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거부감이 들었다.그때 애교 누나가 싱긋 웃으며 내 손을 잡았다.“바보, 수호 씨가 그랬잖아요, 우린 앞으로 부부가 될 거라고. 그러면 내게 수호 거 아니겠어요?”“안 돼요. 누나 건 누나 거고. 제 것도 누나 거예요. 그런데 누나 건 제 거가 될 수 없어요.”나는 좀 마초적인 성향이 있어 여자가 내 돈을 쓰는 건 괜찮지만, 내가 여자 돈을 쓰는 건 안 된다.나는 잠깐 생각하다가 내 전 재산을 확인했다. 그런데 무려 300만 원이나 있었다.이 돈 대부분은 윤 사모님과 소여정이 준 팁이다.나는 그 돈이 이렇게 많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정말 돈 많은 여자들은 좋네.’나는 애교 누나한테 말했다.“누나, 제가 생각해 봤는데, 돈을 며칠 더 벌어 600만 원을 모으면 직접 사고 싶어요. 물론 비싼 차는 살 수 없지만, 교통수단으로 사용할 차 정도는 살 수 있을 거예요.”애교 누나는 나를 안쓰럽게 쳐다봤다.“뭐 하러 그래요? 어렵게 번 돈으로 차를 사면 앞으로 대출 갚는 것만 해도 빠듯할 거예요.”“빠듯해도 상관없어요. 남자면 남자답게 밖에서 돈 벌어와야죠. 누나 돈은 잘 모아둬요. 그건 모두 혼전 재산이니 저한테 쓸 필요 없어요. 전화 요금도 제가 누나 것까지 내줄게요.”애교 누나는 갑자기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그럼 수호 씨 돈으로 산 차 내 명의로 할 수 있어요?”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당연하죠. 제가 돈 버는 건 누나한테 주려고 버는 거잖아요. 누나야말로 제 차가 급이 덜어진다고 싫어하지 마요.”애교 누나는 풉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싫어할 리가 있나요. 그럼 이렇게 해요. 내가 점심에 찾아가서 돈 빌려줄 테니까 우선 그 돈으로 차 사요. 계속 이렇게 형수 차 타고 다니면 동네 주민들한테서 말 나와요.”나는 그 방법이 괜찮은 듯하여 누나에게 차용증까지 써 주었다.우선 누나한테서 400만 정도 빌려 계약금부터 내고 나머지는 대출로 갚으면 된다.나는 사실 진작부터 차를 하고 싶었다. 그것도 예쁜 차로.나는
나는 영상을 재생하지 않았다. 이렇게 하면 김진호에게 겁을 줄 수 있었으니까.김진호는 내가 영상을 찍었다고 하더니 안색이 단번에 변했다.“신고? 그래, 해 봐. 할 테면 진작 했겠지, 왜 지금까지 기다려?”김진호는 상대하기 쉽지 않았다. 내 말에 바로 본색을 드러냈지만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는 듯했다.이럴 때일수록 내가 강하게 나가야지 안 그러면 놈이 나를 무시할 게 뻔하다.나는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내가 못 할 줄 알아? 정 사장님 봐서 기회 한번 줬던 거야. 경찰이 가게로 찾아와 널 잡아가면 가게 명성에 누가 될까 봐. 하지만 경고하는데, 나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아. 계속 이렇게 시비 걸면, 내 뒤에도 사람 있어!”김진호는 썩 달갑지 않은 듯 말했다.“무슨 낯짝으로 뒤에 사람이 있다는 거야? 그 사람 윤 사모님이잖아. 윤 사모님이 너 도와주지 않았으면, 넌 아무것도 아니야.”‘그 노랑머리 일을 윤 사모님이 뒤에서 도운 줄 아나 보네.’김진호는 아마 소여정이 나를 도와줬다는 걸 꿈에도 모를 거다. 하지만 나는 설명하기도 귀찮았다.나는 김진호를 도발했다.“낯짝 운운하긴. 그러는 넌, 허구한 날 돈 많은 사모님한테 빌붙어 단물만 빨아먹을 생각이나 하고 있잖아. 그런데 결국 이 사모님 남편한테 두들겨 맞았지? 쪽팔리지도 않아?”내 말은 김진호의 아픈 곳을 단단히 찔렀다.김진호는 곧바로 나에게 덤벼들 것처럼 굴었다.나는 냉소를 지었다.“어디 한 번 손대 봐. 지금 윤 사모님은 내 고객이거든. 네가 날 괴롭힌 걸 그분이 알면 앞으로 그분 마음 돌릴 생각은 하지도 마.”김진호는 아직도 윤 사모님을 포기하지 않았기에, 내가 윤 사모님을 언급하자 바로 꼬리를 내렸다.나는 성공적으로 김진호의 약점을 잡은 셈이다. 이제 더 이상 그를 무서워할 필요도 없다.분노에 찬 김진호의 얼굴을 보니 나는 속이 다 후련했다.인맥으로 보나, 수단으로 보나 김진호는 나를 이길 수 없다. 그는 내 앞에서 그저 광대에 불과하다.김진호의 마사지룸에서 나오자 문
내가 차를 산 건 교통수단으로 사용하기 위함이라 가격이 적당하고 옵션만 다 갖추면 더 바랄 것도 없었다.지금 수중에 돈도 적어 대출을 끼고 사야 하니 현대를 사는 게 가장 수지가 맞았다.현대차 아반떼는 현대 자동차 중에 가장 싼 축에 속하는데 2,3천 정도다.할부로 사면 조금 더 저렴하게 살 수 있고 평생 관리 서비스까지 받을 수 있다.나는 별로 망설이지도 않고 현대 자동차를 사려고 결정을 내렸다.어느덧 오전이 훌쩍 지나 버렸다.애교 누나가 가게로 찾아오자 늑대 같은 남자 직원들은 하나같이 여자를 처음 보는 것처럼 내 마사지룸 문 밖에서 훔쳐봤다.나는 너무 화가 나 아예 문을 잠가버렸다.“여자를 본 적 없는 것처럼 왜들 이러지? 누가 보면 며칠 굶은 늑대인 줄 알겠네.”“애교 누나, 저 사람들 보면 멀리 물러나요.”애교 누나는 얼굴이 발그스레해서 싱긋 웃었다.누나는 오늘 특별히 연한 화장을 하고 아주 얘쁜 실크 원피스를 입어 아름답고 분위기가 남달랐다.“그래요, 알았어요. 우리 차는 언제 보러 갈래요?”시간을 보니 벌써 점심 휴식 시간이라 나는 애교 누나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지금 가요. 이 부근에 현대 자동차 매장이 있어요.”“현대 자동차 사려고요? 결정 내렸어요? 현대 아반떼가 고작 2, 3천만 정도라던데, 동력이 별로래요.”“저한테는 그거면 돼요. 나중에 돈 모으면 BMW나 아우디로 바꾸면 되죠.”내 태도는 확고했다. 이 차는 싸고 대중적이라 사는 사람이 많았다. 그런데 나라고 왜 안 되겠나?애교 누나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요, 결정했다면 됐어요. 거기로 가요.”나는 애교 누나와 함께 현대 자동차 매장으로 향했다.매장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직원에게 물었다.“현대 아반떼 사려고 하는 데 지금 있어요?”“네, 고객님.”미리 차를 골라놓은 상태라 시승만 해보고 문제없으면 바로 구매할 수 있었다.이 차는 형수의 쉐보레와는 비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나는 무척 만족스러웠다.이건 내 생의 첫 차이기도 하니까. 나에게는
당연히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들은 애교 누나는 얼굴부터 한꺼번에 붉어졌다.“그래도 안 돼요. 아직 안전기 아니란 말이에요.”나는 아쉬운 듯 애교 누나의 손을 잡고 귓가에 대고 애교 부렸다.“끝까지 할 필요는 없고 어제처럼만 해주면 돼요.”“나, 나빴어요. 중독이라도 됐어요?”애교 누나는 약간 토라진 듯한 말투로 말하며 나를 째려봤다.나는 헤실 웃었다.“네, 중독됐나 봐요. 누나 손이 너무 부드러운 걸 어떡해요.”애교 누나는 나더러 그러지 말라고 했지만 나는 누나 말을 듣지 않았다.누나는 다른 사람한테 꽁냥거리는 모습이 들킬가 봐 걱정하는 듯했지만 결국에는 타협했다.나는 너무 감격스러웠다.겨우 애교 누나랑도 차에서 해볼 수 있다니. 그것도 내 차에서. 나는 더 이상 차를 어지럽힐까 봐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구매 절차는 아주 빨리 끝났다.이제 겨우 내가 산 차에 사랑하는 사람을 태우고 곳곳을 다닐 수 있다.나는 차를 외진 골목에 세우고 애교 누나랑 그곳에서...반 시간 뒤, 나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애교 누나도 얼굴이 잘 익은 사과처럼 빨갛게 무르익었다.“앞으로 이러지 마요. 손 너무 아파요.”나는 애교 누나를 끌어안고 강하게 입 맞췄다.“그래요. 당분간 아무 짓도 안 하고 누나 말만 들을게요.”“그 말은 만족했다는 뜻이죠? 아까 내가 만족시켜 주지 않아도 이런 말 할 거예요?”애교 누나는 믿기지 않는 듯 고개를 들고 나를 바라봤다.나는 애교 누나를 보며 진지하게 설명했다.“나는 누나를 속이고 싶지 않아요. 누나가 방금 도와주지 않으면 저 정말 참지 못했을 거예요. 그런데 도와줘서 이제 만족해요.”나는 걱정스럽게 누나를 바라봤다. 내가 이렇게 말하면 누나 기분이 나쁠지도 모른다.하지만 누나는 조금도 기분 나쁜 기색이 없이 오히려 만족스러운 듯 내 품에 기댔다.“난 수호 씨가 솔직하게 말해주는 게 좋아요. 왕정민은 언제나 말을 번지르르하게 잘했어요. 결혼한 몇 년 동안 항상 그럴싸한 말로 나를 달래곤 했거든요.
“하, 사실 내가 전에 그렇게 얘기한 건 수호 씨를 돕고 싶은 것도 있지만, 태연도 돕고 싶어서였어요. 그런데 두 사람 모두 그렇게 결정했다니 나도 더 이상 관여하지 않을게요.”애교 누나는 말을 마치고는 차키를 받았다.누나는 나를 화인당 문 앞에 내려 주고는 그대로 돌아갔다.누나와 작별한 뒤 나는 가게로 다시 돌아왔다. 그러자 동료들이 굶주린 늑대처럼 달려들었다.“수호 씨, 아까 그 사람 여자 친구죠? 완전 미인이던데요?”“수호 씨 정말 대박이네요. 어쩜 수호 씨 주변에는 미녀가 그렇게 많아요? 대체 어떻게 한 거예요? 경험 좀 전수해 줘요.”“어쩐지 누나들한테 인기 많다 했더니, 수호 씨 연상 킬러였네요. 방법이 있는 거죠?”동료들은 한마디씩 더하며 부러워했다.솔직히 말해 이런 느낌을 나는 굉장히 즐겼다.이렇게 나처럼 맨날 사람들한테 둘러싸이는 사람이 세상에 몇 명이나 될까?더 중요한 건 내가 권세 있는 사람이 아닌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라는 거다.내가 요즘 겪고 있는 일은 모든 직장인이 꿈과 상상을 만족시켜 줬다고 해도 무방하다.때문에 사람들이 나를 부러워하고 질투하는 거다.나도 이런 게 스스로도 보람차다.“별다른 방법 같은 건 없어요. 잘생겨서 그런 가 보죠.”내 뻔뻔한 말에 동료들은 욕지거리를 퍼부었다.하지만 나는 깔깔 웃을 뿐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우리 동료들 사이는 꽤 끈끈하다. 물론 김진호는 빼고.때문에 평소 농담을 누고 받아도 다들 가볍게 넘긴다.한참 얘기를 하다 보니 오후 출근 시간이 되었다.나는 오늘 운이 아주 좋았다. 점심에는 애교 누나랑 만나고, 오후에는 소여정 같은 최상급 여자를 위해 복무하게 되었다.이건 너무 즐거운 일이었다.사장 사모님 임유미도 함께 왔다.소여정은 심지어 사모님더러 전신 마사지를 받아보라며 꼬드겼다.왠지 소여정의 말을 들으니 나는 은근히 기대했다.사모님 몸매가 어디 좀 좋나? 게다가 남다른 분위기와 아우라 덕분에 옷을 벗은 뒤에도 이런 분위기인지 보고 싶었다.하지만 사모님은
소여정은 옷을 벗고 마사지 침대에 누웠다.소여정의 등은 아름답다 못해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였다.그동안 여자의 등을 많이 봐 왔지만, 소여정처럼 섹시하고 아름다운 등은 보기 드물다.그저 등을 보기만 해도 욕망이 끓어오르는 느낌이었다. 그러니 앞을 보면 얼마나 더 흥분될까?소여정은 남자더러 욕망의 한계를 느끼게 하고, 여자의 아름다움, 여성스러움, 우아함을 모두 발휘한다.매번 소여정의 아름다운 몸매를 볼 때면, 이 여자가 임천호를 어떻게 만족시켜 줄지 상상하게 되었다.하지만 나는 소여정이 눈치챌까 봐 상상을 멈추고 오일을 준비한 뒤 마사지를 시작했다.“힘은 이 정도면 괜찮나요?”나는 마사지하며 물었다.하지만 사실은 여자의 주의력을 분산시키는 게 목적이었다.그러지 않으면 내가 몰래 잇속을 챙기고 있다는 걸 소여정한테 들킬까 봐.소여정은 눈을 감고 작게 말했다.“음, 시원해. 온천보다 낫네. 유미야, 너도 한번 해보라니까. 네 남편보다 나을걸.”“수호 씨가 어려 보여도 손맛은 아주 좋아. 엄청 노련해. 너도 분명 극락을 느낄 거야.”사모님은 여전히 고개를 저었다.“아주 끝이 없네? 네가 이럴 줄 알았으면 같이 안 오는 건데.”“나랑 같이 안 오면 뭐 하려고? 윤지은과 만나려고? 안면 백연우?”소여정 입에서 윤지은의 이름을 듣는 순간 나는 깜짝 놀랐다.소여정의 말투만 보면 두 사람이 친한 사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그때 사모님이 한숨을 푹 쉬었다.“너 지은이랑 그만 좀 싸울 수 없어? 너희 둘 다 내 친구인데, 매번 이렇게 싸우면 가운데 낀 나만 곤란해져.”‘윤지은이 이 두 사람과 친구였구나.’나는 귀를 쫑긋 세우고 계속 엿들었다.그때 소여정이 말했다.“내가 싸우려는 게 아니잖아. 윤지은이 매번 시비 거는 걸 어떡해. 흥, 윤지은 그 계집애도 다른 여자들처럼 날 무시하는 거야. 아니, 정확히 말하면 다른 여자들과는 다르지.”“그 여자들은 내 앞에서 험담하지 않는데, 윤지은은 계속 나한테 시비 거니까. 걔가 먼저 시작하니
사모님은 고개를 저으며 탄식했다.사실 그녀도 알고 있었다. 소여정이 말하기 싫어한다는 걸.소여정이 말하지 않으면 강제로 입을 열게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두 사람은 계속 대하를 나누었다.다만 모두 피부 관리에 관한 것들이라 내가 끼어들 수는 없었다.솔직히 말하고 싶지도 않았다. 소여정을 마사지해주는 데 정신이 팔려 있었으니까.이렇게 아름다운 등을 매번 볼 수 있는 게 아니다. 때문에 기회가 왔을 때 잘 감상해 줘야 한다.그때 문이 갑자기 열리더니 남주 누나가 안으로 들어왔다.“푸들, 누나 왔어... 음, 누구세요?”남주 누나는 소여정과 사모님을 보자마자 표정이 확 변했다.소여정과 임 사모님이 워낙 미인이었으니까. 한 명은 매혹적이고, 한 명은 지넉이라 남주 누나는 처음으로 남들한테 꿀린다는 느낌이 들었다.게다가 내 주변에 자기보다 더 예쁜 여자가 나타났다는 게 씁쓸하고 질투가 났다.때문에 낯빛이 티가 날 정도로 변했다.내가 대답하기 전에 소여정이 먼저 반문했다.“그러는 당신은 누구죠? 방금 수호 씨한테 뭐랬어요? 푸들? 그거 무슨 뜻이에요? 수호 씨가 개라는 뜻인가요?”소여정의 말투는 매우 불친절했고, 눈빛은 매우 날카로웠다.나마저도 둘 사이에서 당장 폭발할 것 같은 분위기를 감지했다.남주 누나도 호락호락한 사람은 아니었기에 바로 표정을 찌푸린 채 말했다.“내가 뭐로 부르고 싶으면 부르는 거지, 당신이 무슨 상관이지?”“하, 무슨 상관이냐고? 이 남자가 내 사람인데, 나한테 왜 상관없지?”소여정도 쉽게 물러나지 않으며 아예 자리에 일어나 앉았다.소여정은 아래에 수건을 두르고 있어 그나마 괜찮았지만, 일어나 앉는 순간 완벽한 몸매가 그대로 드러났다. 남주 누나는 소여정의 몸매를 보며 하마터면 부러워 침을 흘릴 뻔했다.남주 누나는 평소 자기 몸매가 좋다고 자부해 왔다. 그런데 소여정에 비하면 하늘과 땅 차이였다.소여정은 속옷을 입지 않았는데도 가슴이 볼록하고 통통했그며, 모양이 아주 예뻤다.그걸 본 남주 누나는 얼마나
짝 하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소여정은 온 힘을 다해 남주 누나를 때렸는지 얼굴이 다 화끈거렸다.나는 억울하기도 하고 무섭기도 했다.억울한 건 괜히 끼어들었다가 뺨을 맞았기 때문이었고, 무서운 건, 이 뺨을 내가 대신 맞아서 망정이지 남주 누나가 맞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소여정은 보통 사람이 아니다. 남주 누나도 마찬가지고.소여정이 만약 남주 누나를 정말 때렸다면 남주 누나 성격에 절대 물러나지 않을 거다.“소여정 씨, 뺨도 때렸으니 이제 화 풀렸죠?”나는 뺨을 감싸 쥐고 억울한 듯 말했다.소여정은 안쓰러운 듯 나를 바라봤다.“아, 뭐 하는 거예요? 난 저 여자를 때리려던 건데, 그러게 왜 끼어들어서.”‘그게 더 무섭거든요? 정말 남주 누나를 때리면 두 사람이 서로 죽일 것처럼 싸웠을 거잖아요.’나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지만 겉으로는 그럴 듯 포장했다.“두 사람 모두 제 고객이라 싸우는 걸 보고 싶지 않아요.”소여정은 남주 누나를 째려봤다.“그래, 네 체면을 봐서 내가 참을게.”나는 겨우 다행이라고 마음을 놓았다. 하지만 뒤에 있던 남주 누나는 포기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누가 참는다는 거야? 내 의견은 물어봤어? 내가 참을 건지 물어봤냐고?”“남주 누나, 제발 그만해요.”나는 다급히 등 뒤에 있는 남주 누나를 바라봤다. 제발 누나가 좀 조용히 해줬으면 좋겠다.내가 뺨을 맞으면서까지 바꾼 평화인데, 남주 누나는 몇 마디 말로 다시 불을 붙였다.남주 누나는 나를 밀쳐 내더니 말했다.“수호야, 넌 말하지 마. 내가 저 여자 상대할 테니까. 네 얼굴은 나도 아까워서 못 때리는데, 저 여자가 뭔데 때려? 소여정이라고? 당장 사과해. 안 그러면 나 절대 안 참아!”소여정은 아예 깔깔대며 웃어댔다.그 모습을 보니 끝났다는 예감이 들었다.두 사람은 아니나 다를까 또 싸우기 시작했다.나는 얼른 사모님을 바라봤다. 지금 상황에 소여정을 말릴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사모님뿐일 거다.“사모님, 소여정 씨 좀 말려주세요.
“백연우 씨, 앞으로 찾아오지 마세요. 난 백연우 씨 때문에 번거로운 일에 엮이고 싶지 않아요.”“그래서 내가 꼴도 보기 싫은 거야 아니면 성가시다는 거야?”백연우는 나에게 아주 현실적인 질문을 했다.나는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뭐가 다른데요?”“당연히 다르지. 전자라면 앞으로 다시는 찾아오지 않을게. 난 나한테 관심 있는 사람한테만 관심 있거든. 상대가 나 거절하면 나도 들러붙지 않아. 하지만 후자라면 내가 해결해 줄 수 있어. 약속할게. 앞으로 연승호가 절대 너 괴롭히지 못하게 할게.”나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그럼 잘 들어요. 두 가지 다예요.”“왜? 네가 후자라면 이해할 수 있어. 그런데 왜 전자도 있는데?”나는 그날 밤 백연우를 만나러 학교까지 찾아갔던 사실을 털어 놓았다.“백연우 씨, 내가 전에는 몰랐는데 백연우 씨한테 남자는 그저 장난감 같은 존재였더라고요. 그런데 이제 알았어요.”“백연우 씨도 백연우 씨만의 생각이 있고 나도 내 생각이 있으니 애초에 서로 즐기려고 만난 거겠죠. 서로 사생활 터치하지 않는 조건으로요. 하지만 도구로 생각하면 안 되죠.”백연우는 시종일관 눈웃음을 치며 나를 바라보더니 말할 때 갑자기 말투를 바꾸었다.“설마 나도 다른 여자들처럼 네 주위만 맴돌기를 바랐던 건 아니지?”“난 그런 생각 한 적 없어요. 아직도 내 말 못 알아듣네요. 난 백연우 씨가 남자를 장난감처럼 가지고 노는 게 싫은 거예요. 백연우 씨를 만나면 내가 그저 도구가 된 기분이에요.”백연우는 팔짱을 끼며 물었다.“그거 알아? 그동안 나를 거절한 남자는 없었어. 네가 처음이야. 널 어떡하면 좋지? 가죽을 벗겨버릴까? 아니면 강물에 던져버릴까?”나는 흠칫 놀라 소름이 돋았다.“어떻게 그럴 수 있어요? 갖지 못하면 망가트리겠다는 거예요?”백연우는 아주 매력적으로 웃었다.“맞아. 나 원래 그런 사람이야. 정수호, 난 네 가죽 벗기기 싫어. 하지만 나 화나게 하면 어떤 짓을 할지 몰라.”이 순간 내 머릿속에 든 생각은 백연우가
여준휘는 잠깐 고민하는가 싶더니 선물 세트 옆에 자리 잡고 섰다.“그럼 나도 한 장 찍어줘. 멋있게 찍어줘.”어차피 돈 뽑을 대로 뽑았으니 당연히 최대한의 역할은 해줘야 했다. 때문에 나는 여준휘의 소원대로 사진을 찍어줬다.그 뒤로 여준휘는 모든 선물 세트를 들고 떠나갔다.민우와 현성은 나를 향해 엄지를 추켜세웠다.“수호 너 진짜 대박이다. 저 자식 시비 걸러 왔다가 144만 떼인 거 실화야?”현성은 아예 배를 끌어안고 뒤로 넘어질 듯 웃었다.“이런 게 혹 떼러 왔다가 혹 붙여 간다는 건가? 저 자식 아부할 생각에 신나서 돌아가는 거 봤어? 웃겨 죽겠어 정말.”“됐어. 일하자.”그 대화를 끝으로 우리는 각자 일에 매진했다.여준휘는 천수당을 나간 뒤에야 얼굴에 드리운 미소가 싹 가셨다.“젠장. 정수호, 감히 나를 엿 먹여? 두고 봐. 내가 너 질질 짜게 만들어준다.”방금 전까지 여유로운 척했던 모두 여준휘의 연기였다.일이 그 지경에 이르렀는데 구매하지 않고는 안 되는 상황이라 여준휘는 마지못해 연기했던 거다. 어쨌든 백연우에게 성의를 보여줘야 했으니까.하지만 그렇다고 그도 바보는 아니었기에 자기가 된통 당했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때문에 오늘의 원한은 잘 기억해 뒀다가 꼭 갚으리라고 다짐했다.여준휘가 떠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익숙한 실루엣이 천수당에 나타났다.나는 백연우를 본 순간 마음이 복잡했다. 어떤 마음으로 백연우를 마주해야 할지 몰랐으니까.그래도 가게에 왔으니 손님 대접을 해줘야 하기에 쫓아낼 수는 없었다. 하지만 웃는 얼굴로 맞이하는 건 불가능했다.때문에 나는 백연우를 보자마자 내실로 향하며 민우에게 말했다.“따라 들어오지 못하게 막아.”하지만 나는 백연우를 너무 얕잡아 봤다. 민우는 백연우의 상대가 아니었다. ‘나 만지고 싶어요?’라는 한마디에 민우는 깜짝 놀라 연신 뒷걸음쳤으니까.나는 백연우가 나를 찾으러 왔다는 걸 알고 있었다. 심지어 그녀는 나를 따라 내실까지 쫓아와 나는 숨을 곳도 없었다.“왜 또 찾아
여주휘는 살 생각이 전혀 없었기에 내 함정에 빠지지 않았다.“조금 더 둘러보고.”“여준휘 씨 윤지은 씨와 동창이라고 했죠?”그때 나는 바로 화제를 전환했다.그 말에 여준휘는 경계 가득한 눈빛으로 나를 노려봤다.“그건 갑자기 왜 물어?”“윤지은 씨한테 구애까지 한 걸 보면 집안 배경과 신분 그리고 학식 모두 너무 떨어지는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이렇게 좋은 하수오는 선물하든 본인이 사용하든 괜찮은 선택일 텐데, 정말 생각이 없어요?”“이제 곧 추석이잖아요. 우리 가게에 선물 세트도 파는데 모두 고급 포장이라 선물하면 체면이 살거든요.”“아, 그러고 보니 연승호 도련님과 같이 다녔죠? 그 분과 그 가족분한테는 선불 안 해요?”여준휘의 얼굴은 울긋불긋해지더니 이내 반박하려고 했다.“네가 뭔 상관...”“아. 알겠다. 하수오는 연승호 씨 눈에 차지 않겠네. 그럼 인삼음 어때요? 얼마 전에 갓 들여온 인삼이 있는데. 산에서 캔 자연산 인삼이라 신분 높은 사람들을 위해 남겨 두거든요. 이래 봬도 여준휘 씨와 연승호 씨는 우리 지인이나 다름없잖아요. 그래서 내가 특별히 남겨드렸어요.”“어디 보자. 연승호 씨 한 세트, 연승호 씨 부모님께 각각 한 세트씩, 그리고 곧 약혼한다고 하셨으니까 약혼녀한테도 한 세트 선물하고 약혼녀 가족한테도 보내려면 두 세트 또 더 필요하겠네?”“그렇게 기본으로 여섯 세트 사면 되겠네요. 제가 바로 백연우 씨한테 사진 찍어 보내드릴게요. 아주 기뻐하겠네요.”나는 일부러 여준휘가 사진에 보이게 찍어 사지 않으면 안 되게 상황을 만들었다.내 행동에 여준휘의 얼굴은 시커메졌다.“설, 설마 사진 보냈어?”“그럼요. 곧 추석인데 선물도 안 하려고요? 내가 골라준 거 다 가장 좋은 것들인데. 고마워할 거 없어요.”나는 일부러 비릿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내 말에 여준휘는 화가 나서 가슴을 들썩거렸다.“우선 고민 좀 할게.”하지만 나는 여준휘에게 생각할 겨를도 주지 않고 계속해서 웃으며 말했다.“아. 어떡해요? 아까 백
“우리 같은 의사도 모른 체하면 누가 환자들을 도와줘? 우리만 잘못한 게 없으면 되지. 나머지는 상관할 거 없어.”현성은 나를 향해 엄지를 추켜세웠다.“넌 참 대단해. 난 영원히 너 같은 마음은 먹지 못하겠다.”이건 내가 대단한 게 아니다. 아마 나도 정 사장님의 영향을 받아 시시콜콜 따지지 않게 되었을지도 모른다.정 사장님은 바로 그런 분이다. 좋은 일을 하고도 이름을 남기지 않는 분.내 기억에 정 사장님은 고아라고 했다. 어릴 때 온갖 고생을 다 해서 인생의 고난을 모두 맛보고 이해한다고 했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지금 가진 능력도 모두 사람들을 도와주고 그 사람들의 고통을 줄여주기 위해 배우고 익힌 거라고 했다.정 사장님은 참 착한 분이다.나도 그런 착한 사람이 되고 싶다.나는 할아버지가 하셨던 말씀을 영원히 잊을 수 없다. 할아버지는 가장 행복한 일이 다른 사람 얼굴에서 미소를 보는 일이라고 하셨다.“됐다. 가자.”우리는 짐을 챙겨 가게로 돌아가려고 했다.그때 갑자기 키득거리는 웃음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착한 척 오지네.”고개를 돌아보니 목소리의 주인공은 여준휘였다.나는 여준휘를 상대하지 않았다. 내 눈에 그 자식은 그저 공기 같은 존재였으니까.여준휘는 그런 말로 나를 자극하려고 했는데 내가 무시하자 다급히 다가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정수호, 방금 한 짓 다 쇼지? 하. 여기 다른 사람도 없는데 순순히 인정하지 그래? 정수호, 네가 말하지 않는다고 내가 네 속내를 모를 줄 알아? 내 앞에서까지 고고한 척하기는. 가식 떨기는...”가끔 이렇게 열폭하는 사람의 말은 가볍게 무시하면 된다. 어쨌든 우리는 인간이니 개한테까지 일일이 따질 필요는 없으니까.여준휘는 내 화를 돋우기는커녕 자기 화만 불타올랐다.“정수호, 거기 서!”나는 민우와 현성에게 물건을 건네며 두 사람더러 먼저 가게로 돌아가게 하고는 여준휘를 보며 냉소했다.“연승호가 보냈어?”여준휘는 그 말에 움찔하더니 바로 부정했다.“내가 오고 싶어서 오는
여준휘는 연승호한테 절대적으로 충성할 것처럼 아부했다.“승호 도련님, 혹시 뭐 내부 소식이라도 있는 겁니까?”“그건... 알려고 들지 마. 네가 해야 할 일이나 잘해.”“네네. 제가 쓸데없는 말이 많았네요.”여준휘는 자기가 연승호의 신임을 받는 존재라는 생각에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다. 이러다가 연승호가 다연 한식당을 인수하면 자기가 매니저라도 되는 거 아닌가 모르겠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왔다.그렇게 되면 그는 더 이상 윤지은을 쫓앚다닐 필요가 없다.그리고 반대로 만약 윤지은이라는 나무에 제대로 오를 수 있다면 남은 인생은 출셋길이 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생각이 여기까지 미친 여준휘는 너무 기뻐 어쩔 줄 몰라 하며 연승호에게 더 아부했다.“그 개자식은 할 일 없을 때 가서 더 밟아 줘. 난 그 자식만 보면 기분 잡치더라. 절대 편하게 살게 두지 마.”연승호는 또 내가 떠올랐는지 갑자기 언짢아했다.그 말에 여준휘는 다급히 고개를 끄덕였다.“걱정하지 마세요, 승호 도련님. 저 수단과 방법 많아요. 절대 그 자식 곱게 두지 않아요.”...천수당.나는 연승호와 여준휘의 일을 크게 마음에 두지 않고 한의관으로 돌아온 뒤 민우와 현성에게 주의를 주었다. 요즘 들어오는 약재를 눈여겨보라고.“걱정하지 마. 우리가 잘 지켜볼게.”우리가 한창 얘기하고 있을 때 밖에서 갑자기 고함이 들렸다.“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알고 보니 가게와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교통사고가 났는데 작은 자동차 한 대가 전기 바이크와 부딪힌 모양이었다. 하지만 자동차는 이미 도망치고 없었다.나는 가게 직원들을 불러 신속히 부상자의 상처를 살피게 했다.“다리가 부러져 빨리 치료해야 합니다.”내 첫 번째 반응은 환자를 빨리 치료해 주는 거였다. 그 첫 번째 이유는 환자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서였고, 두 번째 이유는 구급차가 오기 전 출혈량을 줄이기 위해서였다.하지만 환자 가족은 우리가 환자의 치료를 도우려고 하자 버럭 소리 질렀다.“뭐 하는 거예요?”나는 얼
“청첩장 보내면 당연히 가지.”나는 일부러 비꼬며 말했다. 연승호가 아무리 도발해도 나는 무섭지 않았다.그때 연승호는 바로 청첩장을 꺼내 나에게 내밀었다.“당연하지. 친구잖아. 잘 받아 둬.”연승호가 주니 나는 말없이 받았다.내가 못 갈 게 뭐가 있나? 이 자식은 내가 못 갈 줄 아나 본데. 누가 무서워할 줄 알고?“그럼 이제 좀 비켜주지?”연승호는 웃으며 몸을 틀어 자리를 내주었다.그제야 나는 정 사장님과 함께 그곳을 떠났다.정 사장님은 상세한 상황을 몰랐지만 우리가 서로 대치하는 모습을 봤기에 사이가 좋지 않다는 걸 이미 눈치챘다.“연승호는 왜 수호 씨를 적대시하는 거야? 혹시 백연우 씨 때문에 그래?”가게를 나오자마자 정 사장님은 먼저 물어 왔다.나도 정 사장님께 숨길 필요가 없었기에 우리 세 사람 사이의 일을 대충 설명했다.“저도 백 쌤이 갑자기 약혼할 줄 몰랐어요. 연승호가 갑자기 저를 계속 괴롭힐 줄은 더더욱 몰랐고요.”내 말을 듣던 정 사장님은 진지하게 귀띔했다.“연승호는 재벌가 도련님이라 어릴 때부터 가족 사람을 듬뿍 받고 자랐을 거야. 그러니 되도록 정면으로 부딪히지 마. 약혼식에도 가지 말고. 안 그러면 분명 수호 씨를 괴롭힐 거야.”나는 약혼식 청첩장을 꺼내 바로 쓰레기통에 던졌다.“저 안 갈 거예요. 아까는 장난 친 거예요.”정 사장님은 내 말에 싱긋 웃으셨다.우리는 각자 본인 가게로 돌아갔다. 하지만 그 시각, 레스토랑 안에서 연승호가 의자에 앉자마자 여준휘는 쪼르르 다가가 물었다.“승호 도련님, 혹시 정수호 그 자식 정말 약혼식에 초대할 생각이세요?”“흥! 내가 뭐 하러 그런 광대 같은 자식을 초대해? 그냥 사람들 앞에서 개망신 주려고 부른 거야.”그 말에 여준휘는 또 부채질했다.“승호 도련님, 정수호 그 자식 좋은 놈 아니에요. 백연우 씨가 그 자식이랑 몇 번이나 뒹굴었는지 몰라요.”연승호는 두말없이 여준휘의 뺨을 후려 갈겼다.“개자식이 너 뭐라고 했어? 죽고 싶어?”여준휘는 화끈거리는
“왜요? 사장님도 이젠 다 나으셨잖아요.”나는 의아해서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물었다.그러자 정 사장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내가 마사지해 줄 때면 유미가 별로 못 느끼는 것 같거든.”그 말에 내 심장은 튀어나올 것처럼 두근거렸다. 그 순간 사장님이 모든 걸 다 알았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사장님, 천수당이 이제 막 개업해 요즘 너무 바빠요. 마사지는 못할 것 같아요.”나는 왠지 불안해 핑계를 대서 거절했다.그러자 정 사장님이 웃으며 내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수호 씨, 사실 나 우리 아내 마음 다 알아. 우리가 부부로 지낸 시간이 너무 길어서 새로운 자극이 필요하거든. 하지만 수호 씨는 달라. 수호 씨는 젊잖아. 수호 씨가 대신 마사지해 주면 그래도 젊음의 활력을 느낄 수 있을 것 같거든.”나는 너무 놀란 나머지 눈이 커다래졌다.“사, 사장님, 혹시 다 아셨어요?”정 사장님은 여전히 허허 웃으셨다.“너무 놀랄 것 없어. 남자든 여자든 일정한 나이가 되면 다 그쪽으로 수요가 생기는 건 당연해. 그리고 난 수호 씨가 우리 아내 사이에 아무 일도 없다는 거 알아. 그래서 마음 놓고 마사지를 맡길 수 있는 거야.”나는 얼굴이 화끈 달아올라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다.나와 유미 사모님은 용천 호텔에서 하마터면 잘 뻔했는데 사장님은 여전히 나를 이토록 믿고 있다는 사실에 죄책감이 밀려왔다.때문에 나는 더 강하게 거절했다.“사장님, 정말 안 돼요. 사장님께서 이러실수록 전 그럴 수 없어요. 다른 사람 찾으세요.”정 사장님은 내가 이렇게까지 거절할 줄 몰랐는지 더 이상 강요하지 않았다.“알겠어. 정 싫다면 할 수 없지. 식사하자고 식사.”사장님이 이렇게 말하자 나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정 사장님은 모든 걸 눈치채고 있었고 인간의 가장 나약한 부분이 무엇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 때문에 지나치게 따지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하지만 정 사장님이 이럴수록 나는 유미 사장님과 거리를 두어야 했다.나는 용천 호텔에서
고혜란은 두말없이 물건을 받아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됐어. 버렸으니까 이제 가도 되겠지?”나는 더 이상 논쟁하지 않고 곧바로 뒤돌아 떠났다.고혜란은 내가 떠나는 뒷모습을 보며 어리둥절해했다. 아마도 내가 이렇게 쉽게 떠날 거라고 생각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깊이 생각하지 않고 쾅, 하고 문을 닫아버렸다.애교 누나는 그 모습을 보고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고혜란은 화가 난 듯 콧방귀를 뀌며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오늘부터 네가 공무원 시험 칠 때까지 내가 여기 있을 거야.”“엄마, 그렇게 계속 저 감시하면 저 집중 못 해요.”“집중 못 해서 그러는 거야? 아니면 이 엄마 쫓아내려고 그러는 거야?”고혜란은 싸늘한 눈빛으로 제 딸을 바라봤다.애교 누나는 갑자기 무력감이 들어 뒤돌아섰다.“마음대로 해요. 저 책 보러 들어갈게요.”“책은 무슨 책이야? 아침 먹어.”“먹기 싫어요. 배 안 고파요.”애교 누나는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아버렸다.어릴 때부터 착하고 철 들었던 애교 누나는 부모님을 말을 한 번도 거역한 적이 없다. 그 유일한 한 번의 예외가 바로 왕정민과 결혼할 때다. 그때 애교 누나는 비교적 단순해 자기를 사랑해 주는 남자만 만나면 된다고 생각했다.하지만 왕정민과의 결혼 생활도 결국은 이런 결말을 맞이했다. 그때 애교 누나는 자기가 그동안 너무 부모님이 정해준 대로만 살아 왕정민 같은 사람한테 완전히 속아 났다고 생각했다.때문에 애교 누나는 변하고 싶었고 자기 일을 스스로 결정하고 싶었다. 그 결과가 또 상처가 될지라도 후회하고 싶지 않았다.어쨌든 자기 길을 끝까지 가야 하는 건 자기 자신이었으니까. 애교 누나는 평생 부모님 날개 아래에서 보호받으며 살 수 없었다.하지만 매번 어려움에 부딪힐 때마다 애교 누나는 부모님께 반항하지 못했다.애교 누나가 가장 속상한 건 자기가 충분히 강하지 못해 부모님께 자신 있게 대항할 수 있는 끈기와 능력이 없다는 거였다.“수호 씨, 미안해요. 다 내 잘못이에요.”애교 누
나는 애교 누나 말대로 이 말썽이 심한 곳을 떠나려고 했으나 누나의 어머니가 누나를 욕하는 말을 듣고 차마 떠날 수 없었다.결국 나는 다시 방문을 두드렸다.고혜란은 씩씩거리며 나와 문을 열더니 나를 보자마자 버럭 소리쳤다.“가라고 했잖아! 또 여기는 뭐 하러 왔지?”“어머님, 저를 욕할 테면 마음껏 욕하세요. 화풀이하려거든 저한테 하시고 애교 누나한테 하는 욕설은 멈춰주세요. 아무리 그래도 누나는 어머님 딸이잖아요.”“내가 내 딸 교육 좀 하겠다는데 자네랑 무슨 상관인지?”전에 애교 누나한테서 들은 적이 있는데 누나의 어머니는 모 대학교 교수였는데 지금은 퇴직했다고 했다.그런데 교수라던 사람이 이토록 교양 없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하지만 나는 애써 화를 눌러 참았다.“어머님, 저는 그저 누나를 지켜주고 싶은 것뿐이에요. 누나가 상처받지 않게...”“그 입 다물라고 했지! 다시 한번 말하는데 당장 내 눈앞에서 사라져! 안 그러면 가만있지 않을 테니까. 듣자 하니 아직 졸업장도 못 받았다던데. 내가 그 학교 총장과 사이가 꽤 괜찮은데, 내가 총장한테 전화하게 하지 마.”나는 지금껏 상냥한 얼굴로 누나를 지켜주고 싶다는 마음을 표현했지만 고혜란은 내가 뭘 말하든 전혀 듣지 않고 오히려 졸업장으로 나를 협박했다.그 순간 나는 단단히 화가 났다.나는 결구 참지 못하고 하고 싶었던 얘기를 토하듯 쏟아부었다.“애교 누나처럼 착하고 다정한 사람한테 어떻게 어머님처럼 독단적인 어머니가 계신지 모르겠네요.”“뭐라고? 다시 말해 봐!”애교 누나는 얼른 달려와 제 어머니 앞을 막아섰다.“수호 씨, 얼른 가요. 그만 말해요.”고해란은 어찌나 화가 났는지 나에게 손찌검까지 하려고 했다.결국 나는 마지못해 뒤돌아 떠났다. 하지만 내 화는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이대로 애교 누나를 버려두고 가면 누나한테 또 어떤 후폭풍이 있을지 심히 걱정되었다.나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태웅이 충분히 상대하기 까다롭다고 생각했는데, 애교 누나의 어머니가 더 까다로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