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선이 나나에게 집중되었다.관중들 시선에 나나는 너무 놀라 온몸을 덜덜 떨며 정신을 잃었다.사회자, 현장 관중, 카메라 앞에서 나나는 어쩔 수 없이 그녀가 그 옷을 바꾼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모든 진상이 낱낱이 밝혀졌다.소이연은 누군가에 의해 함정에 빠졌다.이번 사건의 장본인은 당연히 나나가 아니었다. 나나는 그녀에게 아무런 원한도 없었으니 그 화살이 문서아에게 돌아갔다.문서아는 창백한 얼굴로 무대 위세 서 있었다.반박할 수가 없었다.사회자도 놀라 윽박질렀다. “서아 씨, 왜 이연 씨의 옷을 바꿨나요, 왜 그런 짓을 하신 거죠?!”문서아는 입술을 깨물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이렇게 많은 조명 아래 전 국민 앞에서 이렇게 까발려지니 믿어지지 않았다.그녀의 뒤에 얼마나 큰 조력자가 있던 앞으로의 그녀의 연예계 생활이 걸려있었다.그녀는 계속 고개만 저었다.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려 소나은을 바라보았다.소나은에게 도움을 요청하고자 했다.아무런 도움도 없이 이렇게 혼자 무대에 서 있을 수 없었다.소나은도 이 순간 당황스러웠지만 분노가 더 컸다.문서아의 시선이 느껴지자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그녀는 절대 이 일로 그녀의 콘셉트와 평판에 영향을 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이 사건을 계획할 때 이미 도망갈 구멍을 찾아 두었다.무슨 일이 생기면 당연히 문서아에게 뒤집어씌울 생각이었다.그녀의 얼굴은 순식간에 슬픈 얼굴로 어쩔 수 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서아야, 네가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아무리 문씨 패션을 위해서라도 그렇지, 우리 언니가 대회에서 이기는 게 싫다고 이렇게 죄를 뒤집어씌우고 모함하다니, 넌 내 제일 친한 친구잖아. 난 네가 이런 짓을 했다는 게 정말 믿기지 않아......”말을 하던 소나은이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마음이 찢어져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이었다.문서아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소나은을 바라보았다.어떻게, 어떻게 모든 일을 그녀에게 뒤집어씌울 수가 있는가?!도대체 왜 그녀 혼자
[소나은 왜 이렇게 여우 같지?!][바람 피운 여자가 낳은 애는 역시 쪼잔하네, 진짜 치사하다.][소나은은 이번엔 진짜 정떨어진다. 질 거면 당당하게 지던가. 진짜 밥 맛 떨어져.]“심사위원 여러분, 여러분이 다른 영향을 받지 않고, 공정하게 이번 대회를 평가해 주셨으면 합니다. 관중들과 시청자 여러분, 그리고 친구들 역시 명분이 있는 결과를 원할 거라고 생각합니다.”소이연이 다시 한번 간절히 말했다.사실 관중들도 소이연이 결승전에서 만든 옷이 뭔지 궁금했다.그래도 lovely니까 작품은 당연히 잘 만들었을 것을 거라 생각했다.“우리도 소이연의 작품이 보고 싶어요!” 한 관중이 큰 소리로 외치기 시작했다.“소이연에게 공평하게 해줘라!”“대회를 계속해 주세요! 우리도 명분이 있는 결과를 원합니다!”현장의 소리는 점점 더 커졌다.댓글 창도 소이연에 대한 각종 응원이 가득했다.육현경의 단톡방도 고요했다.아마 이 극적인 전개에 다들 놀랐을 것이다.이때 하도경이 또 메시지를 보내왔다.“미친, 이거 너무한 거 아니야?! 문서아가 이 정도까지 한다고? 지원아, 네 와이프 대단한데, 너 앞으로 조심해라.” @계지원.“문서아가 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닌데, 문서인이 뒤에서 조종하고, 문서아는 당한 거 같아.” 송문수가 평가했다.“내 생각에도 그래. 문서아는 가슴만 크고 머리는 비었어. 문서아를 무시하는 건 아닌데 너랑 안 어울리긴 해.” @계지원.“하도경, 너 말이 많다.” 송문수가 하도경에게 한마디 했다.“내가 말이 많긴 해. 그럼 문서아 얘기는 안 할게. 소나은 얘기 좀 해보자. 진짜 역겹다. 내가 그렇게 많은 여자들을 만나봤는데, 이렇게 쓰레기 같은 애는 처음이야. 진짜 이런 애를 좋아하는 남자가 있긴 해? 문서인은 대가리에 똥이 들어찬 거냐?!” 하도경은 다소 흥분했다.“그게 아니면 현경이가 어떻게 기회를 잡았겠어?” 두 사람은 단톡방에서 열렬하게 토론할 때 이른바 두 “가족”은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스튜디오 현장.현장 논의
온 현장은 쥐 죽은 듯 조용했다.스크린에서도 이렇게 아름다운 장면은 본 적이 없었다.그녀의 놀라운 미모와 아름다운 몸매 외에 푸른 밤 같은 보석으로 장식한 드레스가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모든 사람들이 숨죽이고 바라보았다.숨을 조금만 크게 쉬었다간 눈앞의 아름다운 장면이 산산조각 날까 두려웠다.세련되고 고귀한 드레스가 사람을 예쁘게 보이게 하는 건지 사람이 예뻐서 드레스가 세련되고 고귀해 보이는 건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그냥 사람과 옷이 물아일체 되었다고 밖에 할 수 없었다.너무 예뻐서 분간이 되지 않았다.댓글 창은 폭발했다.[너무 예쁘다, 너무 예뻐, 나 숨도 못 쉬겠어!][소이연 진짜 예쁘다. 왜 데뷔 안 하지? 드라마, 영화에 나오면 매일이라도 볼 텐데. 안구 정화 그 자체야.][이 옷 소이연 몸에 박제해 주세요.]단톡방에서도 난리가 났다.하도경은 “코피 흘리는 이모티콘”을 최소 10개 이상 보냈다.“보라면 못 볼 것 같아? 그랬다 가는 헛된 욕심이 생길 것 같아.” @육현경.“현경아, 소이연이 이렇게 예뻤어? 너 빨리 데려가라, 더 나왔다간 누구라도 다치겠어.” @육현경.“나 갑자기 문서인 생각났어. 걔 진짜 웃기다. 세상에서 제일 웃겨. 지원아, 다음에 네 삼촌 만나면 눈이 어떻게 된 건 아닌지 물어봐 줘.” @계지원.화면 속에서도 하도경의 비웃음이 느껴졌다.스튜디오 현장.충격적인 현장에서 마침내 관중들이 정신을 차렸다.그러고는 서로 질세라 환호성을 내질렀다. 소이연과 소이연이 입고 있는 옷이 정말 예뻐서였다.소나은은 옆에서 얼굴이 구겨질 만큼 웃고 있었다.오늘 소이연에게 치욕을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다시 그녀를 치켜세우는 꼴이 되어버렸다.그녀는 심지어 다음에 소이연의 인기가 얼마나 많아져 있을지 자신의 이미지가 어디까지 깎아져 내려질지 상상되었다.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소이연이 자신보다 잘하는 것을 가장 견딜 수 없었다.소이연이 잘하는 것은 무조건 망쳐 놓아야 직성이 풀렸다.18살이 되던 해,
[문서아 은퇘해. 이런 사람은 연예인 할 자격도 없어.][문서아 법 위반한 거 아니야? 관련 부서에서 반드시 공정하게 처리 부탁드립니다.]예능 대회가 드디어 끝났다.원래 2시간인 프로그램이 장장 4시간 동안 방영되었다.시청률도 역 대급인 기록을 세웠다.녹화 종료 후 모든 사람들이 순서대로 스튜디오를 떠났다.무대 뒤로 돌아온 소이연은 우선 마린을 찾아가 감사 인사를 했다. 그제야 스태프의 도움을 받아 방송국을 떠났다.입구에서 기자들이 떼로 몰려왔다.소나은과 문서아는 기자들에게 둘러싸여 걸을 수도 없었다.“문서아씨, 왜 소이연 씨에게 누명을 씌우셨죠? 소이연 씨가 좋은 성적을 거두면 문씨 그룹에 어떤 영향이 있는 건가요?”“이런 행동이 부끄럽지는 않으신가요?”“이런 행동이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사실도 알고 계셨나요?”“문서아 씨 대답 좀 해주세요!”기자들이 불친절한 목소리로 각자 질문을 했다. 문서아는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됐어요, 됐어!” 문서아가 소리쳤다.그녀도 자기 자신을 통제할 수 없었다.기자들은 여전히 굴하지 않고 그녀가 미쳐가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다 비켜요, 저 갈 거예요! 비키라고!” 문서아가 울면서 소리쳤다.소나은은 여전히 옆에서 좋은 사람인 척 연기를 하고 있었다. “서아야 진정해, 기자님들도 다 일하시는 거잖아, 좀 도와줘.”“소나은!” 문서아가 드디어 폭발했다.무대에서부터 소나은과의 관계를 어떻게 해버리고 싶었다.그런데 일을 키우면 안 되니 우선 하는 수 없이 참고 있었는데, 지금 좋은 사람인 척을 하니 자신이 더욱 교양 없고 더 미친 사람 같았다.문서아가 매섭게 소나은의 뺨을 때렸다.소나은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여 불쌍한 얼굴로 말했다. “서아야......”겉으로 보기에는 아주 억울해 보였다.“문서아 씨, 어떻게 사람을 때려요! 너무 못됐다!”“맙소사, 난 이렇게 막무가내인 사람은 또 처음 보네! 문서아 씨 진짜 교양 없네요!”“소나은 씨는 위로하는 거잖아요. 근데 이
계지원이 나타나서 문서아를 데리고 가자 소나은도 적잖게 놀랐다.하지만 계지원과 문서아의 관계는 그다지 좋지 않았다. 열애설을 공개적으로 오픈한 뒤로 데이트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그런데 계지원이 문서아가 난감한 상황에 나타나 대중들이 보는 앞에서 데리고 간 것이다.남친 역할 제대로 하는데?모든 여자들이 기대하고 부러워하는 남친상이 이런 게 아니야?소나은은 속으로 은근 샘이 났다.문서인은 뭐 하고 있는지 코빼기도 안 보이네.비록 이번 대회에서 졌지만 다행히 명예를 잃을 정도는 아니었다.문서아가 간 뒤, 소나은은 기자들 앞에서 동정심을 유발하려 했다.그런데 기자들이 그녀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전부 스쳐 지나갔다.이를 악물며 부르르 떨었지만 어쩔 수 없이 자리를 떴다.“소이연 씨, 이번 대회에서 문서아의 모함을 당했는데 소감 한마디 부탁해도 되겠습니까? 많이 괴롭고 받아들이기 힘든 가요?”“상처를 받으셨죠? 문서아는 전 남친의 여동생인데 어떻게 이렇게 대할 수 있어요?”“소이연 씨, 왜서 lovely 신분을 숨긴 겁니까? 특별한 이유라도 있습니까?”“이번 대회에서 소나은이 디자인한 옷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기자들이 흥분하며 질문 공세를 퍼붓자 소이연은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대답했다.“제가 모함을 당했지만 괴로운 사람은 따로 있을 겁니다. 마지막에 진상이 밝혀졌기 때문에 난처하게 된 건 제가 아니까요. 그리고 저보다 상처를 더 많이 받은 사람도 있잖아요.”소이연이 말한 상처를 더 많이 받은 사람은 문서아를 가리킨다.여태 절친이라고 여겼던 자매한테서 배신을 당했으니 소나은을 죽이고 싶은 충동을 느꼈을 것이다.“lovely 신분을 감춘 것인 온전히 사적인 이유로서 말씀드리기 곤란합니다. 부디 양해를 부탁드릴게요.”그녀는 더는 기자들과 얽히기 싫어 떠나려고 했지만 기자들이 나갈 틈을 주지 않고 더 몰려들었다.“소이연 씨, 혹시 이번 일이 문서인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합니까?”“한때 문서인과 연인 사이였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책스럽게 마음이 또 들뜨기 시작했다.소이연이 손을 내밀어 육현경의 손바닥에 얹었다.그의 입술선이 살짝 올라가더니 손을 꼭 잡고 기자들 속에서 떠났다.다들 두 사람이 가는 뒷모습을 쳐다보았다.본인이 직접 디자인한 파격적인 드레스를 입은 소이연은 훤칠한 남자의 옆에 서 있으니 몸매가 한층 더 돋보였다.마치 부잣집 아내가 도망쳤다가 잡혀가는 그림을 보는 듯했다.드라마 속에서나 나올 듯한 장면을 현실에서 보고 있으니 기분이 짜릿할 정도로 아름다웠다.기자들이 다시 카메라를 들고 두 사람의 뒷모습을 찍느라 분주했다.헬리콥터가 떠나자 카메라 셔텨음이 점점 사라졌다.…헬리콥터에 탄 소이연은 창밖으로 멀어지는 지면을 바라보았다.이렇게 요란하게 등장해서 데리고 오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계지원처럼 차를 타고 올 것이지.큰 소동을 일으켰으니 내일 뉴스에 어떤 글들이 올라올지 생각하지 않아도 상상이 갔다.그래도 가슴은 생각과 다르게 점점 빠르게 뛰고 있다.마치 수면 위에서 파도가 넘실거리는 것 같았다.“소이연 씨, 축하드려요.”귓가에 쉰 남자의 중저음 목소리가 들렸다.소이연이 고개를 돌려 육현경과 눈을 마주쳤다.잘생긴 얼굴을 이렇게 보고 있으니 조금 쑥스러웠다.그때 꽃다발이 불쑥 눈앞에 나타났다.소이연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이 남자 서프라이즈는 정말 잘 한다니까.그녀가 미소를 지으며 꽃다발을 받았다.“고마워.”“대표님께서 직접 만든 겁니다. 오전 내내 꽃다발을 만드느라 진땀을 빼셨어요.”이명진이 뒤에서 불쑥 끼어들었다.“…”그 바람에 소이연이 깜짝 놀랐다. 뒤에도 사람이 있을 줄은 몰랐다.요염하게 물든 붉은 장미꽃을 보다가 장미꽃보다 더 설레게 만드는 육현경을 바라보았다.소이연이 갑자기 몸을 기울이며 그의 볼에 뽀뽀를 했다.육현경의 몸이 움찔했다.그녀는 뽀뽀한 뒤에 왠지 후회가 되었다.빤히 쳐다보는 그의 시선에 어쩔 바를 몰랐다.이명진까지 뒤에서 보고 있다는 것도 잊은 채 감동을 억제 못하고 충동적으로 뽀
예수진은 승합차를 타고 촬영장을 떠났다.하루 내내 감정기복이 심한 야간극을 찍었더니 주인공의 역할에서 한동안 벗어나지 못했다.차에 올라탄 뒤 진정시킬 겸 등받이에 기대어 눈을 감았다.오늘 매니저가 데리러 와서 지금 한창 옆에 앉은 실장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다인 언니, 저녁에 ‘솔로디자인쇼’를 보셨어요?”실장이 물었다.“오는 길에 띄엄띄엄 봤어.”“저도 띄엄띄엄 보긴 했는데 오늘 소이연과 소나은의 대회가 너무 드라마틱하더라고요. 드라마를 본 것보다 반전이 더 많았어요. 지금 뉴스에 숱한 글들이 올라왔는데 궁투극보다 더 재미있어요.”실장의 말에 예수진의 눈꺼풀이 살짝 움직였다.오늘 소이연의 대결이 있다는 걸 새까맣게 잊어버렸다.촬영에만 집중하느라 대회를 챙겨보는 걸 까먹었다.그녀가 눈을 뜨고 물었다.“소이연이 이겼어?”“당연하죠. 그것도 아주 통쾌 상쾌하게 이겼어요. 오늘부터 나 소이연 팬 할래요.”실장이 흥분하면서 말하더니 이내 한마디 덧붙였다.“물론 수진 언니가 내 마음속에 최고이긴 하지만요.”알랑방구쟁이!그래도 예수진은 소이연이 이겨서 기분이 좋았다.만약 소나은이 이겼다면 얼마나 콧대를 쳐들고 다닐지 상상이 갔다.“수진 언니, 촬영하느라 아직 뉴스를 못 봤죠? 오늘 저녁 대회 현장에 문서아가 소이연을 모함하려다가 대중들 앞에서 들통났잖아요. 그때 얼마나 속이 시원하던지, 10년 묵은 체중이 쫙 내리는 기분이에요.”실장은 말하면 말할수록 격동했다.“그래?”예수진도 가십거리를 논하기 좋아했다.실장의 말을 듣고 갑자기 흥분되기 시작했다.피곤해서 손가락 움직일 힘도 없지만 그래도 휴대폰을 들고 뉴스를 검색했다.대회에 관한 뉴스가 실시간 검색어에 올라와 있었다.한창 신나게 보고 있을 때 한 뉴스 제목이 눈에 띄었다.“계지원은 문서아의 스캔들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대중들 앞에서 당당하게 여친을 보호했다”예수진이 미세하게 떨리는 손으로 뉴스를 터치했다.먼저 글을 대충 훑어보다가 사진을 주시해 보았다.계지원이 인파를
소이연에게 전화했더니 전원을 꺼버렸다.전원을 끄고 다닐 사람이 아닌데?다급하게 오빠한테 전화를 했더니 또 전원이 꺼져 있다.두 사람 설마 납치된 거 아니야?그럴 일은 없겠지만 은근 긴장이 되었다.망설이다가 하도경에게 연락했다.“우리 오빠 어디 갔는지 알아? 연락이 안 돼!”“나도 몰라.”하도경이 대답했다.“이연 씨와 축하 파티하고 있겠지. 오늘 저녁 이연 씨 그렇게 예쁘던데 남자라면 못 참는 게 당연해. 내가 네 오빠래도 주저없이…”“우리 오빠는 그런 사람 아니거든?”예수진은 무서운 오빠 바라기였다.“그래도 남자들은 다 똑같아.”그저 답답한 면이 있다 뿐이다.“모르면 됐어.”예수진은 쓸데없는 말을 하기 싫어 바로 끊어버리려 했다.“예수진.”그때 하도경이 불렀다.“뭐?”“술 마시러 나올래?”하도경이 불쑥 물었다.그 말에 예수진이 미간을 찌푸렸다.이 시간에 무슨 술이야, 미쳤어?“내일 촬영 있어.”예수진이 딱 잘라 거절했다.“다음에 마시자. 이번 촬영이 끝나면 며칠 쉴 거야. 그때 이 누나가 실컷 마셔 줄게.”하도경의 웃음 소리가 들렸다.그깟 술을 마시지 못해서 안달이 난 게 아니라 예수진의 기분을 풀어주려고 말한 것이다.“그럼 일찍 쉬어.”“응.”예수진이 통화를 끊고 소파에 벌러덩 누웠다.하도경의 말을 들어보니 소이연이 육현경과 같이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그렇다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다시 마음이 가라앉았다.한 사람을 잊는데 얼마나 걸릴까?아마 오래오래 지나야 하나도 아프지 않겠지.…소이연과 육현경은 8시간 비행기를 타고 발리에 도착했다.공항에서 내리자마자 전용차를 타고 호텔로 향했다.그랜드 호텔에 도착했을 때 현지 시간으로 오후 2시가 조금 지났다.소이연이 이동 중에 잠들어서 호텔에 도착했는데도 눈을 뜨지 못했다.결국 육현경이 안고 방으로 이동했다.조심스럽게 그녀를 푹신한 베개에 눕히자 더 깊이 잠들었다.육현경이 자는 모습을 부드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다가 씻으러 가려고 할 때 소이연의
사실 송문수도 내성적인 사람은 아니었다. 하지만 하지수의 앞에서 늘 냉담한 표정을 지었다.송문수의 말에 하지수는 한숨을 내쉬었다.“왜 모두 날 못 믿는 거지?”송승우가 그녀를 믿지 않을 뿐만 아니라 송문수도 그녀를 믿지 않았다. 자신의 말이 이렇게 신뢰성이 없단 말인가?“그냥 송승우는 나보다 훨씬 나은데 당신이 날 선택하는 것이 이해가 안 돼서 그래.”송문수는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지만 심장이 벌렁벌렁 뛰었다. 그는 너무 긴장해서 숨이 막힐 정도였다.“승우 오빠가 문수 씨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하지 않아.”하지수는 망설이지 않고 말하였다.“응?”하지수의 말에 송문수는 눈썹을 치켜세웠고 자기의 귀를 의심하였다.송승우는 자기보다 능력이 뛰어나고 더 똑똑한 것은 모두에게 알려진 사실이었다.반대로 자신은 그냥 못난 놈이었다.그는 어렸을 때부터 무능하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승우 오빠가 문수 씨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하지 않아. 점점 그런 생각이 들어.”하지수는 다시 한번 말하였다.“근데 너 어렸을 때부터 형만 좋아했잖아? 몇 년 동안 좋아했지?”“지금 생각하면 그건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의지해서 그런 것 같아.”하지수는 송문수에게 약을 발라주면서 말하였다.“어렸을 때 승우 오빠가 성숙하고 듬직하고 성격도 좋다고 생각했어. 당신처럼 걸핏하면 나를 괴롭히지는 않았으니까. 그리고 난 부모님이 돌아가셨고 또 낯선 환경에서 생활하다 보니 안전감을 줄 수 있는 듬직한 사람을 찾으려고 했던 것 같아.”하지수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그때 승우 오빠는 나를 지켜줄 것 같은 생각이 들었어. 하지만 난 정말 승우 오빠와의 감정을 진지하게 생각한 적이 없었어. 승우 오빠에 대한 의지를 사랑으로 착각했던 것 같아. 지금 생각하면 아니야.”하지수는 연고를 내려놓고 송문수를 바라보면서 말했다.“지금은 승우 오빠가 날 결혼식장에 버려두고 간 것을 조금도 원망하지 않아. 그리고 승우 오빠와 다시 잘되고 싶은 생각이 없고 심지어 나와 더 멀리 떨어졌으면 좋겠어
“승우 오빠, 우리 사이에 정말 끝났다고 몇 번 말해야 돼요? 우린 더 이상 가능성이 없어요.”사실 하지수는 화가 좀 났다. 도대체 어떻게 말해야 송승우가 자신의 진실한 속마음을 믿을까? 왜 이렇게 집착하지?송승우는 매서운 눈초리로 하지수를 노려보면서 이를 갈았다.“후회하지 마, 하지수!”“쾅!”송승우는 차에서 내릴 때 차 문을 세게 닫아서 차가 흔들렸다.그가 얼마나 화났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기사마저 소스라쳐 놀라서 감히 숨도 쉬지 못했고 떠나야 할지 제자리에 있어야 할지 몰랐다.“가세요.”오히려 하지수는 담담한 태도로 말했다.송문수는 고개를 돌려 하지수를 바라보았다. 그는 속으로 조금 기뻤지만 감히 기뻐할 수는 없었다. 그는 하지수에 대해 늘 환득환실하였다.기사는 다시 브레이크를 밟고 그들을 데려다주었다.차 안은 여전히 조용하였다. 송문수는 하지수가 먼저 말을 걸지 않으면 죽어도 입을 열지 않겠다고 생각하였다.어느새 주차장에 이르렀다. 두 사람은 앞뒤로 차에서 내렸다.지금 두 사람은 모두 피곤하였다. 저녁 내내 난리 쳐서 벌써 새벽 3시 넘었고 이제 4시간 정도만 잘 수 있었다.“문수 씨, 먼저 씻어. 욕실에서 나오면 내가 방에서 약 발라 줄게. 당신 얼굴에 멍이 좀 들었고 손도 좀 부었잖아.”하지수는 피곤하지만 억지로 정신을 가다듬고 말했다. 송문수는 입술을 오므리다가 대답하였다.“알았어.”하지수는 우선 방에 들어가서 샤워했고 그제야 정신이 조금 들었다.그녀는 거실에서 약상자를 찾은 후 송문수의 방문을 두드렸다.송문수는 잠옷을 입고 소파에 앉아 있었다. 그는 담배를 들고 있었는데 불을 붙이지 않았다.왠지 모르게 갑자기 담배를 피고 싶지 않았고 하지수가 담배 연기를 맡으면 기침을 할까 봐 걱정되기도 하였다.하지수는 그의 옆에 앉아서 요오드포름과 상처치료용 연고를 꺼냈다.“문수 씨, 머리를 조금만 수그려줘. 바를 수가 없잖아.”하지수가 다정하게 말하자 송문수도 순순히 따라서 하였다.그가 이렇게 말을 잘 듣는
“문수 씨.”하지수는 송문수의 이름을 불렀다. 그녀는 지금 송문수가 화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지만 송승우에게 무슨 일이라도 있으면...어쨌든 한 가족이 아닌가.그녀는 가정의 불화를 일으키고 싶지 않았다.“그래도 승우 오빠를 병원에 보내야 하잖아.”하지수는 큰 소리로 송문수에게 말하자 송문수는 발걸음을 멈추었다.사실 송승우는 별일 없었다. 송문수는 격투기를 배운 적이 있기에 사람의 어느 부위가 다치면 안 되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그가 송승우를 이성을 잃을 정도로 때렸어도 급소를 때리지 않았다.하지수는 송문수의 대답을 듣지 못하자 다급히 핸드폰을 꺼내서 긴급구조 요청을 하였다.구급차를 기다리는 동안, 하지수는 송승우에게 다가가지 않았다.그녀는 멀지 않은 곳에 서서 바닥에 쓰러진 송승우를 바라보았다.송승우의 분노가 극도에 이르렀지만 송문수와 싸울 힘이 없었다.사실 하지수도 요새 송승우와 송문수가 자주 싸우는 이유를 몰랐다. 오늘은 벌써 두 번째였다.어렸을 때 두 형제의 관계가 그다지 친밀하지 않았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지금 어른이 되었는데 아직 유치하게 싸우다니!이윽고 구급차가 도착했고 구조대원들은 들것으로 송승우를 구급차에 태웠다.하지수도 따라서 올라탔지만 송문수는 타지 않았다.하지수는 잠시 망설이다가 내려와서 송문수를 잡아당겨서 같이 구급차에 올라탔다.구급차 안은 매우 조용하였다.아무도 말하지 않았고 차 안의 분위기에 아직 분노의 불꽃이 튕기는 것 같았다.병원에 도착한 후 송승우는 응급실로 옮겼다.하지수와 송문수는 로비에서 기다렸다. 송문수는 차가운 분위기를 풍기면서 한쪽에 서 있었다.사실 하지수는 송문수의 얼굴에도 상처가 있는 것을 보았다. “문수 씨도 얼굴과 몸에 난 상처를 검사하지 않을래?”“필요 없어. 외상이라 금방 나을 거야”송문수가 이렇게 말하자 하지수도 강요하지 않았다.잠시 후, 송승우는 응급실에서 나왔고 의사는 이렇게 말했다.“모두 외상이라 별문제가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지금 입원 수속
“놓지 못해?”송문수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하면서 송승우를 바라보았다.서로 마주 본 두 사람의 눈에는 분노로 가득 차 있었고 일촉즉발의 분위기였다.“이거 놔요.”하지수도 송승우의 손을 힘껏 뿌리쳤다. 그러자 송승우의 눈빛에 분노로 이글이글 타올랐다.그는 더욱 세게 하지수를 잡아당겼다.하지수는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아파요!”송문수의 안색이 더욱 어두워졌다.“놓으라고 했다!”그는 송승우의 팔을 끌어당기는 손에 힘을 꽉 주었다. 이에 송승우는 통증을 느꼈으나 승부욕 때문에 쉽게 놓을 수가 없었다.송문수가 힘을 줄수록 그도 더욱 힘을 줘서 하지수를 잡아당겼다.하지수는 너무 아파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송승우는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 “이걸 놔. 나와 지수의 일에 끼어들지 마.”“끼어들지 말라고?”송문수는 냉소를 지으면서 말했다.“형이 잊은 것 같은데 지수는 내 와이프야. 우린 부부이지만 형과 지수는 아무 사이도 아니잖아? 지금 형이 내 와이프를 데려가려고 하는데 나보고 끼어들지 말라고? 너무 뻔뻔하다고 생각하지 않아?”“너!”송문수의 쏘아붙인 말에 송승우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예전에 송승우는 하지수가 자신을 좋아했기 때문에 송문수를 안중에 넣지도 않았고 그들의 결혼 관계를 진지하게 생각한 적도 없었다.그러나 지금 송문수에게 이런 모욕을 당하다니!“지수가 좋아한 사람은 나야!”송승우는 수치심에 더 약이 올라서 노기어린 목소리로 외쳤다.하지수는 너무 아파서 반박할 힘도 없었고 송문수의 말이 들려왔다.“지수가 누구를 좋아하든 지금은 내 여자야. 누구도 데려갈 수 없고 누구도 지수를 괴롭힐 수 없다고! 셋까지 셀 테니 지수를 놓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을 거야!”송승우는 끄덕하지도 않고 송문수를 노려보았다.“하나.”“둘.”송문수는 ‘셋’을 세는 대신 주먹을 들고 송승우의 얼굴을 세게 강타했다.송문수의 한 방을 맞은 송승우는 코피를 흘렸고 아픔으로 이내 하지수를 놓아주었다.그러나 송승우는 소심한 사람이었다. 그는 늘
‘내가 자기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는 건가?’“승우 씨, 사과 따위 이제 필요 없어요. 지금 제가 바라는 건 아무 탈 없이 우리 사이의 관계를 끝내는 거예요. 승우 씨는 문수 씨 형이잖아요. 게다가 저도 어릴 때부터 송씨 가문에서 자란 사람이고요. 그러니까 우리 그냥 친척 같은 관계로 돌아갔으면 좋겠어요.”하지수는 인내심을 가지고 진지하게 말했다.송승우는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며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하지수는 더 이상 그와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 망상에 빠진 사람은 무슨 말을 하든 헤어 나올 수 없다고 생각했기에 그녀는 자신의 마음을 표현했으니 그걸로 됐다고 생각했다.하지수는 뒤를 돌아 송문수 쪽으로 다가가려 했다. 늦은 시간이었고 그녀도 여전히 많이 피곤했다. 송문수랑 같이 집으로 가서 자고 싶었다.크레지가 아직 오지 않은 이상, 기술 투자 계약서에 사인하지 않은 이상 방심할 수는 없었다. 그들은 짬짬이 시간을 내서 잠을 잘 수밖에 없었다.그런데 막 돌아서려는 순간, 그녀의 손은 또다시 송승우에 의해 붙잡혔다.하지수가 아무리 팔을 흔들어도 벗어날 수 없었다.송문수는 차가운 눈빛으로 송승우의 행동을 지켜보며 주먹을 꽉 움켜잡았다.그가 앞으로 다가가 하지수를 데려오려던 순간, 송승우가 갑자기 말했다.“지수 씨, 방금 당신의 행동은 모든 걸 말해줬어요!”“무슨 행동이요?”하지수는 이해할 수 없었다.“방금 제가 불렀을 때, 제 쪽으로 다가왔잖아요. 그게 지수 씨 마음속에 있는 진심이에요. 더 이상 숨기지 말고 저한테로 오세요. 하지수 씨, 제가 잘 해줄게요. 지수 씨를 혼자 두는 일은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을 거예요. 제가 맹세할게요...”“아니요.”하지수는 단칼에 거절해 버렸다.하지수를 바라보는 송승우의 눈빛은 분노로 가득 찼다.“승우 씨가 불었을 때 따라간 건 무의식적으로 간 거예요. 잠에서 덜 깬 상태라서 누가 불렀어도 갔을 거예요. 승우 씨인 줄도 몰랐어요. 하지만 인정할 건 인정할게요. 낯선 목
송문수는 하지수가 일어나서 송승우 쪽으로 걸어가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할 뿐이었다.송승우는 입가에 미소를 띠며 생각했다.‘그래, 지수 씨도 아직 날 신경 쓰고 있다니까. 숨기려 해도 어떻게 숨기겠어? 이런 상태에서야 비로소 진심이 드러나는 거지.’송문수는 멀어져 가는 하지수를 잡으려 손을 뻗었지만 그녀의 옷자락에 손이 닿았을 때 살짝 멈칫했다. 하지수를 강제로 붙잡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사실 그는 항상 하지수의 선택을 존중해 왔다. 지금까지 변함없이 말이다.하지수는 송승우 앞으로 걸어갔고 송승우가 먼저 손을 뻗더니 그녀를 끌어당기려 했다.그러나 그가 손을 뻗자 하지수가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승우 씨?”그녀는 그제야 앞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깨달았다.조금 전까지 어지럽고 혼란스러웠던 상황이 이제와사 분명해졌다.그녀는 자신이 언제 잠에 들었는지도 몰랐다. 그저 너무 피곤해서 머리가 흐릿할 뿐이었다.“너무 늦었어요. 제가 데려다줄게요.”송승우가 그녀를 끌고 나가려고 하자 하지수는 급히 그의 손을 쳐내며 말했다.그러자 송승우는 눈살을 찌푸렸다.“아까는 잠에서 덜 깨서 그랬어요. 전 문수 씨랑 같이 갈 거예요.”“뭐라고요?”송승우는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언제까지 연기할 거예요?”“네?”하지수는 눈살을 찌푸리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송승우가 왜 갑자기 화를 내는지 알 수 없었다.“저를 놀리는 게 재밌으세요?”송승우가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저... 저는 그런 게 아니라...”하지수는 당황해하며 말을 더듬었다.그러자 송승우가 입을 열었다.“알겠어요. 제가 잘못한 걸로 하죠.”그가 갑작스레 사과를 하자 하지수는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그녀는 송승우가 왜 갑자기 사과를 한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왜 사과를 하는 거야?’“미안했어요. 어쩔 수 없이 떠난 거라고는 하지만 우리 결혼식에도 참석하지 못했잖아요. 결혼식장에 지수 씨 혼자 남겨두고 간 건 제 잘못이에요. 미안해요.”하지수는 그제야 무슨 말인지 이해했
하지수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심장은 여전히 빨리 뛰고 있었다.그녀는 전혀 말을 듣지 않는 심장을 진정시키려 애썼다. 만약 누군가 들어오지 않았더라면 이 어색한 상황이 얼마나 계속될지 알 수 없었다.‘문수 씨도 부끄러워하는 건가?’하지수는 입술을 꽉 깨물며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려 애썼다. 갑자기 웃음이 터져 나올까 봐 걱정이었다.하지수는 소파에 앉아 몰래 송문수를 쳐다보았다.그는 그저 고위직 직원의 얘기를 듣고만 있을 뿐, 전혀 불편해 보이지 않았다.그녀는 깊게 숨을 쉬었다.‘단지 어색해서 그런 건가?’송문수는 언제나 체면을 중시하는 사람이었으니 말이다.‘해명하려 하지 않는 것도 결국 체면을 세우려고 그러는 건가?’하지수는 너무 많은 기대를 해선 안 된다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다잡았다....크레지를 맞이하기 위해 모든 관련 부서가 계속해서 야근을 하고 있었다.송문수와 하지수 역시 마찬가지였다.그들은 끊임없이 회의를 열고 논의하며 최대한의 성의를 보이기 위해 애썼다.새벽 2시가 되었지만 송문수는 아직 퇴근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방금까지도 각 부서와 회의를 하면서 협력 계획과 판매 계획을 다시 수정하고 보완했다.회의가 끝난 후에도 송문수는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는 계속 바쁘게 일하고 있었다.송문수는 그제야 그의 확인이 필요한 문서들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무슨 서류든 제대로 보지 않고 사인을 해버렸었다. 하지만 이젠 점점 더 신중해졌고 모든 서류를 꼼꼼히 확인하고 나서야 사인을 했다.그 덕에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고 오늘 하루 동안의 모든 서류를 처리하고 나서야 송문수는 퇴근을 하려고 하지수를 쳐다봤다. 그러자 그녀는 이미 소파에 기대어 잠들어 있는 것이었다.하지수는 잠이 많은 사람은 아니었다. 송문수의 기억 속에 하지수는 늘 자신보다 일찍 일어나는 사람이었고 절대 늦잠을 자지 않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소파에 기대어 잠들어 있었다.‘많이 피곤한 걸까?’자세히 생각해 보니 그들은 지난 일주일 동안 계속해서 야
송문수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크게 티가 나지는 않았지만 그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밝아졌다는 건 알 수 있었다.하지수는 송문수를 더 방해하지 않으려 했다. 송문수가 점점 더 발전하는 걸 보면서 하지수도 그를 더 지지해 주고 싶었고 송문수로 하여금 업무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돕고 싶었다.하지수는 옆에 있는 소파로 가서 노트북을 들고 업무를 처리하기 시작했다.그리고는 습관처럼 회사의 공식 채팅방에 들어갔다.그녀는 비록 알림을 꺼 놓았지만 회사의 공식 채팅방에 메시지가 있으면 항상 첫 번째로 확인하곤 했다.그런데 그때, 그룹 채팅에 있는 메시지를 본 하지수는 깜짝 놀랐다. 그녀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아마 이 상황을 믿기 어려워할 것이었다.송문수가 회사의 공식 채팅방에 ‘하지수’라는 이름을 여러 번 보낸 것이었다.하지수는 고개를 들어 송문수를 바라보았다.그는 진지하게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채팅방에는 여전히 ‘하지수’라는 이름이 올라오고 있었다.“문수 씨, 컴퓨터 바이러스에 걸린 거 아니야?”하지수가 물었다.“어?”송문수는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했다.하지수는 송문수 앞에 서서 그의 컴퓨터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화면에는 타자를 해놓고 아직 보내지 않은 ‘하지수’도 있었다.송문수도 그제야 자신이 채팅방에 ‘하지수’라는 이름을 여러 번 입력했다는 것을 깨달았다.그 자신도 놀란 듯했다. 그는 자신이 타자를 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의식하지 못했던 것이다.하지만 방금 그의 머릿속이 온통 하지수로 가득 찬 건 사실이었다.그때, 채팅방에서 누군가 메시지를 보냈다.[회장님 지금 하 매니저님한테 애교 부리는 거야? 그걸 실수로 단체 채팅방에 보낸 거고?]메시지는 보내지자마자 삭제되었고 밖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나도 잘못 보냈네!”그룹 채팅에 두 개의 삭제 기록이 나타났다.송문수는 멍하니 앉아 있다가 그제야 메시지를 삭제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그는 ‘하지수’라는 메시지들을 삭제하려 했지만 이미 메시지를 취소할 수 있는 시간이
송승우는 이를 꽉 악물었다. 그는 하지수를 절대로 포기할 수 없었다. 그는 하지수에게 송문수를 고른 게 얼마나 잘못된 선택이었는지 반드시 알게 해주겠다고 결심했다. 그녀로 하여금 후회하도록 만들겠다고 다짐했다....하지수는 송승우의 사무실을 떠나 바로 송문수의 사무실로 갔다.송문수는 업무에 몰두해 있었다.회사에 들어선 순간부터 그는 자유시간이 없었고 퇴근 후에도 여전히 업무와 관련된 일들을 처리하고 있었다.하지수는 송문수가 많이 변했다고 느꼈다. 그녀는 하느님도 부지런한 사람을 도울 거라 믿으며 송문수가 앞으로 큰 성과를 낼 것이라고 확신했다.“형이 뭐라고 했어?”송문수는 그녀를 한 번 쳐다보며 차갑게 물었다.“자기 개인 비서로 되어달라고 하더라고.”하지수는 송문수에게 숨기지 않고 말했다. 그녀는 더 이상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을 그에게 숨기고 싶지 않았다.송문수랑 같이 오랫동안 시간을 보내고 싶었기에 최대한 마음을 다할 생각이었다.송문수는 멈칫하더니 코웃음을 치더니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녀가 어떻게 대답했는지 알고 싶지 않아 하는 것 같았다. 어쩌면 하지수가 그 제안을 무조건 받아들였을 거라고 여겼는지도 모른다.‘지수가 형 요구를 거절한 적은 한 번도 없는데 이번에도 알겠다고 했겠지...’이렇게 생각한 송문수는 일에 더 집중하려 애썼다. 회사 일을 제대로 해내기로 결심한 이상 중간에 포기할 생각은 없었으니 말이다.“거절했어.”하지수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송문수는 가슴이 약간 두근거리는 걸 느꼈다.분명 그녀의 말에 설렌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겉으로 티 내지 않으려 했다.그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척 계속해서 서류를 보고 있었다.반면, 하지수는 송문수에게 그 어떤 반응도 기대하지 않았다. 어차피 송문수는 자기한테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저 자신의 결정을 그에게 알리고 싶었을 뿐이었다.“왜 거절했는데?”송문수가 차분하게 물었다.“문수 씨한테 내가 더 필요하다고 생각했으니까.”하지수는 웃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