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현경은 소이연을 안고 힘껏 당겼다.소이연은 몸이 떨릴 정도로 아파서 이를 꽉 물었다.무엇이 종아리를 눌렀는지 육현경이 끌어당기자 더 아파왔다.실은 그도 세게 끌어당기지 못했다. 혹시나 손상된 그녀의 몸이 더 심하게 다칠까 두려웠다.“어디 걸렸어?”육현경이 물었다.목소리가 아주 낮았지만 두 사람이 꼭 안고 있어 소이연은 그의 호흡과 비정상적으로 뛰는 심장 소리를 느낄 수 있었다.이런 긴장감은 위장할 수 없다.“오른쪽 종아리.”소이연이 겨우 대답했다.육현경은 몸을 웅크리고 그녀의 종아리 위치에 뭐가 있는지 검사했다.종아리가 조수석 의자에 눌렸다. 그런데 조주석에 의식을 잃은 운전 기사가 앉아 있다.그는 재빨리 기사를 툭툭 쳤다.거친 태도는 방금 소이연을 대할 때와 하늘과 땅 차이였다.“정신 차리세요.”육현경이 그를 불러 깨웠다.기사는 계속 정신을 잃다가 누군가 부르는 소리에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며 눈을 떴다.깨어난 순간 황급히 물었다.“심 선생?”“난 괜찮아.”심문헌이 대답했다.그래도 기사는 시름을 놓을 수 없었다.그는 본능적으로 안전벨트를 풀려고 했지만 풀어지지 않았다.육현경도 기사의 생사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기사는 일반 기사가 아니었다.심씨 가문의 기사들은 모두 일반인이 아니다.기사 겸 경호원이고 선발 기준이 경호원보다 더 까다로웠다.필경 외출할 때면 기사가 대부분 따라다니기 때문이다.“빨리 방법을 대서 몸을 들어올리세요. 지금 이연의 다리가 당신 의자에 깔렸거든요.”육현경이 다급하게 말했다.“알겠습니다.”기사가 공손한 태도로 말했다.그가 심호흡을 하더니 냉정하게 자신의 몸 상태를 살펴봤다.그리고 온 힘을 다해 자신의 몸을 일으켰다.동시에 육현경은 소이연의 옆에 웅크리고 앉아 두 손으로 힘껏 의자를 들어올렸다.전력을 다해 올렸기 때문에 그의 목소리는 한껏 억눌려서 제대로 말하지 못했다.“다리 빼.”소이연은 빼고 싶었지만 다리에 아무런 감각도 없었다.다리가 붙어 있는지 의심이 되기도 했다
소이연은 차분하게 다리의 느낌을 찾았다.마침내 다리를 조금씩 움직일 수 있었다.그리고 이를 꽉 물고 의자 밑에 있는 다리를 단번에 빼냈다.순간 의자가 내려오는 묵직한 소리와 기사의 가쁜 숨소리가 들렸다.소이연은 여전히 가슴이 두근거리며 무서웠다.조금만 늦었더라면 다시 의자에 다리가 깔릴 뻔했다.의자와 기사의 몸무게에 눌린다면 다리가 어떻게 될지 상상도 되지 않았다.소이연이 안도의 숨을 내쉬던 그때, 육현경의 손이 의자 밑에 깔렸다.날이 어두워서 그의 표정을 볼 수 없지만 소이연의 가슴이 미친 듯이 뛰었다.“육현경!”소이연이 당황하며 그의 이름을 불렀다.육현경이 손을 뺄 힘이 없어서 깔린 것인지 아니면 그녀가 다리를 빼낸 것을 모르고 조금이라도 충격을 완화하려고 그런 것인지 알 수 없었다.그때 눈앞이 흐려지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육현경은 손등에서 전해오는 아픔을 참으며 신음 소리도 내지 않았다.잠깐 숨을 고르고는 다시 전력을 다해 의자에 앉은 기사까지 필사적으로 들어서 손을 빼냈다.그리고 피투성이가 된 손등을 보지도 않고 다시 소이연을 품에 안았다.소이연은 힘없이 육현경의 품에 기대었다.그녀의 몸에서 온통 땀냄새와 코를 자극하는 피냄새가 났다.이번에 육현경은 조금 힘을 줘서 소이연을 에어백에서 안고 나왔다.자신이 먼저 차창 밖으로 나오고 다시 그녀를 안고 유리 파편에 다치기라도 할까 봐 조심스럽게 끌어냈다.소이연은 그의 목을 끌어안고 성공적으로 승용차에서 빠져나갔다.먼 곳에 도착해서야 육현경은 소이연을 조심스럽게 바닥에 내려놓았다.몸을 웅크리고 앉아 그녀의 상태를 검사하고 응급 처치를 해야 되는지 살펴봤다.“심문헌, 심문헌이 아직 안에 있어.”소이연이 귀띔했다.육현경에게 심문헌을 구하러 가라는 말이다.그러자 그녀의 상처를 살피던 손이 주먹을 꽉 쥐었다.“구해줘.”소이연이 단호하게 말했다.육현경은 마른침을 삼키더니 결국 일어서서 승용차 쪽으로 갔다.도착한 순간 탄 냄새가 코를 찔렀다.육현경은 휴대폰 전등
”내려 놔!”소이연이 분노했다.“지금 억지 부릴 때가 아니… 윽!”육현경의 목에서 통증이 느껴졌다.소이연이 입을 벌려 그의 목을 힘껏 물었기 때문이다.너무 세게 문 탓에 육현경은 온몸을 떨며 고통을 참으면서도 그녀를 놓아주지 않았다.소이연은 물고 난 뒤, 그의 품에서 몸을 비틀어댔다.산비탈길은 워낙 걷기 힘든데 그녀가 목숨을 걸고 반항하여 두 사람이 같이 바닥에 넘어졌다.육현경은 그녀가 다치지 않도록 자신의 몸을 아래로 향했다.그제야 자유를 얻은 소이연은 재빠르게 승용차가 있는 방향으로 달려갔다.긴급한 상황일수록 더 빨리 가서 구해야 한다.늦게 되면 사람이 죽을 수 있다.소이연은 매우 빠른 속도로 달렸다.오른쪽 다리에 감각이 되돌아와 극심한 통증이 전해졌지만 멈추지 않고 달렸다.“소이연!”육현경이 달려들어 그녀를 덥석 잡았다.강경한 방식으로 그녀가 승용차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았다.찰싹!소이연이 돌아서 육현경의 얼굴을 호되게 쳤다.두 사람의 몸은 진작에 피범벅이 되었다.그래서 뺨을 맞아도 전혀 자국이 보이지 않았다.귀청을 찢을 뜻한 소리가 쟁쟁하게 들릴 뿐이다.육현경은 벌겋게 충혈된 눈으로 소이연을 쏘아보았다.당장 터져버릴 듯한 분노를 억누르려고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난 꼭 가서 구할 거야!”소이연은 그를 노려보며 또박또박 한 글자씩 말했다.“죽는다 해도 갈 거야?”육현경이 되물었다.“죽는다 해도 반드시 가서 구할 거야. 아니면 난 평생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해.”소이연이 그의 손을 뿌리쳤다.그녀의 태도는 단호했다.누구도 그녀를 막지 못했다.말한 뒤 소이연은 지체하지 않고 다시 달려갔다.한 발자국을 내디뎠을 때 육현경이 다시 그녀의 팔을 잡았다.“육현경. 또 너를 미워하게 만들지 마!”소이연이 비명을 질렀다.“내가 갈게.”그 말에 소이연의 가슴이 욱신거렸다.“내가 가서 심문헌을 구할 테니까 넌 여기 있어.”육현경이 나지막하게 말했다.“다가오지 마.”이 말을 남기고는 어둠 속을 뚫고 승용
건장한 두 남자 사이에 쓸데없는 얘기는 필요 없었다.육현경은 재빨리 승용차 안으로 들어가 안전벨트의 버튼을 부러트렸다.심문헌의 안전벨트를 제거하고 또 신속하게 차문을 열러 나갔다.하지만 차 전체가 심하게 변형되어서 차문이 심문헌의 몸을 단단히 누르고 있었다.심문헌의 몸은 거의 차문에 박혀 있는 수준이다.만약 에어백이 보호하지 않았더라면 이미 깔려서 죽었을 것이다.“어때?”소이연이 밖에서 잔뜩 긴장된 목소리로 물었다.“심문헌 씨, 나올 수 있어요?”“여긴 왜 왔어?”육현경의 안색이 어두워졌지만 멈추지 않고 계속 차문을 열려고 힘을 썼다.지금은 바로 문을 열 수 없었다.어떤 장애물이 심문헌의 몸을 찔렀는지 살펴봐야 했다.만약 그렇다면 잘못된 방식으로 구출하다가 오히려 목숨을 잃게 된다.“내가 도와줄게.”소이연이 다급하게 말했다.“필요 없어. 넌 당장 가!”육현경이 매섭게 말했다.“육현경!”“이연 씨, 가세요.”심문헌도 독촉했다.“당신이 가지 않으면 육현경 씨가 날 구하지 않을 거예요.”소이연은 이를 꽉 물었다.어쩔 수 없이 뒤로 물러섰다.하지만 멀리 가지 않았다.언제라도 승용차가 폭발할 까 두려워서 몹시 긴장됐다.소이연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갑작스러운 놀라움에 하마터면 실성할 뻔했다.아니, 아니야.그때 차 밑에서 한 가닥 불꽃이 타오르는 것이 눈에 보였다.안 돼, 불붙으면 안 돼!불꽃이 퍽 하는 소리를 내며 타오르기 시작했다.순식간에 불이 퍼지면서 사방에 빛이 아른거렸다.차 안에서 육현경과 심문헌 그리고 기사가 뜨거운 열기를 감지했다.이어서 승용차 주변이 활활 타올랐다.“소이연!”육현경이 힘껏 차문을 밀어내자 심문헌의 몸에서 조금씩 떨어졌다.하지만 전력을 쓰지 못하고 조금씩 이동했다.“내가 불 끌 방법을 생각할게.”소이연이 긴장하며 말했다.“불을 끌 수 없으니까, 너 빨리 도망쳐!”“할 수 있어. 내가 방법을 찾아볼게.”소이연이 간다면 차 안에 있는 사람은 어떻게 될까?“가!”육현경이
소이연은 멍하니 서서 불에 타는 승용차를 바라봤다.아직 안 나왔어.왜 아직도 안 나와?심문헌은 육현경이 다시 돌아왔을 때 진심으로 놀랐다.언제든지 죽을 수 있는 상황인데도 돌아온 것이다.그것도 소이연을 위해서.두 사람이 이토록 생사를 같이 하는 사이인 줄은 몰랐다.육현경은 그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소이연을 사랑했다.“죽는 게 두렵지 않아요?”심문헌이 물었다.불길이 점점 거세지자 차 안이 찜통처럼 더웠다.육현경은 대답하지 않고 계속 차문을 옮겼다.“당신이 죽는다면 이연 씨는 아마 평생 당신을 기억할 거예요.”“기억하는 건 바라지 않아요. 단지 이연이 슬퍼하는 거 보고 싶지 않을 뿐이에요.”육현경이 거친 숨을 쉬며 차갑게 말했다.“당신의 몸에 뭐가 박혔는지 살필 시간이 없어요. 지금 바로 문을 열어야겠어요. 아니면 우리 다 죽어요.”“알았어요.”심문헌이 대답했다.그도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그때 운전석에 있던 기사가 가까스로 의자에서 빠져나왔다.온몸이 피투성이고 상처투성이였다.“저 나왔습니다.”기사가 다급하게 말했다.위험한 상황이지만 기사는 도망가지 않고 오히려 도울 것이 없냐고 물었다“밖에서 이 차문을 열어줘요.”육현경이 분부했다.“알겠습니다.”기사는 발로 운전석의 창문을 차버리고 신속하게 밖으로 빠져나갔다.그리고 심문헌의 옆에 다가왔다.그때 불길이 또 거세지면서 기사의 옷깃에 불이 붙어 따끔한 통증이 느껴졌다.기사는 바로 손으로 불을 꺼버리고 긴장한 목소리로 말했다.“불이 더 세졌어요. 더 이상 나오지 않으면 다 죽어요.”“당신 두 손으로 차창을 꽉 잡고 밖으로 당겨요. 내가 셋을 세면 발로 힘껏 찰게요.”육현경이 지시했다.“알았어요.”기사는 황급히 차창문을 잡았다.육현경이 발로 차문의 위치를 조준했다.“하나, 둘, 셋!”육현경이 외치는 동시에 발로 힘껏 차문을 차버렸다.승용차가 흔들릴 지경인 데도 차문을 끄떡없었다.심문헌은 여전히 차문에 깔려 움직이지 못했다.“계속해요!”육현경이
소이연은 온몸이 떨렸다.아니야. 아니야… 이렇게 죽으면 안 돼.다시 일어섰지만 허약한 몸뚱어리 때문에 또 넘어졌다.육현경을 찾아야 돼.그 사람 찾으러 가야 돼…그녀는 기어서 그쪽으로 다가갔다.이 순간 절망적이고 가슴이 아파서 숨조차 쉴 수 없었다.그때 얼핏 그림자를 보았다.불길 속에서 사람의 그림자가 나타나더니 그녀 쪽으로 달려왔다.그들 몸에는 온통 불이 붙어서 타버릴 것만 같았다.하지만 분명 살아있는 사람이었다.육현경이 살아있다.세 사람이 한참을 달리다 바닥에 엎드려 몸에 붙을 불을 끄려고 했다.소이연은 망설이지 않고 바로 육현경에게 달려들어 자신의 몸으로 불을 껐다.드디어 불이 사라졌다.하지만 승용차는 지금도 타고 있다.모두 바닥에 누워 숨을 돌렸다.재난 속에서 살아난 느낌이 어떤 것인지 확실히 체험했다.육현경은 바닥에서 일어나다가 몸이 옆으로 휘청거렸다.하지만 다시 쓰러지지 않고 잠시 멈춰서 자신의 옷을 벗었다.옷은 이미 불에 타서 너덜너덜해졌지만 그래도 소이연의 몸을 감쌌다.방금 그녀는 불을 끄기 위해 드레스를 벗어서 지금 살색 브래지어와 팬티만 입고 있었다.육현경은 자신의 정장 옷으로 그녀의 몸을 가렸다.소이연은 거절하지 않고 그를 바라봤다.비록 교통사고는 당하지 않았지만 그 누구보다도 심하게 다친 것 같았다.“나 못 버티겠어.”어둠속에서 심문헌의 목소리가 들렸다.그는 이미 한계에 도달했는지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며 나지막하게 말했다.육현경이 시선을 돌려 그를 바라봤다.“장기를 다쳤어요?”시간이 긴박해서 그를 돌볼 겨를이 없이 차문을 망가트리고 나온 것이다.조금만 더 늦었다면 세 사람 모두 차 안에서 죽었다.“아, 아니에요…”심문헌의 목소리가 더 가라앉더니 연신 숨을 헐떡거렸다.육현경이 미간을 찌푸렸다.지금 심문헌의 상태가 너무 이상해 다가가서 살펴봤다.그의 몸은 피투성이가 되었다.그리고 숨을 급하게 쉬고 몸이 매우 뜨거웠다.육현경이 심문헌의 이마를 짚어보았다.방금 사람을 구하는 것
”걱정 마, 내가 해결할 수 없어.”소이연이 밀어내려 했지만 육현경은 여전히 꼭 안고 놔주지 않았다.“너라면 할 수 있어.”소이연의 말에 육현경이 살짝 당황했다. 말속에 담긴 의미를 눈치챘는지 소이연을 꼭 안았던 팔이 느슨해졌다.“네가 생각하는 그거 맞아.”소이연은 그의 품에서 나와 심문헌에게 다가갔다.일그러진 그의 표정을 보니 극치에 도달한 것 같았다. 그리고 눈, 코와 귀에서 피가 흘러나왔다.소이연은 잘못 본 줄 알았다.지금은 아직 어두운 밤이니까.그녀는 손끝으로 심문헌의 콧구멍에서 흐르는 끈적한 액체를 만지고 초점이 없는 눈과 귀에서 흐르는 피를 보았다.심씨 가문에서 대체 얼마나 많은 약을 먹인 거야?정말 심문헌을 죽음으로 몰아내는 거야?오늘 교통 사고가 성공하지 않더라도 나중에 그녀와 심문헌이 관계를 맺을 수 있게 함정을 판 것이다.그러면 육현경과 철저히 관계를 끊게 된다.심씨 가문은 정말 독하고 음흉했다.“심문헌 씨, 왜 그러십니까?”기사도 그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원래는 재난 속에서 겨우 살아남았다 생각했는데 심문헌이 심하게 다친 것 같았다.정말 교통 사고 때문에 장기를 다쳤나?기사는 어쩔 바를 몰랐다.육현경도 지금 심문헌의 상태를 똑똑히 보았다.“해결하지 않으면 여기서 죽을 거야.”“심문헌 구급대가 왜 아직도 안 오지?”소이연이 물었다.교통 사고 때문에 휴대폰이 부서져서 구급대가 어느 위치에 떨어졌는지 찾지 못한 모양이다.“이제 어떡해?”소이연이 육현경에게 물었다.어렵게 살아남았는데 이렇게 심문헌을 죽게 내버려 둘 수 없었다.육현경이 미간을 찌푸렸다.“왜 날 그렇게 쳐다봐?”그는 죽어도 이런 짓은 할 수 없었다.소이연이 입술을 오므렸다.문득 그런 생각이 떠올라 시선을 돌려 기사를 봤다.기사는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허둥거렸다.“기사님은 심문헌을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어요?”소이연이 물었다.“심 선생은 내 고용주예요. 죽는 한이 있다고 해도 할 겁니다.”기사가 단호하게 말했
이렇게 가파롭고 경사진 길을 소이연까지 안고 가다니 얼마나 힘들었을까?하지만 소이연은 정말 힘이 없었다.눈꺼풀을 들 힘조차 없어서 두 눈을 감고 육현경의 품에 기대었다.얼핏 주변에서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렸다. 헬리콥터의 날개가 돌아가는 소리 같았다.심문헌의 구급대가 왔나 봐.정말 타이밍이… 너무 이르지도 않고 너무 늦지도 않게 도착했다.소이연은 드디어 깊게 잠들었다.다시 일어났을 때 낯선 곳에 누워 있었다.병원도 아니고 장안의 집도 아니고 육현경의 집도 아니었다.그녀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 지금도 눈꺼풀이 매우 무겁고 머리도 무거웠다.마치 오랫동안 잠을 자서 깨어나기 힘든 것처럼 말이다.“일어났어?”옆에 육현경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렸다.매우 가볍고 매우 부드러웠다.소이연은 시선을 돌려 익숙한 육현경의 얼굴을 보았다.원래는 말끔하고 잘생긴 얼굴이었는데 지금은 크고 작은 흉터들로 가득했다.소이연이 두리번거리며 물었다.“나 지금 어디에 있어?”그녀의 목소리는 잔뜩 쉬었다. 목도 아파서 견딜 수 없었다.“낙성이야.”육현경이 한마디 덧붙였다.“걱정 마. 여긴 안전해.”그녀는 심씨 가문이 안전하지 않다고 생각했다.하지만 지금 반항할 힘이 없었다.일어나는 것조차 힘들었다.“내가 부축할게.”육현경은 허리를 굽혀 조심스럽게 그녀를 안고는 편하게 기댈 수 있게 등에 푹신한 베개를 놓았다.그제야 소이연은 수액을 맞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이 방도 임시 의료실로 변했다.그녀는 육현경의 도움을 받아 앉았다.“물 마실래?”육현경이 물었다.“응.”소이연이 대답했다. 목이 정말 아팠다.육현경이 일어서서 따뜻한 물을 따랐다.“내가 먹여줘?”“할 수 있어.”소이연이 가까스로 손을 들어보려고 했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지금은 숨쉬는 것 마저도 힘들었다.“억지 부리지 마.”육현경은 컵을 소이연의 입가에 가져갔다.“너 3일 동안 자느라 아무것도 먹지 않았어. 수액으로 목숨을 이어 가서 힘이 없는 건 정상이야.”소이
그는 너무 기뻐하다가 오히려 일을 망칠까 봐 조금 두려웠다.“그러면 오늘밤에 같이 자는 거 어때?” 하지수는 송문수를 바라보며 물었다.“푸!” 송문수는 너무 놀란 나머지 조금 전에 마시던 물을 내뿜었다.“싫으면 말고…” 송문수의 격한 반응에 지수는 실망을 감출 수 없었다.“그런 거 아니야.” 송문수는 다급히 해명했다.지수는 어리둥절해졌다. 바로 전에 문수가 분명히 아주 격렬한 반응을 보였기 때문이다.송문수는 연신 입을 닦으며 말을 덧붙였다.“너랑 같이 자는 게 절대 싫어서 그런 거 아니니까 오해하지 마.”“그럼 나 먼저 씻을게.” 하지수는 웃으며 말했다.“그래.”“네 방에서 잘까? 아니면 내 방?”“난 다 좋아.”“그러면 네 방에서 자자. 네 방이 더 크니까.”“그러자.”“나 씻을게.”“응.”“너도 빨리 씻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지수는 얼굴이 타오르듯 빨개졌다.무슨 의미인지 두 사람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송문수는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고 더 이상 자신의 마음을 감추기가 힘들었다.하지수가 먼저 방으로 들어갔다.송문수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크게 숨을 들이켰다.방금 잘못 들은 거 아니지?그는 곧 벌어질 일을 생각하니 너무 긴장되어 숨도 안 쉬어지고 물컵을 들고 있던 손도 떨릴 지경이였다.수도 없이 많은 여자를 만나봤던 그로서는 남녀관계에 대해서 모르는 것이 없었고 이런 경험이 처음일 리는 더더욱 없었다.하지만 그 상대가 하지수라니, 송문수는 머리가 하얘졌다.그는 남아있던 물을 한 모금에 다 마시고 나서 바로 방으로 돌아가 샤워하기 시작했다.오늘 밤이 지나면 둘 사이는 전혀 다른 관계가 되어 있을 것 같았다.송문수는 샤워를 마쳤다.평소라면 몇분이면 끝낼 샤워를 오늘에는 한번 또 한 번 반복해서 씻었다. 행여나 깨끗이 못 씻었을지 몇 번이나 더 씻은 후 겨우 욕실을 나와 침대에서 하지수를 기다리고 있었다.그는 지수가 이미 방에서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예상했으나 지수는 더 오래 걸렸다.아마도 그와 똑
하지수는 민망함에 얼굴이 더 붉어졌다.그녀는 송문수와의 관계가 어디까지 발전했는지 확신할 수 없었지만, 아직 아이를 가질 정도까지는 아닌 것이 분명했다.송문수도 민망해하며 말했다.“저희 둘 사이 일은 걱정하시지 마세요. 저희가 알아서 할게요.”“네가 아무 생각이 없어 보이니까 이러는 거야.” 송문수 어머니는 핀잔을 주었다.“네가 조금 더 잘했으면 지금쯤 애가 뛰어다니며 놀 나이가 됐을 거야.”“엄마! 그만 하세요.”문수는 더 이상 듣기 싫었다.“그래, 알았어. 근데 내가 다시 한번 강조하는 건데, 너 다시는 지수 같은 여자애 못만난다는거 기억해. 지수 놓치면 평생 후회하면서 혼자 살게 될 거라는걸.”“알겠어요, 알겠다고요.”송문수는 잔소리가 듣기 싫었지만, 어머니의 말에 반대는 하지 않았다.그 말을 옆에서 듣고 있던 송승우는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자리를 박차 거실을 나갔다.모든 사람의 눈길이 그에게로 향했다.송문수는 송승우가 왜 화가 났는지 잘 알고 있었다.그가 고개를 돌려보니 하지수도 송승우를 보고 있었다. 갑자기 벌어진 상황에 지수도 자신도 모르게 그쪽으로 눈길이 가게 된 것이었다.송문수의 시선을 느낀 그녀는 얼른 고개를 돌려 그와 눈을 마주쳤다. 그녀의 눈빛은 마치 송승우에 대한 마음은 일찌감치 접었음을 알려주는 것 같았다.송문수는 시선을 돌렸지만, 마음속으로는 내심 안도했다.하지수는 정말 송문수를 사랑하지 않는 걸까?송승우의 돌발행동에 사람들은 당황했지만 이에 대해 별다른 얘기는 하지 않았다.가장 많은 논의가 있었던 것은 역시나 아버지의 생일파티와 그들에게 아이를 낳는 것을 권유하는 것이었다.저녁 아홉 시, 송문수와 하지수는 집으로 돌아갔다.야근을 자주 하는 탓에 이렇게 일찍 귀가한 적은 처음이었다.예전에는 집으로 돌아오면 너무 피곤해서 샤워만 하고 각자 잠에 들었었다. 하지만 오늘은 너무 일찍 돌아온 탓에 오히려 분위기가 어색해졌다.언제부터인가 두 사람 사이의 기류는 점점 부자연스러워지고 있었다. 눈만 마주쳐도
송문수는 깍지를 끼고 있는 두 손을 바라보았다.심장은 더욱 빨리 뛰고 따뜻함은 배가 되고 있었다.그녀의 마음에 화답이라도 하듯 송문수 역시 더욱 세게 손을 잡았다.하지수의 입가에는 미소가 번졌고 두 사람은 손을 꼭 잡은 채로, 로비로 들어갔다.그곳에는 문수의 부모님이 기다리고 계셨다.문수의 형, 송승우도 앉아 있었다.둘이 손을 잡고 들어오는 모습을 본 승우의 눈에는 분노가 차올랐다.지금 도발하는 건가? 송문수와 하지수가 일부러 도발을?송문수의 부모님 역시 그들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알아채고 흐뭇하게 웃고 계셨다.이 얼마나 바라왔던 일인가.문수의 어머님은 두 사람을 반갑게 맞아주시며 말씀하셨다.“얼른 들어와, 지금 바로 저녁 준비하라고 할게.”“네, 엄마.”송문수는 하지수의 손을 꼭 잡은 채로 어머님의 말씀에 고개를 끄덕였다. 지수도 그런 문수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그녀는 누군가와 손을 잡는 게 이렇게도 설레는 일인지 처음 깨달은 듯싶었다.그들은 테이블에 둘러앉아 저녁을 먹기 시작했다.송문수와 하지수는 나란히 앉아 밥을 먹을 때에도 서로 눈길을 주고받으며 서로에 대한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그런 모습을 바라보는 부모님은 흐뭇하기 그지없었다.유독 송승우만 얼굴이 굳은 채로 한 술도 먹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도 그를 신경 쓰지 않았다.“너무 고생 많았어. 오늘은 특별히 너희가 좋아하는 반찬들을 준비했으니까 많이 먹어.”송문수 어머님은 반찬을 덜어주며 따뜻하게 말을 건넸다.송문수 아버님도 문수의 업무 얘기에 귀를 기울였다. 질문도 하시곤 하셨지만, 문수를 지지해 주시는 마음은 느낄 수 있었다.저녁 식사는 시끌시끌하였다. 송승우만 빼고 말이다. 먼저 말을 걸지 않으면 아무도 그에게 눈길을 주지 않는 혼자만 쓸쓸한 저녁 식사였다.식사가 끝난 후, 수다는 계속되었다. “곧 너의 아버님 환갑인데 난 시끌벅적 크게 보내고 싶은데 어때?”“좋아.” 송문수는 고개를 끄덕였다.“원하는 대로 해. 엄마랑 아빠가 기분 좋은 게 최고
업무를 마친 송문수가 고개를 들자, 하지수가 그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문수는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지수?”지수는 화들짝 놀라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송문수를 바라보다가 넋이 나간 것이었다.전에는 문수가 멋있다고 느낀 적이 없었는데 오늘은 이상하게도 멋져 보였다.선명한 옆선, 뚜렷한 이목구비…문수의 얼굴에는 남성미가 흘러넘쳤다.눈에 콩깍지가 씌었나?지수는 마치 첫사랑을 만나기라도 한 듯 심쿵하고 말았다.그녀는 작심이라도 하듯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더 이상 문수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숨기고 싶지 않았다.그러고는 용기를 내어 돌아서서 송문수와 눈을 마주쳤다.송문수 역시 지수가, 그녀의 눈빛이 평소와는 다르게 느껴지고 있었다. 서로의 눈길이 오가는 순간, 송문수는 자신이 그녀를 원하고 있음을 느꼈고 그녀를 꽉 끌어안고 싶었다.사무실 분위기는 어느새 조금씩 달아오르고 있었다.그때, 송문수의 전화벨이 갑자기 울리기 시작했다.두 사람은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타오르던 분위기가 천둥번개를 맞은 것처럼 부서지고 말았다.하지수는 고개를 숙이고 책상 위의 물건들을 정리하며 한편으론 자신의 일렁이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있었다.송문수는 숨을 한번 크게 들이쉬고는 전화를 받았다.“엄마.”“아직도 퇴근 안 했어?” 전화기 너머로 문수 어머님의 따뜻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지금 퇴근하려고.”“기다리고 있을게.”“알겠어.”송문수는 통화를 마치고 하지수한테 말했다.“엄마가 빨리 오라고 하시네.”“그래.”하지수는 가방을 챙기고 송문수랑 같이 퇴근했다.차에 탄 두 사람은 서로 어색해하고 있었다.평소에는 아주 자연스럽게 업무를 논의하던 두 사람이 오늘은 서로의 눈은커녕 얼굴을 마주보기조차 부끄러운 상황이 되었다.하지수는 창밖을 바라보며 마음을 진정하려고 애썼다.송문수도 역시 창밖을 내다보았다.그의 심장은 그 어느 때보다도 빨리 뛰기 시작했다.수도 없이 많은 여자를 만나봤던 그가 하지수한테 빠지다니!그녀 앞에만 서면 심장이 고장 날 것만
허영지는 송문수의 사무실에 들어가서 말했다.“문수, 지수, 수고했어.”송문수와 하지수는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 둘이 너무 일에 몰두한 나머지 허영지가 말하지 않았으면 사무실에 들어온 것조차 몰랐다.“엄마, 어떤 일로 오셨어요?”송문수는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네 아버지가 기어코 오겠다고 해서 같이 왔지.”“아버지도 오셨어요?”송문수의 미간이 찌푸려졌다.“기어코 오겠다고 해서 말리지도 못했어. 근데 두 시간 후에 네 아버지를 데리고 갈 거야.”허영지는 웃으면서 말했다.“아버님은 많이 좋아지셨어요?”하지수는 다정하게 물었다.“의사 선생님은 큰 문제가 없다고 하셨어. 하지만 다시 그럴까 봐 걱정돼.”“맞아요. 아버님은 확실히 주의하셔야 해요.”하지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하고 나서 물었다.“어머님, 뭐 좀 드시겠어요? 비서보고 준비하라고 할게요.”“됐어. 그냥 너희 얼굴을 잠깐 보러 온 거야. 일하는 걸 방해하지 않을게.”허영지가 상냥하게 말하고선 떠나려고 하자 하지수는 일어서서 배웅하려고 하였다.그러나 허영지는 나오지 말라고 했다.“나 신경 쓰지 말고 일이나 해. 난 여기저기 구경하고 있을게. 참, 저녁에 집에 와서 먹어. 이제 곧 아버지 60세 생신이잖아. 얼마 전에 또 죽다가 살아났으니 축하할 겸 나쁜 기운도 제거하려고.”“알겠어요.”송문수가 대답하자 하지수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오늘 문수 씨에게 일찍 퇴근하라고 할게요.”“내가 오씨 아줌마에게 반찬을 몇 개 더 준비하라고 할 테니 잊지 말고 와.”“네.”허영지는 기쁜 심정으로 떠났다. 얼마 전에 정말 너무 지쳤다.송기명의 일, 회사의 일, 송문수와 송승우의 일, 허영지는 하마터면 우울증에 걸릴 뻔했다. 지금 모두 순조롭게 풀려서 다행이었다.그녀는 고개를 돌려서 다시 송문수와 하지수를 바라보았다.두 사람도 이제 아이를 가질 때가 되겠지?이것은 지금 그녀의 유일한 아쉬움이었다.... 다섯 시 반.하지수는 송문수에게 퇴근하자고 하였다. 요새는 매일
“회사 일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넌 신경 쓸 필요 없다.”송기명가 담담한 표정으로 한 말에는 송승우가 괜한 말을 했다는 뉘앙스가 들어 있다.송승우도 알아들었다.송문수가 회사를 이끌고 어려운 고비를 넘긴 후부터 모든 사람이 그를 다시 보게 된 건가? 그가 보기에 송문수는 우연히 찾아온 기회를 잡아서 운 좋게 성공한 것이었다.그는 늘 송문수를 얕잡아 보았다.“그럼 먼저 가볼게요.”송승우는 자기의 물건을 간단히 정리하고 나서 말했다.“그래.”송승우가 사무실에서 나오기 전에 문 앞에 잠시 멈춰서 말했다.“저는 장안시에 출장하러 왔어요. 여기에 며칠 머물다가 월요일에 서울로 돌아갈 거예요.”“알었어. 뭐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아주머니에게 말해.”아주머니는 집에서 가사 도우미로 일하는 오씨 아주머니였다.송승우의 눈빛이 차가워졌다.예전에 그가 돌아올 때마다 집에서는 늘 열정적으로 맛있는 음식을 준비해 주었고 아버지는 출근하지도 않고 그와 함께 있어 주었다. 그러나 지금은 이렇게 쌀쌀한 태도로 대하다니!송문수가 잘하고 있으니까 자기는 소용없다고 생각하시는 건가?송승우는 굳은 얼굴로 떠났다.허영지는 송승우의 뒷모습을 보면서 아들의 마음이 편치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그녀는 원래 좋은 말을 하고 싶지만 왠지 모르게 말하지 않았다.허영지는 송기명에게 다가가서 한숨을 내쉬었다.“지금 문수의 능력이 우리의 예상을 뛰어넘어서 대견스럽지만 그렇다고 해서 승우에게 차갑게 대하면 안 돼요. 예전에 우리가 문수에게 불공정하게 대했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어요. 지금은 문수 때문에 승우에게 불공정하게 대하고 싶지 않아요. 두 아이를 평등하게 대해야죠.”송기명은 대꾸하지 않았지만 마음이 여전히 불쾌했다.어쨌든 자기는 아직 은퇴도 안 했고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늙지 않았는데 송승우가 어찌 자기 사무실에 있는 의자에 앉을 수 있겠는가?그는 그동안 자기가 송승우에 대한 사랑과 칭찬이 너무 지나쳐서 그를 자고자대하게 만들었고 기본적인 예의와 공손함도 잊
송승우가 막 재무제표를 보려고 할 때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인기척을 들었다.그는 고개도 들지 않고 강력한 어조로 말했다.“꺼져! 들어오기 전에 노크할 줄도 몰라?”문 앞에 선 송기명과 허영지의 안색이 조금 어두워졌다.그들은 줄곧 송승우를 그들의 자랑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들 앞에서 예의 바르고 말을 잘 듣는 아들이 갑자기 이런 말투로 말하는 것을 보자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송기명이 회사에 있을 때도 아무 이유 없이 직원을 욕하지 않았다.송승우는 문 앞에 있는 사람이 움직이지 않는 것을 느끼자 계속 짜증스러운 말투로 말했다.“말귀를 못 알아...”그가 말하면서 고개를 들어 보니 송기명과 허영지가 문 앞에 서 있었고 뒤에는 송기명의 비서가 보였다.송승우의 안색이 굳어졌고 눈빛에 당황스러운 기색이 스쳤다.그는 원래 화나 있었다. 회사의 재정이 갈수록 좋아졌고 송문수가 회사를 점점 잘 이끌고 있는 것을 보자 마음속에 말할 수 없는 답답함이 생겼다. 그래서 들어오는 사람이 누구인지 확인도 하지 않고 버럭 화를 낸 것이었다.“왜 여기에 있어?”송기명은 들어오면서 송승우에게 물었다.송승우는 그제야 자기가 아버지의 사무실에 앉아 있는 것을 알아챘다.그는 아버지가 갑자기 회사에 오는 이유를 몰랐다.며칠 전에 그가 특별히 전화해서 물어봤을 때 어머니는 아버지를 집에서 좀 더 쉬게 하고 빨리 회사에 나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였다.“회사에 제가 필요하는지 보러 왔어요. 문수가 혼자 회사에 있어서 걱정돼서요.”송승우는 다급히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래?”송승우에 대한 송기명의 태도는 차가웠다.그는 자기의 사무실 의자를 향해 다가갔다.송승우는 급히 자리를 비켜주었고 얼굴에 난감한 기색이 역력했다.아무리 친부자 간이라도 권력이 있는 사람일수록 남이 자기의 자리를 차지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이것은 자기 권위에 대한 도전이었다.사실 송승우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송기영은 자기의 의자를 힐끔 쳐다보고는 앉지 않았다.분명 꺼려서 앉지
“왜 이렇게 하는 거지? 쓸데없는 짓이 아닌가? 사든지 말든지 그들이 결정하라고 하면 우리의 매출에 도움이 안 되잖아!”송승우는 차가운 목소리로 송문수에게 물었다.“제가 다시 한번 말할게요. 저는 판매량을 높이려는 목적이 아니고 직원의 피를 빨아먹으려는 것도 아닙니다. 반대로 이것은 일종의 직원 복지이고 보상입니다.”송문수는 정중한 표정으로 설명하였다.“그동안 회사에 변고가 생겼는데 직원들은 우리와 함께 어려운 고비를 넘겼어요. 이때 우리가 직원에게 복지를 주면 직원들의 열정을 자극할 수 있죠.”“그럼 직접 직원들에게 현금 인센티브를 줄 수 있는데 왜 이렇게 복잡하게 만들어?”이에 송승우는 비아냥거렸다.“직원에게 너무 큰 기대를 주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서 이런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회사가 또 다른 문제가 생길 때 그들은 회사에서 현금 인센티브를 지급할 것을 기대하게 됩니다. 우리가 이 기대를 만족시키지 못하면 직원은 부정적인 정서가 나타나게 되죠. 반대로 우리가 적당한 보상을 주고 그들이 너무 많은 기대를 하지 않게 할 수도 있으면서 혜택을 받았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합니다.”송문수의 말이 끝나자 한 이사가 바로 입장을 밝혔다.“찬성합니다.”기타 이사도 연달아 맞장구를 쳤다.“나도 찬성하오.”“문수야, 어린 나이에 인심을 잘 아는구나. 참으로 대단한 친구야.”“송 회장도 드디어 후계자가 생겼네. 전에 우리가 괜한 걱정을 한 거였어.”“다음에 송 회장에게 축하 인사라도 해야겠어. 이런 아들을 둬서 정말 복을 받았다고.”송문서처럼 뻔뻔한 사람도 지나친 칭찬에 민망했다. 옆에 있는 송승우는 얼굴이 시퍼렇게 질렸다.이사들이 송문수에게 아첨하는 모습을 보자 송승우는 울화가 치밀어 올라왔다.언제부터 송문수가 사람들의 칭찬과 인정을 받게 되었고 자기는 들러리가 되었지?회의가 끝난 후 각 부문은 신에너지 자동차의 홍보 마케팅을 합리적으로 분업해서 진행하기 시작했다.보름 후, 신에너지 자동차가 다시 출시되었다.출시
지금 송문수는 짧은 시간 내에 세계 최첨단 기술의 총 책임자와 파트너십 계약을 체결하였다.이 소식이 전해지면 송씨 그룹의 매출이 좋아질 뿐만 아니라 주식도 많이 오를 것이다.파산 직전에 있었던 송씨 그룹이 갑자기 몇 단계 업그레이드될 줄은 누가 알겠는가?이 모든 것은 송문수 덕분이었다.송승우는 믿기지 않아서 확실하게 조사했었다.송씨 그룹의 자금이 부족할 때 송문수가 개인 명의로 육현경을 찾아 돈을 빌려서 부족한 자금을 메웠다.지금 크레지의 기술 투자도 송문수가 하지수를 데리고 외국에 가서 받아온 것이고 회사에서 누구도 도움을 주지 않았다.송승우는 말로 할 수 없는 착잡한 생각이 들었다.회사를 지킬 수 있어서 송승우도 매우 기뻤다. 어쨌든 아버지는 회사의 일 때문에 중환자실에 들어갔으니 아버지가 무사하기를 바랐다.그러나 회사를 지킨 사람이 송문수라는 사실이...어렸을 때부터 송문수가 자신에게 뒤떨어진 사실에 익숙했는데 갑자기 잘나가니까 왠지 불편한 느낌이 들었다.송승우는 이를 악물고 자신의 속마음을 숨겼다....송문수는 크레지와 계약을 체결한 후 기술에 대한 검토와 연개발을 진행하기 시작했다.물론 이것은 전문가가 해야 할 일들이다. 송문수는 모든 연구개발 플랫폼을 제공하였고 지원 작업도 완료했다. 이제부터 앉아서 결과를 기다리면 된다.지금 급선무는 신에너지 자동차를 생산한 후의 판매 문제를 해결한 것이다.모두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지만 마지막에 뜻대로 될 수 있는지 모르기에 미리 대비할 필요가 있다.송문수에게 있어서 신에너지 자동차가 다시 출시되고 예상 매출액을 실현하며 자금이 되돌아온다면 송씨 그룹의 모든 위기가 해결된 것이다. 그는 이사회 회의실에 앉아서 이사들과 판매 방안을 논의하였다.회의실 현장의 분위기가 매우 뜨거웠다.지금 회사가 좋은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어서 이사들도 의욕이 불타올랐다.송승우가 제 눈으로 확인하지 않았다면 송문수보다 나이가 한참 많은 이사들이 송문수에게 친절하게 대하고 송문수의 지시를 순순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