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든 나랑 소이연 씨는 잘 알지도 못하는데 함부로 귀찮게 할 수는 없어.” "이미 아는 사이가 됐잖아.” 마린이 숟가락을 놓으며 말했다. 안 그러면 왜 이 둘을 함께 초대해 식사를 하겠는가? 루카스가 뭐라 대답하려는 순간 전화벨이 울렸다. 그는 자신의 휴대전화를 확인하며 말했다. "잠시 실례할게요.” 그러고는 일어나서 나갔다. 마린은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소이연을 다시 돌아보며 말했다. "루카스 태도에 신경 쓰지 마. 사람들이랑 사귀는 걸 조금 어려워하긴 한데, 사람은 정말 좋아. 내가 전에 캐나다에서 어려운 일을 겪을 때 루카스가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줬어.” "나랑은 잘 맞지 않는 것 같아." 소이연은 더 이상 속마음을 숨기지 않고 직설적으로 말했다. "에이, 너한테만 그런 거 아니야." 마린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사실 루카스만 탓할 수도 없어. 너도 루카스 외모 봤잖아. 쟤를 좋아하는 여자들이 너무 많아. 어떤 여자들은 별의별 방법을 다 동원하기도 해. 심지어 어떤 여자는 루카스를 납치하기도 했었어. 그래서 쟤가 그때부터 여자를 피해.” 소이연은 조금 놀랐다. 어떤 여자가 납치까지 하는 미친 짓을 하는 걸까? "정말이야.” 마린은 다시 한번 말했다. "그러면 넌 나에게 저 사람을 소개하지 말았어야 했어.” "나도 그렇게 생각해......" 마린은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나는 너와 루카스가 잘 어울릴거라 생각했어.” 소이연은 마한의 말에 방금 마신 음료수를 내뿜을 뻔하였다. 마린이 언제부터 사랑의 큐피드가 된 거지?! "지난 몇 년 동안 네가 혼자 지내는 걸 보면서 남자친구를 소개해 줘야겠다고 생각했었어. 그런데 너랑 어울릴만한 남자가 없더라고. 작년에 루카스를 만났을 때, 너랑 루카스가 어울릴 거라 생각했어......”"남녀 관계는 함부로 하는 거 아니야. 난 네 호의를 잘 알지만, 저 사람이랑 난 정말 아니야. 그리고 보시다시피, 저 남자는 나한테 경계심이 너무 많아." 소이연은 재빨리 거절했다
소이연은 식당을 떠났다. 정말 화를 많이 참았다. 요 몇 년 동안 루카스처럼 이렇게 성격이 나쁜 사람은 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 그녀는 잠시 후 천우진한테 전화해서 데리러 오라고 했다. 1월의 서울은 아직 좀 추웠기에 소이연은 찬 바람이 부는 거리에 서서 천우진을 기다렸다. 생각하면 할수록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그녀는 평소 누군가에게 이렇게까지 화를 내는 사람이 아니었다. 심지어 소나은에게도 겉으로는 잘 대해 주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낯익은 차 한 대가 그녀 앞에 멈춰 섰다. 차에서 내린 천우진은 소이연이 추워서 벌벌 떨고 있는 것을 보고는 얼른 그녀를 품에 안고 조수석에 그녀를 태웠다. 소이연은 몸이 너무 추워 차에 앉아 계속 손을 비볐다. 오늘 행사장에 난방이 잘되어 있어 그녀는 옷을 얇게 입고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자신이 이렇게 얼어 죽을 것 같은 상황에 처할 것이라 상상도 하지 못했다. "왜 이렇게 빨리 끝났어요? 마린은요? 왜 혼자서 이 찬바람을 맞으면서 기다리고 있었던거예요?" 천우진은 의아하다는 듯 그녀에게 물었다. "마린 때문이 아니라 어떤 짜증 나는 사람을 만나서 밥도 못 먹고 먼저 일어났어요." 소이연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래요?" 천우진이 웃으며 말했다. "감히 이연 씨를 화나게 해서 입맛을 떨어뜨리는 사람도 있어요? 그 사람 꽤 능력 있는데요?” 천우진은 진심으로 웃으며 말했다.요 몇 년, 소이연이 다른 사람들에게 무관심했기에 감정이 동요되는 일이 없었다. 그런데 오늘 갑자기 어떤 사람에게 그녀가 관심을 보인 것이다. "제 평생 그 사람만큼 잘난 척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소이연은 지금도 화가 많이 나 있었다. "그만 얘기할래요. 더 이상 기분을 망치고 싶지 않아요.” "전 그 사람 괜찮은 것 같은데요.” 천우진은 말했다. 소이연이 미간을 좁히며 그를 바라보았다. "적어도 이연 씨를 사람같이 만들었잖아요.“천우진이 직접적으로 말했고, 소이연은 당황해 입을 앙
너무 당황한 소이연이 놀라 소리를 지르자 어설프게 몸에 감겨 있던 목욕 타월이 몸에서 툭 떨어졌다. 그렇게 그녀는 낯선 남자 앞에서 한 올도 걸치지 않은 채 서 있어 버리고 말았다. "악!" 소이연이 방금보다 더 크게 소리를 질렀다. 그녀는 이전에 다른 사람들에게 모함을 당해 평판이 좋지 않았던 적이 있었지만, 스스로 자처해서 이렇게 창피를 당한 적은 평생토록 없었다. 소이연의 외침에 루카스는 귀가 찢어질 것 같았다. 그는 힐끗 그녀를 쳐다보았다. 소이연도 그의 시선을 느꼈고 얼굴이 순식간에 빨갛게 달아올랐다. “뭘 보는 거예요!” "일부러 보여준 거 아닌가요?” 루카스는 시큰둥하게 물었다. "당, 당신! 눈 감아요, 감아!” "왜?” 루카스는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 소이연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안하무인한 이 남자 때문에 화가 나서 죽을 것 같았다. 그녀는 재빨리 바닥에 있는 목욕 타월을 주워 자신의 몸을 가렸다. 루카스는 그녀가 보이지 않는 듯 여전히 큰 침대에 담담하게 누워 있었다. 그는 그녀의 나체를 보고도 전혀 흥미가 없다는 듯 털끝만큼도 놀라지 않았다. 소이연은 수건으로 가슴을 가리고 욕실로 뛰어 들어갔다. 욕실 문이 ‘쾅’ 하고 닫혔고, 큰 소리가 방안에 울려 퍼졌다. 소이연은 세면대 앞에 몸을 기대어 앞에 놓인 큰 거울을 보았다. 거울 속 그녀의 눈동자는 붉어졌고, 너무 화가 난 나머지 가슴이 빠르게 아래위로 움직였다. 그녀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루카스가 어떻게 그녀의 방에 있는 것이지? 어떻게 저렇게 버젓이 그녀의 침대 위에서 잠을 자고 있지? 루카스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지 충분히 상상할 수 있었다. 소이연은 정말 화가 나서 죽을 것 같았다. 그녀는 지금까지 누군가를 이렇게 싫어한 적이 없었기에 그녀는 평생 그를 디시 볼 일이 없기만을 바랬다.왜 자신이 그를 육현경과 비슷하다고 착각했을까? 육현경과 그는 절대 같은 사람이 아니다. 육현경은 절대 이렇게 행동하지 않는다. 그녀가
"여기는 내 방이라고요!” 루카스가 문밖에서 마구마구 소리를 질렀다. "당신......” "내가 방금 데스크에 전화했는데, 데스크에서 우리 방을 착각했대요! 내 방은 999호, 당신 방은 666호예요! 데스크에서 당신한테 방 카드를 줄 때 내 방 카드를 줬다고요, 이제 이해가 되겠어요?” 루카스는 인내심을 잃고 짜증 난 목소리로 말했다. 소이연은 잠시 멍해졌다. 어떻게 이런 고급 호텔에서 이런 수준 낮은 실수를 할 수 있지? "알아들었으면 빨리 나와요." 루카스는 화가 나서 재촉했다. "더 이상 내 방에 있지 말고 나가요.” "누가 안 나가겠다고 했어요?!" 소이연도 참지 않고 같이 소리를 질렀다. 그녀는 더 이상 이 남자에게는 참을성을 나타내기 싫었다. "그럼 왜 안 나와요?!” "젠장....! 옷을 안 가지고 들어왔다고요!" 소이연은 욕설을 내뱉었다. 남자가 그녀의 입에서 욕설이 나오게 만들었다. 그녀가 욕실에 들어갈때, 입었던 옷을 소파에 아무렇게나 벗어 놓고 갈아입을 옷은 가지고 들어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목욕 타월 한 장으로 몸을 가린 채 루카스를 앞에 서 있기 싫었다. 그 오만한 남자에게 이런 모습을 보이고 싶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문 열어요!" 루카스는 다시 방문을 두드렸다. "옷이 없다고 했잖아요......”"이 망할 문을 안 여는데 내가 당신 옷을 어떻게 줘요!” 루카스는 화를 내며 말했다. 소이연은 다시 한번 입술을 깨물었다. 이 남자와 차분하게 대화하는 건 불가능할 것 같다. 소이연은 목욕 타월을 다시 자신의 몸에 단단히 고정시키고, 여러 번 확인한 후에야 드디어 욕실 문을 열었다. "뭘 그렇게 열심히 가려요, 볼 것도 없던데." 루카스는 문틈을 보며 어색한 말투로 말했다. "볼 것 없어도 당신이 볼지 안볼지 제가 어떻게 알아요!” “보긴 뭘 본다는 거예요? 내 눈 썩을 일 있어요?.” “루카스 씨!" 소이연은 짜증을 내며 말했다. "옷 줘요?” 루카스가 큰 소리로 물었다
사실 루카스가 그녀에게 관심이 없는 건 알고 있었다.방금 밖에서 실 오라기 하나도 안 걸치고 있었지만 그는 눈두덩이조차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하지만 그녀는 그가 스스로 잘났다고 생각하는 것에 화가나 복수를 하고 싶었다.그는 그녀가 계속 자신을 꼬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루카스는 소이연이 시끄럽게 하는 바람에 머리털이 곤두섰다.“좀 닥쳐!” 루카스는 이를 악물었다.소이연은 애초에 그의 말을 듣지 않았고, 그의 몸 아래에서 미친 듯이 움직이며 그를 밀어내려 하고 있었다.비록 보기에 그녀는 하나도 뚱뚱하지 않지만, 깔리니까 마치 쇳덩이같이 무거웠다.“계속 움직기만 해봐!” 루카스가 협박했다.“빨리 일어나기나 해. 이 변태 새끼야!” 소이연이 욕을 했다.그에게 받은 서러움을 결국 참지 못하고 전부 토해냈다.그러자 루카스의 눈빛이 갑자기 돌변하며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내가 변태라고?”분명히 무서운 눈빛이었다.소이연은 순간 긴장해 급히 그를 밀어내려 했다.입도 멈추지 않았다. “빨리 일어나...... 읍.”소이연의 눈이 커졌다.이 남자는 갑자기 그녀에게 뽀뽀를 했다.감히 그녀에게 뽀뽀를 하다니!! 그녀는 고민도 하지 않고 입을 벌려 이빨에 힘을 주었고, 그대로 그의 입술을 깨물었다.“아!”루카스는 바로 소이연에게서 떨어졌다.“너 미쳤어?” 루카스는 매섭게 그녀를 노려보았다.그는 손으로 자신의 입술을 만졌는데, 물린 곳에 피가 나고 있었다.“너야말로 미쳤지. 제 발로 온 여자는 싫다며? 근데 뽀뽀는 왜 해?!” 소이연은 말을 하면서 손으로 거세게 닦아내며 말했다. “더러워 죽겠네.”루카스의 눈에는 화가 가득했다.소이연이 그를 싫어하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왠지 모르게 좋지 않았다.“아직도 안 일어나?” 소이연은 소리를 질렀다.“조용히 해!” 루카스가 소이연에게 소리치고는 결국 그녀의 몸에서 내려왔다.내려가지 않았으면 이 여자는...이 여자는 위험할 걸 모르고 그를 꼬시는 걸까?그래도 다른 보통의 여자들보다는 훨씬
소이연은 진심으로 벌떡 일어나서 바로 루카스와 싸우고 싶었다.발가벗은 사람은 난데, 대체 왜 본인이 화를 내는 거야?!왜 손가락질까지 하면서 욕을 하냐고!“내가 여기에서 옷 갈아입고 있는 거 뻔히 알면서 들어오는 건 무슨 심보야?!” 소이연은 큰소리로 말했다. “내 몸에 관심이 있는 거지? 아닌 척은 왜 해!”“미친년!” 루카스는 화난 채로 소이연에게 욕을 했다.그리곤 소이연이 발가벗고 있든 말든, 그대로 그녀의 앞으로 가 언제 떨어졌는지 모를 그의 휴대폰을 줍더니 다시 나갔다.소이연은 화가 나서 몸이 덜덜 떨려왔다.어떻게 이렇게 악랄한 남자를 만날 수 있지.그녀는 화를 내며 옷을 입고, 더 이상 조금도 더 드러내지 않고 욕실을 나섰고, 루카스는 또 침대에 누워 휴대폰을 하고 있었다.소이연이 나오는 것을 보자, 그는 눈을 얇게 뜨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소이연 또한 아무 말도 안 했다.그녀는 그대로 방의 전화기를 들었다.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죠? 도대체 저는 어떤 방에 있는 거예요?!”“이연 씨세요?” 전화 너머 사람이 조심스럽게 물었다.“네.”“저희 999호실 앞에 있는데, 제가 설명드려도 괜찮으실까요?”소이연은 거세게 전화를 끊고 화가 나서 방문을 열었다.문 앞에는 4-5명이 서있었다.가장 앞에 있던 사람은 호텔 매니저였고, 그 뒤엔 직원 여러 명이 서 있었다.“들어오세요.”소이연은 뒤돌아 들어갔다.호텔 직원은 뒤를 따랐다.루카스는 여전히 침대에 누워있었는데, 그 모습이 마치 할아버지 같았다.“이연 씨 죄송합니다. 오늘 저희 프런트 데스크에서 체크인해드린 직원이 오늘 처음 온 친구였습니다.이연 씨의 666호실을 999호실 카드로 드렸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매니저는 허리를 90도로 굽혀 급히 사과했다.뒤에 있던 4명의 직원들도 급히 90도로 허리를 굽혔다.잘못을 저지른 그 직원도 매니저에 의해 앞으로 끌려와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또 몇 번이고 90도로 허리를 굽혔다.이때, 옆에
그러니까 이 말은 팩이 지금 루카스의 방에 있다는 뜻이다.그녀는 매일 저녁 팩을 하는 습관이 있다.이제 곧 29살인데, 관리를 안 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하지만 만약 그녀가 지금 가서 팩을 가져온다면, 루카스에게 무슨 말을 들을지 몰랐기에 차라리 안 가는 게 낫다.시간도 너무 늦어서 배달을 시킬 수도 없었다.그녀는 그대로 침대로 가 잠들었다.오늘 하루 종일 바빴던 탓에, 침대에 누우니 확실히 힘들었다.오늘 저녁에는 아마 멜라닌 같은 수면제를 먹지 않아도 될 정도였다. 그녀가 비몽사몽하며 막 잠에 들때, 갑자기 밖에서 들린 노크 소리에 놀라 벌떡 일어나 버리고 말았다.그녀는 정말 자연스럽게 스르륵 잠드는 것이 쉽지 않은 사람이다.근데 겨우 잠들었는데 도대체 누구인 것인가!소이연은 화를 내며 이불을 걷어 내고 일어났다. 머리는 엉망이였는데, 문을 여니 더 더욱 화가 났다.문 앞에 서있는 사람은 다름아닌 샤워 가운만 입고 있는 루카스였다.머리에서는 아직 물이 떨어지고 있었다.몸도 축축해 보였다.헐렁한 샤워 가운 사이로 그의 가슴이 보일 듯 말 듯했다.“오밤중에 이렇게 입고 뭐 하려고?!” 소이연은 퉁명스럽게 물었다.“이연 씨, 내가 좋은 마음으로 팩을 가져다주러 왔는데, 이런 태도로 나올 거야?!” 루카스는 손에 있던 팩을 그녀에게 건넸다.소이연은 입술을 만졌다.이제 보니, 방금 씻고 나오면서 그녀의 팩을 발견해서 가지고 온 건가?이렇게나 착하다고?!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그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대가 없는 친절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줘 말아? 싫으면 버린다?” 루카스는 소이연의 의심스럽다는 듯한 눈빛을 보니 또 심술이 났다.소이연은 루카스의 손에 들려 있던 팩을 홱 낚아채고 방문을 쾅 닫았다.“쾅” 하는 소리가 났다.그녀는 아주 화가 난 듯했고 루카스는 문에 부딪힐 뻔했다.루카스는 꾹 참고 다시 방으로 돌아갔고, 소이연도 다시 침대에 누웠다.망할 놈의 루카스, 전생에 도대체 누구의 원수였던
소이연은 그나마 두꺼운 옷으로 골랐다. 하지만 옷을 입어도 여전히 추웠기에 이따가 호텔을 나서면 천우진이랑 같이 가서 두꺼운 옷을 사야겠다고 다짐했다.그녀는 호텔 방문을 열고 나가 막 엘리베이터에 탔는데, 익숙한 실루엣이 보였다.정말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는 말이 사실인가!어떻게 어딜 가던 루카스를 만날 수가 있지?루카스도 그녀를 보곤 얼굴이 어두워져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말했다. “타이밍 한 번 끝내주네.”소이연은 대꾸도 하지 않았다.이렇게 교양 없는 남자랑은 한 마디도 섞고 싶지 않았다.엘리베이터가 내려가고, 중간에 잠시 멈췄는데, 갑자기 많은 사람들이 탔다.아마 아줌마 단체 여행객인 것 같았다.소이연은 조금 밀려났다.한 아줌마가 실수로 소이연을 밀쳤다.소이연은 그대로 뒤로 밀려나 루카스의 몸에 기댔다.더 생각할 것도 없었다. 루카스는 분명 알 수 없다는 듯, 한 마디 할 것이다.그녀는 마음의 준비를 했지만, 루카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그녀는 미간을 찌푸리며 루카스에게 떨어지려고 안간힘을 썼다.설마, 사람들 앞에서 루카스도 체면을 챙기는 건가?!그녀는 이 남자가 다른 사람의 눈에 자신이 어떻게 비칠지 생각 없이 사는 줄 알았다.엘리베이터 안.아줌마들이 너무 많아서 아주 시끄러워졌다.소이연은 몇 번이고 밀쳐났다.그녀는 이미 최대한으로 루카스와의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앞에 있는 아줌마가 계속 밀치는 바람에 무게를 견딜 수가 없었다.그녀가 뭐라 한 마디 하려던 그 순간, 머리 위에서 아주 불쾌한 목소리가 들렸다. “거기 어머니, 매너 좀 챙겨요. 엘리베이터 안에서 계속 시끄럽게 하시고 이게 뭡니까? 뒤로 밀지 말아 주시죠? 뒤에 있는 사람도 생각하셔야죠!”목소리는 아주 컸고, 예의도 없었다.말이 끝나기 무섭게 시끄럽던 엘리베이터는 순간 고요해졌다.루카스에게 한 마디 들은 아줌마는 고개를 돌려 루카스를 보았다. 확실히 표정이 좋지 않았다.“요즘 젊은이들은 진짜 예의가 하나도 없어. 어른들 존중할 줄도
“이연 언니가 왔다고?”오랜만에 들려온 소이연의 소식에 하지수는 흥분하며 답했다.“그럼 당연히 가야지, 오랫동안 못 봐서 안 그래도 궁금했는데. 육현경 씨랑 이연 언니가 나 엄청 많이 도와줘서 직접 만나서 감사 인사 하고 싶었어.”“계지원 씨 집에서 모이기로 했어. 예수진 씨 배도 점점 불러서 움직이기 힘드니까 그냥 거기서 보기로 했어.”“그래. 그럼 퇴근할 때 연락해. 나는 먼저 어머님이랑 아버님 생일파티 준비하고 있을게.”“응.”밥을 다 먹은 두 사람은 각자 알아서 집을 나섰고 하지수는 바로 송 씨 가문별장에 시어머니를 모시러 갔다.하지수가 안으로 들어가자 송승우가 소파에 덩그러니 앉아있는 게 보였다.그와 단둘이 만나는 건 아직 어색했기에 하지수도 입을 다물고 있었는데 그런 그녀를 한참이나 바라보던 송승우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엄마 모시러 온 거야?”“네.”“집에 계속 계시는 거예요?”“나갔으면 좋겠어?”헛웃음을 흘리며 묻는 송승우에 하지수가 다급히 해명했다.“아뇨, 그냥 전에는 계속 일로 바쁘셨던 분이 계시니까 물어본 거예요.”“전에는 연구과제 때문에 바빴는데 이제는 나 없이도 잘 돌아가서 한가해.”“아, 네.”고개를 끄덕이는 하지수를 보며 그녀가 저를 불편해하는 걸 느낀 송승우는 올라오려는 화를 참으며 물었다.“문수는?”“출근했어요.”“주말에도 출근해?”“요즘이 회사한테 중요한 시기라서 일요일만 쉬기로 했대요. 내일은 안나가요.”사실 송문수에게는 거의 휴일이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처리해야 할 일이 매일 산더미여서 그는 시간만 나면 사무실에 틀어박혀 있었다.“송문수 많이 변했네.”“송문수가 변해서 너도 걔를 다시 보게 된 거야?”냉소를 흘리며 묻는 송승우에 하지수가 고개를 저었다.“잘 모르겠어요. 감정이라는 게 원래 언제 생겼는지도 모르게 생기는 거잖아요.”감정이라는 건 애초에 기척 없이 생겨서는 헤어나오지 못할 정도로 한 사람을 옭아매는 것이다.하지수의 말로부터 그녀가 이제는 정말로 송문수를
“하지수, 변호사 일할 때는 똑똑하더니 연애에는 영 소질이 없나 봐?”자는 척하고 자신을 놀려먹은 건 송문수인데 오히려 바보라고 핀잔을 듣자 화가 난 하지수가 얼굴을 붉혔다.“네가 나한테 뽀뽀하는 게 좋으니까 계속하라고 가만히 있은 거잖아!”송문수가 언성을 높여 말해서야 이유를 알게 된 하지수는 당황스러운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고 그 표정에 어이가 없어진 송문수는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이렇게 바보 같아서 어떡해, 누가 너 팔아넘겨도 모르겠다.”“누가 누구한테 바보래. 내가 당신 마음을 읽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그런 생각인 줄 어떻게 알고...”말을 채 끝맺지도 못했는데 갑자기 입을 맞춰오며 진득한 키스를 이어나가는 송문수에 하지수는 눈을 크게 떴다.“아...”아까 자신이 한 건 그저 뽀뽀이지 이렇게 치열을 훑고 지나가는 키스는 아니었는데 입속 깊은 곳까지 뜨겁게 만드는 키스는 옆에서 핸드폰이 울리건 말건 오래도록 지속되었다.송문수도, 하지수도 그 벨 소리를 무시한 채 키스를 이어나가다 둘의 입술이 다 번들번들해질 때가 되어서야 송문수는 아쉬움을 뒤로한 채 하지수를 놓아주었다.송문수의 키스에 정신이 혼미해진 하지수는 나른한 눈빛으로 송문수를 보고 있었는데 핸드폰을 보던 송문수는 갑자기 욕설을 내뱉더니 서둘러 침대에서 내려가 욕실로 달려들어 갔다.그의 샤워 소리가 들릴 때에야 정신을 차린 하지수도 시간을 보자마자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부모님이 돌아가신 뒤 변호사 일을 시작하면서 누구보다 규칙적이고 자율적인 일상을 보내왔던 하지수였기에 그녀는 자신이 아주 이성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송문수를 만난 뒤부터 이성보다 감성이 앞서는 사람이 돼버린 것 같았다.그래서 그녀는 송문수가 만약 자신을 팔아넘겨도 그를 도와 돈을 세줄 것 같다는 그의 말에 어느 정도 동의를 하고 있었다.생리대부터 바꾸러 제 방으로 돌아간 하지수가 준비를 마치고 나오자 송문수도 옷을 갈아입은 채로 거실에서 통화를 하고 있었다.평소에는 7시에 일어나서 8시 정도면
말을 마친 하지수는 송문수가 그새 깨어난 지도 모르고 그의 품에 안겨 눈을 감았고 송문수는 다정한 눈을 한 채 떨리는 손으로 제 옆에 누운 하지수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이튿날 아침, 눈을 뜬 하지수는 방금 일어난 탓에 낯선 주위를 한참이나 둘러보고서야 여기가 송문수의 방임을 기억해냈다.관계 빼고는 별짓 다 한 어젯밤이 떠오른 하지수는 얼굴을 붉혔다.혼자 자는 게 습관 되어있어 송문수의 품에 안긴 뒤 빨리 뛰는 심장 때문에 뜬눈으로 밤을 새울 줄 알았는데 예상외로 그녀는 눈을 감자마자 잠에 빠져들었다.아마도 바쁜 일정 때문에 피곤했던 것 같다.완전히 정신을 차린 하지수는 고개를 돌려 아직도 곤히 자고 있는 송문수를 바라보았다.자고있는 그의 모습은 평소처럼 차갑지 않고 쫙 펴진 미간 덕분에 오히려 부드러워 보여 공격성이 다분하지도 않았다.왜 눈을 뜬 모습과 감은 모습이 이렇게 다를까 하는 의문을 가지고 송문수의 얼굴을 찬찬히 보던 하지수는 날카로운 그의 눈빛을 떠올렸다.전에는 그 눈빛이 마음속을 꿰뚫어 볼 것만 같아 두려웠었는데 지금의 하지수는 더 이상 잠들어있는 송문수도, 깨어있는 송문수도 두렵지는 않았다.한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깨어있는 송문수를 마주할 때는 하지수가 주동적으로 입을 맞출 수 없다는 것뿐이었다.하지만 잠들어있을 때는 그야말로 하지수 세상이었기에 그녀는 빠르게 송문수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한 번으로는 부족했는지 하지수는 그 뒤로도 여러 번 입을 맞추다가 누군가의 핸드폰이 울릴 때가 돼서야 행동을 멈추었다.물론 자의로 멈춘 건 아니고 입맞춤을 하던 와중에 눈을 떠버린 송문수 때문에 도둑이 제 발 저리듯 깜짝 놀라 잠시 멈칫한 것이었다.당황한 하지수는 빠르게 도망가려 했지만 자신을 눌러버린 송문수 때문에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분명 방금 눈을 떴는데 이상하게 송문수의 눈은 반짝반짝 빛이 나고 있었다.몽롱한 느낌은 전혀 없는 눈으로 그는 하지수를 빤히 바라보았고 그의 진득한 눈빛을 당해내지 못한 하지수는 서둘러 눈을 피했
“미안해 문수 씨... 평소엔 이때가 아니라서 나도 몰랐어...”“응.”이 일은 애초에 하지수의 잘못이 아니었기에 그녀를 탓할 수도 없었던 송문수는 하늘이 불공평하다고 한탄하며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하지수를 만나는 날만 기다리며 3년 동안 아무와도 관계를 하지 않았던 그인지라 오늘에서야 비로소 원하던 바를 이룰 수 있겠다고 기뻐했는데 예상치 못한 변수 때문에 또 일주일을 더 기다리게 된 이 상황에 송문수는 한숨만 푹푹 내쉬었다.한숨을 쉬는 송문수를 본 하지수는 그가 자신에게 실망한 줄로 알고 용기를 내어 말했다.“다음에 다시 할까?”하지수의 말에 잠시 멈칫하던 송문수는 이내 언성을 높이며 말했다.“그걸 말이라고 해? 생리 끝나면 당장 해.”자신한테 자꾸 일이 생겨버려 송문수가 다른 사람을 찾기라도 할까 봐 두려웠던 하지수는 확신에 찬 그의 대답을 듣자마자 웃음을 터뜨리며 청심환을 하나 먹고는 말했다.“그럼 편히 자, 난 내 방 가서 잘게.”“어디 간다는 거야?”“내 방 가야지.”“하지수, 네 발로 직접 내 방 찾아와 놓고 이제 돌아가겠다는 거야?”갑자기 터진 생리 때문에 관계를 못 가진 것도 화가 나는데 사람까지 가버리겠다는 말을 들은 송문수는 언짢은 티를 팍팍 내며 눈썹을 꿈틀거렸다.“나 생리 와서 어차피 못하잖아.”“그게 왜?”“아까 문수 씨도 생리 끝나면 하자고 했잖아. 지금 하는 건 나도 좀...”송문수가 되묻자 하지수는 아주 난감해하며 답했다.“하지수, 넌 날 대체 뭘로 보는 거야? 내가 아까 너 안 놔줬으면 여기 진작에 피바다 됐어.”“...”“관계까지 할 사이에 뭘 내외를 하고 그래. 앞으로는 나랑 같이 자.”“앞으로 쭉 같이 자자고? 나랑?”“왜, 싫어?”“아니.”당연히 싫진 않았지만 하지수는 그저 송문수가 관계도 없는 잠을 자신과 함께 자겠다는 게 신기했을 뿐이다.그렇게 순진해 보이는 사람은 아니었는데.“빨리 와서 자. 아까 너무 움직였더니 피곤해.”송문수가 먼저 침대 한쪽에 자리를 잡고 눕자 하
송문수의 입술이 하지수의 입술을 지나 그녀의 귓가에 닿을 때, 이런 식의 스킨십은 처음 해보는 하지수는 온몸이 떨려왔다.태어나서 딱 한 번, 송문수와 차에서 해본 게 전부인 그녀는 송문수의 유혹을 당해내지 못하고 서서히 그에게로 다가가 그의 목에 자신의 고개를 비볐다.그렇게 하지수를 안달 나게 하던 송문수는 그녀가 자신을 받아들였다는 걸 확신하고는 점차 행동을 대범하게 하기 시작했다.자연의 섭리인 것마냥 물 흐르듯 움직임을 이어나가던 송문수가 갑자기 멈췄을 때 하지수는 온몸이 뜨거워 나고 머리가 텅 빈 것 같았다.온몸이 나른해진 그녀는 송문수의 움직임에 몸을 맡길 수밖에 없었다.그렇게 한참 지나 송문수가 더는 움직이지 않을 때가 돼서야 정신을 차린 하지수가 그를 보며 물었다.“왜 그래?”제 아래에 누워있는 하지수를 보며 정말 이성을 잃을까 봐 걱정된 송문수는 마음을 가다듬으며 입을 다물고만 있었다.“문수 씨?”하지만 하지수는 아까는 그렇게 늑대처럼 달려들던 사람이 갑자기 말도 안 하고 거친 숨만 연신 내뱉는 게 이상했다.“문수 씨...”“지수야.”송문수가 한참 만에 입을 열자 그 숨결에 의해 뜨겁게 달궈진 피부에는 소름이 돋기까지 했다.곧 자신이 상상했던 일이 현실이 될 수 있었던 아주 아름다운 순간이었는데 다른 여자들한테는 다 곁을 내주면서 왜 자기 앞에서는 갑자기 멈추는 건지 하지수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본인이 여자로서의 매력이 떨어져서 송문수가 싫어하는 걸까 봐 자연스레 눈물이 흐르고 있었는데 송문수가 잔뜩 실망한 듯한 말투로 말했다.“너 생리 왔어.”“뭐?”송문수의 말에 깜짝 놀란 하지수는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하고 송문수를 빤히 바라보기만 했다.“속옷에 피 묻어있어, 아마 온 지 얼마 안 된 것 같아.”그제야 정신을 차린 하지수는 수치스러움에 빨개진 얼굴로 빠르게 몸을 일으켰다.이틀 뒤가 예정일인데 왜 갑자기 오늘 온 건지는 모르겠지만 하지수는 송문수의 얼굴을 제대로 보기가 민망해 침대에서 뛰어내리다가 하마터면 넘
송문수는 자신의 떨림을 선명히 느낄 수 있었다.그뿐만이 아니었다.하지수도 그의 몸 아래에서 떨리고 있었다.송문수는 이미 자신의 한계에 도달하고 있었다. 예전의 그라면 이미 마음이 가는 대로 몸을 맡겼을 것이다.그는 조심스럽게 지수에게 다가갔다.지수는 온몸이 긴장돼 있었고 두 손은 이불을 꼭 쥐고 있었다.그녀는 자신이 어떻게 송문수의 몸 아래에 있게 됐는지조차 생각이 나지 않았다. 단지 지금, 그의 숨결은 몹시 거칠고 심장 소리는 우뢰처럼 커진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녀는 어쩔 바를 몰라 했고 곧 무언가가 일어날 것만 같았다.그때, 송문수의 입술이 서서히 하지수의 입술에 와닿았다.송문수의 심장은 더욱 격렬히 뛰고 있었고 이불을 꼭 쥐고 있던 지수의 두 손에는 점점 더 힘이 들어가고 있었다.두 입술이 맞닿은 그 순간, 두 사람은 머리가 하얘졌다.둘만의 공간, 둘만 나누는 부드러운 촉감, 온몸으로 느끼는 서로의 떨림……이것이 진짜 입맞춤이었다.하지수의 뇌리에는 갑자기 전에 송문수의 차에서 나눴던 관계가 스쳐 지나갔다. 단지 관계를 위한 관계였을 뿐, 사실 그녀는 아무런 떨림도 느끼지 못했고 심지어 굴욕적이라는 생각까지도 들었었다.하지만 이번은 달랐다. 오히려 그녀가 리드하고 있었다.송문수가 조심스러워 망설이고 있을 때 그녀가 먼저 리드했다.그는 그녀의 유혹을 당해낼 수가 없었고 둘은 더더욱 서로를 탐하고 있었다.온 세상이 조용해지고 두 사람의 심장 소리만 들리고 있었다.두 사람은 얼마 동안 키스를 나눴는지 가늠조차 못 하고 있었다. 아주 길게 또 아주 짧게 느껴지는 건 왜일까?입술을 뗀 두 사람의 얼굴은 너 나 할 것 없이 빨갛게 달아오르고 있었다.이런 경험은 송문수도 처음이였다. 능수능란해야 마땅한 그는 지수와의 키스 후 고장 난 사람처럼 어쩔 바를 모르고 있었다. 그저 방금 전의 달콤하고도 아름다웠던 키스에 사로잡혀 그녀를 놓치고 싶지 않았고 그렇게 온 밤을 그녀와 보내고 싶었다.그는 또다시 그녀의 입술에 다가갔다.천천히
그는 너무 기뻐하다가 오히려 일을 망칠까 봐 조금 두려웠다.“그러면 오늘밤에 같이 자는 거 어때?” 하지수는 송문수를 바라보며 물었다.“푸!” 송문수는 너무 놀란 나머지 조금 전에 마시던 물을 내뿜었다.“싫으면 말고…” 송문수의 격한 반응에 지수는 실망을 감출 수 없었다.“그런 거 아니야.” 송문수는 다급히 해명했다.지수는 어리둥절해졌다. 바로 전에 문수가 분명히 아주 격렬한 반응을 보였기 때문이다.송문수는 연신 입을 닦으며 말을 덧붙였다.“너랑 같이 자는 게 절대 싫어서 그런 거 아니니까 오해하지 마.”“그럼 나 먼저 씻을게.” 하지수는 웃으며 말했다.“그래.”“네 방에서 잘까? 아니면 내 방?”“난 다 좋아.”“그러면 네 방에서 자자. 네 방이 더 크니까.”“그러자.”“나 씻을게.”“응.”“너도 빨리 씻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지수는 얼굴이 타오르듯 빨개졌다.무슨 의미인지 두 사람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송문수는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고 더 이상 자신의 마음을 감추기가 힘들었다.하지수가 먼저 방으로 들어갔다.송문수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크게 숨을 들이켰다.방금 잘못 들은 거 아니지?그는 곧 벌어질 일을 생각하니 너무 긴장되어 숨도 안 쉬어지고 물컵을 들고 있던 손도 떨릴 지경이였다.수도 없이 많은 여자를 만나봤던 그로서는 남녀관계에 대해서 모르는 것이 없었고 이런 경험이 처음일 리는 더더욱 없었다.하지만 그 상대가 하지수라니, 송문수는 머리가 하얘졌다.그는 남아있던 물을 한 모금에 다 마시고 나서 바로 방으로 돌아가 샤워하기 시작했다.오늘 밤이 지나면 둘 사이는 전혀 다른 관계가 되어 있을 것 같았다.송문수는 샤워를 마쳤다.평소라면 몇분이면 끝낼 샤워를 오늘에는 한번 또 한 번 반복해서 씻었다. 행여나 깨끗이 못 씻었을지 몇 번이나 더 씻은 후 겨우 욕실을 나와 침대에서 하지수를 기다리고 있었다.그는 지수가 이미 방에서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예상했으나 지수는 더 오래 걸렸다.아마도 그와 똑
하지수는 민망함에 얼굴이 더 붉어졌다.그녀는 송문수와의 관계가 어디까지 발전했는지 확신할 수 없었지만, 아직 아이를 가질 정도까지는 아닌 것이 분명했다.송문수도 민망해하며 말했다.“저희 둘 사이 일은 걱정하시지 마세요. 저희가 알아서 할게요.”“네가 아무 생각이 없어 보이니까 이러는 거야.” 송문수 어머니는 핀잔을 주었다.“네가 조금 더 잘했으면 지금쯤 애가 뛰어다니며 놀 나이가 됐을 거야.”“엄마! 그만 하세요.”문수는 더 이상 듣기 싫었다.“그래, 알았어. 근데 내가 다시 한번 강조하는 건데, 너 다시는 지수 같은 여자애 못만난다는거 기억해. 지수 놓치면 평생 후회하면서 혼자 살게 될 거라는걸.”“알겠어요, 알겠다고요.”송문수는 잔소리가 듣기 싫었지만, 어머니의 말에 반대는 하지 않았다.그 말을 옆에서 듣고 있던 송승우는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자리를 박차 거실을 나갔다.모든 사람의 눈길이 그에게로 향했다.송문수는 송승우가 왜 화가 났는지 잘 알고 있었다.그가 고개를 돌려보니 하지수도 송승우를 보고 있었다. 갑자기 벌어진 상황에 지수도 자신도 모르게 그쪽으로 눈길이 가게 된 것이었다.송문수의 시선을 느낀 그녀는 얼른 고개를 돌려 그와 눈을 마주쳤다. 그녀의 눈빛은 마치 송승우에 대한 마음은 일찌감치 접었음을 알려주는 것 같았다.송문수는 시선을 돌렸지만, 마음속으로는 내심 안도했다.하지수는 정말 송문수를 사랑하지 않는 걸까?송승우의 돌발행동에 사람들은 당황했지만 이에 대해 별다른 얘기는 하지 않았다.가장 많은 논의가 있었던 것은 역시나 아버지의 생일파티와 그들에게 아이를 낳는 것을 권유하는 것이었다.저녁 아홉 시, 송문수와 하지수는 집으로 돌아갔다.야근을 자주 하는 탓에 이렇게 일찍 귀가한 적은 처음이었다.예전에는 집으로 돌아오면 너무 피곤해서 샤워만 하고 각자 잠에 들었었다. 하지만 오늘은 너무 일찍 돌아온 탓에 오히려 분위기가 어색해졌다.언제부터인가 두 사람 사이의 기류는 점점 부자연스러워지고 있었다. 눈만 마주쳐도
송문수는 깍지를 끼고 있는 두 손을 바라보았다.심장은 더욱 빨리 뛰고 따뜻함은 배가 되고 있었다.그녀의 마음에 화답이라도 하듯 송문수 역시 더욱 세게 손을 잡았다.하지수의 입가에는 미소가 번졌고 두 사람은 손을 꼭 잡은 채로, 로비로 들어갔다.그곳에는 문수의 부모님이 기다리고 계셨다.문수의 형, 송승우도 앉아 있었다.둘이 손을 잡고 들어오는 모습을 본 승우의 눈에는 분노가 차올랐다.지금 도발하는 건가? 송문수와 하지수가 일부러 도발을?송문수의 부모님 역시 그들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알아채고 흐뭇하게 웃고 계셨다.이 얼마나 바라왔던 일인가.문수의 어머님은 두 사람을 반갑게 맞아주시며 말씀하셨다.“얼른 들어와, 지금 바로 저녁 준비하라고 할게.”“네, 엄마.”송문수는 하지수의 손을 꼭 잡은 채로 어머님의 말씀에 고개를 끄덕였다. 지수도 그런 문수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그녀는 누군가와 손을 잡는 게 이렇게도 설레는 일인지 처음 깨달은 듯싶었다.그들은 테이블에 둘러앉아 저녁을 먹기 시작했다.송문수와 하지수는 나란히 앉아 밥을 먹을 때에도 서로 눈길을 주고받으며 서로에 대한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그런 모습을 바라보는 부모님은 흐뭇하기 그지없었다.유독 송승우만 얼굴이 굳은 채로 한 술도 먹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도 그를 신경 쓰지 않았다.“너무 고생 많았어. 오늘은 특별히 너희가 좋아하는 반찬들을 준비했으니까 많이 먹어.”송문수 어머님은 반찬을 덜어주며 따뜻하게 말을 건넸다.송문수 아버님도 문수의 업무 얘기에 귀를 기울였다. 질문도 하시곤 하셨지만, 문수를 지지해 주시는 마음은 느낄 수 있었다.저녁 식사는 시끌시끌하였다. 송승우만 빼고 말이다. 먼저 말을 걸지 않으면 아무도 그에게 눈길을 주지 않는 혼자만 쓸쓸한 저녁 식사였다.식사가 끝난 후, 수다는 계속되었다. “곧 너의 아버님 환갑인데 난 시끌벅적 크게 보내고 싶은데 어때?”“좋아.” 송문수는 고개를 끄덕였다.“원하는 대로 해. 엄마랑 아빠가 기분 좋은 게 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