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고 나서 저를 호텔로 데려가 밤새도록 같이 있어 줬어요. 저는 침대에서 자고 모 선생님은 소파에 있었어요. 저희 정말 아무 짓도 안 했어요.”한은솔은 울며 계속 나한테 설명했다.그게 나로서는 와닿지 않아 그저 조용히 지켜보다가 입을 열었다.“태진 선배가 그렇게 좋은 사람인 걸 알면 더 멀리했어야죠. 태진 선배가 은솔 씨보다 나이도 한참 많고 아이도 벌써 초등학생이에요. 은솔 씨가 기분 안 좋다고 막 찾아오고 술 먹었다고 지켜달라고 하면 선배 아내는 어떻겠어요? 아이는 또 어떻겠어요?”나는 이 모든 문제가 한은솔 때문이라고 생각한다.한은솔이 모태진한테 아무 감정도 없다는 건 거짓말이다.우리 가게에 다른 마사지사도 많은데 하필 매번 모태진을 찾아오는 것도 그렇고, 자꾸만 둘이 있으려 하는 것도 그렇고, 문제가 없다는 게 이상하다.하지만 그렇다고 한은솔을 불여우라고 하기에는 또 아니다.한은솔의 외모와 조건으로는 훨씬 더 좋은 남자를 얼마든지 만날 수 있으니까.모태진처럼 나이도 들고 처자식도 있는 사람한테 아직 20대인 젊은 처녀가 가질 목적이 뭘까?물질적인 요구 외에 아마도 정신적인 기탁일 거다.그게 가장 무서운 거다.그래서 내가 제때 막아야 한다.한은솔은 여전히 눈물을 주르륵 흘리고 있었다.솔직히 한은솔의 이런 모습을 보면 조금 짜증이 난다.우는 게 뭔 소용 있다고? 울면 뭐 문제가 해결되나?그때, 모태진이 내 마사지 룸으로 들어왔다.그건 내가 가장 보기 싫었던 장면인데, 역시나 벌어지고 말았다.“은솔 씨, 왜 그래요? 왜 그렇게 울어요?”모태진은 한은솔 앞에만 서면 항상 이렇듯 인내심 있고 다정한 모습만 보여준다.한은솔도 그런 모태진을 보자 단번에 그의 품에 달려가 안겼다.“모 선생님, 죄송해요. 저 정말 일부러 그런 거 아니에요. 흑흑흑...”‘이건 또 뭔 시츄에이션이지?’너무 충격이었다.‘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면서 왜 품에 안기는데?’‘그렇게 우는 건 또 뭐고?’나는 눈을 똑바로 뜬 채 모태진을 바라보며 하
“또 운전기사 노릇이에요? 이번에는 또 어디 가는데요?”솔직히 말하면 썩 내키지 않았다.첫째, 운전도 하고, 물건도 나르는 건 아주 힘든 일이다. 가게에서 고객을 받는 것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둘째, 이토록 아름다운 미녀들과 함께 있는데 보기만 하고 만질 수 없다면 그야말로 지옥이 따로 없다.차라리 아예 접촉하지 않고 가게에서 고객들 마사지나 해주고 오일이나 발라주는 게 더 낫지 않은가?소여정은 내가 썩 내키지 않는 표정을 짓자 살짝 내 허리를 꼬집었다.“가라겸 가. 뭔 말이 그렇게 많아?”그 행동에 나는 흠칫 놀랐다. 어떻게 이렇게 대놓고 티를 낼 수 있는 건지?친구 두 명이 여기 있는데, 나를 막 터치하다니.사장 사모님은 이미 습관이 된 것처럼 아무 반응도 없었지만, 백연우는 우리를 계속 쳐다봤다. 그 눈빛에 등골이 오싹했다.마치 학교 교감쌤이 나를 빤히 쳐다보는 느낌처럼.때문에 나는 백연우의 눈을 쳐다보지 못했다.“저 지금 출근해야 해요. 계속 저를 이렇게 사적으로 불러내면 사장님한테 너무 미안하잖아요.”소여정은 대수롭지 않게 웃었다.“그딴 이유로는 날 설득할 수 없어. 임유미도 괜찮다는데, 수호 씨가 왜 신경 써?”사장 사모님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어깨를 으쓱거렸다.보나 마나 이번 아이디어도 소여정이 낸 게 틀림없다.이 여자는 왜 맨날 나를 괴롭히지 못해 안달인지. 하루라도 안 괴롭히면 마음이 불편한가?“세분과 함께 다니기 싫다는 게 아니라 번거로운 일 찾아서 하기 싫은 것뿐이에요. 그리고 임천호가 아는지 마는지를 떠나서 친구분 윤지은 씨가 저한테 소여정 씨와 멀리하라고 계속 강조했거든요.”소여정은 여전히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다.“윤지은은 지금 없잖아? 수호 씨도 나도 말 안 하면, 예네 둘도 절대 말 안 할 거야. 그럼 윤지은이 알 리도 없고.”“그래도 안 됩니다. 만에 하나 알게 될 수도 있잖아요. 전 스스로 화를 자초하고 싶지 않습니다.”“그런 수호 씨 마음대로 안 되겠는데? 유미야, 네 차례야.”소여정
“용천 빌라. 나 거기서 하루 묵을 거거든.”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다급히 물었다.“그러면 저도 묵어야 하잖아요?”“그렇지. 수호 씨가 안 묵으면 누가 운전해 줘?”소여정은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하지만 나는 싫었다.돌아가지 않으면 애교 누나한테는 어떻게 설명하라고?그리고 형수도 걱정돼 죽겠는데.“그럼 전 갈 수 없어요. 여자 친구가 오해할 거예요.”나는 차에서 내리며 진지하게 해명했다.그러자 소여정이 나에게 현금다발을 꺼냈다.“여자 친구한테 오늘 다른 일이 있어서 못 들어간다고 해.”“이건 돈 문제가 아니에요. 전 단 한 번도 외박한 적 없어요.”소여정은 또 현금다발을 꺼냈다.“하룻밤에 200만도 벌고 부자 체험도 해볼 수 있는데 설레지 않아?”소여정 손에 든 현금을 보고 설레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다.게다가 전에 용천 펜션에 대해 들은 바가 있는데, 강북에서 가장 유명한 펜션이다.펜션 안 인테리어는 별장급이고, 개인 수영장도 딸린 데다 파티장, 온천 등이 있다.내 돈을 내지 않고 이런 걸 체험할 수 있다면 당연히 가고 싶었다.“좋아요, 그럼 우선 여자 친구한테 전화해 볼게요.”나는 소여정이 건네는 돈을 받고 구석진 곳으로 와 애교 누나한테 전화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누나, 걱정하지 마요. 절대 몸 함부로 굴리지 않아요. 도착하면 영상통화 할게요.”애교 누나가 오해할까 봐 나는 일부러 설명을 덧붙였다.하지만 누나는 별다른 오해를 하지 않고 예전처럼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수호 씨, 가고 싶으면 가요. 나한테 보고할 필요 없어요. 우리 아직 정식으로 사귀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러니 수호 씨는 아직 자유예요. 앞으로 하고 싶은 건 회보할 필요 없이 뭐든 해요.”“애교 누나가 저를 믿는 건 누나 일이고, 누나한테 회보하고 싶은 건 내 일이잖아요.”나는 강력하게 어필했다.이건 내가 진심으로 애교 누나와 결혼하고 싶다는 걸 알게 하기 위해서다.애교 누나는 내 말에 피식 웃었다.“그래요. 그 회보 받을게요. 오늘 저
이곳은 건물이 웅장하고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서비스도 최고였다.문에 들어선 순간부터 안내원이 따라붙었다.소여정은 미리 핸드폰으로 예약을 마친 상태였다. 그것도 최고 VIP들만 누릴 수 있는 서비스로.때문에 접대할 때부터 펜션 측은 우리에게 과일과 와인을 준비해 주었다.심지어 일부 과일은 이름도 모르는 것들이었다.그 순간, 내가 한없이 초라해졌다. 보고들은 게 너무 없었으니까.여자 세 명이 안내원과 대화를 주고받을 때 나는 참지 못하고 테이블 위에 놓인 와인과 과일을 사진 찍었다.다른 뜻은 아니고 그저 기념용이었다.나도 이런 건 본 적 있는 사람이구나 하는 기념.게다가 용천 펜션 로비를 배경으로 셀카도 찍었다.우장하고 넓고 화려한 호텔에 들어오니 내가 마치 황궁에 있는 느낌이 들었다.역시나 이래서 다들 부자가 되려고 하는구나 실감했다.돈 많은 사람들은 정말 최고의 삶을 누릴 수 있으니까.세 명은 바로 모든 수속을 마쳤다.나는 그 사이 얼른 핸드폰을 거두었다. 세 사람에게 내가 몰래 사진을 찍었다는 걸 들키기 싫었으니까.세 사람이 내 모습을 발견했다면 분명 촌놈이라고 여길 테니까.그때 백연우가 내 그런 모습을 봤는지 한쪽 입꼬리를 비쭉 올리며 비웃는 듯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때 소여정이 허리를 살짝씩 움직이며 나에게로 걸어왔다.“이제 수속은 마쳤으니 수호 씨는 가서 우리 짐 가져와.”“이건 우리 세 명 거, 이건 수호 씨 거.”소여정은 나에게 색깔이 다른 카드키 두장을 건넸다.세 명의 것은 새까만 색이라 보기에도 귀티 나고 심플했지만, 내 것은 초록색이라 그다지 높지 않은 등급 같았다.딱 봐도 세 명의 방과 내 방은 달랐다.하지만 별것도 아니었다. 나는 운전기사로 온 것이니, 무료로 이곳에서 노는 것만 해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그런데 여기서 뭘 더 바라겠는가?나는 세 사람의 짐을 들고 로비를 막연하게 바라봤다.‘젠장, 어디로 가야지?’나는 이곳에 온 적이 없었기에 객실을 가려면 어디로 가
내가 어지러워 쓰러지려던 그때, 다행히 친절한 청소부 누님이 나에게 방향을 안내했다.방문을 열고 들어가 세 사람의 짐을 하나둘 차곡차곡 놓은 나는 참지 못하고 주위를 빙 돌아다녔다.이곳은 아주 커다란 로열스위트 룸이었다.방마다 개인용 화장실이 딸려 있었고, 욕조도 있었으며 창밖에 호수가 절경을 이루고 있었다.그야말로 환경이 너무 좋아 나는 또 사진 몇 장을 더 찍었다.내가 한평생 이런 곳에 올 기회가 얼마나 될까?나는 베란다도 한번 기웃거렸다.베란다는 쉴 수 있는 공간과 다과를 즐기는 공간도 있었다. 게다가 방안에 각종 신선한 과일과 와인이 구비되어 있었다.그 순간 나는 저도 모르게 내 손에 쥐고 있던 초록색 카드키를 바라봤다. ‘내 방은 어떻지?’당장 가보고 싶었다.내 방 번호는 819라서 세 사람과 같은 층에 있지만 방향이 정반대였다.이번에는 노하우도 있었기에 단번에 내 방을 찾았다.바로 카드키를 긁고 안으로 들어갔다.놀랍게도 내 방도 꽤 컸다.물론 로열 스위트룸처럼 화려하지 않은데 보통 호텔보다는 훨씬 좋았다.심지어 안에는 여러 가지 와인과 신선한 과일 그리고 욕조가 준비되어 있었다. 다만 발코니가 조금 작았다.하지만 나한테는 이미 너무 큰 기쁨이었다.나는 내 방에 대고 찰칵찰칵 몇십 장의 사진을 찍어 몇 장은 애교 누나에게 보냈다.[애교 누나, 도착했어요. 이게 제 방이에요. 앞으로 기회 되면 누나도 데리고 올게요.]애교 누나는 나에게 짤막한 답변을 해 왔다.[제대로 즐겨요.]나른한 침대에 누운 나의 기분은 전례 없이 설렜다.내가 살아생전 이토록 화려한 호텔에 묵을 줄이야. 잠시 누워있다가 나는 소여정에게 문자를 보냈다.[물건은 이미 방에 넣어뒀어요. 그다음에 저는 뭘 하면 되죠?]소여정이 나에게 200만 원이나 주고, 여기에서 무료로 놀게 해줬으니, 나는 당연히 세 사람을 제대로 보살펴야 한다.얼마 지나지 않아 소여정의 답장을 받았다.[이젠 수호 씨가 할 일은 없어. 하고 싶은 대로 해.]‘이제 내
어머니는 참 좋은 사람이다. 어릴 때부터 나를 무척이나 아꼈다.내 말에 어머니는 당연히 아주 기뻐하셨다.[우리 아들 능력자네. 엄마는 참 기뻐.]“엄마, 제가 나중에 돈 많이 벌면 어머니랑 아버지 꼭 강북에 데려와 부자의 생활을 누리게 해줄게요.”[나랑 니 아버지는 됐다. 네 그 효심만 있으면 만족한다. 우리 같은 촌구석 양반들은 그런 곳에 가도 편히 못 있는다. 수호야, 너만 잘 지내면 나랑 네 아버지는 만족한다.]아버지와 어머니는 모두 성실하고 평범한 농부이며, 농부의 순박하고 진솔한 마음씨를 갖고 있다.한참 수다를 떨다가 대화 주제는 결국 나에게로 왔다.[수호야, 너도 일만 넘 신경 쓰지 말고, 시간 나면 여자 친구도 좀 만들고 그래. 나랑 네 아버지가 지금은 아직 젊으니 내도 봐줄 수 있잖아...]시골 사람들은 결혼을 일찍 한다, 때문에 어머니가 이리도 나를 재촉하는 건 이해할 수 있었다.나는 애교 누나의 일을 어머니께 말씀드릴지 말지 한참 고민하다가 결국 말하기로 했다.애교 누나와 결혼하기로 결심했기도 했으니, 일찍 말하든 늦게 말하든 똑같았으니까.“엄마, 사실 저 여자 친구 있어요.”어머니는 그 말에 무척 좋아하셨다.[정말이야? 너무 잘됐네. 어떤 여자야? 몇 살이고?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데?]나는 어머니를 속일 생각이 없었기에 솔직히 대답했다.“제 여자 친구가 저보다 나이 좀 많아요. 이혼도 한 번 했고요. 하지만 사람은 엄청 좋아요. 저도 정말 그 사람과 결혼하고 싶고요.”[이혼했었다고? 뭐 별거 아니다. 지금 시대가 어느 때인데, 다 오픈 마인드잖아. 두 사람만 좋으면 우리는 의견 없다. 시간 날 때 여자 친구 데려와 봐. 우리도 좀 보게.]역시 어머니가 이런 일로 나를 나무라지 않을 줄 알았다.나는 너무 기뻤다.“그래요. 며칠 뒤 마침 휴가인데, 그때 데려갈게요.”우리 부모님은 비록 시골 토박이지만 모두 깨어 있는 분들이시고, 나에 대한 태도도 느슨하신 분들이다.어머니와 한참 얘기를 하다 보니 기분이 좋
“혼인 관계를 유지하려고 그런 쓰레기와 평생 같이 살 수는 없잖아요.”애교 누나는 미간을 좁혔다.[수호 씨는 우리 가족 몰라요. 특히 우리 아버지는 체면을 엄청 중요시하는 분이거든요. 이혼한 게 아버지 얼굴에 먹칠했다고 생각해 앞으로 딸로도 받아주지 않을까 봐 걱정이에요.]“절대 그러지 않을 거예요. 정 안 되면 시간 날 때 제가 같이 가서 대신 말해줄게요.”나는 진지하게 대답했다.그 말에 애교 누나는 끝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무섭지 않아요? 나보다 나이도 훨씬 어려 우리 부모님이 허락하지 않을 수도 있는데요.]난 이제 막 사회에 나온 새파랗게 어른 청년이다. 때문에 세상에 아직 두려울 게 없다.나는 오히려 남자다운 모습을 보여주듯 가슴팍을 퍽퍽 치며 말했다.“모든 건 저한테 맡겨요. 제가 누나 부모님 설득할게요.”[좋아요, 그럼 언제 시간 괜찮은지 말해줘요. 생각해 볼게요.]애교 누나는 결국 동의했다.그때, 소여정의 전화가 걸려 왔다.나는 누나에게 얼른 설명하고 통화를 끊고는 소여정의 전화를 받았다.“소여정 씨, 무슨 일이에요?”나는 항시 내 신분을 명심하고 있었다.그때 소여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온천으로 와. 나 어깨가 아프니 와서 좀 주물러 줘.”“온천이 어디 있는데요?”[위치 보내줄게.]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소여정이 보낸 위치를 확인했다.그걸 받아 보니 이곳이 참 넓다는 걸 다시 한번 느꼈다. 사람 찾는 것도 위치 정보를 공유해야 할 정도라니.하지만 위치 정보 덕분에 사람 찾는 건 매우 수월했다.그때 소여정의 문자가 또 도착했다. 이번에는 세 사람이 먹을 아이스크림을 사오라는 문자였다.이곳 아이스크림은 뭐가 그렇게 비싼지 별것도 아닌 것 같은데 하나에 1만 천 원이었다.그걸 사는 내내 마음이 아플 지경이었다.하지만 상대는 내 물주인데, 서비스 잘해야지 어쩌겠나?아이스크림을 산 뒤, 나는 지도 어플을 따라 온천에 도착했다.이곳 온천에는 사람이 무척 많았다. 남녀가 공동으로 사용하는 온천이었는데,
그 시각.S시.60이 넘은 늠름한 중년 남자가 흰색 한복을 입고 별장에서 태극권을 하고 있었다.그 사람은 바로 나를 겁에 질리게 했던 임천호다.임천호가 지금 하고 있는 건 바로 태극권의 팔단금다.심지어 옆에는 태극권 고수가 직접 가르치고 있었다.그래서인지 임천호가 하고 있는 태극권 팔단금은 제법 그럴싸했다. 그의 팔단금이 끝나자 옆에 있던 태극권 선생이 연신 손뼉을 쳤다.“아주 좋습니다! 역시 재능을 타고나셨나 봅니다. 팔단금이 나날이 좋아지고 있네요.”임천호의 무뚝뚝한 얼굴에 담담한 미소가 번지더니 동작을 마무리 지으며 짧고 굵게 말했다.“상을 내려라.”그 말에 선생은 연신 허리를 굽신거렸다.“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임천호는 손을 휙 젓더니 뒤돌아 의자에 앉았다.그러자 고용인 한 명이 얼른 온도와 습도가 딱 적당한 수건 한 장을 건넸다.임천호는 자연스레 수건을 받아 땀을 닦았다. 하지만 핸드폰을 들어 확인한 순간 동작을 멈췄다. 그리고 안색과 눈빛이 단번에 변해 어디론가 전화했다.그 시각.소여정은 한창 내 마사지를 즐기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전화벨이 울렸다.폰을 들어 임천호의 전화라는 걸 확인한 순간 소여정은 몸을 일으켜 세우더니 나를 향해 손을 휙 저으며 그만하라는 사인을 보냈다.하지만 나는 그때 무슨 상황인지 몰라 동작을 멈춘 채 멍하니 서 있기만 했다.마침 옆에 있던 유미 사모님이 내 팔을 잡아당기기 전까지는.“얼른 가요.”갑작스러운 상황에 나는 어리둥절했다.‘뭐지? 한창 마사지 잘하고 있었는데, 왜 갑자기 쫓아내고 그래?’하지만 세 사람의 심각한 표정에 나는 순순히 떠났다.내가 떠나자 소여정은 겨우 미소를 지으며 전화를 받았다. 그러고는 아무 일 없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무슨 일로 전화했어요? 또 얼른 오라고요? 하루라도 재촉하지 않으면 괴로운가 봐요?”임천호는 여전히 차갑고 덤덤했으며 얼굴에는 그 어떤 변화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깊은 눈동자는 매치 사냥감을 노리는 맹수처럼 날카롭고 무서웠다
나는 미간을 찌푸린 채 주해진을 바라봤다.“왜 이렇게 쉽게 돈을 주는 거지?”주해진이 오늘 이 사달을 벌이느라 분명 적지 않은 돈을 썼을 텐데, 나한테 2천만 원 가까이 되는 돈까지 배상하니 또 무슨 꿍꿍이가 있는 건 아닌지 심히 의심됐다.“이 전에는 이대로 넘어가는 게 도저히 용납이 안 댔는데, 두 사람 실력을 보니 승복했거든. 두 사람 말대로 나도 젊을 때는 이 바닥에서 몇 년을 굴렀는데, 한 번도 두 사람처럼 죽기 살기로 싸우는 사람을 못 봤거든.”사실 주해진은 말을 아꼈다. 그가 가장 두려운 건 우리의 믿기지 않는 전투력이 아니라 궁지에 몰렸으면서 상황을 역전한 거였다. 그거야말로 가장 두려운 거였으니까.주해진은 우리를 맹수라고 느꼈다. 그것도 싸울수록 더 미쳐 날뛰는 맹수. 심지어 궁지로 몰아넣으면 넣을수록 우리는 오히려 피에 굶주린 모습을 드러냈다.주해진은 제 체면을 회복하고 싶어 그동안 승복하지 않은 거였는데, 우리가 절대 건드리면 안 되는 존재라는 걸 알았으니 더 이상 저항할 필요가 없었다. 어쨌든 그는 이미 손을 씻었고, 이제는 그저 장사를 하며 지내기에 어렵게 얻은 걸 망치고 싶지 않았다.나는 여전히 반신반의했지만 민우는 나더러 먼저 돈을 받으라고 계속 눈을 깜박거렸다.나도 민우의 뜻을 알고 있었다. 이걸 나중에 우리의 사업 자금에 보태자는 뜻이었다. 1800만 원이나 되는 돈을 보니 나도 확실히 마음이 동해 결국은 말없이 받았다. 주해진은 김진호와 안명훈더러 우리에게 사과하게 했고, 두 사람은 찍소리 못하고 순순히 사과했다.떠나갈 때 주해진은 제 차를 나에게 주면서 몰고 가라고 했다.그 순간 나는 오히려 경계심이 곤두섰다.“돈도 배상했으면서 차는 왜 주는 거야? 설마 또 해코지하려고?”주해진은 호탕하게 웃었다.“경계심 너무 많은 거 아니야? 그냥 친구 삼고 싶어서 주는 거야.”“그런데 난 그쪽이랑 친구하기 싫은데.”나는 고민도 없이 거절했다.주해진은 여전히 너털웃음을 터뜨렸다.“너무 빡빡하게 굴지 말고. 친
김진호는 속이 좁고 질투심이 강하지만 실력은 별로 없다. 특히 일이 터지면 항상 겁을 먹고 뒤로 물러난다.그런데 주해진이 자기를 내밀자 안명훈보다 더 겁을 먹었다.“싫어요... 안 돼요... 해진 형, 저 자식 차를 망가뜨리라고 한 건 형이잖아요. 저더러 형 대신 뒤집어쓰게 하면 안 되죠.”이 지경이 되었는데도 김진호는 제가 한 짓에 책임지지 못하고 주해진의 체면을 바닥에 짓밟았다.주해진은 너무 쪽팔려서 김진호의 뺨을 내리치면서 버럭 소리쳤다.“사과하라면 해. 어디서 말이 그렇게 많아? 젠장. 내가 널 돕지 않았다면 수호 동생한테 미움 살 일이 있었겠어?”한창 화를 내고 있던 나는 그 말에 순간 멍해졌다.‘수호 동생? 지금 나를 말하나?’‘젠장, 내가 언제 제 동생이 됐다는 거야?’“어디서 친한 척이야? 너희 셋 다 내려와.”나는 차를 또다시 쾅쾅 내리쳤다.민우 역시 차 위에서 나를 협조해 주었다.승합차가 우리 때문에 완전히 뒤집힐 지경이 되자 주해진은 우리와 연맹을 맺으려는 듯 은근슬쩍 나를 회유했다.“수호 동생, 그만해. 내려갈게. 우리 사이에는 원한이 없잖아. 수호 동생이랑 원한 있는 건 김진호잖아. 그리고 안명훈 저 자식도 자기 여자 친구더러 동생 친구 꼬시라고 했어. 저 둘 중에 좋은 놈 하나 없어. 내가 지금 바로 이 두 놈 내려 보내겠으니까 마음대로 처리해.”주해진은 말을 마치자마자 정말로 김진호와 안명훈을 끌어내 앞에 내팽개쳤다.내 분노는 사실 김진호와 안명훈 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다. 가장 큰 원인은 내 차가 박살 난 것 때문이다. 그리고 주범은 바로 주해진이다.때문에 나는 화가 잔뜩 나서 주해진을 향해 파이프를 휘둘렀다.“이 자식들 빚은 내가 천천히 받을 거야. 하지만 내 차를 망가뜨린 건 어쩔 건데?”주해진은 고개를 돌려 내 차를 흘긋 보더니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아마도 배상할 수 있는 저렴한 차라 안도한 듯했다.“수호 동생, 저 차는 1600만 정도 하지? 내가 나중에 새 차 하나 뽑아줄게.”주해진이
사실 오늘 안명훈은 이곳에 오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주해진이 기어코 자기 위엄을 보여주겠다고 불러냈다.그런데 주해진의 위엄은 못 보고 오히려 나와 민우의 미친 모습만 보게 된 거다. 그러니 혼비백산이 되지 않을 리가 있나?안명훈은 필사적으로 차 문을 흔들었다.“나 내릴래. 내려줘...”주해진은 안명훈의 뺨을 후려갈기더니 씩씩거리며 욕설을 퍼부었다.“사내자식이 내리긴 어딜 내려? 네가 문을 내리면 저놈들이 올라올 거잖아. 문 열면 안 돼. 얌전히 앉아 있어. 설마 저 자식이 문을 부수겠어?”펑!나는 승합차를 향해 쇠 파이프를 세게 휘둘렀다.그러면서 속으로는 방금 전의 울분을 토해냈다.‘내 자식 같은 새 차, 아직 할부도 안 끝나 얼마나 애지중지했는데. 네놈들 때문에 고물이 됐잖아.’나는 승합차를 내리치면서 욕설을 퍼부었다.“나와. 차 안에 숨어 있는 게 겁쟁이랑 뭐가 달라?”차 안 세 사람 눈에 나는 충혈되어 시뻘게진 눈을 가진 분노한 맹수나 다름없었을 거다.안명훈은 완전히 겁을 먹어 나한테 끊임없이 간청했다.“오늘 밤 일은 나랑 상관없어... 제발 살려줘. 제발...”주해진도 솔직히 속으로는 무서웠지만 안명훈이 저 하나 살려고 자신을 배신한 걸 보자 화가 나서 그를 발로 차버렸다.안명훈은 그 힘에 못 이겨 옆으로 벌러덩 굴러 넘어졌다.그때, 마침 유리창을 깨뜨린 나는 쇠 파이프로 주해진을 가리키며 소리쳤다.“셋 셀게, 당장 내려. 안 그러면 죽이는 수가 있어.”주해진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였다.“그럴 필요까지 있어? 내가 사람을 불러 모으긴 했지만 무기는 안 들었잖아. 게다가 저놈들은 겁을 먹고 이미 도망쳤어. 너희 둘도 크게 다치지 않았으먼서 꼭 미친 짐승처럼 나를 그렇게 끝까지 물고 늘어져야겠어?”나는 이를 악물었다.“난 짐승처럼 네 놈을 물고 늘어지는 거로 안 끝나. 아주 뼈도 안 남기고 씹어 먹을 거야. 내가 얼마나 어렵게 산 차인데, 평소 아까워서 조심조심 다뤘는데, 네 놈 때문에 폐차하게 생겼잖아. 내 차 물어
나는 여전히 손에 든 쇠 파이프를 필사적으로 휘둘렀다. 분명 이길 수 없다는 걸 알았지만 그렇다고 기죽을 수도 없었다.민우가 말한 적이 있는데, 싸울 때 가장 무서운 건 싸우기 전부터 겁을 먹는 것이라고 했다.하지만 한참 싸우다 보니 나는 점점 힘에 부쳤다. 놈들 인원수가 너무 많아 도저히 상대가 되지 않았다.그렇다고 이대로 쓰러질 수는 없었다.인체에는 자극을 받으면 잠재력을 자극하는 혈 자리가 있는데, 그 혈 자리가 자극을 받으면 잠재력이 폭발했다가 나중에 한동안은 몸이 나른해진다.하지만 이 상화에서 다른 걸 신경 쓸 겨를이 없었기에 나는 고민 없이 혈 자리를 눌렀다. 그 순간 온몸에 힘이 솟아나면서 내가 마치 거인이 된 느낌이었다.“야! 다 죽었어!”나는 고함을 지르는 동시에 쇠 파이프를 휘두르면서 달려갔다.나를 에워싸고 있던 놈들은 내가 더 이상 전투력이 없다는 걸 보고 모두 긴장을 푼 상태였다. 하지만 나는 갑자기 미친 것처럼 놈들의 코뼈를 하나씩 부러뜨렸다. 심지어 손이 무척 매웠다.나는 피가 들끓어 끊임없는 힘이 솟구치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매번 파이프를 휘두를 때마다 젖 먹던 힘까지 짜냈다.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는데도 무섭지 않았다. 오히려 나도 한방에 놈들 뼈를 부러뜨릴 수 있다는 것에 흥분됐다.‘만약 동준 형님이 이 모습을 본다면 나에게 재능이 있다고 여기지 않을까?’싸울수록 피가 끓고 힘이 솟아났다. 놈들은 심지어 나를 보자 연신 뒷걸음쳤다.옆에 있던 민우마저 나를 보면서 가쁜 숨을 몰아 쉬며 물었다.“수호야, 너 대체 어떻게 한 거야? 난 지금 힘들어 죽겠는데...”나는 혈 자리를 가리켰다.그러자 민우는 바로 눈치챘다.민우 역시 의학을 전공한 지라 말하지 않아도 바로 알 수 있었다. 곧이어 민우 역시 스스로 한 대 치더니 갑자기 피가 솟구치는 것처럼 흥분했다.“하하하, 나도 다시 회복했어. 너희들 죽었어.”우리는 서로 협조하면서 놈들한테 달려가 퍽퍽, 주먹을 날렸다.우리를 끝장내버리겠다고 큰소리치던 놈
전에는 누가 와서 소란을 피울까 봐 민우더러 나와 함께 가게에서 지내자고 했지만, 지금 사장님 댁에 머물고 있는데 민우까지 데려올 수는 없었다. 때문에 뭐든 나 혼자 해결해야 했다.민우를 집에 데려다 두는 길에 그는 나에게 함께 사장님 댁에 있어 달라냐며 물었다. 그러면 서로 보살필 사람이 있다면서.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나도 그걸 생각해 보지 않은 적 없어. 하지만 사장님을 돌보려고 그 집에서 지내고 있는데 너까지 데려가면 이상하잖아.”“난 그 개자식들이 또 너한테 무슨 짓 할까 봐 그러지.”“나도 무서워. 하지만 이미 준비해 뒀어.”나는 의자 밑에서 도구 몇 개를 꺼냈다.민우는 그 도구들을 손에 들고 무게를 가늠해 보더니 말했다.“이 도구들은 조금 도움이 될 뿐이야. 그래도 내가 너한테 가르쳐준 방법을 사용해.”민우는 말하면서 손을 움켜쥐는 동작을 했다.그 동작에 나는 풉, 하고 웃음이 터져 버렸다.“그 방법 확실히 좋더라...”우리가 한창 얘기하고 있을 때 백미러에 언뜻거리는 차 한 대가 비쳤다.무의식적으로 뒤에 따라붙은 사람이 운전할 줄 모른다며 투덜거리던 나는 갑자기 이상한 낌새를 챘다. 그도 그럴 게, 뒤에서 달려오는 차는 속도가 아주 빨랐는데 마치 나를 강제로 세울 것처럼 굴었으니까.“잘 앉아.”나는 불안한 예감에 다급히 액셀을 밟아 속도를 냈다.다만 내 차의 유일한 단점은 속도를 너무 빨리 낼 수 없다는 거다.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뒤 차에 따라잡혔다.놈들은 내 차를 강제로 멈추게 할 작정인 듯했다. 하지만 나는 멈추고 싶지 않았다. 상대방 차량은 승합차였는데, 그런 승합차는 용량이 커 적어도 열댓 명을 태울 수 있었다.만약 차에서 열 몇 명이 우르르 내리면 나와 민우 둘이 대처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때문에 나는 액셀을 밟았다. 하지만 승합차 두 대는 좌우에서 협공하며 내 차를 가운데 몰아 끼긱끼긱, 하며 긁히는 소리가 났다. 분명 차가 내는 소리였지만 내 살점이 뜯겨나가는 기분이었다.아직 차 할
내가 한창 망설이고 있을 때 사장님도 말을 보탰다.“수호 씨, 남아서 좀 도와줘. 우리 마누라가 요즘 너무 힘들어서 그래. 어릴 때부터 금지옥엽으로 자라나 이런 고생 언제 해 봤겠어? 이것 봐, 피곤해하는 거 보이지? 나도 솔직히 마음 아파.”사장님과 사모님이 모두 나를 남으라고 설득하는 상황이라 나도 더 이상 거절하기 곤란했다.“그래요. 제가 남아서 도와드릴게요.”사장님이 드시고 사용해야 하는 약이 너무 많아 확실히 번거롭긴 하다. 때문에 나도 사모님 혼자 사장님을 케어하지 못할까 봐 걱정이 됐다.사모님은 내 말에 이내 환한 표정을 지었다.“수호 씨는 아무것도 가져올 필요 없어요. 여기 모두 있으니까. 전처럼 계속 객실에서 자면 돼요. 그곳 채광이 좋고 공기도 좋아요...”사모님은 내가 이곳에서 지내는 데 불편해할까 봐 끊임없이 말을 늘어놓았다.사장님 내외가 사는 집은 모두 고급 가구를 사용했는데, 내가 이곳에 남아 도와주지 않는다면 이런 걸 누려볼 기회가 어디 있을까?사장님 내외는 나한테 너무 잘해줘서 내가 다 미안할 따름이었다.사장님 몸은 우선 한약으로 며칠간 보양해야 하지만 약을 다 먹으면 사실 힐 것도 없어 나는 가게 일을 돌볼 수 있었다.요 며칠간 주해진은 소란 피우러 찾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이대로 포기했다는 건 아니었다. 때문에 나는 동료들한테 주의할 것을 당부했다.한편 주해진은 그날 도망치듯 가게를 떠난 뒤 마음이 계속 안 좋았다.하지만 최근 일손을 구해봤지만 누구도 도와주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그 첫째 이유는 주해진이 깡패라 정계와 연이 닿는 지인이 적었고, 두 번째 이유는 사촌 형이 다시는 화인당을 다시는 건드리지 말라고 했기 때문이었다.주해진은 입으로는 싫다고 했지만 요 며칠간 그래도 제 분수를 지켰다. 다만 김진호 병문안을 간 뒤, 마음이 또 바뀌었다.김진호는 나를 여자 등에 빨대 꽂고 출세한 놈으로 말하면서, 깡패인 주해진이 나 같은 등신 하나 해결하지 못한 게 알려지기라도 하면 얼마나 웃음거리
어르신도 허허 너털웃음을 지었다.“너도 잘했어. 처방한 게 거의 다 맞췄으니까. 새내기 같지가 않아. 네 할아버지한테서 많이 배웠나 보네?”나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그럭저럭요. 그런데 그때는 너무 어려 할아버지의 모든 재능을 배우지 못한 게 아쉬울 따름이에요.”“괜찮아. 앞으로 내가 네 할아버지니까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언제든 나한테 물어봐.”나는 얼른 감사를 표했다.어르신과 약처방을 확인한 뒤, 나는 화인당에 가 이틀 치 약을 짓고 동료들에게 사장님이 퇴원했다는 사실을 말했다.다들 사장님이 다 나은 줄 알고 기뻐하는 눈치였다. 특히 민우는 슬그머니 내 팔을 잡으며 말했다.“사장님이 돌아오면 우리 따로 나가는 거지?”나는 얼른 민우의 말을 잘랐다.“사장님이 돌아와도 이런 말은 급하게 하면 안 돼. 화인당이 안정되고 가게에 일손이 부족하지 않을 때 떠날 수 있어. 우리가 다른 길을 찾아 나서는 건 자신을 더 발전시키기 위해서지만, 화인당에 누를 끼쳐서는 안 되지. 사장님이 우리 둘한테 얼마나 큰 은혜를 베풀었는지는 내가 말 안 해도 알잖아.”민우는 다급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내가 생각이 짧았네. 앞으로 절대 함부로 말 안 할게.”“참, 요즘 태진 선배는 어때? 가게에서 본 적 있어?”나는 가게에 들어오자마자 모태진이 오늘 없다는 걸 발견했다.내 말에 민우가 대답했다.“누가 알겠어? 또 그깟 일 때문에 가게에 피해 갈까 봐 안 나왔겠지. 상관하지 마. 다 큰 어른이 본인 몸 하나 건사 못 하겠어? 수호야, 아직은 따로 나가는 말은 안 할게. 하지만 천수당을 관찰하는 건 괜찮지?”“관찰하는 건 괜찮아. 하지만 함부로 하지 마.”나는 신신당부했다.그러자 민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알겠다는 뜻을 내비쳤다.나는 약을 가진 후 다시 사모님 댁으로 돌아갔다.이 약 일부는 목욕용이고 일부는 마시는 약이라 나는 위애 상세하게 적어 따로 분리했다. 그리고 먹는 약은 모두 달여 진공 포장한 뒤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이렇게 하면 마실 때 데
윤지은은 보기 드물게 이번만큼은 내 편에 섰다.“동의하기 싫어도 동의해야지. 내가 진작 서약이 부작용이 있고 중독성이 커서, 장기적으로 이렇게 치료하면 환자가 오히려 탈탈 털릴 거라고 말했는데. 유미한테는 내가 말할게. 걔네 부모님은 아무튼 B시에 계시잖아? 한동안 돌아올 수 없으니까 당분간 비밀로 하지 뭐.”윤지은이 전에 그렇게 말하지 않았던 건 이 병원에서 근무하는 의사이기 때문이다. 서의학 의사면서 서의학이 안 좋다고 하면 분명 안 좋은 영향이 있을 거다.하지만 친구 남편인 정호섭의 생명이 달린 일이니 더 이상 거리낄 것도 없었다. 무엇보다 친구 임유미가 가장 마음에 걸렸다.만약 정호섭한테 무슨 일이 있으면 임유미는 어떡하라고?나는 사장님을 바라봤다.“그래도 되겠어요?”사장님은 효심이 강한 분이라 장인 장모를 속이는 게 안 좋다고 여겼다. 게다가 두 분이 지금껏 사장님을 길러왔으니.하지만 사장님이 고민하는 동안 윤지은은 이미 사장님 대신 결론을 내렸다.“뭐 그렇게 생각할 게 많아요? 두 분한테 말하면 절대 동의 안 할 거예요. 이 일은 내가 말한 대로 해요. 나도 한의학을 전공했던 사람이라 파악이 없으면 이런 말 안 해요.”나와 사장님 모두 머뭇거렸는데, 윤지은이 이런 태도로 나오니 오히려 감화되었다.나는 윤지은이 진심으로 존경스러웠다. 뭐든 엄격하고 신속하게 하는 모습은 내가 따라 배울 점이었다.윤지은은 나더러 병원에 남아 사장님을 돌보게 하고 본인은 유미 사모님을 모셔 오면서 한의 치료 방법에 대해 말해주겠다고 했다.그사이 나는 사장님이 아침 식사를 드시는 걸 도와드렸지만, 사장님은 입맛이 없다면서 조금밖에 드시지 않았다.요즘 매일 많은 양의 약을 먹어 위장이 망가져 음식을 먹는 것조차 무리였다.이렇게 부작용이 큰 게 바로 서양의학의 가장 큰 단점이다.나도 사장님을 강요하지 않았다.환자가 입맛이 없다는데 억지로 먹게 하면 오히려 위장의 부담을 더해주기 때문이다.나는 따뜻한 물을 받아와 사장님의 얼굴과 몸을 닦아주었다.
어르신은 내가 보인 자신감에 매우 만족해했다. 하지만 주의할 점을 귀띔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침술 하기 전에 모든 서약을 끊고 한동안 몸보신해야 해. 지금 너의 사장님 몸은 너무 나약해서 기혈이 거의 다 사라진 거나 다름없어. 이 상태로 침술 할 수 없어. 이 일은 먼저 환자 가족들과 상의하고 동의를 구한 뒤 진행해.”나는 고개를 끄덕였다.때마침 윤지은이 회진하러 와서 나는 그녀더러 사장님을 잠시 봐달라고 하고는 어르신을 모시고 밖으로 나갔다.“됐어. 데려다 줄 필요 없어. 이 부근에 마친 공원이 있으니 나도 좀 산책하다가 택시 타고 가면 돼. 네 사장님 상황은 서둘러서 가족과 상의해. 더 지체되면 천지신명이 와도 어쩔 수 없어.”어르신의 긴박한 말투에 나는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고마워요, 할아버지.”나는 진심으로 어르신께 감사했다. 90세가 넘는 분이 내 전화 한 통에 아무 이유 없이 도와준 거니까.이 은혜는 꼭 마음에 새길 거다.어르신은 허허 너털웃음을 지었다.“사람을 구하는 게 무엇보다도 중요하지. 이건 나를 위해 덕을 쌓는 거야. 너도 얼른 가 봐. 이 일은 지체하면 안 된다는 거 잊지 말고.”나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어르신이 뒤돌아 떠난 뒤에야 나는 병실로 돌아갔다.다른 사람은 이미 떠나고 윤지은만 병실에 남아 있었다.나는 얼른 윤지은과 사장님께 방금 전 상황을 말씀드렸다.“수호 씨, 한의학 치료법으로 정말 내 병을 완화할 수 있어?”사장님은 나를 조금 믿는 눈치였지만 그래도 한번 확인했다.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진지하게 설명했다.“아까 보신 분이 우리 마을에서 엄청 유명한 명의세요. 젊을 때 저희 할아버지랑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사람들 병을 치료해주셔서 엄청 유명해요. 저도 그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어본 건데 정말 방법이 있다더라고요.”“사장님이 입원한 뒤 몸 상태가 확실히 점점 나빠지셨잖아요. 이 부분은 제가 말하지 않아도 사장님도 느끼셨을 거예요. 서약은 비록 효과는 빠르지만 부작용도 커요. 사장님 몸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