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님, 이제 저 필요 없어요?”사모님 말에 나는 초조하고 서운했다. 갑자기 필요가 없어진 느낌이었다.그때 사모님이 풉 하고 웃음을 터뜨리더니 설명했다.“지금 그 꼴로 어떻게 운전하려고 그래요?”“지은더러 기사 새로 알아봐달라고 부탁한 거예요. 수호 씨가 필요 없어진 게 아니에요.”“그러니까 아직도 저 필요한 거 맞죠?”나는 초조하게 물었다.사모님은 내 말에 얼굴이 확 붉어졌다.“무슨 말이에요? 나 수호 씨 사장 사모님이에요.”나는 다급히 해명했다.“아니, 제 뜻은 저를 데리고 돌아가는 거 맞죠? 여기 혼자 버리는 거 아니죠?”“당연하죠. 내가 수호 씨 데리고 나왔는데, 버리고 갈 리 있겠어요? 그런데 수호 씨가 다쳐서 차 새로 알아봐서 따로 데려다주고 싶어요.”“싫어요. 저는 사모님과 같이 있을래요.”나는 무의식적으로 말했다.그 말에 사모님의 눈빛이 약간 어색해졌다.사모님이 내 말을 오해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나도 덩달아 어색해졌다.‘어떻게 사모님한테 이런 말을 할 수 있지?’나는 다시 해명했다.“사모님, 저, 저는 그저 사모님을 지켜주고 싶은 거지, 별 뜻 없어요.”“알아요.”사모님은 볼이 발그레해서 내 눈도 보지 못했다.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대문에 분위기는 일순 어색해졌다.어색한 분위기를 깨기 위해 나는 먼저 입을 열었다.“사모님, 저 목마른데, 물 가져다줄 수 있어요?”사모님은 얼른 일어나 나에게 생수 한 병을 건넸다. 그러고는 뚜껑을 열어 먹여주기까지 했다.나는 사실 한쪽 팔을 다쳤지만, 다른 한쪽은 움직일 수 있었다.하지만 사모님의 보살핌을 받으려고 폐인처럼 행동했다.사모님이 가까운 거리에 앉아 향수 냄새가 코를 간지럽혔다. 게다가 살짝 붉은색을 띤 희고 고운 피부가 눈앞에 보였다.나는 참지 못하고 사모님을 훔쳐보다가 하필이면 딱 시선이 마주쳤다.“왜, 왜 그렇게 봐요?”사모님은 어색한 말투로 물었다.나는 내 마음을 들킬까 봐 거짓말을 할 수 없었다. 때문에 오히려 눈을 딱
나는 벌레를 찾은 것처럼 손을 뻗어 손가락을 튕겼다.“벌레는 이미 죽였어요. 그러니까 겁내지 마요.”사모님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어릴 때 아주 큰 벌레한테 물린 적이 있어서 그때부터 벌레를 엄청 무서워해요. 고마워요.”나는 죄책감이 밀려왔다.“고맙긴요, 어려운 일도 아닌데요.”“수호 씨, 혹시 어디 불편해요?”너무 오래 앉아 있었는지 엉덩이가 근질근질했다.하지만 그걸 사모님한테 말하기가 부끄러웠다.“허리가 불편해요? 아니면 엉덩이?”사모님은 내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채고 걱정스레 물었다.엉덩이가 점점 더 가려워 손을 뻗어 긁고 싶지만 닿지 않았다.물론 낯 뜨거웠지만 너무 간지러워 나는 결국 사모님께 부탁했다.“사모님, 저 엉덩이 긁어줄 수 있어요? 바지 위로 긁어주면 돼요. 거기가 왜인지 계속 간지러워요.”“네? 아니...”사모님은 부끄러운지 얼굴이 홍당무가 되었다.“정 안 되면, 애교 누나 불러줄래요?”나는 말하면서 애써 닿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여전히 닿지 않았다.내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던 사모님은 이를 악물고 말했다.“도와줄게요, 뒤 돌아요.”나는 얼른 뒤돌았다.그러자 사모님이 한참 망설이다가 끝내 백옥같은 손을 내 엉덩이로 뻗었다.“사모님, 걱정 마세요. 저 오늘 저녁 샤워해서 엉덩이 안 더러워요.”나는 사모님이 결벽증이라도 있을까 봐 설명을 덧붙였다.사모님은 풉 웃음을 터뜨렸다.“더러울까 봐 걱정하는 거 아니에요. 다른 남자의 은밀한 부위에 손을 댄 적 없어서 어색해서 그래요.”“저도 왜 이러는지 모르겠지만 그곳이 너무 간지러워요.”“엎드려요, 긁어줄게요.”사모님의 새하얀 손이 겨우 내 엉덩이에 닿았다. 그러더니 살살 긁어주기 시작했다. 어찌나 살살 하는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조금만 더 세게 해줄래요? 아무 감각도 없어요.”사모님은 손에 힘을 더 실었다.그제야 간지럽고 괴롭던 느낌이 해소되었다.하지만 뒤돌아봤더니 사모님의 새하얀 가슴이 눈에 들어왔다.나는 순간 너무 부끄러웠다.“사
하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백연우가 문을 열고 들어왔기 때문이다.사모님은 커튼 뒤에 숨었지만 새하얀 발이 밖으로 삐죽 튀어나와 보는 내가 다 조마조마했다.만약 이 상황에서 들키면 입이 닳도록 설명해도 소용없을 거다.때문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사모님을 막아섰다.“백 쌤, 왜 왔어요?”나는 가슴이 괜히 찔리기도 하고 어색했다. 심지어 이 정도로 다쳤는데 연기까지 해야 하는 내 신세가 불쌍했다.백연우는 허리를 살살 흔들며 내 앞으로 다가오더니 허리를 살짝 숙였다. 그 덕에 넥라인으로 가슴이 보였다.백연우는 가슴도 큰 데다 워낙 개방적이라서 남이 대놓고 보는 것도 신경 쓰지 않았다.“뭐 하나만 물어볼게. 앞으로도 나랑 연락하고 지내고 싶어?”“네? 갑자기 그건 무슨 말이에요?”“오늘 오후 여기 떠나면 난 학교 돌아가야 하잖아. 이렇게 헤어지면 앞으로 연락할 일이 적을 거야. 하지만 난 이렇게 헤어지기 아쉬워. 넌 어때? 나랑 헤어지는 거 아쉬워?”나도 당연히 아쉬웠지만 방 안에 사모님이 있다는 게 문뜩 떠올랐다.이대로 인정해 버리면 사모님은 아마도 나를 가벼운 사람으로 생각할 거다.때문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백 쌤은 학과장인데, 제가 어떻게 감히 넘보겠어요?”“감히? 왜 갑자기 거리 둬?”백연우는 내 볼살을 꼬집었다.“아니면 이젠 나랑 노는 게 질려서 차버리겠다는 거야?”나는 안절부절못했다.“질리다니요? 백 쌤, 헛소리하지 마세요.”나는 사모님이 나를 오해할까 봐 걱정되었다.“저 휴식하고 싶으니까 나가주세요.”나는 백연우가 더 말할까 봐 얼른 그녀를 쫓아내고 싶었다.하지만 백연우는 가기는커녕 아예 내 침대 위에 털썩 앉았다.“정수호, 너 이상한데? 솔직히 말해 봐. 왜 그렇게 급하게 쫓아내는데? 나한테 뭐 숨기는 거 있지?”백연우는 말하면서 내 이불을 들췄다.내가 물론 그런 짓을 한 건 아니지만, 백연우가 너무 갑작스레 행동하는 바람에 깜짝 놀랐다.“뭐 하는 거예요? 저 이렇게 다쳤는데, 다정하게 대할 수
사모님은 더욱 수줍어하며 내 눈을 쳐다보지 못했다.“나한테 그런 말 할 필요 없어요. 내가 수호 씨랑 무슨 사이인 것도 아니고.”하긴, 사모님은 나와 아무 사이도 아니기에 내가 누구랑 뭘 하든 신경 쓰지 않는다.“휴식해요. 난 이만 가볼게요.”아까 전 일을 떠올릴수록 너무나도 난처했다.결국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건 다행이자만.나는 침대에 누워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한숨 푹 자려고 했다. 그리고 얼마 뒤, 나는 꿈나라에 들어섰다.오후까지 쭉 잤더니 형수와 애교 누나가 나를 깨우러 왔다.이제 여기를 떠나려는 모양이었다.“시간 참 빠르네요.”어느덧 이곳에서 사흘이나 있었다. 그런데 떠나자니 아쉬웠다.이렇게 고급스러운 곳을 올 기회가 앞으로 더 있을지 모르니까. 게다가 이렇게 예쁜 누나들과 함께 있는데, 미련을 두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을까?형수와 애교 누나는 나를 도와 옷을 입혀주었다.두 사람이 함께 시중을 들고 있었지만 나는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마치 세 사람이 오랜 부부인 것처럼.애교 누나는 어느 정도 이해되지만 형수가 나를 도와주는 건 의외였다.전에 분명 삐졌는데 이런다는 건, 형수가 여전히 나를 마음에 두고 있다는 뜻이었다.두 사람을 협조해 빠르게 옷을 갈아입고 나니, 얼마 지나지 않아 나머지 누나들이 왔다.모두가 함께 하산할 모양이었다.윤지은은 그 여의사도 데리고 왔다.그게 약간 의아했다.“하산하면 병원은 언제든지 갈 수 있지 않나요? 왜 저 사람도 데려가요?”윤지은은 쌀쌀맞게 말했다.“수호 씨 상태를 가장 잘 아니까. 데려가는 건 다 수호 씨를 위해서야. 하산하면서 무슨 사고가 있으면 안 되니까 생각해 주면 그냥 좀 얌전히 받아.”“네, 알았어요. 받을게요. 고마워요. 참, 저 의사 쌤 이름은 뭐예요? 아직 이름도 모르네요.”“뭐 하려고? 또 흑심 품은 거야?”나는 황급히 억울함을 호소했다.“나를 파렴치한 사람으로 몰지 말아줄래요? 그냥 이름 좀 알면 나중에 인사할 수 있잖아요.”“하긴, 파렴치한 사
무엇보다 양동준이 윤지은과 함께 용천 호텔에 남아, 그와 이대로 헤어지면 앞으로 다시는 만나지 못할까 봐 걱정되었다.“간단해요. 앞으로 임천호를 만나면 나 대신 말만 전해줘요.”여러 가지 가능성은 모두 염두에 뒀지만, 이 여자가 임천호와도 접점이 있을 거란 건 몰랐다.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무슨 말인데요?”나는 여의사와 손을 잡아도 될지 다시 고민했다.‘왜 위험한 것 같지?’여의사는 나를 보며 말했다.“나 서지예가 언젠가 그놈 고자 만들 거라고.”“컥...”나는 하마터면 내 침에 사레가 들뻔했다.그도 그럴 게, 이 여자가 임천호한테 그런 말을 할 줄은 몰랐으니까.나는 임천호를 피하지 못해 안달인데, 그런 말은 더더욱 할 리 없다.나는 얼른 도리질했다.“안 돼요. 그건 못 도와줘요. 다른 사람 알아봐요.”“찌질하긴.”서지예가 나를 째려봤다.나는 그 말에 기분이 확 상해 반박했다.“이건 찌질한 것과 상관없거든요. 내가 내 실력을 아니까 그러는 거예요. 임천호가 어떤 사람이고 내가 어떤 사람인데요? 그런데 나더러 임천호한테 그런 말을 하라니, 죽으라는 뜻이에요?”서지예가 팔짱을 끼며 쌀쌀맞게 말했다.“진짜 남자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아요. 양동준을 봐요, 두려워하는 게 있나.”“그렇게 말하면 안 되죠. 양동준 형님은 용병 출신이니까 진짜 실력이 있고, 난 평범한 일반인이에요.”“흥, 그래도 찌질한 건 변함없으니 변명하지 마요.”서지예가 아예 결론을 내버렸다.그 평가를 들으니 왠지 억울했다.내가 겁많은 건 맞지만 그렇다고 찌질한 건 아닌데.특히 여자한테 이 정도로 미움받으니 한 대 맞은 것처럼 얼굴이 아팠다.나는 결국 승복하지 않고 이를 악물며 말했다.“임천호와 무슨 사이예요? 왜 고자로 만들려는 거예요?”“임천호의 아내가 내 친언니거든요. 우리 언니를 버리고 불여시랑 붙어 다니는데, 남자구실 못 하게 만들려는 건 당연한 거 아니에요?”나는 너무 놀라 어안이벙벙했다.‘이 여자의 언니가 임천호의 아내라면, 소여정
“한때 만났어요. 이 답이면 충분해요?”“그렇다면 지금은 헤어졌다는 뜻이겠네요? 왜 헤어졌는데요? 누가 먼저 찼어요?”“그런 건 왜 묻는 거예요?”“당연히 물어봐야죠. 만약 안 좋게 헤어졌으면 동준 형님이 그쪽 말 들어줄 리 없잖아요. 난 속고 싶지 않아요.”나는 잔뜩 경계하면서 말했다.서지예는 나를 휙 째려봤다.“참 딱히 잘하는 게 없지만 잔머리 하나는 인정해요. 그 정력을 다른 데 쏟았으면 이 꼴 나지 않았을 텐데.”그 말에 동의할 내가 아니었다.“난 아직 기회를 만나지 못한 거거든요. 기회만 있으면 분명 큰일을 할 거라고요.”서지예는 더 이상 논쟁하기 귀찮은 듯 의미심장한 미소를 날렸다. 그러다가 나를 보며 말했다.“그냥 평화롭게 헤어졌어요. 그런데 양동준이 아직도 나한테 마음이 있으니 당신을 제자로 받으라고 충분히 설득할 수 있고요.”“정말요? 그럼 왜 헤어졌는데요? 그렇게 훌륭한 사람과?”이 문제는 역시나 짚고 넘어가야 할 것만 같았다.서지예는 한숨을 푹 쉬었다.“사람이 너무 올곧다 못해 견디기 힘들었거든요. 같이 있는 3개월 동안 손도 못 잡아 봤어요. 가끔 그쪽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의심된다니까요. 전에 몰래 맥을 짚어 봤더니 모두 정상이었는데, 심지어 본인도 수요가 있으면서 내가 은근슬쩍 흘려도 협조를 안 해줘요. 뭐 처음은 신혼 첫날밤에 치르고 싶다나?”“젠장, 남자한테서 그런 말 들은 내가... 얼마나 어이없었는지 알아요?”그게 뭐가 어이없다고? 그렇게 인내심 있고 책임감 있는 사람은 눈에 불을 켜고 찾아도 찾기 어려운데, 소중히 여길 줄 모르고.‘세상 참 변했어. 날따라 못해지네.’‘이제는 여자들이 이렇게 개방적이라고? 그쪽 수요가 그렇게 큰가? 좋은 남자가 저평가될 만큼?’‘신민우도 그렇더니, 양동준 형님도 똑같네. 오히려 나처럼 이 여자 저 여자 건드리고 다니는 사람이 더 인기가 많다니.’‘역시 여자는 나쁜 남자한테 끌린다는 게 맞나?’양동준이 우상이었기에 나는 그의 편을 들었다.“동준 형님이
나는 이미 마음속으로 양동준을 스승님으로 모셨는데, 서지예가 양동준을 좋아한다면 내 사모님이나 다름없다.그런데 어떻게 이 여자가 내 스승님을 두고 바람피우게 할 수 있단 말인가?하지만 서지예는 이미 내 몸 위로 올라와 유혹했다.“우리 해볼래요?”나는 진지한 태도로 말했다.“가능하다고 생각해요? 동준 형님은 제 스승님이에요. 그런데 내가 그쪽이랑 썸 타고, 그 사진을 동준 형님께 보내면, 형님이 나를 어떻게 스승님으로 받아주겠어요?”“얼굴 가리면 되죠.”서지예는 이미 내 앞에 다가와 나에게 몸을 비비고 있었다. 나는 그런 그녀를 밀쳐냈다. 나라는 사람이 이토록 정직할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 건 이번이 처음이다.서지예는 나한테 밀려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아 씩씩거리며 나를 노려봤다.“무슨 뜻이에요? 내가 그렇게 매력 없어요?”나는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매력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지예 씨는 내 미래 사모님인데, 우리 이러면 안 돼요.”“흥, 아직 제자로 받아주지도 않았는데 벌써 제자인 척하기는.”서지예는 자리에서 일어나 엉덩이를 툭툭 털었다.그걸 보니 왠지 난처했다. 방금 힘 조절을 하지 못해 상대가 아프지는 않나 걱정되었다. 나는 결국 걱정스레 물었다.“괜찮아요?”“상관 마요. 도와주지도 않을 거면서, 네 도움도 바라지 마요.”서지예는 화가 난 듯했다.“그러지 마요. 임천호 일은 정말 내 능력을 벗어났어요. 그런데 스승님과 지예 씨 일은 다른 방법으로 도와줄 수 있어요.”“무슨 방법인데요? 말해 봐요.”서지예는 기세등등해서 물었다.나는 한참 생각하다가 내 방법을 말했다.“남녀 사이는 분위기가 중요해요. 우리 스승님과 러브호텔에 가는 건 어때요?”“그 사람 성격에 절대 안 갈 거예요. 소용없어요.”“속여서 불러내면 되죠. 섹시한 속옷을 입고 기다리면 절대 못 버틸걸요. 그래도 안 되면 그 전에 술 좀 먹이는 것도 나쁘지 않죠. 남자는 알코올이 들어가면 참지 못하거든요.”서지예는 내 말에 예쁜 눈을 반짝였다.“괜
“스승님을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 땡중으로 생각해요. 그런 사람을 홀려 규율을 어기게 만들어야 한다고요.”나는 서지예한테 예를 들었다.그러자 서지예는 바로 내 뜻을 이해했다.“아, 알았어요. 양동준은 보통 남자랑 달라서 꼬시려면 특별한 수단을 좀 써야 한다, 이 말이죠? 그런데 무슨 수단이요? 잘 모르겠는데.”‘어... 이걸 어쩐다?’‘여자가 어떻게 매력 발산해야 하는지 나도 모르는데.’“아니면 백연우 씨를 따라 배우는 건 어때요?”“미쳤어요? 어떻게 그런 시킬 수 있어요?”서지예는 나를 한바탕 호되게 꾸짖었다.백연우를 제외하고 형수가 떠올랐지만, 형수는 하산하기 전에 진동성이 뭐 하나 봐야겠다며 서둘러 돌아가야 한다고 했다.그런데 그런 사람더러 가지 말고 도와달라고 할 수 없었다.머리를 쥐어 짜내며 적임자를 떠올렸지만 마땅한 사람이 떠오르지 않았다.그때 서지예가 말했다.“정 안 되면 그쪽이 가르쳐주던가요.”“내가 어떻게 알아요? 내가 여자도 아니고, 남자를 꼬셔 봤어야 알죠.”“아는 여자가 그렇게 많은데 보고 배웠을 거 아니에요? 됐어요, 수호 씨가 가르쳐 줘요. 내가 양동준을 자빠뜨리면 그쪽을 제자로 받으라고 설득해 줄게요. 약속할게요!”서지예는 아주 매력적인 조건을 제시했다. 게다가 양동준과 그런 사이이니, 서지예를 도우면 양동준의 제자가 될 확률이 매우 높았다.‘동준 형님을 스승으로 모실 수 있다면 못 할 것도 없지.’결국 나는 이를 악물고 고개를 끄덕였다.“좋아요. 해보죠.”“그럼 이제부터 말하는 대로 하면 돼요?”나는 나를 소여정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사람을 유혹하는 면에서 소여정을 따라올 자는 아무도 없었으니까.나는 서지예더러 양동준인 척하게 하고, 남자의 욕망을 어떻게 자극해야 할지 직접 시범을 보여주었다.“하하하... 하하하...”서지예는 아예 웃음을 터뜨렸다.‘사람 머쓱하게.’“뭘 웃어요?”서지예는 참지 못하고 말했다.“방금 그거 너무 웃겨서요. 됐어요, 안 웃을 테니 다시 한번 보여줘요.”
“엄마, 괜찮아요?”윤지은은 엄마의 이상한 모습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보통 엄마라면 자기 딸이 우수한 짝을 찾기를 원하지 않나? 왜 엄마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지?’‘게다가 딸이 아무것도 아닌 남자랑 잤다는데 왜 화를 내지 않지?’“괜찮지 그럼. 우리 윤씨 가문은 정략결혼으로 사업을 유지할 필요도 없고 돈 많은 사돈에게 빌붙을 필요도 없어. 난 전에 네 심리에 문제가 있는 줄 알고 걱정했는데 문제없다니 오히려 다행이지. 앞으로 외로우면 만나고 싶은 남자 마음대로 만나. 넌 윤씨 가문 딸이잖아. 뭐든 너 하고 싶은 대로 해.”윤지은의 얼굴은 또 빨갛게 달아올랐다.윤지은은 사실 욕구불만인 사람은 아니다. 다만 전에는 정말 힘든 데다 여준휘한테 복수하려는 마음에 아무나 만나 터무니없는 짓을 저지른 거였다.“필요 없어요. 요즘 병원 일이 바빠서 쓸데없는 생각할 시간 없어요.”“누굴 속여? 너희 병원 요즘 안 바쁘잖아. 나 고 교수한테 다 물어봤어. 네가 요즘 할 일이 없다면서 휴가 줄 생각도 하던데. 차라리 이참에 수호 씨랑 여행이나 다녀와.”윤지은은 꼬리 밟힌 고양이처럼 버럭 소리 질렀다.“싫어요. 가더라도 혼자 다녀올 거예요.”“혼자 가는 게 얼마나 위험해? 낯선 환경과 낯선 도시에 가면 외로울 때 누가 같이 있어 줘?”“엄마. 말끝마다 남자 얘기하지 마요. 전 독립적인 여성이에요. 남자가 없어도 잘 살 수 있다고요.”“우리 딸이 얼마나 독립적인지는 나도 잘 알지. 그럼 그냥 친구랑 같이 논다고 생각해. 두 사람이 가는 게 혼자보다는 낫잖아. 남자도 사실 애완동물처럼 곁에 두면 꽤 즐거워.”그 말에 나는 너무 충격을 받아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역시 부자들한테는 뭐든 애완동물로 보이는구나.’나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윤지은 씨, 윤 사모님, 이제 설명 끝났으니 전 이만 가볼게요.”나는 기분이 언짢아 일부러 호칭으로 두 사람과 거리를 두었다.그러자 이영미가 다급히 내 팔을 잡았다.“가긴 어딜 가?
그때, 슬리퍼 한쪽이 날아와 내 뒤통수를 가격했다. 그 힘이 어찌나 센지 나는 그대로 소파 위에 벌러덩 넘어지고 말았다.윤지은은 그 틈에 덮쳐와 가위로 내 옷을 마구 잘랐다. 그 모습에 나는 오금이 저려 났다.가위가 조금만 더 아래로 향하면 나는 정말 고자가 됐을지도 모른다.나는 다급히 윤지은의 손목을 움켜잡았다.“너무한 거 아니에요? 정말 저를 고자로 만들 작정이에요? 내 거로 얼마나 기분 좋았던지 잊었어요? 정말 잘라버리면 앞으로 누가 지은 씨 기분 좋게 해줘요?”윤지은은 차가운 눈초리로 나를 쏘아봤다.“그건 너 없이 나 혼자서도 해결해. 그런데 감히 우리 엄마를 노려? 그러면 죽어야지.”“전 지은 씨 어머님 노린 적 없어요. 정말 마사지해 드린 것뿐이에요.”“노린 적 없다고? 그런데 아까 더 세게 하라느니 거친 게 좋다느니 한 말은 뭔데?”“제가 너무 살살 누른다고 더 세게 누르라는 거였어요.”“헛소리하지 마. 누가 그 말을 믿을 줄 알고. 내가 들어왔을 때 네놈이 우리 엄마랑 같이 방에 들어가는 거 똑똑히 봤는데. 말해. 우리 엄마한테 나쁜 짓 하려고 했지?”“제가 여색을 밝히는 건 맞지만 짐승은 아니에요. 전에 지은 씨랑 그랬는데 어떻게 지은 씨 어머니를 노리겠어요? 내가 변태도 아니고.”윤지은이 뭐라 하기 전에 이영미가 초조한 모습으로 달려 나왔다.“지은아, 너희 둘... 정말 했어?”윤지은은 얼굴이 화끈 달아올라 목까지 빨개졌다.“엄마, 말 좀 예쁘게 하면 안 돼요?”이영미는 헤실 웃으며 말했다.“용천 호텔에서부터 두 사람 심상치 않다 생각했는데, 역시나 내 생각이 맞았어. 우리 예쁜 딸. 네가 남자랑 사랑도 나누어 봤다니 엄마는 너무 기뻐. 난 네가 불감증인 줄 알았잖아. 어때? 해보니까 기분 좋지? 한 번 하니 또 하고 싶고 계속하고 싶지?”윤지은의 얼굴은 점점 달아올라 빨갛게 익어 버렸다.“엄마. 좀 점잖게 행동해요.”“에이, 엄마도 다 겪었는데 뭘 그렇게 부끄러워해? 나랑 수호 씨 정말 아무것도 없었어.
“절대 못 그래요. 제가 그렇게 물으면 지은 씨는 분명 저를 잡아먹으려고 할 거예요.”나는 바로 거절했다.그러자 이영미는 한숨을 푹 쉬었다.“우리 딸이 정말 불감증은 아니겠지? 평생 결혼도 안 하고 남자도 안 만나려는 건가? 남자랑 한 번도 해보지 못한다는 건 너무 불쌍한데.”“크흠...”서슴없이 말하는 이영미의 모습에 나는 너무 놀라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수호 씨, 힘 좀 써봐. 아무 느낌도 안 나잖아.”“이 정도면 돼요?”“아니. 더 힘써 봐. 난 심플하고 거친 걸 좋아하거든.”“이렇게요?”“아, 좋아...”한편, 집 문 앞에 도착해 문을 열려던 윤지은은 안에서 어머니와 누군가의 이상한 대화가 들려 다급히 문에 귀를 바짝 댔다. 그리고 바로 우리의 대화를 들어 버렸다.그 순간 나와 제 어머니가 부적절한 관계를 맺는다고 착각한 윤지은은 얼굴이 잿빛이 되어 문을 확 열어젖히고 노기등등해서 들어왔다.“정수호, 이 개자식. 감히 우리 엄마를...”하지만 거실에는 아무도 없었다.참 공교롭게도 윤지은이 들어오기 바로 전 이영미는 소파가 불편하다며 침대에 누워 마사지를 받겠다고 했다.결국 나는 마지못해 이영미를 따라 방으로 들어갔다. 그 때문에 나와 이영미가 한 방에 같이 있는 장면을 윤지은에게 들키고 말았다.단단히 화가 난 윤지은은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손에 잡히는 대로 가위를 집어 들었다.“정수호, 이 개자식. 감히 우리 엄마를 넘봐? 내가 너 다시는 남자구실 못 하게 만들 거야.”나는 침실에 들어오기 전에 사실 도어락 소리를 듣고 뒤돌아보려고 했었다. 하지만 이영미가 얼른 마사지해달라고 재촉하는 바람에 바로 그걸 무시해 버렸다.고개를 돌렸을 때 이영미는 어느새 침대에 누워 있었다. 게다가 슬립이 너무 짧아 예쁜 다리가 훤히 드러났다. 이런 상태에서 마사지해 주는 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에 한참 동안 망설이고 있을 때, 이영미가 말했다.“안 될 거 뭐 있어? 집에 사람도 없는데. 무엇보다 당사자인 내가 괜찮다잖아. 얼른 눌
“이렇게요. 손가락을 구부리지 말고 쫙 펴야 해요.”나는 최선을 다해 시범을 보여주었다.그때 이영미가 갑자기 내 바지춤을 잡으며 말했다.“옷이 너무 커서 시선이 막히잖아. 옷 벗어 봐. 그래야 잘 보이지.”“어머님, 그건 안 돼요...”“그럼 옷을 들어 올리던가. 이렇게 하면 잘 안 보여.”나는 어쩔 수 없이 티셔츠 밑단을 위로 들고 다시 시범을 보여주었다.“보세요. 이렇게 손가락을 놓으면 검지와 중지 사이에 간격이 조금 생기는데 그 위치가 바로 우리가 찾으려는 혈자리예요.”“똑바로 앉아 봐. 잘 안 보여.”이영미는 또다시 나를 마구 잡아당겼다. 이러다가 바지가 벗겨질 것 같아 나는 다급히 일어나 벌렁거리는 심장을 다독이며 그녀와 거리를 유지했다. “어머님, 전 이미 충분히 보여줬으니 직접 찾아보세요.”“이렇게? 이것 봐, 내 손가락이 말을 안 듣는다니까.”이영미는 동안에 귀염 상이지만 손은 어찌나 둔한지 계속 틀렸다.결국 보다 못한 나는 직접 가르쳐주었다. 다만 자세만 잡아주고 혈자리를 찾는 건 역시나 이영미 스스로 찾게 했다.“혈자리를 찾았다면 가볍게 눌러 봐요. 시큰거리는지 확인해 봐요.”그 과정에 나는 이영미를 보지 않으려고 계속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있었다. 내 말에 이영미는 혈자리를 살짝 눌렀다.“아. 진짜 시큰거리는 것 같네. 앞으로 여기를 누르면 해소된다는 거지?”“네.”나는 그제야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자리로 돌아가 다시 이영미의 맥을 짚었다.이영미는 낮은 소리로 진작 물었던 걸 그랬다며 혼잣말했다. 이영미의 모습을 보니 연기 같지는 않았다. 아까 계속 내 바지를 내리려 해서 하마터면 이영미가 나한테 뭐라도 할 줄 알고 진땀을 뺐는데, 보아하니 내가 너무 예민했던 모양이었다.맥을 한참 짚어본 뒤 나는 상황을 말했다.“보아하니 편두통이 있으신 것 같아요. 손으로 마사지하면 두통이 사라질 거예요.”나는 이영미더러 소파에 기대앉게 하고 나는 소파 뒤에 선 채 머리를 마사지해 줬다.그때 이영미가 갑자
이영미는 개량한복 스타일의 슬립을 입고 있었는데, 고급스러운 연핑크색에 우아한 얼굴이 어우러져 섹시하면서도 단정한 분위기를 연출했다.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남자인 내가 이대로 들어가는 건 아무래도 격에 맞지 않는 것 같아, 나는 좋은 마음에 귀띔했다.“어머님, 외투라도 좀 걸치는 게 어때요?”“한여름에 외투는 무슨. 더워죽겠는데. 난 집에서 항상 이렇게 입어. 수호 씨도 익숙해지면 돼. 얼른 들어와.”이영미는 전혀 개의치 않는 듯 말했다. 상대도 괜찮다는데 내가 오히려 부끄러워하면 딴마음을 품고 있는 것처럼 보일 터라, 나는 결국 아무 말 없이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고는 무의식적으로 주위를 훑었다.“혹시 혼자 계세요? 하정현 씨는요?”“내가 여기서 지내는 동안 정현이는 못 봤어. 지은이 말로는 B시에 가슴 보러 갔대.”집에 정말 이영미 혼자뿐이라는 걸 알게 된 나는 얼른 치료하고 빨리 떠날 생각뿐이었다. 시간을 끌다 윤지은이 갑자기 들이닥치면 나는 입이 열 개라도 설명할 수 없었을 테니까.“어머님, 혹시 어디가 불편하세요? 제가 봐 드릴게요.”나는 빨리 끝나려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그러자 이영미는 한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여기. 자꾸만 답답하고 피가 안 통하는 것 같아.”“우선 앉으세요. 제가 봐 드릴게요.”이영미는 순순히 소파에 앉았다.내가 맥을 짚는 사이 이영미는 커다란 눈을 깜빡이며 나를 바라봤다.“수호 씨는 내가 어떤 것 같아?”‘엥? 갑자기 왜 이런 걸 묻지?’“아름다우시죠. 관리도 잘하셨고.”나는 건성으로 대답했다. 그러자 이영미는 으쓱한 듯 제 얼굴을 쓰다듬었다.“당연하지. 나 이거 다 자연산이야. 화장도 안 했어.”“네.”“여자가 하고 싶을 때 어떤 방법으로 욕구를 억제해야 해?”갑자기 야릇해진 대화 주제에 나는 어색해서 코를 쓱 문질렀다.“따뜻한 물로 목욕하면 해소될 수 있어요.”“소용없던 걸? 내가 다 해봤어. 혹시 다른 방법은 없어? 예를 들면 혈자리를 마사지한다던가 혹은 침으로 자극한다던가.”
하지만 변석훈의 말은 역전하려는 내 꿈을 처참히 짓뭉개 버렸다.내가 풀이 죽어 있을 때 변석훈이 갑자기 또 입을 열었다.“비록 실력은 나처럼 될 수 없어도 기술을 많이 익히면 적어도 스스로 보호할 수는 있어.”‘말 좀 한꺼번에 하지. 희망 없는 줄 알고 놀랐네.’나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지만 감히 그걸 입 밖으로 내지는 못했다.“스승님께서 좀 가르쳐 주세요.”“여기 내 명함이야. 몸 다 회복하면 연락해.”나는 얼른 그 명함을 챙겼다.그 뒤로 변석훈은 나와 한참 동안 얘기하다가 윤해철을 찾아갔고, 윤해철도 운동이 거의 끝났는지 돌아가야 한다고 했다. 두 사람이 떠난 뒤 나는 이영미에게 바로 문자했다. 남편분 건강이 채 회복되지 않아 몸조리를 더 해야 한다고.문자를 받기 바쁘게 이영미는 곧장 나에게 전화했다.[대체 몸조리를 언제까지 해야 하는 거지? 벌써 보름 동안 몸조리했는데 아직도 안 나았다고?]“한약 치료는 원래 효과가 늦게 나타나요. 이건 급하면 안 돼요. 인내심을 갖고 기다리셔야 해요. 제가 윤 회장님 몸 다 치료해 드리면 회장님은 무조건 어머님을 모셔갈 거예요.”이영미는 짜증나는 듯 물었다.[그이가 나한테 전한 말은 없었어?]“무척 보고 싶다고 하셨어요. 하지만 아직은 어머님이 원하는 행복을 드릴 수 없어 모셔 와도 싸울 거라고 하셨고요. 그리고 젊을 때 절제를 몰랐다고 무척 후회하셨어요.”나는 이영미가 또 이상한 생각을 할까 봐 대충 그럴싸한 변명을 지어냈다.그 말을 들은 이영미는 살짝 놀란 듯 말했다.[그래도 양심은 있네. 그럼 시간 좀 더 준다고 전해줘. 그러니 수호 씨도 서둘러야 해. 되도록이면 우리 남편 몸 예전처럼 돌려 놔줘.]“그럼요. 그러니 어머님도 요즘 인내심 갖고 기다리세요. 지은 씨도 출근하랴 어머님 기분 맞춰드리랴 쉽지 않을 거예요.”[그걸 수호 씨가 어떻게 알아?]“당연히 지은 씨한테서 들였죠. 지은 씨가 저더러 어머님과 윤 회장님을 도와주라고 했거든요. 하지만 제가 방금 확인했는데 윤 회장님
“너무 긴장하지 마. 나도 수호 군이 나쁜 사람 아니라는 거 아니까. 그렇지 않으면 여기서 기다리지도 않았어.”윤해철의 말에 나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럼 왜 기다리신 거예요?”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그러자 윤해철이 싱긋 웃으며 답했다.“저쪽 벤치에 앉아서 얘기하자고.”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윤해철과 함께 공원 벤치에 앉았다.“우리 집사람이 수호 군한테 뭘 시켰는지 나도 아네. 하지만 난 아직 집사람을 받아줄 수 없어. 몸 건강 때문이 아니라 회사 때문에. 우리 회사에 요즘 문제가 생겼는데 한동안은 그걸 처리해야 하거든. 그러니 우리 집사람 쪽은 수호 군이 시간 좀 끌어 줘.”윤해철이 상세한 사항은 설명하지 않았지만, 대충 무슨 뜻인지는 알 수 있었다.하지만 그 말을 듣고 나니 오히려 고민됐다.내가 이영미를 돕는 건, 이영미가 양동준을 설득해 나를 제자로 받게 해준다고 약속해서다. 하지만 윤해철을 돕는 건 나한테 아무런 이득이 없기에, 도와야 할지 무척 고민됐다.짝짝!내가 한창 고민하고 있을 때, 윤해철이 갑자기 손뼉을 쳤다. 그 순간 수풀 뒤에서 날카로운 눈매를 한 남자가 걸어 나와 윤해철에게 공손히 인사했다.“윤 회장님.”윤해철은 사람 좋은 미소를 하며 나를 바라봤다.“이 애는 내 개인 경호원 겸 기사인 변석훈이라고 하네. 이 애의 실력도 양동준 못지않아. 수호 군이 내 요구를 들어주면 석훈이더러 수호 군을 제자로 받아주라고 할게.”나는 도저히 내 귀를 믿을 수 없었다. 변석훈의 실력이라면 의심이 가지 않았다. 윤해철의 개인 경호를 맡을 정도라면 실력은 당연히 문제없을 거다. 하지만 일이 이렇게 발전할 거라고는 생각지 못해 한동안 아무런 반응도 할 수 없었다.“왜? 싫나?”윤해철은 여전히 웃는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좋아요. 너무 좋아요. 회장님 조건은 저한테 너무 이득이에요.”“하하. 별거 아니야. 말 한마디만 하면 되는 일이거든.”비록 그렇다지만 나는 너무 감격스러워,
“비꼬지 마세요. 저도 마음 같아서는 정태곤을 죽이고 싶어요. 그럴 능력이 안 돼서 비겁한 수단으로 상대한 거지.”“비겁하든 말든 뭔 상관이야. 목숨만 건지면 되지.”어제까지만 해도 나 역시 그렇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난 양동준만큼 강해지고 싶다. 아니, 심지어 양동준보다 더 강해지고 싶다. 그게 아니라면 임천호처럼 실력이 부족해도 권력이 있어 나를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는 부하를 거느리던가.그렇다면 결론은 하나다. 반드시 강해져야 한다.어젯밤은 운이 좋았던 거지만, 다음번에도 과연 그럴까?정태곤이 가더라도 또 강태곤이거나 서태곤이 오지 말라는 법은 없다.임천호의 부하가 얼마나 많은데. 수많은 사람이 임천호를 위해 목숨 바쳐 일한다. 때문에 나는 서둘러 강해져야 한다.내가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소여정이 갑자기 내 옆에 앉았다.“먹어. 왜 안 먹어?”나는 두 입에 제비집 한 그릇을 뚝딱 먹어 치웠다.“됐어요. 이제 배불러요. 다른 용건 있어요? 없으면 이만 가 줘요. 전 휴식할 테니까.”사실 나는 따로 할 일이 있다.내 말에 소여정이 씩씩거리며 나를 노려봤다.“그렇게 우리가 갔으면 좋겠어?”나는 차분히 해명했다.“저 정말 해야 할 일이 있어요.”“무슨 일인데? 그렇게 다쳤으면서 설마 여자 만나러 가려고?”“아니요. 중요한 일이에요!”나는 재차 강조했다.“그럼 같이 가.”“그럴 필요 없어요. 사적인 일이라 데리고 가기 불편해요. 저 정말 괜찮으니까 마음 놓고 가세요.”오랜 설득 끝에 나는 겨우 두 불청객을 집에서 내보냈다. 이윽고 외투를 걸치고 국민 공원으로 향했다. ‘오늘 윤 회장님 만날 수 있을까 모르겠네. 운에 맡겨야지.’만약 만나지 못한다면 다른 방법을 생각해 볼 수밖에 없다.하지만 뜻밖에도 내 운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윤 회장님. 이런 우연이. 또 만나네요.”윤해철이 오늘도 평행봉에서 운동하는 걸 본 나는 얼른 그에게 다가갔다.윤해철은 나를 흘긋 보더니 담담하게 말했다.
“정말 갔어요?”난 그 말이 믿기지 않았다. 정태곤은 절대 순순히 돌아갈 사람이 아니다.그때 소여정이 말했다.“갔어. 가는 거 내가 직접 봤어. 어젯밤 일은 정말 몰랐어. 만약 알았다면 분명 막았을 거야.”“소여정 씨 탓할 생각 없으니까 너무 자책하지 마세요.”나는 진심으로 말했다.그러자 소여정이 의아한 듯 물었다.“정말 내 탓 안 해?”“소여정 씨가 정태곤더러 저를 죽이라고 시킨 것도 아니잖아요. 그런데 왜 소여정 씨를 탓해요?”“내가 수호 씨 찾아가서 정태곤이 살의를 느낀 거잖아.”소여정이 말했다.나는 그 말에 반박하지 않았다.“하긴. 그럼 다음부터 저 찾아오지 마세요.”“진심이야?”“농담이에요. 소여정 씨는 제 환자잖아요. 제가 제 환자를 치료하는 건 당연한 일이에요. 오히려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더러운 거지.”문제에 직면했다고 자꾸 피하면 안 된다. 만약 내가 피하면 오히려 도둑이 제 발 저린 것처럼 보일 테니까.게다가 앞으로 따로 나가 사업하면 이런저런 문제에 직면할 텐데, 고작 이런 용기조차 없다면 사업도 하지 말아야 한다.내 말을 들은 소여정은 은근히 기뻐했다.“어디 있어? 내가 지금 갈게.”“오늘은 됐어요. 저 다쳐서 오늘 하루는 집에서 휴식하고 있거든요.”“치료하러 가는 거 아니야. 얼마나 다쳤나 보러 가는 거지. 수호 씨 입으로 내 의사라고 했잖아. 내 주치의가 나 때문에 다쳤는데 병문안 가는 건 당연한 거 아니야?”소여정의 말에 나는 반박할 수 없어 결국 주소를 알려주었다.하지만 놀랍게도 소여정은 혼자 온 게 아니라 백연우와 함께 왔다.“하. 나 오늘 바빠. 지은이 찾아가지 왜 나를 끌고 오는 거야?”“그걸 말이라고 해? 우리 성격이 안 맞는 거 알면서. 내가 부른다고 지은이가 따라오겠어?”두 사람은 중얼거리며 안으로 들어왔다. 심지어 소여정의 손에 보건 식품을 가득 들려 있었다.“그 정도 아니에요. 이거 다 찰과상이에요.”이 보건 식품은 모두 귀한 것들이라 분명 적지 않은 돈이 들었을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