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한 그녀는 오늘 밤의 주인공은 그녀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상대 부모님을 뵈러 온 것인데 육씨 가문의 사람들은 그녀를 본 체도 하지 않았다.다른 사람한테 중시 받지 못한 기분을 그녀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하지만 그 자리에서 바로 티를 낼 수도 없었다.그들 앞에서 그녀는 처음으로 자신이 보잘것없이 느껴졌다. 육청수와 심태섭은 간단한 문안 인사를 마친 뒤, 육씨 저택 로비로 들어갔다.그러고는 호화로운 식당 안으로 걸어갔다.그들은 커다란 식탁 앞으로 나이 순서에 따라 하나 둘 자리에 앉았다.저택의 고용인들은 옆에서 시중을 들었다.식탁에서는 육청수와 심태섭 사이에서만 대화가 오갔다.두 사람은 지난 추억을 떠올리면서 즐거워 보였다.“어제는 육씨 설립 60주년 연회에 참여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서울로 파견되는 바람에 못 갔어. 청수야, 정말 미안해.”심태섭은 진심을 담아 사과했다.“우리 사이에 이렇게까지 사과하지 않아도 돼. 네가 없는 자리에서 내가 현경이와 아윤이 혼약을 공개해서 오히려 미안한걸.”“미안하긴. 이 혼약은 우리가 미리 정해놓은 거잖아. 육씨 그룹의 중요한 날에 이 소식을 공개한 건 우리 아윤이한테는 영광이지.”심태섭은 괜찮다는듯 바로 대답했다.“영광이라니. 우리 현경이가 아윤이를 아내로 맞이하게 되어서 영광이지. 그리고 육씨 가문의 영광이고!”육청수는 손사래를 쳤다.두 사람은 서로의 체면을 세워주었다.예수진은 육현경을 쳐다보았다.어르신들이 계셔서 오빠와 단둘이 얘기할 수도 없고…오빠는 왜 저렇게 태연한 표정을 짓는 거야?심씨 가문과의 혼약을 받아들인 다는 건지 아니라는 건지도 모르겠고.정말 급해 죽겠네!“아, 참. 이번에 어렵게 장안시까지 왔으니 좀 오래 묵다가 가. 내가 현경이더러 너의 가족들을 데리고 여기를 구경시켜줘라고 했어. 장안시는 요 근래 많이 발전했고 변화도 커.”육청수는 먼저 제안했다.“다음 주에 서울로 가야 하고 이번 주는 한가하니까 괜찮긴 한데.”심태섭은 그의 말에 대답했다.“내가 몸이 안 좋
육현경과 심아윤은 계속 대화를 이어갔다.두 가문의 어르신들은 흐뭇하게 그들을 바라보았다.오직 예수진만이 이 자리를 박차고 나가고 싶었다.하지만 이연 언니를 생각하면…안 돼. 침착하자, 예수진. 침착해.“수진이는 올해 나이가 어떻게 되지?”심태섭은 갑자기 예수진에게 말을 걸었다.예수진은 깜짝 놀랐다.이런 모임에서 그녀가 원하지 않던 일이 발생할 것 같았다.하지만 예수진은 예의 있게 젓가락을 내려놓고 웃었다.“태섭 할아버지, 저 곧 25살이에요.”“못 본 사이에 너무 예뻐졌구나. 그래, 네가 연예계에서 활동한다고 들었다.”“공부를 못해서 연예계 쪽으로 온 거죠.”예수진은 스스로를 낮췄다.심태섭은 예수진의 말에 껄껄 웃었다.“공부하는 사람은 넘치고 넘쳤지만, 진정한 배우는 몇 없단다.”“그럼 저희 할아버지 좀 설득해 주세요. 자꾸 저더러 연예계 생활을 그만두래요.”예수진은 이때다 싶어 말했다.“그래. 내가 너의 유교적인 사상을 가진 외할아버지를 잘 설득해 보마!”심태섭은 농담을 했고 분위기도 좋았다.문서아는 입술을 깨물며 생각했다. ‘난 예수진이 정말 별로라고 생각했어.스폰서를 잘 물어서 이 자리까지 온 것이라 여겼는데…지금 낙성시에서 제일가는 명문가의 심태섭 할아버지와 여유롭게 대화를 이어가고 이 할아버지를 웃게 만들다니.질투나! 이건 불공평하다고!’“만나는 사람은 있고?”심태섭은 예수진에게 물었다.“제가요?”예수진은 웃어 보였다.“어느 남자가 절 원하겠어요.”젓가락을 쥐고 있던 계지원의 손이 움찔했다.“하하, 또 이 할아버지와 장난치는 거지?”심태섭은 자애로운 미소를 지었다.“정말이에요. 절 따라다니는 남자가 하나도 없어요.”예수진은 진지하게 말했다.“그럼 이 할아버지가 남자 좀 소개시켜 줄까?”예수진은 깜짝 놀랐다.“내 손자 심진우 말이다.”심태섭은 말을 이었다.“올해 30살이라 너보다 나이가 있긴 하지만, 애가 믿음직스럽고 성격도 좋단다. 이런 남자는 어떠냐?”그러면서 심진우를 향해 눈짓
그녀는 육현경을 끌고 육씨 저택 뒷마당의 어두운 구석으로 데려갔다.“오빠, 심아윤과의 혼약은 도대체 뭔데?”예수진은 화가 난 상태였지만, 목소리를 낮출 수 밖에 없었다.그녀는 누군가 들을까 봐 샤인 다방 쪽을 계속 힐끔힐끔 쳐다보았다.“걔, 괜찮은 거지?”육현경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그가 물어본 건 다름 아닌 소이연 이었다.“언니를 걱정한다는 사람이 그래?”예수진은 화가 솟구쳤다.“이틀 동안 갑자기 사라져서는 전화도 안 받고 어디 있는지도 모르겠는데 이제 와서 언니를 걱정해? 강한 척하면서 겨우 버티고 있는 사람한테… 뭐, 오빠를 걱정하다 쓰러지기라도 했을까 봐?”“휴대폰은 할아버지가 뺏어갔어.”육현경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지금도 할아버지의 보안 요원들한테 감시당하는 중이야.”“외 할아버지 이제는 늙은 여우 다 되었네. 그럼 어떡하게? 정말 심아윤과 결혼하려고?”예수진은 그한테 계속 캐물었다.“오빠 설마 이연 언니랑 그저 재미 삼아 연애한 건…”육현경의 눈빛에 압도된 예수진은 입을 다물었다.하긴, 우리 오빠는 오랫동안 순결을 지켰으니 그랬을 리가 없어!“내 휴대폰 줄 테니까 이연 언니랑 전화할래?”예수진은 말하면서 적극적으로 휴대폰을 내밀었다.육현경이 휴대폰을 받으려 할 때.“도련님.”어두운 곳에서 갑자기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예수진은 너무 놀라서 소리 지를 뻔했다.그녀는 고개를 돌리더니 믿기지 않는다는 듯 눈 앞에 있는 보안 요원을 쳐다보았다.이 사람, 언제부터 여기에 있었던 거야?어떻게 아무 소리도 없이 온 거지?“어르신께서 심아윤 씨가 장안시를 떠나기 전에는 도련님과 아무하고도 사적으로 연락하면 안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보안 요원은 정중하게 말했다.“씨발!”예수진은 참지 못하고 듣기 거북한 욕을 뱉었다.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이렇게 집착해?‘외할아버지가 압도적인 것도 알겠고 육씨 가문의 일의 모든 결정을 하는 것도 알겠는데 이 정도까지는 안 해도 되잖아?오빠도 사람인데 왜 개 취급을 하
문서아도 문 앞에 서있는 예수진을 발견했다.계지원은 육청수 할아버지의 부름을 받고 나가면서 그녀더러 방에서 기다리고 있으면,돌아와서 집에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내가 오늘 밤에 왜 여기로 온 건지 모르겠어. 육씨 가문 사람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날 쳐다보지도 않았고 심씨 가문 사람들도 그랬지. 그런데 여기서 예수진과 마주치다니, 민망해… 내가 그동안 예수진을 모욕한 것, 무시한 것 그리고 앞뒤 가리지 않고 망신을 준 것까지 생각하면 너무 부끄러워.예수진의 신분이 외부에 공개되면, 나한테 얼마나 많은 악플이 달릴지 상상도 못 하겠다…’예수진은 자연스럽게 문서아의 딱한 처지를 눈치챘다.그녀는 차갑게 웃었다.이런 년한테는 일말의 동정이라도 해주면 안 돼.예수진은 더 오만하게 걸어갔다.문서아는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예전에는 내가 예수진한테 차갑게 굴었는데!지금은 예수진이 내 앞에서 오만하게 굴어도 나는 가만히 있어야 된다니…그리고 앞으로도 나는 예수진 앞에서 꼼짝도 못 하겠지.’예수진의 자신의 방문 앞까지 갔을 때, 마침 계지원이 복도에 나타난 것을 보았다.두 사람은 눈이 마주쳤지만, 예수진은 뒤돌아 방으로 들어갔다.“수진아.”계지원은 그녀를 불러 세웠다.예수진은 발걸음을 멈추었다.“너 오늘 소이연 씨한테 안 가?”계지원은 그녀에게 물었다.“문도 잘 닫고 창문도 잘 닫을 테니 걱정 마요. 문서아 씨와 아무리 격정적으로 해도 저는 안 들리니깐요.”예수진의 칼같이 날카로운 말에 계지원은 침묵할 수 밖에 없었다. 예수진은 그와 별로 할 말이 없다고 생각했다.사이좋은 친척 사이도 유지 못하는데.그녀가 방으로 들어가려 할 때, 그녀 뒤에 있던 계지원이 말했다.“심진우도 꽤 괜찮은 남자야.”예수진은 차갑게 웃었다.아, 날 왜 부르나 했더니 고작 연애를 빨리 시작해서 자신한테서 관심 끄라는 말이 하고 싶어서 그런 거였어?“알아요.”예수진은 고개를 돌렸다.“연애는 사적인 일이니 삼촌은 신경 끄세요. 아, 그리고 저는 삼촌한테 아무
육청수 어르신의 방문 앞까지 온 계지원은 발걸음을 멈추었다.“아버지께서 여기서 기다리고 계세요.”“지원 씨는 같이 안 들가요?”“아버지가 찾는 분은 제가 아니라, 서아 씨인걸요.”“지원 씨…”문서아는 아주 긴장한 것 같았다.“있는 그대로 대답하면 돼요.”계지원은 그녀를 위로해 주었다.“아버지가 서아 씨를 잡아먹는 것도 아닌데요.”문서아는 심호흡을 했다.처음 육씨 가문의 초대를 받아 온 것이지만, 육씨 가문 특유의 룰을 어겨서는 안 된다.그녀는 어쩔 수 없이 노크를 하고 문을 열었다.육청수는 서재의 책상 앞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다.문서아는 들어간 후 바로 문을 닫았다.그녀는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육청수를 바라보더니 먼저 인사를 건넸다.“안녕하세요, 아저씨.”“앉아요.”육청수는 문서아를 힐끔 쳐다보고는 대답했다.문서아는 바로 앉았는데 너무 긴장한 탓에 앉는 도중에 발이 홍목 의자에 부딪혔다.“와당탕!”귀청이 떨어질 것 같은 소리에 문서아는 다급히 사과했다.“죄… 죄송해요!”그녀가 사과하는 모습에선 한 치의 여유로움도 찾아볼 수 없었다.육청수는 문서아의 언행을 모두 지켜보고 있었다.지난번에 여기서 그와 대화를 나눈 사람은 바로 소이연이었다.비교하니 천차만별이었다.육청수는 장안시에서 제일 성공한 상인답게 희로애락을 잘 티 내지 않았다.그는 입을 열었다.“오늘 문서아 씨가 우리 육씨 가문의 초대를 받고 왔으니 어떤 상황인지는 봤겠죠?”“네. 육씨 가문은 명불허전이네요.”문서아는 제꺽 대답했고 그 틈을 타 아부도 했다.“봤다면 잘 알 것 같네요. 육씨 가문의 며느리로는 문서아 씨가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요.”육청수는 그녀의 체면을 생각하기는커녕 더욱 직설적으로 말했다.계속 웃고 있던 문서아의 표정이 굳어졌다.‘내가 방금 뭘 들은 거지?지원 씨를 따라 부모님을 뵈러 왔는데…날 며느리로 인정한다는 게 아니라 되려 떼어놓으려고 부른 거네.‘“왕년에 문씨 그룹은 우리 육씨 가문과 혼담이 오갈 자격이 어느
그렇게 합의를 본 후, 문서아는 육청수의 서재를 나왔다.육청수는 차를 마시면서 한숨을 내쉬었다.“이틀 동안 벌써 두 짝을 떼어놨군.”“문서아 씨는 무조건 떼어놔야 합니다.”집사 유중혁이 입을 열었다.그는 오랫동안 육청수의 곁에서 보필했기에 그의 마음을 다 알고 있었다.“어르신께서는 오늘 문서아 씨를 불러 시험해 보려 한 것이지 떼어놓으려고 한 것이 아니잖습니까. 하지만 문서아 씨는 어르신의 기준에 도달하려면 멀었습니다.”사실 문씨 그룹과도 상관없고 그녀에 관한 기사와도 상관없었다.육청수는 그의 말에 동의한 듯 피식 웃었다.만약 소이연과 문서아가 뒤바뀌었다, 완전히 다른 결말이었을 것이다.……서재에서 나온 문서아는 계지원을 보자마자 통곡하면서 울기 시작했다.계지원은 육청수가 무슨 말을 할지 다 알고 있었다.육청수는 그를 불러서 육씨 가문에 들어오려면 반드시 육청수의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고 말했다.보나 마나 문서아는 기준에 도달하지 못했다.사실 그는 그녀가 들어가기도 전에 이미 결과를 예측했다.문서아와 헤어질 수 있기에 그는 거절하지 않았다.원래부터 진짜 연인이 아니라 연기였던 거였지만, 문서아가 자꾸 선을 넘어왔다.“가요. 제가 데려다줄게요.”계지원은 문서아를 데리고 나갔다.육씨 저택 대문 앞.문서아는 발걸음을 멈추었고 계지원은 뒤돌아 그녀를 바라보았다.“계지원 씨, 지원 씨 아버지께서 저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죠? 그러면서 오늘 일부러 날 난처하게 하려고 데려온 거예요?”문서아는 계지원의 손을 내팽개치고 따졌다.그녀가 아무리 무던하다고 해도 어떤 상황인지는 눈치챘을 것이다.계지원은 침묵했다.침묵은 곧 인정이었다.“짝!”문서아는 계지원의 뺨을 세게 내리쳤다. 제 발로 망신 당하러 왔단 생각에 그녀는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고 오늘 하루 종일 삼켜왔던 억울함을 모두 그에게 쏟아냈다.그때 마침 예수진이 자신의 방 밖의 베란다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그녀는 담배에 의지하는 건 아니었고 그
‘앞으로 시간은 많아. 지금 헤어진다고 해서 나중에 다시 사귀지 않는다는 법도 없으니깐. 헤어지라는 말에 동의한 건 나한테 조건을 제시했기 때문이고 난 그저 시간을 끌었을 뿐이야.난 절대로 계지원을 포기하지 않을거야!’차가 문씨 별장 대문 앞에서 멈췄다.문서아가 내리려 할 때 계지원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저… 부탁할 것이 있어요.”문서아는 의아했다.‘계지원이 나한테 부탁을?’‘“예수진의 신분에 대해서는 비밀로 해줘요.”문서아는 불쾌했다.그녀는 예수진에 대해 본능적으로 적대감을 느꼈고 예수진의 이름만 들어도 기분이 나빴다.“대외적으로 공개한다면, 서아 씨한테도 좋을 건 없을 거예요.”계지원은 솔직하게 말했다.“예수진 좋아해요?”문서아는 계지원을 지그시 쳐다보았다.여자는 연적 앞에서 아주 똑똑해진다는 말이 있다.“아니요.”“아닌데 왜 그 여자를 감싸고돌아요?”“다 육씨 가문 사람이니깐요.”“예수진은 지원 씨를 육씨 가문 사람으로 인정하는 것 같지 않던데요. 오늘 지원 씨를 어떻게 모욕했는지 잊었나요?”“어릴 적부터 솔직한 아이였어요.”계지원은 예수진의 편을 들었다.“계지원 씨, 어르신이 두 사람이 만나는 것을 반대하니깐 지금 예수진을 좋아한다는 것을 부인하는 거죠?”문서아는 이미 답을 알아버렸다.그녀는 처음부터 두 사람이 친척 사이라서 계지원과 예수진 사이에 묘한 기류가 흐른다고 생각했었다.하지만 차분히 생각해 보면, 여러 디테일에서 이상한 낌새를 느낄 수 있었다.오늘 직접 육청수와 대면한 그녀는 육청수의 강압적인 태도에 눌렸었기에 그의 말에 누구도 토를 달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계지원은 어르신의 상대가 아니야!“아니요. 그리고 더 이상의 추측은 이제 하지 말아 주세요.”계지원은 말을 아꼈다.“제가 아까 한 말만 기억하시고요.”말을 마친 계지원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차를 타고 떠났다.문서아는 입술을 깨물었다.아무튼! 네가 예수진을 좋아하든 말든 난 절대 계지원 너를 뺏기지 않을 거야!……육씨 저택.
소이연은 커피를 마시면서 장안시의 야경을 내려다보았다.‘난 장안시를 떠날 수 없어.장안시는 큰 도시도 아니라 어디를 가든 만나게 되니깐 난 숨어있을 수도 없어.육현경이 날 만나겠다는 마음만 있으면, 날 찾는건 아주 쉬운 일이지.그러니 내가 애쓴다고 될 일이 아니야.’“저 그럼 오빠한테 알려주러 갈래요!”예수진은 그제야 환한 미소를 지었다.소이연은 예수진의 성격을 아주 좋아했다.털털하고 활발해서 그녀와 지내면 소이연도 기분이 좋아지고 낙관적인 사람이 되는 것 같았다.“늦었으니 일찍 쉬어요.”소이연은 입을 열었다.“언니도요. 자꾸 야근해서 몸이 상하면 어떡해요! 저녁은 드신 거죠?”“먹었어요.”“몸 잘 챙겨요. 내일 언니한테 달려갈게요.”“그래요.”예수진은 기분 좋게 통화를 마치고는 곧바로 방 밖으로 나가 육현경의 방으로 향했다.그의 방문 앞에는 여러 명의 보안 요원들이 서있었는데 그녀를 발견하고서는 눈빛이 날카로워졌다.예수진은 못 본 척 하고 들어가려 했다.“아가씨.”한 보안 요원이 그녀를 갑자기 막아섰다.“오빠 만나러 왔어.”“도련님께서는 이미 주무십니다.”“깨우면 돼.”“어르신께서 아무도 사적으로 도련님을 만나면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아니, 이 봐…”예수진은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특히 아가씨는 더더욱 안된다고 하셨어요.”“씨발!”예수진은 참지 못하고 욕을 했다.“아가씨, 저희도 난처한 입장이니 이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보안 요원은 허리를 숙였다.‘외할아버지는 진심으로 오빠와 심아윤의 결혼을 성사시키려는 것 같아.오빠한테 반항할 여지나 있을까? 어떡하지?’예수진은 입술을 깨물더니 어쩔 수 없이 방으로 돌아갔다.밤 12시가 지난 지금.예수진은 계지원이 돌아오지 않을 것 같았다.문서아가 여기서 자고 가지 않는다면, 밖에서 둘이 같이 잘 수도 있다.모순이 생겨서 다툰 남녀 사이에 최고의 화해 방법은 잠자리 아닌가?예수진은 계지원의 방문 앞에 서있다가 집에 돌아가려 했다.한 걸음을
사실 송문수도 내성적인 사람은 아니었다. 하지만 하지수의 앞에서 늘 냉담한 표정을 지었다.송문수의 말에 하지수는 한숨을 내쉬었다.“왜 모두 날 못 믿는 거지?”송승우가 그녀를 믿지 않을 뿐만 아니라 송문수도 그녀를 믿지 않았다. 자신의 말이 이렇게 신뢰성이 없단 말인가?“그냥 송승우는 나보다 훨씬 나은데 당신이 날 선택하는 것이 이해가 안 돼서 그래.”송문수는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지만 심장이 벌렁벌렁 뛰었다. 그는 너무 긴장해서 숨이 막힐 정도였다.“승우 오빠가 문수 씨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하지 않아.”하지수는 망설이지 않고 말하였다.“응?”하지수의 말에 송문수는 눈썹을 치켜세웠고 자기의 귀를 의심하였다.송승우는 자기보다 능력이 뛰어나고 더 똑똑한 것은 모두에게 알려진 사실이었다.반대로 자신은 그냥 못난 놈이었다.그는 어렸을 때부터 무능하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승우 오빠가 문수 씨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하지 않아. 점점 그런 생각이 들어.”하지수는 다시 한번 말하였다.“근데 너 어렸을 때부터 형만 좋아했잖아? 몇 년 동안 좋아했지?”“지금 생각하면 그건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의지해서 그런 것 같아.”하지수는 송문수에게 약을 발라주면서 말하였다.“어렸을 때 승우 오빠가 성숙하고 듬직하고 성격도 좋다고 생각했어. 당신처럼 걸핏하면 나를 괴롭히지는 않았으니까. 그리고 난 부모님이 돌아가셨고 또 낯선 환경에서 생활하다 보니 안전감을 줄 수 있는 듬직한 사람을 찾으려고 했던 것 같아.”하지수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그때 승우 오빠는 나를 지켜줄 것 같은 생각이 들었어. 하지만 난 정말 승우 오빠와의 감정을 진지하게 생각한 적이 없었어. 승우 오빠에 대한 의지를 사랑으로 착각했던 것 같아. 지금 생각하면 아니야.”하지수는 연고를 내려놓고 송문수를 바라보면서 말했다.“지금은 승우 오빠가 날 결혼식장에 버려두고 간 것을 조금도 원망하지 않아. 그리고 승우 오빠와 다시 잘되고 싶은 생각이 없고 심지어 나와 더 멀리 떨어졌으면 좋겠어
“승우 오빠, 우리 사이에 정말 끝났다고 몇 번 말해야 돼요? 우린 더 이상 가능성이 없어요.”사실 하지수는 화가 좀 났다. 도대체 어떻게 말해야 송승우가 자신의 진실한 속마음을 믿을까? 왜 이렇게 집착하지?송승우는 매서운 눈초리로 하지수를 노려보면서 이를 갈았다.“후회하지 마, 하지수!”“쾅!”송승우는 차에서 내릴 때 차 문을 세게 닫아서 차가 흔들렸다.그가 얼마나 화났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기사마저 소스라쳐 놀라서 감히 숨도 쉬지 못했고 떠나야 할지 제자리에 있어야 할지 몰랐다.“가세요.”오히려 하지수는 담담한 태도로 말했다.송문수는 고개를 돌려 하지수를 바라보았다. 그는 속으로 조금 기뻤지만 감히 기뻐할 수는 없었다. 그는 하지수에 대해 늘 환득환실하였다.기사는 다시 브레이크를 밟고 그들을 데려다주었다.차 안은 여전히 조용하였다. 송문수는 하지수가 먼저 말을 걸지 않으면 죽어도 입을 열지 않겠다고 생각하였다.어느새 주차장에 이르렀다. 두 사람은 앞뒤로 차에서 내렸다.지금 두 사람은 모두 피곤하였다. 저녁 내내 난리 쳐서 벌써 새벽 3시 넘었고 이제 4시간 정도만 잘 수 있었다.“문수 씨, 먼저 씻어. 욕실에서 나오면 내가 방에서 약 발라 줄게. 당신 얼굴에 멍이 좀 들었고 손도 좀 부었잖아.”하지수는 피곤하지만 억지로 정신을 가다듬고 말했다. 송문수는 입술을 오므리다가 대답하였다.“알았어.”하지수는 우선 방에 들어가서 샤워했고 그제야 정신이 조금 들었다.그녀는 거실에서 약상자를 찾은 후 송문수의 방문을 두드렸다.송문수는 잠옷을 입고 소파에 앉아 있었다. 그는 담배를 들고 있었는데 불을 붙이지 않았다.왠지 모르게 갑자기 담배를 피고 싶지 않았고 하지수가 담배 연기를 맡으면 기침을 할까 봐 걱정되기도 하였다.하지수는 그의 옆에 앉아서 요오드포름과 상처치료용 연고를 꺼냈다.“문수 씨, 머리를 조금만 수그려줘. 바를 수가 없잖아.”하지수가 다정하게 말하자 송문수도 순순히 따라서 하였다.그가 이렇게 말을 잘 듣는
“문수 씨.”하지수는 송문수의 이름을 불렀다. 그녀는 지금 송문수가 화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지만 송승우에게 무슨 일이라도 있으면...어쨌든 한 가족이 아닌가.그녀는 가정의 불화를 일으키고 싶지 않았다.“그래도 승우 오빠를 병원에 보내야 하잖아.”하지수는 큰 소리로 송문수에게 말하자 송문수는 발걸음을 멈추었다.사실 송승우는 별일 없었다. 송문수는 격투기를 배운 적이 있기에 사람의 어느 부위가 다치면 안 되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그가 송승우를 이성을 잃을 정도로 때렸어도 급소를 때리지 않았다.하지수는 송문수의 대답을 듣지 못하자 다급히 핸드폰을 꺼내서 긴급구조 요청을 하였다.구급차를 기다리는 동안, 하지수는 송승우에게 다가가지 않았다.그녀는 멀지 않은 곳에 서서 바닥에 쓰러진 송승우를 바라보았다.송승우의 분노가 극도에 이르렀지만 송문수와 싸울 힘이 없었다.사실 하지수도 요새 송승우와 송문수가 자주 싸우는 이유를 몰랐다. 오늘은 벌써 두 번째였다.어렸을 때 두 형제의 관계가 그다지 친밀하지 않았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지금 어른이 되었는데 아직 유치하게 싸우다니!이윽고 구급차가 도착했고 구조대원들은 들것으로 송승우를 구급차에 태웠다.하지수도 따라서 올라탔지만 송문수는 타지 않았다.하지수는 잠시 망설이다가 내려와서 송문수를 잡아당겨서 같이 구급차에 올라탔다.구급차 안은 매우 조용하였다.아무도 말하지 않았고 차 안의 분위기에 아직 분노의 불꽃이 튕기는 것 같았다.병원에 도착한 후 송승우는 응급실로 옮겼다.하지수와 송문수는 로비에서 기다렸다. 송문수는 차가운 분위기를 풍기면서 한쪽에 서 있었다.사실 하지수는 송문수의 얼굴에도 상처가 있는 것을 보았다. “문수 씨도 얼굴과 몸에 난 상처를 검사하지 않을래?”“필요 없어. 외상이라 금방 나을 거야”송문수가 이렇게 말하자 하지수도 강요하지 않았다.잠시 후, 송승우는 응급실에서 나왔고 의사는 이렇게 말했다.“모두 외상이라 별문제가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지금 입원 수속
“놓지 못해?”송문수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하면서 송승우를 바라보았다.서로 마주 본 두 사람의 눈에는 분노로 가득 차 있었고 일촉즉발의 분위기였다.“이거 놔요.”하지수도 송승우의 손을 힘껏 뿌리쳤다. 그러자 송승우의 눈빛에 분노로 이글이글 타올랐다.그는 더욱 세게 하지수를 잡아당겼다.하지수는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아파요!”송문수의 안색이 더욱 어두워졌다.“놓으라고 했다!”그는 송승우의 팔을 끌어당기는 손에 힘을 꽉 주었다. 이에 송승우는 통증을 느꼈으나 승부욕 때문에 쉽게 놓을 수가 없었다.송문수가 힘을 줄수록 그도 더욱 힘을 줘서 하지수를 잡아당겼다.하지수는 너무 아파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송승우는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 “이걸 놔. 나와 지수의 일에 끼어들지 마.”“끼어들지 말라고?”송문수는 냉소를 지으면서 말했다.“형이 잊은 것 같은데 지수는 내 와이프야. 우린 부부이지만 형과 지수는 아무 사이도 아니잖아? 지금 형이 내 와이프를 데려가려고 하는데 나보고 끼어들지 말라고? 너무 뻔뻔하다고 생각하지 않아?”“너!”송문수의 쏘아붙인 말에 송승우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예전에 송승우는 하지수가 자신을 좋아했기 때문에 송문수를 안중에 넣지도 않았고 그들의 결혼 관계를 진지하게 생각한 적도 없었다.그러나 지금 송문수에게 이런 모욕을 당하다니!“지수가 좋아한 사람은 나야!”송승우는 수치심에 더 약이 올라서 노기어린 목소리로 외쳤다.하지수는 너무 아파서 반박할 힘도 없었고 송문수의 말이 들려왔다.“지수가 누구를 좋아하든 지금은 내 여자야. 누구도 데려갈 수 없고 누구도 지수를 괴롭힐 수 없다고! 셋까지 셀 테니 지수를 놓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을 거야!”송승우는 끄덕하지도 않고 송문수를 노려보았다.“하나.”“둘.”송문수는 ‘셋’을 세는 대신 주먹을 들고 송승우의 얼굴을 세게 강타했다.송문수의 한 방을 맞은 송승우는 코피를 흘렸고 아픔으로 이내 하지수를 놓아주었다.그러나 송승우는 소심한 사람이었다. 그는 늘
‘내가 자기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는 건가?’“승우 씨, 사과 따위 이제 필요 없어요. 지금 제가 바라는 건 아무 탈 없이 우리 사이의 관계를 끝내는 거예요. 승우 씨는 문수 씨 형이잖아요. 게다가 저도 어릴 때부터 송씨 가문에서 자란 사람이고요. 그러니까 우리 그냥 친척 같은 관계로 돌아갔으면 좋겠어요.”하지수는 인내심을 가지고 진지하게 말했다.송승우는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며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하지수는 더 이상 그와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 망상에 빠진 사람은 무슨 말을 하든 헤어 나올 수 없다고 생각했기에 그녀는 자신의 마음을 표현했으니 그걸로 됐다고 생각했다.하지수는 뒤를 돌아 송문수 쪽으로 다가가려 했다. 늦은 시간이었고 그녀도 여전히 많이 피곤했다. 송문수랑 같이 집으로 가서 자고 싶었다.크레지가 아직 오지 않은 이상, 기술 투자 계약서에 사인하지 않은 이상 방심할 수는 없었다. 그들은 짬짬이 시간을 내서 잠을 잘 수밖에 없었다.그런데 막 돌아서려는 순간, 그녀의 손은 또다시 송승우에 의해 붙잡혔다.하지수가 아무리 팔을 흔들어도 벗어날 수 없었다.송문수는 차가운 눈빛으로 송승우의 행동을 지켜보며 주먹을 꽉 움켜잡았다.그가 앞으로 다가가 하지수를 데려오려던 순간, 송승우가 갑자기 말했다.“지수 씨, 방금 당신의 행동은 모든 걸 말해줬어요!”“무슨 행동이요?”하지수는 이해할 수 없었다.“방금 제가 불렀을 때, 제 쪽으로 다가왔잖아요. 그게 지수 씨 마음속에 있는 진심이에요. 더 이상 숨기지 말고 저한테로 오세요. 하지수 씨, 제가 잘 해줄게요. 지수 씨를 혼자 두는 일은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을 거예요. 제가 맹세할게요...”“아니요.”하지수는 단칼에 거절해 버렸다.하지수를 바라보는 송승우의 눈빛은 분노로 가득 찼다.“승우 씨가 불었을 때 따라간 건 무의식적으로 간 거예요. 잠에서 덜 깬 상태라서 누가 불렀어도 갔을 거예요. 승우 씨인 줄도 몰랐어요. 하지만 인정할 건 인정할게요. 낯선 목
송문수는 하지수가 일어나서 송승우 쪽으로 걸어가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할 뿐이었다.송승우는 입가에 미소를 띠며 생각했다.‘그래, 지수 씨도 아직 날 신경 쓰고 있다니까. 숨기려 해도 어떻게 숨기겠어? 이런 상태에서야 비로소 진심이 드러나는 거지.’송문수는 멀어져 가는 하지수를 잡으려 손을 뻗었지만 그녀의 옷자락에 손이 닿았을 때 살짝 멈칫했다. 하지수를 강제로 붙잡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사실 그는 항상 하지수의 선택을 존중해 왔다. 지금까지 변함없이 말이다.하지수는 송승우 앞으로 걸어갔고 송승우가 먼저 손을 뻗더니 그녀를 끌어당기려 했다.그러나 그가 손을 뻗자 하지수가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승우 씨?”그녀는 그제야 앞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깨달았다.조금 전까지 어지럽고 혼란스러웠던 상황이 이제와사 분명해졌다.그녀는 자신이 언제 잠에 들었는지도 몰랐다. 그저 너무 피곤해서 머리가 흐릿할 뿐이었다.“너무 늦었어요. 제가 데려다줄게요.”송승우가 그녀를 끌고 나가려고 하자 하지수는 급히 그의 손을 쳐내며 말했다.그러자 송승우는 눈살을 찌푸렸다.“아까는 잠에서 덜 깨서 그랬어요. 전 문수 씨랑 같이 갈 거예요.”“뭐라고요?”송승우는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언제까지 연기할 거예요?”“네?”하지수는 눈살을 찌푸리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송승우가 왜 갑자기 화를 내는지 알 수 없었다.“저를 놀리는 게 재밌으세요?”송승우가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저... 저는 그런 게 아니라...”하지수는 당황해하며 말을 더듬었다.그러자 송승우가 입을 열었다.“알겠어요. 제가 잘못한 걸로 하죠.”그가 갑작스레 사과를 하자 하지수는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그녀는 송승우가 왜 갑자기 사과를 한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왜 사과를 하는 거야?’“미안했어요. 어쩔 수 없이 떠난 거라고는 하지만 우리 결혼식에도 참석하지 못했잖아요. 결혼식장에 지수 씨 혼자 남겨두고 간 건 제 잘못이에요. 미안해요.”하지수는 그제야 무슨 말인지 이해했
하지수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심장은 여전히 빨리 뛰고 있었다.그녀는 전혀 말을 듣지 않는 심장을 진정시키려 애썼다. 만약 누군가 들어오지 않았더라면 이 어색한 상황이 얼마나 계속될지 알 수 없었다.‘문수 씨도 부끄러워하는 건가?’하지수는 입술을 꽉 깨물며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려 애썼다. 갑자기 웃음이 터져 나올까 봐 걱정이었다.하지수는 소파에 앉아 몰래 송문수를 쳐다보았다.그는 그저 고위직 직원의 얘기를 듣고만 있을 뿐, 전혀 불편해 보이지 않았다.그녀는 깊게 숨을 쉬었다.‘단지 어색해서 그런 건가?’송문수는 언제나 체면을 중시하는 사람이었으니 말이다.‘해명하려 하지 않는 것도 결국 체면을 세우려고 그러는 건가?’하지수는 너무 많은 기대를 해선 안 된다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다잡았다....크레지를 맞이하기 위해 모든 관련 부서가 계속해서 야근을 하고 있었다.송문수와 하지수 역시 마찬가지였다.그들은 끊임없이 회의를 열고 논의하며 최대한의 성의를 보이기 위해 애썼다.새벽 2시가 되었지만 송문수는 아직 퇴근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방금까지도 각 부서와 회의를 하면서 협력 계획과 판매 계획을 다시 수정하고 보완했다.회의가 끝난 후에도 송문수는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는 계속 바쁘게 일하고 있었다.송문수는 그제야 그의 확인이 필요한 문서들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무슨 서류든 제대로 보지 않고 사인을 해버렸었다. 하지만 이젠 점점 더 신중해졌고 모든 서류를 꼼꼼히 확인하고 나서야 사인을 했다.그 덕에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고 오늘 하루 동안의 모든 서류를 처리하고 나서야 송문수는 퇴근을 하려고 하지수를 쳐다봤다. 그러자 그녀는 이미 소파에 기대어 잠들어 있는 것이었다.하지수는 잠이 많은 사람은 아니었다. 송문수의 기억 속에 하지수는 늘 자신보다 일찍 일어나는 사람이었고 절대 늦잠을 자지 않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소파에 기대어 잠들어 있었다.‘많이 피곤한 걸까?’자세히 생각해 보니 그들은 지난 일주일 동안 계속해서 야
송문수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크게 티가 나지는 않았지만 그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밝아졌다는 건 알 수 있었다.하지수는 송문수를 더 방해하지 않으려 했다. 송문수가 점점 더 발전하는 걸 보면서 하지수도 그를 더 지지해 주고 싶었고 송문수로 하여금 업무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돕고 싶었다.하지수는 옆에 있는 소파로 가서 노트북을 들고 업무를 처리하기 시작했다.그리고는 습관처럼 회사의 공식 채팅방에 들어갔다.그녀는 비록 알림을 꺼 놓았지만 회사의 공식 채팅방에 메시지가 있으면 항상 첫 번째로 확인하곤 했다.그런데 그때, 그룹 채팅에 있는 메시지를 본 하지수는 깜짝 놀랐다. 그녀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아마 이 상황을 믿기 어려워할 것이었다.송문수가 회사의 공식 채팅방에 ‘하지수’라는 이름을 여러 번 보낸 것이었다.하지수는 고개를 들어 송문수를 바라보았다.그는 진지하게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채팅방에는 여전히 ‘하지수’라는 이름이 올라오고 있었다.“문수 씨, 컴퓨터 바이러스에 걸린 거 아니야?”하지수가 물었다.“어?”송문수는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했다.하지수는 송문수 앞에 서서 그의 컴퓨터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화면에는 타자를 해놓고 아직 보내지 않은 ‘하지수’도 있었다.송문수도 그제야 자신이 채팅방에 ‘하지수’라는 이름을 여러 번 입력했다는 것을 깨달았다.그 자신도 놀란 듯했다. 그는 자신이 타자를 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의식하지 못했던 것이다.하지만 방금 그의 머릿속이 온통 하지수로 가득 찬 건 사실이었다.그때, 채팅방에서 누군가 메시지를 보냈다.[회장님 지금 하 매니저님한테 애교 부리는 거야? 그걸 실수로 단체 채팅방에 보낸 거고?]메시지는 보내지자마자 삭제되었고 밖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나도 잘못 보냈네!”그룹 채팅에 두 개의 삭제 기록이 나타났다.송문수는 멍하니 앉아 있다가 그제야 메시지를 삭제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그는 ‘하지수’라는 메시지들을 삭제하려 했지만 이미 메시지를 취소할 수 있는 시간이
송승우는 이를 꽉 악물었다. 그는 하지수를 절대로 포기할 수 없었다. 그는 하지수에게 송문수를 고른 게 얼마나 잘못된 선택이었는지 반드시 알게 해주겠다고 결심했다. 그녀로 하여금 후회하도록 만들겠다고 다짐했다....하지수는 송승우의 사무실을 떠나 바로 송문수의 사무실로 갔다.송문수는 업무에 몰두해 있었다.회사에 들어선 순간부터 그는 자유시간이 없었고 퇴근 후에도 여전히 업무와 관련된 일들을 처리하고 있었다.하지수는 송문수가 많이 변했다고 느꼈다. 그녀는 하느님도 부지런한 사람을 도울 거라 믿으며 송문수가 앞으로 큰 성과를 낼 것이라고 확신했다.“형이 뭐라고 했어?”송문수는 그녀를 한 번 쳐다보며 차갑게 물었다.“자기 개인 비서로 되어달라고 하더라고.”하지수는 송문수에게 숨기지 않고 말했다. 그녀는 더 이상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을 그에게 숨기고 싶지 않았다.송문수랑 같이 오랫동안 시간을 보내고 싶었기에 최대한 마음을 다할 생각이었다.송문수는 멈칫하더니 코웃음을 치더니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녀가 어떻게 대답했는지 알고 싶지 않아 하는 것 같았다. 어쩌면 하지수가 그 제안을 무조건 받아들였을 거라고 여겼는지도 모른다.‘지수가 형 요구를 거절한 적은 한 번도 없는데 이번에도 알겠다고 했겠지...’이렇게 생각한 송문수는 일에 더 집중하려 애썼다. 회사 일을 제대로 해내기로 결심한 이상 중간에 포기할 생각은 없었으니 말이다.“거절했어.”하지수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송문수는 가슴이 약간 두근거리는 걸 느꼈다.분명 그녀의 말에 설렌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겉으로 티 내지 않으려 했다.그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척 계속해서 서류를 보고 있었다.반면, 하지수는 송문수에게 그 어떤 반응도 기대하지 않았다. 어차피 송문수는 자기한테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저 자신의 결정을 그에게 알리고 싶었을 뿐이었다.“왜 거절했는데?”송문수가 차분하게 물었다.“문수 씨한테 내가 더 필요하다고 생각했으니까.”하지수는 웃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