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진이 송문수를 나쁘게 보는 건 다 본인 때문이라는 걸 알고 있다.그러니 자기 때문에 그녀가 화를 내는 것을 원망하지 않았다.“얘기는 거의 끝났지? 배고파. 어디 가서 밥이라도 먹자.”송문수가 먼저 입을 열었다.“그러자.”계지원이 대답했다.“뭐 먹고 싶어? 내가 예약 잡을게.”송문수가 예수진에게 물었다.솔직히 그녀에게 따질 이유도 없었다. 지금까지 제멋대로인 여동생으로 여겼기 때문이다.“두 분이 드셔. 난 지수랑 단둘이서 먹을 거야.”예수진이 거절하고는 한마디 덧붙였다.“난 싫어하는 사람과 밥 못 먹어.”“예수진, 너그러움을 좀 배워.”“그쪽 말한 거 아니거든?”예수진이 한마디 던지고는 하지수를 끌고 나갔다.“가자. 나가서 밥 먹자.”송문수는 두 여자가 사라지는 뒷모습을 바라보았다.한참 뒤에야 예수진이 한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챘다.그가 고개를 돌려 계지원에게 물었다.“설마 너를 말하는 거야?”계지원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성격이 얼마나 좋은데 참 이해가 안 되는 녀석이야. 너 수진이한테 잘해줬잖아. 쟤는 왜 너를 싫어하는데?”송문수는 어리둥절했다.“반면 현경은 성깔이 지랄맞아서 맨날 땍땍거리고 수진을 가르치잖아. 그래도 맨날 오빠 오빠하고 따라다니는데 쟤 정말 배은망덕하다. 핏줄이라는 거야?”계지원이 해명하지 않자 그도 더는 묻지 않았다.아마 계지원 본인도 눈치채지 못했을 거라 생각했다.…이튿날.소이연은 구치소에서 하룻밤을 묵었다.이곳 환경은 악랄하고 침대도 매우 딱딱했다.갑자기 문서인이 생각났다. 이렇게 빨리 자신이 전락할 줄은 몰랐다.어제 저녁 구치소에 들어와 마음을 진정시킨 후, 진지하게 사건을 되새겨보았다.그제야 심아윤이 혼자 벌인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심아윤은 대외로 수많은 일과 사람을 통제할 수 있지만 짧은 시간 내에 은하그룹 내부를 통제할 가능성은 매우 적다.그러니 내부에 분명 공범이 있을 것이다.소나은은 비록 은하그룹을 떠났지만 은하에 오랫동안 근무하면서 내부 직원들을 다
”넌 확실이 그럴 능력이 없어. 잔꾀만 한 트럭이지. 능력 있는 사람은 네 뒤에 있잖아.”소이연이 비꼬았다. 그러자 소나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역시 소이연은 모든 것을 짐작하고 있었다.“소나은. 내가 충고하는데 네가 감당할 수 없는 사람은 건드리지 않는 게 좋아.”“훗.”소나은은 더는 감추고 싶지 않았다.오늘은 소이연을 보러 온 목적은 그녀의 웃음거리를 보기 위해서다.그동안 많이 참아왔었다.“소이연, 강한 척하지 말고 그냥 질투한다고 말해. 내가 거물에게 빌붙은 것이 부럽고 넌 이 지경이 된 것이 억울하다고 솔직하게 말해!”소나은은 적나라하게 비꼬았다.“제 주제를 모르고 아무 사람이나 건드린 자신을 탓해. 자신의 능력을 너무 과대평가하지 마. 육현경이 언니를 죽기 살기로 사랑하는 거 같지? 근데 지금 봐. 언니가 구치소에 하룻밤 갇혔는데 육현경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네? 이익 앞에서 언니의 가치가 얼마라고 생각해?”소이연은 싸늘하게 그녀가 으스대는 모습을 쳐다봤다.“내가 똑똑해서 다행이지. 언니 때문에 육현경을 꼬실 뻔했어. 지금 내가 육현경과 사귄다면 당하는 사람은 나였어. 이러고 보니 내가 언니한테 감사해야겠네.”소나은은 말할수록 흥분했다.“육현경과 사귀지 않는 건 네가 똑똑한 게 아니라 능력이 없어서야.”소이연이 일침을 가했다.그러자 소나은의 얼굴이 벌게졌다.그때 육현경이 전혀 눈길을 주지 않아서 그에게 다가갈 기회조차 없었다.“그래서 뭐? 여자라고 남자 때문에 죽고 못살아야 돼? 나는 남자한테 목매지 않아. 다 내 발판일 뿐이야. 언니처럼 멍청하지 않다고, 그러니까 번번이 남자한테 당하는 거지!”소나은은 끝까지 조소를 날렸다.소이연은 갑자기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확실히 모든 재난은 남자한테서 비롯되었다.“소이연. 이 지경이 되었으니까 내가 그래도 피가 섞인 자매라서 말해주는데. 육현경 기대하지 마. 머리가 똑똑하다면 누가 언니를 노리고 있는지 짐작했을 거야. 그러니까 쓸데없이 반항하지 말고 잘못을 인정하고
심아윤이 왜 육현경과 같이 왔지?이건 대체 무슨 상황이야?그러나 누구도 그녀를 쳐다보지 않고 투명 인간처럼 무시해 버렸다.육현경은 바로 소이연의 앞에 앉으며 말했다.“보석 절차 끝냈으니까 지금 나가도 돼.”소나은이 저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었다.소이연이 뭐가 대단해서 육현경이 이 정도까지 나서서 도와주는지 이해되지 않았다.심아윤은 대체 무슨 속셈이야?막지 않고 뭐 하는 거냐고!소나은은 겉으로 내색하지 않고 친절하게 말했다.“잘 됐어, 언니. 드디어 나가는구나. 구치소 환경이 악랄해서 제대로 먹고 자지도 못했을 텐데.”소이연은 속으로 그녀의 연기에 감탄했다.하지만 어릴 때부터 그런 이면적인 얼굴에 익숙했다.소이연은 혐오하는 표정도 짓기 귀찮아서 무시하고 육현경을 따라 나갔다.어떤 손해도 보지 않을 것이다.비록 이 모든 것이 육현경 때문에 발생했지만 자기에게 유리한 것은 거절하지 않기로 했다.지금은 오로지 하지수와 함께 사건을 해결하고 싶었다.일행이 구치소에서 떠났다.밖에 나오자 예수진이 입구에서 소이연을 기다리고 있었다.육현경을 따라 나오는 소이연을 보고 허겁지겁 달려가 덥석 껴안았다.“언니, 드디어 나왔네요. 하룻밤 새에 많이 야위었어요.”그녀는 눈물까지 글썽거렸다.반대로 소이연이 그녀를 위로하는 꼴이 되어버렸다.“괜찮아요. 생각처럼 너무 나쁘지는 않았어요.”소이연이 가볍게 웃었다.그럴수록 예수진은 가슴이 더 아팠다.소이연은 눈물도 없어?울 줄 아는 아이한테 사탕을 준다는 도리를 몰라?“수진아, 그럼 나와 현경이는 먼저 갈 테니까 네가 이연 씨를 집까지 바래다줘. 할 수 있지?”심아윤이 말했다.“할아버지가 갑자기 장안에 오셔서 우리 둘 그쪽으로 가야 해.”예수진은 힐끗 볼 뿐 대꾸하지 않았다.눈앞의 여자가 아무렇지 않은 척 태연하게 말해도 소이연의 일과 관련이 있다고 단정했다.심아윤은 전혀 개의치 않다는 태도로 돌아서서 육현경에게 말했다.“가자. 우리 할아버지와 너희 할아버지가 기다리고 계셔. 시간
가로수 나뭇잎들이 바람에 날리며 쉴 새 없이 소리를 내고 있었다.소이연은 그 소리를 차분하게 듣고 있었다.성깔이 없어서가 아니라 지금 가장 중요한 건 그녀의 일을 어떻게 처리하냐는 것이다.방금 소나은의 말은 매우 옳았다.이 약육강식의 사회에서 그녀의 힘은 매우 미미했다.두 사람은 집에 돌아왔다.예수진은 소이연에게 말했다. "언니 먼저 씻고 쉬어요. 저는 음식 좀 주문할게요.”"그래요." 소이연이 대답했다.그리고 방으로 돌아갔다.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니 문득 하룻밤 사이에 정말 많이 초췌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녀는 심호흡했다.스스로에게 넘어지면 안 된다고 되뇌었다.마지막 순간까지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샤워를 마치고 나왔다.식탁에 음식들이 이것저것 올려져 있었다.예수진은 웃으며 소이연에게 음식을 집어주었다."너무 말랐어요, 많이 먹어요.”"나중에 들어가면 못 먹을까 봐 그러는 거예요?" 소이연은 자기 앞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음식들을 보며 농담했다.농담이 분명했는데 그 말을 들은 예수진은 눈시울이 붉어졌다.그녀는 정말 곧 들어갈 것 같았다."그런 불길한 소리 하지 마요, 우리 오빠가 꼭 해결해 줄 거예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반드시......”"오빠 얘기 좀 그만 해요.” 소이연은 예수진의 말을 끊었다.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았다.예수진은 소이연이 자기 오빠를 원망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그녀도 사실 원망한다.왜 그녀의 오빠와 심아윤의 갈등을 소이연이 책임져야 한다는 말인가?그녀라면 오빠를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워했을 것이다.그녀는 자기 오빠를 위해 단 한마디의 변명도 하지 않았다.둘은 식사를 마쳤다.소이연은 하지수에게 전화를 걸었다."구치소에서 나왔어요. 괜찮으면 제 사건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어요.”"네. 어디세요? 제가 갈게요.”"집이에요. 주소 보낼게요.”"네, 바로 갈게요.”30분도 안 되어 하지수가 소이연의 집에 도착했다.예수진은 하지수를 보고 놀라며 재빨리 말했다."이연 언
"분명히 누군가가 고의로 죄를 뒤집어씌운 거야." 예수진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다 알고 있지만 판사는 믿지 않아.”"두 번째로, 저는 소이연 씨의 재무 담당자를 만나러 갔는데 그녀는 모든 일은 당신이 초래한 것이라고 단언했어요. 그녀는 단지 소이연 씨의 지시대로 했을 뿐이라고 하더군요. 아무리 같은 대답이었어요. 소이연 씨의 비밀문서에 관해서, 그가 소이연 씨를 대신해 결제한 건 전부 소이연 씨의 친필 서명이 있었기 때문에 승인해 줬다고 했어요. 저도 확인해 봤는데 모두 소이연 씨 서명이 있었어요. 일부를 복사해 왔는데 한 번 확인해 보세요.”하지수가 소이연에게 서류를 주었다.소이연은 서류를 확인하고 말했다. "제 필체가 확실해요. 하지만 제가 서명하지 않았어요.”"누군가가 소이연 씨의 필체를 흉내 내서 서명한 뒤 재무 담당자에게 보여 주고, 담당자는 소이연 씨 서명을 보고 시스템에서 결재를 통과하고 도장을 찍어 유효한 세금 신고서로 만든 거예요." 하지수가 정리하며 말했다. “정말 오랫동안 음모를 꾸몄어요.”소이연은 침묵에 잠겼다.소송을 더 이상 진행할 수 없을 것 같았다.사건이 유리한 방향으로 흐를 수 있는 증거를 찾을 수 없었다.침묵이 흘렀다.밖에서 갑자기 초인종이 울렸다.소이연이 말하기도 전에 예수진은 급히 달려가 문을 열었다.육현경이 대문 밖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고 소이연은 무슨 말을 하려다가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오빠, 드디어 왔네.”예수진은 흥분하며 말했다. “방금 지수와 이연 언니 소송 건 논의하고 있었는데 상대방이 너무 교활해. 빨리 와서 봐.”"응." 육현경이 대답했다.그가 다가왔다.하지수는 소이연의 사건 내용을 육현경에게 건넸다.소이연은 하지수의 손에서 서류를 낚아챘다.육현경은 손가락을 떨며 소이연을 바라봤다."육현경 씨를 귀찮게 하고 싶지 않아요." 소이연이 직접적으로 말했다.분위기가 순식간에 어색해졌다.하지수와 소이연은 아직 어색한 관계라 뭐라고 말하기가 쉽지 않았다.예수진
방안에 침묵이 흘렀다.소이연의 말에 육현경은 할 말을 잃었다.그들은 서로 한 치의 양보도 하지 않았다.육현경은 웃는 듯했다.웃음이 쓸쓸해 보였다."소이연, 나랑 같이 열심히 하는 게 그렇게 어려워?”소이연은 마음이 아팠다.육현경은 줄곧 이런 식이었다.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왠지 애달파 보였다.무기력해지는 것 같았다.그녀가 말했다. "당신과 심아윤이 약혼 소식을 발표하고 나는 모든 것을 감수해야 할 만큼 당신에게 깊은 감정이 없다는 것을 분명히 말했어. 당신 때문에 나는 심씨 가문에게 복수를 당했지만 나는 심씨 가문을 상대할 능력이 없어. 육현경 씨, 왜 내가 당신과 심아윤의 사랑과 원한 때문에, 대가를 지불해야 하지? 이게 공평하다고 생각하는 거야?!”소이연은 확고한 태도로 말했다.육현경은 소이연을 설득하기 어렵겠다고 생각했다.지금 그의 노력은 모두 헛수고일 뿐이다. 오히려 소이연의 마음에 혐오감과 상처만 남길 뿐이었다.그는 소이연의 말대로 타협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기 시작했다.자신의 감정을 무시한 채 현실을 받아들이고, 아무런 감정도 없는 여자를 아내로 맞이한 뒤, 소이연이 원하는 행복을 주는 것이다.육현경은 꽉 쥐었던 주먹을 펴며 말했다. "다시 한번 기회를 줄 수 없어?”그는 낮은 목소리로 애절하게 말했다.소이연은 입술을 깨물었다."만약 이번에도 내가 널 지킬 수 없다면, 나 심아윤과 결혼할게. 그리고 앞으로 다시는 네 앞에 나타나지 않을 거야." 육현경이 약속했다.그는 실낱같은 희망을 품었다.소이연은 거절하려다 갑자기 말을 멈췄다.소이연은 육현경이 육민이가 그녀의 아이라는 사실을 알고 일부러 접근했다는 것을 알고부터 육현경에 대한 신뢰심을 잃었다. 그녀는 육현경이 그녀를 정말 좋아한다는 것을 믿지 않았다.작별 인사도 하지 않고, 심지어 육민을 내버려 두고 떠난 그녀에게 복수하기 위해 그러는 것으로 생각했다.지금도.그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육현경이 그녀를 어떻게 대하든 간에, 그녀는 이성을
육현경이 물었다."한 부 가져가도 될까?”"응.”"고마워."육현경이 고마움을 표현했지만 소이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는 그녀를 도와 사건을 조사하면서도 오히려 자기가 고맙다고 말했다."먼저 갈게, 진전이 있으면 바로 전화할게." 육현경은 지체하지 않고 돌아섰다."보름밖에 안 남았어."소이연은 다시 한번 상기시켰다."알고 있어."소이연은 육현경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그의 얼굴은 침착해 보였다.하지만 떠나는 그의 뒷모습은 다급했다.육현경에게도 까다로운 일 이겠지?육현경이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예수진이 돌아왔다.아마 하지수와 근처에 있었던 던 것 같았다."지수는 돌아가서 해야 할 일이 있다고 갔어요."예수진이 말했다."지수가 사건에 진전이 있으면 바로 언니에게 연락한다고 했어요. 만약 언니도 새롭게 알게 된 정보가 있다면 지수에게 꼭 연락하세요. 24시간 언제든 연락될 거라고 지수가 얘기했어요.”"그래요."소이연이 말했다.예수진은 갑자기 소이연을 똑바로 바라보았다.소이연은 고개를 숙인 채 소송 내용을 보며 예수진에게 물었다."할 말 있어요?”"사실 우리 오빠…" 예수진은 그녀의 눈치를 보며 입을 열었다.소이연은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예수진은 용기 내 말했다. "심아윤과의 결혼은 우리 오빠도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강요당했을 거예요. 오빠가 언니와 심아윤의 일을 매끄럽게 처리하지 못하고 있다는 건 알지만, 사실 어떻게 매끄럽게 처리할 수 있겠어요? 오빠가 언니를 쫓아다닐 때, 오빠는 심씨 가문이 그런 마음을 숨기고 있다는 걸 전혀 몰랐어요. 만약 알았더라면 오빠는 반드시 먼저 심씨 가문을 해결한 후 언니에게 왔을 거예요.”"하지만 언니에게 이미 감정이 생겼고 심씨 가문도 언니의 존재를 알게 됐어요. 오빠와 심아윤의 관계로 봐서는 손을 뗄 가능성은 거의 없어요. 물론 우리 오빠가 언니와의 관계를 끊고, 심아윤을 선택할 수도 있지만 오빠는 심아윤을 좋아하지 않아요. 언니가 없었다고 해도 심아윤과
"글쎄요."소이연은 답변을 거부했다.예수진이 말했다."첫눈에 반했대요.”소이연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물론 저도 찍어 맞췄어요. 어쨌든 우리 오빠의 그 비밀은 아무 몰라요.”예수진은 추측했을 뿐, 사실 그녀도 확신하지 못했다.그녀의 오빠처럼 차가운 사람이 그렇게 어린 나이에 그렇게 로맨틱하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이연 언니, 오늘 밤 마지막 촬영은 원래 진작에 해야 했는데, 제가 그동안 너무 많은 일이 있어서 촬영에 복귀하지 못했어요. 이번 촬영을 마친 후에 매니저에게 당분간 일정은 잡지 말라고 할게요. 언니와 함께 소송을 끝낼게요.”"괜찮아요. 수진씨 일에 방해되고 싶지 않아요...”"제 마음 거절하지 말아 주세요."예수진은 소이연에게 말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이따 매니저랑 촬영장에 가서 촬영하고, 별일 없으면 새벽 2~3시에 일을 끝내고 집에 올 수 있을 거예요. 그러니 기다리고 있어요.”소이연은 예수진의 열정에 찬물을 끼얹고 싶지 않았다.예수진이 떠난 후 소이연은 소파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그녀는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어쨌든 소송에 얽매여 있으니, 마음이 불편한 것을 어쩔 수가 없었다.방금 예수진이 말한 '첫눈에 반했다'라는 말이 머릿속에 맴돌았다.육현경이 그녀에게 감정이 생긴 것은 그들이 관계를 맺은 그날 밤이라고 하지 않았나?이름을 바꾼 건 우연이겠지?그녀는 결국 휴대전화를 들고 전화를 걸었다."응." 상대의 목소리는 약간 잠긴 듯했다.반가웠지만 놀란 것 같았다."이 소송사건에서 가장 주의 깊게 조사할 사람은 소나은이야."소이연은 그에게 상기시켰다.그녀는 그와 함께 의논하기로 합의했다."맞아." 육현경이 대답했다. "지금 너희 회사의 재무 담장자와 소나은의 관계 조사 중이야. 단서를 찾을 수 있는지 알아볼게. 내 생각에 재무 담당자가 억울하게 뒤집어쓴 것일 수도 있고, 소나은에게 약점을 잡혔거나, 아니면 엄청난 대가로 유혹당한 것일 수도 있어.”"첫 번째 가능성이 커."소이연은 자기의 생각을
그리고는 간호사 하나가 걸어 나오며 말했다.“소이연 씨 보호자 계세요?”“네!”“아기 나왔습니다. 3.15킬로...”“산모는요?”간호사의 말에 우렁차게 대답한 육현경은 아이는 신경도 안 쓰고 소이연의 상태부터 물었다.“산모분은 아주 건강하십니다. 지금 선생님께서 상처 처리하고 계시니까 곧 나오실 겁니다.”“아빠 맞으시죠? 아이 한 번 안아보실래요?”그제야 안도한 육현경이 아이를 안아 들자 친구들이 우르르 몰려오며 한마디씩 하기 시작했다.“어머, 어쩜 이렇게 하얗지? 내가 본 아기들 중에 제일 예쁜 것 같아.”“지금 네 아들은 못생겼다는 소리야?”“솔직히 말하면 좀 못생기긴 했어.”하도경의 시비에 예수진이 너무 솔직히 답하자 계지원이 그게 사실인 걸 알면서도 자기 아들 외모를 저렇게 평가하는 게 썩 기분 좋지는 않았는지 헛기침을 해댔다.“나도 안아볼래.”예수진의 말에 육현경은 바로 아이를 넘겨주었다.“우리 공주님, 너무 귀엽다. 왜 하필 혈연관계인 거야!”피가 섞인 남매라서 자기 아들과 맺어줄 수 없다고 안타까워하는 예수진에 하지수도 궁금해서 다가가 보았다.“나도 봐봐.”가까이에서 보니 정말 떡잎부터 남다른 예쁜 아이였다.장차 아주 예쁘게 클 것 같아서 하지수는 아이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물었다.“딸이야?”“딱 보면 딸이지, 이 얼굴이 남자일 리는 없잖아.”간호사가 대답하려던 그때 분만실 분이 또 한 번 열리고 소이연이 휠체어를 타고 나오자 육현경은 다급히 달려가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며 말했다.“고생했어.”“이제 돌아가서 쉬자. 우리 이제 아이는 그만 가지자.”소이연이 고생하는 게 마음 아팠던 육현경은 잔뜩 굳은 얼굴로 간호사에게서 휠체어를 받아 병실로 향했다.친구들도 그런 육현경을 따라 병실로 향하고 있었는데 성큼성큼 걷던 하지수가 휑한 옆자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송문수가 아직도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왜 움직이지 않는지 의아해진 하지수가 그를 바라보자 송문수가 그녀와 시선을 맞추며 입꼬리를 올려 보였다.
“뭐라고요?!”놀란 예수진이 언성을 높이자 육현경도 표정을 굳히고 소이연을 바라보았다.늘 소리소문없이 일을 처리하던 육현경은 이번에도 다들 벙쪄있는 틈을 타 소이연을 안고 밖으로 나갔다.예수진도 그 뒤를 따라 나가려 하자 계지원이 그녀를 잡아 세웠다.“수진아, 오늘 이 자리 우리가 만든 거야.”“그래도 갈 거야. 당신은 엄마랑 현경 오빠 어머님한테 손님들 좀 부탁한다고 전해줘. 난 언니한테 가봐야겠어.”예수진을 말릴 수 없다고 생각한 계지원도 잠시 고민하다가 그녀의 뒤를 따라 나가자 상황이 심상치 않게 흘러감을 눈치챈 송문수와 하지수도 아쉬운 듯 서로에게서 떨어졌다.“키스 다 했으면 빨리 병원 가. 이연 씨 출산한대.”출산이라는 말에 하지수도 다급히 뒤 따르려 하자 송문수가 그녀를 잡으며 말했다.“천천히 가. 그래도 안 늦어.”그렇게 몇 분도 안 된 사이에 많은 사람들이 파티장을 빠져나갔다.예수진이 둘째를 위해 연 백일잔치는 사라진 엄마 아빠 때문에 아이 혼자 남겨진 채로 끝이 나버렸다.그들이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양수가 터진 소이연이 분만실로 옮겨진 뒤였다.상황이 많이 급박한지 늘 침착함을 유지하던 육현경조차도 많이 초조해 보였다.아까부터 입구에서 서성이는 육현경을 보다 못한 예수진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오빠, 가만히 좀 있어 봐. 지금 다들 긴장하고 있는데 오빠 때문에 더 진정할 수가 없잖아.”직설적인 그녀의 말에 육현경이 예수진을 보자 계지원이 다급히 나서며 분위기를 풀었다.“아무 일 없을 테니까 걱정 마. 수진이도 그때 오래 걸렸잖아. 낳으면 된 거지 뭐.”말은 그렇게 해도 사실 계지원도 육현경 못지않게 초조해했었다.당장이라도 분만실로 뛰어 들어가 예수진 대신 아이를 낳아주고 싶어 했었다.그런데 그때, 분만실에서 소이연의 고통스러운 비명소리가 흘러나왔다.주먹을 쥐고 있던 육현경의 손이 점점 하얗게 질려감에 따라 지켜보던 친구들의 긴장감도 고조되고 있었다.다들 긴장하고 있는 와중에 송문수가 갑자기 하지수의 손
“임신 때문에 살쪄서 그런 거야. 문수 씨 탓 아니야.”하지수가 당황한 송문수를 달래주자 그는 벙찐 표정으로 물었다.“그럼 어떡하지?”“살 빼고 나서 다시 끼지 뭐.”“그래.”하지수에게 반지를 직접 끼워주는 건 송문수가 꿈에서도 그리던 장면이었는데 예상치 못한 이유로 못하게 되는 그는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하지수가 자신과 결혼만 해준다면 앞으로의 날은 길 것이기에 송문수는 그만 몸을 일으켰다.그런데 그가 일어서자마자 사람들이 소리높이 외치기 시작했다.“키스해! 키스해!”갑작스러운 호응에 하지수의 얼굴이 빨개지자 송문수는 그녀가 난처해지지 않게 당분간은 자신의 욕구를 억누르기로 했다.사실 그날 밤, 하지수와의 잠자리는 송문수에게 많은 미련을 남겨주었다.잠을 자다가도 쉴 새 없이 흥분해서 밤에 속옷을 몇 번이나 씻기도 했었다.그렇게 그녀를 원했어도 자리가 자리인 만큼 송문수는 하지수의 손을 잡고 내려가려 했는데 그 순간, 하지수의 입술이 송문수에게 닿아왔다.그녀가 먼저 한 입맞춤은 송문수의 심장을 뒤흔들기 충분했다.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입맞춤을 당한 송문수가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갈팡질팡하고 있는데 그때 하도경의 장난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뽀뽀 한 번에 바보 된 거야?”“...”그 말에 욱한 송문수였지만 여자친구도 없는 친구를 위해 한번은 참아주기로 했다.“신경 쓰지 마. 우리 내려갈...”그런데 그때, 하지수가 또다시 입을 맞춰왔다.하지만 이번에는 아까처럼 닿았다가 금방 떨어지는 입맞춤이 아니라 오래도록 이어지는 키스였다.작은 그녀의 혀가 불규칙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하자 송문수의 몸은 그대로 굳어버렸고 그의 심장박동 또한 정직하게 빨라졌다.정말 자신을 죽이려 드는 하지수에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송문수는 하지수의 뒤통수를 손으로 잡고 키스를 이어가기 시작했다.임신을 해도 작기만 한 체구의 하지수는 금방 송문수에게 주동권을 뺏겨버렸다.두 사람의 행복을 빌어주기라도 하듯 무대 위로 장미꽃잎이 흩날리고
다들 숨을 죽이고 송문수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하지수의 눈엔 눈물이 가득해서 눈을 조금만 깜빡여도 쏟아질 정도였지만 그녀 역시 온 힘을 다해 참아내고 있었다.송문수는 그 정적 속에서 입술을 말아 물며 많은 고민을 거쳐 마침내 입을 열었다.“결혼하자.”그 대답이 들리기까지의 몇 분이 하객들에게는 한 세기만큼 길게 느껴졌다.송문수의 말이 끝나자마자 하지수도 기쁨의 눈물을 왈칵 쏟아냈고 송문수는 그런 그녀를 향해 한 번 더 소리높이 외쳤다.“하지수, 결혼하자. 너랑 결혼하는 게 내 평생의 소원이었어. 나중에 후회하더라도, 네가 지금 충동적으로 결정한 거라 해도 넌 이제 평생 내 여자야. 다시는 너 다른 남자한테 안 보내. 아주 박력 넘치는 남자가 될 거라고.”“난 후회 안 해.”송문수와의 결혼을 하지수가 후회할 리는 없었다.그때 예수진이 무대 위로 올라가자 송문수는 그제야 이 자리의 주인공이 예수진이었다는 걸 깨닫고는 다급히 하지수를 데리고 내려가려 했다.그런데 그때 예수진이 빨간 보석함 하나를 송문수에게 보여주었다.“이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는 알지?”그 안에 들어있는 건 송문수가 하지수를 위해 준비한 프러포즈 반지였다.익숙한 상자가 등장하는 순간부터 그 사실을 기억해낸 송문수였다.송문수는 하지수에게 가장 특별한 반지를 만들어주기 위해 세계적인 디자이너까지 초빙하며 큰 공을 들였었다.“이제 네가 가져.”예수진이 그것을 송문수에게 건네주자 그는 떨리는 손으로 받아들고는 천천히 보석함을 열어보았다.반짝이는 5캐럿의 다이아몬드가 마침내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게 된 것이다.눈이 멀어버릴 정도로 반짝이는 반지를 집어 든 송문수는 하지수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자신이 상상해왔던 화면이 눈 앞에 펼쳐지자 하지수는 감격의 눈물을 흘렸는데 송문수 역시 눈가가 촉촉해진 채로 목멘 소리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지수야.”송문수의 부름에 하지수는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예전에는 내가 진짜 나쁜 놈이었어. 맹세할게, 앞으로는 진짜 좋
그런데 하지수가 이런 마음을 전하기도 전에 송문수가 그 먼 타지로 떠나버린 것이다.그래도, 송문수가 정말 자신을 싫어한다 해도, 정말 자신과 헤어지고 싶어 한다 해도 송승우와 함께하지 않겠다는 하지수의 마음은 한 번도 변한 적이 없었다.물론 자신을 쉽게 포기하는 송문수에 잠깐 실망도 했었다.그러면서 송문수에게 자신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예수진과 소이연이 저 영상을 보여주지 않았더라면, 그들이 송문수가 준비해온 모든 것들을 알려주지 않았더라면 하지수는 영원히 송문수가 오래도록 자신을 좋아했다는 사실을 몰랐을 것이다.눈에 눈물을 가득 매단 하지수를 보던 송문수는 가슴이 아파와 손을 뻗으려 했지만 다시 움츠러들었다.지금 송문수는 무슨 결정을 내려야 할 지 몰랐다.혹여나 자신의 선택이 하지수에게 부담으로 다가갈까 봐, 그녀의 모습을 보며 송문수는 괴로워하고 있었다.너무 괴로워서 생긴 착각인지, 송문수는 하지수도 자신을 사랑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하지만 하나 마음에 걸리는 게 있다면 그건 바로 하지수 배 속의 아이였다.물론 송승우의 아이라 해도 송문수는 상관없었지만 하지수도 개의치 않을 수 있을까가 그의 의문이었다.“나 너랑 결혼하고 싶어. 네가 나한테 잘해줘서가 아니고, 네가 오래전부터 날 좋아해서도 아니고, 날 위해 많은 걸 준비해줘서도 아니라 그냥 내가 좋아서. 그래서 결혼하고 싶어. 다른 거랑은 아무 상관없어.”하지수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송문수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네가 좋아하는 건 송승우잖아.”“아니라고 몇 번을 말해. 난 송승우 안 좋아해. 아주 오래전부터 이미 끝난 사이였어. 말했잖아, 그때 좋아한다고 느꼈던 감정은 그냥 습관 같은 거였다고. 내가 좋아하는 건 너야. 미안해서가 아니라 그냥 네가 좋아!”매번 좋아한다고 할 때마다 믿질 못하는 송문수 때문에 하지수는 화가 치밀어올랐다.물론 송문수가 자신을 믿지 못해서 화가 난 게 아니라 송문수가 본인한테 자신감이 너무 없는 것 같아
파티장 안의 모든 불빛은 송문수와 하지수에게 집중되어 있었다.무대 중앙에 선 하지수는 송문수를 바라보고 있었고 송문수도 사람들 틈에서 하지수를 바라보고 있었다.지금 하지수는 송문수가 그냥 가버릴까 봐, 그게 제일 무서웠다.하지수는 자신이 이런 용기를 내는 것도 마지막일 것 같았다.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감정을 마주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니.조용한 그 공간에서 송문수가 갑자기 무대로 향해 걸어갔다.한발 한발, 무거운 발걸음이었지만 그 발걸음이 향하는 곳은 확실했다.그래서 하지수의 심장박동도 빨라졌다.더 이상 컨트롤이 되지 않을 정도로.모두들 숨죽인 채 송문수와 하지수를 보고 있었지만 그중에서 가장 마음을 졸이는 건 예수진과 소이연이었다.겁이 많은 송문수가 도망이라도 갈까 봐 걱정하고 있었는데 다행히도 송문수가 책임감은 있어서 하지수를 혼자 남겨두진 않았다.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송문수가 하지수에게로 다가섰고 두 사람은 말없이 서로를 응시했다.송문수의 눈은 빛나고 있었고 울대는 잔잔히 떨리고 있었다.심경에 크나큰 변화가 일었지만 애써 본인을 진정시키려 하는 게 눈에 훤히 보였다.“지수야, 이건 마음에 담아두지 마.”그러다 갑자기 내뱉은 말에 하지수는 송문수를 빤히 쳐다보았다.“그때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어서 이런 걸 찍었는지도 모르겠어.”송문수는 이번에도 장난인 척 너스레를 떨며 상황을 넘기려 했다.“너도 알잖아 나 이상한 거. 충동적으로 무슨 짓이든 하는 사람이잖아. 그러니까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진 마.”말을 마친 송문수가 직원을 찾아가 영상을 지우려 하자 하지수가 입을 열었다.“난 이미 진지하게 받아들였어.”그 말에 발이 잡힌 송문수는 빨라지는 심장박동을 애써 늦추며 말했다.“미안해.”송문수의 갈등과 무력함을 보아낸 하지수의 눈에도 어느새 눈물이 차올랐다.“너 헷갈리게 해서 미안해. 만약 네가 신경 쓰인다면... 앞으로 네 앞에 안 나타날게. 너도 나 같은 사람 때문에 힘들어하지 마. 그럴 가치 없
오늘 온 손님들은 하나같이 외향형인지 호응도 아주 잘해줬다.“네! 궁금해요!”“한 여자를 위해선데요.”“누구예요?”“바로 하지수입니다.”영상 속의 자신이 한 자 한 자 내뱉는 말들을 듣던 송문수는 그제야 이게 자신의 프러포즈 영상이었음을 깨달았다.처음에는 이게 어떻게 여기 있는지 당황스러웠지만 항상 일 처리에 미흡한 예수진이 이번에도 실수한 거라 생각해 송문수는 무대 위로 올라가 영상을 멈추려 했다.그런데 그가 발을 내디디자마자 육현경과 하도경이 그 앞을 막아섰다.그리고 영상은 계속해서 재생되었다.“하지수는 제 아내입니다. 결혼한 지 몇 년이나 되었지만 한 번도 제대로 사랑해준 적이 없었죠. 사실 저는 사랑하지 않는 게 아니라 사랑할 용기가 없었던 겁니다. 제가 너무 비겁해서 그 사람 앞에만 서면 저 자신이 쓸모없어지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늘 유치한 방법으로 그 사람에게 상처만 줬어요.”영상 속 송문수의 얼굴에는 미안함이 가득했다.“미안해 지수야. 나 지금 엄청 후회하고 있어. 괜한 질투로 널 몇 년 간 힘들게 한 걸. 매일 밤 널 안고 자고 싶었는데도 난 자존심 때문에 그런 말 한마디 못했어. 그래서 내 인생이 좀 덜 재밌었던 것 같아. 너라는 복지가 부족했잖아.”감동하며 영상을 보고 있던 사람들은 마지막 말에 웃음을 터뜨렸다.참 울지도 웃지도 못하게 하는 고백 영상이었다.“사랑해, 지수야.”뒤이어 마침내 사랑한다는 말이 나왔는데 그때 송문수의 눈은 확신이 가득 차 있었다.“널 처음 본 순간부터 사랑했었어. 그런데 네가 좋아하는 게 내가 아니니까 점점 비참해지더라. 그래서 네가 싫어하는 방법으로 네 시선을 끌려고 했어. 그때만 생각하면 아무리 나라도 너무 멍청한 것 같더라.”“하지만 이젠 아니야.”“내가 그렇게 대단한 사람은 못 돼도 세상에서 너한테 가장 잘해주는 남자는 될 수 있어.”“더 이상 너한테 성질도 안 내고 부려먹지도 않을게. 괜한 질투 때문에 너 상처받게 하지도 않아. 우리 집은 이제 너한테 맡길 거야. 돈도
파티장에 들어와 보니 계지원과 예수진이 아들딸과 함께 와준 손님들에게 인사를 해주고 있었다.인사를 마친 예수진은 흥분된 목소리로 하지수를 불렀다.“이번에는 제 가장 친한 친구이자 우리 아들의 영원한 이모일 하지수 씨를 모셔보겠습니다.”파티장 한구석에 선 송문수는 무대 위로 올라가는 하지수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아까는 제대로 볼 엄두가 안 나서 애써 무시하려 했던 그녀의 배가 꽤나 불러온 것 같았다.옷을 입어도 다 가려지지 않는 게 이미 임신 몇 개월은 된 것 같았다.정말 자신은 안중에도 없었는지 이렇게 빨리 임신한 하지수가 송문수는 조금은 원망스러웠다.이어서 마이크를 잡은 하지수는 누군가를 찾는 듯 무대 아래를 훑어보았다.한참이 지나 자신에게로 향하는 그녀의 시선에 다급히 눈을 피하던 송문수가 다시 고개를 돌렸을 때 하지수의 시선은 이미 사라져있었다.그에 송문수는 그녀가 찾던 건 아마 송승우일 거라고 짐작하고 있었다.그런데 끝까지 모습을 비추지 않는 송승우 때문에 그저 시선을 거둔 것 같았다.“우선은 수진이 아들 이모가 될 수 있어서 너무 영광스럽고요.”“수진이가 제 배 속에 있는 아이가 딸이면 꼭 사돈을 맺자고 그러더라고요.”“저도 우리 조카 귀여워서 너무 사랑하거든요.”“하지만 사돈은 저 혼자 맺는 게 아니잖아요. 애 아빠 입장도 있고 하니까요.”그러자 예수진의 격앙된 목소리가 또 한 번 들려왔다.“그럼 얼른 애 아빠부터 불러서 오늘 사돈 한번 맺자!”“아이 아빠는...”그녀의 말에 담담히 웃던 하지수는 갑자기 말을 멈췄다.마른 침을 삼키며 그 모습을 보던 송문수는 정말 송승우를 한 대 때려주고 싶었다.가장 사랑하는 여자를 내어줬는데도 책임을 다하지 않고 이런 날에 하지수를 혼자 이곳에 보내고 또 혼자 무대 위에 올리는 게 어떻게 남편이라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짓인가 싶었다.“수진아, 내가 무대 좀 써도 돼?”“당연하지, 오늘 이 자리는 널 위한 거야.”“아, 아니다. 내 미래의 며느리를 위한 거지.”예수진의 한마디에
하지수의 말을 끝으로 두 사람의 시선이 맞물리자 송문수가 황급히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당연하지.”“진짜야?”“내가 왜 널 속이겠어?”“그런데 왜 안 데려왔어?”“이번엔 시간이 별로 없어서 괜히 고생만 할까 봐 안 데려왔어.”“나중에 기회 되면 데리고 올 거야.”“예뻐?”“내가 안 예쁜 여자 사귀는 거 봤어? 외국 여자들은 몸매도 좋아. 원래 S라인이 내 취향이잖아.”“사진 있어?”하지만 저 질문에는 송문수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그래서 몇 초 동안 침묵을 유지하다가 다시 능청스레 대답했다.“있지.”“내가 봐도 돼?”“왜? 뭐 심사라도 해주게?”“아니, 그냥 궁금해서. 네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여자는 어떻게 생겼는지.”“보면 너 상처받을까 봐 안 보여줄 거야.”“괜찮아.”송문수도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며 거절하려 했지만 하지수는 쉽게 물러나지 않았다.“다음에 직접 데려와서 보여줄게.”“지금 보고 싶어.”“카메라는 잘 안 받아서 실물보다 별로야.”“왜 안 보여주는 거야? 설마 없는 거야?”“설마 내가 너 못 잊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걱정 마. 난 원래 감정에 얽매이지 않는 사람이거든. 절대 너한테 매달리지 않을 거야.”송문수가 확신에 찬 말을 하자 하지수는 씁쓸하게 웃어 보였다.“매달린 적이 있긴 해?”그런 하지수의 모습을 보니 또 가슴이 아파왔지만 송문수는 꾹 참기로 했다.송승우의 아이를 가진 하지수는 이미 자신에게서 너무 멀어져 있으니까.“나 화장실 좀 다녀올게.”하지수는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멀어져가는 송문수의 뒷모습을 가만히 보고만 있었다.한편 화장실로 들어온 송문수는 물을 틀어놓고 손을 몇 번이니 씻어댔다.더 이상 손에 감각이 없을 정도로 아까부터 한 동작만 반복하고 있었다.“더 씻으면 손 터져.”그 모습을 본 하도경이 직접 물을 꺼주자 송문수는 넋 나간 사람처럼 고개를 끄덕이고는 하도경이 건넨 휴지를 받아 손을 닦아냈다.“고마워.”“이게 진짜 뭐 하는 짓이냐. 그렇게 좋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