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천 빌라. 나 거기서 하루 묵을 거거든.”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다급히 물었다.“그러면 저도 묵어야 하잖아요?”“그렇지. 수호 씨가 안 묵으면 누가 운전해 줘?”소여정은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하지만 나는 싫었다.돌아가지 않으면 애교 누나한테는 어떻게 설명하라고?그리고 형수도 걱정돼 죽겠는데.“그럼 전 갈 수 없어요. 여자 친구가 오해할 거예요.”나는 차에서 내리며 진지하게 해명했다.그러자 소여정이 나에게 현금다발을 꺼냈다.“여자 친구한테 오늘 다른 일이 있어서 못 들어간다고 해.”“이건 돈 문제가 아니에요. 전 단 한 번도 외박한 적 없어요.”소여정은 또 현금다발을 꺼냈다.“하룻밤에 200만도 벌고 부자 체험도 해볼 수 있는데 설레지 않아?”소여정 손에 든 현금을 보고 설레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다.게다가 전에 용천 펜션에 대해 들은 바가 있는데, 강북에서 가장 유명한 펜션이다.펜션 안 인테리어는 별장급이고, 개인 수영장도 딸린 데다 파티장, 온천 등이 있다.내 돈을 내지 않고 이런 걸 체험할 수 있다면 당연히 가고 싶었다.“좋아요, 그럼 우선 여자 친구한테 전화해 볼게요.”나는 소여정이 건네는 돈을 받고 구석진 곳으로 와 애교 누나한테 전화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누나, 걱정하지 마요. 절대 몸 함부로 굴리지 않아요. 도착하면 영상통화 할게요.”애교 누나가 오해할까 봐 나는 일부러 설명을 덧붙였다.하지만 누나는 별다른 오해를 하지 않고 예전처럼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수호 씨, 가고 싶으면 가요. 나한테 보고할 필요 없어요. 우리 아직 정식으로 사귀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러니 수호 씨는 아직 자유예요. 앞으로 하고 싶은 건 회보할 필요 없이 뭐든 해요.”“애교 누나가 저를 믿는 건 누나 일이고, 누나한테 회보하고 싶은 건 내 일이잖아요.”나는 강력하게 어필했다.이건 내가 진심으로 애교 누나와 결혼하고 싶다는 걸 알게 하기 위해서다.애교 누나는 내 말에 피식 웃었다.“그래요. 그 회보 받을게요. 오늘 저
이곳은 건물이 웅장하고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서비스도 최고였다.문에 들어선 순간부터 안내원이 따라붙었다.소여정은 미리 핸드폰으로 예약을 마친 상태였다. 그것도 최고 VIP들만 누릴 수 있는 서비스로.때문에 접대할 때부터 펜션 측은 우리에게 과일과 와인을 준비해 주었다.심지어 일부 과일은 이름도 모르는 것들이었다.그 순간, 내가 한없이 초라해졌다. 보고들은 게 너무 없었으니까.여자 세 명이 안내원과 대화를 주고받을 때 나는 참지 못하고 테이블 위에 놓인 와인과 과일을 사진 찍었다.다른 뜻은 아니고 그저 기념용이었다.나도 이런 건 본 적 있는 사람이구나 하는 기념.게다가 용천 펜션 로비를 배경으로 셀카도 찍었다.우장하고 넓고 화려한 호텔에 들어오니 내가 마치 황궁에 있는 느낌이 들었다.역시나 이래서 다들 부자가 되려고 하는구나 실감했다.돈 많은 사람들은 정말 최고의 삶을 누릴 수 있으니까.세 명은 바로 모든 수속을 마쳤다.나는 그 사이 얼른 핸드폰을 거두었다. 세 사람에게 내가 몰래 사진을 찍었다는 걸 들키기 싫었으니까.세 사람이 내 모습을 발견했다면 분명 촌놈이라고 여길 테니까.그때 백연우가 내 그런 모습을 봤는지 한쪽 입꼬리를 비쭉 올리며 비웃는 듯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때 소여정이 허리를 살짝씩 움직이며 나에게로 걸어왔다.“이제 수속은 마쳤으니 수호 씨는 가서 우리 짐 가져와.”“이건 우리 세 명 거, 이건 수호 씨 거.”소여정은 나에게 색깔이 다른 카드키 두장을 건넸다.세 명의 것은 새까만 색이라 보기에도 귀티 나고 심플했지만, 내 것은 초록색이라 그다지 높지 않은 등급 같았다.딱 봐도 세 명의 방과 내 방은 달랐다.하지만 별것도 아니었다. 나는 운전기사로 온 것이니, 무료로 이곳에서 노는 것만 해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그런데 여기서 뭘 더 바라겠는가?나는 세 사람의 짐을 들고 로비를 막연하게 바라봤다.‘젠장, 어디로 가야지?’나는 이곳에 온 적이 없었기에 객실을 가려면 어디로 가
내가 어지러워 쓰러지려던 그때, 다행히 친절한 청소부 누님이 나에게 방향을 안내했다.방문을 열고 들어가 세 사람의 짐을 하나둘 차곡차곡 놓은 나는 참지 못하고 주위를 빙 돌아다녔다.이곳은 아주 커다란 로열스위트 룸이었다.방마다 개인용 화장실이 딸려 있었고, 욕조도 있었으며 창밖에 호수가 절경을 이루고 있었다.그야말로 환경이 너무 좋아 나는 또 사진 몇 장을 더 찍었다.내가 한평생 이런 곳에 올 기회가 얼마나 될까?나는 베란다도 한번 기웃거렸다.베란다는 쉴 수 있는 공간과 다과를 즐기는 공간도 있었다. 게다가 방안에 각종 신선한 과일과 와인이 구비되어 있었다.그 순간 나는 저도 모르게 내 손에 쥐고 있던 초록색 카드키를 바라봤다. ‘내 방은 어떻지?’당장 가보고 싶었다.내 방 번호는 819라서 세 사람과 같은 층에 있지만 방향이 정반대였다.이번에는 노하우도 있었기에 단번에 내 방을 찾았다.바로 카드키를 긁고 안으로 들어갔다.놀랍게도 내 방도 꽤 컸다.물론 로열 스위트룸처럼 화려하지 않은데 보통 호텔보다는 훨씬 좋았다.심지어 안에는 여러 가지 와인과 신선한 과일 그리고 욕조가 준비되어 있었다. 다만 발코니가 조금 작았다.하지만 나한테는 이미 너무 큰 기쁨이었다.나는 내 방에 대고 찰칵찰칵 몇십 장의 사진을 찍어 몇 장은 애교 누나에게 보냈다.[애교 누나, 도착했어요. 이게 제 방이에요. 앞으로 기회 되면 누나도 데리고 올게요.]애교 누나는 나에게 짤막한 답변을 해 왔다.[제대로 즐겨요.]나른한 침대에 누운 나의 기분은 전례 없이 설렜다.내가 살아생전 이토록 화려한 호텔에 묵을 줄이야. 잠시 누워있다가 나는 소여정에게 문자를 보냈다.[물건은 이미 방에 넣어뒀어요. 그다음에 저는 뭘 하면 되죠?]소여정이 나에게 200만 원이나 주고, 여기에서 무료로 놀게 해줬으니, 나는 당연히 세 사람을 제대로 보살펴야 한다.얼마 지나지 않아 소여정의 답장을 받았다.[이젠 수호 씨가 할 일은 없어. 하고 싶은 대로 해.]‘이제 내
어머니는 참 좋은 사람이다. 어릴 때부터 나를 무척이나 아꼈다.내 말에 어머니는 당연히 아주 기뻐하셨다.[우리 아들 능력자네. 엄마는 참 기뻐.]“엄마, 제가 나중에 돈 많이 벌면 어머니랑 아버지 꼭 강북에 데려와 부자의 생활을 누리게 해줄게요.”[나랑 니 아버지는 됐다. 네 그 효심만 있으면 만족한다. 우리 같은 촌구석 양반들은 그런 곳에 가도 편히 못 있는다. 수호야, 너만 잘 지내면 나랑 네 아버지는 만족한다.]아버지와 어머니는 모두 성실하고 평범한 농부이며, 농부의 순박하고 진솔한 마음씨를 갖고 있다.한참 수다를 떨다가 대화 주제는 결국 나에게로 왔다.[수호야, 너도 일만 넘 신경 쓰지 말고, 시간 나면 여자 친구도 좀 만들고 그래. 나랑 네 아버지가 지금은 아직 젊으니 내도 봐줄 수 있잖아...]시골 사람들은 결혼을 일찍 한다, 때문에 어머니가 이리도 나를 재촉하는 건 이해할 수 있었다.나는 애교 누나의 일을 어머니께 말씀드릴지 말지 한참 고민하다가 결국 말하기로 했다.애교 누나와 결혼하기로 결심했기도 했으니, 일찍 말하든 늦게 말하든 똑같았으니까.“엄마, 사실 저 여자 친구 있어요.”어머니는 그 말에 무척 좋아하셨다.[정말이야? 너무 잘됐네. 어떤 여자야? 몇 살이고?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데?]나는 어머니를 속일 생각이 없었기에 솔직히 대답했다.“제 여자 친구가 저보다 나이 좀 많아요. 이혼도 한 번 했고요. 하지만 사람은 엄청 좋아요. 저도 정말 그 사람과 결혼하고 싶고요.”[이혼했었다고? 뭐 별거 아니다. 지금 시대가 어느 때인데, 다 오픈 마인드잖아. 두 사람만 좋으면 우리는 의견 없다. 시간 날 때 여자 친구 데려와 봐. 우리도 좀 보게.]역시 어머니가 이런 일로 나를 나무라지 않을 줄 알았다.나는 너무 기뻤다.“그래요. 며칠 뒤 마침 휴가인데, 그때 데려갈게요.”우리 부모님은 비록 시골 토박이지만 모두 깨어 있는 분들이시고, 나에 대한 태도도 느슨하신 분들이다.어머니와 한참 얘기를 하다 보니 기분이 좋
“혼인 관계를 유지하려고 그런 쓰레기와 평생 같이 살 수는 없잖아요.”애교 누나는 미간을 좁혔다.[수호 씨는 우리 가족 몰라요. 특히 우리 아버지는 체면을 엄청 중요시하는 분이거든요. 이혼한 게 아버지 얼굴에 먹칠했다고 생각해 앞으로 딸로도 받아주지 않을까 봐 걱정이에요.]“절대 그러지 않을 거예요. 정 안 되면 시간 날 때 제가 같이 가서 대신 말해줄게요.”나는 진지하게 대답했다.그 말에 애교 누나는 끝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무섭지 않아요? 나보다 나이도 훨씬 어려 우리 부모님이 허락하지 않을 수도 있는데요.]난 이제 막 사회에 나온 새파랗게 어른 청년이다. 때문에 세상에 아직 두려울 게 없다.나는 오히려 남자다운 모습을 보여주듯 가슴팍을 퍽퍽 치며 말했다.“모든 건 저한테 맡겨요. 제가 누나 부모님 설득할게요.”[좋아요, 그럼 언제 시간 괜찮은지 말해줘요. 생각해 볼게요.]애교 누나는 결국 동의했다.그때, 소여정의 전화가 걸려 왔다.나는 누나에게 얼른 설명하고 통화를 끊고는 소여정의 전화를 받았다.“소여정 씨, 무슨 일이에요?”나는 항시 내 신분을 명심하고 있었다.그때 소여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온천으로 와. 나 어깨가 아프니 와서 좀 주물러 줘.”“온천이 어디 있는데요?”[위치 보내줄게.]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소여정이 보낸 위치를 확인했다.그걸 받아 보니 이곳이 참 넓다는 걸 다시 한번 느꼈다. 사람 찾는 것도 위치 정보를 공유해야 할 정도라니.하지만 위치 정보 덕분에 사람 찾는 건 매우 수월했다.그때 소여정의 문자가 또 도착했다. 이번에는 세 사람이 먹을 아이스크림을 사오라는 문자였다.이곳 아이스크림은 뭐가 그렇게 비싼지 별것도 아닌 것 같은데 하나에 1만 천 원이었다.그걸 사는 내내 마음이 아플 지경이었다.하지만 상대는 내 물주인데, 서비스 잘해야지 어쩌겠나?아이스크림을 산 뒤, 나는 지도 어플을 따라 온천에 도착했다.이곳 온천에는 사람이 무척 많았다. 남녀가 공동으로 사용하는 온천이었는데,
그 시각.S시.60이 넘은 늠름한 중년 남자가 흰색 한복을 입고 별장에서 태극권을 하고 있었다.그 사람은 바로 나를 겁에 질리게 했던 임천호다.임천호가 지금 하고 있는 건 바로 태극권의 팔단금다.심지어 옆에는 태극권 고수가 직접 가르치고 있었다.그래서인지 임천호가 하고 있는 태극권 팔단금은 제법 그럴싸했다. 그의 팔단금이 끝나자 옆에 있던 태극권 선생이 연신 손뼉을 쳤다.“아주 좋습니다! 역시 재능을 타고나셨나 봅니다. 팔단금이 나날이 좋아지고 있네요.”임천호의 무뚝뚝한 얼굴에 담담한 미소가 번지더니 동작을 마무리 지으며 짧고 굵게 말했다.“상을 내려라.”그 말에 선생은 연신 허리를 굽신거렸다.“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임천호는 손을 휙 젓더니 뒤돌아 의자에 앉았다.그러자 고용인 한 명이 얼른 온도와 습도가 딱 적당한 수건 한 장을 건넸다.임천호는 자연스레 수건을 받아 땀을 닦았다. 하지만 핸드폰을 들어 확인한 순간 동작을 멈췄다. 그리고 안색과 눈빛이 단번에 변해 어디론가 전화했다.그 시각.소여정은 한창 내 마사지를 즐기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전화벨이 울렸다.폰을 들어 임천호의 전화라는 걸 확인한 순간 소여정은 몸을 일으켜 세우더니 나를 향해 손을 휙 저으며 그만하라는 사인을 보냈다.하지만 나는 그때 무슨 상황인지 몰라 동작을 멈춘 채 멍하니 서 있기만 했다.마침 옆에 있던 유미 사모님이 내 팔을 잡아당기기 전까지는.“얼른 가요.”갑작스러운 상황에 나는 어리둥절했다.‘뭐지? 한창 마사지 잘하고 있었는데, 왜 갑자기 쫓아내고 그래?’하지만 세 사람의 심각한 표정에 나는 순순히 떠났다.내가 떠나자 소여정은 겨우 미소를 지으며 전화를 받았다. 그러고는 아무 일 없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무슨 일로 전화했어요? 또 얼른 오라고요? 하루라도 재촉하지 않으면 괴로운가 봐요?”임천호는 여전히 차갑고 덤덤했으며 얼굴에는 그 어떤 변화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깊은 눈동자는 매치 사냥감을 노리는 맹수처럼 날카롭고 무서웠다
“흥, 나를 부러워하는 여자들이 나만큼 예뻐요? 나만큼 몸매 좋아요? 나를 깎아내리려면 저들도 나처럼 예쁘던가.”임천호는 리클라이너에 기댄 채 느긋하게 말했다.[네가 가장 특별하고 내 마음을 가장 잘 알아. 여자 천 명을 갖다 놔도 너 같은 여자는 찾을 수 없지. 내가 널 아끼고 사랑해 주는 건 당연해. 하지만, 밖에서 함부로 하고 다니는 건 딱 질색이라는 건 알아 둬.]소여정은 심장이 덜렁 내려앉았지만 끝까지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말했다.“내가 또 무슨 짓을 했다고 그래요? 친구들과 온천욕 하는 것도 함부로 하는 거예요?”[정말 온천욕만 한 거 맞아? 젊은 놈 끼고 마사지 받은 거 아니고?]임천호의 말에는 뼈가 있었다.소여정은 순간 임천호가 제 죄를 따져 물으려고 전화한 거라는 걸 알아챘다. 하지만 그녀에게도 방법은 있었다.소여정은 입을 삐죽 내밀며 일부러 화난 척 말했다.“에이, 이젠 젊은 남자한테 마사지 좀 받는 것도 안 돼요? 정말 저를 새장 안의 새처럼 키우게요?”임천호는 몸을 일으켜 똑바로 앉더니 눈에서 차가운 빛을 내뿜었다.[안 되는 게 아니라 내가 용납 못해. 강북 삼성에 네가 나 임천호의 여자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어!]이건 소여정이 가장 싫어하는 말이다. ‘내가 당신 여자라고? 당신 여자는 당신 아내 아닌가? 난 당신이 자랑하고 다니는 물건일 뿐이고.’하지만 그 한마디 때문에 강북 삼성에서 임천호를 아는 사람들은 소여정에게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소여정은 밖에서 바람피울 배짱이 있다 한들, 상대는 절대 그럴 배짱이 없다.그 때문에 소여정은 이토록 강렬한 반항심을 갖게 되었다. 그녀는 새장 안의 새처럼 살고 싶지 않았고, 임천호가 데리고 다니며 자랑하는 물건이 되고 싶지 않았으며 고분고분 말만 듣는 토끼는 더더욱 되기 싫었다.소여정도 사람이다. 자기만의 생활이 있다. 때문에 자꾸만 반항심이 생기곤 한다.임천호가 하지 말라고 하면 기어코 하려 하고. 그래야만 자기가 살아 있는 사람이라는 걸 증명할 수 있는 것처럼
소여정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녀는 남자를 너무 잘 안다. 상대가 명령조로 말할 때는 애교를 부려봤자 소용없다.임천호는 지금 마지막 인내를 갖고 경고하는 거다. 만약 아직도 눈치 없이 굴면 소여정에게는 폭풍우가 닥칠 거다.소여정은 화가 나면서도 어쩔 수 없어 씩씩거리며 전화를 끊었다.“뭐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여기서 이틀 정도 더 있어도 된다고 했으면서 왜 또 당장 오라고 전화하는 건데? 내가 진짜 하라는 대로 하는 애완동물인 줄 아나?”소여정은 핸드폰을 내동댕이쳤다. 생각할수록 기분 나쁘고 화가 났다.그와 동시에 반항심은 점점 강해졌다.그때 유미 사모님이 소여정의 팔을 잡으며 좋은 말로 달랬다.“딱 보니까 물러서지 않을 것 같던데. 돌아가. 가서 기분 풀어주고 나중에 다시 오든 말든 얘기해.”백연우도 옆에서 팔짱을 낀 채 분석했다.“그 남자 소유욕 엄청 강하잖아. 얼른 돌아가. 아니면 정말 강북에 쳐들어올지도 몰라.”소여정은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임천호가 강북에 쳐들어오는 것만은 싫었다.그 남자는 분명 강북에 있는 동안 소여정의 행적을 뒤질 거고, 그녀와 접촉한 적 있는 남자들은 가죽을 벗기고 뼈를 발라내려 들 거다.소여정은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안절부절못했다.“그럼 이제 어떡해? 정말 임천호 말대로 순순히 돌아가라고? 그러면 내가 애완동물과 뭐가 달라?”소여정은 너무 싫었다.그때 유미 사모님이 얘기했다.“아니면 먼저 전화해서 애교 좀 부리고 잘 설득해 보는 건 어때?”“소용없어. 임천호는 절대 애교부린다고 결정을 번복할 사람 아니야. 그 사람은 남을 명령하고 남이 제 말에 복종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거든.”백연우의 정확한 분석에 소여정도 동의했다.“연우 말이 맞아. 임천호는 그런 사람이야. 내가 전화하면 내가 정말 자기를 못 떠나는 줄 알 거야. 절대 먼저 전화하면 안 돼.”“그럼 정말 강북으로 와서 너 찾으면 어떡해?”임유미가 물었다.“직접 오지는 않을 거야. 하지만 내가 계속 안 돌아가면 사
“보아하니 두 사람 모두 조금희 씨 몸에 종양이 퍼지고 있어 곧 죽는다는 걸 알고 있었네요.”“혹시 조금희 씨가 뒤에서 꼼수 부린 거 아닐까요?”나는 문득 뭔가 떠올라 의문점을 제기했다.현재 상황으로 분석해볼 때 조금희의 혐의가 가장 높았다.그때 윤지은이 말했다.“자세한 건 조사해 봐야 하지만 나도 조금희 씨가 이상한 것 같아.”사모님은 참지 못하고 눈시울을 붉혔다.“다음에 조사할 때 나도 끼워줘. 나도 같이 조사하고 싶어. 두 사람 말 맞아. 호섭 씨가 억울한 죽임을 당했는데, 나라도 진실을 밝혀 억울함을 풀어줘야 해. 이게 내가 살아갈 유일한 동력이야.”사모님은 말하면서 또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슬픔 속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나와 윤지은은 항상 사모님 곁을 지킬 거다.그날, 우리는 곧장 종양 전문 병원에 가 조금희의 병력을 조사했다.조금희 몸에서 종양이 발견된 건 1년 전인데, 처음에 양성이었다가 악성으로 번지기까지 적지 않은 돈을 들였던 거로 확인되었다.게다가 조금희는 불치병에 걸리기 전에 아내와 갈등을 겪었다.“자세한 건 저도 모르는데, 조금희 씨가 우리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젊은 여자가 항상 와서 돌봐줬어요. 그러다가 부인이 병원에 찾아와 그 아가씨를 때렸고요. 그 일은 병원 사람들 다 알아요.”‘그렇다는 건 조금희가 바람을 피웠다는 거네?’조금희가 이런 사람일 주은 생각지도 못했다.윤지은은 여간호사에게 돈다발을 건넸다. 그러자 간호사는 아주 기뻐하며 떠나갔다.조사를 마친 뒤 우리는 밖에서 식당을 찾았다.식당에 도착한 윤지은은 분석을 시작했다.“조금희 씨가 불치병에 걸렸고, 예전에 아내와 아들한테 잘못을 저질렀다면 혹시 자기가 얼마 못 살 걸 알고 호섭 씨를 배신해 돈을 챙겼던 건 아닐까?”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그럴 가능성이 커요. 만약 조금희 씨 계좌에 큰돈이 입금되었는지 확인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아쉽지만 이곳은 강북이 아닌 Y시다. 안 그랬다면 윤지은의 인맥
나는 기쁨을 주체할 수 없었다.배고픔을 느낀다는 건 좋은 일이다.윤지은이 아침을 사 오자 사모님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묵묵히 음식을 먹었다.그걸 본 윤지은은 나를 향해 엄지를 추켜들었다. 그건 내 실력을 인정한다는 뜻이었다. 이번 치료 방법이 확실히 효과적이었으니까.나는 사모님을 한참 동안 관찰했다.비록 컨디션이 많이 안 좋은데도 사모님은 음식 드실 때 여전히 우아하고 단아했다. 살짝 슬픔을 띄고 있어 살짝 비극의 여주인공 같기도 했다.내가 한창 사모님을 바라보고 있을 때, 윤지은의 날카로운 눈빛이 갑자기 나를 쏘아봤다. “짐승!”윤지은은 욕지거리를 퍼부었다.그 욕에 나는 억울함을 호소했다.“제가 뭘 했다고 짐승이라는 거예요?”“아무튼 짐승 맞아. 이런 상황에서 훔쳐보기나 하고.”윤지은은 나를 째려봤다.난 그저 사모님을 몇 번 본 것뿐인데 나를 짐승 취급하다니, 너무 어이없었다.하지만 이러다 또 싸움 나겠다 싶어 나는 얼른 아침을 들고 다른 곳에 가서 배를 채웠다.식사를 마친 뒤 사모님은 자발적으로 나와 윤지은을 찾아왔다.“알고 있는 거 사실대로 다 알려줘요. 난 호섭 씨 사고에 대한 모든 사실이 알고 싶어요.”사모님은 너무 평온해 마치 다른 사람 같았다. 때문에 나는 사모님 상태가 여전히 걱정스러웠다.“사모님, 우선 맥 좀 짚어봐도 될까요?”“그럴 필요 없어요. 내가 뭘 해야 하는지 나도 알아야. 걱정할 거 없어요. 어젯밤 많이 생각해 봤고, 호섭 씨가 떠난 사실을 받아들였어요.”“내가 받아들일 수 없는 건 호섭 씨처럼 착한 사람이 남한테 죽임을 당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억울함을 풀어줄 거예요.”“난 강해져야 하고 호섭 씨처럼 용감해져야 해요. 그래야 호섭 씨가 마음 놓고 갈 수 있어요.”사모님은 애써 슬픔을 참으려 했지만 결국 참지 못하고 또 흐느꼈다.그 말을 들으니 나도 코끝이 시큰거리고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이제 우리에게는 같은 목표가 생겼다. 바로 진실을 밝히는 것.나는 얼른 마음의
나는 사모님 팔을 힘껏 잡으면서 사모님과 눈을 마주쳤다.“사모님! 현실을 받아들이세요. 더 이상 자신을 속이지 마세요. 사장님이 이런 사모님 보고 편히 가지 못하길 원하시는 건 아니잖아요.”내 말이 사모님의 마음에 큰 상처를 줬는지, 사모님은 순간 울음을 터뜨렸다.윤지은은 내가 강제로 사모님을 자극했다며 나를 탓했다.“유미 지금 안 그래도 나약한 상태인데, 왜 그런 말을 직접 해?”나는 너무 난감했다.“누구는 뭐 이러고 싶은 줄 알아요? 하지만 사모님이 계속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고 환상 속에 살고 있는데, 계속 이러면 상태가 점점 악화해요.”윤지은은 내 말에 일리가 있다고 인정했지만 그와 동시에 사모님이 또 상처받을까 봐 걱정했다.나도 사모님이 현실을 받아들이게 하려면 그 과정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알고 있다. 하지만 사모님을 절망 속에서 끄집어내려면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나는 윤지은에게 말했다.“정말 사모님을 돕고 싶다면 모질어야 해요. 이럴 때 마음 약해지면 오히려 해치는 거예요.”윤지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내 말에 동의하는지, 내가 치료할 수 있도록 묵묵히 자리를 비켜줬다. 나는 나른하게 힘이 쭉 빠진 사모님을 잡고 진지하게 말했다.“죽은 사람이 다시 돌아올 수 없어요. 사모님이 속사한 건 알겠어요 하지만 지금 속상해할 때가 아니에요. 우리 할 일이 있어요.”“사장님 사고 단순 사고가 아니에요. 누군가 인위적으로 사고 낸 거예요. 사모님, 정신 차리고 우리와 함께 진실을 조사해요.”사모님은 텅 빈 눈으로 나를 보며 중얼거렸다.“그게 무슨 말이에요?”사모님을 깊은 슬픔에서 꺼내는 건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다.무엇보다 중요한 건, 서두르지 않고 그녀가 진실을 받아들일 수 있게 천천히 다가가는 것이다.나는 말투를 부드럽게 하며 방금 한 말을 또다시 반복했다.“사장님 교통사고에 수상한 점이 발견됐어요. 사모님도 사장님이 억울하게 돌아가시는 거 원하지 않죠? 우리 함께 진실을 알아내 사장님이 억울하게 죽임당하
나는 그 말을 들은 순간 식은땀이 송골송골 솟아올랐다.사모님 상태는 살짝 이상해 보였다. 아마도 의식이 혼미해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모를지도 몰랐다.나는 사모님이 바보 같은 짓을 할까 봐 서둘러 사모님 팔을 꼭 잡았다. 그러면서 계속 따라오지 않으면 강제로라도 데려올 생각이었다.“수호 씨, 이거 놔요. 난 남아서 호섭 씨랑 같이 있을래요...”사모님은 마구 버둥대며 소리쳤다.이러다가 사고가 날 것 같아 나는 아예 사모님을 어깨에 두러 업었다. 그러자 사모님은 곧바로 버둥거리며 소리쳤다.벼랑 끝에 서 있는지라 조금만 실수하면 함께 아래로 떨어질 수 있는 상황이었기에 나는 결국 사모님을 손날로 기절시켰다.내가 가드레일 안쪽으로 다시 넘어왔을 때 윤지은의 차가 마침 도착했다.“왜 그래?”윤지은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나는 사모님을 차에 앉히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사모님 지그 정신이 이상해서 현실과 환각을 구분하지 못해요. 방금 사장님이 춥다고 한다면서 옷 주러 내려가겠다고 했어요. 제가 제때 나타나지 않았으면 뛰어내렸을지도 몰라요.”윤지은은 내 말을 듣더니 미간을 찌푸렸다.“계속 이럴 순 없어. 우리가 잠깐은 지켜볼 수 있지만 평생 지켜볼 순 없잖아.”그때 내 머릿속에 문득 방법이 떠올랐다.“사모님께 사장님이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알려드리는 건 어때요?”“미쳤어? 이번 일로도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닐 텐데, 또 자극하자고?”윤지은은 내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이에 나는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제 할아버지가 남긴 의학 서적에 비슷한 사례가 있는데, 옛날에는 환자가 가족을 잃고 감정을 통제하지 못할 때 치료가 안 된다면 환자한테 희망을 줘야 한대요. 그 희망이 의학에서 말하는 기예요.”“그 기를 가진 환자가 음식 치료와 약물 치료를 함께 진행하면 서서히 회복할 수 있대요.”“사장님의 죽음에 수상한 점이 있잖아요. 그래서 사모님과 함께 그 사건을 수사하는 거예요. 아마 사모님도 사장님이 죽은 진실을 알고 싶을 거예요.”
장례식장 안을 모두 뒤져 봤지만 사모님은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리 조급하지 않던 내 마음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불안해졌다.사모님은 현재 몸 상태도 안 좋고 정서도 매우 불안하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가족한테 어떻게 말해야 할지 걱정됐다.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내 마음은 점점 불안해졌다.그러다 결국 방법이 없어 나는 문득 사모님 번호를 떠올려 그쪽으로 전화를 걸었다.전화는 계속 긴 연결음만 들릴 뿐 아무도 받는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내가 포기하려고 할 때 연결음이 꺼졌다. 액정을 확인하니 전화가 연결되었다.“사모님?”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수호 씨, 나 괜찮으니까 좀 내버려둬요.]사모님 목소리는 매우 우울해 보였고 기운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나한테는 너무 듣기 좋았다. 나는 다급히 물었다.“사모님, 어디 있어요? 너무 걱정돼요.”[혼자 있고 싶어요.]“알아요, 아는데 어디 있는지만 알려줘요. 사모님이 안전하다는 거 확인해야 해요.”전화 건너편에서 한참 침묵이 흘렀다.그때 갑자기 차 경적음이 들려왔다.그렇다는 건 사모님이 장례식장에 있는 게 아니라는 뜻이었다.나는 문득 사모님이 있을 수 있는 곳이 떠올랐다. 하지만 조심스럽게 물었다.“사모님, 알려주시면 안 돼요?”사모님은 아예 전화를 끊어버렸다.하지만 이미 대충 답을 얻은 나는 장례식장을 뛰쳐나가 택시를 잡고 사장님이 사고를 당한 곳으로 향했다.가는 길에 사모님을 찾았냐는 윤지은의 전화를 받은 나는 내 추측을 말했다.“아니요. 사모님 아마도 사장님 사고 난 곳에 있는 것 같아요.”[거긴 왜?]윤지은은 이해가 되지 않아 무의식적으로 물었다.“사장님 죽음이 수상해 직접 조사하고 싶었을 수도 있고, 단순히 사장님이 그리웠을 수도 있고... 아무튼 저 지금 가는 중이에요.”[그럼 먼저 건너가. 나 이따 바로 갈게.]나는 윤지은과 상의한 뒤 먼저 사장님이 사고 난 곳으로 향했다.사고가 난 곳은 절벽인데, 사모님은 마침 절벽
사모님의 이런 모습을 보니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입을 꾹 다문 채로 옆을 지켜드렸다. 그러다 저도 모르게 졸음이 몰려왔다.최근 계속 이리저리 다니다 보니 그동안 제대로 휴식한 적 없어, 나는 너무 피곤한 나머지 잠시 눈을 붙이려고 했다.하지만 잠을 편히 잘 수 없었다. 꿈속에서 정 사장님은 계속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나도 사장님을 구하고 싶었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사장님과 닿을 수 없었다. 그러다 꿈의 마지막쯤 정 사장님은 가면을 쓴 사람에게 살해당했다.꿈에서 놀라 깬 나는 이미 온몸이 식은땀에 푹 젖어 있었다.비록 꿈이었지만 꿈에 나온 장면들이 너무 생동해서 직접 경험한 것 같았다.밖은 어느 때부터인지 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했고, 유리창을 두드리는 빗소리가 최면 노래처럼 느껴졌다.피곤함에 눈을 비비다가 문득 사모님이 침대에서 사라졌다는 걸 발견한 나는 다급히 호텔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디에도 사모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나는 호텔 안을 마구 달리며 윤지은에게 전화했다.“혹시 유미 사모님 봤어요?”[나 계속 밖에 있어서 유미 본 적 없는데? 네가 유미 호텔에서 돌봐주던 거 아니었어? 그런데 어디 갔는지 모른다고?]윤지은이 반문했다. 이에 나는 얼른 설명했다.“제가 너무 피곤해서 잠깐 눈 붙였는데 깨어나니 사모님이 사라졌어요.”[넌 대체 뭘 할 수 있어? 사람 하나 돌보는 것도 못해?]윤지은은 나를 꾸짖기 시작했다.나는 얼른 전화를 끊고 이리저리 찾으며 물어봤지만 호텔 직원들도 모두 사모님을 본 적 없다고 했다.결국 나는 프런트에 달려가 물었지만 프런트 직원들도 못 보기는 마찬가지였다.“그럼 CCTV 한번 확인할 수 있을까요?”“안 됩니다. 호텔 규정상 CCTV는 함부로 보여드릴 수 없어요.”나는 다급히 말했다.“제 친구 남편이 이틀 천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 친구 정서가 엄청 불안해요. 반드시 빨리 찾아야 해요. 지금 우선 CCTV 확인해 줘요. 제가 당장 경찰에 신고할 테니까...”“안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여자가 이렇게 빨리 남편 시신을 화장하려고 하는 이유가 없다.내가 분명 이번 교통사고가 단순한 사고가 아닐 거라고 말했는데 들을 생각도 하지 않다니.나는 슬쩍 찔러보려고 다시 물었다.“왜 그렇게 서둘러요? 혹시 뭐 알고 있는 거 아니에요?”여자는 내 말을 듣더니 얼굴색이 확 바뀌었다. 나는 뭔가 찔린 듯 불안해하는 여자의 행동을 눈에 담았다. 그러고는 갑자기 여자의 손목을 덥석 잡았다.“뭔가 알고 있는 거죠? 알고 있는 거 다 얘기해요. 그게 이번 사고의 진실을 밝힐 수도 있어요...”“뭐 하는 거예요? 아파요.”여자는 내 손을 뿌리쳤다. 여자의 아들은 어머니가 괴롭힘당하는 걸 보자 바로 나를 막아섰다.지금 내 실력으로 두 사람을 상대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윤지은은 일을 크게 만들까 봐 내 팔을 쿡쿡 찔렀다.“됐어. 저 사람들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해.”나는 이대로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두 사람이 너무 수상해 반드시 기회를 잡아 두 사람의 입을 열어야 했다.하지만 점점 모여드는 구경꾼들 때문에 나는 결국 포기할 수박에 없었다. 만약 나 혼자였다면 내가 내키는 대로 소란을 피웠을 테지만, 정서가 불안정하기에 사모님한테 피해 가게 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이대로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나는 장례식장을 떠난 뒤 두 사람을 찾아 결판 낼 생각이었다.오늘 장례식장에 나타난 유가족은 또 있었다. 바로 운전한 오 기사님 가족이었다.오 기사님 가족은 얘기가 잘 통해 화장을 조금 미루기로 했다. 그들 역시 이번 교통사고가 수상쩍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오 기사님 아들은 심지어 확신했다.“제 아버지 운전 실력은 엄청 좋아요. 사고가 난 곳도 생전에 수백 번도 더 다녔던 곳이라 그 길을 잘 알고 있어요.”“아버지가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도 처음에 믿지 않았어요. 난 이번 일 제대로 조사해서 아버지 결백을 증명할 거예요.”겨우 생각이 같은 사람을 찾았다는 생각에 나는 너무 기뻤다. 결국 조금희의
“들여보내 줘요. 나 호섭 씨랑 같이 있을래요. 같이 있어 줘야 해요...”장례식장 입구에서 유미 사모님은 몇몇 직원들에게 가로막혀 애타게 울고 있었다.그 모습을 보자마자 나와 윤지은은 급히 달려갔다.“사모님, 여긴 왜 왔어요?”장례식장도 규칙이 있는데 가족 방문 횟수가 제한되어 있다. 우리가 나가기 전 분명 사모님더러 호텔에서 휴식하라고 했는데, 여기까지 올 줄은 몰랐다.한참 애를 먹던 두 직원이 얼른 말했다.“얼른 이분 좀 말려 봐요. 이곳 냉기를 보통 사람들은 견디기 힘들어하세요. 그런데 자꾸만 안에 들어가겠다고 하시는데, 절대 안 됩니다.”“그리고, 절차는 다 밟았나요? 다 밟았다면 얼른 화장할 수 있게 사인하세요. 시체 안에 계속 두고 있는 것도 좋은 선택은 아니에요...”나는 손을 저으며 두 직원의 말을 잘랐다.“네, 알겠어요. 먼저 가서 일들 보세요.”나와 윤지은은 유미 사모님을 조용한 곳으로 데려갔다. 사모님은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고 너무 지쳐 몸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그 모습을 보며 윤지은도 드물게 눈시울을 붉혔다.“유미야, 이러지 마...”윤지은은 흐느끼느라 말도 제대로 내뱉지 못했다.사모님 역시 슬피 울부짖었다.“왜? 좋은 사람은 복이 온다며? 그런데 왜...”“호섭 씨는 이 세상에서 가장 착한 사람인데. 호섭 씨가 가난한 사람을 위해 얼마나 많은 선행을 베풀었는데 왜 이렇게 된 거야? 왜...”처절한 외침에 듣는 나도 너무 괴롭고 삼장이 칼에 베이는 것처럼 아팠다.이 순간 어떤 위로의 말도 소용없다. 그 어떤 위로도 사모님의 비통한 심정을 달랠 순 없으니까.나는 그저 사모님이 진정할 수 있게 침을 놔줄 수밖에 없었다. 잠시 뒤 나는 조금 안정이 된 사모님을 안아 차에 앉혔다. 창백하고 초췌한 사모님의 얼굴을 보니 내 마음은 더욱 괴로웠다. 그때 윤지은이 이를 악물며 악에 받쳐 말했다.“이번 사건 우리가 꼭 밝혀낼게.”그 순간 나도 윤지은과 같은 마음이었다. 나는 속이 부글부글 끓었고 그걸 당장 토
나는 윤지은이 갑자기 이렇게 말할 거라고 생각지도 못해 무척 감격스러웠다.나 혼자 다른 도시에서 도움 없이 이 사건을 조사하는 건 확실히 힘들다. 하지만 윤지은이 같이 조사하겠다고 하니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겼다.나는 느릿한 말투로 진지하게 말했다.“이번에 우리 같이 손을 잡고 정 사장님을 위해 진실을 밝혀요.”그동안 나와 윤지은은 서로 고양이와 개처럼 항상 만나기만 하면 싸웠는데, 이번만큼은 힘을 합쳐 함께 정 사장님 사건을 조사하기로 했다.우리는 해야 할 일을 확인한 뒤, 강한나를 만나러 갔다. 강한나라면 전문가의 관점에서 우리를 도와 증거를 수집할 수 있을 테니까.“최선을 다해 볼게. 하지만 너무 큰 기대는 하지 마. 내가 방금 사건 기록을 봤는데 현장 사진과 다양한 증거들을 취합해 보면 단순 사고사일 수 있어.”“내가 의심했던 브레이크 흔적 거리인데, 이것도 어찌 보면 사고사일 수도 있고 다른 이유가 있을 수도 있어. 결론적으로 조사하기 매우 어려워.”한참 듣고 있던 윤지은이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현장 증거로 조사할 수 없으면 다른 쪽으로 출발해야겠네.”한창 낙담하고 있던 나는 윤지은의 말에 다급히 물었다.“혹시 방법이 있는 거예요?”윤지은은 팔짱을 끼면서 냉정하게 분석했다.“내가 알기로 운전한 기사는 호섭 씨랑 오랜 친구였고 운전 실력도 엄청 뛰어나. 이 점에서 출발하면 될 것 같아. 그리고 함께 차에 탔던 피해자 가족들도 조사해 볼 수 있어.”나는 맞장구치며 고개를 끄덕였다.“음, 좋은 방법인 것 같아요. 그럼 사고 유가족들부터 조사해 봐요.”강한나는 우리를 보며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정말 그렇게 할 거야? 이 사건이 만약 인위적인 거면 두 사람도 위험해. Y시는 국내 다른 도시들과 달라. 여긴 무법지대인 D국과 엄청 가까워.”윤지은이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그게 뭐? 의심 가는 구석이 있는데 그냥 덮자고? 그러고도 내가 무슨 친구야? 유미 지금 충격이 너무 커. 호섭 씨는 유미한테 가장 중요한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