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고의 목적평남왕 세자 얼굴 근육이 경련을 일으키며 이리 나리를 노려보면서 물었다.“우문호는 지금 어디에 있어?”“그건 대장군이 뭘 원하시는지에 달렸어요. 대장군이 원하는 걸 태자 전하께서는 반드시 약속을 지키실 테니까.” 이리 나리가 미소를 지었다.평남왕 세자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그래? 그럴려면 태자가 제대로 짚어야 할 텐데.”“어때요, 그럼, 제가 맞춰 볼까요?”“그러든지 말든지!” 평남왕 세자가 담담하게 말했다.이리 나리가 잔을 들고 평남왕 세자를 노려보며 말했다. “대장군께서 큰 공을 들여 이런 상황을 꾸민 것은 좋아요. 안왕을 위해 세력을 몰아주고 백성들의 신망을 만들어내고 안왕의 아내와 딸을 납치해 궁으로 쳐들어가게 하고. 마치 대장군이 정권을 탈취하려는 듯 보이지만 사실 정권 탈취는 아무런 의미도 없어요. 안왕 자체가 불안정한 사람이기 때문에 대장군은 안왕을 완전히 통제할 수 없죠. 자연스럽게 안왕을 통해서 하는 건 진정한 목적이 아니란 뜻이죠. 그래서 제가 방금 안왕 전하는 당신들의 허울에 불과하다고 한 겁니다. 하지만 당신들이 만들어 놓은 허울이 어디 하나뿐인가요. 안왕 전하는 전에 북군영을 통솔하셨는데 북군영은 병기고를 지키고 있고 그 안에는 우리 북당의 정예 무기와 전차가 있죠. 안왕이 궁으로 쳐들어가게 해 북군영 병사를 그쪽으로 쏠리게 만들어 무기고의 빈틈이 노출하는 것이 두 번째 허울이죠. 당신들이 무기고의 전차를 노린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거예요.”평남왕 세자의 눈빛이 점점 가라앉았으나 입꼬리를 씰룩거리며 냉소를 지었다.“그래? 상상력 좋은데. 하지만 당신 아직 대장군의 진짜 목적은 얘기하지 않았어.”이리 나리가 웃으며 말했다. “서두르지 마시고, 자, 일단 목 좀 축이시고!”이리 나리가 찻주전자를 따르며 말을 이어갔다. “북막과 북당의 이번 전쟁은 피치 못할 전쟁이기 때문에 신속하게 이겨야만 병력을 이동해 대주를 상대할 수 있죠. 그러려면 반드시 대주의 원군이 북당에 도착하기 전에 속전속결로 끝내
이리 나리의 반격이리 나리가 말했다. “이 정도 가지고 뭘요? 어디 당신들만큼 대단할까요? 독고 대장군이나 당신들까지도 여러 번 허울만 번드르르하지 않았습니까? 한번은 세자 당신, 한번은 적위명, 별장에 있는 적위명 말고 진짜 적위명 말입니다.”평남왕 세자가 눈을 부릅뜨고 외쳤다.“그날 홍엽이 직접 날 보고 똑똑하게 내가 바로 대장군이라고 하지 않았나, 왜 당신들은 믿지 않지?”“홍엽은 당신들이 도청하고 있다는 걸 알고 일부러 그렇게 말한 겁니다. 홍엽은 한눈에 허점을 알아차렸거든요.”“허점?” 평남왕 세자는 약간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물었다. “내 일거수일투족은 거의 매일 같이 똑같은데 허점이 어디 있다는 거지?”“그래요, 독고 대장군은 변덕이 심하고 잔혹한 성정이지만 홍엽 공자의 말에 따르면 독고가 정말 진노했을 때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심지어 눈빛조차 달라지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세자도 잘 배웠어요. 대장군이 홍엽 공자를 봤을 때 평온한 얼굴에 다른 표정이 없었으니까. 그런데 적위명 말이죠, 적중양이 정말 돈 때문에 태자를 죽이려 했다고 생각합니까? 적위명의 뜻을 이어받은 게 아니라면, 적중양은 아무리 안왕이란 피붙이에 정이 깊어도 온 가족이 몰살당할지도 모르는데 그런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태자를 죽이려 할 리 없어요. 적중양이 실패한 뒤 우리 의심선상에는 적위명이 놓이게 되었죠. 게다가 제왕 전하도 순진해서는 계속 적위명한테 시체를 수습해 가라고 귀찮게 했어요. 이에 적위명은 어쩔 수 없이 나타나야 했고 또 일부러 의심을 사는 행동까지 했어요. 태자 전하께서 사람을 보내 감시하도록 했는데 실상은 시체를 수습하고 이미 집을 떠났죠. 집안에 남아 있는 게 진짜 적위명이고요. 태자 전하께서 더 감시해도 소용없죠. 하지만 태자 전하께서 벌써 다 알아채고 계셨다는 거 몰랐죠? 지금 태자 전하는 이미 독고를 막으러 가셨어요.”평남왕 세자 얼굴이 잿빛이 되며 항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여전히 집요하게 고집을 부렸다.“우문호가 직접
위기 일발의 국고이리 나리가 가고 탕양이 천천히 걸어와 이리 나리 자리를 대신해 앉아 평남왕 세자를 바라봤다.평남왕 세자가 차갑게 탕양을 향해 외쳤다. “어설픈 연극으로 독약을 타는 계략이나 쓰다니. 난 또 네가 아주 고명한 줄 알았네? 고작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주제에.”탕양이 말했다. “쓸모만 있으면 됩니다!”“이건 임무란 말이야!” 평남왕 세자가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읊조렸다.“너희는 전혀 준비가 돼 있지 않아, 그래봤자 고작 국고와 병여도를 향해 달려갈 뿐이라고, 너흰 반드시 대패하게 돼 있어!”“그건 두고 보기로 하죠.”우문호와 홍엽은 청란대가 부근에 있다가 이리 나리가 정보를 알아내 전하자 바로 사람들을 이끌고 국고로 달려갔다.이와 동시에 한 무리의 무림인들이 황실 별궁으로 달려갔는데 첩자들이 가져온 정보에 의하면 병여도는 태상황이 가지고 출궁했다는 것이었다. 독고는 미리 남겨둔 일련의 정예를 보내 병여도를 가져오게 했다.국고 쪽은 독고가 도착했으나, 회왕이 내탕고를 담당하는 관계로 회왕의 안전이 위협받는 걸 절대 두고 보지 못하는 미색이 미리 독고가 도착하기 전에 늑대파의 무공이 가장 높은 사람들을 국고 안에 매복시켜 두었다. 독고와 독고의 선발대가 도착하자 바로 맞서 싸우는 순간 여기저기서 칼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안왕비가 무사히 구출되었다는 소식이 빠르게 전해져 안왕이 매우 기뻐하며 황궁을 더이상 공격하지 않았지만 평남왕 세자 말 대로 그가 데리고 있던 사람들 중 2할만 자신 사람이고 나머지 북군영의 대 부대는 여전히 독고의 계획대로 황궁을 공격하고 금군을 제압해 금군이 국고 쪽을 돕지 못하게 했다.북군영의 대 부대를 이끈 몇몇 장수가 바로 모반한 자들로 전부 나이든 장수들이라 군에서 명망이 높고 그들을 따르는 병사들도 많았다. 이번 전쟁에서 그들은 독고 편을 들지 않으면 그들 자신과 가족의 생명을 지킬 수 없었다.그래서 북군영의 장수들과 병사들이 안왕의 처지를 상당히 위험하게 만들었다. 안왕은 공을 세
독고와의 일전우문호가 말을 달리며 외쳤다.“그래, 은자를 빼앗아 봤자 가져가지도 못하는 거 국고를 망가뜨리면 우리 북당은 단시간 내에 싸울 능력이 없어지지.”두 사람이 타오르는 불길을 밟으며 국고 문 앞에 도착해 날아오르더니 독고를 향해 검을 겨눴다. 독고는 귓가에 검기가 공기를 가르는 것을 듣고, 심지어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장검을 뻗어 막는데 두 검이 서로 부딪히더니 독고의 검이 우문호를 위험한 지경까지 몰아붙였고 우문호는 기혈이 뒤틀리며 급히 뒤로 물러섰다.독고는 말 위에 앉아 우문호를 멸시하듯 내려다봤다. 이미 본 모습으로 돌아와서 더 이상 적위명으로 분장하지 않았는데 외모는 홍엽과 상당히 닮아 있었다. 눈썹이 어지럽게 나 있고 눈 밑에 한기가 서려 있었는데 마치 꽁꽁 언 얼음장 같아서 한 번만 슬쩍 눈길을 줘도 심장이 얼어붙을 지경이다.우문호와 독고는 처음 얼굴을 마주친 셈 치고 시선이 마주치자, 비로소 그날 대주의 병력과 성에서 마주친 자는 진짜 독고가 아니란 것을 알게 되었다.우문호는 그의 눈을 감히 응시할 수 없었다. 그 눈동자는 마치 소용돌이 같았는데 소용돌이 안은 온통 칼싸움 흔적뿐이었다.홍엽도 말을 타고 달려왔지만 그저 말 위에 앉아 가만히 증오의 눈빛으로 독고를 쳐다봤다.독고가 홍엽을 힐끔 보더니 별거 아니란 듯 극도로 멸시했다. 눈동자를 돌려 우문호를 보고 미미하게 눈살을 찌푸렸다. “어떻게 본좌가 국고를 공격할 걸 예상했지?”솔직히 독고가 국고에 데려온 사람들은 국고가 아주 쉽게 함락될 거로 예상했는데 이렇게 대비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독고의 계획대로라면 우문호는 사람들을 데리고 병기고나 궁중으로 가서 독고의 바람 잡이로 자기들끼리 치고받고 싸우는 게 정상이었다. 북군영을 죽여도 좋고, 강호에서 모아온 사람을 죽여도 좋다. 어차피 전부 북당 사람이니 독고는 가만히 앉아 어부지리로 얻으면 되는 것이었다. “대장군의 계획이 깊고 민첩했으나 세밀하게 따져보니 자연스럽게 하나둘씩 알아차릴 수 있었습니다.” 우
국고에 무슨 짓을?검을 뽑자마자 가볍게 홍엽의 머리카락을 떨어뜨리는 것을 보고 우문호도 놀랐다. ‘독고의 무공은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거지? 과연 독고가 직접 북당 경성에 와서 이 일련의 계획을 기획할 만 했구나.’우문호는 독고가 단지 지모 믿고 첩자를 잠복시켜 모반을 조장하고 차도살인(借刀殺人, 남의 칼을 빌려 사람을 죽인다)을 일삼는 줄로만 알았는데 무공이 이렇게 강력할 줄 상상도 못했다.홍엽도 가슴이 철렁한 것이 독고 곁에 그렇게 오래 있었지만, 그가 무공을 진짜 드러내는 걸 본 적이 없었다. 독고 신변에 고수가 많아서 무슨 일이 있어도 본인이 손을 쓸 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순위로 따지면 독고는 독고 곁에 100여 명의 순위 안에 들지 못하는 줄 알았는데 어디 생각이나 해봤을지 독고가 그들 고수보다 심지어 한참 위라는 것을 말이다.두 사람은 쌍검을 들어 올리자, 태양빛 아래 검기가 차가운 빛으로 응집돼 그물처럼 펼쳐지고 검기가 닿는 곳마다 베어져 나갔다.2대1로 여전히 낭패였으나 독고의 검은 현철로 만들어져 더할 나위 없이 강하고 견고했다. 병장기가 부딪히는 소리만 끊임없이 들려오는 것이 이번 전투도 치열할 운명이었다.이때 국고에서 엄청난 굉음이 울려 퍼졌는데 먼지가 순간 날아오르면서 우문호가 급히 뒤돌아보고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이리 나기가 막 도착해 권법과 장풍을 쏘는데 우문호가 외쳤다.“이리 나리, 어서 들어가세요. 땅굴을 뚫은 거 같아요. 저들이 지하로 금을 옮기고 국고에 불을 지르려고 하는 것 같아요.”아무리 추측해 봐도 독고가 대체 뭘 하려는 건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으나, 우문호는 국고 안에는 은 외에도 황금이 대량으로 있었고, 황금은 불에 탈 걱정이 없으므로 독고는 철저하게 국면을 장악하기 위해서는 분명 북당에 황금을 남겨 놔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독고에게 있어 이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왜냐면 원래 이번 전쟁은 북당 사람끼리 서로 싸우게 하려는 작전이라 독고 자체도 자기 사람이 많지
위풍당당원경릉은 정오부터 전투 소리가 들리자, 심장이 벌렁거리는데 사식이가 옆에서 달래주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안풍친왕 부부께서 이미 준비하고 계세요!”“하지만 별궁은 시위가 많지 않아.” 원경릉이 긴장해서 말했다.“안풍친왕비께 여쭤봤는데 섬전위인가 뭔가도 있고 저들이 들어와 공격하기 힘든 게 섬전위 중에 기이한 인사가 있어 무슨 진법을 설치했다고 하더라고요.”사식이는 겉으로는 침착해 보였으나 눈빛이 흔들렸는데 방금 나가서 보고 왔기 때문이었다. 밖에는 적어도 천명은 족히 넘게 있었으나 별궁 안은 다해도 200명이 되지 않았다.게다가 바깥에 그들은 하나하나 전부 무공이 강력한 자들이었다.“”태상황 폐하는? 내가 가서 같이 있어야겠어.” 원경릉은 도무지 안심이 안 됐다. 아이들은 자신을 보호할 능력이 있지만 태상황은 없었다.“갈 필요 없어요. 태상황 폐하께서는 갑옷을 입으셨어요!” 사식이가 말했다.원경릉이 눈이 휘둥그레 해졌다.“뭐?”원경릉이 뛰쳐나가 정전에 도작하자 과연 삼대 거두가 모두 갑옷을 입고 있었고 안풍친왕 부부도 똑같이 금색의 갑옷에 장검을 들고 있으니 출정하는 모습은 한 폭의 그림 같았다.“황조부!” 원경릉이 다급하게 달려가 외쳤다.“나가시려고요? 가시면 안 됩니다.”태상황이 청황검(青芒劍)을 쥐었는데 검신이 무거워 쥐고 있는 것 만해도 힘에 부쳐 보였고, 나가서 싸우는 건 말할 필요도 없었다.하지만 눈빛이 형형하게 불타올라 지난날 무료해하던 분위기는 하나도 없고 손을 뻗어 검을 휘두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과인은 무장 출신으로 오늘 전투가 두려울 게 뭐가 있겠어? 만약 전장에서 죽는다 해도 장수에겐 마땅한 것을!”안풍친왕비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태자비, 긴장하지 말게, 나가서 좀 놀게 해 드려. 괜찮으니까!”원경릉이 흠칫 놀랐다.‘논다고요? 이게 장난인가요? 이건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일이에요.’갑옷을 단단히 여민 왕비의 모습은 늠름하고 씩씩한 것이 얼굴에 세월의 흔적 따위 없는 것
휘몰아치는 전황원경릉은 밖에 나가지 않고 방으로 돌아와 아이들과 함께 있었는데 오히려 눈 늑대가 한곳에 가만히 있지를 못하며 밖으로 나가고 싶어 안달이 나 있었다. 만두는 이참에 황태손의 위엄을 차리려고 늑대들을 죄다 별궁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게 했다.쌍둥이는 보통은 이 시간 때면 잠들 시간이었지만 오늘은 웬일인지 자지 않고 나한상에 차분하게 앉아 있는 모습이 마치 꼬마 미륵보살 같았다. 하지만 쌍둥이가 그 날카로운 눈빛으로 뭘 보는지는 모르겠지만 꼼짝하지 않고 전장을 관전하는 듯한 모습이었다.아기 호랑이는 쌍둥이 곁에 엎드려 밖을 내다보며 언제 달려 나갈까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원경릉은 우문호가 걱정되지만, 새끼 호랑이가 엎드려 움직이지 않는 것을 보고 우문호 쪽은 별일 없다고 생각했다.국고 밖.우문호 쪽 상황은 결코 가벼운 상황이 아니었다.홍엽과 두 사람 모두 다친 상황이라 대처하기 여간 힘들었다.하지만 독고는 털끝 하나 건드리지 못했다. 독고는 싸울수록 용맹해지는 듯 피로한 기색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고 눈에 뵈는 거 없이 사납게 공격했다.이것은 독고의 마지막 기회로 오늘 대패하면 북막은 다시 그와 연합하지 않을 것이며 독고도 북막 진씨 가문을 설득할 만한 충분한 돈을 얻지 못하게 될 것이다.그 전에 도망치며 독고가 데리고 간 병마는 사실 고작 8만 명으로 이 8만 명중 2만 명은 대주와 대월국의 장사치로 위장해 경성에 있고, 나머지 6만 명은 수도권에서 경성으로 들어가는 선상에 있어 금을 옮기는 역할을 담당할 것이었다. 그래서 독고는 경성에 자신에게 속한 사람이 2~3만 명 있고 그 나머지는 전부 모반을 꾀한 북군영 병사였다.우문호 말이 딱 들어맞았다. 이 계획은 물샐틈없어 보이지만 사실 급조되었음을 가리기 위해 나눠서 공격하는 것으로 우문호의 시선을 분산해 진정한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다.하지만 독고도 국고에서 성공할 가능성이 없어 보이자 유일한 희망은 병여도를 빼앗아 북막과의 연합을 얻어
홍엽을 공격한 독고우문호가 소식을 듣고 크게 고무되었다. 과연 외곽을 셋째에게 맡긴 것은 잘한 일로 셋째가 전장을 통제하고 황실 별궁과 병기고 쪽 상황을 여유롭게 기다릴 수 있었다.박원과 전진 장군은 병기고 쪽으로 역시 비교적 힘이 들었는데 탕양이 평남왕 세자를 제압한 뒤 신속하게 사람을 보냈고 일부분은 귀영위를 지원하러 갔다.경성 안팎으로 여기저기 전쟁의 불길이 치솟았으나 경조부의 병사들이 호들갑을 떨며 백성들에게 문을 걸어 잠그고 들어가 있게 해 백성들에 영향은 크지 않았다. 전에 이렇게 호들갑을 떤 일이 없었기 때문에 백성들도 놀라서 너나 할 것 없이 피난을 갈 정도였다.독고의 분산 공격은 우문호의 각개 전투로 전부 궤멸하었다.독고는 몹시 열 받고 초조했다. 황실 별궁 쪽에서 승기를 잡았다는 소식이 들려오기는커녕 오히려 누군가 우문호에게 보고하길 별궁의 적은 이미 격퇴됐다는 소식이었다.그 말에 독고는 더욱 열 받아 더는 희망이 없으므로 황궁을 쳐들어가 명원제를 주살하고 우문호를 죽여 북당에 머리가 없는 상태로 만들어야 한다며 북막을 위해 공을 세운 셈 칠 수 있고 북막도 이 혼란을 틈타 공격해 들어올 수 있다고 했다.궁문 밖.명원제는 명덕전에서 모든 비빈과 모여 있었는데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없는 것이 이번 전투에서 우문호에 대한 상당한 믿음이 있었다. 모든 계획과 배치는 독고의 군대가 모두 경성에 집결하게 하는 것으로 명원제도 동의한 일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단기간 내 독고를 찾아내지 못했을 것이다.기회를 만들면 독고가 기회에 편승해 일망타진할 수 있을 것이다.그러나 이것은 양쪽 다에게 모험으로 만약 지게 되면 정말 끝장나고 말 것이었다.호비는 명원제 곁에 앉아 있었는데 복숭아색 옷을 입고 있는 모습이 흰 눈 같았고 오늘따라 유난히 흰 피부가 돋보였다. 하지만 눈에서는 살기가 뿜어져 나와 혹여나 독고 쪽 사람이 침입해 들어오면 힘차게 방어할 태세였다.목여 태감이 300명을 데리고 명덕전 입구를 지키고 있는 와중에 해는 점점
원경릉은 추 할머니와 함께 산책을 마치고 돌아온 뒤, 이리 나리를 몰래 끌고 나가 조용히 물었다.“왕비께 자녀가 있습니까?”그러자 이리 나리가 되물었다. “예이와 진이를 말하는 것이냐?”원경릉이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네, 예이와 진이입니다. 그들은 지금 어디 있습니까?”“북당에는 없다. 하지만 스승님께서 이미 추 마마를 보러 오라고 하셨다는구나.”추 할머니와 왕비가 같은 세대 사람이였기 때문에 이리 나리는 항상 추 할머니를 마마라고 불렀다.“그들이 돌아온다니… 정말입니까?”원경릉은 순간 이유 모를 흥분을 느꼈다. 그들에게 자녀가 있다는 것을 몰랐을 때, 북당이 그들을 제대로 대우해 주지 않아, 아이를 낳지 못하게 한 줄 알았다. 하지만 이제 그들에게 자녀가 있다는 말을 들으니 정말 기뻤다.“그래. 돌아올지 말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돌아올 것 같다고 생각한다. 사부님이 명을 내렸으니, 감히 거역하지 못할 것이다.”“한번 만나보고 싶습니다. 아마 다섯째도 만나고 싶을 것입니다. 어찌 그들은 친왕과 왕비의 곁에서 지내지 않는 것입니까?”“상황을 대충 알고 있지 않느냐? 사부님께서 한때 황태자가 될 뻔하셨다. 그래서 그들은 모습을 드러내고 싶어 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무상황도 장인어른께서도 황위에서 물러나 다섯째가 황제가 되었다. 상황이 변했으니, 그들도 이제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혹시 그들이 너무 조심스러웠던 건 아닙니까? 굳이 그렇게까지는 안 해도 될 것입니다.”원경릉이 답했다.이리 나리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주 작은 위험이라도 있을 수 없다. 작은 일이 큰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다. 그러니 조정에 폐를 끼칠 수 있는 일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 그동안 일이 참 많지 않았냐?”원경릉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나라에 수많은 문제가 쌓여 있어 몇십 년 동안도 해결되지 않았으니, 굳이 더 많은 문제를 만들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자세히 생각하니, 북당이 그들에게 빚진 것이 참 많은
하지만 원경릉은 거절했다. 모두가 시중을 들지 않는데, 그녀만 시중을 데리고 오면 괜히 특별한 척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황후라는 신분도 숙왕부 사람들 눈에는 단지 어린아이처럼 보일 뿐이었다.그녀는 짐을 다 챙긴 후, 계란에게 아버지를 잘 돌보라고 당부하곤, 서일의 보호를 받으며 궁을 나섰다.그러자 사식이는 한숨을 쉬었다. 이제 막 궁에 왔는데, 원경릉이 다시 나가버리니 앞으로 심심한 나날을 보내야 할 자신이 걱정됐기 때문이다. 원경릉이 숙왕부에 도착했을 때, 이리 나리 부부도 추선을 방문하기 위해 와 있었다.이리 나리도 추선과 정이 깊은 사이었다. 공주는 원경릉에게 이리 나리가 어렸을 때부터 왕비가 키웠다고 말해 주었다. 처음에는 왕비가 아이를 키우는 법을 모르기에 대부분 추할머니가 그를 돌보았는데, 나중에 무예를 배우기 시작했을 때도 추할머니 덕분에 엄한 왕비 곁에서 고생을 조금 덜 할 수 있었다고 했다. 원경릉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렇군요. 왕비께서 아이를 낳지 않으셨으니, 아이를 키우는 게 익숙하지 않으셨겠지요.""듣자 하니, 왕비께서 아들과 딸을 한 명씩 낳으셨다고 하네. 열몇 살에 어디론가 보내셨다네. 어디로 갔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리도 그들을 몇 번 보지 못했다고 하더군.""왕비께서 아이를 낳으셨다니요?"원경릉이 살짝 놀란듯 물었다."저는 아이를 데려다 키웠다고 들었습니다. 예전에 보친왕..."공주는 손을 저으며 말했다."아니네. 정말 아니네. 왕비께서 직접 낳으신 아들딸이네. 쌍둥이고, 나리보다 훨씬 나이가 많네.""그렇습니까?"원경릉은 믿기 어렵다는 표정을 지었다. 과거 왕비 부부가 은거하고 지낸 탓에 자녀를 보지 못한 것이 이해는 되었지만, 최근 몇 년간 그들은 경성에 머물러 있었고, 자녀들이 찾아왔다는 이야기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관계가 아무리 나빠도 몇 년 동안 부모를 찾아오지 않을 수는 없을 텐데. 혹시나 부모와 자식 간에 어떤 갈등이 있었던 것은 아닌지 의심 되었다. "그렇네. 나리가
추선의 방에서 나온 원경릉은 청우헌으로 가서 세 거두와 이야기를 나누고 혈압까지 재주었다.그녀는 그들의 말에서 추선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그녀의 이름은 추선으로, 왕비의 옛 시녀였다. 그러나 가장 힘든 시절에 추선은 왕비와 왕부를 떠나지 않았고, 줄곧 평남왕 우문극을 돌봐왔다고 했다.그리고 그 두 명의 첩인 운 마마와 몽 마마는 실제로 왕비의 첩이라고 했다. 대체 왜 왕비의 첩이 되었는지 명확히 설명하지는 않았지만, 그들이 두 사람을 알게 되었을 때부터 그녀들은 이미 왕비의 첩으로 불렸다.세 거두는 추선의 병세를 물었다. 원경릉이 악성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하자 충격을 받았다.현대에 다녀온 경험이 있는 그들은 ‘악성’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그들의 얼굴에 한순간 무거운 분위기가 감돌아, 원경릉이 의아해하며 물었다.“왕비의 시녀라 하셨는데, 잘 아시는 것입니까?”무상황이 말했다.“숙왕부에서는 누구의 시녀인지 따로 구분하지 않았다. 나중에는 매미도 시녀를 그만두고, 모두와 함께 고생했다. 평생 혼인도 하지 않고.”“매미요?”“네가 말하는 추선이다.”원경릉은 웃음이 터질 뻔했다.추선의 이름을 매미로 부르는 것도 어찌 보면 이해가 가는 일이었다.추선이 큰 병에 걸렸다는 소식은 숙왕부 전체에 퍼졌고, 많은 사람이 원경릉에게 그녀의 병세를 물었다.원경릉은 검은 옷을 입은 노인들이 그렇게 침통한 표정을 짓는 것도, 누군가를 이렇게 걱정하는 모습도 처음 보았다. 평소 그들은 늘 차가운 태도를 보였고, 유일하게 열정을 보일 때는 식사 시간뿐이었으니 말이다.그날, 원경릉은 숙왕부에서 함께 저녁 식사를 했다. 숙왕부의 식사 방식은 한 사람이 큰 사발 하나씩 받는 것이었다. 이날 집안사람들은 음식에 거의 손을 대지 않아, 남긴 음식이 가득했다.이런 일은 전례가 없었다.원경릉은 이로부터 추선이 그들 마음속에서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알게 되었다. 소요공에 따르면, 과거 추선은 적성루에서 음식을 배분하는 일을 맡았다고 했다. 고기를 얼마나 줄
“이전에 무슨 큰 병을 앓았습니까?”원경릉이 물었다.“폐결핵이었네. 의원을 불러 치료했지만, 몇 년 동안 건강이 계속 좋지 않았네.”왕비가 대답했다.“치료했던 의원의 능력이 뛰어났겠습니다. 누구였습니까?”“주진이요.”왕비가 말했다.주진의 이름을 들으니, 원경릉은 그녀가 왕비와 오랜 세월을 함께해온 자라는 것을 확신했다.원경릉은 초능력을 사용해 노파의 폐 상태를 감지했다. 결절과 섬유화가 있었고, 심지어 종양으로 의심되는 덩어리도 발견했다. 나이가 많아,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이 많지 않았고, 우선 약물을 통해 상태를 지켜보기로 했다.그저 악성이 아니길 바라며 기도할 뿐이었다.우선 링거를 놓고 산소를 공급하며, 스테로이드를 사용해 기관지를 확장해 그녀가 조금 더 편하게 호흡할 수 있도록 했다.약물을 사용하자 노파의 안색이 서서히 나아졌고, 호흡도 훨씬 수월해졌다.그러자 노파가 감사의 말을 전했다.“이렇게 숨을 쉬어본 게 정말 오랜만인 것 같습니다…”치료가 진행되는 동안, 두 명의 나이 든 여성이 방을 드나들었다. 다들 원경릉이 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기에, 왕비가 그녀들을 소개해주었다.“모두 수년간 나와 함께해온 사람들이네.”그러고는 잠시 망설이더니 말을 덧붙였다.“내 첩들이네.”그러자 원경릉은 자신이 잘못 들은건 아닌지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녀의 첩인지 아니면 왕의 첩인지 궁금했지만, 차마 질문하기엔 입이 쉽게 열어지지가 않았다.잠시 후, 원경릉이 침대에 누워 있는 환자를 가리키며 물었다.“그럼, 이분은요?”“날 처음 모신 사람이네. 이름은 추선이야. 수십 년 동안 대부분 평남왕부에서 평남왕을 돌보며 지냈네.”왕비가 그녀의 물음에 답했다.원경릉은 이해했다. 그들은 정말 이곳에 정착하려는 것 같았다. 그래서 예전에 함께 지내던 사람들을 하나씩 데려와 함께 여생을 보내려는 것이었다.젊은 시절 함께 했던 사람들이니, 나이가 들어도 서로 곁에 머물고 싶어 했다.왕비는 원경릉과 함께 밖으로 나와 진지하게 말했다.“심각하다는 건
다섯째는 갑자기 마음이 불안해졌다.아이가 혼인을 올리지 않고 곁에 머무는 건 분명 기쁜 일이었고 효심이 있는 일이었지만 평생 결혼하지 않는다면 얼마나 외로울지 상상도 가지 않았다. 만약 자기와 원경릉이 저세상으로 떠난다면, 그녀가 혼자 어떻게 지낼 수 있을까 싶었다.그렇다고 해서 혼사를 허락하자니, 세상에 과연 걸맞은 사내가 있을지 걱정되었다.택란을 그녀보다 못 한 사내에게 보내는 건 그녀에게 너무 큰 희생이다.다섯째가 갈등하는 것 같자 원경릉이 웃으며 그를 다독였다.“택란은 이제 여덟 살이네. 너무 앞서 생각하지 마오.”다섯째가 그녀를 흘깃 쳐다보며 말했다.“자네는 모르네. 시간이 정말 순식간에 흘러가네. 벌써 여덟 살이니, 7년만 지나면 성인이 되오.”그는 시간이 조금만 천천히 흘렀으면 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두는 게 좋소. 너무 멀리 내다봐도 소용없네.”원경릉은 그의 손을 잡고 살며시 깍지를 꼈다.“아이도 운명과 행복을 찾을 수 있을 것이오. 만약 언젠가 자네만큼 훌륭한 남자를 만난다면, 그와 혼사를 해도 나쁠 게 없지 않겠소?”“그런 남자는 있을 리 없소!”우문호는 세상에 둘도 없는 사람이었다.하지만 이런 칭찬해도 우문호는 여전히 복잡해 보였기에, 원경릉은 자신이 그를 걱정하게 만든 것 같아 후회했다. 하지만 자신이 말하지 않아도 그가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 리 없었다.택란이 태어난 날부터 우문호에게는 새로운 적이 생겼다. 바로 택란과 혼인할 상대였다.그 적이 누구인지, 어디에 있는지 몰랐지만, 그는 여전히 미워하고 있었다.더구나 금나라의 어린 황제가 혼사를 직접 언급했으니, 이제 그 적은 실체가 생겼고, 이에 따라 그는 한동안 신경을 곤두세우게 되었다.그 후 며칠간 택란은 매우 순진하고 착하게 행동했다. 아버지가 시간이 날 때마다 곁에 머물며 대화를 나누고, 놀고, 책을 읽고, 글씨를 쓰며 시간을 보냈다.어린 나이임에도 이미 아부하는 법을 터득해, 다섯째의 마음을 부드럽게 만들어 더 이상 화낼 수 없게 했다.다
”이제 화가 풀린 것이오?”원경릉이 웃으며 물었다.“화 풀렸네. 하지만 금나라의 어린 황제는 조심해야 하오. 어린 자식이, 정말 너무하오!”우문호는 선물을 하나 열었다. 안에는 알록달록한 도자기로 만든 정교한 인형이 있었는데, 머리카락까지 생생하게 표현되어 있었다. 그는 미소를 멈출 수 없었다.“이 도자기 인형, 정말 우리 딸을 닮았구나. 예쁘오!”“내가 산 것이오!”원경릉이 질투라도 난듯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자네가 산 것이니 더 좋소. 아주 좋아!”우문호는 선물을 하나씩 열어보며 웃음을 멈출 수 없었다. 몇 개를 연 후에야 그는 약도성의 상황을 묻기 시작했다.원경릉은 자리에 앉아 약도성에서 있었던 상황을 하나하나 설명했다. 특히 택란이 약도성에서 보여준 대처 방법에 대해 상세히 말했다.그러자 우문호가 매우 놀라며 말했다.“택란이 지진을 예측하고 백성들을 대피시켰다니. 이건 정말 대단한 일이오. 정말 대단하네. 원 선생, 난 택란이 약도성에서 놀기만 했을 줄 알았네. 몰래 이런 큰일을 해내다니.”“택란과 경단은 모두 자네를 위해 무언가를 하고 싶어 하오. 자네가 걱정하지 않도록 말이네. 그래서 자네한테 말하지 않았던 거고. 이게 택란이 자네를 더 사랑한다는 이유요. 자네를 평생 아끼며 짐을 덜어주고 싶어 하오.”우문호는 그녀의 손을 놓고 그녀를 멍하니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원 선생, 갑자기 눈물이 날 것 같소.”원경릉은 그의 팔을 감싸 안으며 웃으며 말했다.“그래, 우시오. 우리 큰 아기 울어도 괜찮네!”우문호는 답답한 표정으로 말했다.“자네가 날 ‘큰 아기’라고 부르니 눈물이 갑자기 멈추네요.”“그럼 울지 말고 어서 앉으시오. 약도성 백성들이 택란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말해주겠소.”원경릉이 그의 팔을 잡아 의자에 앉히고는, 약도성에서 한 달 동안 있었던 일들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우문호는 그녀의 이야기에 몰입하며 감동하였다. 특히 약도성 백성들이 택란을 존경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그는 믿기 어려워했
우문호는 이 말을 듣고 얼굴빛이 확 어두워지며 깜짝 놀랐다.“청혼? 누가 청혼을 한 것이오? 미친 것이오? 겨우 여덟 살인데! 대체 어떤 정신 나간 사람이 이런 짓을……”그는 너무 충격을 받아 분노가 치밀었다. 겨우 여덟 살인 딸을 누군가 눈독을 들이고, 심지어 청혼까지 했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 그는 그자가 누구인지 알게 되면 반드시 혼쭐을 내겠다고 마음먹었다.원경릉이 그의 손을 잡고 말했다.“이미 택란의 비밀을 다 털어놨으니, 이제 더 이상 나한테 화내면 안 되오.”“말하시오. 용서할 테니 더 말하시오!”우문호는 더 이상 원경릉에게 화를 낼 힘도 없었다. 사실 처음부터 그렇게 심하게 화가 난 것도 아니었고, 복잡한 감정만이 뒤섞여 답답할 뿐이었다.하지만 지금은 그런 감정들도 모두 사라지고, 이 터무니없는 사건이 더 중요해졌다.원경릉은 택란이 금나라에 가서 10만 냥을 얻은 전말을 설명했다. 특히 금나라의 어린 황제가 그녀에게 청혼했다는 이야기도 빠뜨리지 않고 전부 털어놓았다. 단 한 글자도 숨기지 않고 진실만 말했다.우문호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그건 너무 대담하잖소! 금나라에서 10만 냥을 빼앗았다니? 어찌 이야기가 이렇게 익숙한 것이오? 그래, 기화요! 어찌 스승이 이런 짓을 가르친 것이오? 그리고 그 금나라의 어린 황제는 이제 몇 살이오? 듣자 하니 겨우 열 살이라고……”“열셋이오. 금나라의 진국왕이 그의 권력을 누르려, 일부러 열 살이라고 소문낸 것이오.”우문호는 벌떡 일어나 뒷짐을 지고 방을 빙빙 돌며 어쩔줄 몰라했다. “열다섯이라도 안 되네! 금나라가 북당의 경성에서 얼마나 먼지 알고 있소? 아이가 그곳에 시집가면 1년에 한 번도 못 돌아올 것이네. 북당의 진국 공주를 부인으로 삼겠다니? 허망 된 꿈이요! 꿈!”“아이들의 농일 뿐이요. 진지하게 받아들이면 안 되네.”원경릉이 서둘러 말을 덧붙였다.“농담이라도 안 되네. 황위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면서 우리 귀한 딸을 부인으로 삼겠다니? 이런 녀석은 앞
목여 태감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우문호에게 말했다.“폐하, 공주를 너무 꾸짖지 마십시오. 공주께서는 단지 세상을 경험하고 싶어 한 것 뿐입니다. 큰일도 아니지 않습니까? 안왕과 위왕도 그곳에 있었고, 아무 문제도 생기지 않았잖습니까?”우문호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그래. 택란이 자네에게는 과자 한 조각을 주었지만, 나한테는 안 주더군.”택란은 그 말을 듣고 재빨리 과자 한 조각을 가져와 아버지의 입가에 가져다 대며 환심을 사려는 목소리로 말했다.“아버지, 드셔 보세요. 이건 그렇게 달지 않은 생강 과자인데, 정말 맛있습니다!”생강 과자의 향기가 코끝을 스쳤다. 딸의 귀엽고 앙증맞은 얼굴을 보니 어떻게 밀쳐낼 수 있겠는가? 화가 난 상태였지만 결국 한입 물었고 생강과 설탕의 맛이 입안에 퍼졌고, 딸의 사랑스러운 미소를 보니 얼굴에 굳었던 표정이 풀어졌다.“나도 먹고 싶은데.”원경릉이 가볍게 웃으며 그의 옆에 앉아 턱을 괴고 물었다.“다섯째야, 맛있느냐?”우문호는 고개를 돌려 그녀를 무시했다. 그녀가 스스로 만든 규정을 어겼으니, 좋은 표정을 지을 마음이 없었다.원경릉이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택란아, 나한테도 한 조각 줘 보거라!”택란은 다시 과자 한 조각을 가져와 엄마의 입가에 가져다주며 더 큰 죄책감을 느꼈다. 이번엔 자신의 엄마까지 곤란하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원경릉은 과자를 먹고 나서 웃으며 말했다.“정말 맛있구나. 다 먹었으니 나가서 좀 자거라. 돌아오는 길에 제대로 못 잤으니.”“예!”택란은 얌전히 대답하고 나머지 과자를 빨리 먹어 치운 뒤 아버지에게 다가가 그를 한 번 안아주었다.“아바마마, 저 먼저 자러 가겠습니다. 깨고 나면 다리 주물러 드릴게요!”우문호는 더 이상 화를 내지 않고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했다. “그래, 어서 가거라.”택란은 목여 태감의 손을 잡고 방을 나섰다. 그녀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엄마를 한 번 돌아보며 아버지가 너무 오래 화를 내지 않기를 바랐다.원경릉은 문을 닫고 탁자 옆에
기다리고 기다리던 택란이 드디어 경성으로 돌아왔다. 우문호는 소월궁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옆에서 목여 태감이 계속해서 설득했다. 그는 공주가 아직 어리니, 노는 것을 좋아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라 하며, 그저 택란이 다른 어린아이들이 저지를 수 있는 잘못을 한 것뿐이라고 말했다. 목여 태감은 혹시라도 황제가 공주를 꾸짖을까 봐 걱정되어 공주를 감쌌다. 그의 약한 마음은 그런 걸 감당하지 못했다.마침내 택란과 원경릉이 도착했다.우문호는 작은딸이 원경릉의 뒤에 숨어 겁먹은 얼굴로 머리를 살짝 내밀고 자신을 바라보는 모습을 보았다.원경릉이 딸의 손을 꽉 잡고 말했다.“가봐라, 아버지께서 기다리신다.”택란은 고개를 숙이고 아버지 앞으로 다가갔다. 우문호 앞에 서서 조심스럽게 자기 손을 그의 손 위에 올려놓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아바마마, 저 돌아왔습니다.”그러자 우문호는 딸의 손을 잡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뿌리치지도 않았다. 앞에 서 있는 그녀를 보는 눈빛엔 복잡한 감정이 뒤섞여 있었다.“약도성에 얼마나 있었느냐?”택란은 거짓말을 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솔직히 대답했다.“지난번 여름방학 때 집에 돌아온 후 바로 약도성으로 갔어요.”우문호는 큰 충격을 받았다.“모두가 알고 있었으면서, 나만 속였단 말이냐?”택란은 미안한 마음에 아버지를 껴안으며 말했다.“죄송합니다. 앞으로는 안 그러겠습니다!”우문호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원경릉이 다가가 말했다.“아이가 자네 선물을 많이 샀소. 한번 보시게.”“필요 없소!”우문호가 단호하게 말했다. 딸을 뿌리칠 마음은 없지만, 그는 여전히 속았다는 사실에 너무 힘들었다.원경릉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을 텐데, 자신에게 말하지 않았다. 서로 비밀이 없기로 약속했건만, 그 약속이 깨진 것 같아 화가 났다.원경릉은 그의 표정을 보고 더 걱정해야 할 사람이 자기라는 것을 깨달았다.오는 길 내내 택란만 걱정하며 우문호에게 딸을 변호해 주려 했지만, 정작 자신이 그를 속인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