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영랑대와 미색의 귀가이 말이야말로 미색에게는 비수와 같아서 우문령을 노려봤다. 미색은 이렇게 여리고 약한 어린 아가씨 입에서 이렇게 매정한 말이 쏟아질 줄 몰랐다. 미색이 계속 우문령을 도와줬는데 말이다.얘기가 더 이어질 수 없었다.원경릉은 오히려 이리 나리가 참 주도면밀하게 생각한다고 느낀 게 여기 피임 수단이라고 해봤자 피임약을 먹는 건데 이런 약은 결국 자신의 몸을 망가뜨리는 거라 사식이처럼 무공을 수련한 사람은 좀 마셔도 버틸 수 있지만 우문령은 타고난 체질이 약해서 마실 수 없다.그래서 이리 나리의 생각이 참 세심한 것이 자신이 괴로운 한이 있어도 우문령을 조금도 다치게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리 나리에게 이렇게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니 의외다.어쨌든 영이가 행복하면 됐다.고개를 돌려 눈으로 미색을 위로하는데 미색이 슬픔과 원망을 담아 두 사람을 쏘아보며 물었다. “이리 나리께서 수도권에서 뭘 하시는 거죠? 늑대를 3마리나 빌려야 하는 거면 무슨 큰일이라도 난 건가요? 왜 저한테는 얘기하지 않으실까요?”“공주 마마께도 말씀 안 하셨을 게 틀림없어.” 원경릉이 말했다.우문령이 도리어 답했다. “저 아는데요. 그이가 눈 늑대가 회색 늑대 무리를 훈련하게 한다고 했어요. 나중에 남강으로 보낼 것으로 남강 쪽 지형이 늑대 무리면 돌격이 가능하겠다고.”원경릉이 미색에게, “이리 나리께서 늑대를 많이 키우셔?”“이리 나리께서 키우시는 건 아닌데 흑영랑대(黑影狼隊)라고 몇천 마리를 수도권에서 키우고 있어요.” 미색이 옆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그런데 생각 못했네요. 뜻밖에 흑영랑대가 또 출전할 줄이야. 전에는 왜 제가 생각을 못했을까요?”“흑영랑대? 전장에 다시 출전한다는 건 어떻게 된 일이야?” 원경릉은 정말 들어본 적이 없는 얘기다.“전에도 전장에 나갔을 거예요? 저도 몰라요.” 너무 오래전 일이라 미색은 고개를 흔들었다.원경릉이 알았다며 깊이 담아두지 않는 게 어차피 전쟁은 자신들이 이해하지 못한다.전에 이리 나
뜨거운 밤문을 닫고 미색은 거울 앞에 서서 장신구를 빼는데 회왕이 뒤에서 미색을 안으며 같이 거울 속에 미남미녀를 바라봤다. 두 사람의 눈빛이 절절한 사랑으로 말랑말랑해지며 감정이 꿈틀하더니 회왕의 입술이 미색의 귓가를 스쳐 지나는데 물처럼 차갑지만 미색의 마음을 흔들기는 충분했다.회왕은 미색이 자기를 보게 하더니 서로 입술이 부딪히며 소금쟁이가 연못을 스치듯 닿을 듯 말듯한 키스애서 시작해 거칠고 격렬한 불꽃처럼 미친 듯이 타오르며 마음속 욕망을 불살랐다. 미색은 눈을 감고 그간의 주도권을 포기했다. 전에는 매번 아이를 낳기 위해 다른 사람들이 가르쳐준 비방대로 했으나 지금은 오직 이 순간의 기쁨과 사랑만을 온전히 누리기로 했다.회왕이 미색을 안아서 부드러운 이불 위에 살포시 올리더니 몸을 숙이고 미색의 옷을 벗겼다. 회왕은 어깨부터 아래로 내려가며 키스하고, 미색은 회왕의 목에 두 손을 둘렀다. 사랑에 빠진 미색은 복숭아꽃처럼 아름다워 회왕은 사랑을 가누지 못했다.한바탕 광풍이 몰아치고 오늘 밤이 언제인지도 모르겠고, 그저 세상이 뱅글뱅글 도는 기분이다.마치 다시 신혼으로 돌아간 기분이 들면서 밤이고 낮이고 찰싹 붙어있던 그때 삶은 술향기처럼 몽롱했고 매일 미색을 아찔하게 만들었었다.사실 그것도 좋다. 정말 좋다.초왕부.저녁 수라를 들고 원경릉과 우문령은 얘기를 나눈 뒤 방으로 돌아가 경호에 대한 집중 연구를 계속했다.연구는 밤까지 계속되어 우문호가 들어오는지도 전혀 못 느꼈다.우문호가 원경릉 곁으로 와서 품에 안으며 작은 소리로 물었다. “아직도 봐? 안 피곤해?”“안 피곤해. 난 또 자기가 내일에나 돌아올 줄 알았지.” 원경릉이 머리를 우문호 품에 기댄 채 고개를 들고 우문호에게 미소를 지었다.우문호가 그대로 키스하고 몇 번이나 뽀뽀하더니 궁금해했다.”일 마쳐서 조금이라도 빨리 당신 보려고 돌아왔지. 애들은 자?”“지금은 아마 잘걸? 만두가 오늘 외할머니 집에 간다고 했어. 그래서 저녁 수라 들고 바로 방에 가서
뜻밖의 방문홍엽이 예전 평온함을 되찾고 우문호가 온 뒤로 집에 아무도 다른 사람이 찾아오지 않았다.사람은 정말 이상해서 번화한 것에 익숙해졌다가 다시 고요해지자 모든 게 불편하게 느껴지고 마음을 아무리 차분하게 하려해도 초왕부에 가고 싶어졌다가 또 자기가 늘 원경릉을 귀찮게 한다는 생각에 원경릉이 계산을 해내는 시간을 뺏을까봐 걱정됐다.타고나길 지략으로 승리해온 홍엽이지만 의외로 머리를 아무리 쥐어짜도 적막함을 없앨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 못난이를 돌아오라고 해서 얘기를 나눴는데 못난이는 말수가 적어서 벽을 보고 얘기하는 것같다. 노마님 약 치료 효과가 어떤 지 물은 뒤 할 말이 없어서 심하게 무료했다.못난이도 난처한 게 전에 공자를 모실 때는 공자가 늘 조용한 걸 좋아하고 말수가 적었는데 이제는 수다를 떨고 싶어할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홍엽은 지루함을 참다못해 검 두 개를 찾아 못난이와 비무를 하려 했다.못난이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공자, 창피함을 자처하지 마실 것을 권해 드립니다.”성미를 건드렸겠다? 이 말을 듣자 마음을 모질게 먹고 검을 쥔 채 못난이를 향해 찌르고 들어갔다. 못난이는 검을 집는 것과 동시에 가볍게 공중에서 제비를 돌더니 유유히 피했다. 반격으로 검을 들고 홍엽의 팔목을 향해 파고들어 오는데 홍엽이 경멸하며 검을 옆으로 하며 막는데 검이 도달할 때 검날이 갑자기 방향을 바꾸어 홍엽의 머리카락을 자르자 홍엽이 당황해서 물러나 도망치며 위험을 피했다.승부욕이 타오르며 자연스럽게 적을 얕잡아보지 않고 마음을 가다듬어 못난이와 다시 300합을 주고받을 생각이었다.비무인만큼 홍엽은 내공은 쓰지 않았다. 못난이의 검은 빠르고 경쾌해서 기이하고 변화가 많아 홍엽이 내공을 쓰지 않으면 언감생심 못난이와 300합을 겨룰 꿈도 못 꾼다. 50초식이 지나자 궁지에 빠져서 결국 못난이에게 쫓겨 바닥을 계속 굴러 겨우 못난이의 날카로운 칼끝을 피했다.하지만 붉은 옷을 입고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니 체면이 말이 아니라 암울하고
냉정언의 계략홍엽은 은근히 이를 악물었다. 이러고 싶지 않은데 어떻게 냉정언의 기세에 꺾여버렸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냉정언이 왜 왔는지도 호기심이 생겨서 차가운 얼굴로 들어갔다. 붉은 옷을 휘날리며 앉아서 눈썹을 치켜 올리고 냉정언을 보더니 말했다. “냉대인이 제 저택에 어인 일로 왔는지 모르겠습니다, 무슨 가르침이 있는지요?평소 군왕의 신분을 갖추고 살지 않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이 그런 척했다.냉정언이 담담하게 홍엽을 흘끔 보더니 말했다. “못난이를 찾아온 것으로 당신을 찾아온 게 아닙니다.”홍엽은 이 말에 순간 열이 받아서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서 말했다. “당신이 방금 그러지 않았습니까? 그래 놓고 지금 저더러 뭐 하러 왔느냐고 하는 겁니까?”냉정언이 약간 놀라서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언제 당신을 불렀다고 그러십니까? 전 원래 못난이를 불렀는데 당신이 꾸역꾸역 들어오더니 또 성난 얼굴을 하시지를 않나, 누가 당신을 열 받게 한 겁니까?”못난이는 밖에서 코웃음을 쳤다. 홍엽이 잡아먹을 거 같은 눈으로 위아래로 훑어보고 나가자 비로소 못난이가 정색하고 칼을 품고 와 냉정언에게 말했다. “절 무슨 일로 찾으십니까?”냉정언이 못난이에게 입을 뗐다. “네 얼굴에 표는 천무당의 표시인 게 거의 확실한데 노마님이 널 위해 검은 불꽃을 없앨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하셨어. 하지만 내게 생각이 있는데 만약 불꽃을 없앤 후 원래 외모로 돌아가면 강북으로 돌아가 전란을 평정하는 건 어때?”못난이가 공자에게 황당무계하다며 본인은 강북사람들이 증오하는 악마의 현신인데 그들이 천지신명처럼 숭배하는 천무당이라니.지금 다시 냉정언의 말을 들으니 갈수록 음모라는 생각이 강해졌다.지금 북당은 남강 외에 북막이 호시탐탐 엿보고 있어 북당이 정식으로 태평성대에 진입하게 하려면 적어도 남강의 어지러운 정국을 평정해 첫걸음을 내디뎌야 한다.못난이는 비록 정국에 대해서는 못 들었지만 공자가 여러 가지 얘기를 하는 것을 들어서 이런 상황도 알고 있다. 못난이
원씨 집안 노부인의 생신냉정언이 홍엽의 저택을 나와 병부로 우문호를 찾아가서 이 일을 알렸다.우문호는 그 자리에서 책략을 만들고 조정이 천무당과 맺을 맹약을 한 부 준비해 나중에 못난이의 반점이 고쳐진 뒤 못난이가 말을 바꾸지 못하도록 했다. 우문호는 냉정언에게 이 일을 차질없이 진행해 필히 연내에 남강을 평정하고자 했다. 그래서 조정의 큰 근심을 덜고 전심을 다해 북막의 대군이 변경을 압박해 오는 것에 대응하고자 하는 것이다.우문호가 냉정언에게 선포했다. “이 일이 이루어지면 하늘이 우리 북당을 돕는 것으로 내란이 그치고 북막의 흉악한 횡포도 우리 북당은 두려워하지 않을 거야.”냉정언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확실히 그럴 것입니다. 당장 이 한 걸음이 모자랐어요.”지금 당장의 태평성대는 표면적인 것에 불과하고 내란과 외적의 수탈을 그치게 해야지만 국력을 크게 발전시킬 수 있다. 둘은 서로 눈을 마주쳤다. 둘은 모두 태평성대를 이룩하려는 야심이 있어, 전란을 평정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데 다스리는 것은 더욱 어려워서 둘의 갈 길이 멀고도 멀다.원씨 집안 노마님의 생신이 오늘로, 명원제가 노부인을 국부인(國夫人)이란 일등 품계로 품계를 올리고 봉호를 하사했다. 칙령문서는 운봉금(雲鳳錦)으로 만들었는데 이것은 북당이 생긴 이래 두 번째 국부인에 책봉된 것이며, 칙령문서의 도안을 오르내리는 용이 휘감는 운봉금을 사용했다. 게다가 마침 첫 번째 국부인도 원씨 집안사람으로 당시 건국 황후와 함께 영토를 토벌한 당대 첫 번째 국부인이자 지금까지 유일한 대장군이다.원씨 집안은 지금 성인 남자가 다소 적은 편이고 특히 사식이 대에 와서는 원씨 집안에는 손자 둘만 있고 지난 몇 년 동안 원씨 집안의 여장군은 전장에 참여해 정벌전을 치러오다가 나중에 친왕들이 일어나 처음엔 위왕과 안왕, 나중에 초왕 우문호 등이 등장해 원씨 집안은 점점 물러났고 명원제도 원씨 집안의 명맥을 보존하고자 하여 좋은 땅을 봉지로 내려 편안하게 부귀를 누리고 자손이 번창
일곱째 아가씨를 맞춰라두 사람은 곧 접객실로 들어가서 일곱째 아가씨가 손을 흔들어 접객실에서 바쁘게 일하던 하인들을 물리고 원경릉에게 앉기를 권했다.원경릉은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보며 위엄 있는 기세에 더욱 마음으로 경탄했다.앉은 뒤 일곱째 아가씨는 이리 저리 말을 돌리지 않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어젯밤 어머니께 태자비 마마께서 신첩의 혼사에 뜻이 있으시다는 얘기를 하셨습니다. 신첩 우선 태자비 마마의 호의에 감사드립니다. 냉대인은 확실히 군계일학이요 봉황 같은 분으로 나라의 동량이신데 냉대인께서 소신을 좋아하지 않으실 거라고 확신합니다.”원경릉이 어리둥절해서 말했다, “왜 그렇게 말씀하십니까?”일곱째 아가씨가 미소를 지으며 침착하게 말했다. “냉대인과 신첩은 전부 해서 3번 본 적이 있습니다. 처음은 모두 어렸을 때로 사랑을 몰랐을 때입니다. 두 번째는 제 아버지께서 서거하셨을 때로 냉대인과 가족분들이 오셔서 분향하셨습니다. 세 번째는 연회 자리로 바쁘게 인사만 나누고 냉대인은 심지어 저를 알아보지도 못해 옆에서 다른 사람이 알려주고 서야 비로소 기억하셨습니다. 앞에 두 번 뵌 것은 언급하지 않아도 될 것이 냉대인은 털끝만큼도 기억하지 못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럼 세 번째 급히 얼굴만 뵀을 때 뿐인데, 태자비 마마께서 보시기에 그렇게 꿈뻑 인사한 것이 냉대인이 오매불망 수년간 그리워한 모습 같아 보이십니까? 소신 감히 단정하건데 지금 소신이 냉대인 앞에 나타나도 냉대인은 소신을 기억하지 못할 겁니다.”원경릉이 말했다. “그 정도까지는 아니겠지요?”일곱째 아가씨가 살짝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럼 한 번 시험해 보시지요. 만약 냉대인이 절 기억하시면 소신 이 혼사를 고려할 것으로 만약 알아보지 못한다면 냉대인의 그 말은 다른 속셈이 있는 것이니까요. 어떤 속셈인지는 소신 상관없습니다.”원경릉은 냉정언이 되는대로 자신이 기억하지도 못하는 사람을 언급했을 리 없다고 생각했다. 자기 어머니에게 대놓고 좋아한다고 했으니 적어도
일곱째 아가씨와 냉정언.원경릉은 우롱당한 느낌이 들어 멀뚱멀뚱 천연덕스럽게 앉아있는 냉정언을 봤다. 냉정언은 도리어 원경릉을 다독거리며 말했다. “사람을 못 알아볼 수도 있죠.”원경릉은 우문호를 한쪽으로 제치고 냉정언에게 물었다. “일곱째 아가씨를 빌어 어머니를 속이려 드는 거예요? 그녀를 전혀 좋아하지 않죠?”냉정언이 느긋하게 입을 열었다. “속인 거 아닙니다. 물론 정말 그녀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요. 그저 재미난 일을 좀 해보고 싶어서 말이죠.”원경릉은 이 말을 듣고 기분 나빠서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며 화를 냈다. “이게 어디가 재미난 일이에요? 원씨 집안의 노부인이 얼마나 기뻐하셨는지 알기나 해요? 아까 들어갔을 때 당신을 보는 눈빛이 장모가 사위를 보는 시선 아니던 가요? 냉대인, 나이를 헛먹은 것도 아닌데 노인을 놀려요?”우문호는 원경릉이 완전 열 받은 걸 보고 얼른 말렸다. “됐어, 나중에 잘 설명 드리면 되지.”원경릉이 우문호에게 눈을 흘기며 화를 냈다. “냉대인을 감싸는 거야? 자기가 똑바로 얘기해 줘야지, 이게 설명해서 끝날 일로 보여? 노마님 쪽에서는 너무 좋아하시며 혼사 치를 준비를 하신다 던데.”냉정언이 부부를 보고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전 그녀를 좋아하지 않지만 누군가는 좋아하고 있어요. 그녀가 경성에 안 돌아오면 어떻게 탕양과 만나게 해 줄 수 있습니까? 말이 나왔기에 말인데 탕양은? 며칠동안 못 봤는데.”“휴가를 얻어서 일 보러 갔어, 적어도 보름은 돌아오지 않을 거야. 그런데 일곱째 아가씨와 탕양이 무슨 관계지?” 우문호가 의아한 눈으로 냉정언을 봤다.냉정언이 뒷짐을 지고 부드럽고 청아한 얼굴로 대답했다. “일곱째 아가씨가 바로 탕양이 이미 자살했다고 생각하는 사랑하는 사람이거든요.”이 말에 원경릉과 우문호는 화들짝 놀라 서로 마주보고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냉정언이 유감이라는 듯 말을 이었다. “그러니 둘이 정말 인연이긴 한가 봅니다. 절 쓸데없이 고생시키는
냉정언은 좋은 뜻이었으나 원경릉이 살짝 한탄하며 말했다.“돕고 싶었으면 일곱째 아가씨가 안 죽었다는 사실을 직접 탕양에게 알려주면 될 것을, 노마님께서 잔뜩 기대에 부풀어 계신데 어떻게 수습하려고.”냉정언이 원경릉의 이 말을 듣고 자신이 좀 적당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얼굴에 식은땀을 흘리며 말했다. “죄송해요. 최근 계략에 익숙해지는 바람에 매사에 머리를 쓰고 음모를 꾸며야 마음이 편해서요.”부부가 같이 냉정언에게 눈을 흘기는데 냉정언이 둘을 지그시 보더니 이럴 땐 36계 줄행랑이 최고다.생신잔치가 대충 끝나고 우문호는 집으로 돌아와 귀영위에게 탕양을 찾아오라며 탕양에게 무덤은 더 찾을 필요 없다고 전하게 했다. 하지만 귀영위에게 일곱째 아가씨가 탕양이 찾는 사람이라는 얘기는 하지 않고 그녀가 죽지 않았다는 소식이 있으니 탕양에게 돌아와서 다시 얘기하자고 했다.냉씨 집안과 일곱째 아가씨의 혼사는 성사되지 않았는데 노마님 쪽의 태도가 어땠는지 모르지만 냉씨 집안 부인 쪽은 아주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직접 원경릉에게 찾아와 사죄했다.심지어 분이 도통 가시질 않아 씩씩거리며 말했다. “아니 그 망할 놈의 자식이 말한 일곱째 아가씨가 원씨 집안의 일곱째 아가씨가 아니라 원향루(原香樓)의 일곱째 아가씨라니 원. 아이고 분통 터져. 원래 그런 곳에 안 가는 아이인데 어떻게 그런 곳의 여자한테 홀려 가지고, 만약 주루의 아가씨를 데리고 오는 날엔 평생 홀아비를 만들지 언정 장가를 가든지 말든지 상관 안 할 겁니다. 저만 괜히 좋아서 태자비 마마 체면을 상하게 하고 말았습니다. 원씨 집안 쪽에는 제가 직접 사죄드리러 가서 태자비 마마께서 괜히 연루되시지 않게 할게요.”원경릉이 다 듣더니 냉정언의 궤변 능력에 조용히 엄지를 내둘렀다. 그리고 우문호의 말을 빌려서 표현하면 냉정언은 지금 완벽한 쓰레기다.원경릉은 냉 부인이 이토록 흥분한 것을 보고 입을 열었다. “부인 화내지 마세요. 냉대인의 인연이 아직 인 듯하니 한두 해 더 기다려 보시죠. 어쩌면 냉대인 스
원경릉은 추 할머니와 함께 산책을 마치고 돌아온 뒤, 이리 나리를 몰래 끌고 나가 조용히 물었다.“왕비께 자녀가 있습니까?”그러자 이리 나리가 되물었다. “예이와 진이를 말하는 것이냐?”원경릉이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네, 예이와 진이입니다. 그들은 지금 어디 있습니까?”“북당에는 없다. 하지만 스승님께서 이미 추 마마를 보러 오라고 하셨다는구나.”추 할머니와 왕비가 같은 세대 사람이였기 때문에 이리 나리는 항상 추 할머니를 마마라고 불렀다.“그들이 돌아온다니… 정말입니까?”원경릉은 순간 이유 모를 흥분을 느꼈다. 그들에게 자녀가 있다는 것을 몰랐을 때, 북당이 그들을 제대로 대우해 주지 않아, 아이를 낳지 못하게 한 줄 알았다. 하지만 이제 그들에게 자녀가 있다는 말을 들으니 정말 기뻤다.“그래. 돌아올지 말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돌아올 것 같다고 생각한다. 사부님이 명을 내렸으니, 감히 거역하지 못할 것이다.”“한번 만나보고 싶습니다. 아마 다섯째도 만나고 싶을 것입니다. 어찌 그들은 친왕과 왕비의 곁에서 지내지 않는 것입니까?”“상황을 대충 알고 있지 않느냐? 사부님께서 한때 황태자가 될 뻔하셨다. 그래서 그들은 모습을 드러내고 싶어 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무상황도 장인어른께서도 황위에서 물러나 다섯째가 황제가 되었다. 상황이 변했으니, 그들도 이제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혹시 그들이 너무 조심스러웠던 건 아닙니까? 굳이 그렇게까지는 안 해도 될 것입니다.”원경릉이 답했다.이리 나리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주 작은 위험이라도 있을 수 없다. 작은 일이 큰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다. 그러니 조정에 폐를 끼칠 수 있는 일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 그동안 일이 참 많지 않았냐?”원경릉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나라에 수많은 문제가 쌓여 있어 몇십 년 동안도 해결되지 않았으니, 굳이 더 많은 문제를 만들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자세히 생각하니, 북당이 그들에게 빚진 것이 참 많은
하지만 원경릉은 거절했다. 모두가 시중을 들지 않는데, 그녀만 시중을 데리고 오면 괜히 특별한 척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황후라는 신분도 숙왕부 사람들 눈에는 단지 어린아이처럼 보일 뿐이었다.그녀는 짐을 다 챙긴 후, 계란에게 아버지를 잘 돌보라고 당부하곤, 서일의 보호를 받으며 궁을 나섰다.그러자 사식이는 한숨을 쉬었다. 이제 막 궁에 왔는데, 원경릉이 다시 나가버리니 앞으로 심심한 나날을 보내야 할 자신이 걱정됐기 때문이다. 원경릉이 숙왕부에 도착했을 때, 이리 나리 부부도 추선을 방문하기 위해 와 있었다.이리 나리도 추선과 정이 깊은 사이었다. 공주는 원경릉에게 이리 나리가 어렸을 때부터 왕비가 키웠다고 말해 주었다. 처음에는 왕비가 아이를 키우는 법을 모르기에 대부분 추할머니가 그를 돌보았는데, 나중에 무예를 배우기 시작했을 때도 추할머니 덕분에 엄한 왕비 곁에서 고생을 조금 덜 할 수 있었다고 했다. 원경릉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렇군요. 왕비께서 아이를 낳지 않으셨으니, 아이를 키우는 게 익숙하지 않으셨겠지요.""듣자 하니, 왕비께서 아들과 딸을 한 명씩 낳으셨다고 하네. 열몇 살에 어디론가 보내셨다네. 어디로 갔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리도 그들을 몇 번 보지 못했다고 하더군.""왕비께서 아이를 낳으셨다니요?"원경릉이 살짝 놀란듯 물었다."저는 아이를 데려다 키웠다고 들었습니다. 예전에 보친왕..."공주는 손을 저으며 말했다."아니네. 정말 아니네. 왕비께서 직접 낳으신 아들딸이네. 쌍둥이고, 나리보다 훨씬 나이가 많네.""그렇습니까?"원경릉은 믿기 어렵다는 표정을 지었다. 과거 왕비 부부가 은거하고 지낸 탓에 자녀를 보지 못한 것이 이해는 되었지만, 최근 몇 년간 그들은 경성에 머물러 있었고, 자녀들이 찾아왔다는 이야기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관계가 아무리 나빠도 몇 년 동안 부모를 찾아오지 않을 수는 없을 텐데. 혹시나 부모와 자식 간에 어떤 갈등이 있었던 것은 아닌지 의심 되었다. "그렇네. 나리가
추선의 방에서 나온 원경릉은 청우헌으로 가서 세 거두와 이야기를 나누고 혈압까지 재주었다.그녀는 그들의 말에서 추선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그녀의 이름은 추선으로, 왕비의 옛 시녀였다. 그러나 가장 힘든 시절에 추선은 왕비와 왕부를 떠나지 않았고, 줄곧 평남왕 우문극을 돌봐왔다고 했다.그리고 그 두 명의 첩인 운 마마와 몽 마마는 실제로 왕비의 첩이라고 했다. 대체 왜 왕비의 첩이 되었는지 명확히 설명하지는 않았지만, 그들이 두 사람을 알게 되었을 때부터 그녀들은 이미 왕비의 첩으로 불렸다.세 거두는 추선의 병세를 물었다. 원경릉이 악성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하자 충격을 받았다.현대에 다녀온 경험이 있는 그들은 ‘악성’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그들의 얼굴에 한순간 무거운 분위기가 감돌아, 원경릉이 의아해하며 물었다.“왕비의 시녀라 하셨는데, 잘 아시는 것입니까?”무상황이 말했다.“숙왕부에서는 누구의 시녀인지 따로 구분하지 않았다. 나중에는 매미도 시녀를 그만두고, 모두와 함께 고생했다. 평생 혼인도 하지 않고.”“매미요?”“네가 말하는 추선이다.”원경릉은 웃음이 터질 뻔했다.추선의 이름을 매미로 부르는 것도 어찌 보면 이해가 가는 일이었다.추선이 큰 병에 걸렸다는 소식은 숙왕부 전체에 퍼졌고, 많은 사람이 원경릉에게 그녀의 병세를 물었다.원경릉은 검은 옷을 입은 노인들이 그렇게 침통한 표정을 짓는 것도, 누군가를 이렇게 걱정하는 모습도 처음 보았다. 평소 그들은 늘 차가운 태도를 보였고, 유일하게 열정을 보일 때는 식사 시간뿐이었으니 말이다.그날, 원경릉은 숙왕부에서 함께 저녁 식사를 했다. 숙왕부의 식사 방식은 한 사람이 큰 사발 하나씩 받는 것이었다. 이날 집안사람들은 음식에 거의 손을 대지 않아, 남긴 음식이 가득했다.이런 일은 전례가 없었다.원경릉은 이로부터 추선이 그들 마음속에서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알게 되었다. 소요공에 따르면, 과거 추선은 적성루에서 음식을 배분하는 일을 맡았다고 했다. 고기를 얼마나 줄
“이전에 무슨 큰 병을 앓았습니까?”원경릉이 물었다.“폐결핵이었네. 의원을 불러 치료했지만, 몇 년 동안 건강이 계속 좋지 않았네.”왕비가 대답했다.“치료했던 의원의 능력이 뛰어났겠습니다. 누구였습니까?”“주진이요.”왕비가 말했다.주진의 이름을 들으니, 원경릉은 그녀가 왕비와 오랜 세월을 함께해온 자라는 것을 확신했다.원경릉은 초능력을 사용해 노파의 폐 상태를 감지했다. 결절과 섬유화가 있었고, 심지어 종양으로 의심되는 덩어리도 발견했다. 나이가 많아,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이 많지 않았고, 우선 약물을 통해 상태를 지켜보기로 했다.그저 악성이 아니길 바라며 기도할 뿐이었다.우선 링거를 놓고 산소를 공급하며, 스테로이드를 사용해 기관지를 확장해 그녀가 조금 더 편하게 호흡할 수 있도록 했다.약물을 사용하자 노파의 안색이 서서히 나아졌고, 호흡도 훨씬 수월해졌다.그러자 노파가 감사의 말을 전했다.“이렇게 숨을 쉬어본 게 정말 오랜만인 것 같습니다…”치료가 진행되는 동안, 두 명의 나이 든 여성이 방을 드나들었다. 다들 원경릉이 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기에, 왕비가 그녀들을 소개해주었다.“모두 수년간 나와 함께해온 사람들이네.”그러고는 잠시 망설이더니 말을 덧붙였다.“내 첩들이네.”그러자 원경릉은 자신이 잘못 들은건 아닌지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녀의 첩인지 아니면 왕의 첩인지 궁금했지만, 차마 질문하기엔 입이 쉽게 열어지지가 않았다.잠시 후, 원경릉이 침대에 누워 있는 환자를 가리키며 물었다.“그럼, 이분은요?”“날 처음 모신 사람이네. 이름은 추선이야. 수십 년 동안 대부분 평남왕부에서 평남왕을 돌보며 지냈네.”왕비가 그녀의 물음에 답했다.원경릉은 이해했다. 그들은 정말 이곳에 정착하려는 것 같았다. 그래서 예전에 함께 지내던 사람들을 하나씩 데려와 함께 여생을 보내려는 것이었다.젊은 시절 함께 했던 사람들이니, 나이가 들어도 서로 곁에 머물고 싶어 했다.왕비는 원경릉과 함께 밖으로 나와 진지하게 말했다.“심각하다는 건
다섯째는 갑자기 마음이 불안해졌다.아이가 혼인을 올리지 않고 곁에 머무는 건 분명 기쁜 일이었고 효심이 있는 일이었지만 평생 결혼하지 않는다면 얼마나 외로울지 상상도 가지 않았다. 만약 자기와 원경릉이 저세상으로 떠난다면, 그녀가 혼자 어떻게 지낼 수 있을까 싶었다.그렇다고 해서 혼사를 허락하자니, 세상에 과연 걸맞은 사내가 있을지 걱정되었다.택란을 그녀보다 못 한 사내에게 보내는 건 그녀에게 너무 큰 희생이다.다섯째가 갈등하는 것 같자 원경릉이 웃으며 그를 다독였다.“택란은 이제 여덟 살이네. 너무 앞서 생각하지 마오.”다섯째가 그녀를 흘깃 쳐다보며 말했다.“자네는 모르네. 시간이 정말 순식간에 흘러가네. 벌써 여덟 살이니, 7년만 지나면 성인이 되오.”그는 시간이 조금만 천천히 흘렀으면 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두는 게 좋소. 너무 멀리 내다봐도 소용없네.”원경릉은 그의 손을 잡고 살며시 깍지를 꼈다.“아이도 운명과 행복을 찾을 수 있을 것이오. 만약 언젠가 자네만큼 훌륭한 남자를 만난다면, 그와 혼사를 해도 나쁠 게 없지 않겠소?”“그런 남자는 있을 리 없소!”우문호는 세상에 둘도 없는 사람이었다.하지만 이런 칭찬해도 우문호는 여전히 복잡해 보였기에, 원경릉은 자신이 그를 걱정하게 만든 것 같아 후회했다. 하지만 자신이 말하지 않아도 그가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 리 없었다.택란이 태어난 날부터 우문호에게는 새로운 적이 생겼다. 바로 택란과 혼인할 상대였다.그 적이 누구인지, 어디에 있는지 몰랐지만, 그는 여전히 미워하고 있었다.더구나 금나라의 어린 황제가 혼사를 직접 언급했으니, 이제 그 적은 실체가 생겼고, 이에 따라 그는 한동안 신경을 곤두세우게 되었다.그 후 며칠간 택란은 매우 순진하고 착하게 행동했다. 아버지가 시간이 날 때마다 곁에 머물며 대화를 나누고, 놀고, 책을 읽고, 글씨를 쓰며 시간을 보냈다.어린 나이임에도 이미 아부하는 법을 터득해, 다섯째의 마음을 부드럽게 만들어 더 이상 화낼 수 없게 했다.다
”이제 화가 풀린 것이오?”원경릉이 웃으며 물었다.“화 풀렸네. 하지만 금나라의 어린 황제는 조심해야 하오. 어린 자식이, 정말 너무하오!”우문호는 선물을 하나 열었다. 안에는 알록달록한 도자기로 만든 정교한 인형이 있었는데, 머리카락까지 생생하게 표현되어 있었다. 그는 미소를 멈출 수 없었다.“이 도자기 인형, 정말 우리 딸을 닮았구나. 예쁘오!”“내가 산 것이오!”원경릉이 질투라도 난듯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자네가 산 것이니 더 좋소. 아주 좋아!”우문호는 선물을 하나씩 열어보며 웃음을 멈출 수 없었다. 몇 개를 연 후에야 그는 약도성의 상황을 묻기 시작했다.원경릉은 자리에 앉아 약도성에서 있었던 상황을 하나하나 설명했다. 특히 택란이 약도성에서 보여준 대처 방법에 대해 상세히 말했다.그러자 우문호가 매우 놀라며 말했다.“택란이 지진을 예측하고 백성들을 대피시켰다니. 이건 정말 대단한 일이오. 정말 대단하네. 원 선생, 난 택란이 약도성에서 놀기만 했을 줄 알았네. 몰래 이런 큰일을 해내다니.”“택란과 경단은 모두 자네를 위해 무언가를 하고 싶어 하오. 자네가 걱정하지 않도록 말이네. 그래서 자네한테 말하지 않았던 거고. 이게 택란이 자네를 더 사랑한다는 이유요. 자네를 평생 아끼며 짐을 덜어주고 싶어 하오.”우문호는 그녀의 손을 놓고 그녀를 멍하니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원 선생, 갑자기 눈물이 날 것 같소.”원경릉은 그의 팔을 감싸 안으며 웃으며 말했다.“그래, 우시오. 우리 큰 아기 울어도 괜찮네!”우문호는 답답한 표정으로 말했다.“자네가 날 ‘큰 아기’라고 부르니 눈물이 갑자기 멈추네요.”“그럼 울지 말고 어서 앉으시오. 약도성 백성들이 택란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말해주겠소.”원경릉이 그의 팔을 잡아 의자에 앉히고는, 약도성에서 한 달 동안 있었던 일들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우문호는 그녀의 이야기에 몰입하며 감동하였다. 특히 약도성 백성들이 택란을 존경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그는 믿기 어려워했
우문호는 이 말을 듣고 얼굴빛이 확 어두워지며 깜짝 놀랐다.“청혼? 누가 청혼을 한 것이오? 미친 것이오? 겨우 여덟 살인데! 대체 어떤 정신 나간 사람이 이런 짓을……”그는 너무 충격을 받아 분노가 치밀었다. 겨우 여덟 살인 딸을 누군가 눈독을 들이고, 심지어 청혼까지 했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 그는 그자가 누구인지 알게 되면 반드시 혼쭐을 내겠다고 마음먹었다.원경릉이 그의 손을 잡고 말했다.“이미 택란의 비밀을 다 털어놨으니, 이제 더 이상 나한테 화내면 안 되오.”“말하시오. 용서할 테니 더 말하시오!”우문호는 더 이상 원경릉에게 화를 낼 힘도 없었다. 사실 처음부터 그렇게 심하게 화가 난 것도 아니었고, 복잡한 감정만이 뒤섞여 답답할 뿐이었다.하지만 지금은 그런 감정들도 모두 사라지고, 이 터무니없는 사건이 더 중요해졌다.원경릉은 택란이 금나라에 가서 10만 냥을 얻은 전말을 설명했다. 특히 금나라의 어린 황제가 그녀에게 청혼했다는 이야기도 빠뜨리지 않고 전부 털어놓았다. 단 한 글자도 숨기지 않고 진실만 말했다.우문호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그건 너무 대담하잖소! 금나라에서 10만 냥을 빼앗았다니? 어찌 이야기가 이렇게 익숙한 것이오? 그래, 기화요! 어찌 스승이 이런 짓을 가르친 것이오? 그리고 그 금나라의 어린 황제는 이제 몇 살이오? 듣자 하니 겨우 열 살이라고……”“열셋이오. 금나라의 진국왕이 그의 권력을 누르려, 일부러 열 살이라고 소문낸 것이오.”우문호는 벌떡 일어나 뒷짐을 지고 방을 빙빙 돌며 어쩔줄 몰라했다. “열다섯이라도 안 되네! 금나라가 북당의 경성에서 얼마나 먼지 알고 있소? 아이가 그곳에 시집가면 1년에 한 번도 못 돌아올 것이네. 북당의 진국 공주를 부인으로 삼겠다니? 허망 된 꿈이요! 꿈!”“아이들의 농일 뿐이요. 진지하게 받아들이면 안 되네.”원경릉이 서둘러 말을 덧붙였다.“농담이라도 안 되네. 황위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면서 우리 귀한 딸을 부인으로 삼겠다니? 이런 녀석은 앞
목여 태감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우문호에게 말했다.“폐하, 공주를 너무 꾸짖지 마십시오. 공주께서는 단지 세상을 경험하고 싶어 한 것 뿐입니다. 큰일도 아니지 않습니까? 안왕과 위왕도 그곳에 있었고, 아무 문제도 생기지 않았잖습니까?”우문호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그래. 택란이 자네에게는 과자 한 조각을 주었지만, 나한테는 안 주더군.”택란은 그 말을 듣고 재빨리 과자 한 조각을 가져와 아버지의 입가에 가져다 대며 환심을 사려는 목소리로 말했다.“아버지, 드셔 보세요. 이건 그렇게 달지 않은 생강 과자인데, 정말 맛있습니다!”생강 과자의 향기가 코끝을 스쳤다. 딸의 귀엽고 앙증맞은 얼굴을 보니 어떻게 밀쳐낼 수 있겠는가? 화가 난 상태였지만 결국 한입 물었고 생강과 설탕의 맛이 입안에 퍼졌고, 딸의 사랑스러운 미소를 보니 얼굴에 굳었던 표정이 풀어졌다.“나도 먹고 싶은데.”원경릉이 가볍게 웃으며 그의 옆에 앉아 턱을 괴고 물었다.“다섯째야, 맛있느냐?”우문호는 고개를 돌려 그녀를 무시했다. 그녀가 스스로 만든 규정을 어겼으니, 좋은 표정을 지을 마음이 없었다.원경릉이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택란아, 나한테도 한 조각 줘 보거라!”택란은 다시 과자 한 조각을 가져와 엄마의 입가에 가져다주며 더 큰 죄책감을 느꼈다. 이번엔 자신의 엄마까지 곤란하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원경릉은 과자를 먹고 나서 웃으며 말했다.“정말 맛있구나. 다 먹었으니 나가서 좀 자거라. 돌아오는 길에 제대로 못 잤으니.”“예!”택란은 얌전히 대답하고 나머지 과자를 빨리 먹어 치운 뒤 아버지에게 다가가 그를 한 번 안아주었다.“아바마마, 저 먼저 자러 가겠습니다. 깨고 나면 다리 주물러 드릴게요!”우문호는 더 이상 화를 내지 않고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했다. “그래, 어서 가거라.”택란은 목여 태감의 손을 잡고 방을 나섰다. 그녀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엄마를 한 번 돌아보며 아버지가 너무 오래 화를 내지 않기를 바랐다.원경릉은 문을 닫고 탁자 옆에
기다리고 기다리던 택란이 드디어 경성으로 돌아왔다. 우문호는 소월궁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옆에서 목여 태감이 계속해서 설득했다. 그는 공주가 아직 어리니, 노는 것을 좋아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라 하며, 그저 택란이 다른 어린아이들이 저지를 수 있는 잘못을 한 것뿐이라고 말했다. 목여 태감은 혹시라도 황제가 공주를 꾸짖을까 봐 걱정되어 공주를 감쌌다. 그의 약한 마음은 그런 걸 감당하지 못했다.마침내 택란과 원경릉이 도착했다.우문호는 작은딸이 원경릉의 뒤에 숨어 겁먹은 얼굴로 머리를 살짝 내밀고 자신을 바라보는 모습을 보았다.원경릉이 딸의 손을 꽉 잡고 말했다.“가봐라, 아버지께서 기다리신다.”택란은 고개를 숙이고 아버지 앞으로 다가갔다. 우문호 앞에 서서 조심스럽게 자기 손을 그의 손 위에 올려놓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아바마마, 저 돌아왔습니다.”그러자 우문호는 딸의 손을 잡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뿌리치지도 않았다. 앞에 서 있는 그녀를 보는 눈빛엔 복잡한 감정이 뒤섞여 있었다.“약도성에 얼마나 있었느냐?”택란은 거짓말을 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솔직히 대답했다.“지난번 여름방학 때 집에 돌아온 후 바로 약도성으로 갔어요.”우문호는 큰 충격을 받았다.“모두가 알고 있었으면서, 나만 속였단 말이냐?”택란은 미안한 마음에 아버지를 껴안으며 말했다.“죄송합니다. 앞으로는 안 그러겠습니다!”우문호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원경릉이 다가가 말했다.“아이가 자네 선물을 많이 샀소. 한번 보시게.”“필요 없소!”우문호가 단호하게 말했다. 딸을 뿌리칠 마음은 없지만, 그는 여전히 속았다는 사실에 너무 힘들었다.원경릉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을 텐데, 자신에게 말하지 않았다. 서로 비밀이 없기로 약속했건만, 그 약속이 깨진 것 같아 화가 났다.원경릉은 그의 표정을 보고 더 걱정해야 할 사람이 자기라는 것을 깨달았다.오는 길 내내 택란만 걱정하며 우문호에게 딸을 변호해 주려 했지만, 정작 자신이 그를 속인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