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 씨 그룹 대표 사무실.육현경은 전화를 끊은 뒤 다른 번호에 전화를 걸었다.“지원아, 문서아한테 문서인 집에 있는지 물어봐 줘.”“무슨 일 있어?”“물어보고 문자 줘. 있는지 없는지만 알면 돼.”그는 말을 마친 뒤 바로 전화를 끊었고 다른 번호에 전화를 걸었다.“장안시에 모든 감시 카메라를 돌려서 소이연이 퇴근 후에 어디로 갔는지 알아봐. 그리고 장안시 안에서 소이연을 찾아내! 그리고 소이연에 관한 소식이 있으면 곧바로 나한테 전화하고. 섣불리 움직이지 마.”“네. 바로 출동하겠습니다.”전화 한편에서 공손하게 대답했다.전화를 끊으려던 육현경은 갑자기 인상을 찌푸리더니 무언가 생각난 듯싶었다.“소이연 휴대폰 마지막 통화기록이 누구인지도 알아봐.”“네.”그는 전화를 끊었고 마침 계지원한테서 문자가 와있었다.“문서인 씨 집에 안 계신대.”그의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렸고 꽉 쥔 주먹이 부들부들 떨렸다.문서인, 제 무덤을 파다니…지난번에 그가 문 씨 그룹을 인수하지 않은 것은 계지원을 위해서였다.문서아와 계지원이 사귀고 있으니 그는 계지원의 체면을 지켜주려고 했다.하지만 지금은…육현경의 낯빛은 무서울 정도로 어두워졌다.이명진은 곁에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묻지도 못했다.하지만 육현경의 모습을 본 그는 큰일이 벌어졌음을 감지했다.대표님한테 큰일이라고 할 수 있는 건 사모님에 관한 일이겠지.이명진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강하고 완벽하신 대표님은 왜 사랑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지실까.깨어난 소이연은 머리가 어지러웠다.저혈당으로 인해서 쓰러진 것이 분명했다.그녀는 그제야 온 하루 아무것도 먹지 않았단 사실을 알아차렸다.너무 피곤하면 입맛도 없다.“깼어?”귓가에 익숙한 남자 목소리가 들려왔다.소이연은 고개를 돌렸고 문서인과 눈이 마주쳤다.그녀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위험 앞에서 본능적으로 긴장하고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아무리 아닌 척해도 숨길 수 없었다.그녀는 몸을 움직이려 했지만 침대에 묶
소이연은 추악한 문서인의 얼굴을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그녀는 차갑게 바라보면서 수치심을 느꼈다.문서인은 이런 상황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그는 사악하게 웃었다.“네가 했던 일들에 대해 후회해? 내가 비굴하게 빌면서 합작할 기회를 달라고 했는데도 거절하더니. 이제야 좀 후회되기는 해?”“내가 유일하게 후회하는 건 오직 널 사랑했던 것뿐이야!”소이연은 차가운 눈빛으로 문서인을 쏘아보았다.“지금 생각하면 구토 나올 정도야.”“소이연!”문서인은 소이연의 말에 분노했고 주먹을 꽉 쥐었다.그는 곧바로 소이연의 목을 졸랐다.소이연은 목에 통증을 느꼈고 질식할 것 같았다.만약 내가 죽는다면, 문서인의 손에서 죽는다면…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하겠지.그녀는 살려달라고 비는 대신 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문서인을 노려보았다.내가 죽는다면 이 더러운 면상을 꼭 기억할 거야.기억해서 다음 생에 태어난다면 백 배로 갚아줄 거라고!문서인은 소이연을 거칠게 뿌리쳤다.한이 서리고 굴복하지 않는 소이연의 눈동자를 보면 난 자꾸 화가 치밀어 오른다니까.하지만 난 사람을 죽일 용기는 없어. 소이연 때문에 날 망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야.그의 손에서 벗어난 소이연은 멈출 수 없을 정도로 미친 듯이 기침을 했다.난 내가 죽을 줄 알았어. 하지만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면 문서인은 그럴 용기가 없거든.그는 보복하면서 쾌감을 느끼는 것뿐이야.하지만 난 그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을 거야.“소이연, 내 손에 죽고 싶어?”문서인은 위협했지만 소이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와 단 한마디도 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문서인은 자리에서 일어나 약을 한 알 꺼내더니 그녀의 앞에 놓았다.소이연은 인상을 찌푸렸다.침착하려고 애썼지만 당황한 기색은 감출 수 없었다.“이제야 좀 무서워?”문서인은 피식 웃었다.“뭐 하려는 거야!”“기분 좋은 일을 하는 거지.”문서인은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소이연, 우리가 사귄 지 3년이 되어서도 난 네 털끝 하나 건드리지 못했
무언가를 내세우기 위해서 그러는 것 같았다.“소나은이 널 사랑한다고?”소이연은 그를 비웃었다.“소나은은 그저 내가 가진 물건을 사랑할 뿐이야. 내 것이라 하면 다 뺏으려고 했으니까.”“나랑 나은이 사이를 이간질하려고 들지…”“아니라면 왜 문 씨 그룹이 큰 위기에 처했는데도 소 씨 가문에서 가만히 있겠어! 소나은이 널 그렇게 사랑한다면 소 씨 가문에서 왜 너한테 도움을 주지 않겠냐고!”소이연의 질문에 문서인은 반박했다.“네 아버지 소승영이 너무 현실적인 사람이라 그래. 나은이가 날 돕기 위해 소승영과 연을 끊었어. 오로지 투자를 받아내기 위해서 말이야!”“그래서? 뭐 달라진 건 있어?”소이연은 되물었다.“나은이는 소승영을 설득할 수 없어.”“문서인, 솔직히 말해줄까? 네가 소나은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지금처럼 무너지지도 않았어!”“소이연!”문서인은 그녀의 풍자 섞인 말에 점점 화가 치밀어 올랐다.“소승영처럼 체면을 중요시하는 사람이 너와 소나은 사이에 혼약이 오갈 때 곧바로 거절할 수 없었어. 문 씨 가문을 거절했단 소문이 돌면 그의 얼굴에 먹칠하는 셈이니까. 자고로 상인은 명예를 중요시하기에 신임을 잃으면 그 바닥에서 더 어떻게 벌어먹겠어?”소이연은 격동된 어조로 말했다.“소나은이 진심으로 널 도우려고 했다면 소승영은 자금을 선뜻 빌려주었을 거야. 소나은이 널 도울 생각조차 없었고 이 계기를 빌미로 너와 헤어지려 한 것이라고!”“내가 너의 그딴 거짓말에 넘어갈 것 같아?”문서인은 차갑게 웃었다.“넌 그저 나와 나은이 사이를 이간질하려고 그러는 거잖아. 우리가 사랑하는 꼴을 가만히 보고 있지 못하겠지? 소이연, 내가 뭐 하나 알려줄까? 소나은이 우리 가문이 이렇게 어려운 것도 알고 소승영이 자금을 빌려주지 않는다는 것도 알았을 때 나보고 너를 찾아가라고 했어.”그는 말을 이었다.“나은이는 너한테 합작할 수 있는 프로젝트가 있으니 온갖 방법을 써서라도 너와 합작하라고 먼저 와서 알려주었지. 나은이는 우리가 사랑했었던 사이라는 것
소이연은 알약을 물고만 있었고 삼키지 않았다.문서인이 그녀한테 먹이는 약이라면 절대 좋은 건 아니기 때문이다.두 사람은 한참을 대치 상태에 있었다.문서인은 소이연의 코를 막았다.밀려오는 질식감 때문에 소이연은 입을 벌릴 수밖에 없었고 문서인은 그 틈을 타 옆에 놓여있던 물을 그녀 입안에 콸콸 부었다.코가 막힌 상태에서 본능적으로 살려고 물을 삼켰다.소이연은 결국 하얀 알약을 삼켜버렸다.문서인 입가에 사악한 미소가 걸렸다.그는 입을 열었다.“소이연, 네가 무슨 약을 먹었는지 맞춰 봐.”소이연은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았고 한이 서려있었다.“나는 네가 죽어도 아무 느낌 없을 줄 알았다? 그런데 네 그 표정을 보면 내가 얼마나 달아오르는지 알아? 너의 그 무표정, 이제는 지긋지긋해!”문서인은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네가 먹은 건 최음제라고 하는 마약이야. 먹으면 몸이 꼬이고 뜨겁게 달아오르지.”소이연이 예상했던 것이었다.문서인이 무슨 짓을 하려고 하는지 다 예상했다.이런 방식으로 성관계 동영상을 찍은 후 그녀를 협박해서 합작하려는 속셈이었다.“소나은이 이렇게 해라고 가르쳤어?”소이연은 침착한 마음을 유지하려고 애쓰면서 그에게 물었다.“아니! 나은이는 그 정도로 추악하지 않아!”문서인은 그녀를 사납게 노려보았다.“그래서 넌 추악하다고 인정하는 거네?”“나도 어쩔 수 없었어. 네가 날 도와서 문 씨 그룹과 합작한다면 나도 너한테 이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었다고! 네가 스스로 자초한 거야!”“문서인, 네가 이렇게 한 결과에 대해서 생각해 봤어?”“결과? 너와 합작하게 될 거야.”“내가 말하는데 너의 손에 죽는 한이 있더라도 문 씨 그룹과 합작하지 않을 거야! 문 씨 가문을 돕는 건 영원히 있을 수 없는 일이고! 문서인, 나한테 협박 같은 건 통하지 않아.”“우리가 사랑을 나누는 동영상을 인터넷에 퍼뜨릴까 봐 두렵지도 않아? 온 국민이 너의 몸을 보게 되면… 육현경도 보게 되면 넌 그의 연인이 될 자격도 없어! 소이연, 인터
조금씩 빨개져갔다.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약효가 나타난 것이다.문서인은 소이연을 지그시 쳐다보았고 반응하는 몸을 만족스럽게 바라보았다.“빠르긴 하네.”문서인은 말을 이었다.“정말 예민한 몸이라니까.”소이연은 눈앞이 흐릿해짐을 느꼈다.그녀가 정신을 차리려 해도 쓸모없었다.솟구쳐 오르는 성적 욕구는 그녀의 이성을 모조리 잡아먹었다.그녀는 18살 때의 일을 떠올렸다.놓아 달라고 죽도록 빌었지만 돌아오는 건 그녀의 여린 몸에 남겨진 자국뿐이었다.다시 겪고 싶지 않았는데…이러다가 죽을까 봐.“날 놓아줘…”소이연은 마지막 힘을 다해 숨을 고르고는 입을 열었다.“문 씨 그룹과 합작할게.”“내가 믿을 것 같아?”“말 한대로 할게…”“그런데 이걸 어쩌지? 이제는 내가 싫어. 합작 계약서보다 너의 몸에 더 끌리거든. 소이연, 지금 네가 얼마나 섹시한지 알아? 남자라면 널 앞에 두고 가만히 있을 사람은 없어.”문서인은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말했다.그는 소이연이 딱딱하고 아무 매력도 없을 줄 알았다.그래서 소나은과 잠자리를 하고 나서는 소이연한테 반응이 없었던 것이다.그런데 그녀의 풀린 두 눈과 시선이 마주친 그는 온몸이 달아올랐다.더군다나 그녀의 몸매는 글래머였다.아, 아쉬워.왜 진작에 얘랑 관계를 갖지 않았을까?육현경이 나보다 먼저 맛 보다니.문서인은 더는 참을 수 없었다.그는 소이연 몸에 감은 밧줄을 재빨리 풀었다.밧줄이 풀리자마자 소이연은 침대에서 일어나 방문 쪽으로 달려갔다.방문이 열린 순간.“쾅!”열렸던 문이 그녀의 뒤에 따라붙은 문서인에 의해 닫겼다.그는 이 상황에서도 소이연이 정신줄을 붙잡고 도망치려 했다는 사실에 놀랐다.그녀는 지금 보이는 남자마다 잡아야 하는 처지인데도 말이다.소이연은 다리를 세게 꼬집으면서 타협하지 않으려고 했다.이렇게 또 더럽혀지기 싫었다.하지만 그녀에게는 반항할 힘조차 없었다.문서인의 힘 있는 두 손에서 도망치지 못했다.폐쇄적인 공간에 그녀를 구하러 올 사람도 없다
누구의 운명은 정말 비참했다.어릴 때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가 데려온 여자의 딸은 매사에 시비를 걸어왔다.조금 큰 뒤엔 성적이 좋고 능력이 뛰어나다는 이유로 계모의 딸에게 모함당해서 미혼모가 되었다.그 소문이 온 동네에 파다하게 퍼져서 명문대에서 강제 퇴학을 맞고 아버지한테는 쫓겨났다. 그리고 낯선 외국에서 떠돌며 어렵게 살아왔다.그녀는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서 모든 것을 바치려고 했지만 그 남자는 뒤에서 몰래 계모의 딸과 바람을 피웠다.그 뒤로 다시 진정한 사랑을 만나서 다시 자신에게 기회를 주려고 용기를 냈었지만 결국 또 속임수에 불과했다.그래도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살았다.이 세상에 살아있는 한, 어머니가 임종 전에 했던 소원을 저버리지 않고 지키려고 했다.어머니가 그러셨다. “내가 떠나도 내가 너를 사랑하는 마음을 잊지 말고 행복하게 잘 살아야 돼.”삶에 억눌려 숨이 올라오지 않을 때마다 어머니가 남긴 말을 떠올리며 버티고 버텼다.눈물이 볼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렸다.소이연은 이번에도 잘 이겨낼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18살 때 겪었던 참사를 다시 한번 겪는 것을 운명의 조롱이라 여겼다.그러니 몇 번이고 반복하다 보면 무감각해질지도 모른다.쾅!갑자기 문이 벌컥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소이연의 몸을 탐내던 문서인이 화들짝 놀랐다.그가 아직 반응하기 전에 엄청난 힘이 그를 끌어내려 바닥에 내팽개쳤다.딱딱한 바닥에 부딪친 곳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아파서 숨이 멎을 것 같았다.하지만 아픔도 잠시, 발과 주먹이 격하게 치고 들어와 살려달라고 빌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눈물인지 피인지 모를 액체 때문에 눈앞이 흐려서 잘 보이지 않았다.문서인은 온몸이 피투성이 됐을 거라는 생각에 기절해 버렸다.“대표님!”이명진이 육현경을 덥석 잡고 말렸다.“그만하세요. 이러다 죽겠어요.”육현경의 표정은 사람을 때려죽여야 직성이 풀릴 것처럼 너무 공포스러웠다. “대표님 손에 피를 묻힐 가치도 없는 인간입니다.”이명진이 통
한참을 얘기하던 의사가 상대방이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자 다시 조심스럽게 물었다.“대표님?”“그 말은 몸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는 뜻인가요?”육현경이 떨리는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말했다.“네.”의사가 확실한 답변을 주었다.“네, 알겠어요.”그가 말이 끝나기 바쁘게 통화를 끊어버렸다.육현경은 돌아버릴 것 같았지만 이성을 잃지 않으려고 몇 번이나 심호흡을 하며 운전했다. 겨우 노스 타운 지하 주차장에 도착했다.육현경이 안전벨트를 풀고 차에서 내리자 소이연이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차에서 내린 육현경은 몇 초 동안 차가운 공기를 마시며 자신을 진정시켰다.그제야 소이연을 안고 차에서 내렸다.재빨리 엘리베이터에 들어가 층수 버튼을 눌렀다.품에 안긴 소이연이 몸을 뒤척거리더니 손으로 그의 셔츠를 풀어헤쳐 탄탄한 가슴을 응시했다.엘리베이터가 도착한 뒤, 육현경은 집 앞으로 다가가 초인종을 눌렀다.그녀를 안고 비밀번호를 누르기가 너무 불편했기 때문이다.예수진이 문을 거칠게 열었다. 그녀도 걱정이 많았던 모양이다.소이연을 끌어안은 육현경을 보고 눈시울이 뜨거워졌다.집에서 넋을 놓고 기다리다가 육현경에게 전화했었다.그런데 아무리 전화를 해도 받지 않아서 소이연을 구하러 갔을 거라 생각했다.그의 능력을 믿었어야 했는데 왠지 자꾸 불안했다.비로소 육현경이 소이연을 안고 온 것을 보고 불안한 가슴을 쓸어내렸다.그런데 소이연의 상태를 본 순간 예수진은 다시 긴장했다.지금까지 이런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기억 속의 소이연은 항상 차갑고 도도해서 속세에 물들여지지 않을 것만 같은 타입이었다. 드레스를 입은 모습은 요정처럼 요염해도 얼굴은 여전히 순수하고 아름다웠다.그런데 이 정도로 섹시한 표정도 지을 줄 안다니 여자인 그녀가 봐도 당장 코피를 뿜을 것 같았다.육현경은 땀투성이에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소이연을 안고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녀의 유혹을 애써 참는 중이라고 생각했다.그 말은 소이연이 정말 모함을 당해서 약을 먹었다는 것을 의미
현실이다.하늘이 정한 자만이 만날 수 있는 행운이 그녀에게 올 리가 없다.왜냐면 그녀는 항상 불행했기 때문이다.옆에 누운 남자는 여전히 깨어나지 않았다.그때처럼 죽은 듯이 잠만 잤다.소이연이 이불을 홱 젖히고 베개에 얼굴을 파묻은 남자의 얼굴을 확인했다.전에는 어려서 도망쳤지만 이젠 어떤 일이 벌어져도 받아들일 수 있었다.솔직히 어제저녁에 발생했던 일들이 어렴풋이 기억났다.문서인에게 끌려 그와 소나은이 바람피우는 장소에 간 뒤에 매약을 먹었다.슬슬 몸에 반응이 일어나 절망한 순간에 쿵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몸을 눌렀던 묵직한 것이 사라졌다. 그리고 어렴풋이 치고받는 소리가 들렸다.그 당시 그녀는 몸이 너무 괴로워서 눈도 제대로 뜨지 못했다.곧이어 누군가 자신을 안아 올리는 것 같았는데 그 뒤로 기억이 흐릿해졌다.이 모든 것이 꿈이라고 생각했었다.남자가 자신의 침대에서 잠들지 않았더라면 마음이 편안하라고 상상한 장면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그 당시 누구도 자신을 구하러 오지 않을 거라 여겼다.소이연이 베개에 묻힌 남자의 얼굴을 똑똑히 봤다.육현경이다.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몰려왔다.모두에게 짓밟혔다.사실 별로 차이는 없었다.그저 한 구덩이에서 다른 구덩이로 뛰어내렸을 뿐이다.소이연이 침대에서 내려왔다.발을 바닥에 댄 순간 깊게 잠들었던 남자에게 팔이 잡혔다.그녀가 입술을 오므렸다.방금까지도 죽은 듯이 자던 인간은 전에 그녀가 도망갔을 때도 일어나지 않았었다.“소이연…”육현경이 눈을 거슴츠레 뜨고 쉰 목소리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억지로 잠에서 깬 것 같았다.“깼어?”그가 간신히 침대에서 일어나 앉았다.정말 기운이 하나도 없고 정신마저 차릴 수 없었다.“이거 놔.”소이연의 싸늘한 말투에 그의 손가락이 꿈틀거렸다.지난번에 정신없이 자는 바람에 그녀를 잃어버렸다.만약 그때 깨어나서 책임을 졌더라면 두 사람 모두 마음고생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그를 탓할 수는 없었다.그날 저녁, 소이연은 만족한 후 잠
“좋아.”송문수가 대답했다. 그는 자동차들 사이에서 한 대를 향해 걸어갔다. 헬멧을 쓰고 차에 탑승했다. 하지수는 송문수를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그녀의 뒤에서 하도경이 말했다. “걱정하지 마. 문수는 운전 실력이 뛰어나. 그의 차는 여러 번 개조된 슈퍼카라서 안전해. 게다가 그의 레이싱 친구가 장안시에서 특별히 가져온 거라 절대 사고 나지 않을 거야.” 하지수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마음속 불안은 사라지지 않았다.그녀는 하도경 옆에 서 있었다. 세 팀으로 나뉜 자동차들이 심판의 신호와 함께 경주를 시작했다.온 산에 귀청이 찢어질 듯한 엔진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지수는 내내 긴장했다. 조금이라도 이상한 움직임이 있으면 그녀는 놀라 죽을 것 같았다. 오히려 하도경은 매우 신나 보였다. 그는 주변의 응원단과 함께 소리쳤다. “문수 왔어!”하도경이 흥분하며 말했다.“1등으로 달리고 있어!” 하지수는 그의 자동차가 멀리서 다가오는 모습을 보았다. “훨!”송문수는 그녀 앞을 스쳐 지나갔다.아직 두 바퀴가 남았다. 하지수는 마음속으로 조용히 숫자를 세었다. “문수는 레이싱에서 거의 지지 않아. 타고난 실력이 있거든.”하도경이 하지수에게 말했다.“사실, 문수는 네가 생각하는 것과 달라. 단순히 여자를 밝히는 사람이 아니야. 진지하게 임하는 일은 뭐든 잘 해내지.” 하지수는 하도경을 바라보았다. 하도경이 송문수에 대해 이렇게 높게 평가할 줄은 몰랐다. 송문수라는 사람의 능력을 떠나 육현경과 계지원의 비교로 보면 송문수는 그렇게 대단한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하도경은 친구로서 그를 옹호하고 있었다. “내가 하는 말이 진짜야. 문수를 잘 이해하면 그가 가진 많은 면을 알게 될 거야. 그런 모습은 너를 놀라게 할 거야.”하도경은 하지수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챈 듯 반복했다. 하지수는 입술을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하도경이 이렇게까지 이야기했으니 그녀는 하지수의 체면을 세워주지
하지수는 그들이 사치스러운 고급 클럽에 가라 생각했지만 눈을 뜨자마자 산 정상에 와 있었다. 서울 시내와는 꽤 먼 것 같았다. “여기가 어디야?”하지수는 낯선 환경을 둘러보며 물었다. 이렇게 외지고 조용한 곳이라면 송문수가 그녀를 처리할 생각인지 의심이 들었다.“클라이맥스 레이싱해 본 적 있어?”하도경이 하지수에게 답했다. “레이싱?” “몰랐지? 문수는 슈퍼 레이서야.” “...”그녀는 전혀 몰랐다. 모두가 모르는 사실일 것이다. 그저 그가 놀이를 좋아한다고만 생각했을 뿐, 레이싱이 취미일 줄은 상상도 못했다.게다가 매우 위험하다. 하지수의 표정이 확실히 변화했다. 하도경은 그런 두려움은 전혀 느끼지 못한 듯 말했다.“오늘 문수가 몇몇 레이서들을 초대했어. 곧 그의 멋진 모습을 볼 수 있을 거야. 차를 운전할 때 정말 멋져.” 하지수는 무언가 말하고 싶었지만, 송문수가 이미 차에서 내린 것을 보았다. 그 순간 주변에서 자동차 엔진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하지수는 급히 차 문을 열었다. 그곳에는 많은 자동차와 오토바이가 빠른 속도로 질주해 왔다. 하지수는 그 모습을 보고 어안이 벙벙해지고 두려워졌다. 차가 멈추고 많은 남녀가 내렸다.그들은 화려한 옷을 입었고, 거의 모든 사람이 문신을 하고 있었다.보기에는 좋은 사람들 같지 않았다. “문수.”한 남자가 다가왔다. 드레드락과 입에 담배를 물고 있었다.“갑자기 드리프트 하러 오다니?” 송문수는 원래 서울에서 레이싱할 생각이 없었다. 아마도 감정을 발산하고 싶어서였다. 어젯밤 송승우의 전화 때문에 조금 짜증이 나서 오늘 오후와 저녁에 친구들과 놀고 싶었다. 그는 레이싱 그룹에 메시지를 남겼고 놀랍게도 전국에서 사람들이 하루 만에 모였다. 일정도 이미 잡혔고 거절할 수 없었다. 그리고 하지수가 그의 생활권에 참여하려는 의도도 있었다. 물론 그녀가 참여들이지 않을 수도 있지만...하지수는 착한 소녀여서 어릴 적부터
하지수는 송문수와 하도경을 따라 나갔다. 차는 천씨 가문의 차량으로, 운전사는 천씨 가문 소속이었다. 하도경은 조수석에, 송문수와 하지수는 뒷좌석에 앉았다.송문수와 하도경은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란 사이여서, 대화가 자연스럽게 오갔다.대화의 대부분은 그들 간의 이야기였다. 하지수는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않았지만, 시끄럽다고 느끼지 않고 조용히 그들의 대화를 들었다. 그러다 갑자기 그녀의 전화가 울렸다. 발신자를 확인하고 받았다.“승우 오빠.”하도경과 열심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송문수는 잠시 시선을 멈췄다. 하도경은 그 모습을 보고 약간의 미소를 지었다. 송문수는 금세 원래의 태도로 돌아와 하도경과 다시 이야기를 이어갔다. “나는 문수랑 함께 있어요.”하지수가 말했다. “문수랑 함께 있다고? 어디야?”송승우는 놀라며 물었다. 사실 그는 멀리 가지 않았다. 물론 호텔 앞에는 없었지만, 하지수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 그랬다.그는 오늘 송문수에게 전화를 걸어 분명히 말했다.송문수의 성격과 그들 사이의 좋지 않은 관계를 고려할 때, 송문수는 하지수에게서 멀어지려고 할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그는 하지수가 다시 자신에게 돌아올 준비가 되었다고 믿었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도 하지수의 전화는 오지 않았다. 그는 하지수가 어릴 때부터 강하고 독립적인 성격이었다고 생각했기에, 문제가 생기면 자발적으로 도움을 청하지 않으리라 예상했다. 그래서 하지수에게 잘 위로하고 싶어서 전화를 걸었는데, 대답은 송문수와 함께 있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예상치 못한, 완전히 다른 답이었다. “우리는 지금 서울 구경하러 나갔어요.”하지수가 말했다. “둘이 나가서 놀고 있다고?”송승우는 믿기지 않는 듯 물었다. “송문수와 하도경이 같이 가고 싶다고 해서, 나도 따라 나갔어요.” “너... 개의하지 않냐?”송승우가 물었다. “뭘 개의치는데요?”하지수는 이해하지 못했다. “내 말은, 너와 송문수 사이가 좋지 않으니까 함께 놀
“오해라고?”송문수는 무관심한 듯 말했다. “오해야.”하지수는 확신하며 말했다.“승우 오빠가 사진을 올릴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어.” “그러니까 안 올린다고 해서 그게 존재하지 않는 일이 되나? 너희 사이에 감정이 없다는 걸 의미하는 건가? ” 그건 웃기는 일이다. “아니야.”하지수는 초조하게 대답했다. 평소에 송문수가 이렇게 말 잘하는 걸 본 적이 없었다.성적도 좋지 않고 평소엔 느긋하게 지내던 그가 지금은 그녀를 말문이 막히게 만들고 있었다.“내 말은, 그저 관광객으로서 찍은 사진이었는데 그가 올리면서 상황이 애매해진 거야. 그래서 네가 오해할까 봐 걱정됐어.”하지수는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그래서 돌아온 거야.” 송문수는 그녀의 말을 듣고 저도 모르게 마음이 흔들렸다.하지수가 자신을 조금은 좋아하는 것 같았다.“결국 돌아와서 내가 본 건 이런 장면이라니!”하지수는 방금의 장면을 떠올리며 다시 눈가가 붉어졌다. 그녀는 입술을 깨물고 말없이 있었다. 그냥 너무 힘들고 속상했다. 송문수는 하지수의 모습에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녀가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는 걸까? 부부로서 남편이 바람을 피워서 속상한 건지, 아니면 그에게 진짜 호감이 생긴 건지 알 수 없었다.하지만 하지수는 어릴 적부터 그를 좋아하지 않았다. 지금 송승우가 돌아왔고 송승우가 하지수를 적극적으로 구애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녀가 송승우를 거부할 이유가 있을까? “다음번엔 그러지 않겠다고 약속해 줄 수 있어?”하지수가 그에게 물었다. 송문수는 입술을 다물고 말없이 있었다. “네가 정말로 원하면 내가 도와줄 수 있어.” 송문수는 여전히 침묵했다. “어때?”하지수가 그를 바라보았다. 물론 나쁘지 않았다. 송문수는 사실 출소 이후로 여성과의 접촉이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간단한 대답을 그는 입 밖으로 내지 못했다. 그저 하지수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것 같았다. 하지수는 죄책감 때문에 그와 함께 있
송문수는 얼굴이 갑자기 붉어졌다. 그는 하지수가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녀가 이런 말의 위험성을 알고 있을까?정말 자각이 없는 걸까?하지수는 송문수의 붉어진 얼굴과 귀를 바라보며 찡그렸다. 이건 착각일까? 송문수가 부끄러워하고 있는 걸까? 이렇게 많은 전투를 경험한 사람이 이런 표정을 보이다니?그녀가 잘못 본 걸까? 하지수는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어 송문수의 뺨을 만졌다. 송문수는 순간 얼어붙었다.하지수가 말했다.“정말 뜨거워.” “너 뭐 하는 거야?” 송문수는 재빨리 몸을 떼었다. 하지수는 찡그렸다. 그가 정말로 자신을 싫어하는구나. 하지만 하지수는 그들 사이에 단지 소통과 교류가 부족하다고 느꼈다. 감정은 천천히 쌓일 수 있다고 믿었다. “나는 네가 얼굴이 붉어졌다고 생각해.”하지수가 말했다. “내가 붉어졌다고? 내가 그런 사람이야?”송문수는 부인했다.“이건 화가 난 거야 알겠어? 화가 나서 가슴이 두근거려서.” “뭘 그렇게 화내?”하지수가 물었다. “내 사람을 쫓아냈으니 내가 뭐로 화내지 않겠냐?” “내가 보완할 수 있어.” “하지수, 너 조금 자제할 수 없어? 누구한테 배운 거야? 이렇게 무례하게.” 송문수는 화가 나서 성질을 부렸다. “내가 내 남편한테... 그게 무례한 거야?”하지수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졌다. 그녀의 얼굴도 붉어지고 귀와 목도 빨갛게 변했다. 마치 익은 게살 같았다. 송문수의 아담한 목이 움직였다. 그 깊은 욕망이 그를 자제할 수 없게 만들었다.게다가 그녀가 방금 뭐라고 했지? 남편... 그는 시선을 아래로 돌려 하지수의 벌거벗은 몸을 보고 다시 화가 치밀었다.“아직도 안 입고 있니?” 하지수는 붉어진 입술을 깨물었다. 결국 그녀는 송문수를 흔들지 못했다.비록 그녀가 이 날을 위해 오랫동안 준비했지만 준비한 것이 많았다. “정말 성가셔.”송문수는 하지수가 오랫동안 아무 행동을 하지 않
그는 다른 여자들에게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오늘 그 여자도 그냥 형식적으로 불렀을 뿐이었다. 송승우가 하지수를 도덕적으로 강요한다고 말했기 때문에 하지수의 관계를 깔끔하게 끊고 싶어 했다. “한번 해보면 어때?”하지수는 단호하게 말했다. “해보지 않을 거야.”송문수는 단칼에 거절했다.“하지수, 너...” 송문수는 정말 화가 나버릴 지경이었다. 하지수가 몰래 연습했다는 생각만 해도 화가 치밀어올랐다. “해보지 않으면 어떻게 잘할 수 있는지 알겠어?” “필요 없어.” “송문수, 그렇게 싫어해?”하지수는 겨우 참았던 눈물이 이제는 미친 듯이 쏟아졌다.“울지 마.”송문수는 더는 참을 수 없었다. 하지수가 언제 이렇게 잘 울었어?크면서 울고 있는 모습을 거의 보지 못했다. 특히 결혼한 후 하지수는 마치 다른 사람처럼 변해버렸다. 성숙하고 침착해져서 울지도 웃지도 않았다. 송문수는 잘 알고 있었다. 하지수가 이런 감정을 억누르고 송승우에게만 보여줬다는 것을. 하지만 지금 하지수는 아이처럼 울고 있었다. 평소의 침착함은 사라지고 없었다. “그 여자를 내보내.”하지수는 침대에 앉아 있는 여자를 가리켰다. 여자는 이 순간 두 사람의 시선에 충격을 받았다. 오늘 큰 거래를 성사했고 가격이 맨몸으로 뛰어다니게 할 만큼 좋았다. 여자는 올 때 모든 매력을 한껏 발산하려 했고, 돈이 문제인 게 아니라 진짜 남자를 보고 나니 뭔가 대박을 터뜨린 기분이었다.잘생길 뿐만 아니라 경험이 많은 여자는 직감적으로 이 남자가 큰 만족감을 줄 것 같다고 생각했다.그래서 여자는 자신의 모든 기술을 사용했지만 남자는 여자를 한 번도 보지 않고 규칙을 지키라고 했다. 둘은 같은 이불 속에 누워 있었는데 여자를 만지지 말라고 했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여자는 혼란스러웠지만 돈을 위해서는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지금 이 장면이 벌어졌다. 여자는 입을 다물고 있지 않았다.
“하지수, 너 미쳤어?” 송문수는 하지수의 등을 강하게 바라보며 눈이 금세 충혈되었다. 그의 표정은 분노라기보다는 당황스러움이 더 컸다.하지수가 자신이 바람을 피우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을 때의 여러 가지 반응을 떠올려보았다. 송문수를 때리며 분을 풀 수도 있다. 하지만 하지수의 성격을 생각했을 때, 그 가능성은 낮아 보였다. 둘째, 침대에 있는 여자를 쫓아낼 수도 있었다. 예전에 그런 적이 있었다. 셋째, 돌아서서 그냥 떠날수도 있었다.이 세 번째 가능성이 가장 현실적이라고 생각했다. 상관없다면 아무 반응도 없을 것이다. 사실 하지수는 방금 떠났었다. 그런데 왜 다시 돌아온 거지?그리고 이런 이상한 행동을 하다니, 송문수는 순간적으로 혼란스러웠다. 송문수는 서둘러 하지수의 옷을 올려주며 말했다.“하지수, 너 미쳤어?” 하지수는 그를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억울한 모습에 송문수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송문수는 하지수가 자신을 위해 울고 있을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갑자기 이렇게 울어버리다니. 하지수가 버림받은 듯 처참한 마음이었다.그런데 하지수는 송승우를 좋아하는 것 아닌가?송문수는 하지수를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어찌할 바를 모른 채 서 있었다. “송문수, 나도 할 수 있어.”하지수는 절규하듯 말했다. “뭐?”송문수는 얼굴을 찡그리며 물었다. 지금 이 상황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송문수의 눈에는 오직 하지수의 눈물만 보였고, 닦아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나도 너와 함께 잘 수 있어.”하지수는 울먹이며 말했다. 슬픔에 차서 그녀는 계속 흐느꼈다. 송문수는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무슨 말을 해도 하지수를 더 울릴 것 같았다. 송문수는 갑자기 그녀가 울어버릴까 두려워졌다. 어릴 적처럼. 그는 사실 매번 하지수를 울리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하지수의 시선이 항상 송승우에게 향해 있었기에 그가 장난을 치지 않으면 하지수는 그를 전혀 주목하
이렇게 보니 그 여자는 아무것도 입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방금 송문수가 침대에 누웠을 때 하지수도 그가 아무것도 입지 않은 것 같다고 생각했다. 설마... 하지수는 침대 쪽으로 다가갔다. 송문수는 찡그린 얼굴로 하지수의 행동을 주의 깊게 바라보았다. 송문수는 하지수가 나갈 것이라고 생각했다.그런데 하지수가 갑자기 돌아왔으니... “아!”여자가 갑자기 비명을 질렀다. 하지수가 여자의 이불을 잡아당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분명 이 침대는 어젯밤 하지수가 덮었던 것이고 지금은 다른 여자가 그 이불을 품고 있었다. 송문수는 정말 더럽지 않은가? 정말 더럽다고 느끼지 않는가? 다른 장소로 옮길 수는 없었나?굳이 그녀가 잤던 침대에서 하겠다는 것인가?굳이 이렇게 그녀와 마주쳐야만 하는가? “뭘 하는 거야!”송문수가 하지수를 힘껏 잡아당겼다. 힘이 세서 하지수는 비틀거리며 거의 바닥에 넘어질 뻔했다. 송문수는 본능적으로 하지수를 받쳤다. 다음 순간 그는 즉시 하지수를 놓아버렸다. “나가.”송문수가 짜증을 내며 말했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송문수는 바로 몸을 돌렸다. 하지수는 송문수의 냉담한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하지수는 방금 송승우에게 송문수가 함부로 행동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했었다. 지금 이렇게 큰 타격을 받았다. 정말 아프게 맞았다. 하지수는 입술을 깨물어 하얗게 변했다. 조용한 방에서 하지수는 갑자기 고개를 숙이고 옷을 벗기 시작했다. 침대에 누워있던 여자는 하지수의 행동에 놀랐다. 이 여자는 그들과 함께하려는 건가?이건 너무 자극적 아닌가?아직 준비가 안 되었었다. 송문수는 하지수의 등 뒤를 바라보며 하지수가 나가길 기다리고 있었다. 송문수는 하지수가 돌아온 걸 알고 있었다. 송승우가 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송승우는 그들 사이에 감정이 없다면 더 이상 엉켜 있지 말라고 했다. 그는 하지수가 예전의 일로 송문수에게 죄책감을 느끼고 있어서 그를 위
“지수야, 너는 좋은 아이라는 걸 알아. 네가 얼마나 착한지도 알아. 하지만 네가 이렇게 집착하는 건 원하지 않아.”송승우가 좀 더 진지해졌다.“너의 방식은 너 자신을 다치는 것뿐만 아니라 문수에게도 상처를 주고 있어.” 하지수는 잠시 멈칫하며 송승우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알다시피 너와 문수의 결혼은 네가 이끌어 가고 있는 거야. 네가 이혼하지 않는 한 부모님은 너희를 이혼할 수 없어. 그런데 네가 이렇게 송문수와 얽히고 있으면 그의 감정을 생각해 본 적 있어? 그는 이혼하고 싶지만 이혼할 수 없고 놀고 싶어도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돼. 지금 문수도 진퇴양난이야.” “하지만 나는 송문수가...” “그가 너를 좋아한다고 생각하니? 그날 밤 음주 운전까지 하면서 너를 만나러 오려 했던 거?”송승우가 물었다. 하지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실제로 송문수가 자신을 어느 정도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왜 그런 일을 했을까? 술을 마셨는데도 쉽게 떠날 수 없었던 그는 그녀의 전화를 받고 빗속을 뚫고 오는 데 두려워하지 않았다.그때 그녀의 마음이 흔들렸다고 인정한다.송문수에게 처음으로 심장이 두근거리는 느낌을 받았다. 그 후 그녀는 그가 출소하기를 기다리며 진심으로 다시 시작하고 싶어 했지만 송문수 계속 거절했다. “지수야, 너는 너무 순수해.”송승우가 말했다.“이런 일이 누구에게나 일어나면 당연히 신경 쓰게 돼. 송문수가 네 사고 이후에 너를 찾아온 건 인간적인 걱정일 뿐이고, 그의 음주 운전은 법을 무시한 행동이었을 뿐이야. 혼동하면 안 돼.” “하지만...” “지금 나는 너를 강요하지 않아. 네가 현실을 제대로 인식할 시간을 줄게.”송승우가 하지수를 바라보며 안타까운 눈빛을 보냈다.“나는 네가 상처받는 걸 원하지 않지만 지금 보니 너는 끝까지 가봐야만 마음을 바꿀 것 같아.” 하지수는 침묵했다. 그래. 하지수는 더 노력하고 싶었다. 하지수는 송문수와의 가능성이 있다고 믿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