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남왕 세자, 독고 대장군우문호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난간 아래쪽을 보니 비단옷을 입은 평남왕 세자가 신하 몇 명을 이끌고 오는데 활기가 넘치고 걸음걸이가 매우 여유로웠다. 그것은 곧 햇살에 비친 그림자가 마치 바닥에서 꼬리를 흔들면서 알랑거리는 강아지처럼 걸음을 옮길 때마다 따라서 그림자도 같이 움직였다.우문호 입가에 서서히 미소가 번지며 외쳤다. “요리를 올려라!”“예!” 귀영위가 대답하고 아래에 분부하자 주인장이 전원 도착하면 바로 올릴 수 있도록 미리 준비했던 요리를 하나둘씩 올렸다.잠시 후 검은 구름무늬 비단 신이 2층에 고개를 디밀고 옷자락을 나부끼자 음산한 바람이 불어왔다. 우문호가 차를 들고 곁눈질로 평남왕 세자가 데리고 온 사람들을 훑어보았는데 전부 패검을 차고 있었고 패검은 이미 칼집 밖으로 나와 어두운 빛이 번뜩였다.“태자 전하,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평남왕 세자가 호탕하게 웃으며 성큼성큼 걸어오더니 의자를 빼서 우문호 맞은편에 앉았다. 그러고는 아주 시건방진 눈빛을 발사하며 입을 열었다.“전하 어째서 혼자 오셨습니까? 본좌는 또 태자 전하께서 몇 명을 데리고 오실 줄 알았습니다만. 둘이 마시는 건 아무래도 재미가 없지요.”본좌라는 말에 우문호가 돌연 눈을 번뜩이다 이내 다시 웃으며 말했다.“뭐, 많이 데려올 필요 있나요, 마음 맞는 사람끼리라면 충분합니다.”“전하께서는 역시 너무 경솔하십니다. 이렇게 몇 명만 수행하고 오시다니 제가 전하의 머리를 댕강하는 게 두렵지도 않으십니까?” 그렇게 말하며 껄껄 웃는 게 시건방이 하늘을 찔렀다.우문호는 평남왕 세자가 스스럼없이 이렇게 자극하고 훅 들어올 줄 몰랐지만 다들 마음속으로 이번 연회는 일종의 도박처럼 승패는 두고 봐야 할 일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우문호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세자 저하께서 데려온 몇 명으로 제 머리통을 따겠다니 그리 쉽지만은 않아 보이는데요.”평남왕이 양손으로 탁자 가장자리를 잡는 모습이 마치 한 나라의 힘을 과시하는 듯했다.“북당 경
정체평남왕 세자가 우문호를 주시했으나 우문호는 안색 하나 변하지 않고 마치 전부 다 알고 있다는 듯이 담담하게 미소를 띠고 있었다.병마 소리가 지나간 뒤 모두 평정을 되찾았으나 이 평온은 차 한잔 마실 새도 없이 바로 칼싸움 소리가 들려왔다.평남왕 세자가 데려온 사람이 난간에 기대서 건너편을 보다가 청란대가 15호에 누군가 살해당하는 것을 보고 안색이 변하더니 휘파람을 불자 사방 골목에서 사람들이 몰려나와 청란대가 15호 쪽으로 갔다.평남왕 세자가 얼굴을 실룩거리며 말했다. “이거 태자 전하를 너무 가볍게 봤나 봅니다.”우문호가 술잔을 빙빙 돌리며 말했다. “독고 대장군께서 어떻게 저를 하찮은 사람으로 보실 수가 있습니까? 대장군의 연극은 아직 많이 남았는걸요.”평남왕 세자가 거만하게 말했다. “맞아요. 안 왕비를 구출한 걸로 될 거 같나요? 조굉방을 믿지 못해서 본좌가 일부러 틈을 보이며 당신들 손이 가게 했거든요. 태자 전하는 자신이 정말 똑똑하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안왕이 궁으로 쳐들어가는데 데리고 가는 사람 중 자기 사람은 2할도 안 돼요. 그러니 지금 안왕비를 구출한다고 해도 별거 없죠. 안왕이 군사를 일으켰다는 것만으로도 본좌의 계획은 이미 성공한 거나 진배없으니까. 시위를 떠난 활은 안왕비를 구출한다도 해서 다시 활시위로 돌아오지 못합니다. 저들은 그대로 황궁 대전까지 쳐들어가 명원제를 죽일 것이고, 본좌는 여기서 태자 전하를 붙잡아 두고 있으니, 북당은 백 년 만에 대혼란을 맞게 되겠지요.”우문호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틀렸어요. 그건 대장군의 진짜 목적이 아닙니다. 안왕이 군사를 일으키는 건 허울에 불과해요, 그리고 당신도 반드시 독고란 법은 없고요.”평남왕 세자가 당황하며 하하 웃더니 말했다.“그래요? 본좌가 만약 독고가 아니면 태자 전하는 왜 본좌와 이렇게 쓸데없는 소리를 잔뜩 지껄이며 시간을 낭비하는 겁니까?”우문호가 코웃음을 치며 손으로 얼굴 껍데기를 벗기자,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숨이 멎어버리게 할 정도
독고의 목적평남왕 세자 얼굴 근육이 경련을 일으키며 이리 나리를 노려보면서 물었다.“우문호는 지금 어디에 있어?”“그건 대장군이 뭘 원하시는지에 달렸어요. 대장군이 원하는 걸 태자 전하께서는 반드시 약속을 지키실 테니까.” 이리 나리가 미소를 지었다.평남왕 세자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그래? 그럴려면 태자가 제대로 짚어야 할 텐데.”“어때요, 그럼, 제가 맞춰 볼까요?”“그러든지 말든지!” 평남왕 세자가 담담하게 말했다.이리 나리가 잔을 들고 평남왕 세자를 노려보며 말했다. “대장군께서 큰 공을 들여 이런 상황을 꾸민 것은 좋아요. 안왕을 위해 세력을 몰아주고 백성들의 신망을 만들어내고 안왕의 아내와 딸을 납치해 궁으로 쳐들어가게 하고. 마치 대장군이 정권을 탈취하려는 듯 보이지만 사실 정권 탈취는 아무런 의미도 없어요. 안왕 자체가 불안정한 사람이기 때문에 대장군은 안왕을 완전히 통제할 수 없죠. 자연스럽게 안왕을 통해서 하는 건 진정한 목적이 아니란 뜻이죠. 그래서 제가 방금 안왕 전하는 당신들의 허울에 불과하다고 한 겁니다. 하지만 당신들이 만들어 놓은 허울이 어디 하나뿐인가요. 안왕 전하는 전에 북군영을 통솔하셨는데 북군영은 병기고를 지키고 있고 그 안에는 우리 북당의 정예 무기와 전차가 있죠. 안왕이 궁으로 쳐들어가게 해 북군영 병사를 그쪽으로 쏠리게 만들어 무기고의 빈틈이 노출하는 것이 두 번째 허울이죠. 당신들이 무기고의 전차를 노린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거예요.”평남왕 세자의 눈빛이 점점 가라앉았으나 입꼬리를 씰룩거리며 냉소를 지었다.“그래? 상상력 좋은데. 하지만 당신 아직 대장군의 진짜 목적은 얘기하지 않았어.”이리 나리가 웃으며 말했다. “서두르지 마시고, 자, 일단 목 좀 축이시고!”이리 나리가 찻주전자를 따르며 말을 이어갔다. “북막과 북당의 이번 전쟁은 피치 못할 전쟁이기 때문에 신속하게 이겨야만 병력을 이동해 대주를 상대할 수 있죠. 그러려면 반드시 대주의 원군이 북당에 도착하기 전에 속전속결로 끝내
이리 나리의 반격이리 나리가 말했다. “이 정도 가지고 뭘요? 어디 당신들만큼 대단할까요? 독고 대장군이나 당신들까지도 여러 번 허울만 번드르르하지 않았습니까? 한번은 세자 당신, 한번은 적위명, 별장에 있는 적위명 말고 진짜 적위명 말입니다.”평남왕 세자가 눈을 부릅뜨고 외쳤다.“그날 홍엽이 직접 날 보고 똑똑하게 내가 바로 대장군이라고 하지 않았나, 왜 당신들은 믿지 않지?”“홍엽은 당신들이 도청하고 있다는 걸 알고 일부러 그렇게 말한 겁니다. 홍엽은 한눈에 허점을 알아차렸거든요.”“허점?” 평남왕 세자는 약간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물었다. “내 일거수일투족은 거의 매일 같이 똑같은데 허점이 어디 있다는 거지?”“그래요, 독고 대장군은 변덕이 심하고 잔혹한 성정이지만 홍엽 공자의 말에 따르면 독고가 정말 진노했을 때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심지어 눈빛조차 달라지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세자도 잘 배웠어요. 대장군이 홍엽 공자를 봤을 때 평온한 얼굴에 다른 표정이 없었으니까. 그런데 적위명 말이죠, 적중양이 정말 돈 때문에 태자를 죽이려 했다고 생각합니까? 적위명의 뜻을 이어받은 게 아니라면, 적중양은 아무리 안왕이란 피붙이에 정이 깊어도 온 가족이 몰살당할지도 모르는데 그런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태자를 죽이려 할 리 없어요. 적중양이 실패한 뒤 우리 의심선상에는 적위명이 놓이게 되었죠. 게다가 제왕 전하도 순진해서는 계속 적위명한테 시체를 수습해 가라고 귀찮게 했어요. 이에 적위명은 어쩔 수 없이 나타나야 했고 또 일부러 의심을 사는 행동까지 했어요. 태자 전하께서 사람을 보내 감시하도록 했는데 실상은 시체를 수습하고 이미 집을 떠났죠. 집안에 남아 있는 게 진짜 적위명이고요. 태자 전하께서 더 감시해도 소용없죠. 하지만 태자 전하께서 벌써 다 알아채고 계셨다는 거 몰랐죠? 지금 태자 전하는 이미 독고를 막으러 가셨어요.”평남왕 세자 얼굴이 잿빛이 되며 항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여전히 집요하게 고집을 부렸다.“우문호가 직접
위기 일발의 국고이리 나리가 가고 탕양이 천천히 걸어와 이리 나리 자리를 대신해 앉아 평남왕 세자를 바라봤다.평남왕 세자가 차갑게 탕양을 향해 외쳤다. “어설픈 연극으로 독약을 타는 계략이나 쓰다니. 난 또 네가 아주 고명한 줄 알았네? 고작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주제에.”탕양이 말했다. “쓸모만 있으면 됩니다!”“이건 임무란 말이야!” 평남왕 세자가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읊조렸다.“너희는 전혀 준비가 돼 있지 않아, 그래봤자 고작 국고와 병여도를 향해 달려갈 뿐이라고, 너흰 반드시 대패하게 돼 있어!”“그건 두고 보기로 하죠.”우문호와 홍엽은 청란대가 부근에 있다가 이리 나리가 정보를 알아내 전하자 바로 사람들을 이끌고 국고로 달려갔다.이와 동시에 한 무리의 무림인들이 황실 별궁으로 달려갔는데 첩자들이 가져온 정보에 의하면 병여도는 태상황이 가지고 출궁했다는 것이었다. 독고는 미리 남겨둔 일련의 정예를 보내 병여도를 가져오게 했다.국고 쪽은 독고가 도착했으나, 회왕이 내탕고를 담당하는 관계로 회왕의 안전이 위협받는 걸 절대 두고 보지 못하는 미색이 미리 독고가 도착하기 전에 늑대파의 무공이 가장 높은 사람들을 국고 안에 매복시켜 두었다. 독고와 독고의 선발대가 도착하자 바로 맞서 싸우는 순간 여기저기서 칼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안왕비가 무사히 구출되었다는 소식이 빠르게 전해져 안왕이 매우 기뻐하며 황궁을 더이상 공격하지 않았지만 평남왕 세자 말 대로 그가 데리고 있던 사람들 중 2할만 자신 사람이고 나머지 북군영의 대 부대는 여전히 독고의 계획대로 황궁을 공격하고 금군을 제압해 금군이 국고 쪽을 돕지 못하게 했다.북군영의 대 부대를 이끈 몇몇 장수가 바로 모반한 자들로 전부 나이든 장수들이라 군에서 명망이 높고 그들을 따르는 병사들도 많았다. 이번 전쟁에서 그들은 독고 편을 들지 않으면 그들 자신과 가족의 생명을 지킬 수 없었다.그래서 북군영의 장수들과 병사들이 안왕의 처지를 상당히 위험하게 만들었다. 안왕은 공을 세
독고와의 일전우문호가 말을 달리며 외쳤다.“그래, 은자를 빼앗아 봤자 가져가지도 못하는 거 국고를 망가뜨리면 우리 북당은 단시간 내에 싸울 능력이 없어지지.”두 사람이 타오르는 불길을 밟으며 국고 문 앞에 도착해 날아오르더니 독고를 향해 검을 겨눴다. 독고는 귓가에 검기가 공기를 가르는 것을 듣고, 심지어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장검을 뻗어 막는데 두 검이 서로 부딪히더니 독고의 검이 우문호를 위험한 지경까지 몰아붙였고 우문호는 기혈이 뒤틀리며 급히 뒤로 물러섰다.독고는 말 위에 앉아 우문호를 멸시하듯 내려다봤다. 이미 본 모습으로 돌아와서 더 이상 적위명으로 분장하지 않았는데 외모는 홍엽과 상당히 닮아 있었다. 눈썹이 어지럽게 나 있고 눈 밑에 한기가 서려 있었는데 마치 꽁꽁 언 얼음장 같아서 한 번만 슬쩍 눈길을 줘도 심장이 얼어붙을 지경이다.우문호와 독고는 처음 얼굴을 마주친 셈 치고 시선이 마주치자, 비로소 그날 대주의 병력과 성에서 마주친 자는 진짜 독고가 아니란 것을 알게 되었다.우문호는 그의 눈을 감히 응시할 수 없었다. 그 눈동자는 마치 소용돌이 같았는데 소용돌이 안은 온통 칼싸움 흔적뿐이었다.홍엽도 말을 타고 달려왔지만 그저 말 위에 앉아 가만히 증오의 눈빛으로 독고를 쳐다봤다.독고가 홍엽을 힐끔 보더니 별거 아니란 듯 극도로 멸시했다. 눈동자를 돌려 우문호를 보고 미미하게 눈살을 찌푸렸다. “어떻게 본좌가 국고를 공격할 걸 예상했지?”솔직히 독고가 국고에 데려온 사람들은 국고가 아주 쉽게 함락될 거로 예상했는데 이렇게 대비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독고의 계획대로라면 우문호는 사람들을 데리고 병기고나 궁중으로 가서 독고의 바람 잡이로 자기들끼리 치고받고 싸우는 게 정상이었다. 북군영을 죽여도 좋고, 강호에서 모아온 사람을 죽여도 좋다. 어차피 전부 북당 사람이니 독고는 가만히 앉아 어부지리로 얻으면 되는 것이었다. “대장군의 계획이 깊고 민첩했으나 세밀하게 따져보니 자연스럽게 하나둘씩 알아차릴 수 있었습니다.” 우
국고에 무슨 짓을?검을 뽑자마자 가볍게 홍엽의 머리카락을 떨어뜨리는 것을 보고 우문호도 놀랐다. ‘독고의 무공은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거지? 과연 독고가 직접 북당 경성에 와서 이 일련의 계획을 기획할 만 했구나.’우문호는 독고가 단지 지모 믿고 첩자를 잠복시켜 모반을 조장하고 차도살인(借刀殺人, 남의 칼을 빌려 사람을 죽인다)을 일삼는 줄로만 알았는데 무공이 이렇게 강력할 줄 상상도 못했다.홍엽도 가슴이 철렁한 것이 독고 곁에 그렇게 오래 있었지만, 그가 무공을 진짜 드러내는 걸 본 적이 없었다. 독고 신변에 고수가 많아서 무슨 일이 있어도 본인이 손을 쓸 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순위로 따지면 독고는 독고 곁에 100여 명의 순위 안에 들지 못하는 줄 알았는데 어디 생각이나 해봤을지 독고가 그들 고수보다 심지어 한참 위라는 것을 말이다.두 사람은 쌍검을 들어 올리자, 태양빛 아래 검기가 차가운 빛으로 응집돼 그물처럼 펼쳐지고 검기가 닿는 곳마다 베어져 나갔다.2대1로 여전히 낭패였으나 독고의 검은 현철로 만들어져 더할 나위 없이 강하고 견고했다. 병장기가 부딪히는 소리만 끊임없이 들려오는 것이 이번 전투도 치열할 운명이었다.이때 국고에서 엄청난 굉음이 울려 퍼졌는데 먼지가 순간 날아오르면서 우문호가 급히 뒤돌아보고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이리 나기가 막 도착해 권법과 장풍을 쏘는데 우문호가 외쳤다.“이리 나리, 어서 들어가세요. 땅굴을 뚫은 거 같아요. 저들이 지하로 금을 옮기고 국고에 불을 지르려고 하는 것 같아요.”아무리 추측해 봐도 독고가 대체 뭘 하려는 건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으나, 우문호는 국고 안에는 은 외에도 황금이 대량으로 있었고, 황금은 불에 탈 걱정이 없으므로 독고는 철저하게 국면을 장악하기 위해서는 분명 북당에 황금을 남겨 놔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독고에게 있어 이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왜냐면 원래 이번 전쟁은 북당 사람끼리 서로 싸우게 하려는 작전이라 독고 자체도 자기 사람이 많지
위풍당당원경릉은 정오부터 전투 소리가 들리자, 심장이 벌렁거리는데 사식이가 옆에서 달래주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안풍친왕 부부께서 이미 준비하고 계세요!”“하지만 별궁은 시위가 많지 않아.” 원경릉이 긴장해서 말했다.“안풍친왕비께 여쭤봤는데 섬전위인가 뭔가도 있고 저들이 들어와 공격하기 힘든 게 섬전위 중에 기이한 인사가 있어 무슨 진법을 설치했다고 하더라고요.”사식이는 겉으로는 침착해 보였으나 눈빛이 흔들렸는데 방금 나가서 보고 왔기 때문이었다. 밖에는 적어도 천명은 족히 넘게 있었으나 별궁 안은 다해도 200명이 되지 않았다.게다가 바깥에 그들은 하나하나 전부 무공이 강력한 자들이었다.“”태상황 폐하는? 내가 가서 같이 있어야겠어.” 원경릉은 도무지 안심이 안 됐다. 아이들은 자신을 보호할 능력이 있지만 태상황은 없었다.“갈 필요 없어요. 태상황 폐하께서는 갑옷을 입으셨어요!” 사식이가 말했다.원경릉이 눈이 휘둥그레 해졌다.“뭐?”원경릉이 뛰쳐나가 정전에 도작하자 과연 삼대 거두가 모두 갑옷을 입고 있었고 안풍친왕 부부도 똑같이 금색의 갑옷에 장검을 들고 있으니 출정하는 모습은 한 폭의 그림 같았다.“황조부!” 원경릉이 다급하게 달려가 외쳤다.“나가시려고요? 가시면 안 됩니다.”태상황이 청황검(青芒劍)을 쥐었는데 검신이 무거워 쥐고 있는 것 만해도 힘에 부쳐 보였고, 나가서 싸우는 건 말할 필요도 없었다.하지만 눈빛이 형형하게 불타올라 지난날 무료해하던 분위기는 하나도 없고 손을 뻗어 검을 휘두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과인은 무장 출신으로 오늘 전투가 두려울 게 뭐가 있겠어? 만약 전장에서 죽는다 해도 장수에겐 마땅한 것을!”안풍친왕비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태자비, 긴장하지 말게, 나가서 좀 놀게 해 드려. 괜찮으니까!”원경릉이 흠칫 놀랐다.‘논다고요? 이게 장난인가요? 이건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일이에요.’갑옷을 단단히 여민 왕비의 모습은 늠름하고 씩씩한 것이 얼굴에 세월의 흔적 따위 없는 것
잔뜩 긴장한 채로 앞으로 몸을 반쯤 내밀고 있었던 주 지부는 우렁찬 상대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중심을 잃은 듯 비틀거렸다. 그는 이내 팔을 뻗어 망루의 기둥을 붙잡으려 했지만, 허공에서 멈추고 말았고, 그대로 몸이 앞으로 쏠려 떨어져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가 말에서 빠르게 날아올라, 믿기 힘들 정도로 빠른 속도로 그에게 달려갔다. 상대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주 지부가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그를 안고 빙 돌아서 바닥에 착지했다.주 지부는 깜짝 놀라서 그만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를 구해준 사람은 반짝거리는 눈망울에, 품위 있는 모습의 젊고 잘생긴 사내였다. 주 지부는 그를 황제의 호위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거의 죽을 뻔한 고비를 넘겼기에, 안도의 한숨을 내쉴 새도 없이 그에게 예를 올렸다.“대인,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그때 말들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는데, 서일이 먼저 말에서 내려, 다급히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괜찮으십니까?”우문호도 매우 놀란 듯했다. 조금만 늦었다면, 주 지부는 정말 죽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가슴을 가볍게 두드리며 숨을 들이쉬었다.“괜찮다.”그러고는 주 지부를 보며 물었다.“자네는 누구요?”주 지부는 마차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보며, 누가 황제인지 추측했다.황제는 올해 마흔에 가까운 나이로 알려져 있었기에 위엄이 넘쳐 보일 것이었다. 그는 일행 중, 냉 수보와 홍엽을 만난 적 있었기에, 거친 모습을 한 이 인물은 아마도 호위로 추측된다. “묻지 않았소? 자네는 누구요? 어찌 죽으려고 하는 것이오?”서일은 그가 멍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자, 큰 소리로 다시 물었다.주 지부는 울 지경이었다. 냉 수보가 그를 보고 있으니, 예를 올려야 하지만, 황제도 자리에 있으니, 바로 냉 수보에게 예를 올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대체 누가 황제란 말인가?그는 황제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어, 결국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그러고는 그들에게만 들릴 정도로 낮은 목소
원경릉의 말은 그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고, 자리에 있던 관리들은 기쁨과 동시에 두려움에 휩싸였다. 이 대인은 땅에 엎드려 온몸을 바르르 떨고 있었다. 그는 살아생전에 자신이 황제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은 단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평소 차분하고 신중한 주 지부도, 그도 감정이 격해져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눈가에는 눈물이 가득했다.황후를 만난 것만으로도 큰 영광이라 생각했는데, 황제까지 오신다는 소식에 그의 마음은 흥분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원경릉은 평생을 경성에서 다섯째와 함께 있었기에, 그녀는 그저 그가 온다는 사실을 간단히 전했을 뿐이었는데 말이다. 그녀는 다들 걱정 없이 역병을 치료하고, 언제나 황제가 그들의 뒤를 든든히 지켜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들의 반응을 보니, 황제가 직접 오는 것이, 지방 관리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깨달았다.원경릉이 급히 말을 덧붙였다.“폐하게서는 그저 역병 때문에 온 것이니, 모두 각자 맡은 일에만 최선을 다하면 되네.”“예, 예, 마마의 명을 따르겠습니다.”주 지부가 눈물을 닦으며 답했다.그렇게 관아와 의서가 협력하여, 오계부를 조사하기 시작했다.원 할머니는 역병을 치료할 수 있는 처방을 몇 가지 내렸다. 경증 환자는 약차를 계속 마시고, 증상이 악화하거나 중증 환자는 그녀의 처방을 사용하도록 했다.전에 이미 근처 주부에 연락해 약을 보내라 명했고, 오계부에서 구비한 약까지 있으니, 이번 역병을 대처할 수 있었다.오계부 의서는 이번 역병을 과거의 역병과 동일하게 생각하고, 소홀히 한 것 외에는 준비가 충분했다.원경릉은 황제 일행이 저녁 무렵 오계부에 도착할 것이라 예상했다.주 지부는 원래 여러 관리와 함께 황제를 맞이할 예정이었지만, 원경릉이 이를 단호히 거부했다. 그녀는 황제가 미복 순행 중이니, 과하게 맞이하여 백성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했다.그 말에 주 지부는 당황했다.황제가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아무도 맞이하지 않는다니, 어찌 그럴 수 있다는 말인가?그러나 그는 황
약을 쓰자, 주 지부의 열이 단번에 내려갔다.열이 내려가니 정신이 맑아져, 그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는 애써 자리에서 일어나 황후마마에게 예를 올리겠다고 고집 피웠다.원경릉은 그에게 누워 있으라고 말한 후, 역병에 관해 이야기하며 주 지부에게 이를 중시할 것을 당부했다.주 지부는 이를 듣고 깜짝 놀라 말했다.“소신은 매일 의서에 사람을 보내, 역병의 상황을 보고받고 있사옵니다. 매일 보고된 상황은 그다지 심각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역병이 발생했지만, 작년과 비슷한 정도였고, 약재도 충분한데, 어찌 이렇게 심각해진 것입니까?”“매년 역병이 발생했으나, 대대적으로 퍼지지 않아,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네.”원경릉이 답했다.“의서의 이 대인을 불러, 상황을 확인하겠습니다.”주 지부는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어제 이미 그를 찾아가, 환자 수와 사망자 수를 조사하라 명했네. 하지만 그는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모를 것이네. 자네가 사람을 보내, 관아에 와서 상황을 보고하도록 하게.”“예!”주 지부는 곧바로 사람을 보냈다.푸른 옷을 입은 남자는 관아에서 일하는 관리였기에, 그는 반 시진도 채 되지 않아, 관아 내에서 병에 걸린 자가 얼마나 되는지 통계해냈다.관아 내에서 역병 증상을 보인 사람은 총 열여덟 명이었고, 그중 두 명은 병세가 심각하여 이미 집에서 쉬고 있는 상태였다. 주 지부는 관아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병에 걸린 줄 몰랐고, 관리의 보고를 들은 후, 큰 충격을 받았다.의서의 이 대인은 하루 종일 쉬지도 않고, 바삐 움직였다. 서관 대인이 직접 오셨으니, 어떻게든 시키는 일을 완성해내야 했다.그는 사실 역병이 그다지 심각하지 않고, 그저 작년과 비슷하다고 여겼었다.하지만 여러 지역과 의원을 돌아보고 나서야, 이번 역병이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처음엔 그저 서관 대인에게 보고만 하려고 했지만, 병세가 심각해지자 그도 조급해지기 시작했다.하지만 짧은 시간 안에 인원수를 통계하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도, 다섯째 일행은 여전히 도착하지 않았다.그래서 원경릉과 할머니는 다른 의관을 더 둘러보기로 하고, 몇 군데 더 돌아본 뒤 관아에도 갈 계획을 했다.그런데 한 의관에 들어서자마자, 푸른 옷을 입은 중년 남자가 다급히 뛰어오며 말을 걸었다. “수 의원, 대인께서 병세가 위중합니다. 어서 봐주셔야 합니다.”의원은 그 말을 듣자마자, 약상자를 집어 들고 다른 환자들을 그냥 남겨둔 채, 푸른 옷의 중년 남자와 함께 나가려 했다.원경릉이 그를 막아 세우며 말했다.“의관에 있는 환자들을 돌봐야 하지 않소? 우리 할머님께서도 의원이니, 지부 대인의 병은 할머님께서 봐 드릴 것이오.”푸른 옷의 사내는 초조한 듯 원경릉을 향해 소리쳤다.“말도 안 되는 소리 마시오!““대인의 병세가 급박한데, 혹여라도 지체되면 당신들이 책임질 수나 있겠소?”바로 그때, 원 할머니가 호패를 꺼내, 그의 눈앞에 들이밀며 단호하게 말했다.“길을 안내하거라!”조급한 표정을 짓던 푸른 옷의 사내는 호패를 보자마자 표정이 얼어붙었다. 이내 정신을 차린 그는 곧장 허리를 굽혀 예를 올리며 말했다.“서관 대인께서 오셨을 줄은 몰랐습니다. 무례를 범해 송구하옵니다.”“그만 사과하고 길 안내나 하시오.”원경릉이 말했다.“예, 예!”사내는 급히 물러서서, 예를 갖춰서 길을 가리켰다.“마차가 밖에서 대기 중입니다. 서관 대인, 이쪽으로 오시지요.”원경릉은 할머니를 부축해 마차에 올랐고, 곧장 관아로 향했다.지부 대인은 따로 사저가 없어 관아의 뒷마당에서 거주 중이었다. 혼자 지내는 데다 관아가 워낙 가까워 편리했기 때문이다.관아에 도착하자마자, 그들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안으로 들어갔다.주 지부는 병세가 꽤 심각해져 있었다. 그는 어지럼증과 흉통에 시달려, 침대에 누운 채 말을 꺼낼 힘도 없었다.원경릉은 직접 치료에 나섰고, 약상자를 열어 체온 측정기와 청진기를 꺼냈다.푸른 옷의 사내가 의아해하며 물었다.“아가씨께서도 의원이십니까?”그러자 곁에 서
이 대인이 원경릉에게 의학을 잘 모른다고 반박할 틈도 없이, 원 할머니가 먼저 입을 열었다. "말대로 하게. 하루만 줄 테니, 그 안에 역병에 관한 모든 자료를 가져오게. 사망자 수도 포함되어야 하네." 이 말까지 듣자, 이 대인은 더 이상 반박할 수 없었다. 비록 조사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서관 대인이 멀리서 오계부까지 왔으니, 시키는 일은 해야지 대인의 마음에 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사람들을 보내 조사를 명한 후, 이 대인은 거처를 마련해 드리겠다고 했다. 하지만 원경릉이 말했다. "괜찮습니다. 의서에 의원이 많지 않으니, 대인도 바쁘실 텐데요. 저희가 직접 오계부를 돌아보겠습니다." 이 대인은 그녀가 원 할머니의 힘을 빌려 위세를 부린다고 생각해, 대꾸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말에 답도 하지 않고, 원 할머니에게 예를 올렸다. "어르신께서 머무실 계획이 있으시면, 부디 저에게 알려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밤 대인을 잘 대접하라, 명을 내리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네. 일이나 보게." 원 할머니는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원경릉에게 말했다. "먼저 좀 돌아보다, 객사를 찾아 머물자꾸나." "예!" 두 사람은 역병을 조사하기 위해 다급히 이곳을 찾아왔기에, 먼저 각지의 의원을 직접 돌아보려 했다. 아마 다섯째 일행은 빨라야 내일이나 모레쯤 도착할 것이었다. 두 사람이 의서를 나서자, 이 대인은 뒤따라 나오려다 원 할머니의 날카로운 눈빛에 움찔하며 발길을 멈췄다. 두 사람은 오계부의 거리로 향했다. 거리가 꽤 번화했고, 사람들도 제법 많아, 대낮에는 조금 붐볐다. 그들은 곧장 의원으로 향했다. 의원 앞에는 약차가 많이 진열되어 있었지만, 환자는 얼마 없었다. 겉보기엔 역병이 퍼졌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원경릉은 안으로 들어가 의원에게 상황을 물었다. 그러자 의원은 요즘 들어 약차가 잘 팔리고 있고, 하루에 천 봉지가 넘게 팔린다고 답했다. 하지만 그도 역병
늦게 출발한 원경릉은 신속하게 오계부로 향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오계부 근처 주현에 도착하자마자, 할머니가 현지 혜민서로 가야 한다며 잠깐 멈추자고 했다. 그러고는 혜민서에 오계부로 약을 공급할 준비를 하게 했고, 명을 받으면 바로 오계부로 보낼 수 있도록 미리 준비를 당부했다. 혜민서 산하의 의료기관들은 지난 몇 년간 개혁을 통해 뚜렷한 성과를 거두었고, 지역 간의 연결도 긴밀해졌다. 특히 역병을 상대하는 체계가 가동되면 상부에서는 전력을 다해 의원과 약을 지원해줄 수 있었다. 신신당부한 뒤에야 원경릉과 할머니는 오계부로 재빨리 향했다. 곧이어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우문호 일행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다. 오계부는 인구가 500만 명에 이르는 곳으로, 두 개의 주부가 통합된 지역이었다. 열대에 있어, 경작지가 많고 산이 많아 농업을 위주로 삼고 있었다. 그래서 조정은 이곳을 서부의 주요 곡창지대로 삼고 있었던 것이었다. 농업이 발달한 지역은 상대적으로 경제도 번화했고, 현지 백성들은 벼 외에도 감, 자두, 리치 등을 대량으로 재배하고 있었다. 리치는 신선할 때 먹을 수도 있고, 말려서 건과로 만들어 팔 수도 있기에, 어느 정도 지역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었다. 오계부는 백월국과 인접해 있었는데, 백월국은 북당의 속국으로 사이가 우호적이며 경제 교류도 활발했다. 이는 양국의 번영을 촉진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오계부의 지부는 장씨 성을 가진 오계부 출신이었다. 장 지부는 훌륭한 관리이며 지역 백성들로부터 존경받고 있었다. 원경릉과 원 할머니는 오계부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지역 혜민서를 찾았다. 할머니는 혜민서의 서관(署館) 신분을 밝혔다. 그녀는 북당 각 주부의 의서를 총괄하는 인물이고, 총책임자이기도 했다. 혜민서의 이 의원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두 사람을 안으로 청한 후, 바로 예를 올렸는데, 마치 신선이라도 본 것처럼 목소리까지 떨고 있었다. "소인은 이자옥이라 합니다. 어르신께서 친히 오신 줄도
그녀는 일단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하고, 냉 대인이 자세한 상황을 묻는 사이에 제 대인의 피를 뽑았다. 약상자는 기능이 꽤 다양하기에, 바이러스 검사도 문제없었고, 안에는 양여혜가 준 소형 현미경도 있었다. 하지만 바이러스 관찰이나 세균 배양에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지체할 수 없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먼저 오계부로 향하고, 그녀는 이곳에 남아 제 대인을 치료하고 검사 결과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면 바이러스든, 세균 감염이든, 결과가 나와야 제대로 된 치료 방안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미색이 말했다. "저도 이곳에 함께 남겠습니다. 제가 환자를 돌보는 것 정도는 도울 수 있지 않겠습니까?" "괜찮으니 먼저 가거라. 어쩌면 내가 더 일찍 도착할 수도 있으니깐." 원경릉이 말했다. 그녀는 혼자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지만, 미색까지 데리고 가는 건 무리였다. "우리가 먼저 출발하는데, 어찌 더 일찍 도착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미색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가능한 일이다. 원 선생은 늘 기적을 만들어내니." 우문호가 말했다. 그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고, 원경릉에게 다가가 조심하라고 몇 마디 당부했다. "알았소. 지체하지 말고, 어서 떠나시오. 오계부에 도착하면 곧바로 관아를 찾아가, 의원의 빠른 대처를 명하라 하시오. 만약 내가 먼저 도착한다면, 내가 관아를 찾아가겠소." "알겠소. 그럼, 먼저 가겠소!" 우문호는 그녀와 입을 맞추고 싶었지만, 보는 이가 많으니 그저 참을 수밖에 없었다. 서일은 황후를 홀로 두고 가는 것이 걱정되어, 우문호를 따라나서며 계속 물었다. "정말 황후를 이곳에 혼자 남겨도 되는 것입니까?" "그럼, 네가 남을 것이냐?" 우문호가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 "너도 원 선생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알고 있지 않느냐?" 회왕 부부도 걱정은 되었지만, 다섯째의 여유로운 모습에 자신이 있을 것이라 믿었다. 다섯째 부부는 늘 비밀이 많은 사람들이라, 그들은 더 이상 신경
원경릉은 밖으로 나가, 오계부에 역병이 생긴 것 같다고 전했다. 오계부는 서쪽에 자리 잡고 있어, 기후가 더운 탓에 가끔 역병이 생기긴 했었지만 백성들은 고뿔 치료에 쓰이는 약초로 끓인 차를 즐겨 마시기에, 대규모로 역병이 돈 적은 없었다. 냉 대인이 말했다. "오계부에서는 이 상황을 조정에 알리지 않았습니다. 비록 해마다 역병이 생기긴 하지만, 빠르게 통제해 왔으니, 이번에도 예전과 같은 상황이지 않겠습니까?" 원경릉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런데 이번엔 더 심각할 수도 있습니다. 제 대인의 형도 역병으로 돌아가셨고, 그와 가까이 지낸 사람들도 병에 걸렸습니다. 이렇게 관아에만 역병에 걸린 자들이 많으니, 예전보다 더 심각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해마다 역병이 생겼으니, 그에 대한 대응책도 이미 있을 것입니다." 원경릉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해마다 역병이 생겼지만, 대대적으로 유행하지 않았기에, 현지 관리들이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겨 쉽게 통제될 것이라 생각하고, 방심할 수도 있으니깐요." 우문호가 물었다. "원 선생, 역병을 어떻게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하오?" "역병 상황이 안 좋을 것이라 추측할 뿐, 정말 오계부의 상황이 어떠한지는 아직 모르네. 제 대인은 여전히 고열에 시달리고 있어, 수액을 맞히고 해열제를 먹였소. 냉 대인과 함께 들어가 상황을 자세히 물어봐야겠소. 하지만 꼭 마스크를 끼고, 병을 막아야 하오." 원경릉은 유행성 독감이나 변이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일 것이라 의심하고 있었다. 그녀가 살던 세계에서는 A형 독감의 대규모 변이가 십수 년마다 한 번씩 발생했는데, 그런 변이 독감은 현대에서도 의료 체계에 큰 부담이 되곤 했다. 그러니 지금 이곳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만약 역병이 다시 시작한다면, 가능한 한 빨리 통제해야만 했다. 원경릉의 말을 우문호와 냉 대인은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도
원경릉은 청진기를 꺼내 그의 폐를 확인해 보았는데, 남녀가 가까이 접촉하는 것이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한 제 대인은 이내 손을 뻗어 그녀를 막으려 했다. 하지만 병세가 심해 아픈 데다가,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묘한 위압감을 풍기는 의원의 단호한 눈빛과 기운에 그만 압도당하고 말았다. 원경릉은 앞쪽을 청진한 뒤, 그에게 옆으로 돌라고 한 다음에 꼼꼼히 살피고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며칠을 아프신 것입니까?" 제 대인은 꽉 막힌 코 때문에 콧소리를 내며 천천히 몸을 돌리고 답했다. "며칠 사이의 일입니다. 오계부를 떠날 때도 멀쩡했는데, 밤새 달리고, 말을 오래 타다 보니 고뿔에 걸렸나 봅니다." "기침 말고, 가슴 통증도 있습니까?" "예. 이곳이 아픕니다!" 제 대인은 가슴 근처를 손으로 누르며 말했다가, 숨쉬기가 어려운 듯 손바닥을 움직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도 아프고, 온몸 뼈마디도 다 아픕니다." 그러자 원경릉은 더 자세히 증상을 확인한 뒤 말했다. "약을 준비할게요. 수액을 좀 맞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수액이요?" 제 대인은 멍하니 원경릉을 바라보았다. "예. 질문은 하지 마시고, 그저 치료에 협조만 해주십시오. 병세가 꽤 심각한 편입니다." 원경릉은 제 대인이 폐렴이라 확신했고, 중증 폐렴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제 대인은 병이 심하다는 말에 초조한 표정을 지으며 다급히 말했다. "의원 나리, 제발 최선을 다해 치료해 주십시오… 저에게는 아직 모셔야 할 노모가 있습니다. 지난달 병으로 형님께서 세상을 떠난 터라, 형님의 자식들도 제가 돌봐야 하니, 절대 이대로 목숨을 잃을 수는 없습니다." 원경릉이 답했다. "최선을 다할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 치료에만 집중하시지요!" 제 대인은 감동을 받은 듯 감사 인사를 올렸다. "정말… 감사합니다." 원경릉은 곧바로 약을 지어 수액을 준비했다. 수액을 맞는 동안, 제 대인은 여전히 놀란 모습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