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양과 요부인의 목숨사식이가 좀처럼 움직이려 하지 않고 말했다. “탕양이 죽는 게 당신 바라던 바 아닌가요? 당신이 탕양을 납치했으면서 언제부터 탕양 생사에 관심을 가졌다고.”사식이는 사람을 시켜 시녀를 잡아가고 직접 탕 부인을 감시했다.탕 부인은 마음이 급해서 번갯불에 튀는 콩처럼 사식이에게 막말을 쏟아붓는데 사식이가 전혀 거들떠 보지도 않자, 결국 못 참고 칼을 뽑아 들었다. 7~8명의 귀영위가 하늘에서 내려와서 탕 부인을 둘러싸고 몰아붙이자 하는 수 없이 뒤로 물러섰다.탕양의 집이 이렇게 싸움터로 바뀌자 자연히 원경릉의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원경릉은 소식을 듣자마자 직접 이곳으로 행차했다.나 장군이 뜻밖에도 그 자리에 있기에 화를 버럭버럭 내며 말했다. “태자 전하의 뜻입니까?”나 장군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태자 전하는 모르십니다. 그들이 준비를 끝낸 뒤 사식 아가씨가 저에게 알린 겁니다. 제가 직접 와서 지키는 건 다른 누군가가 와서 구하는 것을 막고자 함입니다.”사식이가 사고를 쳤다는 걸 알고 얼른 원경릉을 잡더니 말했다. “원 언니, 화내지 마요. 태자 전하는 모르세요. 저랑 미색이 같이 한 일이고 요부인도 자원해서 하신 거고요.”탕 부인이 문 앞에 서서 말했다. “태자비 마마, 저들이 이렇게 하면 탕양을 죽일 게 틀림없어요. 탕양이 죽는 걸 바라지 않는다면 얼른 저들의 행동을 멈추게 하세요.”이 말을 듣고 원경릉은 초조한 빛을 감추고 뚫어지게 탕 부인을 보며 천천히 다가갔다.“당신이 정말 탕양을 걱정한다면 그를 협박하지 말았어야지. 탕양에게 무슨 예상치 못한 일이 생기면 탕양을 죽인 건 당신이야.”탕 부인이 굳은 말투로 말했다. “입장이 달라서 이번 행동은 어쩔 수 없었어요.”“당신 탕양이 돌아와서 짐을 꾸릴 때 손을 썼지. 그때 탕양도 당신이 첩자인 걸 알아서 당신을 죽일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는데 어쩔 수 없는 행동이 어쩌고 어째? 그런 가식은 떨지도 마. 살인하려는 생각 앞에서 연민 따위
쌍둥이와 훼천원경릉이 안약을 꺼내 아이들 눈에 넣어줬다.쌍둥이는 아직 잠들지 않아 장의자 보료에 반쯤 기대서 가만히 원경릉을 바라보는데 두 아이의 토끼 같은 눈을 보니 원경릉은 가슴이 아팠다.호랑이 두 마리도 원경릉 발아래 엎드려 있고 작은 머리를 원경릉의 발에 비비는 게 위로하려는 것 같았다.호랑이가 새끼 때, 보내올 때도 이 정도였는데 지금도 별로 크지 않은 것이 이상했다. ‘몇 달이나 지났고 먹는 양도 적지 않은데 어째서 안 크지?’특히 엎드려 있을 때는 고양이 같은 게 고양이보다 약간 큰 정도였다.원경릉이 두 호랑이를 안아 올리자, 호랑이들은 원경릉 가슴에서 잠이 들었고, 쌍둥이들을 보니 쌍둥이들도 눈을 감고 잠이 들었다. 쌍둥이와 호랑이는 정신이 동기화되어 있었다.원경릉이 낮은 소리로 탄식하며 호랑이를 내려놓고 쌍둥이를 안아다가 똑바로 눕혀주었다. 칠성이가 눈을 뜨고 조그만 손으로 원경릉의 옷자락을 꼭 잡더니 검은 눈동자로 고요하게 원경릉을 바라보았다.원경릉이 칠성이의 손을 잡고 말했다. “착하지! 우리 보물이, 좀 더 잘까요.”칠성이가 다시 눈을 감고 원경릉의 손가락 하나를 잡고는 아무 데도 못 가게 했다.쌍둥이는 누군가에게 집착하는 행동을 보인 적이 없는데 이번이 처음이었다. 원경릉은 하마터면 눈물이 왈칵 쏟아질 뻔했다.아이들 곁을 지키며 아무것도 안 하고 고요히 아이들을 바라봤다.지난날 우리 떡들과 보낸 시간은 그나마 많았는데 쌍둥이와 함께한 시간은 적었다. 쌍둥이는 태어날 때부터 사람에게 집착하지 않고 안아주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 독립적인 아이들로 마치 아무도 필요 없는 것처럼 보였다.원경릉이 결심하고 앞으로 바깥일은 자신이 신경 쓰지 않을 수 있으면 최대한 관여하지 않고 온 마음을 다해 아이들과 할머니와 함께 있으면서 의대에 좀 더 신경을 쓰거나 경호를 연구하는 게 자신이 할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쌍둥이 몸에 기대서 원경릉도 눈을 감았다. 애당초 졸리지도 않고 머리가 복잡했는데 쌍둥이의 고른 숨소리와 호랑이의 심
훼천은 요부인을, 홍엽은 탕양을다음 순간, 사식이는 병아리처럼 훼천 손에 들린 채, 귓가에 천둥 같은 고함이 울렸다, “핵심을 정확하게!”훼천의 그런 무시무시한 얼굴을 본 적이 없는지라 사식이가 화들짝 놀라 무의식적으로 물었다. “누가 요 부인을 납치했어요!”“누구? 어디?” 훼천이 사식이를 급하게 내려놓으며 얼굴이 벌게져 가지고 외쳤다. “어서 말해!”사식이는 때려죽여도 자기와 미색이 꾸민 일이라고 말 못 한다. 그랬다간 훼천이 여기서 자기를 던져버릴 게 분명했다.“말해!” 훼천이 다시 한번 고함을 질렀다.사식이는 훼천의 무서운 모습에 놀라서 거의 울먹이다시피 말했다.“어디 있는지는 몰라요. 늑대파 사람을 찾아가면 그 사람들이 미행을……”사식이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눈앞 허공에 사람 그림자가 나르듯 빠르게 스치고 지나가더니 곧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사식이가 눈을 비비고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맙소사, 훼천의 경공 진짜 엄청나잖아. 그런데 왜 이렇게 요 부인이란 말에 긴장하지? 내가 뭘 잘 못했나?”사식이가 눈밭에서 녹초가 되었다. 바람은 쌩쌩 불어 뼛속까지 한기가 스며들어 잠깐만 있어도 추워 죽을 지경이었다. ‘아니 훼천은 여기서 무술을 연마한다고? 하여간 난 놈이네 난 놈이야.’사식이가 산을 내려와 마음속으로 몰래 신이란 신에게 죄다 요 부인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를 그렇지 않으면 이 생을 안심하고 지낼 수 없을 거라고 빌고 빌었다.그리고 늑대파에서 요 부인의 가마를 미행하는데 이리 나리는 늑대파의 많은 사람들이 이미 상대의 감시를 받고 있을 거라고 예상했다. 그래서 이번에 출동하는 사람은 전부 얼굴이 드러난 적이 없는 늑대파의 첩자들로 역용술이나 변장에 능해 평소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으므로 정보를 캐내도 서로 다른 신분으로 나타나서 기본적으로 감시가 불가능한 사람들이다.늑대파 첩자는 쉽게 출동하지 않는다. 늑대파 자객은 많지만 첩자는 드물어서 아주 잘 보호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리 나리는 이번에 그들을 아끼지
은신처는 어디우문호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고맙네!”홍엽이 그윽하게 바라보며 말했다.“고마워하실 필요 없습니다. 만약 정말 그분이 죽지 않았다면 저도 얼마 못 살 게 뻔하고 그분이 여기에 있다면 전 아마 첫 번째 처리대상이 될 겁니다.”우문호가 홍엽을 바라보고 말했다.“공자는 왜 피할 길을 찾지 않는 거지?”“당신과 손을 잡는 거 말입니까?” 홍엽이 창백한 얼굴로 웃었다.“해 보지 않으면 모르는 거 아닌가!” 우문호가 말했다.홍엽이 옅은 미소를 띠며 말했다.“제가 아직 독고에게 충성하고 있거나, 그분을 위해 접근 중이라는 생각은 안 드십니까?”우문호가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사람을 쓸 때는 의심하지 않는 법!”그는 말을 마치고 떠났다.우문호는 경조부로 돌아와 지도를 펼치고 이미 대략적인 방위를 정했다.경성에는 경성의 서쪽에 경운강하(京運江河)가 있었고 그 일대에 별장들이 자리 잡고 있었는데 별장과 별장 사이 거리가 상당히 떨어져 있어서 홍엽 말대로 그들은 어쩌면 진짜로 별장에 은닉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이 별장은 대부분 고관이 지은 것으로 일부 부유한 상인이 산 것도 있는데 경조부에 기록이 있어서 찾기도 쉬웠다.제왕이 사람을 시켜 서류 뭉치를 가져오도록 하고 하나씩 조사했다. 고관의 별장은 빌려줄 리가 없었기에 만약 팔렸다고 하면 경조부에 기록이 있을 것으로 요 몇 년간 재산권 변경이 있었던 집은 단 세 집밖에 없었다.두 명은 부유한 상인이고 나머지 하나는 진비의 친정 오빠가 산 집으로 몇 년 전에 팔렸다. 경조부 기록에 따라면 별장은 강남의 한 상인에게 팔렸으며 그 상인이 바로 손 전무였다.‘손 전무, 익숙한 이 이름을 어떻게 모를 수 있겠어?’모든 일이 신속하게 정해졌다.경조부 사람을 출동시키지 않고 우문호가 비밀리에 귀영위에 명령을 내려 재빠르게 목적지로 향했다.첩자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그들은 전부 성을 나가서 다시 물길을 따라서 돌아왔다. 이렇게 하면 경성의 첩자들의 이목을 피할 수 있었다
구출, 진짜는 누구이 세상에 무의식적으로 마음이 통할 때가 있다고 하면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다.훼천이 웬 마지막으로 현장에 도착했으나 그는 집으로 들어가지 않고 갈림길에서 망설이다가 왼쪽으로 달렸다.그 순간 자신이 왜 그랬는지 표현할 수는 없었지만 캄캄한 어둠 속에서 마치 무언가가 그를 왼쪽편으로 확 끌어당기는 느낌을 받았다.향 하나 탈 정도 못되는 시간을 쫓았는데 앞에서 가마 하나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네 명의 가마꾼이 들고 가는 발걸음이 가볍고 발이 거의 땅에 닿지 않는 것으로 보아 그는 단번에 알아채고 소리를 질렀다.“거기 ‘멈춰!”가마꾼들은 멈추지 않고 오히려 발을 맞추어 경공으로 발돋움하며 재빠르게 도망쳤다.훼천이 날아올라 마치 기러기처럼 날렵하게 장검을 빼 들었다. 그러고는 싸늘하고 날카로운 빛으로 쏘아보자, 가마꾼들은 지상에 착지하자마자 빠르게 뒤로 돌아 검을 들더니 훼천을 향해 겨누고 들어왔다.다른 한 사람은 가마에서 요 부인을 끌어냈다.요 부인은 약을 먹고 오는 내내 출렁거려서 집 부근에 도착하기 전부터 이미 깼다. 하지만 이 약은 효과가 엄청나서 온몸에 힘이 풀리고 움직이기 힘들 뿐만 아니라 의식도 상당히 맑지 않기 때문에 자신이 위험에 빠졌다는 사실만 겨우 알 수 있었다.특히 이 사람들이 갑자기 방향을 틀 때, 가마꾼이 “뒤에 따라온다, 흩어져!” 하는 소리를 들었다.그제야 요 부인은 더욱 위험이 가까이 닥쳤다는 것을 느꼈다. 그들이 도주를 위해 자신을 다른 곳에 가둬 둔다면 그녀가 있는 곳을 다른 사람이 알아챌 보장이 없었다.요 부인은 그저 힘없는 여자일 뿐, 생명의 위협을 앞두고 두렵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꼼짝도 못 하고 반항할 생각은 더더욱 못한 채 그저 운명에 맡기는 수밖에 없었다.훼천의 멈추라는 소리를 듣고 약에 취해 자기가 잘못 들은 게 아닌가 했는데 가마꾼이 갑자기 날아오르며 빠르게 도망가면서 가마가 심하게 흔들렸다. 안에 있던 요 부인이 멀미가 나서 토할 것 같은 느낌이 들면서 비로소 현실로
두 명의 탕양‘탕양의 턱에 점이 없다는 건 혀를 잘린 사람이 진짜 탕양이란 뜻 아닐까?’하지만 우문호와 이리 나리의 마음속에 이건 분명 아직 다 준비되지 않은 계획이란 사실이다. 그들이 갑자기 들이닥쳐 알아차린 것으로 어느 쪽이 진짜 탕양인지 단지 턱에 점 하나로 결론 내려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미색이 안을 한 바퀴 돌아보더니 요 부인이 안 보이자, 얼굴이 하얘지면서 물었다.“나리, 요 부인은?”이리 나리가 담담하게 말했다.“내가 어떻게 알아? 네가 후방에서 요 부인을 담당하지 않았어?”“왜 제가 후방이에요? 나리께서 후방이죠, 저는 전방이에요. 반드시 후방에서 요 부인의 안전을 책임져야 해서, 제가 나리께 가서 부탁드린 거잖아요.” 미색이 몹시 허둥거렸다.이리 나기가 미간을 찌푸리더니 몇 마디 툭 내뱉었다. “절대 아냐, 누가 후방인지 똑똑히 안 했어? 난 먼저 들어왔어.”“전 또 나리께서 요 부인을 발견하신 건 줄 알았죠. 그리고 나리도 계속 요 부인 가마를 미행하고 계셨잖아요. 제가 거점을 찾아서 일망타진하는 걸 맡고……” 미색은 이리 나리가 생떼를 부리기 시작하면 천하무적이란 걸 알아서 포기하고 얼른 사람들을 데리고 찾으러 갔다.이리 나리는 불쾌한 듯 미색의 뒷모습을 보면서 말했다. “시집을 가더니 이젠 갈수록 남에게 책임을 전가한다니까.”우문호도 마음이 급한 게 요 부인 일을 몰랐다는 얘기를 듣고 안색이 변했다. “그럼, 요 부인에게 문제가 생긴 거 아닙니까?”이리 나리가 안정적으로 말했다.“무슨 일 안 생겨, 막 왔을 때 이미 훼천이 왔다고 누가 얘기했어, 훼천이 오면 요 부인에게는 무슨 일 안 생기지.”우문호가 화들짝 놀라면서 말했다.“그러면 왜 미색한테 얘기 안 하세요? 방금 얼마나 다급했는데.”“미색이 책임을 전가하다니 혼 좀 나야 하는 거 아닌가? 초조해지라고 해.” 이리 나리는 상쾌한 듯 말했다.우문호는 요 부인이 안전할 거라는 말에 마음이 놓였다. 이제 중요한 건 두 탕양으로, 두 사람을 각각 보
귀면술서일이가 탕양의 두 손을 보니 손가락이 심하게 변형되어 똑바로 펼 수 없고 힘을 줄 수조차 없었다.서일이 괴로워 눈물을 흘리는데 진짜 탕양이 누구인지 모르지만, 마음속으로 만약 그가 진짜고 이런 고통을 당했다고 생각하니 가슴을 칼로 저미는 것 같았다.상처를 깨끗하게 닦는데 입 안의 혀는 칼로 잘려서 절개한 자리가 깨끗해 입을 벌리니 검은 구멍만 있는 게 가슴이 미어졌다.원경릉은 다른 탕양에게 할 수 있는 검사를 다 한 뒤 외상은 아니고 기본적으로 약을 썼든지 아니면 고독을 쓴 게 분명했다.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바보가 될 리 없기 때문이다.우문호는 탕 부인을 끌고 와서 구별하게 했다.탕 부인의 얼굴이 굳어지더니 누가 진짜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우문호는 같이 가두고 나중에 그 사람들과 같이 심문하기로 했다.우문호는 홍엽에게 오라고 했는데, 이렇게 진정으로 성의를 다해 홍엽에게 집으로 오라고 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홍엽이 두 명의 탕양을 보더니 우문호와 같이 걸어 나가며 물었다.“본인이 생각하시기에 어느 쪽이 진짜 같습니까?”우문호가 마음속으로 뭐라 말할 수 없이 괴로운데 복도에 앉아 두 손으로 마른 세수하더니 눈까지 붉어질 정도였다. “추론에 따르면 멍청한 사람이 탕양이야.”“어? 왜죠? 추론에 따르면 혀를 잘린 이 사람이 아닙니까? 어쨌든 심하게 맞고 혀를 잘리고 보아하니 아주 극형을 받은 거 같은데요!”“바로 혀를 잘렸기 때문에 그가 탕양일 리 없다고 추측한 거야. 이건 분명 음모로 내게 가짜 탕양을 구출해 내도록 하는 거였고 나중에 가짜 탕양이 초왕부에 잠복하는 거지. 일단 성공한 뒤 진짜 탕양은 죽이거나 옮겨버릴 셈이었겠지. 그런데 그들이 아직 계획을 완성하기 전에 우리가 그들이 있는 곳을 찾아냈고 그들의 계획을 깨 버렸지. 사람의 외모나 생김새는 역용술이 가능하고 약으로 바꾸는 것도 가능해. 하지만 소리는 완전히 똑같이 만들지 못하지. 그래서 그들은 이 자의 혀를 자른 거야. 말을 못 하도록. 발각될 수 있는 부분을 가장
홍엽과 우문호우문호가 다시 물었다. “지금 우린 바보 쪽을 진짜 탕양이라고 거의 확정했는데, 왜 이렇게 됐는지 알겠어?”“약을 먹어서 그렇게 됐을 겁니다. 바보로 보이지만 만약 자신에 대한 일을 물으면 전부 대답할 수 있을걸요. 그것만 대답할 수 있죠. 저건 그자의 고문과 협박 수단의 일종으로 당신들의 자금탕과 비슷해요. 그걸로 만들어진 가짜 탕양은 몸에 있는 약간의 흉터나 상처까지 전부 최대한 모방하는데 만약 베낄 수 없으면 심하게 때린 상처로 가리는 겁니다. 그래서 온몸을 멍 자국으로 가득하게 만드는 거죠.”우문호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물었다.“너무도 잔혹한 수법이 아닌가, 해독약은 있을까?”홍엽이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필요 없어요. 며칠 쉬면 좋아지니까. 약효가 지나면 처음과 별 차이가 없어요. 단지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거의 기억을 못 할 뿐.”우문호는 마음 한편의 걱정을 그제야 내려놓았다. “기억 못 해도 그만이야, 무슨 아름다운 기억도 아니고.”홍엽이 고개를 옆으로 돌려 웃는 듯 마는 듯했다. “그의 수법치고는 너무 허술하다는 생각 안 들어요? 쉽게 당신들에게 구출되고.”우문호가 두 손으로 얼굴을 받치며 물었다. “독고를 만만하게 볼 리가 없잖아?”“그가 좀 상대해 볼 만하다고 느끼는 순간 당신이 진 겁니다.”하지만 홍엽은 즉시 고개를 돌려 우문호에게 말했다.“하지만 그가 당신을 만났으니, 그는 반드시 적을 가볍게 여길 게 틀림없어요. 그는 당신을 무시하니까. 그래서 그는 당신 손에 질 겁니다.”마당의 나뭇가지 사이 벌어진 틈으로 흐릿한 빛이 쏟아지며 홍엽의 눈을 반딧불이처럼 비추었다. 홍엽은 즐거운 것도 같고 또 분노한 것도 같기도 했다. 어쩌면 본인도 자신의 마음을 모를지도.“우리 친구가 될 수 있겠군요!” 홍엽이 다시 말했다.우문호가 피로한 표정으로 웃으며 말했다.“지금 친구는 더 많아지고 적은 더 적어지기를 바라고 있어. 당신이 원 선생을 넘보지만 않으면 아주 기꺼이 당신과 친구가 될 거야.
잔뜩 긴장한 채로 앞으로 몸을 반쯤 내밀고 있었던 주 지부는 우렁찬 상대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중심을 잃은 듯 비틀거렸다. 그는 이내 팔을 뻗어 망루의 기둥을 붙잡으려 했지만, 허공에서 멈추고 말았고, 그대로 몸이 앞으로 쏠려 떨어져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가 말에서 빠르게 날아올라, 믿기 힘들 정도로 빠른 속도로 그에게 달려갔다. 상대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주 지부가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그를 안고 빙 돌아서 바닥에 착지했다.주 지부는 깜짝 놀라서 그만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를 구해준 사람은 반짝거리는 눈망울에, 품위 있는 모습의 젊고 잘생긴 사내였다. 주 지부는 그를 황제의 호위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거의 죽을 뻔한 고비를 넘겼기에, 안도의 한숨을 내쉴 새도 없이 그에게 예를 올렸다.“대인,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그때 말들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는데, 서일이 먼저 말에서 내려, 다급히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괜찮으십니까?”우문호도 매우 놀란 듯했다. 조금만 늦었다면, 주 지부는 정말 죽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가슴을 가볍게 두드리며 숨을 들이쉬었다.“괜찮다.”그러고는 주 지부를 보며 물었다.“자네는 누구요?”주 지부는 마차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보며, 누가 황제인지 추측했다.황제는 올해 마흔에 가까운 나이로 알려져 있었기에 위엄이 넘쳐 보일 것이었다. 그는 일행 중, 냉 수보와 홍엽을 만난 적 있었기에, 거친 모습을 한 이 인물은 아마도 호위로 추측된다. “묻지 않았소? 자네는 누구요? 어찌 죽으려고 하는 것이오?”서일은 그가 멍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자, 큰 소리로 다시 물었다.주 지부는 울 지경이었다. 냉 수보가 그를 보고 있으니, 예를 올려야 하지만, 황제도 자리에 있으니, 바로 냉 수보에게 예를 올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대체 누가 황제란 말인가?그는 황제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어, 결국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그러고는 그들에게만 들릴 정도로 낮은 목소
원경릉의 말은 그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고, 자리에 있던 관리들은 기쁨과 동시에 두려움에 휩싸였다. 이 대인은 땅에 엎드려 온몸을 바르르 떨고 있었다. 그는 살아생전에 자신이 황제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은 단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평소 차분하고 신중한 주 지부도, 그도 감정이 격해져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눈가에는 눈물이 가득했다.황후를 만난 것만으로도 큰 영광이라 생각했는데, 황제까지 오신다는 소식에 그의 마음은 흥분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원경릉은 평생을 경성에서 다섯째와 함께 있었기에, 그녀는 그저 그가 온다는 사실을 간단히 전했을 뿐이었는데 말이다. 그녀는 다들 걱정 없이 역병을 치료하고, 언제나 황제가 그들의 뒤를 든든히 지켜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들의 반응을 보니, 황제가 직접 오는 것이, 지방 관리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깨달았다.원경릉이 급히 말을 덧붙였다.“폐하게서는 그저 역병 때문에 온 것이니, 모두 각자 맡은 일에만 최선을 다하면 되네.”“예, 예, 마마의 명을 따르겠습니다.”주 지부가 눈물을 닦으며 답했다.그렇게 관아와 의서가 협력하여, 오계부를 조사하기 시작했다.원 할머니는 역병을 치료할 수 있는 처방을 몇 가지 내렸다. 경증 환자는 약차를 계속 마시고, 증상이 악화하거나 중증 환자는 그녀의 처방을 사용하도록 했다.전에 이미 근처 주부에 연락해 약을 보내라 명했고, 오계부에서 구비한 약까지 있으니, 이번 역병을 대처할 수 있었다.오계부 의서는 이번 역병을 과거의 역병과 동일하게 생각하고, 소홀히 한 것 외에는 준비가 충분했다.원경릉은 황제 일행이 저녁 무렵 오계부에 도착할 것이라 예상했다.주 지부는 원래 여러 관리와 함께 황제를 맞이할 예정이었지만, 원경릉이 이를 단호히 거부했다. 그녀는 황제가 미복 순행 중이니, 과하게 맞이하여 백성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했다.그 말에 주 지부는 당황했다.황제가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아무도 맞이하지 않는다니, 어찌 그럴 수 있다는 말인가?그러나 그는 황
약을 쓰자, 주 지부의 열이 단번에 내려갔다.열이 내려가니 정신이 맑아져, 그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는 애써 자리에서 일어나 황후마마에게 예를 올리겠다고 고집 피웠다.원경릉은 그에게 누워 있으라고 말한 후, 역병에 관해 이야기하며 주 지부에게 이를 중시할 것을 당부했다.주 지부는 이를 듣고 깜짝 놀라 말했다.“소신은 매일 의서에 사람을 보내, 역병의 상황을 보고받고 있사옵니다. 매일 보고된 상황은 그다지 심각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역병이 발생했지만, 작년과 비슷한 정도였고, 약재도 충분한데, 어찌 이렇게 심각해진 것입니까?”“매년 역병이 발생했으나, 대대적으로 퍼지지 않아,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네.”원경릉이 답했다.“의서의 이 대인을 불러, 상황을 확인하겠습니다.”주 지부는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어제 이미 그를 찾아가, 환자 수와 사망자 수를 조사하라 명했네. 하지만 그는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모를 것이네. 자네가 사람을 보내, 관아에 와서 상황을 보고하도록 하게.”“예!”주 지부는 곧바로 사람을 보냈다.푸른 옷을 입은 남자는 관아에서 일하는 관리였기에, 그는 반 시진도 채 되지 않아, 관아 내에서 병에 걸린 자가 얼마나 되는지 통계해냈다.관아 내에서 역병 증상을 보인 사람은 총 열여덟 명이었고, 그중 두 명은 병세가 심각하여 이미 집에서 쉬고 있는 상태였다. 주 지부는 관아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병에 걸린 줄 몰랐고, 관리의 보고를 들은 후, 큰 충격을 받았다.의서의 이 대인은 하루 종일 쉬지도 않고, 바삐 움직였다. 서관 대인이 직접 오셨으니, 어떻게든 시키는 일을 완성해내야 했다.그는 사실 역병이 그다지 심각하지 않고, 그저 작년과 비슷하다고 여겼었다.하지만 여러 지역과 의원을 돌아보고 나서야, 이번 역병이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처음엔 그저 서관 대인에게 보고만 하려고 했지만, 병세가 심각해지자 그도 조급해지기 시작했다.하지만 짧은 시간 안에 인원수를 통계하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도, 다섯째 일행은 여전히 도착하지 않았다.그래서 원경릉과 할머니는 다른 의관을 더 둘러보기로 하고, 몇 군데 더 돌아본 뒤 관아에도 갈 계획을 했다.그런데 한 의관에 들어서자마자, 푸른 옷을 입은 중년 남자가 다급히 뛰어오며 말을 걸었다. “수 의원, 대인께서 병세가 위중합니다. 어서 봐주셔야 합니다.”의원은 그 말을 듣자마자, 약상자를 집어 들고 다른 환자들을 그냥 남겨둔 채, 푸른 옷의 중년 남자와 함께 나가려 했다.원경릉이 그를 막아 세우며 말했다.“의관에 있는 환자들을 돌봐야 하지 않소? 우리 할머님께서도 의원이니, 지부 대인의 병은 할머님께서 봐 드릴 것이오.”푸른 옷의 사내는 초조한 듯 원경릉을 향해 소리쳤다.“말도 안 되는 소리 마시오!““대인의 병세가 급박한데, 혹여라도 지체되면 당신들이 책임질 수나 있겠소?”바로 그때, 원 할머니가 호패를 꺼내, 그의 눈앞에 들이밀며 단호하게 말했다.“길을 안내하거라!”조급한 표정을 짓던 푸른 옷의 사내는 호패를 보자마자 표정이 얼어붙었다. 이내 정신을 차린 그는 곧장 허리를 굽혀 예를 올리며 말했다.“서관 대인께서 오셨을 줄은 몰랐습니다. 무례를 범해 송구하옵니다.”“그만 사과하고 길 안내나 하시오.”원경릉이 말했다.“예, 예!”사내는 급히 물러서서, 예를 갖춰서 길을 가리켰다.“마차가 밖에서 대기 중입니다. 서관 대인, 이쪽으로 오시지요.”원경릉은 할머니를 부축해 마차에 올랐고, 곧장 관아로 향했다.지부 대인은 따로 사저가 없어 관아의 뒷마당에서 거주 중이었다. 혼자 지내는 데다 관아가 워낙 가까워 편리했기 때문이다.관아에 도착하자마자, 그들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안으로 들어갔다.주 지부는 병세가 꽤 심각해져 있었다. 그는 어지럼증과 흉통에 시달려, 침대에 누운 채 말을 꺼낼 힘도 없었다.원경릉은 직접 치료에 나섰고, 약상자를 열어 체온 측정기와 청진기를 꺼냈다.푸른 옷의 사내가 의아해하며 물었다.“아가씨께서도 의원이십니까?”그러자 곁에 서
이 대인이 원경릉에게 의학을 잘 모른다고 반박할 틈도 없이, 원 할머니가 먼저 입을 열었다. "말대로 하게. 하루만 줄 테니, 그 안에 역병에 관한 모든 자료를 가져오게. 사망자 수도 포함되어야 하네." 이 말까지 듣자, 이 대인은 더 이상 반박할 수 없었다. 비록 조사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서관 대인이 멀리서 오계부까지 왔으니, 시키는 일은 해야지 대인의 마음에 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사람들을 보내 조사를 명한 후, 이 대인은 거처를 마련해 드리겠다고 했다. 하지만 원경릉이 말했다. "괜찮습니다. 의서에 의원이 많지 않으니, 대인도 바쁘실 텐데요. 저희가 직접 오계부를 돌아보겠습니다." 이 대인은 그녀가 원 할머니의 힘을 빌려 위세를 부린다고 생각해, 대꾸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말에 답도 하지 않고, 원 할머니에게 예를 올렸다. "어르신께서 머무실 계획이 있으시면, 부디 저에게 알려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밤 대인을 잘 대접하라, 명을 내리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네. 일이나 보게." 원 할머니는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원경릉에게 말했다. "먼저 좀 돌아보다, 객사를 찾아 머물자꾸나." "예!" 두 사람은 역병을 조사하기 위해 다급히 이곳을 찾아왔기에, 먼저 각지의 의원을 직접 돌아보려 했다. 아마 다섯째 일행은 빨라야 내일이나 모레쯤 도착할 것이었다. 두 사람이 의서를 나서자, 이 대인은 뒤따라 나오려다 원 할머니의 날카로운 눈빛에 움찔하며 발길을 멈췄다. 두 사람은 오계부의 거리로 향했다. 거리가 꽤 번화했고, 사람들도 제법 많아, 대낮에는 조금 붐볐다. 그들은 곧장 의원으로 향했다. 의원 앞에는 약차가 많이 진열되어 있었지만, 환자는 얼마 없었다. 겉보기엔 역병이 퍼졌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원경릉은 안으로 들어가 의원에게 상황을 물었다. 그러자 의원은 요즘 들어 약차가 잘 팔리고 있고, 하루에 천 봉지가 넘게 팔린다고 답했다. 하지만 그도 역병
늦게 출발한 원경릉은 신속하게 오계부로 향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오계부 근처 주현에 도착하자마자, 할머니가 현지 혜민서로 가야 한다며 잠깐 멈추자고 했다. 그러고는 혜민서에 오계부로 약을 공급할 준비를 하게 했고, 명을 받으면 바로 오계부로 보낼 수 있도록 미리 준비를 당부했다. 혜민서 산하의 의료기관들은 지난 몇 년간 개혁을 통해 뚜렷한 성과를 거두었고, 지역 간의 연결도 긴밀해졌다. 특히 역병을 상대하는 체계가 가동되면 상부에서는 전력을 다해 의원과 약을 지원해줄 수 있었다. 신신당부한 뒤에야 원경릉과 할머니는 오계부로 재빨리 향했다. 곧이어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우문호 일행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다. 오계부는 인구가 500만 명에 이르는 곳으로, 두 개의 주부가 통합된 지역이었다. 열대에 있어, 경작지가 많고 산이 많아 농업을 위주로 삼고 있었다. 그래서 조정은 이곳을 서부의 주요 곡창지대로 삼고 있었던 것이었다. 농업이 발달한 지역은 상대적으로 경제도 번화했고, 현지 백성들은 벼 외에도 감, 자두, 리치 등을 대량으로 재배하고 있었다. 리치는 신선할 때 먹을 수도 있고, 말려서 건과로 만들어 팔 수도 있기에, 어느 정도 지역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었다. 오계부는 백월국과 인접해 있었는데, 백월국은 북당의 속국으로 사이가 우호적이며 경제 교류도 활발했다. 이는 양국의 번영을 촉진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오계부의 지부는 장씨 성을 가진 오계부 출신이었다. 장 지부는 훌륭한 관리이며 지역 백성들로부터 존경받고 있었다. 원경릉과 원 할머니는 오계부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지역 혜민서를 찾았다. 할머니는 혜민서의 서관(署館) 신분을 밝혔다. 그녀는 북당 각 주부의 의서를 총괄하는 인물이고, 총책임자이기도 했다. 혜민서의 이 의원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두 사람을 안으로 청한 후, 바로 예를 올렸는데, 마치 신선이라도 본 것처럼 목소리까지 떨고 있었다. "소인은 이자옥이라 합니다. 어르신께서 친히 오신 줄도
그녀는 일단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하고, 냉 대인이 자세한 상황을 묻는 사이에 제 대인의 피를 뽑았다. 약상자는 기능이 꽤 다양하기에, 바이러스 검사도 문제없었고, 안에는 양여혜가 준 소형 현미경도 있었다. 하지만 바이러스 관찰이나 세균 배양에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지체할 수 없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먼저 오계부로 향하고, 그녀는 이곳에 남아 제 대인을 치료하고 검사 결과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면 바이러스든, 세균 감염이든, 결과가 나와야 제대로 된 치료 방안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미색이 말했다. "저도 이곳에 함께 남겠습니다. 제가 환자를 돌보는 것 정도는 도울 수 있지 않겠습니까?" "괜찮으니 먼저 가거라. 어쩌면 내가 더 일찍 도착할 수도 있으니깐." 원경릉이 말했다. 그녀는 혼자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지만, 미색까지 데리고 가는 건 무리였다. "우리가 먼저 출발하는데, 어찌 더 일찍 도착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미색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가능한 일이다. 원 선생은 늘 기적을 만들어내니." 우문호가 말했다. 그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고, 원경릉에게 다가가 조심하라고 몇 마디 당부했다. "알았소. 지체하지 말고, 어서 떠나시오. 오계부에 도착하면 곧바로 관아를 찾아가, 의원의 빠른 대처를 명하라 하시오. 만약 내가 먼저 도착한다면, 내가 관아를 찾아가겠소." "알겠소. 그럼, 먼저 가겠소!" 우문호는 그녀와 입을 맞추고 싶었지만, 보는 이가 많으니 그저 참을 수밖에 없었다. 서일은 황후를 홀로 두고 가는 것이 걱정되어, 우문호를 따라나서며 계속 물었다. "정말 황후를 이곳에 혼자 남겨도 되는 것입니까?" "그럼, 네가 남을 것이냐?" 우문호가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 "너도 원 선생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알고 있지 않느냐?" 회왕 부부도 걱정은 되었지만, 다섯째의 여유로운 모습에 자신이 있을 것이라 믿었다. 다섯째 부부는 늘 비밀이 많은 사람들이라, 그들은 더 이상 신경
원경릉은 밖으로 나가, 오계부에 역병이 생긴 것 같다고 전했다. 오계부는 서쪽에 자리 잡고 있어, 기후가 더운 탓에 가끔 역병이 생기긴 했었지만 백성들은 고뿔 치료에 쓰이는 약초로 끓인 차를 즐겨 마시기에, 대규모로 역병이 돈 적은 없었다. 냉 대인이 말했다. "오계부에서는 이 상황을 조정에 알리지 않았습니다. 비록 해마다 역병이 생기긴 하지만, 빠르게 통제해 왔으니, 이번에도 예전과 같은 상황이지 않겠습니까?" 원경릉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런데 이번엔 더 심각할 수도 있습니다. 제 대인의 형도 역병으로 돌아가셨고, 그와 가까이 지낸 사람들도 병에 걸렸습니다. 이렇게 관아에만 역병에 걸린 자들이 많으니, 예전보다 더 심각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해마다 역병이 생겼으니, 그에 대한 대응책도 이미 있을 것입니다." 원경릉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해마다 역병이 생겼지만, 대대적으로 유행하지 않았기에, 현지 관리들이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겨 쉽게 통제될 것이라 생각하고, 방심할 수도 있으니깐요." 우문호가 물었다. "원 선생, 역병을 어떻게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하오?" "역병 상황이 안 좋을 것이라 추측할 뿐, 정말 오계부의 상황이 어떠한지는 아직 모르네. 제 대인은 여전히 고열에 시달리고 있어, 수액을 맞히고 해열제를 먹였소. 냉 대인과 함께 들어가 상황을 자세히 물어봐야겠소. 하지만 꼭 마스크를 끼고, 병을 막아야 하오." 원경릉은 유행성 독감이나 변이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일 것이라 의심하고 있었다. 그녀가 살던 세계에서는 A형 독감의 대규모 변이가 십수 년마다 한 번씩 발생했는데, 그런 변이 독감은 현대에서도 의료 체계에 큰 부담이 되곤 했다. 그러니 지금 이곳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만약 역병이 다시 시작한다면, 가능한 한 빨리 통제해야만 했다. 원경릉의 말을 우문호와 냉 대인은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도
원경릉은 청진기를 꺼내 그의 폐를 확인해 보았는데, 남녀가 가까이 접촉하는 것이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한 제 대인은 이내 손을 뻗어 그녀를 막으려 했다. 하지만 병세가 심해 아픈 데다가,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묘한 위압감을 풍기는 의원의 단호한 눈빛과 기운에 그만 압도당하고 말았다. 원경릉은 앞쪽을 청진한 뒤, 그에게 옆으로 돌라고 한 다음에 꼼꼼히 살피고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며칠을 아프신 것입니까?" 제 대인은 꽉 막힌 코 때문에 콧소리를 내며 천천히 몸을 돌리고 답했다. "며칠 사이의 일입니다. 오계부를 떠날 때도 멀쩡했는데, 밤새 달리고, 말을 오래 타다 보니 고뿔에 걸렸나 봅니다." "기침 말고, 가슴 통증도 있습니까?" "예. 이곳이 아픕니다!" 제 대인은 가슴 근처를 손으로 누르며 말했다가, 숨쉬기가 어려운 듯 손바닥을 움직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도 아프고, 온몸 뼈마디도 다 아픕니다." 그러자 원경릉은 더 자세히 증상을 확인한 뒤 말했다. "약을 준비할게요. 수액을 좀 맞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수액이요?" 제 대인은 멍하니 원경릉을 바라보았다. "예. 질문은 하지 마시고, 그저 치료에 협조만 해주십시오. 병세가 꽤 심각한 편입니다." 원경릉은 제 대인이 폐렴이라 확신했고, 중증 폐렴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제 대인은 병이 심하다는 말에 초조한 표정을 지으며 다급히 말했다. "의원 나리, 제발 최선을 다해 치료해 주십시오… 저에게는 아직 모셔야 할 노모가 있습니다. 지난달 병으로 형님께서 세상을 떠난 터라, 형님의 자식들도 제가 돌봐야 하니, 절대 이대로 목숨을 잃을 수는 없습니다." 원경릉이 답했다. "최선을 다할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 치료에만 집중하시지요!" 제 대인은 감동을 받은 듯 감사 인사를 올렸다. "정말… 감사합니다." 원경릉은 곧바로 약을 지어 수액을 준비했다. 수액을 맞는 동안, 제 대인은 여전히 놀란 모습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