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기 싫어?” 소이연이 눈썹을 치켜올렸다.“아니요, 그냥......”육민이 이러는 이유도 다 루카스 때문이겠지.그는 루카스가 자기 아빠라고 생각하고 있으니, 루카스랑 더 같이 있고 싶은 걸 수도 있다. 그녀는 심지어 오늘 육민이 루카스를 찾아간 건 아닌지 의심하기 시작했다.이런 생각까지 하니 소이연은 더더욱 빨리 서울을 떠나야겠다고 생각했다.“알겠어요.” 육민이 타협했다.어차피 엄마는 아빠를 좋아하지 않으니까.아빠가 너무하긴 했다.어제 엄마 앞에서 다른 여자를 보호하고 엄마를 욕했으니 엄마가 미워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엄마, 그럼 저 자러 갈게요. 안녕히 주무세요.”“잘 자.”육민은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다.그는 책상에 있는 친자 확인서를 보고 있었다. 원래 엄마에게 보여주려 했었다.오늘 그는 이 친자 확인서 결과지를 받기 위해 하루 종일 기다렸다.하지만 이제 다 필요 없어졌다.육민은 친자 확인서를 갈기갈기 찢어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엄마가 필요 없다고 했고 엄마가 알면 오히려 마음이 울적해질 것 같았다.그가 알면 됐다.그가 엄마를 지키면 된다.......이튿날.소이연은 아침밥을 먹고 천씨 어르신께 장안시로 돌아간다고 말했고, 굳이 형식적인 이유를 만들지 않았다.어차피 무슨 이유를 대더라도 천씨 어르신은 믿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그녀가 천씨 어르신 집에 오고 싶지 않다고 하지 않는 이상. “내일 가지 그래.” 천씨 어르신이 그녀를 말렸다.“할아버지, 다음에 민이 데리고 또 올게요......”“임씨네에서 그러는데, 저번에 서운하게 한 것 같아서 오늘 와서 사과한다고, 너 가면 사과는 누가 받아?”“그거 다 오해예요.”“체면을 봐서라도 필요해.” 할아버지가 말했다. “할아버지랑 하루 더 있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니잖아?”할아버지가 이렇게까지 말씀하시니 소이연은 타협할 수밖에 없었다.그녀는 육민에게 이 소식을 알려주기 유감스러웠지만, 육민은 오히려 조금 기뻐하는 눈치였다.특히 오늘 임씨네가 온다고 하니, 육
한눈에 봐도 엄청 값진 물건 같아 보였고, 심지어는 가치를 매길 수도 없는 그런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그녀는 받을 수 없었다.“아영이랑은 별개로 천씨 집안으로 돌아와서 이제서야 처음으로 만났으니, 이건 고모할머니가 주는 선물이야.사양하지 말고, 이거 안 받으면 할머니 화낼 거야.” 임가 할머니가 고의로 말했다.“이연 언니, 사양하지 마요. 우리 할머니 성의를 봐서라도 받아주세요.” 임아영이 옆에서 말했다.“이 옥팔찌도 할머니가 한참 고민해서 고르신 거예요. 저랑 루카스도 언니한테 잘 어울릴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그냥 한 번 해보기라도 해요.”소이연은 정말 신세를 지고 싶지 않았다.“이연아, 고모할머니께서 주신 건데 그냥 받아라.” 할아버지가 옆에서 말했다.소이연은 어쩔 수 없이 눈을 꼭 감고 받으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할머니.”“다 한 가족인데 뭐 어때? 자, 할머니가 해줄게.”“네, 알겠어요.”소이연의 손목에 팔찌가 채워졌다.맑고 푸른 옥팔찌가 그녀의 가느다란 손목에 채워지니, 훨씬 더 예뻐 보였다.“이거 봐. 이연 언니한테 딱 잘 어울릴 것 같다고 했지? 진짜 예쁘다.” 임아영이 과장하며 칭찬했다. “그치 루카스?”또 아주 허물없이 옆에 있던 루카스를 툭 치며 말했다. “응.” 루카스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확실히 예쁘네. 이연 씨한테 옥팔찌가 이렇게 잘 어울릴지 몰랐어. 나한테 더 많이 있으니까, 더 가지고 싶으면 할머니한테 말해.”“감사합니다 할머니.” 소이연은 손에 차고 있는 것도 갖고 싶지 않았다.그래서 그녀는 루카스와 임아영의 아이가 태어나면, 이 팔찌를 그들에게 돌려주기로 마음먹었다.비록......임아영의 몸으로 아이를 낳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오늘은 사람이 적으니 쉽게 자리를 뜰 수도 없었다.모두 소파에 앉아 깍듯하게 어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가끔 몇몇 질문에 대답하고 이야기를 나누었다.임아영은 계속 소이연을 물고 늘어지며 그녀의 손목에 있는 옥팔찌를 보고 있었다.“이연 언니, 진짜 예뻐요
“그런가요?” 소이연은 정말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루카스는 다른 사람에 비하면 육민을 잘 대해주기는 했지만, 정말 그가 육민에게 유별나게 잘 해준다는 느낌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육민은 아직 어리니 어른이 아이를 대할 때는 당연히 더 많은 인내와 포용이 요구되는 법이다.......뒤뜰.육민은 기분이 조금 안 좋았다.분명 화장실에 가자고 했으면서 왜 데리고 나온 거지?그는 계속 그를 째려보고 있었다.아주아주 언짢았다. 오늘은 아무리 봐도 그가 정말 마음에 안 들었다. 특히 이모랑 같이 있으면 정말 눈엣가시였다.그는 드디어 엄마가 왜 이렇게 이 사람을 싫어하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쌤통이다! “그날 밤에는 정말 고의가 아니었어.” 루카스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마치 육민에게 해명을 하는 것 같았다.육민은 의아하다는 듯 그를 보았다.“오늘 나한테 이러는 거 내가 그날 네 엄마한테 그렇게 화내서 그런 거 아니야?” 루카스가 물었다.그날 루카스가 그의 엄마에게 그렇게 대했던 것에 대한 얘기를 꺼내자, 그는 더더욱 언짢아했다.“아직도 화났어? 네가 큰 아들인데 겨우 이런 식으로 엄마를 보호하겠다는 거야?” 루카스가 농담을 던졌다.“아빠도 엄마를 안 지키는데 당연히 제가 지켜야죠.” 육민은 이를 갈며 말했다.“네 아빠도 어쩔 수 없는 거지. 사람은 죽으면 아무것도 못 하니까.”“안 죽었거든요.” 육민이 매섭게 말했다. “그냥 나빠진 것뿐이에요.”“응?”“스스로 반성하세요.” 육민은 더 이상 그와 얘기하고 싶지 않았다.루카스는 육민이 너무 웃겼다.스스로 반성하라니.하지만 그는 소이연을 그때 그런 식으로 대해서는 안 됐다.그 당시에는 정말 너무 화가 나서 임아영이 설명해 주기 전에는 소이연이 그럴 리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그렇게 차가운 사람이 어떻게 먼저 다른 사람한테 호의를 베풀 수 있겠냐 말이다. 임아영이 자기 입을 간수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더 컸다.그녀가 먹는 걸 얼마나 좋아하는지 그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하
“가자. 날씨가 춥네.” 루카스가 육민을 재촉했다.“루카스는요?”“나는 좀 걷다 들어갈게. 안에 있으면 너무 스트레스 받아서.”“저도 스트레스 받는데…”“그럼 나랑 같이 좀 걷자.” 루카스가 말했다.육민은 거절하지 않았다.두 사람은 뒤뜰에서 산책을 했다.“이모 많이 좋아해요?” 육민이 갑자기 물었다.“쪼그만 게 좋아하는 게 뭔지나 아냐?” 루카스는 무척이나 대답하기 싫어 보였다.“제가 왜 몰라요. 제가 6살 때부터 아빠가 엄마 따라다니기 시작했는데요.”“너도 대단하다.” 루카스는 육민의 머리를 콩 쥐어박고 싶었다.하지만 저번에 육민이 그를 거절한 것이 떠올라 다시 손을 내렸다.왠지 모르게 육민에게는 뭔지 모를 친밀감이 느껴졌다.정말 생긴 게 닮아서 말로는 설명 못 할 이끌림 같은 게 있는 건가?!원래 아이가 가지고 싶다는 생각은 해본 적도 없었다.특히 임아영의 몸으로는 영원히 아이를 낳지 않을 준비까지 했다.육민을 보고 있으면 그런 마음이 조금 흔들린다.당연히, 모든 건 임아영의 몸 상태가 전제가 되어야 하지만 말이다. “그래서 이모 좋아해요?” 육민이 집착하며 물었다.“좋아해.” 루카스도 성실하게 대답했다.“어떻게 우리 엄마 말고 다른 사람을 좋아할 수가 있어요?” 육민은 조금 흥분한 채 말했다.“...... 나도 너희 엄마가 대단한 사람인 건 알지만, 아무리 더 대단한 사람이 온다고 해도전 세계 모든 사람들이 너희 엄마를 좋아하는 건 아니야. 뭐든 앞뒤가 있는 법이지.”“그렇지만 먼저 우리 엄마를 좋아한 건 루카스잖아요!”“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임아영 뿐이야.”“그럼 만약 제일 처음에 좋아한 사람이 우리 엄마였으면, 엄마랑 연애할 거였어요?” 육민이 그에게 물었다.“아니.” 루카스는 고민도 없이 대답했다.그가 처음으로 좋아한 사람이 바로 임아영이었기 때문이다.그래서 만약은 없다. 그 역시 만약에 대한 일은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싫다.육민은 결국 실망스러운 눈빛을 참지 못했다.“많은 사람들이 너희 엄마
소이연은 그들의 연애에 끼어들고 싶지 않았기에 루카스에게 물어볼 생각은 하지 않았다.소이연이 몸을 일으키자, 할머니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맞다, 아영아.”시선은 모두 그들에게 집중되었다.소이연이 자리를 뜨려 했지만, 갈 수 없었다.이렇게 그냥 가는 것도 무례한 일이다.그녀는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단정히 앉아서 타이밍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할머니.” 임아영은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애교를 부리는 것 같기도, 원래 본인의 말투인 것 같기도 했다.이렇게 다정한 여자에게 넘어가지 않는 사람은 몇 없을 것이다.할머니는 그녀를 아주 편애했다.“루카스랑 결혼할 거지?” 할머니가 말했다.“결혼 생각은 있어요.” 임아영은 쿨하게 인정했다. 이때 루카스를 보며 다정한 웃음을 지었다.“올해?”“가을에요. 가을에는 과일도 익고 의미가 좋잖아요.”“그래, 그럼 얼른 정하자. 이제 서울 연회장도 예약이 다 차고 있어.”“할머니 걱정 마세요. 루카스 부모님께서 돌아오시면 결혼 얘기할 거예요. 그리고 루카스 부모님께서도 반대하시진 않을 거예요.”“그럼 다행이고.” 할머니가 대답했다.할아버지도 입을 열었다. “아영이 결혼할 때 청첩장 먼저 줘, 외삼촌이 할아버지가 큰 선물 하나 준비해 줄게.”“감사합니다 할아버지.” 임아영은 거절하지 않고 신나 보였다.그녀는 고개를 돌려 소이연을 보았다.“이연 언니, 그때 시간 되죠?” 임아영이 물었다.“그때 가봐야 알 것 같아요.” 소이연도 얼버무린 것은 아니다.우선 그들은 날짜를 잡지 않았다. 가을이라고만 했는데, 가을은 길기에 정확히 어느 날인지 확실치 않았다. 그리고 그녀도 시간이 정해지지 않은 스케줄이 많다. 만약 오지 못한다면, 말만 하고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이 되면 안 된다.“제가 청첩장 빨리 드릴게요. 시간 되면 꼭 오세요.” 임아영이 진심을 다해 말했다.“네, 최대한 가도록 할게요.”온 가족이 임아영과 루카스의 결혼에 대한 얘기를 한창 하고 있을 때, 소이연은 몸을 일으켜 육민의 방
그는 골드바를 꺼내들었는데 정말 크고 무거웠다.소이연은 그대로 멍해졌다. “저한테 뭘 줘야 할지 모르겠다면서 이걸 줬어요. 제가 가지고 있어도 쓸데없으니까 엄마 줄게요.” 육민은 선물을 소이연에게 주었다.소이연은 정말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세상에 어느 누가 애한테 선물로 골드바를 주다니! 금 열쇠라면 또 몰라.소이연이 받아드는 순간 또 무슨 생각이 떠올랐다.혹시 루카스가 그녀에게 준 것은 아닐까?그날 그녀에게 화를 내서 육민의 손을 빌려 그녀에게 전해준 것은 아닐까?아이들 것이라면 정말 육민에게 주는 걸로 알 텐데, 어른의 물건이라면......소이연은 함부로 추측할 수 없었다. 그게 맞든 아니든 중요하지 않았다.이렇게 큰 골드바는 사업하는 사람으로서 거절할 이유가 당연히 없었다.장신구였다면 그녀는 정말 흥미가 없겠지만 말이다. 저녁에 임씨네 사람들과 같이 저녁을 먹고 그들을 배웅했다.다음날 아침 일찍 소이연과 육민은 천씨 저택을 나섰고, 천우진이 그들을 바래다주었다.저택을 나서는데, 할아버지가 멀리 입구에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각도 때문인지, 소이연은 할아버지의 머리가 점점 더 하얗게 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분명, 염색을 잘 하셨을 텐데도 말이다. “그래도 조금 아쉽죠?” 천우진이 백미러로 소이연을 보며 물었다.소이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혈연이란게 이런 거예요. 신경 쓰지 않는다고 생각해도 이미 뼛속까지 새겨져 있는 거죠.”천우진은 이런 감성적인 말을 자주 하는 사람은 아니었다.말을 마치고는 스스로도 닭살이 돋았는지 더 이상 얘기하지 않았다.비행기 안.소이연과 육민은 자신의 자리로 갔다.“이연 언니.”갑자기 등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소이연은 그 순간 정말 진심으로 비행기에서 뛰어내리고 싶었다.인연이라는 것은 정말 너무나도 이상하다.육민도 임아영과 임아영의 뒤에 있는 루카스를 보았다.두 사람은 그들의 뒤에 앉아 있었다.“오늘 장안시로 가는 거예요?” 임아영이 신기하다는 듯 물었다.
조금 민망했다.사실 소이연은 이렇게 이목이 집중되는 것을 정말 싫어한다.하지만 심문헌은 그녀에게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못할 것이 없었다.그녀는 육민의 손을 잡고 심문헌을 향해 걸어갔다. “장안시에 돌아온 걸 환영해요.”“왜 장안시에 있어요?”“이연 씨 온다니까 특별히 왔죠.”“제가 탄 비행기는 어떻게 알았어요?”“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라면 두려울 게 없죠?” 소이연은 아니라는듯이 그를 노려보았다. “사실 비서님께 여쭤봤어요.” 그러자 심문헌이 사실대로 말했다.명진 씨 팔이 너무 안으로 굽은 것 같은데.“가요. 데려다줄게요.”“이연 언니, 이분이 남자친구예요?” 임아영은 소이연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겨우 몇 발자국의 가까운 거리였다.심문헌을 보고 그들에게 다가왔다.“이쪽은?” 심문헌은 미간을 찌푸리며 임아영을 보고 있었다.기억 속에 소이연에게 이런 여동생 같은 친구는 없었는데.“안녕하세요. 임아영이라고 합니다. 이연 언니 사촌 동생이에요.”“사촌 동생이 있었어요?” 심문헌이 놀라며 말했다.“그럼 저는 어디 돌에서 나왔겠어요?” 소이연은 좋게 말하지 않았다.“집안에서 버림받은 거 아니었나요?” 심문헌은 거침없이 말을 해댔지만 소이연과 눈을 마주치고는 순간 두려웠다.“네네네, 제가 자세히 알지 못했어요. 반성할게요.” 심문헌은 잘못을 인정했다.“그럼 그쪽은 이연 언니 남자친구예요?” 임아영이 다시 그를 추궁했다.“아직 그쪽 사촌 언니 쫓아다니고 있는 중이에요.” “맞아요.” 소이연이 갑자기 심문헌에게 팔짱을 꼈다.임아영은 조금 놀란 눈치였다.그녀의 옆에 있던 루카스의 눈빛도 조금 흔들린 것 같았다.하지만 여전히 무표정을 유지했다. 그러자 육민은 미간을 찌푸렸다. 당연히 엄마가 새아빠를 찾는 걸 반대하는 건 아니지만...... 육민은 자신도 모르게 루카스를 흘끗 보았다.하지만 루카스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그와 시선을 마주치니, 입꼬리를 씩 올리며 웃었다.육민은 불쾌한 얼굴이었다.엄마가 다른 사
“알고 있었어요. 그치만 혹시나 진짜일 수도 있잖아요.”“그럴 일은 없어요.”“누가 그래요? 예전에는 제가 닿기만 해도 짜증 냈는데 이제는 저한테 먼저 팔짱 끼시잖아요?”소이연은 정말 어이가 없었다.자기가 방금 한 말은 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 건가?“이유가 뭐든, 먼저 만졌잖아요.”이보다 더 애매하게 말할 수 있을까?“근데 이연 씨가 누구한테 신경 쓰는 거 잘 못 봤는데, 방금은 아영 씨가 싫어서 그러신 거예요?” 심문헌이 그녀를 보며 물었다. “싫은 건 아니에요.”“저 속일 생각 하지 마세요.”“아영 씨 같은 여자가 남자들의 워너비 아닌가요??”“나한테는 당신이 제 워너비에요.” 심문헌이 진지하게 말했다.“됐어요. 헛소리 그만해요.” 소이연은 애초에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아영 씨는 딱 봐도 그런.…. 뭐라고 딱 정의하긴 어렵지만, 어쨌든 제 스타일은 아니에요.” 심문헌은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했다.처음 봤을 때 큰 호감은 없었고, 그렇다고 반감이 들지도 않았다.결론적으로 큰 인상을 주진 않았다.“그러면서 방금 아주 친절하시던데요?”“질투해요?”소이연은 눈을 뒤집었다.“그건 이연 씨 동생이니까 그런 거죠. 다른 사람이었으면 전 대꾸도 안 했을 거예요.” 심문헌은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소이연이 웃었다.사실 심문헌도 가끔은 괜찮았다.친구 사이라는 전제하에. “왜 그렇게 아영 씨 싫어해요?” 심문헌이 추궁했다.“안 싫어해요.”“그럼 그 남자 때문이에요? 이름이 루카스던가?”“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소이연은 대꾸도 하기 싫어졌다.“그렇죠? 육현경 씨랑 닮았다고 그 사람 좋아하는 건 아니죠?!” 심문헌은 멘탈이 흔들렸다.삼촌이 엄마를 쫓아다니는 것도 하루 이틀 일도 아니어서 이제 놀랄 일도 아니었기에, 육민은 계속 창밖만 보고 있었다.이때 아빠 이름이 나오자 그는 고개를 돌려 그들을 보았다.“말도 안 돼!” 소이연은 어이가 없었다. “저 그런 사람 아니에요.”“그렇지만 방금은 너무 강한
예수진의 말에 정곡을 찔린 듯 소이연은 얼굴을 붉혔다.“거봐요, 오빠는 내가 제일 잘 안다니까. 그냥 겉으로만 멀쩡해 보이는 거예요.”소이연의 반응에 예수진은 득의양양해 하며 말을 이어나갔다.“겉으로는 차가워 보여도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는 아주 대범해지는 사람이거든요. 언니는 이제 오빠의 넘치는 사랑을 받을 일만 남았네요, 물론 침대 위에서요.”“그만 해요 수진 씨.”신나서 얘기하는 예수진에 못 말린다는 듯 웃던 소이연이 그녀를 타박하듯 말했다.“태교하는 사람이 자꾸 그런 생각 하면 어떡해요?”“아직은 그냥 핏덩이라서 아무것도 몰라요.”“...”“지수야, 너는 요즘 뭐 하고 지내? 평소에 문자 보내도 답장 늦게 하던데.”말을 하던 예수진은 임신한 뒤로 아무것도 못 하게 하는 계지원 때문에 요즘 부쩍 재미없어진 일상을 떠올리고는 서러운 듯 입술을 삐죽였다.“그냥 회사일 처리하고 있었지. 얼마 전에 경영에 문제가 생겨서 회사 부도날 뻔했거든. 그래서 문수 씨랑 일 처리만 했어.”“송문수?”“걔가 회사 일을 한다고?”송문수가 일한다는 소리에 예수진은 깜짝 놀라며 되물었다.“그래, 안 믿길 거 아는데 진짜니까 그런 눈으로 보지 마. 문수 씨 정말 많이 변했어, 더 이상은 맨날 놀러만 다니던 망나니 아니야. 이번에도 문수 씨 덕분에 송씨 집안이 다시 일어서게 된 거야. 그리고 이연 언니랑 현경 씨도 많이 도와줬고.”하지수는 곧바로 소이연을 보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정말 고마워요 언니, 언니랑 형부 도움 아니었으면 저희 집안은 진작에 끝났을 거예요.”“아니에요, 별로 힘든 일도 아니었는데요 뭘.”“현경이가 안 그래도 문수 씨 많이 변했다는 말 하더라고요. 밤에도 전화해서 기획서 어떻냐고 물어볼 정도로 열정적이래요.”“진짜 그렇게나 많이 변했다고요?”소이연까지 긍정하자 예수진은 눈을 크게 뜨며 하지수를 바라봤다.“네가 바꾼 거야?”“내가 그 정도는 아니야. 그냥 나이가 점점 드니까 본인이 알아서 바뀐 거겠지.”“송문수가 바뀐 뒤
그래서 하지수는 이를 악문 채로 따져 물었다.“문수 씨, 당신 형이 올린 인스타 봤어?”자신이 송승우를 이긴 것 같아 기분이 좋아졌었는데 갑작스레 인스타를 언급하는 하지수에 송문수는 자연스레 핸들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안 그래도 거슬렸는데 하지수의 저 질문은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격이었다.“그걸 봤는데도 아무렇지도 않아?”“응, 괜찮아. 그냥 인스타일 뿐인데 뭘 신경 써.”자신이 송승우를 선택할까 봐 두려워하는 모습이 조금도 보이지 않자 하지수는 조금 실망했지만 그래도 괜찮은 척 말했다.“신경 안 쓴다니 다행이지만 그래도 당신 아내로서 해명할게. 나랑 송승우 씨는 아무 사이도 아니야.”아무 사이도 아니라니, 둘이 얼마나 뜨거운 사랑을 나눈 사이였는지 온 집안사람들이 다 아는데 저런 말을 하는 하지수가 어이없었지만 송문수 본인도 뭐 그다지 깨끗한 사람은 아니었기에 그는 자신도 하지 못한 것을 하지수에게 요구할 자격은 없다 생각해서 입을 다물었다.하지수는 송승우를 진짜 사랑한 거였지만 자신은 그저 다른 여자들을 갖고 논 것이기에 더 따질 권리가 없는 것 같았다.“오늘 어머니랑 같이 쇼핑가기로 했는데 송승우 씨가 먼저 따라가겠다고 한 건 맞아. 나랑 어머니도 거절하기 힘들어서 같이 오긴 했는데 나는 송승우 씨랑은 말도 안 섞었어. 거리도 엄청 많이 뒀고 못 믿겠으면 어머니한테 물어봐도 돼.”하지수의 해명을 듣고 있던 송문수는 오로지 저를 위해 저렇게 자세히 상황설명을 해주는 건가 싶어 또 가슴이 벌렁거리기 시작했다.그녀의 작은 행동에 또 흥분한 송문수는 운전에 집중할 수가 없어 애써 심호흡을 하며 정면을 주시했다.“내가 선택한 사람은 당신이니까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당신한테 진심일 거야. 당신한테 미안한 짓은 절대 안 해.”하지수의 약속에도 송문수는 꿈쩍도 안 했지만 하지수는 둘 사이의 작은 오해가 큰 불화로 번지지 않게 하려고 아무런 반응이 없어도 상황설명을 마쳤다.제 할 일을 마친 하지수는 안광이 사라진 눈으로 차 시트에 기대 있었
송문수는 애초에 쉽게 만족하는 사람이었기에 하지수가 조금만 잘해주면 한동안 기뻐했다.둘의 웃는 모습을 지켜보던 허영지도 흐뭇하게 그들을 지켜보며 이렇게 사이좋은 둘이라면 걱정할 필요도 없을 것 같았다.“지수 데리고 밥 먹으러 가려고 온 거라고 했지?”“네.”“옷도 다 입어봤으니까 얼른 가봐.”데이트하러 가라는 말만 안 했지 사실 허영지는 그 둘에게 오붓한 공간을 마련해주고 싶었기에 서둘러 둘의 등을 떠밀었다.“어머니는요, 저녁 어떻게 하시려고요?”“승우 집에 있잖니. 승우랑 같이 쇼핑 좀 더 하면서 네 시아버지 옷 좀 더 보려고. 내 걱정 말고 얼른 가봐.”송승우는 당연히 내키지 않았지만 어머니가 말도 다 뱉은 마당에 거절하기도 쉽지 않아 그저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그럼 차 키는 두고 갈게요.”“저랑 문수 씨는 이만 옷 갈아입을게요.”옷을 갈아입은 둘은 손을 잡고 쇼핑몰 밖으로 나갔고 그 둘의 뒷모습을 노려보던 송승우는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승우야.”송승우는 갑자기 들리는 어머니의 부름에 다급히 표정을 감추었지만 허영지는 이미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안다는 듯이 말했다.“그때 너랑 지수 사이 우리도 다 알아. 하지만 너희 둘은 이미 끝난 사이고 지수랑 문수가 저렇게 잘 지내니까 이제는 너도 형으로서 축복해줘야 하지 않겠니?”송승우도 물론 어머니의 의도를 모르는 바는 아니었지만 그 옛날 하지수가 좋아하던 건 분명 자신이었는데, 그때의 제삼자인 송문수가 하지수를 채가는 게 송승우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말을 마친 허영지는 이만 옷을 갈아입으러 피팅룸으로 들어갔다.송승우도 성인이었기에 조언도 적당히 해야지 선을 넘으면 그냥 가족 사이의 불화만 생길 것이기에 허영지도 여기서 멈춘 것이었다.하지만 어릴 때부터 송문수에게 져본 적이 없던 송승우는 이번에도 제 여자를 그에게 내어주고 싶지 않아서 끓어오르는 분노를 억누르며 주먹을 꽉 쥐었다....송문수의 차에 앉은 하지수는 처음으로 저를 데리러 온 송문수에 못내 기분이 좋
하지만 원체 쇼핑을 싫어하는 송문수의 성격을 알고 있던 하지수는 그의 냉담함에 실망하지 않았다.이렇게 앉아서 옷을 갈아입는 저를 봐주는 것도 그의 노력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문수 왔구나.”허영지의 부름에 송문수가 짤막하게 답했다.“좀 있다 모임 있어서 지수 데리러 왔어요.”“그래, 젊은 사람들이야 그런 모임에 나가면 좋지.”전에는 송문수가 밖에 나가겠다고 하면 거절은 안 해도 표정은 굳어지던 허영지가 너그럽게 대꾸하는 것도 의외였다.“아직 이르니 너도 정장 한번 입어보고 가.”“바로 가야 되는데 갈아입기 귀찮아요.”“얼른 갈아입어.”“엄마, 나 온종일 일해서...”“지수가 너 준다고 한참 고른 건데 와이프 위해서 그 정도도 못 해줘?”남녀 사이에 있어서는 목석같기만 한 제 아들을 보며 허영지가 미간을 찌푸렸다.엄마의 말을 들은 송문수가 하지수를 바라보자 하지수는 다급히 말했다.“잘 어울릴 것 같아서 고르긴 했는데 갈아입기 싫으면 그냥 보기만 해. 맘에 들면 당신 사이즈로 맞출게.”“입어볼게, 맘에 안 들 수도 있으니까.”송문수가 하도 담담하게 대답해서 떨리는 그의 손가락을 주의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사실 그는 하지수가 자신을 위해 옷을 골라줬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아 놀라는 중이었다.기쁜 마음 반 당황스러움 반으로 옷을 갈아입은 송문수가 나오자 직원들은 일제히 그를 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너무 잘 어울리세요, 손님 더 멋있어 보이는 것 같아요.”“진짜요?”송문수가 직원들의 말을 반신반의하자 하지수가 나서며 말했다.“진짜야. 진짜 너무 멋있다.”“그래?”하지수의 확신에 찬 대답을 들은 송문수는 흘러나오는 웃음을 감추지 못하고 득의양양해 하며 대꾸했다.“다 내가 잘 생겨서 그런 거야. 옷이랑은 큰 상관 없지.”이렇게 가끔 자아도취 하는 송문수를 보며 하지수는 웃음을 터뜨리더니 그에게로 다가가 넥타이를 정리해주었다.그 둘의 다정한 모습을 보던 주위 사람들은 다들 흐뭇한 미소를 지었지만 송승우만은 아주 언짢아하
생일파티에 관한 일을 다 의논한 뒤 하지수는 허영지와 함께 그녀의 드레스를 맞추러 갔는데 하지수의 드레스도 같이 맞추자는 시어머니의 권유에 그녀도 옷을 입으로 들어가게 되었다.그래서 핸드폰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것인데 하필 그때 송승우가 송문수의 전화를 받게 된 것이다.옷을 다 입어보고 나서도 시어머니와 쇼핑을 하느라 굳이 핸드폰을 보지 않았던 하지수는 송문수에게서 연락이 온 줄도 모르고 있었다.다시 한번 그녀의 핸드폰이 울렸을 때 송승우가 이번에도 자신이 받으려고 했는데 하지수가 그걸 보고 빠르게 핸드폰을 낚아채 갔다.그녀의 행동에 표정이 굳어버렸던 송승우는 이내 송문수가 자신이 올린 인스타를 봤을 생각에 다시 입꼬리를 올리며 시선을 신문에 고정한 채 둘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문수 씨.”송문수의 이름을 부르는 하지수의 목소리에는 기대와 반가움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잠시 떨어져 있던 연인이 재회할 때나 나올법한 목소리에 송승우의 표정은 한층 더 어두워졌다.“아직도 바빠?”“어머니 모시고 드레스 피팅해보고 있었어. 지금은 디자이너님이랑 디테일 얘기하고 있어. 나도 아까 하나 입어봤는데 사진 보내줄게.”“지금 데리러 갈 건데 어디야?”잔뜩 신나서 말하던 하지수는 이제 고작 4시밖에 안 됐는데 퇴근했다는 송문수가 의아하여 놀라며 물었다.“퇴근했어?”“주말이라서 일찍 퇴근했어.”“회사도 좀 안정돼서 직원들도 앞으로 주말은 다 쉬기로 했어.”“그래.”고개를 끄덕이며 주소를 불러준 하지수는 웃는 얼굴로 전화를 끊고는 허영지에게로 다가갔다.하지만 송문수와 하지수가 싸울 것이라 예상했던 송승우는 화도 내지 않는 송문수에 혹시 그가 하지수를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하지만 사실 송문수는 인스타를 보자마자 차오르는 화에 핸드폰을 손이 하얗게 질릴 정도로 꽉 쥐고 있었다.다른 사람이 채갈까 봐 하지수를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심정이 굴뚝같은데 그런 그녀가 옛날에 좋아하던 송승우와 함께 있는 걸 본 이상 그는
결국 송승우에게 차 키를 내어준 하지수가 허영지와 함께 밖으로 나간 뒤 자연스레 뒷좌석에 타려 하는데 송승우가 갑자기 그녀를 불러세웠다.“지수야, 넌 앞에 타.”“어머니랑 같이 앉을게요.”“장안시에 길은 나도 잘 몰라서 알려줄 사람이 필요해.”단호한 그의 말을 하지수가 거절하기 어려워하자 허영지가 나서며 말했다.“그럼 내비게이션 켜. 바로 윌런 호텔로 갈 거야, 호텔 사장이랑 얘기 다 끝나서 아마 우리 기다리고 있을 거야.”말을 마친 허영지는 또 일부러 하지수를 보며 말했다.“지수는 나랑 같이 타자, 말동무해줘.”“네, 어머니.”제 옆에 앉지 않아도 된다고 저렇게 입이 귀에 걸린 채로 좋아하는 하지수를 보며 송승우는 표정을 굳힌 채로 운전석에 올라탔다.그렇게 내비게이션을 켜고 윌런 호텔로 출발하자 허영지가 하지수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지수야, 어제 내가 한 말 그냥 흘려듣지 말고 잘 생각해봐.”“무슨 말이요?”“너랑 문수 아이 얘기 말이야.”“아, 네.”“그냥 대답만 하지 말고 노력을 해야 애가 생기지.”허영지가 거리낌 없이 남사스러운 말을 하자 하지수는 얼굴이 빨개진 채로 대답했다.“어젯밤에 문수 씨랑도 얘기했어요.”“문수도 알겠대?”“네.”“그럼 난 그냥 기다리고만 있으면 된다는 말이지?”하지수가 다시 고개를 끄덕이자 허영지는 아주 기뻐하며 말했다.“그럼 나는 할머니 될 날만 기다리고 있을게.”그런 허영지와 반대로 하지수가 송문수의 아이를 낳는 걸 용납할 수 없었던 송승우는 핸들을 잡은 손에 힘을 주며 이를 갈고 있었다.윌런 호텔에 도착한 뒤 세 사람은 직원의 안내를 받으며 사장 사무실로 향해 파티 당일의 규모와 배치에 대해 의논하기 시작했는데 이런 비즈니스적인 자리를 포함한 모든 인간관계를 꺼리던 송승우는 얘기에는 참여하지 않고 가만히 자리만 지키고 있었다.그렇게 심심해하던 송승우는 문득 무슨 생각에서인지 핸드폰을 들어 사진을 찍었다.허영지와 하지수도 담긴 사진이었지만 그 둘은 파티 준비에 열과 성을 다하고
“이연 언니가 왔다고?”오랜만에 들려온 소이연의 소식에 하지수는 흥분하며 답했다.“그럼 당연히 가야지, 오랫동안 못 봐서 안 그래도 궁금했는데. 육현경 씨랑 이연 언니가 나 엄청 많이 도와줘서 직접 만나서 감사 인사 하고 싶었어.”“계지원 씨 집에서 모이기로 했어. 예수진 씨 배도 점점 불러서 움직이기 힘드니까 그냥 거기서 보기로 했어.”“그래. 그럼 퇴근할 때 연락해. 나는 먼저 어머님이랑 아버님 생일파티 준비하고 있을게.”“응.”밥을 다 먹은 두 사람은 각자 알아서 집을 나섰고 하지수는 바로 송 씨 가문별장에 시어머니를 모시러 갔다.하지수가 안으로 들어가자 송승우가 소파에 덩그러니 앉아있는 게 보였다.그와 단둘이 만나는 건 아직 어색했기에 하지수도 입을 다물고 있었는데 그런 그녀를 한참이나 바라보던 송승우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엄마 모시러 온 거야?”“네.”“집에 계속 계시는 거예요?”“나갔으면 좋겠어?”헛웃음을 흘리며 묻는 송승우에 하지수가 다급히 해명했다.“아뇨, 그냥 전에는 계속 일로 바쁘셨던 분이 계시니까 물어본 거예요.”“전에는 연구과제 때문에 바빴는데 이제는 나 없이도 잘 돌아가서 한가해.”“아, 네.”고개를 끄덕이는 하지수를 보며 그녀가 저를 불편해하는 걸 느낀 송승우는 올라오려는 화를 참으며 물었다.“문수는?”“출근했어요.”“주말에도 출근해?”“요즘이 회사한테 중요한 시기라서 일요일만 쉬기로 했대요. 내일은 안나가요.”사실 송문수에게는 거의 휴일이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처리해야 할 일이 매일 산더미여서 그는 시간만 나면 사무실에 틀어박혀 있었다.“송문수 많이 변했네.”“송문수가 변해서 너도 걔를 다시 보게 된 거야?”냉소를 흘리며 묻는 송승우에 하지수가 고개를 저었다.“잘 모르겠어요. 감정이라는 게 원래 언제 생겼는지도 모르게 생기는 거잖아요.”감정이라는 건 애초에 기척 없이 생겨서는 헤어나오지 못할 정도로 한 사람을 옭아매는 것이다.하지수의 말로부터 그녀가 이제는 정말로 송문수를
“하지수, 변호사 일할 때는 똑똑하더니 연애에는 영 소질이 없나 봐?”자는 척하고 자신을 놀려먹은 건 송문수인데 오히려 바보라고 핀잔을 듣자 화가 난 하지수가 얼굴을 붉혔다.“네가 나한테 뽀뽀하는 게 좋으니까 계속하라고 가만히 있은 거잖아!”송문수가 언성을 높여 말해서야 이유를 알게 된 하지수는 당황스러운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고 그 표정에 어이가 없어진 송문수는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이렇게 바보 같아서 어떡해, 누가 너 팔아넘겨도 모르겠다.”“누가 누구한테 바보래. 내가 당신 마음을 읽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그런 생각인 줄 어떻게 알고...”말을 채 끝맺지도 못했는데 갑자기 입을 맞춰오며 진득한 키스를 이어나가는 송문수에 하지수는 눈을 크게 떴다.“아...”아까 자신이 한 건 그저 뽀뽀이지 이렇게 치열을 훑고 지나가는 키스는 아니었는데 입속 깊은 곳까지 뜨겁게 만드는 키스는 옆에서 핸드폰이 울리건 말건 오래도록 지속되었다.송문수도, 하지수도 그 벨 소리를 무시한 채 키스를 이어나가다 둘의 입술이 다 번들번들해질 때가 되어서야 송문수는 아쉬움을 뒤로한 채 하지수를 놓아주었다.송문수의 키스에 정신이 혼미해진 하지수는 나른한 눈빛으로 송문수를 보고 있었는데 핸드폰을 보던 송문수는 갑자기 욕설을 내뱉더니 서둘러 침대에서 내려가 욕실로 달려들어 갔다.그의 샤워 소리가 들릴 때에야 정신을 차린 하지수도 시간을 보자마자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부모님이 돌아가신 뒤 변호사 일을 시작하면서 누구보다 규칙적이고 자율적인 일상을 보내왔던 하지수였기에 그녀는 자신이 아주 이성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송문수를 만난 뒤부터 이성보다 감성이 앞서는 사람이 돼버린 것 같았다.그래서 그녀는 송문수가 만약 자신을 팔아넘겨도 그를 도와 돈을 세줄 것 같다는 그의 말에 어느 정도 동의를 하고 있었다.생리대부터 바꾸러 제 방으로 돌아간 하지수가 준비를 마치고 나오자 송문수도 옷을 갈아입은 채로 거실에서 통화를 하고 있었다.평소에는 7시에 일어나서 8시 정도면
말을 마친 하지수는 송문수가 그새 깨어난 지도 모르고 그의 품에 안겨 눈을 감았고 송문수는 다정한 눈을 한 채 떨리는 손으로 제 옆에 누운 하지수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이튿날 아침, 눈을 뜬 하지수는 방금 일어난 탓에 낯선 주위를 한참이나 둘러보고서야 여기가 송문수의 방임을 기억해냈다.관계 빼고는 별짓 다 한 어젯밤이 떠오른 하지수는 얼굴을 붉혔다.혼자 자는 게 습관 되어있어 송문수의 품에 안긴 뒤 빨리 뛰는 심장 때문에 뜬눈으로 밤을 새울 줄 알았는데 예상외로 그녀는 눈을 감자마자 잠에 빠져들었다.아마도 바쁜 일정 때문에 피곤했던 것 같다.완전히 정신을 차린 하지수는 고개를 돌려 아직도 곤히 자고 있는 송문수를 바라보았다.자고있는 그의 모습은 평소처럼 차갑지 않고 쫙 펴진 미간 덕분에 오히려 부드러워 보여 공격성이 다분하지도 않았다.왜 눈을 뜬 모습과 감은 모습이 이렇게 다를까 하는 의문을 가지고 송문수의 얼굴을 찬찬히 보던 하지수는 날카로운 그의 눈빛을 떠올렸다.전에는 그 눈빛이 마음속을 꿰뚫어 볼 것만 같아 두려웠었는데 지금의 하지수는 더 이상 잠들어있는 송문수도, 깨어있는 송문수도 두렵지는 않았다.한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깨어있는 송문수를 마주할 때는 하지수가 주동적으로 입을 맞출 수 없다는 것뿐이었다.하지만 잠들어있을 때는 그야말로 하지수 세상이었기에 그녀는 빠르게 송문수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한 번으로는 부족했는지 하지수는 그 뒤로도 여러 번 입을 맞추다가 누군가의 핸드폰이 울릴 때가 돼서야 행동을 멈추었다.물론 자의로 멈춘 건 아니고 입맞춤을 하던 와중에 눈을 떠버린 송문수 때문에 도둑이 제 발 저리듯 깜짝 놀라 잠시 멈칫한 것이었다.당황한 하지수는 빠르게 도망가려 했지만 자신을 눌러버린 송문수 때문에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분명 방금 눈을 떴는데 이상하게 송문수의 눈은 반짝반짝 빛이 나고 있었다.몽롱한 느낌은 전혀 없는 눈으로 그는 하지수를 빤히 바라보았고 그의 진득한 눈빛을 당해내지 못한 하지수는 서둘러 눈을 피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