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을 알아가는 우문호오랜 적막이 얼마나 계속 됐을까, 발자국 소리가 났다.“노마님, 자상하셔라!” 만아가 할머니를 모시고 들어왔다.우문호가 일어나와 부축해 드렸다.사식이가 따라 들어오고 손에는 물건을 들고 있는데 우문호가 흘끔 보니 낯설지 않은 게 이건 원경릉의 약상자에 있던 것으로 전에 박원의 몸에서 본 적이 있다.노부인이 사식이와 만아를 나가라고 하고 앉아서 우문호에게, “경릉이가 혼수상태에 빠지기 전에 얘기한 적이 있어요, 처음 3일은 수액으로 생명을 유지하고 삼일 후에도 깨어나지 않으면 엘튜브로 비위관 영양을 유지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오늘이 나흘째예요, 꽂아야 합니다.”우문호가 깜짝 놀라며, “자신이 혼수상태에 빠질 걸 알았습니까?”“그래요, 알았어요. 미리 준비를 했죠. 그러니 사위 양반, 너무 상심하지 말아요. 반드시 돌아올 거라는 믿음을 가져 주세요.” 할머니가 우문호의 손을 두드리며 다독거려 주었다.우문호는 이해가 되지 않아, “왜? 왜 혼수상태에 빠졌죠?”할머니가 고개를 흔들며, ”나도 잘 몰라요, 경릉이가 깨어나면 그때 물어보세요. 난 그저 시키는 대로 해 줄 뿐이니까, 사위가 집안의 가장이니 누구보다 침착해야 합니다.”잠시 후 할머니가, “혹시 아이들에게 물어보면 어쩌면 걔들이 알지도 몰라요, 경릉이와 아이들이 얘기하는 걸 들은 적이 있는데 아이들이 알고 있는 것 같았어요.”“바로 갈게요!” 우문호가 아이들의 비범한 능력을 생각해 내고 마음 속에 한줄기 희망이 생기더니 바로 일어났다.할머니가 불러 세우며, “사위 양반, 와서 나 좀 도와줘요.”“아!” 우문호가 몸을 돌렸다.우문호는 비강 삽관에 대해 전혀 모르지만 그나마 할머니가 익숙하신 편이라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다.“경릉이와 배속에 아이는 잠시동안 오직 이 비위관 영양에만 의지해 생명을 유지하니 절대로 경솔해서는 안됩니다. 사위 양반, 안에서 시중 드는 사람을 잘 살펴서 만에 하나라도 신중하셔야 합니다. 아셨지요?”“예, 알겠습니다.” 우문호는 원경릉의
제어우문호는 아이큐 차이는 생각하지 않고 자신을 뭉개 버리는 아이들에게 완전 무시 당하면서도 그저 한가지만 다그쳤는데, “그럼 너희들은 외할머니 쪽 사람을 제어할 수 있어?”셋이 서로 마주보더니, “그건 해본 적이 없지만 우리는 요 이틀 동안 여기 사람을 제어했어요.”“여기 사람을 제어했다고?” 우문호는 눈을 가늘게 뜨고 습관처럼 무서운 표정을 지으려 했다가 어떤 때인지 생각하고 이런 건 다 별일 아니므로, “외할머니 쪽 사람을 제어할 수 있는지 시험해 보자.”“안 해봤어요.” 셋 다 좀 막연해 하며, “그쪽에 뭘 해요? 우리도 모르는 사람인데요, 그리고 여기서 제어하는 것도 전부 엄마가 우리와 얘기하고 우리가 하기 시작하는 거라 재미있어요. 그 사람들은 보면 도망가는데 울고불고 아우성을 쳐요.”“엄마가 언제 너희들에게 사람을 제어하라고 말씀하셨지?”만두가, “죽은 사람을 제어하는 건, 엄마가 잠들기 전에 말씀하신 거예요, 살아있는 사람을 제어하는 건 힘들어요. 머리도 아플 거고, 하지만 죽은 사람을 제어하는 건 그럴 리 없어요. 저녁에 잘 때 다른 사람의 몸으로 밖에 나가서 놀 수 있어요, 우리는 전부 두번씩 가서 놀아봤어요. 한번은 땅에서 기어 나와야 해서 힘들었지만요.”말을 마치고 의기양양하게 우문호를 보는게 정말 재미나게 놀았던 모양이다.우문호가 어금니를 꽉 깨물고 나중에 두고 보기로 했다.“잘 들어, 저녁에 잘 때 외할머니가 계신 그쪽에 갈 수 있는지 시험해 보자, 그래서 주지스님을 찾고 주지스님에게 엄마 상황이 지금 어떤 지 물어 볼까? 우리가 뭘 해야 하는지도.”만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어, 그럼 우리가 외할머니를 찾아가는 건데 외할머니가 어떻게 생겼는지 몰라요.”경단이가, “증조할머니를 찾자, 증조할머니는 알아, 아직 문패 번호 아신다고 했어. 대단하지.”“나도 알아, 할머니가 말씀하신 적 있어.” 찰떡이가 말했다.“그럼 우리 오늘 밤 가자!” 셋이 말을 마치고 잽싸게 침대에 기어올라가더니 잠이 들었다.우문호는 아이들
시체가 달아나다“머리가 안 좋으신 가봐.”“어휴, 정말 걱정이네.”우문호는 말없이 하늘을 보며, 자신은 이미 충분히 똑똑하지 않나? 이 정상인의 세상에서.우문호는 원경릉을 지키다가 안정이 안 돼서, 돌아가서 아이들이 지금 진도가 어떤 지 보고싶다. 나가서 문까지 갔다가 걔들이 얘기한 게 떠올라 뒤로 돌고, 밤새 갔다가 돌아섰다가 수십번을 하고 결국은 들어가지 못했다.돌아와 누워 살짝 원경릉을 안고 손으로 원경릉의 배 위에 올리자 전에 원경릉이 세 아이를 임신했을 때가 다시 떠올랐다. 배속에서 종일 움직이더니 지금 이 아이는 움직이지 않는다.우문호는 걱정이 되기도 하고 초조해서 말 못할 걱정을 안고 아파했다.그들 사이에 둘째 문제를 얘기한 적이 없는 게 첫 임신이 너무 사람을 놀라게 해서 둘째는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았고, 우연히 거론된 적은 있지만 바로 화제를 매듭지어 버렸는데 이렇게 임신을 했을 거라고 상상도 못했다.“당신, 어서 좋아지자.” 우문호는 처음으로 졸음이 몰려왔다. 어쩌면 뭔가 정해지고 조금씩 방법이 생길 수도 있다는 조짐이 보여서 일지도 모른다.광원시 제일 인민병원“주임님!” 누군가 다급하게 심장외과 주임 사무실로 뛰어들어와, “오늘 주임님이 응급 치료하셨던 환자 장소소(章小小)를 장의사에게 이송하는 과정에서 갑자기 깨어나 달아났다고 해요.”주임이 벌떡 일어나, “뭐라고? 그건 불가능해.”“정말이예요. 장의사 쪽 사람이 지금 병원으로 돌아왔어요, 원장실에 계세요.”주임이 경악하며,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해?”환자는 그가 책임진 응급 환자로, 아이가 응급실로 왔을 때 이미 심장이 뛰지 않고 아드레날린과 제세동기도 사용했지만 살려낼 수 없었다.“가족은?” 주임이 얼른 물었다.“가족은…… 고아원 쪽이요? 아마 병원에 없을 거예요. 제가 연락해 볼 게요.”“원장실로 가지!” 주임은 오랜 의사생활동안 이런 상황을 본 적이 없어 어안이 벙벙할 뿐이다.원장실에는 장의사가 아직까지도 놀라서 창백해진 얼굴로 최선을 다해 말
원교수를 찾아간 아이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교통경찰이 도로 CCTV영상을 조사하니 확실히 장의사 기사가 말한 것처럼 그 아이가 갑자기 달려 나와서 차량 사이를 위험천만하게 다니는데 다행히 매 순간 적절한 데 피해서 어떤 사고도 내지 않았다.제일 중요한 건 그 아이는 반대쪽 길로 넘어갔는데 그 철책은 1m는 족히 넘었고, 그 아이 키는 철책 높이도 안되는데 바로 넘어가서 사뿐히 착지한 것으로, 털끝만큼의 주저함없이 광란의 질주를 계속했다.그 아이는 목적을 가지고 달렸는데 방향이 아주 분명해서 서남로(西南路)쪽으로 갔다. 광원시는 곳곳에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어 이 아이는 서남로 부근에 접어든 후에도 계속 추적할 수 있었는데 마지막으로 사라진 곳은 복만구(福灣區)였다.“원교수님이 복만구에 사시지 않으십니까?” 심장외과 주임이 기억하는 바에 따르면 원교수는 거기 산다.“맞습니다.” 원교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하지만 복만구는 넓고 카메라가 그 아이의 다음 장소를 추적하지 않아서 찾기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복만구에 들어간 뒤 카메라는 그 아이를 찍지 않았습니까?” 주임이 그 교통경찰에게 물었다.“아니요. 계속 CCTV에 나오지 않습니다.” 교통경찰이 말했다.이 말은 주택가로 들어갔다는 말로 그럼 더욱 찾기 어려워 진다.그 아이가 거기 가서 뭘 하는 거지? 그 아이는 고아원 아이인데 돌아가더라도 익숙한 고아원으로 가야지 복만구에 가서 뭘 하려는 거지?다음은 경찰 쪽에 수색을 맡기고 병원 수뇌부는 단지 임상 사망선고가 사실에 의거했는지 조사하는 것만 책임졌다.원교수는 병원에 남았다가 저녁이 되어서야 동네로 돌아갔다.차를 몰고 마을 입구로 들어서는데 보안요원이 잡더니, “원선생님, 아이 하나가 그 아파트 동 아래서 한동안 방황하며 선생님을 찾는다고, 아이를 보니 상당히 가엽더군요. 배도 고프고 목도 말라 보이는 게.”“아이요?” 원교수가 놀라며, “이름이 뭡니까? 어른이 데리고 왔나요?”“아니요, 혼자였어요. 어떻게 들어왔는지 저도 모르겠습니
찰떡이와 원교수“찰떡이구나, 이름이 참 예쁘네, 그럼 찰떡이 말고 다른 이름도 있니?”“있어요, 전 우문화라고 해요.”“오, 이 이름 정말 예쁘구나.”“맞아요, 우리집 이름은 다 예뻐요, 큰 형은 우문례, 자는 동청, 아명은 만두, 둘째 형은 우문효, 자는 남성, 아명은 경단, 저는 셋째인데 이름은 우문화, 자는 인동, 아명은 찰떡이예요. 예쁘죠?” 찰떡이가 술술 얘기하는 부드러운 목소리가 특히나 사람을 편안하게 했다.원교수는 아이를 보고 마음이 이상한 게, “응? 너희는 이름이 있고 자도 있구나? 넌 이렇게 어린 데도 잘 아네?”“자는 엄마가 붙여 주신 거에요. 이름은 황조부께서 붙여 주신 거고, 아명은 서일 아저씨가 붙여 주셨어요.”원교수는 아이를 데리고 엘리베이터를 타며 놀라서, “뭐? 황조부?”“맞아요, 그런데 태상황조부께서 붙여 주신 거라고 해야 하나, 엄마가 똑바로 얘기를 안 해줘서, 외할아버지가 엄마한테 붙여준 이름도 예뻐요, 원경릉, 얼마나 예뻐요. 외할아버지, 아는 글자 많죠? 저도 글자 많이 아는데.”원교수는 입술을 떨며, 찰떡이를 보고, “너……너 지금 뭐라고 했어?”“저도 글자 많이 안다고요.” 찰떡이가 흑요석 같은 눈을 반짝거리는 것이 천사 같다.“네 엄마가 원경릉이라고?” 원교수는 이건 너무 상식에서 벗어난 상황이라 믿을 수가 없어서, “네가 말한 원경릉이…… 내 딸 원경릉이라고?”“외할아버지, 할아버지 딸을 할아버지가 몰라요?” 찰떡이가 곤혹스런 표정으로 원교수를 봤다.원교수는 쭈그리고 앉아 아이의 양 어깨를 잡고 눈가가 촉촉히 젖은 채로, “세상에, 이 아이가 네가 아무 말이나 하는 거면 이런 건 알 수가 없어. 얘야, 넌 도대체 누구니? 어떻게 왔어?”“증조할머니가 주소를 알려주셨어요, 저 알아요.”“증조 할머니?”“네, 증조할머니요, 이렇게……” 찰떡이는 두 손을 입가에 대고 아래로 입꼬리를 내리며 얼굴 피부를 아래로 처지게 아주 늙은 할머니 모습으로 입에 송곳니를 내밀고, “여기 은색 이빨이 있어
찰떡이와 외갓집 식구찰떡이가 안정적으로 소파에 앉아서 원교수를 보는데 방금 원교수는 쉴 새 없이 뭐라고 했는데 외할아버지가 이렇게 긴장한 모습을 보고 어린 마음에 약간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외할아버지,” 찰떡이가 갑자기 약간 걱정스럽게, “제가 가짜일 까봐 두렵지 않으세요? 저한테 먹을 걸 사주는 거 아깝잖아요?”부드럽고 여리여리한 목소리에 원교수의 마음은 그 자리에서 녹아내려 손자 바보가 되었고, 눈물로 앞이 흐려졌다.“아깝지, 뭐든 아깝지, 네 눈동자가 네 엄마 어릴 때랑 똑같아.” 원교수가 찰떡이의 얼굴을 쓰다듬는데 이목구비는 다른데 유치하고 단순함 그리고 총명하기 그지없는 눈빛은 엄마랑 똑같다.엄마와 오빠는 집에 무슨 일이 생긴 줄 알고 황급히 돌아왔다. 오빠가 소리치며, “아빠, 무슨 일……”말을 다 하기도 전에 원교수가 아들의 입을 막고 한쪽으로 데려가서, “쉿, 잔다 자. 조용.”“누가 자요?” 오빠가 원교수의 손에서 벗어나 소파에 누워 꿀잠을 자고 있는 꼬마를 보고, “어느 집 애예요?”“네 여동생, 여동생 아들이야. 우문화래. 자는 인동이고 아명은 찰떡이. 먹다 지쳐 잠들었어. 봐, 저 초코 우유는 아직 다 마시지도 않았어.” 원교수가 말했다.오빠는 놀라서 황급히 아빠를 한쪽으로 데려가더니, “아빠, 이 일때문에 저랑 엄마를 오라고 하신 거세요? 누구한테 속은 거예요? 이 애는 누가 데려왔어요? 돈 달래요?”엄마도 화들짝 놀라며 이런 일은 상상도 하지 못하고 허탈하다는 듯이, “이것 봐요, 이런 일로 사기를 당해요? 어디서 이렇게 큰 손자를 공짜로 주워왔어요?”“아냐, 진짜야.” 원교수가 얼굴이 벌게져서 해명을 했다.“증거가 어디 있어요? 쟤가 뭐라고 한다고 그 말을 믿어요?” 엄마는 완전 열 받아서 앞으로 가서 아이를 보더니 어이가 없다는 듯, “봐요 어디가 딸을 닮았다는 거예요? 딸이 지금 어디 있는지 알잖아요. 걔 아들이 어떻게 여기 있을 수가 있어요? 딸 생각하다가 정신이 나가서 아무나 믿고.”원교수가 이 말을
아빠 다녀왔어요찰떡이가 눈을 뜨니 망막에 아빠의 큰 얼굴이 비친다. “떡아, 깼어? 갔었니?”찰떡이가 옆을 보니 만두와 경단이가 일어나 완자를 먹고 있다. 찰떡이는 눈을 비비며 약간 원망 섞인 말투로, “아빠 왜 저를 깨웠어요? 거기서 초코 우유 먹고 있었는데.”“우유 마셨어?” 우문호가 놀라며, “어디서 우유를 마셨어? 갔었던 거야? 할머니 봤어?”“할머니는 못 봤고 할아버지는 봤어요. 아빠가 절 깨워서 전 그쪽에서 잠이 들었어요.” 찰떡이가 입술을 쭉 내밀고 억울한 게 거기 음식 맛있었는데 다 먹지를 못한 것이다.“정말 봤어?” 우문호가 크게 기뻐하며, “좋아, 어서 자, 빨리 자라, 다시 돌아가게. 외할아버지께 주지스님을 찾아가 달라고 해.”“잠이 안 와요.” 찰떡이가 기어와서 잠이 덜 깬 얼굴로 걸어가더니, “형아 완자 먹어? 나도.”만두와 경단이가 쩝쩝거리며, “직접 유모한테 가서 달라 그래.”둘은 외할머니에게 못 가서 고민이었는데 찰떡이만 다녀오다니 더욱 질투가 나서 퉁퉁거렸다.“동생을 괴롭히는 거 아냐?” 우문호가 뺏아 와서 찰떡이에게 주고 뒤를 돌아 눈을 부라리며 혼내길, “동생이 고생한 거 몰라? 먹는 거 하나 가지고 동생이랑 다투면 형님 체면이 서 안서?”말을 마치고 부드럽게 찰떡이에게, “떡아, 어서 먹어, 먹고 배부르면 졸릴 거야, 졸리면 바로 가서 자라.”만두와 경단이가 찰떡이를 완전 째려보더니 아빠가 있어서 손찌검도 못하고 마뜩잖은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찰떡이는 두 입 먹더니 먹지 않고 앞으로 밀며 눈살을 찌푸리더니, “웩 맛없어요, 아빠 제가 그랬죠, 외할아버지가 배달해 주신 거엔 피자도 있고, 초코 우유도 있고, 케익도 있고 얼마나 맛있는데요.”약간 까부는 찰떡이를 보고 만두와 경단이는 때리고 싶은 충동을 겨우 참고 경단을 다시 빼앗아 와서 먹기 시작했다.누가 초코 우유인지 뭔 지 먹고 싶데 흥, 우유가 먹고 싶으면 유모한테 말하면 그만이지? 우쭐거리는 꼴 하고는, 누구는 뭐 외할머니 집에 못 갈 줄 알아
이번엔 만두다찰떡이는 다 못 마신 초코 우유를 생각하며 베개를 끌어안고 나가, “전 증조 할머니한테 갈게요. 증조 할머니는 옛날 애기해서 재워 주실 거예요.”“이렇게 늦었는데, 가면 안돼!” 우문호가 소리쳤다.찰떡이는 베개를 안고 돌아와서, “아빠 너무 무서워요, 그럼 못 자요.”우문호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는 게 줄곧 착하고 말 잘 듣던 찰떡이가 어쩌다가 사람을 협박하는 걸 배웠을까, 이건 너무 해. 꾹 참고 ‘너네 엄마 깨어나기만 해봐. 그냥 넌 비 오는 날 먼지 나게 맞는 거다.’ 우문호는 억지로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아빠가 잘못했네, 가봐, 증조 할머니한테 옛날 얘기 들으러 가야지.”찰떡이가 헤벌쭉하게 입을 벌리자 작은 송곳니 두개가 나오면서 폴짝폴짝 베개를 안고 뛰어갔다.모든 총애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찰떡이를 보면서 만두와 경단이는 눈을 부릅뜨고 울분에 가득 찼다.“뭘 봐? 쓸모 없는 녀석들, 먹는 거나 밝히고!” 우문호는 만두와 경단이를 노려보더니 나가버렸다.만두와 경단이는 순간 풀이 죽어서 완자도 먹지 못하고 기어올라가 잤다.광원시.원교수 가족은 계속 새벽1시까지 기다리자 마침내 아이가 천천히 일어나는 것을 볼 수 있었다.“일어났어, 일어났다고.” 오빠가 뒤를 보며 말했다. 그리고 큰 손으로 아이의 목덜미를 잡더니 일부러 험악하게, “말해, 누가 널 데려왔어?”아이가 눈을 비비고 조금 놀라더니 바로 눈을 깜빡이며 눈동자를 사방으로 떼굴떼굴 굴리더니 순간 뛰어올라 기뻐하며, “내가 왔어, 와 내가 왔다고. 내 말이 맞지, 우리는 세 쌍둥이라 찰떡이한테 맞으면 나도 맞는다고.”원교수가 어리벙벙한 눈으로, “너…… 찰떡이?”아이가 한 손으로 원교수의 다리를 잡고 고개를 들어 흑요석 같은 눈을 반짝이며,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저는 만두예요. 전 찰떡이가 아니예요, 제가 빼앗아서 왔어요. 제가 빼앗았어요.” 말을 마치고 원교수를 풀어주고 티테이블로 가서 먹을 걸 찾더니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원교수가 입술을 떨
잔뜩 긴장한 채로 앞으로 몸을 반쯤 내밀고 있었던 주 지부는 우렁찬 상대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중심을 잃은 듯 비틀거렸다. 그는 이내 팔을 뻗어 망루의 기둥을 붙잡으려 했지만, 허공에서 멈추고 말았고, 그대로 몸이 앞으로 쏠려 떨어져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가 말에서 빠르게 날아올라, 믿기 힘들 정도로 빠른 속도로 그에게 달려갔다. 상대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주 지부가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그를 안고 빙 돌아서 바닥에 착지했다.주 지부는 깜짝 놀라서 그만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를 구해준 사람은 반짝거리는 눈망울에, 품위 있는 모습의 젊고 잘생긴 사내였다. 주 지부는 그를 황제의 호위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거의 죽을 뻔한 고비를 넘겼기에, 안도의 한숨을 내쉴 새도 없이 그에게 예를 올렸다.“대인,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그때 말들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는데, 서일이 먼저 말에서 내려, 다급히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괜찮으십니까?”우문호도 매우 놀란 듯했다. 조금만 늦었다면, 주 지부는 정말 죽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가슴을 가볍게 두드리며 숨을 들이쉬었다.“괜찮다.”그러고는 주 지부를 보며 물었다.“자네는 누구요?”주 지부는 마차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보며, 누가 황제인지 추측했다.황제는 올해 마흔에 가까운 나이로 알려져 있었기에 위엄이 넘쳐 보일 것이었다. 그는 일행 중, 냉 수보와 홍엽을 만난 적 있었기에, 거친 모습을 한 이 인물은 아마도 호위로 추측된다. “묻지 않았소? 자네는 누구요? 어찌 죽으려고 하는 것이오?”서일은 그가 멍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자, 큰 소리로 다시 물었다.주 지부는 울 지경이었다. 냉 수보가 그를 보고 있으니, 예를 올려야 하지만, 황제도 자리에 있으니, 바로 냉 수보에게 예를 올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대체 누가 황제란 말인가?그는 황제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어, 결국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그러고는 그들에게만 들릴 정도로 낮은 목소
원경릉의 말은 그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고, 자리에 있던 관리들은 기쁨과 동시에 두려움에 휩싸였다. 이 대인은 땅에 엎드려 온몸을 바르르 떨고 있었다. 그는 살아생전에 자신이 황제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은 단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평소 차분하고 신중한 주 지부도, 그도 감정이 격해져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눈가에는 눈물이 가득했다.황후를 만난 것만으로도 큰 영광이라 생각했는데, 황제까지 오신다는 소식에 그의 마음은 흥분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원경릉은 평생을 경성에서 다섯째와 함께 있었기에, 그녀는 그저 그가 온다는 사실을 간단히 전했을 뿐이었는데 말이다. 그녀는 다들 걱정 없이 역병을 치료하고, 언제나 황제가 그들의 뒤를 든든히 지켜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들의 반응을 보니, 황제가 직접 오는 것이, 지방 관리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깨달았다.원경릉이 급히 말을 덧붙였다.“폐하게서는 그저 역병 때문에 온 것이니, 모두 각자 맡은 일에만 최선을 다하면 되네.”“예, 예, 마마의 명을 따르겠습니다.”주 지부가 눈물을 닦으며 답했다.그렇게 관아와 의서가 협력하여, 오계부를 조사하기 시작했다.원 할머니는 역병을 치료할 수 있는 처방을 몇 가지 내렸다. 경증 환자는 약차를 계속 마시고, 증상이 악화하거나 중증 환자는 그녀의 처방을 사용하도록 했다.전에 이미 근처 주부에 연락해 약을 보내라 명했고, 오계부에서 구비한 약까지 있으니, 이번 역병을 대처할 수 있었다.오계부 의서는 이번 역병을 과거의 역병과 동일하게 생각하고, 소홀히 한 것 외에는 준비가 충분했다.원경릉은 황제 일행이 저녁 무렵 오계부에 도착할 것이라 예상했다.주 지부는 원래 여러 관리와 함께 황제를 맞이할 예정이었지만, 원경릉이 이를 단호히 거부했다. 그녀는 황제가 미복 순행 중이니, 과하게 맞이하여 백성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했다.그 말에 주 지부는 당황했다.황제가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아무도 맞이하지 않는다니, 어찌 그럴 수 있다는 말인가?그러나 그는 황
약을 쓰자, 주 지부의 열이 단번에 내려갔다.열이 내려가니 정신이 맑아져, 그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는 애써 자리에서 일어나 황후마마에게 예를 올리겠다고 고집 피웠다.원경릉은 그에게 누워 있으라고 말한 후, 역병에 관해 이야기하며 주 지부에게 이를 중시할 것을 당부했다.주 지부는 이를 듣고 깜짝 놀라 말했다.“소신은 매일 의서에 사람을 보내, 역병의 상황을 보고받고 있사옵니다. 매일 보고된 상황은 그다지 심각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역병이 발생했지만, 작년과 비슷한 정도였고, 약재도 충분한데, 어찌 이렇게 심각해진 것입니까?”“매년 역병이 발생했으나, 대대적으로 퍼지지 않아,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네.”원경릉이 답했다.“의서의 이 대인을 불러, 상황을 확인하겠습니다.”주 지부는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어제 이미 그를 찾아가, 환자 수와 사망자 수를 조사하라 명했네. 하지만 그는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모를 것이네. 자네가 사람을 보내, 관아에 와서 상황을 보고하도록 하게.”“예!”주 지부는 곧바로 사람을 보냈다.푸른 옷을 입은 남자는 관아에서 일하는 관리였기에, 그는 반 시진도 채 되지 않아, 관아 내에서 병에 걸린 자가 얼마나 되는지 통계해냈다.관아 내에서 역병 증상을 보인 사람은 총 열여덟 명이었고, 그중 두 명은 병세가 심각하여 이미 집에서 쉬고 있는 상태였다. 주 지부는 관아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병에 걸린 줄 몰랐고, 관리의 보고를 들은 후, 큰 충격을 받았다.의서의 이 대인은 하루 종일 쉬지도 않고, 바삐 움직였다. 서관 대인이 직접 오셨으니, 어떻게든 시키는 일을 완성해내야 했다.그는 사실 역병이 그다지 심각하지 않고, 그저 작년과 비슷하다고 여겼었다.하지만 여러 지역과 의원을 돌아보고 나서야, 이번 역병이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처음엔 그저 서관 대인에게 보고만 하려고 했지만, 병세가 심각해지자 그도 조급해지기 시작했다.하지만 짧은 시간 안에 인원수를 통계하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도, 다섯째 일행은 여전히 도착하지 않았다.그래서 원경릉과 할머니는 다른 의관을 더 둘러보기로 하고, 몇 군데 더 돌아본 뒤 관아에도 갈 계획을 했다.그런데 한 의관에 들어서자마자, 푸른 옷을 입은 중년 남자가 다급히 뛰어오며 말을 걸었다. “수 의원, 대인께서 병세가 위중합니다. 어서 봐주셔야 합니다.”의원은 그 말을 듣자마자, 약상자를 집어 들고 다른 환자들을 그냥 남겨둔 채, 푸른 옷의 중년 남자와 함께 나가려 했다.원경릉이 그를 막아 세우며 말했다.“의관에 있는 환자들을 돌봐야 하지 않소? 우리 할머님께서도 의원이니, 지부 대인의 병은 할머님께서 봐 드릴 것이오.”푸른 옷의 사내는 초조한 듯 원경릉을 향해 소리쳤다.“말도 안 되는 소리 마시오!““대인의 병세가 급박한데, 혹여라도 지체되면 당신들이 책임질 수나 있겠소?”바로 그때, 원 할머니가 호패를 꺼내, 그의 눈앞에 들이밀며 단호하게 말했다.“길을 안내하거라!”조급한 표정을 짓던 푸른 옷의 사내는 호패를 보자마자 표정이 얼어붙었다. 이내 정신을 차린 그는 곧장 허리를 굽혀 예를 올리며 말했다.“서관 대인께서 오셨을 줄은 몰랐습니다. 무례를 범해 송구하옵니다.”“그만 사과하고 길 안내나 하시오.”원경릉이 말했다.“예, 예!”사내는 급히 물러서서, 예를 갖춰서 길을 가리켰다.“마차가 밖에서 대기 중입니다. 서관 대인, 이쪽으로 오시지요.”원경릉은 할머니를 부축해 마차에 올랐고, 곧장 관아로 향했다.지부 대인은 따로 사저가 없어 관아의 뒷마당에서 거주 중이었다. 혼자 지내는 데다 관아가 워낙 가까워 편리했기 때문이다.관아에 도착하자마자, 그들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안으로 들어갔다.주 지부는 병세가 꽤 심각해져 있었다. 그는 어지럼증과 흉통에 시달려, 침대에 누운 채 말을 꺼낼 힘도 없었다.원경릉은 직접 치료에 나섰고, 약상자를 열어 체온 측정기와 청진기를 꺼냈다.푸른 옷의 사내가 의아해하며 물었다.“아가씨께서도 의원이십니까?”그러자 곁에 서
이 대인이 원경릉에게 의학을 잘 모른다고 반박할 틈도 없이, 원 할머니가 먼저 입을 열었다. "말대로 하게. 하루만 줄 테니, 그 안에 역병에 관한 모든 자료를 가져오게. 사망자 수도 포함되어야 하네." 이 말까지 듣자, 이 대인은 더 이상 반박할 수 없었다. 비록 조사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서관 대인이 멀리서 오계부까지 왔으니, 시키는 일은 해야지 대인의 마음에 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사람들을 보내 조사를 명한 후, 이 대인은 거처를 마련해 드리겠다고 했다. 하지만 원경릉이 말했다. "괜찮습니다. 의서에 의원이 많지 않으니, 대인도 바쁘실 텐데요. 저희가 직접 오계부를 돌아보겠습니다." 이 대인은 그녀가 원 할머니의 힘을 빌려 위세를 부린다고 생각해, 대꾸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말에 답도 하지 않고, 원 할머니에게 예를 올렸다. "어르신께서 머무실 계획이 있으시면, 부디 저에게 알려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밤 대인을 잘 대접하라, 명을 내리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네. 일이나 보게." 원 할머니는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원경릉에게 말했다. "먼저 좀 돌아보다, 객사를 찾아 머물자꾸나." "예!" 두 사람은 역병을 조사하기 위해 다급히 이곳을 찾아왔기에, 먼저 각지의 의원을 직접 돌아보려 했다. 아마 다섯째 일행은 빨라야 내일이나 모레쯤 도착할 것이었다. 두 사람이 의서를 나서자, 이 대인은 뒤따라 나오려다 원 할머니의 날카로운 눈빛에 움찔하며 발길을 멈췄다. 두 사람은 오계부의 거리로 향했다. 거리가 꽤 번화했고, 사람들도 제법 많아, 대낮에는 조금 붐볐다. 그들은 곧장 의원으로 향했다. 의원 앞에는 약차가 많이 진열되어 있었지만, 환자는 얼마 없었다. 겉보기엔 역병이 퍼졌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원경릉은 안으로 들어가 의원에게 상황을 물었다. 그러자 의원은 요즘 들어 약차가 잘 팔리고 있고, 하루에 천 봉지가 넘게 팔린다고 답했다. 하지만 그도 역병
늦게 출발한 원경릉은 신속하게 오계부로 향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오계부 근처 주현에 도착하자마자, 할머니가 현지 혜민서로 가야 한다며 잠깐 멈추자고 했다. 그러고는 혜민서에 오계부로 약을 공급할 준비를 하게 했고, 명을 받으면 바로 오계부로 보낼 수 있도록 미리 준비를 당부했다. 혜민서 산하의 의료기관들은 지난 몇 년간 개혁을 통해 뚜렷한 성과를 거두었고, 지역 간의 연결도 긴밀해졌다. 특히 역병을 상대하는 체계가 가동되면 상부에서는 전력을 다해 의원과 약을 지원해줄 수 있었다. 신신당부한 뒤에야 원경릉과 할머니는 오계부로 재빨리 향했다. 곧이어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우문호 일행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다. 오계부는 인구가 500만 명에 이르는 곳으로, 두 개의 주부가 통합된 지역이었다. 열대에 있어, 경작지가 많고 산이 많아 농업을 위주로 삼고 있었다. 그래서 조정은 이곳을 서부의 주요 곡창지대로 삼고 있었던 것이었다. 농업이 발달한 지역은 상대적으로 경제도 번화했고, 현지 백성들은 벼 외에도 감, 자두, 리치 등을 대량으로 재배하고 있었다. 리치는 신선할 때 먹을 수도 있고, 말려서 건과로 만들어 팔 수도 있기에, 어느 정도 지역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었다. 오계부는 백월국과 인접해 있었는데, 백월국은 북당의 속국으로 사이가 우호적이며 경제 교류도 활발했다. 이는 양국의 번영을 촉진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오계부의 지부는 장씨 성을 가진 오계부 출신이었다. 장 지부는 훌륭한 관리이며 지역 백성들로부터 존경받고 있었다. 원경릉과 원 할머니는 오계부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지역 혜민서를 찾았다. 할머니는 혜민서의 서관(署館) 신분을 밝혔다. 그녀는 북당 각 주부의 의서를 총괄하는 인물이고, 총책임자이기도 했다. 혜민서의 이 의원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두 사람을 안으로 청한 후, 바로 예를 올렸는데, 마치 신선이라도 본 것처럼 목소리까지 떨고 있었다. "소인은 이자옥이라 합니다. 어르신께서 친히 오신 줄도
그녀는 일단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하고, 냉 대인이 자세한 상황을 묻는 사이에 제 대인의 피를 뽑았다. 약상자는 기능이 꽤 다양하기에, 바이러스 검사도 문제없었고, 안에는 양여혜가 준 소형 현미경도 있었다. 하지만 바이러스 관찰이나 세균 배양에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지체할 수 없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먼저 오계부로 향하고, 그녀는 이곳에 남아 제 대인을 치료하고 검사 결과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면 바이러스든, 세균 감염이든, 결과가 나와야 제대로 된 치료 방안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미색이 말했다. "저도 이곳에 함께 남겠습니다. 제가 환자를 돌보는 것 정도는 도울 수 있지 않겠습니까?" "괜찮으니 먼저 가거라. 어쩌면 내가 더 일찍 도착할 수도 있으니깐." 원경릉이 말했다. 그녀는 혼자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지만, 미색까지 데리고 가는 건 무리였다. "우리가 먼저 출발하는데, 어찌 더 일찍 도착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미색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가능한 일이다. 원 선생은 늘 기적을 만들어내니." 우문호가 말했다. 그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고, 원경릉에게 다가가 조심하라고 몇 마디 당부했다. "알았소. 지체하지 말고, 어서 떠나시오. 오계부에 도착하면 곧바로 관아를 찾아가, 의원의 빠른 대처를 명하라 하시오. 만약 내가 먼저 도착한다면, 내가 관아를 찾아가겠소." "알겠소. 그럼, 먼저 가겠소!" 우문호는 그녀와 입을 맞추고 싶었지만, 보는 이가 많으니 그저 참을 수밖에 없었다. 서일은 황후를 홀로 두고 가는 것이 걱정되어, 우문호를 따라나서며 계속 물었다. "정말 황후를 이곳에 혼자 남겨도 되는 것입니까?" "그럼, 네가 남을 것이냐?" 우문호가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 "너도 원 선생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알고 있지 않느냐?" 회왕 부부도 걱정은 되었지만, 다섯째의 여유로운 모습에 자신이 있을 것이라 믿었다. 다섯째 부부는 늘 비밀이 많은 사람들이라, 그들은 더 이상 신경
원경릉은 밖으로 나가, 오계부에 역병이 생긴 것 같다고 전했다. 오계부는 서쪽에 자리 잡고 있어, 기후가 더운 탓에 가끔 역병이 생기긴 했었지만 백성들은 고뿔 치료에 쓰이는 약초로 끓인 차를 즐겨 마시기에, 대규모로 역병이 돈 적은 없었다. 냉 대인이 말했다. "오계부에서는 이 상황을 조정에 알리지 않았습니다. 비록 해마다 역병이 생기긴 하지만, 빠르게 통제해 왔으니, 이번에도 예전과 같은 상황이지 않겠습니까?" 원경릉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런데 이번엔 더 심각할 수도 있습니다. 제 대인의 형도 역병으로 돌아가셨고, 그와 가까이 지낸 사람들도 병에 걸렸습니다. 이렇게 관아에만 역병에 걸린 자들이 많으니, 예전보다 더 심각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해마다 역병이 생겼으니, 그에 대한 대응책도 이미 있을 것입니다." 원경릉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해마다 역병이 생겼지만, 대대적으로 유행하지 않았기에, 현지 관리들이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겨 쉽게 통제될 것이라 생각하고, 방심할 수도 있으니깐요." 우문호가 물었다. "원 선생, 역병을 어떻게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하오?" "역병 상황이 안 좋을 것이라 추측할 뿐, 정말 오계부의 상황이 어떠한지는 아직 모르네. 제 대인은 여전히 고열에 시달리고 있어, 수액을 맞히고 해열제를 먹였소. 냉 대인과 함께 들어가 상황을 자세히 물어봐야겠소. 하지만 꼭 마스크를 끼고, 병을 막아야 하오." 원경릉은 유행성 독감이나 변이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일 것이라 의심하고 있었다. 그녀가 살던 세계에서는 A형 독감의 대규모 변이가 십수 년마다 한 번씩 발생했는데, 그런 변이 독감은 현대에서도 의료 체계에 큰 부담이 되곤 했다. 그러니 지금 이곳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만약 역병이 다시 시작한다면, 가능한 한 빨리 통제해야만 했다. 원경릉의 말을 우문호와 냉 대인은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도
원경릉은 청진기를 꺼내 그의 폐를 확인해 보았는데, 남녀가 가까이 접촉하는 것이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한 제 대인은 이내 손을 뻗어 그녀를 막으려 했다. 하지만 병세가 심해 아픈 데다가,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묘한 위압감을 풍기는 의원의 단호한 눈빛과 기운에 그만 압도당하고 말았다. 원경릉은 앞쪽을 청진한 뒤, 그에게 옆으로 돌라고 한 다음에 꼼꼼히 살피고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며칠을 아프신 것입니까?" 제 대인은 꽉 막힌 코 때문에 콧소리를 내며 천천히 몸을 돌리고 답했다. "며칠 사이의 일입니다. 오계부를 떠날 때도 멀쩡했는데, 밤새 달리고, 말을 오래 타다 보니 고뿔에 걸렸나 봅니다." "기침 말고, 가슴 통증도 있습니까?" "예. 이곳이 아픕니다!" 제 대인은 가슴 근처를 손으로 누르며 말했다가, 숨쉬기가 어려운 듯 손바닥을 움직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도 아프고, 온몸 뼈마디도 다 아픕니다." 그러자 원경릉은 더 자세히 증상을 확인한 뒤 말했다. "약을 준비할게요. 수액을 좀 맞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수액이요?" 제 대인은 멍하니 원경릉을 바라보았다. "예. 질문은 하지 마시고, 그저 치료에 협조만 해주십시오. 병세가 꽤 심각한 편입니다." 원경릉은 제 대인이 폐렴이라 확신했고, 중증 폐렴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제 대인은 병이 심하다는 말에 초조한 표정을 지으며 다급히 말했다. "의원 나리, 제발 최선을 다해 치료해 주십시오… 저에게는 아직 모셔야 할 노모가 있습니다. 지난달 병으로 형님께서 세상을 떠난 터라, 형님의 자식들도 제가 돌봐야 하니, 절대 이대로 목숨을 잃을 수는 없습니다." 원경릉이 답했다. "최선을 다할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 치료에만 집중하시지요!" 제 대인은 감동을 받은 듯 감사 인사를 올렸다. "정말… 감사합니다." 원경릉은 곧바로 약을 지어 수액을 준비했다. 수액을 맞는 동안, 제 대인은 여전히 놀란 모습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