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이연은 덤덤한 태도로 반문했다.“그의 확고한 선택을 존중해주는 게 맞지 않아?”예수진은 그 한마디에 순간 말문이 막혔다.사실 소이연도 예수진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예수진이 그녀와 육현경의 관계를 가만히 두고 볼 수가 없어서 이렇게 흥분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그러나.두 사람 사이에는 이런 단어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놓친 건 다시 되돌릴 수 없는 거니까.예수진도 결국 괜한 헛소리를 했다고 생각하면서 자포자기했다.“됐어, 나도 인제 그만 말할게.”소이연은 그녀가 받은 상실감이 얼마나 큰지 느껴졌지만, 다른 일은 몰라도 이번 일만큼은 발 벗고 나서서 도와줄 수 없었다.잠시 후, 예수진이 다시 그녀에게 말을 건넸다.“시간 맞춰서 결혼식에 참석해.”소이연은 웃으면서 답했다.“알겠어, 꼭 참석해서 신부 들러리 잘할게.”“끊어, 안녕.”“안녕.”전화를 끊자마자, 소이연의 입가에 있던 미소가 사라졌고 앞을 바라보면서 생각했다.‘당분간만 지나면 심란했던 마음도 가라앉고 괜찮아 질 거야.’...얼마 후, 육현경의 결혼 소식은 인기 검색어에 올랐고 예수진, 계지원과 동반 결혼식을 올린다는 것도 엄청난 화젯거리였다.그러나 이상한 건 육현경이 끝까지 신부의 얼굴을 공개하지 않는 거였다.결국 그의 결혼 상대는 모두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고, 다들 궁금해서 난리였다.곧이어 네티즌들 사이에서 소이연이 베일에 싸인 신부라는 소문이 돌았다.그도 그럴 것이, 그동안 육현경과 스캔들이 난 사람은 소이연밖에 없었고, 육민이가 소이연의 아들이라는 사실로 한동안 뜨거웠던 데다가 지난번 신문헌의 파혼 선언으로 그녀가 아직 솔로였기 때문이었다.여러 가지 정황들로 인해 소이연이 결혼 상대라고 확신한 언론사들은 너도나도 그녀에게 찾아가 육현경과의 “결혼”에 관해 물었다.그녀가 아무리 부인해도 듣지 않으면서 오히려 두 사람이 결혼으로 인기를 끈다고 비난했다.두 사람이 결혼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육현경이 운영하는 SYX그룹과 소이
그날 아침, 소이연은 6시도 안 된 시간에 예수진의 집으로 향했다.이제 막 일어난 예수진도 비몽사몽인 상태로 소이연과 하지수가 온 걸 보고는 기운 없이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결혼하기 너무 힘드네.”하지수가 이내 그녀를 놀렷다.“네가 원한 거잖아.”“그럴 리가! 지원이가 결혼식을 올리자고 고집을 부렸지, 난 아무 말도 안 했어!”“난리 났네!”예수진은 말로만 불평을 늘어놓을 뿐, 기분이 좋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기에 하지수의 농담에 혀를 내밀면서 웃었다.세 사람은 곧장 간이 화장대에서 동시에 메이크업을 받기 시작했다.얼마나 많은 시간이 지났을까, 소이연은 예수진의 복잡한 신부 메이크업이 끝났는데도 여전히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그녀는 평소 미모가 타고난 편이라고 자부했는데 이렇게까지 공들여서 해주니 자존심이 상하는 것 같았다.‘무슨 메이크업이 이렇게 오래 걸리지? 날 꽃으로 만들 생각인가?’소이연은 결국 참지 못하고 메이크업 아티스트한테 물었다.“아직도 안 끝났어요?”메이크업 아티스는 곧장 미안한 기색이 역력한 표정을 지으면서 답했다.“죄송해요, 제가 아직 서툴러서 시간이 오래 걸리네요. 그래도 예쁘게 해드릴 테니, 저만 믿으세요!”소이연은 아무리 봐도 그녀의 실력이 서툰 것 같지 않아 의심스러웠지만, 별생각 없이 말했다.“괜찮아요, 오늘의 신부는 내가 아니라서 대충 하면 돼요.”이때 예수진이 갑자기 메이크업 아티스트한테 말했다.“그건 안 돼요! 신경 쓰지 말고 마음껏 실력 발휘하세요!”그러더니 곧장 소이연을 보면서 엄숙한 태도로 말했다.“설마 네가 나보다 더 빛날까 봐 걱정하는 거야? 그게 신경 쓰였다면 애초에 너한테 신부 들러리를 부탁하지도 않았어. 어차피 넌 나보다 더 빛날 거잖아.”“...”소이연은 더 이상 말해도 입만 아플 것 같아서 조용히 있었다.얼마 후, 마침내 메이크업을 마친 그녀는 주객 전도될 정도로 지나치게 정교한 얼굴을 보면서 머쓱했지만, 예수진은 전혀 개의치 않은 듯 칭찬을 아끼지 않았
“나는 몰라, 어쨌든 쉽게 문 열지 않을 거야.” 예수진은 단호하게 말했다. “수진아, 그럼 네가 원하는 게 뭔지 말해봐.” 하도경은 한숨을 쉬었다. “먼저 계지원에게 나한테 좋은 말을 해보라고 해, 기분 좋게.” 예수진이 요청했다.하도경은 밖에서 큰 소리로 말했다. “신랑님, 신부가 좋은 말 좀 해달래!”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예수진이 있는 곳에는 항상 즐거움이 가득하다. 웃음이 가시자, 밖은 갑자기 조용해졌다. 모든 사람이 계지원이 사랑의 말을 할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처음에는 재밌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모두가 기대하는 눈빛을 보였다. 계지원이 말주변이 없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그는 비록 대감독님이지만 사적인 자리에서는 거의 말을 하지 않는데,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사랑의 말을 하게 하다니...역시 신부가 어떻게 신랑을 난처하게 하는지 제일 잘 알고 있었다. 한동안 조용했다. 오랫동안 계지원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예수진은 처음에는 우쭐해했지만, 지금은 확실히 초조해졌다. 그녀는 큰 소리로 외쳤다. “계지원, 왜 안 말해?” 밖에서도 그를 재촉하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지원아, 빨리 말해! 좋은 날을 망치지 말자.” “지원아, 서둘러! 신부가 너를 기다리고 있잖아.” “부끄러워하지 마, 우리는 없는 사람으로 생각해도 괜찮으니, 어떤 멋진 말이든 다해봐...” 밖에서는 웃고 떠들며 분위기가 다시 활기차졌다.예수진은 입술을 물고 마음이 답답해졌다. 그냥 계지원에게 몇 마디 사랑의 말을 하라고 했을 뿐인데, 그는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더 생각할수록 그녀는 억울해졌다... 그러다 결국 눈가가 붉어졌다. 소이연은 예수진의 감정 변화를 눈치챘고, 급히 위로했다. “수진 씨, 조급해하지 마요. 계 감독님은 본래 외향적인 사람이 아니잖아요. 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고백하게 하려면 조금 시간이 필요할 거예요.” “하지만...” 예수진은 여전히 억울함을 느꼈다. 오늘은 그들의 결혼식 날
“수진아” 문밖에서 갑자기 계지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예수진의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렇게 오랜 시간을 함께 했는데, 그의 부드러운 애칭에 여전히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지금 너무 긴장돼,” 그는 말했다. “최고 감독상 수상할 때보다 더 긴장되고 흥분돼.” 예수진의 심장은 계속해서 두근거렸다. 그녀는 조금의 죄책감이 들었다. 정말로 그를 너무 힘들게 한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렇게 오랜 시간을 끌고 싶지 않았어. 좋은 날을 망칠까 봐 걱정이야. 내가 이날을 얼마나 기다려왔는지 하늘만이 알 거야.” 계지원는 문밖에서 조용히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서 안정감을 주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느껴졌다. “우리의 이 결혼식을 위해 나는 오랫동안 준비해왔어. 결혼 증서를 받을 때부터 이날을 기다려왔고, 너에게 잊지 못할 결혼식을 선물하고 싶었어. 오늘이 육현경의 결혼식이라서 우리가 함께 결혼하는 게 아니야. 이 결혼식은 내가 진심으로 준비한 거야.” 예수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조용히 동의했다. 사실 그녀도 알고 있었다. 겉으로 보이는 것처럼 무신경한 사람이 아니었다. 최근 계지원이 자주 집에 없고 몰래 준비하는 걸 보며, 그녀는 그가 결혼식을 위해 계속 준비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내가 좋은 말 해주길 원한다고 했지? 내 생각엔, 너는 내가 사랑의 말을 해주길 바라는 거지?” 계지원이 예수진에게 물었다. 예수진이 대답하기도 전에, 그는 또 혼자 말을 이어갔다. “나는 사랑의 말을 잘하지 못해. 많은 사랑 영화를 찍었지만, 이 부분에선 정말 서툴러. 어떻게 말해야 너를 기쁘게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 “어떤 식으로든 나는 기뻐.” 예수진이 마침내 참지 못하고 큰소리로 말했다. 그녀는 이 사람을 사랑했다. 이 사람의 모든 것을 사랑했다. 그저 조금 아쉬울 뿐이었다...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그도 그녀를 사랑한다는 걸 알면 충분했다. “그럼, 그냥 마음대로 말할게.” 계지원가 말했다.
예수진은 계지원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하연이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가가 붉어졌다. 정말 감동해서 울고 싶어졌다. 눈앞의 장면은 그녀 인생에서 본 가장 행복한 모습이었다. “엄마.” 하연이의 어린 목소리가 그녀를 불렀다. 통통한 작은 손으로 손에 쥔 꽃다발을 그녀에게 내밀었다. 예수진은 다시 눈물이 고여서 참을 수 없었다. “엄마, 왜 울고 있어요?” 하연이는 이해하지 못했다. “오늘은 엄마와 아빠가 결혼하는 날인데, 기뻐해야죠!” “엄마는 안 울어, 엄마는 그냥...” 예수진이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했다. “아빠도 오늘 아침에 울었어요.” 하연이가 갑자기 말했다. 예수진은 잠시 멈칫했다. “엄마랑 똑같이 눈이 붉어졌었어요. 제가 왜 우냐고 물어봤더니, 아빠도 울지 않았다고 했어요.” 하연이가 동글동글한 얼굴로 웃으며 말했다. “아빠랑 엄마 둘 다 너무 웃겨요.” 예수진은 계지원을 바라보았다. 계지원은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그는 오늘 아침에 정말 조금 감정이 격해졌다. 눈물이 고일 정도로 말이다. 그런데 하연이가 이렇게 공개적으로 말할 줄은 몰랐다. 예전 같았으면 그는 매우 부끄러워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그는 단호한 눈빛으로 예수진을 바라보며 말했다. “응, 내가 곧 너를 데리러 가서 결혼하게 될 생각을 하니까, 너무 기뻐서 눈물이 나려고 했어.” 예수진은 계지원이 이렇게 솔직하게 인정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계지원, 사랑해!” 예수진은 정말 참지 못하고 계지원의 품에 안겼다. 하연이는 엄마에게 눌려 얼굴이 일그러졌다. ‘엄마는 아빠를 보면 가만히 있지 못한다.’‘엄마는 항상 나와 아빠를 차지하려 한다.’하지만 오늘의 하연이는 의외로 엄마와 아빠를 두고 다투지 않았다. 왜냐면 할머니가 오늘 아빠와 엄마가 결혼한다고 말해줬고, 아빠는 오늘 엄마의 것이라고 했기 때문이었다. ‘좋아, 오늘 하루 아빠를 엄마에게 양보해 줄게.’예수진은 계지원을 꽉 끌어안았다. 계지원도 그녀를
‘이거 진짜인가?’ 이렇게 수줍고 내성적인 계지원이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키스를 했다...그렇다. 누가 누굴 두려워해? 누구한테도 지는 성격이 아닌 예수진은 반응하기 시작하고, 능동적으로 나왔다. 두 사람은 그렇게 한참 동안 끈적하게 키스를 했다. 주변 사람들이 참지 못하고 말했다. “헤헤, 오늘 너희가 주인공이지만, 좋은 시간을 놓칠 수는 없잖아.” 예수진과 계지원은 잠시 얼떨떨해졌다. 이 순간, 두 사람은 조금 너무 몰입했다는 걸 깨달았다. 예수진은 급히 떨어져 나갔다. 계지원의 얼굴은 빨개졌다. 귀도 붉어졌다. 어쩌지? 예수진은 계지원을 더 사랑하게 된 것 같았다. 마치 당장이라도 덮치고 싶었다. 결혼식은 무슨, 치열한 전쟁이 더 좋을 것 같았다. “너희 둘 그 눈빛 교환, 그만 좀 해라.” 하도경이 옆에서 못 참고 말했다. “오늘 결혼식에 이미 많은 사랑을 퍼뜨렸는데, 우리 같은 싱글들의 감정을 좀 생각해 줄 수 없겠어? 호텔에 가서 계속 결혼식을 할 거야 말 거야?” 계지원은 입술을 다물었다. 입술에는 분명 예수진의 방금의 촉감이 남아 있었다. 그는 속으로 심호흡을 했다. 손을 뻗어 예수진의 손을 잡았다. 예수진도 계지원의 손을 꽉 잡았다. 두 사람은 함께 나가기로 했다. 비록 예수진의 집이 크긴 크지만 사람은 정말 많아서, 곳곳이 붐비고 통행이 불편했다. 심지어 갑자기 누군가 신랑이 아직 돈 봉투를 안 주고 신부를 데려갔다고 말했다. 모든 사람들이 이 절차를 잊고 있었다. 이 두 사람이 일부러 돈 봉투를 빼먹은 건 아니냐며 너무 인색하다는 소리까지 들렸다. 그리고 이 말이 나오자마자, 누군가 급히 대문을 막아버렸다. 계지원은 서둘러 하도경에게 돈 봉투를 주라고 했다. 하도경은 재빠르게 돈 봉투를 막 흩뿌리며 말했다. “모든 분들께 돈봉투를 드립니다! 자, 이쪽으로 오세요!” 순간, 거실은 혼란스러워졌다. 소이연과 하지수는 서둘러 옆으로 비켰다. 이 분위기라면 몇 명은 넘어질 것 같
리무진 안에서 예수진은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있었다. 신부의 행복이 정말로 숨길 수 없는 것이었다. 오늘 계지원의 대담한 고백과 키스 덕분에, 소이연은 예수진이 평생 자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리무진이 골프장에 도착했다. 두 개의 결혼식이 함께 진행되므로 일반 호텔에서는 도저히 수용할 수 없어, 장안시에서 가장 고급스러운 골프장에서 야외 결혼식을 진행하기로 했다. 일행이 차에서 내리자, 기자들이 입구에서 그들을 둘러싸고 있었다. 대 감독과 인기 스타의 결혼식이니, 장안시의 미디어가 거의 총출동한 셈이었다. 계지원은 예수진과 함께 차에서 내렸다. 공인으로서 팬들에게 보답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것이 예수진의 신념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결혼식은 기자들이 내부에 들어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고, 다른 사람들은 사진을 찍을 수 없었다. 오직 입구에서 기자들과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 기자들은 신나 있었다. “계 감독님, 들은 바로는 수진 씨의 결혼식 드레스를 당신이 직접 해외에서 맞춘 것이 라던데, 사실인가요?” “계 감독님, 수진 씨와는 선입견 없이 결혼하게 되었는데, 결혼식에 대한 기대에 영향을 미칠까요?” “이 결혼식은 계 감독님과 수진 씨 외에도 육현경의 결혼식이 함께 진행되나요?” “육현경은 신부를 공개하지 않았는데, 혹시 소이연인가요?” 현장은 혼란스러웠다. 예수진과 계지원은 누가의 말을 듣고 누구에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모두가 동시에 질문을 하니, 그들은 도무지 무슨 말인지 듣지 못했다. 계지원은 좋은 날을 망칠까 걱정하며 크게 외쳤다. “모두 조용히 해 주세요! 한 번에 한 명씩 질문해 주세요. 이렇게 하면 정말 답할 수 없습니다. 문제는 저희가 도무지 듣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질문하시기 전에, 제가 준비한 기자 회견문을 먼저 읽어보겠습니다.” 계지원은 원고를 꺼냈다. 예수진은 놀랐다. 계지원이 이렇게 준비해온 줄은 몰랐다. 그는 예수진에게 애정 어린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원고를 읽기
차는 어느새 골프장 안으로 들어섰다.하지만 소이연과 하지수는 차에서 내리지 않았다.순간 이렇게나 빨리 기자들을 쫓아낸 계지원과 예수진의 공권력에 자기도 모르게 감탄을 자아냈다.최소 30분 이상은 질질 끌 것 같았는데 10분도 채 안 돼서 상황이 종료되었다.골프장의 전용 주차장에 차가 멈춰서자 계지원은 먼저 현장에 나가 손님들을 맞이했다.소이연과 하지수 그리고 하연 세 사람은 신부 대기실에서 예수진이 두 번째 드레스를 갈아입는 걸 도와줬다.예수진은 옷을 갈아입으러 들어가고 소이연과 하지수는 하연이를 데리고 놀았다.“지수 씨.”소이연이 그녀를 불렀다.“네?”하지수는 하연이와 장난치고 있었다.한눈에 보아도 그녀는 하연이를 정말 예뻐했고 이는 소이연도 마찬가지였다.다만 같은 마음이어도 하지수처럼 아이에 대한 갈망 정도는 아니었다.그녀는 지금 몹시 아이를 갖고 싶어 한다는 걸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문수 씨랑은 아직도 그런 관계인가요?”소이연이 물었다.순간 하지수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다가 어렵게 고개를 끄덕였다.“네. 그저 그래요.”여전히 두 사람은 서로 마음을 열지 못하고 있는 듯싶었다.“문수 씨가 출소한 지 이렇게나 오래되었는데 아직도 두 사람 사이에 아무런 변함이 없다는 건가요?” “네.”하지수는 한껏 씁쓸한 얼굴로 답했다.“지수 씨 문제인가요, 아니면 문수 씨 때문인가요?”“그 사람이겠죠?”하지수가 말을 이었다.“그 사람은 여전히 저를 믿지 못하겠나 봐요. 며칠 전에는 이혼 얘기까지 하더라고요.”소이연의 눈살이 순간 찌푸려졌다.“근데 전 이혼은 안 된다고 했어요. 그리고 이 문제를 회피하기 위해 지금 송씨 가문 별장에서 지내고 있어요.”“왜 갑자기 이혼 얘기를 꺼냈을까요?”“이제는 제가 싫증 나나 보죠. 밖에는 예쁘고 아름다운 것 천지니까요...”“혹시 지수 씨가 이제 더 이상 문수 씨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건 아닐까요?”하지수는 그녀의 말에 반박하지 않았다. 사실 아직도 그에 대한 자기의
“문수 씨.”하지수는 송문수의 이름을 불렀다. 그녀는 지금 송문수가 화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지만 송승우에게 무슨 일이라도 있으면...어쨌든 한 가족이 아닌가.그녀는 가정의 불화를 일으키고 싶지 않았다.“그래도 승우 오빠를 병원에 보내야 하잖아.”하지수는 큰 소리로 송문수에게 말하자 송문수는 발걸음을 멈추었다.사실 송승우는 별일 없었다. 송문수는 격투기를 배운 적이 있기에 사람의 어느 부위가 다치면 안 되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그가 송승우를 이성을 잃을 정도로 때렸어도 급소를 때리지 않았다.하지수는 송문수의 대답을 듣지 못하자 다급히 핸드폰을 꺼내서 긴급구조 요청을 하였다.구급차를 기다리는 동안, 하지수는 송승우에게 다가가지 않았다.그녀는 멀지 않은 곳에 서서 바닥에 쓰러진 송승우를 바라보았다.송승우의 분노가 극도에 이르렀지만 송문수와 싸울 힘이 없었다.사실 하지수도 요새 송승우와 송문수가 자주 싸우는 이유를 몰랐다. 오늘은 벌써 두 번째였다.어렸을 때 두 형제의 관계가 그다지 친밀하지 않았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지금 어른이 되었는데 아직 유치하게 싸우다니!이윽고 구급차가 도착했고 구조대원들은 들것으로 송승우를 구급차에 태웠다.하지수도 따라서 올라탔지만 송문수는 타지 않았다.하지수는 잠시 망설이다가 내려와서 송문수를 잡아당겨서 같이 구급차에 올라탔다.구급차 안은 매우 조용하였다.아무도 말하지 않았고 차 안의 분위기에 아직 분노의 불꽃이 튕기는 것 같았다.병원에 도착한 후 송승우는 응급실로 옮겼다.하지수와 송문수는 로비에서 기다렸다. 송문수는 차가운 분위기를 풍기면서 한쪽에 서 있었다.사실 하지수는 송문수의 얼굴에도 상처가 있는 것을 보았다. “문수 씨도 얼굴과 몸에 난 상처를 검사하지 않을래?”“필요 없어. 외상이라 금방 나을 거야”송문수가 이렇게 말하자 하지수도 강요하지 않았다.잠시 후, 송승우는 응급실에서 나왔고 의사는 이렇게 말했다.“모두 외상이라 별문제가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지금 입원 수속
“놓지 못해?”송문수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하면서 송승우를 바라보았다.서로 마주 본 두 사람의 눈에는 분노로 가득 차 있었고 일촉즉발의 분위기였다.“이거 놔요.”하지수도 송승우의 손을 힘껏 뿌리쳤다. 그러자 송승우의 눈빛에 분노로 이글이글 타올랐다.그는 더욱 세게 하지수를 잡아당겼다.하지수는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아파요!”송문수의 안색이 더욱 어두워졌다.“놓으라고 했다!”그는 송승우의 팔을 끌어당기는 손에 힘을 꽉 주었다. 이에 송승우는 통증을 느꼈으나 승부욕 때문에 쉽게 놓을 수가 없었다.송문수가 힘을 줄수록 그도 더욱 힘을 줘서 하지수를 잡아당겼다.하지수는 너무 아파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송승우는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 “이걸 놔. 나와 지수의 일에 끼어들지 마.”“끼어들지 말라고?”송문수는 냉소를 지으면서 말했다.“형이 잊은 것 같은데 지수는 내 와이프야. 우린 부부이지만 형과 지수는 아무 사이도 아니잖아? 지금 형이 내 와이프를 데려가려고 하는데 나보고 끼어들지 말라고? 너무 뻔뻔하다고 생각하지 않아?”“너!”송문수의 쏘아붙인 말에 송승우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예전에 송승우는 하지수가 자신을 좋아했기 때문에 송문수를 안중에 넣지도 않았고 그들의 결혼 관계를 진지하게 생각한 적도 없었다.그러나 지금 송문수에게 이런 모욕을 당하다니!“지수가 좋아한 사람은 나야!”송승우는 수치심에 더 약이 올라서 노기어린 목소리로 외쳤다.하지수는 너무 아파서 반박할 힘도 없었고 송문수의 말이 들려왔다.“지수가 누구를 좋아하든 지금은 내 여자야. 누구도 데려갈 수 없고 누구도 지수를 괴롭힐 수 없다고! 셋까지 셀 테니 지수를 놓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을 거야!”송승우는 끄덕하지도 않고 송문수를 노려보았다.“하나.”“둘.”송문수는 ‘셋’을 세는 대신 주먹을 들고 송승우의 얼굴을 세게 강타했다.송문수의 한 방을 맞은 송승우는 코피를 흘렸고 아픔으로 이내 하지수를 놓아주었다.그러나 송승우는 소심한 사람이었다. 그는 늘
‘내가 자기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는 건가?’“승우 씨, 사과 따위 이제 필요 없어요. 지금 제가 바라는 건 아무 탈 없이 우리 사이의 관계를 끝내는 거예요. 승우 씨는 문수 씨 형이잖아요. 게다가 저도 어릴 때부터 송씨 가문에서 자란 사람이고요. 그러니까 우리 그냥 친척 같은 관계로 돌아갔으면 좋겠어요.”하지수는 인내심을 가지고 진지하게 말했다.송승우는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며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하지수는 더 이상 그와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 망상에 빠진 사람은 무슨 말을 하든 헤어 나올 수 없다고 생각했기에 그녀는 자신의 마음을 표현했으니 그걸로 됐다고 생각했다.하지수는 뒤를 돌아 송문수 쪽으로 다가가려 했다. 늦은 시간이었고 그녀도 여전히 많이 피곤했다. 송문수랑 같이 집으로 가서 자고 싶었다.크레지가 아직 오지 않은 이상, 기술 투자 계약서에 사인하지 않은 이상 방심할 수는 없었다. 그들은 짬짬이 시간을 내서 잠을 잘 수밖에 없었다.그런데 막 돌아서려는 순간, 그녀의 손은 또다시 송승우에 의해 붙잡혔다.하지수가 아무리 팔을 흔들어도 벗어날 수 없었다.송문수는 차가운 눈빛으로 송승우의 행동을 지켜보며 주먹을 꽉 움켜잡았다.그가 앞으로 다가가 하지수를 데려오려던 순간, 송승우가 갑자기 말했다.“지수 씨, 방금 당신의 행동은 모든 걸 말해줬어요!”“무슨 행동이요?”하지수는 이해할 수 없었다.“방금 제가 불렀을 때, 제 쪽으로 다가왔잖아요. 그게 지수 씨 마음속에 있는 진심이에요. 더 이상 숨기지 말고 저한테로 오세요. 하지수 씨, 제가 잘 해줄게요. 지수 씨를 혼자 두는 일은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을 거예요. 제가 맹세할게요...”“아니요.”하지수는 단칼에 거절해 버렸다.하지수를 바라보는 송승우의 눈빛은 분노로 가득 찼다.“승우 씨가 불었을 때 따라간 건 무의식적으로 간 거예요. 잠에서 덜 깬 상태라서 누가 불렀어도 갔을 거예요. 승우 씨인 줄도 몰랐어요. 하지만 인정할 건 인정할게요. 낯선 목
송문수는 하지수가 일어나서 송승우 쪽으로 걸어가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할 뿐이었다.송승우는 입가에 미소를 띠며 생각했다.‘그래, 지수 씨도 아직 날 신경 쓰고 있다니까. 숨기려 해도 어떻게 숨기겠어? 이런 상태에서야 비로소 진심이 드러나는 거지.’송문수는 멀어져 가는 하지수를 잡으려 손을 뻗었지만 그녀의 옷자락에 손이 닿았을 때 살짝 멈칫했다. 하지수를 강제로 붙잡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사실 그는 항상 하지수의 선택을 존중해 왔다. 지금까지 변함없이 말이다.하지수는 송승우 앞으로 걸어갔고 송승우가 먼저 손을 뻗더니 그녀를 끌어당기려 했다.그러나 그가 손을 뻗자 하지수가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승우 씨?”그녀는 그제야 앞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깨달았다.조금 전까지 어지럽고 혼란스러웠던 상황이 이제와사 분명해졌다.그녀는 자신이 언제 잠에 들었는지도 몰랐다. 그저 너무 피곤해서 머리가 흐릿할 뿐이었다.“너무 늦었어요. 제가 데려다줄게요.”송승우가 그녀를 끌고 나가려고 하자 하지수는 급히 그의 손을 쳐내며 말했다.그러자 송승우는 눈살을 찌푸렸다.“아까는 잠에서 덜 깨서 그랬어요. 전 문수 씨랑 같이 갈 거예요.”“뭐라고요?”송승우는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언제까지 연기할 거예요?”“네?”하지수는 눈살을 찌푸리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송승우가 왜 갑자기 화를 내는지 알 수 없었다.“저를 놀리는 게 재밌으세요?”송승우가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저... 저는 그런 게 아니라...”하지수는 당황해하며 말을 더듬었다.그러자 송승우가 입을 열었다.“알겠어요. 제가 잘못한 걸로 하죠.”그가 갑작스레 사과를 하자 하지수는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그녀는 송승우가 왜 갑자기 사과를 한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왜 사과를 하는 거야?’“미안했어요. 어쩔 수 없이 떠난 거라고는 하지만 우리 결혼식에도 참석하지 못했잖아요. 결혼식장에 지수 씨 혼자 남겨두고 간 건 제 잘못이에요. 미안해요.”하지수는 그제야 무슨 말인지 이해했
하지수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심장은 여전히 빨리 뛰고 있었다.그녀는 전혀 말을 듣지 않는 심장을 진정시키려 애썼다. 만약 누군가 들어오지 않았더라면 이 어색한 상황이 얼마나 계속될지 알 수 없었다.‘문수 씨도 부끄러워하는 건가?’하지수는 입술을 꽉 깨물며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려 애썼다. 갑자기 웃음이 터져 나올까 봐 걱정이었다.하지수는 소파에 앉아 몰래 송문수를 쳐다보았다.그는 그저 고위직 직원의 얘기를 듣고만 있을 뿐, 전혀 불편해 보이지 않았다.그녀는 깊게 숨을 쉬었다.‘단지 어색해서 그런 건가?’송문수는 언제나 체면을 중시하는 사람이었으니 말이다.‘해명하려 하지 않는 것도 결국 체면을 세우려고 그러는 건가?’하지수는 너무 많은 기대를 해선 안 된다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다잡았다....크레지를 맞이하기 위해 모든 관련 부서가 계속해서 야근을 하고 있었다.송문수와 하지수 역시 마찬가지였다.그들은 끊임없이 회의를 열고 논의하며 최대한의 성의를 보이기 위해 애썼다.새벽 2시가 되었지만 송문수는 아직 퇴근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방금까지도 각 부서와 회의를 하면서 협력 계획과 판매 계획을 다시 수정하고 보완했다.회의가 끝난 후에도 송문수는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는 계속 바쁘게 일하고 있었다.송문수는 그제야 그의 확인이 필요한 문서들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무슨 서류든 제대로 보지 않고 사인을 해버렸었다. 하지만 이젠 점점 더 신중해졌고 모든 서류를 꼼꼼히 확인하고 나서야 사인을 했다.그 덕에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고 오늘 하루 동안의 모든 서류를 처리하고 나서야 송문수는 퇴근을 하려고 하지수를 쳐다봤다. 그러자 그녀는 이미 소파에 기대어 잠들어 있는 것이었다.하지수는 잠이 많은 사람은 아니었다. 송문수의 기억 속에 하지수는 늘 자신보다 일찍 일어나는 사람이었고 절대 늦잠을 자지 않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소파에 기대어 잠들어 있었다.‘많이 피곤한 걸까?’자세히 생각해 보니 그들은 지난 일주일 동안 계속해서 야
송문수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크게 티가 나지는 않았지만 그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밝아졌다는 건 알 수 있었다.하지수는 송문수를 더 방해하지 않으려 했다. 송문수가 점점 더 발전하는 걸 보면서 하지수도 그를 더 지지해 주고 싶었고 송문수로 하여금 업무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돕고 싶었다.하지수는 옆에 있는 소파로 가서 노트북을 들고 업무를 처리하기 시작했다.그리고는 습관처럼 회사의 공식 채팅방에 들어갔다.그녀는 비록 알림을 꺼 놓았지만 회사의 공식 채팅방에 메시지가 있으면 항상 첫 번째로 확인하곤 했다.그런데 그때, 그룹 채팅에 있는 메시지를 본 하지수는 깜짝 놀랐다. 그녀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아마 이 상황을 믿기 어려워할 것이었다.송문수가 회사의 공식 채팅방에 ‘하지수’라는 이름을 여러 번 보낸 것이었다.하지수는 고개를 들어 송문수를 바라보았다.그는 진지하게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채팅방에는 여전히 ‘하지수’라는 이름이 올라오고 있었다.“문수 씨, 컴퓨터 바이러스에 걸린 거 아니야?”하지수가 물었다.“어?”송문수는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했다.하지수는 송문수 앞에 서서 그의 컴퓨터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화면에는 타자를 해놓고 아직 보내지 않은 ‘하지수’도 있었다.송문수도 그제야 자신이 채팅방에 ‘하지수’라는 이름을 여러 번 입력했다는 것을 깨달았다.그 자신도 놀란 듯했다. 그는 자신이 타자를 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의식하지 못했던 것이다.하지만 방금 그의 머릿속이 온통 하지수로 가득 찬 건 사실이었다.그때, 채팅방에서 누군가 메시지를 보냈다.[회장님 지금 하 매니저님한테 애교 부리는 거야? 그걸 실수로 단체 채팅방에 보낸 거고?]메시지는 보내지자마자 삭제되었고 밖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나도 잘못 보냈네!”그룹 채팅에 두 개의 삭제 기록이 나타났다.송문수는 멍하니 앉아 있다가 그제야 메시지를 삭제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그는 ‘하지수’라는 메시지들을 삭제하려 했지만 이미 메시지를 취소할 수 있는 시간이
송승우는 이를 꽉 악물었다. 그는 하지수를 절대로 포기할 수 없었다. 그는 하지수에게 송문수를 고른 게 얼마나 잘못된 선택이었는지 반드시 알게 해주겠다고 결심했다. 그녀로 하여금 후회하도록 만들겠다고 다짐했다....하지수는 송승우의 사무실을 떠나 바로 송문수의 사무실로 갔다.송문수는 업무에 몰두해 있었다.회사에 들어선 순간부터 그는 자유시간이 없었고 퇴근 후에도 여전히 업무와 관련된 일들을 처리하고 있었다.하지수는 송문수가 많이 변했다고 느꼈다. 그녀는 하느님도 부지런한 사람을 도울 거라 믿으며 송문수가 앞으로 큰 성과를 낼 것이라고 확신했다.“형이 뭐라고 했어?”송문수는 그녀를 한 번 쳐다보며 차갑게 물었다.“자기 개인 비서로 되어달라고 하더라고.”하지수는 송문수에게 숨기지 않고 말했다. 그녀는 더 이상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을 그에게 숨기고 싶지 않았다.송문수랑 같이 오랫동안 시간을 보내고 싶었기에 최대한 마음을 다할 생각이었다.송문수는 멈칫하더니 코웃음을 치더니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녀가 어떻게 대답했는지 알고 싶지 않아 하는 것 같았다. 어쩌면 하지수가 그 제안을 무조건 받아들였을 거라고 여겼는지도 모른다.‘지수가 형 요구를 거절한 적은 한 번도 없는데 이번에도 알겠다고 했겠지...’이렇게 생각한 송문수는 일에 더 집중하려 애썼다. 회사 일을 제대로 해내기로 결심한 이상 중간에 포기할 생각은 없었으니 말이다.“거절했어.”하지수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송문수는 가슴이 약간 두근거리는 걸 느꼈다.분명 그녀의 말에 설렌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겉으로 티 내지 않으려 했다.그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척 계속해서 서류를 보고 있었다.반면, 하지수는 송문수에게 그 어떤 반응도 기대하지 않았다. 어차피 송문수는 자기한테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저 자신의 결정을 그에게 알리고 싶었을 뿐이었다.“왜 거절했는데?”송문수가 차분하게 물었다.“문수 씨한테 내가 더 필요하다고 생각했으니까.”하지수는 웃으며
하지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송승우를 바라보았다.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말이다.어린 시절 그녀는 항상 송승우를 믿었고 그가 자기를 보호해 줄 거라 생각했었다. 송승우는 같은 또래 친구들보다 성숙하고 머리가 좋다고 생각했었다.하지만 순간, 그녀는 자신이 송승우에 대해 뭔가 오해를 하고 있었던 건 아닌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게다가 그가 지금 하는 행동이 너무 유치해서 하지수는 어떻게 거절해야 할지 몰랐다.그녀는 이해할 수 없었다.‘어떻게 이런 말을 그렇게 쉽게 할 수 있지?’송승우는 하지수와 송문수의 관계를 알고 있었다. 하지수가 몇 번이나 말했으니 모를 리 없었다. 지금은 송문수와 잘 지내고 있고 송승우와의 관계는 이미 끝난 거라고 말이다.그리고 송문수가 지금 송씨 그룹의 대리 회장직을 맡고 있다는 것도 분명 알고 있었다. 송문수의 결정이 회사의 발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도 말이다. 송문수한테 도움이 더 필요했고 송문수가 받는 스트레스가 더 많았다.‘생각이 없는 건가? 어쩌면 이렇게 이기적인 말을 할 수 있는 거지?’“왜요? 제가 무슨 어려운 부탁이라도 했나요?”송승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하지수를 바라보며 안색이 조금 어두워졌다.“승우 씨, 정말 제대로 일하려고 온 거 맞아요? 아니면 그냥 문수 씨를 못 믿어서 온 건가요? 문수 씨가 회사를 잘 관리할 수 없다고 생각해서 감시하러 온 거냐고요!”“당연히 일하러 온 거죠. 아니면 왜 연구소 일까지 내려놓고 회사로 왔겠어요! 그리고 또...”“아까 지수 씨가 그러셨잖아요. 송문수를 못 믿냐고요. 맞아요. 전 송문수 그 자식 못 믿어요. 송문수가 회사를 제대로 이끌 수 있을지 제가 어떻게 알아요? 성과를 하나 냈다고 교만해져서 마음대로 하려 할 겁니다.”“갑자기 드는 생각인데요. 승우 씨는 왜 그렇게 문수 씨 잘되는 꼴을 못 보는 거예요?”하지수는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그게 아니라면 왜 문수 씨를 그렇게 모욕하고 내 곁에서 떼어놓으려 하겠어...’하지수의 능력이 얼마나
짧은 시간이었기에 송문수가 회사의 대체적인 상황을 잘 파악한 것만으로 대단한 것이었다. 게다가 이는 단지 송문수에게 회사를 관리하는 재능이 있어서 해낸 것이라고 단정 지을 수도 없었다.송문수가 매일 얼마나 열심히 일하고 있는지 하지수는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항상 그는 조금이라도 여유가 생기면 회사를 어떻게 운영해야 하는지 연구하면서 시간을 보냈고 지어는 날마다 새벽까지 야근을 하다가 집에 돌아갔다. 게다가 차에서 보는 서류들도 모두 송씨 그룹과 관련된 문서였다.송문수는 원래 시간만 나면 게임을 하거나 먹고 자고 놀기만 했던 사람이었다. 얼마 안 되는 사이에 송문수는 정말로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된 것 같았다....송문수의 말대로 하지수는 다음 주에 회사로 찾아올 크레지를 위해 연관 업무에 대한 계획을 세웠다.송문수와 하지수가 일 처리를 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이사님들도 점점 두 사람을 인정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이 맡긴 업무에 대해 불평이나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고 바로 행동에 옮기기만 했다.그러면서 송문수와 하지수의 업무 부담도 줄어들었고 회사도 더 원활하게 운영되고 있었다.회의가 끝난 후, 하지수는 송문수를 따라 그의 사무실로 갔다.요즘 들어서 그녀는 송문수의 사무실에서 일을 하는 것에 익숙해졌던 것이다. 송문수는 자주 회사의 전문 용어나 이해할 수 없는 마케팅 계획에 대해 물었고 그녀는 언제 어디서든 그가 묻는 말에 답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두 사람은 서로의 사무실을 오가는 시간을 절약할 수 있었다.“지수 씨, 잠깐 제 사무실로 올 수 있으세요?”그때, 송승우가 갑자기 하지수를 불렀다.하지수는 발걸음을 멈추고 잠시 망설였다. 그녀는 송문수를 한 번 바라보았다.“네 마음대로 해.”송문수는 이렇게 말하고 큰 걸음으로 사무실을 떠났다. 질투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어 보이는 송문수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하지수는 속으로 약간 허탈감을 느꼈다.송문수가 많이 변한 건 사실이었지만 하지수에 대한 감정은 별로 진전이 없는 것 같았다. 물론 그녀도