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성은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천만 원? 너무 많은 거 아니야?”“많긴 하지만, 이렇게 많이 요구하지 않으면 그 사람들이 마음 아파하지 않아.”“그러다가 경찰에 신고하면 어떡해?”현성은 걱정스레 물었다.“신고 못 하게 할 수 있어.”“뭔데?”“서윤기.”서윤기는 그 영감의 약점이다. 전에 내가 이렇게 쉽게 그 영감을 주무를 수 있는 게 아니다.하지만 돈을 더 받아내려면 우리 말만으로는 소용이 없다. 때문에 나는 방법을 생각해 그 영감이 내가 서윤기 부하라는 걸 믿게 할 생각이었다. 심지어 내가 영감을 찾아와 돈을 받는다는 걸 서윤기도 알고 있다는 오해를 만들어야 한다.그렇게 해야 두 사람 사이를 갈라놓을 수 있으니까.그날 밤, 우리는 또 영감을 찾아가 위기감을 조성하기로 했다.현성은 약간 망설였지만 결국 나와 함께 가기로 했다.“수호야, 난 너 믿어.”우리는 어젯밤처럼 모든 사람이 떠난 뒤 따로 행동했다.민우는 비록 우리를 의심했지만 임설아 일 때문에 별생각 하지 않았다.모두가 떠난 뒤 우리는 곧장 영감의 집으로 향했다.어젯밤 한 번 다녀간 적 있기에 오늘 우리는 미행하지 않고 바로 목적지에 도착했다.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현성은 스스로 마인드 컨트롤을 했다.“저 인간들이 먼저 우리한테 잘못한 거야. 우리는 그냥 당한 걸 갚아주는 거야.”그렇게 마인드 컨트롤을 한 뒤 우리는 문을 두드렸다.영감은 나를 보자마자 안색이 나빠졌다.“왜 또 왔어? 무슨 일인데?”흐트러진 옷을 보니 이제 막 하려고 준비 중인 듯했다.나와 현성은 영감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서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어젯밤 받은 5백만 원은 다 썼어. 그래서 돈 좀 더 받으려고.”“내가 은행도 아니고, 무슨 돈이 그렇게 많아?”영감은 당연히 싫어했다.나는 그 말에 피식 웃었다.“서 사장님이 제공하는 약재는 원래 구매 경로보다 절반이나 싸다는 거 알잖아. 요즘 장사도 잘되고 고객도 많았을 테니 내가 더 말할 필요는 없겠지?”“이틀 영업액이 예전의 한 달
나는 깔깔 웃음을 터뜨렸다.“그래. 신고해. 우리가 잡히면 당신과 서 사장님 협력은 여기서 쫑나. 당신이 서 사장님 덕에 매일 버는 돈이 몇천만 원이잖아. 난 그중의 일부분만 가지는 거야. 그것도 싫으면 장사 잘못하는 거지.”“작은 돈 챙기려고 큰 거 잃는다면 밑지는 장사 아니겠어? 나라면 그렇게 하지 않을 텐데.”나는 은근히 이해관계를 대신 따지며 어떻게 해야 손해를 적게 보는지 분석해 주었다.영감은 역시나 매일 큰돈을 버는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아 한참 고민하다가 결국 물었다.“얼마나 원하는데?”나는 손가락 하나를 내밀었다.그러자 영감이 눈이 휘둥그레서 물었다.“얼마? 천만 원? 미쳤어?”영감은 자리에서 펄쩍 일어났다.하지만 나는 여전히 덤덤한 표정으로 말했다.“방법 없어. 나 오늘 돈 모자라거든.”“협력 안 해도 상관없어. 이 돈은 못 줘.”“그래. 우리 가자.”나는 더 이상 돈을 요구하지 않고 그대로 일어서서 자리를 떠났다. 그 뒤로 현성도 따라나섰다.함께 밖으로 나온 뒤 현성은 바로 물었다.“이건 무슨 계획인데? 나 하나도 모르겠어.”“상대를 너무 몰아세우면 안 돼. 안 그러면 당장 서윤기한테 전화해서 우리 정체가 탄로 날 수 있어.”“그럼 오늘 온 목적은 뭔데? 돈이 아니야?”현성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내가 오늘 여기에 온 진짜 목적은 돈이 아니다.돈을 요구하는 건 단지 수단일 뿐이고, 내 목적은 이 영감이 서윤기에 대한 믿음을 깨버리는 거다. 그와 동시에 서윤기가 믿지 못할 사람이라고 느끼게 하는 거다.영감의 입으로 서윤기를 까 내리면 앞으로 그 누구도 서윤기와 손잡으려 하지 않을 거다.내 계획을 들은 현성은 여전히 어리둥절했다.“난 여전히 모르겠는데? 하, 내가 너무 바보인가 봐.”나는 웃으며 현성의 어깨를 끌어안았다.“괜찮아. 천천히 알게 될 거야.”“수호야, 너 학교 다닐 때랑 왜 이렇게 달라졌어? 얼굴이 그대로가 아니라면 네가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거야.”현성은 조용히 감탄했
나는 허허 웃으며 말했다.“안 될 거 뭐 있어요? 거래할 건 없어도 정은 남아 있잖아요. 파트너는 못해도 친구는 할 수 있죠.”서윤기는 콧방귀를 뀌었다.[난 네놈이랑 친구 못해!]“너무 극단적으로 얘기하지 마요. 적어도 마지막 선은 남겨 둬야 나중에 너무 껄끄러워지지 않죠. 사실 할 얘기가 있는데, 만나서 얘기할래요?”[관심 없어.]서윤기는 단호하게 거절했다.나는 서윤기가 이런 태도로 나올 거라는 걸 진작 알았다. 나한테 당한 게 있으니 기분 안 좋은 것도 당연했다.“사업에 관한 얘기인데, 정말 싫어요? 당신 같은 장사꾼들은 모두 이익이 우선이잖아요. 언제부터 감정적으로 굴었다고 그래요?”나는 여전히 침착하게 말했다.서윤기는 한참 고민하더니 결국 말을 바꾸었다.[주소 보내.]“당신이 이끌어주는 가게 맞은편에 찻집이 있어요. 그곳에서 기다릴게요.”나는 일부러 그곳을 약속 장소로 잡았다. 목적은 바로 그 영감이 나와 서윤기가 함께 있는 모습을 보게 하기 위해서였다.서윤기는 흔쾌히 동의했다.[알았어. 바로 갈게.]서윤기와 약속을 한 뒤 나는 현성을 찾았다.“내가 서윤기랑 약속 잡았어. 저 가게 맞은편에 있는 찻집에서 만나기로 했거든. 이따가 방법을 대서 우리가 함께 있는 걸 영감이 보게 해.”“알았어.”나와 현성이 얘기하고 있을 때 민우가 걸어 들어왔다.“둘이서 무슨 얘기를 그렇게 해?”“아무것도 아니야. 무슨 일이야?”민우는 그 말에 기분 좋은 듯 나에게 달려왔다.“서화협회의 손 선생님이 찾아왔어. 너를 만나고 싶대.”이건 참으로 의외의 수확이었다.얼른 로비로 나가 봤더니 손태진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나는 예의 있게 먼저 손태진에게 인사했다.“손 선생님, 어쩐 일로 직접 오셨어요?”“연 선생님이 시켜서 왔어요. 연 선생님이 수호 씨에게 기회를 한 번 주겠대요.”사실 손태진이 이곳에 나타난 순간 나는 연상철의 뜻을 대충 짐작했다. 하지만 그걸 손태진 입으로 직접 들으니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언제쯤 편하다고
손태진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오늘 오후 두 시, 연 선생님이 협회에서 기다릴 거예요.”“네. 제때 도착할게요.”나는 직접 손태진을 배웅했지만, 손태진의 태도는 여전히 차가웠다.손태진이 떠난 뒤 우리 셋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너무 잘 됐다. 연 선생님 팔목만 치료하면 우리는 연상철 화백이라는 인맥이 생기는 거잖아.”“연 선생님은 서화협회 협회장이라 인맥도 넓을 텐데.”민우는 잔뜩 흥분해서 보충했다.“지난번에 보니까 서화협회에 있는 분들 모두 어르신이더라고. 그 나이가 되면 몸에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야.”“와. 만약 연 선생님 팔목을 치료한다면 우리 가게 다시 살아날 수 있어.”현성도 함께 감탄했다.그때 나는 두 사람을 일깨웠다.“이 일은 비밀로 해야 해. 우리 가게 직원들한테도 말하지 마. 안 그러면 누가 또 무슨 짓을 할지 몰라.”연상철은 아주 최상급 고객이기에 가게를 방문하는 횟수가 적어도 필요할 때 분명 큰 금액을 쓸 수 있다.이렇게 우질 고객을 유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적들에게 알리지 않고 몰래 돈을 버는 거다.“됐어. 난 찻집에 가 볼게.”연상철과의 약속은 오후로 잡혔기에 나는 우선 서윤기 일부터 처리하기로 했다.민우는 내가 뭐 하러 찻집에 가는지 몰랐지만 굳이 묻지 않았다.내가 찻집에 도착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서윤기가 나타났다.나는 이미 주문한 차를 서윤기에게 건넸다.“이 집 차 괜찮던데, 마셔 봐요.”서윤기는 내 앞에 앉았다.“빙빙 돌리지 말고 말해. 무슨 일로 찾았는데?”“서 사장이 나 엿 먹인 것도 내가 화 안 냈는데. 왜 본인이 도리어 화내실까?”나는 서둘러 본론을 말하지 않고 시간을 끌었다.우리 맞은편 가게는 비록 요즘 장사에 타격받았지만, 여전히 손님이 많아 영감은 이 시간쯤 가게에서 바삐 보내고 있을 거다. 때문에 나는 현성에게 충분한 시간을 줘야 했다.내가 고른 자리는 마침 맞은편 가게가 보이는 자리였다. 나는 이곳에서 현성의 신호만 기다리면 된다.“하
서윤기는 겉으로 보기에 친절해 보이지만 속내는 검은 인간이다. 심지어 지금까지 나한테 당한 걸 속에 두고 있다.서윤기가 볼 때 자신은 이 바닥에서 오래 굴러본 사장님인데, 나같이 아무것도 아닌 사회 샛내기한테 당했으니 분명 마음이 안 좋을 거다.때문에 내가 지금 고개를 숙인 건 서윤기의 용서를 구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의 우월감만 더해주는 셈이다.서윤기는 이런 방식으로 나를 찍어 누르고 나한테 자기가 누구인지 똑똑히 알려주고 싶었을 뿐이었다.역시나 내 생각은 거의 들어맞았다.서윤기는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나를 봤다.“전에 기회를 줄 때 소중히 여기지, 지금은 기회를 주고 싶지 않아. 어때? 못 버티겠지? 그게 맞는 거야. 이제 시작이야. 더한 건 아직 뒤에 남았어.”“장사하고 싶지? 내가 못 하게 할 거야. 이건 나를 건드린 벌이야.”서윤기는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었다.나는 그의 눈빛에서 욕망과 통제욕을 보았다.서윤기도 처음에는 정 사장님과 마찬가지로 국민을 위해 생각했다지만, 결국 스스로 이익이라는 늪에 빠지게 되었다.지금의 서윤기는 눈에 이익과 돈, 그리고 남을 통제하려는 욕구만 남아 있었다.이럴 때마다 나는 정 사장님을 탄복하지 않을 수 없다.항상 초심을 유지하는 건 쉽지 않다. 그건 아주 위대한 일이다. 그런데 정 사장님은 그 위대한 일을 하고 있다.이 세상에 아마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거다.나는 빙그레 웃으며 일어섰다.“가르침 고마워요. 그럼 난 이만.”목적에 도달한 나는 더 이상 서윤기와 마주 앉아 연기하고 싶지 않았다. 이건 너무 힘들고 재미없었다.찻집에서 나와 천수당에 돌아오니 현성도 얼마 뒤 돌아왔다.나는 다급히 물었다.“그 영감 반응 어땠어?”“내가 그 영감한테 네가 서윤기 사촌 동생이라고 했더니 믿더라.”‘좋았어.’이제 우리 계획대로 또 한 발 나간 셈이다.‘서윤기, 네가 언제까지 날뛰나 두고 보자고.’한편, 주광덕 즉 우리가 늘 말하던 영감은 나와 서윤기의 사이를 확인한 뒤 불안
서윤기는 그 일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어릿광대들이 춤추는 게 뭐가 무섭다고 그래요? 내가 공급해 주는 게 비록 대체품이긴 하지만 아무 문제도 없으니 걱정하지 말고 사용해요.”“서 사장님, 아직은...”서윤기의 표정은 단번에 어두워졌다.“주 사장, 지금 내 명을 어기겠다는 거예요?”“아닙니다. 그럼 서 사장님 말대로 대체 약재를 보내줘요.”서유기의 덕을 보고 있는 주광덕은 서윤기의 명령을 어길 수 없었다. 그러자 서윤기는 호탕하게 웃으며 떠나갔다.서윤기가 떠난 뒤 주광덕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돈 좀 모으면 나도 안 해. 내가 왜 남 눈치 보며 일해야 하는데?”...나는 이 사실을 모르는 데다 관심도 없었다.천수당에 돌아온 나는 연상철을 치료하러 갈 준비를 했다.이번 치료는 아주 중요한 것이기에 조금의 착오도 있어서는 안 된다. 때문에 나는 할 일이 없을 때면 침술을 연습해다.민우와 현성도 이번 일이 중요한 걸 알고 있었기에 나를 방해하지 않았다.나는 그렇게 혼자 사무실에서 몇 시간째 침술 연습만 하다가 점심까지 걸렀다.그러다가 1시가 넘었을 때, 나는 대충 음식을 챙겨 먹고 민우와 함께 서화협회로 향했다.가는 길에 민우는 연신 가슴을 쓸어내렸다.“수호야, 나 왜 이렇게 긴장되냐?”나는 웃으며 말했다.“연 선생님 치료하는 사람은 나인데, 네가 왜 긴장해?”“나도 모르겠어. 그냥 긴장되고 심장이 너무 빨리 뛰어. 우리 가게 오픈해서 지금까지 이렇게 큰 고객을 상대하는 건 처음이잖아. 만약 이번에 치료를 제대로 못 하면 우리 밥그릇을 잃을지도 몰라.”나는 손을 들어 민우의 이마를 튕겼다.“다른 사람은 나 안 믿어도 되지만, 너도 나 안 믿어?”“아니. 널 안 믿는 게 아니라 연 선생님 신분이 워낙 특수하잖아. 난 그렇게 대단한 분과 교류해 보는 거 처름이야.”나는 민우의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한의관을 하면서 이런저런 사람 다 만날 텐데, 너처럼 담력이 없으면 앞으로 장사 어떻게 해? 난 앞으로 상류층 고개만 받을까
“손 선생님, 저한테 부담 주지 마요. 이럴수록 제가 더 긴장해요.”나는 손태진이 나더러 신중해지라고 이 점을 강조한다는 걸 알았지만, 이럴수록 내 긴장감만 더할 분이었다.내 말에 손태진은 나를 째려보더니 그제야 더 이상 압력을 가하지 않았다.나는 사무실로 향하는 동안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추슬렀다.연상철은 우리를 보자 싱글벙글 웃으며 다가왔다.“수호 군, 왔네요.”나는 연상철을 향해 허리를 숙였다.“저를 믿어 주셔서 감사합니다.”“연 선생님, 다시 한번 생각해 보세요.”그때 사람들 사이에서 누군가 걱정 섞인 목소리를 내뱉었다.그러자 다른 사람들도 바로 맞장구쳤다.“그래요. 이건 보통 일이 아니에요. 만약 무슨 일이라도 나면 어떡하시려고요?”“연 화백님은 우리의 기둥이에요. 협회에 화백님이 없으면 안 돼요.”“이제 곧 서화 대회가 열리는데, 그때 무대에 올라가 연설도 해야 하잖아요.”연상철은 손을 들어 사람들의 말을 잘랐다.“다들 나 걱정하는 거 아네. 나도 심사숙고 끝에 내린 결정이야. 알다시피 이 팔목이 이렇게 된 건 벌써 십 년 도 넘지 않나. 바람이 불거나 비가 내리면 아파서 들지도 못해.”“난 날씨가 좋을 때만 그림을 그릴 수 있고 글을 쓸 수 있어. 예전이라면 참을 수 있지만 나이가 들면서 점점 죽어간다고 생각하니 그림을 더 그리고 싶어지네.”“좋은 날씨에만 그림 그릴 수 있는 거로는 이제 나도 만족할 수 없어. 나도 목숨이 끝나기 전에 유작이라도 많이 남겨 놓고 싶네.”연상철은 한평생 회화와 서예에 온 심혈을 기울였다. 서화는 연상철에게 목숨과도 같다.연상철의 말을 들은 순간 나는 연상철이 존경스러웠다.한 사람이 평생 한 가지 일에 자기의 모든 심혈을 기울인다는 건 아주 위대하고 대단한 일이다. 연상철은 말을 이었다.“만약 실패하더라도 그게 운명이겠거니 받아들일 거네. 하지만 나도 시도해 보고 싶네.”“사람은 원래 자기를 위해 평생 싸우지 않나? 내가 몸은 늙었지만 마음은 아직 팔팔해.”마지막 한마디는 듣
연상철은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요. 계속해요.”나는 계속해서 여섯 번째 침을 놓았다.그러다 일곱 번째 침을 놓은 순간 연상철은 고통을 느끼고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그 모습을 본 손태진은 바로 걱정했다.“연 선생님, 괜찮으세요? 참을 수 있겠어요?”연상철은 고개를 끄덕였다.“괜찮아. 아직 참을 만해. 수호 군, 계속해요.”여덟 번째 침을 놓을 때 연상철의 이마에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했다.손태진은 결국 화난 목소리로 물었다.“침 맞는 게 이 정도로 고통스러울 일인가요? 왜 선생님이 이렇게 고통스러워하는 거예요? 의술이 별로인 거 아니에요?”나도 손태진의 심정을 이해하기에 인내심을 갖고 진지하게 설명했다.“이건 조금 특별한 침술 기법이에요. 침이 혈자리를 찌를 때는 아프지 않지만 효과가 돌면 손목 주변의 신경을 건드려 아픈 거예요.”“연 선생님 손목은 문제가 너무 심해 완전히 치료하려면 이런 과정을 피할 수 없어요.”연상철은 내 설명을 들은 뒤 손태진을 보며 말했다.“괜찮아. 아직 참을 수 있어.”“하지만 연 선생님, 저는 걱정돼서...”“걱정할 거 없어. 이미 여기까지 왔는데 이제 물러설 수 없어. 수호 군, 계속해요.”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아홉 번째 침을 꺼냈다.아홉 번째 침을 놓은 순간 연상철은 참지 못하고 신음을 흘렸다.효과가 돌수록 점점 고통이 가해지기에 나는 빠른 속도로 열 번째 침과 열한 번째 침을 놓았다.그리고 겨우 마지막 하나가 남았다.“연 선생님, 곧 끝나요.”나는 혈자리를 확인한 뒤 빠른 속도로 열두 번째 침을 놓았다.고통 때문에 식은땀을 흘리던 연상철은 그 순간 개운함을 느꼈다.“됐어요. 안 아파요.”서화협회 사람들은 하나둘씩 걱정되는 눈빛으로 연상철을 바라봤다.“연 선생님, 손목 괜찮아 요?”연상철은 손목을 돌려보더니 놀라고도 감격한 표정을 지었다.“정말 안 아파. 고통이 사라졌네.”“나았어. 정말 나았다고.”연상철은 아이처럼 기뻐했다.그 모습을 본 사람들은 놀라운 표정을 지
나는 흠칫 놀라 뒤돌아 도망치면서 다급히 해명했다.“서나연 씨, 제 말 좀 들어보세요. 서나연 씨 병은 침술로 치료해야 하는데, 침술을 하려면 옷을 벗어야 해요...”서나연은 좀처럼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고 계속해서 나를 찌르려고 달려들었다.심지어 서광진도 막지 못했다.“아빠, 아빠는 상관하지 마요. 내가 이렇게 크는 동안 내 앞에서 이런 사람 한 명도 없었어요. 오늘 저 사람 가만 내버려두면 울분을 삭일 수 없어요.”나는 서나연이 나를 쫓는 게 두려운 게 아니었다. 서나연의 속도는 나를 절대 따라잡을 수 없으니까.다만 반항도 할 수 없는 상황에 만약 서나연을 다치게 하기라도 하면 수천 수백억으로도 배상할 수 없을까 봐 가장 두려웠다.문 앞까지 도망간 나는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서 회장님, 서나연 씨가 오늘 치료받을 상태가 아닌 것 같으니 나중에 할게요.”“다음번이라니?”그때 밖에서 문이 열리더니 서지예가 가위를 쥐고 나를 베려고 하는 언니를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언니, 지금 뭐 하는 거야?”서지예는 다급히 내 앞에 막아섰다.그러자 서나연이 씩씩거리며 말했다.“저 사람한테 물어봐.”“우리 언니한테 무슨 짓 한 거야?”서지예는 고개를 돌려 물었다.그 질문에 나는 억울하기만 했다.“치료하려면 옷을 벗어야 한다니까 저래요. 옷 안 벗고 침 어떻게 놔요?”서지예는 내 말에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설마 바로 언니한테 그렇게 말했어?”“그럼요. 안 그러면 어떻게 말해야 하는데요?”나는 답답해서 미칠 지경이었다.“우리 언니는 엄청 보수적인 사람이야. 어릴 때부터 언니 앞에서 그렇게 가벼운 말 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어.”“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요. 사전에 고지하지도 않았잖아요...”“지금 고지했잖아.”서지예는 말을 마친 뒤 서나연에게 다가갔다.“언니, 나도 의사야. 저 사람 말 못 믿는다 쳐도 내 말도 못 믿어? 한의학에서의 침술은 확실히 옷을 벗어야 해. 저 사람이 언니를 상대로 뭘 해보려는 게 아니야. 게다가 저
윤지은은 이애교를 뚫어져라 바라보며 물었다.“정수호가 아까 나한테 그랬는데, 화 안 나요?”그 말에 이애교가 오히려 반문했다.“내가 왜 화내야 해요?”“질투 안 나요? 속 안 불편해요? 정수호는 애교 씨 남자 친구잖아요.”윤지은은 이해할 수 없었다.그 말에 이애교가 설명했다.“수호 씨는 아직 젊어서 연애를 경험해 보지 못했어요. 예쁜 여자를 좋아하는 거 당연한 거 아니에요? 나도 잘생긴 남자를 좋아해요.”“애교 씨 마인드는 참 이상하네요.”윤지은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말하자 이애교가 싱긋 웃으며 반박했다.“그건 지은 씨가 젊어서 아직 단순해서 그래요. 나처럼 실패한 결혼을 경험하면 사람을 잘 보게 돼요.”윤지은은 그 말을 동의할 수 없었다.“그건 아니라고 봐요. 젊다는 건 단지 개념일 뿐이에요. 난 그렇게 단순한 사람이 아니에요.”“난 지은 씨와 실랑이 벌이러 온 거 아니라 병문안 온 거예요. 지은 씨가 수호 씨 좋아하면 쟁취해도 돼요. 내 감정을 개의치 않아도 돼요.”이애교는 덤덤하게 자기 생각을 말했다.그 말에 윤지은은 다시 한번 경악했다.“지금 장난해요? 자기 남자를 남한테 밀어주는 거예요?”“난 경쟁하는 거 안 좋아해요. 내 사람이라면 누가 끼어들든 나한테 돌아올 거고, 내 사람이 아니라면 강요해도 소용없잖아요. 그리고 난 이제 개방적이에요. 전에 소유했었다는 거면 충분해요. 안 그래요?”윤지은은 이애교가 대체 무슨 생각인지 알 수 없었다.전에는 분명 내성적이고 보수적이라던 사람인데, 대화해 보니 이게 어떻게 보수적이고 내성적인라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이건 오히려 너무 선진적인 마인드였다.윤지은은 순간 자기가 오히려 보수적인 사람은 아닌가 하는 착각마저 들었다.하지만 그럴 리 없었다.윤지은은 선을 지키는 사람이지 절대 보수적인 사람은 아니다.윤지은은 다시 한번 자기 생각을 확신했다.“밖에 누구 있어? 나 퇴원 절차 밟아.”윤지은은 갑자기 자기 결정을 바꾸었다....나는 아래층으로 도망쳐 내려온 뒤에도
윤지은은 내가 사운 음식을 보더니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안 먹어. 버려.”“왜요?”‘내가 뭘 또 잘못했지?’나는 순간 어리둥절했다.‘내가 또 심기 건드렸나?’내가 속으로 중얼거릴 때 윤지은은 이상야릇한 말투로 말했다.“왜긴 왜야? 입 맞이 없어.”“입맛이 없다고요? 설마 임신한 거 아니죠?”나는 말하면서 다급히 윤지은의 맥을 짚어 보았다.“아쉽지만 아니에요.”“아쉬워? 기뻐해야 하는 거 아니야? 내가 임신이 아니면 책임질 필요 없이 네 애교 누나랑 같이 있을 수 있잖아.”윤지은은 비아냥거리며 말했다.하지만 나는 여전히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지은 씨가 임신하면 난 윤씨 가문 사위로 단번에 신분 상승하는 건데 얼마나 좋아요. 직접 노력하지 않아도 되고, 어렵게 선택하지 않아도 되잖아요.”“사람 진짜 뻔뻔하네!”윤지은은 나를 째려봤다.이에 나는 여전히 싱글벙글 웃으며 대답했다.“내가 진짜 뻔뻔하면 지은 씨랑 애교 누나를 모두 내 아내로 맞이하려고 했겠죠. 안 그래요?”“꿈 깨. 네가 뭐 왕인 줄 알아? 한꺼번에 몇 면과 결혼하게?”“그러니까 뻔뻔하다고 하는 거잖아요. 자, 죽 먹어요.”나는 그 틈에 윤지은에게 죽을 건넸다.그러자 윤지은은 차가운 눈빛으로 나를 노려봤다.“먹긴 뭘 먹어? 안 먹어.”“나 뻔뻔한 사람이에요. 안 먹으면 강제로 먹일 수밖에 없어요. 회진하던 의사 선생님이 그걸 보면 병원 전체에 소문날 텐데. 난 이 병원을 그만둬서 괜찮지만 지은 씨는 다르잖아요. 앞으로 이곳에서 일도 해야 할 텐데.”나는 시종일관 웃는 얼굴로 말했지만 윤지은은 더 이상 반박하지 못했다.결국 윤지은이 나를 노려보며 씩씩거렸다.“지금 나 협박하는 거야? 정수호, 너 아주...나는 그 틈에 윤지은의 입가에 뽀뽀했다.“협박뿐만 아니라 입도 맞출 건데요. 지은 씨만 괜찮다면 난 두렵지 않아요.”윤지은은 단번에 목덜미까지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 순간 윤지은은 심장이 너무 두근거려 말로 기분을 형용할 수 없었다.그저 너무 당
요즘은 너무 평화로워 나도 오랜만에 긴장을 풀었다.게다가 나 역시 현성과 주선영이 잘되기를 바라고 있다.현성은 믿음직스러운 사람이고, 주선영은 단순한 사람이라 만약 사귀게 된다면, 현성은 분명 주선영을 끔찍이 아끼고 사랑해 줄 거다.나 혼자 운전해서 월세방으로 돌아와 보니 민우도 집에 없었다.생각하지 않아도 임설아를 만나러 갔다는 걸 알 수 있었다.젠장, 결국 오늘은 나 혼자 외로이 남게 되었다.하지만 왠지 모르게 내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은 다름 아닌 윤지은이었다.요즘 너무 바빠 병원에도 들르지 못해 윤지은의 상처가 어떻게 됐는지도 모르는 상태다.현재 11시가 넘은 시간이라 나는 윤지은이 잠들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에 요즘 어떤지 문자를 보냈다.하지만 웬걸? 윤지은은 내 카톡을 차단해 버렸다.나는 이제 이런 일에 익숙했기에 이번에는 문자를 보냈다. 다행히 문자는 차단하지 않은 모양이었다.그 시각 한창 핸드폰을 보고 있던 윤지은은 갑자기 뜬 문자를 클릭해 확인했다.[요즘 어때요?]윤지은은 잠시 생각하다가 답장했다.[안 죽어.]보아하니 다시 익숙한 윤지은으로 돌아온 모양이었다.나는 얼른 웃으며 답장했다.[카톡은 왜 또 차단했어요? 내가 언제 또 지은 씨 심기를 거슬렀는데요?][차단하고 싶으면 하는 거지. 이유가 필요해?][요즘 보러 안 갔다고 삐진 거죠?][누가 삐졌다는 거야? 자기애가 너무 심한 거 아니야? 넌 나한테 아무것도 아니야. 나도 어린애 아니고. 쉽게 안 속아.][알았어요. 지은 씨 말이 다 맞아요. 난 매너 있는 남자니까 여자랑 안 싸워요. 내일 보러 갈 건데, 뭐 먹고 싶어요? 챙겨 갈게요.][먹고 싶은 거 없어. 올 필요도 없고. 네 얼굴 보기 싫어.]‘또 반대로 말하네.’나는 이제 윤지은이 어떤 사람인지 거의 다 파악한 상태다. 윤지은과 대화할 때는 대부분 말을 바꾸어 이해해야 한다.[알았어요. 안 물어볼게요. 내일 내가 알아서 할게요.]윤지은이 한창 나와 대화하고 있을 때, 서지예가 밖에
“우리는 돈이 없고, 저 영감은 돈이 있는데, 저 영감을 찾아오지 않으면 누구를 찾아가겠어요?”“서 사장님과 돈을 벌면서 본인은 아무것도 내놓지 않으려고 하더니. 세상에 그렇게 좋은 일이 어디 있다고? 그리고, 우리가 뜯어낸 돈은 저 사람이 번 돈에 비하면 새 발의 피나 다름없어요.”나는 당연하다는 듯 반박했다.내 대답을 조용히 듣던 여자는 싱긋 웃으며 내 앞으로 다가오더니 손으로 내 어깨를 둘렀다.“돈은 받아 가요. 하지만 난 다른 걸 원해요.”“뭘 원하는데요?”나는 경계 가득한 눈빛으로 여자를 바라봤다. 왠지 여자의 목적이 단순하지 않을 것만 같았다.그때 여자가 내 몸에 기대더니 귓가에 소곤거렸다.“난 당신을 원해요.”나는 눈이 휘둥그레서 여자를 바라봤다.‘무슨 뜻이지? 장난하나?’“미쳤어요?”내 안색은 단번에 어두워졌다.그러자 여자가 생긋 웃으며 말했다.“맞아요. 나 미쳤어요. 의사가 그러는데 내가 많이 아프대요. 너무 오랫동안 남자의 사랑을 받지 못해서 건장한 사내를 찾아 양기를 제대로 보충해야 한대요.”나는 이제야 여자의 말이 농담이 아니라는 걸 눈치챘다.지난번에 여자가 나한테 달라붙어 나를 꼬실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다. 주광덕이 평소 자신을 만족시키지 못하니 여자는 다른 남자를 몰래 만날 생각이었다.남자만 바람피운다는 법은 없다.주광덕은 자기가 이 여자한테 완전히 놀아났다는 걸 아마 모를 것이다.나는 현성을 앞으로 밀었다.“얘랑 예기해 봐요. 이 자식 아다라 활력이 넘칠 거예요.”현성은 어리둥절해서 나를 봤다.“수호야, 이러면 안 되지. 난 못 해. 나 아직 선영이 마음도 못 얻었다고.”나는 얼른 현성의 귓가에 대고 소곤거렸다.“난 정말 안 돼. 여자 친구가 나 단속하거든. 너도 알잖아. 내 여자 친구 아버지가 강북시 부시장인 거. 만약 내가 밖에서 함부로 하고 다니는 걸 들키면 끝장이야.”현성은 쉽게 넘어오지 않았다.“네가 몸 함부로 굴리고 다닌 게 처음도 아니고. 이번 한 번 더한다고 티도 안 나.
그런데 오늘 현성만 잡힐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때문에 지금으로서 주광덕에게 선택지라고는 나와 서윤기와 척지거나 진술을 바꾸거나 두 가지뿐이었다.잠시 속으로 저울질하던 주광덕은 결국 전 자를 선택했다.“아니에요. 이 사람이 거짓말하는 거예요. 이 둘이 한패예요. 난 이 두 사람 몰라요.”현성은 나를 보며 어떡하냐는 눈빛을 보냈다.나도 주광덕이 이렇게 나올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나는 다급히 주광덕의 혈자리를 누르며 다시 물었다.“삼촌, 내 얼굴 제대로 봐요. 나 정말 몰라요?”주광덕은 혈자리가 눌려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때 방에서 요염한 여자가 걸어 나와 이상한 눈빛으로 방 안을 둘러봤다.그 틈에 주광덕은 몸을 버둥대며 나를 밀어냈다.“이 사람이 내 아내예요. 여보, 자기가 말해 봐. 이 사람들 강도 맞지?”나와 현성은 순식간에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하지만 여자는 허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다가와 내 팔짱을 끼며 놀라운 대답을 했다.“여보, 이 사람 당신 조카잖아요. 잊었어요?”여자의 답변에 나와 현성마저 어리둥절해졌다.다행히 경찰의 고비는 넘겼다.두 경찰은 주광적을 훈계조치하고 바로 떠났다.경찰이 떠난 뒤 주광덕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말했다.“왜 그래? 저 사람들이 뭐 하는 사람인지 몰라서 그래?”“바보예요? 상대가 돈을 돌려줬는데 아무리 경찰에 신고해도 하루 정도 잡혀 있다 바로 풀려날 텐데. 나중에 저 사람들이 나오면 그땐 어떡하려고요?”여자는 주광덕보다 더 주도면밀했다.주광덕은 잠시 생각하더니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그건 그렇네. 그래도 어떻게 저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어? 저 사람들이 맨날 와서 돈 뜯어내는 거 난 더 이상 못 참아.”“오늘 가게 매출 바닥 났다고. 내가 뭐 부자도 아니고 어떻게 매일 저 사람들한테 돈 갖다 바쳐?”주광덕은 가게 매출 때문에 기분이 안 좋아 뒤도 생각하지 않고 일을 저지른 것이었다.그 말에 여자가 주광덕의 가슴을 쿡쿡 찔렀다.“설마 성공해도 남 덕분, 실패해도 남
“수호야. 방금 왔는데 또 어디 가려고?”샤워를 마치고 온 민우는 내가 다시 나가려고 하자 걱정스레 물었다.나는 신발을 신는 와중에 민우를 흘끗 보며 대답했다.“일 있어서 잠깐 나갔다 올게. 너 먼저 자. 기다릴 필요 없어.”“알았어. 일찍 돌아와.”민우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우리 셋은 늘 이렇게 잘 맞다. 서로 믿기 때문에 묻지 말아야 할 건 눈치껏 묻지 않지만 정말 일이 있을 때는 모두 함께 하는 게 우리 사이의 국룰이다.나는 얼른 차를 몰고 주광덕이 사는 동네로 향했다.동네에 도착해 경찰차를 본 순간 나는 일이 심상치 않다는 걸 눈치챘다.주광덕은 역시나 함정을 파놓고 우리를 기다렸던 거였다.나는 현성의 상황을 몰랐지만, 현성의 차가 아직 아래에 있는 걸 봐서 이미 위층으로 올라갔다는 뜻이었다.나는 현성에게 문자를 보내 절대 위협을 가하거나 돈을 빼앗았다는 걸 인정하지 말라고 알렸다. 그러고는 나도 이미 아래층에 도착해 방법을 생각하는 중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위로했다.그 시각, 현성은 위층에서 경찰의 심문을 받고 있었다.현성은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했지만 내 문자를 보자 서서히 걱정을 내려놓았다.“다시 묻겠습니다. 이 2천만 원은 어디서 났죠?”현성은 가슴을 쭉 펴고 큰 소리로 말했다.“저 사람이 준 거예요.”“그런 일 없어요. 난 저 사람 모르는데 어떻게 그리 큰돈을 그냥 주겠어요? 형사님, 저 사람은 강도예요. 당장 잡아가세요.”어느새 냉정을 되찾은 현성은 당장 반박했다.“강도요? 당신이 직접 문 열어준 거 잊었어?”“그리고 보시다시피 제 몸에 문을 따고 들어올 만한 도구가 있나요? 없잖아요. 도구도 없는데 어떻게 강도예요?”주광적이 말했다.“나를 협박한 거잖아. 나는 나이 많은 늙은이고 그쪽은 건장한 젊은이니까 나를 해칠가 봐 돈을 준 거라고.”“형사님, 나 정말 저 사람 몰라요. 제발 잡아가세요.”주광덕은 진작 함정을 파고 우리를 기다렸다. 그런데 현성은 정말 그 함정에 빠지고 만 거였다.현성은 얼굴이
“두 번째도 있어?”연승호는 말도 안 된다는 듯 반박했다.그 모습에 나는 피식 웃었다.“계속 그러면 세 번째, 네 번째도 있어.”“너... 알았어. 말해. 두 번째는 뭔데?”연승호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나는 얼른 말을 이었다.“너도 입장 바꿔 생각해 봐. 우리 두 가게에서 서로 협력할 수 있지 않을까?”연승호는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협력?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해?”“왜 안 되는데? 레스토랑에서 고기를 많이 먹으면 몸이 안 좋아질 수 있잖아. 그럴 때 우리 한약과 너희 레스토랑 음식을 조합해서 먹게 하면 얼마나 좋아. 너도 그렇게 세트로 팔면 더 좋지 않아?”“그러면 너희 레스토랑도 장사가 더 잘 될 테고 고객들 건강도 좋아지고 서로 좋잖아. 심지어 이걸 너희 가게 특색으로 밀 수도 있잖아!”연승호가 비록 세상 물정 모르고 귀하게 자란 부잣집 도련님이지만 그렇다고 바보는 아니기에 바로 반박했다.“우리를 생각하는 것처럼 말하는데 솔직히 너희 좋은 짓이잖아. 난 싫어.”“싫다면 너희 가게 손해지. 난 상관없어. 네가 협력 안 하면 난 다른 사람과 협력하면 그만이니까.”나는 질척거리지 않고 그 자리에서 일어섰다.“이놈은 돌려줄게. 첫 번째 요구만이라도 잘 기억해. 두 번째는 생각해 보고. 우리 천수당 문은 언제든 열려 있으니까.”말을 마친 뒤 나는 민우와 함께 어깨동무를 한 채 레스토랑을 나섰다.우리 손에는 연승호의 범죄 증거가 있기에 걱정될 건 없었다.게다가 두 번째는 사실 내가 현장에서 바로 생각해 낸 아이디어였다. 돈 벌 루트가 있는데 벌지 않는 건 바보나 다름없다.인정하기 싫지만 푸른솔 레스토랑은 평판이 좋아 고객이 꽤 많다. 만약 우리의 한약과 이곳 음식을 결합한 음식이 나온다면 그건 분명 이곳 특색이 될 수 있을 것이다.푸른솔 레스토랑에서 나온 민우는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이렇게 쉽게 저 자식을 주무를 수 있단. 너무 쉬운 거 아니야?”“아직 경계를 늦추긴 일러. 연승호는 세상 물정 모르는 부잣집 도련님
여준휘도 사실 무서웠다.우리한테 증인과 물증 모두 있다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에 불안했다.이번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으면 연승호에게 또 혼나는 건 당연했다.결국 여준휘는 연승호의 다리를 잡고 애원했다.“도련님, 전 안 돼요. 저는 힘도 없고 백도 없는데 정수호 저놈이 저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 도련님이 나서주세요.”연승호는 당장이라도 여준휘를 차버리고 싶었다.평소에 쓸모없는 것도 모자라 중요한 타이밍에도 실수했으니. 이제는 도망치고 싶어도 나와 민우가 이미 문 앞에 도착해 노크하고 있는 탓에 도망칠 수도 없었다.그 시각.“수호야. 연승호가 문 열까?”민우는 문을 두드리다가 갑자기 싱글벙글 웃으며 물었다.“안 열면 차라리 더 좋아. 바로 경찰에 신고하면 되니까. 증거도 있는데 무서울 거 뭐 있어?”어찌 됐든 연승호는 이번에 도망칠 수 없다.연승호도 계속 숨어서 나오지 않는 게 좋은 방법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결국 울며 겨자 먹기로 문을 열었다.그 순간 나는 우리가 잡은 높을 발로 걷어차 우리 넘어뜨렸다.“네 사람이야!”연승호는 겉웃음을 지으며 말했다.“내 사람이라니?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겠는데?”“계속 잡아떼. 이 자식이 이미 다 불었어. 네가 우리 가게 앞에 쓰레기 터러와 똥 테러를 해서 우리 가게 이미지를 망치라고 지시했다고. 여기 영상 증거도 있는데 볼래?”민우는 말하기도 귀찮다는 듯 핸드폰을 꺼내 영상을 재생했다.영상 속에서 놈은 모든 사실을 털어놓았다.그걸 확인한 연승호는 갑자기 버럭 소리쳤다.“내가 지시했다고 하는데 증거 있어? 이 개자식이. 너 지금 나 모함하는 거지?”연승호는 말하면서 민우에게 달려들어 일부러 과장된 동작으로 주먹질과 발길질을 했다.그 순간 나는 얼른 민우를 뒤로 잡아끌었다.연승호는 때리는 척하면서 기회를 노려 민우 핸드폰을 뺏으려는 수작이었다.민우도 그걸 눈치채고 신속히 연승호와 거리를 두었다.“연승호, 증거 인멸하려고? 잘 들어. 소용없어. 이 자식이 네가 송금한 기록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