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서에서 한참을 기다리니 제복을 입은 중년 남자가 걸어 들어왔다.그 남자는 나도 아는 사람이었다. 바로 황용길 일당을 잡을 때 현장을 지휘했던 베테랑 형사였다.“외삼촌, 어서 와요.”윤미화는 기쁜 얼굴로 얼른 달려갔다.그 모습에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 베테랑 형사가 바로 윤미화의 외삼촌이었다니.이건 너무 기막힌 우연이다.베테랑 형사도 나를 보고 놀랐는지 어리둥절해서 물었다.“이 총각이 여긴 왜 있지?”“두 사람 혹시 알아요?”나는 얼른 설명했다.“윤 사장님 외삼촌이 황용길을 체포한 형사예요. 전에 본 적 있어요.”“그렇구나. 삼촌, 누가 우리를 미행해요. 사람 좀 붙여서 우리 지켜줘요.”그 말에 도지섭은 이내 물었다.“무슨 일인데 그래? 대체 누가 그런 짓을 벌이는 거야? 대낮에 미행이라니.”“임천호 쪽 사람일 가능성이 커요. 삼촌이 점심에 잡은 황용길이 임천호 사람이거든요.”도지섭의 표정은 이내 어두워졌다.“그런데 그 자식은 임천호와의 관계를 부정해. 딱 잘라서 자기가 한 짓이라네.”나는 진작 이렇게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직접 들으니 실망감이 밀려왔다.임천호는 법을 이리저리 너무 잘 피해 다닌다. 그런 사람을 하루빨리 제거하지 않으면 난 하루도 편히 살 수 없다.하지만 임천호를 상대하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건 나도 알고 있다.도지섭은 윤미화와 한참 동안 얘기하다가 나를 바라봤다.“정수호 씨, 이번 일은 정수호 씨 공이 커요. 내가 이미 상부에 포상금을 신청했어요.”‘이건 또 어디서 갑자기 굴러들어 온 복이지?’“감사합니다, 도 형사님.”“감사할 거 뭐 있어요. 수호 씨가 응당 받아야 할 건데요.”이런 게 바로 전화위복이라는 건가?비록 정부에서 주는 포상금은 많지 않겠지만 이런 영예는 돈 얼마를 주고도 살 수 없는 거다.게다가 도지섭의 말을 들어보면 포상금 외에도 우수 청년상까지 수여한다고 했다.그 상장을 우리 천수당에 걸어두면, 더할 나위 없는 큰 영광일 거다.그 뒤, 도지섭이 경찰차로
“네!”강용재는 곧바로 뒤돌아섰다.조용히 시가에 불을 붙인 임천호의 표정은 어둡기 그지없었다.원래는 나를 끌어들여 감옥에 처넣을 생각이었는데 오히려 돌을 들어 제 발등을 찍은 셈이었으니. 그것도 모자라 중요한 부하 한 명을 일기까지 했으니 임천호는 그 모든 책임을 나에게 돌렸다....오후에 출발한 우리는 밤 11시가 되어서야 강북에 도착했다.오는 내내 또 사고라도 날까 봐, 우리는 휴식도 하지 않고 끼니도 챙겨 먹지 못했다.그렇게 겨우 강북에 도착하니 나와 윤미화는 그제야 안심했다.다만 오는 동안 배를 쫄쫄 굶은 탓에 나는 당장 배부터 채우고 싶었다.“내가 알아봤는데 임천호가 아직 강북에 있대. 이따 혼자 돌아갈 때 조심해.”사실 인맥이 넓은 윤미화는 강북에 도착하기 전에 임천호의 행방을 수소문해 냈다.나는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요. 윤 사장님도 조심해요.”식사를 마친 우리는 각자 헤어졌다.나는 차에 앉아 월세방으로 돌아갈지 아니면 형수 집에 갈지 고민했다.만약 임천호가 나를 가만두지 않을 생각이라면 분명 또 사람을 붙일 거고 강용재도 또 뭔가 손을 쓸 게 뻔했다.나는 형수와 형수 동생들한테 폐 끼치고 싶지 않았다. 주선영한테도 마찬가지였고. 때문에 나는 결국 호텔 방에 묵기로 했다.비록 혼자라 불안하고 위험했지만, 다른 사람한테 폐 끼치는 것보다는 이게 훨씬 나았다.‘S시 한 번 갔다가 이게 뭔 봉변인지.’하지만 난 조금도 후회하지 않는다.내가 그때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다고 해도 황용길은 절대 나를 가만두지 않았을 거다.‘됐어. 그만 생각해. 지내다 보면 답은 나오겠지.’하루 종일 분주하게 돌아다닌 데다 계속 유지하고 있던 긴장감이 풀린 탓에 나는 너무 피곤했다.때문에 샤워를 하자마자 바로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다.그 잠은 다음 날 오전 10시까지 이어졌다.평온한 밤을 보낸 나는 씻고 준비를 마친 뒤 청수당으로 향했다.민우와 현성은 내가 S시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관심했다. 이에 나는 두 사람을 사무실
우리가 한창 얘기하고 있을 때 직원이 갑자기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정 사장님, 주 사장님이 볼일 있다면서 찾아오셨어요.”“그래요. 알았어요.”우리는 곧장 사무실을 나섰다. 그렇게 중앙홀에 도착했더니 주해진이 허허 웃으며 사람들에게 뭔가를 소개하고 있었다.“사자님들, 우리 가게 약재는 모두 최상품입니다. 특히 야생 산삼과 영지는 최상급 중의 최상급이죠. 다들 제 체면을 봐서 구매해 준다면 가격은 제가 싸게 해드릴게요.”주해진은 혼자 온 게 아니라 사람을 몇 명 데리고 왔다. 보아하니 주해진과 함께 온 사장들은 야생 산삼과 영지와 같은 약재를 원하는 것 같았다.하지만 우리 가게에 있는 최상급 야생 인삼과 영지는 모두 임천호에게 팔아버렸다. 게다가 아직 재고 보충을 하지 않은 상태다.나는 얼른 민우와 현성이를 불러내 사장님들을 응대하게 하고 주해진을 옆으로 불러냈다.“우리 가게에 산삼과 영지가 없어.”“왜?”“이틀 전에 다 팔았어.”“헐. 정말이야? 얼마나 벌었는데?”그걸 다 팔면 어마어마한 가격이기에 주해진은 단번에 흥분했다. 누구에게 팔든 그로서는 돈만 벌 수 있으면 그만이었으니까.하지만 이번 사태는 조금 복잡해 나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잠깐 고민했다.“사실...”나는 결국 그동안 있었던 일을 간단하게 설명했다.그걸 들은 주해진의 안색은 어둡다 못해 흉측하기까지 했다.“지금 그러니까 사기당했다는 거야? 그걸 다 가져갔는데 일전한 푼도 못 받아내고 오히려 몇천만 원이나 꼬라박았다고?”주해진의 언성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바람에 가게에 있던 다른 사람들은 모두 우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이에 나는 다급히 낮은 소리로 귀띔했다.“그 돈은 다 내가 책임지고 메꿀게.”“정수호. 이렇게 큰일이 있었는데 왜 아무 말도 안 했어?”“나 어제 한밤중에 도착했어. 오늘 아침 가게에 도착하자마자 주 사장이 들이닥친 거고.”“지금 내 탓이라는 거야?”“그런 뜻 아니야. 누가 사기당할 거라고 생각했겠어? 이미 벌어진 일인데 이제 와서 나
“안돼.”주해진은 여전히 거절했다.나는 애써 화를 눌러 참으며 말했다.“그럼 어떻게 할 건데?”“네가 정호섭 가게에 가서 인삼과 영지를 빌려와.”‘사 오는 것도 아니고 빌려 오라니.’이 상황에서도 주해진은 원가로 물건을 들여와 최대 수익을 낼 생각만 하고 있었다.‘머리 참 잘 굴리네.’돈은 벌고 싶고, 손해는 나더러 메꾸라고 하고, 화인당에 진 빚도 내가 갚게 할 생각이라니.누가 잘못했으면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니 이건 그나마 받아들일 수 있다지만, 주해진이 이번 수익을 독식하겠다고 한 건 용납할 수 없었다.나는 결국 화를 참지 못해 언성을 높였다.“내가 왜 그래야지?”“고객을 데려온 사람이 나인데, 당연히 내가 가져야 하는 거 아니야?”나는 너무 화가 나 헛웃음이 흘러나왔다.“그렇게 치면 우리 셋은 매일 가게 돌보니까 평소 수익은 우리가 가지면 되겠네?”“애초에 가게를 돌보겠다고 한 건 너희들이야. 처음부터 나랑 진호는 가게에 관한 모든 걸 관여하지 않기로 해서 난 그냥 앉아 놀면서 연말 보너스만 받아 챙기면 그만이었어.”“그런데 내가 왜 고생하면서 손님 데려왔는데? 이게 다 돈 좀 더 벌려고 그런 거 아니야.”주해진은 이것도 말이라고 당당하게 뱉어냈다.나는 이제야 주해진이 왜 김진호와 붙어 있는지 알 것 같았다. 이 두 사람보다 더 막무가내인 사람은 아마 찾아보기도 힘들 거다.나는 더 이상 실랑이 벌이기 싫어서 손을 휘휘 저었다.“그럼 약재 빌리러 가는 건 네가 알아서 해결해. 난 안 가.”말을 마친 뒤 나는 그대로 자리를 떠났다.그때 주해진이 나를 붙잡았다.“물건을 네가 팔았으면 네가 해결해야지. 누구한테 떠넘겨?”“그게 말이야 방귀야? 주해진, 가게 물건은 우리 모두의 것이야. 네가 가게 물건을 팔아 네 주머니를 채우겠다는데, 내가 동의할 것 같아?”“그딴 건 모르겠고, 네가 약재를 팔아서 손해를 봤으니 네 책임이지.”“말이 안 통하네.”내가 떠나려 하자 주해진은 또다시 나를 붙잡았다.“가겠으면 어
“정수호, 지금 나를 찼어? 사람 많다고 나 하나 괴롭히는 거야? 너희만 똘똘 뭉친 한식구고 난 남이지?”나는 거리낌 없이 말했다.“난 널 내 사람으로 생각한 적 없어. 처음 협상할 때 말했지. 가게 일은 내가 관리한다고. 너랑 김진호는 빠지라고.”“그래도 난 손해는 안 끼쳤잖아.”주해진은 씩씩거리며 맞받아쳤다.나는 여전히 차갑게 쏘아붙였다.“손해 본 건 내가 메꾼다고 했어. 장부는 공용이야, 공동 재산은 일전한 푼도 손해 안 보게 할 거야.”“하지만 네가 딴 주머니 챙기는 건 용납 못 해. 그렇게 돈 벌고 싶으면 네가 가서 약재 알아봐. 이 가게의 모든 약재는 내가 직접 찾아온 건데, 네가 딴 주머니 챙기는 데 왜 내 약재를 갖다 바쳐야 해?”주해진은 할 말이 없어지자 아예 생트집을 잡았다.“나도 가게 약재 쓰고 나중에 메꿀 거야. 그리고 내가 뭔 딴 주머니를 챙겼다고 그래?”“쓸데없는 말 그만해. 오늘 일은 내가 말한 대로 하든지, 아니면 네가 데려온 사람들 데리고 나가든지 해.”나는 최후의 방법을 제시했다.그러자 주해진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듯 바락바락 우겼다.“나가라고? 말도 안 돼. 내가 저분들을 어떻게 모셔왔는데...”“그럼 약재가 부족해서 이틀 뒤에 오라고 해. 그때 번 돈은 장부에 다 기록할 거야. 혼자 빼돌릴 생각 하지 마. 그게 싫으면 지금 당장 사람들 데리고 나가.”나, 현성 그리고 민우는 나란히 서 있었고 주해진은 혼자 우리를 마주한 채 서 있었다.저 혼자서는 똘똘 뭉친 우리 셋을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한 주해진은 결국 한발 물러나기로 결심했다.“새로운 약재는 언제 도착하는데?”“정확한 시간은 말할 수 없지만 약 사흘에서 닷새 정도 걸려.”“그래.”주해진은 말을 마친 뒤 씩씩거리며 떠나갔다. 그는 너무나도 화가 났지만 현재 우리는 모두 한배를 탄 신세라 사이가 완전히 틀어지는 건 원치 않았다.자기가 데려왔던 사람들을 거느리고 떠나가는 주해진을 보며 현성이 말했다.“저 자식 이대로 물러서지 않을 거야.
사실 나는 고아연과 고수연의 선물도 샀다. 고수연은 함께 일하기에 천수당에서 이미 줬고 고아연의 선물은 따로 챙겨왔다.하지만 점심시간이라 고아연이 집에 없었기에 나는 그 선물을 가사도우미에게 맡겼다. 그러면 고아연이 저녁에 돌아왔을 때 전달받을 수 있을 테니까.형수 얼굴을 본 뒤, 나는 애교 누나에게 어디 있는지 문자를 보냈다.그러자 아직도 부모님과 함께 지낸다는 답장이 날라왔다.이에 나는 애교 누나 선물을 챙겨 왔다는 걸 알려주고는 나중에 형수 집에 와서 찾아가라고 귀띔했다.애교 누나와의 통화가 끝난 뒤 나는 곧장 15층으로 올라갔다.그도 그럴 게 형수와 애교 누나 선물 외에도 윤지은과 하정현의 선물도 사 왔으니까.‘집에 사람 있나 모르겠네.’나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문을 두드렸다. 그러자 얼마 뒤 문이 열렸다.하지만 문을 연 사람이 윤지은이라는 사실은 좀 의외였다.“오늘 병원 출근 안 했어요?”윤지은의 안색은 창백해 보였는데 한눈에 봐도 이상함을 느낄 수 있었다.“혹시 어디 아파요?”“감기야.”“약 먹었어요?”“아니.”“아프면서 왜 약을 안 먹어요? 의사라는 사람이 이런 것도 남이 알려줘야 알아요?”윤지은은 맥없이 소파에 기대앉았다.“너랑 무슨 상관인데? 여긴 왜 왔어?”윤지은은 그날 밤 일 때문에 아직도 화가 안 풀린 모양이었다.나는 뜨거운 물 한 컵을 받아 먼저 윤지은에게 건넸다.“요즘 S시에 다녀왔어요. 오면서 그곳 특산품 좀 사 와서 그걸 주러 왔어요.”“사과하는 거야? 필요 없어.”윤지은은 차갑게 거절했다.이에 나는 아쉬움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다.“사과하려고 선물 공세하는 거 아니에요. 그냥 생각나길래 가져왔어요.”“가져가. 이딴 거 필요 없어.”윤지은은 내 호의를 칼같이 거절했다.결국 나는 가져왔던 선물을 하나만 남기고 하나는 챙겨 들었다.“그래요. 그럼 지은 씨 건 도로 가져갈게요. 나머지 하나는 정현 씨한테 줘요.”“다 가져가. 네 물건 보고 싶지 않아.”윤지은은 내가 하정현을 위해 준비
[응.]윤지은은 차갑게 대답했다.나는 한 편으로 화도 나면서 또 한 편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갑자기 왜 카톡을 삭제해요?”[삭제하든 말든 내 마음이지. 그것도 네 동의를 받아야 해?]윤지은은 차갑게 되물었다.그 말에 나는 더 어리둥절했다.“적어도 이유란 게 있어야 하잖아요. 이유가 뭔데요? 나한테 사형 선고를 내릴 거면 이유라도 알고 죽게 해줘요.”나는 뭐가 됐든 이유를 꼭 알고 싶었다. 그렇지 않으면 너무 찝찝해서 견딜 수 없으니까.하지만 윤지은은 끝까지 말하지 않았다.[이유는 없어. 이제 할 말없지? 끊을게.]윤지은은 말은 이렇게 했지만 곧바로 전화를 끊지 않았다. 윤지은 성격에 정말 기분이 안 좋았다면 아무 말없이 바로 전화를 끊었을 텐데, 이렇게 기다린다는 건 나한테 기회를 준다는 뜻이었다.하지만 내 머릿속에는 윤지은이 내 카톡을 삭제했다는 일만 가득해 이 점을 생각하지 못했다. 게다가 너무 막무가내로 구는 윤지은에게 화도 났다.“사람 참 뜬금없네요. 선물을 줬는데 싫다고 한 건 본인이면서 갑자기 연락처는 왜 삭제해요? 제가 그렇게 싫으면 아예 차단해요.”[너...]윤지은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정말로 내 연락처를 차단했다.나는 윤지은의 속내를 도무지 읽을 수 없어 답답하기만 했다.심지어 음식을 해주려던 기분마저 사라져 버렸다.한편. 윤지은은 씩씩거리며 전화를 끊자마자 내 연락처를 차단해 버렸다.이번에 윤지은은 화난 게 아니라 실망하고 속상했다.윤지은은 아픈 사람을 상대로 그런 말까지 하는 내가 너무 양심 없다고 생각했다.사람은 아플 때 취약해진다고, 지금의 윤지은도 극도로 취약하고 예민했다. 심지어 너무 서러워 저도 모르게 눈물이 눈시울을 적셨다.윤지은은 어릴 때부터 공부를 잘했고 얼굴도 예뻤으며 때 묻지 않고 자기애가 강했다. 하지만 처음 만난 남자 여준휘는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 윤지은이 온 마음을 다 바쳐 희생했는데도 여준휘는 항상 윤지은에게 더 뜯어낼 게 없나 계산기를 두드리기 바빴다.이에 워낙
나는 뻔뻔하게 웃으며 말했다.“별 수 있어요? 제가 워낙 오지랖이 넓거든요. 지은 씨가 아픈 걸 아는데 내버려두는 건 의사로서 도리가 아니잖아요.”“그래서, 지금 그것 때문에 온 거야?”내 말에 윤지은은 살짝 실망했다.그런 윤지은의 마음을 내가 알 리는 없었다. 하지만 난 여자들이 듣기 좋아하는 말이 무엇인지는 알고 있었다.“그것 때문만은 아니에요. 우리 그래도 친구 정도는 되잖아요. 친구 사이에 걱정하는 건 당연한 거 아니에요?”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윤지은의 눈빛이 서늘해졌다.그때 나는 여전히 뻔뻔하게 말했다.“직접 할래요? 아니면 내가 해줄까요?”윤지은은 나를 매섭게 노려봤다.“내 상태를 봐. 이런데 내가 할 수 있을 것 같아?”“그럼 조금 비켜줄래요. 들어갈게요.”윤지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몸을 틀어 자리를 내주었다.식재료를 들고 주방으로 향하는 나를 본 윤지은은 그제야 입꼬리를 예쁘게 말아 올렸다.보살핌을 받는 걸 싫어하는 사람은 세상에 없을 거다.아무리 윤지은처럼 강한 사람이라도 예외는 아니었다.나는 주방에서 바삐 움직이며 물었다.“지은 씨는 지금 위장이 약할 테니 따뜻한 죽과 야채 샐러드 만들어 줄게요. 괜찮죠?”윤지은은 상관없다는 듯 건성으로 대답했다.“마음대로 해. 어차피 입맛 없어.”“입맛 없으니까 더 먹어야 하는 거예요. 안 먹으면 어떻게 나아요?”한결 부드러워진 윤지은의 말투에 내 마음도 따라서 편해졌다.나는 얼른 윤지은을 위해 따뜻한 죽과 야채 샐러드를 만들고 한약을 끓이기 시작했다.식사 준비를 마친 나는 모든 음식을 식탁 위에 세팅한 뒤 윤지은을 불렀다.“윤지은 아가씨, 다이닝룸으로 자리 옮기실게요.”윤지은은 나를 매섭게 째려봤다.“제대로 말해!”“지은 씨가 화낼까 봐 이러는 거잖아요. 화 다 풀렸으면 얼른 가서 식사해요.”윤지은은 다이닝룸으로 걸어가 의자에 앉았다. 사실 윤지은은 입맛이 없었지만 내가 바삐 돌아다니며 준비한 걸 봐서 결국 숟가락을 들었다.“오후에 가게 나가?
“보아하니 두 사람 모두 조금희 씨 몸에 종양이 퍼지고 있어 곧 죽는다는 걸 알고 있었네요.”“혹시 조금희 씨가 뒤에서 꼼수 부린 거 아닐까요?”나는 문득 뭔가 떠올라 의문점을 제기했다.현재 상황으로 분석해볼 때 조금희의 혐의가 가장 높았다.그때 윤지은이 말했다.“자세한 건 조사해 봐야 하지만 나도 조금희 씨가 이상한 것 같아.”사모님은 참지 못하고 눈시울을 붉혔다.“다음에 조사할 때 나도 끼워줘. 나도 같이 조사하고 싶어. 두 사람 말 맞아. 호섭 씨가 억울한 죽임을 당했는데, 나라도 진실을 밝혀 억울함을 풀어줘야 해. 이게 내가 살아갈 유일한 동력이야.”사모님은 말하면서 또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슬픔 속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나와 윤지은은 항상 사모님 곁을 지킬 거다.그날, 우리는 곧장 종양 전문 병원에 가 조금희의 병력을 조사했다.조금희 몸에서 종양이 발견된 건 1년 전인데, 처음에 양성이었다가 악성으로 번지기까지 적지 않은 돈을 들였던 거로 확인되었다.게다가 조금희는 불치병에 걸리기 전에 아내와 갈등을 겪었다.“자세한 건 저도 모르는데, 조금희 씨가 우리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젊은 여자가 항상 와서 돌봐줬어요. 그러다가 부인이 병원에 찾아와 그 아가씨를 때렸고요. 그 일은 병원 사람들 다 알아요.”‘그렇다는 건 조금희가 바람을 피웠다는 거네?’조금희가 이런 사람일 주은 생각지도 못했다.윤지은은 여간호사에게 돈다발을 건넸다. 그러자 간호사는 아주 기뻐하며 떠나갔다.조사를 마친 뒤 우리는 밖에서 식당을 찾았다.식당에 도착한 윤지은은 분석을 시작했다.“조금희 씨가 불치병에 걸렸고, 예전에 아내와 아들한테 잘못을 저질렀다면 혹시 자기가 얼마 못 살 걸 알고 호섭 씨를 배신해 돈을 챙겼던 건 아닐까?”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그럴 가능성이 커요. 만약 조금희 씨 계좌에 큰돈이 입금되었는지 확인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아쉽지만 이곳은 강북이 아닌 Y시다. 안 그랬다면 윤지은의 인맥
나는 기쁨을 주체할 수 없었다.배고픔을 느낀다는 건 좋은 일이다.윤지은이 아침을 사 오자 사모님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묵묵히 음식을 먹었다.그걸 본 윤지은은 나를 향해 엄지를 추켜들었다. 그건 내 실력을 인정한다는 뜻이었다. 이번 치료 방법이 확실히 효과적이었으니까.나는 사모님을 한참 동안 관찰했다.비록 컨디션이 많이 안 좋은데도 사모님은 음식 드실 때 여전히 우아하고 단아했다. 살짝 슬픔을 띄고 있어 살짝 비극의 여주인공 같기도 했다.내가 한창 사모님을 바라보고 있을 때, 윤지은의 날카로운 눈빛이 갑자기 나를 쏘아봤다. “짐승!”윤지은은 욕지거리를 퍼부었다.그 욕에 나는 억울함을 호소했다.“제가 뭘 했다고 짐승이라는 거예요?”“아무튼 짐승 맞아. 이런 상황에서 훔쳐보기나 하고.”윤지은은 나를 째려봤다.난 그저 사모님을 몇 번 본 것뿐인데 나를 짐승 취급하다니, 너무 어이없었다.하지만 이러다 또 싸움 나겠다 싶어 나는 얼른 아침을 들고 다른 곳에 가서 배를 채웠다.식사를 마친 뒤 사모님은 자발적으로 나와 윤지은을 찾아왔다.“알고 있는 거 사실대로 다 알려줘요. 난 호섭 씨 사고에 대한 모든 사실이 알고 싶어요.”사모님은 너무 평온해 마치 다른 사람 같았다. 때문에 나는 사모님 상태가 여전히 걱정스러웠다.“사모님, 우선 맥 좀 짚어봐도 될까요?”“그럴 필요 없어요. 내가 뭘 해야 하는지 나도 알아야. 걱정할 거 없어요. 어젯밤 많이 생각해 봤고, 호섭 씨가 떠난 사실을 받아들였어요.”“내가 받아들일 수 없는 건 호섭 씨처럼 착한 사람이 남한테 죽임을 당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억울함을 풀어줄 거예요.”“난 강해져야 하고 호섭 씨처럼 용감해져야 해요. 그래야 호섭 씨가 마음 놓고 갈 수 있어요.”사모님은 애써 슬픔을 참으려 했지만 결국 참지 못하고 또 흐느꼈다.그 말을 들으니 나도 코끝이 시큰거리고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이제 우리에게는 같은 목표가 생겼다. 바로 진실을 밝히는 것.나는 얼른 마음의
나는 사모님 팔을 힘껏 잡으면서 사모님과 눈을 마주쳤다.“사모님! 현실을 받아들이세요. 더 이상 자신을 속이지 마세요. 사장님이 이런 사모님 보고 편히 가지 못하길 원하시는 건 아니잖아요.”내 말이 사모님의 마음에 큰 상처를 줬는지, 사모님은 순간 울음을 터뜨렸다.윤지은은 내가 강제로 사모님을 자극했다며 나를 탓했다.“유미 지금 안 그래도 나약한 상태인데, 왜 그런 말을 직접 해?”나는 너무 난감했다.“누구는 뭐 이러고 싶은 줄 알아요? 하지만 사모님이 계속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고 환상 속에 살고 있는데, 계속 이러면 상태가 점점 악화해요.”윤지은은 내 말에 일리가 있다고 인정했지만 그와 동시에 사모님이 또 상처받을까 봐 걱정했다.나도 사모님이 현실을 받아들이게 하려면 그 과정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알고 있다. 하지만 사모님을 절망 속에서 끄집어내려면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나는 윤지은에게 말했다.“정말 사모님을 돕고 싶다면 모질어야 해요. 이럴 때 마음 약해지면 오히려 해치는 거예요.”윤지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내 말에 동의하는지, 내가 치료할 수 있도록 묵묵히 자리를 비켜줬다. 나는 나른하게 힘이 쭉 빠진 사모님을 잡고 진지하게 말했다.“죽은 사람이 다시 돌아올 수 없어요. 사모님이 속사한 건 알겠어요 하지만 지금 속상해할 때가 아니에요. 우리 할 일이 있어요.”“사장님 사고 단순 사고가 아니에요. 누군가 인위적으로 사고 낸 거예요. 사모님, 정신 차리고 우리와 함께 진실을 조사해요.”사모님은 텅 빈 눈으로 나를 보며 중얼거렸다.“그게 무슨 말이에요?”사모님을 깊은 슬픔에서 꺼내는 건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다.무엇보다 중요한 건, 서두르지 않고 그녀가 진실을 받아들일 수 있게 천천히 다가가는 것이다.나는 말투를 부드럽게 하며 방금 한 말을 또다시 반복했다.“사장님 교통사고에 수상한 점이 발견됐어요. 사모님도 사장님이 억울하게 돌아가시는 거 원하지 않죠? 우리 함께 진실을 알아내 사장님이 억울하게 죽임당하
나는 그 말을 들은 순간 식은땀이 송골송골 솟아올랐다.사모님 상태는 살짝 이상해 보였다. 아마도 의식이 혼미해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모를지도 몰랐다.나는 사모님이 바보 같은 짓을 할까 봐 서둘러 사모님 팔을 꼭 잡았다. 그러면서 계속 따라오지 않으면 강제로라도 데려올 생각이었다.“수호 씨, 이거 놔요. 난 남아서 호섭 씨랑 같이 있을래요...”사모님은 마구 버둥대며 소리쳤다.이러다가 사고가 날 것 같아 나는 아예 사모님을 어깨에 두러 업었다. 그러자 사모님은 곧바로 버둥거리며 소리쳤다.벼랑 끝에 서 있는지라 조금만 실수하면 함께 아래로 떨어질 수 있는 상황이었기에 나는 결국 사모님을 손날로 기절시켰다.내가 가드레일 안쪽으로 다시 넘어왔을 때 윤지은의 차가 마침 도착했다.“왜 그래?”윤지은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나는 사모님을 차에 앉히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사모님 지그 정신이 이상해서 현실과 환각을 구분하지 못해요. 방금 사장님이 춥다고 한다면서 옷 주러 내려가겠다고 했어요. 제가 제때 나타나지 않았으면 뛰어내렸을지도 몰라요.”윤지은은 내 말을 듣더니 미간을 찌푸렸다.“계속 이럴 순 없어. 우리가 잠깐은 지켜볼 수 있지만 평생 지켜볼 순 없잖아.”그때 내 머릿속에 문득 방법이 떠올랐다.“사모님께 사장님이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알려드리는 건 어때요?”“미쳤어? 이번 일로도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닐 텐데, 또 자극하자고?”윤지은은 내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이에 나는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제 할아버지가 남긴 의학 서적에 비슷한 사례가 있는데, 옛날에는 환자가 가족을 잃고 감정을 통제하지 못할 때 치료가 안 된다면 환자한테 희망을 줘야 한대요. 그 희망이 의학에서 말하는 기예요.”“그 기를 가진 환자가 음식 치료와 약물 치료를 함께 진행하면 서서히 회복할 수 있대요.”“사장님의 죽음에 수상한 점이 있잖아요. 그래서 사모님과 함께 그 사건을 수사하는 거예요. 아마 사모님도 사장님이 죽은 진실을 알고 싶을 거예요.”
장례식장 안을 모두 뒤져 봤지만 사모님은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리 조급하지 않던 내 마음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불안해졌다.사모님은 현재 몸 상태도 안 좋고 정서도 매우 불안하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가족한테 어떻게 말해야 할지 걱정됐다.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내 마음은 점점 불안해졌다.그러다 결국 방법이 없어 나는 문득 사모님 번호를 떠올려 그쪽으로 전화를 걸었다.전화는 계속 긴 연결음만 들릴 뿐 아무도 받는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내가 포기하려고 할 때 연결음이 꺼졌다. 액정을 확인하니 전화가 연결되었다.“사모님?”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수호 씨, 나 괜찮으니까 좀 내버려둬요.]사모님 목소리는 매우 우울해 보였고 기운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나한테는 너무 듣기 좋았다. 나는 다급히 물었다.“사모님, 어디 있어요? 너무 걱정돼요.”[혼자 있고 싶어요.]“알아요, 아는데 어디 있는지만 알려줘요. 사모님이 안전하다는 거 확인해야 해요.”전화 건너편에서 한참 침묵이 흘렀다.그때 갑자기 차 경적음이 들려왔다.그렇다는 건 사모님이 장례식장에 있는 게 아니라는 뜻이었다.나는 문득 사모님이 있을 수 있는 곳이 떠올랐다. 하지만 조심스럽게 물었다.“사모님, 알려주시면 안 돼요?”사모님은 아예 전화를 끊어버렸다.하지만 이미 대충 답을 얻은 나는 장례식장을 뛰쳐나가 택시를 잡고 사장님이 사고를 당한 곳으로 향했다.가는 길에 사모님을 찾았냐는 윤지은의 전화를 받은 나는 내 추측을 말했다.“아니요. 사모님 아마도 사장님 사고 난 곳에 있는 것 같아요.”[거긴 왜?]윤지은은 이해가 되지 않아 무의식적으로 물었다.“사장님 죽음이 수상해 직접 조사하고 싶었을 수도 있고, 단순히 사장님이 그리웠을 수도 있고... 아무튼 저 지금 가는 중이에요.”[그럼 먼저 건너가. 나 이따 바로 갈게.]나는 윤지은과 상의한 뒤 먼저 사장님이 사고 난 곳으로 향했다.사고가 난 곳은 절벽인데, 사모님은 마침 절벽
사모님의 이런 모습을 보니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입을 꾹 다문 채로 옆을 지켜드렸다. 그러다 저도 모르게 졸음이 몰려왔다.최근 계속 이리저리 다니다 보니 그동안 제대로 휴식한 적 없어, 나는 너무 피곤한 나머지 잠시 눈을 붙이려고 했다.하지만 잠을 편히 잘 수 없었다. 꿈속에서 정 사장님은 계속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나도 사장님을 구하고 싶었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사장님과 닿을 수 없었다. 그러다 꿈의 마지막쯤 정 사장님은 가면을 쓴 사람에게 살해당했다.꿈에서 놀라 깬 나는 이미 온몸이 식은땀에 푹 젖어 있었다.비록 꿈이었지만 꿈에 나온 장면들이 너무 생동해서 직접 경험한 것 같았다.밖은 어느 때부터인지 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했고, 유리창을 두드리는 빗소리가 최면 노래처럼 느껴졌다.피곤함에 눈을 비비다가 문득 사모님이 침대에서 사라졌다는 걸 발견한 나는 다급히 호텔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디에도 사모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나는 호텔 안을 마구 달리며 윤지은에게 전화했다.“혹시 유미 사모님 봤어요?”[나 계속 밖에 있어서 유미 본 적 없는데? 네가 유미 호텔에서 돌봐주던 거 아니었어? 그런데 어디 갔는지 모른다고?]윤지은이 반문했다. 이에 나는 얼른 설명했다.“제가 너무 피곤해서 잠깐 눈 붙였는데 깨어나니 사모님이 사라졌어요.”[넌 대체 뭘 할 수 있어? 사람 하나 돌보는 것도 못해?]윤지은은 나를 꾸짖기 시작했다.나는 얼른 전화를 끊고 이리저리 찾으며 물어봤지만 호텔 직원들도 모두 사모님을 본 적 없다고 했다.결국 나는 프런트에 달려가 물었지만 프런트 직원들도 못 보기는 마찬가지였다.“그럼 CCTV 한번 확인할 수 있을까요?”“안 됩니다. 호텔 규정상 CCTV는 함부로 보여드릴 수 없어요.”나는 다급히 말했다.“제 친구 남편이 이틀 천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 친구 정서가 엄청 불안해요. 반드시 빨리 찾아야 해요. 지금 우선 CCTV 확인해 줘요. 제가 당장 경찰에 신고할 테니까...”“안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여자가 이렇게 빨리 남편 시신을 화장하려고 하는 이유가 없다.내가 분명 이번 교통사고가 단순한 사고가 아닐 거라고 말했는데 들을 생각도 하지 않다니.나는 슬쩍 찔러보려고 다시 물었다.“왜 그렇게 서둘러요? 혹시 뭐 알고 있는 거 아니에요?”여자는 내 말을 듣더니 얼굴색이 확 바뀌었다. 나는 뭔가 찔린 듯 불안해하는 여자의 행동을 눈에 담았다. 그러고는 갑자기 여자의 손목을 덥석 잡았다.“뭔가 알고 있는 거죠? 알고 있는 거 다 얘기해요. 그게 이번 사고의 진실을 밝힐 수도 있어요...”“뭐 하는 거예요? 아파요.”여자는 내 손을 뿌리쳤다. 여자의 아들은 어머니가 괴롭힘당하는 걸 보자 바로 나를 막아섰다.지금 내 실력으로 두 사람을 상대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윤지은은 일을 크게 만들까 봐 내 팔을 쿡쿡 찔렀다.“됐어. 저 사람들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해.”나는 이대로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두 사람이 너무 수상해 반드시 기회를 잡아 두 사람의 입을 열어야 했다.하지만 점점 모여드는 구경꾼들 때문에 나는 결국 포기할 수박에 없었다. 만약 나 혼자였다면 내가 내키는 대로 소란을 피웠을 테지만, 정서가 불안정하기에 사모님한테 피해 가게 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이대로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나는 장례식장을 떠난 뒤 두 사람을 찾아 결판 낼 생각이었다.오늘 장례식장에 나타난 유가족은 또 있었다. 바로 운전한 오 기사님 가족이었다.오 기사님 가족은 얘기가 잘 통해 화장을 조금 미루기로 했다. 그들 역시 이번 교통사고가 수상쩍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오 기사님 아들은 심지어 확신했다.“제 아버지 운전 실력은 엄청 좋아요. 사고가 난 곳도 생전에 수백 번도 더 다녔던 곳이라 그 길을 잘 알고 있어요.”“아버지가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도 처음에 믿지 않았어요. 난 이번 일 제대로 조사해서 아버지 결백을 증명할 거예요.”겨우 생각이 같은 사람을 찾았다는 생각에 나는 너무 기뻤다. 결국 조금희의
“들여보내 줘요. 나 호섭 씨랑 같이 있을래요. 같이 있어 줘야 해요...”장례식장 입구에서 유미 사모님은 몇몇 직원들에게 가로막혀 애타게 울고 있었다.그 모습을 보자마자 나와 윤지은은 급히 달려갔다.“사모님, 여긴 왜 왔어요?”장례식장도 규칙이 있는데 가족 방문 횟수가 제한되어 있다. 우리가 나가기 전 분명 사모님더러 호텔에서 휴식하라고 했는데, 여기까지 올 줄은 몰랐다.한참 애를 먹던 두 직원이 얼른 말했다.“얼른 이분 좀 말려 봐요. 이곳 냉기를 보통 사람들은 견디기 힘들어하세요. 그런데 자꾸만 안에 들어가겠다고 하시는데, 절대 안 됩니다.”“그리고, 절차는 다 밟았나요? 다 밟았다면 얼른 화장할 수 있게 사인하세요. 시체 안에 계속 두고 있는 것도 좋은 선택은 아니에요...”나는 손을 저으며 두 직원의 말을 잘랐다.“네, 알겠어요. 먼저 가서 일들 보세요.”나와 윤지은은 유미 사모님을 조용한 곳으로 데려갔다. 사모님은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고 너무 지쳐 몸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그 모습을 보며 윤지은도 드물게 눈시울을 붉혔다.“유미야, 이러지 마...”윤지은은 흐느끼느라 말도 제대로 내뱉지 못했다.사모님 역시 슬피 울부짖었다.“왜? 좋은 사람은 복이 온다며? 그런데 왜...”“호섭 씨는 이 세상에서 가장 착한 사람인데. 호섭 씨가 가난한 사람을 위해 얼마나 많은 선행을 베풀었는데 왜 이렇게 된 거야? 왜...”처절한 외침에 듣는 나도 너무 괴롭고 삼장이 칼에 베이는 것처럼 아팠다.이 순간 어떤 위로의 말도 소용없다. 그 어떤 위로도 사모님의 비통한 심정을 달랠 순 없으니까.나는 그저 사모님이 진정할 수 있게 침을 놔줄 수밖에 없었다. 잠시 뒤 나는 조금 안정이 된 사모님을 안아 차에 앉혔다. 창백하고 초췌한 사모님의 얼굴을 보니 내 마음은 더욱 괴로웠다. 그때 윤지은이 이를 악물며 악에 받쳐 말했다.“이번 사건 우리가 꼭 밝혀낼게.”그 순간 나도 윤지은과 같은 마음이었다. 나는 속이 부글부글 끓었고 그걸 당장 토
나는 윤지은이 갑자기 이렇게 말할 거라고 생각지도 못해 무척 감격스러웠다.나 혼자 다른 도시에서 도움 없이 이 사건을 조사하는 건 확실히 힘들다. 하지만 윤지은이 같이 조사하겠다고 하니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겼다.나는 느릿한 말투로 진지하게 말했다.“이번에 우리 같이 손을 잡고 정 사장님을 위해 진실을 밝혀요.”그동안 나와 윤지은은 서로 고양이와 개처럼 항상 만나기만 하면 싸웠는데, 이번만큼은 힘을 합쳐 함께 정 사장님 사건을 조사하기로 했다.우리는 해야 할 일을 확인한 뒤, 강한나를 만나러 갔다. 강한나라면 전문가의 관점에서 우리를 도와 증거를 수집할 수 있을 테니까.“최선을 다해 볼게. 하지만 너무 큰 기대는 하지 마. 내가 방금 사건 기록을 봤는데 현장 사진과 다양한 증거들을 취합해 보면 단순 사고사일 수 있어.”“내가 의심했던 브레이크 흔적 거리인데, 이것도 어찌 보면 사고사일 수도 있고 다른 이유가 있을 수도 있어. 결론적으로 조사하기 매우 어려워.”한참 듣고 있던 윤지은이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현장 증거로 조사할 수 없으면 다른 쪽으로 출발해야겠네.”한창 낙담하고 있던 나는 윤지은의 말에 다급히 물었다.“혹시 방법이 있는 거예요?”윤지은은 팔짱을 끼면서 냉정하게 분석했다.“내가 알기로 운전한 기사는 호섭 씨랑 오랜 친구였고 운전 실력도 엄청 뛰어나. 이 점에서 출발하면 될 것 같아. 그리고 함께 차에 탔던 피해자 가족들도 조사해 볼 수 있어.”나는 맞장구치며 고개를 끄덕였다.“음, 좋은 방법인 것 같아요. 그럼 사고 유가족들부터 조사해 봐요.”강한나는 우리를 보며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정말 그렇게 할 거야? 이 사건이 만약 인위적인 거면 두 사람도 위험해. Y시는 국내 다른 도시들과 달라. 여긴 무법지대인 D국과 엄청 가까워.”윤지은이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그게 뭐? 의심 가는 구석이 있는데 그냥 덮자고? 그러고도 내가 무슨 친구야? 유미 지금 충격이 너무 커. 호섭 씨는 유미한테 가장 중요한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