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님은 고개를 저으며 탄식했다.사실 그녀도 알고 있었다. 소여정이 말하기 싫어한다는 걸.소여정이 말하지 않으면 강제로 입을 열게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두 사람은 계속 대하를 나누었다.다만 모두 피부 관리에 관한 것들이라 내가 끼어들 수는 없었다.솔직히 말하고 싶지도 않았다. 소여정을 마사지해주는 데 정신이 팔려 있었으니까.이렇게 아름다운 등을 매번 볼 수 있는 게 아니다. 때문에 기회가 왔을 때 잘 감상해 줘야 한다.그때 문이 갑자기 열리더니 남주 누나가 안으로 들어왔다.“푸들, 누나 왔어... 음, 누구세요?”남주 누나는 소여정과 사모님을 보자마자 표정이 확 변했다.소여정과 임 사모님이 워낙 미인이었으니까. 한 명은 매혹적이고, 한 명은 지넉이라 남주 누나는 처음으로 남들한테 꿀린다는 느낌이 들었다.게다가 내 주변에 자기보다 더 예쁜 여자가 나타났다는 게 씁쓸하고 질투가 났다.때문에 낯빛이 티가 날 정도로 변했다.내가 대답하기 전에 소여정이 먼저 반문했다.“그러는 당신은 누구죠? 방금 수호 씨한테 뭐랬어요? 푸들? 그거 무슨 뜻이에요? 수호 씨가 개라는 뜻인가요?”소여정의 말투는 매우 불친절했고, 눈빛은 매우 날카로웠다.나마저도 둘 사이에서 당장 폭발할 것 같은 분위기를 감지했다.남주 누나도 호락호락한 사람은 아니었기에 바로 표정을 찌푸린 채 말했다.“내가 뭐로 부르고 싶으면 부르는 거지, 당신이 무슨 상관이지?”“하, 무슨 상관이냐고? 이 남자가 내 사람인데, 나한테 왜 상관없지?”소여정도 쉽게 물러나지 않으며 아예 자리에 일어나 앉았다.소여정은 아래에 수건을 두르고 있어 그나마 괜찮았지만, 일어나 앉는 순간 완벽한 몸매가 그대로 드러났다. 남주 누나는 소여정의 몸매를 보며 하마터면 부러워 침을 흘릴 뻔했다.남주 누나는 평소 자기 몸매가 좋다고 자부해 왔다. 그런데 소여정에 비하면 하늘과 땅 차이였다.소여정은 속옷을 입지 않았는데도 가슴이 볼록하고 통통했그며, 모양이 아주 예뻤다.그걸 본 남주 누나는 얼마나
짝 하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소여정은 온 힘을 다해 남주 누나를 때렸는지 얼굴이 다 화끈거렸다.나는 억울하기도 하고 무섭기도 했다.억울한 건 괜히 끼어들었다가 뺨을 맞았기 때문이었고, 무서운 건, 이 뺨을 내가 대신 맞아서 망정이지 남주 누나가 맞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소여정은 보통 사람이 아니다. 남주 누나도 마찬가지고.소여정이 만약 남주 누나를 정말 때렸다면 남주 누나 성격에 절대 물러나지 않을 거다.“소여정 씨, 뺨도 때렸으니 이제 화 풀렸죠?”나는 뺨을 감싸 쥐고 억울한 듯 말했다.소여정은 안쓰러운 듯 나를 바라봤다.“아, 뭐 하는 거예요? 난 저 여자를 때리려던 건데, 그러게 왜 끼어들어서.”‘그게 더 무섭거든요? 정말 남주 누나를 때리면 두 사람이 서로 죽일 것처럼 싸웠을 거잖아요.’나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지만 겉으로는 그럴 듯 포장했다.“두 사람 모두 제 고객이라 싸우는 걸 보고 싶지 않아요.”소여정은 남주 누나를 째려봤다.“그래, 네 체면을 봐서 내가 참을게.”나는 겨우 다행이라고 마음을 놓았다. 하지만 뒤에 있던 남주 누나는 포기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누가 참는다는 거야? 내 의견은 물어봤어? 내가 참을 건지 물어봤냐고?”“남주 누나, 제발 그만해요.”나는 다급히 등 뒤에 있는 남주 누나를 바라봤다. 제발 누나가 좀 조용히 해줬으면 좋겠다.내가 뺨을 맞으면서까지 바꾼 평화인데, 남주 누나는 몇 마디 말로 다시 불을 붙였다.남주 누나는 나를 밀쳐 내더니 말했다.“수호야, 넌 말하지 마. 내가 저 여자 상대할 테니까. 네 얼굴은 나도 아까워서 못 때리는데, 저 여자가 뭔데 때려? 소여정이라고? 당장 사과해. 안 그러면 나 절대 안 참아!”소여정은 아예 깔깔대며 웃어댔다.그 모습을 보니 끝났다는 예감이 들었다.두 사람은 아니나 다를까 또 싸우기 시작했다.나는 얼른 사모님을 바라봤다. 지금 상황에 소여정을 말릴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사모님뿐일 거다.“사모님, 소여정 씨 좀 말려주세요.
나는 정신을 차리자마자 남주 누나를 밀쳤다.“누나, 지금 뭐 하는 거예요?”“헤헤, 나 방금 연기 어땠어?”남주 누나는 생글생글 웃으며 물었다.나는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인지 도저히 이해되지 않아 한참이 지나서야 말했다.“무슨 뜻이에요? 아까 일부러 그런 거예요?”“당연하지. 상대는 고작 정부인데, 내가 그런 사람과 싸울 필요 뭐 있어?”남주 누나는 능청스럽게 말했다. 그 표정을 보니 가짜는 아닌 것 같았다.하지만 나는 여전히 멍했다.‘연기 너무 잘하는 거 아니야? 눈치 하나도 못 챘는데.’“그런데 왜 그랬어요?”나는 이해가 안 됐다.그 말에 남주 누나가 내 목을 끌어안으며 사랑스럽게 말했다.“내가 그렇게 말하지 않으면, 네가 날 이런 구석진 곳에 데려오지 않았을 거잖아. 푸들, 내가 특별히 찾아왔는데, 이미 곁에 미녀를 끼도 있더라?”남주 누나의 말에 나는 정신을 차렸다. ‘누나의 남편이 이제 돌아왔는데, 왜 나한테 찾아온 거지?’게다가 누나가 남편과 몸을 섞던 장면을 떠올리면 나는 너무 괴로웠다.나는 무의식적으로 남주 누나의 팔을 뿌리쳤다.“왜 찾아왔어요? 남편도 돌아왔잖아요.”“얼씨구, 질투해?”“누가 질투한다는 거예요? 전 그럴 시간 없거든요. 남편도 왔으니 집에서 아이나 돌봐요. 밖에서 함부로 하고 다니지 말고요. 남편이 알면 화목한 가정도 깨질 거예요.”남주 누나는 갑자기 내 귀를 잡아당겼다.“이게 감히 나를 혼내는 거야?”나는 얼른 누나의 손을 뿌리쳤다.“걸핏하면 귀 잡아당기는 거 좀 안 할 수 없어요? 저 누나 아들 아니거든요!”나는 귀를 만지며 퉁명스럽게 말했다.그랬더니 누나가 생글생글 웃으며 갑자기 내 목을 끌어안았다.“내 눈에 넌 내 아들이랑 다를 거 없어.”“미쳤어요? 아들처럼 생각한다면서 나랑 잤어요?”‘대체 무슨 논리지?’남주 누나는 아무렇지 않은 듯 웃으며 말했다.“네가 귀엽다는 뜻이야. 네가 화내는 걸 보면 자꾸만 놀리고 싶어.”“그만 좀 놀려요. 전 누나 남편한테 들키고 싶지
“어떻게 그래요? 좋은 아내, 좋은 엄마가 되기 싫으면 왜 결혼했어요?”나는 점점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떻게 이런 여자가 있을 수 있지?’남주 누나는 내 허리를 꼬집었다.“마지막으로 경고하는데, 더 이상 나한테 그런 말투로 말하지 마. 안 그러면 가만있지 않을 거니까.”나는 한창 화가 나 있어 남주 누나의 말을 듣고 싶지 않았다.나와 남주 누나의 남편 모두 남주 누나한테 놀아났다는 생각이 들었다.하지만 남주 누나는 어린아이를 달래는 것처럼 나를 달랬다.“바보, 넌 아직 너무 어려서 내가 말하는 걸 모를 거야. 나중에 크면 너도 날 이해할 거야. 난 현재에 만족하는 여자가 아니야. 가족의 강요가 없었으면 결혼도 안 했을 거고.”“혼인은 나한테 아무 의미 없어. 하지만 이왕 결혼했으니 나도 가정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것뿐이야. 난 이미 충분히 잘했다고 생각하거든. 좋은 아내, 좋은 엄마를 잘 연출했으니까.”“아내이자 엄마이기 이전에 나도 하나의 인격체야. 나도 내가 원하는 생활이 있고, 나도 즐기고 싶어. 내가 이기적이라고 해도 좋고, 너무 독고다이라고 해도 좋아. 하지만 내가 모든 걸 참아가면서 가족을 위해 아내의 본분을 지키라고 하면 할 수 없어.”나는 남주 누나가 이해되지 않아 빤히 바라봤다.“그런 말 남편한테 했어요? 결혼 전에 했어. 남편이 괜찮다고 했거든. 나도 남편더러 밖에서 즐기라고 했어, 그런데 그 사람이 싫다고 한 거야.”“그럼 남편이 누나가 밖에서 어떻게 하고 다니는지 알아요?”내 말에 남주 누나가 고개를 저었다.“아마 모를 거야. 애초에 나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나중에 남편이 참 착한 사람이란 걸 알았거든, 내가 혼자 밖에서 그런 짓을 하고 다니면 남편한테 상처가 될 수 있겠더라고.”“그러니까 더 그러면 안 되죠.”나는 내 속마음을 털어 놓았다.남주 누나가 피식 웃었다.“네가 그렇게 말할 줄 알았어. 사람들은 늘 남한테 도덕의 잣대를 들이대더라. 여자는 결혼하면 응당 남편을 섬겨야 하고, 아내 된 도리를 지
“너 우리 남편 만났어? 언제? 혹시 그날 밤, 차에서?”남주 누나는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머릿속에 그날 밤 화면이 떠올랐다.남주 누나는 나의 목을 꽉 끌어안고 자신의 무게를 나한테 실으면서 물었다.“그날 밤 맞지? 그렇지?”난 남주 누나의 행동 때문에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하고 머릿속이 하얘졌다.피하고 싶었지만 어디로 피해야 할지 몰랐다.“우리, 차에서는 한 번도 안 했던 거 같은데, 한번 체험해 보고 싶지 않아?”남주 누나는 또다시 나를 유혹해 왔다.난 본능적으로 욕구가 솟구쳤다.온몸의 피가 모두 한곳으로 쏠리는 듯했다.하지만 아직 이성이 남아 있었기에 이 선을 절대로 넘어가선 안 된다고 나 자신을 설득했다.“아니요. 다시는 저 꼬시지 마요. 다시는 누나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을 거예요.”“정말 싫어? 그러면 내가 한번 만져봐도 돼?”남주 누나는 말하면서 뽀얗고 부드러운 손을 나의 옷 속에 넣었다.그 모습은 마치 한 마리의 여우 같았다.남주 누나가 무슨 일을 하려는지 알고 있었기에, 나는 누나의 손을 다급히 잡으면서 말했다.“하지 마요, 빨리 회사로 들어가 봐야 해요.”말을 마친 뒤, 나는 남주 누나를 밀어냈다.하지만 남주 누나는 갑자기 내 허리에 다리를 둘렀다. 그러고는 내 다리 위로 올라왔다.난 순간 참기가 어려울 만큼 괴로웠다.이건 본능적인 신체적 반응이라 어쩔 수가 없었다.제어하려고 해봐도 제어가 되지 않았다.“뭐, 뭐 하는 거예요? 이러지 마요. 남편이랑 뜨거운 밤 보낸 거 아니었어요? 왜 또 저한테 이러는 거예요?”난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남주 누나의 욕구가 이 정도로 강했던가?’‘어젯밤 분명 남편이 집으로 돌아갔는데 오늘 왜 또 나를 찾으러 온 거지?’‘나보다도 성욕이 강하잖아!’남주 누나는 나의 목을 끌어안고 미친 듯이 뽀뽀를 해댔다.“넌 남편이랑 달라. 남편이랑 하는 건 부부관계고 너랑 하는 건 자극적이어서 좋아! 나도 너랑 뭐 하려고 온 건 아니었
“푸들, 너 나랑 다시는 안 한다며?”일을 마치고 남주 누나는 배시시 웃으면서 나를 쳐다보았다.난 너무 부끄러웠다. 난 분명 그런 말을 하기도 했고 속으로 맹세까지 했었다.하지만 결국 나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엄청 후회됐다.나의 뺨을 후려치고 싶은 심정이었다.‘왜 또 남주 누나랑 얽힌 걸까?’남주 누나는 옷을 정리하고 나의 곁으로 오더니 웃으면서 나의 볼을 꼬집었다.“알겠어. 그만 화 풀어. 아까는 농담한 거야.”“난 너 엄청 좋아해. 다시는 나랑 안 한다는 말 하지 마.”그 말인즉 앞으로도 나를 괴롭힐 거란 뜻이었다.순간 머리가 아팠다.난 후회에 가득 차 머리를 쥐어뜯었다. 그러고는 누나한테 말했다.“전부 제 잘못이에요. 제가 누나를 건드리지 말아야 했는데. 이번이 마지막이었으면 좋겠어요. 우리 앞으로는 연락하지 마요.”남주 누나는 전혀 타격이 없는 듯 되레 웃으면서 말했다.“그래. 네가 연락 안 하는 건 네 자유지만 내가 너한테 연락하는 건 막지 못할걸.”난 속으로 끝났다고 생각했다.평생 남주 누나한테서 벗어나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남주 누나가 떠나가는 뒷모습을 보다 보니 머리가 지끈지끈 아팠다.밖에 나온 시간도 꽤 지났으니 난 일단 먼저 가게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소여정이랑 사모님 모두 아직 가게에 있었다.소여정은 마치 심사하는 듯한 눈빛으로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물었다.“그 여자랑 같이 나가서 왜 이렇게 오래 있었어? 나가서 뭐 했어?”난 소여정이 경험이 풍부한 여자라는 걸 알고 있었다.소여정은 분명 나랑 남주 누나가 뭘 하고 왔는지 알고 있을 것이다.하지만 난 인정할 수 없어 핑계를 댔다.“아무것도 안 했어요. 그저 혼 좀 내줬어요.”“혼을 내줘? 어떻게 혼냈는데? 몽둥이로?”소여정의 말속에는 다른 의미가 숨어 있었다.난 순간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왠지 모르게 자꾸 힐끔힐끔 사모님을 보게 되었다.사모님이 나를 안 좋은 사람이라고 오해할까 봐 걱정되었다.왠지 모르게 사모님
사모님이 떠나는 걸 보니 왠지 아쉬웠다.사모님처럼 우아한 사람과 지내면 뭔가 조화롭고 편안한 기분이 든다.게다가 항상 양반댁 규수 같은 지적인 이미지를 풍기고 있어 진정한 명문가 자제라는 느낌이 들곤 한다.하지만 그렇다고 떠나겠다는 사모님을 붙잡을 이유도 없었다.나는 아쉬워하며 소여정을 바라봤다.그랬더니 소여정이 갑자기 나에게로 걸어오는 게 아니겠는가? 심지어 그 눈빛은 뭔가 조금 이상했다.나는 무의식적으로 두 걸음 후퇴했다.“왜 그래요? 왜 그렇게 이상한 눈으로 보는 거예요?”소여정은 야릇하게 웃으며 내 그곳을 바라봤다.“아까는 친구가 있어서 몸 좀 사렸는데, 이제 갔으니 하고 싶은 대로 할게.”“하고 싶은 대로 하겠다니요? 뭘 어쩌겠다는 뜻이에요?”나는 점점 경계했다. 소여정은 나를 기습하려는 것 같았다.아니나 다를까 내 추측이 맞았다. 소여정이 나에게 다가오더니 갑자기 나를 잡았다.다행히 영민한 나는 신속히 옆으로 숨어버렸다.하지만 속으로는 이 여자가 미쳤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미쳤어요?”나는 너무 화가 나, 소여정의 신분도 망각한 채 버럭 소리쳤다.‘고급 정부면서 나에게 손을 대다니, 나를 죽일 작정인가?’처음에 나를 놓친 소여정은 포기하지 않고 두 번째 공격을 가했다.소여정은 의외로 꽤 영민했다.그녀는 나를 잡지 못했지만 내 옷자락을 잡았다.그렇게 옷을 꽉 잡은 채로 한사코 잡아당겼다.“뒤돌아서 얼굴 보여줘.”“미쳤어요? 대체 뭐 하자는 거예요?”“볼 거야. 아까 그 여자랑 했는지 안 했는지.”소여정은 그제야 자기 목적을 말했다.나는 미칠 것만 같았다.“이봐요, 소여정 씨는 임천호의 여자잖아요. 난 소여정 씨한테 내 몸 보여줄 배짱 없거든요. 그랬다간 언젠가 그 사람한테 죽을지도 모른다고요.”“겁쟁이. 내가 말했잖아. 임천호는 다른 도시에 있다고. 수호 씨랑 내가 말하지 않으면 그 사람이 알 리 없잖아.”“그래도 안 돼요. 조심해서 나쁠 건 없잖아요. 그쪽한테 꼬투리 집히지 않으려면.”소여정은 끝
‘그거라면 쉽지 않나?’‘남주 누나랑 아무 짓도 안 하고 얘기만 나눈 척하면 되잖아?’하지만 소여정은 내 생각을 사전에 차단했다.“전제는 거짓말하지 않는다는 거야. 내가 그 여자한테 가서 사실 확인했을 때 거짓말인 게 밝혀지면 죽을 줄 알아.”그 말을 들은 순간 이 여자가 마녀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남주 누나를 찾아가 사실 확인까지 하겠다니.‘고작 이런 일로 그럴 필요가 있나?’소여정은 왠지 나를 못살게 구는 것 같았다.그 사실에 나는 정말 미칠 것만 같았다.“소여정 씨, 이게 재밌어요? 나 정말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에요. 왜 나를 못 잡아서 안달이에요?”소여정이 되물었다.“내가 언제 또 그랬다고 그래? 내가 여기서 소비하면서 준 팁이 적었어?”“아니요.”“그럼 수호 씨 마사지 실력에 컴플레인 건 적 있어?”“없어요.”“그런데 내가 못 잡아서 안달이라니?”“계속 사적인 일을 꼬치꼬치 캐묻고, 쉴 새 없이 괴롭히잖아요.”나는 억울한 점을 솔직히 얘기했다.그랬더니 소여정이 피식 웃었다.“이봐, 나 임천호 여자야. 내가 여기 와서 소비하기 전에, 수호 씨 인성 알아보는 게 뭐가 잘못됐어?”‘정말 그럴 목적이라고?’‘내가 괜한 걱정을 한 건가?’나는 살짝 찔렸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확신이 서지는 않았다.소여정은 눈을 가늘게 접으며 나를 바라봤다.“설마 내가 수호 씨 마음에 들어서 스폰하려 한다고 생각하는 거야?”나는 할 말이 없어졌다.소여정은 이내 콧방귀를 뀌었다.“내가 노는 걸 좋아하는 건 맞지만, 목숨 갖고 장난치는 사람은 아니야. 아무거나 막 주워 먹는 사람은 더더욱 아니고. 수호 씨 내 스타일 아니야.”정말 소여정의 말대로라면 기뻐해야 하는 게 맞는데, 나는 왠지 기뻐할 수 없었다.사람의 감정은 때때로 참 신기하다. 남이 귀찮게 굴 때는 싫다가 신경 쓰지 않으면 또 실망한다.‘내가 정말 누구를 좋아하면 자존심도 버리는 스타일인가?’‘그러지 않으면 막 마음이 안정되지 않나?’‘안돼. 그럴 순 없어. 그건
나는 더 이상 이영미와 한 공간에 있을 엄두가 나지 않아 헐레벌떡 도망쳤다.그 와중에도 이영미는 나더러 자기 남편 꼭 데려오라고, 안 데려오면 가만두지 않겠다며 윽박질렀다.결국 나는 어쩔 수 없이 윤해철에게 전화했다.[수호 군, 나도 마침 자네한테 볼일 있었는데.]“무슨 일인데요?”[회사 일은 내가 이미 다 처리했으니 방법을 대서 우리 마누라한테 좀 전해줘. 내가 요즘 데리러 갈 거라고.]타이밍이 참 기가 막혔다.이영미가 하고 싶다고 할 때 윤해철이 마침 이영미를 데리러 올 생각이었다니.나는 다급히 윤해철에게 말했다.“방금 사모님을 뵀는데 사모님도 회장님을 무척 그리워하셨어요.”[마침 잘됐네. 그럼 지금 당장 데리러 가지.]“윤 회장님, 잠깐만요.”[왜 그러나?]“사모님은 지금 집에 안 계세요. 밖에 있어요...”나는 이 사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막막했다.그러다 문득 내가 집을 나올 때 이영미가 보냈던 주소가 떠올라 나는 그 주소를 윤해철에게 보내고 그곳에서 이영미를 찾으라고 했다.어떻게 설명할지는 부부가 만나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일이었다.이영미를 그렇게 보내고 나니 내 임무도 완수한 셈이었다.전화를 끊고 얼마 뒤, 나는 마침 장을 보고 온 애교 누나와 마주쳤다.“수호 씨, 왜 여기 있어요?”나는 대충 얼버무려 상황을 무마하면서 애교 누나의 짐을 들어주었다.“애교 누나, 저 마침 가게에 나가볼 참이었어요. 형수는 수고스러운 대로 누나가 좀 돌봐줘요. 제가 가능한 빨리 도우미를 구할게요. 그러면 누나도 이렇게 고생할 필요가 없으니까요.”애교 누나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말했다.“나도 어차피 할 일이 없으니 태연이 돌보는 건 나한테 맡겨요. 내가 어려울 때 태연이도 항상 나를 도왔는데 지금은 태연이가 어려운 시기이니 당연히 내가 도와야죠.”“그런데 일 구하고 싶다고 하지 않았어요?”“일은 뭐 구한다고 바로 구해지는 건가요? 나 공무원 시험 준비하려고요. 나도 아버지 말고 나 스스로 능력을 증명하고 싶어요.”애교 누나
“그럼 얼른 누우세요. 빨리 끝낼게요.”이영미는 두말없이 소파 위에 엎드렸다.나는 먼저 이영미의 허리부터 주물렀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이영미의 입에서 야릇한 신음이 흘러나왔다.“어머님,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나는 흠칫 놀라 손을 뒤로 뺐다.그랬더니 이영미가 발긋한 얼굴로 말했다.“남자가 내 몸 만지는 게 오랜만이라 흥분했나 봐.”“계속 그러면 제가 어떻게 주물러 드려요?”“이거 다 정상적인 반응이잖아. 의사라는 사람이 침착해야지.”나는 이런 목소리를 듣고도 어떻게 침착할 수 있는지 알고 싶었다.사람 혼을 쏙 빼놓는 듯한 목소리는 아마 내시가 들어도 견디지 못할 거다.“안 돼요. 계속 그러면 마사지 안 해드릴 거예요.”나는 참지 못해 난처한 상황이 생길까 봐 먼저 물러섰다.하지만 이영미는 그것조차도 반대했다.“안돼. 계속 해. 안 그러면 안 갈 거니까. 나도 이것저것 다 겪어본 사람인데 뭔들 못 봤겠어? 그러니 어색하지 마. 내 눈에 수호 씨는 꼬맹이나 다름없으니까. 난 괜찮아.”이영미는 괜찮다고 말했지만 나는 괜찮지 않았다.나도 이제 성인이고 혈기 왕성한 나이인데, 어떻게 아무 일 없다는 듯 여길 수 있냔 말이다.하지만 이영미는 한사코 내 팔을 꽉 잡고 어디 가지도 못하게 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닿는 피붓결에 나는 마음이 더 콩닥거렸다.“알았어요. 그럼 잘 누워 있어요. 계속 마사지해 드릴게요. 하지만 소리 나지 않게 좀 참아주세요.”“그건 안 되지. 욕망을 억누르는 건 몸에 안 좋아.”이영미의 말은 예전에 남주 누나가 했던 말과 똑같았다.하지만 어쩌겠나? 나는 그저 참을 수밖에 없었다.이영미는 내 마사지를 받으며 한편으론 감탄했다.“여자는 역시 남자의 사랑을 받아야 한다니까. 혼자 하는 건 너무 재미없어. 남자도 마찬가지로 여자의 손길이 필요한 법이지. 안 그러면 조물주가 왜 남녀 성별을 따로 만들었겠어? 그것도 상호 보완할 수 있게. 안 그래?”나는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였다.“네, 맞아요. 여기 느
이영미는 제비집이며 인삼 등 다양한 보양식을 가져왔다.“어머님, 이거 다 너무 귀한 것들이에요.”“이건 다 수호 씨 형수 주려고 가져온 것들이야. 지금 의식이 없다고 해서 죽만 먹이면 안 돼. 영양소를 많이 공급해 줘야지.”나는 형수 대신 감사 인사를 전했다.“혹시 윤지은 씨는 함께 오지 않았어요?”그때 애교 누나가 불쑥 물어봤다.“그 계집애는 또 무슨 일인지 함께 내려오자고 하니까 기어코 싫다고 하지 뭐야.”이영미는 말을 마친 뒤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봤다.“혹시 우리 지은이랑 싸웠어?”“아니요.”“못 믿겠는데? 지은이가 말은 독하게 해도 마음씨는 착한 애야. 네 형수 줄 거라니까 이렇게 바리바리 준비해 준 걸 보면 네 형수를 친구로 생각한다는 뜻이거든. 그런데도 기어코 직접 오지 않겠다는 걸 보면 이유는 하나야. 바로 너. 너희 둘 요즘 싸웠지?”나는 더 이상 그 일을 언급하고 싶지 않았다.“어머님, 정말 아니에요.”하지만 이영미는 포기할 줄을 몰랐다.“아니긴 무슨. 두 사람 분명 문제 있는데.”그때 애교 누나는 내가 말 못 할 사정이 있다는 걸 눈치챘는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얘기 나누세요. 저는 내려가서 뭐 좀 사 올게요.”역시 애교 누나는 내가 말하기 부끄러워할까 봐 배려해 주려고 자리를 피한 거였다.애교 누나가 떠난 뒤 이영미는 내 옆에 꼭 붙어 앉았다.“이제 다른 사람도 없으니 말할 수 있지? 대충 얼버무릴 생각하지 마. 솔직히 말하지 않으면 나도 수호 씨 용서 안 할 거니까.”이영미가 계속 꼬치꼬치 캐묻자 나는 할 수 없이 그날 병원에서 싸웠던 일을 솔직히 털어놓았다.“어머님도 제가 쓰레기 같아요?”“응. 조금. 내 딸과 사귀면서 다른 여자와도 사귄다니. 내 딸의 매력이 그렇게 부족해? 한 명으로는 만족하지 못 하는 거야?”이영미의 말에 나는 울 수도 웃을 수도 없었다.“어머님은 저와 지은 씨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잖아요. 우리는 각자 원하는 걸 교환한 것뿐이지 마음을 주고받고 결혼 얘기까지
나는 내가 예전에 살던 방을 들여다보았다.이곳은 내 추억이 너무 많이 깃든 곳이다. 상황만 그렇게 되지 않았어도 이곳을 떠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익숙한 물건들을 보니 나는 문득 형수와 있었던 일들이 하나둘씩 떠올랐고 형수의 웃음소리가 귓가에 맴도는 듯했다. 그 모든 건 어제 벌어진 일처럼 생생했다.“저 잠깐 형수 좀 보고 올게요.”나는 형수 방으로 향했다.혼자 얌전히 누워 곤히 잠든 형수의 모습은 마치 잠자는 숲속의 공주 같았다. 눈을 감고 고른 숨소리를 내며 이불을 덮은 모습은 진짜 그냥 자는 것 같았다.나는 젖은 수건으로 형수의 몸을 닦아준 뒤 면봉에 물을 묻혀 형수의 입을 적셔주었다.형수의 현재 상태는 기껏해야 죽 같은 음식밖에 먹일 수 없고 또 매일 많은 량을 먹을 수도 없다. 나도 당연히 형수가 빨리 깨어나기를 바라지만 그날 밤 이후로 내가 무슨 짓을 해서 자극해도 형수는 아무 반응도 하지 않았다. 얼마 뒤, 애교 누나가 죽 한 그릇을 들고 들어왔다.“내가 먹일게요. 수호 씨는 불편하면 가서 쉬어요.”“네. 애교 누나. 그럼 부탁할게요.”사실 나는 너무 아파 더 이상 형수를 돌볼 상황이 아니었기에 곧장 내 방으로 들어갔다.형수는 내 방을 예전 내가 떠나던 그날 그대로 남겨두었다.형수와 이곳에서 있었던 일들을 떠올리니 왠지 감회가 새로웠다.나는 침대에 누워 한참을 뒤척였지만 끝내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첫 번째는 나비 때문이었고 두 번째는 형수의 일 때문이었다.원래 나비 일은 이제 그냥 묻어두려고 했는데 결국 어젯밤 또 그렇게 되어버렸다.솔직히 나 스스로도 내가 헛것을 봤나 하는 의심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게, 용천 호텔에서의 그날 밤 나와 잔 사람이 세 명 중 한 명이라면 아무리 해도 아귀가 들어맞지 않는다.결국 나는 환각이라고 스스로를 달랠 수밖에 없었다.나는 침대에 똑바로 누운 채 눈을 지그시 감고는 30분 동안 얕은 수면을 취했다.고작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래도 잤다고 정신상태는 훨씬 나아졌다.침실에서 나와 보
그 순간 나는 머리가 띵했다. 나는 애써 눈을 뜨려고 했지만 머리가 너무 어지럽고 눈꺼풀이 무거워 도저히 뜰 수 없었다.다만 그 와중에 약간의 의식은 존재했다.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용천 호텔에서 나와 몸을 섞은 사람이 사모님이라고 생각했다. 나중에 사모님 댁에서 지내면서 사모님 다리에 있는 나비 문신을 보고 내 추측을 확신했고.하지만 지금껏 나는 그게 사모님이든 아니든 무조건 사모님과는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최면했다. 무슨 일이 있든 간에 사장님께 미안한 행동은 할 수 없었으니까.하지만 오늘 저녁 나는 또 잠결에 그 나비를 보게 된 거다. 그 순간 나는 머리가 터질 것만 같았다.‘뭐지?’오늘 여기 있는 사람 중에 그날 용천 호텔에 있었던 사람은 오직 애교 누나뿐이다.하지만 애교 누나 몸에는 분명 나비 문신이 없다.게다가 나는 애교 누나 몸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데 애교 누나의 피부는 이 정도로 희지 않다.하지만 애교 누나가 아니면 또 누구란 말인가?고아연? 아니면 고수연?그날 밤 나는 이 두 여자를 본 적이 없다.나는 이 상황이 어리둥절했고 상대가 누구인지 갈피를 잡을 수 없다는 게 너무 답답했다무엇보다 오늘 너무 취해 머리가 어지러웠기에 눈을 뜰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나는 정신도 차리지 못한 채로 애써 몸부림쳤지만 결국 의식이 점멸되어 그대로 잠들어 버렸다.그리고 나는 다음 날까지 푹 잠들었다.내가 바닥에서 일어났을 때 다른 사람들은 이미 모두 깨어났다. 내가 그중 맨 마지막에 깨어난 듯했다.나는 아픈 머리를 문지르다가 테이블을 치우는 애교 누나를 발견했다.“누나, 다른 사람들은요?”애교 누나는 테이블을 정리하면서 대답했다.“다들 일이 있다고 먼저 갔어요. 수호 씨를 방에서 자라고 하려 했는데 너무 깊이 잠들어 아무리 깨워도 깨지 않더라고요.”“애교 누나, 어젯밤 혹시 안 잤어요?”나는 몸부림치며 일어나 의자에 앉았다.그때 애교 누나가 입을 열었다.“늦게 잠들긴 했지만 안 잔 건 아니에요. 나
윤지은은 대체 진동성을 어떻게 처리했는지 그 일이 있은 후 진동성은 한 번도 나타난 적이 없다.때문에 우리는 형수를 집으로 모신 뒤 번갈아 가면서 돌보기로 했다. 그러는 게 서로서로 안심이 되기도 했으니까.그 일로 애교 누나는 아버지를 설득해 원래 살던 형수네 옆집으로 다시 이사 오게 되었다. 그러면서 나한테 다시 함께 살자고 초대했다.나는 잠시 고민 끝에 결국 고개를 저었다.“안 돼요. 당분간은 누나랑 같이 살 수 없어요.”“왜요?”애교 누나는 실망스러운 듯 나를 바라봤다.나는 애교 누나의 얼굴을 감싸면서 진지하게 말했다.“이 사실을 누나 아버지가 알게 되면 저를 더 싫어하실 거예요. 그러니까 제가 성공하기 전까지 같이 살면 안 돼요. 그래야 누나 아버지를 화나게 하거나 누나 명성에 누가 되지 않을 거예요.”애교 누나는 이내 미소를 되찾았다.“바보. 수호 씨가 나를 이렇게 생각할 줄은 몰랐어요.”“당연하죠. 저는 정말 누나랑 결혼하고 싶어요. 때문에 누나 명성을 제가 망가뜨릴 수는 없어요.”“그래요. 수호 씨 말에도 일리가 있네요. 하지만 월세방에서 지내는 건 너무 머니까 태연이네 집에서 지내는 건 어때요?”애교 누나의 제안에 나는 살짝 어리둥절했다.“왜요?”“예전에도 태연이네 집에서 지냈잖아요. 지금 다시 거기서 지내는 게 당연한 거 아니에요? 그리고 동네 사람들도 태연이 교통사고로 의식이 없는 걸 알고, 진동성은 바빠서 집에 잘 들어오지 않는 것도 아니까 동생이 대신 형수 돌보는 건 당연하잖아요.”애교 누나는 조리 정연하게 분석했다.사실 애교 누나는 내가 자기랑 같이 살든 아니면 형수 집에서 지내든 가까이에 있고 싶은 거였다. 하지만 나도 나름 걱정이 있었다.“진동성과 형수 사이에 이혼 얘기가 오가고 있다는 건 언젠가 소문이 퍼질 거예요. 그런데 제가 형수 집에 무슨 신분으로 있겠어요? 이건 형수의 평판에도 안 좋아요. 차라리 월세방에서 지내면서 매일 보러 갈게요.”애교 누나는 아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하지만
“괜찮아요.”“혹시 불편하지는 않아요? 아까 걸을 때 보니 허리를 짚고 걷던데요.”나는 걱정이 되어 물어봤다. 무엇보다 방금 사모님이 계속 허리를 짚고 걷는 걸 보니 허리가 분명 불편한 것 같아 보였다.아니나 다를까 사모님은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제가 주물러 드릴까요?”“아, 아니에요.”사모님은 갑자기 얼굴을 붉히며 어색하게 행동했다.‘대체 왜 이러지?’사모님이 싫다고 하니 나도 더 이상 강요하지 않았다.하지만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려고 할 때 사모님이 갑자기 나를 불러 세웠다.“수호 씨, 그날 밤 일은...”나는 약간 어리둥절했다.‘어느 날 밤을 말하는 거지?’그러다가 사모님이 부끄러워하는 표정을 본 후에야 나는 사모님이 치마가 젖었던 그날을 말한다는 걸 깨달았다.나는 다급히 설명했다.“사모님이 말씀하지 않으면 진작 잊어버렸어요.”“정말요? 거짓말하는 거 아니죠?”“제가 왜 거짓말하겠어요? 저 매일 해야 할 일이 많아서 일일이 기억할 수 없어요.”사모님의 미소는 살짝 이상했다. 그건 아무리 봐도 겉웃음이었다.“그럼 다행이네요. 일 봐요.”나는 뒤돌아 집을 나섰다.그 시각 임유미는 안절부절못하며 치맛자락을 잡은 채 나를 훔쳐보았다.임유미는 요즘 왠지 모르게 저녁만 되면 참지 못하고 핸드폰을 꺼내 몰래 야한 영상을 보곤 한다. 그것도 나이 많은 여자 주인공과 젊고 잘생긴 남자 주인공이 나오는 영상을.영상 속 어린 남자 주인공이 여자 주인공을 누나라고 부를 때면 임유미는 따라서 흥분하곤 했고 강렬한 오르가슴을 느끼곤 했다.임유미도 자기가 요즘 왜 이러는지 의문이었지만 그렇다고 남편한테 털어놓을 수도 없었다.방금 나를 붙잡은 것도 아무 이유 없이 단순히 내 목소리를 듣고 내 탄탄한 팔뚝을 한 번 더 보기 위해서였다. 가끔 임유미는 자기 마음속에 다른 자신이 살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도 그럴 게, 그동안 자기한테 이런 모습이 있을 줄은 몰랐으니까. 심지어 가끔은 자기 친구들과 함께하
“사장님도 이미 최선을 다하셨어요.”나는 정 사장님을 매우 존경한다. 하지만 나더러 정 사장님처럼 하라고 하면 할 자신이 없다.내 생각도 사실은 만건희나 이규민과 다를 게 없다. 장사는 당연히 돈을 버는 게 목적이니까.하지만 이 일은 정 사장님이 나한테 부탁한 일이기에 나는 책임지고 정 사장님을 도와야 한다. 비록 모든 사람은 이미 마음이 변해 내가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지만.나는 정 사장님이 자책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어찌 됐든 이건 정 사장님 책임이나 의무가 아니니까.나는 더 이상 정 사장님을 귀찮게 하지 않으려고 방을 나왔다.사실 나는 정 사장님이 왜 이토록 박애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이런 사람이 공무원이 되었다면 분명 아주 훌륭한 사람이 되었을 텐데 말이다.사모님이 다가오자 나는 궁금했던 걸 물었다.“사모님, 뭐 하나 물어봐도 돼요?”“뭔데요? 물어봐요.”나는 얼른 궁금한 걸 물었다.“사실 좀 궁금해서요. 정 사장님은 왜 상회를 설립하셨어요?”“그걸 설명하려면 우리 그이 어릴 때부터 이야기해야 해요.”사모님은 나와 함께 소파에 앉더니 이야기를 시작했다.“사실 호섭 씨는 고아예요. 나도 들은 거지만 부모님 모두 병으로 돌아가셨대요. 그래서 어릴 때부터 의학을 파고들었고 커서도 계속 의학 분야에서 일했어요.”“화인당도 사실 돈을 벌려는 목적으로 오픈한 게 아니에요. 그냥 최선을 다해 병을 볼 수 없는 사람들이 병을 볼 수 있게 도와주기 위해서였어요.”그 말에 나는 속으로 감탄했다. 정 사장님이 이토록 위대한 분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호섭 씨는 착한 사람이라 누군가 병으로 고통받는 모습을 가장 싫어해요. 내가 이렇게 말하면 현실성 없다고 하겠지만 이게 사실인걸요. 호섭 씨는 누구한테나 친절해요. 선악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사람도 아니고요. 게다가 부모님께 효도하고 나한테 잘해줘요. 내 눈에 호섭 씨는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남자예요.”나는 고민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나도 깊이 동감하는 바니까.정 사장님은 모
“나는 이 사장을 따를 생각이 없지만, 정 사장 생각이 너무 허황한 건 사실이에요. 우리가 장사하는 목적이 돈 벌기 위해서인 건 맞잖아요. 그런데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걸 왜 하지 않으려 하죠?”민건희의 말을 들은 순간 나는 그의 의도를 파악했다.민건희는 겉으로는 정 사장님 뜻에 따르는 척했지만 사실 진작 마음이 변했다.테이블에 거의 엎드리다시피 몸을 앞으로 기울였던 나는 민건희의 말을 듣는 순간 몸을 뒤로 빼 의자에 기댔다.“민 사장님은 어떻게 하실 생각인가요?”민건희는 여전히 웃는 얼굴로 말했다.“솔직히 우리끼리 협력할 수 있어요. 강북 약재 시장 자원 대부분 정 사장이 쥐고 있으니 우리는 원가대로 다른 사장한테 팔면 그만이잖아요. 그러면 수호 씨도 정 사장한테 결과를 보여드릴 수 있고요.”“다만 서윤기한테만큼은 약재 가격을 좀 더 쳐줘서 그자가 우리를 도와 더 큰 이익 공간을 만들어줄 수 있게 하면 돼요.”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어떻게 쳐줄 건데요? 진짜 약재를 사용하면 서윤기가 제공하는 가격이 이미 최저 가격이에요. 민 사장님 말대로 하려면 약재를 바꾸는 수밖에 없어요.”민건희은 얼른 자기 생각을 말했다.“약재를 바꾸는 게 안 될 것도 없죠. 그저 품질이 좀 떨어지는 거로 바꿀 생각이지 가짜 약재로 숫자를 채우자는 게 아니잖아요.”나는 속내를 꿰뚫어 볼 것처럼 민건희를 빤히 바라봤다.적어도 민건희는 이규민이나 전광진과 다르다고 생각했는데, 민건희는 그저 다른 방식으로 제 욕심을 채우려 하는 것뿐이었다.나는 싱긋 웃으며 말을 아꼈다.“민 사장님, 오늘 만나지 않았던 거로 해요. 저는 이만 가볼게요.”내가 떠나려고 하자 민건희는 다급하게 일어섰다.“왜요? 싫어요? 내가 말한 방법은 우리 두 사람한테 모두 이로운 방법일 텐데 왜 싫다는 거죠?”“이건 정 사장님이 원하는 게 아니에요.”민건희는 대뜸 물었다.“정 사장 생각은 너무 현실성 없다고 생각하지 않나요? 백성들한테 좋은 일을 하자니, 그게 장사꾼이 할 수 있는 발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