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너희들이 너무 부러워. 생활 형편도 좋고, 자유롭기도 하고. 그런데 난 돈과 얼굴 말고 아무것도 없잖아.”지은이 그 말을 듣더니 싸늘하게 말했다.“네가 자초한 거잖아? 누굴 탓해?”소여정은 바로 반박했다.“내가 자초한 건 맞지만 나도 어쩔 수 없었다고. 윤지은, 나 좀 위로해 주면 안 돼?”“안돼! 넌 자업자득이야. 동정할 자격도 없어.”지은의 차가운 말투에 백연우와 임유미는 그저 웃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다들 이미 익숙한 모습이었다.게다가 소여정은 화를 내기는커녕 일부러 윤지은을 약 올렸다.“하, 내가 동정받을 자격도 없다지만, 누구보다는 낫지. 이 나이 먹도록 남자랑 자보지도 못하고, 대체 무슨 맛으로 사는지 몰라?”“소여정! 모든 사람이 다 너처럼 가벼운 줄 알아?”지은과 여준휘의 일을 나머지 3명은 모른다, 나는 더 말할 것도 없고.물론 4명 모두 좋은 친구로 지내긴 하지만, 모든 사람이 서로 친한 건 아니다.지은이 바로 그 예외다.지은은 임유미와 친하고, 백연우와 그저 그렇지만 소여정과는 개와 고양이처럼 만나면 싸운다.그도 그럴 게, 윤지은은 소여정이 임천호의 정부로 지내는 걸 항상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소여정은 윤지은이 남자를 사귀지 않는 걸 계속 놀려대기 때문이다.게다가 윤지은은 소여정이 부끄러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소여정은윤지은이 무성애자라고 생각한다.두 사람이 한번 싸우기 시작하면 항상 누군가 말리지 않으면 그칠 줄 모른다.그때 소여정이 일부러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난 원래 가벼워, 어쩔 건데? 남자들은 나 같은 여자 좋아하잖아. 오히려 넌 남자랑 하는 게 어떤 느낌인지 알기나 해? 아마 체험도 못 해봤겠지? 쯧쯧, 넌 어쩜 성적 수요도 없어? 그러니까 무성애자라고 하는 게 뭐 틀린 말은 아니잖아.”지은은 화난 듯 카드를 테이블에 팍 내팽개쳤다.“안 해!”“그러지 마. 내가 이기는 판이란 말이야. 우선 이번 판만 끝내고 가.”백연우가 못내 아쉬운 듯 말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건 윤지은
임유미는 어쨌든 윤지은의 친구이기에 윤지은을 혼자 둘 수 없었다.“됐어, 이제 그만 싸우고 우리 가서 티타임이나 즐기자고.”임유미의 제안에 소여정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먼저들 가 봐. 난 문자 답장 좀 하고 갈게.”“여정, 미리 말해두지만 함부로 하지 마. 임천호가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지 너도 알잖아.”임유미는 심각한 얼굴로 귀띔했다.하지만 소여정은 건성으로 대답했다.“알았어. 나도 분수는 지킬 거야. 그냥 좀 심심해서 잠깐 재미 좀 보려는 거야. 절대 함부로 하지 않을게.”임유미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쉬며 백연우와 함께 거실로 나갔다.한편 소여정은 핸드폰을 들고 침실로 들어가 싱긋 웃으며 답장했다.[혹시 나 보고 싶었어?]소여정한테 문자를 보낸 뒤 조마조마하게 기다리고 있던 나는 답장을 보자 소여정이 아무렇지 않다는 걸 알아챘다. 소여정은 그저 단순하게 오고 싶지 않았던 거였다.나는 그제야 차츰 평온을 되찾고 덤덤하게 대답했다.[아니요. 그냥 궁금한 것뿐이에요. 무사한 걸 알았으니 시름 놨어요.]문자를 보내고 난 뒤, 나는 소여정이 오해할까 봐 말을 더 보탰다.[어쨌든 대고객이잖아요. 대고객을 잃고 싶지 않거든요.][쳇, 나 걱정한 거면서. 내 앞에서 감히 연기해? 누나라고 불러 봐, 그럼 내일 만나러 갈게.]나는 그 문자를 보자 너무 감격스러웠다. 소여정이 내일 오면 또 그 아름다운 몸을 볼 수 있고, 또 나를 유혹할 테니까.하지만 나더러 누나라고 하라는 건 들어줄 수 없었다.나는 습관적으로 소여정에게 맞섰다.[싫어요! 그러는 그쪽은 왜 나를 오빠라고 부르지 않아요?]소여정은 두말없이 오빠라고 보내왔다.그 순간 내 화는 모두 가라앉았다.[오빠라고 불렀으니 이제 네 차례야.]처음으로 소여정한테서 원하는 걸 얻은 나는 너무 설레서 일부러 장난쳤다.[참 착하네. 오빠 이제 퇴근해야 하니까 나중에 대화해.]말을 마친 뒤, 나는 싱글벙글 웃으며 핸드폰을 내려놓았다.소여정은 내 문자에 화가 나 곧바로 영상 통화를 걸
나는 형수가 너무 보고 싶었기에 흔쾌히 승낙하고 명주 호텔로 향했다.그리고 2층 레스토랑에서 나는 마침내 그리고 그리던 형수를 만날 수 있었다.왠지 모르겠으나 나는 형수한테 특별한 감정이 있다.그도 그럴 게, 형수는 내가 아무것도 모르는 사회 초년생일 때 나한테 너무나도 많은 걸 가르쳐 주었다.게다가 형수의 풍만하고 아름다운 몸매는 지금까지도 내 머릿속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애교 누나는 결혼하고 싶은 상대라면, 형수는 계속 알아가고 싶은 상대다.만약 애교 누나와 형이 없었다면 나는 아마 형수에게 열렬히 구애했을 거다.“형수!”레스토랑 룸에 들어서자마자 내 시선은 참지 못하고 형수에게로 쏠렸다.고작 며칠 안 봤는데 오랜만에 보는 기분이었다.게다가 내 착각인지 모르겠으나 형수가 예전보다 더 우아해진 것만 같아 눈을 뗄수 없었다.그때 남주 누나가 나를 놀려댔다.“정수호, 뭐야? 나랑 애교는 사람도 아니다 이거야? 이젠 눈에 형수만 보여?”남주 누나의 말에 나는 깜짝 놀라 애교 누나를 바라봤다.“애교 누나, 전 그런 뜻 아니에요. 남주 누나 헛소리 무시해요.”이해심 많은 애교 누나는 역시나 나를 탓하지 않았다.“알아요. 형수가 걱정돼서 그러는 거잖아요.”“맞아요. 남주 누나, 앞으로 그런 말 좀 하지 마요. 형수랑 어색해지잖아요.”나는 원망스럽게 남주 누나를 째려봤다.그러자 남주 누나가 키득키득 웃었다.“알았어, 앞으로 이런 말 안 할게. 대신 두 사람 계속 지켜볼 거야.”남주 누나는 말하면서 두 손가락으로 자기 눈을 가리키더니 나와 형수를 가리켰다.그 뜻인 즉 나와 형수의 관계를 의심한다는 뜻이었다.나는 순간 마음이 찔렸다. 그도 그럴 게, 나는 형수와 있었던 일을 그동안 아무하고도 말하지 않았으니까. 심지어 애교 누나한테도 비밀로 했다.그런데 왠지 남주 누나는 모든 걸 아는 느낌이 들었다.나는 무의식적으로 형수를 바라봤다. 하지만 형수는 역시나 남주 누나의 천적이었다. 형수가 덤덤하게 말했다.“최남주, 또 맞고
“나랑 같은 뜻을 갖게 된 걸 축하해, 태연아.”남주는 형수를 향해 두 팔을 활짝 벌렸다. 그러자 형수는 남주 누나와 진하게 포옹했다.남주 누나는 이번에 애교 누나를 바라봤다.“애교야, 태연도 이제 깨달았는데, 넌 언제면 깨달을 거야?”애교 누나는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었다.“너희끼리 놀아. 나는 빼줘. 난 지금이 좋아.”“어디가 좋아? 너 같은 미인이 인생을 제대로 즐기지 않으면 얼마나 아쉬워?”남주 누나는 계속해서 애교 누나를 꼬드겼다.그 순간 내 기분이 확 나빠졌다.“남주 누나, 놀겠으면 누나 혼자 놀아요. 애교 누나를 꼬드기지 말고.”애교 누나가 얼마나 순진하고 귀여운데, 나는 애교 누나가 남주 누나처럼 되는 건 극구 반대다.나는 남주 누나와 결혼하고 싶다고 생각한 적 없기에 누나가 어떻게 놀든 신경 쓰지 않는다.하지만 애교 누나는 다르다. 나는 애교 누나와 결혼하고 싶다.그런데, 남은 인생을 함께할 여자가 바람피우는 걸 어떻게 두고 볼 수 있단 말인가?그러면 결혼한 뒤 제대로 살 수나 있을까?“내가 언제 꼬드겼다고 그래? 그냥 우리 자기가 인생을 즐겼으면 해서 하는 말인데. 너도 인생 즐기고 있잖아. 너는 되는데 여자는 왜 안 되는데?”남주 누나는 나를 무안 주려는 듯 계속해서 따져 물었다.그 말에 나는 기분이 나빠져 어두운 얼굴로 입을 꾹 다물었다.다행히 그때 애교 누나가 나서서 분위기를 풀었다.“됐어, 너희가 어떻게 하든 상관없어. 하지만 내가 어떤 인생을 원하는지는 내가 잘 알아. 난 안정된 삶이 좋아. 큰 목표도 추구도 없어. 그냥 좋은 사람 찾아 착실하게 살고 싶어.”애교 누나가 이렇게 말해주니 너무 감동이었다.실패한 결혼 생활은 애교 누나를 무너지게 하지도 않았고 마음대로 살게 하지도 않았다.애교 누나는 자기가 원하는 삶이 어떤 것이고 어떤 미래를 원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물론 형수가 틀렸다는 건 아니다.모든 사람이 추구하는 게 다르고, 생각이 다르니까.어떤 변화가 생기든 모두 이해할 수 있다. 법
나는 잔뜩 긴장해서 물었다.“형수, 식사 내내 왜 저하고 한마디도 안 해요?”“수호 씨네요. 사실 수호 씨는 부를 생각 없었는데 최남주가 부른 거예요.”형수의 말에 나는 너무 서운했다.왜 갑자기 형수와 이렇게 서먹해진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나는 너무 불안해서 얼른 물었다.“왜요? 우리는 좋았잖아요. 왜 이번에 돌아온 뒤 다른 사람이 됐어요?”“우리 일은 없었던 일로 하고 앞으로 다시는 입 밖에 꺼내지 말아요. 애교도 이제 왕정민과 이혼했으니 앞으로 애교 집에서 지내요.”‘지금 나를 쫓아내겠다는 뜻인가?’‘대체 무슨 생각이지? 왜 갑자기 이러는 건데?’‘내가 무슨 실수 했나?’“형수, 그게 무슨 뜻이에요?”나는 이해가 되지 않는 한편 머리가 너무 복잡하고 기분이 언짢았다.형수는 흐리멍덩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이렇게 말하지 않으면 어떻게 말해야 하는데요? 설마 계속 우리 집에서 지내게 하면서 수호 씨랑 바람피우라고요?”“우리 사이에 있은 일을 진동성이 지금은 모른다 해도 나중에 알게 되면요? 진동성은 밖에서 바람피우고, 나는 집에서 수호 씨랑 바람피우라고요? 이게 사는 거예요?”나는 형수의 말을 도무지 동의할 후 없었다.“바람피우다니요? 전 형수한테 진심이에요. 그리고 동성 형이 나더러 형수를 만족시켜 주라고 했어요.”“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한 남자가 자기 아내를 아무 이유 없이 다른 남자한테 넘기겠어요? 아무 이득도 없는 상황에?”형수의 말에 나는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그게 무슨 뜻이에요?”“진동성 그 인간 수호 씨를 시험하는 거라고요. 왜 그걸 몰라요? 그 인간이 나랑 다시 잘살아 보자고 비는 것도 나를 원해서가 아니라 내 손에 쥐고 있는 경제권 때문이에요.”“백번 양보해서, 아직 나한테 감정이 남아 있다고 한들 내가 수호 씨랑 잠자리 가지면 마음이 편하겠어요?”형수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우리의 관계는 절대 동성 형한테 들키면 안 된다.하지만 이대로 형수와 선을 긋고 모른척해야 한다는 걸 받아
나는 여전히 아쉬웠지만 형수가 방금 한 말을 떠올리니 무기력한 기분이 들었다.마을 사람들은 동성 형이 나한테 얼마나 잘해줬는지 모두 안다. 동성 형이 없으면 지금의 나도 없다고 할 정도로 말이다.그런데 내가 동성형의 여자와 만난다는 게 동네 사람들의 귀에 들어가면, 나와 우리 부모님은 아마 사람들의 비난을 받을 거다.나는 괜찮지만 부모님은 어쩐단 말인가?내가 부모님을 도시로 모셔올 수 있는 능력이 있어, 그런 험담을 듣지 못하게 하면 아마 상처받지 않을지도 모른다.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나는 속으로 맹세했다. 꼭 돈을 모아 새집을 장만해야겠다고.그리고 부모님을 도시로 모셔오면 형수와 동성 형을 이혼하게 해야겠다고.나는 넋을 잃은 채 형수가 볼일을 마치고 화장실에서 나올 때까지 여전히 한 자세로 그 자리에 서 있었다.형수는 발그스레한 얼굴을 한 채 흐리멍덩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왜 아직도 안 갔어요?”나는 너무 마음이 아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러자 형수가 내 곁으로 다가와 안쓰러운 듯 내 얼굴을 쓰다듬었다.“우리는 불가능해요. 마음 접고 애교랑 잘 살아요.”“그런데 그게 안 돼요.”나는 솔직히 말했다.형수는 내 말에 피식 웃었다.“어쩐지 애교가 아직 고백을 안 받아줬다 했네요. 지금 수호 씨 모습을 봐요, 전혀 성숙하지가 않잖아요.”“애교 누나가 또 뭐라고 했어요?”나는 너무 궁금해서 물었다.그러자 형수가 대답했다.“당분간은 조용히 지내고 싶대요. 너무 급하게 재혼하고 싶지 않대요. 그리고 수호 씨가 아직은 너무 어려서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한다고, 아직은 결혼할 적임자가 아니래요. 나더러 수호 씨랑 한번 해보라고 꼬드기기까지 하던데요?”“네?”애교 누나가 형수한테도 이런 말을 했다는 게 너무 의외였다.이건 내가 아는 애교 누나가 아니었다.애교 누나는 형수와 형이 갈등을 겪고 있다는 걸 모르는데, 바람피우라고 꼬드기다니?본인은 절대 그러지 않으면서.“그럼 형수는 뭐라고 했는데요?”애교 누나에 대한 궁금증보다
형수는 나를 째려봤다.“기쁘고 즐거운 게 꼭 남자 덕을 봐야 해요? 나 혼자서도 잘 먹고 잘 자고 즐겁게 살 수 있잖아요.”‘이런 뜻이었구나.’나는 참지 못하고 또 물었다.“그럼 성적인 수요는 어떻게 해결해요? 참는 건 괴롭지 않아요?”“혼자 해결할 수 있잖아요. 그것도 안 되면 인터넷에서 장난감을 살 수도 있고.”그 말을 들으니 나는 형수가 더 안쓰러웠다.나를 위해 동성 형과 계속 지내는 것도 모자라 밖애서 다른 남자도 찾지 않고 혼자 해결하려 하다니.이건 뭐 좋은 방법이 없으려나?“전 형수가 이러는 거 보고 싶지 않아요. 아니면 동성 형더러 몸조리하라고 하는 건 어때요?”나는 마지못해 차선책을 제시했다.그러자 형수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됐어요. 우리 부부 사이가 안 좋은 게 하루 이틀도 아니고, 지난 2년 동안 계속 이랬어요. 이게 다 젊을 때 절제하지 않아 정력이 소진된 탓이에요.”“그러니까 수호 씨도 애교랑 결혼하기 전에 절제 좀 해요. 안 그러면 결혼하고 나서 정력이 소진돼요.”“형수, 그럼 형이랑 같이 스릴을 즐겨보는 건 어때요?”내 뜻은 두 사람이 함께 커플 호텔을 가거나 여행하며 기분전환 하라는 뜻이었다.그런데 형수는 내 말을 잘못 이해해 버렸다.“무슨 스릴이요? 애인을 바꾸라고요?”“켁...”나는 너무 놀라 사레들릴 뻔했다.“그건 됐어요. 다른 남자가 형수한테 손대는 거 싫어요. 그리고 그런 걸 하면 밑바닥이 점점 없어져서 절대 하면 안 돼요.”“하, 수호 씨는 왜 하필 진동성이랑 그런 사이인 거예요? 그런 관계만 없어도 내가 이렇게 걱정할 필요 없는데.”그건 나도 유감이었다. 하지만 그런 일은 내가 좌우지할 수 있는 게 아니다.“이 얘기는 그만해요. 아무튼 앞으로 거리를 유지해요.”나는 여전히 아쉬웠다.“그럼 마지막으로 입 맞출 수 있어요?”“난 수호 씨를 부를 생각도 없었는데 입까지 맞추겠다고요?”형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나는 형수에게 입 맞췄다.형수는 절대 동의할 리 없으니 강제로 할
“안 돼요. 그리고 지금 하는 생각 다 접어요. 지금부터 나한테 무슨 짓 할 생각 하지 마요.”형수는 명령조로 말했다.하지만 그럴수록 내 마음은 더 간질거렸다. 이건 나를 시험하는 게 틀림없었다.난 성인군자가 아니라 일반 남자인데, 이렇게 매혹적인 형수가 앞에 있는데 아무 생각도 안 하는 게 오히려 이상한 거 아닌가?더군다나 형수가 성적 수요가 많다는 걸 알기에 나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형수를 건드렸다.“마지막으로 한 번만 할 게요. 앞으로 절대 형수를 어떻게 할 생각 안 할 게요.”“남자의 말을 내가 믿을 것 같아요?”형수는 역시 경험이 많아 속이기 여간 쉽지 않았다.애원해 보기도 하고 강제로 밀어붙이기도 했는데 모두 소용없자 나는 마지못해 타협했다.“그래요, 형수 말 들을게요. 형수와 저를 위해서라도요.”나는 형수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않아 결국 형수의 뜻을 따랐다.형수는 매혹적인 미소를 지었다.“나 먼저 가볼게요. 수호 씨는 이따가 와요. 안 그러면 또 우리를 의심할 거니까. 참, 내가 집에 없는 동안 어디서 지냈어요?”형수는 모든 걸 눈치챈 모습이었기에 나는 모든 것을 솔직히 털어 놓았다.“호텔에서 하루 지내고, 남주 누나네 집에서 하루 지내고 어제는 애교 누나네 집에서 지냈어요.”“남주하고도 했어요?”나는 수줍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때 형수가 이상한 말투로 말했다.“최남주, 참 부럽네. 하고 싶은 대로 뭐든 다 하고. 앞으로 수호 씨랑 자고 싶으면 자고. 나는 안 되는데, 하!”‘그건 형수가 선택한 거잖아요. 형수도 다른 걸 생각하지 말고 지내요. 그럼 얼마나 좋아요?’나는 속으로 중얼거렸지만 형수가 이렇게 하는 건 나를 위해서라는 걸 알기에 뭐라 말할 자격이 없었다.“됐어요, 난 이만 갈게요.”형수는 나를 향해 손을 흔들더니 비틀거리며 룸으로 걸어갔다.볼륨감 넘치는 몸매와 몽롱한 눈을 보니 나는 너무 아쉬웠다.하지만 어쩌겠는가? 우리의 관계가 특수한걸.게다가 형수가 방금 건드리는 바람에 나는 너무 괴로
그 순간 나는 머리가 띵했다. 나는 애써 눈을 뜨려고 했지만 머리가 너무 어지럽고 눈꺼풀이 무거워 도저히 뜰 수 없었다.다만 그 와중에 약간의 의식은 존재했다.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용천 호텔에서 나와 몸을 섞은 사람이 사모님이라고 생각했다. 나중에 사모님 댁에서 지내면서 사모님 다리에 있는 나비 문신을 보고 내 추측을 확신했고.하지만 지금껏 나는 그게 사모님이든 아니든 무조건 사모님과는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최면했다. 무슨 일이 있든 간에 사장님께 미안한 행동은 할 수 없었으니까.하지만 오늘 저녁 나는 또 잠결에 그 나비를 보게 된 거다. 그 순간 나는 머리가 터질 것만 같았다.‘뭐지?’오늘 여기 있는 사람 중에 그날 용천 호텔에 있었던 사람은 오직 애교 누나뿐이다.하지만 애교 누나 몸에는 분명 나비 문신이 없다.게다가 나는 애교 누나 몸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데 애교 누나의 피부는 이 정도로 희지 않다.하지만 애교 누나가 아니면 또 누구란 말인가?고아연? 아니면 고수연?그날 밤 나는 이 두 여자를 본 적이 없다.나는 이 상황이 어리둥절했고 상대가 누구인지 갈피를 잡을 수 없다는 게 너무 답답했다무엇보다 오늘 너무 취해 머리가 어지러웠기에 눈을 뜰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나는 정신도 차리지 못한 채로 애써 몸부림쳤지만 결국 의식이 점멸되어 그대로 잠들어 버렸다.그리고 나는 다음 날까지 푹 잠들었다.내가 바닥에서 일어났을 때 다른 사람들은 이미 모두 깨어났다. 내가 그중 맨 마지막에 깨어난 듯했다.나는 아픈 머리를 문지르다가 테이블을 치우는 애교 누나를 발견했다.“누나, 다른 사람들은요?”애교 누나는 테이블을 정리하면서 대답했다.“다들 일이 있다고 먼저 갔어요. 수호 씨를 방에서 자라고 하려 했는데 너무 깊이 잠들어 아무리 깨워도 깨지 않더라고요.”“애교 누나, 어젯밤 혹시 안 잤어요?”나는 몸부림치며 일어나 의자에 앉았다.그때 애교 누나가 입을 열었다.“늦게 잠들긴 했지만 안 잔 건 아니에요. 나
윤지은은 대체 진동성을 어떻게 처리했는지 그 일이 있은 후 진동성은 한 번도 나타난 적이 없다.때문에 우리는 형수를 집으로 모신 뒤 번갈아 가면서 돌보기로 했다. 그러는 게 서로서로 안심이 되기도 했으니까.그 일로 애교 누나는 아버지를 설득해 원래 살던 형수네 옆집으로 다시 이사 오게 되었다. 그러면서 나한테 다시 함께 살자고 초대했다.나는 잠시 고민 끝에 결국 고개를 저었다.“안 돼요. 당분간은 누나랑 같이 살 수 없어요.”“왜요?”애교 누나는 실망스러운 듯 나를 바라봤다.나는 애교 누나의 얼굴을 감싸면서 진지하게 말했다.“이 사실을 누나 아버지가 알게 되면 저를 더 싫어하실 거예요. 그러니까 제가 성공하기 전까지 같이 살면 안 돼요. 그래야 누나 아버지를 화나게 하거나 누나 명성에 누가 되지 않을 거예요.”애교 누나는 이내 미소를 되찾았다.“바보. 수호 씨가 나를 이렇게 생각할 줄은 몰랐어요.”“당연하죠. 저는 정말 누나랑 결혼하고 싶어요. 때문에 누나 명성을 제가 망가뜨릴 수는 없어요.”“그래요. 수호 씨 말에도 일리가 있네요. 하지만 월세방에서 지내는 건 너무 머니까 태연이네 집에서 지내는 건 어때요?”애교 누나의 제안에 나는 살짝 어리둥절했다.“왜요?”“예전에도 태연이네 집에서 지냈잖아요. 지금 다시 거기서 지내는 게 당연한 거 아니에요? 그리고 동네 사람들도 태연이 교통사고로 의식이 없는 걸 알고, 진동성은 바빠서 집에 잘 들어오지 않는 것도 아니까 동생이 대신 형수 돌보는 건 당연하잖아요.”애교 누나는 조리 정연하게 분석했다.사실 애교 누나는 내가 자기랑 같이 살든 아니면 형수 집에서 지내든 가까이에 있고 싶은 거였다. 하지만 나도 나름 걱정이 있었다.“진동성과 형수 사이에 이혼 얘기가 오가고 있다는 건 언젠가 소문이 퍼질 거예요. 그런데 제가 형수 집에 무슨 신분으로 있겠어요? 이건 형수의 평판에도 안 좋아요. 차라리 월세방에서 지내면서 매일 보러 갈게요.”애교 누나는 아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하지만
“괜찮아요.”“혹시 불편하지는 않아요? 아까 걸을 때 보니 허리를 짚고 걷던데요.”나는 걱정이 되어 물어봤다. 무엇보다 방금 사모님이 계속 허리를 짚고 걷는 걸 보니 허리가 분명 불편한 것 같아 보였다.아니나 다를까 사모님은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제가 주물러 드릴까요?”“아, 아니에요.”사모님은 갑자기 얼굴을 붉히며 어색하게 행동했다.‘대체 왜 이러지?’사모님이 싫다고 하니 나도 더 이상 강요하지 않았다.하지만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려고 할 때 사모님이 갑자기 나를 불러 세웠다.“수호 씨, 그날 밤 일은...”나는 약간 어리둥절했다.‘어느 날 밤을 말하는 거지?’그러다가 사모님이 부끄러워하는 표정을 본 후에야 나는 사모님이 치마가 젖었던 그날을 말한다는 걸 깨달았다.나는 다급히 설명했다.“사모님이 말씀하지 않으면 진작 잊어버렸어요.”“정말요? 거짓말하는 거 아니죠?”“제가 왜 거짓말하겠어요? 저 매일 해야 할 일이 많아서 일일이 기억할 수 없어요.”사모님의 미소는 살짝 이상했다. 그건 아무리 봐도 겉웃음이었다.“그럼 다행이네요. 일 봐요.”나는 뒤돌아 집을 나섰다.그 시각 임유미는 안절부절못하며 치맛자락을 잡은 채 나를 훔쳐보았다.임유미는 요즘 왠지 모르게 저녁만 되면 참지 못하고 핸드폰을 꺼내 몰래 야한 영상을 보곤 한다. 그것도 나이 많은 여자 주인공과 젊고 잘생긴 남자 주인공이 나오는 영상을.영상 속 어린 남자 주인공이 여자 주인공을 누나라고 부를 때면 임유미는 따라서 흥분하곤 했고 강렬한 오르가슴을 느끼곤 했다.임유미도 자기가 요즘 왜 이러는지 의문이었지만 그렇다고 남편한테 털어놓을 수도 없었다.방금 나를 붙잡은 것도 아무 이유 없이 단순히 내 목소리를 듣고 내 탄탄한 팔뚝을 한 번 더 보기 위해서였다. 가끔 임유미는 자기 마음속에 다른 자신이 살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도 그럴 게, 그동안 자기한테 이런 모습이 있을 줄은 몰랐으니까. 심지어 가끔은 자기 친구들과 함께하
“사장님도 이미 최선을 다하셨어요.”나는 정 사장님을 매우 존경한다. 하지만 나더러 정 사장님처럼 하라고 하면 할 자신이 없다.내 생각도 사실은 만건희나 이규민과 다를 게 없다. 장사는 당연히 돈을 버는 게 목적이니까.하지만 이 일은 정 사장님이 나한테 부탁한 일이기에 나는 책임지고 정 사장님을 도와야 한다. 비록 모든 사람은 이미 마음이 변해 내가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지만.나는 정 사장님이 자책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어찌 됐든 이건 정 사장님 책임이나 의무가 아니니까.나는 더 이상 정 사장님을 귀찮게 하지 않으려고 방을 나왔다.사실 나는 정 사장님이 왜 이토록 박애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이런 사람이 공무원이 되었다면 분명 아주 훌륭한 사람이 되었을 텐데 말이다.사모님이 다가오자 나는 궁금했던 걸 물었다.“사모님, 뭐 하나 물어봐도 돼요?”“뭔데요? 물어봐요.”나는 얼른 궁금한 걸 물었다.“사실 좀 궁금해서요. 정 사장님은 왜 상회를 설립하셨어요?”“그걸 설명하려면 우리 그이 어릴 때부터 이야기해야 해요.”사모님은 나와 함께 소파에 앉더니 이야기를 시작했다.“사실 호섭 씨는 고아예요. 나도 들은 거지만 부모님 모두 병으로 돌아가셨대요. 그래서 어릴 때부터 의학을 파고들었고 커서도 계속 의학 분야에서 일했어요.”“화인당도 사실 돈을 벌려는 목적으로 오픈한 게 아니에요. 그냥 최선을 다해 병을 볼 수 없는 사람들이 병을 볼 수 있게 도와주기 위해서였어요.”그 말에 나는 속으로 감탄했다. 정 사장님이 이토록 위대한 분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호섭 씨는 착한 사람이라 누군가 병으로 고통받는 모습을 가장 싫어해요. 내가 이렇게 말하면 현실성 없다고 하겠지만 이게 사실인걸요. 호섭 씨는 누구한테나 친절해요. 선악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사람도 아니고요. 게다가 부모님께 효도하고 나한테 잘해줘요. 내 눈에 호섭 씨는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남자예요.”나는 고민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나도 깊이 동감하는 바니까.정 사장님은 모
“나는 이 사장을 따를 생각이 없지만, 정 사장 생각이 너무 허황한 건 사실이에요. 우리가 장사하는 목적이 돈 벌기 위해서인 건 맞잖아요. 그런데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걸 왜 하지 않으려 하죠?”민건희의 말을 들은 순간 나는 그의 의도를 파악했다.민건희는 겉으로는 정 사장님 뜻에 따르는 척했지만 사실 진작 마음이 변했다.테이블에 거의 엎드리다시피 몸을 앞으로 기울였던 나는 민건희의 말을 듣는 순간 몸을 뒤로 빼 의자에 기댔다.“민 사장님은 어떻게 하실 생각인가요?”민건희는 여전히 웃는 얼굴로 말했다.“솔직히 우리끼리 협력할 수 있어요. 강북 약재 시장 자원 대부분 정 사장이 쥐고 있으니 우리는 원가대로 다른 사장한테 팔면 그만이잖아요. 그러면 수호 씨도 정 사장한테 결과를 보여드릴 수 있고요.”“다만 서윤기한테만큼은 약재 가격을 좀 더 쳐줘서 그자가 우리를 도와 더 큰 이익 공간을 만들어줄 수 있게 하면 돼요.”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어떻게 쳐줄 건데요? 진짜 약재를 사용하면 서윤기가 제공하는 가격이 이미 최저 가격이에요. 민 사장님 말대로 하려면 약재를 바꾸는 수밖에 없어요.”민건희은 얼른 자기 생각을 말했다.“약재를 바꾸는 게 안 될 것도 없죠. 그저 품질이 좀 떨어지는 거로 바꿀 생각이지 가짜 약재로 숫자를 채우자는 게 아니잖아요.”나는 속내를 꿰뚫어 볼 것처럼 민건희를 빤히 바라봤다.적어도 민건희는 이규민이나 전광진과 다르다고 생각했는데, 민건희는 그저 다른 방식으로 제 욕심을 채우려 하는 것뿐이었다.나는 싱긋 웃으며 말을 아꼈다.“민 사장님, 오늘 만나지 않았던 거로 해요. 저는 이만 가볼게요.”내가 떠나려고 하자 민건희는 다급하게 일어섰다.“왜요? 싫어요? 내가 말한 방법은 우리 두 사람한테 모두 이로운 방법일 텐데 왜 싫다는 거죠?”“이건 정 사장님이 원하는 게 아니에요.”민건희는 대뜸 물었다.“정 사장 생각은 너무 현실성 없다고 생각하지 않나요? 백성들한테 좋은 일을 하자니, 그게 장사꾼이 할 수 있는 발상
그날 저녁 나는 형수 옆에 누워 형수를 꼭 안은 채 잠이 들었다.형수의 감각이 아직 남아있다는 걸 알았기에 나는 이런 방식으로라도 형수가 빨리 깨어나기를 바란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그 시각, 형수는 확실히 의식이 있었다. 다만 의식이 뭔가에 속박된 것처럼 마지막 한 층을 뚫고 나올 수 없었다.나와 백연우가 자기 앞에서 꽁냥거릴 때 형수는 솔직히 화가 나 당장이라도 일어나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눈이 떠지지 않았다. 그러다 나중에 너무 화가 나서 아예 나를 무시해 버렸다.그 뒤, 내가 자기 손을 잡고 방금 전 그랬던 게 자기를 자극하려고 연기를 한거라고 하니 형수의 마음은 또다시 따뜻해졌고 내가 자기 옆에 누워 잠이 들자 서서히 평온을 되찾았다.형수도 내가 자기를 진심으로 걱정하고 신경 쓴다는 걸 알았기에 매우 행복했다.다음 날 아침. 나는 이 좋은 소식을 고아연에게 알려주었다. 그러자 고아연도 매우 기뻐했다.“정말? 그럼 우리 언니가 또 움직이게 할 수 있어?”“그건 좀 어려울 것 같아요. 형수가 반응하는 건 가끔 있는 일이라 자극을 받을 때마다 반응하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그래도 형수가 아직 의식이 있으니 외부의 충격에 반응하는 거예요. 얼마 지나지 않으면 정신을 차릴 것 같아요.”“정말 그렇다면 다행인데. 언니, 얼른 눈 떠. 나 언니한테 할 말 있어.”고아연은 형수의 손을 잡고 진심을 털어 놓았다.그 뒤로 며칠 동안 나는 도관과 화인당 그리고 병원을 전전하며 하루하루를 보내며 점점 그런 생활에 적응했다.그리던 오늘 민건희 사장이 강북에 돌아왔다며 전화를 걸어왔다. 우리는 찻집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나는 오늘 민건희 사장을 처음 본다. 민건희는 키가 그리 크지 않았지만 얼굴이 서글서글해 보였다.나는 현재 상회의 상황을 민건희에게 설명했다. 그러자 민건희가 말했다.“서윤기는 약재 가격을 올리고 싶어 해요. 이 사장도 똑같은 생각이고요. 약재 가격이 오르면 약재상이 얻을 수 있는 이윤도 증가한다는 뜻이니까요.”“하지만
백연우는 그제야 이상함을 느꼈다.“뭐야? 정말 네 형수 앞에서 하려고?”나는 백연우의 입을 막으며 작은 소리로 형수의 눈을 보라고 눈짓했다.내가 가리키는 대로 눈알을 데구루루 굴린 백연우는 이내 눈이 휘둥그레졌다.“정말 반응하잖아?”나는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계속해서 작은 소리로 말했다.“우리가 스킨십할 때마다 형수가 반응해요. 아마 우리가 한 말이 들리는 것 같아요. 이런 방식으로 자극하면 깨어날지 확인해 보고 싶어요.”“이게 진짜. 그러니까 지금까지 나를 이용했다는 거네?”나는 다급히 설명했다.“이용이라니요. 나도 너무 갑작스러워 설명할 시간이 없어요.”“그럼 어떡해? 나더러 계속 너한테 협조하라고?”나는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백연우는 그제야 목청을 가다듬고 톤을 한껏 높였다.“정수호, 네 입술 키스하기 너무 좋다. 더 할래.”나도 일부로 목소리를 높였다.“저쪽에 빈 침대가 있는데 그쪽으로 가요.”“아주 나빴어. 정말 여기서 하려고? 몰라.”백연우는 배우 하지 않은 게 아까울 정도로 연기를 잘했다. 목소리는 유혹적이었고 표정은 역시 농염했다.나는 계속해서 형수를 관찰했다. 하지만 처음에는 흥분한 듯 속눈썹을 파르르 떨던 형수가 갑자기 움직이지 않았다.“우리가 너무 지나쳤던 건 아니겠죠?”나는 백연우를 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내가 그럴 어떻게 알아. 난 너한테 협조해 주기만 했어.”백연우는 이내 자기는 책임 없다는 듯 선을 그었다.나는 다급히 형수 앞으로 다가갔다. 하지만 형수는 확실히 아무 반응도 하지 않았다.그 순간 나는 의아함이 생겼다. 하지만 형수가 우리 대화를 들었다는 건 확신할 수 있었다. 이건 좋은 현상이다.형수가 우리 대화를 들었다면 의식이 있다는 뜻이었으니 적당하게 자극하기만 하면 조만간 깨어날 수 있을 거다.그걸 생각하니 나는 여전히 기뻤다.나는 백연우를 끌고 병실 밖으로 나갔다.“오늘 고마웠어요.”“우리 사이에 뭘 고맙긴. 나중에 태연이 깨어나면 나 만나러 학교로 와. 우리
“지금이 어느 때인데 그런 농담을 해요?”나는 조금도 웃기지 않았다.하지만 백연우가 내 가슴을 꼬집으며 말했다.“내가 누구를 위해서 이러는 건데? 호의를 무시하지 마.”“알았어요. 백 쌤 말 대로 됐으면 좋겠네요.”그러던 그때 백연우가 갑자기 내 품에 안겼다.“그동안 나 보고 싶지 않았어?”“저기, 백 쌤. 형수가 옆에 누워 있는데 좀 이러지 않으면 안 돼요?”“내가 보고 싶었냐고 물어본 것뿐이잖아. 내가 뭘 한 것도 아닌데 왜 겁을 먹고 그래?”“형수 앞에서 이러고 싶지 않아요.”“얼씨구. 지난번에 나 찾아왔을 때는 여자를 본 적 없는 남자처럼 달려들더니.”그 말에 나는 일순 난처했다.현재 형수가 의식이 없어 듣지 못하니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분명 화부터 냈을 거다.나는 백연우를 내 다리 위에서 내려보내고는 무의식적으로 형수를 바라봤다. 그때 형수의 속눈썹이 미세하게 떨리는 게 눈에 들어왔다.나는 너무 기뻐 다급히 형수의 손을 잡았다.“형수, 형수. 내 말 들리는 거죠?”백연우도 놀란 듯 눈이 휘둥그레졌다.“뭐야? 반응했어?”백연우는 말하면서 고개를 숙여 형수를 살폈다.“아니잖아.”“제가 분명 봤어요. 형수의 속눈썹이 떨렸어요.”“잘못 본 거 아니야?”“아니에요. 잘못 볼 리 없어요. 똑똑히 봤어요.”이번만큼 나는 형수의 속눈썹이 떨리는 걸 분명히 봤다.백연우는 팔짱을 낀 채 나를 꿰뚫어 볼 듯 노려봤다.“정수호, 아주 소설을 써라.”“거짓말 아니라니까요. 진짜예요.”“헛것을 봤겠지. 그동안 너무 바쁜 데다 욕구가 쌓여 잘못 본 게 틀림없어. 내가 욕구 좀 풀어줄게. 어때?”백연우는 생글생글 웃으며 내 목을 끌어안았다.그 순간 나는 놀랍게도 형수의 손가락이 움직이는 걸 발견했다.나는 그제야 형수가 우리의 대화를 듣고 충격을 받아 반응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그렇다면 내가 이런 방식으로 형수한테 자극을 주면 형수가 깨어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나는 설명할 새도 없이 백연우의 허리를 꽉 끌어안았다.
임유미는 그동안 밤이 깊어 날이 어두워지면 외로움이 스멀스멀 고개를 들어 누군가에게 보살핌받고 싶다는 생각에 지배되곤 했었다. 하지만 자신이 얼마나 사람 받고 싶고 관심받고 싶은지 남편이 알게 하고 싶지 않았다. 남편한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으니까.임유미는 정호섭이 자기한테 미안해 이혼할 생각까지 했다는 걸 알고 있다. 때문에 정호섭이 자기 마음을 알면 또 그런 생각을 할까 봐 두려웠다.그 순간 든 생각은 현재 주변에 아무도 없으니 몰래 해결해도 아무도 모르겠지 하는 생각이었다.임유미는 집에 들어가 화장실에서 몰래 욕구를 해결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정호섭이 도중에 자기를 부르면 흥이 깨질까 봐 걱정되었다.그에 반해 복도는 오히려 사람이 아무도 없어 마음껏 욕구를 해소할 수 있었다.생각이 여기까지 미친 임유미는 몰래 비상계단으로 향했다. 그 순간 그녀의 마음은 더 없이 벅차올랐다.지금껏 임유미는 이런 짓을 해본 적이 없었기에 너무 짜릿하고 두근거렸다.하지만 친구들을 떠올리니 자기도 이제는 좀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여자는 자기 욕구를 너무 억누르면 안 된다. 그랬다가는 병이 올 수 있으니까.최근 들어 소여정과 백연우처럼 자유롭고 멋지게 사는 게 부럽다는 생각이 종종 들었기에 임유미도 자기를 바꿔보고 싶었다. 결국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임유미의 핸드폰은 주인처럼 깨끗하다. 그동안 지저분한 사이트는 한 번도 들어간 적이 없으니까. 때문에 한순간 어떤 사이트에서 영상을 찾아야 할지 막막했다.그러다가 문득 소여정한테서 받았던 노골적인 사진이 떠올라 그걸 찾아냈다. 그 사진은 너무 노골적이라 예전에는 너무 부끄러워 제대로 보지도 못했었다.임유미는 눈을 지그시 감으며 자기와 남편이 예전에 잠자리를 가지던 모습을 떠올랐다. 그렇듯 점점 옛 추억에 빠지는 느낌은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웠다....한편 나는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모른 채 사모님 집에서 나오자마자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향했다.나는 고수연을 집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