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꼬같은 우문호 부부, 이상한 장인 부부이 말이 한동안 원경릉의 귓가를 맴돌았다. 원경릉은 줄곧 우문호에게 이 말이 무슨 뜻인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즉, 어떻게 물어보면 좋을지 모르겠다.“왜 그래?” 원경릉이 갑자기 멍한 것을 보고 우문호가 물었다.원경릉은 쭈뼛쭈뼛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막상 입이 떨어지지 않아서 그저 웃기만 할 뿐, “아니야, 그냥 왕야가 어의 얘기를 하길래 조어의가 긴장한 모습이 생각나서 웃었던 거야.”“넌 그게 웃겨? 조어의는 당장이라도 울겠더라.” 우문호가 말했다.원경릉이 진지하게 말했다. “사실 다들 진짜 이렇게 긴장할 필요 없다니까, 나도 긴장된다고. 세 쌍둥이 사실 별거 아니야, 조심만 하면 돼.”우문호는 원경릉이 대수롭지 않게 얘기하는 것을 보며, 하긴 원경릉은 위로를 하는 입장이지 언제 위로는 받았던 적이 있었나?그래도 역시 원경릉에게 그렇게 큰 부담을 주지 말아야겠다.우문호는 일부러 안도의 숨을 내쉬며 “그럼 됐네, 네가 걱정하지 않으니까 나도 걱정 안해.”어의가 이 시기에는 많이 걸어야 한다고 해서 우문호는 원경릉의 손을 끌고 밖으로 나갔다.밖이 춥다고 우문호가 원경릉을 뚱뚱한 펭귄처럼 꽁꽁 싸매는 바람에 걷는 것도 힘들 지경이다.우문호가 뜬금없이 뒷북을 치며 “그러고보니 우리 장인 어르신은?”이렇게 여러 번 왔는데 거의 한번도 만난적이 없다는 걸 이제야 알다니.“문상하러 가셨어.” 원경릉이 말했다.“누가 돌아가셨어?” 우문호는 정후부에서 친척의 장례가 있는 분위기를 전혀 느낄 수 없었다.원경릉이 잠깐 생각하더니, “표면적으론 큰 이모와 큰 이모부가 돌아가셨다는데, 기억이 없어.”우문호가 복도에서 얼른 숨는 황색 옷을 입은 여인을 쳐다보고, “큰이모? 그럼 장모님은 안 가셔?”“첩인 주씨 부인을 데리고 가셨어.”우문호가 어이없어서, “큰이모가 돌아가셨는데, 친동생인 장모님이 안가시고, 장인 어르신은 첩을 데리고 정실 부인의 큰 언니 문상을 갔다고? 무슨 집구석이 그
위왕비 소식안타깝게도 황씨가 원경릉 부부 쪽까지 가기도 전에 우문호가 원경릉을 이끌고 돌아 가버렸다.황씨는 걸음을 멈추고 심하게 실망했다.아니 황씨가 가고 있었던 걸 못 본 거야? 몸집도 이렇게 크고 눈에 띄는 색 옷을 입었는데 안 보이는게 더 어려운 거 아닌가? 진짜 눈이 멀었네.황씨는 씩씩거리며 원경릉 부부의 뒷모습을 보며 순간 쫓아가야 할지 말지 고민했다.그때 빠른 걸음으로 부부가 다시 오더니 원경릉은 고개도 돌리지 않고 작은 목소리: “따라 오시겠어요? 뒤를 밟으신 거예요?”“발자국 소리를 못 들었으니 뒤를 밟으신 건 아닐 거야.” 우문호가 저음으로 말했다.원경릉이 ‘어머’하더니, “요즘 제가 귀가 어두워졌지 뭐예요, 진짜 임신하면 삼 년은 바보가 된다더니.”우문호가 느긋하게: “약간 바보스러우니까 얼마나 좋아, 넌 좀 더 바보스러워야 해. 너무 똑똑하면 다루기 힘들다니까.”“아직도 나를 다루려고?” 원경릉이 눈을 흘겼다.우문호가 얼른: “아닙니다, 제가 어찌 감히, 입버릇이 튀어나와 버렸네요, 아내님 고정하세요.”“맞다, 진북후는 도착했나?” 원경릉이 갑자기 그 일을 떠올렸다.우문호가: “모레일걸. 나도 들은 거야. 신경 안 써서.”진북후의 입성을 계속 주목하고 있으라고 사람을 시켰을 뿐이다.큰 적을 앞에 두고 있을 때처럼.원경릉이: “그래, 나귀빈 사건은 재상께서 어서 해결하셨으면 좋겠다.”나귀빈 얘기를 꺼내자 우문호는 여전히 좀 갑갑한 기분이 들며, “지금 난 아무 쓸모없는 쓰레기같아.”원경릉이 돌아서 우문호를 껴안고, “불쌍한 왕야, 나때문에. 원래 경조부에서 처리하면 될 일인데, 만약 내가 후궁 건을 반대하지 않았으면 왕야가 아바마마께 쫓겨날 일도 없었을 텐데.”“너랑 무슨 상관인이야? 원래 정직상태로 조사하는 거였어.” 우문호는 이렇게 말하면서도, 원경릉이 측은하게 여기는 게 기뻐서 억울한 표정을 짓는다.두사람이 잠시 서로 끌어안고 있을 때 조어의의 목소리가 저쪽에서, “왕야, 절제하세요, 절제!”원경
위왕비 진찰손왕비가 열 받아서 말했다. “아니, 위왕비는 어쩜 그렇게 바보 같아요? 어휴, 셋째도 자기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모르나 봐요. 이유는 모르겠지만 고지(故知)가 미끄러져서 유산기운이 있다며, 어젯밤에 셋째는 계속 고지 곁을 지키느라, 세상에 위왕비 생사에는 신경도 안 쓰고 보러 가지도 않았다고 해요. 위왕비 혼자 고통을 참고 있어요.”다리가 부러진 고통을 생각하니 마음의 빗장이 풀어졌다.게다가 의원들도 마땅히 효과가 좋은 진통제가 없고, 한약의 진통 효과는 조금씩 천천히 들기 때문에, 다리가 부러진 사람 입장에선 확실히 힘들고 고통스럽다.손왕비가 원경릉에게 간절한 목소리로: “통증을 멈추게 할 수 있죠? 가서 좀 봐줘요.”원경릉이 고개를 끄덕이며, “네, 그럼 같이 가요.”기왕비가 원경릉을 흘겨보더니, “초왕비는 어쩜 쓸데없는 일도 그렇게 잘 해요? 그건 다른 집 부부 사이 일이예요.”원경릉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 집 부부 사정을 물어보러 가는게 아니라 위왕비 다리 상처를 보고 통증을 멎게 해주고 싶을 뿐이예요.”기왕비가 구시렁거리며 “그때 나를 치료해 달라고 할 때는 그렇게 애를 쓰게 만들더니, 이번엔 아주 알아서 찾아가네요.”원경릉이 웃으며 말했다. “위왕비는 저를 해친 적이 없거든요.”기왕비는 씩씩거릴 뿐 아무 말이 없다.정오를 알리는 종이 울리자 우문호는 사람을 시켜 원경릉에게 오늘은 못 온다고 알렸다. 황제폐하께서 기왕이 만조백관을 이끌고 성문에서 진북후가 입성하는 것을 맞이하라는 어명을 내리셨기 때문이다.원경릉은 약상자를 들고 손왕비와 마차에 오르는데 기왕비가 의외로 같이 가자고 해서 손왕비는 뜻밖이라며 놀랐다.손왕비가 담담하게 답했다. “가도 좋은데, 기왕비는 가서 가급적 입을 다물고, 위왕비에게는 말 걸지 마세요.”기왕비가 눈을 희번덕거리며, “내가 밥 먹고 할 짓이 없어서 헛소리 할까 봐요? 전 원래 좋은 사람이예요.”그런데 사실이 그렇다.기왕비는 원래 표면적으로 아주 좋은 사람으로, 좋은 말도 상
누가 위왕비를 밀었나?다리는 이미 싸매서 고정돼 있었지만 골절이 있어 아마 골절통때문에 아픈 것일 것이다.손도 상처가 있는데 위왕비 말이 뛰어 내릴 때 무의식적으로 머리를 감쌌지만 충격이 너무 커서 이마에 상처가 났다고 했다.원경릉이 위왕비에게 진통주사를 놓고 복용할 약을 몇 알 처방해주었는데, 주사를 놓을 때 원경릉이 전에 줬던 약을 베개 밑에 두고 안 먹은 걸 발견했다.위왕비 자신도 들킨 걸 알고 곁눈질 하더니 난감해 하며: “그게…… 나중에 어의가 처방한 신경안정제를 복용해서, 서로 상충될 까봐 지어 주신 약은 안 먹었어요.”원경릉이 미소를 지으며: “괜찮아요, 가지고 계세요.”진통주사를 놓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위왕비가 의아하게 여기며: “진짜 별로 아프지 않네요.”방금 위왕비는 주사를 맞는 것에 상당한 거부감이 있었던 것이, 위왕비는 침이나 뜸을 싫어했다.게다가 이 침은 크고 안에 물도 있다.손왕비는 그제서야 안도하며 잔소리하길: “이거 봐요, 아직도 사람을 못 믿는 다니까요.”손왕비는 잔소리를 하다가 갑자기 눈가가 붉어지더니, “도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 손목 긋는 거로도 모자라서 다락집에서 뛰어 내린 거예요? 절 놀라게 해서 죽일 작정인 건가요?”위왕비가 멍하게, “최근 환각을 자꾸 봐요, 저도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 원래는 그냥 나가서 바람을 쐬며 정신을 차리려고 했을 뿐인데, 어떻게 된 건지, 환각이 생기더니 뒤에 누가 미는 게 느껴지고 내가 아래로 뛰어내렸지 뭐예요.”손왕비가 대경실색하며 연달아 묻는데: “누가 위왕비를 밀었어요? 누구죠? 본 사람 있어요? 위왕비는 스스로 다락에 올라간 거예요? 어디 다락이에요? 다락에서 어떻게 뛰어내릴 수가 있었죠?”위왕비가 고개를 저으며, “진짜 누가 민 게 아니라, 환각이었어요, 사실 저 매번 손목을 그을 때마다 환각을 보곤 하거든요. 그 뒤로 저도 제가 뭘 하지는 모르겠더니 깨나고 보니 이미 자살시도를 했더라고요.”손왕비가 이상하게 여기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죠? 어젯밤
위왕비가 떨어진 다락“초왕비도 누가 민 거 같아요?”초왕비가 말이 없는 것을 보고 손왕비가 흠칫하며 물었다.원경릉이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음, 저는 기왕비의 의견에 찬성해요. 제가 그 다락에 가봐도 되나요?”“그럼요, 그런데 초왕비는 조심하셔야 해요.” 위왕비의 얼굴이 갈수록 창백해 지며 시녀 하나를 불러 원경릉을 네모칸 다락으로 모셔가라고 했다.왕비 셋이 모두 가고 만아와 사식이도 자연스럽게 따라갔다.네모칸 다락은 높은 편은 아니어서 눈대중으로 높아봐야 두 장(6m, 1丈이 약 3m)남짓으로 일반 1층보다 한 층 정도 더 있는 높이다.네모칸 아래는 사실 일종의 정자로 남북 양면에 벽돌로 담이 쳐져 있으며 동쪽과 서쪽엔 두 개의 큰 대들보가 서있어 이층을 받치고 있다.계단은 안에서 올라가게 되어 있고 휘장이 양쪽으로 갈라지는 방식으로 목재로 된 계단은 견고하고 중후해서 걸을 때 삐걱거리는 소리가 나지 않았다.2층으로 올라가니 그곳은 다락으로 안에 방이 하나 있기 때문에 현대의 건축 구조로 봤을 땐 다락 바깥에 발코니를 설치한 모습으로 발코니에 앉아 바깥 경치를 볼 수 있다.난간은 낮아서 대략 8cm 정도로 위험한 편이라고 할 수 있다.원경릉은 밖을 쓱 한 번 보고 안으로 다시 돌아가 보니 팔선교자상에 의자 몇 개가 놓여 있다.원경릉은 발코니 반대쪽 의자 팔걸이에 손을 내려 놓았다. 이 의자 삐뚤어졌다.모든 물건이 꽤 정리정돈이 잘 되어 있는데 유독 이 의자만 삐뚤어져 있다.마치 누군가 부딪혀서 의자가 비뚤어졌는데 급하게 자리를 뜨느라 바로 잡아 놓지 못한 것 같다.원경릉이 갑자기 손왕비에게, “듣자 하니 고지가 어젯밤 유산기가 있었다 던데 떨어져서 그런 건아이고요?”“모르겠어요.” 손왕비가 한탄하듯 말했다.원경릉이 미소를 지으며, “어쨌든 고지가 위왕 전하의 아이를 임신하고 있는데, 유산기라면 우리가 병문안을 가는 게 낫지 않을까요?”손왕비가 눈을 부릅뜨고, “아직도 고지한테 문병을 가고 싶은 마음이 들어요? 나는 고지가 차
고지를 찾아간 왕비들온고각 안에서 시중 드는 사람은 어림잡아도 열 몇명은 돼 보이는 게 왕비의 방과 비교하니, 비슷한 수준은 커녕 한참 더 많다.원경릉 등 사람이 들어가자 누가 바로 안으로 들어가 보고하려 했다.원경릉이 가는 길을 막고: “첩이 유산기가 있다니 맞으러 나올 필요 없이 우리가 들어가면 돼.”한 어멈이: “왕비마마, 고지부인은 첩이 아니십니다.”“부인?” 손왕비가 차갑게 비웃으며, “언제 부인이 되셨나 그래? 셋째도 참 너무 하네, 첩을 들이는 큰 일에 형수인 나와 상의 한마디 없을 수가 있나. 그리고 부인과 첩이 무슨 차이야? 후궁도 아내 축에 못 드는데.”손왕비의 말을 듣고 어멈이 나서서 방자하게 굴지는 못해도 눈을 흘기며: “왕야는 어쩌면 고지부인과의 사적인 관계를 외부 사람에게 알릴 필요 못 느끼셨나 봅니다.”“너……” 손왕비가 열 받아 손부터 올라가며, “네 이 년, 어디서 함부로 입을 놀리느냐.”기왕비가 덤덤하게 손왕비를 막으며, “손왕비마마 역정 내실 게 뭐 있습니까? 어멈 말이 맞네요, 고지 부인이던 첩이던 어차피 외부사람인 것을, 우리 황실 사람이 아니지 않습니까?”어멈이 고개를 들어 기왕비를 째려보려다 기왕비의 안색은 창백하나 냉정하고 엄숙한 태도를 보고 감히 말을 꺼내지 못한다.어멈이 다시 원경릉을 보니 배가 불렀는데도 귀티가 흐르고 초왕비라는 사실도 알고 있어 이 사람은 인상이 좋다는 생각에: “초왕비 마마, 고지부인 몸이 약하셔서 왕비마마께서 좀 봐 주시기를 청합니다.”어라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원경릉이 차갑게: “내가 왜 봐줘야 하지? 외부 사람에 불과한데.”어멈이 당황해서 원경릉의 냉정한 얼굴을 보고 다시 말을 꺼내지 못한 채, 세 사람을 데리고 들어갔다.고지는 이미 침대에서 일어나 침대 곁에 점잖게 서서 예를 갖추며, “고지, 왕비마마를 뵙습니다.”고지는 긴 머리를 늘어뜨리고 배는 아직 나오지 않은 상태에 발엔 흰색 실내화를 신고 폭이 넓은 옷으로 편하게 몸을 감싸고 있어 한층 약하게 보였다
위왕비 추락 사건의 진실“어떻게 유산기가 있는 거예요?” 원경릉이 물었다.고지는 입꼬리에 경련을 일으키며 억지 웃음을 웃으려 했으나 마음 같지 않게 굳어버렸다.“덜렁거리며 걷다가 넘어져서 왕비마마를 심려케 했네요.”원경릉이말했다. “당신 걱정 안 해요, 나한테 복부 좀 보여 줄 수 있어요?”고지는 고개를 들고 경악스런 표정으로, “뭐라고요?”“배를 부딪힌 게 아닌지 알고 싶어서요.” 원경릉이 말했다.고지가 난감해 하며, “그렇든 아니든 무슨 상관이죠? 왕비마마 이건 신첩을 모욕하는 겁니다.”“모욕이라니요, 위왕비가 사람에게 떠밀려서 다락에서 떨어졌고, 전 당신이 범인인지 아닌지 알고 싶은 겁니다. 한 번 보여줘요. 만약 당신이 아니면 당신에게 사과하죠” 원경릉이 말했다.고지가 버럭 화를 내며, “왕비마마 이건 아니죠. 증거가 있어야 조사할 수 있는 거 아닌가요? 만약 아무 근거도 없이 신첩이 왕비마마를 밀었다고 하신 것도 모자라 신첩의 배를 검사하시겠다니, 이게 무슨 행패입니까?”원경릉이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맞아 이건 이런 행패야. 사식아, 만아야, 가서 그녀의 복부나 옆구리 부분에 멍이 들었는지 확인해 보아라.”“너무 하십니다.” 어멈이 막무가내로 막아 서고 뒤에는 분노가 끓어올라 눈물을 떨구는 고지가 보인다. 어멈이 원경릉에게 말했다. “왕야께서 누구도 고지 부인이 가만히 요양하는 것을 방해해서는 안된다고 하셨습니다. 왕비마마 나가주세요.”사식이가 한 손으로 어멈을 밀치고 쩌렁쩌렁한 소리로 소리쳤다. “네가 뭔 데 감히 왕비마마의 명령을 가로막아? 목숨이 몇 개나 되는 줄 알아?”만아가 바로 고지에게 걸어가자 원경릉은 고지의 멍을 확인하고 싶다는 눈빛을 보내며 말했다. “만아야, 조심해. 그녀는 무술도 할 줄 알고, 심지어 네 환술도 알고 있어.”만아가 듣고 한 손으로 그녀의 눈을 가리고, 다른 한 손으로 그녀의 팔목을 잡고 그대로 침대에 눕혔다.사식이가 얼른 앞으로 다가왔다. 느슨한 옷 매무새를 하고 앙탈부리는 고지의
죄를 시인한 고지고지는 울며 몸부림을 치고 힘껏 몸을 뒤로 빼며, “초왕비마마, 절 놔주세요. 마마께서 잡아당긴 손목이 너무 아파요, 아야, 너무 아파.”고지가 하도 구슬프게 울어서 밖에 있는 사람이 모르고 들으면 원경릉이 고지를 때린 줄 알겠다. 몸종들이 안달이 나서 어쩔 줄 몰라 하며 원경릉을 말리려 하자 사식이와 만아가 원경릉 앞에 서서 소리쳤다. “누구든 감히 왕비마마의 털끝 하나라도 건드리면 그년의 손모가지를 분질러 놓을 테다.”고지가 울며 말했다. “초왕비마마, 귀하신 신분으로 어찌 신첩과 다투십니까? 신첩이 잘못했습니다. 마마께서 신첩이 위왕비마마를 밀었다고 하니 신첩이 그런 것이겠지요. 신첩은 변명하지 않겠습니다.”기왕비가 얼굴색도 변하지 않고 앉아 있고, 반대로 손왕비는 나와서 한 대 칠 기세다. 이 거짓말쟁이 년.원경릉이 고지를 노려보며 울어서 콧물이 나올 지경이 되자 비로소 천천히 고지를 놓아주더니 만아에게: “청동거울을 가져오너라.”만아는 원경릉의 의도를 모르지만 하여간 가서 큰 청동거울을 가져왔다. 원경릉이 물러나 느긋하게 옷 매무새를 고치고 담담하게 말했다. “그녀에게 자기 모습을 보여줘라.”만아가 큰 청동거울을 고지 얼굴 앞으로 밀자, 고지는 순간 울음을 멈추고 난감하다는 듯 뒤로 물러났지만 청동거울이 상당히 커서 고지가 뒤로 갔어도 거울에 비친 눈가가 벌겋고 콧물이 흐르고 머리를 산발한 여인을 볼 수 있었다.고지는 숨고 싶지만 숨을 데가 없고 분노의 눈빛으로 원경릉을 쏘아보며, “초왕비마마는 제가 자신의 용모가 사람 같지 않다는 것을 알기를 바라셨습니까? 그저 외모만 보다니 정말 천박하네요.”원경릉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거울에서 본 모습은 네 외모가 아니라 오히려 네 마음이야. 추하지? 네 스스로도 보기 싫지? 고지야, 네가 한 짓을 가지고, 널 짐승이라고 욕하면 짐승한테 모욕이야.”고지가 주먹을 꼭 쥐고 눈 밑이 바르르 떨리는데 억울해서 어쩔 줄 몰라 하며, “왜 절 괴롭히세요? 위왕비에게 불공평
홍엽이 조용하고도 냉정한 말투로 물었다. “공무를 보러 가는 것이냐?”“저는 원래 공사를 구분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공무를 보러 가는 것도 여행이라 할 수 있죠.”냉정언이 온화한 눈빛으로 냉명여를 바라보았다. “손자도 이제 다 컸으니, 함께 데리고 나가 바깥세상을 경험해 볼 때가 되었지.”냉명여가 고개를 들었다. 냉정한의 눈빛은 다시 싸늘하게 변했다.이 집안에서 냉정한은 엄격했으며, 홍엽은 편애를 받았다. 그렇기에 둘은 서로 보완이 되었다.“알겠습니다. 그럼 일단 짐부터 싸야겠네요. 얼마나 가 있는 겁니까?”홍엽이 기쁜 목소리로 물었다.“돌아오고 싶을 때 돌아오면 되니 일수는 생각할 필요 없다. 어쨌든 우문호는 항상 나에게 짐을 지우고 있었으니, 우리도 즐길 때가 되었지.”냉정언이 복수하듯 말했다.홍엽이 웃었다. “정말 그럴 만도 합니다.”그의 수양딸을 만나러 가는 길이니, 무척이나 기뻤다.홍엽이 우문호에게 품고 있는 가장 큰 불만은 자신과 수양딸 사이를 막고 있는 것이었다. 분명 자신의 수양딸임에도 우문호가 독점하고 있으니, 너무나도 과한 처사였다.황제가 된 사람들의 성격은 대체로 좋지 않았다.세 명의 사람과 한 마리의 원숭이가 조용히 성을 빠져나갔다. 흠차라고는 하지만 어떠한 허례허식도 없었다.그들이 떠난 뒤, 탕양도 약도성을 위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탕양은 최근 몇 년 동안 바쁘게 일하며 많이 늙었고, 머리카락은 흰머리가 수북했다.그는 이전에 우문호의 최측근 신하였으며 지금은 우문호의 전반적인 심부름꾼이었다. 관직이 내려져 고용된 것이 아닌, 그저 유용한 사람으로써 투입된 것이었다. 그는 우문호에게 직접 보고를 올렸으며, 어떤 관청에서도 그를 관리할 수 없었다.근래 몇 년 동안 그는 병부에서 군사를 정리하고 호부에서 전국의 땅과 세금을 다루며 새로운 정책을 세우는 데 도움을 주었다. 또한 이부에서 심사에 참여하고 형부에서 중대 사건을 옆에서 다루었다.황후는 탕대인이 벽돌과도 같아 필요한 곳 어디에서든 쓰일 수
“좋은 생각이십니다. 가능한 빠를 수록 좋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조정의 은혜를 이어 갈 수도 있습니다.”냉정언은 그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 들였다.그리고 잠시 멈칫하고는 우문호를 바라 보았다.“그리고 공주님을 보살 피라는 말씀이시지요?”“역시 지혜로운 수보구나. 짐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꿰뚫어 보고 있어.”우문호가 미소를 지어 보였다.“폐하께서 공주님을 아끼시는 건 궁의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소인이 궁에 들어오기 전에 폐하께서 갔다 오실 줄 알았습니다.”“짐이 생각 해보았지. 지금 때에 약도성에 들리면 이득이야. 조정을 향한 백성의 믿음도 생기고, 결코 짐이 백성을 버리지 않았다는 뜻이 될 테니 말이야. 하지만 내가 조정을 떠나면 나에게 반심을 가진 자들이 모여서 내란을 일으킬 수 있어. 자네를 수보의 신분으로 보내는 게 제일 안전한 방법이네.”냉정언이 고개를 끄덕였다.“옳으신 말씀입니다. 사실 소인은 폐하께서 직접 가실 것 같아 설득을 해볼 생각이었습니다.”우문호는 애매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짐이 자식들 때문에 나랏일을 뒤로 미루는 사람으로 보이는가.”“공주님이라면 그럴지도 모르지요.”냉정언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소인이 폐하를 너무 얕보았나 봅니다.”“짐도 구분은 할 줄 아네. 쉽게 위험 속에 몸을 던지는 사람이 아니야.”게다가 그는 집에서 제일 약한 사람이 아닌가. 냉정언이 답했다.“네, 알겠습니다. 홍엽 공자에게 일러 두겠습니다. 내일 출발 할 수 있게 말입니다.”“홍엽 공자도 가는 것인가?”우문호가 눈을 크게 떴다.“소인이 오랜만에 나가는 외출 입니다. 제 아들도 바깥 세상 한번 구경 시켜줘야 하지 않겠습니까.”우문호가 의미심장한 태도로 답했다.“그래, 명여도 데려가게. 사내 아이는 많이 둘러 보는 게 좋지.”“명어 그 아이는 홍엽 공자를 잘 따릅니다.”냉정언이 말했다.“그래, 네가 누굴 데려가든 상관없다.네가 가면 되는 것이니 말이다.”우문호는 허공에 손을 흔들었다.말을 끝나
하지만 새해의 기쁨도 초 닷새 날까지뿐이었다.초 엿샛날이 되자 각 부서들이 하나둘씩 출근하기 시작했다.우문호의 표정이 좋지 않다.출근 때문이 아니라 택란이 약도성에 다녀오겠다는 말 때문이다.약도성은 큰 화재 때문에 재건설을 했다.그녀는 직접 두 눈으로 봐야 마음이 놓일 것 같았다.게다가 형제들도 곧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원경릉은 우문호를 하룻 밤 내내 설득하기 바빴다.곧이어 우문호는 위왕과 안왕에게 임무를 주었다. 강북부에 도착하면 즉시 그에게 보고를 하라는 내용이었다.위왕과 안왕은 억울하기 그지없었다.왕의 위치에 오르니 사람도 변한다는 사실이 와닿았다.우문호는 한 사람씩 배웅을 해주었다.하지만 아이들은 반겨 하지 않았다.그들의 삼촌을 지켜줘야 할 뿐만 아니라 속도가 현저히 느려지기 때문이다.하지만 우문호는 자신의 결정을 굽히지 않았다.옆에 있던 서일도 같이 가겠다는 의지를 보였다.그 이유는 출장 비용을 황후가 흔쾌히 내어 주기 때문이다.아이들이 또다시 다른 지역으로 떠난다.역란은 자신이 벌써 열 살이라며 강조했다.나이가 어떻게 되든 10년이라는 시간을 보낸 것은 사실이다.“역란아, 아바마마가 마음이 아프다.궁에 남아 나와 더 놀아주지 않겠어?”마차가 지나가고, 경단이 역란에게 물었다.“이만하면 됐습니다. 조금만 더 지내면 싫어하실 거예요.”역란이 혀를 내밀고는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아이고, 이 녀석아.”경단은 역란의 말에 무언가를 깨달은 듯했다.‘적당한 거리가 아련함을 만든다.’마차가 천천히 성 밖을 나갔다.한편, 어서방 안.30분 전, 우문호가 냉정언에게 바둑을 두자고 불렀다.몇 판을 졌지만 우문호는 화도 내지 않고, 바둑판을 엎지도 않았다.다음 판이 또 시작되자 냉정언이 그를 말렸다.“폐하, 무슨 일이 있으시면 말씀을 하세요. 계속하셔도 저한테 질 뿐입니다.”“지지 않을 걸세!”우문호가 그를 노려 보았다.냉정언이 차를 한 입 들이켰다.“그래서 무슨 일 이십니까?”우문호의 인내심
“매화장에서 새해를 보내고 정월 초이틀에 돌아오마. 세뱃돈은 한 사람당 하나씩이니, 욕심은 부리면 안 되느니라!”원경릉이 종이에 적힌 글을 소리내어 읽었다.“매화장에 가셨다고? 혼자서 보낸다고 하시지 않았나?”우문호는 이상하다고 생각이 들었다.‘매화장에 무슨 볼거리라도 생긴 걸까? 우린 초대도 못 받았는데.’“어쩔 수 없지요, 그만 갑시다.”원경릉이 말했다.그들이 자신들의 세뱃돈을 꺼냈다.돌아가려던 찰나, 다른 부부들과 마주쳤다.미색부부, 손왕 부부와 공주 부부도 온 것이다.그들의 손엔 선물을 들고 있었다.우문호는 반대로 아무것도 들고 오지 않았다는 사실에 얼굴을 붉혔다.“다들 어디가신 겁니까?”미색이 성큼 들어와 그들에게 물었다.“매화장에 가셨어.”원경릉이 종이를 내보였다.곧이어 상자를 가리키며 말했다.“새뱃돈은 한 사람당 하나씩.”“너무 대충 준비 하셨네.”회왕은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다.매년 새해에는 시끌벅적하게 보냈기 때문이었다.그는 어젯 밤, 가족들과 시간을 보냈다.하지만 어딘가 부족한 마음이 들어 아침 일찍 찾아온 것이다.새해에 숙왕이 없으니 무언가 허전한 마음이 들었다.모두 실망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그저 멀뚱멀뚱하게 서로를 바라볼 뿐이다.‘새해에 집에 있으면 새해의 느낌이 없지 않은가.’이때, 우문호가 의견을 내놓았다.“매화장에 가보는 게 어떻겠습니까?”“좋아, 지금 출발 하자구나.”손왕이 서둘러 답했다.한편, 매화장 안.전 명원제는 답답하기 그지 없었다.그는 그저 혼자 조용히 새해를 맞이하고 싶었다.어제까지만 해도 모두 각자 새해를 보낸 다는 소식에 그는 기뻐했다.광대짓을 안 해도 된다는 생각에 해방감을 느낀 것이다.하지만 기쁨도 잠시 순식간에 사람들이 몰려와 매화장을 꽉 채웠다.무상황이 나타나 노인들끼리 같이 새해를 보내자고 제안을 한 것이다.그는 공간이 넓고, 옆으로 산이 있다는 이유로 매화장을 택했다. 전 명원제는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그도 노인이기 때문이다.그리하여
원경릉은 그의 말에 마음이 아팠다.얼마 전까지만 해도 생각도 하기 싫은 문제였다.형제들과 다르게 그는 노화세포를 전혀 피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이 사실을 그에게 말한 적은 없지만 우문호는 어느 정도 눈치를 채고 있었다.그도 자식들의 회복 능력을 보면서 알 수 있기 때문이다.하지만 원경릉에게 직접 말한 적은 없다.우문호는 그녀를 바라 보았다.부부라서 마음이 통한 것일까.그는 그녀의 마음을 대략 읽고 있었다.원경릉은 수술을 하고 나서 전혀 늙지 않았다.일부로 어두운 색깔의 옷을 입어도 여전히 젊어 보였다.반대로 우문호는 하얀 머리카락이 듬성듬성 나기 시작했다.어쩌면 국가의 일을 처리하느라 노화가 빠른 것일지도 모른다.하지만 그는 그의 나이에 맞는 모습으로 점차 변해갔다.아직 눈가에 주름도 없고, 늙어 보이지 않지만 그는 곧 자신에게 닥칠 일이라고 생각했다.원경릉에게 주사를 맞겠다고 한 것도 그저 한순간의 충동일 뿐이다.사실 그는 그녀가 늙지 않고, 죽지 않는 다면 그것만으로도 좋았다.하지만 몇십 년 뒤에 그녀의 인생에 자신이 사라진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다.생각하면 할수록 조급해질 수 밖에 없었다.그는 서둘러 생각을 접었다.'지금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같이 있는 시간을 즐겨야 한다.'요즘들어 우문호는 운명을 믿기 시작했다.원경릉이 자신에게 온 이유가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그 다음 날, 온 가족이 숙왕부에 도착했다.그들이 일찍 깨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대문이 닫혀 있었다.만두가 문을 두드렸다.아무런 대답이 없자 우문호가 바짝 긴장했다.“무슨 일 일어난 건 아니겠지?”“제가 들어가 보겠습니다!”곧이어 만두가 재빠르게 안으로 들어갔다.아들의 의외의 행동에 우문호가 깜짝 놀랐다.“만두가 언제 무술을 배운 거야?”원경릉은 무술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어제의 일이 떠올랐다.그리고 혹시 몰라 다르게 답했다.“저도 만두가 무술을 배웠을 줄은 몰랐습니다.”곧이어 만두가 안에서 문을 열었
“그래, 그래. 잘 된 일이야.”우문호가 기뻐했다.곧이어 손을 뻗어 딸의 이마를 어루만졌다.“내 딸이 그래도 제일 착하구나.”“아바마마, 편애하면 아니 되옵니다.”칠성은 우문호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편애라니?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야.”그러고는 그의 그릇에 닭다리 하나를 올려 주었다.“자, 이건 칠성이거다.”“저희도 먹고 싶습니다!”옆에 있던 4명의 아들들이 우문호에게 그릇을 내밀었다.“닭다리는 딱 2개밖에 없구나. 칠성이에게 하나를 주었으니, 남은 하나는...”“아바마마! 저 주십시오.”택란이 그릇을 내밀었다.“어..”곧이어 원경릉도 그릇을 내밀었다.“저도 주십시오!”우문호는 한 손으로 닭다리를 잡은 채 자신의 앞에 놓인 그릇 6개를 바라보았다.잠시 고민하고는 원경릉의 그릇에 닭다리를 올렸다.“내 아내가 고생이 많지!”그리고 서둘러 닭 고기를 집어 다른 그릇에 올려 두었다. 그는 이마 위로 손을 올렸다.“내일 닭을 더 많이 잡으라고 해야겠구나, 한 사람에 닭다리 하나씩 먹을 수 있게 말이야.”그의 말이 끝나고 자리에는 웃음꽃이 피었다.그들은 서로를 바라보면서 웃어 보였다.좋은 아버지가 되기는 쉽지 않구나,라고 생각했다.만두가 미소를 지어 보였다.“아바마마, 저희가 장난 좀 친 것뿐입니다.마음에 두지 마십시오.게다가 여자라고는 어마마마와 여동생뿐입니다.저희 남자형제들이 양보하는 게 맞지요.”나머지 형제들이 고개를 끄덕였다.“맞습니다.”큰 형의 말에 어떻게 동생들이 토를 달 수 있겠는 가.그리고 동생들도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아바마마도 지켜 주셔야 합니다.아바마마가 저희 집안에서 제일 약한..”칠성은 닭다리를 뜯으면서 애매한 말을 내던졌다.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다른 형제들이 반찬을 집어 그녀의 그릇에 두었다.만두가 입을 열었다.“그만 이야기하고 밥 먹어. 닭다리로도 부족한 거야?”칠성은 그의 말에 풀이 죽었다.그리고 고개를 숙이고 다시 닭다리를 뜯었다.우문호는 원경릉을 바
원경릉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안 된다. 술은 19세부터 마실 수 있는 법이다.”만두는 약간 실망한 듯 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예. 말을 따르겠습니다.”기분이 좋아진 우문호는 팔꿈치로 원경릉을 살짝 찌르며 말했다.“한 모금만 주오. 아직 어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어리다고 하기도 훨씬 지난 나이네. 집에서 한 모금 정도는 괜찮소. 밖에서는 안 마시면 되지.”경단과 찰떡도 원경릉을 바라보며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기만을 기다렸다.원경릉은 아이들이 모두 아빠와 함께 술을 마시고 싶어 하는 걸 보며, 오늘처럼 즐거운 날은 한 번쯤 허락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래서 그녀는 직접 아이들의 잔에 술을 따라주었다. 작은 잔에 술향이 은은하게 퍼졌고, 아이들은 금세 웃음을 터뜨렸다.세 아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우문호를 향해 잔을 높이며 말했다.“아바마마, 아바마마께 한 잔 올리겠습니다!”우문호는 아이들의 풋풋함을 간직한 똑같은 얼굴을 바라보았다. 성인이 되려고 애쓰는 그들을 보며 그는 뿌듯함과 감동이 교차했다. 그는 아이들과 잔을 부딪치며 말했다.“그래, 부자끼리 한잔하자!”참으로 묘한 느낌이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품에 안겨 있던 작은 아이들이 지금은 그와 함께 잔을 부딪치고 있었다.현대에서 지내는 동안 아이들과 함께 있는 시간이 줄어들다 보니, 아이들이 어느 순간 훌쩍 커버린 듯한 착각이 들었다.은은한 촛불이 아이들의 기뻐하는 얼굴을 비췄다. 탁자 아래, 우문호는 원경릉의 손을 잡고 서로 미소를 주고받았다.아이들은 부모님에게 열심히 음식을 챙겨주었다. 환타가 원경릉의 손을 잡아당기며 말했다.“어마마마, 드시지요. 아바마마도 손잡지 마시고 어서 드십시오.”원경릉은 웃으며 말했다.“그래. 먹자, 다 같이 밥 먹자!”그녀는 그릇에 담긴 음식을 우문호의 그릇으로 조금 옮기며 말했다.“다 못 먹으니, 조금 먹어주시오.”우문호가 답했다.“그럼, 좋아하는 것만 먹고, 싫어하는 건 나한테 주시오.”그는 그릇을 내려놓고 새우를 까서 마늘장에 찍어
다섯째는 평소 아이들의 자잘한 일들에 항상 주목했다. 아이들을 자랑스러워하다가 금세 우울해지곤 했는데, 원경릉은 그의 모습에 이미 익숙해져 있었다. 그게 그의 즐거움이었고, 그가 행복하다면 그걸로 충분했다.계란이의 길쭉한 팔다리가 앞으로 절대 키가 작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었다.다만 아직 클 나이에 이르지 않았다.원경릉은 예전에 아이들이 빨리 자라길 바랐지만, 이제는 천천히 자라길 바랐다. 그래야 아이들이 곁에 머무는 시간이 조금이라도 더 길어질 것이다.섣달그믐날 그들은 연회를 올렸다. 관례대로라면 숙왕부에서 무상황과 함께 보내야 했지만, 올해는 무상황이 미리 사람을 보내 섣달그믐날 숙왕부는 아무런 손님도 받지 않을 것이라고 명을 전했다. 어르신들끼리 다채롭게 보낼 준비가 되어 있으니, 아이들이 와서 방해하지 못하게 하라고 뜻을 전했다.다섯째는 오히려 이 소식을 듣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동안 어르신들 앞에서 태상황으로서 위엄을 세우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대우는커녕 오히려 재롱까지 부려야 했기에, 그는 항상 처지가 곤란했었다.무상황이 사람을 보내 궁에 있는 우문호에게 각자 알아서 새해를 보내고, 올해는 함께 모이지 않기로 소식을 전했다.황태후도 어린 공주를 데리고 친정으로 돌아갔다. 그동안 친정 식구들과 명절을 함께 보내본 적이 없다며 어린 공주를 데리고 친정으로 돌아갔다.우문호 역시 만족스러웠다. 항상 북적이는 설날을 보내다 보면, 기진맥진하게 되니 차라리 가족끼리 조용히 보내는 게 훨씬 편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게다가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여덟 식구끼리 쉴 수도 있었다.이 소식을 들은 후, 우문호는 아이와 원경릉이 좋아하는 음식을 해놓으라 미리 전했다. 원경릉은 원 할머니를 초대하려 했지만, 원 할머니는 한참 망설이다가 단호히 거절했다. 자주 그녀와 만나서 이야기도 나누고 밥도 먹지만 숙왕부의 어르신들과는 그런 기회가 적으니, 이번에는 그들과 함께 명절을 보내겠다고 했다.원경릉은 이 말을 듣고 의아했다. 어르신들과
추 할머니의 건강 상태는 약을 먹은 후 많이 안정되었다. 이전에 폐종양이 신경을 압박해 유발했던 통증이 크게 완화되었고, 이제는 진통제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았다.통증이 사라졌으니, 삶의 질도 개선되었다. 추 할머니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나자, 모두가 기뻐했다.숙왕부의 노인들은 갑자기 건강 관리에 눈을 뜬 것처럼 건강한 음식을 먹고, 매일 규칙적으로 운동하며, 햇빛을 쬐기 시작했다.운동은 늘 해왔던 일이지만, 과했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적당한 운동을 하게 되었다.원경릉과 원 할머니는 그들의 전담 의원 역할을 하고 있었다. 정기적인 건강검진 외에도 식단을 짜고, 그에 따라 식사하도록 했다.다들 갑자기 이렇게 말을 잘 들으니, 원경릉과 원 할머니는 의아해했다. 나중에야 그들이 회의를 열었고, 새로운 목표를 세운 것을 알게 되었다.그 목표는 바로 20년 후의 북당을 보는 것이었다. 안풍친왕과 무상황이 말하길, 20년 후의 북당은 지금과는 크게 달라질 것이라고 했다.북당은 그들 심혈을 기울여 온 나라니, 더 나은 북당을 보기 위해 기꺼이 노력하고자 했다.원경릉과 우문호는 마음이 놓였다. 집안에 노인이 있으면 보물이 있는 것과 같고, 나라에 이런 노인들이 있다면 나라의 기반이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우문호는 걱정 없이 북당을 힘차게 이끌 수 있었다.그렇게 북당의 경제 발전이 최우선 순위에 놓였다.이리 나리는 나라의 발전을 지휘하는 사람으로서 이전의 여유로운 삶을 지낼 수 없었다. 그는 바쁜 나날을 보내며 산업마다 노조를 설립하였고, 각 노조는 나라의 법에 따라 방향을 잡고 나아가고 있었다.그들은 주변 나라와 장사를 하며 자원을 구매했다.지금 우문호와 이리 나리는 약도성의 철광에 목표를 맞추고 있었다. 북당의 철광 자원은 충분하지 않아 그동안 계속 구매해 왔었다. 하지만 금속은 수출량이 제한적이었기에, 이를 극복하려면 자원을 개발해야 했다.약도성의 철광은 매우 풍부했다. 조사 결과, 금나라와 접경한 산맥 외에도 다른 광산 자원이 발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