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남자는 소파에 누워 자는 예수진을 봤다.하지수가 손짓으로 소리를 내지 말라고 일깨우고는 예수진에게 담요를 덮어주고 베개를 챙겨와서 눕혔다.눕자마자 예수진은 중얼거리며 또 심아윤을 욕했다. 정말 웃음밖에 안 나왔다.예수진을 보살핀 뒤, 하지수는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계지원과 송문수는 그녀의 맞은편에 앉았다.하지수는 두 사람이 무슨 일로 왔는지 알고 소이연의 사건 서류를 보여주었다.그리고 낮은 소리로 말했다.“오늘 오전에 제가 구치소에 가서 이연 씨와 면담하면서 정리한 내용들이에요. 중점적인 부분은 제가 이미 정리해 두었어요.”말을 마친 그녀는 서류를 앞으로 내밀었다.계지원은 사건 내용을 진지하게 들여다보았다.하지수가 문득 이렇게 물었다. “현경 씨는 찾으셨어요?”“이변이 없는 한 내일 중으로 돌아올 거예요.”“그럼 다행이네요. 여기 안에는 우리 능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부분들이 많아요. 그래서 현경 씨가 나서야 해요.”계지원이 고개를 끄덕였다.세 사람은 소이연의 사건을 진지하게 분석하고 있었다.어느덧 날이 어두워지고 밤이 되었다.그제야 예수진이 몸을 뒤척였다.그런데 한번 움직인 순간 쿵 하고 소리를 내며 소파에서 떨어졌다.한창 상의하던 세 사람이 동시에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예수진은 궁둥방아를 찧고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자기가 왜 소파에서 잠들었는지 알 수 없었다.어쩌다가 잠들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지수랑 이연 언니의 사건에 관해서 얘기하고 있었잖아?’그 순간 따가운 시선을 느끼고 고개를 들었다.하지수와 계지원 그리고 송문수까지 자신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아무리 털털한 예지원도 이 순간만큼은 어색했다.세 사람이 자기가 바닥에 떨어지는 모습을 물끄러미 보고 있으니 너무나 창피했다.문제는 누구도 그녀를 부축하러 오지 않았다.하지수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다급하게 다가와 예수진을 부추겼다.“많이 아파? 다친 데는 없어?”“엉덩이가 좀 아파.”예수진이 투덜거렸다.“내가 문질러 줄게.
예수진이 송문수를 나쁘게 보는 건 다 본인 때문이라는 걸 알고 있다.그러니 자기 때문에 그녀가 화를 내는 것을 원망하지 않았다.“얘기는 거의 끝났지? 배고파. 어디 가서 밥이라도 먹자.”송문수가 먼저 입을 열었다.“그러자.”계지원이 대답했다.“뭐 먹고 싶어? 내가 예약 잡을게.”송문수가 예수진에게 물었다.솔직히 그녀에게 따질 이유도 없었다. 지금까지 제멋대로인 여동생으로 여겼기 때문이다.“두 분이 드셔. 난 지수랑 단둘이서 먹을 거야.”예수진이 거절하고는 한마디 덧붙였다.“난 싫어하는 사람과 밥 못 먹어.”“예수진, 너그러움을 좀 배워.”“그쪽 말한 거 아니거든?”예수진이 한마디 던지고는 하지수를 끌고 나갔다.“가자. 나가서 밥 먹자.”송문수는 두 여자가 사라지는 뒷모습을 바라보았다.한참 뒤에야 예수진이 한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챘다.그가 고개를 돌려 계지원에게 물었다.“설마 너를 말하는 거야?”계지원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성격이 얼마나 좋은데 참 이해가 안 되는 녀석이야. 너 수진이한테 잘해줬잖아. 쟤는 왜 너를 싫어하는데?”송문수는 어리둥절했다.“반면 현경은 성깔이 지랄맞아서 맨날 땍땍거리고 수진을 가르치잖아. 그래도 맨날 오빠 오빠하고 따라다니는데 쟤 정말 배은망덕하다. 핏줄이라는 거야?”계지원이 해명하지 않자 그도 더는 묻지 않았다.아마 계지원 본인도 눈치채지 못했을 거라 생각했다.…이튿날.소이연은 구치소에서 하룻밤을 묵었다.이곳 환경은 악랄하고 침대도 매우 딱딱했다.갑자기 문서인이 생각났다. 이렇게 빨리 자신이 전락할 줄은 몰랐다.어제 저녁 구치소에 들어와 마음을 진정시킨 후, 진지하게 사건을 되새겨보았다.그제야 심아윤이 혼자 벌인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심아윤은 대외로 수많은 일과 사람을 통제할 수 있지만 짧은 시간 내에 은하그룹 내부를 통제할 가능성은 매우 적다.그러니 내부에 분명 공범이 있을 것이다.소나은은 비록 은하그룹을 떠났지만 은하에 오랫동안 근무하면서 내부 직원들을 다
”넌 확실이 그럴 능력이 없어. 잔꾀만 한 트럭이지. 능력 있는 사람은 네 뒤에 있잖아.”소이연이 비꼬았다. 그러자 소나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역시 소이연은 모든 것을 짐작하고 있었다.“소나은. 내가 충고하는데 네가 감당할 수 없는 사람은 건드리지 않는 게 좋아.”“훗.”소나은은 더는 감추고 싶지 않았다.오늘은 소이연을 보러 온 목적은 그녀의 웃음거리를 보기 위해서다.그동안 많이 참아왔었다.“소이연, 강한 척하지 말고 그냥 질투한다고 말해. 내가 거물에게 빌붙은 것이 부럽고 넌 이 지경이 된 것이 억울하다고 솔직하게 말해!”소나은은 적나라하게 비꼬았다.“제 주제를 모르고 아무 사람이나 건드린 자신을 탓해. 자신의 능력을 너무 과대평가하지 마. 육현경이 언니를 죽기 살기로 사랑하는 거 같지? 근데 지금 봐. 언니가 구치소에 하룻밤 갇혔는데 육현경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네? 이익 앞에서 언니의 가치가 얼마라고 생각해?”소이연은 싸늘하게 그녀가 으스대는 모습을 쳐다봤다.“내가 똑똑해서 다행이지. 언니 때문에 육현경을 꼬실 뻔했어. 지금 내가 육현경과 사귄다면 당하는 사람은 나였어. 이러고 보니 내가 언니한테 감사해야겠네.”소나은은 말할수록 흥분했다.“육현경과 사귀지 않는 건 네가 똑똑한 게 아니라 능력이 없어서야.”소이연이 일침을 가했다.그러자 소나은의 얼굴이 벌게졌다.그때 육현경이 전혀 눈길을 주지 않아서 그에게 다가갈 기회조차 없었다.“그래서 뭐? 여자라고 남자 때문에 죽고 못살아야 돼? 나는 남자한테 목매지 않아. 다 내 발판일 뿐이야. 언니처럼 멍청하지 않다고, 그러니까 번번이 남자한테 당하는 거지!”소나은은 끝까지 조소를 날렸다.소이연은 갑자기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확실히 모든 재난은 남자한테서 비롯되었다.“소이연. 이 지경이 되었으니까 내가 그래도 피가 섞인 자매라서 말해주는데. 육현경 기대하지 마. 머리가 똑똑하다면 누가 언니를 노리고 있는지 짐작했을 거야. 그러니까 쓸데없이 반항하지 말고 잘못을 인정하고
심아윤이 왜 육현경과 같이 왔지?이건 대체 무슨 상황이야?그러나 누구도 그녀를 쳐다보지 않고 투명 인간처럼 무시해 버렸다.육현경은 바로 소이연의 앞에 앉으며 말했다.“보석 절차 끝냈으니까 지금 나가도 돼.”소나은이 저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었다.소이연이 뭐가 대단해서 육현경이 이 정도까지 나서서 도와주는지 이해되지 않았다.심아윤은 대체 무슨 속셈이야?막지 않고 뭐 하는 거냐고!소나은은 겉으로 내색하지 않고 친절하게 말했다.“잘 됐어, 언니. 드디어 나가는구나. 구치소 환경이 악랄해서 제대로 먹고 자지도 못했을 텐데.”소이연은 속으로 그녀의 연기에 감탄했다.하지만 어릴 때부터 그런 이면적인 얼굴에 익숙했다.소이연은 혐오하는 표정도 짓기 귀찮아서 무시하고 육현경을 따라 나갔다.어떤 손해도 보지 않을 것이다.비록 이 모든 것이 육현경 때문에 발생했지만 자기에게 유리한 것은 거절하지 않기로 했다.지금은 오로지 하지수와 함께 사건을 해결하고 싶었다.일행이 구치소에서 떠났다.밖에 나오자 예수진이 입구에서 소이연을 기다리고 있었다.육현경을 따라 나오는 소이연을 보고 허겁지겁 달려가 덥석 껴안았다.“언니, 드디어 나왔네요. 하룻밤 새에 많이 야위었어요.”그녀는 눈물까지 글썽거렸다.반대로 소이연이 그녀를 위로하는 꼴이 되어버렸다.“괜찮아요. 생각처럼 너무 나쁘지는 않았어요.”소이연이 가볍게 웃었다.그럴수록 예수진은 가슴이 더 아팠다.소이연은 눈물도 없어?울 줄 아는 아이한테 사탕을 준다는 도리를 몰라?“수진아, 그럼 나와 현경이는 먼저 갈 테니까 네가 이연 씨를 집까지 바래다줘. 할 수 있지?”심아윤이 말했다.“할아버지가 갑자기 장안에 오셔서 우리 둘 그쪽으로 가야 해.”예수진은 힐끗 볼 뿐 대꾸하지 않았다.눈앞의 여자가 아무렇지 않은 척 태연하게 말해도 소이연의 일과 관련이 있다고 단정했다.심아윤은 전혀 개의치 않다는 태도로 돌아서서 육현경에게 말했다.“가자. 우리 할아버지와 너희 할아버지가 기다리고 계셔. 시간
가로수 나뭇잎들이 바람에 날리며 쉴 새 없이 소리를 내고 있었다.소이연은 그 소리를 차분하게 듣고 있었다.성깔이 없어서가 아니라 지금 가장 중요한 건 그녀의 일을 어떻게 처리하냐는 것이다.방금 소나은의 말은 매우 옳았다.이 약육강식의 사회에서 그녀의 힘은 매우 미미했다.두 사람은 집에 돌아왔다.예수진은 소이연에게 말했다. "언니 먼저 씻고 쉬어요. 저는 음식 좀 주문할게요.”"그래요." 소이연이 대답했다.그리고 방으로 돌아갔다.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니 문득 하룻밤 사이에 정말 많이 초췌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녀는 심호흡했다.스스로에게 넘어지면 안 된다고 되뇌었다.마지막 순간까지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샤워를 마치고 나왔다.식탁에 음식들이 이것저것 올려져 있었다.예수진은 웃으며 소이연에게 음식을 집어주었다."너무 말랐어요, 많이 먹어요.”"나중에 들어가면 못 먹을까 봐 그러는 거예요?" 소이연은 자기 앞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음식들을 보며 농담했다.농담이 분명했는데 그 말을 들은 예수진은 눈시울이 붉어졌다.그녀는 정말 곧 들어갈 것 같았다."그런 불길한 소리 하지 마요, 우리 오빠가 꼭 해결해 줄 거예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반드시......”"오빠 얘기 좀 그만 해요.” 소이연은 예수진의 말을 끊었다.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았다.예수진은 소이연이 자기 오빠를 원망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그녀도 사실 원망한다.왜 그녀의 오빠와 심아윤의 갈등을 소이연이 책임져야 한다는 말인가?그녀라면 오빠를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워했을 것이다.그녀는 자기 오빠를 위해 단 한마디의 변명도 하지 않았다.둘은 식사를 마쳤다.소이연은 하지수에게 전화를 걸었다."구치소에서 나왔어요. 괜찮으면 제 사건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어요.”"네. 어디세요? 제가 갈게요.”"집이에요. 주소 보낼게요.”"네, 바로 갈게요.”30분도 안 되어 하지수가 소이연의 집에 도착했다.예수진은 하지수를 보고 놀라며 재빨리 말했다."이연 언
"분명히 누군가가 고의로 죄를 뒤집어씌운 거야." 예수진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다 알고 있지만 판사는 믿지 않아.”"두 번째로, 저는 소이연 씨의 재무 담당자를 만나러 갔는데 그녀는 모든 일은 당신이 초래한 것이라고 단언했어요. 그녀는 단지 소이연 씨의 지시대로 했을 뿐이라고 하더군요. 아무리 같은 대답이었어요. 소이연 씨의 비밀문서에 관해서, 그가 소이연 씨를 대신해 결제한 건 전부 소이연 씨의 친필 서명이 있었기 때문에 승인해 줬다고 했어요. 저도 확인해 봤는데 모두 소이연 씨 서명이 있었어요. 일부를 복사해 왔는데 한 번 확인해 보세요.”하지수가 소이연에게 서류를 주었다.소이연은 서류를 확인하고 말했다. "제 필체가 확실해요. 하지만 제가 서명하지 않았어요.”"누군가가 소이연 씨의 필체를 흉내 내서 서명한 뒤 재무 담당자에게 보여 주고, 담당자는 소이연 씨 서명을 보고 시스템에서 결재를 통과하고 도장을 찍어 유효한 세금 신고서로 만든 거예요." 하지수가 정리하며 말했다. “정말 오랫동안 음모를 꾸몄어요.”소이연은 침묵에 잠겼다.소송을 더 이상 진행할 수 없을 것 같았다.사건이 유리한 방향으로 흐를 수 있는 증거를 찾을 수 없었다.침묵이 흘렀다.밖에서 갑자기 초인종이 울렸다.소이연이 말하기도 전에 예수진은 급히 달려가 문을 열었다.육현경이 대문 밖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고 소이연은 무슨 말을 하려다가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오빠, 드디어 왔네.”예수진은 흥분하며 말했다. “방금 지수와 이연 언니 소송 건 논의하고 있었는데 상대방이 너무 교활해. 빨리 와서 봐.”"응." 육현경이 대답했다.그가 다가왔다.하지수는 소이연의 사건 내용을 육현경에게 건넸다.소이연은 하지수의 손에서 서류를 낚아챘다.육현경은 손가락을 떨며 소이연을 바라봤다."육현경 씨를 귀찮게 하고 싶지 않아요." 소이연이 직접적으로 말했다.분위기가 순식간에 어색해졌다.하지수와 소이연은 아직 어색한 관계라 뭐라고 말하기가 쉽지 않았다.예수진
방안에 침묵이 흘렀다.소이연의 말에 육현경은 할 말을 잃었다.그들은 서로 한 치의 양보도 하지 않았다.육현경은 웃는 듯했다.웃음이 쓸쓸해 보였다."소이연, 나랑 같이 열심히 하는 게 그렇게 어려워?”소이연은 마음이 아팠다.육현경은 줄곧 이런 식이었다.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왠지 애달파 보였다.무기력해지는 것 같았다.그녀가 말했다. "당신과 심아윤이 약혼 소식을 발표하고 나는 모든 것을 감수해야 할 만큼 당신에게 깊은 감정이 없다는 것을 분명히 말했어. 당신 때문에 나는 심씨 가문에게 복수를 당했지만 나는 심씨 가문을 상대할 능력이 없어. 육현경 씨, 왜 내가 당신과 심아윤의 사랑과 원한 때문에, 대가를 지불해야 하지? 이게 공평하다고 생각하는 거야?!”소이연은 확고한 태도로 말했다.육현경은 소이연을 설득하기 어렵겠다고 생각했다.지금 그의 노력은 모두 헛수고일 뿐이다. 오히려 소이연의 마음에 혐오감과 상처만 남길 뿐이었다.그는 소이연의 말대로 타협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기 시작했다.자신의 감정을 무시한 채 현실을 받아들이고, 아무런 감정도 없는 여자를 아내로 맞이한 뒤, 소이연이 원하는 행복을 주는 것이다.육현경은 꽉 쥐었던 주먹을 펴며 말했다. "다시 한번 기회를 줄 수 없어?”그는 낮은 목소리로 애절하게 말했다.소이연은 입술을 깨물었다."만약 이번에도 내가 널 지킬 수 없다면, 나 심아윤과 결혼할게. 그리고 앞으로 다시는 네 앞에 나타나지 않을 거야." 육현경이 약속했다.그는 실낱같은 희망을 품었다.소이연은 거절하려다 갑자기 말을 멈췄다.소이연은 육현경이 육민이가 그녀의 아이라는 사실을 알고 일부러 접근했다는 것을 알고부터 육현경에 대한 신뢰심을 잃었다. 그녀는 육현경이 그녀를 정말 좋아한다는 것을 믿지 않았다.작별 인사도 하지 않고, 심지어 육민을 내버려 두고 떠난 그녀에게 복수하기 위해 그러는 것으로 생각했다.지금도.그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육현경이 그녀를 어떻게 대하든 간에, 그녀는 이성을
육현경이 물었다."한 부 가져가도 될까?”"응.”"고마워."육현경이 고마움을 표현했지만 소이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는 그녀를 도와 사건을 조사하면서도 오히려 자기가 고맙다고 말했다."먼저 갈게, 진전이 있으면 바로 전화할게." 육현경은 지체하지 않고 돌아섰다."보름밖에 안 남았어."소이연은 다시 한번 상기시켰다."알고 있어."소이연은 육현경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그의 얼굴은 침착해 보였다.하지만 떠나는 그의 뒷모습은 다급했다.육현경에게도 까다로운 일 이겠지?육현경이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예수진이 돌아왔다.아마 하지수와 근처에 있었던 던 것 같았다."지수는 돌아가서 해야 할 일이 있다고 갔어요."예수진이 말했다."지수가 사건에 진전이 있으면 바로 언니에게 연락한다고 했어요. 만약 언니도 새롭게 알게 된 정보가 있다면 지수에게 꼭 연락하세요. 24시간 언제든 연락될 거라고 지수가 얘기했어요.”"그래요."소이연이 말했다.예수진은 갑자기 소이연을 똑바로 바라보았다.소이연은 고개를 숙인 채 소송 내용을 보며 예수진에게 물었다."할 말 있어요?”"사실 우리 오빠…" 예수진은 그녀의 눈치를 보며 입을 열었다.소이연은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예수진은 용기 내 말했다. "심아윤과의 결혼은 우리 오빠도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강요당했을 거예요. 오빠가 언니와 심아윤의 일을 매끄럽게 처리하지 못하고 있다는 건 알지만, 사실 어떻게 매끄럽게 처리할 수 있겠어요? 오빠가 언니를 쫓아다닐 때, 오빠는 심씨 가문이 그런 마음을 숨기고 있다는 걸 전혀 몰랐어요. 만약 알았더라면 오빠는 반드시 먼저 심씨 가문을 해결한 후 언니에게 왔을 거예요.”"하지만 언니에게 이미 감정이 생겼고 심씨 가문도 언니의 존재를 알게 됐어요. 오빠와 심아윤의 관계로 봐서는 손을 뗄 가능성은 거의 없어요. 물론 우리 오빠가 언니와의 관계를 끊고, 심아윤을 선택할 수도 있지만 오빠는 심아윤을 좋아하지 않아요. 언니가 없었다고 해도 심아윤과
그 말에 분위기가 순식간에 어색해지자 예수진이 다급히 말을 받았다.“너랑 나랑은 다르지.”“뭐가 다른데?”“난 너 안 좋아하니까 친구로 지낼 수 있는 거야.”그런 아픈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예수진에 하도경은 충격받은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헤어질 때 준 상처로는 부족했는지 만날 때마다 이렇게 하도경의 가슴을 후벼 파는 예수진이었다.“진짜 사랑했던 사람들은 친구가 될 수 없어, 내 말이 맞지 지수야?”일부러 하지수를 언급했지만 그녀는 입술만 말아 물고 있었고 오히려 송문수가 대답을 가로챘다.“그냥 친구로 지낼만한 가치가 없는 사람이라고 판단해서 그럴 수도 있지.”하지수는 입까지 올라온 말을 삼켜냈고 예수진은 생각 없이 아무 말이나 막 뱉는 송문수를 노려보며 저 싹수면 이혼당할 만하다고 생각했다.“우리 진짜 오랜만에 모인다, 다음에 만날 때쯤이면 우리 애도 다 태어났겠어.”“도경아, 오늘은 진짜 취하기 전엔 아무도 집에 보내지 말자.”계지원이 분위기를 풀기 위해 말하자 하도경도 눈치 있게 대꾸했다.“좋아.”어차피 예수진 때문에 마음고생을 너무 해서 더 다칠 마음도 없었기에 하도경은 공허한 제 가슴에 술이나 퍼부으려고 맥주를 따기 시작했다.그렇게 남자들 앞에 한 병씩 놓아준 하도경은 여자들을 보며 물었다.“우리 여자분들은 물, 우유, 음료수 중에 고르세요.”“전 물 마실게요, 알아서 마실 테니까 신경 안 쓰셔도 돼요.”“전 맥주 주세요.”평소엔 술을 즐기지도 않고 예수진과 소이연이 마실 때만 한 잔씩 같이 마시던 하지수가 갑자기 맥주를 요구하자 다들 눈을 크게 뜨고 그녀를 쳐다봤다.“오랜만에 보는 거니까 저도 한잔하고 싶어서요. 요즘 송승우 옆에만 있느라 또 언제 나올지도 모르잖아요.”“송승우는 좀 어때?”궁금한 건 못 참는 예수진이었기에 말 나온 김에 하지수를 향해 물었다.“아직도 죽겠다고 난리야?”“아니, 지금은 많이 좋아졌어.”“다 큰 남자가 왜 자기 목숨으로 가족들 협박하는 거야?”처음에는 송승우를 안타까워
그 한 달 동안 송문수는 하지수 앞에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부모님이 같이 밥이라도 먹자고 집으로 불러도 송문수는 회사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가족 모임에도 참석하지 않았다.말은 그렇게 해도 본인이 내키지 않아서 안 온다는 걸 허영지와 송기명은 알고 있었다.불행 중 다행으로 송승우의 회복속도는 눈에 띄게 빨랐다.송씨 집안 주치의가 매일같이 검사를 진행하며 회복속도를 체크하고 있었는데 이 정도면 두 달 뒤에 바로 의족을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소견도 듣게 되었다.그 말에 허영지와 송기명도 마침내 큰 시름을 덜었다는 듯 환하게 웃었다.송승우와의 교제를 약속한 하지수도 매일 그의 옆을 지키며 함께 재활 치료를 진행하고 있었다.그렇게 별장에서만 지내던 어느 날, 하지수는 예수진의 전화를 받게 되었다.곧 출산하는 데 그러면 산후조리원에 가야 해서 먹고 싶은 걸 마음껏 먹지 못하니 그전에 한 번 만나서 원 없이 밥이나 먹자는 연락이었다.그 말을 들은 하지수는 자신에게도 기분전환이 필요하다 싶어 더 고민할 것도 없이 그녀의 제안을 수락했다.지금 본인의 상태가 우울한 건지는 잘 몰랐지만 살아갈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어서 마음을 다잡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송문수도 가는 거야?”예수진과 밥을 먹으러 간다는 얘기를 송승우에게 했을 때 그가 던진 첫마디가 바로 저것이었다.송문수와 예수진의 사이가 돈독하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송문수와 하지수가 따로 만날까 봐 걱정돼서 한 질문인 것 같았지만 하지수는 바로 대답했다.“몰라요, 그건 안 물어봤어요.”“그런데 문수 씨가 간다고 해도 내가 못 갈 이유는 없잖아요. 송문수 때문에 내 가장 친한 친구를 안 볼 순 없어요.”하지수가 너무 직설적으로 말해 당황했던 송승우는 멋쩍게 웃으며 대꾸했다.“그냥 한번 물어본 거야. 속 아프니까 술은 너무 많이 마시지 마.”“네.”그날 저녁 하지수는 바로 예수진의 집으로 향했다.그때 집에는 예수진의 가족뿐이었는데 안 본 사이 더 커진 배를 보니 두
이혼 시간까지 다 정하고 나니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진 둘은 가만히 소파에 앉아있었다.그 숨 막힌 정적 속에서 한참을 앉아있던 송문수는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난 이만 가볼게.”말을 마친 송문수는 하지수가 대답하기도 전에 등을 돌려 집을 나서버렸다.서울을 떠날 때처럼 미련 없이 돌아서는 송문수에 하지수의 시야가 흐려졌다.하지수는 뿌얘진 시야에 끝까지 그의 뒷모습을 담았다.이튿날, 하지수는 약속대로 송문수와의 이혼을 위해 법원으로 향했는데 송문수는 먼저 와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그는 하지수가 차에서 내리며 안에 앉아있는 또 다른 이와 뭐라고 말하는 걸 지켜보았다.그 안의 있는 사람은 당연히 송승우일 것이기에 송문수는 시선을 돌리며 라이터를 만지작거렸다.공공장소에서는 흡연이 금지된 상태였기에 그는 이런 식으로 담배를 피우고 싶은 욕구를 잠재우고 있는 것이었다.하지수는 대화를 마친 건지 종종걸음으로 송문수에게 다가가 말했다.“오래 기다렸어? 미안해.”“아니야, 내가 빨리 온 거야.”그녀가 제게 다가오자 송문수는 라이터를 주머니에 찔러넣으며 말했다.“들어가자.”“그래.”그렇게 둘은 법원으로 들어가 대기하고 있었는데 그때 송문수가 합의서를 건네며 말했다.“내가 알아서 작성했는데 맘에 안 드는 거 있으면 바로 말해줘, USB 챙겼으니까 여기서 고칠 수 있어.”사실 어젯밤 송문수가 파일을 보내와서 하지수는 이미 확인을 마친 상태였다.둘 사이에는 자녀가 없으니 양육권 싸움도 없었고 이익을 따지는 사이가 아니니 재산분할에도 큰 문제 없었다.그럼에도 제게 40억을 주겠다는 송문수를 하지수는 처음에는 거절했지만 어차피 큰돈도 아니라서 헤어지는 대가로 주겠다는 그의 말에 공감이 가 그저 받기로 했다.송문수한테는 정말 적은 돈이긴 하니까.그리고 돈으로서 둘 사이를 깔끔히 정리하는 걸 송문수도 원할 것 같아 하지수는 결국 그걸 받는 조건으로 서류에 사인을 한 것이다.이혼서류를 제출하자 직원이 한 달간의 이혼 숙려기간이 있다는
애써 태연한 척하고 있었지만 핸들을 잡은 손이 하얗게 질려가고 있었다.제멋대로 날뛰는 심장임에도 송문수는 그걸 애써 무시하며 집으로 향했다.차가 멈추자 하지수는 송승우를 부축하며 차에서 내렸는데 송승우의 몸은 껌딱지처럼 하지수에게 딱 달라붙어 있었다.그를 차에서 내려 휠체어에 앉히는 모든 과정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웠다.마치 매일 하던 행동인 것 마냥, 그래서 몸에 배어버린 것마냥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하지수, 송문수, 송승우가 집 안으로 들어가자 허영지와 송기명도 마침 도착해있었다. 나이 드신 분들이라 보름 동안 돌아오지 못했던 집이 그리웠던 허영지와 송기명은 바로 방으로 돌아갔다.아무리 편한 호텔에서 자도 제집만은 못하기 때문에 그들은 먼저 잠부터 청했다.그리고 송승우도 피곤해해서 하지수는 휠체어를 밀며 그를 방에 데려다주었다.순식간에 혼자 남아버린 송문수는 소파에 앉아 하지수를 기다렸다.원래는 송문수를 데려다주고 나가려 했는데 저에게 할 말이 있다는 하지수 때문에 이렇게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솔직히 하지수가 언제 내려올지는 미지수였기에 송문수는 하지수가 잠에서 깬 다음에 내려올 수도 있다는 최악의 상황까지 염두에 두고 있었다.그렇게 되면 하루를 꼬박 기다려야 할 수도 있었지만 송문수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듯 보였다.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2층에서 홀로 내려오는 하지수가 보이자 송문수의 심장박동은 저도 모르게 빨라졌다.몸에 힘이 자꾸만 들어가며 뭐가 그렇게 긴장되는지 몸을 가만둘 수가 없었다.하지수가 자연스럽게 송문수의 옆에 자리 잡고 앉기는 했지만 둘 사이에는 아직도 어색한 기류가 감돌고 있었다.부부인데도 부부답지 않았고 가족임에도 가족 같지 않은 둘의 애매모호한 사이 때문이었다.이렇게 보니 제 인생은 참으로 우습기 짝이 없는 것 같아 송문수는 바로 본론부터 꺼냈다.“나한테 할 말 있다며, 뭐야?”송문수는 더 이상의 희망을 품지 않기 위해, 하지수와 한 지붕 아래에서 얼굴을 맞대지 않기 위해,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난 충동적인 적 없어요, 그리고...”하지수가 말을 다 하기도 전에 송승우가 대뜸 소리를 질렀다.“그럼 너 나랑 다시 사귈 수 있어?”터무니없는 그의 말에 하지수는 적잖이 당황했는데 송승우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말을 이어나갔다.“네가 내가 아닌 송문수를 좋아한다는 걸 난 못 믿겠어. 난 아직도 네가 그때 내가 말도 떠난 일로 화내는 것 같아. 그러니까 나랑 다시 사귀자. 6개월만 만나보고 그때도 네가 송문수를 선택한다면 나도 깔끔하게 포기할게.”하지수는 자신이 송승우를 다시 좋아할 리 없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가 완벽히 포기해야 끝나는 싸움이었기에 그의 제안을 받아들여 버렸다.하지수는 이제 송승우와의 이 지긋지긋한 인연에서 벗어나고 싶었다.“좋아요.”하지수가 긍정적인 답을 하자 자신만만했던 송승우의 얼굴에는 바로 미소가 번졌다.자신이 한쪽 다리를 잃긴 했지만 송승우는 그래도 하지수의 사랑을 다시 거머쥘 자신이 있었다.송승우는 단 한 번도 송문수를 제 상대로 여겨본 적이 없었다.그리고 하지수도 바보가 아닌 이상 이렇게 완벽한 저를 놔두고 멍청한 송문수를 선택할 리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조건이 하나 더 있어.”“말해요.”“문수랑 이혼부터 해.”“네가 나랑 사귀겠다고 했잖아. 난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해서 수군거리는 게 싫으니까 당당하게 너랑 만나고 싶어.”송승우의 말에 하지수는 입술을 말아 물고 생각에 잠겼다.송문수와의 결혼 관계를 유지하며 송승우와 만나는 건 바람피우는 거랑 다를 바가 없는데 그건 서로에 대한 존중을 깨는 거라서 하지수도 썩 내키진 않았다.“알겠어요.”하지수가 이혼만 하면 저와 재결합을 할 가능성이 더 커지는 것이기에 송승우의 미소는 아까보다 더 선명해졌다.“대신 나도 조건이 있어요.”“뭐든 말만 해.”기분이 좋았던 송승우는 하지수가 제시한 조건을 고민도 없이 받아들였다.송승우는 하지수는 어차피 저 아니면 안 된다고 자신을 하고 있었다....일주일 뒤, 송승우가 퇴원하자 드디어 가족들이 전부
“네.”“회사 일을 이제는 문수가 다 책임지고 있으니까 빨리 가는 것도 맞지, 승우도 많이 좋아졌으니까 이제 매일 간호할 필요도 없잖아.”하지수를 직접 키워온 허영지는 그녀의 기분이 안 좋다는 걸 한눈에 보아낼 수 있었다.그래서 빈말이지만 기분을 조금이라도 풀어주기 위해 애를 썼다.“네.”그런 허영지의 노력을 보아낸 건지 하지수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엄마, 아빠도 그동안 고생 많으셨어요. 저 이제 중환자실에서도 나오고 의사 선생님도 별문제 없다고 했으니까 두 분은 먼저 돌아가서 쉬고 계세요. 며칠만 더 있으면 퇴원도 가능하다고 하잖아요.”“그래.”송승우의 상태가 많이 좋아져서 마음을 놓을 수도 있었고 또 지금 하지수와 단둘이 있고 싶어 하는 아들의 속내가 너무 눈에 훤해서 허영지는 고개를 끄덕여주었다.“우린 그럼 먼저 갈게. 지수야, 승우 잘 부탁해. 네가 고생이 많다.”말이야 친절하기 그지없지만 사실은 하지수의 발을 여기 묶어두는 거나 마찬가지였다.“네.”하지수 역시 제 시어머니의 의도를 알지만 거절하지는 않았다.하지수의 대답을 들은 허영지는 마음이 한결 놓여 송기명을 밀며 병실을 빠져나갔다.송기명은 등 떠밀려 나가면서도 끊임없이 한숨을 내쉬었다.상황이 이렇게 흘러가는 데에 대한 불만이 많아 보였지만 그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허영지와 송기명이 나간 병실에는 하지수와 송승우 둘뿐이었다.“과일 좀 먹을래요?”“응, 고마워.”하지수가 먼저 그 어색한 정적을 깨며 묻자 송승우도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배를 집어 든 하지수는 열심히 깎기 시작했는데 송승우는 그런 그녀의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었다.한참 지나 껍질을 다 깎아낸 하지수는 배를 작게 썰어 송승우의 앞에 놓아주었다.“천천히 먹어요.”“넌 안 먹어?”“입맛 없어요.”송승우는 입맛 없다는 하지수에게 굳이 권하지 않고 천천히 과일을 먹기 시작했다.도도하고 자신만만하던 송승우의 모습을 다시 본 하지수는 송승우의 말대로 거기에 자신의 공
하지수는 송문수를 따라 송승우의 병실을 빠져나왔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앞을 향해 걷기만 했다.병원 입구에 도착하자 송문수를 기다리고 있는 차량이 보였다.그래도 작별인사는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싶어 차 문도 열지 못하고 망설이던 송문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결국 그냥 차에 타려 했는데 그 순간 하지수가 그를 불러세웠다.“문수 씨.”“장안시로 돌아가면 서울엔 다시 올 거야?”“안 올 것 같아 아마. 송승우도 많이 나았으니까 얼마 안 있으면 퇴원하겠지. 그럼 엄마 아빠가 송승우 집에 데려가서 보살피려 할 텐데 내가 뭐하러 여기까지 와 힘들게.”“그래서 나 혼자 여기 버려두겠다는 거구나.”하지수가 내뱉은 담담한 한마디에 송문수는 심장박동이 멎는 것만 같았다.숨을 내쉴 수조차도 없이 가슴이 아파와서 그는 이를 악문 채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여전히 침묵만 유지하는 송문수에 마지막 기대도 사라져버린 하지수는 이제 그만 그를 보내주기로 했다.송문수 말대로 자신은 그저 그가 마음을 다잡을 때 마침 옆에 있었던 여자일 뿐이니, 여기서 뭘 더 바라는 것도 욕심인 것 같았다.아무리 노력해봐도 송문수의 마음은 저를 향하지 않으니 하지수는 이제 그와의 사이를 끝내려 했다.“조심히 가.”이렇게라도 서로의 마음을 제대로 확인했으니 하지수는 그거면 된 것 같았다.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아주 많았지만 저 짤막한 한마디만 내뱉고 웃으며 돌아섰다.그 작은 몸통이 외로이 돌아서는 걸 보던 송문수는 가슴이 아파왔다.정말 제가 하지수를 버린 것만 같아서, 또 하지수를 혼자만 남겨둔 것 같아서 가슴이 아려왔다.주먹을 꽉 말아쥔 채 온몸을 떨어대던 송문수는 당장이라도 그녀에게로 달려가 그녀를 품에 안고 싶었다.하지만 그럴 수 없었기에 그는 제 충동을 잠재우며 무거운 발걸음을 내디뎌 결국 차에 올라탔다.하지수에게는 송승우가 있었으니, 그녀는 한 번도 혼자인 적이 없었으니 이번에도 혼자일 리는 없을 것 같아서 그는 미련 없이 돌아서기로 했다.한편 한참을
송승우가 병실을 옮기고 나니 가족들은 그제야 한숨 돌릴 수 있었다.“엄마, 아빠 고생 많으셨어요. 저 걱정하느라 제대로 쉬지도 못하셨죠.”“너만 괜찮을 수 있다면 우린 뭐든 다 할 수 있어.”병원 침대에 누운 채 감성 어린 말을 하는 송승우를 향해 허영지는 감격에 겨워 말했다.허영지는 송승우가 중환자실에서 나온 뒤 정말 많이 변한 것 같았다.더 이상 나쁜 생각은 하지 않고 전과 다름없이 씩씩하게 본인의 생활을 이어나가는 것 같았다.“제가 하루빨리 마음 다잡아서 이제 엄마 아빠 실망시켜 드리지 않을게요.”“넌 한 번도 우릴 실망시킨 적이 없는 애야, 넌 계속 우리의 자랑이었어.”제 손을 잡은 채 저와 눈을 맞추며 말하는 엄마를 향해 송승우도 웃음을 지어 보였다.정말 눈물 나도록 다정한 모자지간이었다.송승우가 병실을 옮긴다는 소식에 병원으로 달려온 송문수도 병실 한쪽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하지만 그들의 대화에는 끼지 못하고 고개를 숙인 채 라이터만 만지작거리는 그는 어쩐지 제 가족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것 같았다.한편 허영지와 대화를 나누던 송승우는 하지수에게로 시선을 돌렸다.그녀는 아직까지도 간호사에게 자신의 상태를 물어가며 앞으로는 어떻게 재활 치료를 진행해야 하는지에 대해 자세히 묻고 있었다.자신의 일에 이렇게 신경을 써주는 하지수를 보며 송승우는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고마워, 지수야.”“아니에요, 당연한 일인데요 뭘.”“네 덕분에 내가 이렇게 빨리 마음 다잡을 수 있었어. 너 아니었으면 현실을 이렇게 빨리 받아들이진 못했을 거야.”“나 응원해줘서 정말 고마워.”하지수는 결국 그 감사 인사를 받아들인다는 듯 웃어 보이고는 다시 간호사를 보며 디테일하게 보호자로서 해야 할 일들을 물었다.다들 제 자리를 잡은 듯한 모습에 송문수는 그만 병실을 나가려고 몸을 일으켰는데 그때 송기명이 그를 불러세웠다.“문수야, 어디 가?”“장안시로 돌아가야죠 이제.”담담히 말하는 송문수에 송기명은 놀란 기색을 내비쳤다.“지금
허영지의 말에 다들 그녀의 시선을 따라 눈을 돌렸고 그 시선 끝에는 하지수가 서 있었다.하얗게 질린 얼굴로, 멍하니 서 있던 하지수는 송문수를 빤히 쳐다보기만 했다.“지수야, 여긴 어떻게 왔어?”그런 하지수를 본 허영지는 다급히 그녀에게로 달려갔다.하지수가 송문수의 말을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들었다면 둘 사이에 감정이 있든 없든 마음이 아플 것은 당연지사였기에 허영지는 하지수가 안쓰러웠다.하지수는 굳어버린 고개를 힘겹게 돌리며 허영지를 향해 말했다.“일어나보니까 호텔에 아무도 없어서 왔어요.”눈 떠보니 사라져버린 송문수에 빠르게 병원으로 달려온 거지만 혹시나 송문수가 자신의 몸 상태를 걱정하며 오지 말라고 말릴까 봐 연락은 하지 않았었다.하지만 송문수가 또다시 허영지와 싸울까 봐 말도 없이 온 건데, 오자마자 하지수는 송문수가 내뱉는 차가운 말들을 모조리 들어버린 것이다.저를 물건 취급하며 송승우에게 넘겨주겠다는 송문수의 말에 하지수는 가슴이 찢어지는 것만 같았다.이제 좀 달라진 줄 알았는데, 송문수한테 저는 여전히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존재란 걸 이렇게 알게 될 줄은 몰랐는데...모든 게 다 저 혼자만의 착각인 것 같아 하지수는 저도 모르게 눈물이 차올랐다.“아직도 많이 피곤해서 전 이만 호텔로 돌아가 볼게요.”그래서 그녀는 빠르게 고개를 돌리며 병원을 나섰다.자신들에게 우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등을 돌리는 하지수를 보며 허영지 역시 마음이 편치는 않았다.하지수가 친딸은 아니었지만 어릴 때부터 같이 키워왔던 아이였기에 허영지는 그녀를 친딸 이상으로 아껴주었다.부모도 잃은 아이가 저렇게 충격받은 모습으로 자리를 뜨는 게 가슴이 아팠지만 허영지는 끝내 송문수 더러 하지수를 위로하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허영지는 이번에도 이기적이게 송승우를 위해 송문수를 희생시킨 것이다.송승우가 나을 수만 있다면 송문수와 하지수 사이에는 아무 감정도 없다는 그 말을 믿을 수 있을 것 같았다.하지만 송기명은 그런 아이들을 두고 볼 수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