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양 집들이원경릉이, “새집이잖아요. 사야할 물건이 있으면 다 사 놔야죠.”탕양이 감동한 눈빛으로 예를 취하며, “태자비 마마께서 신경 써 주시니 감사합니다만 괜찮습니다. 그간 필요를 대비해 모아둔 은자가 있습니다.”“그럼 다행이네요!” 원경릉은 마음 속으로 이상한 게 돈이 있으면서 인테리어가 왜 이렇게 후진 건데?“언제 이사 들어갈 생각이죠? 고사는 지낼 건가요?”“내일 이사 들어갑니다. 거창하게 고사까지는 아니고요. 같이 밥이나 먹죠, 제가 초대하겠습니다.”“그거 잘 됐네요. 부인을 뵌 적이 없는데 이 참에 만나 뵙고 앞으로 자주 걸음 하면 좋겠어요.”탕양이 미소를 지으며, “예, 저도 가급적 아내가 태자비 마마께 자주 문안 드리게 데려오겠습니다. 원래도 여러 번 태자비 마마를 뵙고 싶어 했어요. 직접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다고.”“무슨 말씀을!” 원경릉이 미소를 지었다.탕양이 물러나다가 갑자기 돌아서서, “태자비 마마, 소인의 새 집에는 의자, 탁자가 부족하니 왕부에서 좀 가져갈 수 있을까요? 내일 저녁 먹을 때 왕부 사람들도 좀 빌려서 식사 시중도 좀 돕게 하고요?”“그렇게 하세요, 초왕부는 기본적으로 탕대인이 주관하니까, 저에게 물어보실 필요 없어요.”“예, 태자비 마마 고맙습니다!” 탕양이 인사하고 나갔다.탕대인이 집들이에 초대하자 모두 기뻐했다. 탕대인은 ‘짠돌이’ 중에 ‘짠돌이’라 요 몇 년 동안 자기 지갑에서 돈을 꺼내 사람들에게 식사대접을 한 적이 없이 때문이다. 서일이 더욱 좋아하는 게 앞으로 탕대인이 이웃이 되기 때문으로, 두 집은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어서 앞으로 탕대인 부부가 부부싸움을 하면 자기들이 들을 수 있겠다며 사식이에게 몰래 키득대며 얘기했다.사식이가 무표정하게, “응, 앞으로 내가 당신 때리는 것도 저 집에서 다 듣겠지.”사식이는 결혼 뒤로 딱 한 달만 부드럽고 자상했지 지금은 완전 원래 모습을 회복해서 말끝마다 꼬투리다.각자 선물을 준비하고 기다리는데 다음날 새집에서 폭죽을 터트린다고 하니
탕양의 아내잠시 후 탕양이 한 여인의 손을 잡고 천천히 부엌에서 나오는데, 나이는 대략 서른 전후로 눈을 사로잡을 만큼 찬란하고 알록달록한 옷을 입었는데 노랑, 빨강, 파랑, 보라…… 무지개를 통째로 입고 있는 것 같지만 의외로 조잡한 느낌이 없다.가늘고 윤기나는 머리를 틀어 올리고 자수정 비녀를 꼽았는데, 야윈 얼굴이 아주 예쁘지는 않지만 품위가 있고 옅은 화장을 한 얼굴에는 행복한 미소가 살포시 번져 있다. 눈을 살짝 내리깔고 탕양의 손을 잡고 나오는 거동이 침착했다.서일이 장난삼아, “오~ 탕대인과 부인이 이렇게 금슬이 좋으실 줄이야, 걸어 나올 때도 손을 잡네요.”원경릉이 서일을 살짝 밀쳤는데 탕부인의 눈에 초점이 없는 것을 보고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걸 알아차렸기 때문이다.과연 탕대인이 미소를 지으며, “예, 아내는 눈이 좀 불편합니다.”탕양은 아내를 데리고 앞으로 와서 작은 소리로, “당신 앞이 바로 태자 전하와 태자비 마마, 옆에 앉아 있는 사람이 서일과 서부인 사식이, 이 사람들은 얘기 많이 들어 아는 분들이니 긴장할 필요 없어.”탕부인이 함박웃음을 짓고 절 하며, “태자 전하, 태자비 마마를 뵙습니다. 서장군 안녕하십니까. 서부인 안녕하십니까!”원경릉이, “부인 괜찮습니다. 어서 앉으세요!”서일과 사식이가 서로 마주보고 살짝 놀랐다. 탕대인 부인이 맹인이라고? 그럼 왜 태자비 마마께 봐 달라고 하지 않으셨지?탕양이 부인을 부축해 앉히고 탕부인은 얼굴을 정확히 돌려 원경릉과 마주하더니 감사인사를 하며, “태자 전하, 태자비 마마, 이 집은 너무 귀한 것이라 저는……저는 태자비 마마의 큰 은혜를 갚을 길이 없습니다.”원경릉이 웃으며, “부인 그건 겉만 보고 하시는 말씀 이세요. 요 몇년간 초왕부 안팎으로 얼마나 많이 탕대인의 신세를 지고 있는데요.”탕부인이 스르르 웃는 게 주변 사람이 탕양을 칭찬하는 소리를 듣는 걸 좋아하는 모양이다.그리고 탕양도 부인에게 꽤 자상해서 요리를 집어 와서 부인 앞접시에 덜어주고 생선 가시를
탕양의 다른 여인원경릉은 그런 줄 모르고, “그럼 아내에 대해……죄책감과 동정?”탕양이 웃으며, “구분해본 적이 없어서요, 그저 이 생에 그녀를 돌봐야 한다고 생각할 뿐입니다.”원경릉이 살짝 걱정하며, “만약 죄책감이나 동정이라면 저는……”탕양이 원경릉의 말을 자르며, “태자비 마마의 걱정을 이해합니다만 걱정하시는 상황은 없을 겁니다. 태자비 마마도 틀림없이 제가 젊었을 때 좀 놀았다는 얘기를 들으셨겠죠. 그래서 남녀의 그렇고 그런 사랑은 ‘빠삭’합니다. 더이상 저에게 매력이 없어요.”원경릉이 이 말을 듣고 그 뜻이 아닌데 하는 마음이 들었다. 탕양과 부인이 진짜 사랑을 하길 진심으로 원하며 책임감이나 죄책감 때문인 걸 바라지 않는 건데 말이다.하지만 이렇게 곤경에 빠진 사람들끼리 서로 다독이는 모습도 아름답다. 사랑은 결국 모두 정으로 변하기 마련이니까.탕양이 웃으며, “태자비 마마, 아름답지 않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원경릉이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흔들며, “아뇨, 전혀요. 오해하지 마세요. 이건 아름다운 일이예요. 어릴 때부터 같이 자란 소꿉친구가 커서 부부가 되고 게다가 행복하게 사는 모습이 전 아름답다고 생각해요.”탕양이 미소를 지었으나 기쁜지 슬픈지 드러내지 않고 물러났다.원경릉은 탕양의 뒷모습을 보며 누군가의 반려가 되는 것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목적이 있고 희망이 있으니까.돌아가서 우문호에게 얘기했더니 우문호가 미간을 찡그리고 생각하다가 결국 아무 말도 안 했다.원경릉은 우문호 표정이 이상해서, “왜 그래?”“탕양이 막 날 다르기 시작했던 때가 생각나서. 좋아하던 여자가 있었거든. 그 사람이랑 결혼할 생각이었어.”“지금 아내?” “아마 아닐 거야. 그 아가씨는 눈이 보였으니까. 그리고 상대적으로 어렸어, 그때는 탕양도 방탕한 생활을 접고 착실하게 정착한 것으로 봐서 그 아가씨와 혼인하려고 했던 것 같아, 몇 번이나 얘기했으니 분명 좋아 했겠지. 아니면 남들 앞에서 그 아가씨 얘기를 할 리가 없거든.”“탕양이 혼
진북후의 말실수부부 두 사람은 이미 결정했다. 대주에서 새끼 봉황 한 트럭을 줘도 안된다고 말이다.두 번의 출산, 애 다섯 명, 이미 집안은 난장판이다. 여기에 새끼 봉황이 더 생기면 그야말로 미쳐버릴 거다. 따라서 안전 장치는 반드시 필요하다.우문호가 비록 딸을 원하지만 더는 낳지 않고 정말 딸을 갖고 싶으면 쌍둥이가 큰 뒤에 한 명을 데려다 키우는 것으로 이미 상의를 마쳤다. 우문호는 아이가 많아서 집이 아수라장인 건 전혀 두렵지 않지만 원 선생이 아이를 낳는 위험을 또 감수하는 건 두렵기 때문이다.우문호는 위험부담은 싫고 딸은 갖고 싶다. 하지만 딸이 있던 없던 제일 중요한 건 아내다.우문호가 다음날 경조부에 출근하자 진북후가 찾아와 긴요한 용건이 있으니 상의하기를 원했다.우문호는 아마도 호비 일이 아닐까 하고 접객실로 안해하고 앉아서 얘기를 나누는데 과연 열째가 한 그 말 때문이었다.“열째가 이제 고작 몇 살입니까? 걔가 한 마디 한 걸 다들 너무 정색하고 비판하는 거 아닐까요? 진북후 나리도 그렇습니다. 그 말에 연연하실 필여 없어요.”진북후는 오히려 주춤거리며 얼굴이 하얘지더니, “아니요, 실은 그 말은 제가 가르친 겁니다.”우문호가 당황해서, “예? 나리께서?”“가르친 게 아니라!” 진북후가 뉘우치는 얼굴로 발을 구르며, “어쩌다 그런 말이 나왔을 뿐입니다. 황자께서 듣고 기억하실 줄이야, 저녁 연회에서 그 말을 듣고 전 하마터면 까무러치는 줄 알았습니다.”우문호가 담담하게, “됐습니다. 이건 아무도 모르니 나리도 다른 데 말씀하시 마세요.”진북후가 망했다는 얼굴로, “아는 사람이 있어서 이미 폐하께 보고드렸어요. 궁에서 사람이 와서 전 내일 입궐합니다.”“누가 폐하께 보고했습니까? 나리는 누구에게 얘기했길래? 아니 어찌 그렇게 바보같이 구셨습니까?” 우문호는 진북후 행동에 뚜껑이 열렸다. 진북후는 절대로 그런 마음이 없는데 입단속을 못하고 허풍 떨기를 좋아해서 그렇다. 전에 냉정언이 진북후는 그 버릇때문에 죽을 거라고 했
우리 아빠가 그랬다고?진북후가, “마마와 열째 황자를 연루 시킨 것이 두렵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전 두렵지 않아요. 고작해야 제 목숨, 이 머리인데. 전하께서 역정내지 않으셔도 이미 죽어 마땅한 걸 압니다.”“돌아가서 잘 생각해 보세요. 도대체 그날 거기 있었던 사람이 누구였는지, 나리의 그 말을 듣고 호비 마마께 얘기하지 않고 아바마마께 알린 자는 어찌 됐든 찾아내야 합니다.”“찾아내야 지요. 그럼 내일 전하께서 먼저 입궐하셔서 저에 대해 어전에서 몇 마디 해 주실 수 있으실 까요?” 한때 황제 앞에서 장인이라고 으스대던 진북후가 지금 딸과 열째 황자가 연루될 까봐 전전긍긍하고 있다.“그럴 필요 없습니다. 아바마마께서는 나리를 믿으실 게 틀림없어요. 하지만 반드시 정확히 물어보실 겁니다.” 진북후에게 그런 야심이 없다는 걸 아바마마는 우문호보다 잘 알고 있다. 우문호는 조금 있다가, “하지만 폐하를 대하기 전에 사람을 호비 마마께 보내 이 일을 알리세요. 마마께서 진상을 모르시면 내일 나리가 궁으로 소환되어 추궁을 당하면 마마께서는 나리가 무고하다고 생각하고 소동을 일으키실 수도 있으니까요.”“지금 성지가 없으면 저도 궁에 들어갈 수 없는데 태자비 마마께서 저를 대신해 한 번 다녀와 주실 수 있으실 까요?” 진북후가 애원했다.우문호는 호비의 성정이 맹렬한 것을 알고 만약 아무것도 모르면 나중에 정말 소동이 일어날 수 있으므로, “그럼 알겠습니다. 사람을 시켜 태자비에게 얘기하죠. 급히 궁에 가서 호비 마마를 만나 뵈라고.”“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전하!” 진북후는 자신이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되었는지 모르겠다.우문호가 눈살을 찌푸리며 진북후의 이런 모습을 보고 패기가 넘치던 대장군의 위용은 어디 갔나 싶다. 경성은 역시 무장이 있을 곳이 못 된다. 조심성이 생기고 트집 잡히지 않도록 주의하는 것을 배우지만 패기가 없어진다.하지만 방법이 없다. 문관들이 가장 눈에 거슬려 하는 것이 무장들의 나쁜 습관이 바로 이것으로 특히 무장이 기고만장해서 위
평남왕명원제는 다음날 진북후를 궁으로 불러 우문호가 말한 대로 말로 몇 마디 경고할 뿐 어떤 처벌도 내리지 않아 장인의 체면을 그래도 살려줬다.진북후가 궁을 떠나며 점점 경성에서 지내기가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 참에 우문호를 찾아가 외부로 부임을 받아 다시 군으로 돌아가기를 희망했다.우문호는 마침 일손을 키우려던 때라 진북후를 강북부로 일단 보내서 잠시 셋째 위왕의 병마를 맡도록 했다.진북후가 경성을 떠나 강북부로 가는 게 우문호에게 안심이 되는 것이 진북후가 있는 곳은 자연스럽게 장벽이 되어 강북부와 북막의 국경선을 지켜줄 것이다.그리고 셋째가 상처를 치료하고 돌아오면 우문호는 다른 생각이 더 있다.이 때 냉정언이 와서 알리기를 폐하가 첩보를 받았는데 평남왕부에 선비족 사람이 출입을 하고 평남왕이 선비 사람 몇 명을 모아서 집으로 들여 시위로 삼았다는 것이다.평남왕은 헌제의 황태손(皇太孫)으로 나중에 휘종제가 등극한 뒤 그를 성태손(聖太孫)으로 봉했다. 태상황이 등극한 뒤에는 평남왕으로 봉해 평남을 봉지로 하사하고 스스로 번왕(藩王)이 되어 그동안 풍족한 생활을 하며 조정일에 관여하지 않아 왔다.평남왕은 이미 예순이 넘은 나이로 평생 혼인하지 않았으며, 슬하에 아들을 하나 양자로 들여 경성에서는 거의 돌아오지 않았다. 평남왕을 선비와 엮어보려고 해도 우문호는 결코 믿을 리 없는 것이 그가 정말 선비와 교분이 있어도 다른 속셈이 있을 리 없기 때문이다.우문호는 누군가 평남왕을 들어 괜히 크게 떠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평남왕 우문극(宇文极)과 안풍친왕 부부가 가깝게 왕래하기 때문이다. 안풍친왕은 헌제 때의 대장군으로 황태자에 봉해진 적이 있으나 일신의 영달을 버리고 조정을 떠났다. 그 원인은 아무도 모르지만 밖에서 추측하기로는 태상황과 싸워서 이기지 못해 달아난 것으로 원래는 제위에 야심을 품었다고 했다.하지만 그건 소문일 뿐 진상이 어떤 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그를 계속 끌어들이는 것이 보이지 않는 감춰진 적수는 물을 흐려
홍엽이 따라 와?당연히 우문호의 뒤에는 주재상과 소요공이 있고 그 최고봉엔 태상황이 지탱하고 있으므로 조직 결정은 신속했다.우문호는 여전히 경조부를 맡으나 지금은 제왕이 이미 제 몫으로 자라서 우문호는 이름만 걸어 놓고 동궁을 전전해 우문호의 조직은 동궁의 작은 조정과 마찬가지였다.원경릉은 한가한 이 기회에 만두를 데리고 경호에 다녀오고 싶었다.지금 우문호는 움직일 수 없지만 원경릉은 계속 경호의 비밀에 미련이 남았기 때문이다. 사식이도 같이 가고 만두도 데리고 갈 거라 만두 늑대는 분명 따라 올 것으로 가는 길이 위험할 걱정은 없다.하지만 마차가 막 경성을 떠나는데 뒤에서 홍엽과 못난이가 말을 달려 쫓아왔다.사식이가 상황을 보고 차갑게 한 마디 하는데, 나쁜 느낌이 잔재가 여전히 남아있다고 했다.홍엽은 경성에서 거의 투명인간처럼 사람들 앞에 거의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다수의 경우 사람들은 홍엽을 잊고 있다가 문득 허를 찔렸다.초봄 날씨는 아직 추워서 원경릉은 솜을 두른 옷을 입고 있는데, 홍엽은 붉은 옷에서 흰 옷으로 갈아입고 가볍게 겉옷 하나에 바람을 맞으며 말을 달리고 있었다. 쫙 빠진 몸매가 여실히 드러나는 게 전형적인 ‘얼죽아(한겨울 얼어 죽어도 폼을 위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심)’다.중간에 여관에 식사를 하러 들어가자 홍엽도 자연스럽게 따라 들어와 원경릉에게, “사실 이번에 경호에 가면 경호가 아직 얼어 있을 수도 있겠어요.”“그럴 리 없습니다. 계속 경호에 사람을 보내 확인하고 있으니까요.” 원경릉은 홍엽이 포기하지 않을 것을 알고 따라오든 말든 상대하지 않기로 헀다.“경호를 통해 분명 그쪽으로 갈 수 있죠?” 홍엽이 물었다.“꼭 그런 건 아니 예요. 경호의 비밀은 저도 지금까지 풀지 못했으니까요.”“경호에서 물건을 건지는 걸 봤는데 집에서 보내 온 건 가요?”원경릉이 홍엽을 보고 웃는 건지 아닌지, “계속 사람을 보내 경호를 감시했죠? 그럼 방금 얼음 얘기는……”“그렇게 말해야 제가 사람을 그쪽에 안 보낸 것처럼 보
홍엽과 못난이원경릉이 홍엽을 내버려두는 건 신상을 대략 이해하고 자신에게 그런 쪽 의도가 없음을 깊이 신뢰해서, 자신이 홍엽 어머니와 어느 정도 비슷하게 생겼기 때문이란 걸 알아서다.주진이 얘기한 것처럼 홍엽의 일생은 어린 시절에 대한 치유의 과정이다.홍엽이 태자 일행을 데리고 남강 산에 들어간 일, 그 마음은 기억해 둘만 하다.밥 먹는 동안 홍엽은 내내 말이 없고 원경릉에게 요리를 집어주는 일도 없어서 사식이는 그 점이 만족스러웠다. 홍엽이 주제넘는 행동을 할 까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기 때문이다.만두는 심심해서 좀이 쑤셨다. 이번 외출에 자기만 있고 동생들이 없어서 인데, 전에는 늘 동생들 때문에 시끄럽다고 짜증이었지만 막상 동생들이 없으니 이게 또 적응이 안 된다. “엄마, 다 먹었어요!” 만두가 젓가락을 던졌다.“그럼 늑대 데리고 나가서 놀아 주렴, 멀리 가지 말고.” 만두는 얼른, “아저씨 천천히 드세요. 사식 이모 천천히 드세요!” 말을 마치자마자 눈 늑대를 데리고 달려나갔다.홍엽이 미소를 머금고 만두를 보더니 잠시 생각에 잠기며, “아이들을 잘 가르치셨네요.”“기본 예의니까요!” 원경릉이 국을 먹고 고개를 들어 홍엽의 그릇을 보니 밥은 거의 다 먹었는데 밥만 먹고 요리는 먹지 않았다. “요리가 입에 맞지 않나요?”홍엽이 고개를 흔들고, “아뇨, 몇 번 먹었어요.”“좀 더 드세요. 이렇게 많은데.” 원경릉은 홍엽이 주문한 요리가 사실 굉장히 입에 맞아서 많이 먹었고 사식이도 좋아했다. 그런데 정작 홍엽 본인은 별로 안 먹고 거진 남겼다.“좀 더 드세요.” 홍엽이 원경릉에게, “잘 드시던데 좀 더 드세요.”원경릉이 어이 없이 웃으며, “제가 아무리 잘 먹어도 이렇게 많이는 못 먹어요, 배 불러요.”홍엽이 그제서야 젓가락을 들고, “배가 부르다니 그럼 제가 더 먹죠.”이건 원경릉을 놀리는 말로 마치 원경릉이 성격이 더러워서 홍엽을 못 먹게 하다가 남은 걸 먹이는 것처럼 보였다. 홍엽이 계속 먹는데 먹는 모습이 조금도 복스
손님들이 하나둘씩 떠나자, 경천 황제는 서둘러 궁으로 돌아가 푸른 비단옷으로 갈아입었다.옅은 청색 옷자락에, 소매 끝에는 난초꽃이 수놓아져 있었고, 나머지 부분은 어두운 구름 문양으로 수놓아져 있었다. 이 옷감은 북당에서 온 것이었다."폐하, 꼬마 은인께서 궁문에 도착하셨다고 합니다."삼 태감이 와서 보고했다."좋소."그는 거울을 바라보며 다시 한번 깊은숨을 내쉬었다."택수운천으로 가겠네."택수운천은 그가 즉위한 후, 궁궐 안에 지은 새 궁전으로, 세 층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궁전 옆에는 거월통천각이 있었는데, 이는 량주성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다.거월통천각 안에 있으면 마치 손바닥에 달을 담을 수 있을정도로 웅장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거월통천각에서 멀게는 약도성과 량주가 인접한 산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그녀가 생각날 때면, 늘 거월통천각의 가장 높은 층으로 올라가 풍경을 멀리 바라보곤 했다."진이야, 너는 누군가를 진심으로 좋아해 본 적이 있느냐?"그가 준수한 옷차림으로 난간에 기대어 먼 곳을 바라보며 물었다. 바람이 서서히 불며 청색 옷자락이 휘날리자, 옷자락의 네 끝에 박힌 고급스러운 야명주가 그의 선명하고 잘생긴 얼굴을 비추었다.그때, 저 멀리서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궁 시위를 따라, 아치과 복도를 지나 거월통천각으로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그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젊은 금군 통령 진이가 그의 모습을 보고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그런 적 없습니다.""사모의 마음을 품어보거라. 떨리고 어찌할 바를 모르는 느낌만큼 좋은 것이 없다."그는 그녀를 멍하니 보며 말했다. 천천히 다가오는 탓에 그녀의 얼굴이 자세하게 보이지는 않았지만,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13세 전까지의 그의 인생에는 나라와 백성들 뿐이었지만, 13세 이후 그의 인새은 온통 그녀뿐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지금 그녀가 그의 곁으로 다가왔다!진이는 황제의 시선을 따라, 천천히 다가오는 세 명을 보며
안왕은 보책을 받아 든 순간, 갑자기 무엇인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지만, 정확히 어떤 점이 이상한지 말로 설명할 수 없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모든 일이 다 이상하게 느껴졌다.보책을 펼쳐 안에 적힌 이름을 본 순간 그는 드디어 이상한 점이 무엇인지 알아차리게 되었다.그러고는 고개를 들어 굳어진 표정으로 경천 황제를 바라보았다.경천 황제는 얼굴에 미소를 띠며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었다. “조사를 통해 드디어 그녀의 이름을 알게 되었소. 그녀의 이름은 우문택란이오. 금나라 황후의 이름은 우문택란이네. 난 반드시 그녀를 찾아낼 것이오. 만약 그녀가 황후가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황후의 자리는 그녀를 위해 계속 비워둘 것이네.”위왕은 온몸에 식은땀을 흐르는 탓에 두 손을 급히 움켜잡았다. 방금 황제가 보책을 그의 손에 올리지 않아, 그가 받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지 않았으면, 정말 다섯째에게 죽임을 당할 수도 있었다!안왕은 어두워진 안색으로 자리에서 물러나 이를 악물고 낮은 소리로 위왕에게 말했다.“방금까지도 어린 황제에게 어리석다고 했건만. 이렇게 계책에 능하고 이따위 교묘한 계책으로 우리 형제를 그와 같은 편에 서게 만들다니...!”위왕은 또 한 걸음 물러서며 아무런 표정 없이 말했다.“네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구나. 방금 술을 두 잔 마셔 조금 취한 터라,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구나. 아니, 지금 들고 있는 그건 무엇이냐?”안왕은 단단한 그의 팔을 비틀어 버리고 싶을 정도로 분노했다.하지만 이 상황 속에서 연회는 계속되었고, 사람들의 감정은 점점 고조되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갑자기 누군가가 북당 황제의 작은 공주도 우문택란이라는 말을 꺼냈다.그 말에 다들 그 당시 금나라 황제를 구한 사람이 북당의 작은 공주가 맞는지 추측하기 시작했다.정말 북당 공주가 맞는다면, 금나라 황제도 참 배짱이 큰 것이다. 사실상 북당 황실이 금나라 황제를 구했다고 선언하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만약
경천은 위왕의 말을 듣자, 마치 마음속 큰 돌덩이가 내려간 듯 후련해 보였다. 그는 그러고는 궁인에게 술을 올리게 해 술잔을 여러 차례 돌린 후, 아래를 둘러보며 말했다.“오늘 여러분께 이야기를 하나 들려드리겠소. 이 이야기를 듣고 나면 오늘 정혼연이 어찌 열리게 되었는지 알게 될 것이오.”그러자 모두가 이야기를 들려주겠다는 말에 당황을 금치 못하며 서로의 얼굴을 쳐다봤다. 정혼연이든 혼례든, 이런 자리에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은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이때, 위왕이 안왕의 귀에 대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다섯째에게 서신을 보내야겠다. 금나라에서 실권을 쥐고 있는 자가 황제가 아닐 수도 있다. 진국왕이 아직 살아 있고, 이 황제가 꼭두각시일지도 모른다.”“맞소. 확실히 조금 병신같아 보이네.”안왕도 동의했다.참고로 ‘병신같다’는 표현은 안왕이 조카에게서 배운 단어였다.“이 이야기는 3년 전쯤에 있었던 일이오.”이내 경천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의 목소리에는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힘이 담겨져 있었다.“당시 금나라는 진국왕이 집권하고 있었는데, 그는 나를 대신해 금나라의 군주가 되려 했소. 이 사실은 여러분도 알고 있을 것이오. 그때 난 진국왕과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었소. 진국왕이 왕위를 빼앗으려 나를 죽이려는 음모를 꾸민다고 하기에, 나도 어쩔 수 없이 반격에 나섰는데, 그 과정에 심각한 상처를 입었소. 그때 나를 구해준 이가 바로 란이라는 소녀이오. 만약 그녀가 없었다면 난 이미 죽은 목숨이었을 것이오. 그 당시 나는 란이의 정체도 몰랐고, 그저 약도성 사람이라는 것만 알았을 뿐, 그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소. 상처를 치료하며 그녀와 며칠을 함께 보냈고, 황권을 되찾으면 그녀를 부인으로 맞이하겠다고 약속했네. 하지만 그녀가 나를 구했다는 사실이 진국왕에게 알려졌고, 진국왕이 사람을 보내 그녀의 집에 불을 질렀소. 그리고 그곳에서 시신이 발견되었소.”모두가 진국왕이 불을 질렀다는 말에 멈칫했다.금나라 황제가 이렇게 비극적인 황권
한편, 안왕과 위왕은 이미 명월전에 도착했다. 두 사람은 부하들과 함께 말을 타고 달려왔기에 피곤하지는 않았지만, 몸 전체가 먼지투성이였다.하지만 오자마자, 쉬지도 못하고 바로 궁에 들어가라는 통보를 받았다. 정혼 연회가 예정보다 앞당겨 열리게 되었다고 했다.그들은 의아해하며 금나라가 막무가내라고 투덜거렸다. 처음에는 혼례라더니, 이제는 정혼식이라 하고, 심지어 약속했던 날도 지키지 않고 앞당겼으니 말이다.혼사라는 중대사가 이렇게 어린아이 장난처럼 진행될 수 있단 말인가?하지만 신부가 북당 사람이니, 그들은 신부의 친정과도 마찬가지였기에 금나라의 일정을 따르며, 금나라의 계획을 지지하는 것이 맞았다. 다른 나라 사절들이 함께 있었기에, 그들은 무관의 신분으로도 가능한 한 많은 사람과 친구를 사귀고 주변 무역 문제를 논의했다.이 부분에 대해서는 오래전에 다섯째가 특별히 당부한 적이 있었다. 그는 비공식적인 자리에서 다른 나라의 사신을 만나면 국사를 논하지 않더라도, 상업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라고 말했었다. 장사는 대화로 시작되는 일이니, 이야기를 많이 나누다 보면 결국 성사될 것이라고 말이다. 그들은 비록 처음에 다섯째의 이런 태도가 약간 뻔뻔하다고 느꼈었지만, 지난 10여년간 나라 경제가 눈에 띄게 번영했다는 사실을 차마 부인할 수는 없었다.다섯째의 말처럼 경제를 앞서게 만들어 백성들의 생활 수준을 향상한 덕분에, 돈이 끊임없이 북당으로 흘러 들어오고 있었기 때문이다.그렇게 그들이 다른 나라 신하와 열심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황제가 온다는 소식이 들려왔다.안왕과 위왕은 금나라의 황제에 대해 호기심이 가득했다. 이 젊은 황제는 올해 열여덟도 되지 않는 어린 나이라 들었다. 어린 나이에 유명한 진국왕을 몰락시켰으니, 얼마나 대단한 결단력과 꾀를 가졌을까?내시의 우렁찬 소리와 함께, 밝은 황금빛 용포를 입은 젊은 황제가 시위에게 둘러싸여 등장했다.혼례복이 아닌 용포를 입고 있는 것으로 보아, 역시나 혼례를 올리는 것은 아닌 듯했다
세 사람은 화려하게 차려입었다. 그 중, 택란은 베일을 쓴 채 궁에서 준비한 마차에 올랐다.때마침 불이 하나둘씩 밝혀질 시간이라, 거리는 무척 떠들썩했다. 금나라 수도의 번화함은 약도성이 비교할 수 없는 정도였다. 수도임에도 불구하고 통행금지가 없어, 백성들이 밤늦게까지 활동하고 있었기 때문이다.택란은 마차의 가림막을 살짝 들어 올려 거리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거리에는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 장사에 열중하는 상인들, 주루나 주막으로 손님을 맞이하는 상인들로 북적이고 있었다.이런 활기 넘치는 모습은 그녀의 마음을 따뜻하게 했다.그러고는 순간 어린 황제를 본 지 오래되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3년이나 지났으니, 지금은 얼마나 어떻게 달라졌을지 궁금해졌다. 그가 자신을 알아보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3년 사이에 자신도 많은 변화를 겪었으니 말이다. 키도 훤칠해졌고 이제 얼굴도 아이 같은 모습이 아닌 한층 성숙하고 침착해진 모습을 하고 있었다. 약도성이 지난 몇 년간 겪어온 일들이 많았기에 당연히 성숙해질 수밖에 없었다.한편, 금나라 황궁에서는 이미 정혼 연회의 준비를 마쳤으나, 중요한 두 사람이 아직 도착하지 않아 기다리고 있었다. 그 두 사람은 바로 안왕과 위왕이었다.북당의 두 친왕이 도착해야만 연회를 시작할 수 있었다.한편, 경천 황제는 내내 택란을 만나고 싶어 했다.지난 3년 동안, 그는 그녀와 재회할 순간만을 간절히 기다렸다.3년간 간절히 바랐던 그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에 그는 들떴지만, 첫 만남은 너무도 중요했다.그는 서두르지 않고 차분히 준비된 상태에서 그녀를 만나고 싶었다.그리고 지금 자신의 감정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조차 모르는 상태였다. 그것이 사랑인지 아닌지도 정의할 수 없었다. 그저 그녀가 자신의 눈앞에 생생히 서 있는 모습을 보고 싶을 뿐이었다.그는 사실 가장 힘들었던 시절에 조정을 되찾아 그녀와 혼사를 올리겠다고 다짐했던 적이 있었다.물론 지금 그녀는 아직 어리기에, 혼담을 논하기엔 이르지만
어머니는 아버지처럼 아쉬워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아버지보다 생각이 훨씬 개방적이었고, 두 사람이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가장 큰 행복이라 여겼기에 의식 자체를 그리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그래도 아버지의 아쉬움을 덜어주기 위해 현대에서 한 번, 즉위 후에 또 한 번 의식을 치렀다.주 아가씨는 객사로 돌아오자마자, 객사 일꾼에게 소식을 물었다.그러자 일꾼은 황제가 곧 혼례를 올린다는 말을 듣고는 잠시 멈칫했다.“혼례요? 정혼 아니었습니까?”“정혼? 정혼이라니? 그럼 이미 혼사를 올릴 나이가 되었는데, 어찌 바로 혼례를 하지 않다는 것이냐?”“그건 모르겠습니다. 저희는 정혼한다는 소문만 들었습니다.”“미래의 황후가 북당 사람이 맞느냐?”일꾼이 말했다.“예. 북당 출신의 아가씨라고 합니다. 게다가 황제의 생명의 은인이라고 들었습니다.“택란은 이 말을 듣고 고개를 저으며 경천이 어리석다고 생각했다. 그가 정말 은인의 언니라는 말을 믿다니 말이다.설사 그렇다고 해도 굳이 그녀와 혼례 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혼사를 어찌 장난처럼 다룰 수 있단 말인가?택란은 경천 황제에게 크게 실망했다. 그저 정치적인 판단에서만큼은 어리석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택란은 원래 이틀 정도만 량주를 둘러본 뒤 바로 궁으로 들어가 알현할 생각이었지만, 아직 혼례 날짜가 다가오지 않았으니 며칠 더 머물며 시간을 보냈다. 궁으로 들어가 정체를 드러낼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그리고 그녀가 생명의 은인인 것을 알아차리면, 정혼식을 진행할지 말지 애매해질 것이기에, 택란은 며칠 동안 객사에 머물며 량주의 풍습과 문화를 살펴보는 한편, 참고할 만한 것이 있는지 살펴보기로 했다.그렇게 살펴보던 중, 주 아가씨가 정보를 알아보러 나갔다가 안왕과 위왕이 왔다는 소식을 들었다.며칠 동안 다른 나라 사절들은 계속 장관에 묵고 있었는데, 택란은 여전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고 했다. 그녀는 삼촌들이 왔다는 소식을 듣고 저녁 무렵 장관으로 갔다.그런데 도착하고 나서야 그들이 이미 황
량주는 금나라의 수도가 된 이후 지난 2년간 크게 발전했다. 또한,금나라와 북당이 우호적인 교류를 시작하면서, 북당 변방 도성의 백성들도 장사를 위해 많이 찾아왔다.이전에 택란도 자신의 목숨을 바치기 위해 금나라에 왔었다. 하지만 그때의 량주는 지금처럼 북당 사람들이 많지는 않았다. 그래서 택란은 객사에 머문 뒤 주 아가씨와 냉명여를 데리고 거리로 나가 량주의 풍습과 문화를 살폈다.여기도 어쨌든 금나라의 수도 아닌가!진국왕은 물러나기 전까지 나라를 잘 다스렸고, 특히 발전에 많은 힘을 기울였다. 하지만 야망이 지나친 탓에 늘 약도성을 되찾겠다고 욕심을 부렸다.그리고 동시에 북막을 두려워하기도 했다.경천이 즉위한 후, 광산 자원 개발 외에도, 그는 농경지와 산지를 개간하려고 노력했다. 금나라의 서북부에는 농사에 적합한 땅이 있었지만, 사람이 드물었다. 그래서 그는 북당의 다른 도성을 본받아 사람들을 개간지로 보내고 그들에게 이익을 나누어주었다.나라가 상승세일 때, 그 분위기는 눈에 띄기 마련이다. 백성의 긍정적인 에너지는 숨길 수 없는 법이었다.택란은 경천이 황제로서 매우 적합하다고 느꼈기에, 그가 이끄는 금나라는 분명 빠르게 발전할 것이라 생각했다. 발전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은 정말 좋은 일이기에,그가 광산을 함께 개발하자는 제안에 동의할 가능성이 높았다.택란은 이내 자신감을 얻었다. 궁에 들어가 알현하는 것을 서두르지 않고, 량주 백성들이 북당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기로 했다. 과거, 약도성과 량주의 관계는 다소 안 좋았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금나라가 약도성에 사람을 침투시켜 많은 폭동을 일으켰기에, 약도성 백성들도 그들을 매우 싫어했다.그렇기에 지난 2년간의 교류를 통해, 택란은 그들의 원한이 천천히 사라지기만을 바란 것이었다.이제 북당 쪽은 문제가 없으니, 량주 백성들의 생각을 확인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기에, 택란은 물건을 사면서 점포 주인과 상인들에게 북당 약도성에 대한 생각을 물어보곤 했다.그 중, 다
원경릉은 뒤에서 계산을 하고 있었는데, 그들의 대화를 듣고는 웃음을 터뜨렸다.그러고는 사식이가 정말 좋은 남자를 만난 것 같다는 생각을 다시금 했다. 서일이 비록 평범한 사람이긴 하지만, 그의 마음과 눈에는 오직 사식이만 있었다.그야말로 진실한 남편이다.물건을 산 뒤, 서일은 계속 계산기를 두드리며, 여기서 쓴 금액을 북당으로 돌아가 황후에게 얼마만큼의 금으로 바꿔 드려야 할지 열심히 계산했다.계산을 마친 후, 지갑형편이 다소 여유롭다고 느껴지자, 그는 귀걸이와 금팔찌까지 더 구매했다. 이곳의 디자인은 북당보다 훨씬 아름다웠다.한편, 금나라에서는 완안경천이 혼사를 준비하고 있었고, 이웃 나라 사신들도 연이어 축하해주기 위해 도착했다.택란은 냉명여와 주 아가씨를 데리고 량주로 갔는데, 그들이 량주성에 도착하자마자, 누군가가 경천 황제에게 보고했다."폐하, 초상화 속의 아가씨가 이미 도착하여 객사에 머물고 있습니다. 근처에서 감시 중이며, 가까이 다가가 방해하지는 않았습니다."경천 황제는 어서방에 앉아 이 보고를 들으며 눈매를 약간 올리고는, 온화하고 잘생긴 얼굴에 빛을 발했다. "그녀가 왔구나. 마침내 그녀가 왔다!""폐하, 바로 부를까요?""아니. 사람을 보내 그녀를 계속 감시하도록 하거라. 절대 그녀를 놓쳐서는 안 된다."경천 황제 또한 손끝이 떨릴 정도로 감격했다. 수많은 밤, 그는 초상화를 보며 멍하니 그녀가 살아있기를 바라고 또 바랬기 때문이다.그 초상화는 그가 직접 그린 것이었다. 원래 그는 서화에 강하지 않았다. 하지만 화가에게 아무리 설명해도 화가의 그림이 그녀와 닮지 않아, 직접 그림을 배우기 시작한 것이었다.그렇게 늘 마음속에 품고 있던 그녀를 자신의 그림으로 완성했다.그는 그녀가 죽었다고 생각하고, 사람을 보내 북당에서 한 부녀를 데려왔다. 그 중 딸이 자신이 란이의 언니라고 주장했지만, 그녀의 얼굴은 택란과 닮은 점이 조금도 없었다. 심지어 분위기도 전혀 닮지 않았다.친자매가 어찌 조금도 비슷한 부분이 없다는
원경릉은 병실로 돌아간 뒤, 서일을 따로 불러내서 물었다.당시에는 상황이 급박했던 탓에 서일이 어떻게 그 약을 가져왔는지, 약상자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에 대해 전혀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다."두 번째 약은 어디서 꺼낸 것이냐?"원경릉이 약상자를 열며 묻자, 서일이 약상자 두 번째 칸을 가리켰다."이쪽이였습니다. 그 당시 약이 이미 준비되어 있었고, 주삿바늘에 뚜껑도 씌워져 있었습니다."원경릉은 약을 세 번째 칸에 넣었다는 것을 떠올렸다. 세 번째 칸은 자동으로 수축하는 구조여서, 사용하지 않는 약을 넣고 약상자를 닫는 순간 아래로 내려가게 되어 있었다.반면 두 번째 칸은 평소 사용하는 약으로 꽉 차 있어, 추가로 주사를 넣을 공간조차 없었다.게다가 약상자를 10년 넘게 사용해 온 그녀였기에, 약을 어디에 두는지 몸이 기억할 정도로 익숙했다. 그녀가 약을 잘못 넣었을 가능성은 없다는 뜻이다. 설령 잘못 넣었다 하더라도, 약상자는 위험성을 자동으로 감지하는 기능이 있어, 그 약이 서일 앞에 나타날 리가 없었다.서일은 원경릉의 심각한 표정을 보고, 우문호의 병세가 다시 악화한 줄로 착각하며 구석에 쪼그려 앉아 얼굴을 감싸고 울기 시작했다. 그동안 참고 또 참아왔지만, 이제는 도저히 견딜수가 없었다. 그가 울기 시작하자, 원경릉이 깜짝 놀라 물었다."왜 그래? 설마 또 무슨 약이라도 먹인 것이냐?""아닙니다..."서일은 빨개진 눈에 머리도 헝클어진 채로 원경릉을 바라보며 처량하게 말했다."마마, 폐하께서 아직 낫지 않은 것입니까? 혹시 제가 폐하를 죽게 만든 것입니까?"원경릉은 웃음을 터뜨리며, 서일의 반응 속도가 정말로 느리다고 생각했다."그런 소리 하지 말거라. 그런 일 없다. 그저 사실을 알아보는 것뿐이니, 괜히 걱정하지 말거라. 다섯째도 아주 좋아졌다. 단지 조금 더 검사가 필요할 뿐이다."서일을 안심시키기 위해 그녀는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서일은 우문호에게 가서 울며 모든 것을 털어놓았을 것이 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