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빠가 그랬다고?진북후가, “마마와 열째 황자를 연루 시킨 것이 두렵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전 두렵지 않아요. 고작해야 제 목숨, 이 머리인데. 전하께서 역정내지 않으셔도 이미 죽어 마땅한 걸 압니다.”“돌아가서 잘 생각해 보세요. 도대체 그날 거기 있었던 사람이 누구였는지, 나리의 그 말을 듣고 호비 마마께 얘기하지 않고 아바마마께 알린 자는 어찌 됐든 찾아내야 합니다.”“찾아내야 지요. 그럼 내일 전하께서 먼저 입궐하셔서 저에 대해 어전에서 몇 마디 해 주실 수 있으실 까요?” 한때 황제 앞에서 장인이라고 으스대던 진북후가 지금 딸과 열째 황자가 연루될 까봐 전전긍긍하고 있다.“그럴 필요 없습니다. 아바마마께서는 나리를 믿으실 게 틀림없어요. 하지만 반드시 정확히 물어보실 겁니다.” 진북후에게 그런 야심이 없다는 걸 아바마마는 우문호보다 잘 알고 있다. 우문호는 조금 있다가, “하지만 폐하를 대하기 전에 사람을 호비 마마께 보내 이 일을 알리세요. 마마께서 진상을 모르시면 내일 나리가 궁으로 소환되어 추궁을 당하면 마마께서는 나리가 무고하다고 생각하고 소동을 일으키실 수도 있으니까요.”“지금 성지가 없으면 저도 궁에 들어갈 수 없는데 태자비 마마께서 저를 대신해 한 번 다녀와 주실 수 있으실 까요?” 진북후가 애원했다.우문호는 호비의 성정이 맹렬한 것을 알고 만약 아무것도 모르면 나중에 정말 소동이 일어날 수 있으므로, “그럼 알겠습니다. 사람을 시켜 태자비에게 얘기하죠. 급히 궁에 가서 호비 마마를 만나 뵈라고.”“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전하!” 진북후는 자신이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되었는지 모르겠다.우문호가 눈살을 찌푸리며 진북후의 이런 모습을 보고 패기가 넘치던 대장군의 위용은 어디 갔나 싶다. 경성은 역시 무장이 있을 곳이 못 된다. 조심성이 생기고 트집 잡히지 않도록 주의하는 것을 배우지만 패기가 없어진다.하지만 방법이 없다. 문관들이 가장 눈에 거슬려 하는 것이 무장들의 나쁜 습관이 바로 이것으로 특히 무장이 기고만장해서 위
평남왕명원제는 다음날 진북후를 궁으로 불러 우문호가 말한 대로 말로 몇 마디 경고할 뿐 어떤 처벌도 내리지 않아 장인의 체면을 그래도 살려줬다.진북후가 궁을 떠나며 점점 경성에서 지내기가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 참에 우문호를 찾아가 외부로 부임을 받아 다시 군으로 돌아가기를 희망했다.우문호는 마침 일손을 키우려던 때라 진북후를 강북부로 일단 보내서 잠시 셋째 위왕의 병마를 맡도록 했다.진북후가 경성을 떠나 강북부로 가는 게 우문호에게 안심이 되는 것이 진북후가 있는 곳은 자연스럽게 장벽이 되어 강북부와 북막의 국경선을 지켜줄 것이다.그리고 셋째가 상처를 치료하고 돌아오면 우문호는 다른 생각이 더 있다.이 때 냉정언이 와서 알리기를 폐하가 첩보를 받았는데 평남왕부에 선비족 사람이 출입을 하고 평남왕이 선비 사람 몇 명을 모아서 집으로 들여 시위로 삼았다는 것이다.평남왕은 헌제의 황태손(皇太孫)으로 나중에 휘종제가 등극한 뒤 그를 성태손(聖太孫)으로 봉했다. 태상황이 등극한 뒤에는 평남왕으로 봉해 평남을 봉지로 하사하고 스스로 번왕(藩王)이 되어 그동안 풍족한 생활을 하며 조정일에 관여하지 않아 왔다.평남왕은 이미 예순이 넘은 나이로 평생 혼인하지 않았으며, 슬하에 아들을 하나 양자로 들여 경성에서는 거의 돌아오지 않았다. 평남왕을 선비와 엮어보려고 해도 우문호는 결코 믿을 리 없는 것이 그가 정말 선비와 교분이 있어도 다른 속셈이 있을 리 없기 때문이다.우문호는 누군가 평남왕을 들어 괜히 크게 떠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평남왕 우문극(宇文极)과 안풍친왕 부부가 가깝게 왕래하기 때문이다. 안풍친왕은 헌제 때의 대장군으로 황태자에 봉해진 적이 있으나 일신의 영달을 버리고 조정을 떠났다. 그 원인은 아무도 모르지만 밖에서 추측하기로는 태상황과 싸워서 이기지 못해 달아난 것으로 원래는 제위에 야심을 품었다고 했다.하지만 그건 소문일 뿐 진상이 어떤 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그를 계속 끌어들이는 것이 보이지 않는 감춰진 적수는 물을 흐려
홍엽이 따라 와?당연히 우문호의 뒤에는 주재상과 소요공이 있고 그 최고봉엔 태상황이 지탱하고 있으므로 조직 결정은 신속했다.우문호는 여전히 경조부를 맡으나 지금은 제왕이 이미 제 몫으로 자라서 우문호는 이름만 걸어 놓고 동궁을 전전해 우문호의 조직은 동궁의 작은 조정과 마찬가지였다.원경릉은 한가한 이 기회에 만두를 데리고 경호에 다녀오고 싶었다.지금 우문호는 움직일 수 없지만 원경릉은 계속 경호의 비밀에 미련이 남았기 때문이다. 사식이도 같이 가고 만두도 데리고 갈 거라 만두 늑대는 분명 따라 올 것으로 가는 길이 위험할 걱정은 없다.하지만 마차가 막 경성을 떠나는데 뒤에서 홍엽과 못난이가 말을 달려 쫓아왔다.사식이가 상황을 보고 차갑게 한 마디 하는데, 나쁜 느낌이 잔재가 여전히 남아있다고 했다.홍엽은 경성에서 거의 투명인간처럼 사람들 앞에 거의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다수의 경우 사람들은 홍엽을 잊고 있다가 문득 허를 찔렸다.초봄 날씨는 아직 추워서 원경릉은 솜을 두른 옷을 입고 있는데, 홍엽은 붉은 옷에서 흰 옷으로 갈아입고 가볍게 겉옷 하나에 바람을 맞으며 말을 달리고 있었다. 쫙 빠진 몸매가 여실히 드러나는 게 전형적인 ‘얼죽아(한겨울 얼어 죽어도 폼을 위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심)’다.중간에 여관에 식사를 하러 들어가자 홍엽도 자연스럽게 따라 들어와 원경릉에게, “사실 이번에 경호에 가면 경호가 아직 얼어 있을 수도 있겠어요.”“그럴 리 없습니다. 계속 경호에 사람을 보내 확인하고 있으니까요.” 원경릉은 홍엽이 포기하지 않을 것을 알고 따라오든 말든 상대하지 않기로 헀다.“경호를 통해 분명 그쪽으로 갈 수 있죠?” 홍엽이 물었다.“꼭 그런 건 아니 예요. 경호의 비밀은 저도 지금까지 풀지 못했으니까요.”“경호에서 물건을 건지는 걸 봤는데 집에서 보내 온 건 가요?”원경릉이 홍엽을 보고 웃는 건지 아닌지, “계속 사람을 보내 경호를 감시했죠? 그럼 방금 얼음 얘기는……”“그렇게 말해야 제가 사람을 그쪽에 안 보낸 것처럼 보
홍엽과 못난이원경릉이 홍엽을 내버려두는 건 신상을 대략 이해하고 자신에게 그런 쪽 의도가 없음을 깊이 신뢰해서, 자신이 홍엽 어머니와 어느 정도 비슷하게 생겼기 때문이란 걸 알아서다.주진이 얘기한 것처럼 홍엽의 일생은 어린 시절에 대한 치유의 과정이다.홍엽이 태자 일행을 데리고 남강 산에 들어간 일, 그 마음은 기억해 둘만 하다.밥 먹는 동안 홍엽은 내내 말이 없고 원경릉에게 요리를 집어주는 일도 없어서 사식이는 그 점이 만족스러웠다. 홍엽이 주제넘는 행동을 할 까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기 때문이다.만두는 심심해서 좀이 쑤셨다. 이번 외출에 자기만 있고 동생들이 없어서 인데, 전에는 늘 동생들 때문에 시끄럽다고 짜증이었지만 막상 동생들이 없으니 이게 또 적응이 안 된다. “엄마, 다 먹었어요!” 만두가 젓가락을 던졌다.“그럼 늑대 데리고 나가서 놀아 주렴, 멀리 가지 말고.” 만두는 얼른, “아저씨 천천히 드세요. 사식 이모 천천히 드세요!” 말을 마치자마자 눈 늑대를 데리고 달려나갔다.홍엽이 미소를 머금고 만두를 보더니 잠시 생각에 잠기며, “아이들을 잘 가르치셨네요.”“기본 예의니까요!” 원경릉이 국을 먹고 고개를 들어 홍엽의 그릇을 보니 밥은 거의 다 먹었는데 밥만 먹고 요리는 먹지 않았다. “요리가 입에 맞지 않나요?”홍엽이 고개를 흔들고, “아뇨, 몇 번 먹었어요.”“좀 더 드세요. 이렇게 많은데.” 원경릉은 홍엽이 주문한 요리가 사실 굉장히 입에 맞아서 많이 먹었고 사식이도 좋아했다. 그런데 정작 홍엽 본인은 별로 안 먹고 거진 남겼다.“좀 더 드세요.” 홍엽이 원경릉에게, “잘 드시던데 좀 더 드세요.”원경릉이 어이 없이 웃으며, “제가 아무리 잘 먹어도 이렇게 많이는 못 먹어요, 배 불러요.”홍엽이 그제서야 젓가락을 들고, “배가 부르다니 그럼 제가 더 먹죠.”이건 원경릉을 놀리는 말로 마치 원경릉이 성격이 더러워서 홍엽을 못 먹게 하다가 남은 걸 먹이는 것처럼 보였다. 홍엽이 계속 먹는데 먹는 모습이 조금도 복스
원경릉을 죽이려는 못난이원경릉은 못난이의 손을 치우고 고개를 돌려 못난이의 얼굴을 봤다. 못난이 얼굴은 한 덩어리로 비틀려 있어 쭈글쭈글 주름 진 것이 아주 흉악하고, 세모난 눈에선 흉악한 빛을 쏘는 게 사람을 잡아먹을 것 같은 악의가 느껴진다.원경릉은 원인 모를 충격을 느꼈다.“못 들었어?” 못난이가 날카롭게 말했다.원경릉이 마음을 가다듬고 차갑게, “너네 공자를 과대평가 했구나!”못난이는 원경릉의 턱을 쥐고 벽으로 밀어붙이며 흉악한 눈빛으로, “공자를 헐뜯거나 무시하기만 해봐.”원경릉은 호흡이 곤란해서 손을 들어 못난이의 얼굴을 때리고 무릎을 찍어 못난이의 배를 때리려고 했으나, 원경릉의 하룻강아지 같은 무공으론 못난이 따귀를 때리는 게 고작으로 발을 들자 못난이가 한걸음 물러나 원경릉의 종아리를 세게 걷어차서 원경릉은 고통으로 눈물이 찔끔 나고 종아리 뼈가 부서진 느낌이다.이때 못난이 어깨에 검 한 자루가 닿는데 등뒤에서 조용히 사식이의 차가운 얼굴과 분노한 눈이 드러났다. “원 언니를 풀어줘!”못난이가 흥 하고 깔보며 원경릉을 풀어주고, “뭐 하는 것들이야!”사식이가 분노해서 따귀를 때리며, “넌 뭘 믿고 지랄이야?”못난이가 지기 싫어서 바로 받아 치고 사식이와 못난이가 싸우기 시작했다. 사식이는 이 참에 따끔한 맛을 보여주겠다고 생각했으나 못난이는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어서 맨손으로 사식이의 검을 상대로 결코 꿀리지 않았다.원경릉이 이리 나리에게 몇 초식을 배우긴 했지만 두 사람이 계속 싸우면 사식이가 못난이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는 건 알 수 있었다.마음이 급한데 이층에서 홍엽의 화난 일갈이 들렸다. “못난이, 물러서!”못난이는 마침 사식이를 궁지에 모는 순간이라 홍엽의 목소리를 듣고 내키지 않는다는 아쉬운 눈빛으로 물러서며, “공자 잘못했습니다!”홍엽이 옷자락을 휘날리며 내려와 잘생긴 얼굴이 분노로 가득한 채 못난이의 따귀를 때리더니, “누가 손대랬어?”못난이는 사납고 고집스런 눈빛을 거두고 따귀를 맞고도 아무 변명도
다리를 다친 원경릉홍엽이 원경릉을 보고 긴장한 눈빛으로, “왜요? 상처 심각해요?”원경릉이 두 걸음을 걸어보려 했으나 여전히 욱신거리는 통증이 분명 골절이다. “괜찮아요, 저 약 있어요. 가서 약 바르면 돼요.”홍엽이 손을 내밀어 원경릉을 부축하려 하자 원경릉이 담담하게, “필요 없어요. 사식이가 부축해 줄 겁니다. 공자는 얼른 쉬세요 내일 각자 길을 떠나죠.”홍엽은 뻗은 손이 무안해서 천천히 거둬들였다. 사식이가 부축해서 가는 걸 보는데 발자국 소리가 통증이 심한 게 분명하다. 홍엽은 원경릉의 눈가에 눈물이 반짝이는 것을 묵묵히 보고 있는데 본 적이 없는 표정이다.방으로 돌아가 사식이 도움으로 옷을 올려보니 종아리가 부었고 사식이가 손으로 누르자 원경릉은 아파서 견디기 힘들다, “진짜 뼈가 부러진 거 같아.”만두가 달려와서, “엄마 누가 때렸어? 내가 나설 게.”“괜찮아 놀러가.” 만두가 ‘흠’ 하더니 눈 늑대와 나갔다.사식이가 분개하며, “못난이 년이, 못생긴 게 마음도 못돼 쳐 먹어서 이렇게 심한 짓을, 홍엽은 저런 사람을 곁에 데리고 다니다니 우리한테 좋을 게 하나도 없어요. 못난이 무공이 그렇게 뛰어난 게 앞으로 정말 왕래를 하지 말아야지, 만약 태자 전하께서 아시면 분명 가슴 아파 하실 걸요.”원경릉은 다리에 약을 뿌리자 잠시 진통효과가 있지만 상처가 이러니 경호에 가는 건 어렵겠다.원경릉은 확 열이 받았다. ‘못난이는 자신과 무슨 불구대천지 원수를 졌다고? 이러는 건데?’“경호에 갈 때 네가 날 부축해 줘야 할 것 같아.”“언니 업고 가도 돼요.” 사식이가 미간을 찡그리는데, 못난이에 대한 증오와 원경릉에 대한 가슴 아픔이 교차했다.원경릉이 약을 뿌린 후 붕대로 칭칭 감고 사식이 도움을 받아 누운 뒤 다리를 높이 올리고 진통소염제를 먹었다. 그리고 사식이에게 나가서 만두를 봐 달라고 하고 자기는 좀 쉬기로 했다.사식이가 안심이 안되는지, “못난이가 또 오면 어떻게 하죠?”“홍엽이 못난이를 지켜보고 있어. 정말 사고가
못난이의 정체원경릉은 그런 말 듣고 싶지 않아서 한숨을 쉬더니, “네, 절 위해 혼내 주시고 감사하네요. 저 쉬고 싶으니까 공자는 돌아가 주세요.”그런데 가지는 않고 오히려 의자를 가져와 침대 곁에 앉아, “곁에 있을 게요. 얘기하다 보면 안 아플 거예요.”원경릉은 화낼 힘도 없어서, “얘기하고 싶지 않고 쉬고 싶어요.”홍엽은 못 들은 척 막무가내로, “못난이는 당신을 알아요.”원경릉이 차갑게 웃으며, “네, 절 이렇게 상처를 입혔는데 모를 수가 없죠?”“아뇨,” 홍엽이 원경릉을 보고 살짝 고개를 흔들며, “그거 말고요. 다른 걸.”원경릉은 고통으로 힘겨워 하며, “무슨 뜻이죠? 얘기하세요.”홍엽이 그윽한 눈으로 속삭이며, “못난이는 고지의 동생이예요.”원경릉이 이 말을 듣고 순간 경악해서, “정말인가요? 고지는 무녀잖아요?”“무녀도 부모형제는 있죠. 온 가족이 자랑스러워 하는 고지가 위왕비 손에 당했고, 못난이는 그 원흉이 당신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계속 당신에게 복수하고 싶어하는 거죠.”원경릉은 전신에 소름이 쫙 끼쳤다. ‘맙소사, 어쩐지 못난이가 자신을 그렇게 원한 맺힌 눈으로 보더라. 고지의 동생이었군. 자기에게도 이정도인데 남강 북쪽에서 정화를 봤을 때는 어째서 정화를 죽이려고 하지 않았지?’홍엽은 마치 원경릉의 마음을 읽기라도 하는 듯, “맞아요. 못난이는 정화를 죽이고 싶어했어요. 그래서 내가 당신들을 데리고 무당지대에 들어가는 걸 막으려고 했던 거죠. 정화군주를 아주 증오했으니까.”이 화제는 정말 진통 효과가 있었다. 원경릉은 억지로 몸을 일으켰으나 다리가 매달려 있어 일어나는 게 더 힘들어서 힘없이 다시 눕더니, “공자, 못난이가 만약 나와 정화에게 해코지를 한다면 우리는 못난이를 가만두지 않을 겁니다. 공자가 말리는 게 최선일 것 같네요.”“못난이는 당분간 제 얘기를 들을 겁니다.”“당분간? 그 말은 언젠가 당신 말을 듣지 않는 때가 있다는 뜻인가요?” 원경릉은 점점 못난이가 위험하는 생각이 들었다.홍엽이 담담
홍엽의 사고방식원경릉과 홍엽이 처음 이렇게 심도 깊게 얘기하는 것으로 홍엽의 말에 원경릉은 경악해 안색이 확 바뀌더니, “아뇨, 제가 사람을 구한 건 그들이 살기를 바래서 지 그들이 언제든 나를 위해 목숨을 바치게 하려는 게 아니 예요.”“같은 말이잖아요. 그들이 지금 살아있기를 바라지만, 당신을 위해 목숨을 버릴 필요가 있을 때 그들이 싫다고 하면 당신 화 안나요?”원경릉이 약간 흥분해서, “제가 왜 화가 나요? 그건 그 사람들 목숨인데.”“하지만 당신이 구해주지 않았으면 그들은 벌써 죽었잖아요. 문둥산의 그 사람들은 당신이 아니었으면 벌써 죽었겠죠? 당신이 나타나서 그 사람들의 생명이 연장된 거예요, 그들에게 지금 당장 죽으라고 해도 그들은 당신에게 절해야 한다고요.”원경릉은 전혀 모르는 사람을 보듯 홍엽을 보며 주진이 말이 생각났다. 홍엽의 본심은 나쁘지 않다고, 하지만 주진은 홍엽을 어떤 부분 잘못 알고 있다.이건 절대로 정상적인 사람의 사고방식이 아니다. ‘누군가 자신을 구해주면 구해준 사람에게 목숨을 바치쳐야 생각이 어떻게 멀쩡할 수가 있어?’“내 말에 동의하지 않나요?” 홍엽의 심오한 눈빛에 한 줄기 불쾌함이 덮여 있다.“당신 말에 동의하지 않아요. 제가 사람을 구한 건, 그 사람이 나중에 나에게 보답하라 거나 나를 위해 목숨을 바치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 예요.”홍엽이 바로 반박하며, “당신이 의사라는 신분이라서 그런 건가요? 원숭이가 그랬어요, 의사는 사람을 구하는 게 사명이라고. 당신이 사람을 구하는 건 본분이라 그래서 사람들이 보답하는 걸 바라지 않는 거죠? 하지만 전 의사가 아니니까 이렇게 생각하는데 문제 없죠? 저처럼 이렇게 생각하는 게 맞아요. 사람은 자고로 은혜를 입으면 갚고, 원수를 지면 복수하는 법이니까.”마지막 말은 아주 단호했다.원경릉은 더 얘기를 해 나갈 수 없다는 생각에, “저 졸려요, 자고 싶네요. 공자는 돌아가시죠.”홍엽이 원경릉의 다리를 보고 천천히 일어나 안타까움이 가득한 눈으로, “그래요, 잘
잔뜩 긴장한 채로 앞으로 몸을 반쯤 내밀고 있었던 주 지부는 우렁찬 상대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중심을 잃은 듯 비틀거렸다. 그는 이내 팔을 뻗어 망루의 기둥을 붙잡으려 했지만, 허공에서 멈추고 말았고, 그대로 몸이 앞으로 쏠려 떨어져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가 말에서 빠르게 날아올라, 믿기 힘들 정도로 빠른 속도로 그에게 달려갔다. 상대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주 지부가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그를 안고 빙 돌아서 바닥에 착지했다.주 지부는 깜짝 놀라서 그만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를 구해준 사람은 반짝거리는 눈망울에, 품위 있는 모습의 젊고 잘생긴 사내였다. 주 지부는 그를 황제의 호위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거의 죽을 뻔한 고비를 넘겼기에, 안도의 한숨을 내쉴 새도 없이 그에게 예를 올렸다.“대인,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그때 말들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는데, 서일이 먼저 말에서 내려, 다급히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괜찮으십니까?”우문호도 매우 놀란 듯했다. 조금만 늦었다면, 주 지부는 정말 죽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가슴을 가볍게 두드리며 숨을 들이쉬었다.“괜찮다.”그러고는 주 지부를 보며 물었다.“자네는 누구요?”주 지부는 마차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보며, 누가 황제인지 추측했다.황제는 올해 마흔에 가까운 나이로 알려져 있었기에 위엄이 넘쳐 보일 것이었다. 그는 일행 중, 냉 수보와 홍엽을 만난 적 있었기에, 거친 모습을 한 이 인물은 아마도 호위로 추측된다. “묻지 않았소? 자네는 누구요? 어찌 죽으려고 하는 것이오?”서일은 그가 멍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자, 큰 소리로 다시 물었다.주 지부는 울 지경이었다. 냉 수보가 그를 보고 있으니, 예를 올려야 하지만, 황제도 자리에 있으니, 바로 냉 수보에게 예를 올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대체 누가 황제란 말인가?그는 황제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어, 결국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그러고는 그들에게만 들릴 정도로 낮은 목소
원경릉의 말은 그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고, 자리에 있던 관리들은 기쁨과 동시에 두려움에 휩싸였다. 이 대인은 땅에 엎드려 온몸을 바르르 떨고 있었다. 그는 살아생전에 자신이 황제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은 단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평소 차분하고 신중한 주 지부도, 그도 감정이 격해져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눈가에는 눈물이 가득했다.황후를 만난 것만으로도 큰 영광이라 생각했는데, 황제까지 오신다는 소식에 그의 마음은 흥분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원경릉은 평생을 경성에서 다섯째와 함께 있었기에, 그녀는 그저 그가 온다는 사실을 간단히 전했을 뿐이었는데 말이다. 그녀는 다들 걱정 없이 역병을 치료하고, 언제나 황제가 그들의 뒤를 든든히 지켜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들의 반응을 보니, 황제가 직접 오는 것이, 지방 관리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깨달았다.원경릉이 급히 말을 덧붙였다.“폐하게서는 그저 역병 때문에 온 것이니, 모두 각자 맡은 일에만 최선을 다하면 되네.”“예, 예, 마마의 명을 따르겠습니다.”주 지부가 눈물을 닦으며 답했다.그렇게 관아와 의서가 협력하여, 오계부를 조사하기 시작했다.원 할머니는 역병을 치료할 수 있는 처방을 몇 가지 내렸다. 경증 환자는 약차를 계속 마시고, 증상이 악화하거나 중증 환자는 그녀의 처방을 사용하도록 했다.전에 이미 근처 주부에 연락해 약을 보내라 명했고, 오계부에서 구비한 약까지 있으니, 이번 역병을 대처할 수 있었다.오계부 의서는 이번 역병을 과거의 역병과 동일하게 생각하고, 소홀히 한 것 외에는 준비가 충분했다.원경릉은 황제 일행이 저녁 무렵 오계부에 도착할 것이라 예상했다.주 지부는 원래 여러 관리와 함께 황제를 맞이할 예정이었지만, 원경릉이 이를 단호히 거부했다. 그녀는 황제가 미복 순행 중이니, 과하게 맞이하여 백성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했다.그 말에 주 지부는 당황했다.황제가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아무도 맞이하지 않는다니, 어찌 그럴 수 있다는 말인가?그러나 그는 황
약을 쓰자, 주 지부의 열이 단번에 내려갔다.열이 내려가니 정신이 맑아져, 그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는 애써 자리에서 일어나 황후마마에게 예를 올리겠다고 고집 피웠다.원경릉은 그에게 누워 있으라고 말한 후, 역병에 관해 이야기하며 주 지부에게 이를 중시할 것을 당부했다.주 지부는 이를 듣고 깜짝 놀라 말했다.“소신은 매일 의서에 사람을 보내, 역병의 상황을 보고받고 있사옵니다. 매일 보고된 상황은 그다지 심각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역병이 발생했지만, 작년과 비슷한 정도였고, 약재도 충분한데, 어찌 이렇게 심각해진 것입니까?”“매년 역병이 발생했으나, 대대적으로 퍼지지 않아,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네.”원경릉이 답했다.“의서의 이 대인을 불러, 상황을 확인하겠습니다.”주 지부는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어제 이미 그를 찾아가, 환자 수와 사망자 수를 조사하라 명했네. 하지만 그는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모를 것이네. 자네가 사람을 보내, 관아에 와서 상황을 보고하도록 하게.”“예!”주 지부는 곧바로 사람을 보냈다.푸른 옷을 입은 남자는 관아에서 일하는 관리였기에, 그는 반 시진도 채 되지 않아, 관아 내에서 병에 걸린 자가 얼마나 되는지 통계해냈다.관아 내에서 역병 증상을 보인 사람은 총 열여덟 명이었고, 그중 두 명은 병세가 심각하여 이미 집에서 쉬고 있는 상태였다. 주 지부는 관아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병에 걸린 줄 몰랐고, 관리의 보고를 들은 후, 큰 충격을 받았다.의서의 이 대인은 하루 종일 쉬지도 않고, 바삐 움직였다. 서관 대인이 직접 오셨으니, 어떻게든 시키는 일을 완성해내야 했다.그는 사실 역병이 그다지 심각하지 않고, 그저 작년과 비슷하다고 여겼었다.하지만 여러 지역과 의원을 돌아보고 나서야, 이번 역병이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처음엔 그저 서관 대인에게 보고만 하려고 했지만, 병세가 심각해지자 그도 조급해지기 시작했다.하지만 짧은 시간 안에 인원수를 통계하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도, 다섯째 일행은 여전히 도착하지 않았다.그래서 원경릉과 할머니는 다른 의관을 더 둘러보기로 하고, 몇 군데 더 돌아본 뒤 관아에도 갈 계획을 했다.그런데 한 의관에 들어서자마자, 푸른 옷을 입은 중년 남자가 다급히 뛰어오며 말을 걸었다. “수 의원, 대인께서 병세가 위중합니다. 어서 봐주셔야 합니다.”의원은 그 말을 듣자마자, 약상자를 집어 들고 다른 환자들을 그냥 남겨둔 채, 푸른 옷의 중년 남자와 함께 나가려 했다.원경릉이 그를 막아 세우며 말했다.“의관에 있는 환자들을 돌봐야 하지 않소? 우리 할머님께서도 의원이니, 지부 대인의 병은 할머님께서 봐 드릴 것이오.”푸른 옷의 사내는 초조한 듯 원경릉을 향해 소리쳤다.“말도 안 되는 소리 마시오!““대인의 병세가 급박한데, 혹여라도 지체되면 당신들이 책임질 수나 있겠소?”바로 그때, 원 할머니가 호패를 꺼내, 그의 눈앞에 들이밀며 단호하게 말했다.“길을 안내하거라!”조급한 표정을 짓던 푸른 옷의 사내는 호패를 보자마자 표정이 얼어붙었다. 이내 정신을 차린 그는 곧장 허리를 굽혀 예를 올리며 말했다.“서관 대인께서 오셨을 줄은 몰랐습니다. 무례를 범해 송구하옵니다.”“그만 사과하고 길 안내나 하시오.”원경릉이 말했다.“예, 예!”사내는 급히 물러서서, 예를 갖춰서 길을 가리켰다.“마차가 밖에서 대기 중입니다. 서관 대인, 이쪽으로 오시지요.”원경릉은 할머니를 부축해 마차에 올랐고, 곧장 관아로 향했다.지부 대인은 따로 사저가 없어 관아의 뒷마당에서 거주 중이었다. 혼자 지내는 데다 관아가 워낙 가까워 편리했기 때문이다.관아에 도착하자마자, 그들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안으로 들어갔다.주 지부는 병세가 꽤 심각해져 있었다. 그는 어지럼증과 흉통에 시달려, 침대에 누운 채 말을 꺼낼 힘도 없었다.원경릉은 직접 치료에 나섰고, 약상자를 열어 체온 측정기와 청진기를 꺼냈다.푸른 옷의 사내가 의아해하며 물었다.“아가씨께서도 의원이십니까?”그러자 곁에 서
이 대인이 원경릉에게 의학을 잘 모른다고 반박할 틈도 없이, 원 할머니가 먼저 입을 열었다. "말대로 하게. 하루만 줄 테니, 그 안에 역병에 관한 모든 자료를 가져오게. 사망자 수도 포함되어야 하네." 이 말까지 듣자, 이 대인은 더 이상 반박할 수 없었다. 비록 조사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서관 대인이 멀리서 오계부까지 왔으니, 시키는 일은 해야지 대인의 마음에 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사람들을 보내 조사를 명한 후, 이 대인은 거처를 마련해 드리겠다고 했다. 하지만 원경릉이 말했다. "괜찮습니다. 의서에 의원이 많지 않으니, 대인도 바쁘실 텐데요. 저희가 직접 오계부를 돌아보겠습니다." 이 대인은 그녀가 원 할머니의 힘을 빌려 위세를 부린다고 생각해, 대꾸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말에 답도 하지 않고, 원 할머니에게 예를 올렸다. "어르신께서 머무실 계획이 있으시면, 부디 저에게 알려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밤 대인을 잘 대접하라, 명을 내리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네. 일이나 보게." 원 할머니는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원경릉에게 말했다. "먼저 좀 돌아보다, 객사를 찾아 머물자꾸나." "예!" 두 사람은 역병을 조사하기 위해 다급히 이곳을 찾아왔기에, 먼저 각지의 의원을 직접 돌아보려 했다. 아마 다섯째 일행은 빨라야 내일이나 모레쯤 도착할 것이었다. 두 사람이 의서를 나서자, 이 대인은 뒤따라 나오려다 원 할머니의 날카로운 눈빛에 움찔하며 발길을 멈췄다. 두 사람은 오계부의 거리로 향했다. 거리가 꽤 번화했고, 사람들도 제법 많아, 대낮에는 조금 붐볐다. 그들은 곧장 의원으로 향했다. 의원 앞에는 약차가 많이 진열되어 있었지만, 환자는 얼마 없었다. 겉보기엔 역병이 퍼졌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원경릉은 안으로 들어가 의원에게 상황을 물었다. 그러자 의원은 요즘 들어 약차가 잘 팔리고 있고, 하루에 천 봉지가 넘게 팔린다고 답했다. 하지만 그도 역병
늦게 출발한 원경릉은 신속하게 오계부로 향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오계부 근처 주현에 도착하자마자, 할머니가 현지 혜민서로 가야 한다며 잠깐 멈추자고 했다. 그러고는 혜민서에 오계부로 약을 공급할 준비를 하게 했고, 명을 받으면 바로 오계부로 보낼 수 있도록 미리 준비를 당부했다. 혜민서 산하의 의료기관들은 지난 몇 년간 개혁을 통해 뚜렷한 성과를 거두었고, 지역 간의 연결도 긴밀해졌다. 특히 역병을 상대하는 체계가 가동되면 상부에서는 전력을 다해 의원과 약을 지원해줄 수 있었다. 신신당부한 뒤에야 원경릉과 할머니는 오계부로 재빨리 향했다. 곧이어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우문호 일행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다. 오계부는 인구가 500만 명에 이르는 곳으로, 두 개의 주부가 통합된 지역이었다. 열대에 있어, 경작지가 많고 산이 많아 농업을 위주로 삼고 있었다. 그래서 조정은 이곳을 서부의 주요 곡창지대로 삼고 있었던 것이었다. 농업이 발달한 지역은 상대적으로 경제도 번화했고, 현지 백성들은 벼 외에도 감, 자두, 리치 등을 대량으로 재배하고 있었다. 리치는 신선할 때 먹을 수도 있고, 말려서 건과로 만들어 팔 수도 있기에, 어느 정도 지역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었다. 오계부는 백월국과 인접해 있었는데, 백월국은 북당의 속국으로 사이가 우호적이며 경제 교류도 활발했다. 이는 양국의 번영을 촉진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오계부의 지부는 장씨 성을 가진 오계부 출신이었다. 장 지부는 훌륭한 관리이며 지역 백성들로부터 존경받고 있었다. 원경릉과 원 할머니는 오계부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지역 혜민서를 찾았다. 할머니는 혜민서의 서관(署館) 신분을 밝혔다. 그녀는 북당 각 주부의 의서를 총괄하는 인물이고, 총책임자이기도 했다. 혜민서의 이 의원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두 사람을 안으로 청한 후, 바로 예를 올렸는데, 마치 신선이라도 본 것처럼 목소리까지 떨고 있었다. "소인은 이자옥이라 합니다. 어르신께서 친히 오신 줄도
그녀는 일단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하고, 냉 대인이 자세한 상황을 묻는 사이에 제 대인의 피를 뽑았다. 약상자는 기능이 꽤 다양하기에, 바이러스 검사도 문제없었고, 안에는 양여혜가 준 소형 현미경도 있었다. 하지만 바이러스 관찰이나 세균 배양에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지체할 수 없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먼저 오계부로 향하고, 그녀는 이곳에 남아 제 대인을 치료하고 검사 결과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면 바이러스든, 세균 감염이든, 결과가 나와야 제대로 된 치료 방안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미색이 말했다. "저도 이곳에 함께 남겠습니다. 제가 환자를 돌보는 것 정도는 도울 수 있지 않겠습니까?" "괜찮으니 먼저 가거라. 어쩌면 내가 더 일찍 도착할 수도 있으니깐." 원경릉이 말했다. 그녀는 혼자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지만, 미색까지 데리고 가는 건 무리였다. "우리가 먼저 출발하는데, 어찌 더 일찍 도착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미색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가능한 일이다. 원 선생은 늘 기적을 만들어내니." 우문호가 말했다. 그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고, 원경릉에게 다가가 조심하라고 몇 마디 당부했다. "알았소. 지체하지 말고, 어서 떠나시오. 오계부에 도착하면 곧바로 관아를 찾아가, 의원의 빠른 대처를 명하라 하시오. 만약 내가 먼저 도착한다면, 내가 관아를 찾아가겠소." "알겠소. 그럼, 먼저 가겠소!" 우문호는 그녀와 입을 맞추고 싶었지만, 보는 이가 많으니 그저 참을 수밖에 없었다. 서일은 황후를 홀로 두고 가는 것이 걱정되어, 우문호를 따라나서며 계속 물었다. "정말 황후를 이곳에 혼자 남겨도 되는 것입니까?" "그럼, 네가 남을 것이냐?" 우문호가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 "너도 원 선생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알고 있지 않느냐?" 회왕 부부도 걱정은 되었지만, 다섯째의 여유로운 모습에 자신이 있을 것이라 믿었다. 다섯째 부부는 늘 비밀이 많은 사람들이라, 그들은 더 이상 신경
원경릉은 밖으로 나가, 오계부에 역병이 생긴 것 같다고 전했다. 오계부는 서쪽에 자리 잡고 있어, 기후가 더운 탓에 가끔 역병이 생기긴 했었지만 백성들은 고뿔 치료에 쓰이는 약초로 끓인 차를 즐겨 마시기에, 대규모로 역병이 돈 적은 없었다. 냉 대인이 말했다. "오계부에서는 이 상황을 조정에 알리지 않았습니다. 비록 해마다 역병이 생기긴 하지만, 빠르게 통제해 왔으니, 이번에도 예전과 같은 상황이지 않겠습니까?" 원경릉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런데 이번엔 더 심각할 수도 있습니다. 제 대인의 형도 역병으로 돌아가셨고, 그와 가까이 지낸 사람들도 병에 걸렸습니다. 이렇게 관아에만 역병에 걸린 자들이 많으니, 예전보다 더 심각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해마다 역병이 생겼으니, 그에 대한 대응책도 이미 있을 것입니다." 원경릉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해마다 역병이 생겼지만, 대대적으로 유행하지 않았기에, 현지 관리들이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겨 쉽게 통제될 것이라 생각하고, 방심할 수도 있으니깐요." 우문호가 물었다. "원 선생, 역병을 어떻게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하오?" "역병 상황이 안 좋을 것이라 추측할 뿐, 정말 오계부의 상황이 어떠한지는 아직 모르네. 제 대인은 여전히 고열에 시달리고 있어, 수액을 맞히고 해열제를 먹였소. 냉 대인과 함께 들어가 상황을 자세히 물어봐야겠소. 하지만 꼭 마스크를 끼고, 병을 막아야 하오." 원경릉은 유행성 독감이나 변이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일 것이라 의심하고 있었다. 그녀가 살던 세계에서는 A형 독감의 대규모 변이가 십수 년마다 한 번씩 발생했는데, 그런 변이 독감은 현대에서도 의료 체계에 큰 부담이 되곤 했다. 그러니 지금 이곳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만약 역병이 다시 시작한다면, 가능한 한 빨리 통제해야만 했다. 원경릉의 말을 우문호와 냉 대인은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도
원경릉은 청진기를 꺼내 그의 폐를 확인해 보았는데, 남녀가 가까이 접촉하는 것이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한 제 대인은 이내 손을 뻗어 그녀를 막으려 했다. 하지만 병세가 심해 아픈 데다가,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묘한 위압감을 풍기는 의원의 단호한 눈빛과 기운에 그만 압도당하고 말았다. 원경릉은 앞쪽을 청진한 뒤, 그에게 옆으로 돌라고 한 다음에 꼼꼼히 살피고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며칠을 아프신 것입니까?" 제 대인은 꽉 막힌 코 때문에 콧소리를 내며 천천히 몸을 돌리고 답했다. "며칠 사이의 일입니다. 오계부를 떠날 때도 멀쩡했는데, 밤새 달리고, 말을 오래 타다 보니 고뿔에 걸렸나 봅니다." "기침 말고, 가슴 통증도 있습니까?" "예. 이곳이 아픕니다!" 제 대인은 가슴 근처를 손으로 누르며 말했다가, 숨쉬기가 어려운 듯 손바닥을 움직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도 아프고, 온몸 뼈마디도 다 아픕니다." 그러자 원경릉은 더 자세히 증상을 확인한 뒤 말했다. "약을 준비할게요. 수액을 좀 맞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수액이요?" 제 대인은 멍하니 원경릉을 바라보았다. "예. 질문은 하지 마시고, 그저 치료에 협조만 해주십시오. 병세가 꽤 심각한 편입니다." 원경릉은 제 대인이 폐렴이라 확신했고, 중증 폐렴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제 대인은 병이 심하다는 말에 초조한 표정을 지으며 다급히 말했다. "의원 나리, 제발 최선을 다해 치료해 주십시오… 저에게는 아직 모셔야 할 노모가 있습니다. 지난달 병으로 형님께서 세상을 떠난 터라, 형님의 자식들도 제가 돌봐야 하니, 절대 이대로 목숨을 잃을 수는 없습니다." 원경릉이 답했다. "최선을 다할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 치료에만 집중하시지요!" 제 대인은 감동을 받은 듯 감사 인사를 올렸다. "정말… 감사합니다." 원경릉은 곧바로 약을 지어 수액을 준비했다. 수액을 맞는 동안, 제 대인은 여전히 놀란 모습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