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리나리와 우문령원경릉이, “두분 사이가 소원한 게 이정도 인가요? 어떻게 평생을 살죠?”“나이도 어린데 그렇게 나중까지 뭐 하러 생각해? 평생……” 이리 나리의 눈빛이 이윽고 막막해 지더니, “평생은 너무 길어, 생각 안 해, 안 할래!”말을 마치고 이리 나리는 개를 데리고 가고, 원경릉만 가을 바람 속에 덜렁 남겨졌다.원경릉이 한참 있다가 일어나 얘기 좀 하려고 우문령을 찾았다.우문령은 서재에서 불경을 필사하고 있었는데, 나이가 한창 젊은 사람이 불경을 필사 하는 모습에 원경릉은 뜻밖이란 생각과 함께 방금 이리 나리가 현묘한 불가의 가르침 같은 말을 한 게,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에 보조를 맞추는 거구나 느껴졌다.망한 상황은 아닌 거 같군.“먹고 살만 해?” 원경릉이 우문령 곁에 앉아 그녀가 쓴 수려한 글씨를 바라봤다.우문령은 얼굴이 발그레하고 근심스런 빛이 없는 게 전에 비하면 상당히 평온하고 안정된 모습으로 오히려 이리 나리를 닮았다.“잘 지내요, 자유롭게.” 우문령이 붓을 내려놓고 원경릉의 손을 잡아 끌며 신나서, “오면서 왜 말도 안 했어요? 맛있는 거 준비해 드리려고 했는데, 우리 집에 요리사가 열 몇명이 있는데 전부 각지에서 온 사람으로 각종 지역의 정통 요리, 간식을 만들 줄 알고, 맛도 초왕부보다 좋아요.”아무런 근심걱정 없는 청춘을 보니 원경릉의 마음도 위로가 되었다. 그래 누군가 편안한 나날을 누리고 있는 거라면 그들의 고생도 가치가 있다.우문령과 좀 얘기를 나눠 보니 지금 이리 나리와 사이좋게 지내고 있기는 하다. 비록 결혼한 이래 아직까지 합방을 하지 않았다고 해도 우문령이 세 번이나 이리 나리의 손을 잡아 끌었고, 마지막 한번은 뿌리치지 않고 본관에서 후원까지 가는데 성공했다고 얼굴을 붉히고 손을 배배 꼬며 말했다.원경릉이 우문령에게 이리 나리에 대해 어떻게 생각 하냐고 물었더니 턱을 괴고 생각하더니 얼굴이 더 빨개지며, “그이는 사실 좋은 사람이예요, 대범하고 저한테 나가서 좋아하는 거 사라고 돈도 많이 주
안풍친왕 배후 조종이날, 안풍친왕 부부는 태상황의 문병과 동시에 태상황에게 그들이 경성을 떠난다는 걸 알리기 위해 입궁했다.바꿔 말해, 그들은 보친왕의 일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것이다.궁에서 나와 이를 알리기 위해 초왕부로 갔다.“이렇게 금방 가세요?” 원경릉이 아쉬워하며 안풍친왕비가 사람이 좋으니 경성에 며칠 더 묵었으면 하고 바랬다.안풍친왕비가, “얼마 지내고 돌아오마. 지금 이 중차대한 시기에 경성에 머무는 건 좋지 않아. 나도 소인배들이 날뛰는 꼴을 보고 싶지 않기도 하고.”원경릉이 이해하지 못하고, “소인배들이 날뛴다고요?”안풍친왕비는 냉랭한 미소를 짓고 아무 말이 없는 가운데, 안풍친왕은 우울하고 불쾌한 얼굴이라 원경릉은 감히 안풍친왕께 물어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안풍친왕비가 나중에 우문호에게, “그 애는 어떤 벌을 받아도 마땅해. 하지만 집안 사람은 추궁하지 마라, 식구들은 이미 전부 서절에 돌아가 있어서 이 일에 대해서 알지도 못해.”“걱정 마세요. 이 일은 연좌할 정도는 아닙니다.” 우문호가 말했다.안풍친왕비가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 표정에 드러내지 않았지만 역시 한 가닥 슬픔이 떠올랐다.안풍친왕 부부가 떠난 뒤 원경릉이 우문호에게 물었다. “어떻게 된 거야?”우문호가 얼굴을 찡그리며, “조정에서 어떤 사람이 보친왕 일을 가지고 장계를 올렸는데, 보친왕은 배후 인물에게 지시를 받아 병여도를 훔친 것으로, 역모를 꾀할 목적의 배후 인물은 따로 있고 보친왕은 단지 앞잡이에 불과하다는 거야. 병여도는 잃어버린 게 아니라 배후의 인물이 가져갔다는 거지.”원경릉이 경악하며, “누가 감히 그런 소리를? 그 말은 안풍친왕 전하를 의심하는 거잖아?”“맞아, 안풍친왕 전하의 성격으로 봐서 이런 얘기를 들으면 폭발하고도 남는데 왕비께서 말려서 겨우 분노하지 않으시고 떠나기로 하신 거야.”원경릉이, “어쩐지 방금 안풍친왕 어르신 얼굴이 불쾌하시 더라니!”“이 일이 일으킨 시시비비가 하나 둘이 아니야, 조만 간에 정리하지 않으면 무슨 풍
보친왕의 명단어두침침한 빛이 보친왕의 푸르뎅뎅한 얼굴에 비추고, 눈꺼풀은 무심하게 아래로 쳐진 채 쓴웃음을 지으며, “당시 첩자가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어, 내 신분도 드러나지 않았는데 북막의 진씨 집안 말고 또 누가 있나?”“당신이 그렇게 신중하지 못한 사람으로는 안 보이는군요.” 우문호가 보친왕을 노려보면 말했다. 이번 계획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물 샐 틈 없이 주도 면밀하게 짜 놓고, 고작 무릎만한 도랑에 배가 뒤집혔다고? 그럴 가능성은 낮아도 너무 낮다.보친왕은 계속 쓴웃음을 지으며, “나쁜 일이 익숙하지 않아서 사건을 안배하는 것과 너희들을 방비하는 건 알아도 내 주변 사람을 방비해야 할 줄은 몰랐지. 본질적으로는 경험이 없었다고 할까.”“누가 의심스럽습니까? 어쨌든 당신 밀실에 접근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테니까요.” “내 밀실에 접근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내 곁에 사람들은 복잡해. 대부분 떳떳하게 온 사람들도 아니고. 요 1~2년간 인력이 급하게 필요해서 하나하나 자세히 조사하지 못했거든. 이것도 병여도를 훔칠 때 내가 직접 나선 이유야. 중대한 일일 때는 그들을 믿을 수가 없어. 그런데 자네가 갑자기 의심 가는 사람이 없냐고 하는데, 있지. 전부 의심스러워. 떳떳하게 내 밀실에 접근할 수 있는 사람은 적지만 개인적으로는 다 가능하니까.”제왕이 한쪽에서 이 말을 듣고 화가 나서, “전부 의심스럽다니 그게 말이예요 방귀예요? 우릴 놀리는 겁니까?”보친왕이 아무렇지도 않게 제왕을 한번 훑어 보더니 냉정하게, “내 말이 방귀 같다고 생각하면 안 물어보면 그만이지. 판결이 코 앞인데 지금 내 입장에서는 죽는 게 차라리 나아. 난 이미 미련따위 없으니 숨길 필요가 뭐가 있나?”우문호는 피곤함과 욱하는 마음을 숨기기 힘들어, “당신도 우문씨인데, 이런 천벌을 받을 짓을 저지르고도 부끄럽지 않습니까? 허울좋은 소리는 집어 치우고 협조해 주셨으면 합니다. 잘 생각해 보시고 의심 가는 사람 몇 명의 명단을 주세요. 만약 병여도를
병여도와 안왕우문호는 이런 무림과 강호의 인사들이 어떤 특수성을 가지는지 잘 모르지만 무공을 수련하는 사람의 상당수는 지위가 높은 가족의 뒷바라지를 받고 그 중에는 정파 자제도 적지 않다고 알고 있다.우문호가 소홍천에게, “재물을 탐하는 건 인간의 본성이고 보친왕부의 문지방이 낮지 않으니 보친왕 문하에 의탁하는 것도 그렇게 부당한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데.”소홍천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우문호에게 차근차근 설명하며, “맞아요. 재물을 탐하는 건 인간의 본성인데 방금 제가 말한 이 진대동 같은 경우, 집안 재산이 많은 사람이 보친왕의 문하에 의탁했다는 것은 재물 때문이 아님을 생각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재물이 아닐 경우 대체로 세력을 얻기 위함 인데, 보친왕은 지금 조정에서 관직이 없으니 세력은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는 건 그들이 장래를 원한 거죠.”“보친왕이 처음에 역심을 품었으니 세력이 맞아떨어지는 거 아닌가?” 우문호가 갈 수록 아둔해 졌다.소홍천이 고개를 흔들며, “이런 큰 문파들은 안목이 상당히 독특해요. 특히 진수는 자기 아들을 보친왕부에 보낼 정도였어요. 문파의 고수를 대충 골라 보낸 게 아니라. 이토록 신중한 문파들이 왜 믿고 의탁할 만한 사람을 고르지 않고 보친왕을 택했을까요? 1년~2년전이면 기왕에게 의탁하는 편이 보친왕에게 하는 것보다 안정적이고 타당해요. 태자 전하나 안왕 전하는 말할 것도 없고요. 어쨌든 보친왕은 조촐한 병력조차 없는 데다 실권도 없고, 1년여 전이면 이 일도 계획 단계로 탁상공론에 지나지 않았을 텐데 진수가 자신의 아들을 보내는 것도 아끼지 않은 이유는 뭐였을 까요?”소홍천은 명단을 펼쳐 위에 이름을 가리키며, “그리고 이 세 분은 전부 무림의 거대 문파 수제자로 무공이 뛰어난 건 말할 필요도 없고, 지략과 명석함이 다들 일등이예요. 진수가 어쩌다 모험을 걸어본 거면 이렇게 많은 문파가 그런 모험을 따르지는 않았어요.”우문호는 소홍천의 설명을 듣고 비로소 이해가 되어, “그래서, 이 사람들은
대담을 준비하며우문호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아니야, 만약 보친왕이 이미 박원에게 상처를 입혔으면 넷째가 나타나 병여도를 빼앗는다고 해도 박원을 다시 찌를 필요가 없이 바로 보친왕을 노리면 되는데.”“아마 그가 빼앗을 때 박원이 아직 쓰러지지 않았거나 그 사이 깨어나서 그를 본 게 아닐까요?”“하지만, 보친왕은 다른 사람과 싸웠다는 얘기가 없었어.” 우문호는 한참을 조용히 생각하더니, 머리를 치고, “아니, 보친왕은 싸웠어. 그리고 자신과 싸운 사람이 누구인지 알았어. 보친왕이 숨기는 게 있다고 일곱째가 말하더니 이 사람을 숨긴 거였군.”“안왕을 숨겼다고요? 뭐 때문에?” 소홍천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이건 보친왕에게 물어봐 야지.” 우문호가 눈을 빛내며 소홍천과 명단을 넘기며, “내 대신 이 문파들을 조사해줘. 잡을 수 있는 놈들은 우선 잡고, 잡을 수 없는 놈들은 귀영위에게 넘겨.”“예!” 소홍천이 명을 받았다.우문호는 바로 말을 달려 경조부로 돌아가 이번엔 보친왕을 후원으로 부르고 주안상을 준비시켰다.제왕은 우문호가 왜 이러는지 이해가 되지 않아서, “형 또 정에 매여서 그래요? 보친왕은 대역무도하고 불효한 죄를 지은 사람이라고요, 저자에게 잘해주는 건 휘종제 폐하를 모욕하는 거예요.”우문호는 제왕의 어깨를 두드리며, “오늘밤 너는 먼저 가서 박원 곁에 있어줘도 좋고, 얼굴 동그란 계집애랑 있어도 좋고, 관아에 남지 마라.”제왕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박원이 깨어나서 주변에 사람들이 떼거리로 있어서 거기 안가요. 뚱땡이는…… 뚱땡이랑 박원이랑 같이 있으라 지 뭐.”우문호가 제왕을 째려보며, “차인 여자같이 굴긴, 좋으면 가서 쟁취해. 안 그러면 너 평생 후회한다.”“형이랑 얘기하면 재미 하나도 없네요. 걸핏하면 설교설교.” 제왕이 돌아서서 나갔다.우문호가 고개를 흔들며, 우유부단한 주제에 고집부리지 말아야할 때 고집부리는 녀석.만약 원 선생이 자기를 상대하지 않으면 고통스러워도 원 선생에게 매달려 돌아오게 할 거다. 체면 같은
보친왕과의 술자리관청사람이 보친왕을 데리고 안으로 들어온 뒤 우문호는 그들을 내보내고 멀리서 지키라고 하며 문 앞에서 지킬 필요 없다고 했다.보친왕은 우문호의 이런 행동이 의외라 무신경한 눈으로 우문호를 보며, “할 말은 다 했네, 명단도 줬고. 더 얘기할 것도 없어. 쓸데없이 이러지 말고 조사에 박차를 가해 병여도를 되찾아 오는 게 중요하지.”우문호가 청하는 손짓을 취하며 온화한 말투로, “이미 사람을 시켜 조사하고 있습니다. 제가 나설 필요 없어요. 오늘밤 바람이 찬데 안풍친왕비께서 가신 후 제대로 된 식사를 못하셨을 텐데 오늘밤 저희 둘이 한잔 하지요. 다 잊고 아무 것도 신경 쓰지 맙시다.”보친왕이 우문호를 보고 반신반의하며, “뭘 묻고 싶어서 가 아니라?”“말씀 하시고 싶으시면 하세요, 말씀하고 싶지 않으면 먹고 마시면 되고요, 강요 안 해요.”보친왕이 아직 망설이자 우문호가 먼저 자리에 앉아 보친왕을 보고 미소를 지으며, “전에 제가 특히 작은 할아버지를 좋아했죠. 부귀하시고 여유로우신 모습이요. 작은 할아버지한테 제일 고민스러운 일이 기르던 새가 아픈 거나 좋아하는 골동품을 못 산 거 정도 아니었나요?”보친왕이 묵묵히 앉아서 눈가에 처량함이 은은하게 베어 나왔다.우문호가 술을 따르며, “이 술은 집에 술처럼 좋은 건 아니지만 한잔 하세요.”“우리집?” 보친왕 차가운 웃음을 웃으며, “내가 지금 저택이 어디 있어? 이미 수감자로 전락했는데 태자는 그런 식으로 비꼬지 말게.”“말이 헛나왔네요!” 우문호가 웃으며 잔을 들더니, “그럼 제가 벌주 한 잔 마십니다.”태자가 고개를 젖히고 술을 쭉 들이키더니 시정 잡배처럼 혀를 차며 개탄하는데, “안풍친왕비께서 가시던 때 눈물을 닦으시는데 마음이 아팠지요. 가고 싶지 않으셨지만 안 가실 수 없으니 어쩔 수 없으셨을 겁니다.”보친왕이 노려보며, “무슨 말을 하고 싶은데?”“아무 말이나 지껄이는 거니 마음에 두지 마세요,” 우문호가 자신의 술잔을 보고, “작은 할아버지 한 잔 하세요.”
보친왕의 고백우문호가 깊숙이 들여다보더니, “조정에는 이렇게 추측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심지어 그들 부부를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고 이미 상소도 올라왔고요.”“말도 안돼는 소리, 얼토당토않은 헛소리야!” 보친왕이 발을 구르며 탁자를 치더니 화가 나서 몸을 떨며, “이건 모함이야, 물어뜯는 거라고!” 탁자가 뒤집히고 요리가 바닥에 흩어지며, 보친왕의 두 눈이 시뻘겋게 충혈되어 우문호를 노려봤다.우문호가 일어나 자기 의자를 옮긴 후 다시 앉아서 보친왕에게, “모함이든 물어뜯는 거든 어쨌든 당신이 한 어떤 일도 다 그들의 뜻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어요. 이런 유언비어가 일상을 소란하게 해서 큰 풍파를 일으킬 까봐 지금 경성을 떠난 거예요. 합당한 논리로 해명하지 못하는 한, 배나무 아래서 갓끈 고쳐 맨 혐의는 영원이 벗지 못할 겁니다. 두 분은 아마 영원히 경성으로 돌아오지 못하겠죠.”보친왕이 성난 얼굴로, “네가 가서 조사해, 설마 그들을 못 믿나?”우문호가 담담하게, “제가 믿는 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아바마마께서 믿어도 의미 없어요. 누구도 이론을 재기하지 말라는 성지를 내린다고 사람의 마음을 막을 수 있습니까? 경성 백성의 입을 막을 수 있어요?”보친왕은 숨을 몰아 쉬며 상처입은 야수처럼 하옥된 이래 지금까지 이렇게 흥분한 모습을 본 적이 없다.우문호가, “그래서 박원을 공격한 사람이 넷째예요, 그렇죠?”보친왕의 눈썹이 꿈틀하며 순간 순을 피하며, “헛소리!”우문호가, “당신이 왜 넷째를 비호하는 지 정말 모르겠어요. 넷째와 무슨 협정이 있었습니까? 본인은 죄를 인정하고 벌을 받으면서 어째서 넷째를 감싸야 하는 거죠?”보친왕은 홀로 서서 마르고 긴 그림자를 벽에 드리운 채 아무 말이 없다.우문호는 이건 묵인하는 것과 마찬가지 임을 알았다. 넷째가 이 일에 말려들어 있는 건 확실하다.하지만 보친왕의 확답을 얻지 못했고 아는 건 소용이 없으며, 증거가 필요하다.“사실 병여도가 넷째 손에 있는 걸 알죠?” 우문호가 감정을 못 참고, “
도주하는 안왕안왕부!안왕은 저녁식사후 몸이 찌뿌둥하고 오한이 들더니 조금 있다가 열이 나고 얼굴이 빨개지더니 귀까지 빨개졌다.안왕이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을 보고 안왕비가, “왜 그래요? 어디 안 좋아요?”“안 좋은 게 아니라…… 일이 터질 거 같은 느낌이야.” 안왕이 일어나 방을 한 바퀴 돌더니, 안왕비의 놀란 얼굴을 보고 얼른, “내가 아니라 공무 말이야. 실수가 생겼을 수도 있어.”“그래요? 그럼 당신이 나가 봐야 하는 거 아니예요?” 안왕비가 자상하게 물었다.안왕이 생각해 보더니, “내일 다시 얘기하지.”하지만 앉아 있기도 불안해서 다시 일어나, “역시 나가봐야 겠어.”“그래요, 얼른 다녀오세요!” 안왕비가 일어나 안왕의 외투를 가져와서 직접 입혀 주며, “밖은 날씨가 추우니 따듯하게 입고 가세요.”안왕비의 온화한 눈매를 보니 안왕의 마음도 따스해 져서 그녀의 얼굴에 입맞추고, “일찍은 못 올 거 같아, 먼저 쉬고 있어 나 기다리지 말고.”“네, 알았어요.” 안왕비 얼굴이 발그스름해 져서 안왕이 나가는 모습을 눈으로 배웅했다.막 밖으로 나가는데 마당에서 누군가 다급해 들어오며 목소리를 낮춰, “전하, 태자 전하께서 지금 안왕부 쪽으로 오십니다.”안왕의 안색이 어두워지며, “사람을 데리고?”“서일만 데리고 오시는 중입니다.”안왕이 대문을 흘끔 보고 밖으로 얼른 뛰어나가, “소리 내지 말고, 태자 전하를 편청으로 모시고 나는 목욕 중이라고 해서 일단 좀 기다리게 해.”안왕은 목소리를 낮춰, “그리고 빠른 말을 한 필 준비해라 이 밤에 경성을 떠나야겠다.”“왕야, 지금 경성을 떠나시는 건 적당하지 않습니다.”“꼭 가야해. 일단 이 비바람을 피해야 해, 우문호는 증거 없이 의심하는 것 뿐이고, 보친왕도 얼마가지 못할 테니, 그가 참수당하면 돌아올 거야. 내가 간 뒤에 왕비에게 내가 출장 갔다고 알려.”“예!” 시위가 명을 받들고, “전하를 따르도록 사람을 몇 준비시키겠습니다.”“얼른!” 안왕이 망토 옷깃을 세우고 빠른 걸음으로
잔뜩 긴장한 채로 앞으로 몸을 반쯤 내밀고 있었던 주 지부는 우렁찬 상대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중심을 잃은 듯 비틀거렸다. 그는 이내 팔을 뻗어 망루의 기둥을 붙잡으려 했지만, 허공에서 멈추고 말았고, 그대로 몸이 앞으로 쏠려 떨어져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가 말에서 빠르게 날아올라, 믿기 힘들 정도로 빠른 속도로 그에게 달려갔다. 상대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주 지부가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그를 안고 빙 돌아서 바닥에 착지했다.주 지부는 깜짝 놀라서 그만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를 구해준 사람은 반짝거리는 눈망울에, 품위 있는 모습의 젊고 잘생긴 사내였다. 주 지부는 그를 황제의 호위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거의 죽을 뻔한 고비를 넘겼기에, 안도의 한숨을 내쉴 새도 없이 그에게 예를 올렸다.“대인,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그때 말들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는데, 서일이 먼저 말에서 내려, 다급히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괜찮으십니까?”우문호도 매우 놀란 듯했다. 조금만 늦었다면, 주 지부는 정말 죽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가슴을 가볍게 두드리며 숨을 들이쉬었다.“괜찮다.”그러고는 주 지부를 보며 물었다.“자네는 누구요?”주 지부는 마차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보며, 누가 황제인지 추측했다.황제는 올해 마흔에 가까운 나이로 알려져 있었기에 위엄이 넘쳐 보일 것이었다. 그는 일행 중, 냉 수보와 홍엽을 만난 적 있었기에, 거친 모습을 한 이 인물은 아마도 호위로 추측된다. “묻지 않았소? 자네는 누구요? 어찌 죽으려고 하는 것이오?”서일은 그가 멍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자, 큰 소리로 다시 물었다.주 지부는 울 지경이었다. 냉 수보가 그를 보고 있으니, 예를 올려야 하지만, 황제도 자리에 있으니, 바로 냉 수보에게 예를 올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대체 누가 황제란 말인가?그는 황제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어, 결국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그러고는 그들에게만 들릴 정도로 낮은 목소
원경릉의 말은 그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고, 자리에 있던 관리들은 기쁨과 동시에 두려움에 휩싸였다. 이 대인은 땅에 엎드려 온몸을 바르르 떨고 있었다. 그는 살아생전에 자신이 황제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은 단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평소 차분하고 신중한 주 지부도, 그도 감정이 격해져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눈가에는 눈물이 가득했다.황후를 만난 것만으로도 큰 영광이라 생각했는데, 황제까지 오신다는 소식에 그의 마음은 흥분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원경릉은 평생을 경성에서 다섯째와 함께 있었기에, 그녀는 그저 그가 온다는 사실을 간단히 전했을 뿐이었는데 말이다. 그녀는 다들 걱정 없이 역병을 치료하고, 언제나 황제가 그들의 뒤를 든든히 지켜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들의 반응을 보니, 황제가 직접 오는 것이, 지방 관리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깨달았다.원경릉이 급히 말을 덧붙였다.“폐하게서는 그저 역병 때문에 온 것이니, 모두 각자 맡은 일에만 최선을 다하면 되네.”“예, 예, 마마의 명을 따르겠습니다.”주 지부가 눈물을 닦으며 답했다.그렇게 관아와 의서가 협력하여, 오계부를 조사하기 시작했다.원 할머니는 역병을 치료할 수 있는 처방을 몇 가지 내렸다. 경증 환자는 약차를 계속 마시고, 증상이 악화하거나 중증 환자는 그녀의 처방을 사용하도록 했다.전에 이미 근처 주부에 연락해 약을 보내라 명했고, 오계부에서 구비한 약까지 있으니, 이번 역병을 대처할 수 있었다.오계부 의서는 이번 역병을 과거의 역병과 동일하게 생각하고, 소홀히 한 것 외에는 준비가 충분했다.원경릉은 황제 일행이 저녁 무렵 오계부에 도착할 것이라 예상했다.주 지부는 원래 여러 관리와 함께 황제를 맞이할 예정이었지만, 원경릉이 이를 단호히 거부했다. 그녀는 황제가 미복 순행 중이니, 과하게 맞이하여 백성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했다.그 말에 주 지부는 당황했다.황제가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아무도 맞이하지 않는다니, 어찌 그럴 수 있다는 말인가?그러나 그는 황
약을 쓰자, 주 지부의 열이 단번에 내려갔다.열이 내려가니 정신이 맑아져, 그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는 애써 자리에서 일어나 황후마마에게 예를 올리겠다고 고집 피웠다.원경릉은 그에게 누워 있으라고 말한 후, 역병에 관해 이야기하며 주 지부에게 이를 중시할 것을 당부했다.주 지부는 이를 듣고 깜짝 놀라 말했다.“소신은 매일 의서에 사람을 보내, 역병의 상황을 보고받고 있사옵니다. 매일 보고된 상황은 그다지 심각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역병이 발생했지만, 작년과 비슷한 정도였고, 약재도 충분한데, 어찌 이렇게 심각해진 것입니까?”“매년 역병이 발생했으나, 대대적으로 퍼지지 않아,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네.”원경릉이 답했다.“의서의 이 대인을 불러, 상황을 확인하겠습니다.”주 지부는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어제 이미 그를 찾아가, 환자 수와 사망자 수를 조사하라 명했네. 하지만 그는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모를 것이네. 자네가 사람을 보내, 관아에 와서 상황을 보고하도록 하게.”“예!”주 지부는 곧바로 사람을 보냈다.푸른 옷을 입은 남자는 관아에서 일하는 관리였기에, 그는 반 시진도 채 되지 않아, 관아 내에서 병에 걸린 자가 얼마나 되는지 통계해냈다.관아 내에서 역병 증상을 보인 사람은 총 열여덟 명이었고, 그중 두 명은 병세가 심각하여 이미 집에서 쉬고 있는 상태였다. 주 지부는 관아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병에 걸린 줄 몰랐고, 관리의 보고를 들은 후, 큰 충격을 받았다.의서의 이 대인은 하루 종일 쉬지도 않고, 바삐 움직였다. 서관 대인이 직접 오셨으니, 어떻게든 시키는 일을 완성해내야 했다.그는 사실 역병이 그다지 심각하지 않고, 그저 작년과 비슷하다고 여겼었다.하지만 여러 지역과 의원을 돌아보고 나서야, 이번 역병이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처음엔 그저 서관 대인에게 보고만 하려고 했지만, 병세가 심각해지자 그도 조급해지기 시작했다.하지만 짧은 시간 안에 인원수를 통계하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도, 다섯째 일행은 여전히 도착하지 않았다.그래서 원경릉과 할머니는 다른 의관을 더 둘러보기로 하고, 몇 군데 더 돌아본 뒤 관아에도 갈 계획을 했다.그런데 한 의관에 들어서자마자, 푸른 옷을 입은 중년 남자가 다급히 뛰어오며 말을 걸었다. “수 의원, 대인께서 병세가 위중합니다. 어서 봐주셔야 합니다.”의원은 그 말을 듣자마자, 약상자를 집어 들고 다른 환자들을 그냥 남겨둔 채, 푸른 옷의 중년 남자와 함께 나가려 했다.원경릉이 그를 막아 세우며 말했다.“의관에 있는 환자들을 돌봐야 하지 않소? 우리 할머님께서도 의원이니, 지부 대인의 병은 할머님께서 봐 드릴 것이오.”푸른 옷의 사내는 초조한 듯 원경릉을 향해 소리쳤다.“말도 안 되는 소리 마시오!““대인의 병세가 급박한데, 혹여라도 지체되면 당신들이 책임질 수나 있겠소?”바로 그때, 원 할머니가 호패를 꺼내, 그의 눈앞에 들이밀며 단호하게 말했다.“길을 안내하거라!”조급한 표정을 짓던 푸른 옷의 사내는 호패를 보자마자 표정이 얼어붙었다. 이내 정신을 차린 그는 곧장 허리를 굽혀 예를 올리며 말했다.“서관 대인께서 오셨을 줄은 몰랐습니다. 무례를 범해 송구하옵니다.”“그만 사과하고 길 안내나 하시오.”원경릉이 말했다.“예, 예!”사내는 급히 물러서서, 예를 갖춰서 길을 가리켰다.“마차가 밖에서 대기 중입니다. 서관 대인, 이쪽으로 오시지요.”원경릉은 할머니를 부축해 마차에 올랐고, 곧장 관아로 향했다.지부 대인은 따로 사저가 없어 관아의 뒷마당에서 거주 중이었다. 혼자 지내는 데다 관아가 워낙 가까워 편리했기 때문이다.관아에 도착하자마자, 그들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안으로 들어갔다.주 지부는 병세가 꽤 심각해져 있었다. 그는 어지럼증과 흉통에 시달려, 침대에 누운 채 말을 꺼낼 힘도 없었다.원경릉은 직접 치료에 나섰고, 약상자를 열어 체온 측정기와 청진기를 꺼냈다.푸른 옷의 사내가 의아해하며 물었다.“아가씨께서도 의원이십니까?”그러자 곁에 서
이 대인이 원경릉에게 의학을 잘 모른다고 반박할 틈도 없이, 원 할머니가 먼저 입을 열었다. "말대로 하게. 하루만 줄 테니, 그 안에 역병에 관한 모든 자료를 가져오게. 사망자 수도 포함되어야 하네." 이 말까지 듣자, 이 대인은 더 이상 반박할 수 없었다. 비록 조사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서관 대인이 멀리서 오계부까지 왔으니, 시키는 일은 해야지 대인의 마음에 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사람들을 보내 조사를 명한 후, 이 대인은 거처를 마련해 드리겠다고 했다. 하지만 원경릉이 말했다. "괜찮습니다. 의서에 의원이 많지 않으니, 대인도 바쁘실 텐데요. 저희가 직접 오계부를 돌아보겠습니다." 이 대인은 그녀가 원 할머니의 힘을 빌려 위세를 부린다고 생각해, 대꾸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말에 답도 하지 않고, 원 할머니에게 예를 올렸다. "어르신께서 머무실 계획이 있으시면, 부디 저에게 알려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밤 대인을 잘 대접하라, 명을 내리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네. 일이나 보게." 원 할머니는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원경릉에게 말했다. "먼저 좀 돌아보다, 객사를 찾아 머물자꾸나." "예!" 두 사람은 역병을 조사하기 위해 다급히 이곳을 찾아왔기에, 먼저 각지의 의원을 직접 돌아보려 했다. 아마 다섯째 일행은 빨라야 내일이나 모레쯤 도착할 것이었다. 두 사람이 의서를 나서자, 이 대인은 뒤따라 나오려다 원 할머니의 날카로운 눈빛에 움찔하며 발길을 멈췄다. 두 사람은 오계부의 거리로 향했다. 거리가 꽤 번화했고, 사람들도 제법 많아, 대낮에는 조금 붐볐다. 그들은 곧장 의원으로 향했다. 의원 앞에는 약차가 많이 진열되어 있었지만, 환자는 얼마 없었다. 겉보기엔 역병이 퍼졌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원경릉은 안으로 들어가 의원에게 상황을 물었다. 그러자 의원은 요즘 들어 약차가 잘 팔리고 있고, 하루에 천 봉지가 넘게 팔린다고 답했다. 하지만 그도 역병
늦게 출발한 원경릉은 신속하게 오계부로 향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오계부 근처 주현에 도착하자마자, 할머니가 현지 혜민서로 가야 한다며 잠깐 멈추자고 했다. 그러고는 혜민서에 오계부로 약을 공급할 준비를 하게 했고, 명을 받으면 바로 오계부로 보낼 수 있도록 미리 준비를 당부했다. 혜민서 산하의 의료기관들은 지난 몇 년간 개혁을 통해 뚜렷한 성과를 거두었고, 지역 간의 연결도 긴밀해졌다. 특히 역병을 상대하는 체계가 가동되면 상부에서는 전력을 다해 의원과 약을 지원해줄 수 있었다. 신신당부한 뒤에야 원경릉과 할머니는 오계부로 재빨리 향했다. 곧이어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우문호 일행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다. 오계부는 인구가 500만 명에 이르는 곳으로, 두 개의 주부가 통합된 지역이었다. 열대에 있어, 경작지가 많고 산이 많아 농업을 위주로 삼고 있었다. 그래서 조정은 이곳을 서부의 주요 곡창지대로 삼고 있었던 것이었다. 농업이 발달한 지역은 상대적으로 경제도 번화했고, 현지 백성들은 벼 외에도 감, 자두, 리치 등을 대량으로 재배하고 있었다. 리치는 신선할 때 먹을 수도 있고, 말려서 건과로 만들어 팔 수도 있기에, 어느 정도 지역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었다. 오계부는 백월국과 인접해 있었는데, 백월국은 북당의 속국으로 사이가 우호적이며 경제 교류도 활발했다. 이는 양국의 번영을 촉진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오계부의 지부는 장씨 성을 가진 오계부 출신이었다. 장 지부는 훌륭한 관리이며 지역 백성들로부터 존경받고 있었다. 원경릉과 원 할머니는 오계부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지역 혜민서를 찾았다. 할머니는 혜민서의 서관(署館) 신분을 밝혔다. 그녀는 북당 각 주부의 의서를 총괄하는 인물이고, 총책임자이기도 했다. 혜민서의 이 의원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두 사람을 안으로 청한 후, 바로 예를 올렸는데, 마치 신선이라도 본 것처럼 목소리까지 떨고 있었다. "소인은 이자옥이라 합니다. 어르신께서 친히 오신 줄도
그녀는 일단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하고, 냉 대인이 자세한 상황을 묻는 사이에 제 대인의 피를 뽑았다. 약상자는 기능이 꽤 다양하기에, 바이러스 검사도 문제없었고, 안에는 양여혜가 준 소형 현미경도 있었다. 하지만 바이러스 관찰이나 세균 배양에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지체할 수 없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먼저 오계부로 향하고, 그녀는 이곳에 남아 제 대인을 치료하고 검사 결과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면 바이러스든, 세균 감염이든, 결과가 나와야 제대로 된 치료 방안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미색이 말했다. "저도 이곳에 함께 남겠습니다. 제가 환자를 돌보는 것 정도는 도울 수 있지 않겠습니까?" "괜찮으니 먼저 가거라. 어쩌면 내가 더 일찍 도착할 수도 있으니깐." 원경릉이 말했다. 그녀는 혼자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지만, 미색까지 데리고 가는 건 무리였다. "우리가 먼저 출발하는데, 어찌 더 일찍 도착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미색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가능한 일이다. 원 선생은 늘 기적을 만들어내니." 우문호가 말했다. 그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고, 원경릉에게 다가가 조심하라고 몇 마디 당부했다. "알았소. 지체하지 말고, 어서 떠나시오. 오계부에 도착하면 곧바로 관아를 찾아가, 의원의 빠른 대처를 명하라 하시오. 만약 내가 먼저 도착한다면, 내가 관아를 찾아가겠소." "알겠소. 그럼, 먼저 가겠소!" 우문호는 그녀와 입을 맞추고 싶었지만, 보는 이가 많으니 그저 참을 수밖에 없었다. 서일은 황후를 홀로 두고 가는 것이 걱정되어, 우문호를 따라나서며 계속 물었다. "정말 황후를 이곳에 혼자 남겨도 되는 것입니까?" "그럼, 네가 남을 것이냐?" 우문호가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 "너도 원 선생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알고 있지 않느냐?" 회왕 부부도 걱정은 되었지만, 다섯째의 여유로운 모습에 자신이 있을 것이라 믿었다. 다섯째 부부는 늘 비밀이 많은 사람들이라, 그들은 더 이상 신경
원경릉은 밖으로 나가, 오계부에 역병이 생긴 것 같다고 전했다. 오계부는 서쪽에 자리 잡고 있어, 기후가 더운 탓에 가끔 역병이 생기긴 했었지만 백성들은 고뿔 치료에 쓰이는 약초로 끓인 차를 즐겨 마시기에, 대규모로 역병이 돈 적은 없었다. 냉 대인이 말했다. "오계부에서는 이 상황을 조정에 알리지 않았습니다. 비록 해마다 역병이 생기긴 하지만, 빠르게 통제해 왔으니, 이번에도 예전과 같은 상황이지 않겠습니까?" 원경릉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런데 이번엔 더 심각할 수도 있습니다. 제 대인의 형도 역병으로 돌아가셨고, 그와 가까이 지낸 사람들도 병에 걸렸습니다. 이렇게 관아에만 역병에 걸린 자들이 많으니, 예전보다 더 심각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해마다 역병이 생겼으니, 그에 대한 대응책도 이미 있을 것입니다." 원경릉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해마다 역병이 생겼지만, 대대적으로 유행하지 않았기에, 현지 관리들이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겨 쉽게 통제될 것이라 생각하고, 방심할 수도 있으니깐요." 우문호가 물었다. "원 선생, 역병을 어떻게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하오?" "역병 상황이 안 좋을 것이라 추측할 뿐, 정말 오계부의 상황이 어떠한지는 아직 모르네. 제 대인은 여전히 고열에 시달리고 있어, 수액을 맞히고 해열제를 먹였소. 냉 대인과 함께 들어가 상황을 자세히 물어봐야겠소. 하지만 꼭 마스크를 끼고, 병을 막아야 하오." 원경릉은 유행성 독감이나 변이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일 것이라 의심하고 있었다. 그녀가 살던 세계에서는 A형 독감의 대규모 변이가 십수 년마다 한 번씩 발생했는데, 그런 변이 독감은 현대에서도 의료 체계에 큰 부담이 되곤 했다. 그러니 지금 이곳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만약 역병이 다시 시작한다면, 가능한 한 빨리 통제해야만 했다. 원경릉의 말을 우문호와 냉 대인은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도
원경릉은 청진기를 꺼내 그의 폐를 확인해 보았는데, 남녀가 가까이 접촉하는 것이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한 제 대인은 이내 손을 뻗어 그녀를 막으려 했다. 하지만 병세가 심해 아픈 데다가,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묘한 위압감을 풍기는 의원의 단호한 눈빛과 기운에 그만 압도당하고 말았다. 원경릉은 앞쪽을 청진한 뒤, 그에게 옆으로 돌라고 한 다음에 꼼꼼히 살피고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며칠을 아프신 것입니까?" 제 대인은 꽉 막힌 코 때문에 콧소리를 내며 천천히 몸을 돌리고 답했다. "며칠 사이의 일입니다. 오계부를 떠날 때도 멀쩡했는데, 밤새 달리고, 말을 오래 타다 보니 고뿔에 걸렸나 봅니다." "기침 말고, 가슴 통증도 있습니까?" "예. 이곳이 아픕니다!" 제 대인은 가슴 근처를 손으로 누르며 말했다가, 숨쉬기가 어려운 듯 손바닥을 움직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도 아프고, 온몸 뼈마디도 다 아픕니다." 그러자 원경릉은 더 자세히 증상을 확인한 뒤 말했다. "약을 준비할게요. 수액을 좀 맞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수액이요?" 제 대인은 멍하니 원경릉을 바라보았다. "예. 질문은 하지 마시고, 그저 치료에 협조만 해주십시오. 병세가 꽤 심각한 편입니다." 원경릉은 제 대인이 폐렴이라 확신했고, 중증 폐렴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제 대인은 병이 심하다는 말에 초조한 표정을 지으며 다급히 말했다. "의원 나리, 제발 최선을 다해 치료해 주십시오… 저에게는 아직 모셔야 할 노모가 있습니다. 지난달 병으로 형님께서 세상을 떠난 터라, 형님의 자식들도 제가 돌봐야 하니, 절대 이대로 목숨을 잃을 수는 없습니다." 원경릉이 답했다. "최선을 다할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 치료에만 집중하시지요!" 제 대인은 감동을 받은 듯 감사 인사를 올렸다. "정말… 감사합니다." 원경릉은 곧바로 약을 지어 수액을 준비했다. 수액을 맞는 동안, 제 대인은 여전히 놀란 모습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