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뭔가를 찍혔다면, 예수진이 모를 리가 없었다.최근 그녀는 기자들이 좋아할 만한 다른 남자와 같이 있었던 적이 없었다.지금은 휴대폰도 가지고 있지 않고, 매니저도 옆에 없다.“저는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잘 모르겠어요.” 예수진은 담담했다. “만약 제가 정말 연애를 하고 있다면, 숨기지 않을 거예요.”말이 끝나고 예수진은 기자들을 밀어내고 자리를 뜨려 했다.방금 그 행동으로 기자들은 또다시 그녀를 매섭게 둘러싸며 가지 못하게 했다.예수진의 낯빛이 점점 어두워졌다.당연히 연예인으로서, 카메라 앞에서는 연기를 해야 한다.“수진씨, 결정적인 증거가 찍혔는데, 이래도 숨기실 겁니까?”“그냥 대범하게 인정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누군지만 알려주세요, 도대체 무슨 관계입니까?!”“수진씨 뜸 들이지 말고 말해주세요!”예수진은 굴하지 않는 기자들에 정신이 혼미해졌다.그녀는 애초에 기자들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그녀가 자기 컨트롤이 어려워질 때쯤 그녀의 매니저가 실장과 보디가드를 데리고 빠르게 기자들 틈으로 들어갔다. 그들이 굳건히 그녀를 보호하며 현장을 뜨고 차에 탈 때까지, 기자들은 예수진을 놓아주지 않았다.“도대체 무슨 일이야?” 예수진이 급히 물었다.다인은 아무 말 없이 휴대폰을 예수진에게 건넸다.예수진은 눈썹을 찡그리며 자신의 스캔들 기사를 보았다. 사진을 보니 갑자기 웃음이 나왔다.어이가 없어서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다인과 실장도 예수진의 웃음 덕에 한참을 웃었다.지금 어떤 남자가 그녀를 키우고 있다는 데도, 그녀는 마냥 웃었다.그녀는 지금 촬영 중인 수많은 드라마, 영화, 예능 프로그램, 앰배서더, 이 외에도 수많은 것들과 그녀의 사업 발전에 영향을 미치는 게 무섭지도 않은 걸까?!예수진이 웃은 이유는 그녀와 오빠의 스캔들 때문이었다.비록 육현경에게 민폐를 끼칠까 육현경을 모자이크 처리해서 일반인은 누군지 알아볼 수 없겠지만, 사진의 배경을 보면 외할아버지의 칠순 잔칫날이었다.그녀의 오빠가 그녀를
예수진은 차 안에서 별 관심도 가지 않는 자신의 기사를 보고 있었다.기사는 빠르게 퍼져나가 “문서인과 소나은”의 기사를 덮어버렸다.육 씨 저택.예수진이 차에서 내려, 문 앞에 서 있는 계지원을 보았다.특별히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예수진은 못 본 척하고 그를 지나쳤다.“수진아.” 계지원이 그녀를 불렀다.예수진은 대답하지 않았다.“예수진.” 계지원은 손을 뻗어 그녀를 잡아당겼다.예수진은 그의 손을 피했다.그녀는 담담히 계지원을 보고 말했다. “나 건드리지 마. 더럽잖아.”계지원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그가 손을 놓고 물었다. “너 오늘 기사 어떻게 처리할 건지 생각해 봤어?”“소속사에서 이미 처리하고 있어, 걱정 마, 드라마에는 영향 없을 거야.”“사진 속에 있는 그 남자 현경이지? 아버지 칠순 잔치 연회 때.” 계지원은 확신하고 있었다.예수진은 대답하지 않았다.“내가 현경이한테 말해줄게. 그쪽에서 네 기사 덮을 수 없는지.” 계지원이 말했다.육현경도 당연히 그녀가 연예계에 발을 들이는 것을 반대했다. 그래서 보통 연예계 관련 일은 도와주지 않는다.하지만 계지원과 육현경의 관계는 좋았다.게다가 계지원이 나이가 더 많으니, 육현경은 계지원의 체면을 봐서라도 조금은 들어줄 것이다.그러나 그녀는 그렇게 하기 싫었다.“계지원, 나한테서 조금 떨어져 줄 수 없어?”계지원은 침을 삼켰다.“난 이미 최대한 당신을 피하고 있어. 오빠가 강요하지 않았다면 육 씨 저택에서 살지도 않았을 거고, 당신 작품도 받지 않았을 거야. 아무런 힘도 쓸 수 없는 상황인데, 당신, 나 좀 놓아줄 수 없어?!”예수진이 한 글자씩 끊으며 물었다.평온한 얼굴이었지만, 눈가는 이미 빨개지고 있었다.8년이 지났다.그녀는 계속 잊으려 하고 있었고, 계속 참고 있었다.그녀는 정말, 너무 힘들고, 너무 아팠다.하지만 그는 여전히 그의 동정심 때문에 그녀를 오해하게 만들었다.“미안해.” 계지원이 사과했다.다시 한번 말했다. “미안해.
이튿날.예수진의 기사는 여전히 인기 검색어에 올라가 있었다.결국 소속사의 능력으로는 기사를 덮을 수 없었고, 특히 문서인도 조용히 여기에 힘을 보태고 있었다.문서인은 기사를 보며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잠시 생각을 하고 소이연에게 전화를 걸었다.소이연도 당연히 예수진의 기사에 대해 알고 있었다.사진을 보고 문서인이 한 짓이라는 것도 알 수 있었다.문서인은 그래도 똑똑한 편이다. 다른 기삿거리로 그의 기사를 덮어, 문 씨 가문이 안 좋은 기사의 영향을 받지 않도록 한 것이다.“소이연, 네 생각에 육현경이 예수진을 도와줄 것 같아?” 문서인이 비꼬는 말투로 물었다.소이연은 진심으로 문서인에게 본인의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만약 문서인이 예수진이 육 씨 가문의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토할지도 모른다.“육현경이 나서서 예수진과의 관계를 직접 언급할까, 아니면 조용히 기사를 덮을까?” 문서인은 차갑게 말했다. “소이연, 너도 육현경의 여자들 중 하나일 뿐이야.”소이연은 말 섞기도 귀찮았다.“그런데 난 너무 궁금해, 네가 도대체 어떻게 육현경이랑 엮인 거야? 알아서 옷 벗고 침대로 올라갔어?” 문서인은 점점 말을 비꼬고 있었다. “그 당시에 내가 네 손잡을 때는 밀어내더니, 이제 이렇게 더러워진 거야?”“그래, 내가 먼저 육현경 침대로 올라갔어.” 소이연은 해명도 하기 싫었다. 하기도 싫었고, 할 필요도 없었다. “그 당시에 왜 못 만지게 했냐고? 넌 별것도 아니니까!”“소이연!”“육현경이랑 비교하면, 넌 도대체 어디가 더 나은데?! 더 잘 생겼어? 돈이 더 많아? 권력이 더 많아? 아무것도 없으면서, 네가 무슨 자격으로 육현경에 대한 내 마음을 그따위로 깔보는 거야!” 소이연은 갈 데까지 갔다. “맞다, 내가 미리 말 안 해줬는데, 소나은이 참 내 걸 좋아하는 것 같더라고, 내 거가 자기 거 보다 더 좋은 건 못 참겠나 봐. 그래서 네 생각에는 소나은이 육현경을 좋아하는 게 아닐까......”“나은이는 너 같은
업무상으로만 말하자면, 그는 예수진보다 믿을만했다.“우리 할아버지가 허락 안 해.” 육현경이 답장했다.소이연이 의아해하는 동안 육현경이 또 문자를 보내왔다.“계지원은 의붓아들이야. 육 씨 가문에 못 들어오게 한 건 재산 문제 때문에 틀어지게 될까봐 그걸 방지하기 위해서였어.”소이연은 이해는 하지만, 계지원에게 불공평하다고 생각했다.이건 너무 티 나잖아.계지원의 기분은 생각도 안 해본 건가?“그럼, 수진씨 일 당신은 손 놓고 보기만 할 거야?” 소이연은 항상 육현경의 말에 넘어갔다.“알아서 할 거야. 못 하면, 알아서 나한테 찾아올 거고.”그래.소이연 역시 예수진도 육 씨 가문 사람이니, 육 씨 가문도 가만히 예수진이 괴롭힘당하는 것을 보고만 있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그녀는 문자 화면을 끄고 일할 준비를 했다.이제 막 끄고 나왔는데, 문자 화면이 다시 떴다. “끝이야?”소이연은 눈썹을 찡그렸다.그럼, 뭐가 더 필요해?!지금은 업무시간이고, 그녀는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특히 장안 방송국에서 연예인 스타일링 관련 리얼리티 쇼를 진행한다는 소식을 듣고, 참여해서 은하의 명성을 더 높이고 싶었다.“우리 안 만난 지 얼마나 됐어?” 육현경이 물었다.얼마나?!아마 일주일 정도 된 것 같았다.“관계가 확실해지고 나서 안 만났지.” 육현경이 한 글자씩 말했다.소이연은 입술을 문질렀다. 아마도.“분명 이연 아가씨 입으로 직접 말씀하신 건데 말이에요. 저랑 재미로 만나는 건가요? 우리 가벼운 만남인가요?” 육현경이 비꼬며 말했다.“내가 엄청 바쁠 거라고 했어 안 했어?” 소이연은 반박했다. 조금 억울하기도 했다.그 당시에 육현경도 알겠다고 했었다.“아무리 바빠도 연애는 해야지.” 육현경은 떼를 썼다.“......밥 먹듯이 할 수도 없고.”“정신 식사는 한 끼도 거르면 안 돼.”“그래서 내가 당신을 굶겼다고?”“배에서 꼬르륵거려.”소이연은 대화 주제가 조금...... 다채로워졌다고 생각했다.그녀가 황
저녁 6시.육현경은 약속대로 육민과 함께 소이연의 퇴근길에 마중을 나왔다.“엄마!”육민은 맑은 어린아이의 목소리로 항상 그녀의 마음을 녹였다.그녀는 육민을 품에 안고 함께 앉아 하하 호호 웃으며 이야기했다.완전히 무시당한 육현경은 얼굴이 좋지 않았다.“아빠, 엄마 만났는데 안 좋아요?” 육민은 귀여운 눈썹을 치켜올리며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아니.” 육현경의 목소리가 차가웠다.“근데 왜 눈썹이 이런 모양이에요? 이렇게, 이렇게.” 육민은 육현경의 찌푸린 눈썹을 따라 했다.육민은 원래도 육현경의 미니 버전인데, 육현경을 따라 하니 완전 판박이였다.소이연은 참지 못하고 깔깔 소리를 내며 웃었다.심지어 기사님까지 육민 덕에 웃고 있었다.육현경의 얼굴은 더 안 좋아졌지만.육민은 소이연이 웃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더 좋아졌다. “엄마, 아빠 신경 쓰지 마세요. 아빠는 아마 갱년기인가 봐요.”소이연은 또 한 번 참지 못하고 큰 소리로 웃었다.이 철없는 아들 놈!다행히 식당이 멀지 않아 금방 도착했다.더 오래 걸렸다간 육현경의 피가 거꾸로 솟을 수도 있었을 것 같았다.세 사람은 고급 레스토랑의 창 쪽 테이블에 앉았다.육현경이 고개를 숙이고 주문을 하는 동안, 소이연과 육민은 여전히 하하 호호 이야기를 나눴다.육현경은 자신이 무슨 도구라도 된 것 같았다.“현경 오빠!”갑자기 어디선가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육현경은 고개를 들었다.소이연과 육민도 그들에게 다가오는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진짜 오빠네! 나 기억 안 나?” 여자는 놀라며 기뻐했고, 급히 자신을 소개했다. “나 임희지, 심아윤 사촌 동생! 오빠 우리 언니랑 같이 유학할 때 우리 만났었잖아.”“응.” 육현경은 짧게 대답했다. 아마 생각난 것 같았다.임희지는 육현경의 차가운 말투에도 전혀 거리낌 없이, 오히려 더 기쁘다는 듯 말했다.“진짜 신기하다, 나 오늘 낙성시에서 남자친구 만나러 온 건데, 오빠가 여기 있을 줄은 몰랐네. 맞다, 우리 이모가 그러던
소이연은 그를 달래주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갑자기 심아윤에 대해 물어보다니.“응.” 육현경이 고개를 끄덕였다.“당신 그 사람이랑 무슨 관계야?” 소이연은 직설적으로 말했다.지난번 육현경과 예수진의 사이를 오해한 뒤로 그녀는 궁금한 게 있으면 바로 물어보기로 했다.“우리 할아버지랑 걔네 할아버지랑 예전에 전우였대.그래서 관계가 좋으시고, 두 가문이 같은 지역에 있지 않더라도 자주 연락해.어렸을 때는 할아버지가 나를 데리고 다른 집에 놀러 가는 걸 좋아하셨어서, 낙성시 심 씨 가문에도 자주 갔었는데, 심아윤은 따지자면......” 육현경은 적당한 말을 고르고 있었다.“죽마고우.” 소이연은 눈썹을 치켜올렸다.“아니야.” 육현경이 부인했다. “따지자면 옆집 동생이야.”옆집 동생?!이렇게 부르니까 왜 이렇게 이상하게 느껴지지.“어릴 때 할아버지가 나를 유학 보내버렸는데, 심아윤도 나랑 비슷했어.대학 졸업하고 나는 육 씨 가문 해외 지사 확장, 걔는 심 씨 가문 기업 경영 때문에 쭉 거기에 있었어.” 육현경이 이어서 말했다. “어르신들 관계 때문에, 서로 돌봐줬었어.”서로 돌봐줘? 어떻게 돌봐줘?!육현경은 소이연의 눈빛을 보고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걱정 마, 걔랑 나는 청렴결백해.”“청렴결백한지 아닌지는 당신 과거 일이고, 난 어차피 상관없어.” 소이연은 정말 상관없다는 듯 말했다.입꼬리는 분명 내려갔는데.육현경은 갑자기 기분이 좋아져서 말했다. “이연 아가씨, 발전했네요.”“응?” 소이연은 왜인지 몰랐다.“드디어 입을 뭔가를 물어보는 데에 쓰셨어요. 예전 같으면 조용히 나한테 사형을 내렸을 텐데.”소이연은 얼굴이 조금 빨개졌다.육현경과 예수진이 양다리가 아닌지 오해했던 사건은, 이번 생 내내 안줏거리로 될 게 분명했다.저녁 식사를 마친 후.소이연은 육현경의 마이바흐를 타고 돌아갔다.차 안에는 그녀와 육민의 웃음소리가 가득했다.육현경은 순식간에 다시 투명인간이 되었다.그 순간.소이연이 갑자기
소이연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으로 올라갔다.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예수진이 집문 앞에 기대어 있는 모습이 보였다.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것이 거하게 취한 모양이다.소이연이 성큼성큼 걸어갔다.“수진 씨?”예수진이 눈을 거슴츠레 뜨고 소리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소이연을 알아보더니 당장이라도 울 것처럼 눈물을 글썽거렸다.“언니, 왜 이제 왔어요?”“왜 여기에 있어요? 많이 마셨네.”“오늘 촬영이 일찍 끝나서 친구들이랑 좀 마셨어요.”예수진이 술냄새를 풍기며 말했다.대체 얼마나 마신 거야?“하지수 씨랑 마셨어요?”“그 계집애는 너무 바빠요. 출장 갔거든요. 다른 친구들이랑… 딸꾹… 술 친구들이랑.”말을 하면서도 술 트림까지 했다.하지수는 이렇게 무책임한 사람이 아닌데, 어쩐지 이상하다 했다.소이연이 재빠르게 현관문을 열고 예수진을 부축해서 들어갔다.“안에 사람 없으면 전화라도 하지 그랬어요.”“연애하는 데 방해할까 봐. 아니면 오빠한테 죽어요.”예수진이 말하다 구역질을 해서 소이연이 재빨리 화장실로 끌고 들어갔다.변기 앞에 앉은 순간 와르르 토사물을 배출했다.소이연이 계속 등을 두드려주었다.얼마나 토했으면 쓰린 위를 감싸 안았다.“이제 괜찮아요? 물 좀 갖고 올게요.”“씻고 싶어요.”“혼자 할 수 있겠어요?”“네.”소이연이 목욕물을 받아 놓고 갈아입을 옷까지 챙겨다 주었다.예수진이 다 씻고 나왔을 때 소이연이 꿀물을 타서 건네주었다.침대에 비스듬하게 누워서 꿀물을 마시던 예수진이 해맑게 웃었다.“여기 오면 날 챙겨줄 줄 알았어요.”너무 토해서 얼굴이 창백하지만 그래도 웃었다.소이연은 조금 어이가 없었다.“집에 하인들이 그리 많은데 수진 씨를 잘 챙겨주지 않아요?”“내가 보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으니까요.”“부모님과 싸웠어요? 아니면 외할아버지와 말다툼이라도 했어요?”소이연이 걱정스럽게 물었다.“아니요.”예수진이 부정했다. 말하고 싶지 않는지 이불을 머리 위로 푹 덮어썼다.“잘게요.”소이연도
기사 일면에서 커다랗게 쓴 제목이 눈에 띄었다.‘예수진 스캔들: 남친 계지원이 드디어 수면 위로 올라왔다!’그 제목을 본 순간 예수진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이상함을 느낀 소이연이 자신의 휴대폰을 꺼내 뉴스를 검색해 보았다.기사 앞부분에 예수진의 지난 스캔들을 간략하게 서술했고 뒤에 두 사람의 관계가 사실이라는 것이 설명되어 있었다. 그리고 ‘풍화정집’의 여주 문서아를 하차시키고 예수진으로 교체한 것을 언급하면서 두 사람이 연애하는 사이가 확실하다고 발언했다.소이연이 기사에 뜬 사진 몇 장을 다시 보았다.사진 속에서 두 사람은 호화로운 별장 입구에 일정한 간격을 두고 서 있었다.멀리서 찍었지만 분명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싸한 분위기였다.그 모습이 찍혀서 골치 아프게 스캔들이 나버렸다.하지만 전부 언론을 탓할 수 없었다. 모자이크한 계지원의 얼굴을 다른 사진과 비교했더니 육현경의 윤곽과 엇비슷해서 원본 사진을 보지 못한 사람들이 오해할 만했다.“아씨!”예수진이 기사를 확인하고 뚜껑이 열렸는지 욕을 내뱉았다.휴대폰 너머로 다인의 목소리가 들렸다.“수진. 이렇게 된 이상 더는 숨기지 말고 어떻게 입장 발표할 건지 계 감독님과 상의해 봐. 집까지 찍혔는데 확실하게 해명하지 않으면 다들 믿지 않을 거야. 근데 요즘 팬들도 연예인들이 연애를 한다고 해서 반감을 사는 눈치는 아니야. 두 사람 잘 어울리니까 내가 회사 측에 얘기해볼게. 아니면 공식적으로 발표할래? 마침 연애 관련 예능 프로그램 제안이 들어왔거든.”“나와 계지원은 아무 사이도 아니야!”예수진이 이를 갈며 또박또박 말했다.“수진아.”“이따 다시 전화할게.”예수진이 바로 끊어버리더니 심호흡 한 번 하고 계지원에게 연락했다.“지금 당장 우리 둘이 아무 사이가 아니라고 발표해. 나도 우리는 협력 관계라는 걸 밝힐 테니까.”예수진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너 때문에 내 연예인 인생 망치고 싶지 않아!”“알았어.”계지원이 짧게 대답하고는 이내 이성적으로 말했다.“그 전에 우리
그리고는 간호사 하나가 걸어 나오며 말했다.“소이연 씨 보호자 계세요?”“네!”“아기 나왔습니다. 3.15킬로...”“산모는요?”간호사의 말에 우렁차게 대답한 육현경은 아이는 신경도 안 쓰고 소이연의 상태부터 물었다.“산모분은 아주 건강하십니다. 지금 선생님께서 상처 처리하고 계시니까 곧 나오실 겁니다.”“아빠 맞으시죠? 아이 한 번 안아보실래요?”그제야 안도한 육현경이 아이를 안아 들자 친구들이 우르르 몰려오며 한마디씩 하기 시작했다.“어머, 어쩜 이렇게 하얗지? 내가 본 아기들 중에 제일 예쁜 것 같아.”“지금 네 아들은 못생겼다는 소리야?”“솔직히 말하면 좀 못생기긴 했어.”하도경의 시비에 예수진이 너무 솔직히 답하자 계지원이 그게 사실인 걸 알면서도 자기 아들 외모를 저렇게 평가하는 게 썩 기분 좋지는 않았는지 헛기침을 해댔다.“나도 안아볼래.”예수진의 말에 육현경은 바로 아이를 넘겨주었다.“우리 공주님, 너무 귀엽다. 왜 하필 혈연관계인 거야!”피가 섞인 남매라서 자기 아들과 맺어줄 수 없다고 안타까워하는 예수진에 하지수도 궁금해서 다가가 보았다.“나도 봐봐.”가까이에서 보니 정말 떡잎부터 남다른 예쁜 아이였다.장차 아주 예쁘게 클 것 같아서 하지수는 아이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물었다.“딸이야?”“딱 보면 딸이지, 이 얼굴이 남자일 리는 없잖아.”간호사가 대답하려던 그때 분만실 분이 또 한 번 열리고 소이연이 휠체어를 타고 나오자 육현경은 다급히 달려가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며 말했다.“고생했어.”“이제 돌아가서 쉬자. 우리 이제 아이는 그만 가지자.”소이연이 고생하는 게 마음 아팠던 육현경은 잔뜩 굳은 얼굴로 간호사에게서 휠체어를 받아 병실로 향했다.친구들도 그런 육현경을 따라 병실로 향하고 있었는데 성큼성큼 걷던 하지수가 휑한 옆자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송문수가 아직도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왜 움직이지 않는지 의아해진 하지수가 그를 바라보자 송문수가 그녀와 시선을 맞추며 입꼬리를 올려 보였다.
“뭐라고요?!”놀란 예수진이 언성을 높이자 육현경도 표정을 굳히고 소이연을 바라보았다.늘 소리소문없이 일을 처리하던 육현경은 이번에도 다들 벙쪄있는 틈을 타 소이연을 안고 밖으로 나갔다.예수진도 그 뒤를 따라 나가려 하자 계지원이 그녀를 잡아 세웠다.“수진아, 오늘 이 자리 우리가 만든 거야.”“그래도 갈 거야. 당신은 엄마랑 현경 오빠 어머님한테 손님들 좀 부탁한다고 전해줘. 난 언니한테 가봐야겠어.”예수진을 말릴 수 없다고 생각한 계지원도 잠시 고민하다가 그녀의 뒤를 따라 나가자 상황이 심상치 않게 흘러감을 눈치챈 송문수와 하지수도 아쉬운 듯 서로에게서 떨어졌다.“키스 다 했으면 빨리 병원 가. 이연 씨 출산한대.”출산이라는 말에 하지수도 다급히 뒤 따르려 하자 송문수가 그녀를 잡으며 말했다.“천천히 가. 그래도 안 늦어.”그렇게 몇 분도 안 된 사이에 많은 사람들이 파티장을 빠져나갔다.예수진이 둘째를 위해 연 백일잔치는 사라진 엄마 아빠 때문에 아이 혼자 남겨진 채로 끝이 나버렸다.그들이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양수가 터진 소이연이 분만실로 옮겨진 뒤였다.상황이 많이 급박한지 늘 침착함을 유지하던 육현경조차도 많이 초조해 보였다.아까부터 입구에서 서성이는 육현경을 보다 못한 예수진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오빠, 가만히 좀 있어 봐. 지금 다들 긴장하고 있는데 오빠 때문에 더 진정할 수가 없잖아.”직설적인 그녀의 말에 육현경이 예수진을 보자 계지원이 다급히 나서며 분위기를 풀었다.“아무 일 없을 테니까 걱정 마. 수진이도 그때 오래 걸렸잖아. 낳으면 된 거지 뭐.”말은 그렇게 해도 사실 계지원도 육현경 못지않게 초조해했었다.당장이라도 분만실로 뛰어 들어가 예수진 대신 아이를 낳아주고 싶어 했었다.그런데 그때, 분만실에서 소이연의 고통스러운 비명소리가 흘러나왔다.주먹을 쥐고 있던 육현경의 손이 점점 하얗게 질려감에 따라 지켜보던 친구들의 긴장감도 고조되고 있었다.다들 긴장하고 있는 와중에 송문수가 갑자기 하지수의 손
“임신 때문에 살쪄서 그런 거야. 문수 씨 탓 아니야.”하지수가 당황한 송문수를 달래주자 그는 벙찐 표정으로 물었다.“그럼 어떡하지?”“살 빼고 나서 다시 끼지 뭐.”“그래.”하지수에게 반지를 직접 끼워주는 건 송문수가 꿈에서도 그리던 장면이었는데 예상치 못한 이유로 못하게 되는 그는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하지수가 자신과 결혼만 해준다면 앞으로의 날은 길 것이기에 송문수는 그만 몸을 일으켰다.그런데 그가 일어서자마자 사람들이 소리높이 외치기 시작했다.“키스해! 키스해!”갑작스러운 호응에 하지수의 얼굴이 빨개지자 송문수는 그녀가 난처해지지 않게 당분간은 자신의 욕구를 억누르기로 했다.사실 그날 밤, 하지수와의 잠자리는 송문수에게 많은 미련을 남겨주었다.잠을 자다가도 쉴 새 없이 흥분해서 밤에 속옷을 몇 번이나 씻기도 했었다.그렇게 그녀를 원했어도 자리가 자리인 만큼 송문수는 하지수의 손을 잡고 내려가려 했는데 그 순간, 하지수의 입술이 송문수에게 닿아왔다.그녀가 먼저 한 입맞춤은 송문수의 심장을 뒤흔들기 충분했다.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입맞춤을 당한 송문수가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갈팡질팡하고 있는데 그때 하도경의 장난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뽀뽀 한 번에 바보 된 거야?”“...”그 말에 욱한 송문수였지만 여자친구도 없는 친구를 위해 한번은 참아주기로 했다.“신경 쓰지 마. 우리 내려갈...”그런데 그때, 하지수가 또다시 입을 맞춰왔다.하지만 이번에는 아까처럼 닿았다가 금방 떨어지는 입맞춤이 아니라 오래도록 이어지는 키스였다.작은 그녀의 혀가 불규칙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하자 송문수의 몸은 그대로 굳어버렸고 그의 심장박동 또한 정직하게 빨라졌다.정말 자신을 죽이려 드는 하지수에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송문수는 하지수의 뒤통수를 손으로 잡고 키스를 이어가기 시작했다.임신을 해도 작기만 한 체구의 하지수는 금방 송문수에게 주동권을 뺏겨버렸다.두 사람의 행복을 빌어주기라도 하듯 무대 위로 장미꽃잎이 흩날리고
다들 숨을 죽이고 송문수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하지수의 눈엔 눈물이 가득해서 눈을 조금만 깜빡여도 쏟아질 정도였지만 그녀 역시 온 힘을 다해 참아내고 있었다.송문수는 그 정적 속에서 입술을 말아 물며 많은 고민을 거쳐 마침내 입을 열었다.“결혼하자.”그 대답이 들리기까지의 몇 분이 하객들에게는 한 세기만큼 길게 느껴졌다.송문수의 말이 끝나자마자 하지수도 기쁨의 눈물을 왈칵 쏟아냈고 송문수는 그런 그녀를 향해 한 번 더 소리높이 외쳤다.“하지수, 결혼하자. 너랑 결혼하는 게 내 평생의 소원이었어. 나중에 후회하더라도, 네가 지금 충동적으로 결정한 거라 해도 넌 이제 평생 내 여자야. 다시는 너 다른 남자한테 안 보내. 아주 박력 넘치는 남자가 될 거라고.”“난 후회 안 해.”송문수와의 결혼을 하지수가 후회할 리는 없었다.그때 예수진이 무대 위로 올라가자 송문수는 그제야 이 자리의 주인공이 예수진이었다는 걸 깨닫고는 다급히 하지수를 데리고 내려가려 했다.그런데 그때 예수진이 빨간 보석함 하나를 송문수에게 보여주었다.“이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는 알지?”그 안에 들어있는 건 송문수가 하지수를 위해 준비한 프러포즈 반지였다.익숙한 상자가 등장하는 순간부터 그 사실을 기억해낸 송문수였다.송문수는 하지수에게 가장 특별한 반지를 만들어주기 위해 세계적인 디자이너까지 초빙하며 큰 공을 들였었다.“이제 네가 가져.”예수진이 그것을 송문수에게 건네주자 그는 떨리는 손으로 받아들고는 천천히 보석함을 열어보았다.반짝이는 5캐럿의 다이아몬드가 마침내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게 된 것이다.눈이 멀어버릴 정도로 반짝이는 반지를 집어 든 송문수는 하지수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자신이 상상해왔던 화면이 눈 앞에 펼쳐지자 하지수는 감격의 눈물을 흘렸는데 송문수 역시 눈가가 촉촉해진 채로 목멘 소리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지수야.”송문수의 부름에 하지수는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예전에는 내가 진짜 나쁜 놈이었어. 맹세할게, 앞으로는 진짜 좋
그런데 하지수가 이런 마음을 전하기도 전에 송문수가 그 먼 타지로 떠나버린 것이다.그래도, 송문수가 정말 자신을 싫어한다 해도, 정말 자신과 헤어지고 싶어 한다 해도 송승우와 함께하지 않겠다는 하지수의 마음은 한 번도 변한 적이 없었다.물론 자신을 쉽게 포기하는 송문수에 잠깐 실망도 했었다.그러면서 송문수에게 자신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예수진과 소이연이 저 영상을 보여주지 않았더라면, 그들이 송문수가 준비해온 모든 것들을 알려주지 않았더라면 하지수는 영원히 송문수가 오래도록 자신을 좋아했다는 사실을 몰랐을 것이다.눈에 눈물을 가득 매단 하지수를 보던 송문수는 가슴이 아파와 손을 뻗으려 했지만 다시 움츠러들었다.지금 송문수는 무슨 결정을 내려야 할 지 몰랐다.혹여나 자신의 선택이 하지수에게 부담으로 다가갈까 봐, 그녀의 모습을 보며 송문수는 괴로워하고 있었다.너무 괴로워서 생긴 착각인지, 송문수는 하지수도 자신을 사랑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하지만 하나 마음에 걸리는 게 있다면 그건 바로 하지수 배 속의 아이였다.물론 송승우의 아이라 해도 송문수는 상관없었지만 하지수도 개의치 않을 수 있을까가 그의 의문이었다.“나 너랑 결혼하고 싶어. 네가 나한테 잘해줘서가 아니고, 네가 오래전부터 날 좋아해서도 아니고, 날 위해 많은 걸 준비해줘서도 아니라 그냥 내가 좋아서. 그래서 결혼하고 싶어. 다른 거랑은 아무 상관없어.”하지수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송문수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네가 좋아하는 건 송승우잖아.”“아니라고 몇 번을 말해. 난 송승우 안 좋아해. 아주 오래전부터 이미 끝난 사이였어. 말했잖아, 그때 좋아한다고 느꼈던 감정은 그냥 습관 같은 거였다고. 내가 좋아하는 건 너야. 미안해서가 아니라 그냥 네가 좋아!”매번 좋아한다고 할 때마다 믿질 못하는 송문수 때문에 하지수는 화가 치밀어올랐다.물론 송문수가 자신을 믿지 못해서 화가 난 게 아니라 송문수가 본인한테 자신감이 너무 없는 것 같아
파티장 안의 모든 불빛은 송문수와 하지수에게 집중되어 있었다.무대 중앙에 선 하지수는 송문수를 바라보고 있었고 송문수도 사람들 틈에서 하지수를 바라보고 있었다.지금 하지수는 송문수가 그냥 가버릴까 봐, 그게 제일 무서웠다.하지수는 자신이 이런 용기를 내는 것도 마지막일 것 같았다.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감정을 마주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니.조용한 그 공간에서 송문수가 갑자기 무대로 향해 걸어갔다.한발 한발, 무거운 발걸음이었지만 그 발걸음이 향하는 곳은 확실했다.그래서 하지수의 심장박동도 빨라졌다.더 이상 컨트롤이 되지 않을 정도로.모두들 숨죽인 채 송문수와 하지수를 보고 있었지만 그중에서 가장 마음을 졸이는 건 예수진과 소이연이었다.겁이 많은 송문수가 도망이라도 갈까 봐 걱정하고 있었는데 다행히도 송문수가 책임감은 있어서 하지수를 혼자 남겨두진 않았다.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송문수가 하지수에게로 다가섰고 두 사람은 말없이 서로를 응시했다.송문수의 눈은 빛나고 있었고 울대는 잔잔히 떨리고 있었다.심경에 크나큰 변화가 일었지만 애써 본인을 진정시키려 하는 게 눈에 훤히 보였다.“지수야, 이건 마음에 담아두지 마.”그러다 갑자기 내뱉은 말에 하지수는 송문수를 빤히 쳐다보았다.“그때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어서 이런 걸 찍었는지도 모르겠어.”송문수는 이번에도 장난인 척 너스레를 떨며 상황을 넘기려 했다.“너도 알잖아 나 이상한 거. 충동적으로 무슨 짓이든 하는 사람이잖아. 그러니까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진 마.”말을 마친 송문수가 직원을 찾아가 영상을 지우려 하자 하지수가 입을 열었다.“난 이미 진지하게 받아들였어.”그 말에 발이 잡힌 송문수는 빨라지는 심장박동을 애써 늦추며 말했다.“미안해.”송문수의 갈등과 무력함을 보아낸 하지수의 눈에도 어느새 눈물이 차올랐다.“너 헷갈리게 해서 미안해. 만약 네가 신경 쓰인다면... 앞으로 네 앞에 안 나타날게. 너도 나 같은 사람 때문에 힘들어하지 마. 그럴 가치 없
오늘 온 손님들은 하나같이 외향형인지 호응도 아주 잘해줬다.“네! 궁금해요!”“한 여자를 위해선데요.”“누구예요?”“바로 하지수입니다.”영상 속의 자신이 한 자 한 자 내뱉는 말들을 듣던 송문수는 그제야 이게 자신의 프러포즈 영상이었음을 깨달았다.처음에는 이게 어떻게 여기 있는지 당황스러웠지만 항상 일 처리에 미흡한 예수진이 이번에도 실수한 거라 생각해 송문수는 무대 위로 올라가 영상을 멈추려 했다.그런데 그가 발을 내디디자마자 육현경과 하도경이 그 앞을 막아섰다.그리고 영상은 계속해서 재생되었다.“하지수는 제 아내입니다. 결혼한 지 몇 년이나 되었지만 한 번도 제대로 사랑해준 적이 없었죠. 사실 저는 사랑하지 않는 게 아니라 사랑할 용기가 없었던 겁니다. 제가 너무 비겁해서 그 사람 앞에만 서면 저 자신이 쓸모없어지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늘 유치한 방법으로 그 사람에게 상처만 줬어요.”영상 속 송문수의 얼굴에는 미안함이 가득했다.“미안해 지수야. 나 지금 엄청 후회하고 있어. 괜한 질투로 널 몇 년 간 힘들게 한 걸. 매일 밤 널 안고 자고 싶었는데도 난 자존심 때문에 그런 말 한마디 못했어. 그래서 내 인생이 좀 덜 재밌었던 것 같아. 너라는 복지가 부족했잖아.”감동하며 영상을 보고 있던 사람들은 마지막 말에 웃음을 터뜨렸다.참 울지도 웃지도 못하게 하는 고백 영상이었다.“사랑해, 지수야.”뒤이어 마침내 사랑한다는 말이 나왔는데 그때 송문수의 눈은 확신이 가득 차 있었다.“널 처음 본 순간부터 사랑했었어. 그런데 네가 좋아하는 게 내가 아니니까 점점 비참해지더라. 그래서 네가 싫어하는 방법으로 네 시선을 끌려고 했어. 그때만 생각하면 아무리 나라도 너무 멍청한 것 같더라.”“하지만 이젠 아니야.”“내가 그렇게 대단한 사람은 못 돼도 세상에서 너한테 가장 잘해주는 남자는 될 수 있어.”“더 이상 너한테 성질도 안 내고 부려먹지도 않을게. 괜한 질투 때문에 너 상처받게 하지도 않아. 우리 집은 이제 너한테 맡길 거야. 돈도
파티장에 들어와 보니 계지원과 예수진이 아들딸과 함께 와준 손님들에게 인사를 해주고 있었다.인사를 마친 예수진은 흥분된 목소리로 하지수를 불렀다.“이번에는 제 가장 친한 친구이자 우리 아들의 영원한 이모일 하지수 씨를 모셔보겠습니다.”파티장 한구석에 선 송문수는 무대 위로 올라가는 하지수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아까는 제대로 볼 엄두가 안 나서 애써 무시하려 했던 그녀의 배가 꽤나 불러온 것 같았다.옷을 입어도 다 가려지지 않는 게 이미 임신 몇 개월은 된 것 같았다.정말 자신은 안중에도 없었는지 이렇게 빨리 임신한 하지수가 송문수는 조금은 원망스러웠다.이어서 마이크를 잡은 하지수는 누군가를 찾는 듯 무대 아래를 훑어보았다.한참이 지나 자신에게로 향하는 그녀의 시선에 다급히 눈을 피하던 송문수가 다시 고개를 돌렸을 때 하지수의 시선은 이미 사라져있었다.그에 송문수는 그녀가 찾던 건 아마 송승우일 거라고 짐작하고 있었다.그런데 끝까지 모습을 비추지 않는 송승우 때문에 그저 시선을 거둔 것 같았다.“우선은 수진이 아들 이모가 될 수 있어서 너무 영광스럽고요.”“수진이가 제 배 속에 있는 아이가 딸이면 꼭 사돈을 맺자고 그러더라고요.”“저도 우리 조카 귀여워서 너무 사랑하거든요.”“하지만 사돈은 저 혼자 맺는 게 아니잖아요. 애 아빠 입장도 있고 하니까요.”그러자 예수진의 격앙된 목소리가 또 한 번 들려왔다.“그럼 얼른 애 아빠부터 불러서 오늘 사돈 한번 맺자!”“아이 아빠는...”그녀의 말에 담담히 웃던 하지수는 갑자기 말을 멈췄다.마른 침을 삼키며 그 모습을 보던 송문수는 정말 송승우를 한 대 때려주고 싶었다.가장 사랑하는 여자를 내어줬는데도 책임을 다하지 않고 이런 날에 하지수를 혼자 이곳에 보내고 또 혼자 무대 위에 올리는 게 어떻게 남편이라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짓인가 싶었다.“수진아, 내가 무대 좀 써도 돼?”“당연하지, 오늘 이 자리는 널 위한 거야.”“아, 아니다. 내 미래의 며느리를 위한 거지.”예수진의 한마디에
하지수의 말을 끝으로 두 사람의 시선이 맞물리자 송문수가 황급히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당연하지.”“진짜야?”“내가 왜 널 속이겠어?”“그런데 왜 안 데려왔어?”“이번엔 시간이 별로 없어서 괜히 고생만 할까 봐 안 데려왔어.”“나중에 기회 되면 데리고 올 거야.”“예뻐?”“내가 안 예쁜 여자 사귀는 거 봤어? 외국 여자들은 몸매도 좋아. 원래 S라인이 내 취향이잖아.”“사진 있어?”하지만 저 질문에는 송문수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그래서 몇 초 동안 침묵을 유지하다가 다시 능청스레 대답했다.“있지.”“내가 봐도 돼?”“왜? 뭐 심사라도 해주게?”“아니, 그냥 궁금해서. 네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여자는 어떻게 생겼는지.”“보면 너 상처받을까 봐 안 보여줄 거야.”“괜찮아.”송문수도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며 거절하려 했지만 하지수는 쉽게 물러나지 않았다.“다음에 직접 데려와서 보여줄게.”“지금 보고 싶어.”“카메라는 잘 안 받아서 실물보다 별로야.”“왜 안 보여주는 거야? 설마 없는 거야?”“설마 내가 너 못 잊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걱정 마. 난 원래 감정에 얽매이지 않는 사람이거든. 절대 너한테 매달리지 않을 거야.”송문수가 확신에 찬 말을 하자 하지수는 씁쓸하게 웃어 보였다.“매달린 적이 있긴 해?”그런 하지수의 모습을 보니 또 가슴이 아파왔지만 송문수는 꾹 참기로 했다.송승우의 아이를 가진 하지수는 이미 자신에게서 너무 멀어져 있으니까.“나 화장실 좀 다녀올게.”하지수는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멀어져가는 송문수의 뒷모습을 가만히 보고만 있었다.한편 화장실로 들어온 송문수는 물을 틀어놓고 손을 몇 번이니 씻어댔다.더 이상 손에 감각이 없을 정도로 아까부터 한 동작만 반복하고 있었다.“더 씻으면 손 터져.”그 모습을 본 하도경이 직접 물을 꺼주자 송문수는 넋 나간 사람처럼 고개를 끄덕이고는 하도경이 건넨 휴지를 받아 손을 닦아냈다.“고마워.”“이게 진짜 뭐 하는 짓이냐. 그렇게 좋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