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색은 입을 삐죽거리며 원경릉을 보았다.“그 아라를 말하는 겁니다. 안왕비의 시녀인 아라가 일부러 안왕비를 업신여기고 손윗사람으로 생각도 안 하는 것 같은데, 그런 여자를 후궁으로 맞아들이는 게 맞냐는 겁니다! 끽해야 안왕부의 하인 나부랭이였으면서 무슨 배짱으로 안왕비에게 대드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나쁜 버릇은 초장에 휘어잡는 게 맞습니다!”원경릉은 미색의 말을 듣고 안왕비를 바라보았다. 안왕비는 붉은색 망토를 걸치고 나한 침상 위에 웅크리고 있었으며, 창백한 얼굴에는 억지 미소를 띠고 있었다.그녀는 임신한 여인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여위었고 얼굴은 손바닥만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임신한 지 두 달 밖에 되지 않아 남편이 후궁을 맞이하다니 얼마나 충격적이겠는가.“안왕비 요즘 몸은 어떠십니까? 건강하신지요?”“먹을 수 없을 뿐 나머지는 다 괜찮습니다. 태자비의 염려 고맙습니다.”안왕비가 부드럽게 말했다.그 모습을 본 손왕비는 콧방귀를 뀌었다.“태자비도 삼둥이를 품고 있을 때 입덧이 어찌나 심했는지 죽을 뻔하지 않았습니까? 그때 무슨 약을 먹고 나았다면서요. 저 안왕비를 보세요. 임신을 안 한 나보다 더 말랐습니다.”손왕비의 말을 듣고 원경릉을 깜짝 놀랐다. ‘임산부에게 내가 약을 줬다가 괜히 독이 될 수도 있잖아. 손왕비는 왜 저렇게 입이 방정맞지?’다행히도 기왕비가 손왕비의 말을 받아쳤다.“임신 초기부터 약을 먹으면 아이가 다칠 수도 있으니 일단 참을 수 있는 데까지 참아요. 입덧도 딱 3개월이에요. 첫 3개월이 지나면 다 나아요.”안왕비는 손을 뻗어 아랫배를 어루만지며 웃었다.“지금 힘들지만 그래도 왕야께서 왕부로 돌아와 항상 곁에 있어주시니 다행입니다. 힘들어도 견딜 수 있습니다.”그 모습을 본 손왕비는 부러움 가득한 얼굴로 안왕비에게 말했다.“그래, 나도 군주를 품고 있을 때는 여러 가지로 괴로웠는데, 결국 이겨냈어요. 나랑 똑닮은 그 귀여운 모습을 보니 그 모든 고난이 가치가 있더군요.”손왕비의 말을 듣고 미색
손왕비의 위로에 안왕비는 서러운 듯 더 크게 울먹였다.“그래도 언젠가는 후궁을 들일 텐데, 늦게 들이나 일찍 들이나 똑같습니다. 후궁을 들였으니, 이제 한시름 놓았습니다.”그녀는 눈물을 닦고는 억지웃음을 지었다.그곳에 있던 왕비들은 하나같이 안왕비를 안쓰러운 눈빛으로 보았다.“됐습니다. 제가 주책이지요. 그냥 가서 누워야겠습니다! 이런 말을 해서 모두를 기분 나쁘게 만드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네요.”안왕비는 아채에게 부축을 받아 일어났다.손왕비도 일어나 근심스러운 표정으로 아채에게 분부했다.“왕비를 잘 돌봐라.”아채는 고개를 숙이며“쇤네 안왕비를 잘 모시겠나이다. 손왕비께서는 마음을 놓으십시오.”라고 말했다.안왕비는 안으로 들어가 쉬고 있었고, 주인공이 사라지자 안채에 있던 왕비들은 하나 둘 자리를 떴다.성질이 급한 미색은 아채에게 아라 얘기를 꺼내며 “내가 보기에 그 여우 같은 계집이 안왕비를 화나게 한 것 같으니, 내가 그 계집을 만나면 반드시 혼내줄 것이야!”라고 화를 냈다.원경릉은 미색의 언행에 주의를 주었다.“미색아, 앞으로 함부로 행동하지 마. 이는 안왕부 내부의 일이니 네가 그럴 권리는 없어.”원경릉은 미색이 소란을 피우면 안왕이 여섯째를 어떻게 할지 몰라 미색에게 미리 경고를 했다.그러나 미색은 강호의 사람이다. 황실에 강자 약자 구별하지 않고, 안왕비가 후궁에게 괴롭힘을 당하자 단전부터 분노가 치밀었다. 게다가 평소에 일부일처제를 옹호하던 미색이 원경릉의 말을 듣겠나?원경릉은 그녀의 불타는 눈빛을 보고 더욱 그녀가 걱정됐지만, 미색이 무슨 짓을 하든 오늘은 나서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여섯째는 성질이 온화해서 이런 사건사고에 휘말리는 것을 싫어하는데…… 그런 넷째와 안왕이 원한관계를 맺는 것은 좋지 않을 텐데……’밖에서는 폭죽 소리가 들렸고,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 하늘을 보았다.*잠시 후.아라가 후궁이 됐으니 원경릉과 기왕비, 안왕비, 손왕비 모두를 바깥으로 부르고는 그들에게 차를 바치겠다고 하였다. 안
잠시 후, 수모가 후궁 아라를 데리고 문으로 들어왔다.아라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촌스러운 꽃 분홍빛 옷을 입고 있었다. 그 옷은 한눈에 봐도 급하게 만든 것이라는 게 티가 날 정도로 싼 티가 났다. 그나마 볼만한 것은 가슴 앞쪽에 금실로 큰 도안이었는데, 자세히 보면 이도 엉성한 것이 옷을 만든 후에 덧댄 것 같았다.아라는 머리를 바짝 뒤로 묶어 쪽졌다. 머리 아래쪽에는 금과 옥으로 만든 비녀가 꽂혀있었으며, 머리 위에는 적산호로 화려하게 장식을 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적산호의 색상이 입술색과 서로 어울려 요염해 보이니 눈이 갔다.안왕비는 아라보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옷을 입었지만 창백한 얼굴 때문에 아라의 생기 있는 모습에 확연히 비교가 됐다.가장 중요한 것은 아라의 걸음걸이와 자태에서 왕비의 기색이 보였다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으로 만 비교하자면 아라가 정비 같고, 안왕비가 후궁 같아 보였다.안왕비는 그런 아라를 눈뜨고 볼 수 없다는 듯 두 눈을 질끈 감고 머리를 짚었다.아라는 안왕비 앞에 무릎을 꿇고, 수모가 따라주는 차를 잔에 받아 안왕비에게 바치며 말했다.“아라가 안왕비님을 뵈옵니다. 안왕비께서 부디 제가 따라드리는 차를 맛있게 드셔주십시오!”안왕비는 아라가 거넨는 차를 받으려고 손을 뻗었지만 받침대가 없는 찻잔이라 너무 뜨거워 손이 떨렸고, 의도치 않게 몇 방울을 아라의 손등으로 떨어뜨렸다.아라는 기분이 나쁘다는 듯 인상을 쓰더니 고고하게 고개를 들고 안왕비를 보았다.“흠, 안왕비께서 몸이 좋지 않은 것 같으니 왕비께서는 이 차만 마시고 바로 돌아가 쉬세요. 여기 일은 안왕비께서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괜히 아파서 왕야꼐서 저녁에 왕비님을 돌볼 일이 없도록 하시는 게 좋겠네요.”말투는 공손한 듯했지만, 그 안에 가시가 도사리고 있는 아라의 언행에 황실 사람들의 인상이 절로 찌푸려졌고, 여기저기서 두 사람을 보고 수군거렸다.“내가 잘못 들은 게 아니지?”“지금 이 상황만 보면 아라가 정비인 줄 알겠어, 저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이 모두 놀랐고, 원경릉은 속으로 깊은 한숨 내쉬었다. ‘미색…… 결국 이 사달은 냈구나.’금방 끓인 차가 담긴 찻잔을 아라의 머리를 내리쳤는데 뜨겁지 않았겠는가?아라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날뛰더니 미색을 보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너 미쳤어?”미색은 기세등등한 얼굴로 아라의 이마를 툭툭 쳤다.“미친 건 내가 아니라 너지! 주제를 알아야지 감히 어디서 정비 행세를 해? 네가 사람을 업신여겨도 속으로만 생각해야지 그걸 밖으로 표현해? 한낱 안왕부 시녀 출신이 감히 어디라고 정비에게 이래라 저래라야?”“뭐라고?”’“네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넌 꿩 될 수가 없단다. 이 닭대가리야! 지금 뭘 믿고 이러는지 몰라도 밑천이 바닥나면 넌 그냥 끝이야 끝! 젊은 거 한순간이다? 넌 내년에도 젊어? 후년에도 젊어? 착각하지 마! 이 한철 쓰다 버릴 장신구 같은 게!”이 말을 들은 여자들은 모두 부끄러운 듯 고개를 푹 숙였지만, 남자들은 두 눈을 크게 뜨고 미색을 응시했다. 회왕은 시선을 돌려 바깥의 풍경을 바라보았으며, 손을 주머니에 넣고 애써 당황하지 않은 척했다.미색에게 굴욕적인 말을 들은 아라는 얼굴이 일그러졌고, 이내 손바닥으로 미색의 얼굴을 후려쳤다. ‘번듯한 안왕부의 후궁인데, 감히 한철 장신구랑 비교를 해? 내 한 번뿐인 혼인을 망쳐?’아라는 얼굴이 불덩이처럼 벌겋게 달아올라 죽일 듯이 미색을 노려보았다.미색은 이 까짓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헛웃음을 지었다. “뭘 쳐다봐? 오호라, 네가 지금 나를 떠본다 이거야? 좋아 그럼 내가 지금 당장 네 눈깔을 파내주지!”“……”“방금까지도 난 참았어, 첫 등장부터 오만방자한 눈빛으로 안왕비를 위아래로 훑어보는 거 몰랐을 것 같아? 너는 초두취에서 일하는 여자들보다 못해, 그거 알아? 적어도 거기 일하는 언니들은‘염치’라는 글자는 쓸 줄 알거든. 넌 아니?”“감히……”“안왕비가 임신했다는 걸 알면서 그녀를 자극하는 이유가 뭐야? 사람이 상도덕이라는 게 있지. 그리고
아라는 오늘 미색이 이런 말을 하리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하였다. 만약 미색이 아니었다면 이 세상 사람들 모두 몰랐을 얘기였다. ‘저 사실을 미색이 어떻게……’아라는 적지 않게 당황했다.미색은 마치 당시 옆에 있었던 사람처럼 모든 순간을 기억했고, 아무런 변명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아라는 지금까지 안왕부의 크고 작은 일을 해오면서 이런 일을 겪어본 적이 없었다. 그녀는 꼼꼼한 성격으로 매사에 철두철미했기에 처리하는 일에는 실수가 있을 수 없었다.때문에 아라는 미색에게 반격을 하기보다는 원경릉에게 호소하기로 마음을 바꾸었다.그런데 애석하게도 원경릉마저 그녀를 도와주지 않았다.“지금 본 태자비가 너에게 누명을 씌웠다고 했느냐? 넌 지금 네 신분을 망각하고 있는 거야? 불과 몇 시간 전까지 넌 안왕부의 시녀에 불과했다! 어디 감히 본 태자비에게 황실의 법도를 들먹이느냐? 네가 나보다 법도를 더 잘 안다고 생각하느냐? 감히 어디서 나를 모함하려고 들어? 본 태자비가 네 잘못을 눈감아주니 진짜 네 죄가 없어지는 것 같더냐? 이 일은 이리 나리에게 물어보면 답이 다 나와.”“태자비……”“이래도 억울해? 아직도 네 결백을 주장하느냐?”옆에 있던 우문호도 앞으로 나왔다.“본 태자가 이리 나리에게 네가 늑대파를 찾아와 암살을 의뢰한 사실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철저히 조사하겠다. 만약 정말 네가 태자비를 암살하려고 했다면 널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아라는 황급히 안왕의 앞으로 달려가 바닥에 바짝 엎드렸다.“왕야, 믿어주십시오. 저는 절대로 태자비를 죽이려 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왜 그런 짓을 했겠습니까”미색은 싸늘한 표정으로 아라를 내려다봤다.“억울하다 이거지? 그럼 이것도 얘기해 줘? 태자비의 손에 문둥병을 고칠 방법이 있다는 것을 알고 그랬잖아!”이 말을 들은 원경릉은 누가 미색과 함께 이런 판을 짰는지 알아챘다.‘다섯째 너구나.’안왕은 일을 크게 만든 미색을 죽일 듯 쳐다보았다.우문호가 아라를 조사하겠다고 선포했으니, 조사를 하다 보면
미색이는 회왕을 부축해 밖으로 나갔다.회왕 내외가 떠나고 얼마되지 않아 손왕비도 여기 있을 이유가 없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 손왕에게 말했다.“우리도 이제 돌아가는게 좋겠네요. 황실의 정비로서 같은 항렬인 안왕비가 욕보는 것을 보니 마음이 편하지 않네요.”손왕비의 말 들은 안왕의 표정이 싸늘해지는 것을 보고 손왕이 난처하다는 듯 머리를 긁적였다. “둘째 형님, 돌아가셔도 좋습니다.” 안왕은 말을 마치고 사람들을 한 번 훑어보며 “누구든 가고 싶은 사람은 모두 돌아가거라. 오늘이 잔치는 이것으로 끝이오.”라고 말했다.안왕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삼삼오오 자리에서 일어났으며, 어떤 이들은 챙겨온 선물을 챙겨 밖으로 나갔다.‘정말 안왕이 태자비를 암살하려고 한 거 아냐?’‘후궁이 저렇게 영악해서야......’‘어쩐지 안왕비가 임신한지 얼마 안되어 후궁을 들이더니 다 이유가 있었구만.’우문호는 원경릉의 손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나 아라를 노려보며 말했다.“조사를 통해 네가 태자비를 해하려고 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면 본왕이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그리고는 원경릉을 끌고 가버렸다.손님들이 떠난 안왕부는 정적만 흘렀고, 상다리가 부러지게 준비한 음식들이 차갑게 식어갔다.안왕은 의자에 앉아 하얗게 질린 안왕비를 돌아보며 그녀의 손을 잡고 부드럽게 말했다.“들어가 쉬어라. 본왕도 금방 돌아갈 테니.”“......”“아채야, 너는 왕비가 힘들지 않게 잘 돌보거라.”“예!”아채의 부축을 받아 문앞까지 간 안왕비는 다시 그를 돌아보며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어서 돌아가거라.”안왕비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아채와 함께 밖으로 나갔다.안왕은 안왕비의 가녀린 뒷모습을 보고 마음이 아파 입을 꾹 다물었다. 안왕비의 그림자가 사라지자 그의 온화했던 얼굴은 험상스럽게 변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아라의 아랫배를 걷어찼다.“회왕비가 한 말이 사실이냐!”안왕의 거센 발길질에 아라의 입에서는 피가 뿜어져나왔다. 아라는 안왕의 태도에 깜짝 놀랐다.
“무슨 이유로?” 아라는 분노로 가득차서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안왕비는 왜 자신의 손을 더럽히지 않으면서도 왜 안왕의 사랑과 보살핌을 받는 거지? 안왕비가 정비의 자격이 있다면 힘들고 어려운 일도 도맡아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정비가 해야 할 일은 하지도 않으면서, 매번 희생하며 안왕을 보필했던 내가 핍박을 받아야 하는 거야?’아라는 이 상황에 굴복할 마음이 없었다.“도대체 제가 왜 이런 수모를 당해야 합니까?”안왕은 아라의 반항에 화가 났다.“그럼 뭐 어쩌라는 거야?”“그럼 제가 왕부를......”“왕부를 떠나려고? 그럼 본왕이 네가 대문을 나서는 순간 네 머리 단칼에 베어버릴 것이라 장담하지. 만약 지금이라도 네가 분수를 알고 잘못을 인정한다면 네가 원하는 건 섭섭하지 않게 줄것이다. ”“......”“아라, 넌 똑똑해서 지금까지 맡은 바를 충분히 잘 해왔다. 네가 우연히 저지른 실수라고 인정한다면 본왕 이번은 지금까지 네가 쌓은 덕을 봐서 용서해 주겠다. 하지만 다시는 이런 일을 벌여서는 안 된다. 그땐 피도 눈물도 없을 것이야.”아라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지만 얼굴에서는 분노와 자만이 가시지 않았다. 그녀는 입가의 피를 닦으며, 눈물을 꾹 참고 입꼬리를 씩 올렸다. “왕야의 말씀 잘 알겠습니다. 앞으로 다시는 안왕비를 건드리지 않을 테니, 저를 믿어주십시오.”안왕을 아라의 말을 듣고나서야 안심의 한숨을 내쉬었다.“늑대파를 찾아가 원경릉 암살을 의뢰한 일은 내가 형부에 손을 써놔서 어물쩡 넘어가겠지만, 이번 기회를 교훈삼아 앞으로 더 철저하게 일을 계획하거라. 아무래도 그 이리라는 작자가 늑대파의 우두머리인 것 같으니 주의하고.”“예, 알겠습니다.”“왕야, 원래 회왕께서는 조용하고 말썽을 일으키지 않는 성격이잖아요. 혹시 회왕이 자신이 나서기는 두려우니 부인을 앞세운 것 아닙니까? 이번 일로 태자비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안왕부를 의심하게 될 겁니다. 그럼 회왕이 태자비에게 손을 쓰기 쉽겠지요.”“여섯째는 그럴 배짱이
안왕은 손을 뻗어 희고 고운 안왕비의 얼굴을 쓰다듬었다.“당연히 아니지. 너도 알다시피 회왕이 병에 걸렸다 나은지 얼마 되지 않았잖아. 정신이 온전치 못한 것 같다. 그 일은 신경쓰지 말고 자거라. 난 씻고 와야겠다.”“왕야께서 오늘 밤 여기 계시나요?"안왕은 안왕비의 질문이 귀엽다는 듯 가볍게 입맞춤을 했다.“내가 후궁을 들인 것은 맞지만, 왕부에 있는 동안은 너를 안고 잠들 것이야.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마찬가지다. 이번 생은 그러기로 마음을 먹었다.”안왕비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안왕을 보았다.“저는 왕야께서 후궁을 들인 후에 저를 거들떠도 보지 않으실 줄 알았습니다. 모든 것이 달라질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흑......“안왕은 손을 뻗어 그녀의 눈물을 닦으며 그녀의 두 어깨를 감싸안았다.“절대 그럴 리 없다. 걱정 마.”*우문호가 마차에 올라타자마자 원경릉은 그를 향해 질문을 쏟아냈다.“너지? 네가 일부러 이런 일을 꾸민 거지?”“무슨 소리야? 난 회왕부를 이 일에 끌어들이는 것도 싫었다고! 이리 나리의 의견이였어. 이리가 그 얘기를 꺼냈을 때, 나와 미색 모두 동의하지 않았어.”원경릉은 우문호가 회왕을 다른 친왕보다 아낀다는 것을 알았기에, 이리 나리의 주의를 반대했을 것이라 생각했다.“어쨌든 여섯째와 미색은 안왕부의 미움을 샀어, 게다가 이번 일로 이리 나리의 정체가 탄로나게 생겼다고! 우리는 그들에게 큰 빚을 진 거야!”“이 정도야 괜찮아. 걱정 마.”원경릉은 의심의 눈초리로 우문호를 보았다.“아무리 생각해도 난 이 모든 게 네 머릿속에서 나온 것 같은데 말이야?”“처리해야 할 사건들도 산더미인데, 내가 시간이 어디있어서 일을 꾸미겠어?”원경릉은 우문호를 힐끔 보더니 이내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사건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그럼 내일 형부로 사건을 넘길 거야?” 원경릉이 물었다.“아니, 이번 사건은 너무 오래 끌었어. 내일 범인을 참수할 거야.”“그래도 참수 전에 형부로 보내서 심
우문호는 혼인을 하사하는 조서를 내렸다. 이는 탕양의 혼사에 화룡점정을 더하는 일이었다.온 경성 사람들이 탕양이 황제를 모시는 신하인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녀의 혼사에 주목했다.탕양은 왕부에서부터 황제를 지지해 온 충신이었으며, 군신 간의 정은 형제의 관계에 못지않았다.거기에 황제가 직접 혼인을 하사했으니, 이는 더할 나위 없는 영광이었다. 그래서 다들 두터운 예물을 준비해 축하하러 왔다.혼례는 초왕부에서 열렸다. 비록 초왕부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지만, 이번 경사에 많은 지원이 몰렸다. 여러 왕부에서 사람을 보내왔고, 미색은 돈에 힘까지 보태며 혼사 지출의 3할이나 부담했다.희상궁도 돌아와 모든 일을 총괄했다. 희상궁은 비록 나이가 많았지만, 여전히 일 처리 능력이 뛰어났다. 그녀는 여러 왕부에서 온 사람들을 지휘하며 완벽하게 일을 조율했다.혼례 당일, 황제와 황후도 참석했다.신부가 도착하여, 혼례를 올릴 때 우문호와 원경릉은 상석에 앉아 신랑 신부의 절을 받고는, 그 다음으로 기상궁도 절을 받았다.우문호가 원경릉의 손을 잡으며 흐뭇한 표정으로 말했다.“탕 대인이 드디어 철이 들었고, 가정을 이루었으니 정말 기쁘네.”원경릉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이제 마음이 풀립니까? 그러니 앞으로는 더 이상 잔소리하지 마시지요.”“잔소리는 계속할 것이다. 이젠 아이를 낳으라고 해야지.”우문호는 걱정이 끝이 없다는 듯 말하자, 원경릉이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아이 낳는 일은 하늘에 맡겨야 하네.”“그래도 몇 가지 비법을 전수해 줄 수는 있소.”우문호가 자부심 넘치는 표정으로 말했다.“좀 더 크게 말해보시오. 다른 사람들이 못 들을까 봐 걱정이오?”원경릉이 그를 흘겨보았다.주변 사람들이 모두 그들을 바라보며 부러움 섞인 표정을 지었다. 많은 사람이 첩을 두고도 황제만큼 자식을 많이 두지는 못했지만, 황제는 복도 많고 자식도 많은 사람이었다. 저녁 연회에서 우문호는 과음했지만 원경릉은 그를 막지 않았다. 이런 노부의 감격은 술로 달래야 한
탕양이 뜨거운 눈빛을 반짝이며 말했다.“거짓말이라면 제 목숨을 앗아가도 됩니다.”일곱째 아가씨가 그의 시선을 보며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돌고 돌아 결국 대인과 함께하게 되었네요. 하지만 미리 말하자면 혼사가 너무 급작스럽게 성사되어 저도 어찌할 도리가 없었던 것입니다. 시집간 후에도 그저 명목상 부부로만 살 뿐, 당분간은 벗으로 지낼 것입니다. 이를 받아들일 수 있다면 혼사를 승낙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없던 걸로 하시지요.”그러자 탕양이 거의 생각할 겨를도 없이 대답했다.“받아들이겠습니다. 무엇이든 다 좋습니다. 혼사만 승낙한다면 그저 명분이라도 상관없습니다!”이로써 드디어 그의 수년간의 바람이 이루어졌다.일곱째 아가씨가 담담히 말했다.“그렇다면 어디서 지낼지 생각해 보시지요. 하지만 대인 방에는 다른 사람이 살고 있으니, 그곳에 지낼 수는 없습니다.”탕양이 다급하게 말했다.“걱정하지 마십시오. 황후 마마와 상의를 해보았습니다. 지금 초왕부에 아무도 살지 않으니, 우선 그곳에서 지내시지요. 전에 그 방은 저도 쓰지 않고, 바로 서일에게 줬습니다.”그러자 일곱째 아가씨가 물었다.“저택을 따로 살 생각은 안 해보셨습니까?”“전에 혼자였을 땐 그런 생각까지 하지 못 했습니다. 초왕부도 누군가 관리해야 하는 터라... 하지만 아가씨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돈을 모아 작은 집이라도 살 수 있습니다.”일곱째 아가씨는 초왕부를 둘러보았는데, 그리 호화롭지는 않았지만, 분위기가 몹시 편안했다. 하지만 황제의 옛 저택이라, 평생 이곳에서 지낼 수는 없을 것이다.“우선은 이곳에서 지내고, 나중에 땅을 사서 직접 집을 지으십시다.”땅을 사고 집을 짓는다는 것은 돈 많은 사람이나 할 수 있는 일이었기에, 탕양은 순간 자기가 보잘 것 없게 느껴졌다.그가 쭈뼛거리며 말했다.“걱정하지 마십시오. 이 일은… 꼭 마음속에 깊이 새겨 두겠습니다.”일곱째 아가씨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땅도 제가 사고, 집도 제가 지을 것입니다. 나중에 대인이 잘못이라
노태군이 손을 흔들며 말했다.“안 된다. 혼인 전에는 신랑 신부가 만날 수 없어. 이건 풍습이고 규칙이니, 어길 수 없다.”그러자 일곱째 아가씨가 웃음을 터뜨렸다.“하하하. 이 혼사에 정해진 규칙이 있긴 합니까? 어머니께서는 제가 그를 만나 오히려 싸움이 나서 혼사가 그릇될까 봐 걱정되시는 것 아닙니까? 어머니께 약속했으니, 반드시 혼사를 올릴 것입니다. 이제 마음이 놓이십니까?”노태군은 이 말을 듣고 나서야 비로소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좋다. 너도 장사하는 사람이니 신임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것이다. 약속했으니, 절대 번복할 수 없어. 목을 매겠다는 이 어미의 결심은 너가 반대하면 언제든 효력을 발휘할 것이다.”일곱째 아가씨가 이를 갈며 투덜댔다.“이렇게 얄미운 늙은이는 정말 처음입니다!”“나도 너처럼 고집 센 딸은 처음 본다.”노태군이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웃음소리가 들려오자, 원가 사람들은 그제야 한숨을 돌렸다. 일곱째 아가씨가 시집가는 것이 정말 꿈만 같게 느껴졌다.일곱째 아가씨의 혼사는 원가 사람들에게 마음의 짐과도 같았다.탕양은 일곱째 아가씨가 무사히 경성으로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서야 한숨을 내쉬었다. 한숨을 내쉬고 나니, 눈물이 터져 나올 것 같은 감정이 북받쳤다. 그녀에게 아무 일도 없다는 생각에 그는 코끝이 다 시큰 거렸다.그날 밤, 일곱째 아가씨가 초왕부로 탕양을 찾아가자, 탕양은 그녀를 안으로 들인 후, 단둘이 방 안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다.탕양은 그녀를 바라보았는데, 붉은색 옷차림에 머리를 단정히 올려 깔끔하고 우아한 모습이 여전히 돋보였다. 세월의 흔적이 얼굴에 남아 있었지만, 오히려 그녀의 매력을 더해 주었다.그녀를 처음 알게 되었을 때는 패기 넘치던 청춘 시절이었는데, 눈 깜짝할 새에 이렇게나 많이 늙어 버렸다.탕양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감을 잡지 못했다. 수많은 감정이 얽혀 있었지만, 한마디 말도 제대로 꺼낼 수가 없었다.특히 약도성에서의 일을 겪고 난 뒤라, 첫마디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그
일곱째 아가씨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그는 지금 헛소리를 하는 것입니다! 제가 어찌 그와 그런 일을 한다는 말입니까?”그녀의 표정을 보았는데,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아 잠시 멍해졌다.노태군이 이 상황을 보고 말했다.“정말 그와... 아무 일도 없었단 말이냐?”“물론입니다! 그날 밤 그는 술에 잔뜩 취해서 정신도 없었는데, 무슨 일이 있었겠습니까?”일곱째 아가씨가 퉁명스레 답했다.노태군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녀는 그런 기본적인 일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탕양이 정말 쓸모없는 놈이라 생각되었다. “네가 그렇게 말한다고 해서 우리가 어디 믿을 것 같으냐? 혼사는 이미 정해졌으니, 네가 무슨 말을 해도 물릴 수 없다. 혼사를 올리지 않으면, 이 어미 시신이나 수습해야 할 거다!”노태군이 차갑게 말하자, 일곱째 아가씨는 그만 분통을 터뜨렸다.“어머니, 어찌 이렇게 억지를 부리시는 것입니까?”“이 어미는 평생 이치를 따지며 살았지만 이번 일만큼은 예외다. 본디 자식의 혼사는 부모가 결정하는 법이다. 게다가 황후까지 중매에 나섰으니, 너에겐 반대할 권리가 없다. 어서 가서 준비나 하거라. 열닷새에 식을 올려야 하니.”“열닷새요? 모레잖습니까? 말도 안 됩니다! 이리 급히 저를 시집보내면, 제 체면은 어쩌라는 말씀입니까?”일곱째 아가씨가 소리치자, 노태군이 탁자를 쾅 내리치며 화를 냈다. “체면? 지금 체면이라 한 것이냐? 이 어미는 벌써 체면 다 버렸다! 네 혼담이 계속 흐지부지 되어 여태껏 시집도 못 가고 늙은 아가씨 취급받는 게 얼마나 창피한 줄 아느냐?! 매번 연회에 나가기만 하면 사람들이 물어보는데, 이 어미의 체면을 생각한 적 있느냐?”“그래도 아무에게나 시집갈 순 없지 않습니까. 평소 늘 말이 통하시는 분이신데, 어찌 이 문제에서는 이리도 고집을 부리시는 겁니까?”노태군이 그녀를 노려보며 말했다.“아무나? 그럼 내가 물으마. 탕양에게 아직 마음이 남아 있느냐?”그러자 일곱째 아가씨의 눈빛은 흔들렸지만, 애써 침착하게 답
혼담을 꺼낸 당일에 모든 일을 결정하는 것은 정말 드문 일이었다.하지만 원가는 세속적인 것에 신경 쓰지 않았다. 혼수도 원하는 대로 준비하게 했고, 잔칫상만 제대로 차리면 된다는 생각이었다. 잔칫상은 일곱째 아가씨가 결코 시집을 못 가는 것이 아니라고 세상에 알리는 용도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혼인 상대가 황제가 가장 신임받는 인물이라는 사실을 알리는 자리였다.따라서 잔칫상만큼은 빠질 수 없었다.이 부분은 탕양도 문제없이 해결할 수 있었다. 그동안 나름 저축해둔 돈이 있었기 때문에, 잔칫상을 준비하는 데는 아무 어려움이 없었다.하객 문제에 대해서도, 탕양은 아는 사람이 정말 많았기에 문제없었다. 다른 곳은 말할 것도 없고, 경성에만 백 상 이상은 문제없이 마련할 수 있었다.황제를 곁에서 모시는 자로서, 조정의 문무백관 중 그와 친분이 없는 사람이 대체 몇이나 되겠는가?이 모든 것을 논의한 후, 탕양은 마침내 의문을 물어볼 수 있었다.“노태군, 만약 일곱째 아가씨께서 동의하지 않으면 어찌해야 합니까?”“동의할 것이다. 원가는 혼사를 치르거나 상을 치르거나 내릴 결정을 둘 뿐이니, 그렇게 알고 있거라. 다른 선택은 없다.”노태군이 단호하게 말했다.“그건... 너무 과하지 않습니까!”탕양이 초조해하며 말했다. 왠지 일곱째 아가씨를 강요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혼사는 본디 두 사람이 마음이 맞아야 하는 것 아닌가.돌아가는 길에 탕양이 여전히 불안했해 하자, 원경릉이 그를 위로하며 말했다.“너무 많은 생각은 하지 말고, 그저 신랑이 될 마음의 준비만 해두시게. 일곱째 아가씨는 원가 식구들이 설득할 것이오.”“그녀가 원하지 않으면 어찌합니까? 곤란하게 하거나, 억지로 결혼하게 해서 그녀가 상처받는 건 싫습니다.”“아가씨도 동의할 것이오. 그렇지 않았다면, 약도성에서 자네를 뿌리치고 떠났을 것이네. 하지만 곁에 남아 자네를 보살폈잖나? 그것만 봐도 자네에 대한 마음이 있는 것이오.”“정말입니까?”탕양이 놀랐는데, 얼굴에 은은하게 빛이 맴돌았
원경릉은 원가에서 이 혼사를 분명히 찬성할 것이라 생각했다. 노태군이 일곱째 아가씨를 시집보내고 싶어 안달이 난 상황에서 혼담을 꺼내는 것은 단지 형식적인 절차일 뿐이었기 때문이다. 원가의 유일한 문제는 일곱째 아가씨 본인이었는데, 그녀가 아직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에, 이번 일은 십중팔구 성공할 것이다.역시나, 다음 날 탕양과 함께 원가로 향한 원경릉은 원가에서 심지어 점쟁이까지 청해 두 사람의 사주를 확인하겠다고 하는 것을 보았다.두 사람의 사주를 본 점쟁이는 한참 확인하더니, 이마를 찌푸리며 말했다.“두 사람의 사주가 다소 상충합니다.”원 노태군의 안색이 어두워졌다.“어디가 상충하는가?”“한 사람은 닭띠, 한 사람은 개띠입니다. 이는 닭과 개가 편치 않은 사주라, 혼사를 치른 후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노태군은 탁자를 쾅 치며 말했다.“그럼 바꾸면 되지! 이제 보니 우리 딸은 말띠다. 방금 헷갈렸었다.”“말띠요? 말띠라면 괜찮습니다. 말띠는 올해 연분이 따르는 해 입니...”노태군은 점쟁이의 말을 끝까지 듣지도 않고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괜찮다니 됐다. 이제 길일을 골라주게.”그러자 점쟁이는 다시 손을 펴고 계산하더니 말했다.“올해 좋은 날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아무리 빨라도 연말쯤이어야...”“좋다. 이번 달 15일로 하지. 보름달이 뜨는 날, 사람도 오붓이 모이는 날이니, 좋지 않겠나?”점쟁이가 책자를 닫고,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예.”혼사는 원가에서 준비하니, 제시간에만 준비 된다면 안 될 것도 없었다.15일까지 남은 시간은 단 5일, 원가에서 딸을 시집보내는 일을5일 안에 끝낼 수 있을까 걱정 되었다. 준비할 시간도 아직 부족했는데, 혼례복을 만드는 일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하지만 원가는 이미 일곱째 아가씨를 위해 혼례복을 준비해 두었다. 3년마다 한 번씩 새로 만들었기에, 지금껏 서랍 속에 쌓여 있는 혼례복만 해도 7~8벌이나 되었다.혼수도 일찌감치 마련해 두고, 혼담을 꺼낼 자가 나타나기만 기다리
사식이는 다들 일곱째 고모의 안부를 걱정하지 않는 것이 이상해 의아해하며 물었다.“일곱째 고모께서 편지를 보내신 겁니까?”그러자 셋째 부인이 웃으며 말했다.“그래. 편지가 왔단다. 며칠 놀다가 곧 경성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했다구나.”사식이는 그제서야 안도의 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럼, 일곱째 고모께서 돌아오고 나서 혼담을 꺼내는 것이 어떻습니까? 일곱째 고모가 동의하지 않으면 일이 난감해질 텐데요.”노태군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이미 모든 일을 저질렀느넫 이제 와서 동의하지 않는다니? 감히 동의하지 않는다면, 그냥 목을 매겠다!”노태군은 일곱째 고모가 열여덟 살이 되던 때부터 그녀의 혼사를 기다려 왔다. 계속 기다리다가 이미 머리카락이 다 하얘져 버렸지만, 그녀는 아직 혼인 기약조차 없었다. 이번에도 혼사를 정하지 못한다면, 차라리 죽는게 더 나았다.그녀 뿐만 아니라 모두가 일곱째 아가씨가 빨리 시집가기를 바라고 이씩 때문에, 이 일은 서둘러 진행하기로 했다.“사식아, 네 고모에게 편지를 보내, 내가 갑작스레 병에 걸려 거의 죽게 생겼다고 전해라!”노태군이 단호히 명령했다.딸을 집으로 불러들이기 위해서 스스로 저주까지 불사하는 그녀는 정말 독한 늙은이었다.서일은 탕양을 데리고 서둘러 궁으로 향했다. 중매인을 찾는 일은 쉽지 않았기에, 바로 황후를 찾아가야 했다.소월궁에서 우문호 부부는 탕양의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라, 서로 얼굴을 바라보며 한참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우문호의 표정은 복잡해 보였다.“짐이 보기엔, 일찍 일곱째 아가씨에게 네 마음을 고백했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고, 이리 일을 저지를 줄은 꿈에도 몰랐구나!”탕양은 이마에 흐르는 식은땀을 닦았고, 마음속에는 불안감이 점점 커져갔다. 하루라도 빨리 그녀를 만나지 못한다면 불안에 휩싸여 버릴 것 같았다. 그는 울먹이며 입을 열었다.“폐하, 지금은 이런 이야기를 하실 때가 아닙니다… 제발 사람을 보내 그녀가 어디 있는지
오래전의 악몽이 마음속에서 되살아나, 탕양은 너무나도 두려웠다. 그녀가 혹시나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는 않을까 걱정되어, 스스로 뺨을 몇 대 때리고는 다시 바쁘게 걸음을 옮겼다. ‘아무 일이 없어야 할 텐데. 그렇지 않으면 죽어도 죄를 씻을 수 없을 것이다.’하지만 그녀를 따라잡으려 죽자고 달려도, 끝내 그녀를 볼 수 없었다.그렇게나 빨리 도망간 건가?그렇게 경성에 도착하자마자, 그는 쉬지도 않고 곧장 원가로 달려갔다.마침 서일과 사식이가 아이들을 데리고 친정에 와 있던 참이었는데, 대문 앞에 도착하니, 탕 대인이 거지처럼 문지기 앞에 쓰러지다시피 주저앉아 먼지투성이의 얼굴에 새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문지기의 옷깃을 움켜쥔 채 다급히 묻고 있었다. “일곱째 아가씨는? 너희 일곱째 아가씨는 대체… 어디 있느냐?”그러자 문지기는 놀라 얼어붙고 말았다. 그는 이렇게나 사나운 탕 대인을 본 적이 없어 더듬거리며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일곱... 일곱째 아가씨께서... 탕 대인과 함께 약도성에 가신 거 아니셨습니까…?”“그럼 아직 돌아오지 않았단 말이냐?!”탕양이 소리쳤다.“아직... 아직 못 뵈었습니다…!”바로 그때, 서일이 다가와 문지기한테서 탕 대인을 떼어놓으며 말했다.“무슨 일이십니까?! 우선 손부터 놓으십시오. 옷이 다 찢어지겠습니다.”탕 대인은 그만 바닥에 주저앉아 머리를 감싸며 괴로운 얼굴로 말했다.“큰일이야… 내가 그녀를 망쳐 버렸네! 죽어도 이 죄를 씻을 수 없을 것이네…!”“무슨 일입니까? 저희 고모께서 지금 어디 계십니까?”사식이가 다급히 물었다.“그녀는...“탕 대인은 비참한 표정을 지으며, 눈물 투성이가 된 얼굴을 닦으며 말을 이었다. “그녀가 어디 있는지는 나도… 모르네… 나는 돌아온 줄 알고 있었네...”바로 그때, 무거운 발소리와 함께 지팡이가 바닥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바로 원가의 노태군이 부축을 받으며 다가오는 것이었다! 탕양이 고개를 들자, 노태군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탕
냉정언은 자기도 모르게 죄책잠이 들어 미간을 찌푸렸다.‘이번에 정말 큰일을 저지른 것인가?’그는 그저 탕양에게 술을 먹여 일곱째 아가씨에게 진심 어린 말을 꺼낼 용기를 주고자 했을 뿐이었다. 그동안 탕양이 얼마나 힘들었는지는 황제뿐만 아니라 모두가 알고 있었고, 다들 그를 안타까워했었다.탕양은 다섯째가 초왕이었을 때부터 초왕부와 다섯째, 그리고 나라와 백성을 위해 많은 일을 해왔다. 그렇게 반평생을 북당을 위해 헌신했으나, 그를 진정으로 주목한 이는 많지 않았다. 특히 과거에 자신도 용납할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른 탓에 평생을 스스로도 용서하지 못한채, 조정을 위해 뛰어난 공을 세우고도 관직이나 봉록을 거절하며 죄를 속죄하듯 살았다. 하지만 진심으로 그를 아끼는 사람들은 그를 탓하지 않았다. 어렸을 때는 누구나 실수를 범할 수 있는 법이니까. 탕양은 이미 그 누구보다 훌륭히 잘해왔고, 게다가 정과 의리에 발목 잡힌 것은 많은 영웅이 저지르는 흔한 실수였다. 고금의 역사를 통틀어, 결코 그 혼자만이 저지른 행동이 아니었다.탕양은 일곱째 아가씨와 벗이라는 관계를 유지하려 했지만, 그의 마음속에서는 늘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니 술에 취하지 않은 이상, 맑은 정신으로는 절대 이야기를 꺼낼 수 없었을 것이기에, 술에 취하게 하면, 경성이 아닌 변방의 시끌벅적한 분위기 속에서 몇 마디 속마음 정도는 털어놓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이었다.하지만 예상외로, 탕 대인의 마음속에 얼마나 많은 감정이 쌓였던 건지... 만취 상태에서 무슨 일을 저지른 것 같았다. 대체 이 마음을 얼마나 오랫동안 품었던 것일까?상황이 아주 복잡해졌다.‘탕 대인 아주 못 쓰겠구먼! 이를 어찌 마무리 짓는단 말이냐…?!’원가의 상대하기 쉽지 않은 여장군들을 떠올리니, 냉정언은 순간 뒷골이 땡겨 머리를 쥐어뜯었다.그러고 나서 고개를 돌리니, 냉명여가 눈 앞에 서 있었다. 냉명여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조심스럽게 물었다.“아버지, 탕 대인은 어찌 일곱째 아가씨와 그런 일을 벌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