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튿날.예수진의 기사는 여전히 인기 검색어에 올라가 있었다.결국 소속사의 능력으로는 기사를 덮을 수 없었고, 특히 문서인도 조용히 여기에 힘을 보태고 있었다.문서인은 기사를 보며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잠시 생각을 하고 소이연에게 전화를 걸었다.소이연도 당연히 예수진의 기사에 대해 알고 있었다.사진을 보고 문서인이 한 짓이라는 것도 알 수 있었다.문서인은 그래도 똑똑한 편이다. 다른 기삿거리로 그의 기사를 덮어, 문 씨 가문이 안 좋은 기사의 영향을 받지 않도록 한 것이다.“소이연, 네 생각에 육현경이 예수진을 도와줄 것 같아?” 문서인이 비꼬는 말투로 물었다.소이연은 진심으로 문서인에게 본인의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만약 문서인이 예수진이 육 씨 가문의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토할지도 모른다.“육현경이 나서서 예수진과의 관계를 직접 언급할까, 아니면 조용히 기사를 덮을까?” 문서인은 차갑게 말했다. “소이연, 너도 육현경의 여자들 중 하나일 뿐이야.”소이연은 말 섞기도 귀찮았다.“그런데 난 너무 궁금해, 네가 도대체 어떻게 육현경이랑 엮인 거야? 알아서 옷 벗고 침대로 올라갔어?” 문서인은 점점 말을 비꼬고 있었다. “그 당시에 내가 네 손잡을 때는 밀어내더니, 이제 이렇게 더러워진 거야?”“그래, 내가 먼저 육현경 침대로 올라갔어.” 소이연은 해명도 하기 싫었다. 하기도 싫었고, 할 필요도 없었다. “그 당시에 왜 못 만지게 했냐고? 넌 별것도 아니니까!”“소이연!”“육현경이랑 비교하면, 넌 도대체 어디가 더 나은데?! 더 잘 생겼어? 돈이 더 많아? 권력이 더 많아? 아무것도 없으면서, 네가 무슨 자격으로 육현경에 대한 내 마음을 그따위로 깔보는 거야!” 소이연은 갈 데까지 갔다. “맞다, 내가 미리 말 안 해줬는데, 소나은이 참 내 걸 좋아하는 것 같더라고, 내 거가 자기 거 보다 더 좋은 건 못 참겠나 봐. 그래서 네 생각에는 소나은이 육현경을 좋아하는 게 아닐까......”“나은이는 너 같은
업무상으로만 말하자면, 그는 예수진보다 믿을만했다.“우리 할아버지가 허락 안 해.” 육현경이 답장했다.소이연이 의아해하는 동안 육현경이 또 문자를 보내왔다.“계지원은 의붓아들이야. 육 씨 가문에 못 들어오게 한 건 재산 문제 때문에 틀어지게 될까봐 그걸 방지하기 위해서였어.”소이연은 이해는 하지만, 계지원에게 불공평하다고 생각했다.이건 너무 티 나잖아.계지원의 기분은 생각도 안 해본 건가?“그럼, 수진씨 일 당신은 손 놓고 보기만 할 거야?” 소이연은 항상 육현경의 말에 넘어갔다.“알아서 할 거야. 못 하면, 알아서 나한테 찾아올 거고.”그래.소이연 역시 예수진도 육 씨 가문 사람이니, 육 씨 가문도 가만히 예수진이 괴롭힘당하는 것을 보고만 있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그녀는 문자 화면을 끄고 일할 준비를 했다.이제 막 끄고 나왔는데, 문자 화면이 다시 떴다. “끝이야?”소이연은 눈썹을 찡그렸다.그럼, 뭐가 더 필요해?!지금은 업무시간이고, 그녀는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특히 장안 방송국에서 연예인 스타일링 관련 리얼리티 쇼를 진행한다는 소식을 듣고, 참여해서 은하의 명성을 더 높이고 싶었다.“우리 안 만난 지 얼마나 됐어?” 육현경이 물었다.얼마나?!아마 일주일 정도 된 것 같았다.“관계가 확실해지고 나서 안 만났지.” 육현경이 한 글자씩 말했다.소이연은 입술을 문질렀다. 아마도.“분명 이연 아가씨 입으로 직접 말씀하신 건데 말이에요. 저랑 재미로 만나는 건가요? 우리 가벼운 만남인가요?” 육현경이 비꼬며 말했다.“내가 엄청 바쁠 거라고 했어 안 했어?” 소이연은 반박했다. 조금 억울하기도 했다.그 당시에 육현경도 알겠다고 했었다.“아무리 바빠도 연애는 해야지.” 육현경은 떼를 썼다.“......밥 먹듯이 할 수도 없고.”“정신 식사는 한 끼도 거르면 안 돼.”“그래서 내가 당신을 굶겼다고?”“배에서 꼬르륵거려.”소이연은 대화 주제가 조금...... 다채로워졌다고 생각했다.그녀가 황
저녁 6시.육현경은 약속대로 육민과 함께 소이연의 퇴근길에 마중을 나왔다.“엄마!”육민은 맑은 어린아이의 목소리로 항상 그녀의 마음을 녹였다.그녀는 육민을 품에 안고 함께 앉아 하하 호호 웃으며 이야기했다.완전히 무시당한 육현경은 얼굴이 좋지 않았다.“아빠, 엄마 만났는데 안 좋아요?” 육민은 귀여운 눈썹을 치켜올리며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아니.” 육현경의 목소리가 차가웠다.“근데 왜 눈썹이 이런 모양이에요? 이렇게, 이렇게.” 육민은 육현경의 찌푸린 눈썹을 따라 했다.육민은 원래도 육현경의 미니 버전인데, 육현경을 따라 하니 완전 판박이였다.소이연은 참지 못하고 깔깔 소리를 내며 웃었다.심지어 기사님까지 육민 덕에 웃고 있었다.육현경의 얼굴은 더 안 좋아졌지만.육민은 소이연이 웃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더 좋아졌다. “엄마, 아빠 신경 쓰지 마세요. 아빠는 아마 갱년기인가 봐요.”소이연은 또 한 번 참지 못하고 큰 소리로 웃었다.이 철없는 아들 놈!다행히 식당이 멀지 않아 금방 도착했다.더 오래 걸렸다간 육현경의 피가 거꾸로 솟을 수도 있었을 것 같았다.세 사람은 고급 레스토랑의 창 쪽 테이블에 앉았다.육현경이 고개를 숙이고 주문을 하는 동안, 소이연과 육민은 여전히 하하 호호 이야기를 나눴다.육현경은 자신이 무슨 도구라도 된 것 같았다.“현경 오빠!”갑자기 어디선가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육현경은 고개를 들었다.소이연과 육민도 그들에게 다가오는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진짜 오빠네! 나 기억 안 나?” 여자는 놀라며 기뻐했고, 급히 자신을 소개했다. “나 임희지, 심아윤 사촌 동생! 오빠 우리 언니랑 같이 유학할 때 우리 만났었잖아.”“응.” 육현경은 짧게 대답했다. 아마 생각난 것 같았다.임희지는 육현경의 차가운 말투에도 전혀 거리낌 없이, 오히려 더 기쁘다는 듯 말했다.“진짜 신기하다, 나 오늘 낙성시에서 남자친구 만나러 온 건데, 오빠가 여기 있을 줄은 몰랐네. 맞다, 우리 이모가 그러던
소이연은 그를 달래주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갑자기 심아윤에 대해 물어보다니.“응.” 육현경이 고개를 끄덕였다.“당신 그 사람이랑 무슨 관계야?” 소이연은 직설적으로 말했다.지난번 육현경과 예수진의 사이를 오해한 뒤로 그녀는 궁금한 게 있으면 바로 물어보기로 했다.“우리 할아버지랑 걔네 할아버지랑 예전에 전우였대.그래서 관계가 좋으시고, 두 가문이 같은 지역에 있지 않더라도 자주 연락해.어렸을 때는 할아버지가 나를 데리고 다른 집에 놀러 가는 걸 좋아하셨어서, 낙성시 심 씨 가문에도 자주 갔었는데, 심아윤은 따지자면......” 육현경은 적당한 말을 고르고 있었다.“죽마고우.” 소이연은 눈썹을 치켜올렸다.“아니야.” 육현경이 부인했다. “따지자면 옆집 동생이야.”옆집 동생?!이렇게 부르니까 왜 이렇게 이상하게 느껴지지.“어릴 때 할아버지가 나를 유학 보내버렸는데, 심아윤도 나랑 비슷했어.대학 졸업하고 나는 육 씨 가문 해외 지사 확장, 걔는 심 씨 가문 기업 경영 때문에 쭉 거기에 있었어.” 육현경이 이어서 말했다. “어르신들 관계 때문에, 서로 돌봐줬었어.”서로 돌봐줘? 어떻게 돌봐줘?!육현경은 소이연의 눈빛을 보고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걱정 마, 걔랑 나는 청렴결백해.”“청렴결백한지 아닌지는 당신 과거 일이고, 난 어차피 상관없어.” 소이연은 정말 상관없다는 듯 말했다.입꼬리는 분명 내려갔는데.육현경은 갑자기 기분이 좋아져서 말했다. “이연 아가씨, 발전했네요.”“응?” 소이연은 왜인지 몰랐다.“드디어 입을 뭔가를 물어보는 데에 쓰셨어요. 예전 같으면 조용히 나한테 사형을 내렸을 텐데.”소이연은 얼굴이 조금 빨개졌다.육현경과 예수진이 양다리가 아닌지 오해했던 사건은, 이번 생 내내 안줏거리로 될 게 분명했다.저녁 식사를 마친 후.소이연은 육현경의 마이바흐를 타고 돌아갔다.차 안에는 그녀와 육민의 웃음소리가 가득했다.육현경은 순식간에 다시 투명인간이 되었다.그 순간.소이연이 갑자기
소이연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으로 올라갔다.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예수진이 집문 앞에 기대어 있는 모습이 보였다.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것이 거하게 취한 모양이다.소이연이 성큼성큼 걸어갔다.“수진 씨?”예수진이 눈을 거슴츠레 뜨고 소리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소이연을 알아보더니 당장이라도 울 것처럼 눈물을 글썽거렸다.“언니, 왜 이제 왔어요?”“왜 여기에 있어요? 많이 마셨네.”“오늘 촬영이 일찍 끝나서 친구들이랑 좀 마셨어요.”예수진이 술냄새를 풍기며 말했다.대체 얼마나 마신 거야?“하지수 씨랑 마셨어요?”“그 계집애는 너무 바빠요. 출장 갔거든요. 다른 친구들이랑… 딸꾹… 술 친구들이랑.”말을 하면서도 술 트림까지 했다.하지수는 이렇게 무책임한 사람이 아닌데, 어쩐지 이상하다 했다.소이연이 재빠르게 현관문을 열고 예수진을 부축해서 들어갔다.“안에 사람 없으면 전화라도 하지 그랬어요.”“연애하는 데 방해할까 봐. 아니면 오빠한테 죽어요.”예수진이 말하다 구역질을 해서 소이연이 재빨리 화장실로 끌고 들어갔다.변기 앞에 앉은 순간 와르르 토사물을 배출했다.소이연이 계속 등을 두드려주었다.얼마나 토했으면 쓰린 위를 감싸 안았다.“이제 괜찮아요? 물 좀 갖고 올게요.”“씻고 싶어요.”“혼자 할 수 있겠어요?”“네.”소이연이 목욕물을 받아 놓고 갈아입을 옷까지 챙겨다 주었다.예수진이 다 씻고 나왔을 때 소이연이 꿀물을 타서 건네주었다.침대에 비스듬하게 누워서 꿀물을 마시던 예수진이 해맑게 웃었다.“여기 오면 날 챙겨줄 줄 알았어요.”너무 토해서 얼굴이 창백하지만 그래도 웃었다.소이연은 조금 어이가 없었다.“집에 하인들이 그리 많은데 수진 씨를 잘 챙겨주지 않아요?”“내가 보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으니까요.”“부모님과 싸웠어요? 아니면 외할아버지와 말다툼이라도 했어요?”소이연이 걱정스럽게 물었다.“아니요.”예수진이 부정했다. 말하고 싶지 않는지 이불을 머리 위로 푹 덮어썼다.“잘게요.”소이연도
기사 일면에서 커다랗게 쓴 제목이 눈에 띄었다.‘예수진 스캔들: 남친 계지원이 드디어 수면 위로 올라왔다!’그 제목을 본 순간 예수진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이상함을 느낀 소이연이 자신의 휴대폰을 꺼내 뉴스를 검색해 보았다.기사 앞부분에 예수진의 지난 스캔들을 간략하게 서술했고 뒤에 두 사람의 관계가 사실이라는 것이 설명되어 있었다. 그리고 ‘풍화정집’의 여주 문서아를 하차시키고 예수진으로 교체한 것을 언급하면서 두 사람이 연애하는 사이가 확실하다고 발언했다.소이연이 기사에 뜬 사진 몇 장을 다시 보았다.사진 속에서 두 사람은 호화로운 별장 입구에 일정한 간격을 두고 서 있었다.멀리서 찍었지만 분명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싸한 분위기였다.그 모습이 찍혀서 골치 아프게 스캔들이 나버렸다.하지만 전부 언론을 탓할 수 없었다. 모자이크한 계지원의 얼굴을 다른 사진과 비교했더니 육현경의 윤곽과 엇비슷해서 원본 사진을 보지 못한 사람들이 오해할 만했다.“아씨!”예수진이 기사를 확인하고 뚜껑이 열렸는지 욕을 내뱉았다.휴대폰 너머로 다인의 목소리가 들렸다.“수진. 이렇게 된 이상 더는 숨기지 말고 어떻게 입장 발표할 건지 계 감독님과 상의해 봐. 집까지 찍혔는데 확실하게 해명하지 않으면 다들 믿지 않을 거야. 근데 요즘 팬들도 연예인들이 연애를 한다고 해서 반감을 사는 눈치는 아니야. 두 사람 잘 어울리니까 내가 회사 측에 얘기해볼게. 아니면 공식적으로 발표할래? 마침 연애 관련 예능 프로그램 제안이 들어왔거든.”“나와 계지원은 아무 사이도 아니야!”예수진이 이를 갈며 또박또박 말했다.“수진아.”“이따 다시 전화할게.”예수진이 바로 끊어버리더니 심호흡 한 번 하고 계지원에게 연락했다.“지금 당장 우리 둘이 아무 사이가 아니라고 발표해. 나도 우리는 협력 관계라는 걸 밝힐 테니까.”예수진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너 때문에 내 연예인 인생 망치고 싶지 않아!”“알았어.”계지원이 짧게 대답하고는 이내 이성적으로 말했다.“그 전에 우리
”민이 어떻게 육씨 가문에 들어왔는지 궁금하죠?”소이연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럴 줄 알았어요. 그 답답한 인간이 지 입으로 말할 리가 없지.”예수진이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말했다.하지만 그녀도 물은 적이 없었다.“오빠가 21살 때에 민이를 데리고 왔어요. 그것도 외할아버지가 직접 데려왔죠. 그때 오빠는 민이의 존재를 모르는 눈치였는데 외할아버지는 어떻게 알았는지. 암튼 외할아버지는 세상에 모르는 일이 없어요.”예수진이 지난 일을 회상하며 말했다.“외할아버지가 민이를 안고 왔을 때 오빠는 해외에 있었어요. 그때 민이의 친모가 아이를 낳자마자 병원에 버리고 도망가서 외할아버지가 데리고 왔다는 얘기를 들었어요.”그 말에 소이연의 가슴이 조여오듯 아파왔다.전에 육현경이 육민의 친모가 자식을 버렸다는 말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태어나자마자 버림받았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그 장면을 떠올리자 숨이 막힐 정도로 슬펐다.갑자기 그 아이가 생각났다. 그렇게 원했던 아이었는데 뱃속에서 죽어버린 아이.소이연이 슬픔을 참지 못하고 왈칵 눈물을 쏟아냈다.그 모습을 본 예수진이 당황했다.“언니 왜 울어요?”“모르겠어요.”소이연도 왜 갑자기 통제 못하고 눈물을 흘리는지 몰랐다.“그냥 가슴이 너무 아파요.”“내가 처음 민이를 봤을 때도 그랬어요. 사람이 얼마나 지독해야 친자식을 매정하게 버릴 수 있는지. 만약 내가 오빠였다면 평생 그 여자를 용서하지 않았을 거예요!”예수진이 한마디 덧붙였다.“오빠도 용서하지 않겠지만.”소이연이 소리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정말 이해할 수 없어요. 뭐가 내키지 않아서 오빠를 버리고 민이까지 버렸는지. 오빠 얼굴이 못 생겼어요 아니면 돈이 부족해요? 능력도 출중한데, 그 여자 장님 틀림없어요!”예수진이 격분했다.대체 어떤 여자가 육현경을 갖고 놀다가 소탈하게 돌아섰는지 소이연도 궁금했다.“한번은 나와 도경 오빠가 술을 마시면서 그 문제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어요. 아마 그 여자도 오빠의 능력을 모르고 만났을 거
”알았어요.”예수진이 고개를 끄덕였다.“이연 언니는 정말 좋은 사람이에요. 오빠랑 만나서 너무 좋아요.”갑작스러운 고백에 소이연은 쑥스러웠다.자신도 육현경과 만나서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민의 친모가 보는 눈이 없어서 다행이지. 아니면 이렇게 좋은 언니를 어떻게 만나겠어요.”예수진이 아부하는 티가 확 느껴졌다.“빨리 자요.”소이연이 재촉하고는 부랴부랴 욕실로 들어갔다.그녀의 뒷모습을 보던 예수진이 킥킥 웃으면서 이불속으로 들어갔다.여자들이란 참, 먼저 쓰레기 같은 남자를 만나야 정신을 차리고 진짜 운명의 상대를 만나는 건가?소이연이 문서인 쓰레기를 만난 것처럼 자신도 불행하게 계지원과 만났다고 여겼다.…이튿날 아침 예수진이 요란하게 울리는 휴대폰 소리에 눈을 떴다.휴대폰 액정을 힐끗 쳐다보고는 이내 전화를 받았다.“다인, 계지원이 다 알아서 처리한다고 말했잖아. 우린 그냥 기다리면 되니까 날 귀찮게…”“계 감독님이 이미 발표했어.”갑자기 잠을 확 깬 예수진이 이불을 박차고 벌떡 일어서 앉았다.커다란 인기척에 소이연도 깨어났다.침대에서 일어나 지나치게 흥분해 있는 예수진을 바라봤다.예수진이 휴대폰으로 뉴스를 확인했다. 일면에 계지원의 개인 성명이 올라와 있었다. 그와 예수진의 연애 관계를 확실하게 부정하고 두 사람이 만난 것은 일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문서아와 지금 연애 중이라는 사실을 밝히면서 불법 언론사에 사실과 어긋나는 말과 사진을 함부로 올리지 말라고 요구했다.소이연이 옆에서 뉴스를 보고 깜짝 놀랐다.계지원과 문서아가 사귄다고?문씨 가문에 편견을 갖고 있는 게 아니라 문서아는 좋은 사람이라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수진!”다인이 휴대폰 너머로 큰소리로 불렀다.“어.”예수진이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조용히 앉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너 계 감독님과 정말 아무도 없었어?”다인은 믿기지 않았다.아무도 없었다면 왜 사진에 찍혔냐고? 그것도 야심한 밤에 육씨 저택에서.육씨 저택이 그렇게 쉽게 드나
“문수 씨.”하지수는 송문수의 이름을 불렀다. 그녀는 지금 송문수가 화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지만 송승우에게 무슨 일이라도 있으면...어쨌든 한 가족이 아닌가.그녀는 가정의 불화를 일으키고 싶지 않았다.“그래도 승우 오빠를 병원에 보내야 하잖아.”하지수는 큰 소리로 송문수에게 말하자 송문수는 발걸음을 멈추었다.사실 송승우는 별일 없었다. 송문수는 격투기를 배운 적이 있기에 사람의 어느 부위가 다치면 안 되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그가 송승우를 이성을 잃을 정도로 때렸어도 급소를 때리지 않았다.하지수는 송문수의 대답을 듣지 못하자 다급히 핸드폰을 꺼내서 긴급구조 요청을 하였다.구급차를 기다리는 동안, 하지수는 송승우에게 다가가지 않았다.그녀는 멀지 않은 곳에 서서 바닥에 쓰러진 송승우를 바라보았다.송승우의 분노가 극도에 이르렀지만 송문수와 싸울 힘이 없었다.사실 하지수도 요새 송승우와 송문수가 자주 싸우는 이유를 몰랐다. 오늘은 벌써 두 번째였다.어렸을 때 두 형제의 관계가 그다지 친밀하지 않았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지금 어른이 되었는데 아직 유치하게 싸우다니!이윽고 구급차가 도착했고 구조대원들은 들것으로 송승우를 구급차에 태웠다.하지수도 따라서 올라탔지만 송문수는 타지 않았다.하지수는 잠시 망설이다가 내려와서 송문수를 잡아당겨서 같이 구급차에 올라탔다.구급차 안은 매우 조용하였다.아무도 말하지 않았고 차 안의 분위기에 아직 분노의 불꽃이 튕기는 것 같았다.병원에 도착한 후 송승우는 응급실로 옮겼다.하지수와 송문수는 로비에서 기다렸다. 송문수는 차가운 분위기를 풍기면서 한쪽에 서 있었다.사실 하지수는 송문수의 얼굴에도 상처가 있는 것을 보았다. “문수 씨도 얼굴과 몸에 난 상처를 검사하지 않을래?”“필요 없어. 외상이라 금방 나을 거야”송문수가 이렇게 말하자 하지수도 강요하지 않았다.잠시 후, 송승우는 응급실에서 나왔고 의사는 이렇게 말했다.“모두 외상이라 별문제가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지금 입원 수속
“놓지 못해?”송문수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하면서 송승우를 바라보았다.서로 마주 본 두 사람의 눈에는 분노로 가득 차 있었고 일촉즉발의 분위기였다.“이거 놔요.”하지수도 송승우의 손을 힘껏 뿌리쳤다. 그러자 송승우의 눈빛에 분노로 이글이글 타올랐다.그는 더욱 세게 하지수를 잡아당겼다.하지수는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아파요!”송문수의 안색이 더욱 어두워졌다.“놓으라고 했다!”그는 송승우의 팔을 끌어당기는 손에 힘을 꽉 주었다. 이에 송승우는 통증을 느꼈으나 승부욕 때문에 쉽게 놓을 수가 없었다.송문수가 힘을 줄수록 그도 더욱 힘을 줘서 하지수를 잡아당겼다.하지수는 너무 아파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송승우는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 “이걸 놔. 나와 지수의 일에 끼어들지 마.”“끼어들지 말라고?”송문수는 냉소를 지으면서 말했다.“형이 잊은 것 같은데 지수는 내 와이프야. 우린 부부이지만 형과 지수는 아무 사이도 아니잖아? 지금 형이 내 와이프를 데려가려고 하는데 나보고 끼어들지 말라고? 너무 뻔뻔하다고 생각하지 않아?”“너!”송문수의 쏘아붙인 말에 송승우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예전에 송승우는 하지수가 자신을 좋아했기 때문에 송문수를 안중에 넣지도 않았고 그들의 결혼 관계를 진지하게 생각한 적도 없었다.그러나 지금 송문수에게 이런 모욕을 당하다니!“지수가 좋아한 사람은 나야!”송승우는 수치심에 더 약이 올라서 노기어린 목소리로 외쳤다.하지수는 너무 아파서 반박할 힘도 없었고 송문수의 말이 들려왔다.“지수가 누구를 좋아하든 지금은 내 여자야. 누구도 데려갈 수 없고 누구도 지수를 괴롭힐 수 없다고! 셋까지 셀 테니 지수를 놓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을 거야!”송승우는 끄덕하지도 않고 송문수를 노려보았다.“하나.”“둘.”송문수는 ‘셋’을 세는 대신 주먹을 들고 송승우의 얼굴을 세게 강타했다.송문수의 한 방을 맞은 송승우는 코피를 흘렸고 아픔으로 이내 하지수를 놓아주었다.그러나 송승우는 소심한 사람이었다. 그는 늘
‘내가 자기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는 건가?’“승우 씨, 사과 따위 이제 필요 없어요. 지금 제가 바라는 건 아무 탈 없이 우리 사이의 관계를 끝내는 거예요. 승우 씨는 문수 씨 형이잖아요. 게다가 저도 어릴 때부터 송씨 가문에서 자란 사람이고요. 그러니까 우리 그냥 친척 같은 관계로 돌아갔으면 좋겠어요.”하지수는 인내심을 가지고 진지하게 말했다.송승우는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며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하지수는 더 이상 그와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 망상에 빠진 사람은 무슨 말을 하든 헤어 나올 수 없다고 생각했기에 그녀는 자신의 마음을 표현했으니 그걸로 됐다고 생각했다.하지수는 뒤를 돌아 송문수 쪽으로 다가가려 했다. 늦은 시간이었고 그녀도 여전히 많이 피곤했다. 송문수랑 같이 집으로 가서 자고 싶었다.크레지가 아직 오지 않은 이상, 기술 투자 계약서에 사인하지 않은 이상 방심할 수는 없었다. 그들은 짬짬이 시간을 내서 잠을 잘 수밖에 없었다.그런데 막 돌아서려는 순간, 그녀의 손은 또다시 송승우에 의해 붙잡혔다.하지수가 아무리 팔을 흔들어도 벗어날 수 없었다.송문수는 차가운 눈빛으로 송승우의 행동을 지켜보며 주먹을 꽉 움켜잡았다.그가 앞으로 다가가 하지수를 데려오려던 순간, 송승우가 갑자기 말했다.“지수 씨, 방금 당신의 행동은 모든 걸 말해줬어요!”“무슨 행동이요?”하지수는 이해할 수 없었다.“방금 제가 불렀을 때, 제 쪽으로 다가왔잖아요. 그게 지수 씨 마음속에 있는 진심이에요. 더 이상 숨기지 말고 저한테로 오세요. 하지수 씨, 제가 잘 해줄게요. 지수 씨를 혼자 두는 일은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을 거예요. 제가 맹세할게요...”“아니요.”하지수는 단칼에 거절해 버렸다.하지수를 바라보는 송승우의 눈빛은 분노로 가득 찼다.“승우 씨가 불었을 때 따라간 건 무의식적으로 간 거예요. 잠에서 덜 깬 상태라서 누가 불렀어도 갔을 거예요. 승우 씨인 줄도 몰랐어요. 하지만 인정할 건 인정할게요. 낯선 목
송문수는 하지수가 일어나서 송승우 쪽으로 걸어가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할 뿐이었다.송승우는 입가에 미소를 띠며 생각했다.‘그래, 지수 씨도 아직 날 신경 쓰고 있다니까. 숨기려 해도 어떻게 숨기겠어? 이런 상태에서야 비로소 진심이 드러나는 거지.’송문수는 멀어져 가는 하지수를 잡으려 손을 뻗었지만 그녀의 옷자락에 손이 닿았을 때 살짝 멈칫했다. 하지수를 강제로 붙잡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사실 그는 항상 하지수의 선택을 존중해 왔다. 지금까지 변함없이 말이다.하지수는 송승우 앞으로 걸어갔고 송승우가 먼저 손을 뻗더니 그녀를 끌어당기려 했다.그러나 그가 손을 뻗자 하지수가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승우 씨?”그녀는 그제야 앞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깨달았다.조금 전까지 어지럽고 혼란스러웠던 상황이 이제와사 분명해졌다.그녀는 자신이 언제 잠에 들었는지도 몰랐다. 그저 너무 피곤해서 머리가 흐릿할 뿐이었다.“너무 늦었어요. 제가 데려다줄게요.”송승우가 그녀를 끌고 나가려고 하자 하지수는 급히 그의 손을 쳐내며 말했다.그러자 송승우는 눈살을 찌푸렸다.“아까는 잠에서 덜 깨서 그랬어요. 전 문수 씨랑 같이 갈 거예요.”“뭐라고요?”송승우는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언제까지 연기할 거예요?”“네?”하지수는 눈살을 찌푸리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송승우가 왜 갑자기 화를 내는지 알 수 없었다.“저를 놀리는 게 재밌으세요?”송승우가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저... 저는 그런 게 아니라...”하지수는 당황해하며 말을 더듬었다.그러자 송승우가 입을 열었다.“알겠어요. 제가 잘못한 걸로 하죠.”그가 갑작스레 사과를 하자 하지수는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그녀는 송승우가 왜 갑자기 사과를 한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왜 사과를 하는 거야?’“미안했어요. 어쩔 수 없이 떠난 거라고는 하지만 우리 결혼식에도 참석하지 못했잖아요. 결혼식장에 지수 씨 혼자 남겨두고 간 건 제 잘못이에요. 미안해요.”하지수는 그제야 무슨 말인지 이해했
하지수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심장은 여전히 빨리 뛰고 있었다.그녀는 전혀 말을 듣지 않는 심장을 진정시키려 애썼다. 만약 누군가 들어오지 않았더라면 이 어색한 상황이 얼마나 계속될지 알 수 없었다.‘문수 씨도 부끄러워하는 건가?’하지수는 입술을 꽉 깨물며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려 애썼다. 갑자기 웃음이 터져 나올까 봐 걱정이었다.하지수는 소파에 앉아 몰래 송문수를 쳐다보았다.그는 그저 고위직 직원의 얘기를 듣고만 있을 뿐, 전혀 불편해 보이지 않았다.그녀는 깊게 숨을 쉬었다.‘단지 어색해서 그런 건가?’송문수는 언제나 체면을 중시하는 사람이었으니 말이다.‘해명하려 하지 않는 것도 결국 체면을 세우려고 그러는 건가?’하지수는 너무 많은 기대를 해선 안 된다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다잡았다....크레지를 맞이하기 위해 모든 관련 부서가 계속해서 야근을 하고 있었다.송문수와 하지수 역시 마찬가지였다.그들은 끊임없이 회의를 열고 논의하며 최대한의 성의를 보이기 위해 애썼다.새벽 2시가 되었지만 송문수는 아직 퇴근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방금까지도 각 부서와 회의를 하면서 협력 계획과 판매 계획을 다시 수정하고 보완했다.회의가 끝난 후에도 송문수는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는 계속 바쁘게 일하고 있었다.송문수는 그제야 그의 확인이 필요한 문서들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무슨 서류든 제대로 보지 않고 사인을 해버렸었다. 하지만 이젠 점점 더 신중해졌고 모든 서류를 꼼꼼히 확인하고 나서야 사인을 했다.그 덕에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고 오늘 하루 동안의 모든 서류를 처리하고 나서야 송문수는 퇴근을 하려고 하지수를 쳐다봤다. 그러자 그녀는 이미 소파에 기대어 잠들어 있는 것이었다.하지수는 잠이 많은 사람은 아니었다. 송문수의 기억 속에 하지수는 늘 자신보다 일찍 일어나는 사람이었고 절대 늦잠을 자지 않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소파에 기대어 잠들어 있었다.‘많이 피곤한 걸까?’자세히 생각해 보니 그들은 지난 일주일 동안 계속해서 야
송문수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크게 티가 나지는 않았지만 그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밝아졌다는 건 알 수 있었다.하지수는 송문수를 더 방해하지 않으려 했다. 송문수가 점점 더 발전하는 걸 보면서 하지수도 그를 더 지지해 주고 싶었고 송문수로 하여금 업무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돕고 싶었다.하지수는 옆에 있는 소파로 가서 노트북을 들고 업무를 처리하기 시작했다.그리고는 습관처럼 회사의 공식 채팅방에 들어갔다.그녀는 비록 알림을 꺼 놓았지만 회사의 공식 채팅방에 메시지가 있으면 항상 첫 번째로 확인하곤 했다.그런데 그때, 그룹 채팅에 있는 메시지를 본 하지수는 깜짝 놀랐다. 그녀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아마 이 상황을 믿기 어려워할 것이었다.송문수가 회사의 공식 채팅방에 ‘하지수’라는 이름을 여러 번 보낸 것이었다.하지수는 고개를 들어 송문수를 바라보았다.그는 진지하게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채팅방에는 여전히 ‘하지수’라는 이름이 올라오고 있었다.“문수 씨, 컴퓨터 바이러스에 걸린 거 아니야?”하지수가 물었다.“어?”송문수는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했다.하지수는 송문수 앞에 서서 그의 컴퓨터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화면에는 타자를 해놓고 아직 보내지 않은 ‘하지수’도 있었다.송문수도 그제야 자신이 채팅방에 ‘하지수’라는 이름을 여러 번 입력했다는 것을 깨달았다.그 자신도 놀란 듯했다. 그는 자신이 타자를 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의식하지 못했던 것이다.하지만 방금 그의 머릿속이 온통 하지수로 가득 찬 건 사실이었다.그때, 채팅방에서 누군가 메시지를 보냈다.[회장님 지금 하 매니저님한테 애교 부리는 거야? 그걸 실수로 단체 채팅방에 보낸 거고?]메시지는 보내지자마자 삭제되었고 밖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나도 잘못 보냈네!”그룹 채팅에 두 개의 삭제 기록이 나타났다.송문수는 멍하니 앉아 있다가 그제야 메시지를 삭제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그는 ‘하지수’라는 메시지들을 삭제하려 했지만 이미 메시지를 취소할 수 있는 시간이
송승우는 이를 꽉 악물었다. 그는 하지수를 절대로 포기할 수 없었다. 그는 하지수에게 송문수를 고른 게 얼마나 잘못된 선택이었는지 반드시 알게 해주겠다고 결심했다. 그녀로 하여금 후회하도록 만들겠다고 다짐했다....하지수는 송승우의 사무실을 떠나 바로 송문수의 사무실로 갔다.송문수는 업무에 몰두해 있었다.회사에 들어선 순간부터 그는 자유시간이 없었고 퇴근 후에도 여전히 업무와 관련된 일들을 처리하고 있었다.하지수는 송문수가 많이 변했다고 느꼈다. 그녀는 하느님도 부지런한 사람을 도울 거라 믿으며 송문수가 앞으로 큰 성과를 낼 것이라고 확신했다.“형이 뭐라고 했어?”송문수는 그녀를 한 번 쳐다보며 차갑게 물었다.“자기 개인 비서로 되어달라고 하더라고.”하지수는 송문수에게 숨기지 않고 말했다. 그녀는 더 이상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을 그에게 숨기고 싶지 않았다.송문수랑 같이 오랫동안 시간을 보내고 싶었기에 최대한 마음을 다할 생각이었다.송문수는 멈칫하더니 코웃음을 치더니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녀가 어떻게 대답했는지 알고 싶지 않아 하는 것 같았다. 어쩌면 하지수가 그 제안을 무조건 받아들였을 거라고 여겼는지도 모른다.‘지수가 형 요구를 거절한 적은 한 번도 없는데 이번에도 알겠다고 했겠지...’이렇게 생각한 송문수는 일에 더 집중하려 애썼다. 회사 일을 제대로 해내기로 결심한 이상 중간에 포기할 생각은 없었으니 말이다.“거절했어.”하지수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송문수는 가슴이 약간 두근거리는 걸 느꼈다.분명 그녀의 말에 설렌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겉으로 티 내지 않으려 했다.그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척 계속해서 서류를 보고 있었다.반면, 하지수는 송문수에게 그 어떤 반응도 기대하지 않았다. 어차피 송문수는 자기한테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저 자신의 결정을 그에게 알리고 싶었을 뿐이었다.“왜 거절했는데?”송문수가 차분하게 물었다.“문수 씨한테 내가 더 필요하다고 생각했으니까.”하지수는 웃으며
하지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송승우를 바라보았다.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말이다.어린 시절 그녀는 항상 송승우를 믿었고 그가 자기를 보호해 줄 거라 생각했었다. 송승우는 같은 또래 친구들보다 성숙하고 머리가 좋다고 생각했었다.하지만 순간, 그녀는 자신이 송승우에 대해 뭔가 오해를 하고 있었던 건 아닌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게다가 그가 지금 하는 행동이 너무 유치해서 하지수는 어떻게 거절해야 할지 몰랐다.그녀는 이해할 수 없었다.‘어떻게 이런 말을 그렇게 쉽게 할 수 있지?’송승우는 하지수와 송문수의 관계를 알고 있었다. 하지수가 몇 번이나 말했으니 모를 리 없었다. 지금은 송문수와 잘 지내고 있고 송승우와의 관계는 이미 끝난 거라고 말이다.그리고 송문수가 지금 송씨 그룹의 대리 회장직을 맡고 있다는 것도 분명 알고 있었다. 송문수의 결정이 회사의 발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도 말이다. 송문수한테 도움이 더 필요했고 송문수가 받는 스트레스가 더 많았다.‘생각이 없는 건가? 어쩌면 이렇게 이기적인 말을 할 수 있는 거지?’“왜요? 제가 무슨 어려운 부탁이라도 했나요?”송승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하지수를 바라보며 안색이 조금 어두워졌다.“승우 씨, 정말 제대로 일하려고 온 거 맞아요? 아니면 그냥 문수 씨를 못 믿어서 온 건가요? 문수 씨가 회사를 잘 관리할 수 없다고 생각해서 감시하러 온 거냐고요!”“당연히 일하러 온 거죠. 아니면 왜 연구소 일까지 내려놓고 회사로 왔겠어요! 그리고 또...”“아까 지수 씨가 그러셨잖아요. 송문수를 못 믿냐고요. 맞아요. 전 송문수 그 자식 못 믿어요. 송문수가 회사를 제대로 이끌 수 있을지 제가 어떻게 알아요? 성과를 하나 냈다고 교만해져서 마음대로 하려 할 겁니다.”“갑자기 드는 생각인데요. 승우 씨는 왜 그렇게 문수 씨 잘되는 꼴을 못 보는 거예요?”하지수는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그게 아니라면 왜 문수 씨를 그렇게 모욕하고 내 곁에서 떼어놓으려 하겠어...’하지수의 능력이 얼마나
짧은 시간이었기에 송문수가 회사의 대체적인 상황을 잘 파악한 것만으로 대단한 것이었다. 게다가 이는 단지 송문수에게 회사를 관리하는 재능이 있어서 해낸 것이라고 단정 지을 수도 없었다.송문수가 매일 얼마나 열심히 일하고 있는지 하지수는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항상 그는 조금이라도 여유가 생기면 회사를 어떻게 운영해야 하는지 연구하면서 시간을 보냈고 지어는 날마다 새벽까지 야근을 하다가 집에 돌아갔다. 게다가 차에서 보는 서류들도 모두 송씨 그룹과 관련된 문서였다.송문수는 원래 시간만 나면 게임을 하거나 먹고 자고 놀기만 했던 사람이었다. 얼마 안 되는 사이에 송문수는 정말로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된 것 같았다....송문수의 말대로 하지수는 다음 주에 회사로 찾아올 크레지를 위해 연관 업무에 대한 계획을 세웠다.송문수와 하지수가 일 처리를 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이사님들도 점점 두 사람을 인정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이 맡긴 업무에 대해 불평이나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고 바로 행동에 옮기기만 했다.그러면서 송문수와 하지수의 업무 부담도 줄어들었고 회사도 더 원활하게 운영되고 있었다.회의가 끝난 후, 하지수는 송문수를 따라 그의 사무실로 갔다.요즘 들어서 그녀는 송문수의 사무실에서 일을 하는 것에 익숙해졌던 것이다. 송문수는 자주 회사의 전문 용어나 이해할 수 없는 마케팅 계획에 대해 물었고 그녀는 언제 어디서든 그가 묻는 말에 답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두 사람은 서로의 사무실을 오가는 시간을 절약할 수 있었다.“지수 씨, 잠깐 제 사무실로 올 수 있으세요?”그때, 송승우가 갑자기 하지수를 불렀다.하지수는 발걸음을 멈추고 잠시 망설였다. 그녀는 송문수를 한 번 바라보았다.“네 마음대로 해.”송문수는 이렇게 말하고 큰 걸음으로 사무실을 떠났다. 질투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어 보이는 송문수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하지수는 속으로 약간 허탈감을 느꼈다.송문수가 많이 변한 건 사실이었지만 하지수에 대한 감정은 별로 진전이 없는 것 같았다. 물론 그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