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이연, 네가 여긴 어떻게?"문서인은 뒤에 있는 소나은을 감싸며 말했다."물건 정리하러."소이연은 냉담한 태도로 말했다.이젠 놀랍지도 않다.개 같은 남녀 때문에 기분이 흔들리는 것도 귀찮다.소이연은 둘이 사무실에 있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넌 중고가 그렇게 욕심났어?"소이연이 소나은을 향해 말했다."내 물건 다 정리하고 새것으로 쓰면 얼마나 좋아"말속에 숨은 뜻이 있었다.그 말을 알아들은 소나은은 얼굴이 붉어졌다."나은이 우리 이번 시즌 제품 체크하러 온 김에 내가 네 사무실 보여준 거야. 오해하지 마."문서인이 해석했다."오해? 어떤 상황이면 오해가 아닐까? 같은 침대에서 누워있으면?"소이연이 코웃음을 쳤다."소나은과 내 감정을 말하는 게 아니야."문서인은 표정이 변했다."네 업무를 말하는 거야. 그런 식으로 비꼬지 마.""어제도 말했다시피 넌 언제든지 돌아와도 돼. 네 자리는 남겨져 있어. 너에게 주는 보상이라고 할 수 있지."문서인은 잘난 척하며 말했다.소이연이 웃었다.‘문씨 그룹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게 누구 덕인데?’그는 소이연이 여전히 문씨 그룹에 의지할 것이며 문씨 그룹을 떠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심지어 그의 "선심"에 감격해 눈물을 흘릴 거라고 생각했다."필요 없어."소이연은 문서인을 보며 또박또박 말했다."이미 인사팀에 퇴사서류 제출했어. 앞으로 너 그리고 문씨 그룹은 나 소이연과 아! 무! 상! 관! 없! 어!""소이연. 너 좋은 게 좋은 건 줄 알아!"문서인이 협박했다."언니. 서인 오빠처럼 좋은 전 남친은 어디에도 없어. 헤어지고도 상대방 앞날을 걱정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 그런데 서인 오빠에 대한 반감이 너무 큰 거 아니야?""나도 나은의 얼굴을 봐서 서로 난감하지 않으려고 그러는 거야. 앞으로 다 가족인데."둘은 서로 맞장구를 쳤다.소이연은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너를 보니까 창녀가 정절 패방을 세운다는 게 무슨 뜻인지 이제 알겠다."
소나은은 난감했다.랭킹 1위인 러블리는 3년 연속 우승을 차지한 사람으로서 베일에 싸여 있는 인물이다. 반면, 소나은은 작년에 운 좋게 5위 안에 들었지만 두 사람 사이의 실력 차이는 현저했다.그러나 이런 성적 또한 은하 그룹에는 기적이다. 회사 직원들은 모두 소나은을 신처럼 모셨다."바질 사장이 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요? 그래야 다들 편할 거 아닙니까?"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임현재가 입을 열었다.그는 소이연을 한껏 조롱했다.소나은은 속으로 웃었다.‘소이연, 은하 그룹을 되찾으면 모든 일이 잘 풀릴 줄 알았어?’이 자리에 있는 사람 중 유정하를 제외하고는 모두 소나은과 소승영의 심복이다. 그들은 소이연이 보나 마나 그 자리에서 3개월도 못 버티고 도망갈 거라고 생각한다."전 문씨 그룹에서..."소이연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문씨 그룹이 장안시 고급 의류 업계에서는 손꼽히는 회사인 건 인정해요. 그러나 회장님은 홍보팀에서 일한 경력만 있지 디자인에 참여해 본 적은 없잖아요."임현재는 계속하여 조롱했다."디자인이라는 게 해본 사람만 할 수 있는 거니 너무 무리하지 마세요."소이연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사람들은 소이연이 화가 나서 자리를 박차고 나갈 줄 알았다.그러나 뜻밖에도 그녀는 차분하게 USB를 꺼내 회의실 컴퓨터에 꽂고 프로젝터를 연결하였다."이건 최근 몇 년 동안 우리 은하 그룹에서 출시한 디자인이에요. 보시다시피 시즌마다 디자인이 비슷하죠. 게다가 이번에 소나은 부장이 제출한 디자인은 작년과 거의 똑같아요. 컬러만 변했죠.""최근 트랜드가 그런 거예요..."소나은은 반박하려 했다."오늘 문씨 그룹 사내 패션쇼를 직접 보고도 전혀 생각이 없던가요?"소이연은 차갑게 비웃었다."직업윤리가 있어야지 어떻게 다른 회사 제품을 카피해요."소나은이 당당하게 말했다."올해 봄부터 트랜드가 완전히 바뀌었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었을 뿐이에요. 이건 현재 글로벌 패션쇼의 자료 화면이에요. 소나은 디자이너의 디자인 이념과
출근 나흘째.모든 것이 생각만큼 순조롭지는 않았지만 또 소이연이 대처할 수 없을 정도로 나쁜 상황은 아니었다.각 부서의 부장들은 이튿날 아침 모두 업무보고를 마쳤지만 대충 얼버무리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아마도 이건 소승영의 지시인 것 같다.다행히도 소이연은 오래전부터 유정하와 연락하면서 지속해 회사에 대한 상황을 요해해 왔었다. 그녀가 회의를 소집한 이유도 이 사람들을 더 깊게 알아가고 대처하기 위해서이다.그러다 갑자기 소이연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녀가 극도로 싫어하는 사람한테서 전화가 걸려 왔기 때문이다.한참이 지난 뒤에야 그녀는 하는 수 없이 전화를 받았다.상대방은 욕설부터 퍼부었다."소이연, 어미도 없고 근본도 없는 년, 감히 내 전화 안 받아?""내가 안 받았나요?!"소이연이 차갑게 말했다."소이연, 이젠 눈에 뵈는 게 없어?! 감히 나한테 또박또박 말대꾸야? 벼락 맞을 거야 너!"유백희의 목소리는 더욱 날카로웠다."근처에 얼씬도 안 할 테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같이 벼락 맞을 일은 없을 거예요!""너, 너, 너!"유백희는 화가 나서 말문이 막혔다."그만해, 소이연. 할머니가 직접 전화하셨는데 너 이게 무슨 태도야?"소승영이 벌컥 화를 냈다."제가 어떻게 해야 하는 건데요?"어릴 때부터 자기를 욕하고 때리고 엄마한테도 못되게 했던 사람한테 웃는 얼굴이라도 보여야 하는 건가?!소승영은 소이연과 쓸데없는 대화를 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내일이 마침 할머니 생신이야. 할머니가 널 집으로 부르셨어. 그러니까 고맙게 생각하고 내일 와."소이연은 웃었다.‘작년 칠순 잔치에도 나만 쏙 빼놓아서 장안시의 웃음거리가 되었는데 71살 생일 축하해 주러 그 집으로 가라고?!"그러죠."소이연은 거절하지 않았다.마침, 그녀도 소씨 가문의 사람들한테 볼일이 있다!소이연이 흔쾌히 대답하자 소승영은 의아했지만 다른 말을 하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소이연은 휴대폰은 내려놓았다. 그녀는 소씨 가문 사람들의 차가운 태도에 이미 익숙해졌다
하도 친척들이 있는 자리라 소이연은 소나은의 체면을 뭉개지 않았다.소파 한구석에 앉아있는 그녀는 유난히 이 자리와 어울리지 않는다."소이연, 할머니 생신인데 넌 선물도 준비 안 했어?"소승영의 친동생인 소명희가 비꼬는 말투로 말했다.소명희네 가족들은 모두 소씨 그룹에서 소승영의 덕을 보며 살고 있고 또한 양화랑와도 가깝게 지내고 있었다. 소문에 의하면 그 당시 양화랑이 소승영과 결혼할 수 있었던 건 소명희의 공이 크다고 한다.소이연은 차갑게 웃었다.소나은과 문서인이 사귀게 된 건 문서아의 공이라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기 때문이다.‘역시 소나은은 그 피를 제대로 물려받았구나!’"쟤 선물 따위는 바라지도 않아!"유백희는 시큰둥하게 말했다."쟤 꼴에 무슨 돈이 있어서 선물을 하겠어? 궁상맞아서!""할머니, 그렇게 말씀하지 마세요. 언니 지금 은하 그룹 회장이에요. 은하 그룹이 얼마나 승승장구하는데요. 저번에도 우연히 언니를 보았는데 친구들과 함께 '더 청담'에서 식사하더라고요. 그곳은 워낙 비싸기로 유명한 곳이에요. 한 끼 식사에 2백만 원은 거뜬히 넘는 곳이라 평소 같으면 저도 부담되어서 잘 안 가요. 그날은 수아가 저녁을 사겠다고 하는 바람에…"소나은은 말을 내뱉다가 갑자기 자기가 말실수를 한 듯 입을 틀어막았다."소이연, 인제 보니 너도 즐길 줄 아는 애였구나!"유백희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소이연, 네가 잘못했네. 그렇게 비싼 레스토랑에서 친구한테 밥을 사줄 돈은 있고 할머니 생신 선물 준비할 돈은 없어? 내가 보기에도 너무 한다."소명희가 집안 어른 행세를 하며 혀를 찼다."그러니까. 소이연, 넌 어쩜 그리 양심도 없어? 어찌 됐든 일 년에 한 번밖에 없는 할머니 생신인데…""나은이 봐봐. 할머니한테 직접 옷 디자인해 드렸어. 얼마나 귀티 나고 보기 좋아."거실에 있던 친척들은 소이연을 비웃었다.예전의 그녀라면 아마 묵묵히 참았을 것이다.그러나 이제 그녀는 남한테 당하기만 하던 나이를 훌쩍 넘겼다."내 기억이 틀리지
소승영은 모두가 그의 영상에 놀란 줄 알고 득의양양했지만, 이내 모친의 안색이 어둡게 변한 것을 발견했다.소나은은 다급히 단상으로 올라가 초조하게 스크린을 가리키며 말했다."아빠, 아빠…"소나은의 귀띔에 소승영은 고개를 돌렸다.스크린을 확인한 그는 하마터면 정신을 잃을 뻔했다.그것은 그와 이현아의 불륜관계를 폭로하는 영상이었다. 화면에는 그들의 사진, 동영상뿐만 아니라 오글거리는 채팅 기록도 있었다. 하도 노골적이어서 그는 차마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한참이 지나서야 정신을 차린 소승영은 직원들한테 화를 벌컥 냈다."당장 꺼, 당장 끄라고!"직원들은 놀라서 얼른 동영상을 껐다.허나 때는 이미 늦었다. 사람들은 똑똑히 다 보았다…"누구 짓이야? 누가 그런 거야?!"소승영은 단상에서 노발대발했다.유백희는 화가 나서 얼굴이 창백해졌다.생일잔치에서, 그것도 이렇게 많은 친인척 앞에서 체면을 구기다니!한편, 유백희 옆에 앉아있던 양화랑은 이런 모욕적인 일을 겪어도 감히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아빠…"소나은은 소승영을 끌어당기며 진정하라고 타일렀다.소승영은 어금니를 꽉 깨물고 친인척들 앞에서 아무렇지 않은 척 입을 열었다."다들 식사하세요. 조금 전 영상은 분명 누군가가 절 모함하기 위해 만든거에요. 다 조작된 거라고요! 고작 이런 일로 우리 어머니 생신에 영향을 주면 되겠어요?"말을 마친 그는 씩씩거리며 자리로 돌아왔다. 자리에 앉은 그는 여전히 안색이 어두웠다."소승영, 네가 밖에서 무슨 짓을 하던 난 상관 안 해. 하지만 오늘, 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아무튼 저 여자는 내 눈에 띄게 하지 마!"유백희는 화가 나서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어머니, 이게 다…""핑계 대지 마."유백희는 화를 잔뜩 냈다."화랑아, 저 여자는 네가 처리해. 다시는 얼씬도 못 하게!"양화랑은 눈시울을 붉히며 서러운 표정을 지었다."네, 어머님.""다들 식사하세요!"유백희가 사람들한테 손짓했다.오늘 유백희의 생
소이연의 대꾸에 소나은은 말문이 막혔다."소이연. 나은이는 네 걱정해서 그러는 건데 너는 왜 항상 이렇게 쌀쌀맞고 공격적이야. 아무리 우리가 헤어져서 마음이 불편하다고 해도 앞으로는 다 친척일텐데...""문서인, 내가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어. 너는 널 너무 높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어. 나한테 넌 아무것도 아니야. 내가 소나은을 싫어하는 건 너랑 상관없어. 아니네, 조금은 상관있네."소이연이 잠시 멈칫하더니 말했다."버프가 더해져서 더 싫긴 하지.""언니, 나를 얘기하는 것까진 괜찮은데 서인 오빠한테 그렇게 얘기하면 안 되지..."소나은의 말이 채 끝나지 않았지만 소이연은 먼저 몸을 돌려 자리를 떠났다.‘정말 못 봐주겠네.’멀어져가는 소이연의 뒷모습에 소나연은 화가 나서 소리를 지를 뻔했다.문서인도 크게 다를 바 없다.소이연은 점점 더 그를 안중에 두지 않는다."소이연!"소승영이 성난 목소리로 불렀다.소이연은 입술을 깨물었다.굉장히 짜증 나지만 그래도 아빠가 부르는 거라 예의상 몸을 돌렸다.소이연은 지금 소씨 가문 사람들을 잘 대응하지 않으면 자리를 뜰 수 없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다."따라와."소승영은 말 한마디만 남기고 뒤돌아갔다.소이연은 마지못해 따라갔다.소씨 가문 사람들이 그녀에게 집으로 오라고 한 것은 단순히 비웃기 위한 것뿐만이 아니다. 그녀는 반드시 또 다른 음모나 계략이 존재할 것이란 걸 진작에 짐작했다.그들은 소씨 별장 2층 테라스로 왔다.소승영은 발걸음을 멈추더니 차갑게 물었다."네 짓이야?""무슨 말씀하시는 거예요?"소이연이 시치미를 떼자 소승영은 화를 꾹꾹 누르며 말했다."아까 그 영상!""아빠, 나 너무 대단하게 봐주시는 거 아니에요? 저 이제 막 은하 그룹에 왔는데 아빠랑 비서 사이를 어떻게 알겠어요...""그만해!"소승영은 듣기 거북한 진실에 화를 벌컥 냈다. 처음에는 물론 소이연을 의심했다. 하지만 그와 이현아 사이의 비밀스러운 일을 어떻게 금방 회사에 들어온 소이연이 알 수
소이연은 눈앞에 있는 남자를 빤히 보았다.약간 통통한 외모는 지극히 평범하며 별로 기억에 남을 만한 포인트는 없었다.그녀는 시선을 거두고 천천히 말했다."기왕 이렇게 된 이상 그쪽을 난처하게 할 일은 없겠네요""너 내가 육씨 그룹에서 어떤 사람인지 알아? 나 육씨 그룹에서도 알아주는 사람이야! 연봉이 무려 2억도 넘는다고!"장지원은 잘난 척하며 소리를 질렀다.소이연은 "풉"하는 소리와 함께 어이없다는 듯 웃더니 뒤돌아 떠나갔다.장지원은 소이연의 뒷모습을 보며 어리둥절해졌다.이 정도 조건이면 소이연이 매달릴 줄 알았는데, 그녀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사실 장지원은 소씨 가문이 장안시에서 그나마 영향력이 있어 거절하기 힘들었을 뿐 소이연에 다른 마음은 없었다. 하지만 오늘 소이연을 직접 보니 사진보다 훨씬 예뻤다. 하여 장지원은 이런 여자와 결혼하지 않더라도 대충 데리고 놀기엔 좋다고 생각했다. 그의 입가에 음흉한 미소가 번졌다.소이연은 장지원의 생각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단지 빨리 소씨 별장을 떠나고 싶었다."언니."뒤에서 징글징글한 소나은의 부름 소리가 또 들렸다.소이연은 낯빛이 어두워졌다.‘죽고 못 사는 문서인과 붙어있을 거지, 왜 내 주위를 맴도는 거야?’"장지원 씨가 얼굴은 평범해도 알고 보면 성실하고 믿음직한 사람이야. 수입도 안정적이라 소방원과 사귀는 것보다 훨씬 나아! 어차피 새엄마가 될 운명이라면 안정적인 사람을 택하는 게 좋지 않겠어?"소나은은 마치 선심을 쓰는 듯 말했다."얼굴이 못나면 꼭 성실하고 믿음직한 사람이야?"소이연은 머리를 돌려 소나은을 아래위로 훑어보며 말했다.소이연의 눈빛에 소나은은 머리털이 곤두서는 것 같았다."그렇다고 하기엔 넌 너무 잔꾀가 많은데?"소이연은 쌀쌀한 말투로 한마디 던지고 떠났다.한참 뒤에야 소나은은 비로소 소이연이 자기를 못생기고 잔꾀가 많다고 욕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그녀는 얼굴이 순식간에 빨개졌지만 소이연은 벌써 저만치 떠나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다.소나은은 혼자 이
이현아를 보낸 뒤 소이연은 유정하의 도움으로 새로운 남자 비서, 정민기를 찾았다. 그는 나이도 많지 않고 학력도 적당하며 은하 그룹에 입사한 시간이 길지 않아 어느 라인에도 서지 않았다.화요일, 원래 계획에 따라 소나은은 다음 시즌 디자인 초안을 보고했다.넓은 회의실에서, 소나은은 자기의 디자인을 설명했다. 하지만 소이연의 뜨거운 눈빛에 그녀는 점점 더 자신감이 없어졌다.아무리 앞으로 한 주일의 시간을 더 준다 한들 그녀는 좋은 디자인을 내놓을 수 없다. 기껏해야 지금의 기초하에서 조금 더 수정만 할 뿐."소 부장은 이 디자인이 통과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소이연은 차를 한 모금 마시고 물었다."회장님, 개인적으로 트렌드의 흐름은 따라야 한다고 생각해요. 유행을 따르지만 우리 브랜드의 개성을 잃지 않고 브랜드만의 독특한 포인트는 유지했는데 안 될 게 뭐가 있어요?"소나은은 이미 핑계를 준비했다."개성? 포인트? 우리 은하 로고 외에 뭐가 특별한 지 하나도 안 보여요. 내 눈에 지금 은하의 옷들도 단지 유행하는 요소들을 짜깁기한 것으로 보이는데, 더 웃기는 건 이번엔 짜깁기도 똑바로 못했네요."소나은은 소이연으로 인해 자존심이 팍팍 구겨졌다.하지만 소나은과 함께 온 디자인팀 차장, 팀장 등 모두는 소나은의 편이다.팀장 유혜주가 말했다."우리 팀 실력은 그냥 이 정도라 회장님의 요구와 기준을 만족시켜 드릴 수가 없어요. 그렇게 불만족스러우면 직접 코치하는 건 어때요?"업종이 다르면 서로 이해하기도 힘들거니와 설령 볼 줄 안다고 해도 직접 조작할 줄은 모른다.그녀는 소이연이 정말 디자이너들에게 코칭을 할 거라는 걸 믿지 않았다."좋아요."소이연은 망설임 없이 바로 대답했다.유혜주의 안색은 순식간에 어두워졌다.소나은은 의아한 표정으로 소이연을 쳐다봤다."디자인 팀의 요구에 따라 오늘부터 디자인 팀은 제가 직접 관리할게요."말을 끝낸 소이연은 시선을 돌려 소이연을 쳐다보았다."그렇다면 소 부장은..."소나은의 가슴이 두근거렸다.
“지수야, 너는 좋은 아이라는 걸 알아. 네가 얼마나 착한지도 알아. 하지만 네가 이렇게 집착하는 건 원하지 않아.”송승우가 좀 더 진지해졌다.“너의 방식은 너 자신을 다치는 것뿐만 아니라 문수에게도 상처를 주고 있어.” 하지수는 잠시 멈칫하며 송승우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알다시피 너와 문수의 결혼은 네가 이끌어 가고 있는 거야. 네가 이혼하지 않는 한 부모님은 너희를 이혼할 수 없어. 그런데 네가 이렇게 송문수와 얽히고 있으면 그의 감정을 생각해 본 적 있어? 그는 이혼하고 싶지만 이혼할 수 없고 놀고 싶어도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돼. 지금 문수도 진퇴양난이야.” “하지만 나는 송문수가...” “그가 너를 좋아한다고 생각하니? 그날 밤 음주 운전까지 하면서 너를 만나러 오려 했던 거?”송승우가 물었다. 하지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실제로 송문수가 자신을 어느 정도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왜 그런 일을 했을까? 술을 마셨는데도 쉽게 떠날 수 없었던 그는 그녀의 전화를 받고 빗속을 뚫고 오는 데 두려워하지 않았다.그때 그녀의 마음이 흔들렸다고 인정한다.송문수에게 처음으로 심장이 두근거리는 느낌을 받았다. 그 후 그녀는 그가 출소하기를 기다리며 진심으로 다시 시작하고 싶어 했지만 송문수 계속 거절했다. “지수야, 너는 너무 순수해.”송승우가 말했다.“이런 일이 누구에게나 일어나면 당연히 신경 쓰게 돼. 송문수가 네 사고 이후에 너를 찾아온 건 인간적인 걱정일 뿐이고, 그의 음주 운전은 법을 무시한 행동이었을 뿐이야. 혼동하면 안 돼.” “하지만...” “지금 나는 너를 강요하지 않아. 네가 현실을 제대로 인식할 시간을 줄게.”송승우가 하지수를 바라보며 안타까운 눈빛을 보냈다.“나는 네가 상처받는 걸 원하지 않지만 지금 보니 너는 끝까지 가봐야만 마음을 바꿀 것 같아.” 하지수는 침묵했다. 그래. 하지수는 더 노력하고 싶었다. 하지수는 송문수와의 가능성이 있다고 믿었다.
송문수는 차갑게 물었다.하지수는 송문수가 술을 마셨는지 전혀 몰랐고, 그냥 주소를 알려주었다.말을 마친 후 차 안에서 오랫동안 송문수를 기다렸지만 오지 않았다. 사실 전화를 끊고 나서 하지수는 후회와 놀라움을 느꼈다. 왜 송문수에게 전화했을까? 가장 도와주지 않을 사람은 송문수였다. 하지수는 경찰에 전화했야 했다. 아니면 보험사나 4S 매장에 전화해야 했다. 아마도 그때부터 하지수는 이미 송문수와 잘 지내고 싶어 했다. 그래서 송문수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결국 송문수는 오지 않고 전화로 물었다.“심각하게 다쳤니?” “크게 다친 것 같진 않아. 차 앞부분이 가드레일에 부딪혔고, 내 머리도 좀 긁힌 것 같아.” “우선 경찰에 신고하고 구급차를 불러 병원에 가. 그리고 보험 회사와 4S 매장에 연락해 손해를 평가받아.”송문수는 말을 마친 후 전화를 끊었다. “안 오니?”하지수가 그에게 물었다. 그 순간 그녀는 눈물이 핑 돌았다. 사실 하지수는 이렇게 하는 게 맞다는 걸 알고 있었다. 변호사이기 때문에 정해진 절차를 더 잘 알고 있었다. 그냥 사고가 나서 의지할 누군가가 필요했다. 오늘 밤의 사고는 하지수에게 세상을 떠난 부모님을 떠올리게 했다.“안 갈 거야.”송문수가 차갑게 말했다.“하지수, 너는 변호사잖아. 사고 후의 절차를 더 잘 알지 않을까?” 말을 마친 송문수는 바로 전화를 끊었다. 그때 그녀는 송문수에게 정말 실망했다. 어떤 정도로 실망했냐고? 하지수는 그들 사이에 다시는 발전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심지어 이혼도 생각했다. 그 후 그녀는 모든 일을 스스로 처리한 후 병원에서 신체검사를 받을 때 온몸이 피투성이인 송문수를 만났다. 옆에는 두 명의 경찰이 있었다. 하지수는 자신이 잘못 봤다고 생각해 달려가서 물었다. “송문수, 무슨 일이야? 왜 이렇게 피투성이야?” “내 피가 아니야.”송문수는 무관심하게 대답했다. “그럼, 누구 거야?”
송승우는 잠시 얼어붙었다. 그는 놀라서 물었다.“이제 막 한 관광지를 갔는데 다른 두 곳도 준비했어. 먼 곳도 아니야. 왜 벌써 피곤해? 아니면 오후에 일이 있어?” “아니에요.”하지수가 고개를 저었다. “여기까지 왔는데 더 놀다 가자.”송승우가 농담처럼 말했다.“걱정하지 마, 미아로 만들지는 않을게.” “승우 오빠, 우리 서로 거리를 두는 게 좋겠어요.”하지수는 솔직하게 말했다. 송승우의 얼굴에 있는 미소가 서서히 굳어졌다. “지수야, 내가 그렇게 싫어?” “우리 사이에는 더 이상 가능성이 없어요. 오빠에게도 나에게도 송문수에게도 오해를 주고 싶지 않아요.” “왜?”송승우가 하지수에게 물었다.“나는 네 마음을 알아. 너는 송문수를 좋아하지 않고 나를 좋아했잖아. 그런데 왜 지금 우리가 함께할 수 있는데 다시 거부하는 거야? 부모님이 강요한 거야? 걱정하지 마, 내가 부모님에게 잘 설명할게. 어떤 일이든 내가 감당할 거야.” “부모님 때문이 아니에요.”하지수가 그의 말을 끊었다.“이제는 오빠를 좋아하지 않아요.” 송승우는 멍해졌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충격에 그는 당황함을 금치 못했다. 자신이 잘못 들었는지 의심했다. “지수야, 너 뭐라고 했어?” “예전에 오빠를 정말 좋아했어요. 결혼 준비 중에 오빠가 떠나서 많이 힘들었어요. 왜 갑자기 결혼식에 도망갔는지 이해할 수 없었고 그래서 송문수와 결혼하기로 한 것뿐이에요. 오빠 부모님이 나를 키워주신 은혜도 있지만 오빠한테 화가 난 게 더 컸던 것 같아요.” “그런데 왜...” “하지만 그건 예전 일이고 지금은 송문수와 잘 지내고 싶어요.”하지수가 한 단어씩 강조하며 말했다.“시간이 지나면서 많은 감정은 식기 마련이고 오빠를 향한 그리움은 이제 없어요. 지금은 송문수와 함께 있고 싶어요.” “송문수한테 미안해서 그래?”송승우가 하지수에게 물었다. 그는 하지수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믿을 수 없었다. 송승우가 하지수를 계속 사
맛이 아주 좋았다. 송승우는 하지수가 좋아하는 음식을 기억하고 있었다. 감동이 없었다면 거짓말일 것이다.송승우와 송문수의 태도는 완전히 달랐다. 하지수는 두 사람을 비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맛있어?” “아주 맛있어요.” “다 먹을 수 있어?”송승우가 물었다. “다 못 먹어요.”하지수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가득 찬 작은 만두 한 바구니에서 그녀는 많아야 절반 정도만 먹을 수 있었다.“괜찮으면 하나만 줘. 나도 아침을 안 먹었거든.”송승우가 말했다. “오빠 아침 안 먹었어요? 기다리는 동안 먹을 수도 있었잖아요.”하지수는 놀라서 물었다. “열고 나면 김이 빠져서 식으면 맛이 없잖아. 그리고 나도 그렇게 배가 고프지 않았어.” 하지수는 입술을 살짝 깨물며 만두를 집어 송승우의 입술에 내밀었다. 만두가 작아서 송승우는 한 입에 물었다. 송승우의 입술이 하지수의 손가락에 닿았다. 하지수의 손가락이 잠시 굳었다. 그리고 그녀는 만두를 옆의 팔걸이에 놓았다.“편할 때 다시 먹어요.” 송승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입가에는 분명한 미소가 떠올랐다. 방금의 접촉이 지수도 부끄러워하겠지. 목적지에 도착했다. 서울에는 특별히 재미있는 곳이 없지만 유적지가 많았다. 송승우는 첫 번째로 하지수를 성벽으로 데려갔다. 하지수는 체력이 괜찮았다. 송승우과 함께 오랫동안 걸었다. 송승우는 역사에 대해 잘 알고 있었고 두 사람은 고대 인들이 남긴 지혜를 감상하며 하지수는 송승우의 설명을 들었다. 가이드보다 훨씬 재미있었다. “우리도 인증샷 찍자.”송승우가 말했다. “네?” 송승우는 스마트폰을 꺼내 셀카 모드로 전환했다. “지수야, 조금 더 들어와야 찍혀.” 하지수는 잠시 망설이다가 송승우의 카메라에 나왔다. 하지만 거리를 두기로 했다. “웃어봐.”송승우가 말했다. “웃으면 안 예뻐요.”하지수가 거부했다. “말도 안 돼 너 웃으면 제일 예뻐.”송승우는
“가식 떨지 마!”송문수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수는 송문수의 분노가 느껴졌다. 그녀는 송문수를 바라보며 눈가가 붉어졌다. 그녀는 정말로 호의로 말했다.“빨리 나가. 내 잠 방해하지 마!” 하지수는 입술을 깨물며 더 이상 말하지 않고 돌려 나갔다. 그녀는 원래 호텔 고객 서비스에 전화를 걸어 아침을 준비해 주려고 했지만 그럴 필요가 없겠다고 생각했다. 송문수는 그런 것을 신경 쓰지 않을 것이라고 여겼다. 아마도 하지수가 그를 괴롭히려고 일부러 전화한 것으로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수가 나가자 송문수는 화난 기색으로 소파에서 벌떡 일어났다.하지수에게 깨어난 기분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 그녀가 전화를 받는 소리를 듣고 송승우가 전화한 것임을 눈치챘다. 어젯밤 송승우가 전화를 걸어 오늘 하지수와 함께 서울을 구경하자고 했을 때 그는 아무 생각 없이 거절했다. 그는 하도경과 약속이 있다고 했다. 사실 본능적으로 거부한 것이었다. 송승우는 송문수가 안 가면 자기가 하지수와 놀러 가겠다고 말했다.송문수는 상관없다고 대답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송승우는 그에게 알리기 위해서만 말한 것 같고 하지수와의 관계 때문에 그에게 체면을 세워주려 한 것일지도 모른다. 체면을 참 중시하는구나!송문수는 소파에서 내려와 침대로 갔다. 하지수는 어떻게 사귀던 연인과 비밀 데이트를 할 수 있는데 자기는 소파에서 자야만 하는 것인가. 송문수는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큰 침대 위에 하지수의 냄새가 아직도 남아 있는 듯했다. 송문수는 더욱 짜증이 났다. 원래 그는 하지수가 거절할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하고 있었지만 하지수가 최근 보여준 호의에 변화를 기대하고 착각한 것이었다.어쩌면 진짜 감정이 생겼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결국 송문수는 스스로를 모욕한 것이었다. 하지수는 어릴 적부터 송승우를 좋아했으니 그녀가 자신을 사랑할 리가 없다!하지수는 급히 호텔 출입구로 나갔다.그녀는 지각하는 사람이 아니었고 다른 사람
송문수가 욕실에서 나왔다. 송문수의 몸에서 은은한 샴푸 향이 남아 있는 듯했다. 하지수는 살짝 긴장했다. 결혼한 지 이렇게 오래되었지만 두 사람이 함께 침대에 누운 적은 단 한 번이었다. 그때는 매우 불쾌한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그 후 두 사람 사이의 친밀한 접촉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이불 속에 누운 하지수는 몸이 경직되어 숨조차 내쉬기 어려웠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그녀는 그 향기가 점점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여전히 송문수가 침대에 오지 않는 것을 느끼며 방의 조명이 어두워진 것 같았다. 하지수는 몰래 눈을 뜨고 주위를 조심스럽게 둘러보았다. 그때 송문수가 방금 자신이 누워 있던 의자에 몸을 눕히는 모습을 보았다. 송문수는 애초에 하지수와 같은 침대에서 잘 생각이 전혀 없는 듯했다. 그래서 하지수를 침대에 옮긴 이유는 단순히 그녀가 그가 자고 싶었던 자리를 차지했기 때문이었다. 남자답게 예의를 지키려는 것 같았다.송문수가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니지만 그녀를 소파에서 자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하지수의 마음은 순식간에 식어버렸다. 방금 생긴 작은 기대는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그녀는 오해했을 뿐이었다. 그날 밤 하지수는 불안한 잠을 잤다.사실 송문수 역시 잠을 이루지 못했다. 송문수에게는 큰 키와 체격 때문에 소파가 고역이었다.그는 몸을 뒤척이는 것도 두려웠고, 떨어질까 봐 불안했다. 게다가 다리를 펼 수도 없어 쭈그려 웅크리고 자야 해서 매우 불편했다. 더 중요한 것은 하지수가 큰 침대에서 편하게 자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하지수가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송문수의 긴장감이 커졌다. 하도경 말이 맞아, 그렇게 많은 여자와 사귀던 남자가 정말 달라졌네! 다음 날. 하지수는 핸드폰 벨 소리에 잠에서 깼다. 그녀는 서둘러 음소거를 해제한 뒤 송승우의 전화라는 것을 확인하고 잠시 망설였다. 송문수 역시 전화 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그는 밤새 거의 잠을 이루지 못했다. 눈을 감자마자 전화 소리에 깨
하지수는 송승우가 보낸 메시지를 보고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결국 그녀는 답장을 보냈다.“지나갔으면 지나가야지.”하지수는 그와 다시 시작할 생각은 없었다.송승우는 더 이상 메시지를 보내지 않았다.하지수도 핸드폰을 내려놓았다.그녀는 의자에 몸을 기대고 창밖을 바라보았다.사실 조금 피곤했지만 침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그저 마음이 허전해지는 느낌으로 누워 있었다.송문수가 방에 들어섰을 때, 하지수는 의자에 앉아 있었다.이 여자는 도대체 자기 관리를 어떻게 하는 거지?오후에도 소파에서 두 개의 담요조차 덮지 않고 자고 있었고, 지금도 핸드폰을 껴안고 잠이 들었다.핸드폰이 이불이 되냐?송문수는 짜증이 났다. 그는 큰 몸을 움직여 하지수를 안았다.하지수는 주위의 움직임을 느껴 이마를 찡그리며 불편하게 몸을 비틀었다.송문수는 순간 가슴이 멈췄다.그는 하지수를 바라보며 긴장했다. 하지수가 곧 깨어날 것 같은 모습이었다.왜 그녀를 안았는지 모르겠다. 화가 나서 그랬나?이때야 하지수를 안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수가 깨어나기라도 한다면... 송문수는 그 자리에 그대로 서서 마치 돌처럼 굳어버렸다. 다음 순간, 하지수가 그의 품에서 편안한 자세를 찾은 뒤 다시 잠이 든 것을 보았다. 그녀가 이렇게 고요한 모습으로 자는 것을 보고 송문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마음속에 혼잣말이 흘렀다. 뭐야, 대변호사라면서 경계심이 높다고?잠들어서 팔려 가고도 모르겠지. 송문수는 하지수를 안아 침대로 옮겨 이불을 덮어주었다. 이 모든 것을 끝낸 후 그는 도둑질이라도 한 듯 불안한 마음으로 깊이 숨을 내쉬었다. 이럴 수가!불안해할 이유가 없었는데...하지수에게는 단지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그렇게 한 것이고, 누구에게라도 똑같이 했을 것이다. 송문수는 돌아서서 욕실로 들어갔다. 그가 떠나자 하지수는 눈을 뜨고 그의 뒷모습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사실 그녀는 방금 깨어났었다. 순간적으로 공중에 떠오르는
송승우는 아무 소리도 없이 조용히 떠났다.당시 송씨 가문 사람들은 매우 다급해졌다. 결혼식 준비는 모두 끝났는데 신랑이 갑자기 자취를 감췄으니, 소문이라도 나면 송씨 가문의 체면이 손상될 상황이었다. 그래서 송씨 가문은 급하게 송문수가 하지수와 결혼하도록 결정했다. 송씨 가문에서는 물론 그녀의 의사를 물었다. 그러나 하지수는 본래 기댈 곳이 없는 처지였기에 별다른 선택권이 없었고 송문수가 자신을 결혼 상대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으로 생각해 결국 승낙했다. 그런데 그녀의 예상과는 달리 송문수 역시 승낙한 것이었다. 하지수는 송씨 가문 부모가 어떤 방법을 써서 송문수에게 강요한 것이라 생각했지만 어쨌든 그들은 결국 결혼식을 올렸다. 비록 매우 급작스럽고 어설픈 결혼이었지만 사회 상류층에서는 이 일은 두고두고 웃음거리가 되었다. 결혼 후 첫날 밤, 그녀는 송문수를 거절했다. 그녀는 그렇게 쉽게 마음을 열지 않았기 때문에 결혼식이 어수선했어도 첫 번째 밤만큼은 소중하게 생각하고 싶었다. 물론 송문수와의 결혼을 받아들였지만 감정을 천천히 키워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은 정말 어려웠다. 송문수는 결혼 후 더욱 자유분방하게 행동하며 최소한의 배려도 없이 외도하곤 했다. 둘 사이의 거리는 점점 멀어져 갔고 하지수는 매일 그가 일으킨 문제들을 수습할 뿐 감정적으로는 거의 진전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송승우가 한 번 돌아왔다. 그제야 하지수는 알게 되었다. 송승우가 떠날 당시 아무 말도 없이 사라진 이유는 긴급한 기밀 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하게 되어서였고 송씨 가문 사람들조차 그를 찾을 수 없었다. 송씨 가문은 한때 그가 납치된 것이 아닌지 의심할 정도였다. 한 달 뒤에서야 송승우가 가족에게 무사하다는 소식을 전했지만, 여전히 갑작스러운 이별에 대한 설명은 하지 않았다. 1년 후, 연구가 끝난 뒤에야 그는 가족들에게 모든 사정을 설명했다. 하지만 그때는 하지수가 이미 송문수와 결혼한 지 1년이 지난 후였고 모
“너도 같이 갈래?”하도경이 송문수에게 물었다. 송문수는 그를 무시하고 오고 가는 손님들과 잔을 들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하도경은 어이없게 웃음을 지었다. 정말 잘 굴리네.얼마나 더 연기할 수 있는지 두고 보자. 하지수는 방에 돌아와 씻고 화장을 지운 후 호텔에서 준비한 편안한 가운으로 갈아입고 호텔의 고급스러운 침대에 누웠다. 분명히 피곤한데도 정작 잠이 오지 않았다. 오늘 밤 송문수는 어디서 머물게 될지 궁금했다. 호텔에 체크인할 때 숙박 정보를 확인해 보니 그들의 이름이 함께 등록되어 있었다. 그러니 같은 방에 머물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가 언제쯤 돌아올까? 하지수의 마음에는 잔잔한 떨림이 일었다. 결국 잠을 이루지 못하고 일어나 물 한 잔을 마신 후, 호텔의 통유리창 앞 의자에 앉아 서울의 아름다운 야경을 바라보았다. 역시나 나라의 중심 도시답게 네온사인이 반짝이며 눈부셨다. 하지수는 이 야경에 홀린 듯한 기분이 들었다. 휴대폰에서 카톡 알림이 울렸다. 그녀는 화면을 확인하며 잠시 멈췄다. 놀랍게도 송승우가 그녀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지수야, 서울에 있단 소식 들었어.” “네. 이연 언니가 결혼해서 서울에 왔어요.” “언제 돌아가?”“아마 내일쯤 돌아갈 것 같아요. 오늘은 너무 늦었고 이연이랑 육현경은 자기들만 신혼여행 떠나고 우리한테 잔치 뒷정리를 맡기고 갔어요.”하지수는 송승우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송승우는 웃는 이모티콘을 몇 개 보냈다.“나도 뉴스 봤어. 참 신기하더라.”“그나저나 내일 돌아가기 전에 내가 내일 시간이 좀 나니? 여기까지 온 김에 서울 구경할래? ” 송승우는 현재 서울에 발령받아 일하고 있고 1년이 넘게 여기서 생활하고 있었다. 이전에는 장안시에서 근무했지만 탁월한 능력 덕분에 본부로 전근되어 지금은 연구소에서 핵심 연구원으로 활약 중이다. 송씨 가문의 부모님은 항상 송승우를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국가에 공헌하는 사람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