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단을 주고간 손왕, 우문호 출궁하다손왕이 헤헤 웃으며, “내 생각에 네가 비교적 나을 거 같아, 큰형이 하고 싶어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도 들지만, 내가 큰형을 안 좋아 하잖아 그래서 자연스럽게 널 천거했지.”탕양의 안색도 어두워지며, “손왕 전하, 이렇게 추천하신 것이 초왕 전하께 해가 될까 두렵습니다.”손왕이 당황하며, “왜 초왕한테 해가 되는데? 난 그냥 말 나온 김에 한 거라 정식 천거도 아니고, 아바마마도 내 말을 들으실 것 같지 않고 말이야. 탕양 너 진짜 너무 소심하네, 너 같은 성격도 즐거운 일이 있긴 해?”탕양은 쓴 웃음을 지으며, ‘하여간 나름 정확하게 아는 것도 있으시네요, 황제 폐하가 손왕 전하 말을 안 들으신다는 건 정확히 맞추셨어요. 그리고 언제 심사숙고해서 말씀하신 적이 있긴 한가요?’ 이 손왕 전하께서는 정말 단순 그 자체시다.손왕이 모두의 얼굴빛이 이상하자 뭔가 잘못 말했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자기 입을 한 대 때리더니, “요 멍청한 입이 뭘 또 잘못 말한 거지?”“괜찮아 형.” 우문호는 고개를 흔들며, “틀린 말 없어, 형은 날 높이 평가해 날 천거한 거니 당연히 맞는 얘기야.” 우문호의 눈은 계속 밖을 떠돌고, 원경릉은 아직 안 돌아왔다. 아바마마가 진노하셨는데 원경릉을 어떻게 처리하셨을까?손왕은 간식을 다 먹고 가고, 가기 전에 비분강개 하며 우문호를 위해 범인을 저주하며 욕했다. 게다가 형제 간에 우애를 다할 셈인지 자기의 자금단도 탕양에게 건내 주었다.우문호는 필요 없다고 했지만, 손왕은 직접 우문호의 몸에 던지고는, “이거 맛 없다더라, 난 필요 없어, 다시 말하지만, 난 태자의 자리에 욕심이 전혀 없으니 아무도 날 해치지 않을 거다.”던져 놓더니 그냥 나갔다.탕양은 황급히 무슨 보물인 것처럼 집으며, “손왕 전하는 역시 왕야께 관심을 기울이시는 군요.”우문호는 묵묵히, “나도 알아.”둘째형은 아무것도 묻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마음속으론 태자의 지위를 둔 경쟁이 과열되기 시작했음을 알고 있다
초왕부로 돌아와 목욕하는 원경릉우문호는 눈을 감아도 어찌 된 일인지 마차가 여전히 요동을 친다. 전에 예친왕이 준 자금단으로 일시적으로 기력을 유지할 수 있었지만, 지금 자금단 효과가 사라지고 상처가 위중하다 보니 이 정도의 요동으로도 우문호의 고통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원경릉은 본래 신경 쓰고 싶지 않았지만 우문호의 미간이 찡그려 진 채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지는 것을 보고 악 상자를 꺼내 우문호에게 강력한 진통제를 주사했다.우문호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더니, 진통제를 주사한 후 통증이 줄었는지 겨우 눈을 뜨고 원경릉을 봤다.원경릉은 약 상자를 만지작거리느라 우문호를 보지 않고 있는데 볼에 머리카락 하나가 내려와 눈꼬리를 가렸다.“아바마마께서 널 처벌하지 않으신 게 정말 사실이냐?” 우문호가 쉰 소리로 물었다.원경릉이 약 상자를 닫으며, “아바마마께서 추호의 빈틈도 없이 살피시고 내가 이번 일과 무관함을 아셨으니, 당연히 날 처벌하실 리가 없지.”“누가 한 건데? 희상궁은 또 왜 우리를 따라 출궁하는 거야?”“현비마마도 어서방에 계셨으니, 몸이 좋아지면, 현비마마께 가서 물어봐.” 원경릉은 다시는 우문호 앞에서 주명취에 대해 말해선 안된다는 교훈을 얻었다.초왕부로 돌아가면 그녀는 다시 그 숨막히는 생활을 해야만 한다. 쓸데없는 일에 참견하느니 삼가는 편이 낫다.현비도 그 자리에 있었다는 말에 우문호는 눈살을 찌푸렸다.생모는 몸이 좋지 않아 늘 궁중의 일엔 상관하지 않으셨는데 왜 이번 일엔 끼어드신 걸까?원경릉은 눈을 감고 머리를 창에 기댄 채 서늘한 바람이 밖에서 스며드는 것을 느꼈다. 마음도 가을의 소슬함에 물든 것 같다.우문호는 그녀를 보니, 가을 태양이 그녀의 옆 얼굴에 비치며 부드럽고 따스한 빛이 감도는 반면 반대쪽은 어둡고 차갑게 가라앉아 있다.요 며칠이 원경릉의 부드럽고 아름다운 일면이었다면, 지금은 차갑게 가라앉은 어둠 쪽이다.초왕부에 돌아온 원경릉은 마차에서 내려 희상궁을 데리고 봉의각으로 갔다.녹주와 기상궁이
희상궁과 기상궁, 열이를 만나다저녁식사는 기상궁이 준비한 것으로, 원경릉은 입맛이 없어 탕만 한 모금 마시고 가져 가라고 했다. 기상궁은 원경릉의 마음이 안 좋다고 느꼈지만 이유를 묻지 못하고 녹주에게 상을 내 가라고 분부했다.기상궁이 나가려던 때, 원경릉이 물었다: “기상궁, 열이는 좋아졌어?”기상궁은 원경릉이 입을 여는 것을 듣고 황급히 돌아와: “왕비마마, 신경 써 주시니 감사합니다. 열이는 벌써 괜찮아 졌습니다.”“내일 열이 보러 갈게.” “예, 감사합니다!” 기상궁은 원경릉이 마음이 유쾌하지 못한 와중에도 열이에게 신경을 써 준 것에 순간 감동했다.원경릉은 책을 좀 보고 잠을 청하며, 좋은 꿈을 꾸길 바랬다.마침 이때 희상궁이 들어와 안에서 문을 잠근다.원경릉이 그녀를 보며, “무슨 일 있어?”희상궁이 손을 늘어뜨리고 담담하게: “왕비 마마 직접 말씀해 주시지요, 쇤네를 어찌 처벌 하시겠습니까?”원경릉이 가볍게 웃으며, “처벌 같은 거 안 할 건데.”희상궁은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쇤네 알아들었습니다, 왕비 마마 말씀은 쇤네가 자결하라는 것이군요, 이건 틀림없이 황제 폐하의 뜻이기도 하겠지요.”원경릉은 평상시처럼: “황제 폐하께서 무슨 뜻인지 나는 모르고, 감히 성은을 추측할 수도 없지. 하지만 태상황 폐하께서 나한테 희상궁을 아끼고 잘 대해주라고 하셨어.”희상궁은 놀라서 그녀를 쳐다보며 입술만 달싹이며, “태상황 폐하께서 정말 그렇게 말씀하셨습니까?”“내가 희상궁을 속일 필요 없잖아, 자결을 하면서까지 은원을 없애든지, 잘 살아서 태상황의 성은에 보답할지, 희상궁 자신이 고민해봐. 내가 대신 해줄 순 없어. 돌아가. 나 쉬고 싶어.” 원경릉은 대놓고 나가라고 했다.무거운 발걸음으로 천천히 나가는 희상궁의 한숨 소리가 원경릉 귀에 아직 들린다.희상궁이 원경릉에게 심어준 느낌은 희상궁이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수도 없이 처했고, 말 못할 고민도 한이 없었다는 것이다. 원경릉은 희상궁의 행동을 평가할 마음도 없고, 그
초왕부를 찾은 현비여기가 공평한 사회가 아니고 원경릉의 능력도 한계가 있음에 그녀는 마음이 불편했다.이때 어떤 하인이 달려와 긴급한 일이라도 생긴 듯 하더니, 원경릉이 여기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 왕비가 어째서 하인 숙소에 있을 수 있지?“무슨 일이야?” 기상궁이 물었다.하인은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원경릉에게 예를 갖춘 후: “탕대인께서 상궁께 간식을 좀 준비하라고 했습니다, 궁에서 온 전갈에 따르면 현비마마께서 초왕부로 오신다고 합니다.”“현미마마님이 오신다고?” 기상궁은 곧 힘을 내서, “알았네, 자네는 탕대인에게 가서 내가 적당한 것으로 준비하겠다 이르게.”기상궁은 현비가 시집올 때 친정에서 데려와 우문호가 분봉왕으로 초왕부로 나가 살게 되자 현비가 내려준 상궁이다.옛날 주인이 오신다는 말에 기상궁은 자연 흥이 돋지만, 반대로 원경릉의 마음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운다. 현비는 황궁을 통틀어 원경릉을 제일 싫어하는 사람으로, 이번 출궁으로 아마 우문호가 상처를 입은 사실이 후궁에 알려지겠지? 사실 현비가 이 일을 알고자만 하면 알 방법은 많지만, 그동안 아프다는 핑계로 발톱을 감추고 있었다.원경릉은 봉의각으로 돌아갔다. 현비가 온다는데 명색이 며느리가 화장도 좀 하고 옷도 차려 입어야 한다.이마의 상처는 희상궁이 분을 두껍게 발라 가렸는데도 약간 흔적이 남았다. 마치 도장처럼 상당히 선명하다.원경릉은 예쁘장하게 생겼지만 절세 미녀는 아니라 주명취와 비교하면 천지차이지만, 담백하고 맑은 눈빛과 비굴하지 않지만 굴하지도 않는 정신, 침착함은 원경릉 쪽이 앞선다.희상궁이 원경릉과 구리거울에서 눈이 마주치자 마음속에 말할 수 없는 죄책감이 들었다.원경릉의 눈은 이미 잔잔한 바다와 같다.현비가 왕부에 도착할 때는 이미 오시(午時, 오전 11시~오후 1시)무렵이었다.한낮의 태양이 작렬하고, 바람은 시원하지만 원경릉이 초왕부 입구에서 영접할 때 여전히 햇살이 강해서 현기증이 날 것 같았다.현비의 봉황가마가 초왕부 입구에 멈춰 서고,
후궁을 맞아? 현비와 원경릉의 갈등현비는 근심이 가득한 얼굴로, “네가 도대체 누구의 미움을 샀길래, 이렇게 심하게 당했단 말이냐?”“소자는 미움을 산 일이 없습니다.” 우문호는 달래듯이: “됐습니다. 괜찮아요. 범인은 이미 전부 죽었으니 소자도 위험할 일은 없을 것입니다.”“에미가 바보인 줄 아느냐……” 현비는 고개를 들어 원경릉을 보더니 화가 치밀어 올라, “뭘 멍하니 서 있는 거니? 아랫사람에게 왕야께 드릴 탕을 만들어오라고 분부할 줄도 모르느냐? 넌 이런 식으로 시중을 드는구나?”원경릉이 우문호를 보고, “왕야, 뭐 드시고 싶으세요?”현비는 화를 내며: “뭐든 만들어 오라고 시켜야지, 뭐든 안 좋겠어? 다친 사람한테 뭘 먹어야 하는지 까지 물어봐야 하고, 작은 일 하나도 처리를 못 하는구나, 보아하니 이 왕부의 일은 너 혼자 감당이 안되겠다. 사람을 찾아서 너를 대신해 분담을 시켜야지.”원경릉은 마음 속으로 냉소를 지으며, 측실 들이는 건으로 온 거지? 현비가 고래고래 소리 좀 지른다고 겁 먹을 까봐? 아니다 현비를 너무 높게 평가했네, 현비는 소리도 못 지르지.현비는 꼿꼿하게 앉더니 얼굴색을 단정하게 하고, “에미가 이번에 행차를 한 건 네 상처가 어떤지 보는 것 외에 너랑 상의할 일이 하나 있어서 였다만.”우문호는 현비가 무슨 말을 하려는 지 알고, “다음에 하시지요, 소자 지금 상처도 아직 낫지 않았으니 당분간 말씀 나누기 어렵습니다.”“꼭 지금 얘기 해야 해.” 현비는 강경하게 말했다: “에미가 이미 아바마마께 이 일을 말씀드렸고 아바마마께서도 반대가 없으셨어. 사람을 시켜 주씨 집안 의견만 물어보면 끝이야. 주씨 집안에서만 동의하면 이 일은 성사되는 거지. 게다가 만약 네 아바마마께서 너 대신 언급만 해주시면 주씨 집안도 동의 안 할 수 없는 일, 넌 그저 안심하고 요양하며 상처가 낫는 데만 치중 하려 무나, 혼사는 알아서 할 테니까.”“됐습니다. 그만 말씀하세요.” 우문호는 마음이 복잡했다. 목숨이 걸린 이런 순간에 후궁
우문호에게 측실을 권하는 현비바로 깔깔 웃으며: “이 못난 녀석아, 당초에 네가 왕비와 한사코 혼인하지 않겠다더니, 이젠 왕비 대신 변명을 다 하는구나. 고작 1년 사이에 무슨 감정이라도 생긴 거니? 절대 잊으면 안된다. 왕비와 정후 두사람이 어떻게 너를 함정에 빠뜨렸는지. 게다가 정후 그 사람 정말 못 쓰겠 더구나, 넌 반드시 주씨 집안의 지원을 얻어내야 해, 그래야 다시 도전해 볼 가능성이 생기지.”우문호는 참다 못해 결국, “어마마마, 이 일은 다음에 다시 얘기하시면 안됩니까? 저는 지금 그런 잡다한 일에 신경을 쓸 상태가 아닙니다.”현비는 한숨을 쉬며, “에미는 다 너 좋으라고 그러는 게 아니냐. 그 자리는 네가 다투지 않아도, 사람들이 널 가만히 둘 것 같으냐, 왜 노력조차 하지 않는 것이냐? 그때 만약 주씨 집안이 가로채지 않았으면 네 어미는 황후가 되었고, 너는 적장자인 황자였어. 쟁취할 필요도 없지 않았느냐?”우문호는 아예 눈을 감고, 싸워? 처음부터 지금까지 우문호는 싸워야 한다는 생각을 못했다.아바마마께서는 아직 젊으시고, 태자를 세운다 해도 이 태자의 자리가 또 얼마동안 이나 평온할 수 있을까? 우문호가 처음 전장에 나갈 때부터 마음속으로 북당을 위해 변방을 지키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다.그러나 이런 그의 모습은 세상에 진취적으로 비쳤고 모든 사람들은 우문호가 태자의 지위를 노린다고 믿었다.현비는 우문호의 마음이 콩밭에 가 있고, 투지가 하나도 없어 보이니 화를 참지 못하고, “너 지금 네가 어떤 꼴인지 아니? 다시 이렇게 못 쓰게 되면 아바마마께서 조만간 친왕의 봉호까지 거두어 가실지도 모르는데, 너는 네 어미의 한을 풀어 줄 수 없는 것이냐?”우문호는 돌연 눈을 떴는데 눈빛에 분개하는 기색이 느껴지며, “한을 풀어요? 어마마마는 제가 무슨 한을 풀어 주길 바라십니까? 일어서서 태자의 지위를 쟁탈하는 겁니까?”“왜 이렇게 큰 소리를 내고 그래? 옆에서 누가 듣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현비는 일어서서 차갑게 우문호를 보며,
주명취에 농락당하는 정후기상궁은 자기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과자와 떡에 먼지가 묻어 더럽혀 진 것을 보고 일 순간 당황해 있는데, 서일이 나오며: “기상궁 일어나요, 현비마마께서 기상궁한테 화난 게 아니라, 왕야께 화가 나신 거니까.”기상궁은 감히 묻지 못하고 그저 땅에 떨어진 떡과 과자를 주워 들더니 물러갔다.현비는 궁으로 돌아가는 길에 생각하면 생각할 수록 화가 나서 심복을 불러, “아버지께 가서 말을 좀 전하고 오너라. 측실을 들이는 일에 걸림돌이 하나 있다고, 아버지께서 정후를 불러다가 몇 마디 좀 하시라고.” “예!” 심복인 상궁이 명을 받고 갔다.정후는 최근 복장이 터진다. 그날 제왕비가 사람을 시켜 정후에게 제왕부에서 기다리라고 하더니 결국 이틀이나 연달아 갔지만 제왕비는 그를 만나주지 않았다.정후는 사실 다시 가고 싶지 않지만 지금 자신의 상황이 상황인지라, 제왕부 입구에서 하염없이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족히 반 시진을 기다렸을까, 제왕비의 가마가 돌아오는 것이 보였다.마음속의 울화를 가라앉히며 웃음을 띠고 앞으로 나가 예를 취하며, “제왕비를 뵙습니다!”주명취는 가리개를 걷으며 냉랭하게 정후를 흘깃 보더니, “정후 대감이군요?”“예, 예!” 정후는 막상 제왕비를 보자 말이 잘 나오지 않고 함부로 말을 할 수도 없었다.주명취는 평소처럼: “정후 대감은 돌아가시지요. 제왕부는 미천한 곳이라 대감님의 위신을 상하게 할까 두렵습니다. 황제 폐하 앞에서 저에 대해 험담이라도 한 두 마디 하시면 큰일 아닙니까, 가세요.”말을 마치고 가리개를 내렸다. 가마는 안으로 들어가고 정후만 그 자리에 푸대접을 받은 채 있다.정후도 어쨌든 후작 집안의 사람인지라 삼일 연속으로 와서 기다렸는데 밖으로 쫓겨나는 것은 커다란 굴욕이자 수치로 그 자리에서 얼굴이 붉으락 푸르락 하며 나가지도 들어가지도 못하고 엉거주춤해 있다.제왕부 문간방 수위의 조롱하는 눈빛을 느끼고 서야 비로소 씩씩거리며 가려고 했다.“정후 대감!” 뒤에서 부르는 소리가
정후부의 속사정, 원경릉 친정에 가기로 하다주명취가 방금 출궁하기 전에 궁중의 일에 참견하지 말라고 목여태감을 보내 황제가 경고했다. 고모도 한 바탕 호되게 주명취를 꾸짖었는데, 할아버지를 들먹이지 않았으면 고모도 주명취를 쉽게 용서해줄 수 없었을 것이다. 원경릉은 도대체 무슨 수로 전부 정확하게 꿰뚫어 보는 거지? 실지로 주명취의 예상을 빗나간 일이 일어났다.이 사람은 대비하지 앉을 수 없다, 원경릉을 단속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 정후부로, 정후부가 아직도 관직이 필요하다면 원경릉의 꼬리를 집어 올릴 수 있다. 원경릉이 초왕부에서 총애를 받지 못하고, 문호 오빠도 원경릉을 거들떠도 안 보니, 그녀는 친정의 지원에 목을 맬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정후의 말을 주명취는 들어줘야 하고, 협조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단지 주명취의 마음 저 밑에 어둡게 드리운 의혹은, 원경릉이 의술을 안다는 사실이 너무나 예상밖의 일인데다, 그렇게 명철한 생각을 하다니 이전의 단순하고 포악한 행동은 전부 사람들의 눈을 속이려는 계책이었던 걸까? 만약 정후가 단속하지 못하면, 원경릉을 살려 둘 수 없다.정후 쪽 사람이 초왕부에 와서 서신을 전했는데 내용은 노마님의 몸이 좋지 않으시니 원경릉에게 짬을 내서 찾아 뵈라는 것이었다.원경릉은 이 말을 듣고, 머리속으로 정후부의 상황을 열심히 생각해 냈다.정후부의 노마님 노씨(魯氏)는, 현주(황족의 딸에게 주는 봉호)출신으로 젊었을 땐 예리하고 기세가 등등한 인물로 노마님이 집안을 맡았던 시절엔 정후부가 순풍에 돛을 달아, 정후가 병부 시랑 자리에 오른 것도 뇌물을 쓴 덕이었다. 하지만 8년전 노마님이 병으로 자리를 보전하시고, 의원이 몇 번이나 노마님이 버티지 못하실 거라고 했지만 과연 노마님은 강인한 분이라 꿋꿋하게 버티며 한 고비 한 고비 이를 악물고 넘겼다. 지금은 노마님이 집안을 관장하지 않으시고, 몸의 원래 주인인 원경릉의 어머니인 황씨(黄氏)는 주관이 없는 사람이어서, 정후부의 일체 일은 전부 둘째 노마님
손님들이 하나둘씩 떠나자, 경천 황제는 서둘러 궁으로 돌아가 푸른 비단옷으로 갈아입었다.옅은 청색 옷자락에, 소매 끝에는 난초꽃이 수놓아져 있었고, 나머지 부분은 어두운 구름 문양으로 수놓아져 있었다. 이 옷감은 북당에서 온 것이었다."폐하, 꼬마 은인께서 궁문에 도착하셨다고 합니다."삼 태감이 와서 보고했다."좋소."그는 거울을 바라보며 다시 한번 깊은숨을 내쉬었다."택수운천으로 가겠네."택수운천은 그가 즉위한 후, 궁궐 안에 지은 새 궁전으로, 세 층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궁전 옆에는 거월통천각이 있었는데, 이는 량주성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다.거월통천각 안에 있으면 마치 손바닥에 달을 담을 수 있을정도로 웅장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거월통천각에서 멀게는 약도성과 량주가 인접한 산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그녀가 생각날 때면, 늘 거월통천각의 가장 높은 층으로 올라가 풍경을 멀리 바라보곤 했다."진이야, 너는 누군가를 진심으로 좋아해 본 적이 있느냐?"그가 준수한 옷차림으로 난간에 기대어 먼 곳을 바라보며 물었다. 바람이 서서히 불며 청색 옷자락이 휘날리자, 옷자락의 네 끝에 박힌 고급스러운 야명주가 그의 선명하고 잘생긴 얼굴을 비추었다.그때, 저 멀리서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궁 시위를 따라, 아치과 복도를 지나 거월통천각으로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그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젊은 금군 통령 진이가 그의 모습을 보고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그런 적 없습니다.""사모의 마음을 품어보거라. 떨리고 어찌할 바를 모르는 느낌만큼 좋은 것이 없다."그는 그녀를 멍하니 보며 말했다. 천천히 다가오는 탓에 그녀의 얼굴이 자세하게 보이지는 않았지만,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13세 전까지의 그의 인생에는 나라와 백성들 뿐이었지만, 13세 이후 그의 인새은 온통 그녀뿐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지금 그녀가 그의 곁으로 다가왔다!진이는 황제의 시선을 따라, 천천히 다가오는 세 명을 보며
안왕은 보책을 받아 든 순간, 갑자기 무엇인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지만, 정확히 어떤 점이 이상한지 말로 설명할 수 없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모든 일이 다 이상하게 느껴졌다.보책을 펼쳐 안에 적힌 이름을 본 순간 그는 드디어 이상한 점이 무엇인지 알아차리게 되었다.그러고는 고개를 들어 굳어진 표정으로 경천 황제를 바라보았다.경천 황제는 얼굴에 미소를 띠며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었다. “조사를 통해 드디어 그녀의 이름을 알게 되었소. 그녀의 이름은 우문택란이오. 금나라 황후의 이름은 우문택란이네. 난 반드시 그녀를 찾아낼 것이오. 만약 그녀가 황후가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황후의 자리는 그녀를 위해 계속 비워둘 것이네.”위왕은 온몸에 식은땀을 흐르는 탓에 두 손을 급히 움켜잡았다. 방금 황제가 보책을 그의 손에 올리지 않아, 그가 받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지 않았으면, 정말 다섯째에게 죽임을 당할 수도 있었다!안왕은 어두워진 안색으로 자리에서 물러나 이를 악물고 낮은 소리로 위왕에게 말했다.“방금까지도 어린 황제에게 어리석다고 했건만. 이렇게 계책에 능하고 이따위 교묘한 계책으로 우리 형제를 그와 같은 편에 서게 만들다니...!”위왕은 또 한 걸음 물러서며 아무런 표정 없이 말했다.“네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구나. 방금 술을 두 잔 마셔 조금 취한 터라,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구나. 아니, 지금 들고 있는 그건 무엇이냐?”안왕은 단단한 그의 팔을 비틀어 버리고 싶을 정도로 분노했다.하지만 이 상황 속에서 연회는 계속되었고, 사람들의 감정은 점점 고조되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갑자기 누군가가 북당 황제의 작은 공주도 우문택란이라는 말을 꺼냈다.그 말에 다들 그 당시 금나라 황제를 구한 사람이 북당의 작은 공주가 맞는지 추측하기 시작했다.정말 북당 공주가 맞는다면, 금나라 황제도 참 배짱이 큰 것이다. 사실상 북당 황실이 금나라 황제를 구했다고 선언하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만약
경천은 위왕의 말을 듣자, 마치 마음속 큰 돌덩이가 내려간 듯 후련해 보였다. 그는 그러고는 궁인에게 술을 올리게 해 술잔을 여러 차례 돌린 후, 아래를 둘러보며 말했다.“오늘 여러분께 이야기를 하나 들려드리겠소. 이 이야기를 듣고 나면 오늘 정혼연이 어찌 열리게 되었는지 알게 될 것이오.”그러자 모두가 이야기를 들려주겠다는 말에 당황을 금치 못하며 서로의 얼굴을 쳐다봤다. 정혼연이든 혼례든, 이런 자리에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은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이때, 위왕이 안왕의 귀에 대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다섯째에게 서신을 보내야겠다. 금나라에서 실권을 쥐고 있는 자가 황제가 아닐 수도 있다. 진국왕이 아직 살아 있고, 이 황제가 꼭두각시일지도 모른다.”“맞소. 확실히 조금 병신같아 보이네.”안왕도 동의했다.참고로 ‘병신같다’는 표현은 안왕이 조카에게서 배운 단어였다.“이 이야기는 3년 전쯤에 있었던 일이오.”이내 경천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의 목소리에는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힘이 담겨져 있었다.“당시 금나라는 진국왕이 집권하고 있었는데, 그는 나를 대신해 금나라의 군주가 되려 했소. 이 사실은 여러분도 알고 있을 것이오. 그때 난 진국왕과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었소. 진국왕이 왕위를 빼앗으려 나를 죽이려는 음모를 꾸민다고 하기에, 나도 어쩔 수 없이 반격에 나섰는데, 그 과정에 심각한 상처를 입었소. 그때 나를 구해준 이가 바로 란이라는 소녀이오. 만약 그녀가 없었다면 난 이미 죽은 목숨이었을 것이오. 그 당시 나는 란이의 정체도 몰랐고, 그저 약도성 사람이라는 것만 알았을 뿐, 그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소. 상처를 치료하며 그녀와 며칠을 함께 보냈고, 황권을 되찾으면 그녀를 부인으로 맞이하겠다고 약속했네. 하지만 그녀가 나를 구했다는 사실이 진국왕에게 알려졌고, 진국왕이 사람을 보내 그녀의 집에 불을 질렀소. 그리고 그곳에서 시신이 발견되었소.”모두가 진국왕이 불을 질렀다는 말에 멈칫했다.금나라 황제가 이렇게 비극적인 황권
한편, 안왕과 위왕은 이미 명월전에 도착했다. 두 사람은 부하들과 함께 말을 타고 달려왔기에 피곤하지는 않았지만, 몸 전체가 먼지투성이였다.하지만 오자마자, 쉬지도 못하고 바로 궁에 들어가라는 통보를 받았다. 정혼 연회가 예정보다 앞당겨 열리게 되었다고 했다.그들은 의아해하며 금나라가 막무가내라고 투덜거렸다. 처음에는 혼례라더니, 이제는 정혼식이라 하고, 심지어 약속했던 날도 지키지 않고 앞당겼으니 말이다.혼사라는 중대사가 이렇게 어린아이 장난처럼 진행될 수 있단 말인가?하지만 신부가 북당 사람이니, 그들은 신부의 친정과도 마찬가지였기에 금나라의 일정을 따르며, 금나라의 계획을 지지하는 것이 맞았다. 다른 나라 사절들이 함께 있었기에, 그들은 무관의 신분으로도 가능한 한 많은 사람과 친구를 사귀고 주변 무역 문제를 논의했다.이 부분에 대해서는 오래전에 다섯째가 특별히 당부한 적이 있었다. 그는 비공식적인 자리에서 다른 나라의 사신을 만나면 국사를 논하지 않더라도, 상업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라고 말했었다. 장사는 대화로 시작되는 일이니, 이야기를 많이 나누다 보면 결국 성사될 것이라고 말이다. 그들은 비록 처음에 다섯째의 이런 태도가 약간 뻔뻔하다고 느꼈었지만, 지난 10여년간 나라 경제가 눈에 띄게 번영했다는 사실을 차마 부인할 수는 없었다.다섯째의 말처럼 경제를 앞서게 만들어 백성들의 생활 수준을 향상한 덕분에, 돈이 끊임없이 북당으로 흘러 들어오고 있었기 때문이다.그렇게 그들이 다른 나라 신하와 열심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황제가 온다는 소식이 들려왔다.안왕과 위왕은 금나라의 황제에 대해 호기심이 가득했다. 이 젊은 황제는 올해 열여덟도 되지 않는 어린 나이라 들었다. 어린 나이에 유명한 진국왕을 몰락시켰으니, 얼마나 대단한 결단력과 꾀를 가졌을까?내시의 우렁찬 소리와 함께, 밝은 황금빛 용포를 입은 젊은 황제가 시위에게 둘러싸여 등장했다.혼례복이 아닌 용포를 입고 있는 것으로 보아, 역시나 혼례를 올리는 것은 아닌 듯했다
세 사람은 화려하게 차려입었다. 그 중, 택란은 베일을 쓴 채 궁에서 준비한 마차에 올랐다.때마침 불이 하나둘씩 밝혀질 시간이라, 거리는 무척 떠들썩했다. 금나라 수도의 번화함은 약도성이 비교할 수 없는 정도였다. 수도임에도 불구하고 통행금지가 없어, 백성들이 밤늦게까지 활동하고 있었기 때문이다.택란은 마차의 가림막을 살짝 들어 올려 거리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거리에는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 장사에 열중하는 상인들, 주루나 주막으로 손님을 맞이하는 상인들로 북적이고 있었다.이런 활기 넘치는 모습은 그녀의 마음을 따뜻하게 했다.그러고는 순간 어린 황제를 본 지 오래되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3년이나 지났으니, 지금은 얼마나 어떻게 달라졌을지 궁금해졌다. 그가 자신을 알아보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3년 사이에 자신도 많은 변화를 겪었으니 말이다. 키도 훤칠해졌고 이제 얼굴도 아이 같은 모습이 아닌 한층 성숙하고 침착해진 모습을 하고 있었다. 약도성이 지난 몇 년간 겪어온 일들이 많았기에 당연히 성숙해질 수밖에 없었다.한편, 금나라 황궁에서는 이미 정혼 연회의 준비를 마쳤으나, 중요한 두 사람이 아직 도착하지 않아 기다리고 있었다. 그 두 사람은 바로 안왕과 위왕이었다.북당의 두 친왕이 도착해야만 연회를 시작할 수 있었다.한편, 경천 황제는 내내 택란을 만나고 싶어 했다.지난 3년 동안, 그는 그녀와 재회할 순간만을 간절히 기다렸다.3년간 간절히 바랐던 그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에 그는 들떴지만, 첫 만남은 너무도 중요했다.그는 서두르지 않고 차분히 준비된 상태에서 그녀를 만나고 싶었다.그리고 지금 자신의 감정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조차 모르는 상태였다. 그것이 사랑인지 아닌지도 정의할 수 없었다. 그저 그녀가 자신의 눈앞에 생생히 서 있는 모습을 보고 싶을 뿐이었다.그는 사실 가장 힘들었던 시절에 조정을 되찾아 그녀와 혼사를 올리겠다고 다짐했던 적이 있었다.물론 지금 그녀는 아직 어리기에, 혼담을 논하기엔 이르지만
어머니는 아버지처럼 아쉬워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아버지보다 생각이 훨씬 개방적이었고, 두 사람이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가장 큰 행복이라 여겼기에 의식 자체를 그리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그래도 아버지의 아쉬움을 덜어주기 위해 현대에서 한 번, 즉위 후에 또 한 번 의식을 치렀다.주 아가씨는 객사로 돌아오자마자, 객사 일꾼에게 소식을 물었다.그러자 일꾼은 황제가 곧 혼례를 올린다는 말을 듣고는 잠시 멈칫했다.“혼례요? 정혼 아니었습니까?”“정혼? 정혼이라니? 그럼 이미 혼사를 올릴 나이가 되었는데, 어찌 바로 혼례를 하지 않다는 것이냐?”“그건 모르겠습니다. 저희는 정혼한다는 소문만 들었습니다.”“미래의 황후가 북당 사람이 맞느냐?”일꾼이 말했다.“예. 북당 출신의 아가씨라고 합니다. 게다가 황제의 생명의 은인이라고 들었습니다.“택란은 이 말을 듣고 고개를 저으며 경천이 어리석다고 생각했다. 그가 정말 은인의 언니라는 말을 믿다니 말이다.설사 그렇다고 해도 굳이 그녀와 혼례 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혼사를 어찌 장난처럼 다룰 수 있단 말인가?택란은 경천 황제에게 크게 실망했다. 그저 정치적인 판단에서만큼은 어리석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택란은 원래 이틀 정도만 량주를 둘러본 뒤 바로 궁으로 들어가 알현할 생각이었지만, 아직 혼례 날짜가 다가오지 않았으니 며칠 더 머물며 시간을 보냈다. 궁으로 들어가 정체를 드러낼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그리고 그녀가 생명의 은인인 것을 알아차리면, 정혼식을 진행할지 말지 애매해질 것이기에, 택란은 며칠 동안 객사에 머물며 량주의 풍습과 문화를 살펴보는 한편, 참고할 만한 것이 있는지 살펴보기로 했다.그렇게 살펴보던 중, 주 아가씨가 정보를 알아보러 나갔다가 안왕과 위왕이 왔다는 소식을 들었다.며칠 동안 다른 나라 사절들은 계속 장관에 묵고 있었는데, 택란은 여전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고 했다. 그녀는 삼촌들이 왔다는 소식을 듣고 저녁 무렵 장관으로 갔다.그런데 도착하고 나서야 그들이 이미 황
량주는 금나라의 수도가 된 이후 지난 2년간 크게 발전했다. 또한,금나라와 북당이 우호적인 교류를 시작하면서, 북당 변방 도성의 백성들도 장사를 위해 많이 찾아왔다.이전에 택란도 자신의 목숨을 바치기 위해 금나라에 왔었다. 하지만 그때의 량주는 지금처럼 북당 사람들이 많지는 않았다. 그래서 택란은 객사에 머문 뒤 주 아가씨와 냉명여를 데리고 거리로 나가 량주의 풍습과 문화를 살폈다.여기도 어쨌든 금나라의 수도 아닌가!진국왕은 물러나기 전까지 나라를 잘 다스렸고, 특히 발전에 많은 힘을 기울였다. 하지만 야망이 지나친 탓에 늘 약도성을 되찾겠다고 욕심을 부렸다.그리고 동시에 북막을 두려워하기도 했다.경천이 즉위한 후, 광산 자원 개발 외에도, 그는 농경지와 산지를 개간하려고 노력했다. 금나라의 서북부에는 농사에 적합한 땅이 있었지만, 사람이 드물었다. 그래서 그는 북당의 다른 도성을 본받아 사람들을 개간지로 보내고 그들에게 이익을 나누어주었다.나라가 상승세일 때, 그 분위기는 눈에 띄기 마련이다. 백성의 긍정적인 에너지는 숨길 수 없는 법이었다.택란은 경천이 황제로서 매우 적합하다고 느꼈기에, 그가 이끄는 금나라는 분명 빠르게 발전할 것이라 생각했다. 발전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은 정말 좋은 일이기에,그가 광산을 함께 개발하자는 제안에 동의할 가능성이 높았다.택란은 이내 자신감을 얻었다. 궁에 들어가 알현하는 것을 서두르지 않고, 량주 백성들이 북당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기로 했다. 과거, 약도성과 량주의 관계는 다소 안 좋았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금나라가 약도성에 사람을 침투시켜 많은 폭동을 일으켰기에, 약도성 백성들도 그들을 매우 싫어했다.그렇기에 지난 2년간의 교류를 통해, 택란은 그들의 원한이 천천히 사라지기만을 바란 것이었다.이제 북당 쪽은 문제가 없으니, 량주 백성들의 생각을 확인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기에, 택란은 물건을 사면서 점포 주인과 상인들에게 북당 약도성에 대한 생각을 물어보곤 했다.그 중, 다
원경릉은 뒤에서 계산을 하고 있었는데, 그들의 대화를 듣고는 웃음을 터뜨렸다.그러고는 사식이가 정말 좋은 남자를 만난 것 같다는 생각을 다시금 했다. 서일이 비록 평범한 사람이긴 하지만, 그의 마음과 눈에는 오직 사식이만 있었다.그야말로 진실한 남편이다.물건을 산 뒤, 서일은 계속 계산기를 두드리며, 여기서 쓴 금액을 북당으로 돌아가 황후에게 얼마만큼의 금으로 바꿔 드려야 할지 열심히 계산했다.계산을 마친 후, 지갑형편이 다소 여유롭다고 느껴지자, 그는 귀걸이와 금팔찌까지 더 구매했다. 이곳의 디자인은 북당보다 훨씬 아름다웠다.한편, 금나라에서는 완안경천이 혼사를 준비하고 있었고, 이웃 나라 사신들도 연이어 축하해주기 위해 도착했다.택란은 냉명여와 주 아가씨를 데리고 량주로 갔는데, 그들이 량주성에 도착하자마자, 누군가가 경천 황제에게 보고했다."폐하, 초상화 속의 아가씨가 이미 도착하여 객사에 머물고 있습니다. 근처에서 감시 중이며, 가까이 다가가 방해하지는 않았습니다."경천 황제는 어서방에 앉아 이 보고를 들으며 눈매를 약간 올리고는, 온화하고 잘생긴 얼굴에 빛을 발했다. "그녀가 왔구나. 마침내 그녀가 왔다!""폐하, 바로 부를까요?""아니. 사람을 보내 그녀를 계속 감시하도록 하거라. 절대 그녀를 놓쳐서는 안 된다."경천 황제 또한 손끝이 떨릴 정도로 감격했다. 수많은 밤, 그는 초상화를 보며 멍하니 그녀가 살아있기를 바라고 또 바랬기 때문이다.그 초상화는 그가 직접 그린 것이었다. 원래 그는 서화에 강하지 않았다. 하지만 화가에게 아무리 설명해도 화가의 그림이 그녀와 닮지 않아, 직접 그림을 배우기 시작한 것이었다.그렇게 늘 마음속에 품고 있던 그녀를 자신의 그림으로 완성했다.그는 그녀가 죽었다고 생각하고, 사람을 보내 북당에서 한 부녀를 데려왔다. 그 중 딸이 자신이 란이의 언니라고 주장했지만, 그녀의 얼굴은 택란과 닮은 점이 조금도 없었다. 심지어 분위기도 전혀 닮지 않았다.친자매가 어찌 조금도 비슷한 부분이 없다는
원경릉은 병실로 돌아간 뒤, 서일을 따로 불러내서 물었다.당시에는 상황이 급박했던 탓에 서일이 어떻게 그 약을 가져왔는지, 약상자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에 대해 전혀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다."두 번째 약은 어디서 꺼낸 것이냐?"원경릉이 약상자를 열며 묻자, 서일이 약상자 두 번째 칸을 가리켰다."이쪽이였습니다. 그 당시 약이 이미 준비되어 있었고, 주삿바늘에 뚜껑도 씌워져 있었습니다."원경릉은 약을 세 번째 칸에 넣었다는 것을 떠올렸다. 세 번째 칸은 자동으로 수축하는 구조여서, 사용하지 않는 약을 넣고 약상자를 닫는 순간 아래로 내려가게 되어 있었다.반면 두 번째 칸은 평소 사용하는 약으로 꽉 차 있어, 추가로 주사를 넣을 공간조차 없었다.게다가 약상자를 10년 넘게 사용해 온 그녀였기에, 약을 어디에 두는지 몸이 기억할 정도로 익숙했다. 그녀가 약을 잘못 넣었을 가능성은 없다는 뜻이다. 설령 잘못 넣었다 하더라도, 약상자는 위험성을 자동으로 감지하는 기능이 있어, 그 약이 서일 앞에 나타날 리가 없었다.서일은 원경릉의 심각한 표정을 보고, 우문호의 병세가 다시 악화한 줄로 착각하며 구석에 쪼그려 앉아 얼굴을 감싸고 울기 시작했다. 그동안 참고 또 참아왔지만, 이제는 도저히 견딜수가 없었다. 그가 울기 시작하자, 원경릉이 깜짝 놀라 물었다."왜 그래? 설마 또 무슨 약이라도 먹인 것이냐?""아닙니다..."서일은 빨개진 눈에 머리도 헝클어진 채로 원경릉을 바라보며 처량하게 말했다."마마, 폐하께서 아직 낫지 않은 것입니까? 혹시 제가 폐하를 죽게 만든 것입니까?"원경릉은 웃음을 터뜨리며, 서일의 반응 속도가 정말로 느리다고 생각했다."그런 소리 하지 말거라. 그런 일 없다. 그저 사실을 알아보는 것뿐이니, 괜히 걱정하지 말거라. 다섯째도 아주 좋아졌다. 단지 조금 더 검사가 필요할 뿐이다."서일을 안심시키기 위해 그녀는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서일은 우문호에게 가서 울며 모든 것을 털어놓았을 것이 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