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국부인이 그다지 유쾌하지 않은 투로 말했다. “왜냐면 너도 앞으로 나이가 들 거고 침대에 누워 움직이지 못하게 될 테니까. 그땐 누가 널 돌봐줘? 곁에 가족이 아무도 없으면 죄다 하인들 손에 맡길래? 언젠가 네 은자도 다 사라지는 그런 참담한 마지막은 두렵지 않아?”“만약 그런 문제면 간단한 거 아니에요? 제가 내일 아무나 데려다 아이를 한 무더기 낳은 뒤 나이가 들면 걔들이 절 봉양하게 하면 되잖아요?” 일곱째 아가씨가 웃으며 말했다.정국부인은 일곱째 아가씨의 머리를 몇 대 때리며 긴 한숨을 쉬었다. “난 늙어서 더는 너한테 간섭 못해. 탕양은 좋은 아이야. 너희들이 같이 할 수 있다면 같이 지내려무나. 아니면 네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난 계속 너에게 혼인을 제시할 거야. 가업이 너한테는 소중할지 몰라도 난 아니야. 많이 먹든 적게 먹든 여태까지 잘 지냈잖아? 하지만 여자는 평생 누군가의 지극한 사랑을 받아야 비로소 완성되는 거야, 네 아빠는 엄마에게 평생 잘 했어. 지금도 생각나, 그이에게 시집올 수 있어서 참으로 행복했지. 엄마는 네 아빠 같은 그런 남자가 널 아끼고 사랑하고 보호해 주길 바래. 그럼 엄마는 죽어도 눈을 감을 수 있을 거야.”일곱째 아가씨는 엄마 품에 엎드려 엄마 목을 끌어안고 코가 맹맹한 채로 말했다. “엄마, 우리 아빠는 둘도 없는 사람이에요, 이 세상에서 아빠 같은 사람은 다시 찾을 수 없어요. 아쉽다고 아무 하고 결혼하고 싶지 않아요. 좋은 남자를 찾으면 시집갈게요. 저와 탕양은 지금 원한도 없지만 시간을 되돌릴 필요도 없어요. 딸이 편하게 평생 살게 해주세요. 네? 다음 생에는 뭐든 엄마 말 다 들을게요.”정국부인이 이 말을 듣고 코가 시큰해졌다. 딸이 고집이 세서 말로 설득되지 않을 걸 알고는 있지만 시집가는 꽃가마에 묶어 둘 수는 정녕 없는 걸까?“됐다. 너 좋을 대로 해. 다그치지 않으마. 앞으로 날 피할 필요 없어. 시간 나면 자주 오너라, 엄마가 이제 늙어서 1년엔 한번씩만 오면 몇 번 못 볼 거 같아.
탕양이 돌아간 뒤 일곱째 아가씨와의 일은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고 원경릉도 묻지 않았다. 하지만 탕양이 이전에 풍기던 무거운 기색이 없어진 것으로 볼 때 아마도 마음 속의 큰 짐을 내려놓은 것 같다.일곱째 아가씨가 죽지 않은 게 탕양의 인생 전체를 가볍게 만들었다.우문호는 오히려 탕양이 일곱째 아가씨와 다시 만날 기회가 있을지 살짝 물었고, 탕양은 다음 생에는 최대한 일찍 만나겠다고 했다.우문호는 좀 아쉬운 게 만약 자신과 원 선생이었으면 어떻게든 다시 되찾아와서 죽어도 손을 놓지 않을 텐데 말이다.하지만 탕양의 일이니 우문호도 어쩔 수 없는 게 다 큰 어른이 자기 감정은 자기한테 생각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원경릉의 경호 계산은 초보적 단계로 성과가 있었는데 만두가 외삼촌에게 얘기해 편차를 보는 게 주 목적으로 다시 실험을 시작하기로 했다.사식이가 지금 회임한 상태로 서일은 경호에 갈 수 없어서 귀영위를 몇 명 보내고 그 중 두 명이상황을 보고하는 책임을 맡았다.경호는 전에 물건을 보내고 받을 수 있었으나 나중에 어떤 이유에서 인지 보낸 물건을 받지 못하게 되었다. 지금 원경릉은 대략 추측해 보면 당시 비교적 길게 멈춰 있던 교점을 만났던 것으로 그때 소용돌이가 적어서 경호에 물건을 떨어뜨려도 소용돌이를 향해 떨어뜨리지 않았고 오빠가 보낸 물건도 임의로 서교산 호수에 안에 놨을 뿐이란 결론이다. 원경릉의 가설은 이렇다. 일종의 알 수 없는 중력장이 있어, 지구가 공전 궤도상에서 주기적 운행을 할 때 지구가 받는 중력장 작용으로 주기적으로 변화한다. 이 변화로 인해 경호 시공간의 문에 편차가 생기거나 변동이 일어난다는 것이다.그래서 원경릉이 지금 하고자 하는 것은 소용돌이가 안정적으로 어떤 일정한 시공간으로 통하는지 여부를 관찰하는 것으로, 중력장이 다시 주기적 변화를 일으킬 때에 맞춰 다음 단계 실험도 진행할 예정이다.원경릉은 지금 이 알 수 없는 중력장이 존재하는 이유를 모르는 데다 어쩌면 다른 천체 활동과 연관되었을 수도 있어 현재와 같
냉정언이 홍엽에게 말했다. “오직 하나의 원인이 있을 뿐입니다. 그 무당들은 전부 당신 아버지가 보낸 사람들로 그들은 정통 무당이 아니라 남강 북쪽의 신앙을 따르지 않는 거죠.”이렇게 말하니 홍엽이 비로소 확 이해가 됐다. 그런 방식을 아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명원제는 냉정언을 평강후(平疆侯)로 봉하고 그를 남강으로 함께 보내, 뒤에서 계략을 짜서 최대한 빨리 남강 남북의 전쟁을 그치게 할 것을 명했다.냉정언은 홍엽, 못난이와 같이 출발했는데 3천 명의 북군영 군사를 전진장군이 통솔해 같이 가며 남강에서 순왕과 합류했다.만약 이런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으면 북당에게도 좋고 남강 남북에도 좋은 일로 최고의 해결 방식이다.내란은 군사를 쓸 필요 없다. 한 집안인데 무장 충돌없이 평화적으로 교섭하면 되기 때문이다.냉정언이 출발한 뒤 늑대파 어떤 사람이 이리떼를 몰고 수도권에서 남강 방향으로 갔는데 3천 마리의 늑대는 전부 회색 늑대로 경단이의 눈 늑대가 무리를 데리고 군대와 같이 질서정연하게 빠른 속도로 움직였다. 늑대 부대는 이틀이 못돼 냉정언을 따라잡아 냉정언과 사람들이 화들짝 놀랐다.냉정언의 안색이 변하는 것을 보고 홍엽이 악의적으로 웃는데 냉정언은 겁나는 게 아무것도 없을 줄 알았더니 이리떼를 보고 놀란 단 말이지?이리 나리는 늑대들 훈련을 마치고 만두 늑대와 찰떡이 늑대를 데리고 경성으로 돌아가 어린 아내 우문령을 맞으러 갔다. 우문령은 안색이 발그레하고 윤이 나는 데다 살도 좀 오른 것 같아 이리 나리는 기분이 좋아져서 원경릉에게 지폐 두 장을 식비로 내줬다.원경릉이 굉장히 좋아하며 배웅하는데 손을 흔들며 공주에게 자주오라고 했다.우문호는 원경릉과 이 지폐를 나누고 싶어서 지금 자신에게 작은 조정이 있지만 쓸 은자가 없어 참 힘들다고 하소연했다. 원경릉이 생각해 보더니 우문호에게 비자금 금고를 만들어 주고 앞으로 은자를 쓸 때 비자금 금고에서 꺼내라고 했다.오랜 시간만에 드디어 자기 비자금 금고를 가진 우문호는 자신이 드디어 가
황후의 침대에는 이미 두 명의 어의가 와 있고 황귀비와 호비는 회임한 상태라 적귀비가 문병을 왔다. 그 김에 어의의 진맥 결과를 듣고 폐하께 보고 하려고 기다리고 있었다.원경릉이 적귀비를 보고 일단 어의에게 물었다. “황후 마마 상태는 어떠십니까?”어의가 앞으로 나와 예를 취하며 대답했다. “태자비 마마께 아룁니다. 마마의 얼굴에 황달이 있고 몸에 부종이 있으며 간 쪽이 굳어서 붓고 아픈 게 짐작컨데 간기울혈로 기혈이 이어지지 않아 오장육부가 상한 것 같습니다.”원경릉이 이 말을 듣고 약 상자를 들고 갔다. 황후를 봤을 때 약간 놀란 것이 사람이 완전히 말랐고 눈두덩이가 온통 황달이고 이불로 몸을 덮고 있어도 배가 불러온 걸 알아챌 수 있었다. 황후의 의식은 또렷했지만 지쳐 있어 원경릉이 오는 걸 보고도 눈빛에 변화없이 쓱 한번 보더니 원경릉 뒤에 제왕을 바라봤다.방명전에 갇힌 뒤로 아들을 본 적이 거의 없는데 전에는 응어리가 있었지만 지금은 병석에 누워있는 마당이라 자신이 지난날 집착했던 게 한스러웠다. 절박하게 아들을 바라보며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제왕은 눈물을 머금고 황후의 손을 잡고 위로하며 원경릉에게 치료받도록 설득했다. 황후도 동의했다.원경릉이 우선 심장과 폐 소리를 듣고 다시 간 쪽을 누르며 물었다. “마마, 아프십니까?”황후가 미간을 찡그리며 가느다랗게 숨을 몰아쉬었다. “아파!”원경릉이 다시 부어오른 복부를 누르며 물었다. “여기는? 아프세요?”황후가 역시 방금 아파한 표정으로 대답했다.“아파!”원경릉이 황후의 두 다리를 검사하고 다리 부종이 비교적 심각한 것을 보고 눌러보니 탄력이 없어 다시 되돌아오지 않았다.복부에 물이 찼고 다리가 부었으며 간복부에 동통이 있고 얼굴색과 눈두덩이에 황달이 있는 것으로 볼 때 기본적 진단은 간에 복수가 찬 것이다.원경릉이 방명전에서 시중을 드는 하인들에게 물어보니 황후가 지난 한두 달 전부터 소화가 잘 안되고, 피를 토하거나 피가 섞인 변을 봤으며 설사도 비교적 심했다고 했다
황제와 황후는 오랫동안 만난 적이 없고 황후는 명원제가 철저하게 자신을 냉대하고 미워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에 대한 마음을 접었다. 그런데 오늘 모두가 찾아와도 진정으로 눈물 흘린 적이 없던 황후가 밖에서 황제의 가마가 도착했다는 말을 듣고 순간 눈물이 비 오듯 쏟아지며 소리 없이 통곡하는데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명원제는 도무지 오랜 시간 부부의 정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게 황후의 이런 모습을 보니 마음이 너무 괴로워 침대맡에 앉았다.황후가 점점 더 가슴 찢어지게 통곡했다. “폐하, 아직도 신첩을 기억하고 계십니까? 아직도 신첩이 미우십니까?”명원제가 손을 뻗어 황후의 눈물을 닦아주며 입을 열었다. “다 지난 일이니 당신은 몸조리해야지.”“신첩이 잘못했습니다. 신첩이 정말 잘못했습니다.” 황후의 손이 죽어라고 명원제의 팔목을 가져다 자신의 심장을 누르며 우느라 숨을 제대로 쉬지 못했다.모두가 이 모습을 보고 마음이 아려 왔다. 원경릉은 우문호 품에 안겨 제왕을 보니 제왕은 휘장 앞에 쪼그리고 앉아 눈물을 참지 못하고 곁에 있는 원용의의 눈시울도 붉어졌다.황후는 한바탕 운 데다 약을 복용해서 천천히 잠이 들었고, 적 귀비가 이미 보고했지만 명원제가 일어나 원경릉과 어의에게 황후의 상태를 다시 자세하게 다시 물었다.어의가 기본적인 상황이 이미 최악의 단계로 복수가 심하다고 얘기했기 때문에, 원경릉도 좋아질 거라고 보증할 수 없는지라 시간을 끌 수 있는 대로 최대한 끌뿐이라고 했다.명원제가 듣더니 아무 말 없이 손을 내젓고 모두 물러가게 했다.명원제는 황후 곁에서 반 시진 정도 얘기하고 자리를 떴다. 근래에 황후가 무슨 잘못했든 역시 목숨을 잃는 걸 원하지 않는 게 부부의 정이다.날이 어두워졌을 때 우문호 부부는 궁을 떠나 집으로 돌아왔다.종일 피곤한 상태로 집으로 오자 우문호가 자동으로 원경릉을 안마해 주며 속삭였다. “고생했어.”“고생은 무슨? 일곱째와 여덟째를 보니 마음이 너무 안 돼서 그렇지.” 원경릉이 한숨을 쉬었다
원경릉은 약간 경악했던 것이 어젯밤에 겨우 우문호가 이 문제를 언급했는데 오늘 바로 적 귀비가 말을 꺼내다니 말이다.여덟째는 적자고 평생 무슨 계략이나 음모와는 거리가 먼 존재라 여덟째를 키우면 황제의 총애도 다툴 수 있을 뿐더러 적자의 어머니란 지위도 얻을 수 있다는 속셈이다.적 귀비는 원경릉의 걱정을 알아채고 진정으로 하소연했다. “안심해도 돼, 팔황자를 좋아하니까. 반드시 잘 대할 거야, 절대 조금도 서운하지 않게 할 테니까.”원경릉이 말했다. “마마, 여덟째 일은 제가 앞장설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런 생각이시라면 어째서 아바마마께 아뢰지 않으시나요?”적 귀비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내가 지금 폐하 앞에서 말 발이 안 서는 상태잖아. 태자비가 대신 좋게 말 좀 해줘.”원경릉이 쉽게 적 귀비 말을 믿을 수가 없고 사실 여덟째가 어느 궁으로 갈지 결정하는 권한도 없으며 제일 중요한 건 지금 아직 황후가 살아있다는 말이지.그래서 원경릉이 말을 이었다. “이 일은 뒷날 다시 얘기하도록 하시지요. 마마께서 만약 진심이시라면 그동안 여덟째를 더 돌보심도 좋을 것 같습니다. 여덟째 본인의 의견이 가장 중요한 것이고 때가 되면 폐하께서 여덟째의 의향을 물으실 거라 만약 여덟째 스스로 마마의 궁에 가고 싶다고 하면 제가 말하는 것보다 백 배는 더 유효할 것입니다.”적 귀비가 생각해봐도 원경릉의 말이 맞는지라 서서히 웃음꽃을 피우며 말했다. “태자비 알려줘서 고맙네.”원경릉은 몰래 쓴웃음을 지었다. 이건 알려주고 싶어서가 아니라 복잡한 일에 끼어들고 싶지 않아서다.주재상은 오늘도 입궁해서 직접 황후를 봤는데 부녀가 서로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랐으나 주재상이 갈 때 황후는 오랫동안 울었다.하지만 이틀 동안 황후의 상태는 약간 호전되어 복수는 줄어들었고 먹고 마시는 것도 점차 정상을 찾았다. 명원제는 또 각별하게 할머니를 입궁하도록 청해 어의와 함께 원경릉의 치료와 병행해서 치료할 방법을 연구하게 했다.며칠 지나 황후는 많이 좋아져서 두 다
다시 말해 반은 성공했고, 반은 실패했다.그렇기 때문에 가는 건 갈 수 있는데 돌아오는 건 불가능한 것으로 또한 삼킨 다음 어디로 갔는지 원경릉은 계산해내지 못했다.그리고 계산해 나간다고 해도 난이도가 있는 게 물건을 호수 중심 소용돌이에 던지는 것이기 때문에 굉장히 정확해야 하고 사람이 뛰어들기는 불가능하고 특히 원경릉은 무공을 할 줄 모르는데 어떻게 반드시 그 소용돌이에 떨어뜨린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모든 걸 아마 다시 시작해야 할 것 같다.하지만 다행인 건 약간의 실마리가 잡혀, 원경릉은 포기하지 않고 계속 연구해 1일부터 30일까지 실험하고, 초승달부터 보름밤까지 일련의 새로운 테스트를 진행했다.보름달이 뜨는 날, 현대 쪽에서 던진 물건은 소용돌이를 거치지만 소용돌이에 말려가지 않고 천천히 호숫가로 밀려나며 실험을 담당한 귀영위가 전에 상자를 삼킨 소용돌이 쪽으로 인형을 하나 던졌는데 그 인형은 소용돌이에 빨려 들어가지 않고 오히려 수면 위에 떠 있다가 차 한잔 마실 정도의 시간이 지나서야 소용돌이가 인형을 집어삼켰다.이어서 낮에 던진 것들은 전부 집어삼켜졌고, 16일밤이 되어 달빛이 나올 때 던졌던 모든 물건이 다 바로 집어삼켜지지 않고 차 한잔 마실 정도 시간이 지난 뒤 말려 들어가는 게 어젯밤과 똑같았다.귀영위는 상자를 가지고 말을 달려 경성으로 돌아와 이 상황을 보고했다.원경릉이 기록을 남겼다. 그러니까 보름밤 경호의 시공간의 문은 몇 분 정도 단방향으로, 들어갈 수는 있지만 내보낼 수 없는 것이다. 사람이 그쪽에서 돌아올 때 시간을 잘 파악해야만 경호를 떠날 수 있고 말려들어가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하지만 이 시간을 어떻게 파악할까? 이게 어렵다. 왜냐면 15,16일날 이틀 밤 물건을 받은 시간이 전부 다르고 오빠가 그쪽에서 던져 넣은 시간도 다르다. 정확한 시간을 얻어내려면 역시 좀 힘든 상황이다.연속으로 며칠 밤 원경릉은 지금 파악한 것과 이번에 경호에서 보내온 오빠의 리포트에 의거해 경호 모델을 만들었는데 북두칠성의
사식이는 요즘 식욕이 넘쳐나서 입덧 시기를 지나고 눈에 띄게 뚱뚱해졌는데 종일 너무 배고프다고 한다. 전에는 잘 먹지 않던 반찬도 지금은 단번에 입에 쑤셔 넣고 특히 기름진 고기를 좋아하는데 한 덩어리를 한 입에 무슨 교자만두처럼 먹는다. 그래서 서일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닌 게 진짜 먹는 양이 장난이 아니라 과하게 먹어서 무슨 탈이 나는 게 아닐까 걱정됐다.어쩔 수 없이 원경릉에게 도와 달라고 해서 원경릉이 사식이에게 식단을 정해주고 엄격하게 식단을 준수해 음식을 섭취하게 하고, 하루에 다섯 끼를 먹는 대신 매 끼마다 배불리 먹지 못하게 했다.사식이는 끊임없이 고통을 호소하며 원경릉에게 화를 못 내니 서일에게 성질을 부렸다. 당신이 원 언니 앞에서 헛소리를 지껄인 바람에 자기가 밥도 배불리 못 먹는다고 말이다.서일은 전부 받아들이며 사식이가 마음대로 욕하고 때리게 놔두고 간식을 사와서 배고플 때 한두 입 먹게 했다. 미색은 사식이와 정반대인데, 최근 식욕이 없어서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고 종일 골골거리며 자고 싶어 했다.미색은 회임을 포기한 뒤 회왕부에 있던 의원들을 전부 내보내고 본인도 의원을 찾지 않았다. 회임에 초조하던 시절 지나치게 많은 쓴 약을 먹어서 지금 그 맛을 생각만 해도 토할 것 같기 때문이다. 회왕이 미색에게 의원에게 보이자고 했지만 미색은 거절하며, 자기가 전에 바빠서 피로가 누적된 게 틀림없다고 쉬면 괜찮을 거라고 했다.미색은 비애감이 들지 않을 수 없는게, 전에는 정력이 넘쳐흘러서 한번 바쁜 게 아니라 삼일 밤낮을 꼴딱 새도 다음날 여전히 맑은 정신이었다. 정말 늙은 건가?여자가 나이가 들면 밤을 못 샌다 던데.구리거울에 자신의 초췌한 얼굴을 이리저리 비춰보는데 볼수록 마음에 안 들어서 뒤를 돌아 회왕에게 물었다. “저 늙고 안 예쁜데 아직도 절 사랑해요?”오늘 휴가인 회왕이 옷을 한 벌 가져와서 미색에게 걸쳐주며 사랑이 넘실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이 어떻게 변해도 여전히 미색이면 사랑해. 쓸데없는 생각하지
원경릉은 추 할머니와 함께 산책을 마치고 돌아온 뒤, 이리 나리를 몰래 끌고 나가 조용히 물었다.“왕비께 자녀가 있습니까?”그러자 이리 나리가 되물었다. “예이와 진이를 말하는 것이냐?”원경릉이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네, 예이와 진이입니다. 그들은 지금 어디 있습니까?”“북당에는 없다. 하지만 스승님께서 이미 추 마마를 보러 오라고 하셨다는구나.”추 할머니와 왕비가 같은 세대 사람이였기 때문에 이리 나리는 항상 추 할머니를 마마라고 불렀다.“그들이 돌아온다니… 정말입니까?”원경릉은 순간 이유 모를 흥분을 느꼈다. 그들에게 자녀가 있다는 것을 몰랐을 때, 북당이 그들을 제대로 대우해 주지 않아, 아이를 낳지 못하게 한 줄 알았다. 하지만 이제 그들에게 자녀가 있다는 말을 들으니 정말 기뻤다.“그래. 돌아올지 말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돌아올 것 같다고 생각한다. 사부님이 명을 내렸으니, 감히 거역하지 못할 것이다.”“한번 만나보고 싶습니다. 아마 다섯째도 만나고 싶을 것입니다. 어찌 그들은 친왕과 왕비의 곁에서 지내지 않는 것입니까?”“상황을 대충 알고 있지 않느냐? 사부님께서 한때 황태자가 될 뻔하셨다. 그래서 그들은 모습을 드러내고 싶어 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무상황도 장인어른께서도 황위에서 물러나 다섯째가 황제가 되었다. 상황이 변했으니, 그들도 이제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혹시 그들이 너무 조심스러웠던 건 아닙니까? 굳이 그렇게까지는 안 해도 될 것입니다.”원경릉이 답했다.이리 나리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주 작은 위험이라도 있을 수 없다. 작은 일이 큰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다. 그러니 조정에 폐를 끼칠 수 있는 일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 그동안 일이 참 많지 않았냐?”원경릉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나라에 수많은 문제가 쌓여 있어 몇십 년 동안도 해결되지 않았으니, 굳이 더 많은 문제를 만들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자세히 생각하니, 북당이 그들에게 빚진 것이 참 많은
하지만 원경릉은 거절했다. 모두가 시중을 들지 않는데, 그녀만 시중을 데리고 오면 괜히 특별한 척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황후라는 신분도 숙왕부 사람들 눈에는 단지 어린아이처럼 보일 뿐이었다.그녀는 짐을 다 챙긴 후, 계란에게 아버지를 잘 돌보라고 당부하곤, 서일의 보호를 받으며 궁을 나섰다.그러자 사식이는 한숨을 쉬었다. 이제 막 궁에 왔는데, 원경릉이 다시 나가버리니 앞으로 심심한 나날을 보내야 할 자신이 걱정됐기 때문이다. 원경릉이 숙왕부에 도착했을 때, 이리 나리 부부도 추선을 방문하기 위해 와 있었다.이리 나리도 추선과 정이 깊은 사이었다. 공주는 원경릉에게 이리 나리가 어렸을 때부터 왕비가 키웠다고 말해 주었다. 처음에는 왕비가 아이를 키우는 법을 모르기에 대부분 추할머니가 그를 돌보았는데, 나중에 무예를 배우기 시작했을 때도 추할머니 덕분에 엄한 왕비 곁에서 고생을 조금 덜 할 수 있었다고 했다. 원경릉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렇군요. 왕비께서 아이를 낳지 않으셨으니, 아이를 키우는 게 익숙하지 않으셨겠지요.""듣자 하니, 왕비께서 아들과 딸을 한 명씩 낳으셨다고 하네. 열몇 살에 어디론가 보내셨다네. 어디로 갔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리도 그들을 몇 번 보지 못했다고 하더군.""왕비께서 아이를 낳으셨다니요?"원경릉이 살짝 놀란듯 물었다."저는 아이를 데려다 키웠다고 들었습니다. 예전에 보친왕..."공주는 손을 저으며 말했다."아니네. 정말 아니네. 왕비께서 직접 낳으신 아들딸이네. 쌍둥이고, 나리보다 훨씬 나이가 많네.""그렇습니까?"원경릉은 믿기 어렵다는 표정을 지었다. 과거 왕비 부부가 은거하고 지낸 탓에 자녀를 보지 못한 것이 이해는 되었지만, 최근 몇 년간 그들은 경성에 머물러 있었고, 자녀들이 찾아왔다는 이야기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관계가 아무리 나빠도 몇 년 동안 부모를 찾아오지 않을 수는 없을 텐데. 혹시나 부모와 자식 간에 어떤 갈등이 있었던 것은 아닌지 의심 되었다. "그렇네. 나리가
추선의 방에서 나온 원경릉은 청우헌으로 가서 세 거두와 이야기를 나누고 혈압까지 재주었다.그녀는 그들의 말에서 추선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그녀의 이름은 추선으로, 왕비의 옛 시녀였다. 그러나 가장 힘든 시절에 추선은 왕비와 왕부를 떠나지 않았고, 줄곧 평남왕 우문극을 돌봐왔다고 했다.그리고 그 두 명의 첩인 운 마마와 몽 마마는 실제로 왕비의 첩이라고 했다. 대체 왜 왕비의 첩이 되었는지 명확히 설명하지는 않았지만, 그들이 두 사람을 알게 되었을 때부터 그녀들은 이미 왕비의 첩으로 불렸다.세 거두는 추선의 병세를 물었다. 원경릉이 악성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하자 충격을 받았다.현대에 다녀온 경험이 있는 그들은 ‘악성’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그들의 얼굴에 한순간 무거운 분위기가 감돌아, 원경릉이 의아해하며 물었다.“왕비의 시녀라 하셨는데, 잘 아시는 것입니까?”무상황이 말했다.“숙왕부에서는 누구의 시녀인지 따로 구분하지 않았다. 나중에는 매미도 시녀를 그만두고, 모두와 함께 고생했다. 평생 혼인도 하지 않고.”“매미요?”“네가 말하는 추선이다.”원경릉은 웃음이 터질 뻔했다.추선의 이름을 매미로 부르는 것도 어찌 보면 이해가 가는 일이었다.추선이 큰 병에 걸렸다는 소식은 숙왕부 전체에 퍼졌고, 많은 사람이 원경릉에게 그녀의 병세를 물었다.원경릉은 검은 옷을 입은 노인들이 그렇게 침통한 표정을 짓는 것도, 누군가를 이렇게 걱정하는 모습도 처음 보았다. 평소 그들은 늘 차가운 태도를 보였고, 유일하게 열정을 보일 때는 식사 시간뿐이었으니 말이다.그날, 원경릉은 숙왕부에서 함께 저녁 식사를 했다. 숙왕부의 식사 방식은 한 사람이 큰 사발 하나씩 받는 것이었다. 이날 집안사람들은 음식에 거의 손을 대지 않아, 남긴 음식이 가득했다.이런 일은 전례가 없었다.원경릉은 이로부터 추선이 그들 마음속에서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알게 되었다. 소요공에 따르면, 과거 추선은 적성루에서 음식을 배분하는 일을 맡았다고 했다. 고기를 얼마나 줄
“이전에 무슨 큰 병을 앓았습니까?”원경릉이 물었다.“폐결핵이었네. 의원을 불러 치료했지만, 몇 년 동안 건강이 계속 좋지 않았네.”왕비가 대답했다.“치료했던 의원의 능력이 뛰어났겠습니다. 누구였습니까?”“주진이요.”왕비가 말했다.주진의 이름을 들으니, 원경릉은 그녀가 왕비와 오랜 세월을 함께해온 자라는 것을 확신했다.원경릉은 초능력을 사용해 노파의 폐 상태를 감지했다. 결절과 섬유화가 있었고, 심지어 종양으로 의심되는 덩어리도 발견했다. 나이가 많아,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이 많지 않았고, 우선 약물을 통해 상태를 지켜보기로 했다.그저 악성이 아니길 바라며 기도할 뿐이었다.우선 링거를 놓고 산소를 공급하며, 스테로이드를 사용해 기관지를 확장해 그녀가 조금 더 편하게 호흡할 수 있도록 했다.약물을 사용하자 노파의 안색이 서서히 나아졌고, 호흡도 훨씬 수월해졌다.그러자 노파가 감사의 말을 전했다.“이렇게 숨을 쉬어본 게 정말 오랜만인 것 같습니다…”치료가 진행되는 동안, 두 명의 나이 든 여성이 방을 드나들었다. 다들 원경릉이 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기에, 왕비가 그녀들을 소개해주었다.“모두 수년간 나와 함께해온 사람들이네.”그러고는 잠시 망설이더니 말을 덧붙였다.“내 첩들이네.”그러자 원경릉은 자신이 잘못 들은건 아닌지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녀의 첩인지 아니면 왕의 첩인지 궁금했지만, 차마 질문하기엔 입이 쉽게 열어지지가 않았다.잠시 후, 원경릉이 침대에 누워 있는 환자를 가리키며 물었다.“그럼, 이분은요?”“날 처음 모신 사람이네. 이름은 추선이야. 수십 년 동안 대부분 평남왕부에서 평남왕을 돌보며 지냈네.”왕비가 그녀의 물음에 답했다.원경릉은 이해했다. 그들은 정말 이곳에 정착하려는 것 같았다. 그래서 예전에 함께 지내던 사람들을 하나씩 데려와 함께 여생을 보내려는 것이었다.젊은 시절 함께 했던 사람들이니, 나이가 들어도 서로 곁에 머물고 싶어 했다.왕비는 원경릉과 함께 밖으로 나와 진지하게 말했다.“심각하다는 건
다섯째는 갑자기 마음이 불안해졌다.아이가 혼인을 올리지 않고 곁에 머무는 건 분명 기쁜 일이었고 효심이 있는 일이었지만 평생 결혼하지 않는다면 얼마나 외로울지 상상도 가지 않았다. 만약 자기와 원경릉이 저세상으로 떠난다면, 그녀가 혼자 어떻게 지낼 수 있을까 싶었다.그렇다고 해서 혼사를 허락하자니, 세상에 과연 걸맞은 사내가 있을지 걱정되었다.택란을 그녀보다 못 한 사내에게 보내는 건 그녀에게 너무 큰 희생이다.다섯째가 갈등하는 것 같자 원경릉이 웃으며 그를 다독였다.“택란은 이제 여덟 살이네. 너무 앞서 생각하지 마오.”다섯째가 그녀를 흘깃 쳐다보며 말했다.“자네는 모르네. 시간이 정말 순식간에 흘러가네. 벌써 여덟 살이니, 7년만 지나면 성인이 되오.”그는 시간이 조금만 천천히 흘렀으면 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두는 게 좋소. 너무 멀리 내다봐도 소용없네.”원경릉은 그의 손을 잡고 살며시 깍지를 꼈다.“아이도 운명과 행복을 찾을 수 있을 것이오. 만약 언젠가 자네만큼 훌륭한 남자를 만난다면, 그와 혼사를 해도 나쁠 게 없지 않겠소?”“그런 남자는 있을 리 없소!”우문호는 세상에 둘도 없는 사람이었다.하지만 이런 칭찬해도 우문호는 여전히 복잡해 보였기에, 원경릉은 자신이 그를 걱정하게 만든 것 같아 후회했다. 하지만 자신이 말하지 않아도 그가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 리 없었다.택란이 태어난 날부터 우문호에게는 새로운 적이 생겼다. 바로 택란과 혼인할 상대였다.그 적이 누구인지, 어디에 있는지 몰랐지만, 그는 여전히 미워하고 있었다.더구나 금나라의 어린 황제가 혼사를 직접 언급했으니, 이제 그 적은 실체가 생겼고, 이에 따라 그는 한동안 신경을 곤두세우게 되었다.그 후 며칠간 택란은 매우 순진하고 착하게 행동했다. 아버지가 시간이 날 때마다 곁에 머물며 대화를 나누고, 놀고, 책을 읽고, 글씨를 쓰며 시간을 보냈다.어린 나이임에도 이미 아부하는 법을 터득해, 다섯째의 마음을 부드럽게 만들어 더 이상 화낼 수 없게 했다.다
”이제 화가 풀린 것이오?”원경릉이 웃으며 물었다.“화 풀렸네. 하지만 금나라의 어린 황제는 조심해야 하오. 어린 자식이, 정말 너무하오!”우문호는 선물을 하나 열었다. 안에는 알록달록한 도자기로 만든 정교한 인형이 있었는데, 머리카락까지 생생하게 표현되어 있었다. 그는 미소를 멈출 수 없었다.“이 도자기 인형, 정말 우리 딸을 닮았구나. 예쁘오!”“내가 산 것이오!”원경릉이 질투라도 난듯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자네가 산 것이니 더 좋소. 아주 좋아!”우문호는 선물을 하나씩 열어보며 웃음을 멈출 수 없었다. 몇 개를 연 후에야 그는 약도성의 상황을 묻기 시작했다.원경릉은 자리에 앉아 약도성에서 있었던 상황을 하나하나 설명했다. 특히 택란이 약도성에서 보여준 대처 방법에 대해 상세히 말했다.그러자 우문호가 매우 놀라며 말했다.“택란이 지진을 예측하고 백성들을 대피시켰다니. 이건 정말 대단한 일이오. 정말 대단하네. 원 선생, 난 택란이 약도성에서 놀기만 했을 줄 알았네. 몰래 이런 큰일을 해내다니.”“택란과 경단은 모두 자네를 위해 무언가를 하고 싶어 하오. 자네가 걱정하지 않도록 말이네. 그래서 자네한테 말하지 않았던 거고. 이게 택란이 자네를 더 사랑한다는 이유요. 자네를 평생 아끼며 짐을 덜어주고 싶어 하오.”우문호는 그녀의 손을 놓고 그녀를 멍하니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원 선생, 갑자기 눈물이 날 것 같소.”원경릉은 그의 팔을 감싸 안으며 웃으며 말했다.“그래, 우시오. 우리 큰 아기 울어도 괜찮네!”우문호는 답답한 표정으로 말했다.“자네가 날 ‘큰 아기’라고 부르니 눈물이 갑자기 멈추네요.”“그럼 울지 말고 어서 앉으시오. 약도성 백성들이 택란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말해주겠소.”원경릉이 그의 팔을 잡아 의자에 앉히고는, 약도성에서 한 달 동안 있었던 일들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우문호는 그녀의 이야기에 몰입하며 감동하였다. 특히 약도성 백성들이 택란을 존경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그는 믿기 어려워했
우문호는 이 말을 듣고 얼굴빛이 확 어두워지며 깜짝 놀랐다.“청혼? 누가 청혼을 한 것이오? 미친 것이오? 겨우 여덟 살인데! 대체 어떤 정신 나간 사람이 이런 짓을……”그는 너무 충격을 받아 분노가 치밀었다. 겨우 여덟 살인 딸을 누군가 눈독을 들이고, 심지어 청혼까지 했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 그는 그자가 누구인지 알게 되면 반드시 혼쭐을 내겠다고 마음먹었다.원경릉이 그의 손을 잡고 말했다.“이미 택란의 비밀을 다 털어놨으니, 이제 더 이상 나한테 화내면 안 되오.”“말하시오. 용서할 테니 더 말하시오!”우문호는 더 이상 원경릉에게 화를 낼 힘도 없었다. 사실 처음부터 그렇게 심하게 화가 난 것도 아니었고, 복잡한 감정만이 뒤섞여 답답할 뿐이었다.하지만 지금은 그런 감정들도 모두 사라지고, 이 터무니없는 사건이 더 중요해졌다.원경릉은 택란이 금나라에 가서 10만 냥을 얻은 전말을 설명했다. 특히 금나라의 어린 황제가 그녀에게 청혼했다는 이야기도 빠뜨리지 않고 전부 털어놓았다. 단 한 글자도 숨기지 않고 진실만 말했다.우문호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그건 너무 대담하잖소! 금나라에서 10만 냥을 빼앗았다니? 어찌 이야기가 이렇게 익숙한 것이오? 그래, 기화요! 어찌 스승이 이런 짓을 가르친 것이오? 그리고 그 금나라의 어린 황제는 이제 몇 살이오? 듣자 하니 겨우 열 살이라고……”“열셋이오. 금나라의 진국왕이 그의 권력을 누르려, 일부러 열 살이라고 소문낸 것이오.”우문호는 벌떡 일어나 뒷짐을 지고 방을 빙빙 돌며 어쩔줄 몰라했다. “열다섯이라도 안 되네! 금나라가 북당의 경성에서 얼마나 먼지 알고 있소? 아이가 그곳에 시집가면 1년에 한 번도 못 돌아올 것이네. 북당의 진국 공주를 부인으로 삼겠다니? 허망 된 꿈이요! 꿈!”“아이들의 농일 뿐이요. 진지하게 받아들이면 안 되네.”원경릉이 서둘러 말을 덧붙였다.“농담이라도 안 되네. 황위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면서 우리 귀한 딸을 부인으로 삼겠다니? 이런 녀석은 앞
목여 태감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우문호에게 말했다.“폐하, 공주를 너무 꾸짖지 마십시오. 공주께서는 단지 세상을 경험하고 싶어 한 것 뿐입니다. 큰일도 아니지 않습니까? 안왕과 위왕도 그곳에 있었고, 아무 문제도 생기지 않았잖습니까?”우문호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그래. 택란이 자네에게는 과자 한 조각을 주었지만, 나한테는 안 주더군.”택란은 그 말을 듣고 재빨리 과자 한 조각을 가져와 아버지의 입가에 가져다 대며 환심을 사려는 목소리로 말했다.“아버지, 드셔 보세요. 이건 그렇게 달지 않은 생강 과자인데, 정말 맛있습니다!”생강 과자의 향기가 코끝을 스쳤다. 딸의 귀엽고 앙증맞은 얼굴을 보니 어떻게 밀쳐낼 수 있겠는가? 화가 난 상태였지만 결국 한입 물었고 생강과 설탕의 맛이 입안에 퍼졌고, 딸의 사랑스러운 미소를 보니 얼굴에 굳었던 표정이 풀어졌다.“나도 먹고 싶은데.”원경릉이 가볍게 웃으며 그의 옆에 앉아 턱을 괴고 물었다.“다섯째야, 맛있느냐?”우문호는 고개를 돌려 그녀를 무시했다. 그녀가 스스로 만든 규정을 어겼으니, 좋은 표정을 지을 마음이 없었다.원경릉이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택란아, 나한테도 한 조각 줘 보거라!”택란은 다시 과자 한 조각을 가져와 엄마의 입가에 가져다주며 더 큰 죄책감을 느꼈다. 이번엔 자신의 엄마까지 곤란하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원경릉은 과자를 먹고 나서 웃으며 말했다.“정말 맛있구나. 다 먹었으니 나가서 좀 자거라. 돌아오는 길에 제대로 못 잤으니.”“예!”택란은 얌전히 대답하고 나머지 과자를 빨리 먹어 치운 뒤 아버지에게 다가가 그를 한 번 안아주었다.“아바마마, 저 먼저 자러 가겠습니다. 깨고 나면 다리 주물러 드릴게요!”우문호는 더 이상 화를 내지 않고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했다. “그래, 어서 가거라.”택란은 목여 태감의 손을 잡고 방을 나섰다. 그녀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엄마를 한 번 돌아보며 아버지가 너무 오래 화를 내지 않기를 바랐다.원경릉은 문을 닫고 탁자 옆에
기다리고 기다리던 택란이 드디어 경성으로 돌아왔다. 우문호는 소월궁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옆에서 목여 태감이 계속해서 설득했다. 그는 공주가 아직 어리니, 노는 것을 좋아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라 하며, 그저 택란이 다른 어린아이들이 저지를 수 있는 잘못을 한 것뿐이라고 말했다. 목여 태감은 혹시라도 황제가 공주를 꾸짖을까 봐 걱정되어 공주를 감쌌다. 그의 약한 마음은 그런 걸 감당하지 못했다.마침내 택란과 원경릉이 도착했다.우문호는 작은딸이 원경릉의 뒤에 숨어 겁먹은 얼굴로 머리를 살짝 내밀고 자신을 바라보는 모습을 보았다.원경릉이 딸의 손을 꽉 잡고 말했다.“가봐라, 아버지께서 기다리신다.”택란은 고개를 숙이고 아버지 앞으로 다가갔다. 우문호 앞에 서서 조심스럽게 자기 손을 그의 손 위에 올려놓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아바마마, 저 돌아왔습니다.”그러자 우문호는 딸의 손을 잡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뿌리치지도 않았다. 앞에 서 있는 그녀를 보는 눈빛엔 복잡한 감정이 뒤섞여 있었다.“약도성에 얼마나 있었느냐?”택란은 거짓말을 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솔직히 대답했다.“지난번 여름방학 때 집에 돌아온 후 바로 약도성으로 갔어요.”우문호는 큰 충격을 받았다.“모두가 알고 있었으면서, 나만 속였단 말이냐?”택란은 미안한 마음에 아버지를 껴안으며 말했다.“죄송합니다. 앞으로는 안 그러겠습니다!”우문호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원경릉이 다가가 말했다.“아이가 자네 선물을 많이 샀소. 한번 보시게.”“필요 없소!”우문호가 단호하게 말했다. 딸을 뿌리칠 마음은 없지만, 그는 여전히 속았다는 사실에 너무 힘들었다.원경릉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을 텐데, 자신에게 말하지 않았다. 서로 비밀이 없기로 약속했건만, 그 약속이 깨진 것 같아 화가 났다.원경릉은 그의 표정을 보고 더 걱정해야 할 사람이 자기라는 것을 깨달았다.오는 길 내내 택란만 걱정하며 우문호에게 딸을 변호해 주려 했지만, 정작 자신이 그를 속인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