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주 도착우문호는 아무리 싫어도 식구들을 줄줄 이끌고 출발했다.희상궁은 원래 따라 가고 싶었으나 초왕부를 비워 놓을 수 없고 주재상이 최근 몸도 그저 그래서 희상궁이 멀리 갈 수 없었다. 주재상도 희상궁이 떠나는 걸 동의하지 않아서 출발 전에 직접 와서 설명하고 희상궁을 데려가지 못하게 했다.확실히 나이가 많으니 배나 마차 여독이 심하므로 희상궁도 굳이 가겠다고 고집 부리지 않았다.우문호는 원래 아이들을 데리고 외출하는 게 비교적 부담스러운 것이 걸핏하면 쉬고 먹어야 하고 너무 힘들면 안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2,3일이 지나자 우리 떡들이나 쌍둥이는 전부 생기가 넘치고 오히려 원선생이 좀 힘들어 했다.쌍둥이는 특히 침착했는데 이 둘은 길에서 한번도 울어본 적이 없고 쉴 때도 귀찮다는 눈빛으로 원경릉 부부를 바라보는 게 늦게 가는 걸 오히려 싫어하는 것 같았다.사실 쌍둥이 속도가 아니긴 하다.원경릉은 정집사가 용씨 집안의 순간이동술을 얘기한 게 생각났다. 그게 쌍둥이와 뭔가 구별된 게 있는 걸까?삼 년 만이다. 줄곧 보고싶었던 용태후를 이제 만난다는 생각에 원경릉은 감격스러웠다.하지만 제일 감격에 벅차 있는 건 우문호였다. ‘절친’ 진정정을 곧 만나는 데다 가는 길에 진정정이 보낸 편지를 받았는데, 원래는 건곤검(乾坤剑)을 지키러 가야 하는데 지금 미친듯이 말을 달려 수도로 돌아오고 있다는 것이다. 진근영과 대두 아들과 함께 대주 수도에서 우문호를 기다리고 있겠다고 했다.가는 길에는 별 일 없었는데 늑대와 호랑이도 말을 잘 듣고 순하게 굴어서 날뛰지도 않고 사고도 일으키지 않았으며 사람을 놀래 키는 일도 없었다. 길을 갈 때도 마차에 앉아 있고 여관에 들어가면 그제서야 마당에서 지키고 있어서 손이 안 갔다.녹주가 오히려 멀리 나가본 적이 없는 지라 며칠을 흔들리는 마차에 있었더니 병이 났다. 하지만 원경릉이 늘 약상자를 지니고 다녀서 금방 좋아졌다.11월 초여드레날, 대주 수도에는 큰 눈이 내려 눈꽃이 펄펄 날리는 가운데 북당에서 온 사신
진정정과 우문호진정정이 우문호를 보며 처음 봤을 때부터 능력자라고 생각했지만 아들을 이렇게 줄줄이 낳는 능력까지 있을 줄 몰랐다. 대단해.진정정이 원경릉에게 미소 지으며, “군주도 태자비 마마를 그리워 하는데 틀림없이 지금 태자비 마마를 뵐 낯이 없을 겁니다.”원경릉이 놀라서, “왜 절 볼 낯이 없어요?”진정정이 하하 웃으며, “태자비 마마 금방 아실 겁니다.”원경릉이 의아했다. 군주는 쾌활한 성격에 일하는 스타일도 명료하고 똑 부러지는데 왜 원경릉을 볼 낯이 없다는 걸까?일행은 계속 앞으로 가고 우문호는 마차를 타지 않고 진정정과 같이 말을 몰며 앞에서 가고 있었다.진정정이 우문호에게, “어제, 홍엽이 수도에 도착 했어.”우문호가 상당히 놀라서, “홍엽도 왔다고? 아닐 거야, 내가 경성에서 떠나올 때 그 자식 아직 북당 여관에 있었는데.”“홍엽은 홀가분하게 움직이지만 자네는 식구를 다 데리고 이동하니 그자가 더 빠르지. 그자가 북당에서 무슨 사건을 일으켰나?”우문호는 홍엽이란 말을 꺼내자 열이 확 받쳐서, “겉으로는 안분지족하는 척하지만 속으론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게 뭐 야?”“홍엽은 확실히 속을 알 수가 없어. 꽤 야심이 있어 보이던데 곰곰이 따져보면 또 그렇지 않은 것 같고 뭘 하려는 건지 알 수가 없어.” 진정정은 홍엽에게 상당히 경계심을 품고 있다. 홍엽은 자유자재로 살인을 즐겼다.원래 대월국에 있을 때 쳐부수려고 했지만 홍엽은 한번의 실패 이후 추호도 개의치 않는듯 재빠르게 일부 병사를 감춰뒀다가 순식간에 남강에서 떨치고 일어나고 이어서 대주의 군왕이 되는 등 마치 온 천하가 전부 자신의 바둑판인 것처럼 늘 퇴로가 확보되어 있다.“이 자식 도대체 대주에서 뭘 하려는 거지? 설마 또 원 선생을 쫓아온 건 아니겠지?” 우문호가 쫑알거렸다.“태자비 때문에? 그런 무슨 소리야?” 진정정이 고개를 갸우뚱했다.홍엽이 원경릉에게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는지 애기하며 씩씩거렸다. “진짜 이런 미친 놈은 처음이야. 감히 내 앞에서 내 아
오원 사랑해요진정정이 웃으며, “난 원래 별로 믿지 않지만 경천(擎天) 섭정왕은 굉장히 중시해서 건곤검은 절대 잃어버려서는 안된다고 신신당부하더군. 난 성지를 받들어 지키러 갈 뿐이야.”우문호가 아쉽다고 느끼며, “자네는 천하무적 대장군인데 고작 검 한 자루를 지키다니, 닭 잡는 데 소 잡는 칼을 쓰는 격 아닌가?”“아까운 일인지 아닌지는 나중에 알게 되겠지.” 진정정은 어떤 환경에도 잘 적응하고 만족할 줄 아는 성격인 데다 지금 태평성대라 진정정에게 밭을 가는 농부가 되라고 해도 기꺼이 할 사람이다.수도에 도착하자 해가 이미 서쪽으로 기울었고 성문에는 친왕들과 예부상서가 이끄는 여럿이 나와 맞이했는데, 관도 양쪽으로 수많은 백성들이 도열해 소고를 치고 춤을 추며 양국의 우정 어린 방문을 축하했다.대주는 태자 일행에게 황실 별장을 준비했는데 대장군 진정정이, “그럴 필요 없습니다. 저희 집에 머물면 됩니다.”당연히 황실 별장보다 초라한 데도 태자는 굉장히 기뻐하며 대장군의 저택에 묵는다고 하니 다들 할 말이 없어 대신 야단법석을 떨며 북당 일행을 맞아들인 것이다.원경릉이 가리개를 젖혀 손을 내밀어 양쪽에 도열한 백성들에게 인사하자, 백성들은 함성을 지르는데 엄청 크고 시끄러워서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열정과 감격은 우방의 태자비를 환영하는 수준을 한참 뛰어넘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사식이가 듣더니, “원 언니, 어째서 저들이 ‘오원 사랑해요’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리죠?”“오원? 양국 만세 아니고?” 원경릉이 놀라서 자세히 들어보니 정말 ‘사랑해요 오원’이다.사식이가 밖에 열정이 넘치는 얼굴을 하나씩 보며 의혹에 차서, “오원은 마마와 태자 전하신 가요? 그리고 원 언니, 저 아가씨들 손에 든 둥근 부채에 그려진 사람이 태자 전하께서 언니에게 준 빗에 조각된 그 그림 아닌가요? 어? 어떻게 오원이란 두 글자가 있죠?”대주와 북당의 문화는 서로 수백 년 전부터 교류하고 있어 두 나라는 땅만 둘로 나뉘어 있을 뿐이지 황진국(皇秦國)에
굿즈 만세근영군주는 난처한 나머지 대두를 잡아 다가 안으로 밀어 넣으며 원경릉에게, “이 녀석 입을 막아버리던지 해야지, 너무 나무라지 마시고 마음에 두지 마세요. 헛소리예요.”원경릉이 웃으며, “아뇨, 귀여워요. 얼마나 솔직해요. 아쉽게도 제가 딸을 못 낳아서 그렇지 아니면 반드시 대두에게 시집 보낼 거예요.”우리 떡들이 이 녀석이 자신들의 여동생과 혼인하겠다는 말을 듣고 눈늑대를 데리고 들어가 그 녀석과 한판 하려고 했다. 자기들도 아직 여동생이 없는데 벌써 찜 하다니 그게 말이 돼?이렇게 남자들 한 팀, 여자들 한 팀, 아이들 한 팀으로 팀이 나뉘었다.군주는 원경릉과 사식이를 온돌방으로 불러 차와 간식을 준비했는데 전부 대주에서 가장 유명한간식들로 아이들이 벌떼처럼 달려들어 ‘와구와구’ 먹고 바로 나가서 노는데 우리 떡들은 원래 대두를 한대 패 줄 생각이었는데 어쩐지 대두는 재미난 장난감을 많이 가지고 있어서 금방 대두에게 매수되고 말았다. 경단이는 대두의 장난감과 바꾸려고 아직 생기지도 않은 가상의 여동생을 두명이나 대두에게 팔았다.원경릉과 사식이도 배가 고파서 떡을 먹고 같이 얘기를 나눴다.근영군주와 사람들이 다 먹고 나서 진심으로 원경릉에게 미안해 하며, “태자비, 정말 미안한 일이 있어요.”원경릉은 대장군이 성밖에서 한 얘기가 생각나서, “뭐가 이렇게 심각해요? 사과까지 하고.”근영군주가 손을 흔들자 누군가 광주리에 담긴 물건을 가지고 들어와 원경릉 앞에 뒀는데, 원경릉이 기쁜 듯 들여다봤다. 안에는 오원 빗, 오원 부채, 오원 손수건, 오원 잔, 오원 인형 등 각양각색의 물건 도안이 원경릉의 빛에 있는 것과 아주 비슷했다.“이게 어떻게 된 거예요?” 원경릉이 웃겨서 물어봤다.근영이 매우 거북하지만 하는 수 없다는 듯, “이건 제가 한 게 아니라 호청운(胡青雲)이 한 거예요. 두 나라 상거래가 있은 뒤로 정풍호(鼎豐號)도 북당에 생겼거든요. 북당에서 오원 빗이 유행한다는 얘기를 듣고 대주로 돌아와서 팔았는데 태자와 태자비는 북
대주에서의 첫날밤이번에 대주에 와서 정말 얻어가는 게 많다.쌍둥이는 젖을 먹고 안겨 들어왔는데 근영군주가 안아보더니 가지고 싶은 욕심이 생기는지, “만약 딸 다섯을 낳으면 이집 아들 다섯을 전부 빼앗아 올 텐데.”대두 꼬맹이가 방금 한 호언장담이 생각나서 원경릉은 웃음을 참을 수가 없다. “제가 만약 딸을 낳으면 이집 대두를 빼앗아 오는 겁니다.”근영군주가 하하 웃으며, “딱 보니 태자비도 시어머니 팔자네요. 지금 대두는 벌써 주판을 튕기며 앞으로 아내를 얻은 뒤엔 못되고 흉포한 이 시어머니에게 자신의 어린 시절을 어떻게 복수할까 하던 걸요.”원경릉이 배를 잡고 웃으며, “정말요? 있잖아요, 우리 만두도 앞으로 아빠를 어떻게 괴롭힐까 생각하던 데요, 이 양심도 없는 것들!”두 사람은 한동안 자식 험담을 하고서야 본론으로 들어갔다. 원경릉이 태후를 보기 위해 왔다는 것을 알고, “이미 사전에 알려 뒀어요. 태후 마마도 보고 싶으시 데요. 내일 같이 입궁해요.”“좋아요, 너무 고마워요.” 원경릉이 감동했다.“우리 사이에 뭐 그런 걸 가지고.” 근영군주가 원경릉을 보고 조금 안타깝다는 듯, “시아버지 시어머니는 수도에 안 계세요. 태자비가 온다는 걸 아시면 뛸 듯이 기뻐하실 텐데.”“강녕후 부부는 어디 가셨어요?” 원경릉은 강녕후 부인을 찾아 뵙고 그날 우리 떡들을 낳을 때 집도해 주신 것에 감사드리고 싶었다.“지난달 수도를 떠나서 무성으로 가셨어요.”“못 봬서 너무 안타깝네요, 두 분은 잘 지내시나요?” “네, 너무 잘 지내세요. 연세가 많으신 데도 어찌나 금슬이 좋으신 지.”“진짜 부럽네요.” 원경릉이 진심으로 말했다.얘기하는 사이 누가 와서 어떤 부인이 태자비를 뵙고 싶어한다, 어느 공주께서 오셔서 태자비와 만나고 싶어 하신다고 했는데 전부 진근영이 막아 서서 돌려보내며 태자비가 여독이 심해 쉬어야 하니 내일 궁에 다녀온 뒤에 뵙자고 했다.군주는 일처리가 깔끔하고 태도가 강경해서 한 마디 하면 더이상 재고의 여지가 없다. 따라서 더
대주 입궁다음날 일찍 일어나 머리 빗고 화장하고 태황태후와 대주의 황제를 알현하기 위해 대장군 부부가 원경릉 부부를 데리고 입궁했다.아이들은 데리고 가지 않은 게 늑대 세 마리와 호랑이 두 마리가 따라오면 입궁하기 불편했기 때문이다. 근영군주는 아이들을 데리고 가길 원한 게 태황태후가 분명 아이들을 좋아할 것이나 원경릉의 의사를 존중해 집에서 아이들을 똘똘하게 잘 보도록 시녀에게 지시하고 아이들이 배곯지 않게 조치를 취했다.처음 용태후 얘기를 들은 이래 줄곧 마음은 이곳을 향했는데 이제 곧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원경릉은 말할 수 없이 감동이 밀려왔다. 하지만 집이 가까워 올수록 괜한 걱정이 생기듯 걱정스런 마음도 들었다. 올 때 사실 용태후가 신내림을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그다지 확신할 수 없었다. 하지만 대주 땅을 밟고 특히 수도에 도착한 뒤로 마음에 알 수 없는 확신이 들며 만약 용태후가 없앨 수 없다면 아무도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마차에서 원경릉이 진근영에게, “태후 마마를 뵐 때 뭘 주의 해야 하죠?”“태후란 분은 얼굴은 차갑지만 마음은 따듯하신 분이니 너무 긴장할 필요 없어요. 마마께서는 태자비를 좋아할 게 틀림없어요.”원경릉이 손바닥을 펴자 손에 땀이 흥건했다. “긴장돼요. 계속 어르신을 뵙고 싶었는데 소원이 이루어지는 순간인데 어떻게 긴장이 안되겠어요?”근영에 큭큭 웃으며, “그리고 진짜 주의할 거 하나, 그건 바로 어르신 어쩌고 하면 안된다는 거. 태후 마마는 그렇게 늙지 않았어요.”원경릉이 아 하더니, “젊어 보이시나요?”“원래 별로 안 늙으셨어요, 지금 황제 폐하와 나이가 비슷하셔요.”“지금 황제 폐하는 직접 낳으신 분이 아니시죠? 황제 폐하의 생모는 동태후이실 텐데.” 원경릉이 전에 들은 적이 있으나 이 모자 관계에 대해서 여전히 정확히는 모른다.“맞아요, 지금 황제 폐하는 태후 마마의 친아들이 아니셔요.”“태후 마마께서 섭정왕 폐하와 혼인하셨다고 들었는데 이 일은 황제 폐하께서 동의하신 건가요? 그리고 여전히
비봉전 정국후 부인근영이 원경릉을 부축하며, “두분 집사님은 태후 마마를 보필하신 지 오래라 마마의 신임이 두터워요.”원경릉이 예를 취하자 두 사람이 황공해 하며 안으로 모시고 들어갔다.비봉전 매화가 만개할 때라 들어가자 맑은 향기가 너울거린다. 원경릉이 매화를 좋아해서 활짝 피어 가지가 휘어질 듯한 매화가 아주 절경이다.우문호의 시선도 기특하게 진정정에서 원경릉에게 옮겨져 손을 꼭 잡고 따스한 목소리로, “매화를 좋아하니까 귀국하면 잔뜩 심어 줄게 우리 땅도 있으니까.”원경릉이 신기하게 생각하며 왠일로 대주에 오더니 갑자기 낭만적이게 된 거야.우문호가 귓가에 속삭이며, “정정이 근영군주를 위해 연무장을 만들어 준다 더라고, 나도 당신한테 잘 해야지.”말을 마치고 이글거리는 눈으로 원경릉을 바라보고 웃는 게 작위적인 느낌이 짙다.원경릉이 어이가 없어서 그래 따라하는 거든 어떻든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 낫지, 진정정 같은 얼음 덩어리도 사람 마음을 읽고 낭만을 알고, 심지어 늘 부족하다고 생각한다.집사가 안으로 데리고 들어가는데 문지방에 개 한 마리가 고양이처럼 나른한 표정으로 누워있는데, 사람이 들어와도 눈꺼풀 들어올리는 것도 귀찮다는 듯 계속 엎드려서 겨울의 따스한 볕을 쬐고 있다.정전으로 들어서자 의자에 아름다운 부인이 앉아 있다. 엷은 녹색 비단 옷을 입고 높게 머리를 틀어 올려 간단한 장신구를 했는데 이게 오히려 노련하고 단정해 보였다. 입술은 붉고 봉황 눈매에 싸늘한 빛으로 우문호와 원경릉을 바라봤다.원경릉이 얼른 예를 올리는데 진근영이, “어머, 정국후 부인 이렇게 일찍 오셨어요?” 정국후 부인을 원경릉은 알고 있었다. 원래는 태후 마마를 가까이서 모시던 사람으로 아사라고 불리다가 정국후에게 시집을 간 뒤에도 태후와의 관계가 밀접하다.정국후 부인이 일어나 모두와 인사를 나누는 것을 보고 진근영이, “태후 마마는 아직 안 나오셨어요?”정국후 부인이, “화장실에 가셨어, 나이가 많은 인간은 못 참는 법이야.”원경릉이 이 말
신난 원경릉두 사람이 기겁한 사이에 나르는 봉황을 수놓은 황색 비단옷을 입은 아름다운 여인이 걸어 들어오고 진근영이 그녀를 태후 마마하고 불렀다. 원경릉이 태후를 보고 머리속에 시경의 한 구절이 스치고 지나가는데 ‘손가락은 새순처럼 연하고 부드럽고, 매끄러운 흰 피부에 늘씬한 목덜미, 이빨은 가지런히 희기도 하구나.’ 이정도의 절색이라 미색은 발끝에도 못 미치겠다.그리고 미색은 지금 한창 물이 오른 나이지만 용태후는 아무리 봐도 4,50살은 되 보이는데? 하지만 나이 들고 퇴색한 느낌이 하나도 없잖아? 보기엔 23,4세 정도로 만약 눈가와 얼굴에 위엄이 서려 있지 않고 진근영이 태후라고 부르지 않았으면 원경릉은 절대로 그녀가 전설속의 용태후란 사실을 믿지 못했을 것이다.용태후가 성큼성큼 들어와 치마가 땅에 끌리는데 먼지 바람 하나 일지 않고 원경릉과 우문호가 용태후가 앉기 전에 예를 올렸다. 태후가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쭉 한번 만나보고 싶었는데 오늘 이렇게 만나게 되는 군요. 어서 앉아요!”진정정이 예를 취하고, “태후 마마, 여러분들 대화 나누시도록 소신 태자 전하를 데리고 황제 폐하를 뵙고 오겠습니다.”“가게!” 태후가 미소를 띠며 말했다.우문호는 칼자국 밧줄과 정국후 부인에 대한 충격에서 아직 헤어나오지 못한 게 역력한 표정으로 인사하고 나갔다. 아직 비봉전을 나가기 전에 우문호가 진정정에게 경악할 질문을 하는 게 들렸다. “그거 뱀이야? 아무리 봐도 밧줄로 보이던데?”“응 뱀, 밧줄로 묶여져 있는 그거 뱀이야.” 진정정의 목소리가 점점 멀어져갔다.원경릉이 앉은 뒤 불안 초조한 마음으로 옆에 묶여 있는 정국후 부인을 보는데 방금 상당히 성깔이 있어 보였는데 지금은 완전히 맥없이 고개를 푹 떨구고 쫄아 있다.“태자비는 이상하게 보지 마요, 쟤는 일년에 300일은 묶여 있어야 편안하니까.” 태후가 아무렇지도 않게 정국후 부인을 쓱 훑어보더니 원경릉에게 말했다.이 한 수에 원경릉은 철저하게 탄복하고 말았다. 충
잔뜩 긴장한 채로 앞으로 몸을 반쯤 내밀고 있었던 주 지부는 우렁찬 상대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중심을 잃은 듯 비틀거렸다. 그는 이내 팔을 뻗어 망루의 기둥을 붙잡으려 했지만, 허공에서 멈추고 말았고, 그대로 몸이 앞으로 쏠려 떨어져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가 말에서 빠르게 날아올라, 믿기 힘들 정도로 빠른 속도로 그에게 달려갔다. 상대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주 지부가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그를 안고 빙 돌아서 바닥에 착지했다.주 지부는 깜짝 놀라서 그만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를 구해준 사람은 반짝거리는 눈망울에, 품위 있는 모습의 젊고 잘생긴 사내였다. 주 지부는 그를 황제의 호위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거의 죽을 뻔한 고비를 넘겼기에, 안도의 한숨을 내쉴 새도 없이 그에게 예를 올렸다.“대인,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그때 말들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는데, 서일이 먼저 말에서 내려, 다급히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괜찮으십니까?”우문호도 매우 놀란 듯했다. 조금만 늦었다면, 주 지부는 정말 죽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가슴을 가볍게 두드리며 숨을 들이쉬었다.“괜찮다.”그러고는 주 지부를 보며 물었다.“자네는 누구요?”주 지부는 마차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보며, 누가 황제인지 추측했다.황제는 올해 마흔에 가까운 나이로 알려져 있었기에 위엄이 넘쳐 보일 것이었다. 그는 일행 중, 냉 수보와 홍엽을 만난 적 있었기에, 거친 모습을 한 이 인물은 아마도 호위로 추측된다. “묻지 않았소? 자네는 누구요? 어찌 죽으려고 하는 것이오?”서일은 그가 멍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자, 큰 소리로 다시 물었다.주 지부는 울 지경이었다. 냉 수보가 그를 보고 있으니, 예를 올려야 하지만, 황제도 자리에 있으니, 바로 냉 수보에게 예를 올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대체 누가 황제란 말인가?그는 황제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어, 결국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그러고는 그들에게만 들릴 정도로 낮은 목소
원경릉의 말은 그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고, 자리에 있던 관리들은 기쁨과 동시에 두려움에 휩싸였다. 이 대인은 땅에 엎드려 온몸을 바르르 떨고 있었다. 그는 살아생전에 자신이 황제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은 단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평소 차분하고 신중한 주 지부도, 그도 감정이 격해져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눈가에는 눈물이 가득했다.황후를 만난 것만으로도 큰 영광이라 생각했는데, 황제까지 오신다는 소식에 그의 마음은 흥분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원경릉은 평생을 경성에서 다섯째와 함께 있었기에, 그녀는 그저 그가 온다는 사실을 간단히 전했을 뿐이었는데 말이다. 그녀는 다들 걱정 없이 역병을 치료하고, 언제나 황제가 그들의 뒤를 든든히 지켜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들의 반응을 보니, 황제가 직접 오는 것이, 지방 관리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깨달았다.원경릉이 급히 말을 덧붙였다.“폐하게서는 그저 역병 때문에 온 것이니, 모두 각자 맡은 일에만 최선을 다하면 되네.”“예, 예, 마마의 명을 따르겠습니다.”주 지부가 눈물을 닦으며 답했다.그렇게 관아와 의서가 협력하여, 오계부를 조사하기 시작했다.원 할머니는 역병을 치료할 수 있는 처방을 몇 가지 내렸다. 경증 환자는 약차를 계속 마시고, 증상이 악화하거나 중증 환자는 그녀의 처방을 사용하도록 했다.전에 이미 근처 주부에 연락해 약을 보내라 명했고, 오계부에서 구비한 약까지 있으니, 이번 역병을 대처할 수 있었다.오계부 의서는 이번 역병을 과거의 역병과 동일하게 생각하고, 소홀히 한 것 외에는 준비가 충분했다.원경릉은 황제 일행이 저녁 무렵 오계부에 도착할 것이라 예상했다.주 지부는 원래 여러 관리와 함께 황제를 맞이할 예정이었지만, 원경릉이 이를 단호히 거부했다. 그녀는 황제가 미복 순행 중이니, 과하게 맞이하여 백성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했다.그 말에 주 지부는 당황했다.황제가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아무도 맞이하지 않는다니, 어찌 그럴 수 있다는 말인가?그러나 그는 황
약을 쓰자, 주 지부의 열이 단번에 내려갔다.열이 내려가니 정신이 맑아져, 그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는 애써 자리에서 일어나 황후마마에게 예를 올리겠다고 고집 피웠다.원경릉은 그에게 누워 있으라고 말한 후, 역병에 관해 이야기하며 주 지부에게 이를 중시할 것을 당부했다.주 지부는 이를 듣고 깜짝 놀라 말했다.“소신은 매일 의서에 사람을 보내, 역병의 상황을 보고받고 있사옵니다. 매일 보고된 상황은 그다지 심각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역병이 발생했지만, 작년과 비슷한 정도였고, 약재도 충분한데, 어찌 이렇게 심각해진 것입니까?”“매년 역병이 발생했으나, 대대적으로 퍼지지 않아,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네.”원경릉이 답했다.“의서의 이 대인을 불러, 상황을 확인하겠습니다.”주 지부는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어제 이미 그를 찾아가, 환자 수와 사망자 수를 조사하라 명했네. 하지만 그는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모를 것이네. 자네가 사람을 보내, 관아에 와서 상황을 보고하도록 하게.”“예!”주 지부는 곧바로 사람을 보냈다.푸른 옷을 입은 남자는 관아에서 일하는 관리였기에, 그는 반 시진도 채 되지 않아, 관아 내에서 병에 걸린 자가 얼마나 되는지 통계해냈다.관아 내에서 역병 증상을 보인 사람은 총 열여덟 명이었고, 그중 두 명은 병세가 심각하여 이미 집에서 쉬고 있는 상태였다. 주 지부는 관아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병에 걸린 줄 몰랐고, 관리의 보고를 들은 후, 큰 충격을 받았다.의서의 이 대인은 하루 종일 쉬지도 않고, 바삐 움직였다. 서관 대인이 직접 오셨으니, 어떻게든 시키는 일을 완성해내야 했다.그는 사실 역병이 그다지 심각하지 않고, 그저 작년과 비슷하다고 여겼었다.하지만 여러 지역과 의원을 돌아보고 나서야, 이번 역병이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처음엔 그저 서관 대인에게 보고만 하려고 했지만, 병세가 심각해지자 그도 조급해지기 시작했다.하지만 짧은 시간 안에 인원수를 통계하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도, 다섯째 일행은 여전히 도착하지 않았다.그래서 원경릉과 할머니는 다른 의관을 더 둘러보기로 하고, 몇 군데 더 돌아본 뒤 관아에도 갈 계획을 했다.그런데 한 의관에 들어서자마자, 푸른 옷을 입은 중년 남자가 다급히 뛰어오며 말을 걸었다. “수 의원, 대인께서 병세가 위중합니다. 어서 봐주셔야 합니다.”의원은 그 말을 듣자마자, 약상자를 집어 들고 다른 환자들을 그냥 남겨둔 채, 푸른 옷의 중년 남자와 함께 나가려 했다.원경릉이 그를 막아 세우며 말했다.“의관에 있는 환자들을 돌봐야 하지 않소? 우리 할머님께서도 의원이니, 지부 대인의 병은 할머님께서 봐 드릴 것이오.”푸른 옷의 사내는 초조한 듯 원경릉을 향해 소리쳤다.“말도 안 되는 소리 마시오!““대인의 병세가 급박한데, 혹여라도 지체되면 당신들이 책임질 수나 있겠소?”바로 그때, 원 할머니가 호패를 꺼내, 그의 눈앞에 들이밀며 단호하게 말했다.“길을 안내하거라!”조급한 표정을 짓던 푸른 옷의 사내는 호패를 보자마자 표정이 얼어붙었다. 이내 정신을 차린 그는 곧장 허리를 굽혀 예를 올리며 말했다.“서관 대인께서 오셨을 줄은 몰랐습니다. 무례를 범해 송구하옵니다.”“그만 사과하고 길 안내나 하시오.”원경릉이 말했다.“예, 예!”사내는 급히 물러서서, 예를 갖춰서 길을 가리켰다.“마차가 밖에서 대기 중입니다. 서관 대인, 이쪽으로 오시지요.”원경릉은 할머니를 부축해 마차에 올랐고, 곧장 관아로 향했다.지부 대인은 따로 사저가 없어 관아의 뒷마당에서 거주 중이었다. 혼자 지내는 데다 관아가 워낙 가까워 편리했기 때문이다.관아에 도착하자마자, 그들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안으로 들어갔다.주 지부는 병세가 꽤 심각해져 있었다. 그는 어지럼증과 흉통에 시달려, 침대에 누운 채 말을 꺼낼 힘도 없었다.원경릉은 직접 치료에 나섰고, 약상자를 열어 체온 측정기와 청진기를 꺼냈다.푸른 옷의 사내가 의아해하며 물었다.“아가씨께서도 의원이십니까?”그러자 곁에 서
이 대인이 원경릉에게 의학을 잘 모른다고 반박할 틈도 없이, 원 할머니가 먼저 입을 열었다. "말대로 하게. 하루만 줄 테니, 그 안에 역병에 관한 모든 자료를 가져오게. 사망자 수도 포함되어야 하네." 이 말까지 듣자, 이 대인은 더 이상 반박할 수 없었다. 비록 조사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서관 대인이 멀리서 오계부까지 왔으니, 시키는 일은 해야지 대인의 마음에 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사람들을 보내 조사를 명한 후, 이 대인은 거처를 마련해 드리겠다고 했다. 하지만 원경릉이 말했다. "괜찮습니다. 의서에 의원이 많지 않으니, 대인도 바쁘실 텐데요. 저희가 직접 오계부를 돌아보겠습니다." 이 대인은 그녀가 원 할머니의 힘을 빌려 위세를 부린다고 생각해, 대꾸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말에 답도 하지 않고, 원 할머니에게 예를 올렸다. "어르신께서 머무실 계획이 있으시면, 부디 저에게 알려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밤 대인을 잘 대접하라, 명을 내리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네. 일이나 보게." 원 할머니는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원경릉에게 말했다. "먼저 좀 돌아보다, 객사를 찾아 머물자꾸나." "예!" 두 사람은 역병을 조사하기 위해 다급히 이곳을 찾아왔기에, 먼저 각지의 의원을 직접 돌아보려 했다. 아마 다섯째 일행은 빨라야 내일이나 모레쯤 도착할 것이었다. 두 사람이 의서를 나서자, 이 대인은 뒤따라 나오려다 원 할머니의 날카로운 눈빛에 움찔하며 발길을 멈췄다. 두 사람은 오계부의 거리로 향했다. 거리가 꽤 번화했고, 사람들도 제법 많아, 대낮에는 조금 붐볐다. 그들은 곧장 의원으로 향했다. 의원 앞에는 약차가 많이 진열되어 있었지만, 환자는 얼마 없었다. 겉보기엔 역병이 퍼졌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원경릉은 안으로 들어가 의원에게 상황을 물었다. 그러자 의원은 요즘 들어 약차가 잘 팔리고 있고, 하루에 천 봉지가 넘게 팔린다고 답했다. 하지만 그도 역병
늦게 출발한 원경릉은 신속하게 오계부로 향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오계부 근처 주현에 도착하자마자, 할머니가 현지 혜민서로 가야 한다며 잠깐 멈추자고 했다. 그러고는 혜민서에 오계부로 약을 공급할 준비를 하게 했고, 명을 받으면 바로 오계부로 보낼 수 있도록 미리 준비를 당부했다. 혜민서 산하의 의료기관들은 지난 몇 년간 개혁을 통해 뚜렷한 성과를 거두었고, 지역 간의 연결도 긴밀해졌다. 특히 역병을 상대하는 체계가 가동되면 상부에서는 전력을 다해 의원과 약을 지원해줄 수 있었다. 신신당부한 뒤에야 원경릉과 할머니는 오계부로 재빨리 향했다. 곧이어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우문호 일행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다. 오계부는 인구가 500만 명에 이르는 곳으로, 두 개의 주부가 통합된 지역이었다. 열대에 있어, 경작지가 많고 산이 많아 농업을 위주로 삼고 있었다. 그래서 조정은 이곳을 서부의 주요 곡창지대로 삼고 있었던 것이었다. 농업이 발달한 지역은 상대적으로 경제도 번화했고, 현지 백성들은 벼 외에도 감, 자두, 리치 등을 대량으로 재배하고 있었다. 리치는 신선할 때 먹을 수도 있고, 말려서 건과로 만들어 팔 수도 있기에, 어느 정도 지역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었다. 오계부는 백월국과 인접해 있었는데, 백월국은 북당의 속국으로 사이가 우호적이며 경제 교류도 활발했다. 이는 양국의 번영을 촉진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오계부의 지부는 장씨 성을 가진 오계부 출신이었다. 장 지부는 훌륭한 관리이며 지역 백성들로부터 존경받고 있었다. 원경릉과 원 할머니는 오계부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지역 혜민서를 찾았다. 할머니는 혜민서의 서관(署館) 신분을 밝혔다. 그녀는 북당 각 주부의 의서를 총괄하는 인물이고, 총책임자이기도 했다. 혜민서의 이 의원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두 사람을 안으로 청한 후, 바로 예를 올렸는데, 마치 신선이라도 본 것처럼 목소리까지 떨고 있었다. "소인은 이자옥이라 합니다. 어르신께서 친히 오신 줄도
그녀는 일단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하고, 냉 대인이 자세한 상황을 묻는 사이에 제 대인의 피를 뽑았다. 약상자는 기능이 꽤 다양하기에, 바이러스 검사도 문제없었고, 안에는 양여혜가 준 소형 현미경도 있었다. 하지만 바이러스 관찰이나 세균 배양에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지체할 수 없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먼저 오계부로 향하고, 그녀는 이곳에 남아 제 대인을 치료하고 검사 결과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면 바이러스든, 세균 감염이든, 결과가 나와야 제대로 된 치료 방안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미색이 말했다. "저도 이곳에 함께 남겠습니다. 제가 환자를 돌보는 것 정도는 도울 수 있지 않겠습니까?" "괜찮으니 먼저 가거라. 어쩌면 내가 더 일찍 도착할 수도 있으니깐." 원경릉이 말했다. 그녀는 혼자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지만, 미색까지 데리고 가는 건 무리였다. "우리가 먼저 출발하는데, 어찌 더 일찍 도착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미색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가능한 일이다. 원 선생은 늘 기적을 만들어내니." 우문호가 말했다. 그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고, 원경릉에게 다가가 조심하라고 몇 마디 당부했다. "알았소. 지체하지 말고, 어서 떠나시오. 오계부에 도착하면 곧바로 관아를 찾아가, 의원의 빠른 대처를 명하라 하시오. 만약 내가 먼저 도착한다면, 내가 관아를 찾아가겠소." "알겠소. 그럼, 먼저 가겠소!" 우문호는 그녀와 입을 맞추고 싶었지만, 보는 이가 많으니 그저 참을 수밖에 없었다. 서일은 황후를 홀로 두고 가는 것이 걱정되어, 우문호를 따라나서며 계속 물었다. "정말 황후를 이곳에 혼자 남겨도 되는 것입니까?" "그럼, 네가 남을 것이냐?" 우문호가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 "너도 원 선생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알고 있지 않느냐?" 회왕 부부도 걱정은 되었지만, 다섯째의 여유로운 모습에 자신이 있을 것이라 믿었다. 다섯째 부부는 늘 비밀이 많은 사람들이라, 그들은 더 이상 신경
원경릉은 밖으로 나가, 오계부에 역병이 생긴 것 같다고 전했다. 오계부는 서쪽에 자리 잡고 있어, 기후가 더운 탓에 가끔 역병이 생기긴 했었지만 백성들은 고뿔 치료에 쓰이는 약초로 끓인 차를 즐겨 마시기에, 대규모로 역병이 돈 적은 없었다. 냉 대인이 말했다. "오계부에서는 이 상황을 조정에 알리지 않았습니다. 비록 해마다 역병이 생기긴 하지만, 빠르게 통제해 왔으니, 이번에도 예전과 같은 상황이지 않겠습니까?" 원경릉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런데 이번엔 더 심각할 수도 있습니다. 제 대인의 형도 역병으로 돌아가셨고, 그와 가까이 지낸 사람들도 병에 걸렸습니다. 이렇게 관아에만 역병에 걸린 자들이 많으니, 예전보다 더 심각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해마다 역병이 생겼으니, 그에 대한 대응책도 이미 있을 것입니다." 원경릉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해마다 역병이 생겼지만, 대대적으로 유행하지 않았기에, 현지 관리들이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겨 쉽게 통제될 것이라 생각하고, 방심할 수도 있으니깐요." 우문호가 물었다. "원 선생, 역병을 어떻게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하오?" "역병 상황이 안 좋을 것이라 추측할 뿐, 정말 오계부의 상황이 어떠한지는 아직 모르네. 제 대인은 여전히 고열에 시달리고 있어, 수액을 맞히고 해열제를 먹였소. 냉 대인과 함께 들어가 상황을 자세히 물어봐야겠소. 하지만 꼭 마스크를 끼고, 병을 막아야 하오." 원경릉은 유행성 독감이나 변이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일 것이라 의심하고 있었다. 그녀가 살던 세계에서는 A형 독감의 대규모 변이가 십수 년마다 한 번씩 발생했는데, 그런 변이 독감은 현대에서도 의료 체계에 큰 부담이 되곤 했다. 그러니 지금 이곳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만약 역병이 다시 시작한다면, 가능한 한 빨리 통제해야만 했다. 원경릉의 말을 우문호와 냉 대인은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도
원경릉은 청진기를 꺼내 그의 폐를 확인해 보았는데, 남녀가 가까이 접촉하는 것이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한 제 대인은 이내 손을 뻗어 그녀를 막으려 했다. 하지만 병세가 심해 아픈 데다가,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묘한 위압감을 풍기는 의원의 단호한 눈빛과 기운에 그만 압도당하고 말았다. 원경릉은 앞쪽을 청진한 뒤, 그에게 옆으로 돌라고 한 다음에 꼼꼼히 살피고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며칠을 아프신 것입니까?" 제 대인은 꽉 막힌 코 때문에 콧소리를 내며 천천히 몸을 돌리고 답했다. "며칠 사이의 일입니다. 오계부를 떠날 때도 멀쩡했는데, 밤새 달리고, 말을 오래 타다 보니 고뿔에 걸렸나 봅니다." "기침 말고, 가슴 통증도 있습니까?" "예. 이곳이 아픕니다!" 제 대인은 가슴 근처를 손으로 누르며 말했다가, 숨쉬기가 어려운 듯 손바닥을 움직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도 아프고, 온몸 뼈마디도 다 아픕니다." 그러자 원경릉은 더 자세히 증상을 확인한 뒤 말했다. "약을 준비할게요. 수액을 좀 맞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수액이요?" 제 대인은 멍하니 원경릉을 바라보았다. "예. 질문은 하지 마시고, 그저 치료에 협조만 해주십시오. 병세가 꽤 심각한 편입니다." 원경릉은 제 대인이 폐렴이라 확신했고, 중증 폐렴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제 대인은 병이 심하다는 말에 초조한 표정을 지으며 다급히 말했다. "의원 나리, 제발 최선을 다해 치료해 주십시오… 저에게는 아직 모셔야 할 노모가 있습니다. 지난달 병으로 형님께서 세상을 떠난 터라, 형님의 자식들도 제가 돌봐야 하니, 절대 이대로 목숨을 잃을 수는 없습니다." 원경릉이 답했다. "최선을 다할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 치료에만 집중하시지요!" 제 대인은 감동을 받은 듯 감사 인사를 올렸다. "정말… 감사합니다." 원경릉은 곧바로 약을 지어 수액을 준비했다. 수액을 맞는 동안, 제 대인은 여전히 놀란 모습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