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 잘못 찾아온 것일까?아니야.지원이 아닐 거야.하지만.저 사람은 계지원이다.그는 예수진이 계지원을 향한 감정을 너무 잘 알고 있다. 사랑하기에 가슴 아파했던 것을 너무 잘 알고 있다.계지원을 그렇게 오랫동안 좋아했는데, 그렇게 오랫동안…그는 계지원과 비교할 수도 없었다. 그가 뭐라고!그는 눈앞이 희미해졌다.하지만 그는 떠나지 않았다. 그들에게 따지지도 않았다. 심지어 그들을 방해하지도 않았다.예수진이 주동적으로 계지원에게 키스하는 모습을 보고만 있었다.그렇게 그의 마음은 갈기갈기 찢어졌다.곁눈질로 예수진은 하도경이 굳은 채 문 앞에 서있는 것을 보았다.그가 지금 얼마나 힘들지, 그녀는 짐작할 수 있었다.그녀는 심지어 그가 방문을 열고 들어와서 그녀의 뺨을 때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하지만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단지 굳은 채 서있을 뿐, 고통스럽게 서있을 뿐이었다.예수진의 눈빛은 흔들렸다.그녀는 눈을 감았다. 눈가에 흐르는 눈물을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그녀는 계지원에게 키스를 더욱 깊게 했다.단지 닿기만 했던 입술은, 이 순간, 그녀가 주동적으로 딥 키스를 했다…계지원은 가슴이 떨렸다.입술만 닿아도 미친 듯이 가슴이 떨렸는데, 지금, 이 상황은…그는 여전히 가만히 있었다.또한 어떠한 반응을 해서도 안 된다.그가 다른 사람에 의해 거칠게 잡아당겨지기 전까지.닿았던 입술은 그제야 떨어졌고…그는 그제야 이성을 조금 찾은 듯했다.“퍽!”하도경은 주먹으로 계지원의 얼굴을 거칠게 때렸다.계지원은 그 어떤 반항도 하지 않았다.설사 얼굴 한쪽이 부었어도.그저 하도경을 바라보고만 있었다.그의 눈은 붉어졌고, 분노한 나머지 그를 죽이고 싶은 마음이었다.하지만, 결국 그렇게 하지 못했다.하도경은 주먹을 쥔 채 떨고 있었다.그는 계지원에게 분노를 쏟아냈다. “계지원, 예수진은 내 여자 친구야!”계지원은 입술을 꼭 다문 채, 침묵을 지켰다.예수진은 그에게 아무 얘기도 하지 말라고 했기 때문이다.예수진 자신이
”난 나 자신을 속일 수가 없어.” 예수진은 단호하게 얘기했다.“자신을 속일 수가 없다고…” 하도경은 웃었다.허탈하게 웃었다.“지금까지, 넌 나와 함께 있는 것이, 너 자신을 속이는 일이었어? 너의 그 웃음도 모두 거짓이었어? 나를 사랑한다고 얘기한 것이, 모두 나를 속인 것이었어?” 하도경이 물었다.그녀에게 물으면서, 그는 눈물을 흘렸다.너무 가슴이 아팠다.예수진이 주도적으로 계지원에게 다가가는 것을 보는 것보다 더 가슴이 아팠다.가진 후, 다시 버려지는 슬픔은, 너무 힘들었다.“미안해.” 예수진은 더 이상 변명하지 않았다.한마디 사과로, 모든 것이 설명되었다.하도경은 웃었다.웃으면서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다.그는 하느님께서 드디어 알아봐 주셔서 그의 소원을 들어주셨다고 생각했었다.그는 마음속으로 예수진의 가정에 변고가 생긴 것으로 인해 자신에게 기회가 생겼다고 좋아했었다.역시 그는 너무 나빴을까?그래서 하느님께서 이를 아시고 다시 그 기회를 가져가는 것인가?“계지원은 너와 다시 사귀어준대?” 하도경이 예수진에게 물었다.예수진은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그녀는 어떻게 얘기해야 할지 몰랐다.왜냐하면, 그녀는 계지원과 사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계지원도 그녀와 사귀지 않을 것이다.그녀가 지금 대답하면, 하도경은 그녀의 거짓말을 금방 눈치챌 것이다.계지원도 그녀와 함께 계속 하도경을 속이진 않을 것이다.오늘, 이미 한도를 많이 넘었다.“그래, 우리 사귀기로 했어.” 계지원이 말했다.예수진은 뭐라고 해야 할지 몰라서 망설이고 있을 때, 계지원이 대신 얘기했다.하도경은 머리 돌려 계지원을 바라보았다.“계지원, 난 지금까지 너를 제일 좋은 친구로 생각했어. 나와, 너, 그리고, 현경, 문수, 우리 네 사람, 어떤 큰 고난이 닥쳐도, 난 절대 우리 사이 감정은 상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어. 그런데 내가 잘 못 생각한 거니? 그런… 거야? 내가 정말 너를 미워해도 되는 거야?” 하도경은 절망하면서 얘기했다.“미안해
얼마나 지났을까? 알 수가 없었다.예수진이 머리 들어 바라보니, 거실에 있는 시계는 이미 새벽 1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이미, 다음 날이 되었다.그녀는 머리 돌려 계지원을 바라보았다.묵묵히 그녀 옆에서, 아무 얘기도 하지 않고 그녀의 옆을 지키고 있는 그를 바라보았다.그의 얼굴에는, 하도경에게 맞아 멍들고 부은 주먹 자국이 생겼다.보기 너무 안쓰러웠다.“병원 가야 해?” 예수진이 물었다.계지원은 잠시 멈칫하다가, 그제야 정신이 돌아왔다. 예수진은 그의 얼굴에 난 상처에 관해 묻는 것이다.“됐어, 며칠 지나면 괜찮아 질 거야.”“고마워.” 예수진은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다시 한번 고맙다고 얘기했다.계지원은 살짝 입술을 오므렸다가, 입을 열고 말하려는 순간, 예수진은 그를 보면서 조용하게 얘기했다. “이 은혜를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 “그럴 필요 없어.”“하지만, 나 때문에 두 사람 사이 우정이 깨졌는데.”“괜찮아.”지금은 화가 나서 한 얘기일 뿐이다.그와 하도경의 우정은 그렇게 쉽게 깨지지 않는다.“하긴, 내가 도울 것이 뭐가 있다고, 보답할 수 있겠어.” 예수진은 중얼거렸다. “돈, 권력, 난 아무것도 없어. 난 너에게 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수진…”“나를 주면 돼?” 예수진은 갑자기 계지원에게 물었다.계지원은 당황했다.“연예계는 암묵적으로 다 그러지 않나? 배역을 따내기 위해서, 몸으로 배역을 받아오고, 넌 인기가 많으니, 이런 거래를 많이 하지 않아? 그러고 보니, 네 덕으로 대박 난 여배우는 적지 않네.” 예수진은 아무렇지 않게 얘기했다.“난 그런 적이 없어.” 계지원은 부인했다.예수진은 웃었다.이것은 정정당당한 거래가 아닌데, 누가 그것을 인정하겠는가?심지어, 계지원은 그녀를 눈에 차 하지 않고 있지 않은가?그녀가 방금 주동적으로 키스했지만, 계지원이 반응하지 않았다.조금도.사실 그는 그녀와 함께 키스해도 되지만, 그는 가만히 있었다.하여 그는 그런 핑계로 그녀를 거절한 것
다음 날.예수진은 몸을 움직였다.몽롱한 정신으로 돌아누웠다.옆엔, 비어 있었다.그녀가 눈을 뜨고 옆을 보니, 이부자리는 이미 차가워져 있었다.예수진은 처량하게 웃고 말았다.어차피 예상했던 결과이다.그녀는 겨우 몸을 일으켜 침대에서 일어났다. 이불이 바닥에 떨어졌고, 그녀는 자기 몸에 퍼렇게 멍든 흔적을 보게 되었다.만약 이 흔적이 아니었다면, 그녀는 어젯밤 일을 환각으로 생각했을 것이다.평소와 완전히 다른 어젯밤의 계지원은, 그녀의 자극으로 인해 그런 것이다.그녀는 이불을 걷고, 바닥에 널브러진 옷을 정리한 후, 욕실로 가서 샤워했다.온몸이 아팠다.단지 소설이나 TV에서 과장했을 거로 전에 생각했었다.샤워를 마친 그녀는, 머리를 드라이한 후, 깨끗한 잠옷으로 갈아입었다.침대를 정리하면서, 그녀는 침대 시트에 묻은 핏자국을 보았다.결국엔, 이렇게 초야를 치르게 되었다.괜찮은 듯했다.아니면 늘 염려했을 테니.그녀는 바로 침대 시트를 바꿨다. 그리고 방에서 나가려던 순간, 침대 머리맡에 있는 쪽지를 발견했다.예수진이 보니, 계지원이 남긴 메모였다. “내가 올 때까지 기다려. 계지원.”마음속엔, 뭐라 얘기하기 힘든 감정이 생겼다.계지원이 이렇게 일찍 떠난 이유를 그녀는 모르고 있었다.그녀는 먼저 마음을 가다듬고 생각을 정리해야 했다.그리고, 그녀에게 자기의 결정을 얘기할 참인가?예수진은 그 메모지를 쓰레기통에 버리고, 아무렇지 않은 듯, 계속해서 자기 할 일을 하고 있었다.…계지원이 나갈 땐, 아침 7시였다.그는 촬영이 있어서 일찍 촬영장으로 갔다.어제 그는 촬영을 잠시 접고 왔었기에, 촬영이 많이 밀려 있었다.오늘에는 조금 외진 곳에서 촬영해야 하기에, 아침 일찍 나가야 했다.6시에 가기로 했지만, 그는 예수진과 헤어지는 것이 아쉬웠다.그녀가 자기 품에서 달콤하게 자는 것을 보니, 정말로 그대로 두고 나가기 싫었다.그는 그녀의 이마에 키스했다.그녀는 아주 달콤하게 자고 있었다.그는 더 대범하게 그녀의 입
하지만 지금은 이렇게 느긋하게 대처하다니?그리고, 여긴 또 어디지?감독님의 새로 장만한 집은 여기 아닌데?어시스턴트는 더 물을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재빨리 차에 올라탔다. 가면서 그에게 촬영 스케줄에 관해 설명하고, 금일 촬영 배정에 관해서도 설명했다…“넌 오늘 나와 같이 촬영장에 가지 않아도 돼. 조금 있다가 넌 차에서 내려.“계지원이 그의 얘기를 끊고, 얘기했다. “구체적인 일정 관련 자료를 나한테 주면 돼.”어시스턴트는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설마, 그를 해고하려고 하는 건 아니겠지?계지원은 작은 끈을 그에게 건네주면서 얘기했다. “이 끈 길이대로 가서 반지를 사. 디자인은 백화점에 가서 사진 찍어 나한테 보여주고.”어시스턴트는 눈이 휘둥그레졌다.이건 무슨 뜻인가?“그리고 꽃다발도 주문하고. 9999송이 장미. 제일 신선한 꽃으로.”그렇다면, 프러포즈하려는 건가?이건 너무 빠르잖아?감독님은 여자 친구도 없으신데, 결혼부터 하신다고?그는 늘 생각했었다. 감독님 성격에 결혼하지 않고 외롭게 사실 거라고.그는 어떤 여자에게도 관심을 주는 것을 보지 못했다. 예수진을 제외하고.하지만 예수진은 그를 사랑하지 않는데!감독님께서 갑자기 생각을 바꾸신 건가? 아니면 동성에게 관심이?“오늘 스케줄을 보니, 내가 돌아올 땐 시간이 맞이 늦을 것 같아. 내 전화 잘 받고.” 계지원은 또 당부했다.“네, 알겠습니다.”어시스턴트는 머리를 끄덕였다.계지원은 가는 길에 어시스턴트를 길가에 내려주고, 촬영장에 갔다.이 영화는 국제영화제에 진출할 영화이기에, 스케줄은 빡빡했다. 하여 조금도 지체해서는 안 되었다.온 정력을 다해 촬영했고, 촬영을 끝내니, 이미 밤 10시가 되었다.촬영장에 있던 직원들은 모두 촬영장에서 해물전골을 먹었다. 날씨가 너무 추웠기에, 그들은 따뜻한 전골을 먹으면서 추위를 달랠 생각이었다.“감독님은 안 드세요?” 그들 중 한 직원이 물었다.“난 일이 있어서 가야 해요.”“오늘 저녁에 집에 가시게요? 내일 아
밤 12시.계지원은 예수진에게 돌아오지 않았다.사실, 이미 답은 명확했다.하지만, 그녀는 그래도 계지원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오늘 올 거야?”메시지는, 감감무소식이다.다음 날 아침.예수진은 가연에게 전화했다.하도경이 준 집에 이사한 후, 가연은 그 집에 살지 않고, 계속 일을 나갔다. 아마, 그녀가 자기를 싫어하는 것을 알고 떠난 것 같았다.떠난 지 몇 달이 지났고, 두 사람은 연락하지 않았다.그녀는 가연과 얽히고 싶어 하지 않았고, 가연 역시 그녀를 만날 면목이 없어 하는 듯했다.그녀는 처음으로 가연에게 먼저 전화했다. 그녀는 가연이 살짝 떨고 있는 것을 느꼈다. “수진?”믿기지 않는 듯 예수진의 이름을 불렀다.“그래요, 난 그저 장안 시를 떠날 거라는 얘기를 전해주려고 전화했어요.” 예수진은 차분하게 얘기했다.그녀도 왜 가연에게 그런 얘기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아마 그녀가 이 세상에 남은 수진의 유일한 가족이라서 일 수도.가연은 조금 놀랐다. 그녀는 감격해하며 물었다. “왜? 무슨 일이 있어? 너 하도경과 무슨 일이 있는 거니?”“나 하도경과 헤어졌어요. 내 일은 당신이 물어볼 자격이 없어요.” 예수진은 냉정했다.갑자기 침묵이 흘렀다.예수진은 입술을 깨물었다.그녀는 가연이 상처받은 것을 눈치챘다. 하지만 그녀는 진심으로 가연을 대할 수가 없었다. 그녀에게 부드럽게 얘기할 수가 없었다.“장혁은 현재 강제적으로 끌려가 마약을 끊는 중입니다. 아마 3년은 나타나지 않을 겁니다.” 예수진은 계속해서 냉정하게 얘기했다.장혁은 가연의 남편이다. 그 후에, 하도경은 예수진을 그 집에서 이사하게 한 후, 사람을 시켜 장혁을 가두게 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녀들에게 더 이상 피해가 가지 않게.하지만, 마약을 끊는 건, 3~5년이면 충분하다. 표현이 좋으면, 그 전에 감옥에서 나올 수도 있다.“당신이 장안 시에 계속 있고 싶으면, 난 반대 안 해요. 하지만 나와 함께 떠날 생각이면, 주민등록증 번호를 보내줘요. 티켓
조용한 식탁.갑자기, 육현경의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그는 전화를 보고, 안색이 살짝 변하면서 전화 받았다. “할아버지.”소이연은 살짝 눈동자가 흔들렸고, 계속해서 아침 식사를 했다.어차피, 그녀가 듣지 말아야 할 얘기면, 육현경이 알아서 자리를 피할 것이기 때문이다.매번 심아윤 전화를 받을 때처럼.“뭐라고요?” 육현경은 조금 당황해하는 기색은 눈으로 볼 수 있었다.소이연은 무슨 일이 생겼는지는 몰랐다. 무슨 일로 육현경에게 이런 감정 기복이 생겼는지 알 수가 없었다.그녀는 그의 손이 떠는 것을 볼 수 있었다.눈가에도 당황한 기색이 흘렀고, 눈가에 눈물도 맺혔다.“네, 알았습니다.” 육현경은 번호를 눌렀다.전화를 놓는 순간, 멍하니 그 자리에 주저앉아서 한참 동안 아무 반응도 없었다.“무슨 일이 생겼어?” 소이연은 결국 물었다.무슨 일이기에 육현경이 이렇게 힘들어하지?“계지원… 차 사고가 났대.” 육현경이 얘기했다.목소리는, 힘들게 감정을 억제하면서 얘기했다.소이연은 가슴이 철렁했다.육현경의 표정을 보아하니, 사고가 크게 난 모양이다.“어젯밤 11쯤, 산에서 굴러 떨어졌대. 90도로 경사진 산비탈이야. 전에 네가 당했던 사고와는 차원이 다른 사고야. 오늘 새벽 5시가 다 되어서 구조되었다고 해. 지금은 병원 응급실에 있고, 생사는 아직 확인이 안 된대.” 육현경은 흐느끼고 있었고, 감정을 억제하고 있었다.소이연은 긴장한 나머지, 한 마디도 말할 수가 없었다.뭐라고 얘기할지 몰랐다.“내가 다녀와야겠어.” 육현경이 얘기했다.소이연이 머리를 끄덕였다. “나도 함께 가고 싶어…”“넌 잠시 여기에 있어. 여기가 장안 시보다 안전해.” 육현경의 태도는 단호했다.소이연은 입술을 깨물었다. 결국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이때, 그는 육현경과 더 이상 실랑이를 벌이고 싶지 않았다.“최대한 빨리 돌아올게.”“괜찮아, 나 혼자 여기서 편해.” 소이연은 사실대로 얘기했다.그녀 역시 자기 때문에 육현경이 계지원 일에 소홀히
하루가 지났다.뉴스채널에는 여전히 계지원의 교통사고에 대한 뉴스 보도가 없다.소이연은 참지 못하고 여전히 육현경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계지원은 어때?"건너편에서 답이 없다.몇 분 후, 심아윤은 카톡 전화를 걸었다.그들은 서로 연락처가 없기 때문이다.소이연은 망설이다가 결국 통화를 눌렀다."소이연, 현경은 지금 너무 바빠서 답장하기 애매하거든, 나보고 전달해 달라고 했어."심아윤은 피곤한 듯한 목소리였다.그러니까.심아윤이 지금 육현경이랑 같이 돌아간 거야?게다가 하룻밤 같이 있어 줬다고?"계지원은 지금 어떻게 됐어?"소이연은 담담하게 묻는다.그녀에겐 계지원의 부상 상태가 더 중요하다."어제 오후 수술실에서 나와 지금까지 혼수상태야. 의사 말씀은 식물인간이 될 가능성이 크지만 그래도 희망은 있대. 육현경이 지금 국외 전문가팀을 연락해서 장안으로 데려왔어. 방금 도착했는데 전문가들이 진료하러 갔어. 육현경이랑 같이 갔을 거야. 그리고 나서 구체적인 의료방안도 검토해야 해.""상황 많이 안 좋아?"소이연은 긴장되었다."아주 안 좋아."심아연은 솔직하게 대답했다. "수술할 때 심정지가 두 번 있었어. 겨우 살려냈는데 여태껏 혼수상태이고 게다가 혈압도 낮아. 상세한 상황은 나도 잘 모르지만 내가 보기엔... 걔가 어떻게 될지는 말하기가 어려워. 전문가들의 최종 진단 결과를 기다려 봐야지. 걱정 마. 소식 있으면 너한테 바로 연락해 줄게.""고마워. ""고맙긴. "두 사람 서로 인사를 나누며 소이연은 전화를 끊었다.계지원의 상황이 이 정도로 엉망인 줄은 정말 생각지도 않았다.또 이틀이 지났다.이틀 동안 심아윤은 수시로 그녀에게 계지원의 상황을 메시지로 전달해 줬다.소이연은 그녀가 정말로 호의인지, 아니면 육현경을 방해하는 걸 싫어하는지 어쨌든 계지원의 상황을 가장 먼저 알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들한테 별 기대는 하지 않는다.저녁.소이연이 잠자리에 들 준비를 한다.육현경의 전화가 걸려 왔다.사흘 동안 그녀
그리고는 간호사 하나가 걸어 나오며 말했다.“소이연 씨 보호자 계세요?”“네!”“아기 나왔습니다. 3.15킬로...”“산모는요?”간호사의 말에 우렁차게 대답한 육현경은 아이는 신경도 안 쓰고 소이연의 상태부터 물었다.“산모분은 아주 건강하십니다. 지금 선생님께서 상처 처리하고 계시니까 곧 나오실 겁니다.”“아빠 맞으시죠? 아이 한 번 안아보실래요?”그제야 안도한 육현경이 아이를 안아 들자 친구들이 우르르 몰려오며 한마디씩 하기 시작했다.“어머, 어쩜 이렇게 하얗지? 내가 본 아기들 중에 제일 예쁜 것 같아.”“지금 네 아들은 못생겼다는 소리야?”“솔직히 말하면 좀 못생기긴 했어.”하도경의 시비에 예수진이 너무 솔직히 답하자 계지원이 그게 사실인 걸 알면서도 자기 아들 외모를 저렇게 평가하는 게 썩 기분 좋지는 않았는지 헛기침을 해댔다.“나도 안아볼래.”예수진의 말에 육현경은 바로 아이를 넘겨주었다.“우리 공주님, 너무 귀엽다. 왜 하필 혈연관계인 거야!”피가 섞인 남매라서 자기 아들과 맺어줄 수 없다고 안타까워하는 예수진에 하지수도 궁금해서 다가가 보았다.“나도 봐봐.”가까이에서 보니 정말 떡잎부터 남다른 예쁜 아이였다.장차 아주 예쁘게 클 것 같아서 하지수는 아이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물었다.“딸이야?”“딱 보면 딸이지, 이 얼굴이 남자일 리는 없잖아.”간호사가 대답하려던 그때 분만실 분이 또 한 번 열리고 소이연이 휠체어를 타고 나오자 육현경은 다급히 달려가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며 말했다.“고생했어.”“이제 돌아가서 쉬자. 우리 이제 아이는 그만 가지자.”소이연이 고생하는 게 마음 아팠던 육현경은 잔뜩 굳은 얼굴로 간호사에게서 휠체어를 받아 병실로 향했다.친구들도 그런 육현경을 따라 병실로 향하고 있었는데 성큼성큼 걷던 하지수가 휑한 옆자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송문수가 아직도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왜 움직이지 않는지 의아해진 하지수가 그를 바라보자 송문수가 그녀와 시선을 맞추며 입꼬리를 올려 보였다.
“뭐라고요?!”놀란 예수진이 언성을 높이자 육현경도 표정을 굳히고 소이연을 바라보았다.늘 소리소문없이 일을 처리하던 육현경은 이번에도 다들 벙쪄있는 틈을 타 소이연을 안고 밖으로 나갔다.예수진도 그 뒤를 따라 나가려 하자 계지원이 그녀를 잡아 세웠다.“수진아, 오늘 이 자리 우리가 만든 거야.”“그래도 갈 거야. 당신은 엄마랑 현경 오빠 어머님한테 손님들 좀 부탁한다고 전해줘. 난 언니한테 가봐야겠어.”예수진을 말릴 수 없다고 생각한 계지원도 잠시 고민하다가 그녀의 뒤를 따라 나가자 상황이 심상치 않게 흘러감을 눈치챈 송문수와 하지수도 아쉬운 듯 서로에게서 떨어졌다.“키스 다 했으면 빨리 병원 가. 이연 씨 출산한대.”출산이라는 말에 하지수도 다급히 뒤 따르려 하자 송문수가 그녀를 잡으며 말했다.“천천히 가. 그래도 안 늦어.”그렇게 몇 분도 안 된 사이에 많은 사람들이 파티장을 빠져나갔다.예수진이 둘째를 위해 연 백일잔치는 사라진 엄마 아빠 때문에 아이 혼자 남겨진 채로 끝이 나버렸다.그들이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양수가 터진 소이연이 분만실로 옮겨진 뒤였다.상황이 많이 급박한지 늘 침착함을 유지하던 육현경조차도 많이 초조해 보였다.아까부터 입구에서 서성이는 육현경을 보다 못한 예수진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오빠, 가만히 좀 있어 봐. 지금 다들 긴장하고 있는데 오빠 때문에 더 진정할 수가 없잖아.”직설적인 그녀의 말에 육현경이 예수진을 보자 계지원이 다급히 나서며 분위기를 풀었다.“아무 일 없을 테니까 걱정 마. 수진이도 그때 오래 걸렸잖아. 낳으면 된 거지 뭐.”말은 그렇게 해도 사실 계지원도 육현경 못지않게 초조해했었다.당장이라도 분만실로 뛰어 들어가 예수진 대신 아이를 낳아주고 싶어 했었다.그런데 그때, 분만실에서 소이연의 고통스러운 비명소리가 흘러나왔다.주먹을 쥐고 있던 육현경의 손이 점점 하얗게 질려감에 따라 지켜보던 친구들의 긴장감도 고조되고 있었다.다들 긴장하고 있는 와중에 송문수가 갑자기 하지수의 손
“임신 때문에 살쪄서 그런 거야. 문수 씨 탓 아니야.”하지수가 당황한 송문수를 달래주자 그는 벙찐 표정으로 물었다.“그럼 어떡하지?”“살 빼고 나서 다시 끼지 뭐.”“그래.”하지수에게 반지를 직접 끼워주는 건 송문수가 꿈에서도 그리던 장면이었는데 예상치 못한 이유로 못하게 되는 그는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하지수가 자신과 결혼만 해준다면 앞으로의 날은 길 것이기에 송문수는 그만 몸을 일으켰다.그런데 그가 일어서자마자 사람들이 소리높이 외치기 시작했다.“키스해! 키스해!”갑작스러운 호응에 하지수의 얼굴이 빨개지자 송문수는 그녀가 난처해지지 않게 당분간은 자신의 욕구를 억누르기로 했다.사실 그날 밤, 하지수와의 잠자리는 송문수에게 많은 미련을 남겨주었다.잠을 자다가도 쉴 새 없이 흥분해서 밤에 속옷을 몇 번이나 씻기도 했었다.그렇게 그녀를 원했어도 자리가 자리인 만큼 송문수는 하지수의 손을 잡고 내려가려 했는데 그 순간, 하지수의 입술이 송문수에게 닿아왔다.그녀가 먼저 한 입맞춤은 송문수의 심장을 뒤흔들기 충분했다.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입맞춤을 당한 송문수가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갈팡질팡하고 있는데 그때 하도경의 장난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뽀뽀 한 번에 바보 된 거야?”“...”그 말에 욱한 송문수였지만 여자친구도 없는 친구를 위해 한번은 참아주기로 했다.“신경 쓰지 마. 우리 내려갈...”그런데 그때, 하지수가 또다시 입을 맞춰왔다.하지만 이번에는 아까처럼 닿았다가 금방 떨어지는 입맞춤이 아니라 오래도록 이어지는 키스였다.작은 그녀의 혀가 불규칙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하자 송문수의 몸은 그대로 굳어버렸고 그의 심장박동 또한 정직하게 빨라졌다.정말 자신을 죽이려 드는 하지수에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송문수는 하지수의 뒤통수를 손으로 잡고 키스를 이어가기 시작했다.임신을 해도 작기만 한 체구의 하지수는 금방 송문수에게 주동권을 뺏겨버렸다.두 사람의 행복을 빌어주기라도 하듯 무대 위로 장미꽃잎이 흩날리고
다들 숨을 죽이고 송문수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하지수의 눈엔 눈물이 가득해서 눈을 조금만 깜빡여도 쏟아질 정도였지만 그녀 역시 온 힘을 다해 참아내고 있었다.송문수는 그 정적 속에서 입술을 말아 물며 많은 고민을 거쳐 마침내 입을 열었다.“결혼하자.”그 대답이 들리기까지의 몇 분이 하객들에게는 한 세기만큼 길게 느껴졌다.송문수의 말이 끝나자마자 하지수도 기쁨의 눈물을 왈칵 쏟아냈고 송문수는 그런 그녀를 향해 한 번 더 소리높이 외쳤다.“하지수, 결혼하자. 너랑 결혼하는 게 내 평생의 소원이었어. 나중에 후회하더라도, 네가 지금 충동적으로 결정한 거라 해도 넌 이제 평생 내 여자야. 다시는 너 다른 남자한테 안 보내. 아주 박력 넘치는 남자가 될 거라고.”“난 후회 안 해.”송문수와의 결혼을 하지수가 후회할 리는 없었다.그때 예수진이 무대 위로 올라가자 송문수는 그제야 이 자리의 주인공이 예수진이었다는 걸 깨닫고는 다급히 하지수를 데리고 내려가려 했다.그런데 그때 예수진이 빨간 보석함 하나를 송문수에게 보여주었다.“이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는 알지?”그 안에 들어있는 건 송문수가 하지수를 위해 준비한 프러포즈 반지였다.익숙한 상자가 등장하는 순간부터 그 사실을 기억해낸 송문수였다.송문수는 하지수에게 가장 특별한 반지를 만들어주기 위해 세계적인 디자이너까지 초빙하며 큰 공을 들였었다.“이제 네가 가져.”예수진이 그것을 송문수에게 건네주자 그는 떨리는 손으로 받아들고는 천천히 보석함을 열어보았다.반짝이는 5캐럿의 다이아몬드가 마침내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게 된 것이다.눈이 멀어버릴 정도로 반짝이는 반지를 집어 든 송문수는 하지수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자신이 상상해왔던 화면이 눈 앞에 펼쳐지자 하지수는 감격의 눈물을 흘렸는데 송문수 역시 눈가가 촉촉해진 채로 목멘 소리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지수야.”송문수의 부름에 하지수는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예전에는 내가 진짜 나쁜 놈이었어. 맹세할게, 앞으로는 진짜 좋
그런데 하지수가 이런 마음을 전하기도 전에 송문수가 그 먼 타지로 떠나버린 것이다.그래도, 송문수가 정말 자신을 싫어한다 해도, 정말 자신과 헤어지고 싶어 한다 해도 송승우와 함께하지 않겠다는 하지수의 마음은 한 번도 변한 적이 없었다.물론 자신을 쉽게 포기하는 송문수에 잠깐 실망도 했었다.그러면서 송문수에게 자신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예수진과 소이연이 저 영상을 보여주지 않았더라면, 그들이 송문수가 준비해온 모든 것들을 알려주지 않았더라면 하지수는 영원히 송문수가 오래도록 자신을 좋아했다는 사실을 몰랐을 것이다.눈에 눈물을 가득 매단 하지수를 보던 송문수는 가슴이 아파와 손을 뻗으려 했지만 다시 움츠러들었다.지금 송문수는 무슨 결정을 내려야 할 지 몰랐다.혹여나 자신의 선택이 하지수에게 부담으로 다가갈까 봐, 그녀의 모습을 보며 송문수는 괴로워하고 있었다.너무 괴로워서 생긴 착각인지, 송문수는 하지수도 자신을 사랑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하지만 하나 마음에 걸리는 게 있다면 그건 바로 하지수 배 속의 아이였다.물론 송승우의 아이라 해도 송문수는 상관없었지만 하지수도 개의치 않을 수 있을까가 그의 의문이었다.“나 너랑 결혼하고 싶어. 네가 나한테 잘해줘서가 아니고, 네가 오래전부터 날 좋아해서도 아니고, 날 위해 많은 걸 준비해줘서도 아니라 그냥 내가 좋아서. 그래서 결혼하고 싶어. 다른 거랑은 아무 상관없어.”하지수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송문수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네가 좋아하는 건 송승우잖아.”“아니라고 몇 번을 말해. 난 송승우 안 좋아해. 아주 오래전부터 이미 끝난 사이였어. 말했잖아, 그때 좋아한다고 느꼈던 감정은 그냥 습관 같은 거였다고. 내가 좋아하는 건 너야. 미안해서가 아니라 그냥 네가 좋아!”매번 좋아한다고 할 때마다 믿질 못하는 송문수 때문에 하지수는 화가 치밀어올랐다.물론 송문수가 자신을 믿지 못해서 화가 난 게 아니라 송문수가 본인한테 자신감이 너무 없는 것 같아
파티장 안의 모든 불빛은 송문수와 하지수에게 집중되어 있었다.무대 중앙에 선 하지수는 송문수를 바라보고 있었고 송문수도 사람들 틈에서 하지수를 바라보고 있었다.지금 하지수는 송문수가 그냥 가버릴까 봐, 그게 제일 무서웠다.하지수는 자신이 이런 용기를 내는 것도 마지막일 것 같았다.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감정을 마주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니.조용한 그 공간에서 송문수가 갑자기 무대로 향해 걸어갔다.한발 한발, 무거운 발걸음이었지만 그 발걸음이 향하는 곳은 확실했다.그래서 하지수의 심장박동도 빨라졌다.더 이상 컨트롤이 되지 않을 정도로.모두들 숨죽인 채 송문수와 하지수를 보고 있었지만 그중에서 가장 마음을 졸이는 건 예수진과 소이연이었다.겁이 많은 송문수가 도망이라도 갈까 봐 걱정하고 있었는데 다행히도 송문수가 책임감은 있어서 하지수를 혼자 남겨두진 않았다.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송문수가 하지수에게로 다가섰고 두 사람은 말없이 서로를 응시했다.송문수의 눈은 빛나고 있었고 울대는 잔잔히 떨리고 있었다.심경에 크나큰 변화가 일었지만 애써 본인을 진정시키려 하는 게 눈에 훤히 보였다.“지수야, 이건 마음에 담아두지 마.”그러다 갑자기 내뱉은 말에 하지수는 송문수를 빤히 쳐다보았다.“그때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어서 이런 걸 찍었는지도 모르겠어.”송문수는 이번에도 장난인 척 너스레를 떨며 상황을 넘기려 했다.“너도 알잖아 나 이상한 거. 충동적으로 무슨 짓이든 하는 사람이잖아. 그러니까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진 마.”말을 마친 송문수가 직원을 찾아가 영상을 지우려 하자 하지수가 입을 열었다.“난 이미 진지하게 받아들였어.”그 말에 발이 잡힌 송문수는 빨라지는 심장박동을 애써 늦추며 말했다.“미안해.”송문수의 갈등과 무력함을 보아낸 하지수의 눈에도 어느새 눈물이 차올랐다.“너 헷갈리게 해서 미안해. 만약 네가 신경 쓰인다면... 앞으로 네 앞에 안 나타날게. 너도 나 같은 사람 때문에 힘들어하지 마. 그럴 가치 없
오늘 온 손님들은 하나같이 외향형인지 호응도 아주 잘해줬다.“네! 궁금해요!”“한 여자를 위해선데요.”“누구예요?”“바로 하지수입니다.”영상 속의 자신이 한 자 한 자 내뱉는 말들을 듣던 송문수는 그제야 이게 자신의 프러포즈 영상이었음을 깨달았다.처음에는 이게 어떻게 여기 있는지 당황스러웠지만 항상 일 처리에 미흡한 예수진이 이번에도 실수한 거라 생각해 송문수는 무대 위로 올라가 영상을 멈추려 했다.그런데 그가 발을 내디디자마자 육현경과 하도경이 그 앞을 막아섰다.그리고 영상은 계속해서 재생되었다.“하지수는 제 아내입니다. 결혼한 지 몇 년이나 되었지만 한 번도 제대로 사랑해준 적이 없었죠. 사실 저는 사랑하지 않는 게 아니라 사랑할 용기가 없었던 겁니다. 제가 너무 비겁해서 그 사람 앞에만 서면 저 자신이 쓸모없어지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늘 유치한 방법으로 그 사람에게 상처만 줬어요.”영상 속 송문수의 얼굴에는 미안함이 가득했다.“미안해 지수야. 나 지금 엄청 후회하고 있어. 괜한 질투로 널 몇 년 간 힘들게 한 걸. 매일 밤 널 안고 자고 싶었는데도 난 자존심 때문에 그런 말 한마디 못했어. 그래서 내 인생이 좀 덜 재밌었던 것 같아. 너라는 복지가 부족했잖아.”감동하며 영상을 보고 있던 사람들은 마지막 말에 웃음을 터뜨렸다.참 울지도 웃지도 못하게 하는 고백 영상이었다.“사랑해, 지수야.”뒤이어 마침내 사랑한다는 말이 나왔는데 그때 송문수의 눈은 확신이 가득 차 있었다.“널 처음 본 순간부터 사랑했었어. 그런데 네가 좋아하는 게 내가 아니니까 점점 비참해지더라. 그래서 네가 싫어하는 방법으로 네 시선을 끌려고 했어. 그때만 생각하면 아무리 나라도 너무 멍청한 것 같더라.”“하지만 이젠 아니야.”“내가 그렇게 대단한 사람은 못 돼도 세상에서 너한테 가장 잘해주는 남자는 될 수 있어.”“더 이상 너한테 성질도 안 내고 부려먹지도 않을게. 괜한 질투 때문에 너 상처받게 하지도 않아. 우리 집은 이제 너한테 맡길 거야. 돈도
파티장에 들어와 보니 계지원과 예수진이 아들딸과 함께 와준 손님들에게 인사를 해주고 있었다.인사를 마친 예수진은 흥분된 목소리로 하지수를 불렀다.“이번에는 제 가장 친한 친구이자 우리 아들의 영원한 이모일 하지수 씨를 모셔보겠습니다.”파티장 한구석에 선 송문수는 무대 위로 올라가는 하지수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아까는 제대로 볼 엄두가 안 나서 애써 무시하려 했던 그녀의 배가 꽤나 불러온 것 같았다.옷을 입어도 다 가려지지 않는 게 이미 임신 몇 개월은 된 것 같았다.정말 자신은 안중에도 없었는지 이렇게 빨리 임신한 하지수가 송문수는 조금은 원망스러웠다.이어서 마이크를 잡은 하지수는 누군가를 찾는 듯 무대 아래를 훑어보았다.한참이 지나 자신에게로 향하는 그녀의 시선에 다급히 눈을 피하던 송문수가 다시 고개를 돌렸을 때 하지수의 시선은 이미 사라져있었다.그에 송문수는 그녀가 찾던 건 아마 송승우일 거라고 짐작하고 있었다.그런데 끝까지 모습을 비추지 않는 송승우 때문에 그저 시선을 거둔 것 같았다.“우선은 수진이 아들 이모가 될 수 있어서 너무 영광스럽고요.”“수진이가 제 배 속에 있는 아이가 딸이면 꼭 사돈을 맺자고 그러더라고요.”“저도 우리 조카 귀여워서 너무 사랑하거든요.”“하지만 사돈은 저 혼자 맺는 게 아니잖아요. 애 아빠 입장도 있고 하니까요.”그러자 예수진의 격앙된 목소리가 또 한 번 들려왔다.“그럼 얼른 애 아빠부터 불러서 오늘 사돈 한번 맺자!”“아이 아빠는...”그녀의 말에 담담히 웃던 하지수는 갑자기 말을 멈췄다.마른 침을 삼키며 그 모습을 보던 송문수는 정말 송승우를 한 대 때려주고 싶었다.가장 사랑하는 여자를 내어줬는데도 책임을 다하지 않고 이런 날에 하지수를 혼자 이곳에 보내고 또 혼자 무대 위에 올리는 게 어떻게 남편이라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짓인가 싶었다.“수진아, 내가 무대 좀 써도 돼?”“당연하지, 오늘 이 자리는 널 위한 거야.”“아, 아니다. 내 미래의 며느리를 위한 거지.”예수진의 한마디에
하지수의 말을 끝으로 두 사람의 시선이 맞물리자 송문수가 황급히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당연하지.”“진짜야?”“내가 왜 널 속이겠어?”“그런데 왜 안 데려왔어?”“이번엔 시간이 별로 없어서 괜히 고생만 할까 봐 안 데려왔어.”“나중에 기회 되면 데리고 올 거야.”“예뻐?”“내가 안 예쁜 여자 사귀는 거 봤어? 외국 여자들은 몸매도 좋아. 원래 S라인이 내 취향이잖아.”“사진 있어?”하지만 저 질문에는 송문수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그래서 몇 초 동안 침묵을 유지하다가 다시 능청스레 대답했다.“있지.”“내가 봐도 돼?”“왜? 뭐 심사라도 해주게?”“아니, 그냥 궁금해서. 네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여자는 어떻게 생겼는지.”“보면 너 상처받을까 봐 안 보여줄 거야.”“괜찮아.”송문수도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며 거절하려 했지만 하지수는 쉽게 물러나지 않았다.“다음에 직접 데려와서 보여줄게.”“지금 보고 싶어.”“카메라는 잘 안 받아서 실물보다 별로야.”“왜 안 보여주는 거야? 설마 없는 거야?”“설마 내가 너 못 잊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걱정 마. 난 원래 감정에 얽매이지 않는 사람이거든. 절대 너한테 매달리지 않을 거야.”송문수가 확신에 찬 말을 하자 하지수는 씁쓸하게 웃어 보였다.“매달린 적이 있긴 해?”그런 하지수의 모습을 보니 또 가슴이 아파왔지만 송문수는 꾹 참기로 했다.송승우의 아이를 가진 하지수는 이미 자신에게서 너무 멀어져 있으니까.“나 화장실 좀 다녀올게.”하지수는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멀어져가는 송문수의 뒷모습을 가만히 보고만 있었다.한편 화장실로 들어온 송문수는 물을 틀어놓고 손을 몇 번이니 씻어댔다.더 이상 손에 감각이 없을 정도로 아까부터 한 동작만 반복하고 있었다.“더 씻으면 손 터져.”그 모습을 본 하도경이 직접 물을 꺼주자 송문수는 넋 나간 사람처럼 고개를 끄덕이고는 하도경이 건넨 휴지를 받아 손을 닦아냈다.“고마워.”“이게 진짜 뭐 하는 짓이냐. 그렇게 좋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