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현경이 소파에서 일어나 외부 발코니로 걸어갔다.분명히 본인이 거절한 일인데 가장 힘든 사람은 역시 그 자신이었다.며칠 후.육현경과 소이연의 결혼식이 서울에서 정식으로 열렸다.소이연은 천씨 가문의 저택에서 출가했고 육현경은 서울에 새로 구입한 신혼집에서 그녀를 맞이했다.하루 전 육씨 가문 식구들은 육현경의 별장에 머물렀다.예수진과 계지원도 함께 있었다.하지수는 천씨 가문의 저택과 멀지 않은 호텔에 머물렀다.그 외 장안시에서 온 친척들과 친구들도 각자 호텔에 배정되었다.소이연이 하품하며 하지수와 예수진이 아침 일찍 천씨 가문에 온 것을 보았다.그들은 도우미의 안내로 방으로 들어왔다.예수진은 소이연을 보자마자 참지 못하고 폭풍처럼 말하기 시작했다.“천씨 가문이 대단한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대단할 줄은 몰랐어요. 이 고풍스러운 저택 너무 크잖아요. 여기서 길을 잃을 것 같아요. 이건 거의 궁전이에요. 옛날이라면 넌 최소 공주나 귀족이었을 거예요. 분명히 왕족과 다름없죠.”사실 예수진의 말은 과장이 아니었다.천씨 가문의 조상은 실제로 왕족이었고 그 뿌리는 지금까지도 깊었다. 4대 가문 중 가장 으뜸가는 가문으로서 그 명성은 헛된 것이 아니었다.천씨 가문의 저택은 정말 유서가 깊었으며 서울과 같은 금싸라기 같은 도심 지역에서 매년 확장되고 있었다. 현재 천씨 가문의 저택은 거의 거리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지금 예수진이 보고 있는 것은 천씨 가문의 일부에 불과했고 더 많은 부분은 지역 관광 명소로 개방되었다. 사실상 관광객이 입장료를 내고 들어갈 수 있는 그 장소도 천씨 가문의 일부였다.“언니가 이렇게 고귀한 출신이라니 너무 영광스러워요.”예수진은 감탄하며 갑자기 분노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천씨 가문에 좀 더 일찍 돌아왔으면 좋았을 텐데... 그동안 언니를 괴롭히려던 사람들, 이복 여동생이니, 심씨 가문의 그 여자애니, 분명 두 번 다시 널 감히 무시할 수 없을 거예요.”소이연은 예수진의 말에 웃음을 터뜨렸다.“천씨 가문이
“우리 오빠는 정말 온 세상에 자랑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아요. 이렇게 아름다운 아내를 얻었다고 말이에요. 장안시에서도 이미 충분히 화려했는데 서울에 오니 정말 압권이네. 앞으로 누가 성대한 결혼식이라고 해도 우리 오빠의 기준을 참고해야 할 걸요.”예수진이 자랑스러워하며 말했다.“사실 이건 꼭 육현경이 원한 게 아니에요.”소이연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뭐라고요?”예수진이 의아하게 물었다.“천씨 가문과도 관련이 있어요. 천씨 가문 허락 없이 나와 육현경이 결혼했기 때문에 이번 결혼식에서 내가 천씨 가문의 사람임을 공개하기로 해서 이렇게 성대한 결혼식을 하게 된 거예요.”소이연이 설명했다.“그건 핑계일 뿐이에요.”예수진이 확신하며 말했다.“우리 오빠는 분명히 온 세상에 언니를 자랑하고 싶어서 이러는 거예요. 이렇게 큰 판을 벌여서 널 데려가면 네가 도망칠 일은 없으니까요. 하하.”소이연도 부정하지 않았다.이런 일은 육현경이라면 충분히 할 만한 일이었다.“난 우리 오빠가 더는 무슨 서프라이즈를 줄 수 없을 거로 생각했는데 장안시의 결혼식만으로도 충분히 멋졌으니까요. 그런데 여기서도 이렇게 놀라게 하다니 우리 오빠 정말 대단해요.”예수진이 자랑스러워했다.소이연은 무언가 반박하려다 말았다.그녀가 거울 속의 자신을 보며 무심코 옆에 앉아 있는 여전히 지나치게 조용한 하지수를 보았다. 하지수는 변호사라서 항상 신중하고 차분했지만 오늘은 평소보다 더 조용했다.보통은 예수진의 활기에 그녀도 영향을 받기 마련인데 오늘은 지나치게 차분했다.“지수 씨.”소이연이 하지수를 불렀다.하지수가 잠시 멍하니 있다가 천천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정말 북적거리네요.”그녀가 말하는 건 소이연과 육현경의 결혼식이었다.“송문수는 서울에 왔어요?”소이연이 아무렇지 않게 물었다.“모르겠어요.”하지수가 고개를 저었다. 하지수는 어제 예수진과 함께 왔다. 오기 전에 송문수에게 메시지를 보냈지만 답장을 받지 못했다. 그래서 송문수가 올지 여부는 알
육현경은 한쪽 무릎을 꿇고 손에 든 꽃다발을 소이연 앞에 내밀었다. 소이연은 맑은 웃음을 지었다. 하얀 혼례복이 그녀를 꽃처럼 화사하고 놀랄 만큼 아름답게 보이게 했다. “이연아, 널 데리러 왔어.”육현경이 말했다.목소리는 낮고 매력적이었다. 주변 여러 대의 카메라가 그들의 모든 표정을 놓치지 않으려는 듯 찍고 있었다. “응, 계속 기다리고 있었어.”소이연은 다정하게 육현경을 바라보았다. 이번에는 정말로 그를 기다리고 있던 것이다. 지난번은 우연이라고 할 수 있었다. “키스해! 키스해!”옆에서 예수진이 크게 외쳤다. 다른 사람들도 곧바로 장단을 맞추었다. 소이연은 육현경을 바라보았고 육현경 역시 다정하게 소이연을 바라보았다. 지난번 장안시에서의 결혼식에서는 두 사람 모두 서로의 마음을 완전히 확인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래서 그 결혼식에는 어색함과 거리감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육현경이 소이연의 얼굴을 감싸고 주위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깊은 키스를 했다. “와!” 주위에서 흥분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 모두가 두 사람의 뜨거운 키스를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었다. 이런 장면은 보통 감독도 찍어낼 수 없는 아름답고 애틋한 장면이었다. 지금 라이브 방송 채팅창에는 돈도 안 내고 이런 걸 볼 수 있다니 하는 말들이 가득했다. 키스는 꽤 오래 지속되었다. 육현경은 아쉬운 듯 소이연의 입술을 떼었다. 붉어진 그녀의 볼과 촉촉한 입술을 바라보았다. 정말로 키스를 멈추고 싶지 않았다. 전혀 충분하지 않았다. 그 순간 육현경은 참지 못하고 다시 고개를 숙였다. “현경아, 시간 좀 신경 써.” 옆에서 하도경이 시기를 놓치지 않고 말했다. 소이연은 잠시 멍해졌다가 서둘러 육현경의 키스에서 벗어났다. 분명히 며칠 동안 그녀의 접근을 무시했던 육현경이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는 마치 갈망하는 듯한 태도였다. 이 남자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결혼식 현장에는 기자들이 많이 몰려들었다. 실내뿐만 아니라 실외에도 가득했다. 소이연과 육현경이 도착하자 장내가 술렁거렸다. 원래도 인터뷰를 위한 자리가 마련되어 있었다. 두 사람은 기자들 사이에 서서 질문에 답하고 있었다. “육 대표님, 지난번 장안시에서 화제가 된 결혼식의 신부가 바로 소이연 씨 맞죠? 이번에 다시 결혼식을 올리신 이유가 소이연 씨의 아쉬움을 달래기 위함인가요?” “소이연 씨, 육 대표님과 오랜 세월 얽히셨는데 왜 지금에서야 결혼을 결심하게 되셨나요? 두 분 사이에 오해가 있어 헤어진 건가요?” “소이연 씨, 당신은 천씨 가문의 일원인데 왜 그동안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계셨나요? 무언가 이유가 있었던 건가요?” “육 대표님...”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육현경은 차분하고 냉철하게 말했다.“여러분 서두르지 마세요. 오늘 인터뷰 시간을 충분히 준비했고 모든 질문에 하나하나 답변드리겠습니다. 한 번에 여러 사람이 질문하시면 누구의 질문을 먼저 답해야 할지 혼란스러우니 차례차례 질문 부탁드립니다.” 육현경이 말하자 기자석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어떤 사람들은 이처럼 능숙하게 상황을 통제할 줄 알았다. 잠시 후 한 기자가 질문했다.“육 대표님, 소이연 씨를 오랜 세월 사랑하셨는데 그동안 어떤 일이 있었길래 이제야 다시 이어지신 건가요?” “중간에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고 놀라울 정도로 많은 굴곡이 있었습니다. 물론 여러분께 말씀드리기를 꺼리는 것은 아니지만 그 이야기는 꽤 복잡해요. 간단히 말하자면 서로 사랑하면서도 계속 엇갈렸던 거죠.” 육현경은 뒤돌아 소이연을 바라보았다. 소이연도 그를 바라보며 서로 애틋한 눈빛을 주고받았다. 그 깊은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운이 좋게도 많은 기회를 놓친 후에도 다시 시작할 수 있게 되었죠. 앞으로 어떤 일이 생기더라도 다시는 이연의 손을 놓지 않을 겁니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는 듯하면서도 사실은 고백이었다. “소이연 씨, 천씨
“곧 만날 거야.”소이연이 상기시켰다.“응, 하지만 그냥...”“응?”“방금 나를 사랑한다고 말했어.”“...”“나도 그래.”육현경이 말했다. 자기도 역시 그녀를 사랑한다고.“알고 있어.”소이연이 평온하게 보였다. 사실 마음속이 조금씩 출렁이고 있었다.“이따 보자.”육현경은 아쉬운 마음으로 소이연의 손을 놓았다.소이연이 돌아서서 떠나는 순간 갑자기 뒤돌아 육현경의 목을 감싸안고 발돋움하여 그의 입술에 키스를 남겼다. 육현경은 잠시 멍하니 있었다.소이연이 말했다. “난 도망가지 않아. 육현경 이번 생에는 다시는 떠나지 않을 거야.”“응.”육현경이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두 사람은 헤어졌다.소이연이 옷장에 들어서자 예수진이 그녀를 놀려댔다.“방금 다 봤어요.”예수진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소이연은 얼굴이 붉어졌다.“우리 오빠 지금쯤 옷장에서 웃고 있을걸요? 얼굴에 웃음이 안 사라질 거예요.”소이연도 충분히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드디어 너희가 함께하게 됐네요.”예수진이 진심으로 말했다. “이번 생에 언니가 육현경과 함께하지 않았다면 나까지 후회했을 거예요.”사실 그녀도 후회했을 것이다. 꽤 아쉬웠겠지.“이제 나랑 이연 언니는 안정된 것 같아요.”예수진이 말했다.그러고는 하지수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제 지수만 남았네요.”지수는 한쪽에 앉아 조용히 있다가 자신의 이름을 듣고서야 반응했다.그녀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내가 뭐?”“네 결혼은 순탄하지 않아.”예수진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소이연도 지수에게 시선을 돌렸다.예수진은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하지만 사실 다른 사람의 감정을 잘 느끼는 편이었다. 다만 감정적으로 드러내는 걸 좋아하지 않았을 뿐이다.“난 괜찮아.”하지수가 미소 지었다.“너 송문수와 잘 지낸다고 말하고 싶은 거야?”예수진이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내 말은 내 결혼이 순탄치 않았던 건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니까 익숙해졌어.”“어떻게 익숙해질 수
“사실 송문수도 많이 변했어...”하지수가 말했다.“출소 후에는 여자들과 거의 어울리지 않더라고...”“그래서 이제 괜찮다고 생각하는 거야?”예수진이 어이없어하며 물었다.“그건 아니야. 다만...”“뭐가 다만이야?”예수진이 물었다.하지수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 그녀와 송문수 사이에는 지난 몇 년간 많은 일이 있었다. 사실 송문수을 감옥에 보낸 건 그녀 자신이었다...“시간이 다 됐습니다. 신부님 준비되셨나요?”직원이 문밖에서 큰 소리로 말했다.예수진은 말을 멈추고 한숨을 쉬며 말했다.“나중에 다시 이야기하자.”일행은 밖으로 나갔다.한국식 결혼식은 전에 했던 서양식 결혼식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소이연이 밖으로 나가자마자 육현경이 보였다. 두 사람은 호텔의 하얀 카펫 앞에 서 있었고 주위에는 하객들이 앉아 있었다. 호텔은 고풍스러운 한국식 건축 양식으로 꾸며져 있었고 곳곳에 이쁜 장식들이 가득했다.시각이 되자 조명이 소이연과 육현경을 비췄다.소이연은 전통 혼례복을 입고 있었는데 서양식 웨딩드레스의 아름다움과는 또 다른 장엄하고 우아한 아름다움이 있었다. 그녀는 마치 모든 것을 압도하는 듯한 아름다움으로 빛을 발했다.옆에 있던 예수진이 감탄을 멈추지 않았다.“이연 언니는 정말 아름다워. 정말 아름다워.” 하지수가 옆에서 맞장구쳤다.“맞아. 그냥 아름답기만 한 게 아니라 정말 행복해 보여.”행복이 부러울 만큼 가득 찬 모습이었다. 그녀는 두 사람에게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한 사람이 얼마나 노력해야 이런 행복을 얻을 수 있을까.송문수과 하도경도 옆에 있었다. 그들은 언제나처럼 들러리 역할을 맡았다.하도경이 옆에서 불평했다.“이러다 아내는커녕 혼자 늙어 죽겠어. 내 인생을 현경한테 다 바쳤다니까.”송문수가 옆에서 웃었다.“넌 이미 아내가 있는 사람이라 몇 번이고 들러리를 설 수 있지. 난 아직 혼자라서...”“육가희가 너를 계속 기다리고 있잖아?”송문수가 말했다. “너무 집착하지 마. 이
그분이 카메라 앞에서 연기를 할 리가 없다.그의 신분 지위 나이를 생각해보면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설명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하지만 이 순간 소이연을 향한 그의 애정 어린 눈빛은 전혀 숨김이 없었다. 이제 천제진이 소이연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고 한다면 그건 오히려 관심을 끌기 위한 말일 뿐이었다.“두 분 맞절 올리시겠습니다.” 사회자가 크게 외쳤다. 소이연과 육현경은 서로를 바라보며 미소 짓고 눈에는 눈물이 맺혔다. 감동, 행복, 기쁨, 만족... 소이연은 이 순간의 감정을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그녀는 지금 이 순간이 바로 앞으로의 여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두 사람은 동시에 허리를 숙였다. 서로의 머리가 맞닿았다. 현장에는 뜨거운 박수가 울려 퍼졌다. 감동적인 장면이 전혀 연출되지 않았음에도 단순히 서로를 향해 90도로 인사하는 순간이 사람들의 마음을 울렸다. 심지어 눈물이 가득 차올랐다. “이 사람들 두 번째 결혼식인데, 왜 이렇게 눈물이 나는 거지?” 예수진은 코를 훌쩍였다. 하지수의 눈가도 붉어졌다. 아름다운 사랑은 단순히 동경하게 할 뿐만 아니라 진정으로 사람을 감동하게 했다. “이 두 사람이 나중에라도 이혼하면 난 더는 사랑을 믿지 않을 거야.” 예수진이 목이 메어 말했다. 하지수는 웃으며 말했다.“그럼, 너와 계지원이 믿음직하지 않니?” “비교하자면 나는 소이연과 육현경을 더 믿어.” “계 감독이 들으면 마음이 아플 거야.” “어차피 지금 없잖아.” 예수진은 장난스럽게 웃으며 분위기를 풀었다. “하지만 다시 비교해 보면 너와 송문수는 더 못 믿겠어. ” 예수진은 하지수를 향해 말했다.하지수는 입을 다물었다. 좋은 분위기가 예수진 때문에 망가졌다. 송문수가 이쪽을 한번 바라보았다. 거리는 가깝지 않았지만 예수진의 목소리가 꽤 컸다. “너와 송문수는 빨리 깨끗이 정리하는 게 좋겠다.” 예수진은 진지하게 말했다. 하지수는 대
예수진은 스태프의 말을 들으며 황당했다.뭐라고 했더라? 신랑과 신부가 신혼여행을 떠났다고? 이렇게 많은 하객들을 남겨두고 말이야? 그리고 자기들에게 대신 손님들을 대접하라고?이 상황은 정말 역대급이다.“고생 많으십니다.”“네 분 이쪽으로 오세요. 이미 준비해 둔 술잔과 차가 있습니다.”스태프가 말했다.“...”...소이연과 육현경은 예식이 끝난 후 호텔을 바로 떠났다.소이연은 좀 당황했다. 그녀는 계속 육현경에게 이끌려 호텔 정문을 나왔다.문 앞에는 차가 대기 중이었다.육현경이 그녀의 차 문을 열어주며 복잡한 결혼 예복을 정리해 준 후 그녀를 차에 태웠다. 자신도 옆에 타더니 차는 그대로 출발했다.소이연은 차가 호텔을 멀어지는 걸 그저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지금 어디 가는 거야?”한참 후에야 소이연이 상황을 파악하고 물었다. 식사는 하지 않는 건가?이렇게 떠나버리면 저 많은 하객들은 어떻게 되는 거지?“신혼여행 가는 거야.”“뭐라고?”소이연이 육현경을 바라보았다.“신혼여행.” “지금? 이런 차림으로? 결혼식도 안 끝났는데 우리가 가버리겠다고?.”소이연은 믿기지 않았다. 육현경이 이렇게 충동적인 사람은 아닌데. 이런 일을 하면 생길 후폭풍을 생각이나 해봤을까?그녀는 상상이 가지 않았다.“걱정하지 마. 이미 너희 외할아버지께 미리 말씀드렸어.”“외할아버지께서 동의하셨어?”소이연은 놀랐다. 예절을 중시하는 천제진이 이렇게 비정상적인 일을 허락하다니.“동의하셨어.”육현경이 자랑스럽게 말했다.“도대체 뭐라고 말씀드린 거야?”“우리 결혼한 지 꽤 됐는데 아직 신혼을 제대로 못 즐겼다고 말씀드렸어.”“...”“너희 외할아버지께서도 남자라 이해하시더라고.”“...”“그리고 네 오빠한테도 얘기했어.”육현경이 말했다."천씨 가문 쪽 친척들은 네 오빠가 알아서 돌봐줄 테니 걱정 말고 신혼여행 다녀오라고 하셨어.”“혹시 오빠의 무슨 약점이라도 잡힌 거야?”소이연은 의심스러웠다.“아니야
‘내가 자기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는 건가?’“승우 씨, 사과 따위 이제 필요 없어요. 지금 제가 바라는 건 아무 탈 없이 우리 사이의 관계를 끝내는 거예요. 승우 씨는 문수 씨 형이잖아요. 게다가 저도 어릴 때부터 송씨 가문에서 자란 사람이고요. 그러니까 우리 그냥 친척 같은 관계로 돌아갔으면 좋겠어요.”하지수는 인내심을 가지고 진지하게 말했다.송승우는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며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하지수는 더 이상 그와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 망상에 빠진 사람은 무슨 말을 하든 헤어 나올 수 없다고 생각했기에 그녀는 자신의 마음을 표현했으니 그걸로 됐다고 생각했다.하지수는 뒤를 돌아 송문수 쪽으로 다가가려 했다. 늦은 시간이었고 그녀도 여전히 많이 피곤했다. 송문수랑 같이 집으로 가서 자고 싶었다.크레지가 아직 오지 않은 이상, 기술 투자 계약서에 사인하지 않은 이상 방심할 수는 없었다. 그들은 짬짬이 시간을 내서 잠을 잘 수밖에 없었다.그런데 막 돌아서려는 순간, 그녀의 손은 또다시 송승우에 의해 붙잡혔다.하지수가 아무리 팔을 흔들어도 벗어날 수 없었다.송문수는 차가운 눈빛으로 송승우의 행동을 지켜보며 주먹을 꽉 움켜잡았다.그가 앞으로 다가가 하지수를 데려오려던 순간, 송승우가 갑자기 말했다.“지수 씨, 방금 당신의 행동은 모든 걸 말해줬어요!”“무슨 행동이요?”하지수는 이해할 수 없었다.“방금 제가 불렀을 때, 제 쪽으로 다가왔잖아요. 그게 지수 씨 마음속에 있는 진심이에요. 더 이상 숨기지 말고 저한테로 오세요. 하지수 씨, 제가 잘 해줄게요. 지수 씨를 혼자 두는 일은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을 거예요. 제가 맹세할게요...”“아니요.”하지수는 단칼에 거절해 버렸다.하지수를 바라보는 송승우의 눈빛은 분노로 가득 찼다.“승우 씨가 불었을 때 따라간 건 무의식적으로 간 거예요. 잠에서 덜 깬 상태라서 누가 불렀어도 갔을 거예요. 승우 씨인 줄도 몰랐어요. 하지만 인정할 건 인정할게요. 낯선 목
송문수는 하지수가 일어나서 송승우 쪽으로 걸어가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할 뿐이었다.송승우는 입가에 미소를 띠며 생각했다.‘그래, 지수 씨도 아직 날 신경 쓰고 있다니까. 숨기려 해도 어떻게 숨기겠어? 이런 상태에서야 비로소 진심이 드러나는 거지.’송문수는 멀어져 가는 하지수를 잡으려 손을 뻗었지만 그녀의 옷자락에 손이 닿았을 때 살짝 멈칫했다. 하지수를 강제로 붙잡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사실 그는 항상 하지수의 선택을 존중해 왔다. 지금까지 변함없이 말이다.하지수는 송승우 앞으로 걸어갔고 송승우가 먼저 손을 뻗더니 그녀를 끌어당기려 했다.그러나 그가 손을 뻗자 하지수가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승우 씨?”그녀는 그제야 앞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깨달았다.조금 전까지 어지럽고 혼란스러웠던 상황이 이제와사 분명해졌다.그녀는 자신이 언제 잠에 들었는지도 몰랐다. 그저 너무 피곤해서 머리가 흐릿할 뿐이었다.“너무 늦었어요. 제가 데려다줄게요.”송승우가 그녀를 끌고 나가려고 하자 하지수는 급히 그의 손을 쳐내며 말했다.그러자 송승우는 눈살을 찌푸렸다.“아까는 잠에서 덜 깨서 그랬어요. 전 문수 씨랑 같이 갈 거예요.”“뭐라고요?”송승우는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언제까지 연기할 거예요?”“네?”하지수는 눈살을 찌푸리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송승우가 왜 갑자기 화를 내는지 알 수 없었다.“저를 놀리는 게 재밌으세요?”송승우가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저... 저는 그런 게 아니라...”하지수는 당황해하며 말을 더듬었다.그러자 송승우가 입을 열었다.“알겠어요. 제가 잘못한 걸로 하죠.”그가 갑작스레 사과를 하자 하지수는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그녀는 송승우가 왜 갑자기 사과를 한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왜 사과를 하는 거야?’“미안했어요. 어쩔 수 없이 떠난 거라고는 하지만 우리 결혼식에도 참석하지 못했잖아요. 결혼식장에 지수 씨 혼자 남겨두고 간 건 제 잘못이에요. 미안해요.”하지수는 그제야 무슨 말인지 이해했
하지수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심장은 여전히 빨리 뛰고 있었다.그녀는 전혀 말을 듣지 않는 심장을 진정시키려 애썼다. 만약 누군가 들어오지 않았더라면 이 어색한 상황이 얼마나 계속될지 알 수 없었다.‘문수 씨도 부끄러워하는 건가?’하지수는 입술을 꽉 깨물며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려 애썼다. 갑자기 웃음이 터져 나올까 봐 걱정이었다.하지수는 소파에 앉아 몰래 송문수를 쳐다보았다.그는 그저 고위직 직원의 얘기를 듣고만 있을 뿐, 전혀 불편해 보이지 않았다.그녀는 깊게 숨을 쉬었다.‘단지 어색해서 그런 건가?’송문수는 언제나 체면을 중시하는 사람이었으니 말이다.‘해명하려 하지 않는 것도 결국 체면을 세우려고 그러는 건가?’하지수는 너무 많은 기대를 해선 안 된다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다잡았다....크레지를 맞이하기 위해 모든 관련 부서가 계속해서 야근을 하고 있었다.송문수와 하지수 역시 마찬가지였다.그들은 끊임없이 회의를 열고 논의하며 최대한의 성의를 보이기 위해 애썼다.새벽 2시가 되었지만 송문수는 아직 퇴근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방금까지도 각 부서와 회의를 하면서 협력 계획과 판매 계획을 다시 수정하고 보완했다.회의가 끝난 후에도 송문수는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는 계속 바쁘게 일하고 있었다.송문수는 그제야 그의 확인이 필요한 문서들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무슨 서류든 제대로 보지 않고 사인을 해버렸었다. 하지만 이젠 점점 더 신중해졌고 모든 서류를 꼼꼼히 확인하고 나서야 사인을 했다.그 덕에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고 오늘 하루 동안의 모든 서류를 처리하고 나서야 송문수는 퇴근을 하려고 하지수를 쳐다봤다. 그러자 그녀는 이미 소파에 기대어 잠들어 있는 것이었다.하지수는 잠이 많은 사람은 아니었다. 송문수의 기억 속에 하지수는 늘 자신보다 일찍 일어나는 사람이었고 절대 늦잠을 자지 않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소파에 기대어 잠들어 있었다.‘많이 피곤한 걸까?’자세히 생각해 보니 그들은 지난 일주일 동안 계속해서 야
송문수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크게 티가 나지는 않았지만 그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밝아졌다는 건 알 수 있었다.하지수는 송문수를 더 방해하지 않으려 했다. 송문수가 점점 더 발전하는 걸 보면서 하지수도 그를 더 지지해 주고 싶었고 송문수로 하여금 업무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돕고 싶었다.하지수는 옆에 있는 소파로 가서 노트북을 들고 업무를 처리하기 시작했다.그리고는 습관처럼 회사의 공식 채팅방에 들어갔다.그녀는 비록 알림을 꺼 놓았지만 회사의 공식 채팅방에 메시지가 있으면 항상 첫 번째로 확인하곤 했다.그런데 그때, 그룹 채팅에 있는 메시지를 본 하지수는 깜짝 놀랐다. 그녀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아마 이 상황을 믿기 어려워할 것이었다.송문수가 회사의 공식 채팅방에 ‘하지수’라는 이름을 여러 번 보낸 것이었다.하지수는 고개를 들어 송문수를 바라보았다.그는 진지하게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채팅방에는 여전히 ‘하지수’라는 이름이 올라오고 있었다.“문수 씨, 컴퓨터 바이러스에 걸린 거 아니야?”하지수가 물었다.“어?”송문수는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했다.하지수는 송문수 앞에 서서 그의 컴퓨터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화면에는 타자를 해놓고 아직 보내지 않은 ‘하지수’도 있었다.송문수도 그제야 자신이 채팅방에 ‘하지수’라는 이름을 여러 번 입력했다는 것을 깨달았다.그 자신도 놀란 듯했다. 그는 자신이 타자를 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의식하지 못했던 것이다.하지만 방금 그의 머릿속이 온통 하지수로 가득 찬 건 사실이었다.그때, 채팅방에서 누군가 메시지를 보냈다.[회장님 지금 하 매니저님한테 애교 부리는 거야? 그걸 실수로 단체 채팅방에 보낸 거고?]메시지는 보내지자마자 삭제되었고 밖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나도 잘못 보냈네!”그룹 채팅에 두 개의 삭제 기록이 나타났다.송문수는 멍하니 앉아 있다가 그제야 메시지를 삭제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그는 ‘하지수’라는 메시지들을 삭제하려 했지만 이미 메시지를 취소할 수 있는 시간이
송승우는 이를 꽉 악물었다. 그는 하지수를 절대로 포기할 수 없었다. 그는 하지수에게 송문수를 고른 게 얼마나 잘못된 선택이었는지 반드시 알게 해주겠다고 결심했다. 그녀로 하여금 후회하도록 만들겠다고 다짐했다....하지수는 송승우의 사무실을 떠나 바로 송문수의 사무실로 갔다.송문수는 업무에 몰두해 있었다.회사에 들어선 순간부터 그는 자유시간이 없었고 퇴근 후에도 여전히 업무와 관련된 일들을 처리하고 있었다.하지수는 송문수가 많이 변했다고 느꼈다. 그녀는 하느님도 부지런한 사람을 도울 거라 믿으며 송문수가 앞으로 큰 성과를 낼 것이라고 확신했다.“형이 뭐라고 했어?”송문수는 그녀를 한 번 쳐다보며 차갑게 물었다.“자기 개인 비서로 되어달라고 하더라고.”하지수는 송문수에게 숨기지 않고 말했다. 그녀는 더 이상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을 그에게 숨기고 싶지 않았다.송문수랑 같이 오랫동안 시간을 보내고 싶었기에 최대한 마음을 다할 생각이었다.송문수는 멈칫하더니 코웃음을 치더니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녀가 어떻게 대답했는지 알고 싶지 않아 하는 것 같았다. 어쩌면 하지수가 그 제안을 무조건 받아들였을 거라고 여겼는지도 모른다.‘지수가 형 요구를 거절한 적은 한 번도 없는데 이번에도 알겠다고 했겠지...’이렇게 생각한 송문수는 일에 더 집중하려 애썼다. 회사 일을 제대로 해내기로 결심한 이상 중간에 포기할 생각은 없었으니 말이다.“거절했어.”하지수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송문수는 가슴이 약간 두근거리는 걸 느꼈다.분명 그녀의 말에 설렌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겉으로 티 내지 않으려 했다.그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척 계속해서 서류를 보고 있었다.반면, 하지수는 송문수에게 그 어떤 반응도 기대하지 않았다. 어차피 송문수는 자기한테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저 자신의 결정을 그에게 알리고 싶었을 뿐이었다.“왜 거절했는데?”송문수가 차분하게 물었다.“문수 씨한테 내가 더 필요하다고 생각했으니까.”하지수는 웃으며
하지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송승우를 바라보았다.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말이다.어린 시절 그녀는 항상 송승우를 믿었고 그가 자기를 보호해 줄 거라 생각했었다. 송승우는 같은 또래 친구들보다 성숙하고 머리가 좋다고 생각했었다.하지만 순간, 그녀는 자신이 송승우에 대해 뭔가 오해를 하고 있었던 건 아닌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게다가 그가 지금 하는 행동이 너무 유치해서 하지수는 어떻게 거절해야 할지 몰랐다.그녀는 이해할 수 없었다.‘어떻게 이런 말을 그렇게 쉽게 할 수 있지?’송승우는 하지수와 송문수의 관계를 알고 있었다. 하지수가 몇 번이나 말했으니 모를 리 없었다. 지금은 송문수와 잘 지내고 있고 송승우와의 관계는 이미 끝난 거라고 말이다.그리고 송문수가 지금 송씨 그룹의 대리 회장직을 맡고 있다는 것도 분명 알고 있었다. 송문수의 결정이 회사의 발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도 말이다. 송문수한테 도움이 더 필요했고 송문수가 받는 스트레스가 더 많았다.‘생각이 없는 건가? 어쩌면 이렇게 이기적인 말을 할 수 있는 거지?’“왜요? 제가 무슨 어려운 부탁이라도 했나요?”송승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하지수를 바라보며 안색이 조금 어두워졌다.“승우 씨, 정말 제대로 일하려고 온 거 맞아요? 아니면 그냥 문수 씨를 못 믿어서 온 건가요? 문수 씨가 회사를 잘 관리할 수 없다고 생각해서 감시하러 온 거냐고요!”“당연히 일하러 온 거죠. 아니면 왜 연구소 일까지 내려놓고 회사로 왔겠어요! 그리고 또...”“아까 지수 씨가 그러셨잖아요. 송문수를 못 믿냐고요. 맞아요. 전 송문수 그 자식 못 믿어요. 송문수가 회사를 제대로 이끌 수 있을지 제가 어떻게 알아요? 성과를 하나 냈다고 교만해져서 마음대로 하려 할 겁니다.”“갑자기 드는 생각인데요. 승우 씨는 왜 그렇게 문수 씨 잘되는 꼴을 못 보는 거예요?”하지수는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그게 아니라면 왜 문수 씨를 그렇게 모욕하고 내 곁에서 떼어놓으려 하겠어...’하지수의 능력이 얼마나
짧은 시간이었기에 송문수가 회사의 대체적인 상황을 잘 파악한 것만으로 대단한 것이었다. 게다가 이는 단지 송문수에게 회사를 관리하는 재능이 있어서 해낸 것이라고 단정 지을 수도 없었다.송문수가 매일 얼마나 열심히 일하고 있는지 하지수는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항상 그는 조금이라도 여유가 생기면 회사를 어떻게 운영해야 하는지 연구하면서 시간을 보냈고 지어는 날마다 새벽까지 야근을 하다가 집에 돌아갔다. 게다가 차에서 보는 서류들도 모두 송씨 그룹과 관련된 문서였다.송문수는 원래 시간만 나면 게임을 하거나 먹고 자고 놀기만 했던 사람이었다. 얼마 안 되는 사이에 송문수는 정말로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된 것 같았다....송문수의 말대로 하지수는 다음 주에 회사로 찾아올 크레지를 위해 연관 업무에 대한 계획을 세웠다.송문수와 하지수가 일 처리를 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이사님들도 점점 두 사람을 인정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이 맡긴 업무에 대해 불평이나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고 바로 행동에 옮기기만 했다.그러면서 송문수와 하지수의 업무 부담도 줄어들었고 회사도 더 원활하게 운영되고 있었다.회의가 끝난 후, 하지수는 송문수를 따라 그의 사무실로 갔다.요즘 들어서 그녀는 송문수의 사무실에서 일을 하는 것에 익숙해졌던 것이다. 송문수는 자주 회사의 전문 용어나 이해할 수 없는 마케팅 계획에 대해 물었고 그녀는 언제 어디서든 그가 묻는 말에 답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두 사람은 서로의 사무실을 오가는 시간을 절약할 수 있었다.“지수 씨, 잠깐 제 사무실로 올 수 있으세요?”그때, 송승우가 갑자기 하지수를 불렀다.하지수는 발걸음을 멈추고 잠시 망설였다. 그녀는 송문수를 한 번 바라보았다.“네 마음대로 해.”송문수는 이렇게 말하고 큰 걸음으로 사무실을 떠났다. 질투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어 보이는 송문수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하지수는 속으로 약간 허탈감을 느꼈다.송문수가 많이 변한 건 사실이었지만 하지수에 대한 감정은 별로 진전이 없는 것 같았다. 물론 그녀도
회의실은 순식간에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그들은 혹시나 방금 들은 말이 착각이 아닐까 하는 두려워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한 채 그저 조용히 앉아 있었다.송승우는 믿을 수 없었다.‘어린 시절부터 장난만 치고 아무것도 해낸 적 없었던 송문수가 기술 투자를 따냈다고?’“제가 기술 투자를 따냈다고요. 다음 주 수요일쯤, 크레지 씨가 직접 회사로 와서 계약서에 사인하실 거라고 하셨어요.”송문수가 다시 한번 말했다. 이번에는 모든 사람이 그의 말을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정말인가요?”오 이사님이 가장 먼저 물었다. 이렇게 묻는 그의 목소리는 살짝 떨리고 있었다.다른 이사님들도 모두 송문수를 바라보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사실 이사님들뿐만 아니라 송기명까지도 이 프로젝트가 실패한 거라 생각했었다. 기술 투자를 성사하지 못한다면 즉시 프로젝트를 멈추고 더 이상의 손실을 내지 않는 것이 현명한 판단이라고 생각했었다.그동안 들인 노력과 돈이 헛된 것으로 된다고 해도, 아쉽고 화가 나도 어쩔 수 없다면서, 이게 가장 합리적인 결정이라면서 이 결정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이변이 일어난 것이다. 기술 투자를 따내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었고 이건 다들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게다가 국제적인 협력 또한 쉽지 않은 것이었다. 어느 정도 경쟁 관계도 존재했으니 말이다.그럼에도 송문수가 기술 투자를 성사한 것이었다.“금방 크레지 씨한테서 연락이 왔어요.”송문수도 감격스러운지 여러 번 반복했다.“정말로 뭐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네요.”오 이사님은 감격에 겨워 말을 잇지 못했다.다른 이사님들도 다들 같은 말만 반복했다.“문수 씨, 정말 대단하세요!”“도대체 어떻게 하신 거예요? 크레지 씨한테서 기술 투자를 따내다뇨... 크레지 씨는 성격이 까다롭기로 유명한 분이시잖아요. 아무나 접근할 수 있는 사람도 아니고요.”“문수 씨, 이번에 정말 큰 공을 세우셨어요. 만약 이번 기술 투자가 실패했다면 회사는 최소 3년에서 5년 동
그녀만 그렇게 생각한 건 아니었다. 송기명과 허영지도 아마 그런 생각이었을 것이니 말이다.그러나 송문수가 어느 정도 성과를 냈을 때, 그들은 진심으로 기뻐해줬고 격려까지 해주었다. 그런데 유독 송승우만은 계속해서 송문수의 능력을 부정했고 그를 믿어주지 않았다.하지수는 송승우를 반박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그러자 그때, 송문수의 전화가 울렸다.전화 화면을 확인한 그는 급히 전화를 받았다.송승우는 송문수의 행동을 지켜보며 마치 트집이라도 잡은 것처럼 말했다.“송문수, 회의 중에 개인 전화를 받으면 안 되는 거 몰라? 회의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는 있어야 하는 거 아니야?”송문수는 그의 말을 무시하고 회의실 구석으로 걸어가 전화를 받았다.그러자 송승우는 더 화가 났다.그때, 오 이사님이 그를 꾸짖었다.“승우 씨, 지금 문수 씨는 이 회사의 회장입니다. 이 회사에 발을 들인 이상 문수 씨의 말대로 해야 한다는 겁니다. 문수 씨가 전화를 언제 받든 그건 문수 씨가 결정할 일입니다. 저희도 문수 씨랑 여러 번 회의를 해봤어요. 진짜 급하고 중요한 전화가 아닌 이상 회의 중에 절대 전화를 받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도 알고 있고요.”송승우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송문수 이놈, 비밀리에 오 이사님이랑 뭔가 있는 게 분명해. 그게 아니라면 왜 오 이사님께서 계속 송문수를 감싸주겠어?’이렇게 생각한 그는 다른 이사님들을 둘러보았다.다른 이사님들도 송문수가 회의 중에 전화를 받는 것에 아무런 문제를 느끼지 않는 듯했다. 다들 아무 말 없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송승우는 말을 잇지 못했다.‘도대체 송문수가 이 사람들에게 뭘 해 줬길래 다들 이렇게 그를 감싸는 걸까?’회의실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은 조용히 송문수가 전화를 마칠 때까지 기다렸다.송승우는 점점 더 짜증이 났지만 다들 가만히 기다리고 있었기에 그도 더 이상 뭐라 말할 수 없었다.한참 지나서야 송문수가 전화를 끊고 돌아왔다.송문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송승우가 바로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