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손가락 5개를 폈다.“5백만 원.”이런 일은 조금씩 불려야지 처음부터 크게 부르면 상대가 놀랄 수 있다.5백만 원쯤은 이 영감이 요즘 번 수익에 비하면 아마 새 발의 피일 거다.결국 영감은 이를 악물며 말했다.“그래, 받아.”그러면서 핸드폰으로 나한테 계좌 이체를 해주려 했다.“계좌 이체는 됐고, 난 현금만 받아.”이건 나중에 꼬투리 잡힐 일 만들지 않으려는 수단이었다.영감은 이맛살을 구겼다.“여기 현금이 어디 있다고? 요즘은 다 카드 아니면 카카오페이를 사용하지...”“당신네 아파트 단지에 ATM 기계가 있던데. 24시간 오픈이라 그곳에서 현금 인출하면 되잖아. 여기서 기다릴게.”영감은 나를 째려보더니 결국 밖으로 나갔다.현성은 문소리가 나자마자 얼른 복도에 숨었다. 그사이 나는 조용히 집에서 기다렸다.그때 그 요염한 여자가 또 나타나더니 허리를 씰룩거리며 나에게 다가왔다.“오빠, 물 마실래요?”여자는 말하면서 내 옆에 앉았다. 그 순간 여자의 몸에서 나는 자극적인 향수 냄새가 코를 찔렀다.냄새가 너무 독해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하지만 여자는 자기가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는지 나를 꼬시려 들었다.아마도 그 영감이 평소 만족시켜 주지 못해 나를 노리는 모양이었다.나는 차가운 얼굴로 여자를 바라보며 톡 쏘아붙였다.“싸게 굴긴.”여자는 순식간에 얼굴색이 변하더니 버럭 소리쳤다.“당신 방금 뭐라고 했어? 내가 싸 보인다고?”“아닌가? 속살 다 보이게 옷 입고 향수도 이렇게 독한 걸 쓴 게 꼬시려는 거 아니야? 당신 내 누에 안 차.”나는 여자를 단번에 밀쳤다.그 말에 열 받았는지 여자의 가슴은 심하게 오르락내리락했다.여자가 볼 때 나는 단지 서윤기 아래에서 일하는 똘마니였기에, 자기가 손가락만 까딱이면 내가 걸려들 줄 알았던 모양이었다.여자는 비록 사장 영감의 돈이 탐나지만, 남자로 볼 때 나처럼 젊고 힘 있는 남자가 더 취향이었다. 어쨌든 젊은 그녀를 늙은 영감이 만족시켜 줄 리 만무했으니까. 하지만 여자는
이게 바로 내 계획이다.오늘 조금 받아내고, 내일 조금 받아내면 결국 이 영감도 감당하지 못할 거다. 그러다가 서윤기와의 사이가 틀어지고 서윤기의 평판도 따라서 더러워질 거고.그럼 나는 그 사이에서 두 마리의 토끼를 모두 잡는 셈이다.사실 돈은 내 목적이 아니다. 때문에 일전한 푼 손댈 생각도 없다.다만 어릴 때부터 이런 짓을 해본 적 없는 나인지라, 오늘은 내 한계를 시험한 셈이었다.시간을 확인했더니 때가 이미 늦어 나는 현성과 함께 집으로 돌아갔다.민우는 그동안 자지 않고 우리를 기다렸다.“두 사람 뭐 하러 갔어? 왜 이제 와?”나는 현성과 눈빛을 교환한 뒤 약속이라도 한 듯 거짓말했다.“가게 내 약재를 정리했어.”현성의 거짓말에 민우가 뚫어져라 우리를 바라봤다.“진짜야? 그런데 왜 나는 안 불렀어? 너희 둘 설마 나한테 숨기는 거 있어? 가게 직원한테 들었는데 두 사람이 점심에 사무실에서 뭔 얘기했다며?”나는 손을 뻗어 민우의 어깨를 두드렸다.“쓸데없는 생각 그만해. 정말 아무 일도 아니야. 늦었는데 얼른 자.”나와 현성은 약속이라도 한 듯 함께 누웠다.민우는 여전히 우리를 의심했지만 딱히 증거가 없으니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다음날, 나는 현성을 일찍 깨워 두 번째 계획을 실시했다.민우는 깨어나자마자 현성이 보이지 않자 나에게 물었다.“현성은?”“몰라. 아침부터 안 보였어.”나는 거짓말했다.현성은 혼자 중얼거렸다.“이 자식 설마 또 선영이 보러 간 건 아니겠지?”현성이 꼭두새벽부터 큰일을 도모하러 갔다는 걸 아는 사람은 나뿐이다.나는 현성이더러 맞은편 한약관이 문을 열기 전에 문 앞에 ‘가짜 약’, ‘사기’, ‘사기꾼’ 등과 같은 글을 붙여 놓으라고 했다.그 한약관의 평판을 무너뜨리려면 비열한 수단을 사용해야 한다. 게다가 우리인 걸 모르게 처리해야 한다.그리고 그중에 이 방법이 가장 효과적이다.나와 민우가 천수당에 도착했을 때, 맞은편 가게 문 앞에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다만 그중
윤지은의 상처는 제때 치료된 편이라 감염의 흔적은 없었다. 때문에 안정을 취하면 그만이었다.“이봐, 잠깐 와 봐. 할 말 있어.”서지예는 나를 병실 밖으로 불러냈다.한편 윤지은은 내가 오자마자 서지예에게 불러 나가자 기분이 언짢았다.다만 나는 그것도 모르고 서지예를 따라 나갔다.“무슨 일이죠?”“내가 아빠한테 얘기했어. 아빠가 오늘 오후 우리 언니를 강북에 데려온대.”“아, 그럼 도착하면 우리 한의관으로 와요.”나는 덤덤하게 말했다.그러자 서지예가 미간을 팍 구겼다.“우리 언니가 협조를 안 해. 우리 아빠가 이쪽에 별장 하나 빌렸거든, 그래서 그동안 수호 씨더러 그 별장에서 우리 언니 치료했으면 해.”“우리 미리 말했잖아요. 그쪽 언니를 우리 한의관에 불러서 치료받게 하자고.”나는 무엇보다 서씨 가문 사람과 비밀리에 접촉해 불필요한 번거로움을 더하고 싶지 않았다.전에 서지예는 분명 약속했으면서 이제 와서 변덕을 부리고 있었다.서지예는 애교를 부리며 말했다.“나도 약속 지키고 싶었는데 우리 언니 상황 알잖아. 언니가 사람 만나는 걸 거부해. 우리 언니가 환자인 걸 봐서 사정 좀 봐줘.”내가 여전히 꿈쩍도 하지 않자 서지예는 명함 한 장을 건네며 말했다.“이 사람은 강북 서화계의 거장이야. 아래에 제자들도 많고. 오랫동안 허리로 고생했는데, 만약 이분 눈에 들면 강북 전체 서화계 쪽 유명 인사들이 수호 씨 고객이 될 거야.”서지예는 나를 잘 안다는 듯 너무나도 달콤한 제의를 해 거절할 수 없었다.나는 명함을 받으려고 손을 뻗었다. 하지만 그때 서지예가 손을 피하며 생글생글 웃었다.“우선 내 요구부터 응해. 내 요구에 응하면 명함 줄게.”나는 너무 어이없었다.“다른 선택지가 있어요? 언니가 오면 위치 보내줘요.”“좋아. 약속한 거야.”서지예는 곧바로 나에게 명함을 건넸다.명함을 확인해 보니 위에 연상철이라고 적혀 있었다.“또 연씨네?”연승호도 연씨고, 연재혁도 연씨인데, 또 연상철이라니?‘설마 이 세 사람이 무슨 관
“왜 또 이러는데요? 내가 또 지은 씨 심기 건드렸어요?”나는 윤지은 때문에 미쳐버릴 지경이다. 어쩜 사람 기분이 이렇게 변덕스럽고 얼굴이 수시로 변하는지.그때 윤지은이 이상야릇하게 말했다.“넌 잘못한 거 없어. 내가 쓸데없는 희망을 품지 말았어야 했어.”“말 좀 제대로 해줄 수 있어요? 대체 무슨 일인데요? 저 지금 지은 씨 때문에 어지러워요. 내가 뭐 말실수했어요? 아니면 뭐 잘못했어요?”아마 대부분 남자는 나처럼 감정이 둔하고 여자처럼 섬세하지 못할 거다. 때문에 여자가 갑자기 화를 내거나 삐질 때 남자는 그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다.그동안 윤지은과 오랫동안 함께 지냈기에 나도 어느 정도 윤지은의 성격을 파악했다. 윤지은은 화를 내지 않을 때는 속내를 알기 쉬운데, 삐지거나 화를 내면 분명 자기만의 이유가 있다. 그것도 대부분 너무 작아서 예상치도 못한 이유.나는 방금 내가 한 행동을 모두 떠올려봤다.내가 서지예와 함께 나가기 전까지 윤지은의 태도는 그나마 좋았다. 그런데 내가 서지예와 얘기하고 돌아오니 윤지은은 이렇게 되었다.‘설마 내가 서지예와 몰래 나가서 얘기해서 삐졌나?’나는 웃으면서 윤지은 옆에 앉았다.“또 질투해요?”윤지은은 단번에 긴장한 모습을 보였다.“누가 질투했다고 그래? 내가 넌 줄 알아?”“모르죠. 제가 볼 때 지은 씨 분명 질투해요. 서지예 씨를.”나는 일부러 윤지은을 놀려댔다.그러자 윤지은이 나를 홱 쏘아봤다.“자기애가 대단하네! 얼굴이 벽보다 더 두꺼워.”“맞아요. 저 얼굴이 원래 벽보다 더 두꺼워요. 그래서 아무리 쫓아내도 안 갈 거예요. 뭐 먹고 싶은 거 있어요? 사 올게요.”사내대장부는 여자와 싸우지 않는다고, 이렇게 사소한 일에서 윤지은한테 따질 필요는 없었다.윤지은은 고개를 홱 돌려 나를 보지 않았다.“안 먹어. 앞으로 네가 산 건 다 안 먹어.”“그럼 서지예 씨더러 사 오라고 하고 저는 여기서 지은 씨 돌봐 줄게요.”“네가 돌봐 줄 필요 없다고. 꺼져!”“안 가요. 난 지은 씨
윤지은은 끝까지 나한테 관심 있다는 걸 인정하지 않지만, 매번 삐지거나 화를 낼 때면 나를 신경 쓰고 있다는 티를 내곤 한다.부잣집 귀한 아가씨라 나처럼 능력도 없고 돈도 없는 남자를 좋아한다는 걸 인정하는 게 무엇보다 싫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하지만 나만 윤지은의 마음을 알면 그만이다.윤지은은 아직 건드리지 않은 아침을 보며 살짝 망설였다.“그럼 이따 서지예가 와서 물어보면 어떡해?”“지은 씨가 먹은 건 지은 씨 거고, 내가 서지예 씨 걸 실수로 쓰레기통에 버렸다고 할게요. 그럼 저를 탓하지 지은 씨를 의심하지 못할 거예요.”“그래. 그렇게 해.”윤지은은 그제야 아침을 들어 한입 베어 물었다.“맛없어. 길가에서 산 거야?”“저기요. 입원한 사람이 무슨 음식을 그렇게 가려요?”윤지은은 음식을 가리는 게 아니라 사실은 일부러 반대로 말한 거다.윤지은은 평소 혼자 있을 때 항상 대충 끼니를 때우거나 컵라면을 대충 먹곤 한다.하지만 이번에 입원해 있으면서 내 덕에 오히려 하루 세 끼 꼬박 챙겨 먹었고, 오늘 아침 식사도 사실 맛이 괜찮았다. 다만 윤지은 입에서 맛있다는 말이 나올 리가 없다. 워낙 예쁨 받고 자란 부잣집 아가씨라, 무엇보다 체면을 중요시했으니까.윤지은이 한창 먹고 있을 때 서지예가 들어왔다.“어? 내 아침은 어디 갔지?”나는 쓰레기통을 가리키며 말했다.“죄송해요. 제가 실수로 떨어뜨렸어요. 직접 내려가서 사 먹어요.”서지예는 화가 나서 팔짱을 낀 채 나를 노려봤다.“정수호, 일부러 그랬지?”“이런 걸 왜 일부러 그러겠어요? 정말 실수였어요...”“그럼 아가씨 잘 보살펴. 나 금방 갔다 올 테니까.”서지예는 씩씩거리며 병실을 나섰다.그 순간 눈이 마주친 나와 윤지은은 동시에 웃음이 터져 버렸다.우리의 계획이 성공적으로 먹혀들었다.서지예가 돌아온 뒤 나는 바로 병원을 떠났다. 나도 해야 할 일이 있는 몸이니까.그때 고수연이 법원에 혼자 가기 무섭다며 전화를 걸어왔다.고수연은 가게 직원이기도 하고 형수 동생
진용진이 나를 미워하는 건, 내가 전에 형수와 함께 그를 모함했기 때문이고, 고수연을 미워하는 건 아무 이유가 없다.사랑해서 결혼한 부부가 이혼할 때 원수가 되는 경우는 허다하다.고수연과 진용진이 그런 축에 속했다.재판 현장에 나도 따라갔다.진용진은 바람피운 사실을 인정하고 고수연에게 보상해 줄 것도 약속했지만 두 아이 중 한 아이의 양육권을 무조건 가지겠다고 요구했다.고수연이 아무리 발악해 봐도 달리 방법은 없었다. 이건 법률로 규정된 것이니까.“변호사님, 정말 방법이 없나요?”고수연은 눈물을 흘리며 물었다.그 말에 연재혁은 단호하게 대답했다.“없어요. 인제 그만 싸워요. 의미 없어요.”고수연은 이를 악물고 최후의 결정을 내렸다.결국 고수연은 진용진과 재산을 분할하고 아이도 한 명씩 키우기로 결정 났다.이건 가장 좋은 결과였다.고수연의 권익도 보장했을 뿐만 아니라, 너무 힘들게 살 필요도 없으니까.그리고 진용진이 고아다 보니 일 때문에 아이를 볼 여력이 없는 걸 고려해, 법원에서는 평소 고수연이 아이를 대신 돌봐주라고 판결했다.이렇게 되니 고수연은 자기가 받아야 할 재산도 받고, 아이도 동시에 키울 수 있게 되었다.재판이 끝난 뒤, 고수연은 나에게 4백만 원을 이체했다.“사장님, 이건 전에 빌린 돈이에요.”“힘들 텐데 먼저 써요. 전 급하지 않아요.”“아니에요. 쓸 거 충분해요. 진용진이 그동안 돈을 그렇게 많이 번 줄도 몰랐어요. 이혼하면서 받은 위자료만 해도 몇천만 원이에요.”진용진이 지금 사는 집을 고수연은 갖지 않았지만 모두 현금화해서 계산했다. 때문에 위자료와 집값을 합치면 족히 1억 6천만 원 정도 된다.이건 고수연한테 큰돈이나 다름없다.고수연은 연재혁에게 변호사 비용을 준 뒤 우리에게 식사 대접을 하겠다고 나섰다.“저는 됐어요. 따로 일이 있어 앞으로 도움 필요하면 언제든 연락해요.”“네. 그럼 조심히 살펴 가세요.”연재혁이 떠난 뒤, 고수연은 나를 바라봤다.“사장님, 우리끼리 식사하러 갈까요?”“
음식을 먹고 있던 나는 하마터면 목이 멜 뻔했다.다행히 물을 마셔 겨우 음식을 삼켜버렸다.나는 다급히 고수연을 바라봤다.“지금 장난해요? 저더러 아이들 아빠를 하라고요? 무슨 생각인 거예요?”고수연은 서둘러 설명했다.“제 아이가 아직 어려서 아무것도 모르거든요. 그런데 이혼해서 아빠의 사랑이 부족하게 클까 봐 그래요. 매일 같이 있어 줄 필요는 없어요. 가끔 가서 아이한테 아빠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하면 돼요.”나는 힘껏 손사래를 쳤다.“안 돼요. 절대 안 돼요. 이건 너무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당분간 속일 수 있다고 평생 속일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앞으로 모든 걸 알게 되면 어떻게 설명할 건데요?”“아이가 조금만 더 크면, 사장님이 아이 아빠가 아니라는 거 알려줄 거예요.”“이건 억지잖아요.”고수연은 너무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어쩐지 식사 대접까지 하면서 살갑게 군다 했더니 목적이 있어서였다.나는 입을 닦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밥은 됐어요. 그건 도와줄 수 없을 것 같네요.”“사장님, 우선 가지 마요.”고수연은 내 손을 잡았다.그 순간 나는 고수연의 손을 뿌리쳤다.“그만해요. 무슨 말을 하든 동의 안 해요.”“알았어요. 아무 말 안 할게요. 식사마저 해요.”나는 의심의 눈초리로 고수연을 바라봤다. 아무리 생각해도 고수연이 이렇게 쉽게 포기한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하지만 고수연은 계속 내 손을 잡아당겼다.“얼른 앉아요. 다른 사람들이 보잖아요.”나도 사람들이 이상한 눈빛으로 우리를 보는 게 싫어 결국 다시 자리에 앉았다.하지만 이내 경고를 날렸다.“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는 앞으로 하지 마요. 안 그러면 지금 하는 일도 계속하지 못하게 될 수 있어요.”고수연은 결국 한숨을 푹 내쉬었다.“나도 아이가 심리적으로 안 좋은 영향을 받을까 봐 그래요.”“다른 방법 많아요. 하지만 이 방법은 절대 안 돼요. 그리고 나 어떻게 해볼 생각도 하지 마요.”고수연은 형수 동생이다. 그런데 내가
“초대? 어디?”“다연 식당을 승호 도련님이 샀거든. 오늘 새로 개업하는 날이라 승호 도련님이 나더러 너 데려오래.”다연 식당을 구매한 사람이 연승호였다니. 이건 생각지도 못한 전개였다.연승호는 백연우 때문에 나랑 엮이게 되었고, 항상 찾아와서 시비를 걸며 자기의 우월함을 드러내곤 한다.그런데 내가 만약 순순히 가면 분명 또 한껏 들떠서 뽐낼 거다.때문에 나는 핑계를 둘러댔다.“안 될 것 같아. 가게에 처리해야 할 일이 좀 있어서.”여준휘는 주위를 빙 둘러보더니 피식 웃었다.“요즘 천수당에 손님이 없다던데, 뭐가 그렇게 바빠?”민우는 그 말에 순간 욱해서 다가왔다.“개자식이 뭐라고 했어? 다시 말해 봐!”“얼씨구, 난 사실을 말했을 뿐인데, 설마 사람 때리게? 천수당은 영업 이렇게 하나?”여준휘는 일부러 목소리를 높였다.나는 얼른 민우를 막아섰다.“가게에 손님이 없지만 다른 잡다한 일을 처리해야 해서 못 가.”“알았어. 그럼 승호 도련님한테는 그렇게 말할게. 천수당이 너무 바빠서 네가 올 시간이 없다고.”여준휘는 뒷짐을 쥔 채 떠나갔다.여준휘가 떠난 뒤 민우는 끝내 참지 못하고 욕지거리를 내뱉었다.“젠장. 그냥 잘난 체하러 온 거잖아.”“저 자식들이 다연 식당을 샀으면 우리 여기랑 거리도 가까운데, 앞으로 하루하루가 참 고역이겠어.”민우는 참지 못하고 불평을 늘어놓았다.“이건 진짜 너무하잖아. 맞은편 가게에서 우리 손님 뺏는 것도 모자라 이젠 저 자식들까지 열받게 한다니. 앞으로 장사 어떻게 해?”“이런 풍파도 못 참고 어떡해?”나는 민우를 바라봤다.그러자 민우는 불만 섞인 투로 말했다.“못 차는 게 아니라 우리 이제 개업한 지 며칠 안 됐는데 너무 많은 일이 있으니까, 이렇게 장사 하다간 망할 것 같아.”“그런 말 하면 안 되지. 희망은 우리 스스로 가지는 거야. 우리가 포기하면 가게 정말 망해.”비록 조금 꼰대 같은 말이긴 하지만 사람이 안 좋은 상황에서 이런 말로나마 위로해야 버틸 수 있다.가게가 연달아
“손 선생님, 저한테 부담 주지 마요. 이럴수록 제가 더 긴장해요.”나는 손태진이 나더러 신중해지라고 이 점을 강조한다는 걸 알았지만, 이럴수록 내 긴장감만 더할 분이었다.내 말에 손태진은 나를 째려보더니 그제야 더 이상 압력을 가하지 않았다.나는 사무실로 향하는 동안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추슬렀다.연상철은 우리를 보자 싱글벙글 웃으며 다가왔다.“수호 군, 왔네요.”나는 연상철을 향해 허리를 숙였다.“저를 믿어 주셔서 감사합니다.”“연 선생님, 다시 한번 생각해 보세요.”그때 사람들 사이에서 누군가 걱정 섞인 목소리를 내뱉었다.그러자 다른 사람들도 바로 맞장구쳤다.“그래요. 이건 보통 일이 아니에요. 만약 무슨 일이라도 나면 어떡하시려고요?”“연 화백님은 우리의 기둥이에요. 협회에 화백님이 없으면 안 돼요.”“이제 곧 서화 대회가 열리는데, 그때 무대에 올라가 연설도 해야 하잖아요.”연상철은 손을 들어 사람들의 말을 잘랐다.“다들 나 걱정하는 거 아네. 나도 심사숙고 끝에 내린 결정이야. 알다시피 이 팔목이 이렇게 된 건 벌써 십 년 도 넘지 않나. 바람이 불거나 비가 내리면 아파서 들지도 못해.”“난 날씨가 좋을 때만 그림을 그릴 수 있고 글을 쓸 수 있어. 예전이라면 참을 수 있지만 나이가 들면서 점점 죽어간다고 생각하니 그림을 더 그리고 싶어지네.”“좋은 날씨에만 그림 그릴 수 있는 거로는 이제 나도 만족할 수 없어. 나도 목숨이 끝나기 전에 유작이라도 많이 남겨 놓고 싶네.”연상철은 한평생 회화와 서예에 온 심혈을 기울였다. 서화는 연상철에게 목숨과도 같다.연상철의 말을 들은 순간 나는 연상철이 존경스러웠다.한 사람이 평생 한 가지 일에 자기의 모든 심혈을 기울인다는 건 아주 위대하고 대단한 일이다. 연상철은 말을 이었다.“만약 실패하더라도 그게 운명이겠거니 받아들일 거네. 하지만 나도 시도해 보고 싶네.”“사람은 원래 자기를 위해 평생 싸우지 않나? 내가 몸은 늙었지만 마음은 아직 팔팔해.”마지막 한마디는 듣
서윤기는 그 일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어릿광대들이 춤추는 게 뭐가 무섭다고 그래요? 내가 공급해 주는 게 비록 대체품이긴 하지만 아무 문제도 없으니 걱정하지 말고 사용해요.”“서 사장님, 아직은...”서윤기의 표정은 단번에 어두워졌다.“주 사장, 지금 내 명을 어기겠다는 거예요?”“아닙니다. 그럼 서 사장님 말대로 대체 약재를 보내줘요.”서유기의 덕을 보고 있는 주광덕은 서윤기의 명령을 어길 수 없었다. 그러자 서윤기는 호탕하게 웃으며 떠나갔다.서윤기가 떠난 뒤 주광덕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돈 좀 모으면 나도 안 해. 내가 왜 남 눈치 보며 일해야 하는데?”...나는 이 사실을 모르는 데다 관심도 없었다.천수당에 돌아온 나는 연상철을 치료하러 갈 준비를 했다.이번 치료는 아주 중요한 것이기에 조금의 착오도 있어서는 안 된다. 때문에 나는 할 일이 없을 때면 침술을 연습해다.민우와 현성도 이번 일이 중요한 걸 알고 있었기에 나를 방해하지 않았다.나는 그렇게 혼자 사무실에서 몇 시간째 침술 연습만 하다가 점심까지 걸렀다.그러다가 1시가 넘었을 때, 나는 대충 음식을 챙겨 먹고 민우와 함께 서화협회로 향했다.가는 길에 민우는 연신 가슴을 쓸어내렸다.“수호야, 나 왜 이렇게 긴장되냐?”나는 웃으며 말했다.“연 선생님 치료하는 사람은 나인데, 네가 왜 긴장해?”“나도 모르겠어. 그냥 긴장되고 심장이 너무 빨리 뛰어. 우리 가게 오픈해서 지금까지 이렇게 큰 고객을 상대하는 건 처음이잖아. 만약 이번에 치료를 제대로 못 하면 우리 밥그릇을 잃을지도 몰라.”나는 손을 들어 민우의 이마를 튕겼다.“다른 사람은 나 안 믿어도 되지만, 너도 나 안 믿어?”“아니. 널 안 믿는 게 아니라 연 선생님 신분이 워낙 특수하잖아. 난 그렇게 대단한 분과 교류해 보는 거 처름이야.”나는 민우의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한의관을 하면서 이런저런 사람 다 만날 텐데, 너처럼 담력이 없으면 앞으로 장사 어떻게 해? 난 앞으로 상류층 고개만 받을까
서윤기는 겉으로 보기에 친절해 보이지만 속내는 검은 인간이다. 심지어 지금까지 나한테 당한 걸 속에 두고 있다.서윤기가 볼 때 자신은 이 바닥에서 오래 굴러본 사장님인데, 나같이 아무것도 아닌 사회 샛내기한테 당했으니 분명 마음이 안 좋을 거다.때문에 내가 지금 고개를 숙인 건 서윤기의 용서를 구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의 우월감만 더해주는 셈이다.서윤기는 이런 방식으로 나를 찍어 누르고 나한테 자기가 누구인지 똑똑히 알려주고 싶었을 뿐이었다.역시나 내 생각은 거의 들어맞았다.서윤기는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나를 봤다.“전에 기회를 줄 때 소중히 여기지, 지금은 기회를 주고 싶지 않아. 어때? 못 버티겠지? 그게 맞는 거야. 이제 시작이야. 더한 건 아직 뒤에 남았어.”“장사하고 싶지? 내가 못 하게 할 거야. 이건 나를 건드린 벌이야.”서윤기는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었다.나는 그의 눈빛에서 욕망과 통제욕을 보았다.서윤기도 처음에는 정 사장님과 마찬가지로 국민을 위해 생각했다지만, 결국 스스로 이익이라는 늪에 빠지게 되었다.지금의 서윤기는 눈에 이익과 돈, 그리고 남을 통제하려는 욕구만 남아 있었다.이럴 때마다 나는 정 사장님을 탄복하지 않을 수 없다.항상 초심을 유지하는 건 쉽지 않다. 그건 아주 위대한 일이다. 그런데 정 사장님은 그 위대한 일을 하고 있다.이 세상에 아마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거다.나는 빙그레 웃으며 일어섰다.“가르침 고마워요. 그럼 난 이만.”목적에 도달한 나는 더 이상 서윤기와 마주 앉아 연기하고 싶지 않았다. 이건 너무 힘들고 재미없었다.찻집에서 나와 천수당에 돌아오니 현성도 얼마 뒤 돌아왔다.나는 다급히 물었다.“그 영감 반응 어땠어?”“내가 그 영감한테 네가 서윤기 사촌 동생이라고 했더니 믿더라.”‘좋았어.’이제 우리 계획대로 또 한 발 나간 셈이다.‘서윤기, 네가 언제까지 날뛰나 두고 보자고.’한편, 주광덕 즉 우리가 늘 말하던 영감은 나와 서윤기의 사이를 확인한 뒤 불안
손태진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오늘 오후 두 시, 연 선생님이 협회에서 기다릴 거예요.”“네. 제때 도착할게요.”나는 직접 손태진을 배웅했지만, 손태진의 태도는 여전히 차가웠다.손태진이 떠난 뒤 우리 셋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너무 잘 됐다. 연 선생님 팔목만 치료하면 우리는 연상철 화백이라는 인맥이 생기는 거잖아.”“연 선생님은 서화협회 협회장이라 인맥도 넓을 텐데.”민우는 잔뜩 흥분해서 보충했다.“지난번에 보니까 서화협회에 있는 분들 모두 어르신이더라고. 그 나이가 되면 몸에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야.”“와. 만약 연 선생님 팔목을 치료한다면 우리 가게 다시 살아날 수 있어.”현성도 함께 감탄했다.그때 나는 두 사람을 일깨웠다.“이 일은 비밀로 해야 해. 우리 가게 직원들한테도 말하지 마. 안 그러면 누가 또 무슨 짓을 할지 몰라.”연상철은 아주 최상급 고객이기에 가게를 방문하는 횟수가 적어도 필요할 때 분명 큰 금액을 쓸 수 있다.이렇게 우질 고객을 유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적들에게 알리지 않고 몰래 돈을 버는 거다.“됐어. 난 찻집에 가 볼게.”연상철과의 약속은 오후로 잡혔기에 나는 우선 서윤기 일부터 처리하기로 했다.민우는 내가 뭐 하러 찻집에 가는지 몰랐지만 굳이 묻지 않았다.내가 찻집에 도착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서윤기가 나타났다.나는 이미 주문한 차를 서윤기에게 건넸다.“이 집 차 괜찮던데, 마셔 봐요.”서윤기는 내 앞에 앉았다.“빙빙 돌리지 말고 말해. 무슨 일로 찾았는데?”“서 사장이 나 엿 먹인 것도 내가 화 안 냈는데. 왜 본인이 도리어 화내실까?”나는 서둘러 본론을 말하지 않고 시간을 끌었다.우리 맞은편 가게는 비록 요즘 장사에 타격받았지만, 여전히 손님이 많아 영감은 이 시간쯤 가게에서 바삐 보내고 있을 거다. 때문에 나는 현성에게 충분한 시간을 줘야 했다.내가 고른 자리는 마침 맞은편 가게가 보이는 자리였다. 나는 이곳에서 현성의 신호만 기다리면 된다.“하
나는 허허 웃으며 말했다.“안 될 거 뭐 있어요? 거래할 건 없어도 정은 남아 있잖아요. 파트너는 못해도 친구는 할 수 있죠.”서윤기는 콧방귀를 뀌었다.[난 네놈이랑 친구 못해!]“너무 극단적으로 얘기하지 마요. 적어도 마지막 선은 남겨 둬야 나중에 너무 껄끄러워지지 않죠. 사실 할 얘기가 있는데, 만나서 얘기할래요?”[관심 없어.]서윤기는 단호하게 거절했다.나는 서윤기가 이런 태도로 나올 거라는 걸 진작 알았다. 나한테 당한 게 있으니 기분 안 좋은 것도 당연했다.“사업에 관한 얘기인데, 정말 싫어요? 당신 같은 장사꾼들은 모두 이익이 우선이잖아요. 언제부터 감정적으로 굴었다고 그래요?”나는 여전히 침착하게 말했다.서윤기는 한참 고민하더니 결국 말을 바꾸었다.[주소 보내.]“당신이 이끌어주는 가게 맞은편에 찻집이 있어요. 그곳에서 기다릴게요.”나는 일부러 그곳을 약속 장소로 잡았다. 목적은 바로 그 영감이 나와 서윤기가 함께 있는 모습을 보게 하기 위해서였다.서윤기는 흔쾌히 동의했다.[알았어. 바로 갈게.]서윤기와 약속을 한 뒤 나는 현성을 찾았다.“내가 서윤기랑 약속 잡았어. 저 가게 맞은편에 있는 찻집에서 만나기로 했거든. 이따가 방법을 대서 우리가 함께 있는 걸 영감이 보게 해.”“알았어.”나와 현성이 얘기하고 있을 때 민우가 걸어 들어왔다.“둘이서 무슨 얘기를 그렇게 해?”“아무것도 아니야. 무슨 일이야?”민우는 그 말에 기분 좋은 듯 나에게 달려왔다.“서화협회의 손 선생님이 찾아왔어. 너를 만나고 싶대.”이건 참으로 의외의 수확이었다.얼른 로비로 나가 봤더니 손태진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나는 예의 있게 먼저 손태진에게 인사했다.“손 선생님, 어쩐 일로 직접 오셨어요?”“연 선생님이 시켜서 왔어요. 연 선생님이 수호 씨에게 기회를 한 번 주겠대요.”사실 손태진이 이곳에 나타난 순간 나는 연상철의 뜻을 대충 짐작했다. 하지만 그걸 손태진 입으로 직접 들으니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언제쯤 편하다고
나는 깔깔 웃음을 터뜨렸다.“그래. 신고해. 우리가 잡히면 당신과 서 사장님 협력은 여기서 쫑나. 당신이 서 사장님 덕에 매일 버는 돈이 몇천만 원이잖아. 난 그중의 일부분만 가지는 거야. 그것도 싫으면 장사 잘못하는 거지.”“작은 돈 챙기려고 큰 거 잃는다면 밑지는 장사 아니겠어? 나라면 그렇게 하지 않을 텐데.”나는 은근히 이해관계를 대신 따지며 어떻게 해야 손해를 적게 보는지 분석해 주었다.영감은 역시나 매일 큰돈을 버는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아 한참 고민하다가 결국 물었다.“얼마나 원하는데?”나는 손가락 하나를 내밀었다.그러자 영감이 눈이 휘둥그레서 물었다.“얼마? 천만 원? 미쳤어?”영감은 자리에서 펄쩍 일어났다.하지만 나는 여전히 덤덤한 표정으로 말했다.“방법 없어. 나 오늘 돈 모자라거든.”“협력 안 해도 상관없어. 이 돈은 못 줘.”“그래. 우리 가자.”나는 더 이상 돈을 요구하지 않고 그대로 일어서서 자리를 떠났다. 그 뒤로 현성도 따라나섰다.함께 밖으로 나온 뒤 현성은 바로 물었다.“이건 무슨 계획인데? 나 하나도 모르겠어.”“상대를 너무 몰아세우면 안 돼. 안 그러면 당장 서윤기한테 전화해서 우리 정체가 탄로 날 수 있어.”“그럼 오늘 온 목적은 뭔데? 돈이 아니야?”현성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내가 오늘 여기에 온 진짜 목적은 돈이 아니다.돈을 요구하는 건 단지 수단일 뿐이고, 내 목적은 이 영감이 서윤기에 대한 믿음을 깨버리는 거다. 그와 동시에 서윤기가 믿지 못할 사람이라고 느끼게 하는 거다.영감의 입으로 서윤기를 까 내리면 앞으로 그 누구도 서윤기와 손잡으려 하지 않을 거다.내 계획을 들은 현성은 여전히 어리둥절했다.“난 여전히 모르겠는데? 하, 내가 너무 바보인가 봐.”나는 웃으며 현성의 어깨를 끌어안았다.“괜찮아. 천천히 알게 될 거야.”“수호야, 너 학교 다닐 때랑 왜 이렇게 달라졌어? 얼굴이 그대로가 아니라면 네가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거야.”현성은 조용히 감탄했
현성은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천만 원? 너무 많은 거 아니야?”“많긴 하지만, 이렇게 많이 요구하지 않으면 그 사람들이 마음 아파하지 않아.”“그러다가 경찰에 신고하면 어떡해?”현성은 걱정스레 물었다.“신고 못 하게 할 수 있어.”“뭔데?”“서윤기.”서윤기는 그 영감의 약점이다. 전에 내가 이렇게 쉽게 그 영감을 주무를 수 있는 게 아니다.하지만 돈을 더 받아내려면 우리 말만으로는 소용이 없다. 때문에 나는 방법을 생각해 그 영감이 내가 서윤기 부하라는 걸 믿게 할 생각이었다. 심지어 내가 영감을 찾아와 돈을 받는다는 걸 서윤기도 알고 있다는 오해를 만들어야 한다.그렇게 해야 두 사람 사이를 갈라놓을 수 있으니까.그날 밤, 우리는 또 영감을 찾아가 위기감을 조성하기로 했다.현성은 약간 망설였지만 결국 나와 함께 가기로 했다.“수호야, 난 너 믿어.”우리는 어젯밤처럼 모든 사람이 떠난 뒤 따로 행동했다.민우는 비록 우리를 의심했지만 임설아 일 때문에 별생각 하지 않았다.모두가 떠난 뒤 우리는 곧장 영감의 집으로 향했다.어젯밤 한 번 다녀간 적 있기에 오늘 우리는 미행하지 않고 바로 목적지에 도착했다.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현성은 스스로 마인드 컨트롤을 했다.“저 인간들이 먼저 우리한테 잘못한 거야. 우리는 그냥 당한 걸 갚아주는 거야.”그렇게 마인드 컨트롤을 한 뒤 우리는 문을 두드렸다.영감은 나를 보자마자 안색이 나빠졌다.“왜 또 왔어? 무슨 일인데?”흐트러진 옷을 보니 이제 막 하려고 준비 중인 듯했다.나와 현성은 영감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서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어젯밤 받은 5백만 원은 다 썼어. 그래서 돈 좀 더 받으려고.”“내가 은행도 아니고, 무슨 돈이 그렇게 많아?”영감은 당연히 싫어했다.나는 그 말에 피식 웃었다.“서 사장님이 제공하는 약재는 원래 구매 경로보다 절반이나 싸다는 거 알잖아. 요즘 장사도 잘되고 고객도 많았을 테니 내가 더 말할 필요는 없겠지?”“이틀 영업액이 예전의 한 달
1층 전체에 씁쓸하고 시큼한 냄새가 진동했다.연승호는 괴로운 듯 코를 틀어막고 나를 향해 욕지거리를 퍼부었다.“정수호, 당장 이거 닦아내. 안 그러면 죽을 줄 알아.”나는 피식 웃으며 박스째로 던졌다.“그래. 어디 해 보든지. 가자.”목표를 달성한 우리는 바로 뒤돌아 가게를 나섰다.연승호는 속에서 열불이 났지만 나를 상관할 겨를이 없었다.가게에 냄새가 진동하는 바람에 고객들은 모두 놀라서 도망치고, 심지어 아무도 들어오려고 하지 않았다.연승호는 여준휘 더러 사람들을 데리고 가게를 청소하라고 명령했다.그 명령에 여준휘는 바로 약을 지우려고 했지만, 한약재를 달인 물이라 그런지 아무리 물로 닦아도 지워지지 않았다.“큰일 났어요, 도련님. 약물이 안 닦아져요.”“뭐? 안 닦아지면 칼로 도려내.”“하지만 벽과 테이블 여기저기에 묻어 있어 다 도려내면 우리 가게 벽과 테이블이 남아나질 않아요.”연승호는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알아챘다. 그 순간 연승호는 화가 치밀어 버럭 소리쳤다.“아! 정수호, 내가 너 꼭 죽이고 만다...”나는 연승호가 가만있지 않을 걸 알았기에 멀리 가지 않았다. 그러다가 연승호가 미친 듯 날뛰자 다시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연승호, 날 어떻게 죽일 건데? 그러니까 앞으로 좀 얌전히 있어. 내 머릿속에 있는 한의학 지식을 대충 하나만 써먹어도 넌 고통스러워질 테니까.”“이런 방법으로 넌 날 못 이겨. 오늘은 너한테 주는 경고야. 하지만 또 이러면 다음번엔 쉽게 안 끝나.”나는 문에 기대어 연승호에게 마지막 경고를 남기고 그대로 떠나버렸다.일을 저지르고 천수당에 돌아오니 민우와 현성은 매우 기뻐했다.우리 모두 젊고 어리다. 모두 두 팔과 두 다리, 코 하나에 눈 두 개를 갖고 있는데, 누가 누구보다 못한 건 없다.그런데 윤승호는 항상 자기가 뭐라도 되는 듯 우월감을 갖고 있다.우리가 가게를 오픈한 건 우리 능력 덕분이고, 윤승호가 가게를 오픈한 건 아버지 능력 덕분이다. 그런데 대체 왜 그렇게 잘난체하는지 이해
우리가 푸른솔에 나타났을 때 연승호는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그도 그럴 게, 우리가 이런 상황에서 이곳에 찾아올 줄 몰랐을 테니까.연승호는 코에 반창고를 붙인 채 씩씩거리며 우리 앞에 다가왔다.“왜 왔어?”나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우리도 선물 주러 왔지. 자고로 받으면 돌려줄 줄도 알아야 하잖아.”민우는 손에 든 박스를 들어 올렸다.“그래. 이건 우리 셋이 고생고생해서 준비한 거야.”연승호는 경계 가득한 눈빛으로 우리 손에 든 박사를 바라봤다.“너희가 설마 좋은 의도로 그러겠어? 고양이 쥐 생각하는 것도 아니고.”그때 현성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우리가 고양이가 맞다고 해도 연 사장님은 쥐가 아니잖아. 대단하신 연승호 도련님이 쥐라니. 본인이 정 그렇게 생각하면 그렇게 불러 주고.”은근히 사람을 돌려 까는 현성의 모습에 나와 민우는 웃음을 터뜨렸다.연승호는 체면이 팍 구겨졌다.“꺼져. 다 꺼져. 여긴 너희들 안 반겨.”우리 셋은 조금도 화내지 않고 계속해서 싱글벙글 웃었다.“어떻게 그래? 이와 온 김에 선물은 줘야지. 안 그러면 우리 마음이 불편해.”그때 민우가 상자를 열었고, 연승호와 여준휘는 곧바로 경계 태세를 취했다. 두 사람도 우리가 복수하러 왔다는 걸 알고 있었다.하지만 우리가 연 박스 안에 들어 있는 한약을 본 순간 연승호와 여준휘는 바로 경계를 풀었다.여준휘는 얼른 아부했다.“보약을 가져다주러 왔네요. 승호 도련님, 제가 말했죠. 저 셋이 무슨 배짱으로 우리한테 시비를 걸겠어요?”그때 직원 한 명이 맞장구쳤다.“사장님 심기를 건드리면 본인들도 무사하지 않는다는 걸 알아서 사과하러 왔나 보네요.”연승호는 워낙 아둔해서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저를 추켜세우는 걸 좋아한다. 아마 조금이라도 머리가 있는 놈이라면 이 두 사람의 말에 놀아나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연승호는 웃으며 우리를 바라봤다.“그런 거였네. 흥. 이렇게 선물을 가져온다고 내가 용서해 줄 것 같아? 정수호, 네가 오늘 나를 때린 건 평생 기억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