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 잠든 후, 날이 밝았는지도 모르고 정신없이 자는 사이에 소이연이 도망갔다.솔직히 어제저녁에도 그랬다.소이연이 잠든 후, 온몸이 젖어서 감기라도 걸릴까 봐 씻겨줬다. 그리고 그도 씻었다.샤워를 했더니 이상하게 정신이 번쩍 들었다.아침에 일어나면 어떤 말로 설명해야 할지 고민했다.그리고 지난번처럼 정신없이 자면 안 된다고 자신에게 경고했다.소이연이 다시 눈앞에서 사라지기 전에 일어나서 똑바로 얼굴을 마주하고 말을 할 생각이었다.다행히 그녀가 떠나기 전에 눈을 떴다.“나…”육현경이 해명하려고 할 때 소이연이 그의 손을 뿌리치며 말을 잘랐다.“어젯밤 일은 잊어. 이미 습관 됐어. 일어났으면 가.”“어젯밤에 우리…”“당신을 더 미워하고 싶지 않아.”소이연이 돌아서서 그를 바라봤다.육현경의 모습을 보고 눈을 휘둥그레 떴다.그가 침대에 앉을 때 이불이 흘러내려 벌거벗은 상반신이 노출됐다.하지만 벗은 상반신보다 흉하게 긁힌 상처가 눈에 더 띄었다.목은 더 처참했다.붉은색 이발 자국이 빼곡히 찍혀 있었다.소이연은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전에 육현경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만약 그녀가 도망쳤을 때 한 번이라도 그를 봤었다면 온몸의 상처를 발견했을 거라고 했는데 거짓말이 아니었다.그녀가 시선을 돌리고 다시 싸늘하게 말했다.“어제 일에 대해 당신만 탓하지 않아. 내가 사람을 잘못 만나서 문서인에게 당한 건데 당신이 아니었다면 문서인과 잠자리를 했을 거야. 근데 문서인이 성공하지 못해서 다행이라 생각해. 날 구해준 건 고마워. 하지만 지금 내 심정이 너무 개 같아서, 나도 사람인지라 받아들이지 못하는 일들이 있어. 18살에 남았던 후유증이 사라지지 않았는데 또다시 반복하니까 현실을 마주할 자신이 없어.”육현경이 그녀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봤다.분명 미워 죽겠으면서 납득하려고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고 있다.“이기적이라고 생각해. 어젯밤 일은 다시 언급하고 싶지 않고 다시 기억하고 싶지 않아. 그냥 없었던 것처럼 나 자신을 속이고
어젯밤 누구도 그가 어떤 일을 겪었는지 모를 것이다.그녀의 유혹에 죽을 지경인데 차마 건드릴 수 없었다.더군다나 떠날 수도 없어서 계속 옆에서 약발이 사라질 때까지 곁을 지켜줬다.그녀가 자신을 해칠까 봐 노심초사하고 또 자신이 그녀를 덮칠까 봐 중요 부위를 진정시켰다.그런 경험을 해보지 못한 사람은 상상도 할 수 없을 것이다.간신히 이겨냈다고 생각했는데 깨어나자마자 그녀에게 억울함을 당했다.하나님도 노할 판이다.그의 말을 듣던 소이연이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왠지 믿어지지 않았다.몸이 구석구석 다 아픈 것이 꼭 지난번과 똑같았기 때문이다.게다가 육현경의 몸에 생긴 상처들을 봐도 그걸 했다고 증명해 주고 있었다.“못 믿겠으면 병원에 가서 검사해. 집에는 콘돔도 없고 네가 달려드는데 내가 나가서 콘돔 살 여유가 있었겠어?”육현경은 귀신같이 알아채고 그 부분에 대해 설명했다.그녀가 믿지 못해도 탓하지 않았다.하지만 지금 상황은 아무리 봐도 섹스할 때 남긴 흔적들이다.소이연이 입술을 깨물었다.18살 때 잠자리를 한 남자가 본인이라는 사실을 숨겼지만 그동안 그의 인품과 자존심, 교양을 지켜본 결과 거짓말할 사람이 아니었다.게다가 그녀를 속인 사실을 부정하지도 않았다. 먼저 말하지 않았을 뿐이다.지금 소이연은 이런 기분을 어떻게 표현해야 될지 몰랐다.어쩌면 더는 육현경을 받아들이기 싫어서 마음을 닫아버리고 가장 나쁜 방향으로 생각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심지어 어젯밤에 무슨 일을 겪었는지 기억하고 싶지도 않았다.그 이유는 더는 상처받고 싶지 않고 그의 다정함을 아는 게 싫었기 때문이다.그래서 마음을 닫아 버리기로 했다.“지금 당신 몸에 상처가 생기고 아픈 건 어젯밤에 너무 반항해서 내가 말리느라 힘 조절을 못해서 생긴 거야. 그리고 내 몸에 상처들은 만족시키지 못했다고 당신이 복수한 흔적이야.”소이연이 입술을 오므렸다. 더는 들어줄 수 없었다.굳이 떠올리지 않아도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이제 믿어?”육
소이연은 화내지 않았다.육현경의 몸에 남긴 걸작들만 봐도 어젯밤에 자신이 얼마나…갑자기 얼굴이 뜨거워졌다. 귀까지 빨개진 것 같았다.“기다려. 내가 나가서 입을 옷을 사 올게.”소이연이 침대에서 일어서며 조용히 말했다.“어제 구해준 보답이라고 쳐.”생사를 오갔는데 옷으로 퉁 치겠다고?알았어. 날 미워하지만 않으면 되지 뭐.옷 한 벌 얻어 입었다는 게 어디야. 돈 절약했네.소이연이 드레스룸으로 들어가 외출복으로 갈아입었다.그녀가 방에서 나가려고 문을 열었을 때 예수진이 하마터면 뒤로 넘어질 뻔해서 화들짝 놀랐다.육현경이 다급하게 이불을 들고 벌거벗은 몸을 가렸다.“수진 씨?”소이연은 궁둥 방아를 찧은 예수진을 부축했다.예수진이 가까스로 마음을 진정시키고는 재빨리 해명했다.“난 아무것도 듣지 못했어요. 그냥 오빠와 언니가 너무 자는 것 같아서 깨우려고 온 거예요. 오후 4시예요. 어젯밤에 그렇게 고생했는데 배고프지 않아요?”일어나자마자 하늘이 무너질 것만 같아서 배고픔을 느낄 여유가 없었다.“일어났으면 됐어요. 나와서 밥 먹어요. 내가 최고급 보신탕을 주문했거든요. 무조건 기력을 되찾을 거예요.”예수진이 흥분하며 말했다.“먼저 나갔다 올게요.”소이연이 입술을 오므렸다.“어딜 가요?”“수진 씨 오빠 옷을 사려고요.”그 말에 예수진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과장된 표정은 마치 소이연이 엊저녁에 육현경을 어떻게 잡았으면 그 정도냐고 묻는 것 같았다.사실이지만 다행히 마지막까지 가지는 않았다.소이연은 설명하기도 귀찮았다.본인도 믿기 힘든 일을 남에게 믿으라고 강요할 수 없는 노릇이니까.그저 침묵하며 방에서 나갔다.예수진은 그녀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봤다.왠지 전보다 걸음걸이가 요염해진 것 같았다.역시 막 경험한 여자는 자태부터 남달랐다.예수진이 재빨리 방으로 쳐들어갔다. 괴상한 표정을 지으며 육현경의 앞으로 다가갔다.“오빠, 언니랑 화해했어?”그의 모습을 보던 예수진이 당사자들보다 더 흥분했다.“아니야.”육
”오빠는 되고 왜 나는 안 되는데?”예수진이 투덜거렸다.육현경의 앞에서 기세가 조금은 누그러들었다.자기는 21살에 애 아빠가 됐으면서!“나가.”육현경이 명령조로 말했다. 그녀와 쓸데없는 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예수진은 내키지 않았지만 습관적으로 말을 고분고분 들었다.나가려고 할 때 갑자기 돌아서 한마디 던졌다.“오빠, 그렇게 꽁꽁 싸매지 마. 숨 막히겠어!”육현경은 듣는 척도 안 하고 오히려 더 단단히 이불로 감쌌다.그제야 예수진은 소이연이 옷을 사러 나간 것이 생각났다.뭐야, 홀딱 벗은 거야?얼마나 격렬하게 했으면!그래서 이연 언니 외에 누구한테도 알몸을 보여주지 않겠다는 거야? 동생인 나도 안 된다고?육현경이 이런 남자였다니, 모든 남자들의 본보기네! 칭찬할 만해!예수진이 방에서 나올 때 문을 닫는 것도 잊지 않았다.육현경의 성격에 좀만 훔쳐봐도 죽일 듯이 달려들 것이다.예수진이 거실에서 빈둥거리는 사이 소이연이 쇼핑백을 들고 들어왔다.“사이즈 맞는지 봐봐.”소이연이 침실로 들어가 옷을 침대 위에 던졌다.육현경이 힐끗 쳐다봤다.검정 코트, 희색 티, 카키색 캐주얼 바지, 검은색 팬티에 양말까지 사 왔다.그가 이불을 젖히자 소이연이 급하게 몸을 돌렸다.조금 화가 났다.“바바리맨이야?”부끄러운 줄을 몰라.“이연 씨한테만 이러거든?”그녀에게 영광스러워하라는 말투였다.“다 봤으면서 새삼스럽게.”육현경이 능글맞게 웃자 소이연이 주먹을 꽉 쥐고 나가려고 했다.“문 열지 마. 아직 안 입었어. 수진이 밖에 있는데 보면 난처하잖아.”그가 제지했다.난처한 걸 알면 드레스룸에 가서 입어!소이연이 꾹 참았다.한참 뒤에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다 입었어.”그제야 소이연이 천천히 돌아섰다.또 어린이에게 적합하지 않는 장면을 볼까 봐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순간 그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방금 백화점에 가서 닥치는 대로 옷을 사 왔다.정확하게 말하자면 그녀는 사이즈만 말하고 종업원이 옷을 골라줬다.그런데 이렇게
”밥 먹어요.”예수진이 주방으로 들어가서 두 사람을 불렀다.소이연은 그녀가 계속 기다렸다는 것을 눈치채고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오빠. 안 먹을 거야?”예수진은 떡하니 서있는 육현경을 보며 물었다.소이연이 같이 먹자는 말을 안 해서 눈치를 보는 중이었다.“어젯밤에 고생하고 오늘 하루 종일 굶었더니 오빠 근육이 빠진 거 같아. 내가 특별히 보신탕을 시켰으니까 얼른 와서 먹어.”예수진은 적극적으로 그를 챙겼다.하지만 여전히 소이연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그때 육현경의 배에서 밥 달라는 소리가 들렸다.“당신 동생이 시킨 거니까 먹고 가.”그제야 소이연이 입을 열었다.무표정이던 육현경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예수진도 간사한 웃음을 지었다.소이연은 왠지 두 남매가 연합하여 자신을 골탕 먹이는 것 같았다.외향적인 예수진이 눈앞에 차려 놓은 음식들을 열정적으로 소개했다.“이건 언니 주려고 주문한 거예요. 능이 백숙 오골계탕은 자음 보신 효과가 있어요. 밤을 새워서 다크서클이 장난이 아닌데 이걸 먹으면 생기를 되찾을 거예요.”“그리고 이건 오빠 위해서 주문한 구기자를 넣은 한우탕이야. 효능은 말 안 해도 되겠지?”말을 하면서 육현경을 향해 윙크했다.그는 어이가 없었다.어젯밤에 참느라 죽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신경을 건드려?“얼른 먹어요.”예수진이 친절하게 그릇에 떠주었다.“수진 씨도 먹어요.”소이연은 육현경을 무시하고 예수진한테만 말을 걸었다.“난 그런 복을 타고나지 않아서 눈으로만 볼게요. 난 저칼로리 식단을 주문했어요. 배우가 되려면 신경 써야 되거든요.”“누가 배우하라고 했어? 그만두고 회사에 돌아와서 출근해.”육현경이 입을 열었다.“맨날 진부하게 출퇴근하고 누가 시키는 일만 하는 거 싫어. 차라리 굶어 죽는 게 나아.”육현경이 째려보았지만 예수진은 보는 척도 하지 않았다.소이연이 국물을 떠주며 화제를 돌렸다.“어제저녁에 어디 갔어요?”“방해될까 봐 호텔에서 잤어요. 요 며칠 휴가 냈거든요. 어차피 마지막 장면
밥을 먹은 뒤 소이연은 예수진과 거실 소파에 앉아 후식으로 과일과 커피를 마시면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다.연예계에 종사하면서 예수진의 웃음 포인트는 생각보다 너무 낮았다.예능 프로그램을 보면서 요란하게 뒤로 넘어지면서 웃어 댔다.하지만 잘 웃는 사람과 있으면 팍팍한 삶도 그러려니 하고 지나게 되는 것 같았다.소이연이 습관적으로 휴대폰을 들고 메시지를 확인했다.출근하지 않아도 업무는 처리해야 했기 때문이다.그녀는 숨넘어가는 예수진의 웃음소리를 들으면서 업무 메시지에 답장했다.웃음소리가 그렇게 시끄럽지도 않았다.모든 답장을 마치고 뉴스를 검색했다.갑자기 소이연의 표정이 변했다.한바탕 웃어젖히던 예수진이 커피를 마시려고 일어날 때 그녀의 표정을 보고 다급하게 물었다.“또 무슨 일이에요?”소이연이 눈살을 찌푸릴 때마다 그녀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눈살을 찌푸렸다는 건 분명 좋은 일은 아니니까.“어제 문서인과 같이 있었던 일이 언론에 터졌어요.”소이연이 생각보다 차분하게 말했다.하지만 예수진은 차분하지 않았다.소파에서 벌떡 일어서서 소리를 질렀다.“어제 문서인한테 당한 거예요?”예수진의 관심사는 항상 남들과 달랐다.“네.”소이연이 짧게 대답했다.“쓰레기 같은 자식. 전에는 그래도 인간 취급을 해줬는데 이제 보니 완전 저질이네.”예수진이 욕을 퍼부었다.소이연은 대꾸도 하지 않고 뉴스만 주시했다.뉴스에는 그냥 문서인이 소이연을 억지로 더럽히려다가 경찰에 구속되었다고만 써져 있고 두 사람이 침대에 있는 사진이 몇 장 올라와 있었다.사진만 봐도 그녀가 반항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뉴스가 업로드되자마자 바로 실시간 검색에 올랐다.육현경이 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여론을 최대한 끌어올려야 문서인을 감옥에 처넣을 수 있으니까.가슴을 진정시킨 뒤 생각하면 할수록 뭔가 이상했다.육현경이 구하러 왔을 땐 그녀는 이미 반항하는 것을 포기했다. 그러니 육현경이 이 사진을 찍었을 리가 없다. 심지어 어두운 곳에 숨어서 마지막에야 나타날 사
그때 소이연의 휴대폰에서 메시지 한 개가 떴다.육현경이 보낸 것이다.“뉴스 내릴까?”언론은 그들에게 유리하지만 소이연이 받아들이지 못할까 봐 걱정된 모양이다.“내버려 둬.”소이연이 바로 답장했다.비록 소나은의 처사가 잔인하다고 생각했지만 자신을 해친 그녀를 동정할 만큼 착하지는 않았다.앉아서 결과가 나오길 기다리기로 했다.“알았어.”소이연이 휴대폰을 놓고 소파에서 일어섰다.아직도 쑤시는 몸을 스트레칭하며 흥분하며 뉴스를 보는 예수진을 보며 말했다.“먼저 들어가 누워있을게요.”예수진이 고개를 끄덕였다.“어제 너무 피곤했죠. 얼른 가서 쉬세요.”휴대폰에서 눈도 떼지 않고 한창 네티즌과 함께 열심히 욕하고 있었다.소이연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예수진은 연예인보다 가십거리 기자가 더 적성에 맞는 것 같았다.소 씨 가문.뉴스를 보던 소승영이 너무 기쁜 나머지 껄껄 소리를 내며 웃었다.“문서인 녀석, 이런 스캔들로 발목 잡히면 나은은 자연스럽게 피해자가 되지. 그럼 난 정정당당하게 융자를 주지 않아도 되겠군. 심지어 콧대를 들고 문 씨를 욕해도 되겠네. 참 묘한 계략이야.”소나은의 기분도 좋았다.원래 계획대로라면 문서인이 확실하게 소이연을 더럽히는 것이었다. 두 사람이 침대에 오른 순간 그녀를 배신하고 바람을 피우는 꼴이 되니 문서인의 명성이 나락하는 것은 물론 소이연도 같이 봉변을 당하는 것이니 일석이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중도에 육현경이 쳐들어오는 바람에 계획이 틀어졌다. 몰래 설치한 카메라를 통해 그 장면을 봤을 때 그녀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정말 이해할 수 없었다.육현경, 결혼 발표했잖아?근데 어떻게 소이연을 구하러 갔지?그가 쳐들어온 순간 문서인이 맞아 죽는 줄 알았다.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육현경은 소이연에게 미련이 남아 있었다.그렇다면 소이연을 해치면 안 되었다. 아니면 육현경이 찾아와 그녀에게 복수하는 건 아주 쉬운 일이니까.어쩔 수 없이 소이연이 피해자라는 입장으로 뉴스를 내보내야 했다.여론을 떠들
서교 구치소.소이연은 절차를 마치고 문서인을 만났다.그를 동정해서 보러 온 것이 아니라 모든 진실을 알고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소이연은 누구를 먼저 해치지 않지만 절대 누구한테 당하면서 살지 않았다.만약 누가 상처를 주면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갚아줬다.하룻밤만에 문서인은 얼굴이 많이 상하고 초췌했다.완전히 그녀의 예상을 뛰어넘었다.문서인은 신중한 사람이었다. 해외에 있을 때 그에게 마음이 끌렸던 것도 항상 깨끗한 하얀 셔츠 아니면 하얀 티를 입고 소년처럼 웃던 순진한 모습 때문이었다. 그 얼굴을 보고 있으면 기분이 상쾌했다.하지만 지금은 구질구질하고 더려워졌다.좋아했던 감정은 이미 오래 전에 사라져서 지금 비참하기 그지없는 꼴을 보고도 아무런 느낌이 들지 않았다.“여긴 왜 왔어?”문서인이 물었다. 목소리에 분노가 섞여 있었다.도저히 눈을 뜨고 볼 수 없는 하룻밤을 겪고 나니 워낙 도도하던 문서인에게 굴하지 않는 고집까지 더해졌다.그녀 앞에서 망신을 당하고 싶지 않았다.더더욱 그녀에게서 비웃음 당하고 싶지 않았다.“네가 얼마나 비참한지 보고 싶어서.”소이연이 직설적으로 말했다.하지만 그가 비참하다고 해서 마음이 약해지는 건 아니다.“소이연! 재수없는 너하고 엮인 내가 미쳤지. 그러니까 입 닥치고 있어!”문서인은 갑자기 불이라도 붙은 듯 폭발하며 의자에서 벌떡 일어섰다.“앉으세요!”소이연이 입을 열기 전에 교도관이 봉을 들고 호통쳤다.문서인은 경찰이 든 봉을 보고 당황했다.생각하지 않아도 어제 많은 경험을 한 모양이다.육현경도 그를 가만 둘리 없으니까.갑자기 고분고분해졌다.교도관이 문서인을 제압하더니 시선을 돌려 소이연을 바라봤다.계속 심문을 할 건지 묻는 눈치였다.교도관은 소이연에게 매우 정중하게 대했다.아마 육현경과 아는 사이인 것 같았다.육현경은 오늘 소이연이 무엇을 할지 알고 있었다.소이연이 고개를 끄덕이자 교도관이 공손하게 한쪽으로 물러섰다.그녀가 다시 문서인을 보았다.비록 전보다 얌
지금 송문수는 짧은 시간 내에 세계 최첨단 기술의 총 책임자와 파트너십 계약을 체결하였다.이 소식이 전해지면 송씨 그룹의 매출이 좋아질 뿐만 아니라 주식도 많이 오를 것이다.파산 직전에 있었던 송씨 그룹이 갑자기 몇 단계 업그레이드될 줄은 누가 알겠는가?이 모든 것은 송문수 덕분이었다.송승우는 믿기지 않아서 확실하게 조사했었다.송씨 그룹의 자금이 부족할 때 송문수가 개인 명의로 육현경을 찾아 돈을 빌려서 부족한 자금을 메웠다.지금 크레지의 기술 투자도 송문수가 하지수를 데리고 외국에 가서 받아온 것이고 회사에서 누구도 도움을 주지 않았다.송승우는 말로 할 수 없는 착잡한 생각이 들었다.회사를 지킬 수 있어서 송승우도 매우 기뻤다. 어쨌든 아버지는 회사의 일 때문에 중환자실에 들어갔으니 아버지가 무사하기를 바랐다.그러나 회사를 지킨 사람이 송문수라는 사실이...어렸을 때부터 송문수가 자신에게 뒤떨어진 사실에 익숙했는데 갑자기 잘나가니까 왠지 불편한 느낌이 들었다.송승우는 이를 악물고 자신의 속마음을 숨겼다....송문수는 크레지와 계약을 체결한 후 기술에 대한 검토와 연개발을 진행하기 시작했다.물론 이것은 전문가가 해야 할 일들이다. 송문수는 모든 연구개발 플랫폼을 제공하였고 지원 작업도 완료했다. 이제부터 앉아서 결과를 기다리면 된다.지금 급선무는 신에너지 자동차를 생산한 후의 판매 문제를 해결한 것이다.모두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지만 마지막에 뜻대로 될 수 있는지 모르기에 미리 대비할 필요가 있다.송문수에게 있어서 신에너지 자동차가 다시 출시되고 예상 매출액을 실현하며 자금이 되돌아온다면 송씨 그룹의 모든 위기가 해결된 것이다. 그는 이사회 회의실에 앉아서 이사들과 판매 방안을 논의하였다.회의실 현장의 분위기가 매우 뜨거웠다.지금 회사가 좋은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어서 이사들도 의욕이 불타올랐다.송승우가 제 눈으로 확인하지 않았다면 송문수보다 나이가 한참 많은 이사들이 송문수에게 친절하게 대하고 송문수의 지시를 순순히
“늦었으니까 일찍 쉬자. 회사가 힘든 고비를 빨리 넘겼으면 좋겠어.”하지수는 송문수를 보면서 말했다.“그래.”송문수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그럼 내 방으로 갈게.”“알겠어.”“잘 자.”“잘 자.” 하지수는 일어나서 가기 전에 뭐가 조금 아쉬운 느낌이 들었다.그녀는 갑자기 허리를 굽혀 송문수의 머리를 안고 그의 이마에 뽀뽀하였다.송문수의 심장이 멈춘 것 같았다. 곧바로 폭풍우가 휘몰아친 것처럼 심장의 박동을 제어할 수 없었다.그는 손가락이 꼼지락거리면서 하지수를 끌어안으려고 하였다.그러나 하지수는 이미 그의 곁을 떠나서 손가락은 그녀의 옷을 스쳐 지났다.그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렸고 그는 1초간 멈칫하다가 포기하였다.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을까 봐 두려웠다.그리고 지금 시간이 너무 늦었고 하지수의 피곤함을 느낄 수 있었다.이 기간이 지나고 며칠 지나서...그와 하지수는 아직 많은 시간이 있으니까 조급할 필요가 없었다.송문수는 하지수가 그의 방을 나가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의 심장은 여전히 제어되지 않고 벌렁벌렁 뛰고 있었다.그는 미래를 기대하기 시작했다.예전에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들이 곧 현실로 다가올 것 같았다.송문수는 하늘이 드디어 그를 돌보기 시작했다고 생각했다.그러나 하늘이 그와 장난치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며칠 후.크레지는 그의 팀을 거느리고 송씨 그룹에 왔다. 송문수를 비롯한 임원들은 최고의 대우로 맞이하였다.송문수는 송씨 그룹에서 여러 번 수정한 가장 완벽한 제안서를 크레지에게 보여주었고 크레지는 매우 만족스러워했다.그러고는 크레지를 데리고 신에너지 자동차를 참관하였고 그들이 연구개발한 기술을 소개했다.그날 크레지는 바로 송씨 그룹과 합작해서 기술 투자를 해주기로 결정했다.다시 말하면, 세계 최정상 신에너지 자동차 연구개발 부서의 최고 등급의 총책임자가 곧 송씨 그룹의 신에너지 자동차의 연구개발에 참여한다는 것이다.이러면 송씨 그룹의 신에너지 자동차는 대중의 인정을
사실 송문수도 내성적인 사람은 아니었다. 하지만 하지수의 앞에서 늘 냉담한 표정을 지었다.송문수의 말에 하지수는 한숨을 내쉬었다.“왜 모두 날 못 믿는 거지?”송승우가 그녀를 믿지 않을 뿐만 아니라 송문수도 그녀를 믿지 않았다. 자신의 말이 이렇게 신뢰성이 없단 말인가?“그냥 송승우는 나보다 훨씬 나은데 당신이 날 선택하는 것이 이해가 안 돼서 그래.”송문수는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지만 심장이 벌렁벌렁 뛰었다. 그는 너무 긴장해서 숨이 막힐 정도였다.“승우 오빠가 문수 씨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하지 않아.”하지수는 망설이지 않고 말하였다.“응?”하지수의 말에 송문수는 눈썹을 치켜세웠고 자기의 귀를 의심하였다.송승우는 자기보다 능력이 뛰어나고 더 똑똑한 것은 모두에게 알려진 사실이었다.반대로 자신은 그냥 못난 놈이었다.그는 어렸을 때부터 무능하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승우 오빠가 문수 씨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하지 않아. 점점 그런 생각이 들어.”하지수는 다시 한번 말하였다.“근데 너 어렸을 때부터 형만 좋아했잖아? 몇 년 동안 좋아했지?”“지금 생각하면 그건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의지해서 그런 것 같아.”하지수는 송문수에게 약을 발라주면서 말하였다.“어렸을 때 승우 오빠가 성숙하고 듬직하고 성격도 좋다고 생각했어. 당신처럼 걸핏하면 나를 괴롭히지는 않았으니까. 그리고 난 부모님이 돌아가셨고 또 낯선 환경에서 생활하다 보니 안전감을 줄 수 있는 듬직한 사람을 찾으려고 했던 것 같아.”하지수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그때 승우 오빠는 나를 지켜줄 것 같은 생각이 들었어. 하지만 난 정말 승우 오빠와의 감정을 진지하게 생각한 적이 없었어. 승우 오빠에 대한 의지를 사랑으로 착각했던 것 같아. 지금 생각하면 아니야.”하지수는 연고를 내려놓고 송문수를 바라보면서 말했다.“지금은 승우 오빠가 날 결혼식장에 버려두고 간 것을 조금도 원망하지 않아. 그리고 승우 오빠와 다시 잘되고 싶은 생각이 없고 심지어 나와 더 멀리 떨어졌으면 좋겠어
“승우 오빠, 우리 사이에 정말 끝났다고 몇 번 말해야 돼요? 우린 더 이상 가능성이 없어요.”사실 하지수는 화가 좀 났다. 도대체 어떻게 말해야 송승우가 자신의 진실한 속마음을 믿을까? 왜 이렇게 집착하지?송승우는 매서운 눈초리로 하지수를 노려보면서 이를 갈았다.“후회하지 마, 하지수!”“쾅!”송승우는 차에서 내릴 때 차 문을 세게 닫아서 차가 흔들렸다.그가 얼마나 화났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기사마저 소스라쳐 놀라서 감히 숨도 쉬지 못했고 떠나야 할지 제자리에 있어야 할지 몰랐다.“가세요.”오히려 하지수는 담담한 태도로 말했다.송문수는 고개를 돌려 하지수를 바라보았다. 그는 속으로 조금 기뻤지만 감히 기뻐할 수는 없었다. 그는 하지수에 대해 늘 환득환실하였다.기사는 다시 브레이크를 밟고 그들을 데려다주었다.차 안은 여전히 조용하였다. 송문수는 하지수가 먼저 말을 걸지 않으면 죽어도 입을 열지 않겠다고 생각하였다.어느새 주차장에 이르렀다. 두 사람은 앞뒤로 차에서 내렸다.지금 두 사람은 모두 피곤하였다. 저녁 내내 난리 쳐서 벌써 새벽 3시 넘었고 이제 4시간 정도만 잘 수 있었다.“문수 씨, 먼저 씻어. 욕실에서 나오면 내가 방에서 약 발라 줄게. 당신 얼굴에 멍이 좀 들었고 손도 좀 부었잖아.”하지수는 피곤하지만 억지로 정신을 가다듬고 말했다. 송문수는 입술을 오므리다가 대답하였다.“알았어.”하지수는 우선 방에 들어가서 샤워했고 그제야 정신이 조금 들었다.그녀는 거실에서 약상자를 찾은 후 송문수의 방문을 두드렸다.송문수는 잠옷을 입고 소파에 앉아 있었다. 그는 담배를 들고 있었는데 불을 붙이지 않았다.왠지 모르게 갑자기 담배를 피고 싶지 않았고 하지수가 담배 연기를 맡으면 기침을 할까 봐 걱정되기도 하였다.하지수는 그의 옆에 앉아서 요오드포름과 상처치료용 연고를 꺼냈다.“문수 씨, 머리를 조금만 수그려줘. 바를 수가 없잖아.”하지수가 다정하게 말하자 송문수도 순순히 따라서 하였다.그가 이렇게 말을 잘 듣는
“문수 씨.”하지수는 송문수의 이름을 불렀다. 그녀는 지금 송문수가 화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지만 송승우에게 무슨 일이라도 있으면...어쨌든 한 가족이 아닌가.그녀는 가정의 불화를 일으키고 싶지 않았다.“그래도 승우 오빠를 병원에 보내야 하잖아.”하지수는 큰 소리로 송문수에게 말하자 송문수는 발걸음을 멈추었다.사실 송승우는 별일 없었다. 송문수는 격투기를 배운 적이 있기에 사람의 어느 부위가 다치면 안 되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그가 송승우를 이성을 잃을 정도로 때렸어도 급소를 때리지 않았다.하지수는 송문수의 대답을 듣지 못하자 다급히 핸드폰을 꺼내서 긴급구조 요청을 하였다.구급차를 기다리는 동안, 하지수는 송승우에게 다가가지 않았다.그녀는 멀지 않은 곳에 서서 바닥에 쓰러진 송승우를 바라보았다.송승우의 분노가 극도에 이르렀지만 송문수와 싸울 힘이 없었다.사실 하지수도 요새 송승우와 송문수가 자주 싸우는 이유를 몰랐다. 오늘은 벌써 두 번째였다.어렸을 때 두 형제의 관계가 그다지 친밀하지 않았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지금 어른이 되었는데 아직 유치하게 싸우다니!이윽고 구급차가 도착했고 구조대원들은 들것으로 송승우를 구급차에 태웠다.하지수도 따라서 올라탔지만 송문수는 타지 않았다.하지수는 잠시 망설이다가 내려와서 송문수를 잡아당겨서 같이 구급차에 올라탔다.구급차 안은 매우 조용하였다.아무도 말하지 않았고 차 안의 분위기에 아직 분노의 불꽃이 튕기는 것 같았다.병원에 도착한 후 송승우는 응급실로 옮겼다.하지수와 송문수는 로비에서 기다렸다. 송문수는 차가운 분위기를 풍기면서 한쪽에 서 있었다.사실 하지수는 송문수의 얼굴에도 상처가 있는 것을 보았다. “문수 씨도 얼굴과 몸에 난 상처를 검사하지 않을래?”“필요 없어. 외상이라 금방 나을 거야”송문수가 이렇게 말하자 하지수도 강요하지 않았다.잠시 후, 송승우는 응급실에서 나왔고 의사는 이렇게 말했다.“모두 외상이라 별문제가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지금 입원 수속
“놓지 못해?”송문수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하면서 송승우를 바라보았다.서로 마주 본 두 사람의 눈에는 분노로 가득 차 있었고 일촉즉발의 분위기였다.“이거 놔요.”하지수도 송승우의 손을 힘껏 뿌리쳤다. 그러자 송승우의 눈빛에 분노로 이글이글 타올랐다.그는 더욱 세게 하지수를 잡아당겼다.하지수는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아파요!”송문수의 안색이 더욱 어두워졌다.“놓으라고 했다!”그는 송승우의 팔을 끌어당기는 손에 힘을 꽉 주었다. 이에 송승우는 통증을 느꼈으나 승부욕 때문에 쉽게 놓을 수가 없었다.송문수가 힘을 줄수록 그도 더욱 힘을 줘서 하지수를 잡아당겼다.하지수는 너무 아파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송승우는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 “이걸 놔. 나와 지수의 일에 끼어들지 마.”“끼어들지 말라고?”송문수는 냉소를 지으면서 말했다.“형이 잊은 것 같은데 지수는 내 와이프야. 우린 부부이지만 형과 지수는 아무 사이도 아니잖아? 지금 형이 내 와이프를 데려가려고 하는데 나보고 끼어들지 말라고? 너무 뻔뻔하다고 생각하지 않아?”“너!”송문수의 쏘아붙인 말에 송승우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예전에 송승우는 하지수가 자신을 좋아했기 때문에 송문수를 안중에 넣지도 않았고 그들의 결혼 관계를 진지하게 생각한 적도 없었다.그러나 지금 송문수에게 이런 모욕을 당하다니!“지수가 좋아한 사람은 나야!”송승우는 수치심에 더 약이 올라서 노기어린 목소리로 외쳤다.하지수는 너무 아파서 반박할 힘도 없었고 송문수의 말이 들려왔다.“지수가 누구를 좋아하든 지금은 내 여자야. 누구도 데려갈 수 없고 누구도 지수를 괴롭힐 수 없다고! 셋까지 셀 테니 지수를 놓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을 거야!”송승우는 끄덕하지도 않고 송문수를 노려보았다.“하나.”“둘.”송문수는 ‘셋’을 세는 대신 주먹을 들고 송승우의 얼굴을 세게 강타했다.송문수의 한 방을 맞은 송승우는 코피를 흘렸고 아픔으로 이내 하지수를 놓아주었다.그러나 송승우는 소심한 사람이었다. 그는 늘
‘내가 자기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는 건가?’“승우 씨, 사과 따위 이제 필요 없어요. 지금 제가 바라는 건 아무 탈 없이 우리 사이의 관계를 끝내는 거예요. 승우 씨는 문수 씨 형이잖아요. 게다가 저도 어릴 때부터 송씨 가문에서 자란 사람이고요. 그러니까 우리 그냥 친척 같은 관계로 돌아갔으면 좋겠어요.”하지수는 인내심을 가지고 진지하게 말했다.송승우는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며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하지수는 더 이상 그와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 망상에 빠진 사람은 무슨 말을 하든 헤어 나올 수 없다고 생각했기에 그녀는 자신의 마음을 표현했으니 그걸로 됐다고 생각했다.하지수는 뒤를 돌아 송문수 쪽으로 다가가려 했다. 늦은 시간이었고 그녀도 여전히 많이 피곤했다. 송문수랑 같이 집으로 가서 자고 싶었다.크레지가 아직 오지 않은 이상, 기술 투자 계약서에 사인하지 않은 이상 방심할 수는 없었다. 그들은 짬짬이 시간을 내서 잠을 잘 수밖에 없었다.그런데 막 돌아서려는 순간, 그녀의 손은 또다시 송승우에 의해 붙잡혔다.하지수가 아무리 팔을 흔들어도 벗어날 수 없었다.송문수는 차가운 눈빛으로 송승우의 행동을 지켜보며 주먹을 꽉 움켜잡았다.그가 앞으로 다가가 하지수를 데려오려던 순간, 송승우가 갑자기 말했다.“지수 씨, 방금 당신의 행동은 모든 걸 말해줬어요!”“무슨 행동이요?”하지수는 이해할 수 없었다.“방금 제가 불렀을 때, 제 쪽으로 다가왔잖아요. 그게 지수 씨 마음속에 있는 진심이에요. 더 이상 숨기지 말고 저한테로 오세요. 하지수 씨, 제가 잘 해줄게요. 지수 씨를 혼자 두는 일은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을 거예요. 제가 맹세할게요...”“아니요.”하지수는 단칼에 거절해 버렸다.하지수를 바라보는 송승우의 눈빛은 분노로 가득 찼다.“승우 씨가 불었을 때 따라간 건 무의식적으로 간 거예요. 잠에서 덜 깬 상태라서 누가 불렀어도 갔을 거예요. 승우 씨인 줄도 몰랐어요. 하지만 인정할 건 인정할게요. 낯선 목
송문수는 하지수가 일어나서 송승우 쪽으로 걸어가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할 뿐이었다.송승우는 입가에 미소를 띠며 생각했다.‘그래, 지수 씨도 아직 날 신경 쓰고 있다니까. 숨기려 해도 어떻게 숨기겠어? 이런 상태에서야 비로소 진심이 드러나는 거지.’송문수는 멀어져 가는 하지수를 잡으려 손을 뻗었지만 그녀의 옷자락에 손이 닿았을 때 살짝 멈칫했다. 하지수를 강제로 붙잡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사실 그는 항상 하지수의 선택을 존중해 왔다. 지금까지 변함없이 말이다.하지수는 송승우 앞으로 걸어갔고 송승우가 먼저 손을 뻗더니 그녀를 끌어당기려 했다.그러나 그가 손을 뻗자 하지수가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승우 씨?”그녀는 그제야 앞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깨달았다.조금 전까지 어지럽고 혼란스러웠던 상황이 이제와사 분명해졌다.그녀는 자신이 언제 잠에 들었는지도 몰랐다. 그저 너무 피곤해서 머리가 흐릿할 뿐이었다.“너무 늦었어요. 제가 데려다줄게요.”송승우가 그녀를 끌고 나가려고 하자 하지수는 급히 그의 손을 쳐내며 말했다.그러자 송승우는 눈살을 찌푸렸다.“아까는 잠에서 덜 깨서 그랬어요. 전 문수 씨랑 같이 갈 거예요.”“뭐라고요?”송승우는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언제까지 연기할 거예요?”“네?”하지수는 눈살을 찌푸리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송승우가 왜 갑자기 화를 내는지 알 수 없었다.“저를 놀리는 게 재밌으세요?”송승우가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저... 저는 그런 게 아니라...”하지수는 당황해하며 말을 더듬었다.그러자 송승우가 입을 열었다.“알겠어요. 제가 잘못한 걸로 하죠.”그가 갑작스레 사과를 하자 하지수는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그녀는 송승우가 왜 갑자기 사과를 한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왜 사과를 하는 거야?’“미안했어요. 어쩔 수 없이 떠난 거라고는 하지만 우리 결혼식에도 참석하지 못했잖아요. 결혼식장에 지수 씨 혼자 남겨두고 간 건 제 잘못이에요. 미안해요.”하지수는 그제야 무슨 말인지 이해했
하지수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심장은 여전히 빨리 뛰고 있었다.그녀는 전혀 말을 듣지 않는 심장을 진정시키려 애썼다. 만약 누군가 들어오지 않았더라면 이 어색한 상황이 얼마나 계속될지 알 수 없었다.‘문수 씨도 부끄러워하는 건가?’하지수는 입술을 꽉 깨물며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려 애썼다. 갑자기 웃음이 터져 나올까 봐 걱정이었다.하지수는 소파에 앉아 몰래 송문수를 쳐다보았다.그는 그저 고위직 직원의 얘기를 듣고만 있을 뿐, 전혀 불편해 보이지 않았다.그녀는 깊게 숨을 쉬었다.‘단지 어색해서 그런 건가?’송문수는 언제나 체면을 중시하는 사람이었으니 말이다.‘해명하려 하지 않는 것도 결국 체면을 세우려고 그러는 건가?’하지수는 너무 많은 기대를 해선 안 된다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다잡았다....크레지를 맞이하기 위해 모든 관련 부서가 계속해서 야근을 하고 있었다.송문수와 하지수 역시 마찬가지였다.그들은 끊임없이 회의를 열고 논의하며 최대한의 성의를 보이기 위해 애썼다.새벽 2시가 되었지만 송문수는 아직 퇴근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방금까지도 각 부서와 회의를 하면서 협력 계획과 판매 계획을 다시 수정하고 보완했다.회의가 끝난 후에도 송문수는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는 계속 바쁘게 일하고 있었다.송문수는 그제야 그의 확인이 필요한 문서들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무슨 서류든 제대로 보지 않고 사인을 해버렸었다. 하지만 이젠 점점 더 신중해졌고 모든 서류를 꼼꼼히 확인하고 나서야 사인을 했다.그 덕에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고 오늘 하루 동안의 모든 서류를 처리하고 나서야 송문수는 퇴근을 하려고 하지수를 쳐다봤다. 그러자 그녀는 이미 소파에 기대어 잠들어 있는 것이었다.하지수는 잠이 많은 사람은 아니었다. 송문수의 기억 속에 하지수는 늘 자신보다 일찍 일어나는 사람이었고 절대 늦잠을 자지 않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소파에 기대어 잠들어 있었다.‘많이 피곤한 걸까?’자세히 생각해 보니 그들은 지난 일주일 동안 계속해서 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