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십여 명 중 살아서 도망간 사람은 단 세 사람뿐이었다. 나머지는 모두 초왕부에서 목숨을 잃어 버렸다. 그리고 도망간 그 세 사람도 팔과 다리가 몹시 다친 상태였다. 원경릉이 또 언제 이런 참혹한 광경을 보았을까? 순간 소빈을 처형한 공포감이 다시 또 마음속으로 밀려드는 것 같았고 백만 냥의 황금 앞에서 사람의 목숨은 정말 천하디 천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탕양은 사람들에게 시체를 치우라고 명을 내렸고 시체는 치워졌다. 몇 바가지가 되는 물이 정원의 바닥을 씻어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지난날의 깨끗함을 회복해 한점의 혈흔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나 공기 속에는 여전히 지울 수 없는 피비린내가 진동했다.원경릉은 이 아이를 임신한 후 아무런 반응도 없었지만 지금은 처음으로 토하고 싶었다.그 사람들은 바닥을 씻으며 혀를 끌끌 찼다."백만 냥 황금을 주면 그게 또 무슨 소용인가? 이리도 많이 목숨을 잃었는데 그게 정녕 무슨 가치인가 말이다!”원경릉은 만두의 말을 들었다."백만냥 황금이 무슨 매력이 있겠사옵니까? 불로장생이야말로 추구할 만하지요."원경릉은 그 말을 듣고 갑자기 고개를 홱 돌려 그를 쳐다보았다."방금 뭐라했느냐?"그러자 만두가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책에서 본 바에 의하면 예나 지금이나 많은 사람들이 불로장생을 추구한다고 하옵니다."만두가 걸어가 그녀의 허리를 안으며 다시 말을 이어 나갔다. "어머니, 나와 동생들이 자가 치유 기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아시옵니까? 소자들의 세포는 일반인들과 달라 신속하게 신체의 결함을 고칠 수 있사옵니다. 비록 자랄 수는 있지만 쉽게 노화되지 않사옵니다."만두가 세포라는 두 글자를 말하는 것을 듣고 원경릉은 마음속으로 조금 긴장했지만 그가 여러 번 왕래하며 그녀와 주진을 위해 편지를 전하는 것을 생각하니 어쨌든 조금 알 것이다."자가 치유?"그녀는 경악하며 그를 바라보았다.만두는 눈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어머니는 역시나 몰랐군요."원경
모두들 다가가서 그의 손가락을 보았는데, 손가락의 붉은 점은 역시나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작은 상처에는 자그마하게 흰색 껍질이 남아있었고 원경릉이 손을 뻗어 뜯어내자 손가락에는 옅은 분홍색이 조금 남아있었다. 복원 능력이 만두보다 못한 것이 확실했다.찰떡도 있는 것을 보고 경단도 시험해 보았는데 그도 찰떡과 별로 차이가 없었고 마지막에는 손가락에 옅은 자국만이 남았다.차 한 잔을 더 기다리는 동안 그 붉은 자국은 사라져버렸고 완전히 회복된 상태가 되었다.네 사람의 여덟 눈동자는 나란히 쌍둥이를 향해 보았다.이번에는 원경릉이 가위를 들고 두 사람을 향해 걸어갔다.두 검지를 한곳에 모아 가위로 그었는데 선혈이 아직 흘러나오기도 전에 상처는 이미 완쾌되었다! 마치 괴물과도 같았고 심지어 그 어떤 괴물보다 더 빠른 것 같았다. 떡들은 갑자기 서로 얼굴을 마주 보았다. 왜 동생들이 더 대단한 거지? 특히 경단과 찰떡이 유난히 내키지 않아 했다. 형보다 못한 데다 동생보다도 못하다니.쌍둥이는 아주 태연자약했고 마치 스스로 치유하는 것이 소소하기 그지없는 능력인 것 같았다.아니, 어찌 보면 능력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당연한 것이라 생각할지도 모른다.원경릉은 한참을 멍하니 서있다 가위를 들고 자신의 손바닥을 바라보았다.그리고 독한 마음을 품고 눈을 감아 가위로 손바닥을 스쳐 지났다. 날카로운 아픔이 느껴졌고 그녀는 눈을 떠 피가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한 방울, 두 방울, 세 방울... 어머나!"지혈, 어서 지혈을 해야 한다!"만두가 먼저 반응하자 다섯 아이들은 갑자기 바삐 찾으러 돌아다니기 시작했다.즉 아이들은 모두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고 그저 빠르거나 늦은 차이다. 그리고 그녀도 있기는 하지만... 그저 보통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상처가 며칠 동안 아파야 하면 며칠을 아파하고 다른 사람보다 조금도 우월하지 않다."왜 이런 것이더냐?"원경릉은 족발처럼 묶인 자신의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누구도 대답을 할 수 없는
그녀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말했다."그렇게 말할 수는 없다. 우리가 알 수 없는 일에 대해 경외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뿐이다."그녀는 아이들을 보며 진지하게 말했다."지금 보면 너희들은 모두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고, 심지어는 큰 능력을 가진 사람이지만 능력이 클수록 경외심을 가져 한다고 알려주고 싶어서 그렇단다. 모든 것에 대해서도 그렇고 백성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경외. 다섯 아이들은 이 두 글자를 곱씹으며 잇따라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사옵니다!"원경릉은 배를 어루만지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비록 아직 태어나진 않아 복덩이인지 여섯째 남동생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엄마는 너가 언젠가 알기를 바란다."뱃속에서 아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것은 처음으로 비교적 강한 태동이 생긴 것이었고 원경릉은 뱃속의 아이가 두 손으로 뱃가죽을 받치고 그녀의 손과 닿는 것과도 같았다.자객이 집에 침입한 일에 대해 원경릉은 탕양더러 우문호에게 알리지 말라고 했다. 그가 조급하게 돌아오다 길에서 다시 자객을 만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저녁에 누웠을 때, 그녀는 몸을 뒤척이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 머릿속에는 줄곧 아이들이 자가 치유를 하던 일이 생각났다. 이것은 반드시 무언가가 변이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신속하게 피를 멎으려면 우선 혈액응고인자가 강해진 후 신속하게 스스로 회복이 된다. 이전에 떡들은 모두 이런 능력이 없었는데 왜 갑자기 변이가 발생한 것일까?아이들의 능력이 모두 그녀가 주사한 약물에서 온 것인 걸까? 이 점은 전에도 분석한 적이 있었다. 그녀는 동물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고 청력이 조금 좋아졌으며 약 상자를 통제할 수 있는 것 외에 다른 능력이 없다. 그러나 아이들은 하늘을 날고 땅에 숨을 수 있으며 의식으로 물건을 옮길 수 있다. 심지어 쌍둥이는 염력으로 원거리의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다.유전도 설마 염력으로 통제할 수 있는 건 아니겠지? 그렇지 않다면 어떤 염력이 그녀도 알아차리지 못하게 유전자를 통제한 건가? 예를 들어 그녀의
뱀독에 대한 인간의 연구에서도 변이가 일어나는 것은 발견되지 않았기에 이 논문은 하나의 큰 물음표인 것이 틀림없었다.그리고 이 의사의 이름은 바로 위에 적혀 있었다. 이름은 임현혜라고 한다. 그리고 이 글을 쓴 사람은 이군월이었고 국경 없는 의사이다.임현혜는 뱀에게 물린 후 다른 공간으로 타임슬립을 하였고 이어 큰 능력이 생겼다는 것에 대해 원경릉은 알고 있다. 그러나 그녀의 능력은 도대체 어디에서 얻은 것일까? 진짜 뱀독으로 인한 변이인 건가?그러나 뱀독은 사람을 죽게 할 수는 있지만 한 사람에게만 변이를 일으킬 수는 없다. 적어도 아직까지 이 사례를 제외하고 다른 사례는 발견된 적 없었다. 이 논문을 읽은 사람은 아주 적었고 그저 몇 명뿐이었다. 논문의 타이틀은 한 의사가 뱀에게 물린 후 시공간을 넘나들 수 있다는 것이었고, 이렇게나 전문적인 학술 사이트에서는 그야말로 이상한 존재였기 때문에 아무도 클릭해서 보지 않을 것이다.그리고 논문의 하단에는 다섯 글자의 평론이 하나 있었는데, 내용은 저자더러 소설을 쓰라는 것이었다.그러니 이 논문을 본 사람이라도 황당스러운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것은 그야말로 판타지 소설과도 같은 내용이고 심지어 비교적 촌스러운 판타지였다.깊은 생각에 잠겨 있다 어느샌가 그녀는 깨어났고 얼굴에 부드러운 손길이 느껴졌다. 눈을 떠보니 다섯째의 피곤하고 그윽한 눈동자가 보였다."왜 돌아온 것이냐?"그녀는 마치 아직도 꿈속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다섯째가 있으니 반드시 현실일 것이다."초왕부에 자객이 왔다는 것을 귀영위가 순찰하고 돌아왔을 때 알려줘서 그제야 알았소. 미안하도다. 내가 곁에 없어서."우문호의 눈빛에는 죄책감이 가득해 보였다. 그녀는 두 손으로 그의 목을 둘러안고 가볍게 고개를 들어 그의 입술에 뽀뽀를 했다."그 자객들은 자객이라고 할 수 없다. 그저 목숨을 바치러 온 것 같았다."우문호가 웃으며 말했다."탕대인에게서 말을 들었다. 작은 짐승들이 그렇게 큰 능력을 가지고 십
다음날 일어나서 우문호는 원경릉을 도와 상처를 소독했다. 그녀가 과정을 말하는 것을 듣고 그는 참지 못하고 고개를 가로저으며 비웃었다. "어떻게 아이들과 비교할 수 있느냐? 타고난 것도 아니고! 떡들은 예전에 그런 능력이 없었어. 그들이 설랑과 놀다 무릎에 멍이 들어 혼자 숨어서 약을 바르던 거 기억하느냐? 그때도 빠르게 회복되지는 않았다.""타고난 능력이라 해도 나한테는 없다. 봐봐, 만두네는 날 수도 있지 않느냐!""나한테서 이어받았을 지도 모른다. 나도 날 수는 있다."원경릉은 그를 흘겨보았다."당신은 경공이지 않느냐. 그건 당신이 스스로 연습해낸 능력이지. 아니면 한 번 만두랑 겨루어 보거라. 누가 더 빨리 날 수 있는지.""쉽게 아들이랑 능력을 비겨서는 안된다. 우리는 비교할 수도 없기에 어쩔 수 없이 인정을 해야 한다. 우리는 가끔 다바오만도 못한다."우문호가 웃으며 말을 했고, 말을 마치자마자 마음 아픈 듯 그녀의 손바닥을 향해 호호 불며 물었다."아직도 아프느냐?""별로 안 아프오."원경릉은 그의 말이 조금 사람의 마음을 다치게 한다고 느꼈다. 비록 부모로서 모두 자신의 아이가 능력이 있기를 바라지만, 그래도 가장 좋기는 스스로 연습하여 얻은 능력이기를 바랬다. 지금처럼 아무런 이유도 없이 능력을 얻었으니, 잘 통제를 하기만 하면 문제는 없지만 가자우 무서운 것은 잘못된 길로 들어서 사람과 자신을 해치는 것이다.이것은 쓸데없는 걱정이 아니다. 지금 아이가 아직 어리니 관리하기 쉽지만 사춘기로 들어서면 그때의 아이는 고슴도치와도 같이 자신의 주장이 있어 한마디 해서도 안 된다.그녀는 정말 먼 미래까지 생각한 것이였다. "앞으로 바보 같은 짓은 절대 하지 말거라!"우문호는 웃으며 그녀의 볼에 뽀뽀를 했고 그녀의 얼굴을 들고는 말했다."원 선생, 요즘 안색이 많이 좋아진 것 같소. 생기가 아주 가득하군.""그러느냐?"원경릉 스스로는 안색이 좋아졌다는 것을 발견하지 못했는데 그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고 동거울 앞으로 비추
그래서 그가 왔다는 것을 아무도 모른다. 그는 경성에 도착한 후 곧장 성을 지키는 병사에게 물었다."초왕부는 어디에 있사옵니까?"병사는 그를 훑어보았다. 거친 천으로 만들어진 옷을 입고, 바짓가랑이를 걷어 올려 발목을 드러냈다. 검은색 발막신에는 먼지가 많이 묻어 있어 오는 길이 험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신의 뒤쪽은 마모가 심해 뒤꿈치가 거의 땅에 닿을 지경이었다. 그는 보따리 하나를 메고 두 손을 소매 주머니에 감싸 쥐었고 등은 약간 굽어 있었다. 희끗희끗한 머리카락은 아주 더러워 털기만 해도 먼지가 날아나올 것 같았다.그의 얼굴도 아주 더러웠고 먼지 때문인지, 원래 이렇게 까무잡잡한 것인지 알 수 없을 정도였다. 눈가에는 세월의 흔적이 선명하게 보였고 성을 지키는 병사를 아첨과 구차함이 반씩 담긴 모습으로 바라보았다."당신은 무슨 사람입니까? 초왕부에 무엇을 하러 가는 것이옵니까?"성을 지키는 병사는 경계심을 품었다. 경조부의 제왕은 무릇 성에 들어가 태자를 찾는 사람은 모두 조사해야 한다고 명을 내렸다. 비록 이 늙은이는 위협적이지 않아 보이지만 그래도 물어야 할 것은 물어봐야 한다.그러자 늙은이는 방긋 웃으며 말했다."저는 남변에서 온 손님이옵니다. 태자의 머리가 백만 냥 황금을 받을 가치가 있다고 들어 돈을 바꾸려고 특별히 태자의 머리를 가지러 왔사옵니다. 저에게 초왕부가 어딘지 알려주신다면 제가 현상금을 받은 후 병사들께 조금 나누어 술을 드시게 하겠사옵니다."이 말이 나오자 성문의 병사들은 모두 경계를 하며 칼을 휙 뽑아 일제히 남변객을 향해 겨누었다.남변객은 이 모습을 보고 조금 경악하며 고개를 저었고 다소 실망한 듯 말했다."보아하니 말을 하지 않으려나 봅니다."병사들은 칼을 들고 그를 향해 재빨리 베었다. 틀림없이 이 늙은이를 다치게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칼을 베고 난니 눈앞은 텅 비어있었다. 남변객은 어디에 있는 거지? 모두들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다시는 그의 종적을 찾을 수 없었고 마치 눈앞에서 단
탕양이 빠른 걸음으로 걸어나가자 대문 밖은 텅 비어있었고 바람이 거리를 휩쓸고 지나는 소리만 들려왔으며 낙엽 더미를 어지럽혔다.탕양은 마음속으로 이상하다고 느꼈기에 매우 의혹스러웠다. 대낮에 귀신이 곡할 노릇이였다. 그는 남변객 쪽으로는 생각하지 않았다. 남변객이 신비한 자객인 만큼 온다 해도 반드시 밤이 되어서야 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대놓고 문을 두드리며 찾아와 물을 한 잔 달라고 하는 것은 정말 천하의 사람들의 등골을 오싹하게 만드는 자객의 행동이라 할 수 없었다.그는 문지기에게 문을 닫으라 하고 몸을 돌려 들어갔다. 대청의 돌계단에 발을 들이자마자 안에 앉아 있는 그 사람을 보고 갑자기 온몸의 피가 굳고 두피가 찌릿해오는 것을 느꼈다!더욱 그를 소름 끼치게 하는 것은 태자비도 대청에 앉아 미소를 지으며 남변객과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이였다. 탕양은 즉시 몸을 돌려 하인에게 분부했다."어서 이리댁으로 가서 태자에게 남변객이 초왕부에 온 것 같다고 전하거라!"하인은 그 말을 듣고 크게 놀라며 바삐 몸을 돌려 달려갔다.탕양은 사람을 시켜 설랑과 호랑이를 데리고 나오라고 분부했고 그 후 마음을 가라앉히고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돌계단을 밟고 들어갔다."아이고, 어르신. 이미 들어오셨군요? 왜 안 보이시나 했사옵니다."탕양이 공수를 하며 말했다.남변객은 탕양을 보며 죄책감이 서린 표정으로 말했다."제가 목이 너무 말라서 들어와 물을 한 잔 얻어 마셨습니다. 태자비께서 참으로 마음씨가 좋으십니다. 갈증에는 얼음물 한 잔을 마시는 것이 가장 좋다고 하셨습니다. 태자의 저택은 역시나 좋네요, 얼음 물을 마시고 싶으면 얼음 물이 있으니. 태자비께서는 참 좋으신 분입니다!"원경릉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괜찮사옵니다, 어르신. 먼 길을 오셨으니 소인이 잘 대접해야지요."그녀는 고개를 들어 탕양을 바라보았고 얼굴에는 물어보는 기색이 있었다. 그녀는 남변객의 신분을 아직 모르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탕양은 그녀에게 눈짓을 하며 말했다."태
"탕대인, 그럼 조심하십시오!"원경릉이 말했다."태자비는 걱정하지 마세요. 그의 목표는 제가 아니니 틀림없이 함부로 손을 쓰지는 않을 겁니다!"탕양은 마음을 가다듬고 대청으로 갔다. 마침 기라가 얼음 물을 들고 오자 탕양은 받아 쥐고 그녀에게 말했다."소월각으로 돌아가 태자비를 보살피거라. 태자비께서 조금 불편하시다고 하셨으니.""예!"기라는 태자비가 불편하다는 말을 듣고 얼음 물을 건네주고 바로 몸을 돌려 떠났다.탕양은 얼굴에 예의 바른 미소를 지으며 얼음 물을 들고 들어가 남변객의 옆에 있는 탁자 위에 놓았다."어르신, 물을 드시옵소서!"남변객은 보물을 얻은 것처럼 받아들고 벌컥벌컥 들이 마셨고 통쾌하게 마신 후 천천히 잔을 내려놓으며 매우 기뻐했다."태자비께서는 정말 저를 속이지 않으셨사옵니다. 이 얼음 물은 정말 갈증을 해소하오니 얼음물의 은혜는 제가 꼭 명심하겠사옵니다!"탕양은 자리에 앉아 조심스럽게 그를 바라보았다."어르신은 고향이 어딥니까?"남변객이 공수했다."실례하옵니다. 남쪽에서 왔사옵니다."탕양은 순간 피가 빠르게 굳는 것이 느껴졌고 안색도 조금 변해 있었다. 역시나 그가 맞았다."그래서 귀하께서는 백만 냥의 황금을 위해 오신 건가요?"탕양이 물었다.남변객이 고개를 끄덕였다."예. 이 백만 냥의 황금은 정말 유혹적이옵니다. 소인은 일 년 내내 시골에 살고 있는데, 주변 일대의 마을이 가난하다 보니 돈을 좀 꺼내 돕고 싶사옵니다.""어르신께서는 인자한 마음씨가 있으신데, 오늘날의 태자께서도 현명하신 분인 것을 알고 있습니까?""알고 있지요. 태자의 현명함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 있사옵니다!"남변객이 잔을 들고 쑥스러워하며 말했다."한 잔 더 주실 수 있겠사옵니까? 아니면 한 주전자라도... 만약 얼음 물이 없다면 우물물 한 통을 주셔도 되옵니다. 다만 날은 춥지만 우물물은 따뜻하여 갈증을 해소하지 못하옵니다!"탕양의 안색이 복잡해졌다. 한 통?곧 바로 그는 호명을 불러 분부하였다."얼음창고에 가서 얼
다섯째는 갑자기 마음이 불안해졌다.아이가 혼인을 올리지 않고 곁에 머무는 건 분명 기쁜 일이었고 효심이 있는 일이었지만 평생 결혼하지 않는다면 얼마나 외로울지 상상도 가지 않았다. 만약 자기와 원경릉이 저세상으로 떠난다면, 그녀가 혼자 어떻게 지낼 수 있을까 싶었다.그렇다고 해서 혼사를 허락하자니, 세상에 과연 걸맞은 사내가 있을지 걱정되었다.택란을 그녀보다 못 한 사내에게 보내는 건 그녀에게 너무 큰 희생이다.다섯째가 갈등하는 것 같자 원경릉이 웃으며 그를 다독였다.“택란은 이제 여덟 살이네. 너무 앞서 생각하지 마오.”다섯째가 그녀를 흘깃 쳐다보며 말했다.“자네는 모르네. 시간이 정말 순식간에 흘러가네. 벌써 여덟 살이니, 7년만 지나면 성인이 되오.”그는 시간이 조금만 천천히 흘렀으면 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두는 게 좋소. 너무 멀리 내다봐도 소용없네.”원경릉은 그의 손을 잡고 살며시 깍지를 꼈다.“아이도 운명과 행복을 찾을 수 있을 것이오. 만약 언젠가 자네만큼 훌륭한 남자를 만난다면, 그와 혼사를 해도 나쁠 게 없지 않겠소?”“그런 남자는 있을 리 없소!”우문호는 세상에 둘도 없는 사람이었다.하지만 이런 칭찬해도 우문호는 여전히 복잡해 보였기에, 원경릉은 자신이 그를 걱정하게 만든 것 같아 후회했다. 하지만 자신이 말하지 않아도 그가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 리 없었다.택란이 태어난 날부터 우문호에게는 새로운 적이 생겼다. 바로 택란과 혼인할 상대였다.그 적이 누구인지, 어디에 있는지 몰랐지만, 그는 여전히 미워하고 있었다.더구나 금나라의 어린 황제가 혼사를 직접 언급했으니, 이제 그 적은 실체가 생겼고, 이에 따라 그는 한동안 신경을 곤두세우게 되었다.그 후 며칠간 택란은 매우 순진하고 착하게 행동했다. 아버지가 시간이 날 때마다 곁에 머물며 대화를 나누고, 놀고, 책을 읽고, 글씨를 쓰며 시간을 보냈다.어린 나이임에도 이미 아부하는 법을 터득해, 다섯째의 마음을 부드럽게 만들어 더 이상 화낼 수 없게 했다.다
”이제 화가 풀린 것이오?”원경릉이 웃으며 물었다.“화 풀렸네. 하지만 금나라의 어린 황제는 조심해야 하오. 어린 자식이, 정말 너무하오!”우문호는 선물을 하나 열었다. 안에는 알록달록한 도자기로 만든 정교한 인형이 있었는데, 머리카락까지 생생하게 표현되어 있었다. 그는 미소를 멈출 수 없었다.“이 도자기 인형, 정말 우리 딸을 닮았구나. 예쁘오!”“내가 산 것이오!”원경릉이 질투라도 난듯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자네가 산 것이니 더 좋소. 아주 좋아!”우문호는 선물을 하나씩 열어보며 웃음을 멈출 수 없었다. 몇 개를 연 후에야 그는 약도성의 상황을 묻기 시작했다.원경릉은 자리에 앉아 약도성에서 있었던 상황을 하나하나 설명했다. 특히 택란이 약도성에서 보여준 대처 방법에 대해 상세히 말했다.그러자 우문호가 매우 놀라며 말했다.“택란이 지진을 예측하고 백성들을 대피시켰다니. 이건 정말 대단한 일이오. 정말 대단하네. 원 선생, 난 택란이 약도성에서 놀기만 했을 줄 알았네. 몰래 이런 큰일을 해내다니.”“택란과 경단은 모두 자네를 위해 무언가를 하고 싶어 하오. 자네가 걱정하지 않도록 말이네. 그래서 자네한테 말하지 않았던 거고. 이게 택란이 자네를 더 사랑한다는 이유요. 자네를 평생 아끼며 짐을 덜어주고 싶어 하오.”우문호는 그녀의 손을 놓고 그녀를 멍하니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원 선생, 갑자기 눈물이 날 것 같소.”원경릉은 그의 팔을 감싸 안으며 웃으며 말했다.“그래, 우시오. 우리 큰 아기 울어도 괜찮네!”우문호는 답답한 표정으로 말했다.“자네가 날 ‘큰 아기’라고 부르니 눈물이 갑자기 멈추네요.”“그럼 울지 말고 어서 앉으시오. 약도성 백성들이 택란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말해주겠소.”원경릉이 그의 팔을 잡아 의자에 앉히고는, 약도성에서 한 달 동안 있었던 일들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우문호는 그녀의 이야기에 몰입하며 감동하였다. 특히 약도성 백성들이 택란을 존경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그는 믿기 어려워했
우문호는 이 말을 듣고 얼굴빛이 확 어두워지며 깜짝 놀랐다.“청혼? 누가 청혼을 한 것이오? 미친 것이오? 겨우 여덟 살인데! 대체 어떤 정신 나간 사람이 이런 짓을……”그는 너무 충격을 받아 분노가 치밀었다. 겨우 여덟 살인 딸을 누군가 눈독을 들이고, 심지어 청혼까지 했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 그는 그자가 누구인지 알게 되면 반드시 혼쭐을 내겠다고 마음먹었다.원경릉이 그의 손을 잡고 말했다.“이미 택란의 비밀을 다 털어놨으니, 이제 더 이상 나한테 화내면 안 되오.”“말하시오. 용서할 테니 더 말하시오!”우문호는 더 이상 원경릉에게 화를 낼 힘도 없었다. 사실 처음부터 그렇게 심하게 화가 난 것도 아니었고, 복잡한 감정만이 뒤섞여 답답할 뿐이었다.하지만 지금은 그런 감정들도 모두 사라지고, 이 터무니없는 사건이 더 중요해졌다.원경릉은 택란이 금나라에 가서 10만 냥을 얻은 전말을 설명했다. 특히 금나라의 어린 황제가 그녀에게 청혼했다는 이야기도 빠뜨리지 않고 전부 털어놓았다. 단 한 글자도 숨기지 않고 진실만 말했다.우문호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그건 너무 대담하잖소! 금나라에서 10만 냥을 빼앗았다니? 어찌 이야기가 이렇게 익숙한 것이오? 그래, 기화요! 어찌 스승이 이런 짓을 가르친 것이오? 그리고 그 금나라의 어린 황제는 이제 몇 살이오? 듣자 하니 겨우 열 살이라고……”“열셋이오. 금나라의 진국왕이 그의 권력을 누르려, 일부러 열 살이라고 소문낸 것이오.”우문호는 벌떡 일어나 뒷짐을 지고 방을 빙빙 돌며 어쩔줄 몰라했다. “열다섯이라도 안 되네! 금나라가 북당의 경성에서 얼마나 먼지 알고 있소? 아이가 그곳에 시집가면 1년에 한 번도 못 돌아올 것이네. 북당의 진국 공주를 부인으로 삼겠다니? 허망 된 꿈이요! 꿈!”“아이들의 농일 뿐이요. 진지하게 받아들이면 안 되네.”원경릉이 서둘러 말을 덧붙였다.“농담이라도 안 되네. 황위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면서 우리 귀한 딸을 부인으로 삼겠다니? 이런 녀석은 앞
목여 태감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우문호에게 말했다.“폐하, 공주를 너무 꾸짖지 마십시오. 공주께서는 단지 세상을 경험하고 싶어 한 것 뿐입니다. 큰일도 아니지 않습니까? 안왕과 위왕도 그곳에 있었고, 아무 문제도 생기지 않았잖습니까?”우문호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그래. 택란이 자네에게는 과자 한 조각을 주었지만, 나한테는 안 주더군.”택란은 그 말을 듣고 재빨리 과자 한 조각을 가져와 아버지의 입가에 가져다 대며 환심을 사려는 목소리로 말했다.“아버지, 드셔 보세요. 이건 그렇게 달지 않은 생강 과자인데, 정말 맛있습니다!”생강 과자의 향기가 코끝을 스쳤다. 딸의 귀엽고 앙증맞은 얼굴을 보니 어떻게 밀쳐낼 수 있겠는가? 화가 난 상태였지만 결국 한입 물었고 생강과 설탕의 맛이 입안에 퍼졌고, 딸의 사랑스러운 미소를 보니 얼굴에 굳었던 표정이 풀어졌다.“나도 먹고 싶은데.”원경릉이 가볍게 웃으며 그의 옆에 앉아 턱을 괴고 물었다.“다섯째야, 맛있느냐?”우문호는 고개를 돌려 그녀를 무시했다. 그녀가 스스로 만든 규정을 어겼으니, 좋은 표정을 지을 마음이 없었다.원경릉이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택란아, 나한테도 한 조각 줘 보거라!”택란은 다시 과자 한 조각을 가져와 엄마의 입가에 가져다주며 더 큰 죄책감을 느꼈다. 이번엔 자신의 엄마까지 곤란하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원경릉은 과자를 먹고 나서 웃으며 말했다.“정말 맛있구나. 다 먹었으니 나가서 좀 자거라. 돌아오는 길에 제대로 못 잤으니.”“예!”택란은 얌전히 대답하고 나머지 과자를 빨리 먹어 치운 뒤 아버지에게 다가가 그를 한 번 안아주었다.“아바마마, 저 먼저 자러 가겠습니다. 깨고 나면 다리 주물러 드릴게요!”우문호는 더 이상 화를 내지 않고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했다. “그래, 어서 가거라.”택란은 목여 태감의 손을 잡고 방을 나섰다. 그녀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엄마를 한 번 돌아보며 아버지가 너무 오래 화를 내지 않기를 바랐다.원경릉은 문을 닫고 탁자 옆에
기다리고 기다리던 택란이 드디어 경성으로 돌아왔다. 우문호는 소월궁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옆에서 목여 태감이 계속해서 설득했다. 그는 공주가 아직 어리니, 노는 것을 좋아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라 하며, 그저 택란이 다른 어린아이들이 저지를 수 있는 잘못을 한 것뿐이라고 말했다. 목여 태감은 혹시라도 황제가 공주를 꾸짖을까 봐 걱정되어 공주를 감쌌다. 그의 약한 마음은 그런 걸 감당하지 못했다.마침내 택란과 원경릉이 도착했다.우문호는 작은딸이 원경릉의 뒤에 숨어 겁먹은 얼굴로 머리를 살짝 내밀고 자신을 바라보는 모습을 보았다.원경릉이 딸의 손을 꽉 잡고 말했다.“가봐라, 아버지께서 기다리신다.”택란은 고개를 숙이고 아버지 앞으로 다가갔다. 우문호 앞에 서서 조심스럽게 자기 손을 그의 손 위에 올려놓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아바마마, 저 돌아왔습니다.”그러자 우문호는 딸의 손을 잡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뿌리치지도 않았다. 앞에 서 있는 그녀를 보는 눈빛엔 복잡한 감정이 뒤섞여 있었다.“약도성에 얼마나 있었느냐?”택란은 거짓말을 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솔직히 대답했다.“지난번 여름방학 때 집에 돌아온 후 바로 약도성으로 갔어요.”우문호는 큰 충격을 받았다.“모두가 알고 있었으면서, 나만 속였단 말이냐?”택란은 미안한 마음에 아버지를 껴안으며 말했다.“죄송합니다. 앞으로는 안 그러겠습니다!”우문호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원경릉이 다가가 말했다.“아이가 자네 선물을 많이 샀소. 한번 보시게.”“필요 없소!”우문호가 단호하게 말했다. 딸을 뿌리칠 마음은 없지만, 그는 여전히 속았다는 사실에 너무 힘들었다.원경릉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을 텐데, 자신에게 말하지 않았다. 서로 비밀이 없기로 약속했건만, 그 약속이 깨진 것 같아 화가 났다.원경릉은 그의 표정을 보고 더 걱정해야 할 사람이 자기라는 것을 깨달았다.오는 길 내내 택란만 걱정하며 우문호에게 딸을 변호해 주려 했지만, 정작 자신이 그를 속인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
아이들은 저마다 자신이 한 일을 이야기하며 원경릉을 기쁘게 했다.다섯째는 이전에 다섯 개의 성을 위해 적어도 30년이나 50년의 계획이 필요하다고 했었는데, 지금 상황을 보니, 20년이 채 되지 않아 조정에 대한 충성심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더 나아가 국경 방어뿐만 아니라 조정에 세금을 납부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보였다. 아이들이 현대의 경험을 참고하며 지내는 것이 다섯째의 큰 걱정을 해결해 준 것이었다. 약도성은 이번 지진으로 국고의 돈과 주변 주현의 자원을 사용했다. 북당과 약도성의 백성들의 마음이 끈끈히 묶여 있어 불행 중 다행이었다.중증 환자들이 회복된 후, 원경릉은 택란과 함께 경성으로 돌아갔다.출발하기 전에 비둘기를 통해 다섯째에게 소식을 전하며 심리적 준비를 하도록 시간을 주었다. 이렇게 하면 다섯째가 택란을 보았을 때 마음을 가라앉혀 덜 화를 낼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택란은 아버지가 화를 내거나 슬퍼할까 봐 사실 마음속으로 몹시 두려웠다. 아버지가 자신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지 그녀또한 잘 알고 있었다.돌아가던 중 택란은 아버지에게 줄 선물을 사자고 제안했다. 원경릉은 딸의 강한 생존 본능에 웃음을 터뜨렸다. 딸이 아버지를 소중히 여기고 있었으니, 다섯째가 딸을 그렇게 아끼는 것이 헛된 일이 아님을 느꼈다.“너희 아버지께서는 특별한 취미가 없으시고, 그저 술 한잔하는 걸 좋아하시니까 좋은 술 몇 병 사 가는건 어떠냐?”그러자 원경릉이 먼저 제안했다.“좋습니다! 사요! 많이 사서 마차에 싣고 가겠습니다!”택란이 급히 대답하자 원경릉이 웃음을 참지 못했다. 다섯째가 아이들에게 그렇게 자상한데도 아이들이 그를 무서워하는 이유는 무엇일까?물론 이는 두려움이 아니라 존경이고 사랑이지만 말이다.경성에서 우문호는 원경릉의 서신을 받자마자 열어보았다. 편지를 읽는 순간 그는 멍해졌다.“계란이가 약도성에 갔다니? 그게 어떻게 가능한 것이냐? 그렇게 얌전하던 딸아이가 몰래 약도성에 갔을 리가 없어.”더구나, 셋째와 넷째는
약도성의 건물 대부분이 무너져 백성들은 임시로 지은 오두막과 초가집에 머물게 되었는데, 폐허로 변한 도성은 눈에 보이는 곳마다 온통 엉망진창이었다. 원경릉은 마음속 깊이 안타까움을 느꼈다.택란의 뜻으로 중증 환자들은 모두 저택으로 옮겨졌다. 원경릉은 계란이의 결정이 매우 옳다고 생각했다. 중증 환자들은 그녀와 몇몇 의원이 책임지고 돌보았고, 나머지 의원은 경증 치료를 맡았다.택란은 엄마 곁에 머물며 환자를 돌보는 것을 도왔는데, 기본적인 의술을 알고 있어서 소독과 붕대 감는 일을 도왔다. 부상자들은 대부분 통증이 심해 참기 어려웠고, 진통제를 먹이거나 진통 주사를 놓았다. 택란도 주사를 놓을 수 있었는데, 어린 나이에 쉬지 않고 바쁜 모습을 보였다. 그런 그녀를 본 환자들은 눈물을 참지 못했다.그들은 궁에서 자신들의 생사를 진정으로 걱정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지금 황후마저 직접 왔으니, 예전의 대립과 적대감은 유치한 웃음거리로 느껴졌다.저녁 무렵, 아이들이 엄마를 찾아왔지만, 이야기를 나눌 여유도 없이 서로 포옹한 뒤 다시 각자 사람들을 구하러 나섰다.백성 중 자발적으로 음식을 만들고 약을 끓이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저택 내 물자는 부족했으나 주변의 도움이 끊이질 않았다. 호명은 사람들을 조직해 식량과 의복을 나누어 주었다. 지금의 약도성엔 인간의 이기심이 한순간에 사라진 듯했다.황후가 직접 약도성에 온 덕분에 서북 지역의 신하들도 직접 의원과 물자를 이끌고 약도성에 와서 돕기 시작했다.약도성은 전례 없는 관심을 받았고, 이는 약도성 백성들이 다섯 도시 중 가장 빠르게 조정을 인정하게 된 이유가 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도 이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지 않았고, 사람들을 구하고 재난 이전의 상태로 빠르게 회복하는 데만 집중했다.재난이 발생한 지 반달이 지나면서 발견된 것은 모두 희생자뿐이었다. 인원을 파악한 후 한곳에 모아 장례를 치렀다.이번 지진으로 약도성은 5만여 명의 백성이 목숨을 잃었다. 이 숫자는 매우 끔찍했지만, 택란의 사전
북당의 황후가 의원을 이끌고 직접 약도성으로 향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많은 이들이 믿지 않았다. 약도성의 백성들조차 믿을 수 없었고, 감히 믿을 엄두도 없었다.우문택란이 이미 약도성에 왔지만, 고작 여덟 살짜리 아이에 불과했다. 다들 그저 그녀가 약도성에 놀러 왔고 수천 명의 병사를 거느리고 왔다고 생각했다. 이후 어린아이답지 않은 그녀의 비범한 능력이 증명되었다. 그녀는 약도성의 성주로서 약도성에 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그러나 이번 지진으로 약도성은 초토화되었고, 재건하려면 조정이 막대한 인력과 자원을 투입해야 한다. 북당의 조정이 약도성을 방치하고 자연적으로 멸망하도록 내버려두어도 어쩔 수 없었다. 약도성 백성들은 줄곧 조정을 적대시하였기 때문에, 조정이 이들을 구할 이유가 없었다.그런데 황후가 직접 약도성으로 향한다는 것은 아무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약도성은 조정이 이렇게까지 신경 쓸 만한 가치가 있다고 보지 않았다.지진 발생 열흘째 되던 날, 원경릉 황후가 이끄는 의원들이 약도성에 도착했다. 그들은 밤낮없이 말을 갈아타며 전력으로 달려왔다. 약도성의 백성들은 이 소식을 듣고 흥분하며 황후께서 약도성에 오신다고 얘기를 전했다.사람들의 생각은 한순간에 뒤바뀌었다. 지진 이전까지만 해도 조정을 적대시하고 북당을 적국으로 여겼던 약도성 백성들이, 이제는 원경릉을 환영하며 열광적으로 맞이했다. 이는 택란이 지진을 미리 알아차린 것과 구조 활동 덕분이었다.원경릉은 백성들의 뜨거운 환영을 예상하지 못했다. 말을 타고 앞을 바라보니 사람들이 계속 모여들고 있었고, 그녀의 눈시울이 촉촉해졌다.“어머니!”군중 속에서 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원경릉은 단번에 딸을 찾아내고 말에서 내려 달려갔다. 택란은 엄마 품에 안기자마자 눈물을 참지 못하고 터뜨렸다."어머니, 너무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너무 많아요!"택란이 흐느끼며 말했다.원경릉은 딸이 이렇게 슬프게 우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그녀의 가슴이 미어지듯 아팠다. 원경릉은 딸을 품에 꼭 안
택란은 어릴 적부터 화염을 다루는 능력을 갖추고 있었기에, 감정을 표정에 드러내지 않았다. 겉으로는 담담해 보였지만, 그녀는 내면의 감정을 철저히 억눌러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화염을 제어하지 못할 위험이 있었다. 스승님을 따른 후, 스승이 계속해서 그녀에게 약점이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감정의 틈새가 생기면 많은 것을 통제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그래서 그녀는 항상 냉정한 태도를 유지하며, 모든 일을 담담히 대하려고 노력했다. 자신의 진심 어린 감정을 흔들지 않으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많은 이들의 갑작스러운 죽음 앞에서 그녀도 평정심을 유지할 수 없었다.꼬마 봉황이 날개를 펼쳐 그녀를 품에 안고 위로해 주었다.그들은 수년간 서로를 지지하며 함께 성장해 왔고, 서로를 위로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잠시 후, 택란은 다시 구조 현장으로 나갔고, 여전히 평온하고 흔들림 없는 얼굴로 사람들 앞에 섰다.위왕과 안왕은 어린 조카의 침착함에 깜짝 놀랐다. 겨우 여덟 살짜리 아이가 어떻게 이런 모습을 보일 수 있단 말인가? 아이의 천성은 어디로 간 것인가?그들은 택란이 애초에 아이로서의 천성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 태어난 후, 조금이라도 세상을 이해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그녀는 빠르게 세상을 이해하며, 지혜롭고 노련한 어른처럼 모든 것을 맞서야 했다.사실 그녀는 아버지와 함께 있는 시간을 가장 좋아했다. 아버지는 지금까지도 그녀를 한두 살짜리 어린아이처럼 사랑하고 아껴주었다. 그에게는 아무런 기대나 요구가 없었으며, 능력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어머니처럼 그녀의 모든 행동을 걱정하고 감시하지 않았다.아버지 앞에서 그녀는 가면을 쓸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약도성의 일이 안정된 후, 그녀는 아버지와 시간을 보내기 위해 돌아갈 계획이었다. 이번 약도성 방문은 그녀에게 있어 단순한 놀이가 아닌 실습이었다. 이곳은 그녀의 의지와 감정을 단련할 수 있는 장소였고, 실제로 그녀는 이곳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경험했다.구조 작업은 계속되었고, 지진이 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