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지원은 침만 계속 삼키고 있었다.그는 주먹을 쥐고 있었고, 은은히 떨고 있었다.그는 예수진이 눈가에 맺힌 절망, 그에 대해 절망을 느끼는 것을 보고 있었다.그의 가슴은 칼로 베는 것처럼 아팠다.지금, 이 순간, 그는 그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말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만약 다른 사람을 찾을 수 있었다면, 절대로 당신에게 이런 부탁은 하지 않았을 거야.” 예수진은 조용하게 얘기했다. “하지만, 지금은 당신만이 하도경을 믿게 할 수 있어. 내가 더 이상 그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얘기를. 나도 슬퍼, 25년의 인생, 딱 두 사람만 사랑했는데, 나한테 다른 방법이 더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계지원은 감정을 억제하고 있었고, 그의 몸은 여전히 떨고 있었다.그는 제대로 얘기하려고 노력했다. “도와줄게.”예수진은 그를 바라보았다.감동하지 않았다.감동할 것도 사실은 없었다.그는 단지 그녀가 이렇게 간절하게 애원하니, 하는 수 없이 들어준 것뿐이다.그녀는 짧게 얘기했다. “고마워.”감사의 인사는 해야 한다.그가 난처한 상황이지만 도와준 것에 대한 고마움.저녁 8시쯤.벨 소리가 울렸다.하도경은 사실 집 비밀번호를 알고 있다.그는 그녀를 존중하기 위해 매번 습관적으로 벨을 누른다.그 또한 얘기했었다. 매번 그녀가 문을 열어주는 느낌이 좋았다고.매번 그녀가 웃으면서 반기는 모습을 보면, 그는 평생 만족할 것이다.그가 생각하지 못한 것은.그가 유일하게 딱 한번 비밀번호를 누르고 집 안으로 들어갔을 때,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장면을 보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그는 비밀번호를 하나하나 누르고 있다.예수진은 계지원을 바라보았다.계지원이 도와주기로 한 이후, 두 사람은 예수진 집 소파에 앉아서 하도경을 기다리고 있었다.예수진은 자신이 조금 더 주도적으로 행동할 것이라고 얘기했었다.그더러 조금만 참아주라고.얼마나 역겹든, 조금만 견뎌주라고 얘기했었다.지금 이 순간, 예수진은 계지원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혹 잘못 찾아온 것일까?아니야.지원이 아닐 거야.하지만.저 사람은 계지원이다.그는 예수진이 계지원을 향한 감정을 너무 잘 알고 있다. 사랑하기에 가슴 아파했던 것을 너무 잘 알고 있다.계지원을 그렇게 오랫동안 좋아했는데, 그렇게 오랫동안…그는 계지원과 비교할 수도 없었다. 그가 뭐라고!그는 눈앞이 희미해졌다.하지만 그는 떠나지 않았다. 그들에게 따지지도 않았다. 심지어 그들을 방해하지도 않았다.예수진이 주동적으로 계지원에게 키스하는 모습을 보고만 있었다.그렇게 그의 마음은 갈기갈기 찢어졌다.곁눈질로 예수진은 하도경이 굳은 채 문 앞에 서있는 것을 보았다.그가 지금 얼마나 힘들지, 그녀는 짐작할 수 있었다.그녀는 심지어 그가 방문을 열고 들어와서 그녀의 뺨을 때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하지만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단지 굳은 채 서있을 뿐, 고통스럽게 서있을 뿐이었다.예수진의 눈빛은 흔들렸다.그녀는 눈을 감았다. 눈가에 흐르는 눈물을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그녀는 계지원에게 키스를 더욱 깊게 했다.단지 닿기만 했던 입술은, 이 순간, 그녀가 주동적으로 딥 키스를 했다…계지원은 가슴이 떨렸다.입술만 닿아도 미친 듯이 가슴이 떨렸는데, 지금, 이 상황은…그는 여전히 가만히 있었다.또한 어떠한 반응을 해서도 안 된다.그가 다른 사람에 의해 거칠게 잡아당겨지기 전까지.닿았던 입술은 그제야 떨어졌고…그는 그제야 이성을 조금 찾은 듯했다.“퍽!”하도경은 주먹으로 계지원의 얼굴을 거칠게 때렸다.계지원은 그 어떤 반항도 하지 않았다.설사 얼굴 한쪽이 부었어도.그저 하도경을 바라보고만 있었다.그의 눈은 붉어졌고, 분노한 나머지 그를 죽이고 싶은 마음이었다.하지만, 결국 그렇게 하지 못했다.하도경은 주먹을 쥔 채 떨고 있었다.그는 계지원에게 분노를 쏟아냈다. “계지원, 예수진은 내 여자 친구야!”계지원은 입술을 꼭 다문 채, 침묵을 지켰다.예수진은 그에게 아무 얘기도 하지 말라고 했기 때문이다.예수진 자신이
”난 나 자신을 속일 수가 없어.” 예수진은 단호하게 얘기했다.“자신을 속일 수가 없다고…” 하도경은 웃었다.허탈하게 웃었다.“지금까지, 넌 나와 함께 있는 것이, 너 자신을 속이는 일이었어? 너의 그 웃음도 모두 거짓이었어? 나를 사랑한다고 얘기한 것이, 모두 나를 속인 것이었어?” 하도경이 물었다.그녀에게 물으면서, 그는 눈물을 흘렸다.너무 가슴이 아팠다.예수진이 주도적으로 계지원에게 다가가는 것을 보는 것보다 더 가슴이 아팠다.가진 후, 다시 버려지는 슬픔은, 너무 힘들었다.“미안해.” 예수진은 더 이상 변명하지 않았다.한마디 사과로, 모든 것이 설명되었다.하도경은 웃었다.웃으면서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다.그는 하느님께서 드디어 알아봐 주셔서 그의 소원을 들어주셨다고 생각했었다.그는 마음속으로 예수진의 가정에 변고가 생긴 것으로 인해 자신에게 기회가 생겼다고 좋아했었다.역시 그는 너무 나빴을까?그래서 하느님께서 이를 아시고 다시 그 기회를 가져가는 것인가?“계지원은 너와 다시 사귀어준대?” 하도경이 예수진에게 물었다.예수진은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그녀는 어떻게 얘기해야 할지 몰랐다.왜냐하면, 그녀는 계지원과 사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계지원도 그녀와 사귀지 않을 것이다.그녀가 지금 대답하면, 하도경은 그녀의 거짓말을 금방 눈치챌 것이다.계지원도 그녀와 함께 계속 하도경을 속이진 않을 것이다.오늘, 이미 한도를 많이 넘었다.“그래, 우리 사귀기로 했어.” 계지원이 말했다.예수진은 뭐라고 해야 할지 몰라서 망설이고 있을 때, 계지원이 대신 얘기했다.하도경은 머리 돌려 계지원을 바라보았다.“계지원, 난 지금까지 너를 제일 좋은 친구로 생각했어. 나와, 너, 그리고, 현경, 문수, 우리 네 사람, 어떤 큰 고난이 닥쳐도, 난 절대 우리 사이 감정은 상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어. 그런데 내가 잘 못 생각한 거니? 그런… 거야? 내가 정말 너를 미워해도 되는 거야?” 하도경은 절망하면서 얘기했다.“미안해
얼마나 지났을까? 알 수가 없었다.예수진이 머리 들어 바라보니, 거실에 있는 시계는 이미 새벽 1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이미, 다음 날이 되었다.그녀는 머리 돌려 계지원을 바라보았다.묵묵히 그녀 옆에서, 아무 얘기도 하지 않고 그녀의 옆을 지키고 있는 그를 바라보았다.그의 얼굴에는, 하도경에게 맞아 멍들고 부은 주먹 자국이 생겼다.보기 너무 안쓰러웠다.“병원 가야 해?” 예수진이 물었다.계지원은 잠시 멈칫하다가, 그제야 정신이 돌아왔다. 예수진은 그의 얼굴에 난 상처에 관해 묻는 것이다.“됐어, 며칠 지나면 괜찮아 질 거야.”“고마워.” 예수진은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다시 한번 고맙다고 얘기했다.계지원은 살짝 입술을 오므렸다가, 입을 열고 말하려는 순간, 예수진은 그를 보면서 조용하게 얘기했다. “이 은혜를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 “그럴 필요 없어.”“하지만, 나 때문에 두 사람 사이 우정이 깨졌는데.”“괜찮아.”지금은 화가 나서 한 얘기일 뿐이다.그와 하도경의 우정은 그렇게 쉽게 깨지지 않는다.“하긴, 내가 도울 것이 뭐가 있다고, 보답할 수 있겠어.” 예수진은 중얼거렸다. “돈, 권력, 난 아무것도 없어. 난 너에게 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수진…”“나를 주면 돼?” 예수진은 갑자기 계지원에게 물었다.계지원은 당황했다.“연예계는 암묵적으로 다 그러지 않나? 배역을 따내기 위해서, 몸으로 배역을 받아오고, 넌 인기가 많으니, 이런 거래를 많이 하지 않아? 그러고 보니, 네 덕으로 대박 난 여배우는 적지 않네.” 예수진은 아무렇지 않게 얘기했다.“난 그런 적이 없어.” 계지원은 부인했다.예수진은 웃었다.이것은 정정당당한 거래가 아닌데, 누가 그것을 인정하겠는가?심지어, 계지원은 그녀를 눈에 차 하지 않고 있지 않은가?그녀가 방금 주동적으로 키스했지만, 계지원이 반응하지 않았다.조금도.사실 그는 그녀와 함께 키스해도 되지만, 그는 가만히 있었다.하여 그는 그런 핑계로 그녀를 거절한 것
다음 날.예수진은 몸을 움직였다.몽롱한 정신으로 돌아누웠다.옆엔, 비어 있었다.그녀가 눈을 뜨고 옆을 보니, 이부자리는 이미 차가워져 있었다.예수진은 처량하게 웃고 말았다.어차피 예상했던 결과이다.그녀는 겨우 몸을 일으켜 침대에서 일어났다. 이불이 바닥에 떨어졌고, 그녀는 자기 몸에 퍼렇게 멍든 흔적을 보게 되었다.만약 이 흔적이 아니었다면, 그녀는 어젯밤 일을 환각으로 생각했을 것이다.평소와 완전히 다른 어젯밤의 계지원은, 그녀의 자극으로 인해 그런 것이다.그녀는 이불을 걷고, 바닥에 널브러진 옷을 정리한 후, 욕실로 가서 샤워했다.온몸이 아팠다.단지 소설이나 TV에서 과장했을 거로 전에 생각했었다.샤워를 마친 그녀는, 머리를 드라이한 후, 깨끗한 잠옷으로 갈아입었다.침대를 정리하면서, 그녀는 침대 시트에 묻은 핏자국을 보았다.결국엔, 이렇게 초야를 치르게 되었다.괜찮은 듯했다.아니면 늘 염려했을 테니.그녀는 바로 침대 시트를 바꿨다. 그리고 방에서 나가려던 순간, 침대 머리맡에 있는 쪽지를 발견했다.예수진이 보니, 계지원이 남긴 메모였다. “내가 올 때까지 기다려. 계지원.”마음속엔, 뭐라 얘기하기 힘든 감정이 생겼다.계지원이 이렇게 일찍 떠난 이유를 그녀는 모르고 있었다.그녀는 먼저 마음을 가다듬고 생각을 정리해야 했다.그리고, 그녀에게 자기의 결정을 얘기할 참인가?예수진은 그 메모지를 쓰레기통에 버리고, 아무렇지 않은 듯, 계속해서 자기 할 일을 하고 있었다.…계지원이 나갈 땐, 아침 7시였다.그는 촬영이 있어서 일찍 촬영장으로 갔다.어제 그는 촬영을 잠시 접고 왔었기에, 촬영이 많이 밀려 있었다.오늘에는 조금 외진 곳에서 촬영해야 하기에, 아침 일찍 나가야 했다.6시에 가기로 했지만, 그는 예수진과 헤어지는 것이 아쉬웠다.그녀가 자기 품에서 달콤하게 자는 것을 보니, 정말로 그대로 두고 나가기 싫었다.그는 그녀의 이마에 키스했다.그녀는 아주 달콤하게 자고 있었다.그는 더 대범하게 그녀의 입
하지만 지금은 이렇게 느긋하게 대처하다니?그리고, 여긴 또 어디지?감독님의 새로 장만한 집은 여기 아닌데?어시스턴트는 더 물을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재빨리 차에 올라탔다. 가면서 그에게 촬영 스케줄에 관해 설명하고, 금일 촬영 배정에 관해서도 설명했다…“넌 오늘 나와 같이 촬영장에 가지 않아도 돼. 조금 있다가 넌 차에서 내려.“계지원이 그의 얘기를 끊고, 얘기했다. “구체적인 일정 관련 자료를 나한테 주면 돼.”어시스턴트는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설마, 그를 해고하려고 하는 건 아니겠지?계지원은 작은 끈을 그에게 건네주면서 얘기했다. “이 끈 길이대로 가서 반지를 사. 디자인은 백화점에 가서 사진 찍어 나한테 보여주고.”어시스턴트는 눈이 휘둥그레졌다.이건 무슨 뜻인가?“그리고 꽃다발도 주문하고. 9999송이 장미. 제일 신선한 꽃으로.”그렇다면, 프러포즈하려는 건가?이건 너무 빠르잖아?감독님은 여자 친구도 없으신데, 결혼부터 하신다고?그는 늘 생각했었다. 감독님 성격에 결혼하지 않고 외롭게 사실 거라고.그는 어떤 여자에게도 관심을 주는 것을 보지 못했다. 예수진을 제외하고.하지만 예수진은 그를 사랑하지 않는데!감독님께서 갑자기 생각을 바꾸신 건가? 아니면 동성에게 관심이?“오늘 스케줄을 보니, 내가 돌아올 땐 시간이 맞이 늦을 것 같아. 내 전화 잘 받고.” 계지원은 또 당부했다.“네, 알겠습니다.”어시스턴트는 머리를 끄덕였다.계지원은 가는 길에 어시스턴트를 길가에 내려주고, 촬영장에 갔다.이 영화는 국제영화제에 진출할 영화이기에, 스케줄은 빡빡했다. 하여 조금도 지체해서는 안 되었다.온 정력을 다해 촬영했고, 촬영을 끝내니, 이미 밤 10시가 되었다.촬영장에 있던 직원들은 모두 촬영장에서 해물전골을 먹었다. 날씨가 너무 추웠기에, 그들은 따뜻한 전골을 먹으면서 추위를 달랠 생각이었다.“감독님은 안 드세요?” 그들 중 한 직원이 물었다.“난 일이 있어서 가야 해요.”“오늘 저녁에 집에 가시게요? 내일 아
밤 12시.계지원은 예수진에게 돌아오지 않았다.사실, 이미 답은 명확했다.하지만, 그녀는 그래도 계지원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오늘 올 거야?”메시지는, 감감무소식이다.다음 날 아침.예수진은 가연에게 전화했다.하도경이 준 집에 이사한 후, 가연은 그 집에 살지 않고, 계속 일을 나갔다. 아마, 그녀가 자기를 싫어하는 것을 알고 떠난 것 같았다.떠난 지 몇 달이 지났고, 두 사람은 연락하지 않았다.그녀는 가연과 얽히고 싶어 하지 않았고, 가연 역시 그녀를 만날 면목이 없어 하는 듯했다.그녀는 처음으로 가연에게 먼저 전화했다. 그녀는 가연이 살짝 떨고 있는 것을 느꼈다. “수진?”믿기지 않는 듯 예수진의 이름을 불렀다.“그래요, 난 그저 장안 시를 떠날 거라는 얘기를 전해주려고 전화했어요.” 예수진은 차분하게 얘기했다.그녀도 왜 가연에게 그런 얘기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아마 그녀가 이 세상에 남은 수진의 유일한 가족이라서 일 수도.가연은 조금 놀랐다. 그녀는 감격해하며 물었다. “왜? 무슨 일이 있어? 너 하도경과 무슨 일이 있는 거니?”“나 하도경과 헤어졌어요. 내 일은 당신이 물어볼 자격이 없어요.” 예수진은 냉정했다.갑자기 침묵이 흘렀다.예수진은 입술을 깨물었다.그녀는 가연이 상처받은 것을 눈치챘다. 하지만 그녀는 진심으로 가연을 대할 수가 없었다. 그녀에게 부드럽게 얘기할 수가 없었다.“장혁은 현재 강제적으로 끌려가 마약을 끊는 중입니다. 아마 3년은 나타나지 않을 겁니다.” 예수진은 계속해서 냉정하게 얘기했다.장혁은 가연의 남편이다. 그 후에, 하도경은 예수진을 그 집에서 이사하게 한 후, 사람을 시켜 장혁을 가두게 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녀들에게 더 이상 피해가 가지 않게.하지만, 마약을 끊는 건, 3~5년이면 충분하다. 표현이 좋으면, 그 전에 감옥에서 나올 수도 있다.“당신이 장안 시에 계속 있고 싶으면, 난 반대 안 해요. 하지만 나와 함께 떠날 생각이면, 주민등록증 번호를 보내줘요. 티켓
조용한 식탁.갑자기, 육현경의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그는 전화를 보고, 안색이 살짝 변하면서 전화 받았다. “할아버지.”소이연은 살짝 눈동자가 흔들렸고, 계속해서 아침 식사를 했다.어차피, 그녀가 듣지 말아야 할 얘기면, 육현경이 알아서 자리를 피할 것이기 때문이다.매번 심아윤 전화를 받을 때처럼.“뭐라고요?” 육현경은 조금 당황해하는 기색은 눈으로 볼 수 있었다.소이연은 무슨 일이 생겼는지는 몰랐다. 무슨 일로 육현경에게 이런 감정 기복이 생겼는지 알 수가 없었다.그녀는 그의 손이 떠는 것을 볼 수 있었다.눈가에도 당황한 기색이 흘렀고, 눈가에 눈물도 맺혔다.“네, 알았습니다.” 육현경은 번호를 눌렀다.전화를 놓는 순간, 멍하니 그 자리에 주저앉아서 한참 동안 아무 반응도 없었다.“무슨 일이 생겼어?” 소이연은 결국 물었다.무슨 일이기에 육현경이 이렇게 힘들어하지?“계지원… 차 사고가 났대.” 육현경이 얘기했다.목소리는, 힘들게 감정을 억제하면서 얘기했다.소이연은 가슴이 철렁했다.육현경의 표정을 보아하니, 사고가 크게 난 모양이다.“어젯밤 11쯤, 산에서 굴러 떨어졌대. 90도로 경사진 산비탈이야. 전에 네가 당했던 사고와는 차원이 다른 사고야. 오늘 새벽 5시가 다 되어서 구조되었다고 해. 지금은 병원 응급실에 있고, 생사는 아직 확인이 안 된대.” 육현경은 흐느끼고 있었고, 감정을 억제하고 있었다.소이연은 긴장한 나머지, 한 마디도 말할 수가 없었다.뭐라고 얘기할지 몰랐다.“내가 다녀와야겠어.” 육현경이 얘기했다.소이연이 머리를 끄덕였다. “나도 함께 가고 싶어…”“넌 잠시 여기에 있어. 여기가 장안 시보다 안전해.” 육현경의 태도는 단호했다.소이연은 입술을 깨물었다. 결국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이때, 그는 육현경과 더 이상 실랑이를 벌이고 싶지 않았다.“최대한 빨리 돌아올게.”“괜찮아, 나 혼자 여기서 편해.” 소이연은 사실대로 얘기했다.그녀 역시 자기 때문에 육현경이 계지원 일에 소홀히
송문수의 입술이 하지수의 입술을 지나 그녀의 귓가에 닿을 때, 이런 식의 스킨십은 처음 해보는 하지수는 온몸이 떨려왔다.태어나서 딱 한 번, 송문수와 차에서 해본 게 전부인 그녀는 송문수의 유혹을 당해내지 못하고 서서히 그에게로 다가가 그의 목에 자신의 고개를 비볐다.그렇게 하지수를 안달 나게 하던 송문수는 그녀가 자신을 받아들였다는 걸 확신하고는 점차 행동을 대범하게 하기 시작했다.자연의 섭리인 것마냥 물 흐르듯 움직임을 이어나가던 송문수가 갑자기 멈췄을 때 하지수는 온몸이 뜨거워 나고 머리가 텅 빈 것 같았다.온몸이 나른해진 그녀는 송문수의 움직임에 몸을 맡길 수밖에 없었다.그렇게 한참 지나 송문수가 더는 움직이지 않을 때가 돼서야 정신을 차린 하지수가 그를 보며 물었다.“왜 그래?”제 아래에 누워있는 하지수를 보며 정말 이성을 잃을까 봐 걱정된 송문수는 마음을 가다듬으며 입을 다물고만 있었다.“문수 씨?”하지만 하지수는 아까는 그렇게 늑대처럼 달려들던 사람이 갑자기 말도 안 하고 거친 숨만 연신 내뱉는 게 이상했다.“문수 씨...”“지수야.”송문수가 한참 만에 입을 열자 그 숨결에 의해 뜨겁게 달궈진 피부에는 소름이 돋기까지 했다.곧 자신이 상상했던 일이 현실이 될 수 있었던 아주 아름다운 순간이었는데 다른 여자들한테는 다 곁을 내주면서 왜 자기 앞에서는 갑자기 멈추는 건지 하지수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본인이 여자로서의 매력이 떨어져서 송문수가 싫어하는 걸까 봐 자연스레 눈물이 흐르고 있었는데 송문수가 잔뜩 실망한 듯한 말투로 말했다.“너 생리 왔어.”“뭐?”송문수의 말에 깜짝 놀란 하지수는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하고 송문수를 빤히 바라보기만 했다.“속옷에 피 묻어있어, 아마 온 지 얼마 안 된 것 같아.”그제야 정신을 차린 하지수는 수치스러움에 빨개진 얼굴로 빠르게 몸을 일으켰다.이틀 뒤가 예정일인데 왜 갑자기 오늘 온 건지는 모르겠지만 하지수는 송문수의 얼굴을 제대로 보기가 민망해 침대에서 뛰어내리다가 하마터면 넘
송문수는 자신의 떨림을 선명히 느낄 수 있었다.그뿐만이 아니었다.하지수도 그의 몸 아래에서 떨리고 있었다.송문수는 이미 자신의 한계에 도달하고 있었다. 예전의 그라면 이미 마음이 가는 대로 몸을 맡겼을 것이다.그는 조심스럽게 지수에게 다가갔다.지수는 온몸이 긴장돼 있었고 두 손은 이불을 꼭 쥐고 있었다.그녀는 자신이 어떻게 송문수의 몸 아래에 있게 됐는지조차 생각이 나지 않았다. 단지 지금, 그의 숨결은 몹시 거칠고 심장 소리는 우뢰처럼 커진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녀는 어쩔 바를 몰라 했고 곧 무언가가 일어날 것만 같았다.그때, 송문수의 입술이 서서히 하지수의 입술에 와닿았다.송문수의 심장은 더욱 격렬히 뛰고 있었고 이불을 꼭 쥐고 있던 지수의 두 손에는 점점 더 힘이 들어가고 있었다.두 입술이 맞닿은 그 순간, 두 사람은 머리가 하얘졌다.둘만의 공간, 둘만 나누는 부드러운 촉감, 온몸으로 느끼는 서로의 떨림……이것이 진짜 입맞춤이었다.하지수의 뇌리에는 갑자기 전에 송문수의 차에서 나눴던 관계가 스쳐 지나갔다. 단지 관계를 위한 관계였을 뿐, 사실 그녀는 아무런 떨림도 느끼지 못했고 심지어 굴욕적이라는 생각까지도 들었었다.하지만 이번은 달랐다. 오히려 그녀가 리드하고 있었다.송문수가 조심스러워 망설이고 있을 때 그녀가 먼저 리드했다.그는 그녀의 유혹을 당해낼 수가 없었고 둘은 더더욱 서로를 탐하고 있었다.온 세상이 조용해지고 두 사람의 심장 소리만 들리고 있었다.두 사람은 얼마 동안 키스를 나눴는지 가늠조차 못 하고 있었다. 아주 길게 또 아주 짧게 느껴지는 건 왜일까?입술을 뗀 두 사람의 얼굴은 너 나 할 것 없이 빨갛게 달아오르고 있었다.이런 경험은 송문수도 처음이였다. 능수능란해야 마땅한 그는 지수와의 키스 후 고장 난 사람처럼 어쩔 바를 모르고 있었다. 그저 방금 전의 달콤하고도 아름다웠던 키스에 사로잡혀 그녀를 놓치고 싶지 않았고 그렇게 온 밤을 그녀와 보내고 싶었다.그는 또다시 그녀의 입술에 다가갔다.천천히
그는 너무 기뻐하다가 오히려 일을 망칠까 봐 조금 두려웠다.“그러면 오늘밤에 같이 자는 거 어때?” 하지수는 송문수를 바라보며 물었다.“푸!” 송문수는 너무 놀란 나머지 조금 전에 마시던 물을 내뿜었다.“싫으면 말고…” 송문수의 격한 반응에 지수는 실망을 감출 수 없었다.“그런 거 아니야.” 송문수는 다급히 해명했다.지수는 어리둥절해졌다. 바로 전에 문수가 분명히 아주 격렬한 반응을 보였기 때문이다.송문수는 연신 입을 닦으며 말을 덧붙였다.“너랑 같이 자는 게 절대 싫어서 그런 거 아니니까 오해하지 마.”“그럼 나 먼저 씻을게.” 하지수는 웃으며 말했다.“그래.”“네 방에서 잘까? 아니면 내 방?”“난 다 좋아.”“그러면 네 방에서 자자. 네 방이 더 크니까.”“그러자.”“나 씻을게.”“응.”“너도 빨리 씻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지수는 얼굴이 타오르듯 빨개졌다.무슨 의미인지 두 사람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송문수는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고 더 이상 자신의 마음을 감추기가 힘들었다.하지수가 먼저 방으로 들어갔다.송문수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크게 숨을 들이켰다.방금 잘못 들은 거 아니지?그는 곧 벌어질 일을 생각하니 너무 긴장되어 숨도 안 쉬어지고 물컵을 들고 있던 손도 떨릴 지경이였다.수도 없이 많은 여자를 만나봤던 그로서는 남녀관계에 대해서 모르는 것이 없었고 이런 경험이 처음일 리는 더더욱 없었다.하지만 그 상대가 하지수라니, 송문수는 머리가 하얘졌다.그는 남아있던 물을 한 모금에 다 마시고 나서 바로 방으로 돌아가 샤워하기 시작했다.오늘 밤이 지나면 둘 사이는 전혀 다른 관계가 되어 있을 것 같았다.송문수는 샤워를 마쳤다.평소라면 몇분이면 끝낼 샤워를 오늘에는 한번 또 한 번 반복해서 씻었다. 행여나 깨끗이 못 씻었을지 몇 번이나 더 씻은 후 겨우 욕실을 나와 침대에서 하지수를 기다리고 있었다.그는 지수가 이미 방에서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예상했으나 지수는 더 오래 걸렸다.아마도 그와 똑
하지수는 민망함에 얼굴이 더 붉어졌다.그녀는 송문수와의 관계가 어디까지 발전했는지 확신할 수 없었지만, 아직 아이를 가질 정도까지는 아닌 것이 분명했다.송문수도 민망해하며 말했다.“저희 둘 사이 일은 걱정하시지 마세요. 저희가 알아서 할게요.”“네가 아무 생각이 없어 보이니까 이러는 거야.” 송문수 어머니는 핀잔을 주었다.“네가 조금 더 잘했으면 지금쯤 애가 뛰어다니며 놀 나이가 됐을 거야.”“엄마! 그만 하세요.”문수는 더 이상 듣기 싫었다.“그래, 알았어. 근데 내가 다시 한번 강조하는 건데, 너 다시는 지수 같은 여자애 못만난다는거 기억해. 지수 놓치면 평생 후회하면서 혼자 살게 될 거라는걸.”“알겠어요, 알겠다고요.”송문수는 잔소리가 듣기 싫었지만, 어머니의 말에 반대는 하지 않았다.그 말을 옆에서 듣고 있던 송승우는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자리를 박차 거실을 나갔다.모든 사람의 눈길이 그에게로 향했다.송문수는 송승우가 왜 화가 났는지 잘 알고 있었다.그가 고개를 돌려보니 하지수도 송승우를 보고 있었다. 갑자기 벌어진 상황에 지수도 자신도 모르게 그쪽으로 눈길이 가게 된 것이었다.송문수의 시선을 느낀 그녀는 얼른 고개를 돌려 그와 눈을 마주쳤다. 그녀의 눈빛은 마치 송승우에 대한 마음은 일찌감치 접었음을 알려주는 것 같았다.송문수는 시선을 돌렸지만, 마음속으로는 내심 안도했다.하지수는 정말 송문수를 사랑하지 않는 걸까?송승우의 돌발행동에 사람들은 당황했지만 이에 대해 별다른 얘기는 하지 않았다.가장 많은 논의가 있었던 것은 역시나 아버지의 생일파티와 그들에게 아이를 낳는 것을 권유하는 것이었다.저녁 아홉 시, 송문수와 하지수는 집으로 돌아갔다.야근을 자주 하는 탓에 이렇게 일찍 귀가한 적은 처음이었다.예전에는 집으로 돌아오면 너무 피곤해서 샤워만 하고 각자 잠에 들었었다. 하지만 오늘은 너무 일찍 돌아온 탓에 오히려 분위기가 어색해졌다.언제부터인가 두 사람 사이의 기류는 점점 부자연스러워지고 있었다. 눈만 마주쳐도
송문수는 깍지를 끼고 있는 두 손을 바라보았다.심장은 더욱 빨리 뛰고 따뜻함은 배가 되고 있었다.그녀의 마음에 화답이라도 하듯 송문수 역시 더욱 세게 손을 잡았다.하지수의 입가에는 미소가 번졌고 두 사람은 손을 꼭 잡은 채로, 로비로 들어갔다.그곳에는 문수의 부모님이 기다리고 계셨다.문수의 형, 송승우도 앉아 있었다.둘이 손을 잡고 들어오는 모습을 본 승우의 눈에는 분노가 차올랐다.지금 도발하는 건가? 송문수와 하지수가 일부러 도발을?송문수의 부모님 역시 그들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알아채고 흐뭇하게 웃고 계셨다.이 얼마나 바라왔던 일인가.문수의 어머님은 두 사람을 반갑게 맞아주시며 말씀하셨다.“얼른 들어와, 지금 바로 저녁 준비하라고 할게.”“네, 엄마.”송문수는 하지수의 손을 꼭 잡은 채로 어머님의 말씀에 고개를 끄덕였다. 지수도 그런 문수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그녀는 누군가와 손을 잡는 게 이렇게도 설레는 일인지 처음 깨달은 듯싶었다.그들은 테이블에 둘러앉아 저녁을 먹기 시작했다.송문수와 하지수는 나란히 앉아 밥을 먹을 때에도 서로 눈길을 주고받으며 서로에 대한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그런 모습을 바라보는 부모님은 흐뭇하기 그지없었다.유독 송승우만 얼굴이 굳은 채로 한 술도 먹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도 그를 신경 쓰지 않았다.“너무 고생 많았어. 오늘은 특별히 너희가 좋아하는 반찬들을 준비했으니까 많이 먹어.”송문수 어머님은 반찬을 덜어주며 따뜻하게 말을 건넸다.송문수 아버님도 문수의 업무 얘기에 귀를 기울였다. 질문도 하시곤 하셨지만, 문수를 지지해 주시는 마음은 느낄 수 있었다.저녁 식사는 시끌시끌하였다. 송승우만 빼고 말이다. 먼저 말을 걸지 않으면 아무도 그에게 눈길을 주지 않는 혼자만 쓸쓸한 저녁 식사였다.식사가 끝난 후, 수다는 계속되었다. “곧 너의 아버님 환갑인데 난 시끌벅적 크게 보내고 싶은데 어때?”“좋아.” 송문수는 고개를 끄덕였다.“원하는 대로 해. 엄마랑 아빠가 기분 좋은 게 최고
업무를 마친 송문수가 고개를 들자, 하지수가 그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문수는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지수?”지수는 화들짝 놀라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송문수를 바라보다가 넋이 나간 것이었다.전에는 문수가 멋있다고 느낀 적이 없었는데 오늘은 이상하게도 멋져 보였다.선명한 옆선, 뚜렷한 이목구비…문수의 얼굴에는 남성미가 흘러넘쳤다.눈에 콩깍지가 씌었나?지수는 마치 첫사랑을 만나기라도 한 듯 심쿵하고 말았다.그녀는 작심이라도 하듯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더 이상 문수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숨기고 싶지 않았다.그러고는 용기를 내어 돌아서서 송문수와 눈을 마주쳤다.송문수 역시 지수가, 그녀의 눈빛이 평소와는 다르게 느껴지고 있었다. 서로의 눈길이 오가는 순간, 송문수는 자신이 그녀를 원하고 있음을 느꼈고 그녀를 꽉 끌어안고 싶었다.사무실 분위기는 어느새 조금씩 달아오르고 있었다.그때, 송문수의 전화벨이 갑자기 울리기 시작했다.두 사람은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타오르던 분위기가 천둥번개를 맞은 것처럼 부서지고 말았다.하지수는 고개를 숙이고 책상 위의 물건들을 정리하며 한편으론 자신의 일렁이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있었다.송문수는 숨을 한번 크게 들이쉬고는 전화를 받았다.“엄마.”“아직도 퇴근 안 했어?” 전화기 너머로 문수 어머님의 따뜻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지금 퇴근하려고.”“기다리고 있을게.”“알겠어.”송문수는 통화를 마치고 하지수한테 말했다.“엄마가 빨리 오라고 하시네.”“그래.”하지수는 가방을 챙기고 송문수랑 같이 퇴근했다.차에 탄 두 사람은 서로 어색해하고 있었다.평소에는 아주 자연스럽게 업무를 논의하던 두 사람이 오늘은 서로의 눈은커녕 얼굴을 마주보기조차 부끄러운 상황이 되었다.하지수는 창밖을 바라보며 마음을 진정하려고 애썼다.송문수도 역시 창밖을 내다보았다.그의 심장은 그 어느 때보다도 빨리 뛰기 시작했다.수도 없이 많은 여자를 만나봤던 그가 하지수한테 빠지다니!그녀 앞에만 서면 심장이 고장 날 것만
허영지는 송문수의 사무실에 들어가서 말했다.“문수, 지수, 수고했어.”송문수와 하지수는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 둘이 너무 일에 몰두한 나머지 허영지가 말하지 않았으면 사무실에 들어온 것조차 몰랐다.“엄마, 어떤 일로 오셨어요?”송문수는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네 아버지가 기어코 오겠다고 해서 같이 왔지.”“아버지도 오셨어요?”송문수의 미간이 찌푸려졌다.“기어코 오겠다고 해서 말리지도 못했어. 근데 두 시간 후에 네 아버지를 데리고 갈 거야.”허영지는 웃으면서 말했다.“아버님은 많이 좋아지셨어요?”하지수는 다정하게 물었다.“의사 선생님은 큰 문제가 없다고 하셨어. 하지만 다시 그럴까 봐 걱정돼.”“맞아요. 아버님은 확실히 주의하셔야 해요.”하지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하고 나서 물었다.“어머님, 뭐 좀 드시겠어요? 비서보고 준비하라고 할게요.”“됐어. 그냥 너희 얼굴을 잠깐 보러 온 거야. 일하는 걸 방해하지 않을게.”허영지가 상냥하게 말하고선 떠나려고 하자 하지수는 일어서서 배웅하려고 하였다.그러나 허영지는 나오지 말라고 했다.“나 신경 쓰지 말고 일이나 해. 난 여기저기 구경하고 있을게. 참, 저녁에 집에 와서 먹어. 이제 곧 아버지 60세 생신이잖아. 얼마 전에 또 죽다가 살아났으니 축하할 겸 나쁜 기운도 제거하려고.”“알겠어요.”송문수가 대답하자 하지수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오늘 문수 씨에게 일찍 퇴근하라고 할게요.”“내가 오씨 아줌마에게 반찬을 몇 개 더 준비하라고 할 테니 잊지 말고 와.”“네.”허영지는 기쁜 심정으로 떠났다. 얼마 전에 정말 너무 지쳤다.송기명의 일, 회사의 일, 송문수와 송승우의 일, 허영지는 하마터면 우울증에 걸릴 뻔했다. 지금 모두 순조롭게 풀려서 다행이었다.그녀는 고개를 돌려서 다시 송문수와 하지수를 바라보았다.두 사람도 이제 아이를 가질 때가 되겠지?이것은 지금 그녀의 유일한 아쉬움이었다.... 다섯 시 반.하지수는 송문수에게 퇴근하자고 하였다. 요새는 매일
“회사 일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넌 신경 쓸 필요 없다.”송기명가 담담한 표정으로 한 말에는 송승우가 괜한 말을 했다는 뉘앙스가 들어 있다.송승우도 알아들었다.송문수가 회사를 이끌고 어려운 고비를 넘긴 후부터 모든 사람이 그를 다시 보게 된 건가? 그가 보기에 송문수는 우연히 찾아온 기회를 잡아서 운 좋게 성공한 것이었다.그는 늘 송문수를 얕잡아 보았다.“그럼 먼저 가볼게요.”송승우는 자기의 물건을 간단히 정리하고 나서 말했다.“그래.”송승우가 사무실에서 나오기 전에 문 앞에 잠시 멈춰서 말했다.“저는 장안시에 출장하러 왔어요. 여기에 며칠 머물다가 월요일에 서울로 돌아갈 거예요.”“알었어. 뭐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아주머니에게 말해.”아주머니는 집에서 가사 도우미로 일하는 오씨 아주머니였다.송승우의 눈빛이 차가워졌다.예전에 그가 돌아올 때마다 집에서는 늘 열정적으로 맛있는 음식을 준비해 주었고 아버지는 출근하지도 않고 그와 함께 있어 주었다. 그러나 지금은 이렇게 쌀쌀한 태도로 대하다니!송문수가 잘하고 있으니까 자기는 소용없다고 생각하시는 건가?송승우는 굳은 얼굴로 떠났다.허영지는 송승우의 뒷모습을 보면서 아들의 마음이 편치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그녀는 원래 좋은 말을 하고 싶지만 왠지 모르게 말하지 않았다.허영지는 송기명에게 다가가서 한숨을 내쉬었다.“지금 문수의 능력이 우리의 예상을 뛰어넘어서 대견스럽지만 그렇다고 해서 승우에게 차갑게 대하면 안 돼요. 예전에 우리가 문수에게 불공정하게 대했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어요. 지금은 문수 때문에 승우에게 불공정하게 대하고 싶지 않아요. 두 아이를 평등하게 대해야죠.”송기명은 대꾸하지 않았지만 마음이 여전히 불쾌했다.어쨌든 자기는 아직 은퇴도 안 했고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늙지 않았는데 송승우가 어찌 자기 사무실에 있는 의자에 앉을 수 있겠는가?그는 그동안 자기가 송승우에 대한 사랑과 칭찬이 너무 지나쳐서 그를 자고자대하게 만들었고 기본적인 예의와 공손함도 잊
송승우가 막 재무제표를 보려고 할 때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인기척을 들었다.그는 고개도 들지 않고 강력한 어조로 말했다.“꺼져! 들어오기 전에 노크할 줄도 몰라?”문 앞에 선 송기명과 허영지의 안색이 조금 어두워졌다.그들은 줄곧 송승우를 그들의 자랑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들 앞에서 예의 바르고 말을 잘 듣는 아들이 갑자기 이런 말투로 말하는 것을 보자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송기명이 회사에 있을 때도 아무 이유 없이 직원을 욕하지 않았다.송승우는 문 앞에 있는 사람이 움직이지 않는 것을 느끼자 계속 짜증스러운 말투로 말했다.“말귀를 못 알아...”그가 말하면서 고개를 들어 보니 송기명과 허영지가 문 앞에 서 있었고 뒤에는 송기명의 비서가 보였다.송승우의 안색이 굳어졌고 눈빛에 당황스러운 기색이 스쳤다.그는 원래 화나 있었다. 회사의 재정이 갈수록 좋아졌고 송문수가 회사를 점점 잘 이끌고 있는 것을 보자 마음속에 말할 수 없는 답답함이 생겼다. 그래서 들어오는 사람이 누구인지 확인도 하지 않고 버럭 화를 낸 것이었다.“왜 여기에 있어?”송기명은 들어오면서 송승우에게 물었다.송승우는 그제야 자기가 아버지의 사무실에 앉아 있는 것을 알아챘다.그는 아버지가 갑자기 회사에 오는 이유를 몰랐다.며칠 전에 그가 특별히 전화해서 물어봤을 때 어머니는 아버지를 집에서 좀 더 쉬게 하고 빨리 회사에 나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였다.“회사에 제가 필요하는지 보러 왔어요. 문수가 혼자 회사에 있어서 걱정돼서요.”송승우는 다급히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래?”송승우에 대한 송기명의 태도는 차가웠다.그는 자기의 사무실 의자를 향해 다가갔다.송승우는 급히 자리를 비켜주었고 얼굴에 난감한 기색이 역력했다.아무리 친부자 간이라도 권력이 있는 사람일수록 남이 자기의 자리를 차지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이것은 자기 권위에 대한 도전이었다.사실 송승우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송기영은 자기의 의자를 힐끔 쳐다보고는 앉지 않았다.분명 꺼려서 앉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