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뭐 어떻게 한 것도 아니고, 왜 저렇게 째려본대?’‘오냐, 네가 나를 째려보면 나는 뭐 못 볼 줄 알고?’나는 따라서 윤지은을 째려봤다. 게다가 시원하게 입은 윤지은은 나한테 오히려 더할 나위 없는 눈요깃거리였다.“그 여자는?”윤지은은 소여정이 원래 앉았던 자리에 앉아 차갑게 물었다.그러자 유미 사모님이 말했다.“먼저 S시로 돌아갔어.”“겨우 돌아갔네. 정말 볼 때마다 짜증 났는데.”윤지은은 역시나 독설을 퍼부었다.그 말에 옆에서 듣던 백연우가 피식 웃었다.“소여정이 여기 있는 것도 아닌데, 왜 또 독설을 퍼붓고 그래?”“이건 독설이 아니거든. 난 정말 걔만 보면 짜증 나. 내 앞에서 하루 종일 자랑만 해대고, 대체 자랑할 게 뭐 있는지.”“너도 그만 인정해. 그렇게 자꾸만 시비 거는 거, 다 여정이 위해서잖아. 그러면서 왜 한 번도 좋게 말하지 않아? 여정 이번에 억지로 돌아간 거야. 임천호한테서 연락 왔거든, 오늘 당장 돌아오라고. 말투 들어보니까 좀 이상했어. 나랑 유미도 걱정이야. 걔한테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닌지.”나는 옆에서 귀를 쫑긋 세우고 엿들었다.‘소여정이 돌아간 게 억지로 돌아간 거라니, 그러면 위험한 거 아닌가?’‘임천호가 소여정을 어떻게 하는 건 아니겠지?’왠지 모르겠으나 나는 너무 걱정됐다.그때 윤지은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대체 왜? 애 갑자기 강제로 불러가는데?”유미 사모님도 무척 걱정됐는지 입을 열었다.“몰라, 갑자기 생각이 바뀌었을 수도 있고. 무슨 일이 일어났을 수도 있고. 아무튼 이번에 태도가 엄청 강경하더라. 상의할 여지도 전혀 없어 보였고.”그 말을 들을수록 나는 걱정이 앞섰다.다들 소여정이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 왜 다 같이 해결 방법을 생각하지 않는 건지.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질문했다.“저기, 소여정 씨가 곤경에 처한 걸 알면서 왜 방법을 생각해 주지 않아요?”세 여자는 동시에 나를 돌아봤다.그 눈빛에 나는 순간 등골이 서늘했다.그때 백연우가 먼
세 여자는 온천에 한참 있다가 술 마시러 바로 향했다.더 이상 내가 낄 일은 없다는 생각에 마침 가려던 그때, 백연우가 입을 열었다.“수호 씨, 우선 가지 마요.”“혹시 볼 일이 남았어요?”“우리랑 같이 가요.”“네?”‘셋이 술 마시러 가는데, 내가 왜?’이곳 바에서 파는 술은 너무 비싸서 내가 소비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게다가 물주인 소여정도 갔는데, 이 세 여자가 나 대신 돈 내줄지도 미지수였다.“저는 됐습니다. 여기 너무 비싸서 전 소비 못 해요.”나는 솔직히 말했다.그랬더니 백연우가 입을 열었다.“남자가 그래서 어떻게 살겠어요? 돈 쓰는 게 뭐 수명 깎이는 것 마냥. 수호 씨는 그저 우리 따라와요. 돈 낼 필요 없어요.”‘그렇다면 나야 좋지.’이곳 와인 한 병은 내 몇 달 치 월급에 맞먹으니, 나로서는 당연히 경험해 보고 싶었다.그런데 지금 마침 그 기회가 왔고, 돈도 들지 않는데, 누가 이런 좋은 기회를 거절할까?나는 바로 헤실거리며 대답했다.“좋아요. 그럼 갈래요.”그렇게 나는 이 세 사람과 함께 바에 도착했다.세 사람은 아주 비싼 와인 한 병을 주문했다. 이름도 들어본 적 없는 와인이었는데, 한 병에 600만 원이 넘는 건 똑똑히 들었다.백연우가 나에게 와인 한 잔 따라 주었으나 나는 술을 받아 든 채 아까워서 먹을 엄두를 내지 못했다.이 작은 한 잔에 몇만 원이라니.너무 사치스러웠다.하지만 세 사람은 마치 물 마시듯 마시며 가격에 신경 쓰지 않았다.“수호 씨, 마셔요.”백연우가 재촉했다.나는 결국 한 모금 살짝 음미했다.이건 내가 처음 마시는 와인이다. 때문에 아는 게 없는지라 뭐가 특별한지는 음미를 해봐도 알 수 없었다.결국 “맛있네요.”라는 말로 대충 감상평을 낼 수밖에 없었다.백연우는 내 말이 재밌는지 피식 웃었다.“앞으로 그런 말은 우리 앞에서만 하고 다른 사람 앞에서 하지 마요.”나는 어리둥절해서 무의식적으로 물었다.“왜요?”“유미야, 네가 좀 알려줘라.”그러자 유미 사모님
“우리 넷은 다 여자라서 서로 몸 다 봤어요.”백연우는 말하면서 웨이터에게 카드를 가져오라고 부탁했다.게임 룰은 간단했다.카드 게임을 해서 지는 사람이 옷을 벗는 것.나는 카드 게임에 자신 있기에 세 명이 모두 나를 속이는 건 쉽지 않을 거라고 자신했다.하지만 게임이 시작되니 내가 너무 간단하게 생각했다는 걸 깨달았다. 백연우는 정말 고수 중의 고수라 첫 게임부터 나를 몰아붙여 결국엔 내가 졌다.그리고 게임 룰대로 나는 외투를 벗었다.“오호, 가슴 근육도 있었네?”백연우의 뜨거운 눈빛에 나는 왠지 쑥스러웠다.상대가 내가 다니던 학교 학과장이어싸는 걸 생각하면 부끄러웠으니까.하지만 나는 이대로 포기할 수 없었다.“계속 해요. 첫판은 내가 상대를 얕잡아 봤어요. 이번 판은 무조건 이길 거예요.”나는 게임에 이미 완전히 빠져버렸다.내가 카드 게임을 얼마나 잘하는데, 여자 셋한테 졌다는 게 너무 쪽팔렸다.그렇게 두 번째 게임이 시작되었다.이번에도 백연우가 역시나 날아다니고 있었다.이 정도면 백연우의 금손이 부럽기까지 했다.어떻게 두 번 모두 그렇게 좋은 패를 가질 수 있는지.두 번째 게임까지 질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나는 완전히 풀이 죽었다.하지만 게임 룰대로 러닝셔츠를 벗었다.러닝셔츠까지 벗으니 내 상체는 완전히 발가벗겨졌다.백연우는 예쁜 눈을 크게 뜨더니 참지 못하고 내 가슴을 손으로 만졌다.“어머, 가슴 근육이 이렇게 발달했어요? 촉감 장난 아니네.”백연우는 내 마음은 조금도 고려하지 않고 부드러운 손가락으로 내 가슴을 쓸었다.하지만 혈기 왕성한 남자가 이런 터치를 견딜 수 있을 리가 없었다.갑자기 아랫도리가 괴로워, 나는 백연우의 손을 쳐냈다.“이러지 마세요. 저 정상적인 남자예요.”“그렇게 말하면 내가 이상해지잖아요. 저 둘한테 물어봐요. 내가 이상하냐고.”‘이게 이상한 게 아니면 뭐지? 정상적인 사고라면 이렇게 야릇하게 만질 리 없잖아.’왠지 소여정 친구라 그런지 소여정과 똑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아
‘설마 이미 내 상태 눈치채고 일부러 나 창피하게 하려고 저러나?’나는 윤지은을 의심할 이유가 충분했다.그도 그럴 게, 윤지은이 마침 내 왼쪽에 앉아 몸만 조금 돌리면 볼 수 있었으니까.나를 언제나 잡아먹지 못해 안달난 것처럼 행동하는 윤지은이라면 나를 망신 줄 기회를 절대 놓칠 리 없다.나는 얼른 윤지은에게 애원하는 눈빛을 보내며 이러지 말라고 사인을 보냈다.하지만 윤지은은 아예 보는 체도 하지 않았다.“졌으면 룰에 따라야죠. 설마 이정도도 못 하겠어요? 그러면서 게임하자고 한 거예요?”‘아주 독사가 따로 없네.’나는 윤지은이 존경스러울 정도였다.나도 순간 화가 나서 사람들 보는 앞에서 바지를 벗었다.그때 백연우가 내 아랫도리를 보며 놀란 듯 입을 막았다.“헉! 아주 화가 많이 났네!”유미 사모님은 부끄러운 듯 다급히 얼굴을 돌렸다.“젊어서 그런가 참 좋네.”내 착각일지는 모르겠으나 백연우가 나를 보는 눈빛은 매우 열렬했다. 마치 불꽃이 튀어 오르는 것처럼.나는 윤지은과 끝까지 싸우려는 마음이었기에 내 상태도 상관하지 않고 다시 의자에 앉아 화가 난 듯 윤지은을 바라봤다.“됐죠? 벗었어요. 이제 팬티 한 장 남았어요. 할 수 있다면 이것까지 벗기던가요.”윤지은의 눈빛에 의기양양한 빛이 번뜩이더니 덤덤하게 말했다.“실력도 안 되는 풋내기 상대하는 건 일도 아니지. 계속해.”네 번째 게임이 시작됐다.이번에 하느님이 마침내 내 편을 들어주셨는지, 운이 좋아 세 사람을 모두 이겨버렸다.이번에 진 사람은 윤지은이었다.복수전에 성공한 나는 겨우 활개를 칠 수 있었다.나는 방금 윤지은과 똑같은 눈빛으로 그녀를 보며 말했다.“윤지은 씨, 이번엔 지은 씨가 벗어야겠네요.”윤지은의 낯빛은 매우 어두워졌다. 심지어 눈빛만 보면 나를 아주 잡아먹을 기세였다.윤지은은 원피스를 입었기에 그걸 벗으면 속옷과 팬티만 남게 된다. 때문에 결국 팬티를 벗는 걸 선택했다.검은색 T팬티가 벗겨진 순간 내 아랫도리는 더 흥분했다.이건 방법이 없었
그렇다는 건 이번 판도 윤지은이 졌다는 뜻이다.백연우는 생글생글 웃으며 윤지은을 바라봤다.“이번에는 브래지어야? 아니면 원피스야?”어떤 걸 선택해도 윤지은은 아주 난감한 상황이다.타이트한 원피스라 속옷을 벗는다면 가슴이 적나라하게 드러날 거고.그렇다고 원피스를 벗는다면 아래가 아예 그대로 노출되고 말 것이다.때문에 윤지은이 뭘 선택할지 나도 매우 기대되었다.“아니면 오늘은 여기까지 할까?”그때 유미 사모님이 윤지은을 도왔다.하지만 백연우는 물러서지 않았다.“안돼. 이제 고작 다섯 판밖에 못 했어. 아직 몸풀기야. 윤지은, 설마 계속할 배짱이 없는 건 아니지?”지은은 차갑게 말했다.“누가 그렇대?”결국 윤지은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양팔을 뒤로 가져가더니 속옷을 벗기로 선택했다.속옷이 떨러진 순간 윤지은의 가슴 윤곽이 그대로 우리 앞에 드러났다.나는 갑자기 목이 타고 온몸의 피가 위로 솟구쳤다.백연구는 마치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 나를 빤히 쳐다봤다.역시나 내 아랫도리는 또 크기를 키웠다.백연우는 그걸 보더니 몸을 배배 꼬았다. 그와 동시에 한 곳이 괴로워 났다.나는 그걸 몰랐다.다만 숨결을 가쁘게 몰아쉬며 자꾸만 윤지은의 가슴을 흘끗거렸다.윤지은도 방금 전 나처럼 열이 올랐는지 게임을 진행했다.“자, 계속해. 내가 다음 판까지 지지는 않을 거야.”백연우는 나를 보며 눈웃음을 쳤다.“그래, 계속해 보지 뭐, 누가 지게 될지.”또 새로운 판이 시작되었다.이번에는 백연우에게 운이 따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단 한 치의 고민도 없이 치마를 벗었다.그 치마 아래의 모습은 그야말로 섹시했다.튜브톱에 끈 스타킹.학과장 쌤이 사적으로 이렇게 화끈한 복장을 입고 다닐 줄은 몰랐다.가뜩이나 괴로웠는데, 이런 복장을 보니 나는 더 괴로웠다.이대로 있다간 터질 것만 같아 나는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저, 저는 이만할게요.”나는 황급히 땅에 떨어진 옷을 주웠다.그때 백연우가 내 손목을 덥석 잡았다.“이제 와서 그만하
새로운 판이 또 시작되었다.우리 셋은 유미 사모님을 지게 할 작정으로 덤벼들었다. 그래야 옷을 벗길 수 있었으니까. 그렇지 않으면 도저히 마음이 편해지지 않을 것 같았다.하지만 하늘은 역시나 우리 편이 아니었다. 유미 사모님은 이번 판 운이 몰빵됐는지 또 이겨버렸다.그리고 꼴등은 백연우였다.치마를 벗는 바람에 속옷과 팬티만 입고 있는 백연우는 어느 것 하나 벗든 은밀한 부위가 드러날 수밖에 없었다.나는 그걸 견딜 수 없어 백연우가 말하기도 전에 다급히 일어났다.“저 정말 그만할래요. 셋이서 해요.”말을 마친 나는 옷을 가지고 도망치듯 달렸다.이곳에 더 있다간 내가 죽을 것 같았으니까.나는 방에 돌아가 해결할 생각이었다.하지만...돌아가는 길에 나는 또 길을 잃었다.그 순간 느낀 건 호텔이 너무 호화롭고 사치스러웠고 좋지 않다는 거였다.돌던 곳을 계속 돌다 보니 머리가 어지러웠다. 하지만 끝내 내 방은 찾지 못했다.결국 나는 마지못해 프런트에 도움을 청했다.“저기요, 제 방이 819호인데 어떻게 가야 하죠?”“고객님, 여긴 6층입니다. 우선 엘리베이터를 타고 8층에 가시고 왼쪽으로 돌면...”‘젠장, 온종일 돌았는데 층수마저 틀렸다니.’나는 내 어이없는 실수에 할 말을 잃었다.직원이 안내했던 대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8층에 도착한 뒤 한번 빙 돌았더니 겨우 익숙한 번호를 발견했다.808호실.이건 소여정네 방이었다.이 방을 찾았다는 건 내 방도 멀지 않았다는 뜻이었다.하지만 나는 갑자기 내 방으로 돌아가기 싫어졌다.808호실 카드키도 마침 내 손에 있겠다, 이 방으로 들어가고 싶었다.방에는 유미 사모님과 백연우의 물건이 있을 거다. 아마 둘의 속옷도 있을 거고.백연우와 윤지은의 몸매를 봐서 그런지 나는 저도 모르게 두 사람의 속옷으로 해결하고 싶었다.한참 동안 고민한 끝에 나는 결국 808호실 카드키를 꺼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나는 빨리 해결하면서 절대 두 사람의 속옷을 더럽히지 말자고 속으로 다짐했다.나는
나는 모든 전략을 세우고 아무렇지 않게 문 쪽으로 걸어갔다.그리고 얼마 뒤, 문이 밖에서 벌컥 열렸다. 하지만 내 앞에 나타난 사람은 백연우 한 사람뿐이었다.나는 먼저 불었다.“연우 씨도 어떻게 카드키가 있어요?”“내 방인데, 당연히 카드키가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수호 씨 손에 있는 게 예비용이에요.”백연우는 말을 마치고는 팔짱을 낀 채 나를 빤히 바라봤다.“오히려 내가 묻고 싶네요, 우리 방에서 뭐 했어요?”다행히 미리 작전을 짰기에 나는 침착함을 유지했다.“방 잘못 들었어요. 마침 돌아가려고 하던 참이었어요. 예비용 카드 두장 모두 연우 씨한테 맡길게요.”말을 마친 나는 검은 카드를 백연우에게 건넸다.하지만 백연우는 카드를 받지 않고 나를 뚫어지게 바라봤다.“왠지 우리 방에서 나쁜 짓 한 것 같지?’나는 순간 가슴이 콩닥거려 불안했다.“아니거든요? 사람을 뭐로 보고.”나는 가슴이 찔려 다급히 설명했다.그러자 백연우가 내 그곳을 바라봤다.“그럼 그건 왜 가라앉았는데요?”‘젠장, 설마 이렇게 들킨다고?’나는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며 대답했다.“세 사람을 안 보니까 가라앉은 거죠. 저, 이제 갈게요.”백연우는 갑자기 내 앞에 막아서며 거리를 좁혀왔다.이 거리에서 백연우의 향수 냄새를 맡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숨결과 심장 소리까지 느껴졌다.심지어 풍만한 가슴이 내 상체에 딱 달라붙어 이제 방금 진정한 가슴이 또다시 쿵쾅거리기 시작했다.“저, 저기요. 지, 지금 뭐 하는 거죠?”나는 당황한 나머지 말까지 더듬었다.그때 백연우가 내 몸에 코를 대고 킁킁거리더니 갑자기 매혹적인 미소를 지었다.“솔직히 말해요. 우리 방에 몰래 들어와 나쁜 짓 했죠?”“아니거든요!”나는 끝까지 부인했다.“그럼 검사해도 되죠?”백연우는 내 몸을 마구 더듬기 시작했다.그 순간 나는 너무 두려웠다.호주머니 속에 감추었던 종이 뭉치가 발각될까 봐.하지만 역시나 두려워하는 일은 그대로 닥치고 말았다. 백연우는 내 호주머니에 있는 종이를
나는 내가 더 이상 학생이 아니라서 눈앞의 여자를 무서워할 필요가 없다는 걸 잊고 말았다.이게 바로 백연우의 무서운 점이다. 카리스마와 엄숙함이 몸에 배어 있어 상대에게 두려움을 주는 게.“죄송해요. 잘못했어요.”나는 결국 잘못을 인정했다.그러자 백연우의 눈빛이 요염하게 변하더니 눈웃음을 치며 나를 바라봤다.“오호? 뭘 잘못했어? 말해 봐.”나는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아, 아까 너무 괴로워서 방에 몰래 들어와 선생님 속옷으로...”나는 말하면서 고개를 점점 숙였다. 당장 쥐구멍에 들어가고 싶었다.그때 백연우가 나에게로 한 발짝 더 다가와 나와 바싹 붙었다.“어려서 혈기 왕성하고, 필요할 때 풀고 싶다는 건 나도 인정해. 그렇다면 하나만 물을 게, 내 속옷 예뻤어?”나는 흠칫 놀랐다. 이 여자가 왜 계속 물어보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래도 솔직히 고개를 끄덕였다.“네, 예뻤어요.”“내 몸매보다 더?”“네?”나는 눈을 들어 여자를 바라보며 어리둥절했다.“말해, 내 몸 보고 싶어?”‘무슨 뜻이지?’‘지금 나를 꼬시는 건가?’‘설마.’학과장 선생은 엄숙함과 엄격함의 대명사 아닌가? 그런데 그런 일을 할 리가.나는 도저히 이 광경을 믿을 수 없었다.“말해 봐, 꼬맹아.”백연우는 말하면서 백옥 같은 손가락으로 내 가슴을 쓸며 나에게 뜨거운 눈빛을 보냈다.이런 눈빛은 너무나도 익숙했다.남주 누나가 나를 원할 때마다 이런 눈빛을 보냈으니까.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여자가 나를 마음에 들어 할 줄은 몰랐으니까.‘내가 조금만 더 용기 내면, 이대로 좋은 시간 보낼 수 있지 않을까?’백연우의 신분을 생각할수록 나는 설레기만 했다.내 눈앞에 있는 여자는 모든 학생이 두려워하는 학과장이다.그런데 내가 이런 여자를 정복한다면, 그 성취감은 무척 날 거다.나는 흥분되면서도 기장해 목석처럼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백연우의 손은 어느새 내 옷 안을 파고들어 내 가슴 주위를 살살 긁어댔다.“말해 봐, 보고 싶어?”나는 목이
나는 미간을 찌푸린 채 주해진을 바라봤다.“왜 이렇게 쉽게 돈을 주는 거지?”주해진이 오늘 이 사달을 벌이느라 분명 적지 않은 돈을 썼을 텐데, 나한테 2천만 원 가까이 되는 돈까지 배상하니 또 무슨 꿍꿍이가 있는 건 아닌지 심히 의심됐다.“이 전에는 이대로 넘어가는 게 도저히 용납이 안 댔는데, 두 사람 실력을 보니 승복했거든. 두 사람 말대로 나도 젊을 때는 이 바닥에서 몇 년을 굴렀는데, 한 번도 두 사람처럼 죽기 살기로 싸우는 사람을 못 봤거든.”사실 주해진은 말을 아꼈다. 그가 가장 두려운 건 우리의 믿기지 않는 전투력이 아니라 궁지에 몰렸으면서 상황을 역전한 거였다. 그거야말로 가장 두려운 거였으니까.주해진은 우리를 맹수라고 느꼈다. 그것도 싸울수록 더 미쳐 날뛰는 맹수. 심지어 궁지로 몰아넣으면 넣을수록 우리는 오히려 피에 굶주린 모습을 드러냈다.주해진은 제 체면을 회복하고 싶어 그동안 승복하지 않은 거였는데, 우리가 절대 건드리면 안 되는 존재라는 걸 알았으니 더 이상 저항할 필요가 없었다. 어쨌든 그는 이미 손을 씻었고, 이제는 그저 장사를 하며 지내기에 어렵게 얻은 걸 망치고 싶지 않았다.나는 여전히 반신반의했지만 민우는 나더러 먼저 돈을 받으라고 계속 눈을 깜박거렸다.나도 민우의 뜻을 알고 있었다. 이걸 나중에 우리의 사업 자금에 보태자는 뜻이었다. 1800만 원이나 되는 돈을 보니 나도 확실히 마음이 동해 결국은 말없이 받았다. 주해진은 김진호와 안명훈더러 우리에게 사과하게 했고, 두 사람은 찍소리 못하고 순순히 사과했다.떠나갈 때 주해진은 제 차를 나에게 주면서 몰고 가라고 했다.그 순간 나는 오히려 경계심이 곤두섰다.“돈도 배상했으면서 차는 왜 주는 거야? 설마 또 해코지하려고?”주해진은 호탕하게 웃었다.“경계심 너무 많은 거 아니야? 그냥 친구 삼고 싶어서 주는 거야.”“그런데 난 그쪽이랑 친구하기 싫은데.”나는 고민도 없이 거절했다.주해진은 여전히 너털웃음을 터뜨렸다.“너무 빡빡하게 굴지 말고. 친
김진호는 속이 좁고 질투심이 강하지만 실력은 별로 없다. 특히 일이 터지면 항상 겁을 먹고 뒤로 물러난다.그런데 주해진이 자기를 내밀자 안명훈보다 더 겁을 먹었다.“싫어요... 안 돼요... 해진 형, 저 자식 차를 망가뜨리라고 한 건 형이잖아요. 저더러 형 대신 뒤집어쓰게 하면 안 되죠.”이 지경이 되었는데도 김진호는 제가 한 짓에 책임지지 못하고 주해진의 체면을 바닥에 짓밟았다.주해진은 너무 쪽팔려서 김진호의 뺨을 내리치면서 버럭 소리쳤다.“사과하라면 해. 어디서 말이 그렇게 많아? 젠장. 내가 널 돕지 않았다면 수호 동생한테 미움 살 일이 있었겠어?”한창 화를 내고 있던 나는 그 말에 순간 멍해졌다.‘수호 동생? 지금 나를 말하나?’‘젠장, 내가 언제 제 동생이 됐다는 거야?’“어디서 친한 척이야? 너희 셋 다 내려와.”나는 차를 또다시 쾅쾅 내리쳤다.민우 역시 차 위에서 나를 협조해 주었다.승합차가 우리 때문에 완전히 뒤집힐 지경이 되자 주해진은 우리와 연맹을 맺으려는 듯 은근슬쩍 나를 회유했다.“수호 동생, 그만해. 내려갈게. 우리 사이에는 원한이 없잖아. 수호 동생이랑 원한 있는 건 김진호잖아. 그리고 안명훈 저 자식도 자기 여자 친구더러 동생 친구 꼬시라고 했어. 저 둘 중에 좋은 놈 하나 없어. 내가 지금 바로 이 두 놈 내려 보내겠으니까 마음대로 처리해.”주해진은 말을 마치자마자 정말로 김진호와 안명훈을 끌어내 앞에 내팽개쳤다.내 분노는 사실 김진호와 안명훈 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다. 가장 큰 원인은 내 차가 박살 난 것 때문이다. 그리고 주범은 바로 주해진이다.때문에 나는 화가 잔뜩 나서 주해진을 향해 파이프를 휘둘렀다.“이 자식들 빚은 내가 천천히 받을 거야. 하지만 내 차를 망가뜨린 건 어쩔 건데?”주해진은 고개를 돌려 내 차를 흘긋 보더니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아마도 배상할 수 있는 저렴한 차라 안도한 듯했다.“수호 동생, 저 차는 1600만 정도 하지? 내가 나중에 새 차 하나 뽑아줄게.”주해진이
사실 오늘 안명훈은 이곳에 오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주해진이 기어코 자기 위엄을 보여주겠다고 불러냈다.그런데 주해진의 위엄은 못 보고 오히려 나와 민우의 미친 모습만 보게 된 거다. 그러니 혼비백산이 되지 않을 리가 있나?안명훈은 필사적으로 차 문을 흔들었다.“나 내릴래. 내려줘...”주해진은 안명훈의 뺨을 후려갈기더니 씩씩거리며 욕설을 퍼부었다.“사내자식이 내리긴 어딜 내려? 네가 문을 내리면 저놈들이 올라올 거잖아. 문 열면 안 돼. 얌전히 앉아 있어. 설마 저 자식이 문을 부수겠어?”펑!나는 승합차를 향해 쇠 파이프를 세게 휘둘렀다.그러면서 속으로는 방금 전의 울분을 토해냈다.‘내 자식 같은 새 차, 아직 할부도 안 끝나 얼마나 애지중지했는데. 네놈들 때문에 고물이 됐잖아.’나는 승합차를 내리치면서 욕설을 퍼부었다.“나와. 차 안에 숨어 있는 게 겁쟁이랑 뭐가 달라?”차 안 세 사람 눈에 나는 충혈되어 시뻘게진 눈을 가진 분노한 맹수나 다름없었을 거다.안명훈은 완전히 겁을 먹어 나한테 끊임없이 간청했다.“오늘 밤 일은 나랑 상관없어... 제발 살려줘. 제발...”주해진도 솔직히 속으로는 무서웠지만 안명훈이 저 하나 살려고 자신을 배신한 걸 보자 화가 나서 그를 발로 차버렸다.안명훈은 그 힘에 못 이겨 옆으로 벌러덩 굴러 넘어졌다.그때, 마침 유리창을 깨뜨린 나는 쇠 파이프로 주해진을 가리키며 소리쳤다.“셋 셀게, 당장 내려. 안 그러면 죽이는 수가 있어.”주해진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였다.“그럴 필요까지 있어? 내가 사람을 불러 모으긴 했지만 무기는 안 들었잖아. 게다가 저놈들은 겁을 먹고 이미 도망쳤어. 너희 둘도 크게 다치지 않았으먼서 꼭 미친 짐승처럼 나를 그렇게 끝까지 물고 늘어져야겠어?”나는 이를 악물었다.“난 짐승처럼 네 놈을 물고 늘어지는 거로 안 끝나. 아주 뼈도 안 남기고 씹어 먹을 거야. 내가 얼마나 어렵게 산 차인데, 평소 아까워서 조심조심 다뤘는데, 네 놈 때문에 폐차하게 생겼잖아. 내 차 물어
나는 여전히 손에 든 쇠 파이프를 필사적으로 휘둘렀다. 분명 이길 수 없다는 걸 알았지만 그렇다고 기죽을 수도 없었다.민우가 말한 적이 있는데, 싸울 때 가장 무서운 건 싸우기 전부터 겁을 먹는 것이라고 했다.하지만 한참 싸우다 보니 나는 점점 힘에 부쳤다. 놈들 인원수가 너무 많아 도저히 상대가 되지 않았다.그렇다고 이대로 쓰러질 수는 없었다.인체에는 자극을 받으면 잠재력을 자극하는 혈 자리가 있는데, 그 혈 자리가 자극을 받으면 잠재력이 폭발했다가 나중에 한동안은 몸이 나른해진다.하지만 이 상화에서 다른 걸 신경 쓸 겨를이 없었기에 나는 고민 없이 혈 자리를 눌렀다. 그 순간 온몸에 힘이 솟아나면서 내가 마치 거인이 된 느낌이었다.“야! 다 죽었어!”나는 고함을 지르는 동시에 쇠 파이프를 휘두르면서 달려갔다.나를 에워싸고 있던 놈들은 내가 더 이상 전투력이 없다는 걸 보고 모두 긴장을 푼 상태였다. 하지만 나는 갑자기 미친 것처럼 놈들의 코뼈를 하나씩 부러뜨렸다. 심지어 손이 무척 매웠다.나는 피가 들끓어 끊임없는 힘이 솟구치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매번 파이프를 휘두를 때마다 젖 먹던 힘까지 짜냈다.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는데도 무섭지 않았다. 오히려 나도 한방에 놈들 뼈를 부러뜨릴 수 있다는 것에 흥분됐다.‘만약 동준 형님이 이 모습을 본다면 나에게 재능이 있다고 여기지 않을까?’싸울수록 피가 끓고 힘이 솟아났다. 놈들은 심지어 나를 보자 연신 뒷걸음쳤다.옆에 있던 민우마저 나를 보면서 가쁜 숨을 몰아 쉬며 물었다.“수호야, 너 대체 어떻게 한 거야? 난 지금 힘들어 죽겠는데...”나는 혈 자리를 가리켰다.그러자 민우는 바로 눈치챘다.민우 역시 의학을 전공한 지라 말하지 않아도 바로 알 수 있었다. 곧이어 민우 역시 스스로 한 대 치더니 갑자기 피가 솟구치는 것처럼 흥분했다.“하하하, 나도 다시 회복했어. 너희들 죽었어.”우리는 서로 협조하면서 놈들한테 달려가 퍽퍽, 주먹을 날렸다.우리를 끝장내버리겠다고 큰소리치던 놈
전에는 누가 와서 소란을 피울까 봐 민우더러 나와 함께 가게에서 지내자고 했지만, 지금 사장님 댁에 머물고 있는데 민우까지 데려올 수는 없었다. 때문에 뭐든 나 혼자 해결해야 했다.민우를 집에 데려다 두는 길에 그는 나에게 함께 사장님 댁에 있어 달라냐며 물었다. 그러면 서로 보살필 사람이 있다면서.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나도 그걸 생각해 보지 않은 적 없어. 하지만 사장님을 돌보려고 그 집에서 지내고 있는데 너까지 데려가면 이상하잖아.”“난 그 개자식들이 또 너한테 무슨 짓 할까 봐 그러지.”“나도 무서워. 하지만 이미 준비해 뒀어.”나는 의자 밑에서 도구 몇 개를 꺼냈다.민우는 그 도구들을 손에 들고 무게를 가늠해 보더니 말했다.“이 도구들은 조금 도움이 될 뿐이야. 그래도 내가 너한테 가르쳐준 방법을 사용해.”민우는 말하면서 손을 움켜쥐는 동작을 했다.그 동작에 나는 풉, 하고 웃음이 터져 버렸다.“그 방법 확실히 좋더라...”우리가 한창 얘기하고 있을 때 백미러에 언뜻거리는 차 한 대가 비쳤다.무의식적으로 뒤에 따라붙은 사람이 운전할 줄 모른다며 투덜거리던 나는 갑자기 이상한 낌새를 챘다. 그도 그럴 게, 뒤에서 달려오는 차는 속도가 아주 빨랐는데 마치 나를 강제로 세울 것처럼 굴었으니까.“잘 앉아.”나는 불안한 예감에 다급히 액셀을 밟아 속도를 냈다.다만 내 차의 유일한 단점은 속도를 너무 빨리 낼 수 없다는 거다.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뒤 차에 따라잡혔다.놈들은 내 차를 강제로 멈추게 할 작정인 듯했다. 하지만 나는 멈추고 싶지 않았다. 상대방 차량은 승합차였는데, 그런 승합차는 용량이 커 적어도 열댓 명을 태울 수 있었다.만약 차에서 열 몇 명이 우르르 내리면 나와 민우 둘이 대처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때문에 나는 액셀을 밟았다. 하지만 승합차 두 대는 좌우에서 협공하며 내 차를 가운데 몰아 끼긱끼긱, 하며 긁히는 소리가 났다. 분명 차가 내는 소리였지만 내 살점이 뜯겨나가는 기분이었다.아직 차 할
내가 한창 망설이고 있을 때 사장님도 말을 보탰다.“수호 씨, 남아서 좀 도와줘. 우리 마누라가 요즘 너무 힘들어서 그래. 어릴 때부터 금지옥엽으로 자라나 이런 고생 언제 해 봤겠어? 이것 봐, 피곤해하는 거 보이지? 나도 솔직히 마음 아파.”사장님과 사모님이 모두 나를 남으라고 설득하는 상황이라 나도 더 이상 거절하기 곤란했다.“그래요. 제가 남아서 도와드릴게요.”사장님이 드시고 사용해야 하는 약이 너무 많아 확실히 번거롭긴 하다. 때문에 나도 사모님 혼자 사장님을 케어하지 못할까 봐 걱정이 됐다.사모님은 내 말에 이내 환한 표정을 지었다.“수호 씨는 아무것도 가져올 필요 없어요. 여기 모두 있으니까. 전처럼 계속 객실에서 자면 돼요. 그곳 채광이 좋고 공기도 좋아요...”사모님은 내가 이곳에서 지내는 데 불편해할까 봐 끊임없이 말을 늘어놓았다.사장님 내외가 사는 집은 모두 고급 가구를 사용했는데, 내가 이곳에 남아 도와주지 않는다면 이런 걸 누려볼 기회가 어디 있을까?사장님 내외는 나한테 너무 잘해줘서 내가 다 미안할 따름이었다.사장님 몸은 우선 한약으로 며칠간 보양해야 하지만 약을 다 먹으면 사실 힐 것도 없어 나는 가게 일을 돌볼 수 있었다.요 며칠간 주해진은 소란 피우러 찾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이대로 포기했다는 건 아니었다. 때문에 나는 동료들한테 주의할 것을 당부했다.한편 주해진은 그날 도망치듯 가게를 떠난 뒤 마음이 계속 안 좋았다.하지만 최근 일손을 구해봤지만 누구도 도와주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그 첫째 이유는 주해진이 깡패라 정계와 연이 닿는 지인이 적었고, 두 번째 이유는 사촌 형이 다시는 화인당을 다시는 건드리지 말라고 했기 때문이었다.주해진은 입으로는 싫다고 했지만 요 며칠간 그래도 제 분수를 지켰다. 다만 김진호 병문안을 간 뒤, 마음이 또 바뀌었다.김진호는 나를 여자 등에 빨대 꽂고 출세한 놈으로 말하면서, 깡패인 주해진이 나 같은 등신 하나 해결하지 못한 게 알려지기라도 하면 얼마나 웃음거리
어르신도 허허 너털웃음을 지었다.“너도 잘했어. 처방한 게 거의 다 맞췄으니까. 새내기 같지가 않아. 네 할아버지한테서 많이 배웠나 보네?”나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그럭저럭요. 그런데 그때는 너무 어려 할아버지의 모든 재능을 배우지 못한 게 아쉬울 따름이에요.”“괜찮아. 앞으로 내가 네 할아버지니까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언제든 나한테 물어봐.”나는 얼른 감사를 표했다.어르신과 약처방을 확인한 뒤, 나는 화인당에 가 이틀 치 약을 짓고 동료들에게 사장님이 퇴원했다는 사실을 말했다.다들 사장님이 다 나은 줄 알고 기뻐하는 눈치였다. 특히 민우는 슬그머니 내 팔을 잡으며 말했다.“사장님이 돌아오면 우리 따로 나가는 거지?”나는 얼른 민우의 말을 잘랐다.“사장님이 돌아와도 이런 말은 급하게 하면 안 돼. 화인당이 안정되고 가게에 일손이 부족하지 않을 때 떠날 수 있어. 우리가 다른 길을 찾아 나서는 건 자신을 더 발전시키기 위해서지만, 화인당에 누를 끼쳐서는 안 되지. 사장님이 우리 둘한테 얼마나 큰 은혜를 베풀었는지는 내가 말 안 해도 알잖아.”민우는 다급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내가 생각이 짧았네. 앞으로 절대 함부로 말 안 할게.”“참, 요즘 태진 선배는 어때? 가게에서 본 적 있어?”나는 가게에 들어오자마자 모태진이 오늘 없다는 걸 발견했다.내 말에 민우가 대답했다.“누가 알겠어? 또 그깟 일 때문에 가게에 피해 갈까 봐 안 나왔겠지. 상관하지 마. 다 큰 어른이 본인 몸 하나 건사 못 하겠어? 수호야, 아직은 따로 나가는 말은 안 할게. 하지만 천수당을 관찰하는 건 괜찮지?”“관찰하는 건 괜찮아. 하지만 함부로 하지 마.”나는 신신당부했다.그러자 민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알겠다는 뜻을 내비쳤다.나는 약을 가진 후 다시 사모님 댁으로 돌아갔다.이 약 일부는 목욕용이고 일부는 마시는 약이라 나는 위애 상세하게 적어 따로 분리했다. 그리고 먹는 약은 모두 달여 진공 포장한 뒤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이렇게 하면 마실 때 데
윤지은은 보기 드물게 이번만큼은 내 편에 섰다.“동의하기 싫어도 동의해야지. 내가 진작 서약이 부작용이 있고 중독성이 커서, 장기적으로 이렇게 치료하면 환자가 오히려 탈탈 털릴 거라고 말했는데. 유미한테는 내가 말할게. 걔네 부모님은 아무튼 B시에 계시잖아? 한동안 돌아올 수 없으니까 당분간 비밀로 하지 뭐.”윤지은이 전에 그렇게 말하지 않았던 건 이 병원에서 근무하는 의사이기 때문이다. 서의학 의사면서 서의학이 안 좋다고 하면 분명 안 좋은 영향이 있을 거다.하지만 친구 남편인 정호섭의 생명이 달린 일이니 더 이상 거리낄 것도 없었다. 무엇보다 친구 임유미가 가장 마음에 걸렸다.만약 정호섭한테 무슨 일이 있으면 임유미는 어떡하라고?나는 사장님을 바라봤다.“그래도 되겠어요?”사장님은 효심이 강한 분이라 장인 장모를 속이는 게 안 좋다고 여겼다. 게다가 두 분이 지금껏 사장님을 길러왔으니.하지만 사장님이 고민하는 동안 윤지은은 이미 사장님 대신 결론을 내렸다.“뭐 그렇게 생각할 게 많아요? 두 분한테 말하면 절대 동의 안 할 거예요. 이 일은 내가 말한 대로 해요. 나도 한의학을 전공했던 사람이라 파악이 없으면 이런 말 안 해요.”나와 사장님 모두 머뭇거렸는데, 윤지은이 이런 태도로 나오니 오히려 감화되었다.나는 윤지은이 진심으로 존경스러웠다. 뭐든 엄격하고 신속하게 하는 모습은 내가 따라 배울 점이었다.윤지은은 나더러 병원에 남아 사장님을 돌보게 하고 본인은 유미 사모님을 모셔 오면서 한의 치료 방법에 대해 말해주겠다고 했다.그사이 나는 사장님이 아침 식사를 드시는 걸 도와드렸지만, 사장님은 입맛이 없다면서 조금밖에 드시지 않았다.요즘 매일 많은 양의 약을 먹어 위장이 망가져 음식을 먹는 것조차 무리였다.이렇게 부작용이 큰 게 바로 서양의학의 가장 큰 단점이다.나도 사장님을 강요하지 않았다.환자가 입맛이 없다는데 억지로 먹게 하면 오히려 위장의 부담을 더해주기 때문이다.나는 따뜻한 물을 받아와 사장님의 얼굴과 몸을 닦아주었다.
어르신은 내가 보인 자신감에 매우 만족해했다. 하지만 주의할 점을 귀띔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침술 하기 전에 모든 서약을 끊고 한동안 몸보신해야 해. 지금 너의 사장님 몸은 너무 나약해서 기혈이 거의 다 사라진 거나 다름없어. 이 상태로 침술 할 수 없어. 이 일은 먼저 환자 가족들과 상의하고 동의를 구한 뒤 진행해.”나는 고개를 끄덕였다.때마침 윤지은이 회진하러 와서 나는 그녀더러 사장님을 잠시 봐달라고 하고는 어르신을 모시고 밖으로 나갔다.“됐어. 데려다 줄 필요 없어. 이 부근에 마친 공원이 있으니 나도 좀 산책하다가 택시 타고 가면 돼. 네 사장님 상황은 서둘러서 가족과 상의해. 더 지체되면 천지신명이 와도 어쩔 수 없어.”어르신의 긴박한 말투에 나는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고마워요, 할아버지.”나는 진심으로 어르신께 감사했다. 90세가 넘는 분이 내 전화 한 통에 아무 이유 없이 도와준 거니까.이 은혜는 꼭 마음에 새길 거다.어르신은 허허 너털웃음을 지었다.“사람을 구하는 게 무엇보다도 중요하지. 이건 나를 위해 덕을 쌓는 거야. 너도 얼른 가 봐. 이 일은 지체하면 안 된다는 거 잊지 말고.”나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어르신이 뒤돌아 떠난 뒤에야 나는 병실로 돌아갔다.다른 사람은 이미 떠나고 윤지은만 병실에 남아 있었다.나는 얼른 윤지은과 사장님께 방금 전 상황을 말씀드렸다.“수호 씨, 한의학 치료법으로 정말 내 병을 완화할 수 있어?”사장님은 나를 조금 믿는 눈치였지만 그래도 한번 확인했다.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진지하게 설명했다.“아까 보신 분이 우리 마을에서 엄청 유명한 명의세요. 젊을 때 저희 할아버지랑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사람들 병을 치료해주셔서 엄청 유명해요. 저도 그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어본 건데 정말 방법이 있다더라고요.”“사장님이 입원한 뒤 몸 상태가 확실히 점점 나빠지셨잖아요. 이 부분은 제가 말하지 않아도 사장님도 느끼셨을 거예요. 서약은 비록 효과는 빠르지만 부작용도 커요. 사장님 몸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