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겠사옵니다. 처음 해 봅니다."기화가 담담하게 말했다.우문호는 오히려 이 머리를 구우면 어떤 모습일지 보고 싶어서 탕양에게 그의 말대로 하라고 했다.탕양은 겉옷을 벗어 머리를 덮고 안고 나갔다. 비록 진흙으로 만들었지만 그래도 태자와 닮아있으니 그는 안고 나가면서 왠지 마음속으로 이상하다고 느꼈기에 기화는 이내 자리에 앉아 원경릉을 보다가 시선이 점차 그녀의 배 위로 떨어졌다."내 제자는 얼마나 더 있어야 태어납니까?"그가 이 말을 하자 모두 멍해졌다. 그리고 우문호는 바로 원경릉을 자신의 곁으로 끌어가 앉히고 담담하게 말했다."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것이옵니까?"기화는 멈칫하고 말했다."내 제자이옵니다. 태자비 뱃속에 아이가 바로 내 제자인 것을 모르고 있는 겁이옵니까?""우리는 정말 모릅니다."우문호는 조금 화가 났다. 비록 이 사람은 무공이 뛰어나지만 아이는 그의 자식이다. 아버지인 그도 이 일을 모르는데 누가 허락을 했단 말인가?기화도 화가 났다."다 동의를 한 것 아니옵니까? 태자비 뱃속의 아이를 내 제자라고 약속했기 때문에 여기까지 오기로 했사옵니다."원경릉은 조금 눈치를 챘고는 물었다. "누구와 약속을 했사옵니까?""견역풍이옵니다."견역풍은 누구지? 다들 궁금해져 서로를 쳐다 보았다. 모두 이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기화는 모두들 경악스러운 표정을 짓자 좌불안석이었다."여기는 북당이지요?""그렇사옵니다!"서일이 말했다."그럼 이곳은 초왕부가 맞사옵니까?"그가 우문호를 보며 말을 이었다."당신은 북당의 황태자 우문호가 맞사옵니까?""예. 맞사옵니다. 헌데 우리는 견역풍을 잘 모릅니다!"우문호는 의심스럽게 그를 쳐다보았고 그가 티 나지 않게 미친 척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기화는 확실히 화가 난 모습이었다.원경릉이 물었다."견역풍이 대체 누구입니까?"기화는 그제야 그가 이곳에 있는 봉호를 떠올리는 듯 바삐 말했다."안풍 친왕입니다!""안풍 친왕이요?"우문호는 갑자기 마음이 풀렸고 설명
서일이 멍하니 말했다."그럼 헛수고가 아니옵니까?"우문호는 생각을 하다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헛수고는 아닐걸세. 안풍 친왕의 뜻은 나로 하여금 암암리에 병기를 싣고 전장으로 달려가 그들의 예상을 빗나가게 주의력을 분산 시키고 계획을 흐트러지게 하는 것이라 믿소. 그때 북막의 신경은 온통 주력 군사에 쏠려있을 테니 전력을 다해 전쟁에 준비를 하며 다른 것을 경계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죽으면 북당에 반드시 대란이 일어날 것이기에 전쟁에 나간 친왕들은 모두 태자의 자리를 탐내며 사이가 멀어지기 마련이라 생각할 걸세. 전장에서 가장 꺼리는 것은 장군들의 마음이 멀어지는 것이야. 이런 추측을 하니 그들은 병력을 집중하여 대거 침입하여 빠르게 공격을 하려 할 것이다. 일단 빠르게 공격을 시작하면 이기려는 마음도 조급해져 뒷길을 남기지 않을 테지, 그때 우리의 무기가 도착하면 그들을 단번에 섬멸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전쟁도 빠르게 끝낼 수 있고 북당에도 큰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다."우문호의 분석에 따라 모두들 깊이 생각해 보았고, 모두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다. 다시 기화를 보고 있는 모두의 시선에는 존경의 빛이 담겨 있었다. 안풍 친왕이 그에게 부탁을 해서 오게 한 것으로 보아 이 사람은 반드시 큰 재간이 있을 것이다. 무공은 더할 나위 없이 모두 직접 보았으니 다들 흙 머리가 다 구워지면 어떤 모습일지 기대하고 있었다. 기화는 시국의 일에 별로 흥미가 없어 왈가왈부하지 않고 고개를 돌려 원경릉과 우문호를 보며 간절하게 물었다."만약 이 일이 성사된다면 뱃속의 아이를 나의 제자로 삼는 것을 허락해 주실 수 있사옵니까? 점을 보았는데 이 아이와 나는 아주 깊은 인연이 있기에 이번 생에는 반드시 스승과 제자가 될 것이라 생각하옵니다."우문호가 말했다."이 일은 아이가 태어나고 난 뒤 다시 말씀을 하는 것이 어떻사옵니까?"그러자 기화가 웃으며 말했다."당연히 되지요. 이 아이는 나와 인연이 있으니 허락을 하지 않는다고 해도 나의 제자가 될
기화가 담담하게 말했다."사람의 피가 있기 때문이옵니다. 피는 음기가 극히 강한 물건이라 죽은 자의 영을 위에 붙일 수 있습니다. 이것은 비술이니 모르는 것도 이상하지 않사옵니다.""비술이요? 당신은 북강 사람이옵니까?"이리 나리는 북강 무당에게도 이런 비술이 많은 것이 생각났고 그중에는 죽은 사람을 산 사람처럼 몰아낼 수 있는 주술도 있었다. 그러자 기화는 온화한 눈빛으로 이리 나리를 바라보며 말했다."천하에 북강만 비술을 아는 것이 아니옵니다. 이 흙 머리는 해결이 되었으니 먼저 머리를 가지고 떠나겠사옵니다. 그 후에 판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다들 알아서 하시지요."기화는 나무상자에 있는 천을 들고 머리를 싸서 어깨에 메고 모두에게 공수를 한 뒤 성큼성큼 떠났다.요 며칠 동안 자객들이 계속 들이닥치고 있으니 판을 짜는 것은 물론 어렵지 않다. 그리고 진정한 검마가 경성에 있고 어딘가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있을지도 모르니 이 판을 반드시 짜야 하는 상황이라 하더라도 태자의 사고 소문은 약간 밖으로 퍼뜨려야 했다. 그러나 소문을 내더라도 반드시 전력을 다해 눌러야 하기에 그저 북막에서 보낸 밀정이 소식을 알게 하기만 하면 된다.바로 그때, 냉정언과 홍엽이 경성으로 돌아왔고 그들은 곧장 초왕부로 돌아갔다. 이 일의 전말을 듣고 난 뒤 냉정은 웃으며 말했다."그것은 아주 간단하지 않사옵니까? 검마에게 초왕부로 와서 암살을 하게 하면 되지 않사옵니까? 그리고 이 암살은 모든 사람이 다 알아야 하옵니다.""그렇게 위험을 무릅쓰는 것은 좋지 않사옵니다. 검마가 정말 온다고 해도 반드시 대처할 수 있는 것은 아니옵니다."이리 나리는 지금 자신의 사람들에 대해 자신감이 부족한 상황이다. 특히 어젯밤에 검마의 경공을 보고 난 뒤 그가 고수 중의 고수라는 것을 알았다. 만약 보호가 제대로 되지 않아 태자가 정말 그로 인해 머리를 베인다면 정말 후회를 하려고 해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기 틀림 없었다. 냉정언은 속으로 이미 계획이 끝난 듯한 당
암살을 계획하는 것은 그야말로 더할 나위 없이 쉬웠다. 특히 검마가 오기 전에 이미 태자의 머리는 그의 것이라고 소문을 퍼뜨려 놓은 상태였다.그날 저녁, 남변객 검마는 초왕부로 왔다. 한창 싸움이 진행되고 있었고 아직 경성을 떠나지 않은 고수들이 관전하러 왔다. 늑대파의 사람들이 쫓으러 와서 그들은 멀리서 조용히 볼 수밖에 없었다. 어둠 속에서 모든 것이 똑똑히 보이지 않았다. 다만 검의 기운이 날카롭고 싸늘하다는 것을 멀리 있는 사람들도 모두 느낄 수 있었다.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처량하고 날카로운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전하!"이내 당황함이 가득한 목소리가 연달아 울렸다."어서 전하를 구하거라!""호위하라, 호위하라!""저 자를 보내지 말거라. 저 자를 죽이거라. 당장 죽이거라!"처량한 소리들이 귀에 전해 들어와 이 어둠 속에서 유난히 귀를 찌르는 것 같았다. 멀리서 관전하던 사람들은 비록 보지는 못했지만 이 소리를 들으니 검마가 아마도 성공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역시나 얼마 지나지 않아 누군가가 무언가를 들고 밤하늘을 스치며 빠르게 사라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때 참혹한 울음소리가 울리기 시작했고 말 한 마리가 빠르게 초왕부 문을 나서 황궁으로 달려갔다.어둠에 묻힐 수 있는 것은 너무나도 많다. 초왕부의 대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드나드는 사람들은 강적을 만난듯했다. 시체가 들려 나와 늑대파로 돌려보내졌다. 죽은 사람의 태반이 늑대파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검마의 대단함은 이로부터 알 수 있다.이튿날이 되자 조정에 관리들은 태자가 부상을 입어 당분간은 정사를 돌볼 수 없다고 전해 들었다.그러나 민간에서는 태자가 검마로 인해 살해되었다고 추측했고, 조정의 관리들도 순간 황송해졌다. 명원제는 어의를 초왕부로 보냈지만, 어의는 초왕부에 들어간 후 다시 나오지 못해 더욱 많은 사람들의 추측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다. 그러나 초왕부에는 귀영위가 곳곳에 잠복해 있어 거의 사각지대가 없었다. 누군가가 침입하여 훔쳐보려는 것은 거의 불
북막 사람들은 북당의 무기를 보게 된다면 적어도 10년 동안은 감히 침범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북막은 요 몇 년 동안 호전을 일삼으며 국력을 많이 소모하여 앞으로 2~3년 내지 3~5년 동안은 더 이상 군사를 일으킬 수가 없다. 오늘 저녁 두 사람은 소월각에서 수라를 들었다. 우문호는 심지어 아이들이 와서 방해하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다. 기 상궁은 그들에게 몇 가지 요리를 해주었다. 이번에는 태자비의 입맛을 신경 쓰지 않고 완전히 태자의 입맛에 맞추었다. 태자는 입안에 기름이 가득해 지는 고기를 좋아한다. 그가 이틀 후에 출발하는 것을 안타까워했고 길에서 맛있는 것을 먹지 못할까 봐 한 번에 그에게 만족시키게 해주었다.우문호는 아주 즐겁게 먹었다. 그동안 줄곧 암살당할 위험에 처해 있었던 데라 이리댁에서 며칠을 지내다 지금 집으로 돌아와 자신의 부인과 함께 밥을 먹으니 유난히 즐거웠다. 바깥 일들은 거의 모두 확정이 되었으니 그는 마음속의 큰 걱정을 내려놓은 셈이다. 이번 전쟁에는 안풍 친왕, 태상황과 나리들이 있으니 그는 반드시 이길 것이라 생각했다.그러므로 식사를 할 때 그는 전쟁에 관한 이야기는 조금도 꺼내지 않고 원경릉에게 기화가 아이를 제자로 삼으려는 말을 꺼냈다.그는 한숨을 쉬고 말했다."아이가 태어나지도 않았고, 심지어는 아들인지 딸인지도 모르는데 다른 사람에게 제자로 허락을 해야 하다니. 만약 딸이라면 오히려 당신에게서 의학을 배우기를 바라고 있소. 희열이처럼 병을 치료하고 사람을 구하면 얼마나 좋느냐 말이다.""아들도 의술을 배울 수 있소."원경릉이 웃으며 말했다."아들은 의술을 배우든 무공을 배우든 아무리 힘들어도 아깝지 않다네. 나이로서 이런 것을 감당해야 하오. 헌데 딸이면..."그는 말을 멈추고 그릇을 내려놓았다. 지금 그의 마음속에서 가장 큰 걱정이 바로 이 일이다."만약 우리가 정말 딸을 낳으면 어떻게 남한테 제자로 삼게 할 수 있겠소? 그 기화가 딸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겠느냐? 무공인가?"원경릉은 머리를
나흘이 지난 후 우문호와 서일은 식량을 운송하는 소리로 변장하고 대오를 따라 출발했다.이 물건들은 겉으로는 식량이었지만 실제로는 모두 무기였다.초왕부는 여전히 관리가 엄했고 다른 사람이 드나드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기에 외부인은 조금의 소문을 엿들으려 해도 엿들을 수가 없었다.강북부에서 안왕이 출정하자 안 왕비는 군주를 데리고 귀경길에 올랐다.이것은 안왕이 분부한 것이였다.일단 싸우기 시작하면 전선이 뒤로 이동할 테니 강북부가 영향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왕비와 아이가 여기에 있으니 그는 마음이 놓이지 않아 그들 모녀를 귀경시켰다.두 번째 식량이 경성을 떠난 후 회왕도 경성을 떠났다. 그는 부근의 주부에 가서 군량을 조달했고 미색과 아쉽기 그지없게 작별을 고했다.서방이 처음으로 먼 길을 떠나는 것이니 미색은 더욱 아쉬웠고 늑대파의 사람들을 보내 그를 따라가게 했다. 임신을 해서인지 감정의 기복은 유난히 뚜렷했고 회왕이 문을 나설 때 그녀는 끝내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그녀의 마음은 사실 기뻤다. 그녀는 항상 자신이 회왕을 보호할 수 있으니 편히 경성에 있기만 하면 된다고 말했지만 그가 정말 그의 포부를 이루고 가치를 실현하려 하니 매우 기뻤다.회왕이 떠난 후 그녀는 초왕부로 옮겨 지내며 원경릉과 사식이와 함께 있었다. 그녀는 모두 임신을 한 상태니 함께 지내며 서로 보살필 수 있다고 말했다. 게다가 세 사람의 서방이 모두 출정했으니 함께 지내면 헛된 생각을 하지 않을 것이고, 누군가 쓸데없는 생각을 하더라도 다른 두 사람이 위로할 것이라고 말했다.본디 세 사람 중 가장 강한 사람은 미색이고 가장 약한 사람은 사식일 것이라 생각했었다.그러나 지내다 보니 그제야 걱정이 태산인 사람이 오히려 미색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항상 회왕의 몸이 그다지 좋지 않은 데다 이번에 먼 길을 떠나 직접 식량을 변방으로 운송해야 한다고 신경 썼다. 즉 전쟁터에 나타날 것이니 아주 위험하다고 생각했다.사식이가 그녀를 위로했다. 그는 식량을
북막 일대의 날씨는 추웠고 모래바람이 매우 세다. 이 사람 머리는 꺼내어 올리자마자 쇠퇴한 기색을 띠었다. 얼굴에 남아 있던 수분은 바람에 날려 사라졌고 목의 부러진 부분에는 검은색으로 변해 굳은 피가 썩은 악취를 풍기고 있었다.진 대장군은 한참을 보고 나서야 천천히 시선을 돌려 안타까운 마음이 있는 듯 말했다."태자께서 이리도 젊은 나이에 돌아가시니 정말 안타깝구먼.""전혀 안타깝지 않사옵니다. 적어도 백만 냥의 황금을 받을 가치가 있지요!"기화가 그를 바라보았다."대장군, 황금은 어디에 있사옵니까?"대장군은 소원을 이룬듯 살짝 웃기 시작했다. 일 년 내내 모래바람을 맞으며 지낸 얼굴에는 주름살이 매우 뚜렷했고 울퉁불퉁했다. 잠시 후 그가 입을 열었다."백만 냥의 황금을 자네 혼자 와서 아마 들고 갈 수 없을 것이네. 차라리 자네가 먼저 사람을 찾아오게나. 내가 사람을 명해 자네를 데리고 황금을 찾으러 가는 것이 나을 것이네."기화가 담담하게 말했다."필요 없사옵니다. 소인은 이미 준비를 하고 왔으니 뒤를 보시지요!"그가 말을 타고 물러서자 진 대장군은 시선을 보냈고 역시나 아주 먼 곳에 소가 끌고 온 수레 차가 언뜻 보기에도 수십 대가 있었다.진 대장군이 웃으며 말했다."준비를 다 마치고 왔으니 다행이군. 그러나 그저 만 냥의 황금일 뿐, 이렇게나 많은 사람이 올 필요는 없다네."기화가 크게 화를 내며 말했다."무슨 만 냥의 황금입니까? 분명 백만 냥이라고 말씀하셨지 않습니까!"진 대장군이 하하 웃으며 말했다."그런가? 자네가 아마 잘못 들었나 보군. 내가 본래 말한 것이 만 냥의 황금이라네. 자, 황금을 들고 와 검마를 진영에서 보내거라!"기화가 눈을 가늘게 떴다."나를 속이는 것입니까? 거기 진 씨, 내가 경계가 삼엄한 초왕부에서 우문호의 머리를 얻을 수 있는 이상 이 천군만마 중에서 당신의 목을 얻을 수도 있사옵니다!""알고 있네!"그러나 진 대장군은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심지어 계속 말을 타고 오고 있었다.
기화는 10만 냥의 황금을 운반하여 북막경내를 급히 떠난 것이 아닌 북막 변경에 가까운 주변 주현에서 식량을 구매했다. 10만 냥의 황금으로 부근의 몇 개 주현의 시장 속 식량을 거의 전부 매진시켰다. 이 식량은 자연히 북당으로 운송할 수 없었기에 그는 식량창고를 세내어 식량을 사재기했고 자신마저 북막을 떠나지 않았다.식량을 끊는 이 방법은 애초에 대주가 북막을 공격할 때도 사용한 적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실패한 역사는 북막인들에게 아무런 교육적 의미가 없다. 그들의 이번 조치는 대대적인 침입이고 반드시 북당을 차지하겠다는 결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북당을 이기기만 하면 식량은 반드시 충분할 것이다. 북당 자체가 하나의 큰 식량 창고이다.그러므로 진 대장군이 기화가 식량을 구매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도 북당인이 권세와 이익으로 의해 이 식량으로 돈을 벌려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필요한 물건이니 되팔아 돈을 벌 수 있다.아무래도 북당 태자를 죽인 북당인은 북당군에게 쓰이지 않을 것이며 그의 눈에는 이익만 있을 뿐이다.진 대장군은 무장으로 전쟁에 관한 일만 생각했고 개의치 않았다.지금 그는 우문호가 죽었으니 북당은 지금 반드시 혼란스러울 것이라 생각했기에 진 대장군은 기다리지 않고 빠르게 공격하기로 결정했다. 주력 부대는 신속하게 북당 경내에 진입했고 줄곧 파죽지세로 두 달 내에 북당 황도를 함락시켰다.그는 모든 군사가 북당 국경으로 진격하여 압착하라고 명을 내렸다.양군이 맞붙을 때 그는 강북부 이외 100리 정도 떨어진 곳으로 정하는 것이 가장 좋을 것이라 생각했다.그는 단 한 번도 방심하지 않았다. 북당군에는 소요공이 직접 지휘를 하였고 태상황이 직접 출정한데다 안풍 친왕 부부가 진두지휘했으니 이번 전쟁에 북당군은 사기가 고조되고 자신감이 넘쳤다. 그리하여 그는 전고가 일단 울리면 반드시 북당 변경의 두 성을 점령해야 한다고 명을 내렸다. 먼저 좋은 물꼬를 터서 북당군을 누르고 다시 몰아세우면 북당군을 순조롭게 쳐낼 수 있다.첫 번째 싸
우문호는 이 말을 듣고 얼굴빛이 확 어두워지며 깜짝 놀랐다.“청혼? 누가 청혼을 한 것이오? 미친 것이오? 겨우 여덟 살인데! 대체 어떤 정신 나간 사람이 이런 짓을……”그는 너무 충격을 받아 분노가 치밀었다. 겨우 여덟 살인 딸을 누군가 눈독을 들이고, 심지어 청혼까지 했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 그는 그자가 누구인지 알게 되면 반드시 혼쭐을 내겠다고 마음먹었다.원경릉이 그의 손을 잡고 말했다.“이미 택란의 비밀을 다 털어놨으니, 이제 더 이상 나한테 화내면 안 되오.”“말하시오. 용서할 테니 더 말하시오!”우문호는 더 이상 원경릉에게 화를 낼 힘도 없었다. 사실 처음부터 그렇게 심하게 화가 난 것도 아니었고, 복잡한 감정만이 뒤섞여 답답할 뿐이었다.하지만 지금은 그런 감정들도 모두 사라지고, 이 터무니없는 사건이 더 중요해졌다.원경릉은 택란이 금나라에 가서 10만 냥을 얻은 전말을 설명했다. 특히 금나라의 어린 황제가 그녀에게 청혼했다는 이야기도 빠뜨리지 않고 전부 털어놓았다. 단 한 글자도 숨기지 않고 진실만 말했다.우문호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그건 너무 대담하잖소! 금나라에서 10만 냥을 빼앗았다니? 어찌 이야기가 이렇게 익숙한 것이오? 그래, 기화요! 어찌 스승이 이런 짓을 가르친 것이오? 그리고 그 금나라의 어린 황제는 이제 몇 살이오? 듣자 하니 겨우 열 살이라고……”“열셋이오. 금나라의 진국왕이 그의 권력을 누르려, 일부러 열 살이라고 소문낸 것이오.”우문호는 벌떡 일어나 뒷짐을 지고 방을 빙빙 돌며 어쩔줄 몰라했다. “열다섯이라도 안 되네! 금나라가 북당의 경성에서 얼마나 먼지 알고 있소? 아이가 그곳에 시집가면 1년에 한 번도 못 돌아올 것이네. 북당의 진국 공주를 부인으로 삼겠다니? 허망 된 꿈이요! 꿈!”“아이들의 농일 뿐이요. 진지하게 받아들이면 안 되네.”원경릉이 서둘러 말을 덧붙였다.“농담이라도 안 되네. 황위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면서 우리 귀한 딸을 부인으로 삼겠다니? 이런 녀석은 앞
목여 태감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우문호에게 말했다.“폐하, 공주를 너무 꾸짖지 마십시오. 공주께서는 단지 세상을 경험하고 싶어 한 것 뿐입니다. 큰일도 아니지 않습니까? 안왕과 위왕도 그곳에 있었고, 아무 문제도 생기지 않았잖습니까?”우문호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그래. 택란이 자네에게는 과자 한 조각을 주었지만, 나한테는 안 주더군.”택란은 그 말을 듣고 재빨리 과자 한 조각을 가져와 아버지의 입가에 가져다 대며 환심을 사려는 목소리로 말했다.“아버지, 드셔 보세요. 이건 그렇게 달지 않은 생강 과자인데, 정말 맛있습니다!”생강 과자의 향기가 코끝을 스쳤다. 딸의 귀엽고 앙증맞은 얼굴을 보니 어떻게 밀쳐낼 수 있겠는가? 화가 난 상태였지만 결국 한입 물었고 생강과 설탕의 맛이 입안에 퍼졌고, 딸의 사랑스러운 미소를 보니 얼굴에 굳었던 표정이 풀어졌다.“나도 먹고 싶은데.”원경릉이 가볍게 웃으며 그의 옆에 앉아 턱을 괴고 물었다.“다섯째야, 맛있느냐?”우문호는 고개를 돌려 그녀를 무시했다. 그녀가 스스로 만든 규정을 어겼으니, 좋은 표정을 지을 마음이 없었다.원경릉이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택란아, 나한테도 한 조각 줘 보거라!”택란은 다시 과자 한 조각을 가져와 엄마의 입가에 가져다주며 더 큰 죄책감을 느꼈다. 이번엔 자신의 엄마까지 곤란하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원경릉은 과자를 먹고 나서 웃으며 말했다.“정말 맛있구나. 다 먹었으니 나가서 좀 자거라. 돌아오는 길에 제대로 못 잤으니.”“예!”택란은 얌전히 대답하고 나머지 과자를 빨리 먹어 치운 뒤 아버지에게 다가가 그를 한 번 안아주었다.“아바마마, 저 먼저 자러 가겠습니다. 깨고 나면 다리 주물러 드릴게요!”우문호는 더 이상 화를 내지 않고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했다. “그래, 어서 가거라.”택란은 목여 태감의 손을 잡고 방을 나섰다. 그녀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엄마를 한 번 돌아보며 아버지가 너무 오래 화를 내지 않기를 바랐다.원경릉은 문을 닫고 탁자 옆에
기다리고 기다리던 택란이 드디어 경성으로 돌아왔다. 우문호는 소월궁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옆에서 목여 태감이 계속해서 설득했다. 그는 공주가 아직 어리니, 노는 것을 좋아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라 하며, 그저 택란이 다른 어린아이들이 저지를 수 있는 잘못을 한 것뿐이라고 말했다. 목여 태감은 혹시라도 황제가 공주를 꾸짖을까 봐 걱정되어 공주를 감쌌다. 그의 약한 마음은 그런 걸 감당하지 못했다.마침내 택란과 원경릉이 도착했다.우문호는 작은딸이 원경릉의 뒤에 숨어 겁먹은 얼굴로 머리를 살짝 내밀고 자신을 바라보는 모습을 보았다.원경릉이 딸의 손을 꽉 잡고 말했다.“가봐라, 아버지께서 기다리신다.”택란은 고개를 숙이고 아버지 앞으로 다가갔다. 우문호 앞에 서서 조심스럽게 자기 손을 그의 손 위에 올려놓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아바마마, 저 돌아왔습니다.”그러자 우문호는 딸의 손을 잡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뿌리치지도 않았다. 앞에 서 있는 그녀를 보는 눈빛엔 복잡한 감정이 뒤섞여 있었다.“약도성에 얼마나 있었느냐?”택란은 거짓말을 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솔직히 대답했다.“지난번 여름방학 때 집에 돌아온 후 바로 약도성으로 갔어요.”우문호는 큰 충격을 받았다.“모두가 알고 있었으면서, 나만 속였단 말이냐?”택란은 미안한 마음에 아버지를 껴안으며 말했다.“죄송합니다. 앞으로는 안 그러겠습니다!”우문호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원경릉이 다가가 말했다.“아이가 자네 선물을 많이 샀소. 한번 보시게.”“필요 없소!”우문호가 단호하게 말했다. 딸을 뿌리칠 마음은 없지만, 그는 여전히 속았다는 사실에 너무 힘들었다.원경릉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을 텐데, 자신에게 말하지 않았다. 서로 비밀이 없기로 약속했건만, 그 약속이 깨진 것 같아 화가 났다.원경릉은 그의 표정을 보고 더 걱정해야 할 사람이 자기라는 것을 깨달았다.오는 길 내내 택란만 걱정하며 우문호에게 딸을 변호해 주려 했지만, 정작 자신이 그를 속인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
아이들은 저마다 자신이 한 일을 이야기하며 원경릉을 기쁘게 했다.다섯째는 이전에 다섯 개의 성을 위해 적어도 30년이나 50년의 계획이 필요하다고 했었는데, 지금 상황을 보니, 20년이 채 되지 않아 조정에 대한 충성심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더 나아가 국경 방어뿐만 아니라 조정에 세금을 납부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보였다. 아이들이 현대의 경험을 참고하며 지내는 것이 다섯째의 큰 걱정을 해결해 준 것이었다. 약도성은 이번 지진으로 국고의 돈과 주변 주현의 자원을 사용했다. 북당과 약도성의 백성들의 마음이 끈끈히 묶여 있어 불행 중 다행이었다.중증 환자들이 회복된 후, 원경릉은 택란과 함께 경성으로 돌아갔다.출발하기 전에 비둘기를 통해 다섯째에게 소식을 전하며 심리적 준비를 하도록 시간을 주었다. 이렇게 하면 다섯째가 택란을 보았을 때 마음을 가라앉혀 덜 화를 낼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택란은 아버지가 화를 내거나 슬퍼할까 봐 사실 마음속으로 몹시 두려웠다. 아버지가 자신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지 그녀또한 잘 알고 있었다.돌아가던 중 택란은 아버지에게 줄 선물을 사자고 제안했다. 원경릉은 딸의 강한 생존 본능에 웃음을 터뜨렸다. 딸이 아버지를 소중히 여기고 있었으니, 다섯째가 딸을 그렇게 아끼는 것이 헛된 일이 아님을 느꼈다.“너희 아버지께서는 특별한 취미가 없으시고, 그저 술 한잔하는 걸 좋아하시니까 좋은 술 몇 병 사 가는건 어떠냐?”그러자 원경릉이 먼저 제안했다.“좋습니다! 사요! 많이 사서 마차에 싣고 가겠습니다!”택란이 급히 대답하자 원경릉이 웃음을 참지 못했다. 다섯째가 아이들에게 그렇게 자상한데도 아이들이 그를 무서워하는 이유는 무엇일까?물론 이는 두려움이 아니라 존경이고 사랑이지만 말이다.경성에서 우문호는 원경릉의 서신을 받자마자 열어보았다. 편지를 읽는 순간 그는 멍해졌다.“계란이가 약도성에 갔다니? 그게 어떻게 가능한 것이냐? 그렇게 얌전하던 딸아이가 몰래 약도성에 갔을 리가 없어.”더구나, 셋째와 넷째는
약도성의 건물 대부분이 무너져 백성들은 임시로 지은 오두막과 초가집에 머물게 되었는데, 폐허로 변한 도성은 눈에 보이는 곳마다 온통 엉망진창이었다. 원경릉은 마음속 깊이 안타까움을 느꼈다.택란의 뜻으로 중증 환자들은 모두 저택으로 옮겨졌다. 원경릉은 계란이의 결정이 매우 옳다고 생각했다. 중증 환자들은 그녀와 몇몇 의원이 책임지고 돌보았고, 나머지 의원은 경증 치료를 맡았다.택란은 엄마 곁에 머물며 환자를 돌보는 것을 도왔는데, 기본적인 의술을 알고 있어서 소독과 붕대 감는 일을 도왔다. 부상자들은 대부분 통증이 심해 참기 어려웠고, 진통제를 먹이거나 진통 주사를 놓았다. 택란도 주사를 놓을 수 있었는데, 어린 나이에 쉬지 않고 바쁜 모습을 보였다. 그런 그녀를 본 환자들은 눈물을 참지 못했다.그들은 궁에서 자신들의 생사를 진정으로 걱정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지금 황후마저 직접 왔으니, 예전의 대립과 적대감은 유치한 웃음거리로 느껴졌다.저녁 무렵, 아이들이 엄마를 찾아왔지만, 이야기를 나눌 여유도 없이 서로 포옹한 뒤 다시 각자 사람들을 구하러 나섰다.백성 중 자발적으로 음식을 만들고 약을 끓이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저택 내 물자는 부족했으나 주변의 도움이 끊이질 않았다. 호명은 사람들을 조직해 식량과 의복을 나누어 주었다. 지금의 약도성엔 인간의 이기심이 한순간에 사라진 듯했다.황후가 직접 약도성에 온 덕분에 서북 지역의 신하들도 직접 의원과 물자를 이끌고 약도성에 와서 돕기 시작했다.약도성은 전례 없는 관심을 받았고, 이는 약도성 백성들이 다섯 도시 중 가장 빠르게 조정을 인정하게 된 이유가 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도 이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지 않았고, 사람들을 구하고 재난 이전의 상태로 빠르게 회복하는 데만 집중했다.재난이 발생한 지 반달이 지나면서 발견된 것은 모두 희생자뿐이었다. 인원을 파악한 후 한곳에 모아 장례를 치렀다.이번 지진으로 약도성은 5만여 명의 백성이 목숨을 잃었다. 이 숫자는 매우 끔찍했지만, 택란의 사전
북당의 황후가 의원을 이끌고 직접 약도성으로 향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많은 이들이 믿지 않았다. 약도성의 백성들조차 믿을 수 없었고, 감히 믿을 엄두도 없었다.우문택란이 이미 약도성에 왔지만, 고작 여덟 살짜리 아이에 불과했다. 다들 그저 그녀가 약도성에 놀러 왔고 수천 명의 병사를 거느리고 왔다고 생각했다. 이후 어린아이답지 않은 그녀의 비범한 능력이 증명되었다. 그녀는 약도성의 성주로서 약도성에 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그러나 이번 지진으로 약도성은 초토화되었고, 재건하려면 조정이 막대한 인력과 자원을 투입해야 한다. 북당의 조정이 약도성을 방치하고 자연적으로 멸망하도록 내버려두어도 어쩔 수 없었다. 약도성 백성들은 줄곧 조정을 적대시하였기 때문에, 조정이 이들을 구할 이유가 없었다.그런데 황후가 직접 약도성으로 향한다는 것은 아무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약도성은 조정이 이렇게까지 신경 쓸 만한 가치가 있다고 보지 않았다.지진 발생 열흘째 되던 날, 원경릉 황후가 이끄는 의원들이 약도성에 도착했다. 그들은 밤낮없이 말을 갈아타며 전력으로 달려왔다. 약도성의 백성들은 이 소식을 듣고 흥분하며 황후께서 약도성에 오신다고 얘기를 전했다.사람들의 생각은 한순간에 뒤바뀌었다. 지진 이전까지만 해도 조정을 적대시하고 북당을 적국으로 여겼던 약도성 백성들이, 이제는 원경릉을 환영하며 열광적으로 맞이했다. 이는 택란이 지진을 미리 알아차린 것과 구조 활동 덕분이었다.원경릉은 백성들의 뜨거운 환영을 예상하지 못했다. 말을 타고 앞을 바라보니 사람들이 계속 모여들고 있었고, 그녀의 눈시울이 촉촉해졌다.“어머니!”군중 속에서 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원경릉은 단번에 딸을 찾아내고 말에서 내려 달려갔다. 택란은 엄마 품에 안기자마자 눈물을 참지 못하고 터뜨렸다."어머니, 너무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너무 많아요!"택란이 흐느끼며 말했다.원경릉은 딸이 이렇게 슬프게 우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그녀의 가슴이 미어지듯 아팠다. 원경릉은 딸을 품에 꼭 안
택란은 어릴 적부터 화염을 다루는 능력을 갖추고 있었기에, 감정을 표정에 드러내지 않았다. 겉으로는 담담해 보였지만, 그녀는 내면의 감정을 철저히 억눌러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화염을 제어하지 못할 위험이 있었다. 스승님을 따른 후, 스승이 계속해서 그녀에게 약점이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감정의 틈새가 생기면 많은 것을 통제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그래서 그녀는 항상 냉정한 태도를 유지하며, 모든 일을 담담히 대하려고 노력했다. 자신의 진심 어린 감정을 흔들지 않으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많은 이들의 갑작스러운 죽음 앞에서 그녀도 평정심을 유지할 수 없었다.꼬마 봉황이 날개를 펼쳐 그녀를 품에 안고 위로해 주었다.그들은 수년간 서로를 지지하며 함께 성장해 왔고, 서로를 위로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잠시 후, 택란은 다시 구조 현장으로 나갔고, 여전히 평온하고 흔들림 없는 얼굴로 사람들 앞에 섰다.위왕과 안왕은 어린 조카의 침착함에 깜짝 놀랐다. 겨우 여덟 살짜리 아이가 어떻게 이런 모습을 보일 수 있단 말인가? 아이의 천성은 어디로 간 것인가?그들은 택란이 애초에 아이로서의 천성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 태어난 후, 조금이라도 세상을 이해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그녀는 빠르게 세상을 이해하며, 지혜롭고 노련한 어른처럼 모든 것을 맞서야 했다.사실 그녀는 아버지와 함께 있는 시간을 가장 좋아했다. 아버지는 지금까지도 그녀를 한두 살짜리 어린아이처럼 사랑하고 아껴주었다. 그에게는 아무런 기대나 요구가 없었으며, 능력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어머니처럼 그녀의 모든 행동을 걱정하고 감시하지 않았다.아버지 앞에서 그녀는 가면을 쓸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약도성의 일이 안정된 후, 그녀는 아버지와 시간을 보내기 위해 돌아갈 계획이었다. 이번 약도성 방문은 그녀에게 있어 단순한 놀이가 아닌 실습이었다. 이곳은 그녀의 의지와 감정을 단련할 수 있는 장소였고, 실제로 그녀는 이곳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경험했다.구조 작업은 계속되었고, 지진이 발
한 마을 주민이 눈물을 닦으며 원망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지원 같은 건 절대 없을 것이오. 조정은 우리를 모조리 죽이길 바라오. 우리가 죽어야 조정은, 이 약도성을 완전히 삼킬 수 있소. 아무도 우리를 구하러 오지 않소.”택란은 화가 나서 말했다.“무슨 헛소리를 하는 것인가? 내가 여기에 왔잖냐! 빨리 계속 파시게!”주민이 그녀를 힐끔 보며 물었다.“웬 꼬마가, 넌 누구냐?”택란을 본 사람은 많지 않았다. 게다가 어둠 속이라 그녀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어린아이가 여기 있는 걸 보고 다들 의아해했다.“약도성의 성주, 우문택란이다!”그녀는 단호하게 말한 뒤, 산사태가 난 지역을 향해 다시 걸어갔다. 작은 몸집이 시선에서 멀어질수록 더욱 작아 보였다.황실의 공주라는 말에 사람들은 모두 놀라 얼어붙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단 말인가? 공주가 이런 곳에 직접 올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공주는 저택 안에서 잘 보호받고 있어야 할 존재다.그녀는 알 수 없는 힘을 사용해 접근한 곳의 흙을 한 겹씩 옮겨내고 있었고, 그 과정에서 울부짖는 소리와 구조 요청이 들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그녀를 따라가 급히 구조 작업에 참여했다.약도성의 지진은 강북부에서도 뚜렷하게 느껴졌다. 게다가 낡은 집도 무너졌지만, 심각한 피해는 없었다. 약도성에 지진이 발생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위왕과 안왕은 신속히 구조 병사를 파견했다. 그들은 택란이 약도성에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 그들 여태껏 택란이 스승과 함께 떠났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그녀의 네 오빠들은 바로 병사를 데리고 약도성으로 향했다. 지진 발생 12 시진 후 약도성에는 8천 명 이상의 병사가 합류했다.약도성의 백성은 조정이 지원군을 보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들은 조정이 약도성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든 관심이 없을 거라 생각했다.과거에도 가뭄, 메뚜기 떼, 산사태 등의 재난이 일어났지만, 북막조정은 몇 포대의 쌀만 보내며 형식적인 구조를 했을 뿐이다.약도성
지진이 발생하기 전, 호명과 주 아가씨는 약도성 중심부에서 백성들을 대피시키고 있었다.새벽녘은 사람들이 가장 피곤할 시간이다. 억지로 잠에서 깨어난 백성들은 분노했다. 그중 한 집안은 도축업을 하는 홀아비가 어린 아들과 함께 살고 있었다. 새벽 무렵에야 돼지를 잡고 고기를 나눠주고 돌아와 잠자리에 든 참이었다. 그런데 또다시 잠에서 깨어난 데다 아이까지 깨우니, 그는 화를 참지 못하고 욕설을 퍼부었다.옆집 사람은 칼을 들고 나가 저들을 쫓아내면 다시 잘 수 있다고 부추겼다. 남자는 화가 머리끝까지 나 있던 상황이라 아들을 방으로 데려다 놓고, 즉시 칼을 들고 나가 주 아가씨와 맞섰다.그가 칼을 휘두르며 집안 식구들과 함께 밖으로 나온 그 순간, 지진이 발생했다. 그들은 자기 집이 순식간에 무너지는 것을 똑똑히 목격했다. 먼지가 자욱했고, 곁에서 날카로운 비명이 들렸다. 옆집 역시 무너졌고, 그 안에 갇힌 사람들이 집 처마 아래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 깔려 있었다.“아들! 아들아!”홀아비는 그제야 안으로 데려다 놓았던 아들을 떠올라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집은 이미 완전히 무너졌다. 겨우 세 살밖에 안 되는 아들은, 살아있을 가능성이 희박했다.그는 미친 듯이 벽돌과 흙더미를 파헤치기 시작했다. 주 아가씨와 호명도 서둘러 도왔다.지진은 단 몇 초 만에 일어났다. 이미 수많은 사람이 집으로 돌아갔고, 그 결과 무너진 집에 깔린 백성들이 매우 많았다. 약도성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사방에서 울부짖음과 비명이 들려왔다. 평소 조정과 맞서던 이들은 너무나 나약하고 무력해 보였다. 그들의 처절한 울음소리는 듣는 이의 마음을 찢어지게 했다.홀아비의 아들을 구하기 위해 다들 함께 벽돌을 치우고 흙을 파내기 시작했다. 도구가 없어서 맨손으로 작업해야 했다. 주 아가씨의 손은 금세 피투성이가 되었지만, 그녀는 멈추지 않고 계속 흙벽을 밀어내고 벽돌을 옮겼다.반 시진 후, 주 아가씨가 마침내 아이를 안고 왔다. 아이는 다리를 크게 다쳐 엉엉 울고 있었다. 홀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