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내 방이라고요!” 루카스가 문밖에서 마구마구 소리를 질렀다. "당신......” "내가 방금 데스크에 전화했는데, 데스크에서 우리 방을 착각했대요! 내 방은 999호, 당신 방은 666호예요! 데스크에서 당신한테 방 카드를 줄 때 내 방 카드를 줬다고요, 이제 이해가 되겠어요?” 루카스는 인내심을 잃고 짜증 난 목소리로 말했다. 소이연은 잠시 멍해졌다. 어떻게 이런 고급 호텔에서 이런 수준 낮은 실수를 할 수 있지? "알아들었으면 빨리 나와요." 루카스는 화가 나서 재촉했다. "더 이상 내 방에 있지 말고 나가요.” "누가 안 나가겠다고 했어요?!" 소이연도 참지 않고 같이 소리를 질렀다. 그녀는 더 이상 이 남자에게는 참을성을 나타내기 싫었다. "그럼 왜 안 나와요?!” "젠장....! 옷을 안 가지고 들어왔다고요!" 소이연은 욕설을 내뱉었다. 남자가 그녀의 입에서 욕설이 나오게 만들었다. 그녀가 욕실에 들어갈때, 입었던 옷을 소파에 아무렇게나 벗어 놓고 갈아입을 옷은 가지고 들어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목욕 타월 한 장으로 몸을 가린 채 루카스를 앞에 서 있기 싫었다. 그 오만한 남자에게 이런 모습을 보이고 싶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문 열어요!" 루카스는 다시 방문을 두드렸다. "옷이 없다고 했잖아요......”"이 망할 문을 안 여는데 내가 당신 옷을 어떻게 줘요!” 루카스는 화를 내며 말했다. 소이연은 다시 한번 입술을 깨물었다. 이 남자와 차분하게 대화하는 건 불가능할 것 같다. 소이연은 목욕 타월을 다시 자신의 몸에 단단히 고정시키고, 여러 번 확인한 후에야 드디어 욕실 문을 열었다. "뭘 그렇게 열심히 가려요, 볼 것도 없던데." 루카스는 문틈을 보며 어색한 말투로 말했다. "볼 것 없어도 당신이 볼지 안볼지 제가 어떻게 알아요!” “보긴 뭘 본다는 거예요? 내 눈 썩을 일 있어요?.” “루카스 씨!" 소이연은 짜증을 내며 말했다. "옷 줘요?” 루카스가 큰 소리로 물었다
사실 루카스가 그녀에게 관심이 없는 건 알고 있었다.방금 밖에서 실 오라기 하나도 안 걸치고 있었지만 그는 눈두덩이조차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하지만 그녀는 그가 스스로 잘났다고 생각하는 것에 화가나 복수를 하고 싶었다.그는 그녀가 계속 자신을 꼬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루카스는 소이연이 시끄럽게 하는 바람에 머리털이 곤두섰다.“좀 닥쳐!” 루카스는 이를 악물었다.소이연은 애초에 그의 말을 듣지 않았고, 그의 몸 아래에서 미친 듯이 움직이며 그를 밀어내려 하고 있었다.비록 보기에 그녀는 하나도 뚱뚱하지 않지만, 깔리니까 마치 쇳덩이같이 무거웠다.“계속 움직기만 해봐!” 루카스가 협박했다.“빨리 일어나기나 해. 이 변태 새끼야!” 소이연이 욕을 했다.그에게 받은 서러움을 결국 참지 못하고 전부 토해냈다.그러자 루카스의 눈빛이 갑자기 돌변하며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내가 변태라고?”분명히 무서운 눈빛이었다.소이연은 순간 긴장해 급히 그를 밀어내려 했다.입도 멈추지 않았다. “빨리 일어나...... 읍.”소이연의 눈이 커졌다.이 남자는 갑자기 그녀에게 뽀뽀를 했다.감히 그녀에게 뽀뽀를 하다니!! 그녀는 고민도 하지 않고 입을 벌려 이빨에 힘을 주었고, 그대로 그의 입술을 깨물었다.“아!”루카스는 바로 소이연에게서 떨어졌다.“너 미쳤어?” 루카스는 매섭게 그녀를 노려보았다.그는 손으로 자신의 입술을 만졌는데, 물린 곳에 피가 나고 있었다.“너야말로 미쳤지. 제 발로 온 여자는 싫다며? 근데 뽀뽀는 왜 해?!” 소이연은 말을 하면서 손으로 거세게 닦아내며 말했다. “더러워 죽겠네.”루카스의 눈에는 화가 가득했다.소이연이 그를 싫어하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왠지 모르게 좋지 않았다.“아직도 안 일어나?” 소이연은 소리를 질렀다.“조용히 해!” 루카스가 소이연에게 소리치고는 결국 그녀의 몸에서 내려왔다.내려가지 않았으면 이 여자는...이 여자는 위험할 걸 모르고 그를 꼬시는 걸까?그래도 다른 보통의 여자들보다는 훨씬
소이연은 진심으로 벌떡 일어나서 바로 루카스와 싸우고 싶었다.발가벗은 사람은 난데, 대체 왜 본인이 화를 내는 거야?!왜 손가락질까지 하면서 욕을 하냐고!“내가 여기에서 옷 갈아입고 있는 거 뻔히 알면서 들어오는 건 무슨 심보야?!” 소이연은 큰소리로 말했다. “내 몸에 관심이 있는 거지? 아닌 척은 왜 해!”“미친년!” 루카스는 화난 채로 소이연에게 욕을 했다.그리곤 소이연이 발가벗고 있든 말든, 그대로 그녀의 앞으로 가 언제 떨어졌는지 모를 그의 휴대폰을 줍더니 다시 나갔다.소이연은 화가 나서 몸이 덜덜 떨려왔다.어떻게 이렇게 악랄한 남자를 만날 수 있지.그녀는 화를 내며 옷을 입고, 더 이상 조금도 더 드러내지 않고 욕실을 나섰고, 루카스는 또 침대에 누워 휴대폰을 하고 있었다.소이연이 나오는 것을 보자, 그는 눈을 얇게 뜨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소이연 또한 아무 말도 안 했다.그녀는 그대로 방의 전화기를 들었다.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죠? 도대체 저는 어떤 방에 있는 거예요?!”“이연 씨세요?” 전화 너머 사람이 조심스럽게 물었다.“네.”“저희 999호실 앞에 있는데, 제가 설명드려도 괜찮으실까요?”소이연은 거세게 전화를 끊고 화가 나서 방문을 열었다.문 앞에는 4-5명이 서있었다.가장 앞에 있던 사람은 호텔 매니저였고, 그 뒤엔 직원 여러 명이 서 있었다.“들어오세요.”소이연은 뒤돌아 들어갔다.호텔 직원은 뒤를 따랐다.루카스는 여전히 침대에 누워있었는데, 그 모습이 마치 할아버지 같았다.“이연 씨 죄송합니다. 오늘 저희 프런트 데스크에서 체크인해드린 직원이 오늘 처음 온 친구였습니다.이연 씨의 666호실을 999호실 카드로 드렸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매니저는 허리를 90도로 굽혀 급히 사과했다.뒤에 있던 4명의 직원들도 급히 90도로 허리를 굽혔다.잘못을 저지른 그 직원도 매니저에 의해 앞으로 끌려와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또 몇 번이고 90도로 허리를 굽혔다.이때, 옆에
그러니까 이 말은 팩이 지금 루카스의 방에 있다는 뜻이다.그녀는 매일 저녁 팩을 하는 습관이 있다.이제 곧 29살인데, 관리를 안 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하지만 만약 그녀가 지금 가서 팩을 가져온다면, 루카스에게 무슨 말을 들을지 몰랐기에 차라리 안 가는 게 낫다.시간도 너무 늦어서 배달을 시킬 수도 없었다.그녀는 그대로 침대로 가 잠들었다.오늘 하루 종일 바빴던 탓에, 침대에 누우니 확실히 힘들었다.오늘 저녁에는 아마 멜라닌 같은 수면제를 먹지 않아도 될 정도였다. 그녀가 비몽사몽하며 막 잠에 들때, 갑자기 밖에서 들린 노크 소리에 놀라 벌떡 일어나 버리고 말았다.그녀는 정말 자연스럽게 스르륵 잠드는 것이 쉽지 않은 사람이다.근데 겨우 잠들었는데 도대체 누구인 것인가!소이연은 화를 내며 이불을 걷어 내고 일어났다. 머리는 엉망이였는데, 문을 여니 더 더욱 화가 났다.문 앞에 서있는 사람은 다름아닌 샤워 가운만 입고 있는 루카스였다.머리에서는 아직 물이 떨어지고 있었다.몸도 축축해 보였다.헐렁한 샤워 가운 사이로 그의 가슴이 보일 듯 말 듯했다.“오밤중에 이렇게 입고 뭐 하려고?!” 소이연은 퉁명스럽게 물었다.“이연 씨, 내가 좋은 마음으로 팩을 가져다주러 왔는데, 이런 태도로 나올 거야?!” 루카스는 손에 있던 팩을 그녀에게 건넸다.소이연은 입술을 만졌다.이제 보니, 방금 씻고 나오면서 그녀의 팩을 발견해서 가지고 온 건가?이렇게나 착하다고?!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그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대가 없는 친절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줘 말아? 싫으면 버린다?” 루카스는 소이연의 의심스럽다는 듯한 눈빛을 보니 또 심술이 났다.소이연은 루카스의 손에 들려 있던 팩을 홱 낚아채고 방문을 쾅 닫았다.“쾅” 하는 소리가 났다.그녀는 아주 화가 난 듯했고 루카스는 문에 부딪힐 뻔했다.루카스는 꾹 참고 다시 방으로 돌아갔고, 소이연도 다시 침대에 누웠다.망할 놈의 루카스, 전생에 도대체 누구의 원수였던
소이연은 그나마 두꺼운 옷으로 골랐다. 하지만 옷을 입어도 여전히 추웠기에 이따가 호텔을 나서면 천우진이랑 같이 가서 두꺼운 옷을 사야겠다고 다짐했다.그녀는 호텔 방문을 열고 나가 막 엘리베이터에 탔는데, 익숙한 실루엣이 보였다.정말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는 말이 사실인가!어떻게 어딜 가던 루카스를 만날 수가 있지?루카스도 그녀를 보곤 얼굴이 어두워져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말했다. “타이밍 한 번 끝내주네.”소이연은 대꾸도 하지 않았다.이렇게 교양 없는 남자랑은 한 마디도 섞고 싶지 않았다.엘리베이터가 내려가고, 중간에 잠시 멈췄는데, 갑자기 많은 사람들이 탔다.아마 아줌마 단체 여행객인 것 같았다.소이연은 조금 밀려났다.한 아줌마가 실수로 소이연을 밀쳤다.소이연은 그대로 뒤로 밀려나 루카스의 몸에 기댔다.더 생각할 것도 없었다. 루카스는 분명 알 수 없다는 듯, 한 마디 할 것이다.그녀는 마음의 준비를 했지만, 루카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그녀는 미간을 찌푸리며 루카스에게 떨어지려고 안간힘을 썼다.설마, 사람들 앞에서 루카스도 체면을 챙기는 건가?!그녀는 이 남자가 다른 사람의 눈에 자신이 어떻게 비칠지 생각 없이 사는 줄 알았다.엘리베이터 안.아줌마들이 너무 많아서 아주 시끄러워졌다.소이연은 몇 번이고 밀쳐났다.그녀는 이미 최대한으로 루카스와의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앞에 있는 아줌마가 계속 밀치는 바람에 무게를 견딜 수가 없었다.그녀가 뭐라 한 마디 하려던 그 순간, 머리 위에서 아주 불쾌한 목소리가 들렸다. “거기 어머니, 매너 좀 챙겨요. 엘리베이터 안에서 계속 시끄럽게 하시고 이게 뭡니까? 뒤로 밀지 말아 주시죠? 뒤에 있는 사람도 생각하셔야죠!”목소리는 아주 컸고, 예의도 없었다.말이 끝나기 무섭게 시끄럽던 엘리베이터는 순간 고요해졌다.루카스에게 한 마디 들은 아줌마는 고개를 돌려 루카스를 보았다. 확실히 표정이 좋지 않았다.“요즘 젊은이들은 진짜 예의가 하나도 없어. 어른들 존중할 줄도
“요즘 젊은이들은 예의가 없어, 예의가!” 아줌마는 화가 안 풀렸는지 계속 욕을 퍼부었다.“늙어서 나빠진 게 아니라, 나쁜 사람이 늙는 거구나.” 루카스도 지지 않고 반박했다.소이연은 그 아줌마가 화병으로 죽을 것 같은 모습을 보았는데, 속으로는 뭔가 통쾌한 기분을 느꼈다.평소에 이런 아줌마들은 자기 나이를 들이밀며 노인도 존중하지 않는다.엘리베이터가 도착했고, 그 아줌마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욕을 하며 사라졌다.소이연이 몸을 조금 움직이자, 루카스는 급히 그녀를 놓아주었다.그 모습이 마치 더러운 물건이라도 만진 것 같아 보였다.독한 말도 잊지 않았다. “오해하지 마, 너 때문에 아줌마랑 싸운 거 아니니까.아줌마가 널 밀면, 네가 날 미니까, 난 누가 내 몸에 닿는 게 싫거든.”“오해 안 해.” 소이연은 성큼성큼 걸어나갔다.원래 그래도 “고맙다”라는 말 한마디는 하려고 했는데, 역시 그에게는 필요 없었다.소이연은 그대로 호텔 입구로 걸어갔다.호텔 문이 열리자, 찬 바람이 들어왔고, 소이연은 참지 못하고 몸서리를 쳤다.그녀는 너무 추워 몸을 부르르 떨었다.밖에서 들어오던 두 여자 중 한 명이 그녀를 보며 말했다.“와, 이렇게 추운 날 저거 밖에 안 입다니! 그래도 몸매는 예쁘네, 분위기도 있고.”“이게 바로 분위기는 챙기고 따뜻함을 버리는 건가? 나는 이렇게 추우면 차라리 곰처럼 꽁꽁 싸맬래.” 또 다른 여자가 말했다.“나도, 나도. 난 이렇게 추운 날 도대체 왜 저렇게 입는지 이해가 안 돼.”이때 소이연은 이미 호텔 문을 나서고 있었다.천우진이 입구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그는 그녀가 확실히 얇게 입은 것을 보더니 손을 뻗어 그녀를 품에 안아 조수석에 태웠다.“왜 때문이겠어?” 그 여자가 웃으며 말했다. “저런 롤스로이스를 끌고 데리러 온다면 난 아무것도 안 걸쳐도 돼.”“슬프네.” 두 여자는 깔깔대며 웃었고, 루카스는 그들 옆으로 지나쳐갔다.당연히 소이연이 한 남자의 고급 차에 타는 것도 보았다.그의 입꼬리에는
어제부터 지금까지 그녀가 루카스와 이렇게 우연찮게 마주친 건 몇 번째인지 셀 수도 없이 많았다.루카스의 눈빛을 보니, 그녀는 이 사람이 고의로 자신을 따라다닌다고 생각할 듯해 보였다. 그녀는 급히 천우진을 붙잡았다.천우진은 아마 조금 놀란 것 같았다.그동안 소이연은 그에게 먼저 스킨십을 하지 않았다.그 순간 갑자기 그에게 팔짱이 끼워졌다......천우진의 말없이 웃던 얼굴에 장난기가 발동했고, 그는 루카스를 보며 입꼬리를 씩 올렸다.올라간 입꼬리엔 비웃음이 담겨있었다.소이연의 낯빛이 조금 어두워졌다.이 남자는 그녀에게 보인 적 없는 다정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하지만 마린의 작업실에서 그를 파악했던 것이 전부였는데, 아마도 이 남자는 인상이 깊었던 것 같다.낯선 사람에게 그렇게 좋은 인상을 심어줄 필요도 없었다.그녀는 천우진의 팔짱을 끼고 루카스의 옆을 지나쳐 한쪽으로 걸었다.판매원이 나와 급히 응대했다.소이연은 어떤 옷을 살지 생각도 안 해봤고, 따뜻하기만 하면 되니 판매원에게 골라 달라고 했다.판매원은 당연히 한 벌만 고르지 않았고, 급히 디자이너의 신제품 3벌을 꺼내며 말했다.“이 3벌이 다 잘 어울리실 것 같아요. 맞다, 이건 커플룩이에요. 남성복도 있는데 입어보시겠어요?”소이연은 흘끗 보더니 말했다. “아니요, 제 것만 포장해 주시면 돼요.”“네, 계산은 이쪽입니다.” 판매원이 공손히 말했다.“내가 갈게.” 천우진이 그대로 따라갔고, 소이연도 거절하지 않았다.어차피 천우진은 돈이 많으니까 이 정도는 문제없었다.그녀는 방금 구매한 패딩을 바로 입었다.글로벌 럭셔리 브랜드 쇼핑몰의 난로는 아주 따뜻했지만, 소이연은 여전히 추웠다.그녀는 옷을 입고 거울을 보며 천우진이 계산하는 것을 기다렸다.그 순간 탈의실에서 루카스가 나왔다.소이연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루카스가 입은 그 옷은 방금 판매원이 말한 그 커플룩의 남자 옷이었다.마침 그녀도 지금 여자 옷을 입고 있었다.루카스도 한눈에 알아보고 또 경멸하는 듯
“근데 저 사람 육현경 씨 닮았어요, 느낌도 비슷하고. 설마......”“하나도 안 닮았어요.” 소이연은 바로 그의 말을 끊었다. “얘기해 보면 알 수 있을 거예요. 육현경이랑 점 하나도 닮은 구석이 없어요.”천우진은 담담히 웃었다.소이연이 어느 한 사람 때문에 이렇게까지 화를 내는 날이 오다니 너무 놀라웠다.두 사람은 다시 차로 돌아왔고, 천우진은 그대로 천씨 가문 저택으로 향했다.소이연이 숨을 깊이 들이마시자 천우진이 물었다. “아직까지도 긴장돼요?”“그건 아니고.. 그냥 익숙치 않아서요.”“자주 오면 익숙해질 거예요.”“타이르지 마세요.” 소이연이 직설적으로 말했다. “저희 엄마가 그때 떠났다는 건, 여기가 좋지 않다는 거예요.”“......” 천우진은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천씨 가문은 확실히 좋지 않았다.그렇지 않았다면, 그의 이모, 즉 소이연의 엄마는 그의 할아버지와 관계를 끊고 집을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그리고 소이연이 돌아오기로 한 것도 사실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두 사람은 같이 거실로 향했다.거실에서는 천씨 어르신과 천제진이 소파에 앉아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그의 옆에는 천우진의 아버지 천정류와 어머니 진양숙, 천우진의 동생 천우빈도 있었다.그 옆에는 천우진의 작은 아버지네 가족이 있었는데, 천제진의 둘째 아들 천정엽과 며느리 임단아, 손주 천재린, 그리고 손녀 천재희도 있었다.천씨 가문의 관계는 아주 복잡했다.소리 없는 전쟁이 아주 많았기 때문이다.만약 육현경이 죽지 않았다면, 천우진이 바로 그를 데려와 권력을 빼앗았을 것이다.소이연이 원래 부모 밑으로 호적을 옮긴 것도 사실 최근 몇 년의 일이였고, 천제진이 직접 장안시까지 그녀를 찾아와 그녀 어머니가 어렸을 때부터 찍은 사진 여러 장과 천씨 가문 사람들의 사진을 꺼냈다.그러고는 사진을 가리키며 그녀에게 그녀의 어머니는 천제진의 딸이고, 그녀가 천제진의 손녀라고 했다.그녀는 이제서야 왜 그녀의 어머니가 그녀를 언론에 노출시키지 않으려 했는지 깨달았
그로부터 반년이 지나서야 송문수는 마침내 국내로 돌아올 수 있었다.캐나다에 있는 회사도 이제 정상적으로 흘러가자 귀국한 거였지만 그도 그냥 예수진 아들의 백일을 축하하러 온 것뿐이었다.시간이 어찌나 빠른지 송문수가 나갈 때까지만 해도 배가 부른 채로 있던 예수진이 벌써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백일까지 맞이하게 된 것이다.오랜만에 온 장안시였지만 송문수는 자신의 귀국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그저 본인의 집으로 향했다.오랫동안 비워둔 집이라 그런지 온통 먼지투성이여서 일단 도우미부터 부른 송문수는 아주머니가 정리를 마친 다음에야 침대에 몸을 뉘일 수 있었다.떠나기 전만 해도 이곳에서 사랑하던 사람과 행복한 시간을 보냈었는데.이제는 그 모든 게 다시는 들춰선 안 될 과거가 돼버린 것 같았다.해외에 있던 시간 동안 송문수는 부단히 하지수를 잊으려 애쓰고 있었다.물론 정말 잊었는지는 아무도 모르지만.하지만 하지수와 송문수가 반년 동안 연락을 하지 않은 것만은 사실이었다.부모님과 영상통화를 할 때도 같은 집에 살던 하지수는 한 번도 얼굴을 비추지 않았다.그저 우연히 한 번, 그녀의 뒷모습이 화면에 스친 게 전부였다.몸을 뒤척이던 송문수는 내일의 백일잔치에 대해 생각했다.내일 가면 친구들이 무조건 술을 권할 텐데, 오랫동안 술을 마시지 않은 탓에 송문수는 지금 자신의 주량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가 없었다.그래도 푹 쉬면 조금은 낫겠지 싶어 그대로 잠을 청한 송문수는 이튿날 아침이 돼서야 눈을 떴다.언제부턴지 부모님처럼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습관이 몸에 배어버린 탓에 송문수는 이젠 밤을 새우는 게 오히려 힘겨웠다.그렇게 여유롭게 준비를 마친 그는 한 번 더 깔끔하게 옷매무새를 정돈하고는 선물을 한 아름 안고 집을 나섰다.너무 이르지도 않고 너무 늦지도 않은 딱 적당한 시각에 집을 나선 그는 문득 옛날 자신의 모습이 떠올라 웃음을 지었다.예전에는 어쩜 그리 특이하게 살아왔는지, 참으로 유치했던 것 같다.해외에서 반년 동안 혼자 살아서
“보름 넘게 준비한 건데 서두르는 건 아니지.”자신의 가족과 친구들이 있는 고향을 떠나는 일인데도 송문수는 참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갔다가 언제 와?”“그건 몰라. 상황 봐서 잘 되면 빨리 오는 거고 잘 안되면 못 오는 거지.”어깨를 으쓱이며 말하는 송문수에 그의 결심이 바뀔 리 없다는 걸 알아챈 송승우는 그만 입을 다물고 하지수의 손을 맞잡았다.무의식중에 눈물을 흘리던 하지수는 손에서 느껴지는 온기에 빠르게 표정을 감췄다.“가자.”그리고는 송승우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오늘 그녀는 송문수와 단 한마디도 나누지 않았다.마지막 작별인사도 전하지 않은 채 그렇게 헤어졌다.하지수의 몸에 감히 시선을 두지 못하던 송문수도 그녀가 송승우와 함께 차에 타서야 차창 너머로 비치는 그 뒷모습을 어렴풋이 볼 수 있었다.그는 한참 동안 자신에게서 멀어져가는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었다.사실 캐나다도 송문수가 직접 갈 필요는 없었다.회사에 유능한 사람은 널리고 널렸으니 아무에게나 CEO라는 직급을 쥐어 보내면 될 일이었지만 송문수는 본인이 가겠다고 자처하고 나선 것이다.여기서 다정하게 지내는 둘을 보고 있는 게 더 가슴 아플 것 같아서, 눈에 보이지 않으면 조금은 낫지 않을까 싶어서.손 하나 잡았다고 이렇게 가슴이 미어질 것 같은데 이런 모습을 계속 보는 건 정말 감당하지 못할 것 같아서 그는 이곳을 떠나기로 한 것이다....송문수는 캐나다에 도착해서야 육현경과 소이연을 비롯한 친구들에게 자신의 출국 소식을 알렸다.그리고 언제 돌아갈지는 모른다는 말까지 남기자 다들 깜짝 놀랐지만 별말은 하지 않고 몸 잘 챙기라는 소리들뿐이었다.그리고 시간 되면 놀러 오라는 얘기들로 대화가 마무리되었는데 역시나 예수진은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그녀는 굳이 송문수에게 따로 문자까지 보내며 물었다.[너 진짜 어쩌려고 그래? 이렇게 가겠다고? 다 버리고? 송문수, 너 언제부터 이렇게 나약해졌니? 내가 너였으면 당장이라도 송승우랑 싸웠어!][어차피 못 이
둘의 이혼은 아주 빠르게 진행되었고 두 사람은 각각 손에 이혼 증명서를 들고 법원에서 나왔다.“이제 끝난 거지?”“네.”하지수에게 건네받은 이혼 증명서를 들춰보던 송승우는 안에 적힌 내용을 다 확인한 후에야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혹시라도 돌발상황이 생길까 봐 따라온 건데 그런 걱정이 무색하게도 두 사람의 이혼은 순조롭게 진행됐다.송문수는 하지수를 보고서도 한마디도 하지 않고 그저 절차대로 서류만 제출했다.아무 감정도 없는 것 같은 두 사람의 모습에 송승우는 감정이란 게 저렇게 쉽게 사라질 수도 있나 싶었다.둘 사이에 다른 일이 있었던 건 아닐까 궁금하기도 했지만 어차피 이혼만 하면 그만이었기에 송승우는 다른 건 묻지 않았다.이제 두 사람이 이혼했으니 송승우는 저와 하지수도 떳떳해진 것 같았다.그리고 그는 송문수만 연락을 끊는다면 하지수를 다시 자기 여자로 만들 자신이 있었다.그래서 법원에서 나오자마자 송승우가 먼저 송문수를 불러세웠다.“시간 되면 집에 와서 밥이라도 먹어. 엄마 아빠가 전화해도 안 오던데, 많이 바쁜 거야?”“응.”“바쁘다고 가족들도 다 내팽개치는 건 아니지. 워라벨도 신경 써야지.”어른스러운 말투로 나무라듯 말하는 송승우를 송문수는 쳐다보지도 않았다.서울에서 일할 때 1년이 넘도록 안 오던 게 누군데.부모님이 굳이 송승우를 부르지 않은 건 그의 일에 방해가 될까 봐서였다.무튼 송승우는 그런 사람이었다. 자신이 하는 일은 아주 중요한 일이고 다른 사람들의 일은 언제든지 시간을 뺄 수 있는 여유 적적한 일이라 여기는 사람.“언제 시간 되는지 알려주면 도우미들 시켜서 너 좋아하는 거...”“나 해외에 잠깐 나가봐야 해.”“뭐라고?”송문수가 송승우의 지루한 말을 끊으며 대답하자 송승우는 당황하며 물었다.“엄마 아빠가 말 안 했어?”“무슨 말이야 그게?”금시초문이었던 송승우는 하지수를 쳐다보았지만 그녀의 반응을 보니 그녀 역시 처음 듣는 말인 것 같았다.“우리 회사 전기차 해외 매출이 자꾸 오르니까 전
그런데 그때, 협탁에 놓인 물과 알약 한 알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그 옆에 나란히 놓여있는 쪽지에는 “단기 피임약”이라는 말도 적혀있었다.그 약과 물을 번갈아 보던 하지수는 피가 차게 식는다는 게 뭔지 그제야 알 것 같았다.너무나도 명확한 송문수의 의사에 하지수는 가슴이 아려왔다.성인 남녀 둘이 충동적으로 서로를 원해서 가졌던 하룻밤이니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을 것이고 아무런 미련도 없다는 걸 이렇게 약으로 알려주다니.알약을 집어 든 하지수는 참으로 처량하게 웃어 보였다....그렇게 점심이 다돼서야 하지수는 별장으로 돌아갔다.핸드폰 배터리가 다 된 탓에 그녀는 송승우가 몇 통의 전화를 했는지도 모른 채 별장 안으로 들어섰는데 송승우는 아니나 다를까 어두운 얼굴로 이제야 들어오는 그녀를 바라보았다.그와 달리 허영지와 송기명은 살갑게 하지수를 걱정해주었다.“지수야, 어제 어디 갔었어? 전화는 왜 꺼놓고. 수진이한테 전화했는데 네가 문수랑 같이 갔다고 해서 문수한테 연락해보니까 문수는 또 너랑 같이 있는 거 아니라고 그러던데. 대체 어디 있었던 거야? 어디 다친 데는 없지?”“없어요. 어제 술을 좀 많이 마셔서 문수 씨 집에서 잔 것뿐이에요.”송문수 집에서 잤다는 하지수의 말에 송승우는 더는 못 참겠는지 언성을 높였다.“하지수, 너 나랑 한 약속 잊었어? 네가 어떻게 거기서 잠을 자!”“내가 무슨 약속을 했는데요?”송승우는 아무리 화가 났어도 저 질문에만큼은 답을 할 수 없었다.가스라이팅으로 어렵게 얻어낸 기회라는 걸 다른 사람한테는 알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나 문수 씨랑 아직 이혼 안 했어요. 그러니까 아직은 뭘 하든 합법적이란 소리죠.”“하지만...”“이혼하고 나서 얘기해요. 나 피곤해서 먼저 올라 가볼 게요.”몸도 마음도 다 힘들었던 하지수는 송승우를 화를 살필 겨를이 없었기에 그대로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그렇게 침대에 누워 천장을 보고 있으니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또르륵 흘러내렸다.몸을 뒤척이며 이불을 목 끝까지 끌
“너 내일 후회할 거야.”이런 하지수를 앞에 두고 참는 건 송문수에게도 곤욕이었다.온몸이 떨릴 정도로 힘을 주고 있는 것보다 자신의 마음을 억누르는 게 더 힘들었다.“후회 안 해.”“딱 하나 후회되는 게 있다면 내가 이 나이 먹도록 한번 밖에 못 해봤다는 거야. 그리고 그 한 번도 진짜 별로였어.”“뭐?”아까부터 한번을 강조하는 하지수에 송문수는 의아하다는 듯 되물었다.“그 한 번도 다 너한테 맞춘 거였잖아.”고작 한 번이라니, 그럴 리가.그런데 또 곱씹어 보니 둘이 함께 잔 건 한 번뿐인 것 같긴 했다.하지만 송승우와 그렇게 오래도록 사귀면서 송승우 방까지 들락날락하던 게 하지수인데 그런 그녀의 인생에서 저와 한 게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이번엔 내가 움직일 거야.”하지수는 잔뜩 풀린 눈으로 당차게 말했지만 그녀의 말은 전혀 위협적이지 않았다.“나 또 밀어내면 그땐 진짜 물어버릴 거야.”말을 마친 하지수는 송문수를 바닥에 눕힌 뒤 그 위에 올라탔다.“반항하지 마.”곧바로 하지수의 입술이 자신에게 다가왔지만 송문수는 정말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이 상황에 그녀를 밀어내면 하지수가 정말 울어버릴 것만 같아서.그녀의 우는 모습을 보는 건 언제나 가슴 아픈 일이었기에 송문수는 그냥 가만히 있는 걸 택했다.그렇게 내일 그녀의 원망도 다 받아낼 심산으로 송문수는 하지수의 움직임에 몸을 맡겼다.뜨거운 하룻밤을 보낸 뒤, 아침이 밝아오자 하지수는 몸을 뒤척였다.온몸에 차에 깔리기라도 한 듯 무거웠고 발가락 하나 움직이는 것도 힘들었던 그녀는 힘겹게 눈부터 떠보았다.익숙하고도 낯선 이곳은 그녀의 기억 속에 있던 송문수의 집이었다.그리고 눈을 떠 주위를 둘러보니 어제의 기억 조각들이 하나하나 수면 위로 올라오는 것 같았다.그것들이 마침내 온전한 하나가 되었을 때, 하지수는 얼굴을 붉혔다.본인도 몰랐던 자신의 대담한 모습을 그녀는 차마 깊게 생각할 수가 없었다.술이 깬 지금에 와서는 절대 못 할 일이
송문수는 자신마저도 취해버린 것 같았다.그래서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도 분간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마침내 입술을 뗀 하지수가 오랜만에 얌전해진 송문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자신의 키스에 몸을 맡기며 가만히 있기만 하는 그에 하지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문수 씨, 내가 하는 키스가 그렇게 별로야?”별로라니, 흥분해서 자칫하면 이성이 끊길뻔했는데.여기서 입을 열면 더 이상은 참지 못할 것 같아 송문수는 이번에도 그녀의 질문에 답을 하지 않았다.“어디가 별론지 얘기해주면 내가 고칠게, 응?”송문수는 아까부터 마른침만 삼키고 있었다.부단히도 움직이는 그의 울대가 그의 초조함을 대변하고 있었다.하지수 앞에서만큼은 속절없이 무너지는 송문수라 하지수가 한마디만 더 하면 그는 정말 무너져내릴 것만 같았다.“지수...”그래서 그만하라고 말하려 하는데 하지수가 본인의 손가락을 송문수의 입에 가져다 댔다.자신의 한계가 어디까진 지 아는 송문수는 지금 이마에 핏줄이 도드라질 정도로 힘을 주며 간신히 참고 있었다.이대로 가면 정말 무슨 일을 저지를 것만 같은데, 그걸 다 알면서도 그는 하지수를 밀어낼 수가 없었다.그런데 하지수는 점점 과감해지는 건지 이젠 하다 하다 손까지 집어넣어 송문수의 몸 곳곳을 어루만지고 있었다.그녀의 손길이 지나간 곳이면 그게 어디든 불에 덴 듯 뜨거워 났다.송문수 역시 술을 마신 몸이라 버티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그래서 그는 자신이 느슨해져서 이 상황을 즐기는 일이 없게 온몸에 힘을 꽉 주고 있었다.하지 마 하지수는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점점 더 깊은 곳까지 손을 움직여왔다.“아!”그러다 결국 송문수에게 손이 잡혀버린 그녀는 울망울망한 눈으로 송문수를 올려다봤다.자칫하면 그곳까지 갈 수도 있었는데 뭐가 아쉬워서 저런 표정을 짓는지.송문수는 심호흡으로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말했다.“그만해 하지수.”“왜?”“별장에 데려다줄게.”저 순진무구한 눈을 보고 있으면 송문수도 빨려 들어갈
술에 취한 하지수의 고집을 당해낼 수 없었던 송문수는 결국 그녀를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들어갔다.밤늦은 시간에 별장에 들어가면 다른 가족들을 깨울 수도 있으니 집에서 잠만 재운다는 핑계를 대가며 말이다.송문수가 하지수를 침대에 눕히고 자리를 뜨려 하자 하지수가 그의 손을 꽉 잡으며 말했다.“가지 마.”손끝에서 느껴지는 하지수의 온기에 송문수의 심장박동이 빨라지기 시작했다.“하지수, 잘 봐. 나 송문수야.”“알아, 네가 송문수인 거. 나 버린 무책임한 놈이잖아 너!”풀린 눈으로 저를 쳐다보며 말하는 하지수에 송문수는 입술을 말아 물었다.술을 마신 하지수는 송문수가 감히 컨트롤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왜 날 송승우한테 넘긴 거야? 내가 물건이야? 네가 뭔데 날 송승우한테 준다 만다냐고!”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하지수는 침대에 올라 선 채 송문수를 내려다보며 소리쳤다.“서 있지 말고 일단 앉아, 그러다가 넘어져.”“안 넘어져.”하지수는 송문수의 말을 듣지도 않고 계속 질문만 퍼부었다.“왜 날 밀어내는 건데! 내가 어디가 별로야? 몸매가 별로야 아니면 내가 못생겼어? 뭘 그렇게 일일이 다 따지고 들어? 넌 보는 눈이 그렇게 높아?”“일단 누워.”“싫어.”송문수가 그녀를 잡아주려고 손을 뻗으면 하지수는 곧장 몸을 돌려 피하곤 했다.그렇게 휘청대는 하지수를 보는 게 송문수는 조마조마하기만 했다.“내 말에 대답부터 해. 왜 날 싫어하는 거야?”“난 너 싫어한다고 안 했어.”그의 대답에 송문수를 향해 손가락질하던 하지수가 금세 눈시울을 붉혔다.“넌 그냥 내가 싫은 거잖아! 나 말고 밖에 있는 그 못된 여자들을 더 좋아하는 거잖아. 나도 그 여자들처럼 변하면 나 좋아해 줄 거야?”“그런 거 아니야.”“변명하지마! 넌 그냥 몸매 좋고 능숙한 그런 여자들만 좋아하는 거잖아. 내가 모를 줄 알아?”뭐가 그렇게 서러운지 혼자 화를 내는 하지수가 송문수는 어이없기만 했다.술을 마신 하지수는 아예 다른 사람의 말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으니
예수진:[저 둘이 나랑 지원 씨보다 더한 것 같아요.]소이연:[수진 씨도 본인들이 너무했다는 건 아네요.]예수진:[... 송문수랑 지수 얘기나 해요.]소이연:[일단 오늘은 지수 씨도 스트레스 풀게 그냥 놔두고 내일 다시 이야기해봐요.]예수진:[그래요.]그렇게 하룻밤 사이에 하지수는 5병의 맥주를 모두 비워냈다.이미 한계에 다다른 그녀는 해롱해롱해지고 몸에 힘도 빠지자 그대로 테이블에 엎드렸다.속도 쓰리고 마음은 더할 나위 없이 아팠다.누가 자신을 억누르는 것만 같은 느낌에 하지수는 당장이라도 속 시원히 소리라도 치고 싶었지만 그녀는 습관적으로 또 참아내고 있었다.어린 나이에 부모님을 잃은 탓에 늘 불안에 떨며 살아와서 그런지 그녀는 한 번도 자신을 가감 없이 드러내 본 적이 없었다.감정을 숨기고 애써 괜찮은 척 웃어 보이는 게 하지수라는 사람이었다.“다들 많이 마신 것 같은데 이제 일어나.”예수진이 말을 꺼내자 소이연도 남편을 보며 말했다.“현경아, 시간도 늦었는데 우리도 이만 갈까?”아내 바라기였던 육현경은 이미 입가에 가져다 댄 술잔도 바로 내려놓고는 그녀를 따라나섰다.그들이 떠나고 혼자 덩그러니 앉아있던 하도경 역시 예수진의 눈짓에 자리를 비워야만 했다.“그럼 나도 갈게.”아직 술을 덜 마신 게 아쉽긴 했지만 예수진의 눈빛을 당해낼 수 없었던 하도경은 결국 소이연 부부의 뒤를 따라갔다.모두가 자리를 뜨자 예수진은 그제야 술을 퍼마시고 있는 송문수를 향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지수 집에 좀 데려다줘.”“오늘은 그냥 여기서 자고 가라고 해.”“안돼, 난 손님 집에서 안 재워.”“하도경은 너희 집에서 잤잖아.”“지수랑 하도경이랑 같아? 걔는 내 남편이 될뻔한 사이였잖아.”아무 말이 막 하는 예수진 때문에 계지원은 마음이 아파왔다.하룻밤 사이에 두 남자의 마음을 후벼 파 놓은 예수진은 아무렇지 않게 웃음을 터뜨리는 송문수를 보며 말을 이어나갔다.“어쨌든 아직은 이혼 전이니까 네가 지수 남편이야. 지수 안전은 너한
그 말에 분위기가 순식간에 어색해지자 예수진이 다급히 말을 받았다.“너랑 나랑은 다르지.”“뭐가 다른데?”“난 너 안 좋아하니까 친구로 지낼 수 있는 거야.”그런 아픈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예수진에 하도경은 충격받은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헤어질 때 준 상처로는 부족했는지 만날 때마다 이렇게 하도경의 가슴을 후벼 파는 예수진이었다.“진짜 사랑했던 사람들은 친구가 될 수 없어, 내 말이 맞지 지수야?”일부러 하지수를 언급했지만 그녀는 입술만 말아 물고 있었고 오히려 송문수가 대답을 가로챘다.“그냥 친구로 지낼만한 가치가 없는 사람이라고 판단해서 그럴 수도 있지.”하지수는 입까지 올라온 말을 삼켜냈고 예수진은 생각 없이 아무 말이나 막 뱉는 송문수를 노려보며 저 싹수면 이혼당할 만하다고 생각했다.“우리 진짜 오랜만에 모인다, 다음에 만날 때쯤이면 우리 애도 다 태어났겠어.”“도경아, 오늘은 진짜 취하기 전엔 아무도 집에 보내지 말자.”계지원이 분위기를 풀기 위해 말하자 하도경도 눈치 있게 대꾸했다.“좋아.”어차피 예수진 때문에 마음고생을 너무 해서 더 다칠 마음도 없었기에 하도경은 공허한 제 가슴에 술이나 퍼부으려고 맥주를 따기 시작했다.그렇게 남자들 앞에 한 병씩 놓아준 하도경은 여자들을 보며 물었다.“우리 여자분들은 물, 우유, 음료수 중에 고르세요.”“전 물 마실게요, 알아서 마실 테니까 신경 안 쓰셔도 돼요.”“전 맥주 주세요.”평소엔 술을 즐기지도 않고 예수진과 소이연이 마실 때만 한 잔씩 같이 마시던 하지수가 갑자기 맥주를 요구하자 다들 눈을 크게 뜨고 그녀를 쳐다봤다.“오랜만에 보는 거니까 저도 한잔하고 싶어서요. 요즘 송승우 옆에만 있느라 또 언제 나올지도 모르잖아요.”“송승우는 좀 어때?”궁금한 건 못 참는 예수진이었기에 말 나온 김에 하지수를 향해 물었다.“아직도 죽겠다고 난리야?”“아니, 지금은 많이 좋아졌어.”“다 큰 남자가 왜 자기 목숨으로 가족들 협박하는 거야?”처음에는 송승우를 안타까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