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데 저 사람 육현경 씨 닮았어요, 느낌도 비슷하고. 설마......”“하나도 안 닮았어요.” 소이연은 바로 그의 말을 끊었다. “얘기해 보면 알 수 있을 거예요. 육현경이랑 점 하나도 닮은 구석이 없어요.”천우진은 담담히 웃었다.소이연이 어느 한 사람 때문에 이렇게까지 화를 내는 날이 오다니 너무 놀라웠다.두 사람은 다시 차로 돌아왔고, 천우진은 그대로 천씨 가문 저택으로 향했다.소이연이 숨을 깊이 들이마시자 천우진이 물었다. “아직까지도 긴장돼요?”“그건 아니고.. 그냥 익숙치 않아서요.”“자주 오면 익숙해질 거예요.”“타이르지 마세요.” 소이연이 직설적으로 말했다. “저희 엄마가 그때 떠났다는 건, 여기가 좋지 않다는 거예요.”“......” 천우진은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천씨 가문은 확실히 좋지 않았다.그렇지 않았다면, 그의 이모, 즉 소이연의 엄마는 그의 할아버지와 관계를 끊고 집을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그리고 소이연이 돌아오기로 한 것도 사실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두 사람은 같이 거실로 향했다.거실에서는 천씨 어르신과 천제진이 소파에 앉아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그의 옆에는 천우진의 아버지 천정류와 어머니 진양숙, 천우진의 동생 천우빈도 있었다.그 옆에는 천우진의 작은 아버지네 가족이 있었는데, 천제진의 둘째 아들 천정엽과 며느리 임단아, 손주 천재린, 그리고 손녀 천재희도 있었다.천씨 가문의 관계는 아주 복잡했다.소리 없는 전쟁이 아주 많았기 때문이다.만약 육현경이 죽지 않았다면, 천우진이 바로 그를 데려와 권력을 빼앗았을 것이다.소이연이 원래 부모 밑으로 호적을 옮긴 것도 사실 최근 몇 년의 일이였고, 천제진이 직접 장안시까지 그녀를 찾아와 그녀 어머니가 어렸을 때부터 찍은 사진 여러 장과 천씨 가문 사람들의 사진을 꺼냈다.그러고는 사진을 가리키며 그녀에게 그녀의 어머니는 천제진의 딸이고, 그녀가 천제진의 손녀라고 했다.그녀는 이제서야 왜 그녀의 어머니가 그녀를 언론에 노출시키지 않으려 했는지 깨달았
가족들은 화기애애하게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밥을 먹었다.소이연은 두껍게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추웠다. 정신도 맑지 않아서 계속 하품만 나왔다.그러자 천제진이 관심을 가지며 물었다. “어제 잘 못 잤니? 호텔에서 자면 안 좋다고 집에 와서 자라니까.”“어젯밤에 일 때문에 바빠서, 잠을 조금밖에 못 잤어요.” 소이연은 거짓말로 둘러댔다.“일은 항상 끝이 없단다. 그래도 건강은 챙겨야지.” 천제진이 말했다.“네, 조심할게요.”“이제 올라가서 좀 잘래? 사람 시켜서 방 준비해뒀어. 앞으로 서울 오면 집에 와서 자.”“괜찮아요 할아버지. 조금 있다가 또 마린이랑 일정 논의해 봐야 해서 곧 가야 해요.” 소이연은 대답을 피했다.비록 사람들은 아주 우호적이였지만 그녀는 이 집이 싫었다.당연히 겉으로만이겠지만, 그녀는 이익적으로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잘해주어도 좋을 것이 없었다.하지만 천씨 가문에서 소리 없는 전쟁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만약 천제진이 아직 살아서 자리를 지키고 있지 않았더라면, 두 아들은 진작에 다른 태도로 임했을 것이다.“이렇게나 일찍 가려고?” 천제진은 눈에 띄게 아쉬워했다.“이번에 온 것도 전시회 참여하는 김에 온 거고, 아직 장안시에 남은 일이 많아요. 다음에는 휴가 내고 올게요. 그럼 이렇게까지 안 바쁠 거예요.”“다음이 언젠데?” 천제진이 물었다.그는 소이연이 거짓말을 할까 봐 두려웠다. 그러자 소이연이 웃으며 말했다. “다음 달이요. 다음 달에는 꼭 제가 연차 낼게요.”“분명 다음 달이라고 말했다? 그때는 집에 와서 자. 호텔 가지 말고.”“......아, 네.” 소이연은 억지로 대답했다.천제진을 여러 번 거절했기 때문에 그녀도 조금은 죄책감이 들었다.오후 2시 반.소이연은 마린의 전화를 받고 집을 나설 준비를 했다.천제진은 직접 그녀를 차까지 데려다주었고, 역시 천우진이 그녀를 데려다주기로 했다.천제진이 그녀를 배웅했기 때문에, 천씨 가문 모든 사람들이 나와 그녀를 배웅했다.
차가 플래티넘 라운지에 도착했고, 천우진은 소이연이 내릴 때 말했다. “필요하면 연락해요. 서울에 있으니까, 저 24시간 대기하고 있을게요.”“저한테 왜 이렇게 잘해주세요?” 소이연은 참지 못하고 말했다.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고, 솔직히 별로 신경 쓰지 않아서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다.천우진이 그녀에게 잘해주든 말든, 그녀는 상관이 없었다.하지만 갑자기 조금은 그에 대해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천우진은 잠시 침묵하더니 가볍게 말했다. “첫 느낌이 좋았어요. 처음 봤을 때부터 친근하게 느껴졌거든요.”“......” 이 대답은 대답하지 않은 것과 같았다. 만점이다.역시 천씨 가문 사람들은 다들 교활하다.“조심히 가세요.” 소이연은 예의를 갖추며 인사를 건넸다. 천우진은 살짝 웃었다.그는 사실대로 말했을 뿐이다. 근데 아마 소이연은 안 믿는 것 같았다.그는 차를 돌려 나갔다.아마 그중에는 고모의 원인도 있을 것이다.그가 어렸을 때, 그의 고모는 그녀에게 아주 잘 해주었다.아쉽게도...... 이제 만날 수 없다.소이연도 지체 없이 플래티넘 라운지로 향했다.마린은 내일 귀국인데, 어제 밥도 제대로 못 먹은 것 같아 오늘 오후에 시간을 내서 차를 마시기로 했다.소이연은 최고급 VIP 룸으로 들어갔다.들어간 그 순간, 잠시 멈칫했다.루카스를 보니 그녀는 정말 뒤돌아 나가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그녀는 마린이 두 사람의 분위기가 좋지 않다는 것을 눈치챘다면, 최소한 두 사람이 마주치는 일은 피할 줄 알았다.“lovely.” 마린은 그녀를 보고 친근하게 불렀다. “어제는 밥도 제대로 못 먹고, 다 오해였어. 그래서 오늘 루카스도 불렀어. 오해 풀려고.”소이연은 루카스를 보았다.그는 의자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그녀는 신경도 안 쓰는 모습이었다.“오해는 무슨.” 소이연도 어제처럼 뒤돌아 나가지 않았지만, 그래도 역시 예의는 없었다.마린이 서울에 오는 일은 흔치 않으니, 잘 접대하는 게 옳다.당연히 저런 품위 없는 남자 때문에
소이연은 갑자기 조금 화가 났다.루카스를 마주하고 있으니, 왠지 모르게 자신의 심술을 컨트롤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어떻게 이걸 살 수가 있어?” 그녀가 물었다.루카스는 차갑게 웃으며 소이연을 보고 말했다. “너 진짜 웃긴다. 내가 사고 싶은 옷을 사는 건 내 자유야. 내가 허락도 맡아야 해?”“너 내가 똑같은 옷 산 거 알고 있었잖아!”“그건 네 일이고, 나랑 무슨 상관이야. 내가 좋아서 샀다는데, 네 생각은 미안하지만, 이연 씨 우리 안 친해.그리고 당신은 내가 원하는 사람 범주에도 없고.” 루카스는 말에 약간의 조롱을 담고 있었다.소이연은 입술을 깨물었다.속으로 천 불이 났다.루카스의 말에 말문이 그대로 막혀버렸다.이 사람 외국에서 자랐다면서, 말은 또 왜 이렇게 잘 해?“이건 너희들 취향이 같다고 할 수밖에 없다.” 마린은 급히 수습했다.“역시 다들 패션 선두주자라서 그런가? 나도 디자인이 예쁜 것 같다고 방금 루카스한테 얘기했어.”소이연은 입술을 만지며 침착하려 커피를 홀짝홀짝 마셨다.그리고 계속 이 사람 때문에 몸이 안 좋아지면 안 된다고 되뇌었다.“아, 말 나온 김에 하반기에 해외 전시가 있는데 전 세계 유명 디자이너들이 다 참여할 정도로 커.혹시 관심 있어? 너 작품 안 낸 지도 오래됐잖아. 사람들이 다 네 디자인 기대하고 있는데, 미리 준비하는 건 어때?”“언제쯤인데?”“6, 7월쯤?”“알겠어, 시간 나면 준비해 볼게.”“그럼 하는 걸로 알고 있을게?”“응.”“그럼 그때 내가 데리러 갈게, 너 직접 올 거지?”“만약 다른 일 없으면 내가 직접 갈게.”“넌 진작에 세상에 나왔어야 했어. 그동안 너한테 무슨 일이 생겼는지는 모르겠지만, 상태가 안 좋아 보였어. 디자인 실력을 말하는 게 아니라, 네 건강이… 뭐랄까? 기운이 없어졌다고 해야 하나?”“응.” 소이연은 그저 담담히 대답하고, 더 이상의 설명은 하지 않았다.그에게 그녀와 육현경의 일에 대해서 얘기한 적도 없었다.더 이상 마음 아픈 얘기를 계속
호텔 직원이 감기약을 가져왔다. “이연 씨, 만약 약 드시고도 안 나아지면, 전화 주세요. 차 불러서 병원에 데려다 드릴게요.”“네, 감사합니다.”“아닙니다.”소이연은 방문을 잠갔다.그녀는 병원에 잘 가지 않아서, 일반적인 감기는 보통 약만 먹어도 나았다.그녀는 물을 끓이고 약을 먹은 뒤 다시 침대에 누워 이불 속에 파묻혀서 덜덜 떨었다.난방을 더 올렸다. 타 버릴 수도 있을 정도로 말이다.이불도 한 겹 더 덮었는데, 무거워서 숨이 잘 안 쉬어질 정도였다.소이연은 자신의 이마를 만져보았다.도대체 몇 도까지 올라간 거지?이번엔 왜 이렇게 힘이 든 걸까.약을 먹고 2시간 뒤, 땀 한 방울도 나오지 않았고, 체온도 그대로였다. 힘들어서 죽을 것 같았기에 소이연은 결국 버티지 못했다.처음으로 감기 때문에 스스로 병원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그녀는 전화기를 들었다. “저 좀 병원에 데려다주세요… 열이 계속 나요.”“네 알겠습니다. 10분 뒤에 내려오시면 차 불러드릴게요.”“감사합니다.”소이연은 전화를 끊고 흐느적거리며 옷을 갈아입었다.새로 산 패딩을 두르고 문을 나섰다.눈앞이 핑 돌더니 갑자기 조금씩 어두워졌다.그녀는 급히 벽에 기대 컨디션이 나아지도록 노력하고 있었다.깊게 숨을 들이켜고 다시 복도를 걸어갔다.앞에 뭔가 익숙한 사람이 보이는 것 같았다.그 사람은 자신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소이연은 있는 힘껏 입술을 깨물었다.루카스 앞에서 절대로 이런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고 되뇌었다.그에게 자신의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소이연 씨.”소이연이 겨우 루카스를 지나치던 그 순간, 루카스가 갑자기 그녀를 불렀다.소이연은 대답하지 않고 여전히 입술을 깨문 채 엘리베이터로 향했다.“저기!”루카스는 그녀가 대답이 없어 더 큰 목소리로 말했다.소이연의 발걸음이 더욱 빨라지자 루카스는 미간을 찌푸렸다.이 여자 귀신 들린 건 아니겠지?!얼굴도 원숭이 엉덩이처럼 빨개졌고, 걸음도 S자가 됐네?!취했나?!취했는데 밖
“겨우 싸운 거 가지고 이렇게까지 한다고요?!” 호텔 손님은 이어서 말했다. “요즘 젊은이들은 책임감도 없네!”루카스는 깊게 숨을 들이켰다.이제 설명할 수도 없다.그는 소이연에게 걸어가 쓰러진 소이연을 안아 들었는데..이렇게나 뜨겁다고?!이 여자 죽고 싶은 건가?!소이연을 안고 있는 루카스의 발걸음이 눈에 띄게 빨라졌다.소이연도 완전히 의식을 잃은 것은 아니였고, 비몽사몽한 상태였다.그때 마치 자신이 차에 타고 있는 듯한 바람이 느껴졌다.이상하게 따뜻함도 느껴졌다.그녀는 오늘 하루 종일 추웠고, 아무리 두꺼운 이불을 덮어도 몸이 떨렸다.지금에서야 그녀는 정말 따뜻하다고 느끼고 있었다.뭔가 익숙한 따뜻함이 자연스럽게 느껴져, 갑자기 품에 더 파고들고 싶었다.루카스는 미간을 찌푸렸다.그는 소이연을 안고 호텔의 차에 올랐다. 그녀의 몸이 계속 그의 몸에 밀착되고 있는 게 느껴졌다.소이연이 지금 열이 나서 정신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이 여자가 정말 고의로 꼬시는 거라면?!정말 그렇다면, 이건 확실히 스케일이 크다.스스로에게도 정말 독하다.루카스는 속으로 거부감을 느꼈지만, 자신도 모르게 몸은 소이연이 더 쉽게 기댈 수 있게 해주었다.이 기분은...... 설명할 수 없었다.그 역시 처음 소이연을 보았을 때, 왠지 모르게 마음이 흔들렸다.그는 이런 느낌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이런 결과는 본능적으로 소이연을 거부하는 것으로 이어졌다.사실상 소이연은 그에게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하지만 그는 소이연을 가장 나쁜 쪽으로 생각하고 있었다.그래서 그와 소이연은 지금 서로 마음에 안 드는 관계로 변한 것이다.“병원까지는 얼마나 걸려요?” 루카스는 참지 못하고 물었다.“10분 정도요.”“더 빨리 갈 수 있어요?”“이미 가장 빨리 가고 있습니다.” 기사는 급히 대답했다. “중요한 건 지금 눈이 와서 너무 빨리 가면 위험합니다.”루카스는 입술을 만지며 말했다. “최대한 빨리 가주세요.”“네.”루카스는 불덩이 같은 소이연을 안고
루카스는 옆에 앉아있었다.“만약 30분 뒤에도 땀이 나거나 열이 내리지 않으면, 이 버튼 눌러서 저희를 불러주세요.” 간호사가 말했다.“......네.”간호사가 자리를 떴다.루카스는 소이연을 지키며, 그녀의 찌푸려진 작은 얼굴을 보고 있었다.이렇게 자세히 보니, 소이연도 예쁘게 생겼다고 생각했다.그는 보통 다른 사람을 자세히 쟤지 않는다.특히 여자는 더더욱.그는 여자라면 싫증이 날 정도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이연을 이렇게 가까이서 보니 어쩐지, 그녀가 하는 말마다 힘이 있는 이유가 있다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아주 돈이 많게 생겼다.그때, 갑자기 소이연이 오늘 팔짱을 낀 그 남자가 떠올랐다.루카스는 그가 남자친구라고 생각해 조금 거리를 두고 앉았다.그는 옆에 앉아서 휴대폰을 하며 시간을 때우고 있었다.30분 뒤.루카스는 손을 뻗어 그녀의 이마를 짚었다.아이스 베개 때문인가? 열이 조금 내린 것 같았다.그는 여기저기 둘러보았지만, 체온계를 찾지 못했다.간호사가 가져갔나?루카스는 잠시 고민하더니, 허리를 숙여 이마를 소이연의 이마에 가져갔다.루카스는 서로의 이마를 마주 대고, 소이연의 체온을 느끼려 했다.아래 있는 사람이 깨어나 그를 보고 있는 것은 아예 몰랐다.“너 지금 뭐하는거야?” 소이연이 물었다.힘없는 목소리였지만, 말투는 정말 날카로웠다.루카스는 아주 깜짝 놀랐다.그는 심지어 몸을 덜덜 떨며 급히 소이연의 이마에서 떨어졌다.“너 아직 열나는지 본 거야!” 루카스가 해명했다.왠지 모르게 귀가 빨개진 것 같았다.소이연이 차갑게 웃었다. “네가 이렇게 착하다고?”“내가 너 병원 데려온 거야!” 루카스가 당당하다는 듯 말했다.소이연은 찬찬히 주변을 둘러보았다.더 믿지 못할 것 같았다.그녀는 다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자신이 방에서 나와 호텔이 병원에 데려다주기로 한 것밖에 생각나지 않았다.아마 복도에서 루카스를 만난 것 같은데, 분명 루카스를 지나친 것은 똑똑히 기억났다.그리고 루카스가 몇 번 불렀
“저 가족 아닌데요.” 루카스가 반박했다.의사는 루카스를 한번 보더니 직설적으로 말했다. “여자친구도 아닌데 왜 커플룩을 입어요?”루카스는 화가 나서 그대로 패딩을 벗었다. “여자친구도 아닌데 병원에는 데려다줘서 뭐해요?” 의사는 또 물었다.루카스는 뭔가 해명을 하려고 했지만, 의사가 이어서 말했다.“방금 여자친구가 잠들었을 때 이마 맞대고 뽀뽀하는 거 다 봤어요. 하하.”“뽀뽀 안 했어요!” 루카스가 흥분하며 말했다.소이연도 루카스가 뽀뽀는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루카스가 그녀에게 다가갔을 때, 그녀는 거의 깬 상태였기 때문이다.하지만 사람들의 오해로 루카스가 잔뜩 화가 난 것을 보니, 왠지 모르게 통쾌했다.그래서 그녀도 고의로 알 수 없다는 듯한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루카스도 소이연의 시선을 느끼고 말했다. “너 왜 그렇게 봐? 내가 진짜 뽀뽀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소이연이 입을 떼기도 전에 의사가 말했다.“커플 사이에 싸우는 건 정상이예요. 근데 져줄 줄도 알아야지, 자존심이 밥 먹여주나요? 여자친구가 떠나고 나면 울고 싶어도 못 울어요!”“아니........”“됐어요. 빨리 가서 입원 수속 밟으세요. 환자분은 간호사 따라서 진료실로 가시고요.”“감사합니다 선생님.” 소이연이 살짝 웃었다.소이연은 원래 예쁘게 생겨서, 웃으니까 마치 봄바람 같았다.특히 힘없는 웃음이 동정심을 더 불러일으켰고, 이 순간 의사 선생님까지 잠시 멍해졌다.루카스는 옆에서 차갑게 웃었다.이 여자는 천성이 여우인 것 같았다.그는 손을 휘저으며 나가서 입원 수속을 밟았다.한바탕 실랑이를 벌이니, 소이연이 고급 병상에 누웠을 때, 이미 새벽이 다 된 시간이었다.소이연은 루카스가 처리해 준 입원 수속이 마음에 들었다.그녀는 심지어 루카스가 복수심으로 제일 안 좋은 다른 사람들과 자리싸움을 해야 하는 3인실로 예약해 주는 건 아닌지 걱정했다.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루카스를 보았는데, 그는 열심히 입원 수속 서류를 정리
“이연 언니가 왔다고?”오랜만에 들려온 소이연의 소식에 하지수는 흥분하며 답했다.“그럼 당연히 가야지, 오랫동안 못 봐서 안 그래도 궁금했는데. 육현경 씨랑 이연 언니가 나 엄청 많이 도와줘서 직접 만나서 감사 인사 하고 싶었어.”“계지원 씨 집에서 모이기로 했어. 예수진 씨 배도 점점 불러서 움직이기 힘드니까 그냥 거기서 보기로 했어.”“그래. 그럼 퇴근할 때 연락해. 나는 먼저 어머님이랑 아버님 생일파티 준비하고 있을게.”“응.”밥을 다 먹은 두 사람은 각자 알아서 집을 나섰고 하지수는 바로 송 씨 가문별장에 시어머니를 모시러 갔다.하지수가 안으로 들어가자 송승우가 소파에 덩그러니 앉아있는 게 보였다.그와 단둘이 만나는 건 아직 어색했기에 하지수도 입을 다물고 있었는데 그런 그녀를 한참이나 바라보던 송승우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엄마 모시러 온 거야?”“네.”“집에 계속 계시는 거예요?”“나갔으면 좋겠어?”헛웃음을 흘리며 묻는 송승우에 하지수가 다급히 해명했다.“아뇨, 그냥 전에는 계속 일로 바쁘셨던 분이 계시니까 물어본 거예요.”“전에는 연구과제 때문에 바빴는데 이제는 나 없이도 잘 돌아가서 한가해.”“아, 네.”고개를 끄덕이는 하지수를 보며 그녀가 저를 불편해하는 걸 느낀 송승우는 올라오려는 화를 참으며 물었다.“문수는?”“출근했어요.”“주말에도 출근해?”“요즘이 회사한테 중요한 시기라서 일요일만 쉬기로 했대요. 내일은 안나가요.”사실 송문수에게는 거의 휴일이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처리해야 할 일이 매일 산더미여서 그는 시간만 나면 사무실에 틀어박혀 있었다.“송문수 많이 변했네.”“송문수가 변해서 너도 걔를 다시 보게 된 거야?”냉소를 흘리며 묻는 송승우에 하지수가 고개를 저었다.“잘 모르겠어요. 감정이라는 게 원래 언제 생겼는지도 모르게 생기는 거잖아요.”감정이라는 건 애초에 기척 없이 생겨서는 헤어나오지 못할 정도로 한 사람을 옭아매는 것이다.하지수의 말로부터 그녀가 이제는 정말로 송문수를
“하지수, 변호사 일할 때는 똑똑하더니 연애에는 영 소질이 없나 봐?”자는 척하고 자신을 놀려먹은 건 송문수인데 오히려 바보라고 핀잔을 듣자 화가 난 하지수가 얼굴을 붉혔다.“네가 나한테 뽀뽀하는 게 좋으니까 계속하라고 가만히 있은 거잖아!”송문수가 언성을 높여 말해서야 이유를 알게 된 하지수는 당황스러운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고 그 표정에 어이가 없어진 송문수는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이렇게 바보 같아서 어떡해, 누가 너 팔아넘겨도 모르겠다.”“누가 누구한테 바보래. 내가 당신 마음을 읽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그런 생각인 줄 어떻게 알고...”말을 채 끝맺지도 못했는데 갑자기 입을 맞춰오며 진득한 키스를 이어나가는 송문수에 하지수는 눈을 크게 떴다.“아...”아까 자신이 한 건 그저 뽀뽀이지 이렇게 치열을 훑고 지나가는 키스는 아니었는데 입속 깊은 곳까지 뜨겁게 만드는 키스는 옆에서 핸드폰이 울리건 말건 오래도록 지속되었다.송문수도, 하지수도 그 벨 소리를 무시한 채 키스를 이어나가다 둘의 입술이 다 번들번들해질 때가 되어서야 송문수는 아쉬움을 뒤로한 채 하지수를 놓아주었다.송문수의 키스에 정신이 혼미해진 하지수는 나른한 눈빛으로 송문수를 보고 있었는데 핸드폰을 보던 송문수는 갑자기 욕설을 내뱉더니 서둘러 침대에서 내려가 욕실로 달려들어 갔다.그의 샤워 소리가 들릴 때에야 정신을 차린 하지수도 시간을 보자마자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부모님이 돌아가신 뒤 변호사 일을 시작하면서 누구보다 규칙적이고 자율적인 일상을 보내왔던 하지수였기에 그녀는 자신이 아주 이성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송문수를 만난 뒤부터 이성보다 감성이 앞서는 사람이 돼버린 것 같았다.그래서 그녀는 송문수가 만약 자신을 팔아넘겨도 그를 도와 돈을 세줄 것 같다는 그의 말에 어느 정도 동의를 하고 있었다.생리대부터 바꾸러 제 방으로 돌아간 하지수가 준비를 마치고 나오자 송문수도 옷을 갈아입은 채로 거실에서 통화를 하고 있었다.평소에는 7시에 일어나서 8시 정도면
말을 마친 하지수는 송문수가 그새 깨어난 지도 모르고 그의 품에 안겨 눈을 감았고 송문수는 다정한 눈을 한 채 떨리는 손으로 제 옆에 누운 하지수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이튿날 아침, 눈을 뜬 하지수는 방금 일어난 탓에 낯선 주위를 한참이나 둘러보고서야 여기가 송문수의 방임을 기억해냈다.관계 빼고는 별짓 다 한 어젯밤이 떠오른 하지수는 얼굴을 붉혔다.혼자 자는 게 습관 되어있어 송문수의 품에 안긴 뒤 빨리 뛰는 심장 때문에 뜬눈으로 밤을 새울 줄 알았는데 예상외로 그녀는 눈을 감자마자 잠에 빠져들었다.아마도 바쁜 일정 때문에 피곤했던 것 같다.완전히 정신을 차린 하지수는 고개를 돌려 아직도 곤히 자고 있는 송문수를 바라보았다.자고있는 그의 모습은 평소처럼 차갑지 않고 쫙 펴진 미간 덕분에 오히려 부드러워 보여 공격성이 다분하지도 않았다.왜 눈을 뜬 모습과 감은 모습이 이렇게 다를까 하는 의문을 가지고 송문수의 얼굴을 찬찬히 보던 하지수는 날카로운 그의 눈빛을 떠올렸다.전에는 그 눈빛이 마음속을 꿰뚫어 볼 것만 같아 두려웠었는데 지금의 하지수는 더 이상 잠들어있는 송문수도, 깨어있는 송문수도 두렵지는 않았다.한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깨어있는 송문수를 마주할 때는 하지수가 주동적으로 입을 맞출 수 없다는 것뿐이었다.하지만 잠들어있을 때는 그야말로 하지수 세상이었기에 그녀는 빠르게 송문수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한 번으로는 부족했는지 하지수는 그 뒤로도 여러 번 입을 맞추다가 누군가의 핸드폰이 울릴 때가 돼서야 행동을 멈추었다.물론 자의로 멈춘 건 아니고 입맞춤을 하던 와중에 눈을 떠버린 송문수 때문에 도둑이 제 발 저리듯 깜짝 놀라 잠시 멈칫한 것이었다.당황한 하지수는 빠르게 도망가려 했지만 자신을 눌러버린 송문수 때문에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분명 방금 눈을 떴는데 이상하게 송문수의 눈은 반짝반짝 빛이 나고 있었다.몽롱한 느낌은 전혀 없는 눈으로 그는 하지수를 빤히 바라보았고 그의 진득한 눈빛을 당해내지 못한 하지수는 서둘러 눈을 피했
“미안해 문수 씨... 평소엔 이때가 아니라서 나도 몰랐어...”“응.”이 일은 애초에 하지수의 잘못이 아니었기에 그녀를 탓할 수도 없었던 송문수는 하늘이 불공평하다고 한탄하며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하지수를 만나는 날만 기다리며 3년 동안 아무와도 관계를 하지 않았던 그인지라 오늘에서야 비로소 원하던 바를 이룰 수 있겠다고 기뻐했는데 예상치 못한 변수 때문에 또 일주일을 더 기다리게 된 이 상황에 송문수는 한숨만 푹푹 내쉬었다.한숨을 쉬는 송문수를 본 하지수는 그가 자신에게 실망한 줄로 알고 용기를 내어 말했다.“다음에 다시 할까?”하지수의 말에 잠시 멈칫하던 송문수는 이내 언성을 높이며 말했다.“그걸 말이라고 해? 생리 끝나면 당장 해.”자신한테 자꾸 일이 생겨버려 송문수가 다른 사람을 찾기라도 할까 봐 두려웠던 하지수는 확신에 찬 그의 대답을 듣자마자 웃음을 터뜨리며 청심환을 하나 먹고는 말했다.“그럼 편히 자, 난 내 방 가서 잘게.”“어디 간다는 거야?”“내 방 가야지.”“하지수, 네 발로 직접 내 방 찾아와 놓고 이제 돌아가겠다는 거야?”갑자기 터진 생리 때문에 관계를 못 가진 것도 화가 나는데 사람까지 가버리겠다는 말을 들은 송문수는 언짢은 티를 팍팍 내며 눈썹을 꿈틀거렸다.“나 생리 와서 어차피 못하잖아.”“그게 왜?”“아까 문수 씨도 생리 끝나면 하자고 했잖아. 지금 하는 건 나도 좀...”송문수가 되묻자 하지수는 아주 난감해하며 답했다.“하지수, 넌 날 대체 뭘로 보는 거야? 내가 아까 너 안 놔줬으면 여기 진작에 피바다 됐어.”“...”“관계까지 할 사이에 뭘 내외를 하고 그래. 앞으로는 나랑 같이 자.”“앞으로 쭉 같이 자자고? 나랑?”“왜, 싫어?”“아니.”당연히 싫진 않았지만 하지수는 그저 송문수가 관계도 없는 잠을 자신과 함께 자겠다는 게 신기했을 뿐이다.그렇게 순진해 보이는 사람은 아니었는데.“빨리 와서 자. 아까 너무 움직였더니 피곤해.”송문수가 먼저 침대 한쪽에 자리를 잡고 눕자 하
송문수의 입술이 하지수의 입술을 지나 그녀의 귓가에 닿을 때, 이런 식의 스킨십은 처음 해보는 하지수는 온몸이 떨려왔다.태어나서 딱 한 번, 송문수와 차에서 해본 게 전부인 그녀는 송문수의 유혹을 당해내지 못하고 서서히 그에게로 다가가 그의 목에 자신의 고개를 비볐다.그렇게 하지수를 안달 나게 하던 송문수는 그녀가 자신을 받아들였다는 걸 확신하고는 점차 행동을 대범하게 하기 시작했다.자연의 섭리인 것마냥 물 흐르듯 움직임을 이어나가던 송문수가 갑자기 멈췄을 때 하지수는 온몸이 뜨거워 나고 머리가 텅 빈 것 같았다.온몸이 나른해진 그녀는 송문수의 움직임에 몸을 맡길 수밖에 없었다.그렇게 한참 지나 송문수가 더는 움직이지 않을 때가 돼서야 정신을 차린 하지수가 그를 보며 물었다.“왜 그래?”제 아래에 누워있는 하지수를 보며 정말 이성을 잃을까 봐 걱정된 송문수는 마음을 가다듬으며 입을 다물고만 있었다.“문수 씨?”하지만 하지수는 아까는 그렇게 늑대처럼 달려들던 사람이 갑자기 말도 안 하고 거친 숨만 연신 내뱉는 게 이상했다.“문수 씨...”“지수야.”송문수가 한참 만에 입을 열자 그 숨결에 의해 뜨겁게 달궈진 피부에는 소름이 돋기까지 했다.곧 자신이 상상했던 일이 현실이 될 수 있었던 아주 아름다운 순간이었는데 다른 여자들한테는 다 곁을 내주면서 왜 자기 앞에서는 갑자기 멈추는 건지 하지수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본인이 여자로서의 매력이 떨어져서 송문수가 싫어하는 걸까 봐 자연스레 눈물이 흐르고 있었는데 송문수가 잔뜩 실망한 듯한 말투로 말했다.“너 생리 왔어.”“뭐?”송문수의 말에 깜짝 놀란 하지수는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하고 송문수를 빤히 바라보기만 했다.“속옷에 피 묻어있어, 아마 온 지 얼마 안 된 것 같아.”그제야 정신을 차린 하지수는 수치스러움에 빨개진 얼굴로 빠르게 몸을 일으켰다.이틀 뒤가 예정일인데 왜 갑자기 오늘 온 건지는 모르겠지만 하지수는 송문수의 얼굴을 제대로 보기가 민망해 침대에서 뛰어내리다가 하마터면 넘
송문수는 자신의 떨림을 선명히 느낄 수 있었다.그뿐만이 아니었다.하지수도 그의 몸 아래에서 떨리고 있었다.송문수는 이미 자신의 한계에 도달하고 있었다. 예전의 그라면 이미 마음이 가는 대로 몸을 맡겼을 것이다.그는 조심스럽게 지수에게 다가갔다.지수는 온몸이 긴장돼 있었고 두 손은 이불을 꼭 쥐고 있었다.그녀는 자신이 어떻게 송문수의 몸 아래에 있게 됐는지조차 생각이 나지 않았다. 단지 지금, 그의 숨결은 몹시 거칠고 심장 소리는 우뢰처럼 커진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녀는 어쩔 바를 몰라 했고 곧 무언가가 일어날 것만 같았다.그때, 송문수의 입술이 서서히 하지수의 입술에 와닿았다.송문수의 심장은 더욱 격렬히 뛰고 있었고 이불을 꼭 쥐고 있던 지수의 두 손에는 점점 더 힘이 들어가고 있었다.두 입술이 맞닿은 그 순간, 두 사람은 머리가 하얘졌다.둘만의 공간, 둘만 나누는 부드러운 촉감, 온몸으로 느끼는 서로의 떨림……이것이 진짜 입맞춤이었다.하지수의 뇌리에는 갑자기 전에 송문수의 차에서 나눴던 관계가 스쳐 지나갔다. 단지 관계를 위한 관계였을 뿐, 사실 그녀는 아무런 떨림도 느끼지 못했고 심지어 굴욕적이라는 생각까지도 들었었다.하지만 이번은 달랐다. 오히려 그녀가 리드하고 있었다.송문수가 조심스러워 망설이고 있을 때 그녀가 먼저 리드했다.그는 그녀의 유혹을 당해낼 수가 없었고 둘은 더더욱 서로를 탐하고 있었다.온 세상이 조용해지고 두 사람의 심장 소리만 들리고 있었다.두 사람은 얼마 동안 키스를 나눴는지 가늠조차 못 하고 있었다. 아주 길게 또 아주 짧게 느껴지는 건 왜일까?입술을 뗀 두 사람의 얼굴은 너 나 할 것 없이 빨갛게 달아오르고 있었다.이런 경험은 송문수도 처음이였다. 능수능란해야 마땅한 그는 지수와의 키스 후 고장 난 사람처럼 어쩔 바를 모르고 있었다. 그저 방금 전의 달콤하고도 아름다웠던 키스에 사로잡혀 그녀를 놓치고 싶지 않았고 그렇게 온 밤을 그녀와 보내고 싶었다.그는 또다시 그녀의 입술에 다가갔다.천천히
그는 너무 기뻐하다가 오히려 일을 망칠까 봐 조금 두려웠다.“그러면 오늘밤에 같이 자는 거 어때?” 하지수는 송문수를 바라보며 물었다.“푸!” 송문수는 너무 놀란 나머지 조금 전에 마시던 물을 내뿜었다.“싫으면 말고…” 송문수의 격한 반응에 지수는 실망을 감출 수 없었다.“그런 거 아니야.” 송문수는 다급히 해명했다.지수는 어리둥절해졌다. 바로 전에 문수가 분명히 아주 격렬한 반응을 보였기 때문이다.송문수는 연신 입을 닦으며 말을 덧붙였다.“너랑 같이 자는 게 절대 싫어서 그런 거 아니니까 오해하지 마.”“그럼 나 먼저 씻을게.” 하지수는 웃으며 말했다.“그래.”“네 방에서 잘까? 아니면 내 방?”“난 다 좋아.”“그러면 네 방에서 자자. 네 방이 더 크니까.”“그러자.”“나 씻을게.”“응.”“너도 빨리 씻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지수는 얼굴이 타오르듯 빨개졌다.무슨 의미인지 두 사람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송문수는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고 더 이상 자신의 마음을 감추기가 힘들었다.하지수가 먼저 방으로 들어갔다.송문수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크게 숨을 들이켰다.방금 잘못 들은 거 아니지?그는 곧 벌어질 일을 생각하니 너무 긴장되어 숨도 안 쉬어지고 물컵을 들고 있던 손도 떨릴 지경이였다.수도 없이 많은 여자를 만나봤던 그로서는 남녀관계에 대해서 모르는 것이 없었고 이런 경험이 처음일 리는 더더욱 없었다.하지만 그 상대가 하지수라니, 송문수는 머리가 하얘졌다.그는 남아있던 물을 한 모금에 다 마시고 나서 바로 방으로 돌아가 샤워하기 시작했다.오늘 밤이 지나면 둘 사이는 전혀 다른 관계가 되어 있을 것 같았다.송문수는 샤워를 마쳤다.평소라면 몇분이면 끝낼 샤워를 오늘에는 한번 또 한 번 반복해서 씻었다. 행여나 깨끗이 못 씻었을지 몇 번이나 더 씻은 후 겨우 욕실을 나와 침대에서 하지수를 기다리고 있었다.그는 지수가 이미 방에서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예상했으나 지수는 더 오래 걸렸다.아마도 그와 똑
하지수는 민망함에 얼굴이 더 붉어졌다.그녀는 송문수와의 관계가 어디까지 발전했는지 확신할 수 없었지만, 아직 아이를 가질 정도까지는 아닌 것이 분명했다.송문수도 민망해하며 말했다.“저희 둘 사이 일은 걱정하시지 마세요. 저희가 알아서 할게요.”“네가 아무 생각이 없어 보이니까 이러는 거야.” 송문수 어머니는 핀잔을 주었다.“네가 조금 더 잘했으면 지금쯤 애가 뛰어다니며 놀 나이가 됐을 거야.”“엄마! 그만 하세요.”문수는 더 이상 듣기 싫었다.“그래, 알았어. 근데 내가 다시 한번 강조하는 건데, 너 다시는 지수 같은 여자애 못만난다는거 기억해. 지수 놓치면 평생 후회하면서 혼자 살게 될 거라는걸.”“알겠어요, 알겠다고요.”송문수는 잔소리가 듣기 싫었지만, 어머니의 말에 반대는 하지 않았다.그 말을 옆에서 듣고 있던 송승우는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자리를 박차 거실을 나갔다.모든 사람의 눈길이 그에게로 향했다.송문수는 송승우가 왜 화가 났는지 잘 알고 있었다.그가 고개를 돌려보니 하지수도 송승우를 보고 있었다. 갑자기 벌어진 상황에 지수도 자신도 모르게 그쪽으로 눈길이 가게 된 것이었다.송문수의 시선을 느낀 그녀는 얼른 고개를 돌려 그와 눈을 마주쳤다. 그녀의 눈빛은 마치 송승우에 대한 마음은 일찌감치 접었음을 알려주는 것 같았다.송문수는 시선을 돌렸지만, 마음속으로는 내심 안도했다.하지수는 정말 송문수를 사랑하지 않는 걸까?송승우의 돌발행동에 사람들은 당황했지만 이에 대해 별다른 얘기는 하지 않았다.가장 많은 논의가 있었던 것은 역시나 아버지의 생일파티와 그들에게 아이를 낳는 것을 권유하는 것이었다.저녁 아홉 시, 송문수와 하지수는 집으로 돌아갔다.야근을 자주 하는 탓에 이렇게 일찍 귀가한 적은 처음이었다.예전에는 집으로 돌아오면 너무 피곤해서 샤워만 하고 각자 잠에 들었었다. 하지만 오늘은 너무 일찍 돌아온 탓에 오히려 분위기가 어색해졌다.언제부터인가 두 사람 사이의 기류는 점점 부자연스러워지고 있었다. 눈만 마주쳐도
송문수는 깍지를 끼고 있는 두 손을 바라보았다.심장은 더욱 빨리 뛰고 따뜻함은 배가 되고 있었다.그녀의 마음에 화답이라도 하듯 송문수 역시 더욱 세게 손을 잡았다.하지수의 입가에는 미소가 번졌고 두 사람은 손을 꼭 잡은 채로, 로비로 들어갔다.그곳에는 문수의 부모님이 기다리고 계셨다.문수의 형, 송승우도 앉아 있었다.둘이 손을 잡고 들어오는 모습을 본 승우의 눈에는 분노가 차올랐다.지금 도발하는 건가? 송문수와 하지수가 일부러 도발을?송문수의 부모님 역시 그들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알아채고 흐뭇하게 웃고 계셨다.이 얼마나 바라왔던 일인가.문수의 어머님은 두 사람을 반갑게 맞아주시며 말씀하셨다.“얼른 들어와, 지금 바로 저녁 준비하라고 할게.”“네, 엄마.”송문수는 하지수의 손을 꼭 잡은 채로 어머님의 말씀에 고개를 끄덕였다. 지수도 그런 문수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그녀는 누군가와 손을 잡는 게 이렇게도 설레는 일인지 처음 깨달은 듯싶었다.그들은 테이블에 둘러앉아 저녁을 먹기 시작했다.송문수와 하지수는 나란히 앉아 밥을 먹을 때에도 서로 눈길을 주고받으며 서로에 대한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그런 모습을 바라보는 부모님은 흐뭇하기 그지없었다.유독 송승우만 얼굴이 굳은 채로 한 술도 먹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도 그를 신경 쓰지 않았다.“너무 고생 많았어. 오늘은 특별히 너희가 좋아하는 반찬들을 준비했으니까 많이 먹어.”송문수 어머님은 반찬을 덜어주며 따뜻하게 말을 건넸다.송문수 아버님도 문수의 업무 얘기에 귀를 기울였다. 질문도 하시곤 하셨지만, 문수를 지지해 주시는 마음은 느낄 수 있었다.저녁 식사는 시끌시끌하였다. 송승우만 빼고 말이다. 먼저 말을 걸지 않으면 아무도 그에게 눈길을 주지 않는 혼자만 쓸쓸한 저녁 식사였다.식사가 끝난 후, 수다는 계속되었다. “곧 너의 아버님 환갑인데 난 시끌벅적 크게 보내고 싶은데 어때?”“좋아.” 송문수는 고개를 끄덕였다.“원하는 대로 해. 엄마랑 아빠가 기분 좋은 게 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