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문호의 치명상진북후는 이전의 기고만장함은 전혀 없고 눈에 띄게 어찌할 바를 모르고 허둥거렸다. 서일이 진북후에게 나가도록 권했으나 나가지 않고 거기 있겠다고 우겼다.보좌관과 포도대장도 그곳을 지키며 원경릉이 온 것을 보고 길을 터주었다.우문호의 옷은 벗겨진 채로 의원이 지혈 붕대를 감아 복부의 피는 멈췄으나 대퇴부는 아직 피가 흐르고 있었다. 하지만 의사가 상처 위쪽으로 붕대를 묶어서 지금 출혈은 그렇게 심각해 보이지 않았다.단지 이불과 벗겨진 옷이 온통 피로 물들어 있다.우문호는 정신을 차리고 있었으나 피가 많이 빠져서 얼굴이 창백한데 손을 뻗어 원경릉의 손목을 잡고 작은 목소리로, “난 괜찮아, 걱정하지 마.”원경릉이 눈물을 닦으며 우문호의 칠흑 같은 눈동자를 들여다 보며, “응, 얘기하지 마.”눈이 우문호의 허벅지 상처에 가자 원경릉은 몸서리를 쳤다.상처가 깊어서 살이 완전 뒤집혔고 옆에 있는 대동맥이 파열돼서 이렇게 엄청난 출혈을 야기했을 것이다. 지금은 묶어 둔 상태지만 만약 바로 처치하지 않으면 다리를 못 쓰게 된다.그리고 상처 위치가 전에 처음 다쳤던 위치 근처라 만약 약간 1~2cm만 지나도 뿌리까지 잘릴까 두려웠다.우문호는 여전히 힘든 가운데도, “넷째가 조금만 더 힘을 줬으면 당신 청상과부 될 뻔 했어.” 농담을 했다.원경릉은 웃을 기분이 아니라 눈물을 애써 참는 수밖에 없었다.서일이 들어와 의원에게 나가시라고 하고 우문호의 말에 의원은 상처를 들여다 보며, “전하, 상처가 이렇게 붙어 있어서 분명 영향을 줄 것이므로 그렇게 느긋하시면 안됩니다.”원경릉이 우문호를 마취시키고 핀셋으로 면보를 집어 들고 상처 부근을 소독했다.원경릉은 이미 우문호의 상처를 치료하는 게 몇 번째인지 잊어버렸다. 하지만 이건 우문호를 원망할 수 없는 것이 안왕이 들어서자 마자 칼부림을 할 정도로 실성할 줄 누가 알았을까.아무도 웃을 수 없는 상황으로 진북후는 쭈그리고 앉아 얼굴을 가리고 몸을 떨고 있다.그는 하마터면 태자를 죽일 뻔했다
안왕과 안왕비진북후가 벌떡 일어나 목소리를 낮추고, “전하, 마음 쓰실 거 없습니다. 저들한테 와서 제 머리를 가져가라고 하세요.”오늘 이 일이 터지고 진북후는 너무나 두려웠다. 오늘 다친 사람은 전하 뿐 아니라 경조부에도 여럿이어서 다시 이렇게 소동이 일어나 사람이 죽는다면 진북후는 감당할 수가 없다.우문호가 이를 악물고, “어르신, 경솔하게 굴어서는 안됩니다. 전부 제 말을 듣고 우선 나가세요.”진북후는 더 얘기하려고 했으나 우문호의 굳은 눈빛을 보고 조용히 한숨을 쉬고 천천히 나가야 했다.하지만 나간 뒤 그는 사람을 시켜 자신을 감옥에 데려가도록 했다.경조부 사람이 들어와 보좌관에게 보고하니 보좌관이 고개를 끄덕이고, “진북후의 의견대로 하거라.”적어도 안왕이 다시 왔을 때 진북후가 옥에 갇혀 있는 것이 경조부에서도 태도를 취하기 낫기 때문이다.우문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저들이 하는 대로 두었다.복부는 찰과상으로 내장을 다치지 않아 비교적 처치가 잘되었는데, 상처는 대략 4~5mm로 신속하게 봉합한 후 붕대를 감았다.사식이가 물을 길어와 원경릉이 손을 씻고, 대야에 두 손을 담그고 바라보는데 피가 천천히 퍼져 나가며 원경릉의 눈물도 후두둑 떨어졌다. 마음이 너무나 괴로웠다.우문호가 고개를 돌려 원경릉을 보고 그윽한 눈빛에 안타까움이 뒤덮여 작은 목소리로, “나 정말 괜찮아, 울지 마.”원경릉이 손을 닦고 조용히 우문호 곁으로 가서 붉어진 눈으로, “상처 처리는 다 마쳤어, 출혈과다를 제외하고 다른 문제는 별로 없으니 요 며칠 누워서 아무데도 가지마.”사식이가 이 말을 듣고 모두 나가라고 하고 자신도 밖에서 기다렸다.우문호가 원경릉의 손을 잡자 방금 뜨거운 물에 담근 손은 따스한데 우문호의 손은 얼음장 같다. 원경릉은 손을 빼내 우문호의 얼굴을 쓰다듬고 애써 미소 지으며, “자기는 무공이 그렇게 세면서 왜 넷째한테 당한 거야?”우문호가 원경릉의 손바닥을 자신의 볼에 꼭 누르며 마치 그 따스한 온기를 다 빨아들이려는 듯 약간
실마리를 발견하다원경릉은 우문호의 창백하게 겁에 질린 얼굴을 보니, 이번에 안왕이 자기손으로 우문호를 죽이려고 한 사실에 심하게 놀란 모양이다.원경릉도 심장이 목구멍밖으로 튀어나올 지경이었는데 우문호가 잠들지 않은 것을 보고, “만약 안왕비가 정말 못 버티면 넷째는 분명 다시 오겠지?”우문호가 “그건 겁 안 나는 게 이번엔 관아에 사람이 부족했던 게 주요 원인이었거든. 이제 탕양이 내 친전을 들고 초왕부 병사를 파견해 온 데다 소홍천도 사람을 데리고 부근에서 매복하고 있어. 넷째가 다시 와도 날 어떻게 못할 뿐더러 꼭 진북후를 죽일 수 있을 거란 보장도 없지.”원경릉이 눈물을 참지 못하고, “안왕비가 얼마나 좋은 사람인데 이렇게 죽는 건 너무 한 거 아냐, 도대체 범인이 누구야? 왜 안왕비를 해친 건데?”우문호가, “범인이 누군지 아직 모르지만 사실 우기가 어젯밤 진술을 대질해 보며 약간의 문제점을 발견해냈어. 적어도 착안점이 되지 않을까 해.”“어떤 점인데?” 원경릉이 물었다.우문호가 다치지 않은 다리로 지탱하면서 옆으로 움직이더니 원경릉을 좀 더 안으로 들여앉히고, “당시 어화원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진술을 받고, 만원 쪽에 있는 사람에게도 받았는데 ‘진북후와 넷째가 말다툼을 하고 헤어진 뒤에 비로소 아라가 자리를 떴다’는 걸 발견 했어.”원경릉이 사정이 잘 이해되지 않아서, “그게 뭐? 이 일이 아라랑 관계가 있어? 관계가 있더라도 아라가 진북후가 가는 걸 봤다는 사실이 뭘 설명해주는 건 아니잖아.”우문호가, “하지만, 아라와 넷째 형수의 시녀 아채의 진술에 따르면 아라가 만원을 떠날 때 넷째와 진북후는 막 싸우고 있는 중으로, 아라는 형수에게 와서 넷째를 곤경에서 구해달라고 데리러 간 거라고 했어. 그런데 분명히 아라는 진북후가 자리를 떠나는 걸 봤지. 이 말은 말다툼이 이미 끝났다는 뜻이야. 그럼 넷째를 위기에서 구하기 위해서란 아라의 말이 설 자리를 잃는 거지.”“아라가 가서 안왕을 위험에서 구해 달라고 한 뒤 안왕비에게 문제가
위독한 안왕비두 사람은 잠시 말이 없다가 원경릉이, “그만 얘기하고 좀 자, 내가 여기서 자기를 지키고 있을 게.”우문호도 사실 많이 어지러운데다 연일 사건조사로 수면 부족으로 죽을 지경이라 날름 눈을 감았다.안왕은 경조부에서 한바탕 난리를 피우고 다시 밤을 도와 궁으로 돌아갔다.궁중은 저녁에 출입이 허락되지 않는 곳으로 나갈 때는 아직 궁문이 열려 있었지만 돌아올 때는 이미 닫힌 것을 보고 안왕이 막무가내로 치고 들어 오는데, 상황을 아는 금군들은 안왕을 막지 못하고 황제에게 보고하기도 어려워 안왕이 들어간 뒤 구사에게 가서 알렸다.안왕비의 상태는 이미 많이 나빠져서 저녁 유시(오후5시~7시)말부터 피를 한 번 토하고 다시 술시(오후7시~9시)에 또 한번 토하자 어의는 상황이 심각하다며 안왕에게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다.안왕은 이때서야 출궁해 사람을 불러 경조부로 쳐들어 가 진북후를 죽이려 한 것으로, 안왕비가 어찌되든 안왕은 진북후를 안왕비보다 먼저 죽여야 했다.태자를 찌른 후 원래 다시 완전히 죽이려 했으나 태자가 안왕에게 소리치길, “형수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네가 곁에 없는 걸 보면 좋겠어?”그때 안왕은 절망이 끝까지 차 올랐다.궁으로 돌아와보니 안왕비의 호흡은 이미 너무도 미약하고 얼굴은 화선지처럼 창백하다.어의가 침대 곁을 지키며 안왕에게 고개를 흔들었다.“왕야, 자금단 약효가 곧 사라질 겁니다. 왕비마마께서는 버티지 못하실 것 같습니다. 왕야 슬픔을 자제 하소서!”안왕은 의자를 발로 차고 벼락같이 포효하며, “슬픔을 자제하라고? 왕비는 아직 살아있어, 이 쓸모없는 놈들.”어의는 의자에 맞지는 않았지만 무서워서 벌벌 떨며 도망갔다.귀비가 옆에서 보고 그저 조용히 고개만 흔들었다.아라는 오늘밤 궁을 지키다가 안왕이 피 칠갑을 하고 돌아온 것을 보고, 왕야를 따라간 수행원들에게 물어보고 안왕에게, “왕야, 오늘밤 너무 충동적이셨습니다. 어쩌자고 경조부에서 난리를 피우셨습니까?”안왕이 살벌한 눈빛으로, “내가 그러면 안돼?
안왕의 결정안왕이 벌떡 일어나 흉포한 얼굴로 아라를 노려보자 아라는 놀라서 비틀거리며 뒷걸음치는데 공포에 떨며 안왕을 쳐다봤다.안왕이 손을 뻗어 아라의 목을 움켜쥐었다. 이마엔 푸른 실핏줄이 꿈틀거리고 부드득 이를 갈며, “맞아, 만약 왕비가 죽으면 모든 게 나한테는 아무 의미도 없어, 넌 닥치고 있는 게 좋아, 아니면 내가 널 가만두지 않아도 원망할 생각 말든가.”말을 마치고 안왕은 아라를 바닥에 내팽개쳤다.아라는 안왕이 자신을 이렇게 대하는 것을 믿을 수가 없고, 안왕이 이런 말을 하는 것도 믿을 수가 없는데, 이게 정말 아라가 알고 있는 안왕이라고?안왕의 웅대한 포부와 참을성은 어디 갔지? 한 여자를 위해서 안왕은 대업조차 돌보지 않았다.귀비가 상황을 보다니 약간 불쾌해서 안왕에게, “이게 무슨 일이니? 자기 사람에게 무슨 행패냐? 아라도 다 너를 위해서야, 이 때 누군가는 이성을 차리고 있어야지. 네가 태자를 다치게 한 건 옳지 않아, 네 아바마마께서 지금 태자를 눈동자처럼 사랑하는데 하필 이때 태자를 다치게 했으니 네 아바마마께서 더 화를 내시지 않겠어?”귀비는 직접 아라를 일으켜 위로하고, “됐다, 너도 너무 마음에 두지 말아라. 안왕이 잠시 이성이 흐려진 것이니 너도 가서 좀 쉬어라. 왕비 시중을 이렇게 오래 들었으니 피곤할 거야. 여러모로 네가 고생이 많구나.”아라는 소매에 놓인 수가 손가락에 깊게 찍히도록 소매를 꽉 쥐어도 마음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오히려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다는 느낌과 쓰라린 고통만이 가득했다. 어차피 곧 죽을 사람이다. 앞으론 안왕비때문에 번뇌할 필요 없다.아라는 얼음장보다 차가운 안왕을 흘끔 보고 살짝 고개를 끄덕인 후 돌아서서 나갔다.귀비는 못 참겠다는 듯 안왕을 원망하며, “너 지금 뭐하는 짓이야? 이 일은 아라랑은 상관도 없고, 태자에게 화풀이를 한다고 왕비가 깨어나기를 해? 대사를 똑바로 하는 거야?”안왕이 침대에 앉아 하염없이 안왕비 곁을 지키고 있다가 귀비의 말을 듣고 가슴이 찌르듯
왕비를 구할 수 있다면귀비가, “네가 직접 갈 필요 없다. 넌 안왕비 곁을 떠날 수 없으니 내가 덕비에게 가서 애원해 보마. 덕비는 태자비와 관계가 좋으니 만약 덕비가 나서 준다면 제일 좋고 또 혹시 네 아바마마께 가서 성지라도 받아 태자비에게 입궁하도록 하면 태자비도 감히 어길 수 없을 게다.”안왕이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아닙니다. 제가 미워서 죽을 지경인데 덕비 마마께서 가거나 성지가 내린다고 태자비가 와서 진심으로 치료한다는 보장이 없으니 역시 소자가 직접 다녀오겠습니다. 절 욕하든 때리든 소자가 참아내면, 태자비는 어쩌면 연아를 차마 그냥 둘 수 없는 마음이 들어 최선을 다해 치료할지도 모르니까요.”귀비는 안왕이 이렇게까지 수모를 기꺼이 감당하겠다는데 뭐라고 할 말은 없고 어쨌든 목숨이 제일 중하니 고개를 끄덕이며, “다녀 오너라. 에미가 네 대신 여기서 지키고 있으마. 자금단 약효가 해 뜰 즈음엔 완전히 사라진다고 하니 어의를 불러 같이 지키다가 만약 정말 위급한 순간이 닥치면 어의가 잠시 숨을 붙잡고 있는 비방이 있는 것을 아니 너는 최대한 빨리 다녀오거라.”안왕이 눈에 새길 듯 안왕비를 바라보고 눈가가 붉어지더니 몸을 붙이고 안왕비의 이마에 입을 맞추더니 작은 목소리로, “기다려, 금방 다녀올 게.”아라가 밖에서 안왕과 귀비의 말을 듣고 미치고 돌 지경이다.어의에게 들어가라고 분부한 뒤 아라도 더는 참지 못하고 안왕을 막아 서서, “왕야 실성하셨습니까? 드디어 원경릉에게 애원까지 한다고요? 원경릉이 좋아 죽을 겁니다. 왕야께서 가셔도 그저 웃음거리가 될 뿐, 왕야를 비웃고 원경릉은 올 리가 없어요. 왜 가서 원경릉 앞에서 체면을 구기시나요?”안왕의 눈동자는 산산이 부서진 얼음조각 같아서, “비켜!”“보내 드릴 수 없습니다.” 아라가 고개를 흔들고 안왕 앞에 버티고 서 있는데, “왕야께서 원경릉에게 가서 모욕을 당하게 할 수 없습니다. 원경릉의 사람됨이 어떤 지는 차치하더라도 두 가지 입장 사이에 있는 와중에 오늘밤 왕야께서 태자
애원하는 안왕안왕은 말을 몰아 경조부로 달려 갔다.우문호가 상처를 입으면 반드시 원경릉을 부른다는 것을 알고 또한 우문호의 상처가 가볍지 않아서 이동도 불가능하기 때문에 원경릉은 분명 경조부에 있을 것이라고 안왕은 단정했다.경조부 쪽은 안왕이 간 뒤로 방어태세를 강화했는데, 날이 밝기도 전에 말 한 필이 날듯이 달려오는 것을 보고 또 안왕인 것 같아 바로 경계 태세에 돌입해 보고하러 갔다.안왕이 경조부 입구에 도착해 말에서 뛰어내리며 쉰 목소리로, “난 소란을 피우러 온 게 아니라 태자비를 만나기 위해 왔네, 어서!”원경릉이 관아 뒤뜰에서 우문호를 돌보고 탁자에 엎드려 잠이 들었다가 밖에서 발소리가 들려와 반쯤 눈을 뜨는 찰나 사식이가 문을 열고 들어와, “원 언니, 안왕이 또 왔어요. 언니를 보자는 데요.”우문호가 잠이 들었다가 안왕이란 말을 듣고 벌떡 일어나 눈을 크게 뜨고, “또 왔어? 또 무슨 짓을 하려고? 미친 거 아냐? 좋아, 오라 그래. 한판 붙어보자. 이번엔 안 봐 줄줄 알아.”“날 보러 온 거래,” 우문호가 목숨 걸고 싸우겠다고 떨치고 일어서는 걸 본 원경릉이 얼른 달래며, “자기는 일어나지 마. 나중에 상처가 벌어지면 더 곤란해.”“널 만나서 뭘 할 건데? 혼자 넷째를 만나서는 안돼. 이쪽으로 오라고 해.” 우문호가 서둘러 말했다.원경릉은 우문호가 걱정하는 걸 알고 사식이에게, “안왕 전하께 나는 태자 전하의 상태를 돌보는 중이라 할 말이 있으면 여기서 하시라고 전해줘.”“네, 가서 서일에게 얘기하고 올 게요.” 사식이가 말을 마치고 나갔다.우문호는 냉정하게 원경릉을 보고, “넷째가 널 보겠다는 게 널 입궁시켜 형수님을 치료해 달라는 게 아닐까?”원경릉이 작은 목소리로, “몰라, 자기는 함부로 추측하지 말고, 얼른 누워.”우문호가 원경릉의 손을 빌어 약간 위쪽으로 몸을 옮기고 원경릉은 우문호를 위해 베개를 높여주어 다른 사람이 보기에 체면에 손상이 없도록 했다.우문호가, “만약 그런 거라면 가도 안 좋고 안 가도 안
원경릉에게 사정하는 안왕하지만 지금 안왕은 머리가 산발이고 옷은 꾸깃꾸깃한 데다 핏자국으로 얼룩져 있고 얼굴은 수염이 거뭇거뭇하고 눈가는 퀭한 데다 한 움큼 희어진 귀밑머리까지, 지금의 몰골에서 예전의 귀티를 전혀 찾을 수가 없다. 안왕은 멀찍이 서서 마치 세상에 홀로 남겨진 듯 실의에 빠져, 예전의 광기는 보이지 않고 실핏줄이 가득하고 떨리는 입술을 겨우 벌려, “태자비, 내가 부탁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원경릉은 아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우문호는 헛기침을 한 번 하는데 안왕은 우문호를 뼈아프게 한 번 흘겨보더니 서둘러, “다섯째야, 오늘 밤 내가 널 다치게 했어, 너한테 미안하다. 하지만 형제간의 싸움이었을 뿐이다. 그동안 내가 너한테 뭘 부탁한 적이 없는데 지금 형이 한 가지 부탁하마. 형제의 정을 봐서 태자비가 입궁해 형수의 상처를 치료해 주길 원한다. 형수…..는 죄가 없잖아. 너희를 다치게 한 적이 없어.”우문호는 입을 다물지 못하고 방금 안왕이 지껄인 말에 대해 비꼬고 싶었다. ‘형제 간의 정을 봐서? 왜 나 찌를 땐 그 생각 안하고?’하지만 차마 입에 담진 않고 원경릉을 바라봤다.원경릉의 침묵은 거절도 아니고 안왕이 다가와 애원하는 말투로 원경릉에게, “어떤 조건을 원하는 겁니까? 말해봐요. 내가 할 수 있는 건 뭐든 전부 수락하겠습니다.”원경릉의 손이 탁자 위의 약 상자 위에 가더니, “한 가지, 낫게 할 수 없어도 나는 이미 최선을 다했음을 믿어주세요. 왕야께서 이것을 수락하시면 바로 당신을 따라 가겠습니다.”“좋습니다. 수락합니다!” 안왕이 한마디로 수락하고, 원경릉이 이렇게 순순히 따라나서다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다.우문호는 다쳐서 따라갈 수 없고 서일과 탕양, 사식이가 함께 갔다.구사가 궁문을 지키며 안왕과 원경릉을 들어오게 했으나 탕양, 서일은 저녁이라 궁에 들어갈 수 없는데다 특히 저들이 가는 곳이 후궁이라 두사람은 따라가지 못하고 사식이만 같이 들어갔다.사식이는 가는 길 내내 안왕이 갑자기 미치고 날뛸 까
원경릉은 궁으로 돌아와 이 일을 다섯째에게 이야기했다. 그러자 다섯째가 말했다.“사실 한 번 돌아가는 것도 괜찮을 것 같소? 그저 경성만 한 바퀴 둘러보면 되지 않소.”“아이들을 데려다줄 때 휘종제 어르신께서 슬퍼하셨소. 이번 생에 고향으로 못 돌아올지도 모른다고. 그래서 돌멩이 하나를 건네주니, 그걸 안고 울었소.”“정말 안타깝소!”다섯째는 증조할아버지 생각에 마음 아파했지만, 이내 말을 이어 나갔다.“하지만 큰할아버지께서 그를 데려오지 않는 이유도 있을 것이오. 휘종제 어르신을 잘 아는 것도 아니지 않소? 몇 번 만나보니, 활달하고 산만한 성격에 무슨 사고를 일곱째인지 모를 것 같은 느낌이 들었소.”“맞소.”원경릉도 깊이 공감했다. 특히 그가 전화로 끈질기게 설득할 때는 정말 무서울 정도였다.“다른 일은 없었소? 부모님 건강은 어땠소? 처남은 여자 친구가 생겼소? 만두는 공부를 잘하고 있소?”다섯째가 끊임없이 질문했다. “괜찮소. 부모님 건강도 괜찮긴 하지만, 아버지께서 고혈압이 생겨서 약을 오래 드셔야 하오. 오빠는 여자 친구가 없네. 주진과 아직도 서로 솔직히 이야기하지 않은 상황이오. 만두는 걱정 안 해도 되네. 내년에 돌아올 것이니.”“다행이오!”다섯째가 기뻐해 하며 말했다. 그는 늘 만두의 능력을 눈여겨보았기에, 그가 돌아오면 나라의 일들을 조금이라도 도와줄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비록 많은 부담을 짊어지진 못하지만 그래도 괜히 기대가 되었다.“추 할머니 병은 어떠하신가?”다섯째가 또 물었다.“아직은 괜찮소. 아주 좋아졌네. 약에 내성이 생기지만 않으면 큰 문제는 없을 것이오.”원경릉이 말하자 다섯째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분들이 늘 건강해지시길 바랄 뿐이오.”평범한 사람들조차도 적성루 사람들에게 감동하기 쉬운데, 하물며 북당의 황제인 자신은 오죽하겠는가.“계란은 소식 왔소?”원경릉이 물었다.“왔네. 보시오!”다섯째는 소매 안에서 구겨진 편지를 꺼냈는데, 비둘기를 통해 받은 그 편지에는 몇 줄의 짧은
“별다른 뜻은 없소. 오늘 밤에 유난히 감성적이라 그저 한마디 해본 거네. 사실 너무 감동해서 그러네. 비록 항상 탕 대인에게 빨리 혼인하라고 재촉하긴 했지만, 그가 일곱째 아가씨와 혼인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소.”“괜찮소!”원경릉은 그의 품에 안겨 그의 심장 소리를 들으며 말했다.“어쨌든 탕양은 우리와 함께 걸어온 사람이오. 그러니 그가 사랑하는 여인과 함께하게 된 건 우리 모두에게 기쁜 일이오.”우문호는 벌써 술에 취한듯 머리가 약간 어지러웠다. 술에 취하면 항상 눈앞의 모든 것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곤 했는데, 익숙한 천장, 익숙한 사람, 익숙한 탁자와 의자. 취기가 돌며 모든 것들이 꿈처럼 느껴졌다.그는 마치 다시 초왕 우문호로 돌아간 듯했고, 갓 원경릉과 마음이 통했던 때로 돌아간 기분이었다.그 당시 외부 정세는 불안정했고, 태자 자리를 둘러싼 다툼이 막 시작되었던 때였다. 형제끼리 반목하며, 치열하게 싸웠던 시절을 돌아보면 잃지 않고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얻었다는 사실에 감사하게 되었다.우문호가 원경릉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말했다.“원 선생, 몇 년간 아주 긴 꿈을 꾼 것 같지만, 되돌아보니 정말 다행이라고 느껴지네. 사실 모든 행운과 행복은 원 선생의 잘못된 연구에서 비롯된 것이오. 원 선생이 오지 않았다면 내 인생이 어땠었을까 싶네.”그러자 원경릉이 말했다.“누군가가 이 세상에 몇 시간과 공간이 존재한다고 했소.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이 다른 세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을 수도 있네. 아마도 어떤 공간에서는 내가 없는 대신 다른 사람이 당신과 함께 있을 수도 있소.”우문호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그 세상 속의 나는 정말 불쌍할 것이오.”“그건 모르오. 어쨌든 그곳의 당신은 나를 모르고, 우리가 지금 얼마나 행복한지도 모를 것이오. 각자가 행복을 정의하는 방식은 다르오. 어떤 사람들은 매 끼니 고기가 있는 게 최대의 행복일 수도 있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은 봉급이 오르길 바랄 것이오. 또 가족이 화목하고 건강하기를 바라기도 하고
우문호는 혼인을 하사하는 조서를 내렸다. 이는 탕양의 혼사에 화룡점정을 더하는 일이었다.온 경성 사람들이 탕양이 황제를 모시는 신하인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녀의 혼사에 주목했다.탕양은 왕부에서부터 황제를 지지해 온 충신이었으며, 군신 간의 정은 형제의 관계에 못지않았다.거기에 황제가 직접 혼인을 하사했으니, 이는 더할 나위 없는 영광이었다. 그래서 다들 두터운 예물을 준비해 축하하러 왔다.혼례는 초왕부에서 열렸다. 비록 초왕부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지만, 이번 경사에 많은 지원이 몰렸다. 여러 왕부에서 사람을 보내왔고, 미색은 돈에 힘까지 보태며 혼사 지출의 3할이나 부담했다.희상궁도 돌아와 모든 일을 총괄했다. 희상궁은 비록 나이가 많았지만, 여전히 일 처리 능력이 뛰어났다. 그녀는 여러 왕부에서 온 사람들을 지휘하며 완벽하게 일을 조율했다.혼례 당일, 황제와 황후도 참석했다.신부가 도착하여, 혼례를 올릴 때 우문호와 원경릉은 상석에 앉아 신랑 신부의 절을 받고는, 그 다음으로 기상궁도 절을 받았다.우문호가 원경릉의 손을 잡으며 흐뭇한 표정으로 말했다.“탕 대인이 드디어 철이 들었고, 가정을 이루었으니 정말 기쁘네.”원경릉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이제 마음이 풀립니까? 그러니 앞으로는 더 이상 잔소리하지 마시지요.”“잔소리는 계속할 것이다. 이젠 아이를 낳으라고 해야지.”우문호는 걱정이 끝이 없다는 듯 말하자, 원경릉이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아이 낳는 일은 하늘에 맡겨야 하네.”“그래도 몇 가지 비법을 전수해 줄 수는 있소.”우문호가 자부심 넘치는 표정으로 말했다.“좀 더 크게 말해보시오. 다른 사람들이 못 들을까 봐 걱정이오?”원경릉이 그를 흘겨보았다.주변 사람들이 모두 그들을 바라보며 부러움 섞인 표정을 지었다. 많은 사람이 첩을 두고도 황제만큼 자식을 많이 두지는 못했지만, 황제는 복도 많고 자식도 많은 사람이었다. 저녁 연회에서 우문호는 과음했지만 원경릉은 그를 막지 않았다. 이런 노부의 감격은 술로 달래야 한
탕양이 뜨거운 눈빛을 반짝이며 말했다.“거짓말이라면 제 목숨을 앗아가도 됩니다.”일곱째 아가씨가 그의 시선을 보며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돌고 돌아 결국 대인과 함께하게 되었네요. 하지만 미리 말하자면 혼사가 너무 급작스럽게 성사되어 저도 어찌할 도리가 없었던 것입니다. 시집간 후에도 그저 명목상 부부로만 살 뿐, 당분간은 벗으로 지낼 것입니다. 이를 받아들일 수 있다면 혼사를 승낙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없던 걸로 하시지요.”그러자 탕양이 거의 생각할 겨를도 없이 대답했다.“받아들이겠습니다. 무엇이든 다 좋습니다. 혼사만 승낙한다면 그저 명분이라도 상관없습니다!”이로써 드디어 그의 수년간의 바람이 이루어졌다.일곱째 아가씨가 담담히 말했다.“그렇다면 어디서 지낼지 생각해 보시지요. 하지만 대인 방에는 다른 사람이 살고 있으니, 그곳에 지낼 수는 없습니다.”탕양이 다급하게 말했다.“걱정하지 마십시오. 황후 마마와 상의를 해보았습니다. 지금 초왕부에 아무도 살지 않으니, 우선 그곳에서 지내시지요. 전에 그 방은 저도 쓰지 않고, 바로 서일에게 줬습니다.”그러자 일곱째 아가씨가 물었다.“저택을 따로 살 생각은 안 해보셨습니까?”“전에 혼자였을 땐 그런 생각까지 하지 못 했습니다. 초왕부도 누군가 관리해야 하는 터라... 하지만 아가씨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돈을 모아 작은 집이라도 살 수 있습니다.”일곱째 아가씨는 초왕부를 둘러보았는데, 그리 호화롭지는 않았지만, 분위기가 몹시 편안했다. 하지만 황제의 옛 저택이라, 평생 이곳에서 지낼 수는 없을 것이다.“우선은 이곳에서 지내고, 나중에 땅을 사서 직접 집을 지으십시다.”땅을 사고 집을 짓는다는 것은 돈 많은 사람이나 할 수 있는 일이었기에, 탕양은 순간 자기가 보잘 것 없게 느껴졌다.그가 쭈뼛거리며 말했다.“걱정하지 마십시오. 이 일은… 꼭 마음속에 깊이 새겨 두겠습니다.”일곱째 아가씨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땅도 제가 사고, 집도 제가 지을 것입니다. 나중에 대인이 잘못이라
노태군이 손을 흔들며 말했다.“안 된다. 혼인 전에는 신랑 신부가 만날 수 없어. 이건 풍습이고 규칙이니, 어길 수 없다.”그러자 일곱째 아가씨가 웃음을 터뜨렸다.“하하하. 이 혼사에 정해진 규칙이 있긴 합니까? 어머니께서는 제가 그를 만나 오히려 싸움이 나서 혼사가 그릇될까 봐 걱정되시는 것 아닙니까? 어머니께 약속했으니, 반드시 혼사를 올릴 것입니다. 이제 마음이 놓이십니까?”노태군은 이 말을 듣고 나서야 비로소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좋다. 너도 장사하는 사람이니 신임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것이다. 약속했으니, 절대 번복할 수 없어. 목을 매겠다는 이 어미의 결심은 너가 반대하면 언제든 효력을 발휘할 것이다.”일곱째 아가씨가 이를 갈며 투덜댔다.“이렇게 얄미운 늙은이는 정말 처음입니다!”“나도 너처럼 고집 센 딸은 처음 본다.”노태군이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웃음소리가 들려오자, 원가 사람들은 그제야 한숨을 돌렸다. 일곱째 아가씨가 시집가는 것이 정말 꿈만 같게 느껴졌다.일곱째 아가씨의 혼사는 원가 사람들에게 마음의 짐과도 같았다.탕양은 일곱째 아가씨가 무사히 경성으로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서야 한숨을 내쉬었다. 한숨을 내쉬고 나니, 눈물이 터져 나올 것 같은 감정이 북받쳤다. 그녀에게 아무 일도 없다는 생각에 그는 코끝이 다 시큰 거렸다.그날 밤, 일곱째 아가씨가 초왕부로 탕양을 찾아가자, 탕양은 그녀를 안으로 들인 후, 단둘이 방 안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다.탕양은 그녀를 바라보았는데, 붉은색 옷차림에 머리를 단정히 올려 깔끔하고 우아한 모습이 여전히 돋보였다. 세월의 흔적이 얼굴에 남아 있었지만, 오히려 그녀의 매력을 더해 주었다.그녀를 처음 알게 되었을 때는 패기 넘치던 청춘 시절이었는데, 눈 깜짝할 새에 이렇게나 많이 늙어 버렸다.탕양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감을 잡지 못했다. 수많은 감정이 얽혀 있었지만, 한마디 말도 제대로 꺼낼 수가 없었다.특히 약도성에서의 일을 겪고 난 뒤라, 첫마디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그
일곱째 아가씨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그는 지금 헛소리를 하는 것입니다! 제가 어찌 그와 그런 일을 한다는 말입니까?”그녀의 표정을 보았는데,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아 잠시 멍해졌다.노태군이 이 상황을 보고 말했다.“정말 그와... 아무 일도 없었단 말이냐?”“물론입니다! 그날 밤 그는 술에 잔뜩 취해서 정신도 없었는데, 무슨 일이 있었겠습니까?”일곱째 아가씨가 퉁명스레 답했다.노태군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녀는 그런 기본적인 일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탕양이 정말 쓸모없는 놈이라 생각되었다. “네가 그렇게 말한다고 해서 우리가 어디 믿을 것 같으냐? 혼사는 이미 정해졌으니, 네가 무슨 말을 해도 물릴 수 없다. 혼사를 올리지 않으면, 이 어미 시신이나 수습해야 할 거다!”노태군이 차갑게 말하자, 일곱째 아가씨는 그만 분통을 터뜨렸다.“어머니, 어찌 이렇게 억지를 부리시는 것입니까?”“이 어미는 평생 이치를 따지며 살았지만 이번 일만큼은 예외다. 본디 자식의 혼사는 부모가 결정하는 법이다. 게다가 황후까지 중매에 나섰으니, 너에겐 반대할 권리가 없다. 어서 가서 준비나 하거라. 열닷새에 식을 올려야 하니.”“열닷새요? 모레잖습니까? 말도 안 됩니다! 이리 급히 저를 시집보내면, 제 체면은 어쩌라는 말씀입니까?”일곱째 아가씨가 소리치자, 노태군이 탁자를 쾅 내리치며 화를 냈다. “체면? 지금 체면이라 한 것이냐? 이 어미는 벌써 체면 다 버렸다! 네 혼담이 계속 흐지부지 되어 여태껏 시집도 못 가고 늙은 아가씨 취급받는 게 얼마나 창피한 줄 아느냐?! 매번 연회에 나가기만 하면 사람들이 물어보는데, 이 어미의 체면을 생각한 적 있느냐?”“그래도 아무에게나 시집갈 순 없지 않습니까. 평소 늘 말이 통하시는 분이신데, 어찌 이 문제에서는 이리도 고집을 부리시는 겁니까?”노태군이 그녀를 노려보며 말했다.“아무나? 그럼 내가 물으마. 탕양에게 아직 마음이 남아 있느냐?”그러자 일곱째 아가씨의 눈빛은 흔들렸지만, 애써 침착하게 답
혼담을 꺼낸 당일에 모든 일을 결정하는 것은 정말 드문 일이었다.하지만 원가는 세속적인 것에 신경 쓰지 않았다. 혼수도 원하는 대로 준비하게 했고, 잔칫상만 제대로 차리면 된다는 생각이었다. 잔칫상은 일곱째 아가씨가 결코 시집을 못 가는 것이 아니라고 세상에 알리는 용도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혼인 상대가 황제가 가장 신임받는 인물이라는 사실을 알리는 자리였다.따라서 잔칫상만큼은 빠질 수 없었다.이 부분은 탕양도 문제없이 해결할 수 있었다. 그동안 나름 저축해둔 돈이 있었기 때문에, 잔칫상을 준비하는 데는 아무 어려움이 없었다.하객 문제에 대해서도, 탕양은 아는 사람이 정말 많았기에 문제없었다. 다른 곳은 말할 것도 없고, 경성에만 백 상 이상은 문제없이 마련할 수 있었다.황제를 곁에서 모시는 자로서, 조정의 문무백관 중 그와 친분이 없는 사람이 대체 몇이나 되겠는가?이 모든 것을 논의한 후, 탕양은 마침내 의문을 물어볼 수 있었다.“노태군, 만약 일곱째 아가씨께서 동의하지 않으면 어찌해야 합니까?”“동의할 것이다. 원가는 혼사를 치르거나 상을 치르거나 내릴 결정을 둘 뿐이니, 그렇게 알고 있거라. 다른 선택은 없다.”노태군이 단호하게 말했다.“그건... 너무 과하지 않습니까!”탕양이 초조해하며 말했다. 왠지 일곱째 아가씨를 강요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혼사는 본디 두 사람이 마음이 맞아야 하는 것 아닌가.돌아가는 길에 탕양이 여전히 불안했해 하자, 원경릉이 그를 위로하며 말했다.“너무 많은 생각은 하지 말고, 그저 신랑이 될 마음의 준비만 해두시게. 일곱째 아가씨는 원가 식구들이 설득할 것이오.”“그녀가 원하지 않으면 어찌합니까? 곤란하게 하거나, 억지로 결혼하게 해서 그녀가 상처받는 건 싫습니다.”“아가씨도 동의할 것이오. 그렇지 않았다면, 약도성에서 자네를 뿌리치고 떠났을 것이네. 하지만 곁에 남아 자네를 보살폈잖나? 그것만 봐도 자네에 대한 마음이 있는 것이오.”“정말입니까?”탕양이 놀랐는데, 얼굴에 은은하게 빛이 맴돌았
원경릉은 원가에서 이 혼사를 분명히 찬성할 것이라 생각했다. 노태군이 일곱째 아가씨를 시집보내고 싶어 안달이 난 상황에서 혼담을 꺼내는 것은 단지 형식적인 절차일 뿐이었기 때문이다. 원가의 유일한 문제는 일곱째 아가씨 본인이었는데, 그녀가 아직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에, 이번 일은 십중팔구 성공할 것이다.역시나, 다음 날 탕양과 함께 원가로 향한 원경릉은 원가에서 심지어 점쟁이까지 청해 두 사람의 사주를 확인하겠다고 하는 것을 보았다.두 사람의 사주를 본 점쟁이는 한참 확인하더니, 이마를 찌푸리며 말했다.“두 사람의 사주가 다소 상충합니다.”원 노태군의 안색이 어두워졌다.“어디가 상충하는가?”“한 사람은 닭띠, 한 사람은 개띠입니다. 이는 닭과 개가 편치 않은 사주라, 혼사를 치른 후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노태군은 탁자를 쾅 치며 말했다.“그럼 바꾸면 되지! 이제 보니 우리 딸은 말띠다. 방금 헷갈렸었다.”“말띠요? 말띠라면 괜찮습니다. 말띠는 올해 연분이 따르는 해 입니...”노태군은 점쟁이의 말을 끝까지 듣지도 않고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괜찮다니 됐다. 이제 길일을 골라주게.”그러자 점쟁이는 다시 손을 펴고 계산하더니 말했다.“올해 좋은 날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아무리 빨라도 연말쯤이어야...”“좋다. 이번 달 15일로 하지. 보름달이 뜨는 날, 사람도 오붓이 모이는 날이니, 좋지 않겠나?”점쟁이가 책자를 닫고,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예.”혼사는 원가에서 준비하니, 제시간에만 준비 된다면 안 될 것도 없었다.15일까지 남은 시간은 단 5일, 원가에서 딸을 시집보내는 일을5일 안에 끝낼 수 있을까 걱정 되었다. 준비할 시간도 아직 부족했는데, 혼례복을 만드는 일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하지만 원가는 이미 일곱째 아가씨를 위해 혼례복을 준비해 두었다. 3년마다 한 번씩 새로 만들었기에, 지금껏 서랍 속에 쌓여 있는 혼례복만 해도 7~8벌이나 되었다.혼수도 일찌감치 마련해 두고, 혼담을 꺼낼 자가 나타나기만 기다리
사식이는 다들 일곱째 고모의 안부를 걱정하지 않는 것이 이상해 의아해하며 물었다.“일곱째 고모께서 편지를 보내신 겁니까?”그러자 셋째 부인이 웃으며 말했다.“그래. 편지가 왔단다. 며칠 놀다가 곧 경성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했다구나.”사식이는 그제서야 안도의 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럼, 일곱째 고모께서 돌아오고 나서 혼담을 꺼내는 것이 어떻습니까? 일곱째 고모가 동의하지 않으면 일이 난감해질 텐데요.”노태군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이미 모든 일을 저질렀느넫 이제 와서 동의하지 않는다니? 감히 동의하지 않는다면, 그냥 목을 매겠다!”노태군은 일곱째 고모가 열여덟 살이 되던 때부터 그녀의 혼사를 기다려 왔다. 계속 기다리다가 이미 머리카락이 다 하얘져 버렸지만, 그녀는 아직 혼인 기약조차 없었다. 이번에도 혼사를 정하지 못한다면, 차라리 죽는게 더 나았다.그녀 뿐만 아니라 모두가 일곱째 아가씨가 빨리 시집가기를 바라고 이씩 때문에, 이 일은 서둘러 진행하기로 했다.“사식아, 네 고모에게 편지를 보내, 내가 갑작스레 병에 걸려 거의 죽게 생겼다고 전해라!”노태군이 단호히 명령했다.딸을 집으로 불러들이기 위해서 스스로 저주까지 불사하는 그녀는 정말 독한 늙은이었다.서일은 탕양을 데리고 서둘러 궁으로 향했다. 중매인을 찾는 일은 쉽지 않았기에, 바로 황후를 찾아가야 했다.소월궁에서 우문호 부부는 탕양의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라, 서로 얼굴을 바라보며 한참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우문호의 표정은 복잡해 보였다.“짐이 보기엔, 일찍 일곱째 아가씨에게 네 마음을 고백했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고, 이리 일을 저지를 줄은 꿈에도 몰랐구나!”탕양은 이마에 흐르는 식은땀을 닦았고, 마음속에는 불안감이 점점 커져갔다. 하루라도 빨리 그녀를 만나지 못한다면 불안에 휩싸여 버릴 것 같았다. 그는 울먹이며 입을 열었다.“폐하, 지금은 이런 이야기를 하실 때가 아닙니다… 제발 사람을 보내 그녀가 어디 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