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어요.”형수는 입을 꾹 다물고 아무것도 말하려 하지 않았다.남주 누나는 서두르지도 않고 느긋하게 말했다.“말하기 싫으면 말하지 마. 네가 뭐 수호 친형 와이프도 아니고. 솔직히 말하면 수호 씨 일 끼어들 자격 없잖아.”“푸들, 너한테 선택할 기회를 줄게. 이 집에 남아 있을래? 아니면 나랑 같이 나갈래?”남주 누나는 말을 마치자마자 작은 소리로 나에게 속삭였다.“나랑 같이 나가자. 네 형수가 왜 이혼하지 않으려 하는지 알려줄게.”남주 누나의 말은 너무 유혹적인 제안이라 내 마음은 흔들렸다.게다가 형수가 계속 이혼을 거부하는 게 무슨 어려운 사정이라도 있나 생각하던 참에, 마침 답을 너무 알고 싶었다.하지만 내가 정말 남주 누나와 함께 나가면 형수는 반드시 화낼 거다.그때 남주 누나가 일부러 형수의 화를 돋우려는 듯 계속 나를 향해 윙크했다.나는 마음으로는 이러고 싶지 않았지만 형수의 비밀을 알고 싶은 마음에 이를 악물고 대답했다.“우리 나가요.”“수호 씨...”나를 보는 형수의 실망스러운 눈빛에 내 마음은 미어질 것만 같았다.나는 살짝 마음이 흔들려 형수에게 말했다.“형수한테 말 못 할 사정이 있다면 말해요. 우리가 도와줄 수 있어요.”“나한테 무슨 말 못 할 사정이 있겠어요? 갈 테면 가요. 이번에 가면 영원이 오지 마요.”형수는 질투한 게 틀림없었다.그걸 나는 당연히 눈치챘다. 하지만 남주 누나는 계속 내 팔을 잡아당기며 절대 마음 약해지면 안 된다는 사인을 보냈다.상황이 이 지경까지 왔는데 일을 그르칠 수 없었기에 나는 이를 악물고 남주 누나와 함께 밖을 나갔다.형수 집을 나온 뒤, 나는 얼른 남주 누나에게 물었다.“대체 뭘 아는 거예요? 말해줘요.”“급할 거 뭐 있어? 네 애교 누나 집에서 말해줄게.”“누나 애교 누나네 집 열쇠를 갖고 있어요?”“내가 애교한테 달라고 했어.”남주 누나는 손바닥을 활짝 펴며 쥐고 있던 열쇠 뭉치를 보여주었다.나는 무척 이해가 되지 않았다.“왜 애교 누나 집에 가려는 건
나는 몸이 짜릿했다.“어때? 기분 좋아?”남주 누나는 생긋 웃으며 내 가슴에 엎드리더니 긴 손톱으로 내 피부를 긁어내렸다.그때까지도 나는 방금 전 느낌에 깊이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남주 누나, 안 본 사이에 더 대단해졌네요. 어떻게 이렇게 잘해요? 숨 못 쉴 뻔했잖아요.”이런 느낌은 남주 누나와 할 때만 느낄 수 있다.그동안 수많은 여자들과 경험을 해봤지만 남주 누나를 이길 상대는 아무도 없다.남주 누나는 몸매가 끝내주는 것도 모자라 남자가 어떤 걸 원하는지 너무 잘 알아 욕망을 살살 건드리곤 한다. 게다가 어떻게 하면 남자가 흥분하는지, 어떻게 하면 미치는지, 어떻게 하면 기분 좋아지는지 너무 잘 알고 있다.남주 누나의 모든 자세는 그야말로 나에게 최고의 경험을 선사했다. 더욱이 이제는 걱정할 것도 없겠어 멘트마저 노골적으로 변했다.“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전생에 기녀였나 보지.”나는 너무 난감해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자기를 이렇게 형용하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을까?’남주 누나는 내 가슴을 살짝 깨물었다.“또 할래? 다른 자세도 있는데.”“저...”내가 대답하기도 전에 남주 누나는 다리를 쫙 벌린 채 내 몸에 올라탔다....그 시각 형수는 혼자 거실 소파에 앉아 화를 삭이고 있었다. 내가 분명 저를 보러 온다고 했으면서 남주 누나를 따라 나가버렸으니까.심지어 그것도 모자라 얼마 뒤 옆집에서 곧바로 19금 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는 딱 들어도 친구 남주가 낸 소리였다.형수는 곧바로 나와 남주 누나가 옆집에서 뭘 하고 있는지 눈치챘다. 게다가 남주 누나가 일부러 목소리를 높인 건 형수를 향한 도발이었다.형수는 소리를 들을수록 화가 나고 온몸이 불편했으며 아래가 축축해졌다. 하지만 내가 남주 누나와 하고 있다는 걸 생각하니 화를 참을 수 없었다.“정수호 씨, 이럴 줄 알았으면 수호 씨더러 애교를 꼬시라고 하지 않았을 거예요.”만약 형수가 애초에 나를 애교 누나에게 밀어주지만 않았어도 지금 나는 형수 혼
“남주 누나, 농담 아니죠? 형수가 감옥에 다녀왔다니요? 그럴 리가요.”‘형수처럼 좋은 분이 감옥에 다녀올 리가 있나?’나는 그 말을 조금도 믿을 수 없었다.그러자 남주 누나는 예상했다는 듯 싱긋 웃었다.“내 신분을 생각해 봐. 내가 왜 이런 일로 널 속이겠어?”남주 누나의 신분을 생각하니 나는 더 충격에 빠졌다.남주 누나의 신분이라면 이런 일을 조사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니까.그렇다는 건, 형수가 감옥에 다녀왔다는 건 진짜일 확률이 높다.“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데요? 형수가 왜 감옥에 다녀와요?”“사실 큰일은 아니었어. 네 형수가 결혼 전에 쫓아다니는 남자가 엄청 많았거든. 심지어 네 형수 미모에 반해 스토킹하고 강제로 몸을 취하려는 남자들도 적지 않았어. 그런데 네 형수 성격이 그 당시 너무 강해서 상대를 칼로 찍는 바람에 1년 수감되었어.”“그런 일은 여자한테 얼마나 큰 오점이자 상처야? 누가 감옥살이를 한 적 있는 여자와 결혼하려 하겠어? 그렇지 않으면 네 형수 몸매와 외모로 왜 진동성과 결혼했을까?”이렇게 말하니 나는 단번에 이해가 됐다. 하지만 난 형수가 잘못한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그런데 그게 이혼 안 하는 거랑 무슨 상관이에요?”나는 의아해서 물었다.남주 누나는 손가락으로 내 머리를 찔렀다.“똑똑한 줄 알았는데 왜 이런 방면에서는 이렇게 둔해? 네가 스스로 생각해. 만약 이것도 모른다면 앞으로 너 안 찾아올 거야. 정말 그 정도 IQ라면 전염될까 봐 두렵네.”나는 한참을 생각하다가 아주 무서운 가능성을 떠올렸다.“혹시 진동성이 형수랑 결혼할 때 그 약점으로 협박했어요?”나는 이렇게까지 생각하고 싶지 않았지만, 이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라 떨쳐내지 못 할 정도였다.남주 누나는 곧바로 긍정적인 눈빛을 보냈다.“음, 너무 바보는 아니네. 앞으로 계속 찾아와도 되겠어.”나는 일순 소름이 돋아 찬 공기를 들이마셨다. 순간 손끝부터 발끝까지 싸늘해지는 느낌이었다.이 순간 진동성의 이미지는 내 마음속에서 완전히
“왜 그랬어요? 왜 전에는 말하지 않고 이제 와서 말하는 건데요?”“이런 건 묻지 마.”남주 누나는 느릿느릿 옷을 입었다.“결혼하려고 결정한 것도, 이혼하지 않으려 한 것도 다 네 형수 결정이야. 당사자가 뭐라 하지 않는데 내가 어떻게 참견해? 내가 지금 너한테 알려주는 건 네 형수를 이 고통 속에서 빼내 주려는 게 아니라 같이 즐길 사람을 찾은 것뿐이야.”“태연은 보수적이고 틀에 꽉 박혀 있어. 그런 애를 끌어들이는 건 불가능해. 하지만 현재 상황을 보면 희망이 큰 것 같아.”나는 다급히 남주 누나의 팔을 잡았다.“형수 상처 주지 마요. 누나는 어떻게 놀든 상관 안 하겠지만 형수는 안 돼요.”“습. 놔, 아파.”남주 누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귀띔했다.나는 화가 나서 손을 거두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지? 본인이 노는 걸 좋아한다고 형수까지 끌어들이겠다니.’형수는 나 혼자만의 소유기에 절대 남주 누나와 함께 이 남자 저 남자 만나게 둘 수 없었다.남주 누나는 제 팔을 살살 문질렀다.“내가 지금 네 형수를 해친다고 생각해? 네가 네 형수 마음을 어떻게 알아? 나랑 같을지도 모르잖아.”“그럴 리 없어요. 형수는 누나랑 달라요.”나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그러자 남주 누나는 풉,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아니면 왜 너더러 애교를 꼬시라고 했으면서 은근슬쩍 너를 꼬셨겠어?”“그건... 저한테 경험을 전수해 주려고 그런 거예요. 전 그때 아무것도 몰랐어요. 형수는 저를 위해서 그런 거예요.”나는 형수를 대신해 변명했다“경험을 전수하는 방법은 다양해. 꼭 직접 나설 필요는 없잖아? 걔가 매일 너랑 같은 지붕 아래에서 사는데 계속 너를 건드리고 꼬시는 게 뭐겠어? 너더러 저를 범해달라는 거잖아.”“그만 말해요. 누나가 무슨 말을 하든 믿지 않아요.”나는 짜증이 밀려와 남주 누나의 말을 잘라버렸다.남주 누나는 손을 뻗어 내 볼을 꼬집었다.“누나가 오늘 기분이 좋아서 너한테 세상 물정 구경 좀 시켜줄게. 하지만 앞으로 나한테 그런
형수는 모든 걸 알고 일부러 자기를 이 지경으로 만든 뒤 나에게 보여주었다.나는 머쓱해서 말했다.“형수, 저도 그러고 싶지 않았는데 남주 누나가 기어코 그러는 바람에...”“남주가 일부러 그랬다는 걸 알면서 왜 같이 나갔어요? 걔가 대체 무슨 얘기를 하던가요? 저랑 함께 나를 상대로 싸우겠대요?”남주 누나가 했던 말을 떠올렸더니 나는 좀처럼 마음을 안정시킬 수 없었다.나는 형수 손목을 덥석 잡았다.“남주 누나가 다 알려줬어요. 형수가 결혼 전에 감옥에 다녀왔다던데요. 그리고 그 일 때문에 진동성이 결혼하자고 협박한 걸 동의했다면서요?”형수는 우리가 그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게 믿기지 않는 듯 눈을 둥그렇게 떴다.나는 더 이상 그게 진실인지 확인도 필요하지 않았다. 형수의 표정에서 모든 답을 알 수 있었으니까.사실은 확실히 남주 누나의 말대로였다.그 순간 진동성에 대한 한이 한층 더 깊어졌다. 심지어 혐오스럽기까지 했다.내가 전에 그토록 존경하던 남자가 이 세상에서 가장 더러운 쓰레기 같은 존재라니. 심지어 이런 비열한 수단으로 형수를 옆에 묶어뒀으면서 얻은 뒤에 아껴주지도 않았다.나는 눈시울이 시뻘게졌다.“그럼 형수가 진동성과 이혼하기 싫어하는 이유는 뭐예요? 정말 형수 말대로 이혼하기 싫어요? 아니면 진동성이 형수 과거로 협박이라도 했어요?”형수는 믿기지 않는다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지만, 눈시울이 점점 빨개지더니 끝내 눈물을 흘렸다.“수호 씨, 그만 물어봐요. 더 이상 묻지 말아요.”형수는 나한테서 벗어나려고 버둥댔다.하지만 나는 형수의 손을 놓아주지 않았다. 형수가 나를 피하지도 말고 다른 사람한테 괴롭힘당하는 것도 싫었으니까.나는 형수를 내 품에 와락 끌어안았다.“일이 이 지경이 됐는데, 제가 더 물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말해요. 진동성은 대체 어떤 인간이에요?”형수는 몸이 나른해져 내 품에 쓰러졌다.“수호 씨 말이 맞아요. 진동성이 나를 협박했어요. 때문에 이혼할 수 없어요. 다 진동성 그 인간 때문이에요!”
“나도 애초에 진동성 그 인간이 왜 그러나 의아했는데 얼마 전에 깨달았어요. 그 인간은 그때부터 나를 수호 씨한테 밀어주려는 속셈이었어요.”“진동성은 더 이상 착한 남편 역할을 하기 싫으니 나한테 준 카드를 도로 가져갈 생각이었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바람피웠다는 증거를 모아야 했을 거예요. 진동성이 나를 만족시켜 주지 못하니, 수호 씨랑 같이 있는 동안 내가 분명 수호 씨와 관계를 맺으려 할 거라고 생각한 모양이에요.”“수호 씨, 처음부터 수호 씨뿐만 아니라 나도 진동성 계략에 놀아난 거예요. 난 수호 씨랑 그렇게 되고 나서 진동성한테 미안해하고 자책했는데, 진동성의 진짜 목적을 알고 나니 소름 끼치고 무서웠어요.”“언제부터 이 모든 걸 발견했는데요?”나는 형수의 손을 잡으며 물었다.형수는 차분히 대답했다.“수호 씨가 우리 집 침대 밑에서 진동성의 여벌 핸드폰을 발견했다고 했을 때부터요. 그때 비록 수호 씨가 대놓고 그 일을 까발리지 않았지만, 진동성도 어느 정도 눈치챘을 거예요. 그때부터 사이가 완전히 틀어졌어요.”“진동성이 나한테 먼저 솔직히 털어놨거든요. 이제 내가 싫어졌다고. 하지만 이혼하자고 하니 꿈도 꾸지 말라더라고요. 아직도 사랑하는 부부행세를 해야 한대요. 자기가 밖에서 무슨 짓을 하든 책임을 묻지 말라면서.”“게다가 이 사실을 폭로하면 내가 감옥살이했던 걸 떠벌리고 다니겠다고 했어요. 심지어 그동안 관계할 때마다 내 사진과 영상을 몰래 찍어왔는데 그걸 모두 사이트에 뿌리겠다고 했어요.”형수는 얼굴을 감싸며 흐느껴 울었다.나는 형수의 모습이 너무 안쓰러워 진동성을 갈기갈기 찢어놓고 싶었다.‘개자식이. 어떻게 이럴 수 있지? 왕정민보다 더 인간 말종이네.’무엇보다 진동성은 그동안 너무 잘 위장하여 형수가 직접 말한 게 아니었다면 난 진동성이 그런 사람이라는 걸 절대 믿지 않았을 거다.“형수, 그 인간이랑 이혼해요.”나는 단호하게 말했다.진동성이 이 정도로 인간 말종 쓰레기라면 형수가 그와 함께 생활할수록 더 불행해질
“수호 씨가 진동성이랑 뭔 할 얘기가 있다고요? 진동성은 이제 내 앞에서 연기도 하지 않으려 하는데 수호 씨라고 다를 것 같아요? 얼른 숨어요. 난 수호 씨가 곤란해지는 걸 원하지 않아요.”나도 형수가 난처해지는 게 싫어 조용히 베란다로 향했다.얼마 뒤, 진동성의 모습이 나타났다.나는 커튼 뒤에 숨어 둘의 대화를 엿들었다.진동성은 우쭐거리며 형수에게 말했다.“내가 며칠동안 집에 안 들어왔는데 어쩜 전화 한 통도 없어?”형수는 싸늘하게 대답했다.“내가 왜 전화해야 하는데? 네가 밖에서 이 여자 저 여자 만나며 즐기는데 내가 전화하면 방해만 되지 않겠어?”“내 마음속에는 네가 없어도 되지만, 네 마음속엔 내가 없으면 안 되지. 고태연, 나한테 약점 잡혔다는 거 잊지 마. 내 심기 건드리면 손해 보는 건 너야.”진동성의 말에 나는 저도 모르게 주먹을 그러쥐었다.내가 없을 때 진동성이 이런 태도로 형수를 대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순간 진동성의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역겹고 구역질이 났다.진동성은 왕정민보다 더 하면 더 했지 덜하지는 않다.“다른 용건 있어? 없으면 난 이만 휴식할 거야.”형수는 더 이상 진동성과 말을 섞기 싫어 자리를 뜨려고 했다.그때 진동성이 형수의 팔을 덥석 잡았다.“휴식하긴 뭘 휴식해? 날 모셔야지.”형수는 진동성의 뺨을 짝, 하고 때렸다. 하지만 다음 순간 진동성은 바로 형수의 뺨을 후려갈겼다.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나는 밖으로 뛰쳐나가 진동성의 허리를 발로 걷어찼다.진동성은 내가 집에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기에 바로 소파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나는 다급히 형수에게 다가가 봤지만 형수 얼굴에는 이미 선명한 손바닥 자국이 보였다.그걸 보는 내 마음은 갈가리 찢길 것만 같았다. 나는 당장이라도 진동성의 껍질을 벗겨 씹어먹고 싶었다.진동성은 나를 보더니 갑자기 빈정거렸다.“어쩐지 주제도 모르고 날뛴다 했더니 정수호가 뒤를 봐주고 있었네.”진동성은 소파에서 일어나 담배에 불을 붙이고는 깊이 한
내 말은 진동성의 아픈 곳을 정확히 찔렀다. 그 순간 진동성의 낯빛은 어두워졌다.“하하, 계속해 봐.”진동성은 입가에 냉소를 띤 채 어디 들어나 보자는 듯 말했다.나는 거리낄 것도 없었기에 미친 듯이 하고 싶었던 말을 내뱉었다.“형수와 결혼한 것도 그 허영심을 채우기 위해서잖아. 형수가 예쁘고 몸매도 좋으니 사람들 앞에서 아내를 아끼는 척만하면, 마을 사람들이 시골에서 자란 평범한 애가 큰 도시 출신의 미인을 아내로 들였다며 능력 있다고 떠받들어 주니까.”“그동안 다른 사람들의 질투와 부러움을 받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자기가 언젠가 왕정민처럼 성공하길 꿈꿨겠지? 그런데 왕정민처럼 운이 따라주지 않아, 평생 왕정민 따까리 노릇이나 하면서 왕정민이 은혜를 베풀 듯 던져 주는 이득만으로 회사를 유지하고 있는 거잖아.”“왕정민처럼 성공하고 싶으니까 왕정민을 도와주고, 왕정민처럼 마음대로 행동하고 싶지만 또 모범 남편이라는 이미지가 무너질까 봐 무섭고. 그래서 형수더러 나한테 그런 말을 하게 한 거잖아.”“겉으로는 형수더러 나를 가르치라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형수가 착한 남편을 두고 바람피운 여자라는 상황을 만들기 위해서. 그렇게 되면 오명을 쓸 필요도 없이 밖에서 마음대로 할 수 있고, 모든 오명은 형수가 뒤집어쓰고.”“심지어 형수가 이혼하겠다고 말하는 즉시 형수의 과거로 협박하려고 한 거잖아. 진동성, 넌 진짜 인간 말종 쓰레기야.”나는 그동안 마음에 눌러왔던 말을 모두 내뱉었다.진동성은 손에 들고 있던 담배를 모두 태우고 피식 웃으며 소파에 기댔다.그 모습에는 왕정민의 그림자가 보였다. 아니, 왕정민보다 더 가식적이고 악랄한 역겨운 그림자였다.왕정민은 나쁘지만 그걸 모두 드러내고, 진동성은 나쁘면서 그걸 숨기고 착한 척 가식적으로 군다.“말 다 했어?”진동성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나는 싸늘하게 경고를 날렸다.“형수랑 이혼해. 형수 좋은 여자야. 그러니까 더 이상 상처 주지 마.”진동성은 우스갯소리라도 들
“한 번 더 해요. 한 번 더...”이다연은 신이 나서 점점 게임에 몰입했다.하지만 나는 바로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었다.“늦었어. 이제 자.”“아직 12시도 안 됐는데 뭐가 그렇게 급해요?”“너 생활 패턴이 너무 불규칙적이야. 계속 이러면 호르몬 분비에 영향 줄 거야.”나는 말하면서 이다연의 맥을 짚었다.“이것 봐, 속에 열이 많잖아. 어쩐지 얼굴에 여드름이 많고 성격이 급하다 했네.”이다연은 내 손을 탁 쳐냈다.“오빠도 왜 우리 아빠랑 똑같아요? 잔소리 대마왕, 짜증 나!”나는 이제야 이다연의 문제가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이다연은 몸에 화가 많아 다른 사람이 저를 귀찮게 하는 걸 싫어하고 조금만 잔소리해도 화내고 짜증 낸다.“이거 병이야. 알아 몰라?”이 다연은 매섭게 나를 노려봤다.“병 있는 건 오빠겠죠. 우리 아빠도 의사거든요. 내가 병이 있는지 없는지 아빠가 모르겠어요?”“네가 이 선생님과 말도 안 섞으려 하는데 선생님이 어떻게 알아? 네가 그럴 기회를 줬어?”이다연은 할 말이 없었는지 조용해졌다.나는 이내 말투를 누그러뜨렸다.“하나만 묻자. 너 이런 증상 몇 년이야?”“이런 증상이라니요?”“화가 많고 인내심이 없고 자꾸만 짜증 내고, 사람을 만났다 하면 싸우고 소통하기 싫어하는 거 말이야. 너 예전에는 이러지 않았지?”이다연은 눈을 땡그랗게 뜨고 나를 봤다.“어떻게 알았어요? 아빠한테서 들었어요?”“이 선생님은 그런 말씀 없으셨어. 이건 네 맥을 짚어보고 안 거야.”“못 믿겠어요. 지금 내 문제를 알아낸 건 둘째 치고 예전에 어땠는지까지 안다고요?”이다연은 눈을 부라렸다.나는 참을성 있게 설명했다.“네가 예전에 어땠는지 난 확실히 몰라. 하지만 네 부모님이 저렇게 좋은 분들이신데, 네가 두 분 자식이니 인성이 나쁘지는 않겠다 생각한 거지.”“게다가 네 맥을 짚어봤는데, 너 몸에 문제 많아. 지금 네가 이러는 것도 그것 때문이고.”이다연은 말 못 할 사정이 있는지 한숨을 푹 쉬었다.그 모습에 나는
윤지은은 내 우스꽝스러운 모습에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너 지금 모습 고릴라 같은 거 알아?”“일부러 그런 거예요. 이러지 않으면 지은 씨가 안 웃을 거잖아요.”윤지은이 웃는 모습을 보니 나도 마음이 놓였다.윤지은은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내 일은 상관 마. 내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까.”“정말이에요? 절대 무리하지 마요. 두 사람 지난번에 싸웠을 때, 지은 씨가 잔뜩 취해서 내 앞에서 술주정했잖아요.”윤지은은 손을 뻗어 내 다리를 꼬집었다.“그건 옛날 일이야. 왜 또 그 자식 얘기는 꺼내는 건데? 그때는 내가 어리석었어. 그 자식과 나눈 게 사랑인 줄 알았거든. 그런데 이제는 알았어. 그 자식은 그냥 쓰레기야. 그런 자식 때문에 눈물 흘릴 가치가 없어.”나는 윤지은이 꼬집은 곳을 문지르며 위로했다.“맞아요. 내 눈에도 보여요. 지은 씨 많이 성장했어요. 하지만 우선 나를 좀 놔주면 안 돼요? 아파요.”윤지은은 그제야 손을 풀었다.내가 고개를 들었을 때 윤미화가 이상한 눈빛으로 나를 봤다.‘젠장.’윤미화는 뭔가 오해한 게 틀림없었다.윤미화는 안 그래도 나와 윤지은 사이에 뭔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방금 우리가 서로 눈빛을 주고받는 모습을 보고 그 추측을 확신했다.나는 작은 소리로 윤지은에게 귀띔했다.“앞으로 저기에 앉은 윤미화 사장님을 만나면 조심해요. 저 사장님이 우리 사이를 의심하고 있어요.”“의심하는 게 뭐 어때서? 증거도 없는데 무서워할 거 뭐 있어?”윤지은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 모습에 나는 깜짝 놀랐다.“나야 괜찮죠. 난 지은 씨가 안 괜찮아할까 봐 걱정했던 거예요. 지은 씨가 괜찮다면 난 상관없어요.”그렇다면 나도 이제 전전긍긍할 필요가 없다.윤지은은 또다시 나를 노려보았다.“밥 먹으면서 좀 조용할 수 없어? 말 참 많네.”‘흠. 또 내가 눈치 없이 굴었네.’식사 자리는 11시가 넘어서야 끝났다.나는 이 선생님 가족을 집에 데려다주려고 민우와 현성한테 다른 사람을 부탁했다.이 선생님 집에 도착하자마자
이다연은 내 말에 눈이 휘둥그레졌다.“다이아라고요? 정말이에요?”나는 직접 핸드폰을 열어 보여주었다. 그러자 이다연은 바로 관심을 가졌다.“오빠는 어떤 캐릭터 좋아해요?”“다 돼. 넌 어떤 거 좋아하는데? 내가 서포트줄게.”“난 아리요. 마법사.”“그럼 내가 유미할게. 서포터. 어때?”“좋아요. 해 봐요.”이다연은 말하면서 캐릭터를 골랐다.하지만 나는 서둘러 고르지 않고 입을 열었다.“이거 끝나면 안에서 식사도 끝나겠어. 우리도 먼저 들어가서 밥부터 먹자. 그러고 나서 같이 해줄게.”이다연은 나를 꿰뚫어 볼 듯 훑어봤다.“지금 장난해요?”“나 다이아야. 골드인 너랑 뭐 하러 장난해? 뭐든 정도가 있어야지. 너처럼 일만 있었다 하면 쌩 나가버리면 네 부모님이 난처해하셔. 이 오빠 체면 살려준다 생각하고 같이 들어가자. 약속할게. 밥 다 먹으면 같이 놀아줄게.”이다연은 화가 난 듯 콧방귀를 뀌었다.“됐어요. 딱 보면 아빠 대신 나 설득하러 왔네. 가요.”“그래. 그럼 말하지 않을게. 너 혼자 여기서 놀아. 너처럼 그렇게 놀면 백날 놀아 봐야 레벨이 안 오를 거야.”나는 말을 마치자마자 안으로 들어갔다.그 말에 이다연은 마음이 불편하고 답답했다. 이다연은 평소 게임을 즐기지만 실력은 확실히 부족해 골드 이상 올라가 본 적이 없다. 때문에 내가 데리고 놀아 주기를 무척 기대했다.결국 이다연은 내가 룸으로 들어가자마자 이내 뒤따라왔다.“잠깐만요. 아까 말 지킬 거죠? 밥 다 먹으면 데리고 놀아준다는 거?”“당연하지. 하지만 너도 약속해. 앞으로 그렇게 자리 박차고 나가지 마. 네 가족 체면 깎지도 말고.”나는 이 기회에 요구를 제기했다. 이다연은 잠깐 생각하다가 결국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이런 일은 조급히 해결하면 안 된다. 우선 상대 마음을 잘 달래고 협조할 수 있도록 요구를 제기해야 한다.내가 이다연을 데리고 들어오자 이 사모님은 깜짝 놀란 눈치였다. 자기가 나은 딸이기에 그녀는 딸을 모를 리 없다. 그런데 내가 정말
“이걸 빼고 평소 유입량만 기준해서 계산하면 매일 6백만에서 천만 원 정도라도 괜찮은 편이야.”“거기에 임대료, 직원들 월급, 약재 비용 등등을 제외하면 한 달에 3천만 원 정도 남을 거고.”게다가 계속 이런 수익을 유지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때문에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그때 민우가 의욕적으로 말했다.“노력해야지. 어찌 됐든 사업하기로 했으니 잘해봐야지.”“늦었는데 아직도 안 갔어?”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그 사람은 다름 아닌 윤미화였다.나는 놀라운 듯 물었다.“윤 사장님도 오셨네요?”“낮에 일 때문에 자리를 비우지 못해 퇴근하고 왔어. 이건 개업 선물.”윤미화는 커다란 마네키네코를 선물했다. 나는 그걸 카운터에 진열했다.내가 윤미화와 얘기하는 도중에 민우의 여자 친구 임설아도 왔다.주선영, 하정현, 한지영 그리고 이다연까지...이 사람들은 낮에 일이 있어 오지 못하고 밤이 되어서야 온 거였다.마침 우리도 바쁜 시간이 지난 터라 나는 모두에게 식사를 대접하기로 했다.윤지은은 아침에 와서 선물을 주고 간 뒤 저녁에도 또 왔다.나는 개업식 날이 되니 내가 아는 사람들 대부분이 이렇게 축복을 보내줄 줄은 몰랐다.나는 마음속으로 은근히 감동했다.나는 역시 다연 한식당을 예약했다. 이 한식당이 가게와 가깝기도 했고 음식도 괜찮았으니까.우리는 둘러앉아 먹으면서 대화했다. 분위기는 매우 즐거웠다.하지만 유독 한 사람이 계속 어울리지 못했다. 그 사람은 다름 아닌 이 선생님의 딸 이다연이었다.이다연은 여전히 예전처럼 손에 핸드폰을 들고 게임을 했다.이 선생님이 주의를 줬지만, 이다연은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그 순간 이 선생님은 얼굴이 잿빛이 되었다.나는 얼른 다가가 이 선생님께 술을 한 잔 따랐다.“이 선생님, 됐어요. 상관하지 마세요. 큰일도 아닌데요 뭘.”이 선생님은 깊은 한숨을 푹 쉬었다.“다 내 탓이야. 내 탓. 내가 자식 교육 잘못했어.”“됐어요. 안 좋은 얘기는 그만하세요.”내가 이 선생님과 하
“형, 어떻게 됐어? 정수호가 동의해?”김진호는 온 신경이 이 일에 쏠려 있어 주해진이 다가오자마자 쪼르르 달려가 물었다.주해진은 돌아오는 길에 김진호를 어떻게 달래야 할지부터 고민했다. 때문에 이내 허허 웃으며 말했다.“아직은 가게 상황이 안정되지 않아 나중에 얘기하자고 하네.”“나중에? 나중에 언제? 이거 분명 얼렁뚱땅 넘어가려는 거예요. 형, 우리도 계속 참을 수만은 없어요. 안 그러면 정수호가 우리를 점점 무시할 거라고요.”주해진은 김진호가 제 말을 들으면 분명 화를 낼 거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그도 인내심을 가지고 차분히 말했다.“우선 조급해하지 말고 앉아서 들어 봐.”“형. 제가 조급하지 않게 생겼어요? 천수당은 우리가 인수한 가게예요. 그런데 정수호 사람들만 가게에서 돌아다니고 우리는 공기처럼 아무 역할도 못 한다고요.”“지금 짜증 내 봐야 소용 있어? 짜증 낸다고 문제가 해결돼?”주해진은 이내 얼굴을 굳힌 채 물었다. 하지만 이내 다시 말투를 누그러뜨리며 차분히 달랬다.“우선 앉아서 내 말 들어 봐.”주해진은 자기 생각을 말했다.“가게에 돌아오는 건 당연해. 하지만 정수호는 가게가 아직 안정된 기로에 서지 않았다는 말로 거절하는데 나라고 어떻게 하겠어? 우선 인내심을 갖고 한 달만 기다려 보자. 가게 장사가 안정되면 내가 무조건 너를 여기에 꽂아줄게.”“네 말이 맞아. 우리는 절대 가게를 완전히 정수호한테 맡길 수 없어. 안 그러면 그 자식들이 장부에 무슨 짓을 할지 어떻게 알아?”그 말을 들은 김진호는 형이 아직도 자기편을 든다는 생각에 마음이 한결 나아졌다.“한 달은 너무 길지 않아요? 형, 조금 더 앞당길 수는 없어요?”김진호는 마음이 조급해 한 달 동안이나 기다릴 수 없었다.주해진은 웃으며 김진호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큰일을 할 사람이 왜 이 정도도 못 받아들여? 한 달이면 마침 가게 월매출을 볼 수 있잖아. 그때면 나도 기회를 잡을 수 있고.”김진호는 무슨 말을 더 하고 싶었지만 형 말에 일리가 있어
나는 고수연이 만든 장부를 보고 있었다.고수연이 작성한 장부는 아주 명확해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심지어 문외한인 나마저도 단번에 이해했다.보아하니 내가 참 보물을 찾은 모양이다.주해진이 다가오자 나는 장부를 얼른 고수연에게 건넸다. 나도 주해진을 조금 경계하는 마음이 있었다.이건 어쩔 수 없는 거다. 주해진과 김진호는 우리와 같은 마음이 아니니 경계할 수밖에.애초에 내가 자금만 충족했어도 두 사람과 손잡을 일은 절대 없다.남을 해치는 마음은 있으면 안 되지만 경계하는 마음은 없으면 안 된다. 모든 건 다 더 나은 발전을 위해서다.“수호, 잠깐 할 말이 있는데.”나는 휴게실로 가서 앉았다. 그러자 주해진도 이내 따라왔다.주해진은 방금 내가 장부를 내려놓는 걸 목격했지만 말을 꺼내지는 않았다.하지만 속으로는 내가 파트너인 자기마저 경계하는 걸 못마땅하게 여겼다. 때문에 김진호를 여기 붙여 놓는 건 정확한 결정이었다.우리는 각자 꿍꿍이를 갖고 있었다.그때 주해진이 허허 웃으며 입을 열었다.“아까 진호가 가게에서 일하는 게 너무 좋았다는데 앞으로도 진호한테 잡일거리라도 맡겨주면 안 될까? 도움이라도 될 수 있게.”“우리 술집은 너도 알잖아. 장사가 잘됐다 안 됐다 해서 요즘은 거의 손님도 없어. 진호가 거기 있어도 쓸모가 없고.”주해진은 눈을 접고 배시시 웃으며 내가 거절하지 못하게 뒷길마저 막아두었다.하지만 나도 내 생각이 있는지라 웃으며 말했다.“주해진, 애초에 약속했잖아. 가게 일은 내가 혼자 관리하기로. 직원 모집도 포함해서. 이건 다 계약서에 있는 내용일 텐데.”“알아, 나도 다 알아. 그래서 이렇게 상의하는 거잖아. 우리가 그래도 파트너인데. 이제 같은 배를 탄 사람 아니야? 그러니 예전 일은 이제는 내려놓을 때도 됐잖아.”“원수가 원한을 풀기는 쉬워도 친구가 되는 건 어려운 일이잖아. 친구가 한 명이라도 더 있으면 원수가 있는 것보다는 낫지 않아?”역시 사회에서 구른 사람이라 그런지 말은 참 그럴듯하게 했다.나도
오후에는 그렇게 바쁘지 않았다. 사장님들을 모두 보낸 것도 있었고 손님도 오전보다 훨씬 줄었다.그제야 다들 한숨 돌릴 수 있게 되었다.우리가 돌아왔을 때 김진호는 배우 바삐 보냈다. 땀을 뻘뻘 흘리며 뛰어다니면서도 불평도 하지 않았다.민우는 그 모습이 무척 의외라는 듯 말했다.“저 자식 왜 저렇게 좋아해?”현성은 의아한 눈빛으로 김진호를 바라봤다.“저 자식 무슨 꿍꿍이지? 수호야, 차라리 저 자식 쫓아내는 건 어때?”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김진호도 주주야. 비록 비중은 작다고 해도 아예 무시하면 안 돼. 저렇게 하고 싶어 한다면 하라고 해. 그런데 너희 둘이 잘 지켜보면서 잡일거리면 시켜. 절대 기밀 손대게 해서는 안 돼.”나는 김진호에 대해 여전히 큰 경계심을 가지고 있다.무슨 일이든 조심해서 나쁠 건 없다. 그래야 오래 가고.재무, 약재 구매 경로 그리고 중요한 고객 정보 등은 우리가 직접 관리하는 게 더 안전했다.김진호는 아직 그걸 깨닫지 못했는지 자기도 겨우 일할 수 있다고 좋아하며 만족해했다. 비록 땀투성이가 되어도 그는 여전히 흐뭇해했다.주해진은 그런 김진호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말했다.“너 이럴 필요 있어? 우리는 밖에서 맛있는 거 먹으며 즐기고 있을 때 혼자 여기서 땀 뻘뻘 흘리며 일하고 있고. 너 바보야?”김진호는 주해진이 가져온 밥을 먹으며 싱글벙글 웃었다.“형, 그건 틀린 말이에요. 내가 왜 남은 줄 알아요?”“지금 가게는 정수호가 권력을 쥐고 있고 우리는 아예 아무런 권한도 없잖아요. 우리도 이 가게 주주라고 말하고 다니지 않으면 가게 직원들이 우리를 알아나 봐요?”“그런데 내가 오늘 가게에 얼굴을 비추니 달라지더라고요. 모든 사람이 나와 형도 주주인 걸 알았어요. 이렇게 되면 나중에 가게가 안정되면 내가 다시 들어오는 것도 문제없잖아요.”주해진은 그 말을 듣고 너털웃음을 지었다.“너 이 자식, 그런 속셈이었구나. 몰라봤는데 너 은근히 머리 잘 굴리네?”김진호는 형의 칭찬에 더 흐뭇해하
그리고 이 순간 김진호는 희망을 보았고 서서히 자기 이빨을 드러내기 시작했다.하지만 그것도 때가 오기를 기다려야 했다....오늘이 개업 첫날이라 정 사장님은 많은 손님을 소개해 주며 한 명씩 소개해 주었다.“조 사장님, 안녕하세요!”“연 사장님, 안녕하세요!”“신 사장님, 안녕하세요!”나는 사장님들께 일일이 인사하며 접대했다.그러면서 모든 사람의 모습과 전화번호를 마음속에 기억했다.이왕 혼자 하기로 했으니 인맥과 관계는 가장 중요하다. 게다가 정 사장님이 나한테 소개해 준 인맥은 모두 어렵게 얻은 것이라 반드시 소중히 여겨야 했다.손님들을 한 바퀴 접대하고 나니 나는 목이 말라 타는 것 같았다.민우가 때마침 나에게 물 한 컵을 건넸다.“얼른 물 마셔. 너 목소리 갈라졌어.”나는 컵을 받아 물을 단숨에 마셨다. 그제야 조금 편해진 것 같았다.비록 피곤했지만 나는 아주 보람이 느껴졌다.이건 가게 발전에 두 도움 되는 것들이었다. 현성마저 엄지를 추켜세우며 나를 연신 칭찬했다.“수호, 너 정말 대단하네. 기억력 너무 좋다. 모든 사람을 제대로 기억하네. 난 사람 얼굴이 너무 헷갈려서 누가 누구인지 모르겠어.”민우도 맞장구쳤다.“나도 사람 얼굴이 헷갈리는 것 같아. 문제는 다 비슷한 옷을 입기도 했고 생긴 게 정말 너무 비슷해.”솔직히 나도 이런 자리에 있지 않았다면 이 정도 할 수 없었을 거다.하지만 이제는 천수당의 발전을 등에 업고 수억을 투자한 이상 절대 돈 낭비해서는 안 된다.사람의 잠재력은 모두 극단적인 상황에서 터져 나오는 것이라고 했다. 내가 오늘 이렇게까지 할 수 있던 건 나 스스로도 매우 놀라웠다.물을 마시고 잠시 휴식을 취한 뒤 나는 또 귀한 손님들을 접대하러 갔다.민우와 현성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우리는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점심에 나는 민우더러 다연 한식당에 프라이빗 룸을 예약하라고 당부하고는 사장님들을 초대하여 식사를 대접했다.나는 당연히 함께 가야 했기에 다른 사람을 가게에 남겨두기로 했다
“잠깐.”그때 내가 소리쳤다.연승호는 눈썹을 꿈틀거리며 나를 바라봤다.“또 뭐 하려고 그래?”나는 조금도 두렵지 않다는 눈빛으로 연승호를 빤히 바라봤다.“연승호 씨, 나한테 무슨 악감정이 있어서 이렇게 찾아와 소란을 피우는지 모르겠으나 한마디 경고하죠. 오늘 같은 일은 이번 한 번뿐이어야 할 겁니다. 만약 다음에 또 이러면 나도 가만있지 않아요!”연승호는 주먹을 꽉 그러쥐며 눈에서 불꽃을 뿜어냈다. 그가 화를 내려고 할 때 백연우가 얼른 그를 끌어당겼다.“승호 씨, 우리 가요. 얼른 쇼핑해요.”연승호는 화가 치밀었지만 그걸 곧이곧대로 발산할 수 없었다.나는 윤지은을 바라보며 진심으로 말했다.“고마워요.”“계속 이런 환경에 처하면 영향 안 받을 리 없잖아? 앞으로 조심해.”윤지은의 말속에는 뭔가를 내포하고 있었다.나는 깊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이게 뭐 내 탓인가? 백연우가 먼저 나를 찾아왔고 그 때문에 연승호가 나를 질투하는 건데 뭐.’하지만 나는 후회하지 않는다.만약 연승호가 또다시 찾아와 문제를 일으킨다고 해도 두렵지 않다.작은 사고가 있고 난 뒤 또 생각지도 못한 사람이 나타났다.그 사람은 다름 아닌 임천호 옆에 있는 시커먼 떡대, 이제는 이름도 아는데 바로 강용재였다.나는 임천호가 사람을 보내올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강용재는 선물도 가져오지 않고 임천호의 말만 전했다.“임 회장님께서 정수호 씨더러 시간 날 때 소여정 씨를 보러 오라고 하십니다.”나는 임천호가 대체 무슨 목적으로 이런 말을 하는지 의문이었다. 나를 믿는 건지 아니면 시험하는 건지도 의문이었다.하지만 어떤 것이든 좋은 의도는 아니다.오늘은 천수당 개업일인데 수많은 사람 앞에서 거절하면, 사람들은 우리 천수당 의술이 별로라고 생각할 거다.때문에 잠깐 고민한 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민우는 다급히 내 팔을 잡아당기며 말했다.“수호야. 동의하면 어떻게? 임천호는 분명 좋은 의도가 아닐 거야.”현성마저 그렇게 얘기했다.그때 나는 내 생각을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