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

제 2584화

작가: 유애
“뭘 그리 잘난 척이야?” 손왕이 투덜거리며 자기도 모르게 손 왕비의 손목을 있는 힘껏 비틀었으나 본인은 이미 화가 난 상태라 인지하지 못했다.

그러자 손왕비는 오늘 입궁 전에 쌓였던 울분이 떠오르며 버럭 화를 냈다. “뭐 하는 거예요? 손목 아파 죽겠네. 그런 험한 눈빛은 해서 대체 뭐 할 건데요? 누가 마음에 안 들어서 그래요? 누가 잘난 척했다고? 제가 눈에 거슬린거 아니예요?”

손왕이 손 왕비의 손을 놓고 불쾌한듯 투덜거렸다. “뭘 중얼중얼거려? 당신한테 한 얘기도 아닌데.”

“그럼 누구한테 한 건데요? 다들 얼마나 기뻐하는데, 당신만 무슨 비교 짓인지 원!” 손 왕비가 화를 냈다.

손왕은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우문호를 노려봤다. 조복 아래 늘씬하게 쭉 뻗은 몸매가 시원스러우면서도 귀티가 흘렀다. 그의 잘난 모습에 갈수록 질투가 불타올라 코웃음을 쳤다. “나도 내일부터 밥 안 먹고 살 뺄 거야. 저 녀석이 잘 생겼다고? 내가 살 빼면 백배는 더 잘 생겼어.”

손 왕비가 눈을 흘겼다. 그가 살 어쩌고 하는 말을 어찌나 많이 들었는지 귀에 딱지가 앉을 지경이었다. “왜, 오늘밤부터 안 드시지 그래요?”

손왕이 눈을 내리깔고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말했다. “그건 안돼. 오늘밤 궁중 연회에 나온 요리는 산해진미를 각종 요리법으로 맛을 극대화한 거라고. 이건 다시없는 기회야!”

손 왕비가 악에 받쳐 서 소리쳤다. “에휴! 당신은 평생 뚱땡이로 살 거예요!”

“당신은 입이 왜 그리 험해! 이 여자가 참으로 고약하군!” 손왕이 씩씩거렸다.

“누가 저한테 먼저 시비 걸라고 했어요? 오늘 조복 뜯어진 거 굳이 저를 불러서 꿰매 달라고 했었죠? 수모가 당신 살찐 거 아는 게 창피해서 그랬겠죠. 근대 당신 살찐 거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당신이 어디 조복만 찢어 먹었어요? 살쪄서 미어지지 않은 옷이 얼나마 많은데! 그리고 당신이 시간 끌지 않았으면 오늘 우리가 늦지도 않았잖아요. 아바마마께서 절 째려 보셨다고요.” 손 왕비는 말을 꺼내면 꺼낼수록 더 화가 나는 모양이
이 책을 계속 무료로 읽어보세요.
QR 코드를 스캔하여 앱을 다운로드하세요
잠긴 챕터

관련 챕터

  • 명의 왕비   제 2585화

    제왕은 그렇게 한대 쥐어박지 않으면 멋대로 상상의 나래를 펴는 인간이라 아내 원용의에게 한대 맞고 나서야 제정신으로 돌아왔다.회왕과 미색은 손을 맞잡고 명전 무대를 바라보며 우문호의 축사를 들었다. 우문호는 미리 원고 준비없이 떠오르는 대로 연설하다가 갈수록 격앙되었다. “북막은 수년간 북당의 변경을 여러차례 도발하고 압박해왔습니다. 기고만장하게 굴었으나 전쟁은 백성들을 도탄에 빠지게 한다는 생각에, 우리 북당의 군인과 신하들은 줄곧 양국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화의를 시도했습니다. 백성들이 갈 곳 없어 떠도는 고통을 겪어서는 안되니까요. 하지만 북막은 북당의 약점을 잡았다며 만만하게 여기고 대군을 일으키는 만행을 저지르고야 말았습니다. 다행히 태상황 폐하의 친정에 소요공과 주재상이 앞장서고 애국충정의 병사들이 목숨을 걸고 뒤를 따라, 병사와 백성이 일심동체로 적에 맞서 싸웠습니다. 결국 적을 북당 영토에서 몰아내는 조약이 성립되어 북당의 변방은 수십년간 평화를 지킬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 공로와 영광은 모든 병사들과……”우문호는 목여태감의 손에서 술잔을 받아 든 뒤 진중하고 숙연한 얼굴로 다시 말을 이었다. “특히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병사들의 몫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선혈과 생명으로 우리 북당의 강산을 지켜냈습니다. 우리는 영원토록 그들의 이름을 가슴에 새겨야 합니다. 이 술은 그들을 위해 바칩니다!”문무 백관들은 엄숙하게 태자가 제주를 땅에 쏟는 것을 보며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국 병사들의 넋을 기렸다. 태자의 신중한 한 마디 한 마디가 진정성을 더해 그들의 희생없이 오늘의 승리는 쉽게 얻을 수 없었음을 통감했다.회왕은 원래 조정 일에 관심이 없었다. 비록 나중에 황실 창고를 맡긴 했지만 태평성대에 은전을 쓰는 일은 별다른 풍파가 일어날 게 없었다. 그래서 평생 무장을 만날 일이 거의 없었는데, 이번에 전시 군량담당관을 맡으며 무장이 얼마나 어려운 일을 하고 있는지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북당의 강산을 지키기 위해서는

  • 명의 왕비   제 2586화

    “용서를 구해 봐요!” 회왕은 위왕의 이런 모습에 마음이 아팠다. 위왕 사건이 있었을 때 회왕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고 심지어 안부조차 제대로 묻지 못해 늘 마음이 쓰였다.위왕이 고개를 들어 회왕에게 말했다. “모든 잘못이 다 용서받을 가치가 있는 건 아니지. 또 모든 감정이 다 이전으로 되돌아 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이치야 그렇지만. 회왕은 내내 위왕이 안쓰러웠다. “봐요, 형도 이미 넷째 형을 용서했잖아요?”“그건 또 다르지.” 위왕이 고개를 흔들며 사람들 속에서 안왕의 모습을 찾았다. 안왕은 마침 유모 손에서 안지를 받아 품에 안고 뽀뽀하고 있었는데 행복으로 가득찬 미소를 짓고 있었다. “넷째가 날 해쳐서 미웠어. 그런데 미움은 쉽게 용서받을 수 있지만 나는 라라에게 상처를 입혔어. 상처로 고통받게 한 거지. 사람은 고통 뒤에 깨어나게 돼. 라라가 결국엔 깨어나 날 사랑한 자체가 잘못이었다는 걸 깨닫게 된 거야. 난 지금 오히려 라라가 날 사랑한 적이 없기를 바래. 그러면 적어도 나에겐 조그만 희망은 있을 테니까!”이렇게 말하고 잠시 후 다시 고개를 흔들며 말을 이었다. “아니다, 역시 라라가 날 좋아한 적이 없는 건 싫어. 라라는 날 좋아했으면 좋겠군, 그러면 좋겠어.”회왕은 위왕의 얼굴에서 슬픔인지 기쁨인지 알 수 없는 표정을 읽을 수 있었다. 그가 기억하고 있는 위왕은 늘 맹렬하고 신속해서 마음 먹은 일은 어떤 난관에 부딪혀도 해내는 사람이었다. 당시 정화 군주를 좋아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때는 정화 군주와 함께 도피행각을 벌이기까지 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겁을 내고 있다.“이 얘기는 그만 하자. 내 얘기 해봤자 좋은 것도 없는데 정말 나한테 신경 써주고 싶다면 있다가 나랑 술이나 해.” 위왕은 비록 회왕의 호의를 잘 알지만 정말로 다른 사람이 자신과 라라의 일에 관심을 가지지 말아줬으면 했다.바꿀 수 없다면 이렇게 친구 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위왕이 말을 마치고 발걸음을 옮겼다.회왕도 작게 한숨을 쉬며 정자를 나

  • 명의 왕비   제 2587화

    회왕이 화들짝 놀랐다. “혼담이라고? 혼담이 오간다는 말이야? 대체 어느 집이랑?”“몰라요. 다 들은 게 아니라서요. 이 사람이다 저 사람이다 말이 많지만 아닐 수도 있어요. 제가 보기엔 정화 군주의 안색이 초췌한 게 이 일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요. 그러니 원하지 않는 거 아닐까요?” 미색이 말했다.회왕은 마음속으로 아차 싶었다. 위왕이 이 사실을 아는 날엔 하늘이 무너질 게 틀림없었다.위왕이 얼마나 괴로워할지 눈에 훤했다.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가 다른 남자에게 시집 가서 다른 남자의 아이를 낳고 평생을 그자와 산다니, 너무 끔찍하고 미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일은 절대 형이 알아서는 안돼. 적어도 오늘은 아니야. 오늘밤은 전승을 축하하는 자리로, 형이 심리적으로 무너져서 실성이라도 하는 날엔 아바마마께서 질책하실 게 틀림없다고.” 회왕이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설마 다시 얘기할 리는 없겠지?” 미색이 그쪽을 흘끔 보자 최씨 부인과 다른 부인 몇이 담소를 나누고 있었는데 무슨 얘기를 하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난 다섯째형 사람들을 찾아가 볼게. 오늘밤 어찌됐든 셋째형 잘 지켜줘. 아바마마의 경축연을 망가뜨리는 날엔 셋째형 아주 경을 칠 걸!” 회왕이 말을 마치고 얼른 우문호를 찾으러 갔다.우문호와 원경릉은 회왕의 말을 듣고 정말 너무 갑작스러운 소식이라 화들짝 놀랐다. 최씨 집안이 궁중에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정화 군주의 혼사를 거론했으니 십중팔구 이뤄질 게 확실하다. 그렇지 않았으면 말도 꺼내지 않았겠지. 정화 군주의 명성을 해칠 테니 말이다.“원 선생이 정화 군주를 찾아가서 물어봐줘, 우리 형제들이 셋째가 최씨 집안 사람들이나 다른 내명부 사람 접촉하지 못하게 지키고 있을 테니까.” 우문호가 일사천리로 지시하자 부대는 둘로 갈라져서 빠르게 움직였다. 원경릉은 바로 정화 군주를 찾아가며 손 왕비, 회 왕비, 제 왕비, 그리고 안 왕비까지 황실의 동서들 중에 아홉째 만아와 요 부인을 제외하고는 다 불러냈다.그들은 같이

  • 명의 왕비   제 2588화

    “뚱뚱하신 거 인정하죠. 하지만 겁 많다는 건 인정 못 해요. 절 위해 칼을 막아 서셨는 걸요.” 원경릉이 웃으며 슬그머니 정화 군주를 봤다. 손 왕비에게 손목이 잡혀 있으면서도 여전히 마음이 콩밭에 가 있는 모습이었다.손 왕비는 원경릉이 손왕을 칭찬하는 걸 듣고 기뻐서 점점 미소가 커졌다. “진짜 겁이 많은 걸. 그나마 동생을 보호해야 한다는 건 알아서 그렇지. 그래도 그 점은 괜찮은 편이야.”원용의는 계속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꽤 예민한 편이라 미색과 원경릉의 표정이 뭔가 어색한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손 왕비가 이렇게 열띠게 얘기하는데도 미색과 원경릉은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기 때문이다.호비 궁에 도착해 궁문을 지키는 하인에게 물어보니 호비가 오늘 나가지 않았다고 했다. 어젯밤 과식하고 배탈이 나서 그런지 명원제가 금족령을 내려 문밖 출입을 못 한다는 것이다. 밖이 이렇게 시끌벅적한데 떠들썩한 걸 좋아하는 호비가 나가지 못해 얼마나 속이 탈까 걱정이 되었다. 황실의 며느리들이 웃고 떠들며 안으로 들어가자 호비가 놀라며 말했다. “날 구해 주러 왔구나. 어서 애기 좀 해 봐. 밖에 굉장하지? 나도 진짜 나가고 싶은데 말이야.”모두가 방안으로 들어오면서 너털웃음을 터트리고 원경릉도 웃으며 물었다. “오늘 이렇게 들썩들썩 할 걸 아셨으면 어젯밤에 그렇게 식탐을 부리셨음 안되죠.”“진작에 좋아졌는데, 폐하께서 지레 놀라서 가지고!” 호비가 어쩔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눈동자에는 기쁨으로 넘실거렸다. 호비는 사실 이렇게 강압적인 사랑을 즐겼다.“아바마마께서도 마마를 위해서 그러시죠. 용종을 잉태하신 데다가 체기도 있으셨잖아요. 외출하시면 분명히 나가 노실 텐데 뱃속에 아이에게 좋지 않아요!” 손 왕비가 말했다.호비가 손 왕비를 한참 쳐다보더니 웃었다. “손 왕비, 오늘 입은 옷이 예쁘네. 혼례 때 입는 예복 같아.”손 왕비가 오늘 입은 옷은 친왕비의 조복이 아닌 붉은 석류 색 구름무늬 비단으로 만든 길상무늬 옷으로 커다란 모란을

  • 명의 왕비   제 2589화

    손 왕비가 정화 군주에게 말했다. “어째서? 누구한테 시집가려고?”“왜? 기뻐해 주지 않는 거야?” 정화 군주가 웃으며 물었다.손 왕비가 완전 폭발해서 소리쳤다. “내가 팔푼이냐. 기쁘긴 뭐가 기뻐? 그래서 누구한테 시집을 가는데? 어느 집안 몇 째? 성격은? 관직은 몇 품이야? 가족 관계는 복잡하지 않고? 시어머니는 문제 없으셔? 시누이가 못된 거 아냐? 상대는 재혼이야? 자녀는?”손 왕비 입에서 질문이 줄줄 쏟아지는데 나열하는 거 하나하나가 다 똑 부러지며 현실적이였다. 정화 군주 본인에게 가장 관심을 가진 사람은 누가 뭐래도 손 왕비였다. 정화 군주가 혼인한다니까 그녀를 대신해 중요한 문제를 전부 꿰뚫고 챙기려는 것이였다.정화 군주는 원래 농담조로 자연스레 넘어가려고 했다가 이렇게 수 많은 질문을 당하니 순간 당황스러웠지만 이내 감동하며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둘째 동서, 고마워.”“아직 날 둘째 동서라고 부를 줄 아는 사람이…… 아이고, 네가 이렇게 혼인을 해버리면 셋째는 어떡하란 말이냐?” 손 왕비가 속이 타서 발을 굴렀다.“늘 그 사람이 나한테 잘못했다고 했잖아. 내가 그 사람 상대하는 거 싫다며?” 정화 군주가 말했다.손 왕비 본인은 자기가 얘기해 놓고 자기 눈가가 빨개졌다. “전에는 확실히 잘못했지. 용서할 가치도 없었어. 하지만…… 네가 지금 시집을 가면 셋째 목숨을 빼앗는 거나 마찬가지잖아. 그럼 그 사람이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겠어? 그 사람이 널 사랑하니까 그런 일을 저질러서 널 아프게 한 거라는 건 이제 확실히 알겠어. 그래도 난 그 사람 용서 못해. 하지만 이 세상에 널 그렇게 사랑할 수 있는 사람, 다시는 못 찾아.”손 왕비의 말에 모두 마음이 아파왔다. 두 사람 일을 별로 알지도 못하는 호비마저 눈가가 붉게 물들었다. 안 왕비는 특히 마음이 더 괴로워져 뒤를 돌아 몰래 눈물을 훔쳤다. 위왕과 정화 군주가 이런 지경까지 떨어져버린 건 전부 자신의 남편 소행이기 때문이다.정화 군주가 유유한 목소리로, “나랑 그 사람

  • 명의 왕비   제 2590화

    정화 군주가 안 왕비를 보고 한숨을 쉬었다. “봐요, 내가 이럴 줄 알았다니까. 다들 앞다퉈서 자기 책임이라 그러네. 요즈음 몇 번을 다시 생각해 봐도 그 말은 반만 맞아요. 전부 안왕 전하 잘못이 아니란 뜻이에요. 고지의 수법에 저도 태자비 마마도 걸려들지 않았는데 왜 그 사람만 걸려들었을까요? 그 사람이 대체 뭐가 잘못된 거였을까요? 저를 믿지 못한 게 잘못일까요? 그런데 그 사람은 왜 절 못 믿었던 거죠? 즉, 우리 부부 사이에 진작부터 문제가 있었고 고지는 그 틈을 파고든 거였어요. 그러니까 그 사람이 저를 완전히 믿도록 하지 못한 제 자신도 책임이 있어요. 이런 일이 태자 전하와 태자비 마마 사이엔 없었으니까요. 심지어 둘째 동서와 둘째 아주버님 사이에도 없었죠. 유독 우리에게만…… 아무튼 그래서 내린 결론이에요. 그럼 이제 누굴 탓할 수 있죠? 그리고 지금 누구를 탓한들 무슨 의미가 있나요?”말을 마치고 모두를 슬픈 표정으로 바라보다가 손뼉을 치며 외쳤다. “자자, 오늘이 얼마나 좋은 날인데요, 경축일이에요. 그런 일 들먹이지 말고 웃어요. 다 지난 일이니 연기처럼 사라지게 놔두세요.”모두 억지로 정신을 차리고 미소를 짓는데 손 왕비만 여전히 정화 군주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래서 대체 누구랑 혼인하는데?”정화 군주가 미소를 짓더니 진지하게 말했다. “전신!”다 어리둥절한 가운데 손 왕비가 넋이 나간 채 물었다. “뭐? 전신? 어느 전신?”정화 군주가 손 왕비에게 답했다. “모든 여자들이 시집가고 싶어하는 바로 그 전신.”다들 놀라 멍하니 있었는데 호비도 놀라며 의아하다는 듯이 정화 군주에게 물었다. “너, 넌 이게 어디 시집간다는 말이야? 앞으로 시집 안 가겠다는 거잖아?”원용의와 손 왕비도 얼른 이해했다. 민간에서 여자가 시집을 가고 싶지 않지만 사람들이 손가락질 하는 게 두려울 때는 직신, 수신, 화신 유선같은 신에게 시집을 가는 의식을 치르곤 한다. 이렇게 하면 친정은 실제로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그런 신을 경외하게 되어 보통

  • 명의 왕비   제 2591화

    호비 궁에서 나와 정화 군주가 원경릉을 불러 세우더니 개인적으로 얘기를 좀 하고 싶다고 했다.그러자 원경릉이 정화 군주를 황귀비 궁 측전으로 데려가 차를 가져오게 한 뒤 좌우를 물리고 둘만의 자리를 만들었다.정화 군주가 원경릉에게 말했다. “태자비 마마, 우리 여인들 중에 마마의 사고가 가장 열려 있고 사리를 가장 밝게 아시니 절 이해해 주실 거라 생각합니다.”원경릉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 생각에는 이해하고 있는 것 같은데요.”정화 군주가 찻잔을 손바닥 위에서 천천히 굴리며 조용히 말했다. “사실 지난번에 집안에서 저에게 혼담을 꺼냈을 때 하마터면 수락할 뻔 했습니다. 이런 생활을 끝내고 싶었으니까요. 하지만 수락하려던 찰나에 마음이 미친듯이 아니라고 외쳐서 차마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제 마음속에는 분명 아니라고 하는 사람이 있어요, 어떻게 제 자신을 속일 수 있겠어요? 그래서 결국 수락하지 않았습니다. 그이가 절 기다리고 있는 거 알아요. 하지만 제가 돌아가서 그와 함께 하는 건 매일이 고통일 겁니다. 우린 부부가 될 수 없으니까요. 그냥 전 제가 시집가고 싶던 그 사람과 이렇게 혼인하려고요. 추억은 아무도 빼앗을 수 없으니까요. 가장 아름다운 시절의 그이에게 시집가는 편이 마음이 놓여요. 전 제 생각이 맞다고 믿어요. 태자비 마마, 둘째 동서는 마마의 말을 귀담아 들으니 있다가 잘 좀 설득해 주세요. 더는 절 걱정할 필요 없다고요.”원경릉이 정화 군주에게 말했다. “군주가 이렇게 하는 게 옳다고 여길 경우, 군주의 결정에 간섭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둘째 형님께는 제가 있다가 잘 말씀드릴 게요. 하지만 정말로 둘째 형님이 더이상 군주 걱정을 하지 않기 바란다면 군주가 즐겁게 지내야 해요. 군주의 미소가 제 말 백마디보다 설득력이 있을 테니까요.”“노력할게요. 물론 계속 노력하고 있고, 이미 많이 좋아졌어요. 이 결정을 내린 지금은 마음이 정말 평온하거든요.” “하지만 조금은 초췌해 보여요.” 원경릉이 군주의 얼굴을 보았는데 창백함

  • 명의 왕비   제 2592화

    손 왕비가 슬픈 눈빛으로 말했다. “난 동서들처럼 그렇게 배운 것도 많이 없으니까 그냥 이렇게 하는 게 정화자신을 힘들게 한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야. 어쩌면 태자비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어, 정화가 기쁜 게 제일 중요하니깐. 태자비는 나랑 정화 사이를 잘 모르겠지만 난 정말 정화를 내 친 동생이라고 생각해. 근데 그런 정화를 셋째 아주버님께 빼앗겠지. 그렇게 조용하던 애가 온갖 악한 소문에 시달리면서도 다 참아내고 다소곳이 셋째와 부부의 연을 맺고 다른 사람들이 셋째 아주버님을 비난하지 못하도록 막았지. 원래 둘째와 셋째는 사이가 좋아서 나도 셋째 아주버님을 남동생처럼 여겼어. 셋째가 정화를 납치해서 장가든 것으로 벌을 받을 때 정화가 나서서 셋째를 감싸던 순간, 정화에게 잘 해줘야겠구나 결심 했어…… 지금도 정화를 아껴서 그런 거지, 정화를 인정하지 않아서 그런게 아니야.”“네, 알아요. 두 분 사이 좋은 거. 형님이 정화 군주를 진심으로 아끼는 것도 당연히 알고요. 그러니 인정해 주기로 해요. 정화 군주는 형님의 인정이 너무도 필요해요!” 원경릉이 말했다.“알았어.” 손 왕비가 말했다.친왕이 위왕을 따로 데리고 가 얘기하다가 축전 연회가 시작되자 다시 돌아와서 참석했다. 하지만 위왕은 그들과 같이 들어가지 않고 밖에서 정화 군주와 최씨 집안 사람들이 있는 걸 하염없이 바라만 보고 있었다.아홉째는 다른 친왕들과 같이 있지 않고 팔황자와 같이 놀다가 손잡고 연회 자리로 들어왔다.그는 좀 전에 팔황자와 어화원에서 놀다가 정화 군주와 집안 사람들이 얘기하는 걸 들었는데 가슴이 답답하고 눈앞에 캄캄해진것 같았다. 그래서 연회 자리에서 우문호와 제왕, 회왕이 들어오기를 기다렸다가 위왕이 없는 것을 보고 얼른 우문호를 잡아 끌고는 다급하게 물었다. “정화 군주가 혼인을 한다고 들었는데… 정말 사실입니까?”우문호가 누가 들을까 얼른 주위를 돌아보았는데 셋째는 이미 성큼성큼 들어오고 있었다. 바로 아홉째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조용히 해. 아무 말도 하지 마.

최신 챕터

  • 명의 왕비   제3377화

    잔뜩 긴장한 채로 앞으로 몸을 반쯤 내밀고 있었던 주 지부는 우렁찬 상대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중심을 잃은 듯 비틀거렸다. 그는 이내 팔을 뻗어 망루의 기둥을 붙잡으려 했지만, 허공에서 멈추고 말았고, 그대로 몸이 앞으로 쏠려 떨어져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가 말에서 빠르게 날아올라, 믿기 힘들 정도로 빠른 속도로 그에게 달려갔다. 상대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주 지부가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그를 안고 빙 돌아서 바닥에 착지했다.주 지부는 깜짝 놀라서 그만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를 구해준 사람은 반짝거리는 눈망울에, 품위 있는 모습의 젊고 잘생긴 사내였다. 주 지부는 그를 황제의 호위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거의 죽을 뻔한 고비를 넘겼기에, 안도의 한숨을 내쉴 새도 없이 그에게 예를 올렸다.“대인,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그때 말들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는데, 서일이 먼저 말에서 내려, 다급히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괜찮으십니까?”우문호도 매우 놀란 듯했다. 조금만 늦었다면, 주 지부는 정말 죽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가슴을 가볍게 두드리며 숨을 들이쉬었다.“괜찮다.”그러고는 주 지부를 보며 물었다.“자네는 누구요?”주 지부는 마차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보며, 누가 황제인지 추측했다.황제는 올해 마흔에 가까운 나이로 알려져 있었기에 위엄이 넘쳐 보일 것이었다. 그는 일행 중, 냉 수보와 홍엽을 만난 적 있었기에, 거친 모습을 한 이 인물은 아마도 호위로 추측된다. “묻지 않았소? 자네는 누구요? 어찌 죽으려고 하는 것이오?”서일은 그가 멍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자, 큰 소리로 다시 물었다.주 지부는 울 지경이었다. 냉 수보가 그를 보고 있으니, 예를 올려야 하지만, 황제도 자리에 있으니, 바로 냉 수보에게 예를 올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대체 누가 황제란 말인가?그는 황제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어, 결국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그러고는 그들에게만 들릴 정도로 낮은 목소

  • 명의 왕비   제3376화

    원경릉의 말은 그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고, 자리에 있던 관리들은 기쁨과 동시에 두려움에 휩싸였다. 이 대인은 땅에 엎드려 온몸을 바르르 떨고 있었다. 그는 살아생전에 자신이 황제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은 단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평소 차분하고 신중한 주 지부도, 그도 감정이 격해져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눈가에는 눈물이 가득했다.황후를 만난 것만으로도 큰 영광이라 생각했는데, 황제까지 오신다는 소식에 그의 마음은 흥분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원경릉은 평생을 경성에서 다섯째와 함께 있었기에, 그녀는 그저 그가 온다는 사실을 간단히 전했을 뿐이었는데 말이다. 그녀는 다들 걱정 없이 역병을 치료하고, 언제나 황제가 그들의 뒤를 든든히 지켜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들의 반응을 보니, 황제가 직접 오는 것이, 지방 관리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깨달았다.원경릉이 급히 말을 덧붙였다.“폐하게서는 그저 역병 때문에 온 것이니, 모두 각자 맡은 일에만 최선을 다하면 되네.”“예, 예, 마마의 명을 따르겠습니다.”주 지부가 눈물을 닦으며 답했다.그렇게 관아와 의서가 협력하여, 오계부를 조사하기 시작했다.원 할머니는 역병을 치료할 수 있는 처방을 몇 가지 내렸다. 경증 환자는 약차를 계속 마시고, 증상이 악화하거나 중증 환자는 그녀의 처방을 사용하도록 했다.전에 이미 근처 주부에 연락해 약을 보내라 명했고, 오계부에서 구비한 약까지 있으니, 이번 역병을 대처할 수 있었다.오계부 의서는 이번 역병을 과거의 역병과 동일하게 생각하고, 소홀히 한 것 외에는 준비가 충분했다.원경릉은 황제 일행이 저녁 무렵 오계부에 도착할 것이라 예상했다.주 지부는 원래 여러 관리와 함께 황제를 맞이할 예정이었지만, 원경릉이 이를 단호히 거부했다. 그녀는 황제가 미복 순행 중이니, 과하게 맞이하여 백성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했다.그 말에 주 지부는 당황했다.황제가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아무도 맞이하지 않는다니, 어찌 그럴 수 있다는 말인가?그러나 그는 황

  • 명의 왕비   제3375화

    약을 쓰자, 주 지부의 열이 단번에 내려갔다.열이 내려가니 정신이 맑아져, 그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는 애써 자리에서 일어나 황후마마에게 예를 올리겠다고 고집 피웠다.원경릉은 그에게 누워 있으라고 말한 후, 역병에 관해 이야기하며 주 지부에게 이를 중시할 것을 당부했다.주 지부는 이를 듣고 깜짝 놀라 말했다.“소신은 매일 의서에 사람을 보내, 역병의 상황을 보고받고 있사옵니다. 매일 보고된 상황은 그다지 심각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역병이 발생했지만, 작년과 비슷한 정도였고, 약재도 충분한데, 어찌 이렇게 심각해진 것입니까?”“매년 역병이 발생했으나, 대대적으로 퍼지지 않아,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네.”원경릉이 답했다.“의서의 이 대인을 불러, 상황을 확인하겠습니다.”주 지부는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어제 이미 그를 찾아가, 환자 수와 사망자 수를 조사하라 명했네. 하지만 그는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모를 것이네. 자네가 사람을 보내, 관아에 와서 상황을 보고하도록 하게.”“예!”주 지부는 곧바로 사람을 보냈다.푸른 옷을 입은 남자는 관아에서 일하는 관리였기에, 그는 반 시진도 채 되지 않아, 관아 내에서 병에 걸린 자가 얼마나 되는지 통계해냈다.관아 내에서 역병 증상을 보인 사람은 총 열여덟 명이었고, 그중 두 명은 병세가 심각하여 이미 집에서 쉬고 있는 상태였다. 주 지부는 관아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병에 걸린 줄 몰랐고, 관리의 보고를 들은 후, 큰 충격을 받았다.의서의 이 대인은 하루 종일 쉬지도 않고, 바삐 움직였다. 서관 대인이 직접 오셨으니, 어떻게든 시키는 일을 완성해내야 했다.그는 사실 역병이 그다지 심각하지 않고, 그저 작년과 비슷하다고 여겼었다.하지만 여러 지역과 의원을 돌아보고 나서야, 이번 역병이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처음엔 그저 서관 대인에게 보고만 하려고 했지만, 병세가 심각해지자 그도 조급해지기 시작했다.하지만 짧은 시간 안에 인원수를 통계하

  • 명의 왕비   제3374화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도, 다섯째 일행은 여전히 도착하지 않았다.그래서 원경릉과 할머니는 다른 의관을 더 둘러보기로 하고, 몇 군데 더 돌아본 뒤 관아에도 갈 계획을 했다.그런데 한 의관에 들어서자마자, 푸른 옷을 입은 중년 남자가 다급히 뛰어오며 말을 걸었다. “수 의원, 대인께서 병세가 위중합니다. 어서 봐주셔야 합니다.”의원은 그 말을 듣자마자, 약상자를 집어 들고 다른 환자들을 그냥 남겨둔 채, 푸른 옷의 중년 남자와 함께 나가려 했다.원경릉이 그를 막아 세우며 말했다.“의관에 있는 환자들을 돌봐야 하지 않소? 우리 할머님께서도 의원이니, 지부 대인의 병은 할머님께서 봐 드릴 것이오.”푸른 옷의 사내는 초조한 듯 원경릉을 향해 소리쳤다.“말도 안 되는 소리 마시오!““대인의 병세가 급박한데, 혹여라도 지체되면 당신들이 책임질 수나 있겠소?”바로 그때, 원 할머니가 호패를 꺼내, 그의 눈앞에 들이밀며 단호하게 말했다.“길을 안내하거라!”조급한 표정을 짓던 푸른 옷의 사내는 호패를 보자마자 표정이 얼어붙었다. 이내 정신을 차린 그는 곧장 허리를 굽혀 예를 올리며 말했다.“서관 대인께서 오셨을 줄은 몰랐습니다. 무례를 범해 송구하옵니다.”“그만 사과하고 길 안내나 하시오.”원경릉이 말했다.“예, 예!”사내는 급히 물러서서, 예를 갖춰서 길을 가리켰다.“마차가 밖에서 대기 중입니다. 서관 대인, 이쪽으로 오시지요.”원경릉은 할머니를 부축해 마차에 올랐고, 곧장 관아로 향했다.지부 대인은 따로 사저가 없어 관아의 뒷마당에서 거주 중이었다. 혼자 지내는 데다 관아가 워낙 가까워 편리했기 때문이다.관아에 도착하자마자, 그들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안으로 들어갔다.주 지부는 병세가 꽤 심각해져 있었다. 그는 어지럼증과 흉통에 시달려, 침대에 누운 채 말을 꺼낼 힘도 없었다.원경릉은 직접 치료에 나섰고, 약상자를 열어 체온 측정기와 청진기를 꺼냈다.푸른 옷의 사내가 의아해하며 물었다.“아가씨께서도 의원이십니까?”그러자 곁에 서

  • 명의 왕비   제3373화

    이 대인이 원경릉에게 의학을 잘 모른다고 반박할 틈도 없이, 원 할머니가 먼저 입을 열었다. "말대로 하게. 하루만 줄 테니, 그 안에 역병에 관한 모든 자료를 가져오게. 사망자 수도 포함되어야 하네." 이 말까지 듣자, 이 대인은 더 이상 반박할 수 없었다. 비록 조사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서관 대인이 멀리서 오계부까지 왔으니, 시키는 일은 해야지 대인의 마음에 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사람들을 보내 조사를 명한 후, 이 대인은 거처를 마련해 드리겠다고 했다. 하지만 원경릉이 말했다. "괜찮습니다. 의서에 의원이 많지 않으니, 대인도 바쁘실 텐데요. 저희가 직접 오계부를 돌아보겠습니다." 이 대인은 그녀가 원 할머니의 힘을 빌려 위세를 부린다고 생각해, 대꾸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말에 답도 하지 않고, 원 할머니에게 예를 올렸다. "어르신께서 머무실 계획이 있으시면, 부디 저에게 알려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밤 대인을 잘 대접하라, 명을 내리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네. 일이나 보게." 원 할머니는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원경릉에게 말했다. "먼저 좀 돌아보다, 객사를 찾아 머물자꾸나." "예!" 두 사람은 역병을 조사하기 위해 다급히 이곳을 찾아왔기에, 먼저 각지의 의원을 직접 돌아보려 했다. 아마 다섯째 일행은 빨라야 내일이나 모레쯤 도착할 것이었다. 두 사람이 의서를 나서자, 이 대인은 뒤따라 나오려다 원 할머니의 날카로운 눈빛에 움찔하며 발길을 멈췄다. 두 사람은 오계부의 거리로 향했다. 거리가 꽤 번화했고, 사람들도 제법 많아, 대낮에는 조금 붐볐다. 그들은 곧장 의원으로 향했다. 의원 앞에는 약차가 많이 진열되어 있었지만, 환자는 얼마 없었다. 겉보기엔 역병이 퍼졌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원경릉은 안으로 들어가 의원에게 상황을 물었다. 그러자 의원은 요즘 들어 약차가 잘 팔리고 있고, 하루에 천 봉지가 넘게 팔린다고 답했다. 하지만 그도 역병

  • 명의 왕비   제3372화

    늦게 출발한 원경릉은 신속하게 오계부로 향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오계부 근처 주현에 도착하자마자, 할머니가 현지 혜민서로 가야 한다며 잠깐 멈추자고 했다. 그러고는 혜민서에 오계부로 약을 공급할 준비를 하게 했고, 명을 받으면 바로 오계부로 보낼 수 있도록 미리 준비를 당부했다. 혜민서 산하의 의료기관들은 지난 몇 년간 개혁을 통해 뚜렷한 성과를 거두었고, 지역 간의 연결도 긴밀해졌다. 특히 역병을 상대하는 체계가 가동되면 상부에서는 전력을 다해 의원과 약을 지원해줄 수 있었다. 신신당부한 뒤에야 원경릉과 할머니는 오계부로 재빨리 향했다. 곧이어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우문호 일행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다. 오계부는 인구가 500만 명에 이르는 곳으로, 두 개의 주부가 통합된 지역이었다. 열대에 있어, 경작지가 많고 산이 많아 농업을 위주로 삼고 있었다. 그래서 조정은 이곳을 서부의 주요 곡창지대로 삼고 있었던 것이었다. 농업이 발달한 지역은 상대적으로 경제도 번화했고, 현지 백성들은 벼 외에도 감, 자두, 리치 등을 대량으로 재배하고 있었다. 리치는 신선할 때 먹을 수도 있고, 말려서 건과로 만들어 팔 수도 있기에, 어느 정도 지역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었다. 오계부는 백월국과 인접해 있었는데, 백월국은 북당의 속국으로 사이가 우호적이며 경제 교류도 활발했다. 이는 양국의 번영을 촉진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오계부의 지부는 장씨 성을 가진 오계부 출신이었다. 장 지부는 훌륭한 관리이며 지역 백성들로부터 존경받고 있었다. 원경릉과 원 할머니는 오계부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지역 혜민서를 찾았다. 할머니는 혜민서의 서관(署館) 신분을 밝혔다. 그녀는 북당 각 주부의 의서를 총괄하는 인물이고, 총책임자이기도 했다. 혜민서의 이 의원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두 사람을 안으로 청한 후, 바로 예를 올렸는데, 마치 신선이라도 본 것처럼 목소리까지 떨고 있었다. "소인은 이자옥이라 합니다. 어르신께서 친히 오신 줄도

  • 명의 왕비   제3371화

    그녀는 일단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하고, 냉 대인이 자세한 상황을 묻는 사이에 제 대인의 피를 뽑았다. 약상자는 기능이 꽤 다양하기에, 바이러스 검사도 문제없었고, 안에는 양여혜가 준 소형 현미경도 있었다. 하지만 바이러스 관찰이나 세균 배양에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지체할 수 없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먼저 오계부로 향하고, 그녀는 이곳에 남아 제 대인을 치료하고 검사 결과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면 바이러스든, 세균 감염이든, 결과가 나와야 제대로 된 치료 방안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미색이 말했다. "저도 이곳에 함께 남겠습니다. 제가 환자를 돌보는 것 정도는 도울 수 있지 않겠습니까?" "괜찮으니 먼저 가거라. 어쩌면 내가 더 일찍 도착할 수도 있으니깐." 원경릉이 말했다. 그녀는 혼자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지만, 미색까지 데리고 가는 건 무리였다. "우리가 먼저 출발하는데, 어찌 더 일찍 도착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미색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가능한 일이다. 원 선생은 늘 기적을 만들어내니." 우문호가 말했다. 그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고, 원경릉에게 다가가 조심하라고 몇 마디 당부했다. "알았소. 지체하지 말고, 어서 떠나시오. 오계부에 도착하면 곧바로 관아를 찾아가, 의원의 빠른 대처를 명하라 하시오. 만약 내가 먼저 도착한다면, 내가 관아를 찾아가겠소." "알겠소. 그럼, 먼저 가겠소!" 우문호는 그녀와 입을 맞추고 싶었지만, 보는 이가 많으니 그저 참을 수밖에 없었다. 서일은 황후를 홀로 두고 가는 것이 걱정되어, 우문호를 따라나서며 계속 물었다. "정말 황후를 이곳에 혼자 남겨도 되는 것입니까?" "그럼, 네가 남을 것이냐?" 우문호가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 "너도 원 선생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알고 있지 않느냐?" 회왕 부부도 걱정은 되었지만, 다섯째의 여유로운 모습에 자신이 있을 것이라 믿었다. 다섯째 부부는 늘 비밀이 많은 사람들이라, 그들은 더 이상 신경

  • 명의 왕비   제3370화

    원경릉은 밖으로 나가, 오계부에 역병이 생긴 것 같다고 전했다. 오계부는 서쪽에 자리 잡고 있어, 기후가 더운 탓에 가끔 역병이 생기긴 했었지만 백성들은 고뿔 치료에 쓰이는 약초로 끓인 차를 즐겨 마시기에, 대규모로 역병이 돈 적은 없었다. 냉 대인이 말했다. "오계부에서는 이 상황을 조정에 알리지 않았습니다. 비록 해마다 역병이 생기긴 하지만, 빠르게 통제해 왔으니, 이번에도 예전과 같은 상황이지 않겠습니까?" 원경릉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런데 이번엔 더 심각할 수도 있습니다. 제 대인의 형도 역병으로 돌아가셨고, 그와 가까이 지낸 사람들도 병에 걸렸습니다. 이렇게 관아에만 역병에 걸린 자들이 많으니, 예전보다 더 심각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해마다 역병이 생겼으니, 그에 대한 대응책도 이미 있을 것입니다." 원경릉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해마다 역병이 생겼지만, 대대적으로 유행하지 않았기에, 현지 관리들이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겨 쉽게 통제될 것이라 생각하고, 방심할 수도 있으니깐요." 우문호가 물었다. "원 선생, 역병을 어떻게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하오?" "역병 상황이 안 좋을 것이라 추측할 뿐, 정말 오계부의 상황이 어떠한지는 아직 모르네. 제 대인은 여전히 고열에 시달리고 있어, 수액을 맞히고 해열제를 먹였소. 냉 대인과 함께 들어가 상황을 자세히 물어봐야겠소. 하지만 꼭 마스크를 끼고, 병을 막아야 하오." 원경릉은 유행성 독감이나 변이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일 것이라 의심하고 있었다. 그녀가 살던 세계에서는 A형 독감의 대규모 변이가 십수 년마다 한 번씩 발생했는데, 그런 변이 독감은 현대에서도 의료 체계에 큰 부담이 되곤 했다. 그러니 지금 이곳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만약 역병이 다시 시작한다면, 가능한 한 빨리 통제해야만 했다. 원경릉의 말을 우문호와 냉 대인은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도

  • 명의 왕비   제3369화

    원경릉은 청진기를 꺼내 그의 폐를 확인해 보았는데, 남녀가 가까이 접촉하는 것이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한 제 대인은 이내 손을 뻗어 그녀를 막으려 했다. 하지만 병세가 심해 아픈 데다가,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묘한 위압감을 풍기는 의원의 단호한 눈빛과 기운에 그만 압도당하고 말았다. 원경릉은 앞쪽을 청진한 뒤, 그에게 옆으로 돌라고 한 다음에 꼼꼼히 살피고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며칠을 아프신 것입니까?" 제 대인은 꽉 막힌 코 때문에 콧소리를 내며 천천히 몸을 돌리고 답했다. "며칠 사이의 일입니다. 오계부를 떠날 때도 멀쩡했는데, 밤새 달리고, 말을 오래 타다 보니 고뿔에 걸렸나 봅니다." "기침 말고, 가슴 통증도 있습니까?" "예. 이곳이 아픕니다!" 제 대인은 가슴 근처를 손으로 누르며 말했다가, 숨쉬기가 어려운 듯 손바닥을 움직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도 아프고, 온몸 뼈마디도 다 아픕니다." 그러자 원경릉은 더 자세히 증상을 확인한 뒤 말했다. "약을 준비할게요. 수액을 좀 맞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수액이요?" 제 대인은 멍하니 원경릉을 바라보았다. "예. 질문은 하지 마시고, 그저 치료에 협조만 해주십시오. 병세가 꽤 심각한 편입니다." 원경릉은 제 대인이 폐렴이라 확신했고, 중증 폐렴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제 대인은 병이 심하다는 말에 초조한 표정을 지으며 다급히 말했다. "의원 나리, 제발 최선을 다해 치료해 주십시오… 저에게는 아직 모셔야 할 노모가 있습니다. 지난달 병으로 형님께서 세상을 떠난 터라, 형님의 자식들도 제가 돌봐야 하니, 절대 이대로 목숨을 잃을 수는 없습니다." 원경릉이 답했다. "최선을 다할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 치료에만 집중하시지요!" 제 대인은 감동을 받은 듯 감사 인사를 올렸다. "정말… 감사합니다." 원경릉은 곧바로 약을 지어 수액을 준비했다. 수액을 맞는 동안, 제 대인은 여전히 놀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좋은 소설을 무료로 찾아 읽어보세요
GoodNovel 앱에서 수많은 인기 소설을 무료로 즐기세요! 마음에 드는 책을 다운로드하고, 언제 어디서나 편하게 읽을 수 있습니다
앱에서 책을 무료로 읽어보세요
앱에서 읽으려면 QR 코드를 스캔하세요.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