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의 사랑우문호가, “이번에 한번 와서 정식으로 조정에서 봉호를 받을 거라서 그리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걔들 볼 수 있어.”“봉호를 받는다고?” 원경릉이 놀라서, 어째서 그런 말을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지?우문호가 웃으며, “만아는 남강왕의 딸이고 남강은 결국 번듯한 남강왕이 필요하니까.”원경릉이 순간 눈꼬리를 치뜨고, “만아를 남강왕으로 봉하려는 거지?”우문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맞아, 아바마마께서 나에게 연초정도로 상의하셨으니 3월 정도되겠지? 걔들이 경성으로 와서 봉호를 받고 잠시 머물 거야. 지금 만아 곁에 모인 남강왕을 모시던 부하들 있지? 그 중에 다른 꿍꿍이를 품고 있었던 사람이 있고, 진심으로 추종했던 사람도 있어. 때가 되면 그들을 전부 경성으로 들어오게 해서 일일이 가려내려고. 돌아간 뒤 만아와 아홉째가 사람을 잘 몰라서 처리 못하는 일이 없도록.”원경릉이 웃으며, “많은 일을 다 계획해 뒀네. 자기 이제 갈수록 듬직해 지는데.”우문호가 작가 탄식하며 원경릉의 희고 가는 손가락을 잡고, “듬직 안 하면? 내가 애가 다섯이야, 아직도 안절부절 못하고 촐랑대면 애들한테 무시당하지 안 그래?”원경릉이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지만 마음속으로는, ‘걔들 지금도 별로 존중하지 않던데. 그나마 자기를 무서워해서 당분간은 케어할 수 있다고 치자.’저녁에 온가족이 같이 밥을 먹는데 술도 약간 마셨다. 희상궁이 술을 이기지 못해 몇 모금 마시더니 어지럽다며 밥도 별로 못 먹고 방으로 돌아갔다.희상궁이 술기운이 가시면 먹을 수 있게 원경릉은 사람을 시켜 음식을 좀 남겨두게 하는데 사식이가 몰래 웃으며, “남길 필요 없어요. 남기긴 뭘 남겨요? 오늘 오후부터 자기 주방에서 바쁘게 요리를 몇 개 하던데 있다가 누가 와서 같이 드시나 봐요.”“어?” 원경릉이 놀라다가 곧바로 씩 웃더니, “그런 거였군, 어쩐지 술 두어 모금 마시고 취하는 게 이상하다 했어. 알고 보니 애인이랑 약속이 있었구나.”“”재상이 일찍부터 오늘밤 올 거라고 사람을 보내
신비한 탕양녹주가 밖에서 들어와, “노마님, 고기 완자 탕대인에게 보내 드렸습니다. 노마님의 호의에 정말 감사드린다고 했어요.”원경릉이, “매년 설날을 맞으면 늘 탕양에게 가족들을 데리고 와서 식사하라고 하는데 데리고 오지 않는 바람에 지금까지 탕양 부인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원경릉이 우문호를 보고, “자기는 봤어?”우문호가 고개를 흔들며, “당신이 얘기 안 했으면 탕양이 혼인했다는 사실도 잊고 있었어.”서일이, “결국 볼 텐데요 뭘. 집이 다 지어지면 집안 사람들을 데리고 와서 살 거 아닙니까? 탕양이 부인이 있지만 아이가 없다고 알고 있어요. 서른 살이 넘도록 아이가 없으니 앞으로 탕양이 늙으면 누가 봉양하죠? 아마 초왕부에 기대서 평생 살아야 할 걸요.”서일도 원래 만약 장가를 못 가면 초왕부에 평생 삐댈 생각이었다.“그 집도 짓기 시작한 지 오래 됐는데 아직 다 안 됐네. 탕대인이 너무 바쁘니 시간이 되면 서일이 가서 감독 좀 해줘. 탕양이 하루라도 일찍 이사 올 수 있게.” 원경릉이 말했다.“소인 감독할 방법이 없는 게 안에 모든 건축은 전부 탕대인이 자기가 직접 설계해서 몇 번 봤는데 이상해요.”“어떻게 이상한데?” 원경릉이 물었다.“방과 거실의 구분이 없거나, 사방이 벽이고, 작은 마당이 있는데 돌계단도 없어요.” 서일이 어깨를 으쓱하더니, “탕대인이 굉장히 우아하게 설계할 줄 알았는데 창고 같을 줄 누가 알았습니까. 완전 실망이예요.”이렇게 말하니 원경릉과 우문호는 가서 보고 싶은 흥미가 생겼다. 저녁밥을 먹고 여럿이 등을 들고 그쪽으로 갔다. 서일과 탕양을 위해 초왕부에서 특별히 뒤쪽으로 문을 내서 바로 다니게 했는데 왼쪽 뒤는 서일 것이고, 오른쪽은 탕양 것으로 서로 팔뚝만한 넓이의 작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있다.담장은 초왕부 것과 같은 담장이고 문은 커서 서일 쪽 집 문에는 두 개의 돌계단이 있지만 탕양 쪽은 없다. 평지에서 바로 들어오는데 과연 안의 건축을 보니 하나의 거대한 창고 같은 게 본관과 접객실의 구
별별 생각 호비정월 초 사흘, 황귀비는 원경릉을 입궐 시켜 호비 일을 분명하게 설명하고 싶었지만 잠깐 생각해 보니 초사흘은 마가 든 날로 뭔가를 시작하거나 결정하면 안되는 날이라 이 날 얘기하는 건 피하기로 하고 조령을 내리지 않았다.한편 호비는 하루가 일년 같다. 호비는 거시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그냥 자신에게 그런 의도가 있다고 오해 받는 게 싫어서 더욱 태자비에겐 정확하게 변명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건 황귀비도 마찬가지로 마음이 급할 줄 알았는데 초사흘에 원경릉에게 입궁을 청하지 않은 걸 보고 몇 번이나 사람을 시켜 알아봤지만 황귀비는 조령을 내리지 않았고 따라서 태자비도 입궁하지 않았다.호비는 점점 초조해 지는 게 초하루에서 초사흘까지 폐하가 자신의 궁에 오지도 않는 건 왜일까 별별 생각이 다 들면서 모두가 자신을 믿지 못한다는 생각에 더욱 의기소침해졌다.채련전에서 시중을 드는 사람을 전부 불러서 자세히 심문했으나 열째에게 그런 말을 가르치는 걸 본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하는 수 없이 호비는 열째에게 누가 자신에게 그런 말을 했는지 물었지만 열째는 아직 어리고 기억하는지 못하는지 말을 못하고 심지어 황제가 된다는 게 뭔 지도 몰랐다. 호비가 몇 번이나 캐묻자 열째는 아예 울음을 터트려 버렸고 호비는 화가 나서 열째를 몇 대 때렸다.열째도 성질이 있어서 이유 없이 맞자 기분이 나빠서 엉엉 울며 아바마마께 이르겠다고 하고, 호비는 열째가 울고불고 하는 바람에 몸도 마음도 진이 빠졌다. 호비는 아무도 말할 상대가 없어 황제에게 친정 사람을 입궁 시켜 만나게 윤허해 주실 것을 청했다.북당은 비빈과 비빈의 친정사람들이 만나는 것에 그다지 엄격하지 않았고 진북후는 원래도 입궁해서 호비를 봐 온 터였지만 그날 궁인이 명원제에게 상소를 올리자 명원제가 거절하며 초닷새에 일괄적으로 비빈들의 친정사람들이 입궁하니 그때까지 기다리라고 했다.명원제가 거절하자 호비는 생각이 더욱 많아져서 밤새 울고 다음날 도저히 참지 못하고 사람을 시켜 원경릉에게 입궐을 청했
호비의 사죄채련전에 들어가 원경릉이, “도대체 무슨 일인가요?”호비는 원경릉이 일부러 아무것도 모르는 척 한다고 생각하고 진상을 밝히기 어렵겠다 싶어, “섣달 그믐 궁중 연회에서 규야가 한 말에 태자비는 분명 마음이 불편했을 텐데 하늘에 맹세코 쟤에게 그런 말을 가르친 적이 없고 마음에 조금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 없어.”원경릉이 당황해서 황귀비 품에서 질질 짜고 있는 열째를 보고, “열째가 뭐라고 했는데요?”호비가 깊이 한숨을 쉬더니, “태자비는 왜 그렇게 다 들춰내려 합니까? 쟤가 바로 앞으로 황제가 되겠다고 한 그 말이요.”원경릉이 ‘풉’하고 웃으며 열째를 보고 놀리며, “오~ 요 꼬맹이 도련님이 패기 넘치십니다. 황제가 되고 싶으시다고요?”열째는 이제 그런 말을 하지 못하는게 황귀비 품에 숨어 들며, “싫어, 안 해!”원경릉이 호비에게, “이렇게 어린 도련님이 장난 하신 거로는 아무에게도 실례가 되지 않을 뿐더러 누구도 해치지 못해요. 호비 마마 이것 때문이셨습니까?”호비가, “그날 밤 자네에게 해명하려고 불렀어.”원경릉이 웃으며, “전 못 들었어요. 그리고 사실 열째 도련님 말도 못 들었습니다. 그때 희열 군주 일을 얘기하느라 열중해 있었어요. 설사 들었다 해도 그 말이 뭐가 심각한가요? 열째가 지금 뭐가 되고 싶다고 한들 아이들의 농이고 패기인데 제가 아이 말에 정색할 수 있나요? 절 너무 소심하게 보셨어요.”원경릉은 좋은 뜻으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아이의 한마디 농담을 가지고 호비가 이렇게 무릎을 꿇고 울고 하는게 뭐가 뭔 지 도무지 모르겠다.호비가 이 말을 듣고 기뻐하기는 커녕 오히려 울면서, “자네도 개의치 않는데 폐하는 아니셔, 날 믿지 않으시네. 내가 규야에게 그렇게 가르쳤다고 생각하시는 거야. 태자비도 날 믿는데 어째서 폐하께서는 날 안 믿으실까? 심지어 오늘 아버지를 입궁하게 해달라는 것도 허락하지 않으셨어.”호비가 이렇게 말하며 우는 모습이 어찌나 처량한지 초췌한 얼굴에 눈물이 가득하고 눈도 코도 빨
다들 성숙했어명원제가 와서 원경릉은 건곤전으로 갔다. 생각이 밀물같이 쏟아져서 건곤전에서 태상황과 얘기하면서도 마음이 콩밭에 가 있으니 태상황이 무성의한 인간은 가라며 원경릉을 내쫓았다.초왕부로 돌아와 원경릉이 우문호와 이 일을 얘기하자 우문호가 재미난 지, “열째 한 마디에 그 난리가 났다고? 진짜 웃긴다.”“호비 마마 모습을 봤어야 해. 몇 날 며칠을 울었나 봐.” 원경릉은 웃기기는 커녕 오히려 약간 슬픈 게 자기와 호비 사이가 특별히 우애가 깊은 건 아니지만 몇 마디만 해도 속을 알 정도는 되는 친밀한 사이였는데 고작 한 마디 때문에 바로 서로 의심하다니 말이다.원경릉은 어디가 이상한지 콕 집어 말할 수 없지만 뭔가 갑자기 분명해진 기분이 들었다.“호비는 스스로 볶아 대는 사람이야, 누가 진심으로 받아들인다고 그래? 열째는 지금 먹고 싸고 노는 거 밖에 모를 때인데 황제가 된다는 게 무슨 말인지 의미도 모를 거야. 못 믿겠으면 우리 떡들한테 물어봐. 걔들도 모를 테니까.” 우문호가 말했다.원경릉이 억지로 웃으며, “그래, 하지만 호비가 이렇게 긴장한 건 자기도 몰랐다는 얘기이고 어쩌면 누군가 이 일을 이용해 자기와 진북후와의 관계에 충격을 주려는 걸 수도 있어.”우문호가 원경릉의 어깨를 부축해주며 진지하게, “원 선생, 지금 내가 그런 일을 감당 못할 거라고 생각해? 나와 진북후를 이간질하는 건 물론이고 우리 친왕들 사이를 충동질해도 난 대처할 방법이 있어.”원경릉은 우문호의 성숙한 얼굴을 보니 문득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전부 성장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일, 사식이, 만아, 심지어 우문호도 처음 알았을 때와 비교하니 거의 환골탈태 수준으로 달라졌다.방금 누르는 묵직함은 우문호가 이미 사전에 생각이 완전히 다 끝났음을 뜻했다.우문호는 살짝 원경릉을 끌어 안으며, “전에 얘기했던 것처럼 난 황위에 별로 흥미가 없어. 진짜로. 하지만 책임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도 알아. 처가에서 돌아온 뒤로 혼자 깊이 생각해 봤는데 누구도 안심이
탕양 집들이원경릉이, “새집이잖아요. 사야할 물건이 있으면 다 사 놔야죠.”탕양이 감동한 눈빛으로 예를 취하며, “태자비 마마께서 신경 써 주시니 감사합니다만 괜찮습니다. 그간 필요를 대비해 모아둔 은자가 있습니다.”“그럼 다행이네요!” 원경릉은 마음 속으로 이상한 게 돈이 있으면서 인테리어가 왜 이렇게 후진 건데?“언제 이사 들어갈 생각이죠? 고사는 지낼 건가요?”“내일 이사 들어갑니다. 거창하게 고사까지는 아니고요. 같이 밥이나 먹죠, 제가 초대하겠습니다.”“그거 잘 됐네요. 부인을 뵌 적이 없는데 이 참에 만나 뵙고 앞으로 자주 걸음 하면 좋겠어요.”탕양이 미소를 지으며, “예, 저도 가급적 아내가 태자비 마마께 자주 문안 드리게 데려오겠습니다. 원래도 여러 번 태자비 마마를 뵙고 싶어 했어요. 직접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다고.”“무슨 말씀을!” 원경릉이 미소를 지었다.탕양이 물러나다가 갑자기 돌아서서, “태자비 마마, 소인의 새 집에는 의자, 탁자가 부족하니 왕부에서 좀 가져갈 수 있을까요? 내일 저녁 먹을 때 왕부 사람들도 좀 빌려서 식사 시중도 좀 돕게 하고요?”“그렇게 하세요, 초왕부는 기본적으로 탕대인이 주관하니까, 저에게 물어보실 필요 없어요.”“예, 태자비 마마 고맙습니다!” 탕양이 인사하고 나갔다.탕대인이 집들이에 초대하자 모두 기뻐했다. 탕대인은 ‘짠돌이’ 중에 ‘짠돌이’라 요 몇 년 동안 자기 지갑에서 돈을 꺼내 사람들에게 식사대접을 한 적이 없이 때문이다. 서일이 더욱 좋아하는 게 앞으로 탕대인이 이웃이 되기 때문으로, 두 집은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어서 앞으로 탕대인 부부가 부부싸움을 하면 자기들이 들을 수 있겠다며 사식이에게 몰래 키득대며 얘기했다.사식이가 무표정하게, “응, 앞으로 내가 당신 때리는 것도 저 집에서 다 듣겠지.”사식이는 결혼 뒤로 딱 한 달만 부드럽고 자상했지 지금은 완전 원래 모습을 회복해서 말끝마다 꼬투리다.각자 선물을 준비하고 기다리는데 다음날 새집에서 폭죽을 터트린다고 하니
탕양의 아내잠시 후 탕양이 한 여인의 손을 잡고 천천히 부엌에서 나오는데, 나이는 대략 서른 전후로 눈을 사로잡을 만큼 찬란하고 알록달록한 옷을 입었는데 노랑, 빨강, 파랑, 보라…… 무지개를 통째로 입고 있는 것 같지만 의외로 조잡한 느낌이 없다.가늘고 윤기나는 머리를 틀어 올리고 자수정 비녀를 꼽았는데, 야윈 얼굴이 아주 예쁘지는 않지만 품위가 있고 옅은 화장을 한 얼굴에는 행복한 미소가 살포시 번져 있다. 눈을 살짝 내리깔고 탕양의 손을 잡고 나오는 거동이 침착했다.서일이 장난삼아, “오~ 탕대인과 부인이 이렇게 금슬이 좋으실 줄이야, 걸어 나올 때도 손을 잡네요.”원경릉이 서일을 살짝 밀쳤는데 탕부인의 눈에 초점이 없는 것을 보고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걸 알아차렸기 때문이다.과연 탕대인이 미소를 지으며, “예, 아내는 눈이 좀 불편합니다.”탕양은 아내를 데리고 앞으로 와서 작은 소리로, “당신 앞이 바로 태자 전하와 태자비 마마, 옆에 앉아 있는 사람이 서일과 서부인 사식이, 이 사람들은 얘기 많이 들어 아는 분들이니 긴장할 필요 없어.”탕부인이 함박웃음을 짓고 절 하며, “태자 전하, 태자비 마마를 뵙습니다. 서장군 안녕하십니까. 서부인 안녕하십니까!”원경릉이, “부인 괜찮습니다. 어서 앉으세요!”서일과 사식이가 서로 마주보고 살짝 놀랐다. 탕대인 부인이 맹인이라고? 그럼 왜 태자비 마마께 봐 달라고 하지 않으셨지?탕양이 부인을 부축해 앉히고 탕부인은 얼굴을 정확히 돌려 원경릉과 마주하더니 감사인사를 하며, “태자 전하, 태자비 마마, 이 집은 너무 귀한 것이라 저는……저는 태자비 마마의 큰 은혜를 갚을 길이 없습니다.”원경릉이 웃으며, “부인 그건 겉만 보고 하시는 말씀 이세요. 요 몇년간 초왕부 안팎으로 얼마나 많이 탕대인의 신세를 지고 있는데요.”탕부인이 스르르 웃는 게 주변 사람이 탕양을 칭찬하는 소리를 듣는 걸 좋아하는 모양이다.그리고 탕양도 부인에게 꽤 자상해서 요리를 집어 와서 부인 앞접시에 덜어주고 생선 가시를
탕양의 다른 여인원경릉은 그런 줄 모르고, “그럼 아내에 대해……죄책감과 동정?”탕양이 웃으며, “구분해본 적이 없어서요, 그저 이 생에 그녀를 돌봐야 한다고 생각할 뿐입니다.”원경릉이 살짝 걱정하며, “만약 죄책감이나 동정이라면 저는……”탕양이 원경릉의 말을 자르며, “태자비 마마의 걱정을 이해합니다만 걱정하시는 상황은 없을 겁니다. 태자비 마마도 틀림없이 제가 젊었을 때 좀 놀았다는 얘기를 들으셨겠죠. 그래서 남녀의 그렇고 그런 사랑은 ‘빠삭’합니다. 더이상 저에게 매력이 없어요.”원경릉이 이 말을 듣고 그 뜻이 아닌데 하는 마음이 들었다. 탕양과 부인이 진짜 사랑을 하길 진심으로 원하며 책임감이나 죄책감 때문인 걸 바라지 않는 건데 말이다.하지만 이렇게 곤경에 빠진 사람들끼리 서로 다독이는 모습도 아름답다. 사랑은 결국 모두 정으로 변하기 마련이니까.탕양이 웃으며, “태자비 마마, 아름답지 않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원경릉이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흔들며, “아뇨, 전혀요. 오해하지 마세요. 이건 아름다운 일이예요. 어릴 때부터 같이 자란 소꿉친구가 커서 부부가 되고 게다가 행복하게 사는 모습이 전 아름답다고 생각해요.”탕양이 미소를 지었으나 기쁜지 슬픈지 드러내지 않고 물러났다.원경릉은 탕양의 뒷모습을 보며 누군가의 반려가 되는 것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목적이 있고 희망이 있으니까.돌아가서 우문호에게 얘기했더니 우문호가 미간을 찡그리고 생각하다가 결국 아무 말도 안 했다.원경릉은 우문호 표정이 이상해서, “왜 그래?”“탕양이 막 날 다르기 시작했던 때가 생각나서. 좋아하던 여자가 있었거든. 그 사람이랑 결혼할 생각이었어.”“지금 아내?” “아마 아닐 거야. 그 아가씨는 눈이 보였으니까. 그리고 상대적으로 어렸어, 그때는 탕양도 방탕한 생활을 접고 착실하게 정착한 것으로 봐서 그 아가씨와 혼인하려고 했던 것 같아, 몇 번이나 얘기했으니 분명 좋아 했겠지. 아니면 남들 앞에서 그 아가씨 얘기를 할 리가 없거든.”“탕양이 혼
연회는 계속 진행되었고, 냉정언은 술잔을 들고 계속 탕양에게 술을 권했다. 잔을 몇 번이나 주고 받자, 탕양은 머리가 머리가 어지러워져 말조차 똑바로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연회가 끝난 후, 냉정언이 일곱째 아가씨에게 말했다."술을 꽤 마셨다 보니, 탕양이 좀 취한 것 같네. 정원에 나가 산책을 조금 하면서 술기운을 가시는 것이 어떻소?"일곱째 아가씨도 약간 취한 상태였기에, 바람을 쐬며 땀을 내면 술이 깰 것 같다며 동의했다."예. 그럼 다들 돌아가서 쉬시지요. 제가 호명과 함께 탕 대인을 돌보겠습니다.""좋소. 수고하시게나!"냉정언이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흔들었다."자, 어서 돌아가시게!"그렇게 사람들은 모두 새가 흩어지는 것 처럼 순식간에 사라졌다.일곱째 아가씨는 호명과도 함께 산책할 생각이었는데, 빠르게 사라지는 그들의 모습이 어이가 없는듯 웃음을 터뜨렸다.그러고는 탕양의 붉게 상기된 얼굴을 보고 물었다."괜찮습니까? 걸을 수 있겠습니까?"그러자 탕양이 자리에서 힘겹게 일어났는데, 술에 많이 취한듯 몸을 심하게 휘청거렸다."어찌 못 걷겠습니까? 취하지 않았습니다!""예. 그럼, 몇 걸음 더 걸어보시지요. 정말 못 걸으시겠으면 방으로 돌아가 쉬시고요. 취기를 덜어줄 탕을 준비하라고 하겠습니다."그러자 탕양은 허리에 손을 얹고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걸어나갔다. 곧게 뻗은 직선을 그리며 터벅터벅 걷고는 뒤돌아 일곱째 아가씨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보시지요. 얼마나 똑바로 걷는지! 안 취했습니다. 이제 믿을 수 있습니까?"일곱째 아가씨는 그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에 그만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하하하. 예, 안 취하셨네요. 그럼 이만 나가서 함께 산책하시지요."그녀는 그가 오래 걷지 못할거라고 생각해, 방으로 데려가 쉬게 하기로 했다.역시나 문을 나서자마자 탕양은 난간을 붙잡고 비틀비틀 걷기 시작했다. 하도 휘청거리는 탓에 몇 번이나 넘어질 뻔했기에, 일곱째 아가씨는 결국 어쩔 수 없이 그를 부축했다.그러자
"탕 대인이 저를 예쁘다고 말해 주셔서 정말 기쁩니다. 그러니 일곱째 아가씨께도 예쁘다고 말해 보십시오. 분명히 기뻐하실 것입니다!"하지만 탕 대인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다를 겁니다. 일곱째 아가씨는 이제 그런거에 좋아할 나이를 지났습니다. 지금 그녀에게 예쁘다고 말하면, 그저 무미건조하다고 생각할 것입니다.""어찌 그럴 리 있습니까? 누구나 칭찬받는 것을 좋아하는 법입니다. 탕 대인, 대인께서 정말 재능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아십니까?"탕 대인이 웃음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예? 하하하. 그렇습니까?""예! 모두가 그렇게 말했습니다!"탕 대인은 자기도 모르게 어깨를 으쓱거리며 미소를 지었다."과찬입니다.""기분 좋으십니까?"택란이 묻자 탕 대인은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다, 이내 뜻을 알아차리고 멈칫하며 말했다."이 녀석!"택란은 그의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탕 아저씨도 누군가에게 꼭 사랑받으시길 바랍니다."탕 대인은 이 말에 크게 감동해서 택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부드럽게 말했다."예. 고맙습니다."저녁엔 계약이 성공한 기념으로 연회가 열렸다.소박한 술자리긴 했지만, 커다란 술통들이 준비되어 있어 모두 마음껏 마시며 즐길수 있었다.택란은 술을 마시지 않기에, 주 아가씨가 매실청을 대신 준비해 주었다. 새콤달콤한 맛이 택란의 마음에 쏙 들었다.술잔을 주고받으며 어느 정도 취기가 오르자, 모두 패기 있게 약도성을 북당에서 제일가는 도성으로 만들겠다고 호언장담했다.일곱째 아가씨는 벌써 독산을 어떻게 개발할지부터 고민하고 있었는데, 독산의 아름다움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막막했기에 사람들에게 의견을 구하기 시작했다.각자 다양한 의견을 내놓았지만 대부분이 경치를 개발하자는 내용이었다.반면, 택란은 새로운 생각을 제안했다. 독산에 온천이 있으니 오두막을 지어 온천을 끌어들여 돈을 받고 여러 개의 탕을 이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어떻겠냐며, 온천수가 몸에 좋다는 점을 대대적으로 홍보하자고 제의하였다.택란의 생각은 이 시절
탕양은 자신이 여자의 마음을 어느 정도 이해한다고 자부했었다. 특히 일곱째 아가씨처럼 강인한 성격을 가진 사람은 혼자 지내는 데 익숙하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삶을 더 선호하기에 굳이 자신과 인연을 맺으려 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이는 그의 큰 착각이었다.여인의 마음은 늘 갈대처럼 변덕스럽고, 아무리 강인한 사람이라도 다정함이 필요한 순간이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일곱째 아가씨는 오랫동안 혼자 외롭게 지내왔는데, 중년에 접어들며 그 외로움이 더욱 깊어진 것이다.누군가 곁에 있다면, 삶의 방식도 달라질 수 있지만, 물론 잘못된 연으로 나빠질 가능성도 있었다.원가의 가훈은 항상 군주에게 충실하며, 엄청난 용기도 있었다. 심지어는 원가에서 키운 닭조차 남의 집의 닭보다 더욱 용감할 정도였다.하지만 한 번의 좌절로 인해 사랑을 믿지 않겠다는 것이 과연 용기있는 행동 일까?물론 그녀가 반드시 탕양을 선택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다른 어울리는 사람을 만나 다시 한번 용기를 내볼 수도 있었다.하지만 탕양이 먼저 용기를 내어 말한다면, 그녀 역시 그에게 기회를 줄 것이다.여태껏 그녀의 마음에 들어온 사람은 오직 탕양뿐이었다.그리고 어쩌면 시도해 봐야만 서로 맞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탕양과 잘 맞는다고 느끼는 건 그녀가 스스로 마음의 문을 닫아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착각일지도 모르니 말이다.경성으로 돌아간 후에도 탕양이 말을 꺼내지 않는다면, 그녀는 공개적으로 구혼에 나설 생각이었다. 한편, 택란이 주 아가씨와 함께 밖으로 나가며 물었다."탕 대인이 왜 나쁜 사람인 것이오?""여인을 훔쳐봤습니다.""탕 대인이 아가씨를 좋아하지 않소? 어찌 못 보는 것이오?"주 아가씨는 택란이 이런 부분에 대해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공주에게 가르쳐야겠다고 마음먹으며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사내가 여인을 사모하면 상대의 시선을 바라보지, 다른 곳을 쳐다보지 않습니다. 그러니 탕 대인은 일곱째 아가씨를 사모하는 것이 아닙니다.""그
그녀는 탕양을 힐긋 바라보는데, 예전의 담담하고 온화한 모습 없이 뜨겁게 자신을 응시하고 있었다.그녀는 그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기에, 절대 먼저 말을 꺼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평생 그렇게 죽을 때까지 버틴다 해도, 제자리에 머물러 기다리지 않을 것이었다."탕 대인, 지금 어디를 보는 것이오?"그때, 냉정언이 물었다."예? 무슨 말이십니까?"탕양은 서둘러 정신을 차리고 냉정언을 바라보자, 냉정언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탕 대인께서 계속 일곱째 아가씨의 가슴팍을 보고 있었소. 무슨 생각을 하시는 것이오?"이 말이 끝나자마자, 모두가 술렁이며 이상한 시선으로 탕양을 바라보았다.그러자 주 아가씨가 급히 택란의 귀를 막으며 말했다."보지도, 듣지도 마십시오!"탕양은 크게 당황하며 두 손을 마구흔들었다."아닙니다! 전 그러지 않았습니다! 냉 대인께서 잘못 보신 겁니다.""아니오. 분명 아가씨의 옷깃과 가슴을 보고 있었소!"말을 마치자마자 냉 대인은 숭이를 안고 단호하게 밖으로 나갔고, 탕양은 얼굴을 붉히며 변명이라도 하기 위해 일곱째 아가씨를 쳐다봤다. 그러자 일곱째 아가씨는 기침을 하며 옷깃을 정리한 뒤 소리쳤다. "흥. 변태!"말을 마치자마자 그녀도 돌아서 나가버렸다.탕양은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며 당황한 얼굴로 주 아가씨와 홍엽을 보며 말했다."다들 보지 않았습니까? 제가 그런 게 아니라는..."홍엽이 소매를 휘두르며 말했다."눈이 자네 얼굴에 달려 있는데, 자네가 누굴 보고 어디를 보는지 우리가 어찌 알겠는가?"주 아가씨는 택란의 손을 잡고 나가며 말했다."마마, 이제 탕 대인 같은 사람하고 어울리지 마십시오. 인품이 좋지 않으신 것 같습니다!"탕양은 여전히 몹시 당황한 상태였다. 냉정언의 한마디에 그의 처지가 아주 난감해져 버렸다.그는 그런 사람이 아닌데 말이다. "명여야..."냉명여 또한 귀를 막고 밖으로 달려 나가며 외쳤다."탕 대인께서는 정말 나쁜 사람이십니다!"탕양은 그만 머리를 감싼
이처럼 독산은 마치 진실한 사람의 마음을 비추는 거울처럼 가장 진솔한 생각을 감출 수 없게 만들었다.일곱째 아가씨는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탕양을 바라보며 말했다."저를 배신한 것을 아직 기억하고 계십니까?"탕양은 그동안 일곱째 아가씨와 이 일을 얘기하고 싶었지만, 그녀는 항상 담담한 태도로 과거 이야기를 피하며 언급하지 않았었다. 그런 그녀가 갑자기 이 말을 꺼내니, 탕양은 잠시 멍해졌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당연히 기억하고 있지요..."일곱째 아가씨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기억하고 있다면, 제가 독산을 얻을 수 있게 잘 도우십시오. 독산을 개발할 수 있다면 앞으로 15년간의 수익은 전부 제 것이 될 겁니다. 그리고 15년 뒤에는 이익을 반으로 나누겠습니다. 절대 3할만 받을 수는 없습니다."탕양은 난감한 표정으로 말했다."하지만 폐하께 이미 3할이라고 말씀드렸는 걸요.""그건 대인의 일이지요. 폐하를 오랫동안 모셔 왔으니, 대인의 공로를 인정하고 배려해 주실 것입니다. 이건 대인께서 누구의 이익을 우선시할지에 달린 것 아닙니까?"그러자 탕양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아가씨, 3할이라도 충분히 좋은 제안이지 않습니까? 그저 길만 새로 만들면 되고, 심지어는 조정에서 나서서 도와줄 것이니, 초반 투자 비용도 그렇게 많이 들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장사를 시작하면, 놀러 오는 자들에게 먹거리와 즐길 거리로 돈을 적잖이 벌 수 있습니다.""반으로 나누는 것까지만 양보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익을 중시하는 상인인 것을 잘 알지 않습니까."탕양은 잠시 고민하다 말했다."예. 폐하께 돌아가 말씀은 드리겠지만… 무조건 그 조건을 따내겠다고 장담할 순 없습니다.""못 따내도 그만입니다."일곱째 아가씨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앞으로 제가 독산에 몇 번이나 올 수 있겠습니까? 어차피 조정에서 독산을 얻는다고 해도, 굳이 그렇게 많은 돈을 쓸 필요가 없습니다."탕양이 웃으며 답했다."이곳에서 지내면서 머물어도 되지 않습니까? 늘
일곱째 아가씨는 산 입구에서 지옥의 불꽃을 보자마자 순간 홀린 듯 그 자리에 멈춰 섰다. 꿈속에서 본 그 꽃이 눈앞에 펼쳐지니,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할 수 없는 것 같았다.탕양이 손을 뻗어 꽃을 따려 하자, 일곱째 아가씨가 급히 소리쳤다."지금 뭐 하는 것입니까? 당장 멈추십시오!"하지만 탕양은 이미 지옥의 불꽃을 손에 쥔 채 그녀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이것이 바로 해독제입니다."그는 손바닥에서 꽃을 비벼 즙을 내고는 일곱째 아가씨의 손을 잡아 즙을 그녀의 손등에 묻혔다. 즙은 선혈처럼 선명한 붉은빛을 띠고 있어, 일곱째 아가씨의 손등에 피가 묻은 것처럼 보였다. 그러자 그녀가 멍하니 그것을 바라보며 물었다."정말입니까? 이렇게 신기하단 말입니까…?"그제야 그녀는 과거 산속에서 넘어졌을 때, 얼굴이 지옥의 불꽃에 닿아 꽃 즙이 묻고 나니, 정신이 돌아왔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녀는 그때 자신의 강한 의지로 깨어난 것인줄 알고 있었다."이걸 어떻게 알게 되신 겁니까?"일곱째 아가씨가 호기심 어린 눈길로 묻자, 탕양은 숨기지 않고 답했다."안풍친왕이 말해준 것입니다. 예전에 독산에 와서 방 장군의 유해를 찾을 때 산을 드나든 적이 있었는데, 이 비밀을 알고 있었기에 독산을 드나드는 것에 전혀 문제가 없었다고 합니다. 지금 손등에 지옥의 불꽃 즙을 바른 이상, 산에 들어가도 환각에 휘말리지 않을 것입니다. 이제 독산의 절경을 마음껏 감상하실 수 있다는 말입니다!""그렇습니까? 독산의 비밀을 푸는 것이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렵다고 여겼는데, 이렇게 쉽게 지옥의 불꽃으로 독성을 없앨 수 있었다니요…!"일곱째 아가씨가 중얼거리며 탄식하자, 탕양이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예. 겉보기엔 어려운 일도, 걷기 힘든 길도, 내리기 힘든 결정도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으면 의외로 쉽게 해결할 수 있답니다.""어찌 말 속에 다른 뜻이 있는 것 같습니다?"일곱째 아가씨가 담담한 눈빛으로 그를 힐끗 바라봤다.그러자 탕양이 당황한듯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독산은 약도성에서 ‘귀역’이라고도 불린다.약도성 백성들은 거의 독산에 들어가지 않는다. 해마다 보물을 찾아 벼락부자가 되길 꿈꾸며 산으로 들어서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무사히 나오는 사람은 극소수였기 때문이다.심지어 살아서 나온 사람 중에서도 정신이 나가거나 미쳐버린 자들이 적지 않다.그래서 조정 신하가 독산에 들어가겠다는 소식은 백성들의 큰 주목을 받았고, 심지어 일부는 관저로 직접 찾아와 독산이 위험하다고 경고하며 요괴와 귀신이 들끓으니 절대 들어가지 말라며 충고까지 했다.그러자 탕양은 그들에게 독산에 요괴나 귀신이 있는 곳이 아닌, 신령과 신선들이 지내는 신성한 곳이라 말했다. 그동안 산에 들어갔던 백성들이 그만 욕심에 사로잡혀 신령을 거슬렀기에 독산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라고, 경외심을 품고 신앙심을 가지고 들어가면 무사히 나올 수 있다며 설명까지 덧붙였다. 그리고 이 말은 당대 국사가 직접 언급한 것이라며, 이를 검증하기 위해 자신이 파견된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탕양 또한 이 말을 하면서도 내심 불안했다. 사실은 이 이야기 모두 황제가 부유한 이들과 이웃 나라의 신도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근거 없는 이야기를 만들어낸 것이기 때문이다.하지만 독산의 풍경은 북당에서의 유일무이한 절경이었기에 탕양은 결국 독산의 모습을 드러내고 개방하자는 제안에 동의했던 것이다. 탕양의 말을 믿는 사람은 그저 소수에 불과했고, 믿지 않는 사람, 의심하거나 반신반의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저 상황을 지켜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산에 들어가기 전, 탕양이 일곱째 아가씨에게 물었다.“정말 나와 함께 들어갈 셈입니까?”일곱째 아가씨는 젊은 시절 한 번 독산에 들어간 적이 있었는데, 멀리 가기도 전, 산속에서 만난 지옥의 불꽃에 매료되었다. 그렇게 꽃밭에서 넘어진 후, 정신을 차리자마자 황급히 산을 빠져나왔던 것이다.하지만 산을 떠난 후에도 그 붉은 색의 꽃은 그녀의 마음속에 잊히지 않았고, 마치 주문에 걸린 듯 계속 머릿속에 떠올랐다.다시 독산에 오자, 과거의
“그렇다면 아버지 말씀을 잘 듣거라. 네 양아버지께서는 아바마마처럼 늘 칭찬하고 좋은 말만 해주시지 않느냐? 집안에서 누군가는 엄격하고 누군가는 따뜻한 법이다. 애정 어린 따스함을 즐겨도 되지만, 엄격한 가르침 또한 잘 따라야 한다.”하지만 냉명여는 아직 어려 이해하지 못한 듯 고개를 대충 끄덕이며 말했다.“열심히 무술을 연마하여, 나중에 꼭 누나를 도와드리러 오겠습니다.”택란이 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좋다. 그럼, 너를 기다리마!”냉명여는 뜨거워진 자신의 얼굴이 부끄러워져 고개를 돌리고 싶었지만, 그녀가 머리를 쓰다듬는 것이 못내 편안하게 느껴졌다.다른 한편, 탕 대인과 일곱째 아가씨도 약도성에 도착해, 약도성의 관저는 순식간에 북적이기 시작했다.호명은 이제 조정의 명을 받고 약도성의 관리로 임명되었는데, 조정에서 약도성을 시찰하러 온 사람들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는,약도성에서 장사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이기에 의부인 탕양과 일곱째 아가씨를 극진히 모셨다.일곱째 아가씨는 재력이 뛰어나니, 그녀가 약도성에서 장사를 시작한다면, 도성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독산이요?”이때, 그녀가 갑자기 독산에 관심을 보이자, 호명이 멈칫했다.“독산은 굉장히 위험한 곳입니다. 이곳 백성들조차 들어가기를 꺼리지요. 안에 미혼진이 있어, 들어가면 나올 수 없다고 합니다.”탕 대인이 말했다.“그건 네가 걱정할 일이 아니다. 이틀 후, 우리는 독산에 따로 갈 계획이다. 그러니 그 전에 일곱째 아가씨를 잘 모시고, 도성 곳곳과 약도성을 보여주도록 하거라. 아가씨가 독산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면, 50만 냥을 투자할 것이고, 그중 30만 냥은 약도성의 길을 만들고 발전을 위해 쓰이게 할 것이다.”그러자 호명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30만 냥이라니요! 정말 단비 같은 소식입니다! 지진으로 인해 많은 길이 끊기고, 집들이 무너졌습니다. 인근 주부에서 도움을 주고, 조정에서도 예산을 지원해 주었지만, 아직도 턱없이 부족합니다. 만약
택란은 금나라 어린 황제의 의도를 들은 후 화들짝 놀랐다. 그는 택란이 금나라에서 죽었다고 생각해 시신을 찾을 수 없으니, 그녀의 가족에게 묘를 만들게 시켜 혼이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전하러 왔던 것이었다.또한, 택란은 어린 황제가 정말 자신이 죽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꽤 의외였다. 게다가 충직하게 그녀의 가족을 찾아다니며 길을 잃은 원혼이 되지 않도록 도와주려 했으니 말이다.“그가 실망하겠소. 이 도성에 다섯째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있어도, 딸 이름이 택란인 자는 없을 테니.”그러자 주 아가씨가 웃으며 말했다.“하지만 정말 찾았지 뭡니까? 서자림 근처 마을에 다섯째라 불리는 자가 있었습니다. 마침 집안에 란이라는 딸아이가 6개월 전부터 종적을 감추었지요. 게다가 다섯째라는 사람은 지진으로 두 다리를 잃은 상태였고, 집안에 란이의 언니도 있어서 금나라 어린 황제가 사람을 보내 그들을 데려갔다고 합니다.”“정말 그런 우연이 있단 말이오?”택란이 놀라며 말했다.“예. 그 다섯째 사람도 딸이 죽은 줄 알고 슬피 울면서 상을 치렀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후에 딸과 함께 황제의 사람들을 따라갔습니다.”택란이 피식 웃었다. 정말 우연도 이런 우연이 없었다. 다만 그의 딸의 이름은 란이인데, 그녀는 금나라 어린 황제에게 자신의 이름이 택란이라고 했다.한 글자 차이로 생긴 오해였다. 어쨌든 금나라 어린 황제가 은혜를 갚기 위해 한 일이니, 크게 신경 쓸 필요는 없었지만, 어린 황제가 이런 일까지 신경을 쓸 겨를이 있었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설마 금나라에 무슨 변화가 생기기라도 한 걸까?해가 바뀌며 어린 황제도 이제 14살이 되었기에, 만약 조정 대신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권력을 되찾을 가능성도 있었다.그와의 짧은 인연을 생각하며, 택란은 그가 권력을 되찾기를 바랐다. 물론, 그가 권력을 잡으면 약도성에도 좋은 일일 것이기에, 만약 실현이 된다면, 택란은 금나라에 가서 두 나라 간 자원 채굴을 논의할 계획이었다.한편, 서일이 떠난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