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어르신은 좀 어떠세요?” 미색이 원경릉에게 물었다.“눈은 보이지 않으시지만 다른 후유증이 있을지는 아직 잘 몰라. 없기를 바라고 있고.” 원경릉이 탄식했다.원용의가 말했다. “일곱째가 말하는 걸 들어보니 어르신이 주씨 집안 사람들에게 명을 내려서 조정 관리가 되지 못하게 했다고 해요. 과거도 보지 말라고. 예전에 소국공 소창 나리 느낌이에요!”“아마 뒷일을 걱정하셔서 그러실 거야. 주씨 집안의 일부는 아주 뼛속까지 나빠 처먹었거든.” 미색이 콧방귀를 뀌었다.주씨 집안은 주 재상 전에 사실 평판이 그다지 좋지 못했다. 함부로 날뛰는 것으로 유명했고 애초에 주 재상의 아버지는 황위를 넘본 적도 있었으나 말로는 비참했다.이렇게 뼛속 깊이 뿌리박은 야심이 핏줄을 타고 흐르는 게 아닐지 걱정해서 주 재상이 그런 엄명을 내린 것으로 야심을 품지 못하게 미연에 방지하는 효과도 있었다.원용의가 문가를 보더니 물었다. “사식이는요? 오늘 왜 사식이가 안 보이죠?”“기 상궁이랑 구경하러 갔어. 좋은 비단을 몇 필 사고 싶다던데. 애 낳고 입을 수 있게 옷을 만들겠다며.” 원경릉이 대답했다.사식이가 임신한 뒤로 배가 엄청 불렀는데 아이를 낳고 나면 분명 지금 이 옷은 못 입게 되므로 다시 급하게 새 옷을 지어야 할 것이다.“굳이 당신까지 갈 필요까지 있어요? 가지고 오라고 하면 되지. 무턱대고 부딪히고 본다니까요. 자기가 임신한 몸인 걸 신경 안 쓰나 봐요.” 원용의는 사식이가 불안하고 걱정돼서 견딜 수가 없었다. 사식이는 역시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물불을 안 가리는 무모한 동생이었다.“조심할 거야, 전에 착상을 위해 꼼짝도 못 해서 답답해 죽을 뻔했거든. 나가서 좀 돌아다니라고 해. 사식이가 이제 많이 철이 들었어.”원경릉이 이 말을 하는데 마음이 착잡했다. 사식이 뿐 아니라 모두가 철이 들어버렸다. 미색마저 처음의 예리함은 없고, 원용의는 어머니가 된 뒤로 상당히 우아하고 차분해지며 점점 일국 친왕비의 풍모를 갖춰가고 있었다.모두가 성장했고 모두가
원경릉의 이런 얘기를 원용의도 미색도 이해할 수 없었지만 결국 미래는 아주 멀리 있으니 눈앞에 있는 것만이 가장 실제적이란 말로 해석했다.우문호는 만취해서 소월각으로 옮겨졌다. 원경릉도 말없이 우문호를 챙기러 돌아갔다.우문호는 침대 끝에 반쯤 엎드려 있고 탕양이 하는 수 없었다는 듯 말했다. “침대에 똑바로 올려드렸는데 이렇게 또 엎드려서 주무시네요.”“이 자세 어디서 많이 보던 자세 같지 않아요?”우문호가 엉덩이를 치켜들고 침대에 엎드려 있는 모습을 본 탕양이 눈시울이 뜨거워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곤장을 맞았던 초왕 전하와 완전 똑같네요!”“누가 감히 나한테 곤장을 때려?” 우문호가 고개를 돌려 막 손을 휘휘 젓더니 베개 하나를 끌어와서 턱 밑에 괴더니 웅얼웅얼 뭐라고 하다가 그대로 엎드린 채 잠이 들었다.원경릉이 어이없어하며 말했다. “내가 챙길 게. 탕양도 적지 않게 마셨으니 가서 좀 쉬어!”탕양이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소인은 이만 물러가겠습니다!”탕양이 가고 원경릉이 우문호의 등을 두드리며, “똑바로 누워 발로 내 배 차겠어.”우문호는 쿨쿨 잠에 빠졌다가 이 말을 듣고 거의 무의식적으로 몸을 침대 한쪽으로 웅크리며 조심조심 돌아눕더니 미안한 얼굴을 보였다. “차?”원경릉이 침대 곁에 앉아 손수건으로 얼굴을 닦아주었다. “안 차. 그런데 어쩌자고 그렇게나 많이 마셨어? 완전 떡이 됐네!”우문호가 히히 웃으며 원경릉에게 외쳤다. “좋아서!”우문호가 자기 가슴을 쾅쾅 치며 술기운을 토해냈다. “좋아서, 오늘 이분께서 기분이 좋으셔서 아주 끝장 보게 마셨지.”우문호가 원경릉의 손목을 잡아끄는데 눈가는 술에 취해 벌겋고 눈은 흐리멍텅했다. “원 선생, 나 기분이 너무 좋아, 알아? 진짜 너무 좋다고!”“냉대인이 재상이 돼서?” 원경릉이 우문호에게 물었다.“그렇지, 수리시설이 엄청 열악했거든. 길을 닦는 것도 열악하고. 전에는 답답해도 참아야 했으니 큰 뜻을 품어도 유명무실했지. 뭐든 하고 싶은데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으니까.” 우
술을 깨자마자 술이란 말을 들으니 금방이라도 토할 것만 같았다.“녹주야, 태자 전하께 죽 올려드려!” 원경릉이 일어나 밖에 대고 소리치자 밖에서 녹주의 맑은 목소리가 울렸다. “예!”우문호가 침대에서 내려와 원경릉을 껴안았다. “역시 우리 마누라밖에 없다니까. 내가 배고픈 거 바로 알고 죽도 준비해 주고.”“앞으로는 이렇게 많이 마시지 마요. 몸 상해!” 원경릉은 뒤에서 자신을 감싼 우문호의 손을 꽉 쥐고 머리를 우문호의 가슴팍에 기댔다. “애들이 봐, 애들은 본 대로 배운다고.”“알아!” 우문호가 원경릉의 머리카락에 입을 맞추고 원경릉 앞으로 돌아와서 원경릉이 방금 쓴 걸 보고는 물었다. “이건 뭐야?”“자기가 술 마시고 한 얘기를 다 적을려고!” 원경릉이 방긋 웃었다. “관계 수리 시설이랑 길을 닦는 거랑. 북당의 미래 발전에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라고 했어. 아마 자기가 하려는 건 이 두 가지 일이겠지.”“쓸 필요 없어. 내가 다 기억하는 걸!” 우문호가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누르며 원경릉에게 미소를 띠었다.“자기한테 보여줄 거 아니야. 황조부랑 주 재상이 나더러 정기적으로 보고하라고 시키신 일이야!” 원경릉이 웃으며 말했다.우문호도 따라 웃었다. “어째서? 별장까지 가셔서도 정사를 내려놓지 못하시는 거야?”“평생 신경 써 오시던 건데 내려놓는다고 순간 놓아지겠어? 오해하지 마. 저분들이 자기가 어떻게 하는지 감독하시려는 거 아니니까. 그저 알고 싶으실 뿐이야.”우문호가 이어서 말했다. “내가 오해할 게 뭐가 있어? 언제든 당신한테 보고하라고 하시는 건 저분들이 궁중과 조정에 밀정을 남겨두지 않았다는 뜻으로, 오히려 저분들이 정사에 손을 놓으셨다는 말이지.”원경릉이 말했다. “사람을 통해 서신을 보냈어, 이틀 뒤에 나랑 할머니가 같이 별장에 다녀오기로. 주 재상 처방을 조절해야지.”녹주가 죽을 가져와서 우문호가 먹으며 물었다. “주 재상의 눈은 정말 좋아질 수 있을까?”“아직도 그 얘기, 추적을 관찰해야 한다니까!” 원경릉이 한
경단이가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아빠, 화본에서 그거 유행 지난 지 꽤 오래 됐어요.”우문호가 놀라며 물었다. “유행이 이미 지났어? 그럼 지금 뭐가 유행인데?”경단이가 우문호를 자리에 앉히고 정색하며 말했다. “말씀드릴게요. 그건 아주 오래된 공식으로, 지금은 안 써요. 이 화본의 서생은 경성에 과거를 보러 갔다가 장원급제를 해서 관아에 들어갔죠. 하지만 출신이 가난하고 비천한 관계로 배경이 없어 사람들의 사냥감이 되었어요. 사람들의 속임수에 당하고 이용당하다가 배척당하기까지 해요. 나중에 여자가 그 사실을 알고 가산을 모두 팔아 경성으로 들어오죠. 물론 경성으로 오는 도중에 반드시 기연을 만나 특별한 능력을 배우게 되고요. 예를 들면 절세의 무공 같은거죠. 나중에 이 여자가 경성에 들어와 장원 급제를 도와 맞닥뜨리는 모든 적을 하나씩 다 죽이고 결국 두 사람을 해코지 한 모든 사람들은 다 진멸하겠죠. 그리고 대단원은 둘이 혼인하는 거예요. 제가 지금 막 그들이 혼인하는 부분을 보고 있으니 방해하지 마세요.”우문호가 입술을 실룩거리며 고개를 돌려 어이없다는 듯 원경릉을 바라봤다. “그...... 여자가 상경하는 도중에도 배울 수 있었던 절세무공을 당신은 이리 나리께 그렇게 오랜 시간 배웠잖아. 어디까지 배웠어?”원경릉이 우문호의 목에 손 날을 새우더니 웃으며 말했다. “자기에겐 이걸로 충분해!”우문호가 “아야!”하고 비명을 지르며 침대에 쓰러진 척을 하며 칠성이 다리 위에 누웠다. 칠성이는 포동포동한 손가락으로 우문호의 얼굴을 만지며 장난쳤다. “아빠는 아직도 엄마 못 이기네?”“못 이겨, 아빠는 평생 엄마의 적수가 못 돼!” 우문호가 일어나서 한 손으로 칠성이를 품에 안고, “물론 아빠가 다 양보해서 그런 거지. 진짜 능력은 아빠 손가락 하나로도 엄마를 납작 쿵으로 만들 수 있어.”칠성이가 눈살을 찌푸리며 진지하게 말했다. “사실 우리도 손가락 하나로 아빠를 납작 쿵으로 만들 수 있어요. 아빠.”우문호가 칠성이를 내려놓고 무표정하게 말했
우문호가 골똘히 생각하더니 갑자기 원경릉의 손을 잡고 진지하게 말했다. “원 선생, 나 내일부터 매일 태부 집에 가서 한 시간씩 있다가 올게.”“태부 집에 가서 뭐 하게?” 원경릉이 물었다.우문호가 살짝 의기소침해져 말했다. “역시 공부를 좀 더 해야 할 것 같아. 앞으로 애들이 뭐라고 했는데 또 못 알아들으면 안 되잖아. 이번엔 이매망량이었지만 다음은 무슨 알아듣기 어려운 걸 꺼낼지 모르니까.”원경릉은 그 말에 조금 감동했다. 우문호가 이렇게 자식들을 위해 바쁜 와중에도 시간을 쪼개 공부하려고 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사실 부모가 아무리 따라잡으려고 노력해도 결국 애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는 날이 오고야 만다.원경릉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바빠서 다닐 수 있겠어? 매일 한 시진씩 내는 건데. 태부가 알겠다고 한 뒤에는 빠질 수 없어. 어르신이 얼마나 고집스러운지 알잖아.”“괜찮아. 아무리 바빠도 애들이 더 중요하니깐.” 우문호가 원경릉의 손을 잡고 자갈길을 따라 걸으며 말을 이었다. “난 이제 한가해져서 걔들과 같이 있고 싶은데, 걔들이 우리랑 있고 싶지 않은 순간이 오는 게 걱정이야.”“알았어, 난 당신 항상 응원해!” 원경릉이 온화하게 웃었다.우문호는 한 번 내뱉은 말은 무조건 지키는 사람으로, 매일 태부를 찾아가 한 시간씩 공부하는 것 외에도 화본을 읽기 시작했다.막 읽기 시작했을 때는 진도가 안 나가는 것이 머리가 띵하고 혼미해졌지만 계속 읽어 나가다 보니 결국 현실과 타협하는 법을 터득할 수 있었다.2~3권정도 다 본 뒤 경단이와 서로 줄거리에 대해 의견을 내세우며 토론했다. 그 둘은 줄거리를 가지고 얼굴이 다 시뻘게지도록 싸워댔지만 금방 의견이 통일되며 토론하는 나날이 계속 이어졌다.나중에는 다른 아이들도 토론에 참여시키는 데 성공해서 쌍둥이도 곁에 앉아 들으며 재밌어 하는 게 부자가 정말 하나가 된 모습이었다.원경릉은 이 모습에 기쁘면서도 가슴이 먹먹해졌다. 우문호가 이번에 아바마마의 중년 ‘모반’에 무엇인가를 느
태상황은 원경릉의 할머니를 불러 얘기하는 것을 좋아했다. 원경릉에게 대흥국에서 오신 노부인은 박식하고 말투와 태도가 예의 발랐기에 그녀와 얘기하고 있으면 봄바람이 살랑살랑 부는 것 같이 편했다. 원경릉이 이 말을 듣고, 늘 긴장하고 있어서 내천(川) 자로 깊은 주름이 패인 태상황의 얼굴을 보고 또 보며, “봄바람이 마음에 불어온다고요?”태상황이 한줄기 미소를 보였다. “맞아!”원경릉은 태상황과 우문호 둘이 갑자기 고상해진 게 영 낯설었다. 요즘 우문호는 집에서 말투도 부드럽고 따듯한 게 아주 우아 그 자체였다.원경릉이 말했다. “노인이 친구를 사귀는 것도 좋은 점이 있죠.”할머니도 자신의 친구가 있고 자신의 사교권이 있어야 했다.하지만 이어진 태상황의 물음을 듣고 원경릉의 몰골이 순식간에 헬숙해졌다. “너 노부인의 아명이 뭔지 알아?”“아...... 명이요?” 원경릉은 하마터면 너무 놀라 사레가 들릴 뻔했다.“응, 이름말이야. 과인이 계속 노부인이라고 부르는 것도 그런 게 호칭 자체가 너무 나이 들어 보이잖아.”“할머니께서는 이미 나이가 들으셨어요. 적어도 태상황 폐하보다는 많으시죠!” 원경릉은 ‘천벌을 받으시려고. 태상황 폐하께서 대체 왜 이러시는 거지?’라고 생각했다. 태상황은 기분이 나쁘다는 듯 말했다. “어디가 늙었다는 거야? 그렇게 안 늙어 보여. 내가 보기엔 그냥 여동생 같아.”원경릉은 차라리 정신을 잃고 싶었다.“노부인 아명이 뭐야?” 태상황이 꿋꿋하게 물었다.원경릉은 장난기가 발동해서 일부러 영어 이름을 아무렇게나 지었다. “할머니께서는 주디라고 합니다!”왜인지 모르지만 태상황에게는 할머니의 본명을 가르쳐주고 싶지 않았다.“주딩? 주딩이? 왜 그런 이름으로 지었어?” 태상황이 미간을 찡그렸으나 곧 고개를 갸웃거리고 생각하더니 과찬의 평가를 내렸다. “이 얼마나 겸손한 이름이야. 입은 화를 부르는 뿌리임을 잊지 말라고 강렬하게 표현했군. 그런 뜻 맞지?”원경릉은 입꼬리를 씰룩거리며 이 말에 별로 대답하고 싶지 않았다.할
태상황이 원경릉에게 말했다. “어허, 너 노부인이랑 상당히 닮았어. 특히 그 코, 콧날이 높고 콧방울이 동그래 가지고 윤기가 도는 게 아주 똑같다고!”원경릉은 말로는 표현하기 힘든 아주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그녀는 별장을 나올 때 마차에서 할머니와 수다를 떨며 일부러 물어봤었다. “맞아요, 황조부랑 말이 잘 통하시는 거 같던데, 할머니...... 황조부를 어떻게 생각하세요? 친구로 생각하시는 거죠?”할머니가 미소를 지으며 원경릉의 손등을 쳤다. “우리 손녀가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이지?”“그냥요!” 원경릉이 뜨끔해져 바로 답했다. 할머니가 지혜로운 눈빛으로 원경릉을 바라보며 더욱 깊어진 미소를 띠었다. “왜? 너 원래 이 할미가 황혼연애 하는 걸 장려하지 않았어? 그냥 입에 발린 소리였나?”원경릉이 애써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입에 발린 소리라뇨? 할머니꼐서 누군가를 만나 연애하시는 걸 제가 얼마나 응원하고 있는데요.”“하지만 태상황은 안된다는 말이지?” 할머니가 물었다.그러자 원경릉이 당황하며 고심히 생각했다. ‘왜 태상황은 안되지?’ 원경릉은 사실 자신의 이런 복잡한 심경이 어디서 왔는지 모르겠다. 단지 마음이 어지럽고 복잡한 건 사실이었다.할머니가 원경릉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그냥 장난친 것이다. 나와 태상황 폐하는 그저 말이 통하는 ㅊ친구 사이다. 태상황 폐하께서 하는 말이 판에 박힌 딱딱한 말이라고 생각하지 말아라. 아는 게 많고 일에 대해서도 사람에 대해서도 주도면밀하게 관찰하시거든. 태상황 폐하는 어의나 의사들처럼 경직된 사람이 아니야, 가끔 농담을 해서 사람을 즐겁게 할 줄 알지. 친구로 분명 괜찮은 분이란다.”원경릉은 의아했다. “황조부가 농담을 할 줄 안다고요? 무슨 말로 사람을 웃겨요?”할머니가 웃으며 말했다. “지난번에 왔을 때는 혈압을 내려서 몸조리할 수 있는 처방을 드렸는데 그 처방이 좀 쓰거든. 태상황 폐하께서 내가 간 뒤에 농담으로 사람을 시켜 약을 전부 다바오한테 줬다더라, 재밌지 않아?”원경릉은
관계수리 시설 확충은 신임 재상의 도움 아래 마침내 조정을 통과했다.회왕은 호부상서 직으로 승진해 북당의 재신이 되었으나 우문호는 최근 계속 회왕을 괴롭혔다. 비록 관계 시설 확충 안건은 통과됐지만 돈을 얼마나 지출하는지는 공부와 합의해서 예산을 정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우문호는 조금이라도 예산을 더 확보해 일을 제대로 처리하고 싶었다.그리고 치수라고 하면 적임자가 하나 있는데 바로 왕강이였다!왕강은 천문지리에 정통하고, 수리 시설에 정통할 뿐만 아니라 고금의 지식에도 밝은 인재로 명원제도 여러 차례 조정에 합류할 것을 권했다. 하도 고사하는 바람에 처음엔 할 생각이 없었지만 이번에 우문호가 부르니 바로 짐을 챙겨서 왔다.우문호는 왕강을 위해 공부 시랑 직을 준비하고 왕강과 공부 상서가 전면적으로 나서 회강의 수리 시설 보수를 총괄하도록 했다.왕강을 공부 시랑으로 발탁하는데 반대하는 목소리는 없었다. 왜냐하면 6부 중에서 공부가 가장 괄시받고 있었기 때문인데, 공부의 일은 대부분 무식쟁이에 흙투성이 인부들과 진행하는 것으로 선비들은 줄곧 이들을 무시했었다.하지만 왕강은 아주 기꺼운 마음이었는데, 공부야 말로 진정으로 백성을 위해 실질적인 일을 하는 관공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 점도 우문호가 왕강을 부른 이유 중 하나로, 우문호의 부름에 왕강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왔다.왕강은 전에 원경릉과 태양의 흑점에 관해 토론한 적이 있는데 이번에 회강 지부로 가기 전에 원경릉을 찾아와 가르침을 받고 싶다고 했다.태양에는 여전히 흑점이 있었는데 이 흑점은 북당에 어떤 영향이 주는지에 관해서였다.사실 왕강은 흑점이 지구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묻고 싶었다.원경릉은 전에 왕강과 태양의 흑점에 대해 논의했던 기억을 되살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왕강은 이미 오랜 시간 관찰을 지속해 아마도 북당 전체를 통틀어 처음으로 잦은 흑점들을 발견한 사람일 것이다. 원경릉은 왕강의 질문에 이렇다 할 답안을 바로 제시할 수 없었다. 태양 흑점 활동이 빈번한 것이
“우선 박원이랑 소홍천 의사부터 물어보자. 억지로 하게 하고 싶지 않아. 그동안 그들이 날 많이 도와줬으니 전부 원하는 대로 하자고.” 우문호가 말했다.“그러자!” 원경릉이 일어서며 말했다. “오늘 저녁 애들 데리고 어머님께 가서 수라를 들려면 빨리움직여야 해. 꾸물대면 늦을거야.”그러자 우문호도 계란이를 안고 일어섰다. “그래, 우리 황조모한테 가서 맘마 먹자.”우문호가 나가서 부르자 아이들이 달려와, 같이 왁자지껄하게 수라를 들러 황태후 전으로 갔다.황태후는 원래 우문호에게 할 말이 있었지만, 식사 자리에 아이들이 있어서 기다렸다가 저녁을 다 먹은 뒤 우문호와 아이들이 나가서 놀고, 원경릉이 황태후와 얘기를 나눌 때 말을 꺼냈다.“천행이가 태어난 지 얼마나 됐다고 부마를 풍도성으로 보낼 수가 있지.. 공주가 얼마나 괴로웠을까.”원경릉이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공주는 사정을 훤히 알고 있어서, 이리 나리께서 풍도성에 가는 걸 지지하셨는걸요.”“말은 그렇게 해도, 출산 후에 여자 곁엔 남편이 있어야 하는 법이야. 하지만 이것도 단지 우리 가족끼리 하는 얘기일 뿐이고, 조정 일을 내가 함부로 이렇다 저렇다 할 수 없는 노릇이지.”황태후는 이리 나리가 풍도성으로 간 진정한 목적을 전혀 몰랐으며, 단순히 어지러운 형국을 정리하러 갔다고만 알았기 때문에 순수하게 공주를 아끼는 마음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어마마마, 걱정하지 마세요. 이리 나리는 이미 돌아오는 중이래요.” 원경릉이 위로하자 황태후가 기쁜 표정을 지었다. “그거 잘됐네!”온 가족이 별빛을 받으며 천천히 소월궁을 거닐었다.계란이는 아빠 품에서 잠이 들었고, 아이들은 놀다 지쳐서 아빠 엄마를 따라 천천히 걷고 있었으며, 목여 태감이 궁인 둘을 데리고 뒤에서 조용히 따라오는 가운데, 궁 안은 인적이 드물어 밤이 되자 상당히 고요했다.“어마마마께서 공주를 아끼셔서, 이리 나리가 하필 이때 풍도성에 보냈냐고 하셨어.” 원경릉이 말했다.“날 원망하셨어?” 우문호는 품에 있는 아이가 깰
늑대파 사람이 안지여와 소여쌍을 질질 끌고 나가는데, 소여쌍은 여전히 미친사람처럼 웃어대기만 했다.이리봉청은 그들이 끌려 나가는 것을 보자, 눈앞에 안지여가 자신을 데리고 소여쌍의 침대 앞으로 가서 소여쌍의 그 악랄한 말을 듣던 순간이 떠올랐는데, 눈 깜짝할 사이에 여리여리하고 아름답던 그녀가 이렇게 변해 버린 게 꿈처럼 느껴졌다.풍도성을 접수한 뒤 안풍 친왕은 관리들을 새롭게 임명했고, 더 이상 성주 같은 것을 두지 않고 조정과 이부에 적합한 인사를 선발해 풍도성 지부로 앉힐 것을 요청했다. 풍도성은 더 이상 이전의 독립 자치 지역이 아닌, 다른 주나 현과 마찬가지로 조정에 귀속되어 통일서 있게 다스리게 되었다.더불어 안풍 친왕은 별도로 서신을 써서 황제인 우문호에게 보냈는데, 풍도성을 추천하지만, 이건어디까지나 건의와 추천이니 황제가 생각하는 마땅한 사람이 있으면 안풍 친왕의 추천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동시에 안지여의 잔당들이 계속 나타났다.안풍 친왕이 이번에 이렇게 많은 사람을 데려오고, 호랑이와 눈 늑대, 회색 늑대까지 출동시킨 건 바로 모든 세력을 강화하고, 신속하게 진압해 풍도성을 조정에 복귀시키고 보름 만에 비적을 토벌하며 기본적인 숙청을 마무리하기 위해서였다.박원은 잔당의 남은 불씨가 다시 타오르는 것을 막기 위해서 안풍 친왕의 영패를 가지고 부근에 5천 명의 군사를 파견시켜 풍도성을 지켰다. 이리 나리는 자금을 지원해 천문 세가의 묘를 이장하였는데, 이전 무덤은 안지여가 고른 곳으로 폐허에 가까워, 그는 천문 세가 사람들이 그런 곳에서 안식을 취하기를 원하지 않았다.풍도성에 온지 거의 한 달가량 될 때쯤, 대군은 경성으로 돌아갈 채비를 했다.돌아가기 전에 미색이 안지여와 소여쌍을 보러 갔다가, 돼지우리에서 죽느니만 못한 삶을 사는 것을 보고 그제야 비로소 맺혀 있던 한이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미색은 이리 나리와 어머님에게 알리지 않은 것이, 두 사람은 이미 안지여가 누군지 잊은 듯 보였기 때문이었다.
이리봉청에게 있어 모든 건 지나가지 않았고, 36년 전 일은 여전히 어제 일 같이 느껴졌다.“어머니, 그를 어떻게 처분하시겠어요?” 이리 나리는 이리봉청의 마음을 넘겨짚을 수 없어 함께 걷는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네 생각은 어떠니?” 이리봉청이 다시 되묻자 이리 나리가 원한에 사무친 눈빛으로 말했다. “제게 처분하라고 하면 전 그를 죽여 버릴 겁니다.”이리봉청은 알았다며 대답만 했다가, 다시 30분쯤 걷다가 정자에 앉아 을 때 말을 덧붙였다. “난 안 죽일 거야.”이리 나리가 약간 놀라서 물었다. “어머니, 또 마음이 약해지신 겁니까?”이리봉청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 반대야. 그 인간을 죽이는 게 마음이 약해진 거지. 사실 며칠 동안 이전의 원한을 내려놓을 수 있을지 생각해 봤는데, 내려놓을 수 있다면 그 인간을 백번이라도 죽이겠지만, 난 그럴 수 없더구나. 아들아, 게다가 오늘 천문 세가 대문을 들어서는 그 순간, 더욱 마음을 굳혔단다.”이리봉청이 일어나 집안을 둘러봤다. 이곳은 그녀의 가족들이 살아 원래 온통 사람 소리로 가득한 곳이였다. 그들의 웃던 광경이 눈앞에 비치는가 하더니, 눈 깜박할 사이에 모두 사라지고 말았다. 그들은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천문 세가는 큰 잘못을 저지른 것도 없는데 멸문지화를 당했고, 가엾게도 그 중엔 아이들이 많아서 제일 어린아이는 이제 태어난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았었다.이리봉청의 얼굴에 눈물이 타고 흐르며 가슴이 미어졌다. “그자와 소여쌍을 밖에 내버리고 사람을 시켜 지켜보도록 해. 죽게 두지 말고 계속 살려둬. 36년은 더 살면서 이 세상의 고생을 모두 겪어야, 내 마음에 맺힌 한이 풀리고 억울한 망자들도 안식에 들지!”이리 나리는 온몸으로 그 마음이 느껴져, 어머니가 눈물 흘리는 것을 더는 볼 수 없었다. “네, 전부 어머니께서 말씀하신 대로 할게요.”안지여와 소여쌍은 버려졌다. 짧은 며칠 사이에 안지여는 의기양양하던 성주에서 시궁창 쥐로 변해, 사람들이
안지여는 풍도성 지하감옥에 갇혔다. 빛 한 줄기 없는 지하감옥에서 사방에 끝없는 어둠과 절망만이 안지여를 삼키고 있었다.훼천의 형벌은 12 시진 후면 사라져서, 앞으로 안지여는 그저 한 명의 폐인일 뿐이었다.안지여의 결사대가 성으로 공격해 들어오기 전에, 이리봉청은 오 선생을 찾아내 안지여가 저지른 모든 죄를 고백하게 하고 안풍 친왕이 친필로 받아 적었다. 안지여가 당시 천문 세가를 해친 경위를 소상히 써 내려간 뒤, 오 선생과 안풍 친왕의 직인을 찍고 인쇄해서 대중에게 공개했다.안지여의 죄악은 하늘을 찔러 백성들 모두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안지여의 결사대의 옛 부하들이 본래 성을 공격해 들어가 안지여를 구출할 계획을 세워놓았으나, 안지여의 죄상이 공포된 뒤로 많은 사람들이 해산하였다. 유일하게 무대장군만이 수천 명을 데리고 성으로 쳐들어왔지만, 안풍 친왕과 이리 나리가 이미 대비해둔 덕분에, 경성에서 굴러온 돌이 무대장군의 박힌 돌을 빼내는 전투를 벌였다.풍도성에 온 지 7일째, 안풍 친왕은 풍도성을 접수하고 성에 살던 사람을 쫓아내며 서민으로 강등시켰다.안지여와 소여쌍에 대한 처분은 이리봉청에게 넘겼다.안지여는 캄캄한 지하감옥에서 6일을 지내는 동안, 처음엔 침착한 척 가장했으나 사흘째가 되자 울부짖으며 악독한 저주의 말을 내뱉더니, 나흘째가 되자 용서해달라고 애원하며 참회했다.손발의 힘줄이 끊어진 안지여는 일어나 걸을 수도 없고 심지어 스스로 몫숨을 끊을 힘도 없었다.그 와중에 매일 누군가가 먹고 마시도록 해주고, 상처도 치료해 주어 살 수 있다는 부질없는 희망을 품게 했다.훼천의 말에 따르면, 진정한 절망은 살아도 죽느니만 못하고,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 것으로, 온 마음으로 죽기를 바라지만 살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었다가, 안간힘을 쓴 뒤 다시 절망에 빠지는 것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것으로, 사람을 한없이 죽였다 살렸다 괴롭힌다고 했다.결국 안지여를 죽일지 말지 여부는 이리봉청에게 달렸는데, 그녀는 안지여를 단번에 죽여 천문 세가
안지여의 이마에 파란 힘줄이 불끈불끈했으나 냉정을 가장했다. “내가 두려워할 줄 알았나 보지? 죽음도 두렵지 않은데 뭘 더 두려워하겠어?”“넌 두려울 것이야!” 이리봉청이 고개를 돌려 이리 나리를 보고 살짝 그의 팔을 잡았다. “내가 오는 길에 늑대파 사람이 그러던데, 천하에서 제일 잔혹한 형벌을 아는 사람이 늑대파에 있다고. 그게 사실인 것이냐?”이리 나리가 가볍게 답했다. “물론 사실이죠. 훼천이라고 합니다. 늑대골 출신이에요.”“안지여가 버틸 수 있는지 어디 한 번 보고 싶구나.” 이리봉청이 말했다.이리 나리가 엄숙한 태도로 명을 내렸다. “훼천!”그러자 훼천이 급히 나왔다. “이리 나리, 분부하시지요!”이리 나리는 그가 짐짓 냉정한 척하고 있으나 눈빛이 조금씩 허물어져 가고, 몸까지 부들부들 떠는 것이 아주 만족스러워 훼천에게 담담하게 말했다. “시작해!”안지여가 갑자기 큰 소리로 욕했다. “난 네 아버지거늘, 감히 나에게 손을 대다니, 천벌을 받아 마땅한 놈 같으니라고!”이리봉청이 이 말을 듣고 잠시 주저하는 눈빛으로 이리 나리를 바라봤다.이리 나리가 이리봉청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제 아버지는 오직 저를 키워주신 안풍 친왕뿐이십니다.”이리봉청이 살짝 안도했다. “저 인간이 단지 나만 해쳤으면 네 체면을 봐서 놔줬겠지만 천문 세가의 수백 명의 목숨을 앗아갔으니 난 용서할 수 없구나.”“이리봉청, 너 언제 이렇게 악랄하게 변했어? 죽이려거든 그냥 죽여. 난 천문 세가 사람을 죽이긴 했어도 그들을 괴롭히진 않았어. 네가 날 죽이려거든 깨끗하게 단번에 죽여!”안지여가 크게 노해 몇 번 몸부림을 치다가 상처가 벌어지는 바람에 배에서 선혈이 흘러나오고, 훼천이 가까이 다가가자, 눈에 두려움이 깊어졌는데, 늑대골 출신 훼천은 온몸에서 피비린내가 뿜어져 나와 안지여를 덜덜 떨게 했다.“이리율!” 안풍 친왕비는 시ㅈ가하기 전에 이리 나리를 불렀다. “내가 여기서 네 엄마와 같이 있을 테니 넌 먼저 나가 있거라!”이리 나리가 안풍 친왕비에게
안지여에게 구원 병력이 없는 상황에서, 이리 나리 일행이 성을 제압하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대오가 경성에서 출발하기 전에, 안풍 친왕비가 미리 사람을 풍도성으로 보내 각처, 특히 성 수비군과 군대에 잠입시켜, 음식에 효과가 천천히 나타나는 독을 풀어, 오늘 중독 증상이 나타나도록 독의 분량을 조절했다.적어도 내일까지는 안지여를 도우러 올 사람은 없었다. 독성은 적어도 이틀이 지나야 깨끗해지기 때문에 이틀 동안 그들은 설사와 전신 무기력으로 성에 무슨 일이 있다는 걸 알아도 와서 도울 수 없었다.그리고 그들이 기력을 회복할 때쯤이면, 안지여는 벌써 죽었을 것이다.안풍 친왕과 이리 나리는 성을 통제하고, 안지여 부부를 제압해 두 사람을 줄로 묶고 지혈시켜 주었다.안지여는 요 몇 년 동안 자신이 상당히 대단하다고 여겼다. 이는 풍도성이 부유하기 때문으로, 돈으로 많은 사람을 살 수 있었으며, 여러 곳에서 추켜세워 주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처절하게 패배한 적이 없었던 이유는 진정한 적이 없기 때문으로, 주변의 떠돌이 비적은 작은 마을 규모로 너무 작아서 소탕할 수 있었던 것이다. 결코 그가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적이 너무 약해서였다.조정 사람과 비교했을 때, 그는 제대로 훈련받은 적 없는 비적었기에 일격도 감당할 깜냥이 못됐다.이리 나리는 둘을 중정에 묶어 두었다. 온 바닥에 남은 음식과 깨진 기와가 널브러져 있는 것을 본 안지여는 마음속 깊이 분노가 일었다. 자신의 생일날, 그를 다치게 한 것이 바로 그의 친자식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더욱이 오늘 이렇게 많은 고수가 현장에 있었는데도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이런 결말을 맞다니 너무 불쾌했다. 이리 나리가 이리봉청을 부축하고 안지여 부부 앞으로 가서, 그녀가 안지여 부부를 내려다보자, 그들은 낭패에 달가워하지 않는 기색으로, 이리봉청은 분노하는 마음과 함께 서글픈 마음도 들었다. 그들을 죽이면 커다란 복수는 이뤄 천문 세가 망자의 원혼은 달랠 수 있었다.하지만 저들을 이렇게 쉽게
“그럴 필요 없을 것 같은데?!” 이리 나리가 검을 휘두르며 안지여를 겨누자, 안지여가 공중으로 뛰어올라 후퇴했다.공자들은 돕고 싶었으나 검은 옷을 입은 노인들에게 바로 제압당했다. 안지여는 이리율 것으로 그들은 주변 사람을 제압하기만 할 뿐 옆에 서서 전투를 관전하고 있었다.이리율의 무공이 얼마나 뛰어난지 그를 가르친 안풍 친왕 부부를 제외하고, 사실 많은 사람들은 모르고 있었다.이리율의 검법은 신속하고 맹렬해서 안지여는 상대하느라 쩔쩔매고 구석으로 몰리고 있었다. 성안의 호위들은 늑대 무리와 늑대파, 홍매문 사람들에게 막히는 바람에 안지여는 홀로 고전을 면치 못했는데 그래도 아직은 버틸 수 있었다.하지만 30분을 못 가서 안지여는 질게 틀림없었다.놀란 나머지 계속 실성해 있던 소여쌍이 갑자기 이리봉청을 향해 바싹 마른 손을 뻗어, 그녀의 목을 조르며 광적인 집착과 분노에 사로잡혀 성질을 부렸다. “멈춰, 다들 멈추라고. 안 그러면 내가 이년을 죽여버릴 것이니까!”소여쌍은 무공을 할 줄 알았지만 잘하지 못한 것이 어릴 때부터 계속 중병을 앓아 무공 연습에 소홀했고 성주 부인이 된 뒤로는 더욱 병기에 가까이할 일이 없었지만, 공력만큼은 아직 약간 있었다.소여쌍은 증오의 힘으로 이리봉청의 목을 졸랐는데, 소여쌍이 조금만 더 힘을 주면 이리봉청의 목을 부러뜨릴 것만 같았다.안풍 친왕이 차가운 눈빛으로 나서려 하자, 안풍 친왕비가 말리며 고개를 살짝 흔들었는데, 그럴 필요 없다는 뜻으로 뒤에 있던 사람들에게도 참으라는 눈짓을 하자 누구도 나서지 않았다.모두가 이리봉청이 제압당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녀가 고개를 돌리자, 손가락으로 뭔가를 쥐고 있어 소여쌍의 어깨 위를 휘감고 팔을 눌러 소여쌍이 머리를 돌리게 했다. 이리봉청 손에 쥔 것은 바늘로, 그대로 소여쌍의 오른쪽 눈을 찌르고 들어갔다.소여쌍이 절규하며 이리봉청을 놔주고 선혈이 흐르는 눈을 움켜쥔 채 비틀거리다 바닥에 쓰러져 데굴데굴 구르며 새된 소리를 지르는데, 원망과 저주의 말을 끊임없이 쏟아
풍도성 중정에는 안지여의 아들들과 사위가 그의 곁에 남았는데, 크고 작은 부상을 입어 점점 공포에 질려가고 있었다.‘이 사람들, 아주 대단하구나!’안지여는 이리봉청을 보고 비록 조금 냉정해 보였지만, 여전히 놀라운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갑자기 소여쌍이 큰 소리로 웃으며, 몸을 앞뒤로 흔들며 눈물을 찔끔거리더니 완전히 미친 사람처럼 갑자기 웃음을 멈추고 부들부들 떨리는 손가락으로 이리봉청을 가리키며 원망했다. “뜻밖에 네가 안 죽었단 말이지? 게다가 아들까지 있고. 참으로 황당하구나. 정말 너무 황당해. 원래 죽어야 했을 인간은 죽지 않고, 잘 살아야 할 사람은 36년간 괴로움을 당했어. 이리봉청 네가 날 비참하게 만들었으니 넌 이제 지옥에 떨어져야 해.”이리봉청은 소여쌍의 말을 들은 체 만 체했는데, 그녀 눈에는 지금 안지여만 들어왔다.안지여는 36년을 살아왔지만, 이리봉청에게 있어 36년은 마치 사라진 시간처럼 멸문지화의 원한이 어제 일 같았다.안지여도 이리봉청의 눈에서 분노와 악랄함을 보고, 처음으로 마음속에 두려움을 느꼈다.안지여는 억지로 감정을 가라앉히고 말했다. “네 사람을 데리고 가. 지난 일을 묻지 않을 테니. 그렇지 않으면 풍도성에서 곧바로 10만 대군이 올 것으로, 살아서 도망갈 생각은 꿈도 꾸지 않는 게 좋아.”이리봉청의 목소리가 낮게 잠겼다. “우리는 이 많은 사람들을 데리고 바로 네 성으로 쳐들어갈 수 있어. 넌 이미 졌어.”안지여가 웃었다. “졌다고? 그래?”안지여는 수하의 대장군이 믿음직해서, 그들을 당하게 놔줄 수도 있다고 여겼다. 대장군의 부대는 분명 치밀하게 준비되어 있을 것으로, 아마 지금쯤이면 궁수들이 이미 배치를 마치고 그들을 전부 쏴 죽이기 위해 기다리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이리 나리가 이리봉청의 손을 잡고 말했다. “어머니, 저자와 말 섞으실 필요 없어요. 앉아서 지켜보시기만 하면 됩니다!”말을 마치고 의자를 올리더니 이리봉청을 부축해서 앉혔다.안지여가 이리 나리를 보는데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안지여가 퍼뜩 눈을 돌려 이리 나리를 보았다.‘이리봉청이 저자를 아들이라고 불렀다는 건러니까?이리 나리는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을 찬찬히 훑어보더니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안 성주와 좀 오래된 원한을 따져야 하는데, 관련되기 싫으신 분은 자리를 피해 주시지요!”그때 한 사람이 검을 짚고 일어나 호통을 쳤다. “넌 도대체 어떤 놈이냐? 무슨 자격으로 자리를 피해라 마라야? 안 성주를 귀찮게 할 생각이면 일단 나부터 통과해 보시지!”그는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장검을 뽑아 파죽지세로 이리 나리를 향해 휘둘렀다.이리 나리는 손을 살짝 움직여 손바닥으로 칼자루를 밀자, 검이 날아가며 그 사람의 귀를 베어 한 줄기 피가 공중에 뿌려지더니, 방금까지 기고만장하던 자가 비명을 지르고 귀는 바닥에 떨어졌다.검이 다시 이리 나리 수중으로 정확히 돌아왔다.이 모든 게 3초 안에 벌어진 일이었다.“회선검?” 검법을 아는 사람들이 깜짝 놀라며 외쳤다.현장은, 숨소리마저도 들리지 않았다.회선검은 검마의 검법으로, 그렇다는 건 저 사람이 검마의 계승자?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무리에서 검마를 찾았다. 과연 두 손으로 검을 안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 고개를 숙이고 있는데도 차가운 안광이 느껴졌다.과연 진짜 검마구나, 사람들의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검마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이리 나리를 흘끔 보더니 속으로 의아해했다. ‘이 자식, 언제 내 비장의 검법을 배운 거야?’이리 나리의 검 끝에선 아직 선혈이 떨어지는데, 여전히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말했다. “이 아수라장에 끼고 싶은 거라면, 제가 무례하다고 원망할 생각 마세요.”“무엄하도다!” 안지여가 몹시 놀랐다가 천천히 정신을 차리고 눈을 치켜뜨며 이리 나리를 노려봤다. “너는 내가 누구인 줄 아느냐? 내가 네 아버지다!”이리 나리가 코웃음을 쳤다!안지여의 몇몇 아들이 달려 나와 소리쳤다. “아버지, 저희가 지켜드리겠습니다.”안풍 친왕이 젓가락을 던지고 일어나 차갑게 명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