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상황과의 대화우문호가 이 말을 듣고 화내는 대신 오히려 웃으며, “전 참지 않겠습니다. 태자라는 자리에 맞지 않지요?”“닥쳐!” 명원제의 눈에 점점 분노가 일더니, “오늘 네 심리상태가 불안정하구나. 태자비로 인해 상심이 심한 너와 짐이 대립해 봤자, 넌 헛소리만 지껄이니 짐이 너에게 벌을 내리게 될 뿐이야.”우문호가 슬픔이 폭발하며 얼굴이 돌연 보랏빛으로 변하더니, “기왕 들이받는 거 한 마디 더 할 게요. 넷째는 몇 번이고 절 죽이려 하고 무리를 지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고 역모를 꾀한 데다 지금은 제 아내를 다치게 했는데, 전 넷째를 포용하고 참아야 하는 군요. 아바마마, 편애가 너무 심하십니다. 실망이예요.”명원제가 탁자를 치고, “입 닥쳐, 네가 지금 제일 먼저 할 일은 태자비를 구할 방법을 찾는 거지 추궁하고 복수하는 게 아니야, 썩 나가!”우문호는 고집스럽게 고개를 들어 명원제를 보더니 두 걸음 물러나 전혀 달갑지도 수긍하지도 않는 표정으로 돌아서서 나갔다.목여태감이 거의 놀라서 죽을 듯이 얼른 달려왔다.“전하, 기다리세요!” 목여태감이 앞으로 나와 붙잡고 이마의 땀을 닦았다.우문호는 분을 삭이지 못하고 목여태감에게, “태감 아무 말도 하지마요, 내게 생각이 있으니.”목여태감은 우문호의 광기어린 모습을 보고 말이 통할 상태가 아님을 알고 탄식하며, “아닙니다. 소인 그저 전하께 한 말씀 드리려 했던 것으로, 태상황 폐하께서 궁으로 돌아오셨는데 태자비 일로 상심이 크시니 가셔서 몇 마디 위로해 주셨으면 해서요.”우문호는 마음이 아파서 발길을 돌려 건곤전으로 갔다.목여태감도 마음이 괴로워서 작은 소리로, “폐하께서 이틀간 잠을 못 주무셨습니다. 태자비 마마를 많이 걱정하고 계세요.”태상황이 궁으로 돌아와 상태가 별로 좋지 않은 게 다시 담배를 피워 밤에는 기침이 멎지 않고 숨을 잘 쉬지 못하고 잠도 들지 못하는데 이번에는 종일 침대 곁에서 지키며 산소호흡기를 대 주고, 약을 챙겨주거나 노심초사 돌봐 주며 웃긴 얘기를 해서 자신
쓰러진 상선눈 앞의 모든 정국에 대해 사람들이 얘기하는 게 다 일리가 있음을 우문호도 마음 속으로 알고 있다. 심지어 우문호가 속으로 그런 생각을 얼마나 많이 했는 줄 알아? 그러니 매번 참으라고 자신을 타일러 왔고, 어쨌든 머리속으로 한 번 걸러 내야 겨우 가슴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우문호는 태상황에게 철저하게 마음의 빗장을 푼 상태라 태상황의 말이 귀에 들리고 고개를 끄덕이며, “알겠습니다.”상선이 차를 가지고 들어와서, “전하, 입술이 말라서 깜짝 놀랐습니다. 어서 차를 드세요!”우문호가 고개를 들고 상선을 보더니 안색이 심하게 창백한 게 태상황의 병으로 쉬지 못했음을 알고, “태감 고마워요, 안색이 좋지 않으니 건강에 신경 써요.”상선이 웃으며, “소인은 괜찮습니다. 소인의 몸은 여전히 건장하지요.”상선은 차를 탁자위에 올려놓고 쟁반을 들고 돌아서는 찰나 쓰러져버렸다.우문호가 놀라서 얼른 부축하며, “태감!”“태감?” 우문호가 이상하다고 느낀 게 태감이 혼절해서 얼른 얼굴을 두드리며, “태감, 일어나요.”태상황이 고개를 내밀고 보다가 천천히 일어나서 놀라 허둥거리며 입술을 달싹이는데, “어……어의를 불러라!”우문호와 태상황이 건곤전 복도에 앉았는데 태상황은 전에 여기 앉아 있는 걸 좋아해서 복도엔 늘 낮은 걸상이 하나 놓여 있다. 여기선 정원의 풍경을 다 느낄 수 있고, 둘러싼 담장 밖의 하늘을 볼 수도 있다.어의가 건곤전 안에 있고 상황은 아직 알 수 없으나 태상황은 여기로 나와 앉겠다고 고집을 부렸는데, 다 늙은 목숨 여기를 지키고 있겠다며, 온갖 귀신 저승사자 중 감히 뭐가 와서 상선을 데려가는지 지켜보겠다고 했다.움켜준 손목과 전신의 근육이 극도로 긴장해서 마치 적과 대치하고 있는 것 같다.한평생을 함께 해 온 동지로 아침저녁으로 마주하며 이 세상의 수많은 비바람을 거쳐 고난과 재앙에 함께 맞서 왔다. 만약 상선이 이 고비를 넘기지 못하면 황조부가 얼마나 상심할지 우문호는 상상이 되지 않는다.족히 반 시진 동안 아무 말
현실을 알아가는 우문호오랜 적막이 얼마나 계속 됐을까, 발자국 소리가 났다.“노마님, 자상하셔라!” 만아가 할머니를 모시고 들어왔다.우문호가 일어나와 부축해 드렸다.사식이가 따라 들어오고 손에는 물건을 들고 있는데 우문호가 흘끔 보니 낯설지 않은 게 이건 원경릉의 약상자에 있던 것으로 전에 박원의 몸에서 본 적이 있다.노부인이 사식이와 만아를 나가라고 하고 앉아서 우문호에게, “경릉이가 혼수상태에 빠지기 전에 얘기한 적이 있어요, 처음 3일은 수액으로 생명을 유지하고 삼일 후에도 깨어나지 않으면 엘튜브로 비위관 영양을 유지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오늘이 나흘째예요, 꽂아야 합니다.”우문호가 깜짝 놀라며, “자신이 혼수상태에 빠질 걸 알았습니까?”“그래요, 알았어요. 미리 준비를 했죠. 그러니 사위 양반, 너무 상심하지 말아요. 반드시 돌아올 거라는 믿음을 가져 주세요.” 할머니가 우문호의 손을 두드리며 다독거려 주었다.우문호는 이해가 되지 않아, “왜? 왜 혼수상태에 빠졌죠?”할머니가 고개를 흔들며, ”나도 잘 몰라요, 경릉이가 깨어나면 그때 물어보세요. 난 그저 시키는 대로 해 줄 뿐이니까, 사위가 집안의 가장이니 누구보다 침착해야 합니다.”잠시 후 할머니가, “혹시 아이들에게 물어보면 어쩌면 걔들이 알지도 몰라요, 경릉이와 아이들이 얘기하는 걸 들은 적이 있는데 아이들이 알고 있는 것 같았어요.”“바로 갈게요!” 우문호가 아이들의 비범한 능력을 생각해 내고 마음 속에 한줄기 희망이 생기더니 바로 일어났다.할머니가 불러 세우며, “사위 양반, 와서 나 좀 도와줘요.”“아!” 우문호가 몸을 돌렸다.우문호는 비강 삽관에 대해 전혀 모르지만 그나마 할머니가 익숙하신 편이라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다.“경릉이와 배속에 아이는 잠시동안 오직 이 비위관 영양에만 의지해 생명을 유지하니 절대로 경솔해서는 안됩니다. 사위 양반, 안에서 시중 드는 사람을 잘 살펴서 만에 하나라도 신중하셔야 합니다. 아셨지요?”“예, 알겠습니다.” 우문호는 원경릉의
제어우문호는 아이큐 차이는 생각하지 않고 자신을 뭉개 버리는 아이들에게 완전 무시 당하면서도 그저 한가지만 다그쳤는데, “그럼 너희들은 외할머니 쪽 사람을 제어할 수 있어?”셋이 서로 마주보더니, “그건 해본 적이 없지만 우리는 요 이틀 동안 여기 사람을 제어했어요.”“여기 사람을 제어했다고?” 우문호는 눈을 가늘게 뜨고 습관처럼 무서운 표정을 지으려 했다가 어떤 때인지 생각하고 이런 건 다 별일 아니므로, “외할머니 쪽 사람을 제어할 수 있는지 시험해 보자.”“안 해봤어요.” 셋 다 좀 막연해 하며, “그쪽에 뭘 해요? 우리도 모르는 사람인데요, 그리고 여기서 제어하는 것도 전부 엄마가 우리와 얘기하고 우리가 하기 시작하는 거라 재미있어요. 그 사람들은 보면 도망가는데 울고불고 아우성을 쳐요.”“엄마가 언제 너희들에게 사람을 제어하라고 말씀하셨지?”만두가, “죽은 사람을 제어하는 건, 엄마가 잠들기 전에 말씀하신 거예요, 살아있는 사람을 제어하는 건 힘들어요. 머리도 아플 거고, 하지만 죽은 사람을 제어하는 건 그럴 리 없어요. 저녁에 잘 때 다른 사람의 몸으로 밖에 나가서 놀 수 있어요, 우리는 전부 두번씩 가서 놀아봤어요. 한번은 땅에서 기어 나와야 해서 힘들었지만요.”말을 마치고 의기양양하게 우문호를 보는게 정말 재미나게 놀았던 모양이다.우문호가 어금니를 꽉 깨물고 나중에 두고 보기로 했다.“잘 들어, 저녁에 잘 때 외할머니가 계신 그쪽에 갈 수 있는지 시험해 보자, 그래서 주지스님을 찾고 주지스님에게 엄마 상황이 지금 어떤 지 물어 볼까? 우리가 뭘 해야 하는지도.”만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어, 그럼 우리가 외할머니를 찾아가는 건데 외할머니가 어떻게 생겼는지 몰라요.”경단이가, “증조할머니를 찾자, 증조할머니는 알아, 아직 문패 번호 아신다고 했어. 대단하지.”“나도 알아, 할머니가 말씀하신 적 있어.” 찰떡이가 말했다.“그럼 우리 오늘 밤 가자!” 셋이 말을 마치고 잽싸게 침대에 기어올라가더니 잠이 들었다.우문호는 아이들
시체가 달아나다“머리가 안 좋으신 가봐.”“어휴, 정말 걱정이네.”우문호는 말없이 하늘을 보며, 자신은 이미 충분히 똑똑하지 않나? 이 정상인의 세상에서.우문호는 원경릉을 지키다가 안정이 안 돼서, 돌아가서 아이들이 지금 진도가 어떤 지 보고싶다. 나가서 문까지 갔다가 걔들이 얘기한 게 떠올라 뒤로 돌고, 밤새 갔다가 돌아섰다가 수십번을 하고 결국은 들어가지 못했다.돌아와 누워 살짝 원경릉을 안고 손으로 원경릉의 배 위에 올리자 전에 원경릉이 세 아이를 임신했을 때가 다시 떠올랐다. 배속에서 종일 움직이더니 지금 이 아이는 움직이지 않는다.우문호는 걱정이 되기도 하고 초조해서 말 못할 걱정을 안고 아파했다.그들 사이에 둘째 문제를 얘기한 적이 없는 게 첫 임신이 너무 사람을 놀라게 해서 둘째는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았고, 우연히 거론된 적은 있지만 바로 화제를 매듭지어 버렸는데 이렇게 임신을 했을 거라고 상상도 못했다.“당신, 어서 좋아지자.” 우문호는 처음으로 졸음이 몰려왔다. 어쩌면 뭔가 정해지고 조금씩 방법이 생길 수도 있다는 조짐이 보여서 일지도 모른다.광원시 제일 인민병원“주임님!” 누군가 다급하게 심장외과 주임 사무실로 뛰어들어와, “오늘 주임님이 응급 치료하셨던 환자 장소소(章小小)를 장의사에게 이송하는 과정에서 갑자기 깨어나 달아났다고 해요.”주임이 벌떡 일어나, “뭐라고? 그건 불가능해.”“정말이예요. 장의사 쪽 사람이 지금 병원으로 돌아왔어요, 원장실에 계세요.”주임이 경악하며,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해?”환자는 그가 책임진 응급 환자로, 아이가 응급실로 왔을 때 이미 심장이 뛰지 않고 아드레날린과 제세동기도 사용했지만 살려낼 수 없었다.“가족은?” 주임이 얼른 물었다.“가족은…… 고아원 쪽이요? 아마 병원에 없을 거예요. 제가 연락해 볼 게요.”“원장실로 가지!” 주임은 오랜 의사생활동안 이런 상황을 본 적이 없어 어안이 벙벙할 뿐이다.원장실에는 장의사가 아직까지도 놀라서 창백해진 얼굴로 최선을 다해 말
원교수를 찾아간 아이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교통경찰이 도로 CCTV영상을 조사하니 확실히 장의사 기사가 말한 것처럼 그 아이가 갑자기 달려 나와서 차량 사이를 위험천만하게 다니는데 다행히 매 순간 적절한 데 피해서 어떤 사고도 내지 않았다.제일 중요한 건 그 아이는 반대쪽 길로 넘어갔는데 그 철책은 1m는 족히 넘었고, 그 아이 키는 철책 높이도 안되는데 바로 넘어가서 사뿐히 착지한 것으로, 털끝만큼의 주저함없이 광란의 질주를 계속했다.그 아이는 목적을 가지고 달렸는데 방향이 아주 분명해서 서남로(西南路)쪽으로 갔다. 광원시는 곳곳에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어 이 아이는 서남로 부근에 접어든 후에도 계속 추적할 수 있었는데 마지막으로 사라진 곳은 복만구(福灣區)였다.“원교수님이 복만구에 사시지 않으십니까?” 심장외과 주임이 기억하는 바에 따르면 원교수는 거기 산다.“맞습니다.” 원교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하지만 복만구는 넓고 카메라가 그 아이의 다음 장소를 추적하지 않아서 찾기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복만구에 들어간 뒤 카메라는 그 아이를 찍지 않았습니까?” 주임이 그 교통경찰에게 물었다.“아니요. 계속 CCTV에 나오지 않습니다.” 교통경찰이 말했다.이 말은 주택가로 들어갔다는 말로 그럼 더욱 찾기 어려워 진다.그 아이가 거기 가서 뭘 하는 거지? 그 아이는 고아원 아이인데 돌아가더라도 익숙한 고아원으로 가야지 복만구에 가서 뭘 하려는 거지?다음은 경찰 쪽에 수색을 맡기고 병원 수뇌부는 단지 임상 사망선고가 사실에 의거했는지 조사하는 것만 책임졌다.원교수는 병원에 남았다가 저녁이 되어서야 동네로 돌아갔다.차를 몰고 마을 입구로 들어서는데 보안요원이 잡더니, “원선생님, 아이 하나가 그 아파트 동 아래서 한동안 방황하며 선생님을 찾는다고, 아이를 보니 상당히 가엽더군요. 배도 고프고 목도 말라 보이는 게.”“아이요?” 원교수가 놀라며, “이름이 뭡니까? 어른이 데리고 왔나요?”“아니요, 혼자였어요. 어떻게 들어왔는지 저도 모르겠습니
찰떡이와 원교수“찰떡이구나, 이름이 참 예쁘네, 그럼 찰떡이 말고 다른 이름도 있니?”“있어요, 전 우문화라고 해요.”“오, 이 이름 정말 예쁘구나.”“맞아요, 우리집 이름은 다 예뻐요, 큰 형은 우문례, 자는 동청, 아명은 만두, 둘째 형은 우문효, 자는 남성, 아명은 경단, 저는 셋째인데 이름은 우문화, 자는 인동, 아명은 찰떡이예요. 예쁘죠?” 찰떡이가 술술 얘기하는 부드러운 목소리가 특히나 사람을 편안하게 했다.원교수는 아이를 보고 마음이 이상한 게, “응? 너희는 이름이 있고 자도 있구나? 넌 이렇게 어린 데도 잘 아네?”“자는 엄마가 붙여 주신 거에요. 이름은 황조부께서 붙여 주신 거고, 아명은 서일 아저씨가 붙여 주셨어요.”원교수는 아이를 데리고 엘리베이터를 타며 놀라서, “뭐? 황조부?”“맞아요, 그런데 태상황조부께서 붙여 주신 거라고 해야 하나, 엄마가 똑바로 얘기를 안 해줘서, 외할아버지가 엄마한테 붙여준 이름도 예뻐요, 원경릉, 얼마나 예뻐요. 외할아버지, 아는 글자 많죠? 저도 글자 많이 아는데.”원교수는 입술을 떨며, 찰떡이를 보고, “너……너 지금 뭐라고 했어?”“저도 글자 많이 안다고요.” 찰떡이가 흑요석 같은 눈을 반짝거리는 것이 천사 같다.“네 엄마가 원경릉이라고?” 원교수는 이건 너무 상식에서 벗어난 상황이라 믿을 수가 없어서, “네가 말한 원경릉이…… 내 딸 원경릉이라고?”“외할아버지, 할아버지 딸을 할아버지가 몰라요?” 찰떡이가 곤혹스런 표정으로 원교수를 봤다.원교수는 쭈그리고 앉아 아이의 양 어깨를 잡고 눈가가 촉촉히 젖은 채로, “세상에, 이 아이가 네가 아무 말이나 하는 거면 이런 건 알 수가 없어. 얘야, 넌 도대체 누구니? 어떻게 왔어?”“증조할머니가 주소를 알려주셨어요, 저 알아요.”“증조 할머니?”“네, 증조할머니요, 이렇게……” 찰떡이는 두 손을 입가에 대고 아래로 입꼬리를 내리며 얼굴 피부를 아래로 처지게 아주 늙은 할머니 모습으로 입에 송곳니를 내밀고, “여기 은색 이빨이 있어
찰떡이와 외갓집 식구찰떡이가 안정적으로 소파에 앉아서 원교수를 보는데 방금 원교수는 쉴 새 없이 뭐라고 했는데 외할아버지가 이렇게 긴장한 모습을 보고 어린 마음에 약간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외할아버지,” 찰떡이가 갑자기 약간 걱정스럽게, “제가 가짜일 까봐 두렵지 않으세요? 저한테 먹을 걸 사주는 거 아깝잖아요?”부드럽고 여리여리한 목소리에 원교수의 마음은 그 자리에서 녹아내려 손자 바보가 되었고, 눈물로 앞이 흐려졌다.“아깝지, 뭐든 아깝지, 네 눈동자가 네 엄마 어릴 때랑 똑같아.” 원교수가 찰떡이의 얼굴을 쓰다듬는데 이목구비는 다른데 유치하고 단순함 그리고 총명하기 그지없는 눈빛은 엄마랑 똑같다.엄마와 오빠는 집에 무슨 일이 생긴 줄 알고 황급히 돌아왔다. 오빠가 소리치며, “아빠, 무슨 일……”말을 다 하기도 전에 원교수가 아들의 입을 막고 한쪽으로 데려가서, “쉿, 잔다 자. 조용.”“누가 자요?” 오빠가 원교수의 손에서 벗어나 소파에 누워 꿀잠을 자고 있는 꼬마를 보고, “어느 집 애예요?”“네 여동생, 여동생 아들이야. 우문화래. 자는 인동이고 아명은 찰떡이. 먹다 지쳐 잠들었어. 봐, 저 초코 우유는 아직 다 마시지도 않았어.” 원교수가 말했다.오빠는 놀라서 황급히 아빠를 한쪽으로 데려가더니, “아빠, 이 일때문에 저랑 엄마를 오라고 하신 거세요? 누구한테 속은 거예요? 이 애는 누가 데려왔어요? 돈 달래요?”엄마도 화들짝 놀라며 이런 일은 상상도 하지 못하고 허탈하다는 듯이, “이것 봐요, 이런 일로 사기를 당해요? 어디서 이렇게 큰 손자를 공짜로 주워왔어요?”“아냐, 진짜야.” 원교수가 얼굴이 벌게져서 해명을 했다.“증거가 어디 있어요? 쟤가 뭐라고 한다고 그 말을 믿어요?” 엄마는 완전 열 받아서 앞으로 가서 아이를 보더니 어이가 없다는 듯, “봐요 어디가 딸을 닮았다는 거예요? 딸이 지금 어디 있는지 알잖아요. 걔 아들이 어떻게 여기 있을 수가 있어요? 딸 생각하다가 정신이 나가서 아무나 믿고.”원교수가 이 말을
세월이 흘러, 택란이 열한 살 되던 해에 드디어 만두가 돌아왔다.어린 나이에 집을 떠난 그는 이제 완전한 청년으로 성장해 돌아왔다. 그리고 떡들 세 명은 만으로 따지면 이미 열일곱 살이 되었다.만두는 도착하자마자 먼저 황제의 허락을 받고 군에서 수련을 시작했다. 비록 국경에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지만, 국력이 항상 군사력의 안정에 의해 뒷받침되기 때문에 군 경험이 매우 중요했다.나라를 안정적으로 통치하려면 먼저 군심을 얻어야 한다.우문호는 그의 선택을 전폭 지지하며, 국가에 대한 소속감을 키워주기 위해서 그를 작은 병사로 임명하여 군에 들여보냈다. 약도성은 이미 재건이 대부분 완료된 상태였다. 백성들도 마음을 다잡았고, 이제는 본격적인 발전만 남아 있었다. 이리 나리와 홍엽이 이곳에 왔을 때, 냉명여를 약도성에 남겨두었는데, 호명이 챙기려 했으나, 냉명여는 택란 곁에서 그녀를 보호하겠다고 고집을 부렸다.꽤 고집이 센 아이기에 그는 그저 놔두기로 했다. 변경은 심지를 단련하기에 좋은 곳이었고, 호명이 보살펴 주며 저택 안에 거주했기에 큰 문제는 생기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한편, 금나라에서는 새로운 소식이 전해졌다. 진국왕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 황제가 본격적으로 조정을 이끌게 되었다는 것이다. 수도는 원래 약도성 접경 지역에 새롭게 지은 곳으로 옮겨졌고, 이름 또한 량주로 바뀌었다. 금나라는 이제 공식적으로 량주를 수도로 정했다.이 소식이 약도성에 전해지자, 택란은 무척 기뻐하며 주 아가씨에게 물었다.“이제 본격적으로 채굴을 시작해도 될 것 같소. 금나라에 한 번 가볼 생각인데, 자네도 같이 가는 것이 어떻소?”그 해 택란은 훌쩍 성장해 주 아가씨보다 조금 더 커 있었다. 주 아가씨는 때때로 그녀를 보며, 대나무가 환생한 것이 아닌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며칠 사이에 또 훌쩍 자란 것이다.택란의 아이 같던 분위기는 사라졌고, 훨씬 차분하고 성숙한 분위기를 풍겼다. 약도성의 거센 바람과 강한 햇빛 때문에 원래 하얗던 피부는 건강한 빛을
우문호는 정정이 계란이를 언급하지 않은 것을 보고 마음이 조금 놓였다. 보아하니 혼인 문제에 있어 두 사람은 합의를 봐 더는 이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 것 같았다.정정 대장군 부부는 경성에서 반 달 동안 머물렀고, 그동안 정정과 우문호는 시간이 날 때마다 말을 타거나, 군영과 산을 누비며 백성들을 살폈다.대두는 아이들과 즐겁게 지냈다. 비록 처음 이틀 동안은 계속 만두를 보고 싶다고 떼를 썼지만, 이제는 만두를 완전히 잊은 듯했다.그는 란이와도 갈등을 풀었고, 오히려 제일 친해져서 무엇을 하든 항상 함께했다.그렇게 2주가 지나 정정이 작별을 고하기 전, 우문호에게 대두의 배필을 찾은 것 같다고 말하며, 대두는 그녀가 자랄 때까지 잘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그의 말에 우문호가 어리둥절하며 물었다.“누구요?”정정이 웃으며 말했다.“지금은 말할 수 없소. 아직 확정된 일이 아니라, 나중에 잘못되면 감정이 상할 수도 있네.”“우리 사이에 말 못 할 게 어딨소?”우문호는 그의 말에 이미 기분이 상한 것 같았다.그러자 정정이 더욱 짓궂게 웃으며 말했다.“들으면 자네가 조급해질까 봐 그러네!”우문호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난 지금 이미 엄청 조급하네.”정정은 크게 웃으며 그의 어깨를 철썩 때리며 위로했다.“걱정하지 마시게. 계란이는 아니네. 계란이는 내 딸이기도 하니, 절대 며느리가 될 수 없소.”다른 남자가 계란이를 자기 딸이라 부른 건 처음이었지만, 우문호는 반감 없이 오히려 매우 기뻐, 활짝 웃으며 말했다.“맞네, 자네 말이 맞아. 계란이는 자네 딸이기도 하네. 우리 모두의 착한 딸이지.”근영군주는 이 말을 듣고 웃음을 터뜨리며 원경릉에게 말했다.“보아하니, 우리가 여기서 제일 쓸모없는 존재 같습니다…”“맞는 말입니다!”원경릉이 진지한 표정으로 맞장구치자 근영군주가 그녀를 가볍게 안으며 말했다.“앞으로는 자주 만나지 말고, 1년에 한 번만 봅시다! 시간이 어찌 이리 빨리 흐른다는 말입니까?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 눈
목장에서는 전보다 훨씬 뛰어난 전투마들을 사육했기에, 우문호는 마치 보물을 자랑하고 싶은 어린아이처럼 당장이라도 정정과 함께 보러 가고 싶어 했다.그러자 근영군주가 웃으며 말했다.“폐하께서 아직도 소년 같은 순수함을 지니시고 있다니, 참 보기 드물고 귀한 일이군요.”하지만 원경릉의 귀에는 이 말이 남편이 어린아이 같다는 말로만 들렸다.그녀는 이내 웃음을 터트렸다.“하하하. 사내들이 가끔 저렇게 유치할 때가 있잖습니까.”근영군주도 깊이 공감하며 말했다.“예. 평소엔 유치하다가도, 필요할 때는 놀라운 배짱과 결단력을 보여주지요. 집안을 지탱하기도 하고, 나라를 떠받치기도 하고. 안 그렇습니까?”원경릉도 미소를 띠며 고개를 끄덕였다.“맞습니다.”남자들이 말을 타러 나가자, 원경릉과 근영군주는 궁전 안에서 담소를 나누기 시작했다. 대두가 몹시 심심해하자 원경릉은 친왕비들에게 아이를 궁으로 데려와 아이들끼리 놀게 했다.대주의 손님을 정성껏 대접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기에 친왕비들은 아이들을 데리고 궁에 들어왔다.사실 대두와 비슷한 나이의 아이는 많지 않았다. 미색의 두 아이와, 원용의의 아이 모두 대두보다 어렸지만, 놀 벗이 없는 상황에 나이가 어린 것은 크게 문제 되지 않았다.대두는 외동아들로 자라 성격이 다소 거칠었다. 하지만 미색의 딸인 란이 역시 성격이 강하고 고집스러웠다. 어머니인 미색을 닮아 태생이 강한 성격을 타고난 것이었다.게다가 그녀에게 무술을 배워 한창 센 척을 할 시기라 대두와 몇 마디 말다툼 끝에 결국 몸싸움으로 번져 버렸다.란이가 대두를 때리자, 대두는 얼굴이 퉁퉁 부어오를 정도로 맞으면서도 전혀 반격하지 않고 그저 참고만 있었다. 끝까지 이를 악물고 버텨냈다.란이는 평소 늑대파에서 무술 대련을 했기에 상대가 반격하지 않고 그저 제자리에서 맞고만 있는 멍청한 모습을 경험한 적이 없었기에, 부어오른 대두의 뺨을 발견하곤 깜짝 놀라며 물었다.“어찌... 반격하지 않는 것입니까?”대두는 화난 표정으로 대답했다.“어찌
생각해 보면 이렇게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의 혼사를 정하는 것이 얼마나 황당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아이가 남녀인지도 모르면서 성급한 부모들이 충동적으로 혼사를 결정해 버리다니 말이다. “대두가 아직 이리도 어린데, 벌써 혼사를 이야기하다니요, 우리 만두는 아직 애 입니다.”우문호는 괜히 기분이 답답해졌다.현대로 다녀온 뒤, 사람들이 늦은 결혼과 출산을 선호하는 것을 본 그는 생각이 바뀌었다. 열몇 살에 혼사를 하는 것은 성장의 억압이나 다름없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혼사 이야기를 한다고 당장 하는 건 아니오. 그저 약속만 하고, 몇 년 후에 하겠다는 거네.”“어찌 이리도 태연한 것이오?”우문호가 원경릉의 여유로운 표정을 보며 그녀가 그들이 빚을 받으러 온 걸 모르는 건가 싶었다.“난 걱정 없소. 딸을 보내고 싶지 않으면 당신처럼 쓸데없는 부담감 없이 그냥 바로 거절할 것이오. 형제간의 정이 거절로 인해 상할까 봐 고민한다니, 억지로 혼사를 성사하는 것이 더 정을 상하게 할 것이오.”그러자 우문호가 말했다.“이론적으로는 맞는 말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 마음이 편치가 않소.”후궁에서의 우문호는 조정에서의 단호하고 강력한 모습과는 완전히 딴 사람이었다. 조정에 나서기만 하면 단호하고 과감하며, 마치 번개 같은 결단력을 보여주는 반면, 후궁에서의 그는 망설임도 많고 잔소리도 많은 사람이었다. 원경릉이 다른 왕비들과 대화할 때, 그들도 가끔씩 이 얘기를 꺼내곤 했었다. 다들 다섯째의 평소 잔소리가 예전보다 훨씬 많아졌다며 놀라했다. 하지만 다른 친왕들의 의견은 달랐다. 그들은 그가 예전보다 훨씬 결단력이 있어졌다고 말했다.이런 얘기가 나올 때마다 이리 나리는 한숨을 쉬며, 결국 결단력 넘치는 황제도 결국 자식들 문제에서는 고민에 빠지는구나 싶었다.8월 14일, 정정 대장군 가족이 북당의 수도에 도착하자마자 초왕부에 머물렀다.그들은 초왕부에 머문 직후 탕양의 안내로 우문호를 만나기 위해 궁으로 들어갔다.아무리 큰 걱정도 오래된 벗 앞에서
예전에 원가에서 온 가문이 강북부로 이주한 적이 있었다.북쪽은 바람과 모래가 거셌지만 원가의 사람들에게는 전혀 낯설지 않았고, 오히려 고향과 비슷한 정감을 느끼게 했다.이리 나리는 원가의 사업을 줄이도록 도우며, 관리하기 쉬운 몇몇 가게만 남겼다.탕양은 일곱째 아가씨에게 장사를 내려놓아도 괜찮은지 물은 적 있었는데, 그때 일곱째 아가씨가 말했었다.“그런 말 마시오. 내 능력을 충분히 증명했으니 이제 만족스럽소. 열심히 해서 큰 성과를 얻었으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오. 평생 바삐 지낼 수도 없잖소. 그렇게 돈을 많이 벌어서 뭐 하겠소? 다 잘 살기 위해 번 것이오. 가업을 나눠 받은 돈만 해도 평생 다 못 쓸 만큼 많소. 그리고 가게들도 계속 돈을 벌 텐데 뭐가 아쉽겠소?”탕양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손에 익은 일이라, 혹시라도 아쉬워할까봐 걱정했소. 사실 나도 당신이 이렇게 고생하는 것이 싫었소. 당신만 괜찮다면 다행이오.”일곱째 아가씨는 미소를 지었고, 그의 말에 모두가 기뻐했다.“한가해지는 것도 괜찮소. 1년에 두세 달은 약도성에 가서 지내면 얼마나 여유롭겠소.”하지만 탕양이 눈살을 찌푸렸다. 1년에 두세 달이면, 왕복하는 시간까지 더해 최소 반년은 걸릴 것이고, 그 말은 반년 동안이나 그의 곁에 없다는 뜻이었다.게다가 그도 경성을 몇 달씩 떠나는 건 불가능했다. 지금은 황제 곁을 하루라도 떠나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하지만 그는 그녀가 행복하면 그걸로 충분했다. 물론 그는 늘 함께하고 싶었지만, 오래된 부부였기에 항상 붙어있을 필요는 없었다.북당은 점점 부유해지고 있었다. 원가가 일부 사업을 매각하면서 그 변화를 실감할 수 있었다.가게들은 치열한 경쟁 속에서 싸웠고, 좋은 위치에 있는 가게들은 더더욱 귀한 존재가 되었다.원래 원가는 모든 가게를 이리 나리에게 넘기려 했지만, 이리 나리는 거절했다.그리고 안풍친왕이 먼저 나서서 이리 나리가 이미 너무 많은 가게를 보유하고 있고, 특히 경성에서의 비중이 지나치게 높아 독점 우
원경릉이 깜짝 놀라며 말했다.“일곱째요? 일곱째는 분명 원용의에게 말할 것이고, 원용의는 또 사식이에게 얘기할 것이고, 사식이도 분명 서일에게 전할 것일 텐데요. 만약 서일이 알게 되면, 이제 북당 전체가 다 알게 될 것이오.”우문호는 순간 당황해하며 말했다.“그건 내가 생각지도 못했네.”원경릉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아마 지금쯤 황실 친왕들 사이에서 이미 탕양의 이야기가 뒷말로 오가고 있을 것이었다. 겨우 부인을 얻었는데, 밤에 함께 자지 못한다니 참 안타까운 일이라 생각할 것이다.우문호는 탕 대인에 대해 미안한 마음이 들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다들 뒤에서 탕양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여인들이 수군거리니, 남자들은 그를 도우려 했다.물론 부부 사이의 일에 직접적으로 간섭할 수는 없었기에, 대신 탕양을 술자리로 초대해 술로 고민을 푸는 방법을 제안했다.그렇게 며칠째 술을 마시던 탕양은 자신의 비밀이 모두에게 알려졌다는 사실을 깨달아 한숨을 쉬며 말했다.“제 탓입니다. 폐하가 비밀을 지키지 못한다는 걸 깜빡했습니다.”제왕이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너무 신경 쓰지 말거라. 이런 일은 억지로 되는 게 아니다. 여인은 때로 달래줄 필요가 있는 법이다.”그러자 탕양이 어찌할 바를 몰라하며 말했다.“제가 폐하께 이 이야기를 했을 땐, 혼례한지 얼마 안 되었을 때였습니다.”“알고 있다. 서두르지는 말거라.”모두가 이해한다는 눈빛으로 탕양을 바라보았지만, 탕양은 더 이상 해명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그들은 이미 혼인했지만, 오랜 부부 생활을 한 터라, 남녀 간의 정이 때로는 하루아침에 급격히 발전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탕 대인은 돌아가자마자 일곱째 아가씨에게 이 일을 전했다.그러자 일곱째 아가씨가 웃으며 한숨을 내쉬었다.“정말이지, 어찌 허구한 날 남의 부부 일에만 관심을 가지니, 할 일이 없나 보오.”“신경 쓰지 마시오. 우리가 잘 살면 그만이니.”탕양은 일곱째 아가씨를 안으며 자신감에 찬 표정을 지었다.
원경릉은 궁으로 돌아와 이 일을 다섯째에게 이야기했다. 그러자 다섯째가 말했다.“사실 한 번 돌아가는 것도 괜찮을 것 같소? 그저 경성만 한 바퀴 둘러보면 되지 않소.”“아이들을 데려다줄 때 휘종제 어르신께서 슬퍼하셨소. 이번 생에 고향으로 못 돌아올지도 모른다고. 그래서 돌멩이 하나를 건네주니, 그걸 안고 울었소.”“정말 안타깝소!”다섯째는 증조할아버지 생각에 마음 아파했지만, 이내 말을 이어 나갔다.“하지만 큰할아버지께서 그를 데려오지 않는 이유도 있을 것이오. 휘종제 어르신을 잘 아는 것도 아니지 않소? 몇 번 만나보니, 활달하고 산만한 성격에 무슨 사고를 일곱째인지 모를 것 같은 느낌이 들었소.”“맞소.”원경릉도 깊이 공감했다. 특히 그가 전화로 끈질기게 설득할 때는 정말 무서울 정도였다.“다른 일은 없었소? 부모님 건강은 어땠소? 처남은 여자 친구가 생겼소? 만두는 공부를 잘하고 있소?”다섯째가 끊임없이 질문했다. “괜찮소. 부모님 건강도 괜찮긴 하지만, 아버지께서 고혈압이 생겨서 약을 오래 드셔야 하오. 오빠는 여자 친구가 없네. 주진과 아직도 서로 솔직히 이야기하지 않은 상황이오. 만두는 걱정 안 해도 되네. 내년에 돌아올 것이니.”“다행이오!”다섯째가 기뻐해 하며 말했다. 그는 늘 만두의 능력을 눈여겨보았기에, 그가 돌아오면 나라의 일들을 조금이라도 도와줄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비록 많은 부담을 짊어지진 못하지만 그래도 괜히 기대가 되었다.“추 할머니 병은 어떠하신가?”다섯째가 또 물었다.“아직은 괜찮소. 아주 좋아졌네. 약에 내성이 생기지만 않으면 큰 문제는 없을 것이오.”원경릉이 말하자 다섯째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분들이 늘 건강해지시길 바랄 뿐이오.”평범한 사람들조차도 적성루 사람들에게 감동하기 쉬운데, 하물며 북당의 황제인 자신은 오죽하겠는가.“계란은 소식 왔소?”원경릉이 물었다.“왔네. 보시오!”다섯째는 소매 안에서 구겨진 편지를 꺼냈는데, 비둘기를 통해 받은 그 편지에는 몇 줄의 짧은
“별다른 뜻은 없소. 오늘 밤에 유난히 감성적이라 그저 한마디 해본 거네. 사실 너무 감동해서 그러네. 비록 항상 탕 대인에게 빨리 혼인하라고 재촉하긴 했지만, 그가 일곱째 아가씨와 혼인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소.”“괜찮소!”원경릉은 그의 품에 안겨 그의 심장 소리를 들으며 말했다.“어쨌든 탕양은 우리와 함께 걸어온 사람이오. 그러니 그가 사랑하는 여인과 함께하게 된 건 우리 모두에게 기쁜 일이오.”우문호는 벌써 술에 취한듯 머리가 약간 어지러웠다. 술에 취하면 항상 눈앞의 모든 것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곤 했는데, 익숙한 천장, 익숙한 사람, 익숙한 탁자와 의자. 취기가 돌며 모든 것들이 꿈처럼 느껴졌다.그는 마치 다시 초왕 우문호로 돌아간 듯했고, 갓 원경릉과 마음이 통했던 때로 돌아간 기분이었다.그 당시 외부 정세는 불안정했고, 태자 자리를 둘러싼 다툼이 막 시작되었던 때였다. 형제끼리 반목하며, 치열하게 싸웠던 시절을 돌아보면 잃지 않고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얻었다는 사실에 감사하게 되었다.우문호가 원경릉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말했다.“원 선생, 몇 년간 아주 긴 꿈을 꾼 것 같지만, 되돌아보니 정말 다행이라고 느껴지네. 사실 모든 행운과 행복은 원 선생의 잘못된 연구에서 비롯된 것이오. 원 선생이 오지 않았다면 내 인생이 어땠었을까 싶네.”그러자 원경릉이 말했다.“누군가가 이 세상에 몇 시간과 공간이 존재한다고 했소.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이 다른 세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을 수도 있네. 아마도 어떤 공간에서는 내가 없는 대신 다른 사람이 당신과 함께 있을 수도 있소.”우문호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그 세상 속의 나는 정말 불쌍할 것이오.”“그건 모르오. 어쨌든 그곳의 당신은 나를 모르고, 우리가 지금 얼마나 행복한지도 모를 것이오. 각자가 행복을 정의하는 방식은 다르오. 어떤 사람들은 매 끼니 고기가 있는 게 최대의 행복일 수도 있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은 봉급이 오르길 바랄 것이오. 또 가족이 화목하고 건강하기를 바라기도 하고
우문호는 혼인을 하사하는 조서를 내렸다. 이는 탕양의 혼사에 화룡점정을 더하는 일이었다.온 경성 사람들이 탕양이 황제를 모시는 신하인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녀의 혼사에 주목했다.탕양은 왕부에서부터 황제를 지지해 온 충신이었으며, 군신 간의 정은 형제의 관계에 못지않았다.거기에 황제가 직접 혼인을 하사했으니, 이는 더할 나위 없는 영광이었다. 그래서 다들 두터운 예물을 준비해 축하하러 왔다.혼례는 초왕부에서 열렸다. 비록 초왕부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지만, 이번 경사에 많은 지원이 몰렸다. 여러 왕부에서 사람을 보내왔고, 미색은 돈에 힘까지 보태며 혼사 지출의 3할이나 부담했다.희상궁도 돌아와 모든 일을 총괄했다. 희상궁은 비록 나이가 많았지만, 여전히 일 처리 능력이 뛰어났다. 그녀는 여러 왕부에서 온 사람들을 지휘하며 완벽하게 일을 조율했다.혼례 당일, 황제와 황후도 참석했다.신부가 도착하여, 혼례를 올릴 때 우문호와 원경릉은 상석에 앉아 신랑 신부의 절을 받고는, 그 다음으로 기상궁도 절을 받았다.우문호가 원경릉의 손을 잡으며 흐뭇한 표정으로 말했다.“탕 대인이 드디어 철이 들었고, 가정을 이루었으니 정말 기쁘네.”원경릉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이제 마음이 풀립니까? 그러니 앞으로는 더 이상 잔소리하지 마시지요.”“잔소리는 계속할 것이다. 이젠 아이를 낳으라고 해야지.”우문호는 걱정이 끝이 없다는 듯 말하자, 원경릉이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아이 낳는 일은 하늘에 맡겨야 하네.”“그래도 몇 가지 비법을 전수해 줄 수는 있소.”우문호가 자부심 넘치는 표정으로 말했다.“좀 더 크게 말해보시오. 다른 사람들이 못 들을까 봐 걱정이오?”원경릉이 그를 흘겨보았다.주변 사람들이 모두 그들을 바라보며 부러움 섞인 표정을 지었다. 많은 사람이 첩을 두고도 황제만큼 자식을 많이 두지는 못했지만, 황제는 복도 많고 자식도 많은 사람이었다. 저녁 연회에서 우문호는 과음했지만 원경릉은 그를 막지 않았다. 이런 노부의 감격은 술로 달래야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