 매일 아이 옆에 붙어있어야 해. 내 말 믿어, 언니. 여자는 혼자 자유롭게 살 때가 제일 좋아. 절대 아이 낳지 마.”말을 마친 고수연은 하품을 하더니 자러 방으로 돌아갔다.형수는 거실 소파에 앉아 동생이 한 말을 되새겼다.고수연이 겪은 걸 직접 겪어보기 전에 형수는 아이를 키우는 게 힘들다는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때문에 여전히 아이가 있는 게 없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했다. 사람은 적어도 나중에 기댈 곳 하나는 있어야 하니까.나는 형수의 생각을 알 리가 없었다.형수를 바래다준 뒤 나는 월세방으로 향했다.방에는 아직도 불이 환히 켜져 있었다. 현성은 주선영의 방에 눌러붙어 조잘조잘 뭔가 말하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다가갔다.“선영아, 내가 난 말이지. 학교 다닐 때 성
내가 말한 건 현성을 도와 주선영의 마음을 얻겠다는 뜻이지 상대의 감정을 갖고 놀라는 뜻이 아니었다.현성은 내 말에 흥분해서 날아갈 듯 대답했다.“당연하지. 수호야, 민우 말을 들어 봤더니 너 여자 엄청 잘 꼬신다며? 내가 주선영 꼬시는 거 도와주면, 내가 널 아버지라고 부를게.”“헐. 누가 너 같은 아들 갖고 싶대?”“수호야, 도와줘. 나 좀 도와주라.”현성은 내가 지푸라기라도 되는 듯 나를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나는 우선 현성을 침착하게 하고 입을 열었다.“내가 이러는 건 너랑 주선영이 어울릴 것 같아 하는 말이야. 그런데 네가 만약 선영이한테 상처 주면...”현성은 얼른 맹세했다.“걱정하지 마. 난 절대 선영이한테 상처주지 않아. 내가 선영이를 상처 주면 평생 고자로 살게.”‘각오가 이 정도라고?’보아하니 현성도 진심인 모양이었다.하긴, 그동안 현성은 한번 빠졌다 하면 모든 걸 올인해 직진하는 스타일이었다. 다만 운명의 장난인지 상대는 항상 현성을 좋아하지 않았다. 현성은 부유한 집안에서 자라왔지만 외모가 평범하고 키와 몸무게 모두 175다.요즘 젊은 애들은 외모지상주의라 현성처럼 빼어나지 않는 외모는 당연히 득을 보기 어렵다.하지만 현성이 얼마나 사람을 진지하게 대하는 사람인지 나는 알고 있다. 그렇지 않았다면 졸업도 하기 전에 좋아하는 선배를 따라 H시까지 갔을 리 없다.비록 마지막에 상대가 현성의 마음을 받아주지 않았지만, 현성은 조금도 원망하지 않았다.때문에 나는 현성과 민우처럼 사랑에 올인하는 스타일과 비교하니 내가 너무 쓰레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인생은 참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난 예전에 수줍음을 많이 타고 내성적인 사내였는데 지금은 두 연애고수의 멘토 노릇을 하고 있다.“그래. 그런 각오만 있다면 도와줄게. 하지만 오늘은 늦었으니 우선 자자. 나 진짜 피곤해.”나는 오늘 하로 너무 피곤했던 터라 연신 하품했다.나와 민우가 방에 들어오자 순간 케케한 냄새가 우리 코를 찔렀다.현성은 참지 못하고 욕지거리
“오늘 올 수 있어요?”사모님의 말에 나는 고민도 없이 대답했다.“당연히 가야죠. 지금 1단계 치료가 끝났으니 몸조리가 엄청 중요해요. 절대 중도에 포기하면 안 돼요.”“하하. 방금 한 말은 농담이에요. 우리 부모님은 내가 이미 보냈어요.”사모님은 달콤한 말투로 말했다.듣기 좋은 목소리에 나는 순간 마음이 두근거렸다.사모님은 지금껏 나한테 이런 농담을 한 적이 없다. 더군다나 이토록 가벼운 말투로 말한 적은 더더욱 없다. 때문에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나는 나중에야 사모님이 왜 이런 태도로 나를 내했는지 알게 되었다. 어제 치료를 끝낸 후 사장님의 상태가 눈에 띄게 좋아졌던 모양이다. 사장님 상태가 좋아지니 사모님도 따라서 기뻤던 거고 나를 대하는 태도도 한결 좋아졌던 거였다.하지만 아직 몰랐던 나는 정신이 딴 데 팔려 있었다. 나는 속으로 사모님한테 두근대면 안 된다며 스스로 최면을 걸며 마음을 다잡았다.“그럼 이따가 아침 식사하고 갈게요.”“그래요.”사모님과의 통화가 끝난 뒤 나는 기지개를 켜고 씻으러 화장실로 향했다.오늘 유독 늦게 깨어나는 바람에 이 시각 나는 혼자 남아 있었다.나는 아래층에서 간단하게 아침 식사를 하고 곧장 사모님 댁으로 향했다.사모님은 오늘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아 보였다. 오랜만에 예쁘게 화장한 것도 모자라 평소 가장 즐겨 입던 타이트한 원피스를 입어 부드럽고 여성스러운 면모를 보여주었다.나는 순간 인터넷에서 봤던 구절 하나가 떠올랐다.강남시 여자는 한 폭의 섬세한 수묵화처럼 온화하고 조용하며 청순하고 우아하다. 얼굴은 마치 봄날의 햇살 같고 눈매에 걸린 은은한 미소는 사람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이 세상에 아마 사모님보다 더 온화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 걸 보면 사장님도 참 복이 있는 듯싶다.사모님은 사장님의 병세가 호전된 게 기분이 좋아 자신을 정성껏 꾸민 것일 거다. 역시 여자는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가꾼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이것만으로도 사모님이 사장님을 얼마나 사랑하는
나는 급히 구석진 곳에 몸을 숨겨 변석훈의 명함을 꺼냈다.며칠 동안 요양한 덕분에 내 상처는 거의 다 나았다. 때문에 이제 변석훈을 찾을 때도 됐다.하지만 나는 양동준과 했던 열흘간의 약속에 대해서도 잊지 않았다.내가 양동준의 요구에 도달할 수 없다는 건 알고 있지만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나는 지켜야 할 약속은 무조건 지켜야 하는 사람이다. 때문에 우선 양동준에게 먼저 전화해 현재 상황을 말할 생각이었다.“동준 형님, 지금 어디예요?”“백조의 후수.”그 대답에 나는 일순 멍해졌다.백조의 호수라면 사장님과 사모님이 살고 계신 동네다.나는 다급히 물었다.“형님도 백조의 호수에서 사세요?”“아니요.”“그럼 이곳에서 뭐 하세요?”“임천호 쪽 사람을 감시 중이에요.”그 말에 나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방금 임천호 쪽 사람이 나를 미행하는 걸 발견한 것도 놀라운데 그 뒤에 양동준까지 있다니 너무 충격이었다.이건 말하지 않아도 윤지은의 명령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윤지은이 일부러 동준 형님을 보내 나를 지켜주려는 건가?’“동준 형님, 정확한 위치가 어디예요? 제가 찾으러 갈게요.”나는 양동준을 찾아가 정확히 묻고 싶었다.“그럴 필요 없어요. 내가 찾으러 갈 테니까.”얼마 뒤, 양동준의 그림자가 나 시선에 들어왔다.양동준을 본 순간 나는 순식간에 안심이 되었다.“동준 형님, 혹시 윤지은 씨가 형님을 여기에 보냈어요?”나는 양동준을 보자마자 다급히 물었다.양동준은 워낙 냉담한 성격이라 말하는 것도 조급하지 않았다.“네.”정말 윤지은이라니.“지은 씨가 정말 동준 형님을 보내 저를 지켜주라고 할 줄은 몰랐네요.”“김칫국 그만 마셔요. 아가씨는 나더러 수호 씨를 지키라고 한 게 아니라 임천호가 뭘 하려는 건지 지켜보라고 한 거예요.”비록 그렇다지만 난 이것조차 나에 대한 보호라는 걸 알고 있었다.때문에 속으로 윤지은에게 고마웠다.“동준 형님, 열흘이 흘렀는데 형님이 말한 수준에는 영원히 도달할 수
만약 양동준이 갑자기 나한테 웃어준다면 난 오히려 그게 더 이상하다고 느꼈을 거다.“실력이 되면 그때 얘기해요.”“동준 형님, 그럼 볼일 봐요. 전 더 방해하지 않을게요.”나는 양동준 앞에서 배알이 조금도 없다. 그런 나 자신이 너무 나약하게 느껴졌다.양동준과 헤어진 뒤 나는 변석훈에게 전화해 얼른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그래. 배우고 싶으면 언제든 찾아와.”변석훈은 나한테 주소를 보냈다.나는 그 주소를 적어 둔 후 이따가 찾으러 가기로 결심했다.사모님과 사장님은 한참 동안 산책했다. 그러다 날씨가 점점 더워지자 나는 얼른 사장님을 안으로 밀고 갔다.사장님은 너무 더워 땀을 흘렸는지 집에 도착하자마자 슬립으로 갈아입었다.사모님이 걸어 다닐 때마다 사모님 다리에 있는 날개를 활짝 편 나비가 자꾸만 내 눈에 들어왔다.나비가 움직이는 모습은 그날 내 눈앞에서 하늘거리던 나비와 똑같았다. 거기에 사장님이 전에 사모님이 용천 호텔에 다녀온 후로 사람이 변한 것 같다던 말을 연상하니 나는 그날 밤 나랑 산 사람이 사모님이 아닐까 자꾸만 의심이 들었다.결국 나는 사모님께 살짝 떠보기로 했다. 나는 일부러 화장실에 가 사모님 가까이로 다가갔다.“사모님, 뭐 하나만 물어볼게요.”사모님은 내가 화장실로 들어와 저에게 가까이 다가오자 무의식적으로 뒷걸음쳤다.“뭔데요?”“사모님이 용천 호텔에 다녀오신 뒤로 이상해졌다고 사장님이 그러셨는데, 혹시 그날 제 그런 모습을 봐서 그래요?”나는 너무 직설적으로 물어보면 사모님이 또 나를 무시할까 봐 조심스럽게 물었다.사모님은 그 말에 얼굴이 화르르 타올랐다.“그, 그런 말 하지 마요. 내가 수호 씨 거기를 본 걸 우리 그이가 알면 얼마나 난감해요.”사모님은 고개를 숙인 채 내 눈을 피했다. 하지만 사모님의 백옥처럼 투명하고 흰 피부는 한번 보니 도저히 시선을 옮길 수 없었다.나는 그날 밤 그 나비를 본 것 외에 상대의 피부가 사모님처럼 하얀지 기억을 더듬었다.하지만 그날 밤 술을 너무 많이 마신 탓에
사모님은 늘 온화하고 착하기에 화내는 눈빛과 말투로 말하는 건 극히 드물다. 지난번에는 내가 무의식적으로 무례를 저질러 나를 그렇게 대했다면 이번에는 내가 용천 호텔에서 있은 일을 언급하는 바람에 또 그럴 위기에 처했다.나는 순간 또 사모님의 한계를 건드렸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사모님이 이토록 화를 낼 리 없다.나는 너무 무서워서 말까지 더듬었다.이건 무서워서가 아니라 죄책감 때문이었다. 내가 사장님께 미안한 짓을 했다는 죄책감.“아, 아니요.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아요.”나는 거짓말했다.사모님도 숨기고 싶어 한다면 끝까지 숨길 작정이었다. 그렇다면 모두에게 좋을 테니까.나는 허둥지둥 화장실을 나왔다. 하지만 멘탈이 무너질 것만 같았다.난 솔직히 사모님의 분위기를 매우 좋아한다. 그렇다고 사모님과 그렇고 그런 짓을 하려고 했던 건 아니다.‘이제 어떡하지? 이제 사장님 얼굴 어떻게 보지?’나는 기분이 매우 다운되었다. 더군다나 앞으로 사장님과 사모님을 어떻게 마주해야 할지 몰라 황급히 그곳을 떠났다.나는 한참 동안이나 생각을 정리한 뒤에야 마음이 가라앉았다.현재 유일한 방법은 그 일을 떠올리지 않는 거다.나는 곧장 변석훈을 찾으러 떠났다.변헉훈은 진지하게 말했다.“내가 도와줄 수 있는 건 전투 기술과 도망치는 기술을 알려주는 것뿐이야. 게다가 내가 너한테 할애할 수 있는 시간은 정해졌으니 내 속도를 따라오는지 못 따라오는지는 너한테 달렸어.”나는 변석훈이 진심으로 나를 가르치고 싶어 가르치는 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는 단지 윤해철이 맡겨준 임무를 완수하려고 할 뿐이었다.다만 나도 감히 뭘 더 바랄 수는 없었다.“그래요, 알았어요.”말을 마친 뒤 나는 핸드폰 녹화 기능을 켜고 거치대 위에 핸드폰을 세워놓았다.그동안 격투기 같은 전투 기술을 배운 적 없기에 배우기 힘든지조차 가늠이 가지 않았다.때문에 우선 영상으로 녹화한 뒤 돌아가서 반복적으로 보면서 연구하고 연습하는 수밖에 없다.변석훈은 아무 말도
“고마워요. 석훈 형님.”한 달이라는 시간은 나한테 충분했다.내가 도장에서 나오자마자 하정현의 전화가 걸려 왔다.[나 강북에 도착했으니 마중 나와.”나는 이 일을 잊고 있었다.나는 하정현에게 문자를 보낸 뒤 곧바로 차를 몰고 공항으로 향했다.그런데 이곳에서 한지영을 보게 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사실 나는 한지영의 사촌 동생이 하정현이라는 걸 진작 알았어야 했다.어제 식사할 때 한지영의 사촌 동생이 B시에 가슴 수술받으러 갔다고 했을 때부터 그 사람이 하정현일 거라고 대충 짐작했다. 그런데 그게 사실일 줄이야.한지영은 여전히 말이 많아 나를 만나기 바쁘게 물었다.“여긴 웬일이에요? 나 스토킹한 거예요? 설마 나 좋아하는 건 아니죠?”나는 눈을 홉뜨면서 퉁명스럽게 대답했다.“전 사람 마중하러 왔어요.”“누구요?”“하정현 씨요.”“내 사촌 동생을요? 내 동생이랑 알아요? 어떻게 알게 된 거예요?”한지영의 질문은 끝날 줄 몰랐다.심지어 또 100퍼센트 수익을 낼 수 있는 투자 항목이 있다면서 나를 꼬드겼다. 다행히 얼마 뒤 하정현이 나타난 덕에 나는 겨우 벗어날 수 있었다.나는 다급히 하정현 옆으로 다가갔다.“혹시 사촌 언니도 불렀어요?”“아니? 언니는 내가 오늘 돌아온다는 거 알고 자발적으로 마중 나온 거야. 우리 언니가 정신이 좀 산만하니까 조심해. 무엇보다 절대 속지 마.”하정현마저 이렇게 말하는 걸 보니 사실인 모양이었다. ‘앞으로 거리를 둬야겠네.’우리가 뭐라고 중얼거렸는지 모르는 한지영은 하정현의 팔짱을 끼며 싱글벙글 웃었다.“정현아, 왜 이제야 왔어? 보고 싶었잖아. 언니가 한턱 쏠게. 어때?”한지영이 사겠다고 한 가게는 바로 어제 봉섭 할아버지와 함께 갔던 가게였다.그 가게 음식은 매우 비싼 데다 어제 보니 계산도 신용카드로 하는 것 같던데, 한지영은 대체 뭘 믿고 또 가겠다고 하는지 의문이었다.나는 얼른 하정현의 팔을 잡아당기며 절대 가지 말라고 눈치를 줬다.하지만 하정현은 내 사인을 이해하지 못
하지만 형수는 너무 오랫동안 침대에만 누워 있어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에 반해 양춘옥은 힘이 넘쳐나 손쉽게 형수를 제압했다.형수는 순간 폭발해 버렸다.“당, 당신 뭐 하는 거야?”양춘옥은 얼른 아들에게 말했다.“아들, 뭐 해? 얼른 밧줄을 찾아오지 않고. 이 여자 윗몸만 움직일 수 있고 아래는 못 움직여. 너한테 마침 좋은 기회잖아.”양춘옥의 아들은 얼른 벨트를 풀더니 형수의 손을 묶으려고 다가갔다.그 순간 나는 방으로 쳐들어가 그 남자를 발로 걷어찼다.양춘옥은 그 순간까지 현실을 파악하지 못했다. 그때 나는 양춘옥의 머리채를 잡고 그녀의 뺨을 내리쳤다.나는 양춤옥이 일어나지 못할 정도로 뺨을 후려갈겼다.형수는 위험한 순간에 나타난 나를 보자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나 역시 형수가 깨어난 걸 보니 흥분을 주체할 수 없었다.“형수!”“수호 씨, 타이밍 너무 좋았어요. 이 둘은 인간도 아니에요! 감히...”형수는 흐느끼며 말을 잇지 못했다.나는 얼른 형수의 두 손을 꼭 잡았다.“알아요. 다 알아요. 형수, 걱정하지 마요. 이 사람들이 한 짓 내가 모두 찍었어요. 지금 경찰에 신고할게요.”양춘옥은 경찰에 신고한다는 내 말에 얼굴이 창백해지더니 마구 달려들어 내 손에 있는 핸드폰을 빼앗으려고 했다.나는 또다시 양춘옥의 뺨을 내리쳤다.그러자 이번에는 양춘옥의 아들이 나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모자 둘이 달려들어도 내 상대는 아니었다.양춘옥은 더 이상 방법이 없자 그제야 무릎 꿇고 손이 발이 되도록 빌었다.“정 사장님, 제발 신고하지 말아 주세요. 제 아들이 이제 막 출소했는데 또 잡히면 이번에는 끝장이에요.”나는 이를 악물며 양춘옥을 바라봤다.“당신 아들 생각하기 전에 우리 형수는 생각했어? 내가 마침 집에 오지 않았다면 당신과 당신 아들이 형수한테 끔찍한 짓을 저질렀을 거잖아.”“내가 아줌마를 얼마나 믿었는데, 이렇게 보답하는 거야? 정말 악독하기도 하지. 오늘 당신도 법의 처벌을 받게 될 거야.”“안 돼요. 정 사장
“뭐요? 너무 까다로운 거 아니에요?”“까다로운 게 아니라 원래부터 얌전하지 않은 여자인 것 같아. 남편과 잘 지내지 않고 별 같잖은 남자랑 바람이 났어. 정수호라는 사람인데, 매일 이 여자 몸을 닦아주러 와서 이 여자를 형수라고 불러...”“너무 막 나가는 거 아니에요? 이런 일이 다 있다니. 이 여자도 참 뻔뻔하네요.”아들의 말에 양춘옥이 말했다.“그러니까 내가 널 불러온 거잖아. 이 여자도 워낙 얌전하지 않은 여자니까 너도 욕구나 풀어보라고. 아들, 너 이제 막 감방에서 나와 많이 쌓였을 거 아니야?”“밖에서 아가씨 찾기보다 이 여자한테 욕구를 푸는 게 더 나아. 적어도 이 여자는 깨끗하잖아.”고태연은 두 모자의 대화를 들으면 들을수록 화가 치밀어 당장이라도 일어나 양춘옥의 뺨을 후려갈기고 싶었다.하지만 결국 그녀가 가장 걱정하던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그것도 그녀가 혼자 집에 있을 때 말이다.이런 상황에서 당하면 다른 사람은 아무도 모를 거다.고태연은 너무 무섭고 두려웠다. 심지어 이 두 모자에게 이토록 모욕당할 바에는 죽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리고 그 시각 양춘옥과 아들의 대화를 들은 나도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하지만 나는 서둘러 안으로 쳐들어가지 않았다.나는 우선 거실에 설치했던 감시 카메라를 찾았다. 그랬더니 카메라는 어느새 구석으로 옮겨졌다.‘이 아줌마가! 나는 그래도 믿고 매일 카메라를 돌려보지 않았는데, 이런 짓을 하다니.’나는 핸드폰 녹화 기능을 켜고 방 안을 몰래 촬영했다.탐정 사무소에서 일을 하게 된 이후로 나는 뭐든 증거싸움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때 남자가 형수 몸에 바짝 붙어 다리에 코를 가져다 대며 냄새를 맡았다.“냄새 좋다. 식물인간한테서 이렇게 좋은 냄새가 나다니. 피부도 이렇게 좋고. 대박, 몸매도 완전 끝내주잖아.”양춘옥은 옆에서 키득거렸다.“당연하지. 그리고 무엇보다 이 여자는 깨끗해. 아들, 얼른 하지 않고 뭐 해?”“헤헤. 그럼 엄마는 밖에서 망 좀 봐...”양춘옥은
“나 그만 놀려요. 내가 보고 싶은데 왜 애교 누나 집에 와서 혼자 술을 마셔요?”나는 아직 어려 정치계 판을 잘 모른다지만 그렇다고 바보는 아니다.남주 누나는 내 말에 피식 웃었다.“우리 푸들 많이 똑똑해졌네? 예전처럼 타격감이 좋지 않아. 하지만 점점 더 귀여워.”나는 자꾸만 내 몸을 타고 올라오는 남주 누나의 손을 덥석 잡았다.“말해요. 대체 무슨 일이에요? 일에 무슨 문제 생겼어요?”“응. 이 세상에서 날 괴롭힐 수 있는 건 일밖에 없어.”“왜죠? 왜 혼인이나 가정 문제는 될 수 없어요?”“헛소리 아니야? 혼인과 가정이 나보다 중요할 리 없잖아.”‘맞다. 누나도 가정보다 자기 지위가 우선인 여자였지. 백연우처럼.’“그래서 일은 해결됐어요?”나는 그 말을 내뱉은 순간 후회했다. 해결되었으면 술로 기분을 달랠 리 없을 테니까.하지만 남주 누나는 의외의 답을 내놓았다.“해결된 셈이지. 하지만 강등됐어.”“얼마나요?”“아무 실권도 없는 말단직으로. 그래도 괜찮아. 이제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내 약점을 잡고 나 협박하는 사람 없을 테니까.”남주 누나는 강등된 건 아무렇지 않다는 듯 말했다. 그건 아마도 자기 위로일 수 있었다.“이 얘기는 여기까지 하고 시간도 아까운데 계속 즐겨볼까?”남주 누나는 또다시 나에게 다가왔다. 심지어 리듬 있는 음악을 틀어 놓아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며 나에게 또 충격을 안겨주었다.나와 남주 누나는 그사이 애교 누나가 집에 다녀갔다는 사실을 몰랐다.애교 누나는 내가 걱정되어 직접 와 봤다. 하지만 방에서 들리는 나와 남주 누나의 소리에 얼굴을 붉히며 물러났다.“남주였네. 다른데 좀 가지. 왜 우리 집에서 수호 씨를 꼬시는 거야?”애교 누나는 입을 삐죽거렸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뒤돌아섰다.나와 남주 누나는 한밤중까지 몸을 섞고 피곤한 몸을 한 채 잠이 들었다.오랜만에 푸는 욕구에 우리 둘 다 너무 흥분해 버린 탓이었다.심지어 남주 누나는 열정적이다 못해 심지어 내가 지금 동영상 촬영 현
남주 누나는 헤실 웃으며 말했다.“정수호네. 이리 와, 와서 한잔해.”나는 남주 주나 쪽으로 걸어갔다. 가까이 가봤더니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와인 두 병 중 한 병은 이미 텅 비어 있었고, 남주 누나도 이미 술에 취했는지 얼굴이 발그스름했다.“누나, 혼자 이렇게 마신 거예요?”남주 누나는 똑바로 앉아 내 팔을 감싸안았다.“너 아니면 애교를 불러 곁에 있어 달라고 부탁하려고 했는데 요즘 바쁘다고 해서 안 불렀어. 그런데 마침 이렇게 와 버렸네? 나랑 한잔해.”나는 지난번 남주 누나를 봤던 때를 떠올렸다. 그때 누나도 기분이 안 좋아 보였는데 아마도 일 때문인 것 같았다.그런데 이번에 이토록 취해 있는 걸 보니 일이 잘 안 풀리는 모양이었다.나는 남주 누나 손에 있는 와인을 빼앗았다.“그만 마셔요. 취했어요. 부축해 줄 테니 방에서 휴식해요.”“정수호, 예전에 너한테 장난치던 때가 그리워. 도 장난칠 테니까 내 장난 받아줘. 응? 나도 기분 좀 좋아지게.”남주 누나는 몽롱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그게 대체 뭐가 그립다는 건지.’나는 그때 너무 단순해 항상 남주 누나한테 농락당했다. 심지어 몇 번이나 나를 유혹하는 남주 누나를 눈앞에 두고 입맛만 다시며 마음을 졸였었다. 하지만 나는 그때가 조금도 그립지 않았다. 나는 하고 싶을 때면 마음대로 하는 지금이 더 좋다.“내가 네 소원 들어줄게.”남주 누나는 내 목을 끌어안고 취한 말투로 말했다.누나의 완벽한 몸매를 보니 나도 솔직히 몸이 달아올랐다. 하지만 남주 누나는 지금 많이 취한 상태고, 기분도 안 좋아 보이니 몸을 섞는다고 즐겁지는 않을 거다.“됐어요. 누나 지금 취했어요. 부축해 줄 테니 방에서 자요.”“나 많이 안 마셨어. 그냥 조금 알딸딸한 정도야. 나도 내가 무슨 짓을 하는지 알아.”“있잖아. 나 요즘 너무 바빠서 남자 만날 시간도 없었어. 그러니 오늘 너 땡잡은 거야.”남주 누나는 말하면서 나를 자기 쪽으로 잡아당겼다.나는 술에 취한
“정 사장님, 물 바꿔드릴까요?”내가 형수의 팔을 닦아주는 동안 양춘옥이 방에 들어와 열정적으로 물었다.그 모습에 나는 간단히 말했다.“아니에요. 거의 다 닦아요.”나는 형수가 뭘 걱정하는지 몰랐다. 무엇보다 양춘옥이 문제 있다는 걸 알지 못했다.그때 양춘옥이 목적성이 다분한 질문을 했다.“정 사장님, 요즘 안 보이시던데 바쁘셨나요?”“네. 요즘 일이 바빠서 매일 오지 못해요. 그러니 이모님이 우리 형수님 잘 돌봐주세요. 참, 요즘도 제가 바쁘니 부탁드릴게요.”양춘옥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며 싱긋 웃었다.“정 사장님은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무조건 잘 돌봐드릴게요.”“형수, 다 닦았어요. 형수가 깨끗한 걸 좋아하는 거 알고 특별히 피부 관리하는 스킨로션도 발라줬어요.”나는 형수를 돌본 뒤 옆에서 대화를 나누다가 고아연이 돌아온 뒤에야 떠났다.고아연은 나를 집 앞까지 마중하며 물었다.“요즘 바빠?”“네, 왜 그래요?”“아니, 별 건 아니고. 지난번에 찍는다던 영상을 안 찍었길래 바쁜가 해서.”“요즘 너무 바빠서 정신이 없었어요.”이건 단순한 오락이라 돈을 버는 것에 비하면 당연히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다.“그래. 그럼 앞으로 안 찾을게. 내 연락처 삭제해.”고아연은 갑자기 말투가 날카로워졌다.그 말에 나는 순간 멍해졌다.“여자들은 다 이래요? 심심하면 연락처 삭제하고? 이런 거 엄청 예의 없는 거 알아요?”고아연은 팔짱을 낀 채 웃었다.“우리는 원래부터 아는 사이도 아니었어. 그런데 지금 바빠서 영상 찍을 시간도 없다는데 내가 네 연락처를 왜 남겨? 난 원래 이래. 연락 자주 하지 않는 사람은 삭제해. 수호 씨도 마찬가지야.”나는 일부러 고아연에게 맞섰다.“그럼 형수가 지금 이러니까 형수도 삭제했겠네요?”“그래.”“흥. 누가 믿을 줄 알고.”“믿든 말든.”고아연의 모습은 거짓 같지 않았다.나는 이 순간 고아연을 또다시 봤다.“바쁜 일 다 처리하면 도와줄게요. 연락처 삭제하지 마요. 앞으로 또다시 추가하
애교 누나 얘기를 언급하니 내 기분은 저절로 다운되었다.“난 누구랑 결혼할지도 모르겠어.”“왜? 애교 누나랑 사이가 틀어졌어?”민우가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그런 건 아니야. 그냥 애교 누나랑 나는 결혼할 사이가 같지 않아. 애교 누나가 나한테 너무 관대하고 너무 풀어줘. 그래서 너무 진실감이 없어.”“헐. 여자 친구가 풀어주는 게 얼마나 좋은데? 네가 밖에서 다른 여자 만나도 뭐라 안 하고 오히려 응원해 준다며? 그렇게 좋은 여자 손전등 켜고 찾아도 없어.”현성과 민우는 나를 부러워했다.사실 나도 예전에는 똑같은 마음이었지만 지금은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다.애교 누나는 너무 좋고 너무 관대하여 질투도 하지 않아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심지어 가끔 이 모든 게 허상이라는 생각도 들곤 한다.그에 반해 윤지은은 또 나에게 너무 현실을 체감하게 해준다. 좋아할 때도 질투할 때도 있어 오히려 더 커플 같은 느낌이 들곤 한다.“정수호, 너 진짜 쓰레기네. 너 설마 애교 누나 버리려고 그래?”현성이 갑자기 물었다.“헛소리. 내가 언제 버린다고 했어?”“그럼 아까 발언 무슨 뜻인데?”“난 그냥 애교 누나가 너무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뜻이지 버리겠다는 뜻 아니야. 함부로 누명 씌우지 마.”나는 바로 현성을 반박했다.하지만 그때 민우가 바로 끼어들었다.“사실 나도 네가 좀 쓰레기 같아. 아마 네가 만난 누나들이 다 너 같은 나쁜 남자를 좋아하나 보다.”“젠장. 내가 너희들한테서 무슨 좋은 말을 듣겠냐?”그날 저녁 퇴근 후 나는 형수네 집에 들렀다.그동안 너무 바빠 형수를 보러 오지도 못하고 몸을 닦아주지도 못했기에, 나는 얼른 따뜻한 물을 담아 형수 몸 곳곳을 닦아주었다.형수는 이렇게 오랫동안 누워만 있었지만 뺌은 여전히 발그스름하고 피부도 백옥 같은 피부에 핑크빛이 감돌았다.아마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그저 잠자고 있다고 생각할 거다.내가 형수의 몸을 닦아주는 동안 형수의 가슴은 사실 콩닥콩닥 북을 쳤다.‘수호 씨가 이제야 날
“이 얘기는 이쯤에서 하고. 말해요, 서나연 씨 일 외에 다른 볼 용건 있어요?”나는 화제를 다시 끌어왔다.그러자 소여정은 내 턱을 잡으며 생글생글 웃었다.“있지 그럼. 너 놀리러 왔어. 내가 너 놀리는 거 오랜만이잖아.”“미쳤어요?”나는 다급히 소여정의 손을 쳐냈다.“날 미친X 취급해? 내가 진짜 너 가만 안 둔다?”“못 믿겠어요. 나 이제 임천호도 안 두려운데 소여정 씨를 두려워하겠어요?”나는 소여정에게 계속 휘둘리고 싶지 않았다.소여정은 대단하다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오호라. 며칠 새에 많이 컸네? 그런데 그런 모습 점점 더 좋아지는데?”소여정은 정말 역신이라도 되는 것처럼 매번 나타났다 하면 나에게 귀찮은 일을 던져주곤 한다.물론 내가 이제 임천호를 두려워하지 않는다지만 그렇다고 귀찮은 일에 휘말리고 싶지는 않았다.나는 그저 장사를 잘해서 돈을 많이 벌고 싶다.내가 소여정을 무시하자 소여정도 나를 보는 체도 하지 않고 스스로 가게 안을 둘러봤다. 그러다가 결국 몇 가지 선물 세트를 골랐다.소여정이 계산하려고 할 때 나는 다시 그녀에게 다가갔다.“선물 세트 사서 누구한테 주려고요?”“이젠 임천호 안 두렵다며? 내가 누구한테 주든 무슨 상관이야? 아니면 내가 이 선물을 가져갔다가 이 가게에서 샀다는 걸 들킬까 봐 그러는 거야?”소여정은 마치 내 배에서 나오기라도 한 것처럼 나를 빠삭하게 알았다.“찾아오겠으면 찾아오라고 해요. 소여정 씨는 정상적인 소비예요.”나는 말발로 소여정을 이길 수 없다는 생각에 바로 뒤돌아 떠나갔다. 하지만 마음은 여전히 후들거렸다.소여정은 물건을 구매한 뒤 가게에서 택배로 보낼 수 있는지 물었다. 그 질문에 점원 한 명이 가능하다고 대답했다.소여정은 주소 하나를 남기고 직원더러 선물 세트를 주소에 적인대로 보내달라고 당부했다.소여정이 떠난 뒤 나는 그 위에 적힌 주소를 확인했다. 주소는 H시로 되어 있고, 받는 이는 ‘소원규’로 되어 있었다.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은 이름에 한참을 떠
“누구한테 들었어?”“그건 상관하지 마요. 맞는지 아닌지만 대답해요.”나는 얼렁뚱땅 넘기려고 했다.다행히 소여정은 내 질문을 회피하지 않고 바로 인정했다.“맞아. 나도 예전에 윤지은과 임유미처럼 잘 사는 집 딸이었어. 안 그러면 우리 넷이 왜 친구가 됐겠어?”하긴. 소여정은 나를 바라보더니 갑자기 물었다.“뭐 하나만 물을게. 소씨 가문 사람들이 강북에 있지?”“그걸 어떻게 알아요?”나는 흠칫 놀랐다.그 말에 소여정이 대답했다.“어떻게 알았는지는 알려고 하지 마. 맞는지 아닌지만 말해.”소여정이 이렇게 묻는다는 건 이미 단서를 찾았다는 뜻이기에 나는 사실대로 대답했다.“맞아요. 임천호 아내가 강북에 와서 요즘 유미 사모님과 같은 동네인 백조의 호수에 살아요.”“백조의 호스? 보아하니 나도 그곳에 집을 마련해야겠네.”소여정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그 말에 내 눈은 휘둥그레졌다.“지금 제정신이에요? 소씨 가문 사람들이 그곳에 있는데 멀리 숨지는 못할망정, 같은 동네에 살겠다고요? 대체 무슨 생각인 거예요? 설마 서나연 씨를 쫓아내고 본인이 임천호 아내가 되려고 그래요?”소여정은 생글생글 웃으며 물었다.“안돼? 임천호가 얼마나 대단해. 나한테도 잘해주고.”“대단하긴 무슨. 부시장님과 윤 회장님 앞에서 아무것도 아니더만.”나는 내가 임천호 뒷담화를 하는 날이 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소여정은 나를 다시 봤다는 눈빛으로 바라봤다.“정수호, 대단하네. 임천호를 그렇게 말하고. 임천호가 안 뒤 죽이려고 할까 봐 두렵지 않아?”“내가 임천호 산하의 대출 회사도 무너뜨렸는데, 임천호를 무서워하는 거로 보여요?”나도 비록 내가 너무 잘난체 한다는 걸 알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정말 참을 수가 없다.이 세상에 허영심 없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게다가 이건 내가 평생 자랑스럽게 말하고 다닐 일이기도 하다.소여정은 입을 가리며 웃었다.“아주 어깨뽕이 하늘로 치솟는구먼? 그 대출 회사 임천호한테 엄청 중요한 회사인 건
“오, 오빠가 뭘 하려는지 알아요. 만약 하고 싶으면 날 오빠한테 줄 수 있어요.”주선영은 입술을 살짝 깨물며 옷자락을 잡고 긴장한 표정으로 고백했다.이건 현성에 대한 인정이었다. 현성은 너무 설레어 심장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그는 두말없이 주현영을 와락 끌어안았다.그러자 주현영이 이내 긴장한 목소리로 말했다.“여, 여기서는 안 돼요. 우리... 호텔 가요.”“그래, 바로 가자.”나는 현성과 주현영이 손잡고 뛰쳐나오는 걸 본 순간, 현성이 오늘 소원을 이룰 거라는 걸 알았다.나는 싱긋 웃으며 현성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파이팅.”“당연하지.”현성은 헤헤 웃으며 말했다.이윽고 두 사람은 손을 잡고 기쁜 얼굴로 떠나갔다.나는 얼른 이 기쁜 소식을 민우에게 알려주려고 전화했다.[수호야. 왜 그래? 나 지금 바빠.]민우는 목소리를 한껏 낮추고 말했다.그 목소리에 나는 의아했다.“너 지금 뭐 해? 가게 보는 거 아니었어?”[설아가 점심에 나 찾아와서 지금 설아랑 호텔에 있어.]“헐, 너 뭐야? 임설아랑 결실을 보는 거야?”‘왜 친구들한테 버림당해 혼자가 되었다는 느낌이 들지?’민우는 헤실 웃었다.[이만 끊어. 설아가 샤워하러 갔다가 지금 나와. 우리 오늘 마지막까지 갈 거거든.]민우는 말을 마치자마자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이 상황에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대충 음식을 먹고 가게로 돌아가는 것뿐이었다.하지만 혼자 사무실에 앉아 있을수록 기분이 안 좋았다.예전에는 내가 민우와 현성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었는데, 현재는 내가 두 사람을 부러워하는 꼴이 되었으니.하지만 윤지은과 애교 누나한테는 연락할 엄두도 나지 않고 형수는 아직 혼미해 있으니 누구를 찾아야 할지 고민이었다.나는 주위에 여자가 끊이지 않다고 이렇게 외로이 혼자 남는 날이 오게 될 줄은 몰랐다.‘정수호 몰락했네. 몰락했어!’내가 속으로 감개무량해하고 있을 때 아래층에서 직원 한 명이 나를 불렀다.“정 사장님, 누가 찾아왔어요.”“알았어요. 내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